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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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목차>

제8장 유행승 품
경 번호
페이지
왓차곳따 삼명 경M7175
왓차곳따 불 경M7282
왓차곳따 긴 경M7395
디가나카 경M74109
마간디야 경M75117
산다까 경M76137
사꿀루다이 긴 경M77166
사마나만디까 경M78205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218
웨카낫사 경M80237


제 9장 왕 품
경 번호페이지
가띠까라 경M81245
랏타빨라 경M82262
마카데와 경M83292
마두라 경M84308
보디 왕자 경M85320
앙굴리말라 경M86332
애생경(愛生經)M87349
외투 경M88358
법탑 경M89369
깐나깟탈라 경M90383


제10장 바라문 품
경 번호페이지
브라흐마유 경M91399
셀라 경M92429
앗살라야나 경M93444
고따무카 경M94463
짱끼 경M95472
에수까리 경M96495
다난자니 경M97506
와셋타 경M98520
수바 경M99539
상가라와 경M100560


제11장 데와다하 품
경 번호페이지
데와다하 경M101585
다섯과 셋 경M102612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M103635
사마가마 경M104645
수낙캇따 경M105661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678
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691
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702
보름밤의 긴 경M109716
보름밤의 짧은 경M110727




< 맛지마 니까야 제3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맛지마 니까야』는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이 남기신 가르침 가운데 그 길이가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경들을 모아서 결집한 것이다. 여기서 중간 정도란 복주서의 설명대로 지나치게 길지도 않고 지나치게 짧지도 않은 길이의 경들을 말한다. 길이가 긴 경 34개는『디가 니까야』에 결집을 하였다. 그리고 길이가 짧은 경들은 다시 주제별로 나누어서 2904개를『상윳따 니까야』에 담았고, 숫자별로 분류하여 2305개를『앙굿따라 니까야』에 모았다. 여기『맛지마 니까야』에는 이들을 제외한 중간 정도의 길이에 해당하는 경들 152개가 들어있다. 

이 152개의 경들은 모두 15개의 품으로 분류되고, 이 15개의 품들은 다시 세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묶어져서 모두 세 권으로 전승되어 온다. 제1권인『처음 50개 경들의 묶음』(Mūla-paṇṇāsa)에는 제1품부터 제5품에 속하는 M1부터 M50까지의 5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Majjhima-paṇṇāsa)이라 불리는 제2권에는 제6품부터 제10품에 속하는 M51부터 M100까지의 50개 경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인 제3권은『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Upari-paṇṇāsa)이라 불리는데, 여기에는 제11품부터 제15품에 속하는 M101부터 M152까지의 52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맛지마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디가 니까야』다음에 결집(합송)되어서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해왔다고 한다.(AA.i.15)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분량의 문제 때문에 이들을 전체 네 권으로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본 제1권에는 제1품부터 제3품까지의 세 개 품 30개의 경들이, 제2권에는 제4품부터 제7품까지의 네 개 품 40개의 경들이, 제3권에는 제8품부터 제11품까지의 네 개 품 40개의 경들이, 제4권에는 제12품부터 제15품까지의 네 개 품 42개의 경들이 실려 있다.


2. 한글『맛지마 니까야』제3권의 구성

『맛지마 니까야』한글번역본 제3권에는 빠알리 원본의 제2권인『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에 포함되어 있는 제8장「유행승 품」(M71~M80), 제9장「왕 품」(M81~M90), 제10장「바라문 품」(M91~M100)의 세 품과, 빠알리 원본의 제3권인『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가운데 첫 번째 품인 제11장「데와다하 품」(M101~M110)의 네 개의 품에 속하는 40개의 경들이 번역되어 들어있다.『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에 대한 설명은 본서 제2권의 해제를 참조하고,『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에 대한 설명은 본서 제4권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제『맛지마 니까야』제3권에 포함되어 있는 네 개의 품들에 대해 살펴보자.


⑴ 제8장「유행승 품」(M71~M80)

제8장「유행승 품」에는 유행승에 관계된 경들 열 개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유행승(遊行僧)’은 paribbājaka를 옮긴 것인데 이 단어는 pari(around)+√vraj(to proceed, to wander)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초기불전에서 많이 나타나며 집을 떠나 수행하는 부처님 제자들 즉 불교 수행자들을 제외한 출가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재가의 속박을 버리고 출가한 자(gihi-bandhanaṁ pahāya pabbajj-ūpa- gata)”(MA.ii.7)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서 전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니까야에서는 니간타 등의 육사외도처럼 큰 집단에 속하는 출가자는 유행승이라 표현하지 않고 그들에 해당하는 이름인 니간타 등으로 각각 부르고 있으며, 그 외 별다른 특징이나 큰 집단을 이루지 않은 일반 출가자들은 유행승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는 듯하다.『디가 니까야』제3권「우둠바리까 사자후경」(D25)에 의하면 니그로다(Nigrodha) 유행승은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기도 했다.

주석서와 복주서에 의하면 유행승에도 옷을 입는 유행승(channa-pari -bbājaka)과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nagga-paribbājaka)이 있었으며,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을 나체수행자(acela)라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AA. ii.349; AAṬ.i.472 등) 본서를 위시한 여러 니까야에서 나체수행자들은 유행승이라 불리지 않고 나체수행자로 명명되고 있다.(M57; M124 등) 한편 초기불전에서는 비구들의 출가를 빱밧자(pabbajjā, pra+√vraj, pabbajati)라 표현하여 일반 유행승을 지칭하는 빠립바자까(paribbājaka, pari+√vraj)와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제 본 품에 포함된 10개 경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먼저 본 품의 첫 번째 경인「왓차곳따 삼명 경」(M71)은 부처님은 일체지자가 아니라 삼명을 갖춘 분임을 강조하시는 등 네 가지 주제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설하신 경이다.「왓차곳따 불 경」(M72)도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설하신 가르침인데 본경은 10사무기를 담고 있으며, 불의 비유로 여래는 오온으로부터 해탈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왓차곳따 긴 경」(M73)은 왓차곳따 유행승의 출가를 담고 있으며, 그는 부처님 제자가 되어 드디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견해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몸과 느낌의 무상․고․무아–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계신「디가나카 경」(M74)은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인 디가나카 유행승에게 설하신 가르침인데, 이 가르침을 듣고 사리뿟따 존자는 드디어 아라한이 되었다.「마간디야 경」(M75)은 부처님을 존재의 파괴자(bhūnaha)요, 성장의 파괴자(vaḍḍhi-hata)라고 비난하는 마간디야 유행승에게 세 가지를 설하여 대응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마간디야는 출가를 결행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이 되었다.

「산다까 경」(M76)은 아난다 존자가 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린 산다까 유행승과 나눈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난다 존자의 네 가지 가르침에 감동을 받은 산다까 유행승이 제자들에게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도록 권고하면서 경은 마무리된다.「사꿀루다이 긴 경」(M77)은 세존의 법의 특징에 대해서 사꿀루다이 유행승과 부처님의 대화로 진행이 된다. 본경을 듣고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제자들의 만류로 결행을 하지 못한다.

십정도(十正道)를 갖춘 자야말로 진정한 사문이라는 세존의 가르침을 담은「사마나만디까 경」(M78)은 사마나만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일화를 담고 있다.「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에서 세존께서는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⑴ 최상의 광명과 ⑵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와 ⑶ 진정한 수행의 길인 15단계의 계․정․혜의 정형구의 세 가지를 가르치신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광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웨카낫사 경」(M80)은 세존께서 웨카낫사 유행승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처럼 본 품에 포함된 열 개의 경들은 모두 유행승들에게 설하셨거나 그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본 품에 포함된 경들을 통해서 보듯이 왓차곳따 유행승(M73)과 마간디야 유행승(M75)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고, 디가나카 유행승(M74)은 예류자가 되었으며, 사꿀루다이 유행승(M77, M79)은 아소까 대왕 때 태어나 아라한이 되었고(MA.iii.276), 웨카낫사 유행승(M80)은 부처님의 신도가 되었으며, 산다까 유행승(M76)은 제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닦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⑵ 제9장「왕 품」(M81~M90)

‘왕’은 rāja를 옮긴 것이다. 왕은『율장』(Vin.iii.222)에서 “통치를 하는 자(yo koci rajjaṁ kāreti)”라고 정의되듯이 나라나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같은『율장』은 다시 “‘왕(rāja)’이란 전 대지의 왕, 나라의 왕, 지역의 왕, 국경을 통치하는 자, 판결하는 자, 국무총리, 자르고 죽이는 것을 명령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를 일컬어 왕이라 한다.” (Vin.iii.47)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디가 니까야』제3권「세기경」(D29) §21과『청정도론』XIII.54에서는 “법으로 남들을 통치한다(dham -mena pare rañjeti)고 해서 ‘왕, 왕’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PED에서 rāja라는 단어를 길게 설명하고 있듯이 왕으로 옮겨지는 라자(rāja)는 다양한 문맥에서 쓰이고 있다. rāja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PED의 s.v. rāja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본 품에 나타나는 열 개의 경들을 간단하게 개관해 보자. 본 품의 첫 번째 경인「가띠까라 경」(M81)은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있었던 가띠까라라는 도기공과 그의 친구인 조띠빨라 바라문 학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경 §14 이하에는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까시(바라나시)의 왕이었던 끼끼 왕이 언급되는데 그래서 본경을 여기「왕 품」에 포함시킨 듯하다. 두 번째인「랏타빨라 경」(M82)은 랏타빨라 존자의 출가기와 설법을 간직한 경이다. 경의 후반부에 꼬라뱌 왕에게 설한 네 가지 가르침이 나타나는데 그래서 본경을 여기「왕 품」에 포함시켰다. 세존께서 먼 전생에 마카데와라는 왕이었을 때의 일화를 설하시는 것을 담고 있는「마카데와 경」(M83)도 본 품에 포함되어 있다.

「마두라 경」(M84)은 사성계급의 평등에 관해서 마하깟짜나 존자가 마두라의 아완띠뿟따 왕에게 설한 가르침을 담은 경이다.「보디 왕자 경」(M85)은 부처님께서 불교 모태신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보디 왕자에게 불교의 핵심을 밝히시고 지금․여기에서 청정범행을 완성하는 방법을 설하신 가르침이다. 같은 왕자인데 아바야 왕자에게 설하신 본서 제2권「아바야 왕자 경」(M58)은 제6장「장자 품」에 포함되어 있지만「보디 왕자 경」은 이곳「왕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부처님 당대에 희대의 도적이요, 살인마였던 앙굴리말라가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유명한 일화를 담고 있는「앙굴리말라 경」(M86)에는 §7 이하에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등장한다.「애생경」(愛生經, M87)에는 세속적 가치를 존중하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비세속적인 가치를 옳다고 받아들이는 말리까 왕비의 대화가 주된 내용으로 나타나므로 이곳「왕 품」에 포함시켰다.「외투 경」(M88)은 세존에 대한 무서운 소문을 배경으로 해서 빠세나디 꼬살라왕과 아난다 존자 간에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법탑 경」(M89)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10가지로 부처님께 최상의 존경을 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깐나깟탈라 경」(M90)은 깐나깟탈라의 녹야원에서 가졌던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대화를 담은 경으로, 왕은 네 가지를 질문드리고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대답하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보듯이 본 품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rājā Pasenadi Kosala)과 관계된 경이 M86부터 M90까지 본 품의 반에 해당하는 다섯 개가 포함되어 있다. 빠세나디 왕은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재가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부처님과 동갑이었다.(M89 §19) 그와 관계된 경 25개를『상윳따 니까야』제1권「꼬살라 상윳따」(S3)에 모아서 결집할 정도로 그는 세존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⑶ 제10장「바라문 품」(M91~M100)

본 품은 인도의 종교인과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바라문들과 관계되는 경들을 모은 것이다. ‘바라문(婆羅門)’은 brāhmaṇa(Sk.와 동일)를 음역한 것이다. 바라문은 인도의 종교인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바라문이라는 특정 계급 출신이며 독신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산다. 물론 8살부터 20살까지 12년간은 스승의 문하에서 독신으로 금욕생활을 하면서 베다 등을 학습한다.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듯이 바라문들은 세존과 심도 깊은 대화가 가능한 지적이고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바라문 계급의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본 품에도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강한 비판이 담겨 있는 경들이 많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도 사리뿟따 존자, 목갈라나 존자, 마하깟사빠 존자, 뿐나 만따니뿟따 존자 등 교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에는 바라문 출신들이 많았다. 주석서들에서는 “‘바라문(brāhmaṇa)’이란 최상(seṭṭha)이며 결점이 없다는(niddosa) 뜻이다.”(AA.iii.4)라거나 “사악함을 내몰았기(bāhita-pāpatā) 때문에 바라문이라는 술어가 생긴 것이니 번뇌 다한 자(khīṇāsava)를 말한다.”(AAṬ.ii.203)라는 등으로 바라문을 정의하고 있다.

