초기불교 교학과 수행 동영상10 - 초기불교의 인간관(오온)4 행온/식온


제10강: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오온4: 행온과 식온

    

 

[개요]

초기경에서 행(行, saṅkhāra)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이 가운데 행온(saṅkhāra-kkhandha)의 행은 ‘심리현상들’을 뜻한다. 오온의 행온은 항상 복수로 나타난다. 청정도론에서는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50가지를 들고 있다.

 

심리현상들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심리현상들이라고 부르는가?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심리현상들이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하는가? 물질이 물질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느낌이 느낌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인식이 인식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심리현상들이 심리현상들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알음알이가 알음알이이게끔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형성된 것을 계속해서 형성한다고 해서 심리현상들이라 한다.”(삼켜버림 경(S22:79) §7)

 

여기서 심리현상들로 옮긴 원어는 상카라(saṅkhārā)이고 중국에서 행(行)으로 옮긴 술어이다. 오온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상카라는 항상 복수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에 유념해야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오온의 네 번째인 상카라[行]를 ‘심리현상들’로 옮기고 있다.

혹자들은 오온의 행온을 의도적 행위나 업형성(력) 등으로 이해하고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행온의 한 부분인 cetanā(의도)만을 부각시킨 역어이다. 행온에는 이 의도를 포함한 50가지 심리현상들(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심리현상, 혹은 심소법들)을 다 포함한다는 것이 주석서와 복주서들을 비롯한 아비담마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행(saṅkhāra)의 세 가지 의미

옛날 중국에서 역경승들이 행(行)으로 옮긴 범어는 상카라(saṅkhāra, Sk.samskara)인데 이것은 saṁ(함께)+√kṛ(행하다, to do)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행한다는 의미를 지닌 어근 √kṛ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살려서 중국에서 행(行)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행이라는 한역 단어만을 가지고 상카라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의미는 초기경들에 나타나는 문맥을 통해서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상카라는 경들에는 크게 다음의 네 가지 문맥에서 나타난다.

 

첫째,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행개고(諸行皆苦)의 문맥에서 제행으로 나타나는데 항상 복수로 쓰인다. 이 경우의 제행은 유위법(有爲法, saṅkhata-dhamma)들을 뜻한다. 즉 열반을 제외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유위법들을 행이라고 불렀다. 이 경우에 행은 ‘형성된 것들’에 가까운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렇게 통일해서 옮기고 있다. 그 외 목숨의 상카라(ayu-saṅkhara), 존재의 상카라(bhava-saṅkhara), 생명의 상카라(jīvita-saṅkhāra)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경우도 ‘형성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둘째, 오온의 네 번째인 행온(行蘊, saṅkhāra-kkhandha)으로 나타나는데 이 경우에도 예외 없이 복수로 쓰인다. 오온 가운데서 색(色, 물질)은 아비담마의 색법이고 수상행(受想行)은 아비담마의 심소법(心所法)들이고 식(識)은 아비담마의 심법이다. 그러므로 오온에서의 행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52가지 심소법들 가운데서 느낌[수]과 인식[상]을 제외한 나머지 심소법들 모두를 뜻하는데, 감각접촉, 의도, 주의, 집중, 의욕과 유익한(善) 심리현상들 모두와 해로운(不善) 심리현상들 모두를 포함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경우의 행은 ‘심리현상들’로, 행온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로 옮기고 있다.

 

셋째, 12연기의 두 번째 구성요소인 무명연행(無明緣行)으로 나타난다. 12연기에서의 행도 항상 복수로 나타나는데 청정도론에서 ‘공덕이 되는 행위(punna-abhisankhara),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 흔들림 없는 행위’로 설명이 되듯이 이 경우의 행은 ‘업지음들’ 혹은 ‘의도적 행위들’로 해석된다. 이 경우의 행은 업(karma)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kamma-formations(업형성들)로 이해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의도적 행위들’로 옮긴다.

