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 불교 이해 목차>
| 목차 | 페이지 |
|---|
| 제1편 초기불교의 기본주제 | 13 |
| 제1장 들어가는 말 | 15 |
| 제2장 초기불교의 기본주제-행복의 추구 | 31 |
| 제3장 열반 ― 초기불교의 궁극적 메시지 | 43 |
| 제4장 어떻게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 구체적 방법 | 54 |
| 제5장 법(法, dhamma, dharma): 초기불교의 핵심 | 69 |
| 제2편 초기불교의 교학 | 85 |
| 제6장 초기불교의 진리 ― 사성제 | 87 |
| 제7장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오온 I | 109 |
| 제8장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오온 II | 136 |
| 제9장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오온 III | 149 |
| 제10장 인간이 가진 능력들 ― 22근(기능) | 163 |
| 제11장 존재란 무엇인가 ― 12처[六內外處] I | 168 |
| 제12장 존재란 무엇인가 ― 12처[六內外處] II | 184 |
| 제13장 존재란 무엇인가 ― 18계[界, 요소, dhātu] | 200 |
| 제14장 어떻게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 209 |
| 제15장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 12연기 I | 225 |
| 제16장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 12연기 II | 253 |
| 제3편 초기불교의 수행 | 273 |
| 제17장 초기불교의 수행법 개관 ― 37보리분법 | 275 |
| 제18장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四念處] | 278 |
| 제19장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出入息念] | 292 |
| 제20장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과 선법․불선법 | 299 |
| 제21장 네 가지 성취 수단[四如意足] | 317 |
| 제22장 다섯 가지 기능[五根] | 324 |
| 제23장 다섯 가지 힘[五力] | 342 |
| 제24장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 348 |
| 제25장 어떤 것이 도인가 ― 팔정도 | 366 |
| 제4편 초기불교의 주요 술어 | 387 |
| 제26장 사마타와 위빳사나(止觀) | 389 |
| 제27장 해탈이란 무엇인가 | 404 |
| 제28장 삼학과 오법온 | 430 |
| 제29장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 | 459 |
| 제30장 불교와 윤회 | 466 |
| 제31장 족쇄를 푼 성자들 - 10가지 족쇄와 네 가지 성자 | 474 |
| 후 기 | 485 |
| 참고문헌 | 489 |
| 찾아보기 | 501 |
<초기 불교 이해>
제1장 들어가는 말
⑴ 초기불교냐 원시불교냐 근본불교냐
부처님은 정말 실존하셨던 분인가? 19세기 말에 서구 학자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탄생지로 알려진 룸비니에서 아쇼카 대왕의 석주가 발견되고 여기에 적힌 문장을 읽으면서 이런 논란은 사라져버렸다.
불교 2600년사의 흐름은 모두 이처럼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 즉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hatta, Sk. Gautama Siddhartha) 그분으로부터 출발한다. 후대의 모든 불교는 그분이 깨달으시고 45년간 설법하셨던 그 가르침을 뿌리로 해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이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듯이 이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거부하고는 후대의 어떤 불교도 생존할 수 없다. 이것이 역사를 아는 이 시대 불교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중요성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마스타니 후미오 박사 같은 근세 일본의 불교학자들은 일본에 불교가 두 번 전래되었다고 강조한다. 한 번은 중국과 한국을 통한 한문불교의 전래였고 또 한 번은 근세에 빠알리와 산스끄리뜨를 통한 범어불교 특히 초기불교의 전래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처럼 그들에게 초기불교와 범어불전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이 불교를 부르는 술어 세 가지가 있으니 바로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이다.
일부 한문불교와 대승불교의 우월성에 물들어있던 일본의 학자들은 이러한 초기불교를 애써 원시불교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Primitive Buddhism이 된다. 아무래도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원시의 모습, 미개 상태의 불교라는 뜻이 은연중에 함축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한 노스님은 원시불교라는 말을 거부하고 원초불교라는 용어를 즐겨 쓰신다.
이에 반해 부처님의 원음이야말로 모든 불교의 근본이요 뿌리요 전부라는 것을 강조하는 학자나 불자들은 초기불교를 근본불교라 부른다. 영어로는 Fundamental Buddhism으로 표기한다. 초기불교야말로 근본이요 기본이요 필수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초기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술어가 초기불교이다. 영어로는 Early Buddhism이다. 원시불교라는 표현처럼 비하적인 의미도 없고 근본불교처럼 교조적인 의미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초기불교라는 술어를 좋아하고 부처님의 원음을 말할 때는 항상 이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저자는 앞으로 초기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본서를 통해 부처님의 원음, 저 금구성언(金口聖言)에 대해서 사유해 보고자 한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초기불교라 하는가?
⑵ 무엇이 초기불교인가?
