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경1/2(A6:47~48)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경1(A6:47)


【해설】

부처님 가르침은 법을 생명으로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S22:87)고 하셨으며 법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으라고 하셨다.(D16)

 

여러 경에서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면 불교의 생명인 법이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이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본경에 들어 있다.

 

여기 소개하는 두 개의 경에서 몰리야시와까 유행승과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가서 이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세존께서는 그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계신다. 이 두 개의 경에서 세존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대에게 탐욕이 있으면 탐욕이 있다고 알 수 있는가?’라고 되물으시고 그들은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같은 방법으로 세존께서는 ‘그대에게 성냄이 있으면 성냄이 있다고 알고 ,어리석음이 있으면 어리석음이 있다고 알고, 탐욕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과 함께 하는 법(심리 현상들)이 일어나면 그렇다고 아는가?’ 등으로 질문을 하시고 그들은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아는 것이 바로 법을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씀하신다.

 

이 두 개의 경에서 부처님께서 강조하고 계신 법은 지금여기에서 자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정신․물질적인 현상들을 말한다. 이것을 보는 것이 법을 보는 것이요, 이것이 무상하고 괴로움이요 무아임을 여실하게 보면 그로 인해 우리는 염오하게 되고 탐욕이 빛바래게 되고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법을 보는 것이야말로 해탈의 관문이며, 이처럼 법을 보는 것을 위빳사나(vi-passanā, 깊이 보기, 꿰뚫어보기, 해체해서 보기)라고 정의한다.

 

물론 온․처․계․근․제․연(5蘊․12處․18界․22根․4諦․12緣) 등으로 정리되는 초기불교의 법수나 82법․75법 등으로 정리되는 아비담마의 법수들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법이다. 이러한 체계적인 가르침은 단순한 암기를 위하거나 형이상학적인 불교 교학 체계를 위해서 설하신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법체계를 통해서 지금여기 내 안에서 일어나는 법을 스스로 보아야 한다. 법체계는 이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지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 그때 몰리야시와까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몰리야시와까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2. “시와까여, 그렇다면 이제 그대에게 되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라. 시와까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안으로 탐욕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탐욕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그대에게 안으로 탐욕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탐욕이 없다.’라고 꿰뚫어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시와까여, 그대가 안으로 탐욕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탐욕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안으로 탐욕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탐욕이 없다.’라고 꿰뚫어 알 때, 그와 같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

시와까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안으로 성냄이 있으면 … 어리석음이 있으면 … 탐욕과 함께한 법들이 있으면 … 성냄과 함께한 법들이 있으면 …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그대에게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없다.’라고 꿰뚫어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시와까여, 그대가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어리석음과 함께한 법들이 없다.’라고 꿰뚫어 알 때, 그와 같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음 경2(A6:48)

   

1. 그때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떻게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2.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대에게 되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라.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안으로 애욕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애욕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그대에게 안으로 애욕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애욕이 없다.’라고 꿰뚫어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이여, 그대가 안으로 애욕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애욕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안으로 애욕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애욕이 없다.’라고 꿰뚫어 알 때, 그와 같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안으로 성냄이 있으면 … 어리석음이 있으면 … 몸의 불결함이 있으면 … 말의 불결함이 있으면 … 마음의 불결함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그대에게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없다.’라고 꿰뚫어 아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이여, 그대가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있으면 ‘내게는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있다.’라고 꿰뚫어 알고,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없으면 ‘내게는 안으로 마음의 불결함이 없다.’라고 꿰뚫어 알 때, 그와 같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