 

넷째, 몸(身)과 말(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인 신행(身行, kāya-saṅkhāra) 구행(口行, vacī-saṅkhāra) 의행(意行, mano-saṅjhāra)으로 나타난다. 본서 부미자 경(S12:25) §§8~10과 앙굿따라 니까야 상세하게 경(A4:232) §3 등에서 보듯이 이때의 행은 의도적 행위이다. 그리고 청정도론에서는 이 삼행도 12연기의 행처럼 업형성 즉 의도적 행위로 이해한다.(청정도론 XVII.61 참조) 그래서 신행 구행 의행은 각각 신업 구업 의업의 삼업(三業)과 동의어가 된다.

그런데 이 신구의 삼행은 상황에 따라 ‘작용’으로 이해해야 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이 몸의 상카라(신행)를 들숨날숨으로, 말의 상카라(구행)를 일으킨 생각[尋, vitakka]과 지속적 고찰[伺, vicāra]로, 마음의 상카라(의행)를 느낌과 인식으로 설명하는 경이 몇 군데있다.(본서 까마부 경 2(S41:6) §3이하를 참조) 이 경우에 상카라는 ‘작용’ 정도로 이해해야한다고 본다. 들숨날숨이나 생각과 고찰이나 느낌과 인식은 결코 의도적 행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상카라)은 그 용처에 따라서 그 의미를 각각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상카라(saṅkhāra)에다 접두어 abhi-를 붙인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가 나타나는데 이 경우는 의도적 행위를 뜻한다. 특히 청정도론과 주석서 문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의도적 행위를 뜻한다고 보여진다.(본서 부미자 경(S12:25) §8의 주해 참조) 그래서 본서에서 역자는 아비상카라를 ‘업형성’이나 ‘의도적 행위’로 옮기고 있다.

 

한편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 문헌과 아비담마에서는 위의 느낌과 인식을 포함하여 모두 52가지의 심리현상들을 들고 있는데, 이들을 다시 공통되는 것들 13가지와 과 해로운 것들 14가지와 유익한 것들 25가지로 분류한 뒤에 이들을 다시 ‘반드시들’과 ‘때때로들’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장을 참조할 것.

 

 

알음알이의 무더기

 

알음알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알음알이라고 부르는가? 식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vijānātīti kho tasmā viññāṇaṁ) 그러면 무엇을 알음하는가? 신 것도 식별하고 쓴 것도 식별하고 매운 것도 식별하고 단 것도 식별하고 떫은 것도 식별하고 떫지 않은 것도 식별하고 짠 것도 식별하고 싱거운 것도 식별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식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삼켜버림 경(S22:79) §8)

 

본경을 위시한 니까야들에서 알음알이는 단지 여섯 감각기능을 통해서 대상을 아는 작용을 뜻한다. 그래서 주석서 문헌에서 알음알이(viññāṇa)와 마음(citta)과 마노[意, mano]는 ‘대상을 아는 것(ārammaṇaṁ vijānāti ― ItA.ī.9; ārammaṇaṁ cinteti ― DhsA.63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아는 작용은 반드시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같은 심소법들의 도움이 있어야한다고 아비담마는 덧붙이고 있다.

 

[왜 오온을 설하셨는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은 무상하고 인식은 무상하고 심리현상들은 무상하고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도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꿰뚫어 안다.”(상윳따 니까야 무상 경(S22:12) §3 등)

 

“‘염오(nibbidā)’란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드러내고 있다.”(SA.ī.53 ― 의지처 경(S12:23) §4의 주해)

“‘탐욕의 빛바램(이욕, virāga)’이란 도(magga, 즉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이다.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는 것은 탐욕의 빛바램이라는 도에 의해서 해탈한다라는 과(phala)를 설하셨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라는 것은 여기서 반조(paccavekkhaṇā)를 설하셨다.(MA.ī.115 = 맛지마 니까야 뱀의 비유 경(M22) 29에 대한 주석)

또 다른 주석서를 인용하자면, “‘염오(nibbidā)’는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이고 ‘탐욕의 빛바램(virāga)’은 도이다. ‘해탈지견(vimutti-ñāṇadassana)’은 과의 해탈(phala-vimutti)과 반조의 지혜를 뜻한다.”(AA.īi.228) 이 주석서에서는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을 얕은 단계의 위빳사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과거/현재/미래 경1(S22:9) 등 온 상윳따(S22)의 도처에서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을 실현하는 것을 설하고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염오는 강한 위빳사나요, 이욕은 도요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주석서들은 밝히고 있다.