① 부처님 출생에 관한 학설
인도 역사를 판단하는 부동의 준거는 아쇼카 대왕이다. 실증자료가 희박한 인도에서 그는 많은 석주와 비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쇼카 대왕의 석주는 부처님의 탄생년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네팔에 있는 룸비니는 부처님의 탄생지로 이름 높다. 이곳에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쇼카 문자 93자로 된 다섯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부처님,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āte Sākyamuni)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스님이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Cunningham) 장군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BC 3세기에 각인된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이 명문이야말로 부처님이 실존인물이었음을 밝혀주는 가장 명백한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과 역사에 관계된 자료가 희박한 인도에서 모든 역사적 판단을 하는 기본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입멸시기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쇼카 대왕의 즉위년도는 서기전(BC) 268년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브리태니커 사전과『불타의 세계』(나까무라 하지메 지음, 김지견 옮김, 2005, 김영사)과『인도불교사』1(에띠엔 라모뜨 지음, 호진 옮김, 2006, 시공사) 등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출생에 대한 학설로는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 기원전 543년 입멸 설
모든 남방 불교국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이다. 이것이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정설이다. 그래서 올해 2010년은 불기로 2553년이 된다. 이 설에 의하면 아쇼카 대왕의 즉위년도는 불멸 275년 후가 되는데 역사적인 근거는 찾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와 인도는 BC 544년으로 계산해서 2010년을 2554년으로 표기한다.
㉡ 기원전 486년 입멸 설
중성점기설(衆聖點記說)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입멸 후 매년『율장』에 점을 하나씩 계속 찍었다고 하는『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의 기록에 의거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세존의 입멸 연도는 BC 486년으로 계산된다. 일본의 불교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기원전 386년 혹은 383년 입멸 설
또 다른 일본학자들이 지지하는 설인데 아쇼카 대왕 즉위를 불멸 116년 후로 보는 캐시미르 지방의 전승을 유력한 자료로 삼은 계산이다.
㉣ 기원전 483년 입멸 설
스리랑카의『도사』(島史, Dipavamsa)와『대사』(大史, Mahavaṁ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가이거(Gaiger, W)가 주장한 설이다. 이것은 아쇼카 왕의 즉위를 불멸 후 218년으로 보는 스리랑카의 사료(史料)와도 관계가 있으며 붓다고사 스님이 집대성한 주석서 문헌에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200년이 지나서 땀바빤니 섬(Tambapaṇṇi-dīpa,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다고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MA.ii.293)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쓰던 것으로 BC 1027년 갑인(甲寅) 4월 8일에 탄생하여 BC 949년 임신(壬申) 2월 15일에 입멸하셨다고 보는 설 등의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불전과 논서에서 전하는 아쇼카 대왕의 즉위 연대는 불멸 후 100~200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추정도 단정적인 것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연대에 무관심했던 인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만큼이나 상세하게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탄할 만하다.
②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이 초기불교다
초기불교라 함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율(律, vinaya)은 일차결집(一次結集, Paṭhama -mahāsaṅgīti)에서 우빨리(Upāli) 존자가 읊어서『율장』으로 결집되었다. 법(法, dhamma)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증득하시고 45년 동안 법을 설하신 가운데서 후반부 약24년 가량 부처님의 시자 소임을 보았던 아난다(Ānanda) 존자가 일차결집에서 외워서『경장』으로 결집되었다. 이처럼 빠알리『율장』과『경장』에 나타나는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을 초기불교라 한다.
③ 초기불교는 삼차결집에서 결집이 완료된 가르침이다
조금 더 넓혀서 보면, 불멸 218년 후(스리랑카의 설) 혹은 불멸 116년 후(캐시미르의 전승)에 즉위한 아쇼카 대왕 때 거행된 삼차결집에서 결집이 완료된 가르침을 말한다. 상좌부의『논장』인 칠론(七論)은 삼차결집 때 완성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④ 현존하는 빠알리『삼장』(Ti-Piṭaka)에 전승되어오는 모든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가장 넓게는 현존하는 빠알리『삼장』(Ti-Piṭaka) 즉 다섯 권의『율장』과 5부 니까야로 구성된『경장』과 일곱 권의『논장』에 전승되어오는 모든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⑤ 초기불교의 역사적인 근거는 니까야(Nikāya)와『아함』(阿含, āgama)이다.
역사적으로는 남방 상좌부에 전승되어 오는 니까야와 북방에서 한역되어 전승되어 오는『아함』이 초기불교의 분명한 전거(典據)가 된다.
‘니까야(Nikāya)’는 ni(아래로)+√ci(to gather)에서 파생된 명사로 초기불전에서는 ‘모임, 회합, 무리’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니까야’는 ‘모은(collected) [가르침]’이란 뜻이다. ‘아함(āgama)’은 ā(이쪽으로)+√gam(to go)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이쪽으로 전해져 온 것이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승된(handed down)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4부 니까야는『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맛지마 니까야』(Maj- jhima Nikāya),『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일본에서는 각각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로 옮겼다.)이다. 이것을 위시한 빠알리『삼장』은 모두 부처님의 직설이거나 부처님의 직설에 가장 가까운 빠알리어로 전승되어온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에다『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의 운문으로 된 경들, 즉『숫따니빠따』(經集, Suttanipāta),『법구경』(法句經, Dhamma- pāda),『자설경』(自說經, Udāna),『여시어경』(如是語經, Itivuttaka),『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장로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본생담』(本生譚, Jātaka)의 7가지는 당연히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인 초기불교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오히려『숫따니빠따』는 4부 니까야보다 더 오래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4아함(āgama)은『장아함』(長阿含),『중아함』(中阿含),『잡아함』(雜阿含),『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이들은 한문으로 축약되어 번역되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일차자료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물론 니까야와 비교 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남방 북방으로 전혀 다른 경로로 전승되어 전혀 다른 문자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니까야와『아함』이 서로 똑같은 기본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율장』(Vinaya)은 승가의 계율과 승단의 규정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Dhamma)을 살펴보는 본서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중요한 내용만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율장』은 한역 오대광율과 상좌부『율장』등으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오지만 그 구조와 내용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하다.
