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경(Jhāna Sutta, A9:36) - 4禪-4처를 모두 닦아야 번뇌가 다하는가

선(禪) 경(Jhāna Sutta, A9:36)

4禪-4처를 모두 닦아야 번뇌가 다하는가

 

【해설】

초기 불교의 수행법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의문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이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려면 반드시 네 가지 선을 모두 다 닦아야 하는가? 게다가 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무색계선까지도 빠짐없이 다 닦아야만 아라한이 되고 깨달음을 증득하는가?’하는 것이다. 본경은 이러한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경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초선을 의지해서도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고, 제2선을 의지해서도, 제3선을 의지해서도, 제4선을 의지해서도 아라한이 되며, 나아가서 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각각을 의지해서도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신 뒤 그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계신다. 즉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삼매를 반드시 모두 다 닦아야만 아라한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초선을 의지해서 아라한이 되는가? 세존께서는 본경 §2에서 초선의 경지에서 일어난 오온의 법들이 무상이요 고요 무아라고 통찰하여 오온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열반을 증득한다는 요지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즉 초선의 경지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해서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아라한이 되고 불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제2선부터 무소유처까지의 증득도 번뇌 다한 경지의 토대가 된다고 말씀하신 뒤에 “비상비비상처의 증득과 상수멸의 이 두 경지는 증득에 능숙하고 증득에서 출정하는 것에 능숙한, 禪을 닦는 비구들이 증득에 들었다가 출정한 뒤에 바르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라고 결론지으시고 본경을 마친다.(§5) 관심있는 분들의 정독을 권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초선(初禪)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2선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3선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제4선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식무변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

 

2. “‘비구들이여, 초선(初禪)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 초선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물질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심리현상들이건 알음알이건, 그 모든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他]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린 뒤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빛바램[離慾]이요, 소멸[滅]이요, 열반이다.’라고. 그는 여기에 확고하게 머물러 번뇌가 다함을 얻는다.[阿羅漢] 만일 번뇌가 다함을 얻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법을 좋아하고 이러한 법을 즐기기 때문에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不還者]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궁수나 궁수의 도제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나 진흙더미로 연습을 한 뒤에, 나중에는 멀리 쏘고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고 큰 몸을 쳐부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 초선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물질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심리현상들이건 알음알이건, 그 모든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他]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린 뒤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빛바램[離慾]이요, 소멸[滅]이요, 열반이다.’라고. 그는 여기에 확고하게 머물러 번뇌가 다함을 얻는다. 만일 번뇌가 다함을 얻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법을 좋아하고 이러한 법을 즐기기 때문에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초선(初禪)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3. “‘비구들이여, 제2선을 의지해서도 … 제3선을 의지해서도 … 제4선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물질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심리현상들이건 알음알이건, 그 모든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他]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린 뒤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止]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소진이요, 탐욕의 빛바램[離慾]이요, 소멸[滅]이요, 열반이다.’라고. 그는 여기에 확고하게 머물러 번뇌가 다함을 얻는다. 만일 번뇌가 다함을 얻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법을 좋아하고 이러한 법을 즐기기 때문에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궁수나 궁수의 도제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나 진흙더미로 연습을 한 뒤에, 나중에는 멀리 쏘고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고 큰 몸을 쳐부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不還者]

‘비구들이여, 제2선을 의지해서도 … 제3선을 의지해서도 … 제4선을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4.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느낌이건 인식이건 심리현상들이건 알음알이건, 그 모든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他]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궁수나 궁수의 도제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나 진흙더미로 연습을 한 뒤에 나중에는 멀리 쏘고,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고, 큰 몸을 쳐부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물질[色]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5. “‘비구들이여, 식무변처를 의지해서도 …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느낌이건 인식이건 심리현상들이건 알음알이건, 그 모든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他]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궁수나 궁수의 도제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나 진흙더미로 연습을 한 뒤에 나중에는 멀리 쏘고, 전광석화와 같이 꿰뚫고, 큰 몸을 쳐부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

그는 이런 법들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다. …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번뇌가 다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인식이 함께한 [선정의] 증득[等至]이 있는 한 완전한 지혜로 꿰뚫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비상비비상처의 증득과 상수멸의 이 두 경지는 증득에 능숙하고 증득에서 출정하는 것에 능숙한, 선[禪]을 닦는 비구들이 증득에 들었다가 출정한 뒤에 바르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주해

“여기서는 왜 비상비비상처를 언급하지 않았는가? 미세하기 때문(sukhumattā)이다. 그 경지에서는 네 가지 정신의 무더기들(arūpa-kkhandhā)도 미세하여 명상(sammasana)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AA.iv.197)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