 


제11강: 마음 과연 무엇인가 ― 초기불교에서 본 마음

 

[개요]

마음은 오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마음은 무상하다

마음은 찰나생․찰나멸이다

마음은 흐름이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마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

마음은 연이생(緣起, 조건발생)이다

고정불변한 마음은 없다 --- 그러므로 절대로 마음을 절대화하면 안된다. 그건 불교가 아니고 외도다. 무엇보다도 절대화해버리면 절대로 못깨닫는다. 절대는 복종과 순종과 믿음과 충성의 대상이지 깨달음은 아니다.!! 불교의 믿음은 불법승계에 대한 믿음으로 족하다.

무상․고․무아와 연이생을 보는 것이 해탈이다

무상․고․무아는 해탈의 관문(vimokkha-mukha)이다

 

[마음의 정의]: 대상을 아는 것

여러 초기경에서는 ‘식별(識別, 了別)한다고 해서(vijānāti) 알음알이라한다’고 알음알이[識]를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알음알이가 일어나는 것을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cakkhuñ 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ṁ)”(괴로움 경(S35:106) §3) 등으로 경의 도처에서 표현하고 있다. 즉 알음알이는 감각장소와 대상을 조건으로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러 경들에서는 “마노로 법을 안다(manasā dhammaṁ vijānāti).”(S35:70/iv.42)”라고도 설명하는 구절이 나타난다. 이를 종합해보면 ‘감각장소를 통해서 대상을 아는 것’을 알음알이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석서 문헌에서는 마음(citta)을 “대상을 사량한다고 해서 마음이라 한다. [대상을] 안다는 뜻이다.(cittan ti ārammaṇaṁ cintetīti cittaṁ; vijānātīti attho - DhsA.63)”라거나 는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경전과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 문헌뿐만 아니라 북방 아비달마와 유식에서도 심의식은 동의어라고 한결같이 나타나고 설명되고 있다. 이미 초기경전의 몇 군데에서 “마음[心]이라고도 마노[意]라고도 알음알이[識]라고도 부른 것(yam kho vuccati cittam iti pi mano, iti pi viññāṇaṁ)”(배우지 못한 자 경1(S12:61) §4와 주해 참조)이라고 나타난다.

그럼 이러한 마음[心], 마노[意], 알음알이[識]에 대해서 유념해야할 몇 가지를 적어보자.

 

첫째, 마음 혹은 알음알이는 조건발생이다. 감각장소와 대상이라는 조건이 없이 혼자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마음은 절대로 존재할 수가 없다.

 

둘째, 마음은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일 뿐이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식의 아뢰야식도 반드시 종근기라는 대상을 가진다. 그럼 마음은 어떻게 대상을 아는가? 상좌부 아비담마는 이것을 인식과정으로 정교하게 설명해낸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4장을 참조할 것.

 

셋째, 마음은 단지 오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마음을 절대화하면 절대로 안된다. 마음을 절대화하면 즉시에 외도의 자아이론이나 개아이론이나 영혼이론이나 진인이론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금강경에 나타나는 산냐의 이론이다. 이것은 우리 불교가 가장 유념하면서 고뇌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넷째, 마음은 무상하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것(무아)이다. 특히 본 무더기 상윳따(S22) 도처에서 알음알이를 위시한 오온의 무상은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투철하고 사무쳐야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해탈지가 일어나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성자가 된다. 그렇지 않고 마음을 절대화해버리면 결코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 오온을 절대화해버리면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유신견이라 하셨고 이것은 중생을 중생이겠금 얽어매는 열가지 족쇄가운데 첫 번째로 초기경의 도처에서 나타나며, 이러한 유신견이 있는 한 그는 성자의 초보단계인 예류자도 되지 못한다.