한역『율장』은 다섯 가지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중국에서는 오대광율(五大廣律)이라 불렀다. 그것은『십송율』61권(404~409년 불야다라, 구마라집 역),『마하승기율』40권(416~418년 불타발타라, 법현 역),『사분율』60권(410~412년 축불념 역),『오분율』30권(422~424년 불대집 역),『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701~713년 의정 역)이다. 그리고 상좌부『율장』이 스리랑카와 미얀마와 태국 등의 남방에서 빠알리어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잘 실천되고 있다. 그 외 산스끄리뜨 등으로 된 단편들이 다수 존재한다.
상좌부『율장』(律藏, Vinaya-Pitaka)은 ①『비구 위방가』(Bhikkhu- vibhaṅga, 비구 계목) ②『비구니 위방가』(Bhikkhunī-vibhaṅga, 비구니 계목) ③『마하왁가』(Mahāvagga, 大品) ④『쭐라왁가』(Cullavagga, 小品) ⑤『빠리와라』(Parivāra, 補遺)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한역 오대광율도 같은 방법으로 되어 있다.
상좌부『논장』(論藏, Abhidhamma-Pitaka)은 다음의 칠론(七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법집론』(法集論, Dhammasaṅgani),『분별론』(分別論, Vibhaṅ -ga),『계론』(界論, Dhātukathā),『인시설론』(人施設論, Puggalapañña- tti),『논사』(論事, Kathāvatthu),『쌍론』(雙論, Yamaka),『발취론』(發趣論, Paṭṭhāna)이다.
북방 설일체유부도 칠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품류족론』(品類足論),『식신족론』(識身足論),『법온족론』(法蘊足論),『시설족론』(施設足論),『계신족론』(界身足論),『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의 6족론과 가다연니자(Kātyāyaniputra)가 지은『발지론』(發智論)이다. 그리고『발지론』에 대한 광대하고 풍부한 주석서인『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도 중요하다.
규기 스님의『이부종륜론 술기』(異部宗輪論述記)에 의하면 설일체유부는 BC 1세기에 캐시미르(빠알리어: Kasmīra) 지역에서 상좌부로부터 분파되었다고 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도 이처럼 칠론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부처님의 적통으로 자부하는 남방 상좌부에서 전승되어 온 칠론이 정통『논장』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하겠다. 아니면 적어도 7이라는 숫자가 초기불교 시대에서부터 있었던『논장』의 개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⑶ 왜 초기불교인가?
저자는 초기불전인 빠알리『삼장』의 완역을 발원하고 나름대로 번역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이 받는 질문이 ‘왜 하필이면 초기불교인가?’이다. 저자는 다음의 8가지로 정리해서 대답한다.
첫째, 초기불교는 불교의 시작점이다.
모든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불교 2600년의 전개에도 그 뿌리가 있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듯이 뿌리를 모르는 불교는 역사를 아는 이 시대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 초기불교는 불교 만대의 기준이요 표준이며 잣대다.
무엇이 불교고 무엇이 불교가 아니냐는 판단을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불교의 뿌리인 초기불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핵심은 무상․고․무아․열반이다. 무상․고․무아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삼특상(三特相)으로 강조되며, 열반은 초기불교가 제시하는 궁극적 행복이다. 북방에서는 무상․무아․열반을 삼법인(三法印)이라 하여 불교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잣대로 삼았고, 무상․고․무아․열반의 넷을 사법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의 금구성언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교 만대의 뿌리요 그래서 모든 불교의 표준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합리성과 체계성에 바탕하고 있으며 분석적이다. 이는 수학을 토대로 하여 전개되는 과학이라는 현대의 방법론과 일치한다.
5온․12처․18계․22근․4제․12연기와 37보리분법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는 과학적 접근 방법이다. 그리고 나와 세상을 신․수․심․법(身․受․心․法)으로 해체해서 살피는 수행태도는 과학자나 의사가 데이터나 환자를 객관화시켜서 잘 살펴보는 태도와 일치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불교수행지도자인 고엔까(S. N. Goen -ka) 거사님은 불교를 Science(과학)라고 역설한다.
넷째, 초기불전의 매개 언어인 빠알리어를 비롯한 범어는 격변화와 동사곡용을 기본으로 하며, 이는 한글과 같은 언어체계이다. 그러므로 한문 경전과 달리 문법적 구조가 정확하다. 따라서 문장을 곡해하거나 왜곡하거나 잘못 이해할 소지가 현저히 줄어든다.
다섯째, 초기불교 경전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 주석서가 있다.
이 주석서는 사리뿟따 존자 등 부처님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쉽게도 북방의 아함에는 주석서가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빠알리로 기록된 초기불교는 불교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탈피하여 불교교리의 곡해가 제거될 것이다. 소설불교와 신변잡기불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수학이듯이 주석서의 방법론은 아비담마(Abhidhamma, 對法, 법에 대해서)이다. 둘 다 분석적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방법론이다.
여섯째, 한문으로 번역되거나 만들어진『삼장』은 결국 2차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부처님은 빠알리어 혹은 빠알리어에 가장 근접한 언어로 말씀하셨으며 대승불교 전적은 모두 인도 표준어인 산스끄리뜨어로 기록되어 전승되어 왔다.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원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곱째, 초기불교의 이해는 자주적인 진정한 한국불교를 구현할 수 있다.