한편 본 품에 포함된「와셋타 경」(M98) §10 이하의 게송들과『법구경』「바라문 품」(Dhp.390~423)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바라문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계시는데 탐․진․치가 다하고 번뇌가 다한 성자야말로 진정한 바라문이라고 강조하신다. 바라문 집단의 출현(brāhmaṇa -maṇḍala)에 대한 불교식의 이해는『디가 니까야』제3권「세기경」(D27) §22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본 품에 포함된 경들을 간략하게 개관해 보자. 본 품의 첫 번째 경은「브라흐마유 경」(M91)인데 본경은 120살이 된 브라흐마유 바라문의 제자 웃따라 바라문 학도의 관찰을 통해서 부처님의 32상과 부처님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 경인「셀라 경」(M92)은『숫따니빠따』(Sn.102ff.)에도「셀라 경」으로 나타난다. 본경을 통해서 셀라 바라문은 자기 제자였던 300명의 바라문 학도들과 함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셀라 존자와 그의 회중은 아라한이 되었다.「앗살라야나 경」(M93)에는 세존께서 앗살라야나 바라문 학도에게 바라문 계급이 우월하지 않고 사성계급이 평등한 이유를 9가지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담겨 있다.

네 번째인「고따무카 경」(M94)은 고따무카 바라문이 법에 부합하는 출가의 삶에 대해 우데나 존자의 가르침을 듣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짱끼 경」(M95)은 짱끼 바라문과 세존의 대화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인 까빠티까 바라문 학도와 세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본 대화의 주제는 진리인데 크게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에수까리 경」(M96)은 바라문들이 제정했다는 네 계급의 네 가지 봉사의 규정과 네 가지 재산의 규정에 대한 에수까리 바라문과 세존의 대화를 담고 있다.

세존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 존자의 경지를 세존과 비견해 볼 수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는「다난자니 경」(M97)은 사리뿟따 존자가 재가신도인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설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세존께서 57개의 게송으로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와셋타 경」(M98)은 세존께서 와셋타 바라문 학도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에게 설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수바 경」(M99)은 재가자인 바라문의 삶과 출가자인 사문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가에 대해서 네 가지로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설하신 경이다. 마지막으로「상가라와 경」(M100)은 세존께서 사문․바라문들을 전통주의자, 믿음만을 강조하는 자, 최상의 지혜로 아는 자의 셋으로 분류해서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에게 설하신 경이다.

이처럼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은 모두 바라문이나 바라문 학도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바라문 학도와의 대화를 담은 경이 네 개가 된다. 여기서 ‘바라문 학도’는 māṇava를 옮긴 것인데 청년, 어린이를 뜻하며, 특히 초기경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바라문 가문 출신으로 아직 결혼하지 않고 스승 밑에서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술어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바라문 학도라고 옮겼다. 바라문 학도는 당시 인도의 전통 바라문 지식계급의 청년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른 니까야에서도 바라문 학도들이 본 품의 경들에서처럼 베다와 바라문의 권위와 학문의 연마 등에 대해서 부처님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지하게 학문을 연마하는 인도의 지성을 대표하는 젊은 지식인이라 보면 되겠다.

바라문 학도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꼭 나이가 어린 사람들만을 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석서는 “‘바라문 학도(māṇava)’라는 것은 어릴 적(taruṇa-kāle)이나 나이 들어서나(mahallaka-kāle) 공히 그렇게 불린다.”(MA.v.8)라고 설명하고 있다.


⑷ 제11장「데와다하 품」(M101~M110)

본 품은『맛지마 니까야』빠알리 원본의 제3권인『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Upari-paṇṇāsa) 가운데 첫 번째 품으로 나타나고 있다. 데와다하라는 본 품의 명칭은 본 품의 첫 번째 경인「데와다하 경」(M101)에서 따온 것이다.『마지막 50개 경들의 묶음』에 포함된 다섯 개 품의 명칭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여기 제11장「데와다하 품」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경들을 개관해 보자. 본 품에 포함된 경들은 다양한 견해에 관계된 경들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들 여러 견해들을 불교의 입장에서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이들을 하나하나 분류해내고 있다. 이 가운데서 세존께서 니간타의 업과 고행설을 심도 깊게 분석하여 비판하시고 아울러 불교의 바른 수행을 명쾌하게 드러내는「데와다하 경」(M101)을 본 품의 첫 번째 경으로 편성하고 이를 품의 명칭으로 채택하였다.

본 품의 두 번째 경인「다섯과 셋 경」(M102)은『디가 니까야』제1권「범망경」(D1)에 대응되는 가르침으로,『맛지마 니까야』판 범망경이라 할 수 있다.「범망경」(D1)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견해를 모두 62가지로 총망라한 것인데, 본경은 모두 37가지 견해들을 들고 있다. 그리고「어떻게 생각하는가 경」(M103)에서 세존께서는 37보리분법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대처하는 방법 등의 세 가지에 대한 대처법을 말씀하신다.「사마가마 경」(M104)은 니간타들의 분열을 통해서 세존 입멸 후에 생길지도 모르는 교단내의 분쟁에 대한 대처법을 설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다.

한편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는 비구들에 대해서 세존께서 순차적으로 7가지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수낙캇따 경」(M105)이다. 그리고「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열반이라는 성스러운 해탈뿐만 아니라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도닦음 등의 다섯 가지에 적합한 도닦음을 말씀하신다.「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은 세존께서 순차적인 공부지음을 11개 단계로 말씀하시면서 여래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하시는 가르침이다.

「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은 세존께서 입멸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난다 존자가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에게 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름밤의 긴 경」(M109)은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무상․고․무아–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정형구가 설해지는 가르침이다. 본경을 듣고 60명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본 품의 마지막에는 바르지 못한 사람과 바른 사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보름밤의 짧은 경」(M110)이 실려 있다.


3. 한글『맛지마 니까야』제3권에 포함된 경들에 대한 해설

이제 본서에 포함된 40개의 경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간단한 해설을 붙이는 것으로 본서의 해제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제8장「유행승 품」(M71~80)


「왓차곳따 삼명 경」(M71) 해설

왓차곳따 유행승과 부처님이 나눈 대화들은 니까야의 여러 경에서 전승되어 오는데 그 가운데서 본서의 이곳에 나타나는 세 개의 경들, 즉 본경과「왓차곳따 불 경」(M72)과「왓차곳따 긴 경」(M73)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본서「왓차곳따 긴 경」(M73)을 통해서 마침내 출가하게 되고,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상윳따 니까야』제3권의 제33주제(S33)인「왓차곳따 상윳따」(S33)는 그와 관계된 55개의 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55개의 경들은 모두 ‘세상은 영원하다.’ … 로 전개되며 본서「왓차곳따 불 경」(M72)에도 나타나는 10사무기(十事無記)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상윳따 니까야』제5권「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의「목갈라나 경」(S44:7)부터「사비야 깟짜나 경」(S44:11)까지의 다섯 개 경에도 그와 10사무기가 나타나고 있으며,『앙굿따라 니까야』제1권「왓차곳따 경」(A3:57)에도 나타난다.

그럼 본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왓차곳따 유행승과의 대화를 담은 본경에서는 4가지가 설명되고 있다. 첫째는 부처님은 일체지자인가 하는 문제인데 부처님께서는 일체지의 정형구를 부정하시고 삼명(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얻은 것으로 대신하신다.(§§5~10) 둘째는 아라한이 되어서도 재가자로 머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세존께서는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11) 셋째는 재가자로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난 자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아주 많다고 대답하신다.(§12) 넷째는 아지와까들 가운데서는 죽은 뒤에 괴로움을 끝낸 자가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그들 가운데 천상에 태어난 자는 한 명밖에 없으며(§13) 그는 업의 교설을 따르고 [도덕적] 행위의 교설을 따르는 자였다고 말씀하신다.(§§13~14)

부처님은 일체지자가 아니라 삼명을 갖춘 분임을 강조하시는(§§5~10) 본경은 왓차곳따 삼명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전승되어 온다. 그러면 일체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깐나깟탈라 경」(M90) §8과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왓차곳따 불 경」(M72) 해설

본경은 불의 비유로 왓차곳따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본경의 §§3~12는 10사무기(十事無記)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다. 앞의「왓차곳따 삼명 경」(M71) 해설에서 보았듯이 니까야에 포함된 왓차곳따 유행승과 관계된 경들은 대부분 10사무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세상은 영원하다. ②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③ 세상은 유한하다. ④ 세상은 무한하다. ⑤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 ⑥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 ⑦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 ⑧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⑨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⑩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3~12)

세존께서는 이러한 10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것을 중국에서는 10사무기(十事無記)라고 표현하고 있다. 본경에서도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서는 이러한 열 가지 문제에 대한 견해를 인정하시는지를 여쭙자 세존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신다. (§§3~12)

그러면 세존께서는 왜 10가지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견해를 가지지 않으시냐고 왓차곳따 유행승이 질문을 드리자(§13) 세존께서는 이런 10가지 문제는 괴로움과 함께하고 속상함과 절망과 열병과 함께하는 것이고, 또 그것은 역겨움으로, 탐욕의 빛바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신다.(§14) 그리고 여래는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셨기 때문에 여래는 이러한 열 가지 문제와 같은 사변적 견해를 버렸다고 말씀하신다.(§15)

다시 세존께서는 불이 조건에 의해서 불타고 조건이 다하면 꺼짐을 설명하시고,(§19) 그와 같이 여래를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의 오온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20) 이러한 불의 비유를 소중하게 여겨 본경은「왓차곳따 불 경」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어 내려온다. 세존의 간곡하신 설명에 감동을 받은 그는 재가신도로 귀의한다.(§22)


「왓차곳따 긴 경」(M73) 해설

수행은 유익함과 해로움 즉 선(善, kusala)과 불선(不善, akusala)의 판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초기불전에서 바른 정진은 항상 선법과 불선법의 판단으로 정의된다.(M141 §29 등) 바른 정진은 불선법에 대한 두 가지와 선법에 대한 두 가지로 정의되기 때문에 이것을 4정근(四正勤, 네 가지 바른 노력)이라 부른다. 이미 재가신도가 된 왓차곳따도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바른 정진을 하기 위해서 본경에서 선과 불선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드린 뒤 마침내 출가를 결행한다.(§§15~17) 바른 정진이 선․불선의 판단에서부터 출발함을 우리 불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본경에서 왓차곳따가 “유익함[善]과 해로움[不善]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3), 세존께서는 탐․진․치는 불선이고 불탐․부진․불치는 선이며(§4), 열 가지 해로운 법은 불선이고 열 가지 유익한 법은 선이라고 말씀하신다.(§5)

다시 그는 부처님제자 가운데 심해탈과 혜해탈을 얻은 자 즉 아라한이 있느냐고 여쭙고 세존께서는 많다고 대답하신다.(§7) 비구니에 대해서도 같은 문답을 나눈다.(§8) 같은 방법으로 불환자가 된 청신사와 스승의 가르침에 머무는 청신사(§§9~10)에 대해서, 또한 청신녀에 대해서도(§§11~12) 같은 문답을 나눈다.

