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1/2(A6:19~20)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1(A6:19)

Maraṇassati-sutta

 

【해설】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마음챙김(sati)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챙김이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수행 기법을 설하고 계시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디가 니까야』제2권「대념처경」(D22)을 들 수 있다.「대념처경」은 초기불교 수행법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이라는 네 가지 주제하에 집대성한 경으로 초기불교 수행법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가장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몸에 대한 마음챙김에 관한 부분만을 모은 것이『맛지마 니까야』의「염신경」(念身經, M119)이며, 다시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부분만을 더 자세하게 설하고 있는 것이『맛지마 니까야』「출입식념경」(M118)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개의 경들을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을 설하신 수행삼경(修行三經)이라 불러도 괜찮다.

 

그런데 여기에「대념처경」으로 집대성된 이러한 마음챙김에 관한 여러 경들에 포함되어 나타나지 않는 마음챙김의 명상 주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본경에 나타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은 다른 니까야에는 보이지 않고『앙굿따라 니까야』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두 개의 경들과 같은 이름으로「여덟의 모음」에도 나타나는 두 개의 경들(A8:73~74)이다.

 

이러한 경들을 토대로 『청정도론』VIII.1~41에서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청정도론』III.57에서는 모든 경우에 다 유익한 명상 주제로 자애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들고 있다. 그만큼 죽음은 모든 수행자가 항상 유념하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챙김의 명상 주제인 것이다.

 

 

 

 

 한때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하루 밤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하루 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한 번 밥 먹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네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한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밤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한 번 밥 먹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네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방일하게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둔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한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부지런히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리라.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으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2(A6:20)


  한때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날이 지고 밤이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게 죽음을 가져올 여러 조건이 있다. 뱀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전갈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지네가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발부리가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먹은 음식이 탈이 날지도 모른다. 혹은 담즙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가래가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마치 칼처럼 [관절을 끊는] 바람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라고 알게 되면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옷이 불타고 머리가 불타는 자는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서 아주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비구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없다’라고 알게 되면 그 비구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에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밤이 지새고 낮이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게 죽음을 가져올 여러 조건이 있다. 뱀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전갈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지네가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발부리가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먹은 음식이 탈이 날지도 모른다. 혹은 담즙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가래가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마치 칼처럼 [관절을 끊는] 바람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라고 알게 되면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옷이 불타고 머리가 불타는 자는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서 아주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비구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없다.’라고 알게 되면 그 비구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에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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