부처님의 원음을 통해서 중국불교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효 스님 등이 추구했던 자주불교의 전통을 오늘에 구현할 수 있다.
여덟째, 교세가 위축되고 있는 한국불교가 딛고 일어서야할 바닥이요 발판이요 출발점이다.
초기불교는 뿌리이기에 가지인 대승불교를 거부하지 않는다. 가지를 거부하는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초기불교는 대승불교를 살찌우는 뿌리이다. 뿌리를 통해서 자양분을 흠뻑 빨아들일 때 진정한 대승불교, 올바른 한국불교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⑷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상윳따 니까야』「천 명이 넘음 경」(S8:8) {742}번 게송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ṁ)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주석서는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부분(koṭṭhā -sa)으로 법을 해체하는 것(dhammaṁ vibhajantaṁ)이라는 말이다.”(SA.i. 279)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pavibhajja/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 부른다. 분별이란 말이 사량분별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우리의 어감으로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저자는 해체나 분석이라고 옮긴다. vi-는 분리접두어고 √bhaj는 to divide의 뜻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해체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施設, paññatti]의 해체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명칭이나 말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강조하신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해지는 모든 존재[諸法, 유위법, sabbe dhammā]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離欲]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특히『상윳따 니까야』의「무더기 상윳따」(S22)나「감각장소 상윳따」(S35)나「인연 상윳따」(S12) 등의 많은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땅에 떨어진 머리칼을 보고 아무도 아름답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라는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색깔과 특정한 형태로 여인이라는 전체상과 얼굴이라는 부분상에 묶여 있을 때 머리칼을 아름답다 하고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머리칼을 ‘단지 머리칼’로만 보면 그것은 애욕의 대상이 아니다. 천하일색 양귀비의 눈과 입술이 아무리 예쁘다할지라도 그것은 전체상을 이루고 있을 때 이야기다. 눈을 빼고 코를 분리하고 입술을 도려내어 알코올에 담가두었다면 아무도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애욕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성도착증환자일 것이다. 그리고 머리칼, 눈, 입술 등은 땅, 물, 불, 바람이라는 네 가지 근본물질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이들을 아름답다 여기는 것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취하는 전체상과 부분상에 기인한 것이다. 이처럼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명칭이나 말에 속지 않고, 이런 것들은 단지 오온이고 12처이고 18계이고 조건발생(연기)일 뿐임에 사무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그래서「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신․수․심․법)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 사마타)하거나 그 중의 하나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반야, 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나와 존재와 세상과 생사문제를 이처럼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부처님께서는「대반열반경」(D22)에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초기불교의 법수는 전통적으로 온․처․계․근․제․연(5온․12처․18계․22근․4성제․12연기)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가 된다.(『청정도론』XIV.34) 전자는 교학의 핵심이 되는 법수이며 후자는 수행의 기본이 되는 가르침이다. 이 모든 가르침이 모두 해체해서 보기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법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토대가 될 때 불교 2600년사를 통해서 전개되어온 후대 모든 불교의 가르침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된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공(空, śūnya)으로 보려는 것이 반야․중관의 직관적인 시각이고 세계를 깨달음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된 것[華嚴]으로 보려는 것이 화엄의 종합적인 시각일 것이다. 여기에 반해 초기불교는 세계를 법으로 해체해서 봐서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해체적인 시각이다. 아직 깨달음을 실현하지도 못한 범부중생이 세상을 해체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내지 못하면서 깨달은 체하여 세계를 찬미하고 찬탄하여 횡설수설한다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직관이나 종합만을 강조해온 한국불교에는 초기불교의 해체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⑸ 본서의 특징 몇 가지
이제 ‘들어가는 말’을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본서는 빠알리『삼장』을 토대로 한 초기불교 개론서라고 강조하고 싶다. 본서는 중국에서 저술한 한문 자료나 한역된 것은 일차자료에서 제외시켰다. 한문 자료는 저자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범어 원전과 대조하지 않고 인용하는 한문 자료는 오해나 곡해의 소지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 한문 술어들은 본서 전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더 구체적으로는 빠알리『경장』그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초기불교의 토대는 니까야와『아함』인데 저자는 철저히 니까야만을 근거로 하여 본서를 저술하였다. 이유는 첫째에서 밝힌 것과 같다.
그리고 니까야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와,『쿳다까 니까야』가운데서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숫따니빠따』(經集, Suttanipāta) 등의 운문을 기본으로 하는 일곱 가지를 토대로 하였다. 이 자료들이야말로 부처님의 원음과 직계제자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셋째, 특히 본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56가지 주제별로 모은『상윳따 니까야』를 중심에 두고 있다.『상윳따 니까야』는 5온․12처․18계․22근․4제․12연기와 37보리분법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심도 깊게 다룬 경들을 주제별로 잘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는 저자가 전체 6권으로 완역한『상윳따 니까야』각 권의 해제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대부분 그대로 살려서 싣고 있음을 밝힌다.
넷째, 본서는 초기불교에 대한 단순한 입문서가 아니라 초기불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든 본격적인 초기불교 교리서 혹은 초기불교 해설서라고 말하고 싶다.