그러자 그는 세존께 감격에 찬 말씀을 드리고 드디어 부처님제자로 출가한다.(§§15~17) 출가하여 유학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세존께 더 높은 법을 가르쳐주시기를 간청하고(§17) 세존께서는 사마타[止]와 위빳사나[觀]의 두 가지 법들을 더 닦으면 여러 가지 요소[界]들을 꿰뚫어 보게 될 것이고(§18) 이렇게 하면 육신통을 얻게 된다고 육신통의 정형구로 말씀하신다.(§§19~24)

이렇게 하여 그는 아라한이 되었으며(§25), 세존께서는 그를 신통과 위력을 갖춘 아라한이라고 인정하신다.(§28)


「디가나카 경」(M74) 해설

인간은 견해의 동물이다. 인간은 매순간 대상과 조우하면서 수많은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은 항상 견해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디가 니까야』제1권「범망경」(D1)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견해들을 모두 62가지로 분류해서 말씀하신 뒤 이러한 모든 견해는 감각장소–감각접촉–느낌–갈애–취착–존재–생–노사의 8지 연기를 통해서 일어남을 밝히고 계신다.(D1 §3.71) 그리고 37가지로 정리되는 견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본서「다섯과 셋 경」(M102)과「범망경」(D1)은 이러한 모든 견해들은 결국 지금․여기에서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와 이들의 감각접촉[觸]에 기인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M102 §25)

그러면 이러한 견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그 방법을 제시하신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사문․바라문들의 주장과 견해를 ① 나는 일체를 인정한다. ② 나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③ 나는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3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하시면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견해들을 버리고 배제한다고 말씀하신다. (§§4~8)

다시 세존께서는 이처럼 세 가지로 정리되는 주장과 견해들을 버리고 몸의 무상․고․무아를 있는 그대로 통찰할 것을 말씀하신다.(§9) 특히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무상을 통찰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체득할 것을 강조하신다.(§§10 ~12,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M148의 해제 등도 참조할 것) 이렇게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누구를 편들지도 않고 누구와 논쟁하지도 않으며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말을 집착하지 않고 사용할 뿐이라고 설명하신다.(§13)

이처럼 참다운 수행자는 견해의 문제에 빠지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몸과 느낌 등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체득한다고 세존께서는 강조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견해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귀중한 말씀을 듣고 디가나카 유행승은 예류자가 되지만 정작 그의 삼촌인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의 뒤에서 세존께 부채질을 해드리면서 이 가르침을 듣고 드디어 아라한이 된다.(§14)


「마간디야 경」(M75) 해설

세존께서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비롯한 모든 갈애의 소멸을 강조하신다. 갈애를 소멸해야 궁극적 행복인 열반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애는 불교 만대의 진리인 사성제의 두 번째 진리인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요, 이 갈애가 소멸된 경지인 열반은 세 번째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열반은 소멸[滅, nirodha]과 동의어로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 정의된다.(『초기불교 이해』100쪽 이하 참조)

그런데 불교의 최고의 진리요, 출가자들을 위시한 모든 불자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행복인 열반이 소멸로 이해되자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지탄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소멸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라니 부처님이야말로 진정한 허무주의자요, 파괴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경에서도 마간디야 같은 동시대 수행자는 부처님을 존재의 파괴자(bhūnaha)요, 성장의 파괴자(vaḍḍhi-hata)라고 비난하고 있다.(§5, §8)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제5권「웨란자 경」(A8:11)에서도 웨란자 바라문은 이러한 부처님을 비난하여, 부처님이야말로 맛이 없는 자, 재물이 없는 자,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 단멸을 말하는 자(단멸론자), 혐오하는 자, 폐지론자, 고행자, 모태에 들지 않는 자(천상의 모태에 태어나지 못하는 자)라고 하면서 이러한 여덟 가지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웨란자 바라문의 그런 말에 대해 불교적인 해석으로 감동을 주셨다.

그러면 정말 부처님은 파괴자인가?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시는가? 본경은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대응을 담고 있다. 부처님은 세 가지로 이 문제에 대응하신다.

① 육근을 단속하여 감각적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 파괴가 아니라는 점을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면서 말씀하신다.(§§8~18)

②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마간디야는 육체적 병 없음을 열반이라고 이해한다. 세존께서는 장님의 비유로 나무라신다.(§§19~21)

③ 마간디야가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는 그런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를 청하자 세존께서는 오취온의 취–유–생–노사우비고뇌로 괴로움의 일어남과(§24) 오취온의 취–유–생–노사우비고뇌로 괴로움의 소멸을 말씀하신다.(§25) 이처럼 세존께서는 취–유–생–노사의 4지연기를 통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 참다운 행복이라 불리는 열반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마간디야는 출가를 결행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이 되었다.(§§26~28)


「산다까 경」(M76) 해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는 불교 수행자와 육사외도와 유행승들을 포함한 많은 사문․바라문 집단이 있었다. 그러면 이들 사문․바라문들과 부처님 가르침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경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경은 아난다 존자가 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린 산다까 유행승과 나눈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본경에는 네 가지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⑴ 네 가지 청정범행이 아닌 것 ⑵ 네 가지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 ⑶ 부처님의 교설과 가르침 ⑷ 아라한에 대한 두 가지 논의이다. 이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⑴ 네 가지 청정범행이 아닌 것

①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로 시작되는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사후] 단멸론(§7)

②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행하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단하도록 시키고, …’로 전개되는 뿌라나 깟사빠의 도덕부정론(akiriya-vāda, D2 §§16~18)(§10)

③ ‘중생들이 오염되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없고 어떤 조건도 없다. …’로 전개되는 막칼리 고살라의 윤회를 통한 청정(saṁsāra-suddhi) 혹은 무인론(ahetuka-vāda, D2 §§19~21)(§13)

④ ‘이러한 일곱 가지 몸들이 있나니,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로 전개되는 빠꾸다 깟짜야나의 결정론(akaṭa-vāda, D2 §§25~27)(§16)

⑵ 네 가지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

① 모든 것을 아는 자요[一切知者] 모든 것을 보는 자[一切見者]라면서 ‘나는 걸어갈 때에도 서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깰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지와 견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완전한 지와 견을 선언하는 것.(§21)

② 구전되어 온 것을 의지하고 구전되어 온 것을 진리로 여기면서도 잘못된 경우가 있는 것.(§24)

③ 논리가요, 탐구자이면서도 잘못되는 경우가 있는 것.(§27)

④ 말이 혼란스럽고 뱀장어처럼 빠져나가는 애매모호한 자들의 경우.(§30)

⑶ 부처님의 교설과 가르침:『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설명이 됨(§§35 ~50)

⑷ 아라한이 되어도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가의 문제와(§51) 아라한의 번뇌멸에 대한 지견의 문제(§52): 전자는 해탈한 아라한이 되면 범할 수 없는 다섯 가지 경우들로 설명하고 후자는 반조할 때 ‘나의 번뇌는 멸했다.’라고 안다고 설명함.

아난다 존자의 설명에 감동을 받은 산다까 유행승은 제자들에게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가 된다. (§§53 ~54)


「사꿀루다이 긴 경」(M77) 해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잠시 주저하시다가 전법을 하기로 결심하신다.(본서 제1권 M26 §19 이하 참조) 그래서 오래지 않아 1250명의 아라한을 배출하며 인도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수행자로 자리매김을 하신다. 그래서 이런 세존을 두고 초기불전의 몇 곳에서 외도들은 세존을 요술쟁이(māyāvi)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본서 제2권「우빨리 경」(M56) §8에서 니간타들은 “사문 고따마는 요술쟁이입니다. 그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알아서 다른 외도들을 제자로 개종시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앙굿따라 니까야』제2권「밧디야 경」(A4:193)에서도 밧디야는 세존께 ‘사문 고따마는 요술쟁이다. 그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알아서 다른 외도들을 제자로 개종시킨다.’는 말이 사실인가를 여쭙는다. 세존의 가르침을 들은 밧디야는 오히려 “세존의 개종시키는 요술은 축복입니다.”라고 감격하고 있다.

특히 외도 유행승들이나 신자들이 개종을 하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 가르침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본경은 세존의 법의 특징에 대해서 사꿀루다이 유행승과 부처님의 대화로 진행이 된다.

세존께서는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을 따르는 다섯 가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① 최상의 계의 무더기[戒蘊]를 구족함(§11) ② 뛰어난 지와 견(§12) ③ 고결한 통찰지(§13) ④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14) ⑤ 모두 22가지로 정리되는 도닦음과 그 실현(§§15~36)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들을 구족하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존의 문하로 출가를 하거나 재가신도가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마지막 다섯 번째의 22가지는 37보리분법의 구성요소 7가지,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八勝處], 열 가지 까시나의 장소, 네 가지 禪의 정형구와 비유, 위빳사나의 지혜의 정형구와 비유, 마음으로 [다른 몸을] 만드는 신통의 정형구와 비유, 육신통의 정형구들과 비유들이다.

여기서 위빳사나의 지혜부터 누진통까지(§§29~36)의 8가지는『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 §83 이하 등의 10개의 경에도 나타나는 여덟 가지 명지[八明, 八通, aṭṭha vijjā]의 내용이다.(본서 제1권 역자 서문 §8-⑴도 참조할 것) 이처럼 부처님의 특질 가운데 다섯 번째에는 37보리분법의 7가지 구성요소 – 8해탈 – 8승처 – 10가지 까시나 – 4선 – 8통의 정형구의 여섯 가지가 포함되는데 역자는 이것을 각각 7+1+1+1+4+8=22로 계산하여 모두 22가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세존의 말씀을 듣고 아래「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에서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의 제자로 출가하겠다고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만류하여 결행을 하지 못한다.(§§45~46)


「사마나만디까 경」(M78) 해설

인도의 종교인은 사문과 바라문의 두 종류가 있다. 사문은 계급과 관계없이 세속생활을 버리고 독신으로 수행하는 자들이며 니까야에서 많이 언급되는 육사외도와 유행승들이 사문집단에 속한다. 그러면 누가 진정한 사문인가? 본경은 이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사마나만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그를 찾아온 빤짜깡가 목수에게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자가 최고의 경지를 얻은 자요, 대적할 수 없는 사문이라 천명한다.

그 넷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사유를 하지 않고 나쁜 생계로 삶을 영위하지 않는 것이다.(§5)

이러한 말을 빤짜깡가로부터 전해 들은 세존께서는 유행승의 말에 의하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가 진정한, 대적할 수 없는 사문이 될 것이라고 나무라신다.(§8)

세존께서는 먼저 결론적으로 열 가지 법을 구족한 인간을 최고의 경지를 얻은 자, 대적할 수 없는 사문이라 한다고 천명하신다(§9) 여기서 열 가지 법을 구족한 인간은 본경 §14에 나타나는 무학의 십정도(十正道) 즉 바른 견해부터 바른 지혜, 바른 해탈까지를 구족한 인간을 말한다. 먼저 §9에서 이렇게 선언하시고 다시 §§11~13에서는 각각 해로운 계행, 유익한 계행, 해로운 사유, 유익한 사유를 말씀하시고 §14에서 최종적으로 무학의 십정도를 구족한 사람을 열 가지 법을 구족한 인간이라고 결론을 지으신다. 십정도의 가르침은 본서 제4권「위대한 마흔 가지 경」(M117) §34 이하에도 나타나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십정도를 갖춘 자야말로 진정한 사문이라는 이 말씀은 세존의 임종 직전에 마지막으로 세존의 제자가 된 수밧다 유행승에게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불교 교단에는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하신「대반열반경」(D16 §5.27)의 말씀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팔정도 혹은 십정도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실천도이면서도 진정한 사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 해설

사문과 바라문은 인도 종교인을 총칭하는 술어이며 특히 초기불전에서 강조되어 나타난다. 인도 종교인의 가장 큰 관심은 목샤(해탈, Sk. mokṣa, Pali.mokkha = vimokkha)이다. 바라문들이 전승해온 우빠니샤드가 그러하고 현존하는 자이나교 등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특히 사문은 이러한 목샤(해탈)를 실현하기 위해서 출가하여 독신으로 수행에 전념하는 자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러한 목샤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목샤를 실현하기 위한 참다운 수행이란 무엇이며 그 수행을 통해서 드러나는 경지는 무엇인가? 본경은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경과 다음 경은 특히 수행 중에 나타나는 광명(vaṇṇa)이라는 경계를 다루고 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이처럼 광명의 문제를 다루신 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며 마지막으로 계․정․혜로 불교의 수행과정을 말씀하신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이러한 세 가지를 통해서 수행과 그 경지에 대해서 사꿀루다이에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다시 정리해 보면 ⑴ 최상의 광명(§§9~19) ⑵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20~27) ⑶ 진정한 수행의 길인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28~44)이다. 이것을 조금 더 부연해 보자.

⑴ 세존께서는 우다이가 최상의 광명이라고 주장한 것이 최상의 광명이 아니라고 여러 보기를 드신 뒤에(§§9~17) 반딧불보다도 더 희미하고 더 하잘것없는 광명을 가지고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말한다고 나무라신다.(§18)

⑵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에 대해서(§§20~27): 우다이는 살․도․음․망을 금하고 고행하는 것이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를 실현하는 도닦음이라고 하지만(§21) 세존께서는 그렇지 않음을 대화로 밝히신 후(§22~23) 그런 행복뿐인 세계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정형구를 말씀하신다.(§§25~27) 제3선까지 말씀하시자 ‘우리는 망했다.’고 외치며 그 회중에는 동요가 생겼다.