 

다섯째, 마음은 찰나생․찰나멸이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citta)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도 쉽지 않다.”(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 A.i.9)라고 앙굿따라 니까야는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주석서와 아비담마에서 카나(khaṇa, 찰나, 순간)로 정착이 된다. 찰나의 규명은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을 위시한 법들은 찰나생․찰나멸하는 일어나고 사라짐(기멸)의 문제이지 있다․없다(유무)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주석서는 더 나아가서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uppāda-ṭṭhiti-bhaṅga) 세 아찰나(亞刹那, sub-moment)로 구성된다고 설명하여 자칫 빠질지도 모르는 찰나의 실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여섯 째, 마음은 흐름(상속, santati)이다. 마음이 찰나생․찰나멸이라면 지금여기에서 생생히 유지되어가는 우리의 이 마음은 무엇인가? 이렇게 명명백백한데 어떻게 없다 할 수 있는가? 초기불교와 주석서에서는 지금여기에서 생생히 전개되는 이 마음을 흐름으로 설명한다. 이를 주석서에서는 심상속(心相續, citta-dhāra, citta-srota, 금강경: 心流注)이니 바왕가의 흐름(bhavaṅga-sota)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남북방 불교에서 공히 강조하고 있다. 마음은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근본원인인 갈애와 무명으로 대표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탐진치)이 다할 때 까지 흐르는[相續] 것이다.

 


제12강: 인간이 가진 능력들 ― 22근(기능)을 중심으로

 

[개요]

일반적으로 기능[根, indriya]에는 모두 22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⑴ 눈의 기능[眼根] ⑵ 귀의 기능[耳根] ⑶ 코의 기능[鼻根] ⑷ 혀의 기능 [舌根] ⑸ 몸의 기능[身根] ⑹ 여자의 기능[女根] ⑺ 남자의 기능[男根] ⑻ 생명기능[命根] ⑼ 마노의 기능[意根] ⑽ 즐거움의 기능[樂根] ⑾ 괴로움의 기능[苦根] ⑿ 기쁨의 기능[喜根] ⒀ 불만족의 기능 [優根] ⒁ 평온의 기능[捨根] ⒂ 믿음의 기능[信根] (16) 정진의 기능[精進根] (17) 마음챙김의 기능[念根] (18) 삼매의 기능[定根] (19) 통찰지의 기능[慧根] (20)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21) 구경의 지혜의 기능[已知根] (22)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기능[具知根]이다.(아비담마 길라잡이 제7장 §18)

 

[설명]

‘기능[根]’으로 옮긴 인드리야(indriya)는 문자적으로만 보면 √ind(to be powerful)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인 indra의 형용사 형태로서 ‘인드라(Indra)에 속하는’의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드라는 다름 아닌 신들의 왕으로 우리에게 제석이나 석제로 알려진 인도의 신이다. 그래서 인드라는 힘의 상징이며 지배자, 통치자, 권력자를 뜻한다. 이러한 지배력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성명사로 정착된 것이 인드리야 즉 기능[根]이다. 그래서 기능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이들과 관계된 법들(sampayutta- dhammā)을 지배하는(issara) 정신적인 현상을 뜻한다. 기능은 모두 22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7장 §18과『청정도론』XVI장의 전반부를 참조할 것.