다섯째, 초기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초기불교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서인『청정도론』과 상좌부 아비담마의 핵심 요약인『아비담맛타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와 니까야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전통적인 권위에 의지하지 않게 되면 자칫 저자의 잘못된 이해와 독선에 빠질 위험이 많기 때문에 저자는 본서를 쓰면서 철저하게『청정도론』과『아비담마 길라잡이』와 주석서 문헌들을 의지하였음을 밝힌다.
여섯째, 그러다 보니 본서에는 빠알리 술어들과 한문 술어들이 많이 나타나서 전체적으로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본서에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본서를 정독을 하게 되면 초기불교의 교학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곱째, 원래는 본서 각 장의 말미에 ‘경전 공부’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경전을 전체적으로 약 50개 정도 실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700쪽이 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500쪽 정도의 책으로 만들려던 원래 계획을 존중하기로 하고 대림 스님과 상의 하에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경전 공부’ 항목을 과감하게 삭제하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가려뽑은 초기불전’ 등의 제목을 달아서 단행본으로 출간하려 한다.
본서가 초기불교의 이해를 도와주는 조그만 노둣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들어가는 말을 접는다.
초기 불교 이해
각묵 스님 지음/신국판 536쪽
정가: 23,000원 (초판 2010년, 4쇄 2013년)
<초기 불교 이해 목차>
<초기 불교 이해>
제1장 들어가는 말
⑴ 초기불교냐 원시불교냐 근본불교냐
부처님은 정말 실존하셨던 분인가? 19세기 말에 서구 학자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탄생지로 알려진 룸비니에서 아쇼카 대왕의 석주가 발견되고 여기에 적힌 문장을 읽으면서 이런 논란은 사라져버렸다.
불교 2600년사의 흐름은 모두 이처럼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 즉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hatta, Sk. Gautama Siddhartha) 그분으로부터 출발한다. 후대의 모든 불교는 그분이 깨달으시고 45년간 설법하셨던 그 가르침을 뿌리로 해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이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듯이 이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거부하고는 후대의 어떤 불교도 생존할 수 없다. 이것이 역사를 아는 이 시대 불교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중요성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마스타니 후미오 박사 같은 근세 일본의 불교학자들은 일본에 불교가 두 번 전래되었다고 강조한다. 한 번은 중국과 한국을 통한 한문불교의 전래였고 또 한 번은 근세에 빠알리와 산스끄리뜨를 통한 범어불교 특히 초기불교의 전래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처럼 그들에게 초기불교와 범어불전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이 불교를 부르는 술어 세 가지가 있으니 바로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이다.
일부 한문불교와 대승불교의 우월성에 물들어있던 일본의 학자들은 이러한 초기불교를 애써 원시불교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Primitive Buddhism이 된다. 아무래도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원시의 모습, 미개 상태의 불교라는 뜻이 은연중에 함축되어 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한 노스님은 원시불교라는 말을 거부하고 원초불교라는 용어를 즐겨 쓰신다.
이에 반해 부처님의 원음이야말로 모든 불교의 근본이요 뿌리요 전부라는 것을 강조하는 학자나 불자들은 초기불교를 근본불교라 부른다. 영어로는 Fundamental Buddhism으로 표기한다. 초기불교야말로 근본이요 기본이요 필수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초기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술어가 초기불교이다. 영어로는 Early Buddhism이다. 원시불교라는 표현처럼 비하적인 의미도 없고 근본불교처럼 교조적인 의미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초기불교라는 술어를 좋아하고 부처님의 원음을 말할 때는 항상 이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저자는 앞으로 초기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본서를 통해 부처님의 원음, 저 금구성언(金口聖言)에 대해서 사유해 보고자 한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초기불교라 하는가?
⑵ 무엇이 초기불교인가?
① 부처님 출생에 관한 학설
인도 역사를 판단하는 부동의 준거는 아쇼카 대왕이다. 실증자료가 희박한 인도에서 그는 많은 석주와 비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쇼카 대왕의 석주는 부처님의 탄생년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네팔에 있는 룸비니는 부처님의 탄생지로 이름 높다. 이곳에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쇼카 문자 93자로 된 다섯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부처님,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āte Sākyamuni)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스님이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Cunningham) 장군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BC 3세기에 각인된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이 명문이야말로 부처님이 실존인물이었음을 밝혀주는 가장 명백한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과 역사에 관계된 자료가 희박한 인도에서 모든 역사적 판단을 하는 기본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입멸시기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쇼카 대왕의 즉위년도는 서기전(BC) 268년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브리태니커 사전과『불타의 세계』(나까무라 하지메 지음, 김지견 옮김, 2005, 김영사)과『인도불교사』1(에띠엔 라모뜨 지음, 호진 옮김, 2006, 시공사) 등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출생에 대한 학설로는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 기원전 543년 입멸 설
모든 남방 불교국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이다. 이것이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정설이다. 그래서 올해 2010년은 불기로 2553년이 된다. 이 설에 의하면 아쇼카 대왕의 즉위년도는 불멸 275년 후가 되는데 역사적인 근거는 찾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와 인도는 BC 544년으로 계산해서 2010년을 2554년으로 표기한다.
㉡ 기원전 486년 입멸 설
중성점기설(衆聖點記說)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입멸 후 매년『율장』에 점을 하나씩 계속 찍었다고 하는『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의 기록에 의거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세존의 입멸 연도는 BC 486년으로 계산된다. 일본의 불교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기원전 386년 혹은 383년 입멸 설
또 다른 일본학자들이 지지하는 설인데 아쇼카 대왕 즉위를 불멸 116년 후로 보는 캐시미르 지방의 전승을 유력한 자료로 삼은 계산이다.