⑶ 본서의 여러 곳에 정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28~44)를 진정한 수행의 길로 말씀하신다.

이런 세존의 말씀을 듣고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의 제자로 출가하겠다고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만류하여 결행을 하지 못한다.(§§45~46) 주석서는 그는 아소까 법왕의 시대에 빠딸리뿟따(지금의 빠뜨나)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앗사굿따 장로(assagutta thera)라는 아라한이 되었는데 그는 당시 전 인도 비구승가의 교계사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MA.iii. 275~276)


「웨카낫사 경」(M80) 해설

본경도 수행 중에 나타나는 광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웨카낫사 유행승이 세존을 뵈러 와서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감흥어를 읊자(§2) 세존께서는 §§2~11에서 바로 앞의「사꿀루다이 짧은 경」(M79) §§10~18과 동일한 대화로 그 광명이란 것이 수행자에게는 하잘것없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런 뒤에 세존께서는 §12에서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의 정형구를 설하신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유행승은 감각적 욕망에 열중하는 사람이라서 이 가르침이 그에게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이 가르침을 시작하셨다고 한다.(MA.iii.277) 그러고 나서 §13에서 이것을 능가하는 즐거움으로 열반을 말씀하신다. 유행승이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달라고 하지만 세존께서는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은 감각적 욕망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알기란 어렵고, 번뇌 다한 비구들이라야 그 감각적 욕망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언짢아하였지만 세존의 말씀을 다시 듣고 재가신도로 귀의를 한다.(§§15~17)


제9장「왕 품」(M81~90)


「가띠까라 경」(M81) 해설

니까야에는 부처님이 어느 곳을 지나시다 미소를 지으시고 그래서 그곳과 인연이 있는 전생 이야기를 하신 경들이 몇 개 있는데 본경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이 이처럼 특정 장소에서 미소를 지으신 것은 본서「마카데와 경」(M83) §2와『앙굿따라 니까야』제3권「가웨시 경」(A5:180) §1에도 나타나며,『상윳따 니까야』제2권「뼈 경」(S19:1) §3에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도 이런 미소를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부처님과 아라한들이 지으시는 이러한 미소가 아비담마에서 미소짓는 마음(hasituppāda-citta)으로 정착이 된 듯하다.

본경은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웨발링가라는 상업도시에 거주했던 가띠까라라는 도기공과 그의 친구인 조띠빨라 바라문 학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띠까라 도기공은 깟사빠 부처님께 지극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조띠빨라는 절친한 친구인 가띠까라의 믿음과 정성에 감복해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얼마 후 깟사빠 부처님은 유행을 하시다 바라나시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우기의 안거를 바라나시에서 보내시라고 끼끼 왕이 제안을 드리자 깟사빠 부처님은 오히려 깟사빠 부처님에 대한 가띠까라의 지극한 믿음과 정성을 끼끼 왕에게 드러내어 말씀하신다. (§§18~21) 이렇게 하여 가띠까라 도기공의 일화를 말씀하신 뒤 세존께서는 당신이 그때의 조띠빨라 바라문 학도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본경의 말씀을 마무리 지으신다.


「랏타빨라 경」(M82) 해설

본경은 랏타빨라 존자의 출가기와 설법을 간직한 경이다. 랏타빨라 존자는『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3-2)에서 “믿음으로 출가한 자들 가운데서 랏타빨라가 으뜸이다.”라고 세존께서 칭찬하고 계신다. 왜 그가 믿음으로 출가한 자들 가운데 으뜸인지 본경이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랏타빨라 존자는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4~6) 부모님들의 반대가 완강하였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강한 믿음과 출가에 대한 확신으로 어렵게 허락을 받고 출가한다.(§§7~13) 그래서 그는 아라한이 된다.(§14)

그는 출가할 때 한 약속대로 집을 방문하였다. 본경에는 그가 집을 방문하여 벌어지는 일화들이 나타나는데(§§16~25) 특히 부친은 그의 전 아내들을 치장시켜 그에게 보냈지만 그는 좋은 게송을 읊고 집을 나온다.(§§23~25)

그리고 경의 후반부(§§26~33)에는 꼬라뱌 왕의 미가찌라 정원으로 가서 왕과 나눈 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는 §§36~42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가르침을 왕에게 설한다. 네 가지 가르침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⑴ 세상은 견고하지 않고 달려간다.(§38)

⑵ 세상은 피난처가 없고 보호자가 없다.(§39)

⑶ 세상은 자기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40)

⑷ 세상은 항상 불완전하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노예이다.(§41)

경은 마지막으로 존자가 읊은 게송을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42)


「마카데와 경」(M83) 해설

불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라문들의 염원처럼 범천의 세계 혹은 신들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다. 불교의 목적은 깨달음과 열반의 실현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실현하지 못한 전생에는 사람들을 범천에 태어나는 것으로 인도했지만 이제 드디어 깨달음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열반의 실현으로 인도한다고 본경에서도 분명히 밝히신다.(§21) 그리고 그 방법은 팔정도이다.(§21) 이처럼 본경은 불교가 불교인 이유를 팔정도를 통한 깨달음과 열반의 실현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본경도 본서「가띠까라 경」(M81)처럼 부처님이 어느 곳을 지나시다 미소를 지으시고(§2) 그래서 그곳과 인연이 있는 전생이야기를 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3) 본경은 세존께서 먼 전생에 마카데와라는 왕이었을 때의 일화를 설하시는 것이 주 내용이다. 물론 그때의 마카데와 왕은 부처님의 전신이었다.(§21) 마카데와 왕으로부터 시작되는 마카데와 왕조의 왕들은 모두 8만4천년을 살았고 흰 머리칼이 생기면 출가하여 자․비․희․사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온 사방에 가득 채우면서 살았다. 이렇게 하여 8만 4천 대대손손이 마지막 왕인 니미 왕까지 모두 범천에 태어났다.(§§3~19) 그러나 니미 왕의 아들인 깔라라자나까는 집을 떠나 출가하지 않았다. 그는 그 좋은 관행을 끊어버렸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20)

중요한 가르침은 본경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데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그러나 그러한 [전통은] 오직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었다.”(§21)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존께서 지금에 제정하신 좋은 관행은 “속된 것에 대해 완전히 역겨움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21) 그러면 지금에 제정하신 그 좋은 관행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팔정도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내가 제정한 이 좋은 관행을 계속 전하라. 그대는 나의 마지막 사람이 되지 마라.”(§21)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면서 경을 마무리하신다.


「마두라 경」(M84) 해설

불교가 당시 인도사회에 던진 큰 공헌 가운데 하나는 계급주의와 바라문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다. 본『맛지마 니까야』에서도 이 문제는 본경과「깐나깟탈라 경」(M90) §9 이하와 본서 제10장「바라문 품」의「앗살라야나 경」(M93)과「짱끼 경」(M95)과「에수까리 경」(M96)과「와셋타 경」(M98) 등에서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대화나 가르침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에서는 제1권「암밧타 경」(D3)과「소나단다 경」(D4)과「삼명경」(D13)과 제3권「세기경」(D27)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 최고(最古)요 최고(最高)의 권위인『리그베다』의「뿌루샤 숙따」(Pruṣa Sūkta, 原人에 대한 찬미가)는 노래한다. “바라문은 그(뿌루샤)의 입이고/ 그의 팔로부터 끄샤뜨리야가 만들어졌고/ 그의 넓적다리로부터 와이샤가/ 발로부터 수드라가 태어났다.”(Rv.x.90:12) 이것이 인도의 전통적인 계급관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나쁜 놈이다. 왜냐하면 내 일기장에 너는 나쁜 놈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이 진술은 과연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비천함과 고귀함을 논하려면 최소한의 객관적인 기준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께서는『디가 니까야』제3권「세기경」(D27)에서 끄샤뜨리야 ․바라문․와이샤․수드라의 네 집단과 사문의 집단은 모두 “중생들로부터 생겨났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자들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다른 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비법(非法)에 의해서가 아니다.”(D27 §21)라고 강조하시는데, 이들 네 집단은 결코 범천이나 어떤 다른 절대자나 다른 권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말씀이다. 세존의 이러한 말씀은 사성계급이 뿌루샤라는 우주적 진인의 몸에서 생겨났다고 설하는 위에서 인용한『리그베다』의「뿌루샤 숙따」(RV.x.90)의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특히 이「세기경」(D27)에서 세존께서는 인류 최초의 왕은 많은 사람들(mahā-jana)이 뽑았기(sammata) 때문에 마하삼마따(Mahāsammata) 왕이라 이름하였다고 소개하시면서 선거와 민주주의를 천명하셨다.(D27 §20 참조)

본경은 사성계급의 평등에 관한 마하깟짜나 존자의 가르침을 담은 경이다. 마두라의 아완띠뿟따 왕이 존자에게 ‘바라문들만이 최상의 계급이다.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라는 바라문들의 주장에 대해서 질문을 드린다.(§4) 바라문들의 이러한 주장은 본서「앗살라야나 경」(M93) §5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 경에서 전개되는 부처님의 설명과 그곳 §5의 주해 등도 참조하기 바란다.

왕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존자는 그것은 세상에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5) 어떤 사람이 계급이 낮더라도 아주 부유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다는 예와(§5), 어느 계급이든 십불선업을 지으면 똑같이 악도에 태어난다는 예와(§6), 반대로 어느 계급이든 십선업을 지으면 똑같이 선처에 태어난다는 예와(§7), 어느 계급이든 도둑질을 하면 똑같이 왕의 처벌을 받는다는 예와(§8), 어느 계급이든 출가를 하여 청정범행을 잘 닦으면 똑같이 왕의 공경을 받는다는 예를 들면서(§9) 사성계급이 평등함을 역설한다.

왕은 감명을 받아서 부처님과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귀의를 하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된다.(§§10~11)


「보디 왕자 경」(M85) 해설

보디 왕자는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웃제니의 짠다빠좃따 왕의 딸인 와술라닷따였다.(DhpA.i.191f.) 본경에 의하면 그는 코끼리 조련에 능숙하였으며(§§55~57)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삼귀의 계를 받은(§61) 불교 모태신앙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본경에 나타나는 세존의 가르침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불교의 핵심을 밝히는 부분이고 둘째는 지금․여기에서 청정범행을 완성하는 방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첫째,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당신이 깨달음을 실현하기 전에 하셨던 수행을 길게 말씀하시는데 이 가운데 §§11~14는 본서 제1권「성스러운 구함 경」(M26)의 §§15~17과 동일한 내용이고, §§15~42는 본서 제1권「삿짜까 긴 경」(M36)의 §§17~44와 동일한 내용이며, §§43~53은 본서 제1권「성스러운 구함 경」(M26)의 §§19~29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세존의 성도과정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두 개(M26과 M36)의 경의 주요 내용이 본경에서는 하나로 모아져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얼마나 오래 비구가 여래의 지도를 받아야 지금․여기에서 청정범행을 완성할 수 있는가 하는 왕자의 질문에(§55) 세존께서는 삼보에 대한 믿음, 건강과 좋은 소화력,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냄, 열심히 정진함, 통찰지로 구성된 다섯 가지 노력하는 자의 구성요소[五勤支]를 말씀하신다.(§58)

보디 왕자는 세 번째로 세존과 가르침과 승가께 귀의하면서 경은 마무리된다.


「앙굴리말라 경」(M86) 해설

본경은 부처님 당대에 희대의 도적이요 살인마였던 앙굴리말라가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유명한 일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경을 요약해 본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영토에 앙굴리말라라는 도적이 있었는데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화환을 만들어 걸고 다녔다.(§2) 세존께서는 그를 교화하시기 위해서 도적 앙굴리말라가 온 힘을 다해 최대한 빨리 걸어도 보통 걸음으로 가시는 세존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형태의 신통변화를 나투셨다.(§5)

세존을 살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따라가던 앙굴리말라는 “멈춰라, 사문이여. 멈춰라, 사문이여.”라고 외쳤다. 세존께서는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으니/ 모든 존재들에게 영원히 몽둥이를 내려놓았음이라./ 그러나 그대는 생명들에 대해 자제가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6)라는 게송을 읊으셨고 이 게송에 발심이 되어 앙굴리말라는 출가하여 세존의 제자가 되었다.