 

이 22가지는 상윳따 니까야 기능 상윳따(S48)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물론 한 경에서 22가지가 언급되고 있는 경우는 없으며 기능 상윳따에서 주제별로 독립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이 22가지가 함께 언급되고 설명되는 것은 위방가(분별론)라는 아비담마 논서에서부터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가진 기능이나 특수하고 고유한 능력의 측면에서 해체해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능과 다섯 가지 느낌과 믿음 등의 다섯 가지 기능과 남자, 여자, 생명의 세 가지 특수한 기능과 예류도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여덟 단계의 성자들이 가지는 세 가지 능력으로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여자의 기능[女根, itthindriya]’과 ‘남자의 기능[男根, purisindriya]’은 이 둘이 중요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앙굿따라 니까야 속박 경(A7:48/iv.57~59) §2 이하를 제외한 니까야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아비담마에서는 파생된 물질(upādā rūpa)에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담마상가니(Dhs §§633~634)와 위방가(Vbh.122~123)에서 정의되고 있으며 담마상가니 주석서(DhsA.321~323)와 청정도론 XIV.14:58에서 설명되고 있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에는 “‘여자의 기능(itthindriya)’이란 여자의 상태(여자됨, itthi-bhāva, 즉 여자의 외관상의 표시, 속성, 활동, 자세 등)에 대한 통제를 하는 것(indaṭṭhaṁ karoti)을 말한다. ‘남자의 기능’이란 남자의 상태(남자됨, purisa-bhāva)에 대한 통제를 하는 것을 말한다.”(SA.īi.237)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명기능[命根, jīvitindriya]’은 함께 생겨난 정신과 물질들을 지탱하는 기능을 말한다. 담마상가니(Dhs §635)와 위방가(Vbh.123)에서 정의되고 담마상가니 주석서(DhsA.323)와 청정도론 XIV.59에서 설명되고 있다.

 

(20)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21) 구경의 지혜의 기능[已知根] (22)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기능[具知根]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은 ‘나는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윤회에서(anamatagge saṁsāre) 전에 알지 못했던 법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도를 닦는 자(paṭipanna)가 예류도의 순간(sotāpatti-magga-kkhaṇa)에 일어난 기능이다. ‘구경의 지혜의 기능[已知根, aññindriya]’은 그렇게 법을 안 자들에게 속하는 예류도(sotāpatti-phala)로부터 [아라한도까지의] 여섯 경우에 일어난 기능이다.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자의 기능[具知根, aññātāvindriya]’은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자들에게 속하는 아라한과의 법(arahatta-phala-dhamma)들에서 일어난 기능이다.”(SA.īi.237)

 


제13강: 존재란 무엇인가 ― 12처와 18계를 중심으로

 

[개요]

12처는 상윳따니까야 육처 상윳따(S35)의 기본주제이다.

육처 상윳따(S35)에는 모두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육내처와 육외처를 주제로하고 있다. 이 안의 감각장소와 밖의 감각장소(대상)를 일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12가지 외에 다른 일체는 세울 수 없다고 하신다.

처(處, 감각장소)로 옮긴 원어 āyatana는 ā(이리로) + √yat(to strech)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ā + √yam(to move)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는 중성 명사이다. 불교 이전부터 인도 바라문교의 제의서(祭儀書, Brāhmaṇa) 문헌에 많이 나타나는 단어인데 거기서는 주로 제사지내는 장소를 아야따나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동물들의 서식지를 아야따나로 부르기도 하였다. 청정도론 XV.5에 의하면 아야따나에는 ① 머무는 장소(nivāsa-ṭṭhāna) ② 광산(ākara) ③ 만나는 장소(samosaraṇa) ④ 출산지(sañjāti-desa) ⑤ 원인(kāraṇa)의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쪽으로 온다는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입(入)으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이 단어가 장소(base, sphere)의 의미로 쓰이므로 처(處)라고 옮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2연기의 다섯 번째 구성요소인 saḷ-āyatana는 육입(六入)으로 옮겼으며, 눈의 감각장소[眼處, cakkhu-āyatana] 등과 형색의 감각장소[色處, rūpa-āyatana] 등의 육내/외처(12처)와, 공무변처(空無邊處)부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의 4처는 처(處)로 옮겼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감각작용과 관계된 육입이나 12처는 ‘감각장소’로 옮기고 있으며 4처는 ‘장소’로 옮기고 있다.