㉣ 기원전 483년 입멸 설
스리랑카의『도사』(島史, Dipavamsa)와『대사』(大史, Mahavaṁ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가이거(Gaiger, W)가 주장한 설이다. 이것은 아쇼카 왕의 즉위를 불멸 후 218년으로 보는 스리랑카의 사료(史料)와도 관계가 있으며 붓다고사 스님이 집대성한 주석서 문헌에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200년이 지나서 땀바빤니 섬(Tambapaṇṇi-dīpa,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다고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MA.ii.293)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쓰던 것으로 BC 1027년 갑인(甲寅) 4월 8일에 탄생하여 BC 949년 임신(壬申) 2월 15일에 입멸하셨다고 보는 설 등의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불전과 논서에서 전하는 아쇼카 대왕의 즉위 연대는 불멸 후 100~200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추정도 단정적인 것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연대에 무관심했던 인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만큼이나 상세하게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탄할 만하다.
②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이 초기불교다
초기불교라 함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율(律, vinaya)은 일차결집(一次結集, Paṭhama -mahāsaṅgīti)에서 우빨리(Upāli) 존자가 읊어서『율장』으로 결집되었다. 법(法, dhamma)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증득하시고 45년 동안 법을 설하신 가운데서 후반부 약24년 가량 부처님의 시자 소임을 보았던 아난다(Ānanda) 존자가 일차결집에서 외워서『경장』으로 결집되었다. 이처럼 빠알리『율장』과『경장』에 나타나는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을 초기불교라 한다.
③ 초기불교는 삼차결집에서 결집이 완료된 가르침이다
조금 더 넓혀서 보면, 불멸 218년 후(스리랑카의 설) 혹은 불멸 116년 후(캐시미르의 전승)에 즉위한 아쇼카 대왕 때 거행된 삼차결집에서 결집이 완료된 가르침을 말한다. 상좌부의『논장』인 칠론(七論)은 삼차결집 때 완성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④ 현존하는 빠알리『삼장』(Ti-Piṭaka)에 전승되어오는 모든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가장 넓게는 현존하는 빠알리『삼장』(Ti-Piṭaka) 즉 다섯 권의『율장』과 5부 니까야로 구성된『경장』과 일곱 권의『논장』에 전승되어오는 모든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⑤ 초기불교의 역사적인 근거는 니까야(Nikāya)와『아함』(阿含, āgama)이다.
역사적으로는 남방 상좌부에 전승되어 오는 니까야와 북방에서 한역되어 전승되어 오는『아함』이 초기불교의 분명한 전거(典據)가 된다.
‘니까야(Nikāya)’는 ni(아래로)+√ci(to gather)에서 파생된 명사로 초기불전에서는 ‘모임, 회합, 무리’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니까야’는 ‘모은(collected) [가르침]’이란 뜻이다. ‘아함(āgama)’은 ā(이쪽으로)+√gam(to go)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이쪽으로 전해져 온 것이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승된(handed down)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4부 니까야는『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맛지마 니까야』(Maj- jhima Nikāya),『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일본에서는 각각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로 옮겼다.)이다. 이것을 위시한 빠알리『삼장』은 모두 부처님의 직설이거나 부처님의 직설에 가장 가까운 빠알리어로 전승되어온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에다『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의 운문으로 된 경들, 즉『숫따니빠따』(經集, Suttanipāta),『법구경』(法句經, Dhamma- pāda),『자설경』(自說經, Udāna),『여시어경』(如是語經, Itivuttaka),『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장로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본생담』(本生譚, Jātaka)의 7가지는 당연히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인 초기불교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오히려『숫따니빠따』는 4부 니까야보다 더 오래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4아함(āgama)은『장아함』(長阿含),『중아함』(中阿含),『잡아함』(雜阿含),『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이들은 한문으로 축약되어 번역되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일차자료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물론 니까야와 비교 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남방 북방으로 전혀 다른 경로로 전승되어 전혀 다른 문자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니까야와『아함』이 서로 똑같은 기본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율장』(Vinaya)은 승가의 계율과 승단의 규정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Dhamma)을 살펴보는 본서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중요한 내용만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율장』은 한역 오대광율과 상좌부『율장』등으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오지만 그 구조와 내용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하다.
한역『율장』은 다섯 가지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중국에서는 오대광율(五大廣律)이라 불렀다. 그것은『십송율』61권(404~409년 불야다라, 구마라집 역),『마하승기율』40권(416~418년 불타발타라, 법현 역),『사분율』60권(410~412년 축불념 역),『오분율』30권(422~424년 불대집 역),『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701~713년 의정 역)이다. 그리고 상좌부『율장』이 스리랑카와 미얀마와 태국 등의 남방에서 빠알리어로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잘 실천되고 있다. 그 외 산스끄리뜨 등으로 된 단편들이 다수 존재한다.
상좌부『율장』(律藏, Vinaya-Pitaka)은 ①『비구 위방가』(Bhikkhu- vibhaṅga, 비구 계목) ②『비구니 위방가』(Bhikkhunī-vibhaṅga, 비구니 계목) ③『마하왁가』(Mahāvagga, 大品) ④『쭐라왁가』(Cullavagga, 小品) ⑤『빠리와라』(Parivāra, 補遺)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한역 오대광율도 같은 방법으로 되어 있다.