세존께서는 앙굴리말라를 시자로 하여 급고독원에 머무셨고, 사왓티에 소문이 나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오백의 기마병들과 함께 가서 앙굴리말라가 출가하여 비구가 된 것을 확인한다.(§§7~13)

그는 아라한이 되었으며(§16) 탁발을 나가자 흙덩이와 몽둥이와 사금파리 등이 날아와 피투성이가 되었다.(§17) 세존께서는 “감내하라, 바라문이여. 감내하라, 바라문이여. 그대가 수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지옥에서 고통받을 그 업의 과보를 그대가 지금․여기에서 겪는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17) 경은 존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 해탈의 행복을 맛보면서 읊은 긴 감흥어를 소개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18)


「애생경(愛生經)」(M87) 해설

본경은 세속적인 가치와 비세속적인 출가자의 가치가 다름을 보여주는 경이다. 본경에서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외아들이 죽은 어떤 장자가 세존을 뵈러 와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것은 즐거움과 기쁨이다.”(§3)라는 세속적인 가치를 드러낸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참으로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다.”(§3)라는 비세속적인 가치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장자는 세존의 이 말씀에 크게 반발을 한다. 

이 이야기가 점점 퍼져서 왕의 내전까지 흘러 들어갔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비세속적인 가치를 옳다고 받아들이는 말리까 왕비에 대해서 마음이 상하게 된다.(§5) 그러자 말리까 왕비는 날리장가 바라문을 세존께 보내서 세존의 말씀을 듣게 한다.(§6)

세존께서는 사왓티에 어떤 여인의 어머니 등이 임종을 하고 이런 임종으로 그 사람이 실성을 하고 정신이 나가버려 이 거리 저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면서 울부짖는 것 등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신다(§§9 ~22). 이 말씀을 전해 들은 말리까 왕비는 왕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가장 아끼는 와지라 공주 등을 예로 들면서 비세속적인 가치가 옳은 것이라고 조언을 한다.(§§24~28)

 말리까 왕비의 현명한 조언을 들은 왕은 감탄을 하였으며, 세존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세 번 귀의의 감흥어를 읊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된다.(§29)


「외투 경」(M88) 해설

부처님이 법을 전파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1250명의 아라한이 배출되는 등 인도 중원에는 불법이 크게 성행하였다. 당연히 여기에 반발하는 외도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그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펴보자. 논쟁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을 척파하려는 방법(본서 제2권「삿짜까 짧은 경」(M35) §5;「우빨리 경」(M56) §7), 부처님 문하로 출가하여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보거나 염탐하는 방법(본서「브라흐마유 경」(M91),『상윳따 니까야』제2권「수시마 경」(S12:70 §3 이하), 허무주의자나 파괴주의자라는 등으로 말씀을 조작하는 방법(본서「마간디야 경」(M75) §5, §8), 요술쟁이라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방법(본서 제2권「우빨리 경」(M56) §8), 그리고 본경에서처럼 부처님의 불륜을 상정하여 퍼뜨리는 악성 유언비어 날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경은 부처님이 여인과 내통을 하여 여인이 임신을 하였고, 그래서 그녀를 죽여 암매장을 했다는 무서운 소문을 배경으로 하여서 빠세나디 꼬살라왕과 아난다 존자 간에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주석서들의 설명처럼(DhpA.iii.474f. 등) 그 당시에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고 네 가지 필수품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다른 외도 수행자들은 존경도 받지 못했고 필수품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외도 수행자들은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부처님을 곤경에 빠뜨릴 계략을 꾸몄고 그래서 순다리라는 여자 유행승을 꼬드겨 계략을 꾸몄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빠세나디 꼬살라왕과 아난다 존자는 아찌라와띠 강둑으로 가서 대화를 한다.(§7 이하) 본경에서 아난다 존자는 “대왕이시여, 아닙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지성 있는 사문과 바라문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그런 몸의 행위, 말의 행위, 마음의 행위를 하지 않으십니다.”(§8)라고 강하게 조언을 하고 이런 말을 듣고 기뻐한 왕은 웨데히의 아들 아자따삿뚜 마가다 왕이 왕에게 선물한 외국산 외투를 보시한다.(§18) 이것을 따서 본경의 제목도「외투 경」이 된 것이다.


「법탑 경」(M89) 해설

부처님 당시의 두 강대국인 꼬살라(빠세나디 왕)와 마가다(빔비사라 왕)는 모두 아들(각각 위두다바와 아자따삿뚜)이 쿠데타로 아버지인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하여 왕이 되었다. 본경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의 독대를 담은 경인데, 빠세나디 왕이 세존과 독대를 나누고 있을 때 그의 아들 위두다바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장악해버렸다. 2600여 년 전 부처님 당시에도 세속 권력의 무상함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가 보다. 본경의 내용을 살펴보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서 메달룸빠나라는 삭까족들의 읍으로 향했다.(§§3~7) 그리고 칼과 터번을 벗어서 그의 총사령관이었던 디가 까라야나에게 맡겼다.(§8) 주석서에 의하면 디가 까라야나는 이 왕의 다섯 가지 징표를 가지고 서둘러 군대로 돌아가 왕의 아들 위두다바에게 갔다. 이렇게 하여 그는 빠세나디 왕을 폐위시키는 데 일조한다.(MA.iii.352)

이하 본경 §§10~19에서 왕은 10가지로 부처님께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세존의 제자 비구들은 생명이 있는 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닦습니다.”(§10) 등으로 그러한 존경을 표시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것이 본경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법의 탑들을 말했다고 하시며 이 가르침을 잘 호지하라고 말씀하신다.(§21) 그래서 본경의 제목이「법탑 경」이 된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왕은 향실에서 나와 디가 까라야나와 위두다바가 모반한 것을 알고 조카이면서 마가다의 왕인 아자따삿뚜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라자가하로 향했다. 그는 너무 늦게 도착하여 성문이 닫혀 있어서 도시 밖에서 잠을 청했고 거기서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MA.iii.354~355)


「깐나깟탈라 경」(M90) 해설

빠세나디 꼬살라 왕(rājā Pasenadi Kosala)은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재가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부처님과 동갑이었다.(본서 제3권「법탑 경」(M89) §19 참조) 본 품의 반에 해당하는 다섯 개 경(M86~M90)이 그와 관계된 것이고, 아울러 그와 관계된 경 25개를『상윳따 니까야』제1권「꼬살라 상윳따」(S3)에 모아서 결집할 정도로 그는 세존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본경도 깐나깟탈라의 녹야원에서 가졌던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대화를 담은 경이다.

본경 §17에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정리하고 있듯이 본경에서 왕은 다음의 네 가지를 질문드리고,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대답하시는 것으로 본경은 구성되어 있다.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일체지(一切知):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세존께서 설명하신다.(§§5~8)

② 네 가지 계급의 차이: 인간에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계급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섯 가지 노력하는 자의 구성요소[五勤支]로 인한 것이다. 즉 믿음, 건강함, 정직하고 현혹시키지 않음, 정진, 통찰지를 구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9~12)

③ 신들의 존재 여부: 신들이 여기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지, 아닌지에 대해 여쭙자 세존께서는 신이라도 고통에 예속되어 있으면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것이고,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왕의 아들인 위두다바와 세존의 시자인 아난다 존자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13~14)

④ 범천의 존재 여부: 범천이라도 신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에 예속됨과 벗어남의 차이로 인간 세상에 돌아옴과 돌아오지 않음을 설명하신다. (§15)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일체지에 대해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8)라고 말씀하셨다. 일체지에 대한 부처님의 이 말씀은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한 마음으로 과거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라고 전향하더라도 과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오직 한 부분(eka-desa)만 알 수 있다.” (MA.iii.357)고 설명한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DhsA.63)으로 정의되는데 마음은 일어날 때 반드시 대상과 더불어 일어난다. 찰나생․찰나멸을 거듭하면서 마음이 일어날 때, 특정 순간에 일어난 마음은 그 순간에 대상으로 하는 오직 그 대상만을 알 뿐이다.


제10장「바라문 품」(M91~100)


「브라흐마유 경」(M91) 해설

본경은『맛지마 니까야』에서는 유일하게 32상이 모두 언급되는 경이고 특히 북방불교 전적에 많이 나타나는 부처님의 80종호(八十種好)와 비슷한 내용이 나타나는 니까야의 유일한 경이라 할 수 있다. 32상은『디가 니까야』제3권「삼십이상 경」(D30)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니까야에서 80종호가 나타나는 경은 없다. 물론 본경에서도 80종호라는 술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경 §§10~22에서 대략 112개 정도의 부처님의 몸과 언행 등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북방에서 80종호로 정착된 것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이제 본경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브라흐마유 바라문이 미틸라에 살고 있었는데 120살이었다. 그는 베다 등의 학문에 달통한 사람이었다.(§2) 그는 제자 웃따라 바라문 학도를 보내서 세존을 관찰하게 하였고 웃따라는 32상을 확인하였다.(§§3~7) 웃따라는 일곱 달을 부처님의 위의를 관찰한 뒤에 브라흐마유에게 와서 그 사실을 고한다.(§8) 그의 말을 통해서 본경 §9에서는 32상을 기술하고 있고 §§10~22에서는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걸을 때에 오른 발부터 먼저 내딛습니다. 그분은 발을 너무 멀리 뻗지도 않고 발을 너무 가까이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 등으로 112개 정도의 부처님의 몸과 언행 등이 묘사되는데 이것은 80종호와 비교할 수 있어 보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브라흐마유 바라문은 뒤에 세존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28~36) 왜 세존을 부처님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그의 질문에 세존께서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았고/ 내게서 버려야 할 것을 버렸으니/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31)라고 사성제를 드러내며 읊으신 게송은 유명하며, 본서「셀라 경」(M92) §19와『숫따니빠따』(Sn.109)에도 나타나고 있다.

세존께서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하셔서 그는 예류자가 되었고(§36) 임종을 하여서는 불환자가 되어 정거천에 환생할 것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가 된다.(§39)


「셀라 경」(M92) 해설

바라문은 인도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계급이다. 그래서 그런지 니까야에는 많은 바라문들이 세존과 격조 높은 대화를 나누는 경들이 많이 전해온다. 그리고 대화 끝에 혼자서나 혹은 그의 제자들과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는 사례도 많이 전해온다. 가섭 삼형제와 천명의 제자들도 그러하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도 그러하며, 본경의 셀라 바라문과 그의 제자 삼백 명도 그러하다.

본경에서 셀라 바라문은 땋은 머리를 한 고행자 께니야로부터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고 그분이 여러 곳을 유행하시다가 아빠나라는 앙굿따라빠의 읍에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8) 그는 부처님이라는 말에 놀라면서(§§9~10) 삼백 명의 바라문 학도들과 함께 세존을 뵈러 갔다.(§12) 부처님의 32상을 확인한(§§13~14) 그는 게송으로 세존과 문답을 나눈다.(§§16~23)

“고따마시여, 왕 중의 왕,/ 인간의 제왕이 되어 통치하십시오.”(§16)라고 말하는 셀라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셀라여, 나는 왕이니 가장 위대한 법왕입니다./ 법으로써 바퀴를 굴리나니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바퀴를.”(§17)이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위의「브라흐마유 경」(M91) 해제에서도 인용한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19)라는 게송도 잘 알려져 있다.

본경을 통해서 셀라 바라문은 자기 제자였던 삼백 명의 바라문 학도들과 함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셀라 존자와 그의 회중은 아라한이 되었다.(§§24~27) 본경은『숫따니빠따』(Sn.102ff.)에도「셀라 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앗살라야나 경」(M93) 해설

본경에서도 세존께서는 사성계급의 평등을 역설하신다. 사성계급의 평등에 대해서는 위의「마두라 경」(M84)의 해설과「깐나깟탈라 경」(M90) §9 이하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특히 본경 §5에서 앗살라야나 바라문 학도는 바라문들은 범천(brahma)의 ‘입에서 태어났다.’고 인용하고 있으며, 본서「짱끼 경」(M95) §34 (=M50 §13)에서는 사문들은 ‘조상(범천)의 발에서 태어난 자’라고 언급된다. 이처럼 바라문들의 주장에 의하면 범천의 높은 부위에서 태어날수록 신분 혹은 계급이 높은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다난자니 족성을 가진 바라문들은 같은 바라문들 가운데서도 다른 바라문들은 범천의 입(mukha)에서 태어났지만 자기들은 범천의 머리(matthaka)를 열고 출현하였다고 하면서 그들의 우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SA.i.226)

본경에서 앗살라야나 바라문 학도는 ‘바라문들만이 최상의 계급이다.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입에서 태어났고. … 범천의 상속자들이다.’라는 주장을 들고 와서 부처님의 견해를 여쭌다.(§5) 이것은 본서「마두라 경」(M84) §4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주장과 견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본경을 통해서 바라문 계급이 우월하지 않고 사성계급이 평등한 이유를 9가지로 말씀하신다.