 

12처는 일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意]과 마음의 대상[法]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일체 경(S35:23) §§3~4)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라는 것은 말로만 말하게 되는 토대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즉, 이 12가지 감각장소들을 떠나서 또 다른 고유성질을 가진 법(sabhāva-dhamma)이 있다고 설 할 수 없다는 뜻이다.”(SA.ī.358)

 

[12처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해탈지]

3.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나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한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意]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나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한다.”

4.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꿰뚫어 안다.”(상윳따 니까야 안의 무상 경(S35:1) §§3~4)

 

“비구들이여, 형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나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한다.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 대상[法]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나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꿰뚫어 안다.”(상윳따 니까야 밖의 무상 경(S35:4) §§3~4)

 

이처럼 존재를 12가지로 한정짓고 이 열두 가지 각각이 무상/고/무아임을 천명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해탈지를 성취하게 하시려는 것이 12처 가르침의 핵심이다.

 

18계는 마음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12처 가운데서 마노(mano, 意)를 다시 마노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일곱 가지로 세분한 것이 18계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왜 12처를 18계로 더 세분해서 요소들로 말씀하셨을까? 마노 혹은 마음을 자아라고 영혼이라고 거머쥐는 것을 척파하기 위해서이다. 마노는 하나가 아니라 7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체해서 보여주시는 것이 18계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소는 영혼이 아닌 것(nijjīva, 非命)의 동의어이다. 세존께서 “비구여, 이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를 가졌다.(M140/īi.239)”라는 등에서 영혼이라는 산냐(壽者想)를 부수기 위해 요소(界)라는 가르침을 설하셨다.”(Vis.XV.22)

 

영혼이라는 산냐(jīvasaññā)는『금강경』의 수자상(壽者相, jīva-sañjñā)과 꼭 같은 단어이다. 한편『앗타살리니』(Aṭṭhasālinī,『담마상가니』의 주석서, DhsA.38)에서 법(dhamma)을 ‘nissatta-nijjīvatā’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생(satta)도 아니고 영혼(jīva)도 아님’이라는 말이다. 요소(界)로 옮기고 있는 dhātu도 dhamma와 같은 어근인 √dhṛ(to hold)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법이나 요소라는 술어가 자아라는 산냐(我相)나 인간이라는 산냐(人相)나 중생이라는 산냐(衆生相)나 영혼이라는 산냐(壽者相) 등을 부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처럼 중국에서 계(界)로 옮긴 dhātu는 그것이 드러내고자하는 법들이 중생이라는 실체가 없고 공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기 때문에 요소들의 다양함이라고 불린다는 말이다. 즉 요소는 중생이니 자아니 인간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施設, paññatti]를 18개의 요소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드러나고 그래서 개념적 존재의 공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12처와 18계의 특징 몇 가지

 

첫째, 존재를 나를 중심으로 해서 안과 밖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신다. 안으로는 6내처 밖으로는 육외처뿐이라고 하신다.

둘째, 18계는 육내처에서 다시 6식을 독립시킨 것이다. 의처(意處)를 나라고 영원한 마음이라고 자칫 집착할까봐 이를 다시 7가지로 분류해낸 것이다.

셋째, 마노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① 색성향미촉 외의 대상을 인지하는 기관이다. ② 전오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안식이 받아들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의식이 일어나서 이를 판단해야하는데 안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마노(의)이다. 아비담마의 인식과정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넷째, 이렇게 살펴봄으로 해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상이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우주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라든지 우주라든지 일체라든지 존재라든지 하는 개념에 속게 된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안과 밖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12처와 18계이다.

다섯째,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육내외처로 18계로 해체해서 보면 일체 모든 존재의 무상/고/무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삼특상을 철견하면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해탈지를 성취하게 된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사실 육처 상윳따의 248개 경들 가운데 반 이상이 무상고무아를 설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들도 존재나 육내외처를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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