상좌부『논장』(論藏, Abhidhamma-Pitaka)은 다음의 칠론(七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법집론』(法集論, Dhammasaṅgani),『분별론』(分別論, Vibhaṅ -ga),『계론』(界論, Dhātukathā),『인시설론』(人施設論, Puggalapañña- tti),『논사』(論事, Kathāvatthu),『쌍론』(雙論, Yamaka),『발취론』(發趣論, Paṭṭhāna)이다.
북방 설일체유부도 칠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품류족론』(品類足論),『식신족론』(識身足論),『법온족론』(法蘊足論),『시설족론』(施設足論),『계신족론』(界身足論),『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의 6족론과 가다연니자(Kātyāyaniputra)가 지은『발지론』(發智論)이다. 그리고『발지론』에 대한 광대하고 풍부한 주석서인『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도 중요하다.
규기 스님의『이부종륜론 술기』(異部宗輪論述記)에 의하면 설일체유부는 BC 1세기에 캐시미르(빠알리어: Kasmīra) 지역에서 상좌부로부터 분파되었다고 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도 이처럼 칠론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부처님의 적통으로 자부하는 남방 상좌부에서 전승되어 온 칠론이 정통『논장』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하겠다. 아니면 적어도 7이라는 숫자가 초기불교 시대에서부터 있었던『논장』의 개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⑶ 왜 초기불교인가?
저자는 초기불전인 빠알리『삼장』의 완역을 발원하고 나름대로 번역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이 받는 질문이 ‘왜 하필이면 초기불교인가?’이다. 저자는 다음의 8가지로 정리해서 대답한다.
첫째, 초기불교는 불교의 시작점이다.
모든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불교 2600년의 전개에도 그 뿌리가 있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듯이 뿌리를 모르는 불교는 역사를 아는 이 시대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 초기불교는 불교 만대의 기준이요 표준이며 잣대다.
무엇이 불교고 무엇이 불교가 아니냐는 판단을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불교의 뿌리인 초기불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핵심은 무상․고․무아․열반이다. 무상․고․무아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삼특상(三特相)으로 강조되며, 열반은 초기불교가 제시하는 궁극적 행복이다. 북방에서는 무상․무아․열반을 삼법인(三法印)이라 하여 불교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잣대로 삼았고, 무상․고․무아․열반의 넷을 사법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의 금구성언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교 만대의 뿌리요 그래서 모든 불교의 표준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합리성과 체계성에 바탕하고 있으며 분석적이다. 이는 수학을 토대로 하여 전개되는 과학이라는 현대의 방법론과 일치한다.
5온․12처․18계․22근․4제․12연기와 37보리분법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는 과학적 접근 방법이다. 그리고 나와 세상을 신․수․심․법(身․受․心․法)으로 해체해서 살피는 수행태도는 과학자나 의사가 데이터나 환자를 객관화시켜서 잘 살펴보는 태도와 일치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불교수행지도자인 고엔까(S. N. Goen -ka) 거사님은 불교를 Science(과학)라고 역설한다.
넷째, 초기불전의 매개 언어인 빠알리어를 비롯한 범어는 격변화와 동사곡용을 기본으로 하며, 이는 한글과 같은 언어체계이다. 그러므로 한문 경전과 달리 문법적 구조가 정확하다. 따라서 문장을 곡해하거나 왜곡하거나 잘못 이해할 소지가 현저히 줄어든다.
다섯째, 초기불교 경전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 주석서가 있다.
이 주석서는 사리뿟따 존자 등 부처님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쉽게도 북방의 아함에는 주석서가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빠알리로 기록된 초기불교는 불교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탈피하여 불교교리의 곡해가 제거될 것이다. 소설불교와 신변잡기불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수학이듯이 주석서의 방법론은 아비담마(Abhidhamma, 對法, 법에 대해서)이다. 둘 다 분석적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방법론이다.
여섯째, 한문으로 번역되거나 만들어진『삼장』은 결국 2차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부처님은 빠알리어 혹은 빠알리어에 가장 근접한 언어로 말씀하셨으며 대승불교 전적은 모두 인도 표준어인 산스끄리뜨어로 기록되어 전승되어 왔다.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원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곱째, 초기불교의 이해는 자주적인 진정한 한국불교를 구현할 수 있다.
부처님의 원음을 통해서 중국불교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효 스님 등이 추구했던 자주불교의 전통을 오늘에 구현할 수 있다.
여덟째, 교세가 위축되고 있는 한국불교가 딛고 일어서야할 바닥이요 발판이요 출발점이다.