① 바라문들의 바라문 아내들도 다른 계급의 여인들처럼 월경을 하고 잉태를 하고 출산을 하고 수유를 한다.(§5) ② 요나와 깜보자나 다른 변방에는 주인과 노예의 두 계급뿐인데 주인이 노예가 되기도 하고 노예가 주인이 되기도 한다.(§6) ③ 두 계급 다 십불선업을 지으면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7) ④ 둘 다 십선업을 지으면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8) ⑤ 바라문도 적의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을 수 있고 끄샤뜨리야나 와이샤나 수드라도 그러하다.(§9) ⑥ 바라문도 강에서 목욕하여 먼지와 때를 씻어낼 수 있고 끄샤뜨리야나 와이샤나 수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10) ⑦ 4계급은 동등하게 어떤 나무로든 비벼서 불을 지필 수 있다.(§11) ⑧ 부모가 계급이 다를 경우 그 자녀는 아버지의 계급으로도 어머니의 계급으로도 불릴 수 있다.(§§12~14) ⑨ 바라문 형제이지만 베다에 밝은 사람보다는 계행을 갖추고 성품이 선한 자에게 먼저 공양을 베푼다.(§§15~16)

이런 말씀의 끝에 바라문 학도는 재가신자로 귀의한다.(§19)


「고따무카 경」(M94) 해설

본경은 우데나 존자와 고따무카 바라문의 대화로 구성된 경이다. 본경에서 고따무카 바라문이 어떤 볼일이 있어 바라나시 케미야 망고 숲으로 온다. 그곳에서 그는 우데나 존자에게 법에 부합하는 출가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한다.(§§2~5)

여기에 대해서 존자는 ① 자신을 학대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짓에 몰두함② 남을 학대하여 남을 학대 하는 짓에 몰두함 ③ 자신을 학대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짓에 몰두하고 남을 학대하여 남을 학대하는 짓에 몰두함 ④ 자신을 학대하지 않아서 자신을 학대하는 짓에 몰두하지 않고 또 남을 학대하지 않아서 남을 학대하는 짓에 몰두하지 않음의 네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고 설한다.(§5) 이 네 가지는 본서 제2권「깐다라까 경」(M51)의 §§5~6과 동일하다. 그리고 §§10~30에서 이 네 부류의 인간을 설명하는데 이 내용은 본서 제2권「깐다라까 경」(M51)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8~28과 동일하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세존과 우데나 존자에 귀의한다.(§§31~32) 본경은 그의 보시로 빠딸리뿟따에 승가의 집회소를 지었으며 고따무키라고 불린다고 전하면서 마무리가 된다.(§33)


「짱끼 경」(M95) 해설

짱끼 바라문은 부처님 당시에 유명했던 바라문이다. 그래서 본서「와셋타 경」(M98) §2와「수바 경」(M99) §13과『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1.1과「삼명경」(D13) §2 등에는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야 바라문과 다른 아주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잇차낭갈라에 살고 있었다고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짱끼 바라문은 일련의 바라문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다. 본경은 니까야 가운데서 짱끼 바라문과 세존이 만난 유일한 경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본경은 짱끼 바라문과 세존의 대화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뒤에 앉아있고 대신에 그의 제자인 까빠티까 바라문 학도와 세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본 대화의 주제는 진리인데 ⑴ 이것만이 진리라는 문제 ⑵ 진리의 수호 ⑶ 진리의 발견 ⑷ 진리에 도달함 ⑸ 진리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의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⑴ 먼저 까빠티까 바라문 학도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는 바라문들의 결정적인 결론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12) 세존께서는 장님 줄 서기 등의 예를 들면서 논박하신다.(§§13~14)

⑵ 어떻게 진리를 수호하는 가에 대해 세존께서는 믿음, 찬성, 구전, 이론적인 추론, 사색하여 얻은 견해로 진리를 수호하는 것을 말씀하신다.(§15)

⑶ 진리의 발견에 대해 세존께서는 먼저 탐․진․치의 법들에 입각하여 수행자를 조사하는 것을 말씀하신다.(§§17~19) 그리고 그의 청정함을 관찰한 후에는 그에게 믿음이 생기고 …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 본다고 말씀하신다.(§20)

⑷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그러한 법들을 받들어 행하고 많이 공부짓는데 있다고 대답하신다.(§21)

⑸ 진리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법에 대해 세존께서는 모두 13가지로 말씀하신다. 그것은 진리에 도달함–노력–조사–시도–열의–사유하여 받아들임–뜻을 살핌–법의 호지–법을 배움–귀기울임–공경–친견–믿음의 13가지이다.(§§21~33) 즉 믿음을 토대로 해서 도와 관련된 법을 배우고 그리하여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끝으로 까빠티까 바라문 학도는 이를 종합하여 세존을 찬탄하고(§34) 그는 세존의 재가신도가 된다.(§35) 


「에수까리 경」(M96) 해설

본경은 바라문들이 제정했다는 바라문․끄샤뜨리야․와이샤․수드라의 ⑴ 네 가지 봉사의 규정과 ⑵ 네 가지 재산의 규정에 대해서 에수까리 바라문과 세존의 대화를 담은 경이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계급이 아니라 십선법(十善法)을 행하는가 아니면 십불선법(十不善法)을 행하는가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8, §§13~15)

⑴ 먼저 봉사의 규정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바라문들은 다른 사문·바라문들의 동의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런 네 가지 봉사를 규정했다고 비판하신다.(§4) 바라문들의 이런 태도와 이런 진술은 결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십선법을 행하느냐 십불선법을 행하느냐가 중요하지 가문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8)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봉사하여 그 봉사로 인해 그에게 믿음이 증장하고 계행이 증장하고 배움이 증장하고 관대함이 증장하고 통찰지가 증장한다면 그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9)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믿음 등의 다섯 가지는 본서 제4권「의도적 행위에 의한 태어남 경」(M120)의 기본 주제이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⑵ 걸식, 활과 화살 통, 농사와 목축, 낫과 짐 나르는 막대기를 네 계급의 재산으로 규정하는 것도 세존께서는 비판하시고(§§10~11), 대신에 성스러운 출세간법이야말로 인간의 재산이라고 규정하신다.(§12) 그래서 네 계급의 사람은 누구든지 출가하여 세존의 법에 들어와 십선법을 닦고 바른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13~15)

세존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에수까리 바라문은 세존의 재가신자로 귀의한다.(§17)


「다난자니 경」(M97) 해설

본경은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 존자가 재가신도인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설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본경은 상수제자인 사리뿟따 존자의 경지를 세존과 비견해 볼 수 있는 경이라 할 수 있다.

본경의 전반부(§§4~25)는 다난자니 바라문이 방일하다는 안 좋은 소식을 어느 비구로부터 들은 사리뿟따 존자가 그를 만나러 가서 비법을 행하지 말고 법을 따르고 바르게 행하라고 법문을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27 이하)는 다난자니 바라문이 중병에 걸려 사리뿟따 존자를 초대하여 법문을 듣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존자는 “지옥과 축생의 모태 중에 어떤 것이 더 낫습니까?”라고 다난자니 바라문과 대화를 하여, 지옥–축생–아귀–인간–사대왕천 등의 육욕천, 그리고 범천까지 언급을 한다. 그런 뒤 “참으로 바라문들은 범천의 세상에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나는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30~31) 그래서 범천에 태어나는 방법으로 자․비․희․사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정형구를 설한다.(§§32~35) 다난자니 바라문은 죽어서 범천에 태어났다고 한다.(§36)

사리뿟따 존자가 돌아오자 세존께서는 “사리뿟따여, 그런데 그대는 왜 다난자니 바라문을 낮은 범천의 세상에 머물게 한 뒤 그에 대해 아직 할 일이 더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는가?”(§38)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다난자니 바라문에 대한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에 대해 가벼운 경책을 하시는 표현이다. 세존께서는 다난자니 바라문이 출세간의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그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본서「수바 경」(M99) §§22~27에서처럼 세존 자신이 범천에 태어나는 가르침을 설하시기 때문이다.


「와셋타 경」(M98) 해설

인도 문화는 계급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를 선도해 오고 지켜온 것이 바로 바라문 집단이다. 본서의 여기「바라문 품」의「앗살라야나 경」(M93)과「짱끼 경」(M95)과「에수까리 경」(M96)과「상가라와 경」(M100)과 특히『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바라문 계급의 선민의식은 참으로 강했다. 그러면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참된 바라문이란 무엇인가? 순수혈통을 가진 자가 진정한 바라문인가?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한 자가 진정한 바라문인가? 멋진 외모를 갖춘 자가 바라문인가? 바른 품행을 갖춘 자가 바라문인가? 현명하고 슬기롭고 학식이 있는 자가 바라문인가? 본경은 누가 진정한 바라문인가를 심도 깊게 파헤치는 초기불전의 대표적인 경이라 할 수 있다. 본경은『숫따니빠따』에도「와셋타 경」(Sn.115ff.)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경에서 와셋타 바라문 학도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어떤 사람이 바라문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모계와 부계의 양쪽 모두로부터 순수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 동안 태생에 관한 한 공격받을 일이 없고 나무랄 데가 없을 때 그를 일러 바라문이라 한다.”라고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됨을 주장하고 와셋타는 “계행을 가지고 서계를 구족할 때 그를 일러 바라문이라 한다.”라고 하여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3)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확신시키지 못하자 세존께 가서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혹은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라고 질문을 드린다. 세존께서는 여러 개의 게송으로 진정한 바라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본경의 주요 내용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게송들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① 먼저 세존께서는 풀과 나무 등 무정물에서부터 나방, 개미,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들의 태생의 다양함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②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러한 태생에 의한 차이는 없다고 강조하신다. ③ 그 다음 직업에 의한 인간의 구분을 말씀하시고, ④ 그런 뒤 누가 진정한 바라문인지 즉 누가 진정한 종교인이요, 누가 진정한 수행자인지를 역설하신다. ⑤ 그리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도 되고 행위에 의해 비바라문도 된다.”라고 하시면서 행위 혹은 업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⑥ 마지막으로 네 개의 게송을 통해서 각각 연기와 업과 수행과 삼명을 강조하시면서 끝을 맺으신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두 바라문 학도는 부처님의 재가신도가 된다.(§14)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신도가 되었고, 그 다음에『디가 니까야』제1권「삼명경」(D13)을 통해서 더욱 신심이 깊어졌으며, 제3권「세기경」(D27)을 듣고 구족계를 받았으며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i.406 등)


「수바 경」(M99) 해설

본경은 재가의 삶과 출가의 삶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경이다. 특히 재가자인 바라문의 삶과 출가자인 사문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가를 논의하고 있다. 본 논의를 통해서 진정한 재가자의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출가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반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경은 수바 바라문 학도가 주장하는 네 가지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⑴ ‘재가자는 바른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하지만 출가자는 바른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바라문들의 주장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그들의 바른 도닦음을 나는 칭송한다.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바르게 도닦는 자는 바른 도닦음으로 인해 바른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한다.”(§4)고 대답하신다.

⑵ ‘재가자의 삶은 많은 노력이 있어서 결실이 많다. 그러나 출가자의 삶은 별다른 노력이 없어서 결실이 적다.’는 주장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① 많은 노력에 적은 결실이 있는 일 ② 많은 노력에 많은 결실이 있는 일 ③ 적은 노력에 적은 결실이 있는 일 ④ 적은 노력에 많은 결실이 있는 일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말씀하신다.(§§5~7)

⑶ 바라문들이 천명한 다섯 가지 법들 즉 진리, 고행, 청정범행, 성전공부, 베풂에 대해서(§§8~21): 세존께서는 먼저 “바라문들 가운데 단 한 명의 바라문이라도 ‘나는 이 다섯 가지 법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 결과를 선언한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가?”(§10)라고 비판하시면서 장님 줄 서기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일화를 말씀하신 뒤에(§§11~16) 감각적 욕망들과는 상관없고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희열로 초선부터 제2선까지를 말씀하신다.(§17)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바라문 학도로부터 “바라문들이 천명한 다섯 가지 법들을 저는 출가자들 사이에서 많이 보고 재가자들 사이에서는 적게 봅니다.”(§20)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신다. 세존께서는 이런 논의 끝에 “바라문들이 천명한 다섯 가지 법들은 [바라문들이 아니라 비구들 즉 출가자들의] … 마음의 장비라고 나는 말한다.”(§21)라고 결론지으신다.

