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 - 출가자가 짓는 농사

까시 바라드와자 경(Kasibhāradvāja Sutta, S7:11)

- 출가자가 짓는 농사

 

【해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인간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맞는 학문(vijjā)과 기술(sippa)을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가져서 열심히 일을 하여 사회에 기여를 한다. 이러한 대가로 임금이나 이윤을 창출하여 이것을 가지고 자신과 가족이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이것을 잘 저축하여 사회에 보시하고 봉사를 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행복을 공유하면서 산다.

 

그러나 출가자는 가정을 버리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을 버렸기 때문에 직업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임금이나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본경에서 바라문은 이러한 출가자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면서 탁발을 나오신 세존께 “사문이여,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습니다.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으십시오.”(§3)라고 주장한다.

 

부처님께서는 출가자도 일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출가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명쾌하게 말씀하신다. 본경에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으십시오.”(§3)라는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는다네.”(§3)라고 대답하신 뒤에 출가수행의 바탕이 되는 믿음, 고행, 통찰지, 양심, 마음, 마음챙김, 보호(계), 음식의 제어, 진리, 정진 등을 농사에 필요한 씨앗 등의 10가지에 비유하여 말씀하신다.(§§4~5) 그런 후에 “이와 같이 밭갈이를 다 해마치고/ 불사(不死)의 결실을 거두게 되니/ 이러한 밭갈이를 마치고 나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풀려나도다.”라고 말씀하신다.(§5)

 

본경은 무엇이 출가자의 진정한 노동이고 농사인지를 세존께서 명쾌하게 밝혀주시는 가르침이다. 세상 사람들이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혀서 이것으로 바른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서 금생의 행복을 추구하고 종교적 신념과 보시와 계행을 갖추어 내생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출가자는 부처님이 강조하신 이러한 10가지 일을 통해서 불사(不死)로 표현되는 열반이라는 궁극적 행복을 실현하고 그 공덕을 세상에 회향한다.

 

본경은『숫따니빠따』에도「까시 바라드와자 경」(Sn1:4)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이기도 하다. 스리랑카에서 본경은 보호주 혹은 호주(護呪, paritta)로 여겨져서 싱할리어로 된 Maha Pirit Pota(대보호주를 모은 책)에 포함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닥키나기리(남산)의 에까날라라는 바라문 마을에 머무셨다.

 그 무렵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씨 뿌리는 시기가 되어서 쟁기를 맨 소 500마리를 준비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일터로 가셨다.

그 무렵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음식을 배분하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음식을 배분하는 곳으로 가셔서 한 곁에 서계셨다.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서 걸식을 위해서 서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습니다.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으십시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는다네.”

“그러나 우리는 고따마 존자의 멍에도 쟁기도 보습도 몰이막대도 황소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고따마 존자는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먹는다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뒤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밭가는 자라고 공언하시지만

당신이 밭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밭가는 분이라면, 여쭙노니 말씀해 주소서.

당신의 밭갈이를 어떻게 이해하리까?” {662}

 [세존]

“믿음은 씨앗, 고행은 비

나의 통찰지는 멍에에 맨 쟁기

양심은 [연결하는] 막대기, 마음은 노끈

나의 마음챙김은 보습과 몰이막대 {663}

몸을 보호하고 말을 보호하고

뱃속에 들어가는 음식량 제어하고

진리를 잡초 뽑는 갈고리로 사용하여

온화함에 [도달하여] 나의 멍에 풀었도다. {664}

 

정진이야말로 짐을 실어 나르는 동물

유가안은으로 실어가도다.

그것은 쉼 없이 가고 또 가나니

거기 가서 사람은 슬퍼하지 않도다. {665}

 

이와 같이 밭갈이를 다 해마치고

불사(不死)의 결실을 거두게 되니

이러한 밭갈이를 마치고 나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풀려나도다.” {666}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것을 드십시오. 고따마 존자는 밭가는 분이십니다. 고따마 존자는 불사(不死)의 결실을 가져오는 밭갈이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존]

“게송 읊어 생긴 것을 나는 먹지 않노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니라.

게송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이라. {667}

 

독존(獨尊)이요 대성자요 번뇌 다한 자

후회가 가라앉은 자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라.” {668}

이렇게 말씀하시자 까시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주해]

여기에 대한 주석서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왜 세존께서는 ‘믿음은 씨앗(saddhā bījaṁ)’이라고 믿음부터 말씀하셨는가? 이 바라문은 지혜롭기는 하지만 삿된 견해를 가진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믿음은 씨앗이 되는가? 이것은 모든 유익한 법들[善法]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땅에 씨앗을 심으면 뿌리가 나고 싹(aṅkura)이 튼다. 뿌리로는 땅의 영양분과 물을 빨아들여 줄기로 자라게 된다. 자라고 증장하여 마침내 꼭대기에 많은 곡식을 맺게 된다. 그와 같이 믿음이라는 씨앗을 땅에 심으면 계(sīla)라는 뿌리로부터 사마타와 위빳사나라는 영양분(samatha-vipassanā-rasa)을 빨아들여 성스러운 도라는 줄기(ariya- magga-nāḷa)를 통해서 성스러운 과라는 곡식(ariya-phala-dhañña)을 맺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여섯 단계의 청정을 통해서 자라서 마지막으로 지와 견의 청정이라는 수액(ñāṇadassana-visuddhi-khīra)을 생산하게 되고 이것은 아라한과(arahatta-phala)라는 열매가 되어서 여러 가지 무애해와 신통지를 산출(aneka-paṭisambhida-abhiññābharita)하게 된다. 그래서 믿음은 씨앗이라고 하신 것이다.(SA.i.249~250)

여섯 단계의 청정은 칠청정 가운데 처음의 여섯을 말한다. 칠청정은 ⑴ 계 청정 ⑵ 마음 청정 ⑶ 견 청정 ⑷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 ⑸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知)와 견(見)에 의한 청정 ⑹ 도닦음에 대한 지 와 견에 의한 청정 ⑺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이다. 칠청정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9장 §§28~34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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