초기불교는 뿌리이기에 가지인 대승불교를 거부하지 않는다. 가지를 거부하는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초기불교는 대승불교를 살찌우는 뿌리이다. 뿌리를 통해서 자양분을 흠뻑 빨아들일 때 진정한 대승불교, 올바른 한국불교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⑷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상윳따 니까야』「천 명이 넘음 경」(S8:8) {742}번 게송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ṁ)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주석서는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부분(koṭṭhā -sa)으로 법을 해체하는 것(dhammaṁ vibhajantaṁ)이라는 말이다.”(SA.i. 279)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pavibhajja/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 부른다. 분별이란 말이 사량분별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우리의 어감으로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저자는 해체나 분석이라고 옮긴다. vi-는 분리접두어고 √bhaj는 to divide의 뜻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해체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施設, paññatti]의 해체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명칭이나 말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강조하신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해지는 모든 존재[諸法, 유위법, sabbe dhammā]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離欲]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특히『상윳따 니까야』의「무더기 상윳따」(S22)나「감각장소 상윳따」(S35)나「인연 상윳따」(S12) 등의 많은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땅에 떨어진 머리칼을 보고 아무도 아름답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라는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색깔과 특정한 형태로 여인이라는 전체상과 얼굴이라는 부분상에 묶여 있을 때 머리칼을 아름답다 하고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머리칼을 ‘단지 머리칼’로만 보면 그것은 애욕의 대상이 아니다. 천하일색 양귀비의 눈과 입술이 아무리 예쁘다할지라도 그것은 전체상을 이루고 있을 때 이야기다. 눈을 빼고 코를 분리하고 입술을 도려내어 알코올에 담가두었다면 아무도 그것에서 애욕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애욕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성도착증환자일 것이다. 그리고 머리칼, 눈, 입술 등은 땅, 물, 불, 바람이라는 네 가지 근본물질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이들을 아름답다 여기는 것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취하는 전체상과 부분상에 기인한 것이다. 이처럼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명칭이나 말에 속지 않고, 이런 것들은 단지 오온이고 12처이고 18계이고 조건발생(연기)일 뿐임에 사무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그래서「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신․수․심․법)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 사마타)하거나 그 중의 하나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반야, 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나와 존재와 세상과 생사문제를 이처럼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부처님께서는「대반열반경」(D22)에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초기불교의 법수는 전통적으로 온․처․계․근․제․연(5온․12처․18계․22근․4성제․12연기)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가 된다.(『청정도론』XIV.34) 전자는 교학의 핵심이 되는 법수이며 후자는 수행의 기본이 되는 가르침이다. 이 모든 가르침이 모두 해체해서 보기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법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토대가 될 때 불교 2600년사를 통해서 전개되어온 후대 모든 불교의 가르침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된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공(空, śūnya)으로 보려는 것이 반야․중관의 직관적인 시각이고 세계를 깨달음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된 것[華嚴]으로 보려는 것이 화엄의 종합적인 시각일 것이다. 여기에 반해 초기불교는 세계를 법으로 해체해서 봐서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해체적인 시각이다. 아직 깨달음을 실현하지도 못한 범부중생이 세상을 해체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내지 못하면서 깨달은 체하여 세계를 찬미하고 찬탄하여 횡설수설한다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직관이나 종합만을 강조해온 한국불교에는 초기불교의 해체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⑸ 본서의 특징 몇 가지
이제 ‘들어가는 말’을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본서는 빠알리『삼장』을 토대로 한 초기불교 개론서라고 강조하고 싶다. 본서는 중국에서 저술한 한문 자료나 한역된 것은 일차자료에서 제외시켰다. 한문 자료는 저자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범어 원전과 대조하지 않고 인용하는 한문 자료는 오해나 곡해의 소지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 한문 술어들은 본서 전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더 구체적으로는 빠알리『경장』그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초기불교의 토대는 니까야와『아함』인데 저자는 철저히 니까야만을 근거로 하여 본서를 저술하였다. 이유는 첫째에서 밝힌 것과 같다.
그리고 니까야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와,『쿳다까 니까야』가운데서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숫따니빠따』(經集, Suttanipāta) 등의 운문을 기본으로 하는 일곱 가지를 토대로 하였다. 이 자료들이야말로 부처님의 원음과 직계제자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셋째, 특히 본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56가지 주제별로 모은『상윳따 니까야』를 중심에 두고 있다.『상윳따 니까야』는 5온․12처․18계․22근․4제․12연기와 37보리분법으로 잘 조직되어 있는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심도 깊게 다룬 경들을 주제별로 잘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는 저자가 전체 6권으로 완역한『상윳따 니까야』각 권의 해제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대부분 그대로 살려서 싣고 있음을 밝힌다.
넷째, 본서는 초기불교에 대한 단순한 입문서가 아니라 초기불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든 본격적인 초기불교 교리서 혹은 초기불교 해설서라고 말하고 싶다.
다섯째, 초기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초기불교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서인『청정도론』과 상좌부 아비담마의 핵심 요약인『아비담맛타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와 니까야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전통적인 권위에 의지하지 않게 되면 자칫 저자의 잘못된 이해와 독선에 빠질 위험이 많기 때문에 저자는 본서를 쓰면서 철저하게『청정도론』과『아비담마 길라잡이』와 주석서 문헌들을 의지하였음을 밝힌다.
여섯째, 그러다 보니 본서에는 빠알리 술어들과 한문 술어들이 많이 나타나서 전체적으로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본서에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본서를 정독을 하게 되면 초기불교의 교학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곱째, 원래는 본서 각 장의 말미에 ‘경전 공부’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경전을 전체적으로 약 50개 정도 실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700쪽이 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500쪽 정도의 책으로 만들려던 원래 계획을 존중하기로 하고 대림 스님과 상의 하에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경전 공부’ 항목을 과감하게 삭제하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가려뽑은 초기불전’ 등의 제목을 달아서 단행본으로 출간하려 한다.
본서가 초기불교의 이해를 도와주는 조그만 노둣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들어가는 말을 접는다.
초기 불교 이해
각묵 스님 지음/신국판 536쪽
정가: 23,000원 (초판 2010년, 4쇄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