⑷ 바라문들의 소원인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에 대해서(§§22~27): 세존께서는 자․비․희․사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정형구로 대답하신다.

세존의 자상하신 말씀을 들은 수바 바라문 학도는 세존의 재가신자가 된다.(§28)


「상가라와 경」(M100) 해설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아내인 다난자니 바라문은 세존의 신심 깊은 신도였다. 이런 그녀가 읊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2)라는 감흥어를 듣고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형제들 가운데 막내인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는 세존을 비난하는 말을 한다.(§3) 바라드와자 바라문 형제들에 대한 일화는『상윳따 니까야』제1권「바라문 상윳따」(S7)의「다난자니 경」(S7:1) 등의 여러 경에 나타나고 본경의 주해에도 나타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세존이 오셨다는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의 말을 듣고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는 세존을 뵈러 간다.(§5) 그는 세존께 “지금․여기[現今]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디에 속합니까?”(§6)라고 질문을 드린다.

세존께서는 사문․바라문을 ① 전통주의자 ② 믿음만을 강조하는 자 ③ 최상의 지혜로 아는 자의 셋으로 분류하시고(§7) 세존께서는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는 그런 사문․바라문들에 속한다고 말씀하신다.(§8)

그런 뒤에 계․정․혜 삼학으로 삼명을 체득하심을 말씀하신다.(§§9 ~41) 이 가운데 성스러운 것을 구하여 출가하시고, 알라라 깔라마 문하에서 무소유처의 법을 증득하시고 다시 웃다까 라마뿟따의 문하에서 비상비비상처의 법을 증득하셨지만 그 법들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곳을 떠나 유행하시다가 장군촌에 이르러 위없는 유가안은을 증득하신 것(§§9~13)은 본서 제1권「성스러운 구함 경」(M26) §§14~17과 같다. 고행의 정형구와 고행의 포기와 네 가지 禪의 증득과 삼명의 가르침(§§14~41)은 본서 제2권「삿짜까 긴 경」(M36) §§17~44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본경에도 본서「보디 왕자 경」(M85)처럼 세존의 성도과정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두 개의 경의 주요 내용이 하나로 모아져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는 신들의 존재 여부를 여쭙고 세존께서는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즉시에 안다고 대답하신다.(§42)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는 세존의 재가신도가 된다.(§43)


제11장「데와다하 품」(M101~110)


「데와다하 경」(M101) 해설

본경은 니간타들의 업과 고행설을 비판하고 바른 수행을 천명하는 가르침이다. 그들의 업과 고행설은 본경 §2에 나타나고 있다. 자이나교 혹은 니간타의 교설은 7가지로 정리되는데 이 가운데 여섯 번째가 ‘니르자라(nirjarā, Pāli. nijjarā, 풀려남 ― 영혼이 물질의 속박에서 풀려남)’인데 본경에 나타나는 니간타들의 업과 고행설의 정형구에도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nijjiṇṇa)이다.”(§2)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불교적 방법으로 진정한 풀려남(nijjarā, nijjiṇṇa)을 설명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니간타들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느낌은 모두 전생에 지은 업이 그 원인으로,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내고, 새로운 업들은 더 이상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과보를 가져오지 않게 되고, 그러므로 업이 다 한다. 업이 다하므로 괴로움이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하고,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난다.’고 주장한다.(§2) 세존께서는 그들의 주장에 여러 가지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의 노력은 결실이 없다고 말씀하신다.(§§3~22) 그리고는 바로 불교적인 방법을 통한 ‘결실이 있는 노력과 정진’을 제시하신 뒤(§§23~29) 다시『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깨달음을 실현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는(sabba dukkha nijjiṇṇa) 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30~45)

본경은 크게 다음의 여섯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처음의 넷은 니간타의 업과 고행설에 대한 비판이고 뒤의 둘은 불교의 바른 노력과 정진에 대한 것이다.

① 먼저 세존께서는 그들이 전생을 알지 못하면서도 전생에 지은 업을 말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비판하신다.(§§4~9) 

② 그리고 믿음, 찬성, 구전, 이론적인 추론, 사색하여 얻은 견해라는 이 다섯 가지 법들을 말하는 그들의 스승에 대해 어떠한 믿음이 있는지, 혹은 어떠한 견해를 얻음이 있는지를 질문하여 그들을 비판하신다.(§11)

③ 세 번째로는 그들의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을 비판하신다.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을 때 그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격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신다.(§§12~21) 

④ 그리고 열 가지 논리적인 주장을 들어서 열 가지로 그들을 비판하신다.(§22)

이와 같이 니간타들의 노력은 결실이 없음을 보이시고 이제 향상으로 인도하는 부처님 교법에서는 노력과 정진이 그 결실이 있음을 보이시기 위해서 다음 말씀을 계속하신다.

⑤ 다섯째로 불교의 바른 노력과 정진을 말씀하신다. 세존께서는 어떻게 해서 노력이 결실이 있고 정진이 결실이 있는가라고 문제 제기를 하시고(§23), 그 해답으로 선법․불선법의 판단을 말씀하신다.(§29) 무작정하는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아니라 선법을 증장시키고 불선법을 감소시키는 노력과 정진을 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말씀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를 설하신다.(§§30~45) 

⑥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열 가지 논리적인 주장을 들어서 열 가지로 이 가르침을 칭송하신다.(§46)

이렇게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세밀하게 고행설을 비판하시고 불교적인 바른 수행을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드러내신다.


「다섯과 셋 경」(M102) 해설

본경은『디가 니까야』제1권「범망경」(D1)과 견줄 수 있는 가르침이다.「범망경」(D1)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견해를 모두 62가지로 총망라한 것인데 본경은 모두 37가지 견해들을 들고 있다.

본경은 자아의 문제(§§3~10), 중생의 문제(§§11~16), 열반의 문제(§§17~24)의 셋으로 압축이 된다. 그리고 자아의 문제를 인식과 결부시켜서 자아가 인식을 가졌는가, 아닌가, 가지기도 하고 가지지 않기도 한 것인가로 나누면 전체가 5가지 문제가 된다. 그래서 본경의 제목을「다섯과 셋 경」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아가 인식이 있다는 것은 8가지로, 없다는 것은 4가지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4가지로 분류한다. 그래서 자아의 문제는 모두 16가지가 된다. 그리고 중생의 문제는 1가지가 된다. 본경에서는 이것을 ‘5가지 미래의 문제’라고 결론짓는데(§13) 사실은 자아의 문제 3가지와 중생의 문제 1가지에 대한 설명뿐이어서 1가지가 결여된다. 5가지가 되려면 저 뒤 §§17~24에서 언급하는 4가지 열반의 문제가 포함되어야 된다.

본경은 이처럼 앞뒤의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위의 §2의 요약에는 없지만 경은 다시 §§14~16에서 과거에 대한 견해 16가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17~24에서 4가지 열반의 문제가 언급된다. 이렇게 해서 본경에는 8+4+4+1+16+4=37가지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다시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보면, 미래에 관한 것 17가지, 과거에 관한 것 16가지, 현재에 관한 것 4가지가 되어 모두 37가지 견해가 된다.

이처럼 본경 §2의 요약이나 주석서나 다른 이설을 반영하지 않고 본경만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본경은 미래에 대한 견해 17가지(§§3~12), 과거에 대한 견해 16가지(§§14~16), 현재 혹은 열반에 대한 견해 4가지(§§17~24)로 모두 37가지 견해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은 과거․미래․현재로 잘 배대되어 있다.『디가 니까야』제1권「범망경」(D1)에서는 열반에 대한 5가지 견해를 미래에 대한 견해에 넣어서 견해를 모두 과거에 대한 견해 18가지와 미래에 대한 견해 44가지로 나누고 있지만 본경은 이렇게 하여 과거에 대한 것 17가지, 미래에 대한 것 16가지, 현재에 대한 것 4가지로 배대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본경을 대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관점이라 생각한다.

본경과「범망경」(D1)은 모든 견해의 문제를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로 귀결시키고 있다는 것(§25)도 중요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M103) 해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제일 먼저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문 고따마는 의․식․주나 더 나은 존재를 위하여 법을 설한다고 생각하는가?”(§2)라고 문제 제기를 하신다. 그래서 본경의 제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정한 듯하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한 대처법을 말씀하신다.

⑴ 첫째는 본경에서 수승한 법(abhidhamma, 아비담마)이라고 표현되는 37보리분법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대처하는 방법 4가지를 말씀하신다.(§§3~8) 이 경우에는 뜻과 표현이 다 다른 경우(§5), 뜻은 다르고 표현은 같은 경우(§6), 뜻은 같고 표현이 다른 경우(§7), 뜻과 표현이 다 같은 경우(§8)로 나누어서 대처하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⑵ 그 다음에는 계를 범하고 율을 어김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그런 사람을 서둘러 질책해서는 안되며 그 사람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자세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9~14)

⑶ 마지막으로 사이좋게 화합하여 논쟁하지 않고 공부 지을 때 상호비방, 비열한 견해, 마음의 상처, 불쾌함, 반감이 생기는 경우의 대처법을 드러내신다.(§§15~17)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분쟁의 조정자는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세존의 가르침대로 설명하는 것이다.(§17)


「사마가마 경」(M104) 해설

본경은 세존 입멸 후에 생길지도 모르는 교단내의 분쟁에 대한 대처법을 설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다. 니간타 나따뿟따가 빠와에서 막 임종하자 니간타들이 분열하여 두 패로 나뉘어져 싸우고 다투고 논쟁하는 것을 보고(§2) 쭌다 사미가 와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다시 두 존자는 함께 세존을 뵈러 가서 세존께 말씀드린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세존 입멸 후에 생길지도 모르는 분쟁에 대한 대처법을 설하시는 것으로 경은 전개된다.(§§3~4)

먼저 세존께서는 생계에 관계된 것이나 빠띠목카(계목)에 관계된 분쟁은 오히려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도(팔정도)나 도닦음에 관해서 승가에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신다.(§5)

그런 뒤에 세존께서는 ⑴ 여섯 가지 분쟁의 뿌리(§§6~11) ⑵ 네 가지 대중공사[諍事]와 일곱 가지 대중공사를 가라앉히는 방법(§§12~20) ⑶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21~22)의 세 가지를 설하신다.

이 가운데 ⑴ 여섯 가지 분쟁의 뿌리는 ① 분노하고 앙심을 품음 ② 경멸하고 업신여김 ③ 질투하고 인색함 ④ 속이고 간교함 ⑤ 나쁜 원을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짐 ⑥ 자기 견해를 고수(固守)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 놓아버리기가 어려움의 여섯 가지이다.(§§6~11)

⑵ 네 가지 대중공사는 ① 분쟁으로 인한 대중공사 ② 고발로 인한 대중공사 ③ 계를 범한 것으로 인한 대중공사 ④ 방식에 대한 대중공사이다.(§12) 그리고 대중공사를 가라앉히고 수습하는 방법으로 일곱 가지를 설하신다. ① 직접 대면하여 수습함 ② 기억을 일깨워 수습함 ③ [죄를 범했을 당시] 정신질환 상태였음을 인정하여 수습함 ④ 고백 ⑤ 다수결에 따름 ⑥ [스스로 드러내지 않은 악행을 대중이 갈마로써] 그 악행을 판결함 ⑦ 짚으로 덮어서 수습함이다.(§§14~20)

⑶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은 ①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함 ②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함 ③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함 ④ 얻은 것을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함 ⑤ 계를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함 ⑥ [바른] 견해를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함이다.(§§21~22)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이 여섯 가지 법을 받아 지녀 실천하면 긴 세월을 이익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하신다.(§22)


「수낙캇따 경」(M105) 해설

초기경의 도처에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꿰뚫어 안다.’라는 구경의 지혜(aññā)의 정형구가 나타난다. 이 구경의 지혜는 아라한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처럼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는 비구들은 바르게 선언한 것일까?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잘못 선언한 것은 아닌가? 본경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경은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는 그 비구들은 참으로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 가운데서 어떤 비구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것입니까?”(§4)라는 수낙캇따의 질문에 대해 세존께서 설하신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순차적으로 7가지로 말씀을 하신다.

먼저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설하신 뒤에(§7) ① 이러한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과(§8) ② 흔들림 없음(제4선과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과(§10) ③ 무소유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과(§12) ④ 비상비비상처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과(§14) ⑤ 완전한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16)

그리고 ⑥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완전한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 사람에 대해서 독이 가득 묻은 화살에 맞은 비유를 통해서 자세하게 말씀하신다.(§§18~22) 이 경우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것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⑦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완전한 열반으로 마음을 기울인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⑥의 비유와 반대되는 비유를 들고 계시며 이것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참으로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것에 해당한다.(§§23~27)

세존께서는 비유와 함께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들에서 단속하여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임을 알아 집착을 부수어 해탈하면 집착의 대상으로 몸을 향하게 하거나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씀을 하신 뒤 가르침을 마무리 지으신다.(§§28~30)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 해설

불교의 목적은 행복의 실현이고 이 행복은 금생의 행복․내생의 행복․궁극적인 행복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열반의 실현이야말로 궁극적 행복이다.(『초기불교 이해』31쪽 이하를 참조할 것) 불자, 특히 출가자는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고 도를 닦는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열반이라는 성스러운 해탈뿐만 아니라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도닦음 등의 다섯 가지에 적합한 도닦음을 말씀하신다. 

⑴ 먼저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도닦음을 설하신다.(§§2~5) 냐나몰리 스님의 설명처럼 본경에 나타나는 흔들림 없음(āneñja)은 색계 제4禪과 무색계의 낮은 두 가지 禪인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의 세 가지 증득을 말한다. 그래서 본경에서도 ① 감각적 욕망이 장애가 됨을 보고 제4선을 증득하는 것이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첫 번째 도닦음으로 나타나고 있다.(§3) ② 그리고 사대와 파생된 물질을 통해서 공무변처를 증득하는 것이 두 번째 도닦음으로 나타난다.(§4) ③ 다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나 물질에 대한 인식의 무상함을 보고 식무변처를 증득하는 것이 세 번째 도닦음으로 언급되고 있다.(§5)

⑵ 그 다음은 무소유처에 적합한 도닦음(§§6~8)을 설하신다. 이것도 ① 감각적 욕망의 인식이나 물질의 인식이라는 이러한 인식의 소멸을 보고 무소유처를 증득하는 것을 첫 번째 도닦음으로(§6) ② 자아나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고 관찰하여 무소유처를 증득하는 것을 두 번째 도닦음으로(§7) ③ ‘나는 어디에도 없고 …’로 관찰하고 무소유처를 증득하는 것을 세 번째 도닦음으로 말씀하신다.(§8)

⑶ 계속해서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도닦음을 설명하신다.(§9)

⑷ 그리고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여 격류를 건너는 것을 말씀하신다.(§§10~12)

⑸ 마지막으로 성스러운 해탈에 대해서 설명하신다.(§13)

이렇게 여러 가지 경지에 적합한 도닦음을 말씀하신 뒤 “아난다여, 참선을 하라. 아난다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15)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는다.


「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 해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절차가 있고 순서와 차례가 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데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과 대학원에 이르는 엄격한 과정과 절차가 있고, 빌딩을 짓고 컴퓨터를 만들고 스마트 폰을 만들고 예능을 하고 체육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따라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성취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궁극적 행복인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구경의 지혜를 체득하여 성자가 되고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출가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무런 과정이나 절차나 노력 없이 단박에 깨달음이 실현되는가? 만일 궁극적 행복인 열반이 아무 과정이나 절차나 노력 없이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로또 복권의 논리요, 극단적인 사행심의 논리가 되기 십상이다. 당연히 불교 공부에도 과정과 절차와 노력이 있다. 그래서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불교에도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이 있다고 강조하시고 그것을 11개의 과정으로 설명하신다. 이것은 본서 제2권「끼따기리 경」(M70) §22 이하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끼따기리 경」(M70) §22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나는 구경의 지혜가 단박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으로 구경의 지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주석서는 “이것은 개구리가 단 한 번에 껑충 뛰어올라서 가는 것처럼 그렇게 구경의 지혜가 이루어져서 아라한과에 확립된다고 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MA.iii.193)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경의 §22에 해당하는 주해도 참조하기 바란다.

본경에서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을 뵙고 “녹자모 강당을 짓거나 바라문들이 공부를 하거나 궁수들이 궁술을 연마하거나 회계사들이 셈을 배우는 데도 모두 순차적인 작업이 있듯이, 이 법과 율에서도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2)라고 질문을 드리자 세존께서는 그렇다고 분명하게 대답을 하신 뒤(§3) 다음의 11가지 단계로 이것을 설명하신다.

이 11가지 단계는 ① 계를 지님(§3) ② 감각기능의 문을 잘 지킴(§4) ③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앎(§5) ④ 깨어있음에 전념함(§6) 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구족함(§7) ⑥ 외딴 처소를 의지함(§8) ⑦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극복함(§9) ⑧~⑪ 네 가지 선의 정형구로 네 가지 선을 구족함(§10)이다. 이것은『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본서 제1권 역자 서문 §8-⑶ 참조) 가운데 마지막의 삼명 부분을 제외한 12단계와 비슷한 내용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수행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궁극적 목적인 열반을 성취하고 어떤 자들은 성취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12~14) “여래는 길을 안내하는 자일 뿐이다.”(§14)라고 결론지으신다. 가나까 목갈라나 바라문은 세존을 칭송하고(§§15~17) 세존께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된다.(§18)


「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해설

불교는 법을 생명으로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다섯 번째 7일에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A4:21)고 사유하신다. 이러한 법을 전개하시는 것을 불교에서는 전법륜(轉法輪) 즉 법의 바퀴를 굴림이라 하며 최초에 팔정도를 중심으로 중도를 천명하신 가르침을「초전법륜 경」(S56:11)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법을 근본으로 하셨다. 중병에 걸린 왁깔리 비구에게도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왁깔리 경」(S22:87) §8)고 하셨고, “법을 의지처로 삼고[法歸依] 법을 섬으로 삼아라[法燈明].”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D16 §2.26 등) 우리는 또한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D16 §6.1)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본경도 아난다 존자가 세존이 입멸하신 뒤에 “우리는 법을 귀의처로 합니다.”(§9)라고 강조하면서 법의 중요성을 설하고 있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서 입멸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라자가하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게 된다. 본경은 그때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 입멸 뒤에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아난다 존자가 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라문은 “그분 고따마 존자 아라한 정등각자께서 구족하셨던 모든 법들을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게 구족한 비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5)부터 시작해서 “아난다 존자시여, 이와 같이 귀의처가 없다면 무엇을 근거로 해서 화합합니까?”(§9)까지의 네 가지 질문을 하고 아난다 존자는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법을 귀의처로 합니다.”(§9)라고 대답한다.

다시 아난다 존자는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열 가지 법을 열거하는데 그것은 ① 계의 구족 ② 배운 것 잘 호지함 ③ 의․식․주․약의 네 가지 필수품으로 만족함 ④ 네 가지 禪 ⑤~⑩ 육신통(§§14~23)이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키셨고,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하셨으며,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하셨고, 도를 아시고, 도를 발견하셨고, 도에 정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됩니다.”(§29)라고 강조하면서 설명을 마무리한다.


「보름밤의 긴 경」(M109) 해설

‘나’라는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보이고 그러면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생겨서 궁극적 행복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정형구이다. 본경도 이런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다. 본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의 동쪽 원림[東園林]에 있는 미가라마따(녹자모)의 강당에서 보름 포살일의 보름밤에 비구승가에 둘러싸여 노지에 앉아 계시는 가운데 어떤 비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오취온과 유신견(有身見) 즉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여쭙고(§§4~11), 이어서 오온의 달콤함, 재난, 벗어남 등에 대해서 문답을 나누신다.(§§12~13) 그리고 오온의 무상․고․무아 문답(§15)을 통해서 오온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고(§16) 강조하시고 이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17~18)를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여 이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취착 없이 마음이 번뇌에서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본경은 마무리 된다.


「보름밤의 짧은 경」(M110) 해설

본경은 바르지 못한 사람과 바른 사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선 바르지 못한 사람은 ①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졌고 ② 바르지 못한 사람과 교제하고 ③ 바르지 못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④ 바르지 못한 사람의 조언으로 조언하고 ⑤ 바르지 못한 사람의 말로 말하고 ⑥ 바르지 못한 사람의 행동으로 행동하고 ⑦ 바르지 못한 사람의 견해를 가지고 ⑧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보시를 한다고 총론적으로 말씀하시고(§4) 뒤이어 이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하신다.(§§5~12)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의 태어날 곳[行處]인가? 지옥이나 축생의 모태이다.”라고 결론을 지으신다.(§13)

같은 방법으로 바른 사람에 대해서 위와 반대로 8가지로 총론적으로 말씀하신 뒤(§15)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을 하신다.(§§16~23) “무엇이 바른 사람들의 태어날 곳인가? 위대한 천신과 위대한 인간이다.”라고 말씀하신 뒤 마무리를 하신다.(§24)


4. 맺는 말

이상으로『맛지마 니까야』제3권에 포함된 제8품부터 제11품까지의 40개 경들을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제8장「유행승 품」에는 부처님과 동시대의 유행승들과 세존의 대화를 담고 있는 경들 9개와 유행승들과 아난다 존자의 대화를 담은 경 1개가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왓차곳따 유행승(M73)과 마간디야 유행승(M75)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고, 디가나카 유행승(M74)은 예류자가 되었으며, 사꿀루다이 유행승(M77, M79)은 아소까 대왕 때 태어나 아라한이 되었고(MA.iii.276), 웨카낫사 유행승(M80)은 부처님의 신도가 되었으며, 산다까 유행승(M76)은 제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닦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제9장「왕 품」에는 동시대 왕과 왕자들과 관련된 경들이 들어있고, 제10장「바라문 품」은 동시대 바라문들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특히 본 품을 통해서 사성계급의 평등에 대한 부처님의 확고한 신념을 만날 수 있으며, 인도 지성을 대표하는 바라문들의 사상과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다. 제11장「데와다하 품」에는 다양한 견해에 관계된 경들이 주로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여러 견해들을 불교의 입장에서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하나하나 분류해내고 있다.


불교는 계․정․혜 삼학을 토대로 한 가르침이다. 계․정․혜는 니까야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고, 주석서의 노둣돌인『청정도론』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다. 그래서『청정도론』의 제1장부터 제2장은 계품이라 불리고 제3장부터 제13장은 정품이라 불리며 제14장부터 마지막인 제23장까지는 혜품이라 불린다. 이처럼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계율과 선정(삼매)과 통찰지(지혜)의 세 가지를 당연히 갖추어야 한다.『맛지마 니까야』에서는 이 삼학이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정리되어 나타나고『디가 니까야』제1권에는 23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정형화되어 있다.

여기『맛지마 니까야』제3권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이 삼학을 강조하신다. 예를 들면「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을 통해서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진정한 수행의 길로 이『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를 제시하신다. 특히「데와다하 경」(M101)에서는 니간타들 즉 자이나교의 업과 고행설을 비판하시어 그들의 노력은 결실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23~29에서 불교적인 방법을 통한 ‘결실이 있는 노력과 정진’을 제시하신 뒤 다시 §§30~45에서는 이『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로 깨달음을 실현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는 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이처럼 여기『맛지마 니까야』에는 일곱 군데 정도에 15단계 계․정․혜의 정형구가 나타나고 있고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곳까지 합치면 열 군데 정도가 된다. 그 외에도 계를 토대로 한 4선–3명의 가르침 등을 포함하여 특히 정(삼매)이나 혜(통찰지)의 수행을 강조한 경들은 50군데가 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역자 서문(50~51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삼학의 가르침이야말로 궁극적 행복인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구경의 지혜를 체득하여 성자가 되고 아라한이 되기 위한 순차적인 가르침이다. 주석서의 설명처럼 아무런 과정이나 절차나 노력이 없이 개구리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폴짝 뛰어오르듯이 깨달음이 단박에 실현되지 않는다.(MA.iii.193) 계․정․혜야말로 본서「가나까 목갈라나 경」(M107)에서 논의되고 있는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이다.

본서를 읽는 독자들께서 본서에서 부처님께서 정리하고 계신『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 정형구를 실천하여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는 나침반을 얻게 되기를 기원하면서『맛지마 니까야』제3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맛지마 니까야 (中部, 중간 길이로 설하신 경) (1/2/3/4)

대림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제1권: 712쪽/ 제2권 728쪽/ 제3권: 736쪽 /제4권: 704쪽

정가: 각권 30,000원 (초판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