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목차>
| 목차 | 페이지 |
|---|
| 일러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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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서문 | 11 |
| 제1장 대념처경 | 43 |
| 제2장 대념처경과 그 주석서 | 73 |
| Ⅰ. 서언 | 75 |
| Ⅱ. 몸의 관찰(身隨觀) | 117 |
| 1. 들숨날숨 | 117 |
| 2. 네 가지 자세(四威儀) | 130 |
| 3. 분명하게 알아차림 | 134 |
| 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 170 |
| 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 182 |
| 6.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 190 |
| Ⅲ. 느낌의 관찰(受隨觀) | 197 |
| Ⅳ. 마음의 관찰(心隨觀) | 210 |
| Ⅴ. 법의 관찰(法隨觀) | 214 |
|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 214 |
| 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 228 |
| 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 230 |
|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 235 |
| 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 258 |
| Ⅵ. 결어 | 290 |
| 참고도서 | 293 |
<네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역자서문>
1.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육성이 생생히 살아있는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법을 설한 경을 들라면『장부』의「대념처경」과『중부』의「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과「몸에 마음챙기는 경」의 셋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중부』의「염처경」과「긴 라훌라 교계경」과『상응부』의「들숨날숨 상응」(S54) 등을 들 수 있지만「염처경」은 사성제의 설명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대념처경」과 완전히 일치하며「긴 라훌라 교계경」과「들숨날숨 상응」은 내용상「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먼저 언급한 세 경들을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을 설하신 수행삼경(修行三經)이라 불러도 괜찮다.
이 가운데서「대념처경」은 초기불교수행법을 몸(身)·느낌(受)· 마음(心)· 법(法)의 네 가지 주제 하에 집대성한 경으로 초기수행법에 관한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가장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오고 있으며 남방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위빳사나 수행법은 모두 이 경을 토대로 하여 가르쳐지고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본경은 남방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을 지은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집대성한『장부 주석서』(DA) 안에 상세하게 주석되어 심도깊이 설명되고 있다.
2. 왜 주석서인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이제 본서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적어본다.
첫째, 본서는「대념처경」과 그 주석서를 옮긴 것으로 본서의 제1장은 빠알리 경장(Sutta Piṭaka)의『장부』가운데「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ii.290-315)을 번역한 것이다.
둘째, 본서의 제2장은『장부 주석서』(DA) 가운데서「대념처경 주석」(DA.iii.341-404)을 저본으로 번역하였다.
셋째, 그러나『장부 주석서』의「대념처경 주석」에서 생략된 부분은『중부 주석서』(MA)의「염처경 주석」(MA.i.225-302)과 비교하여 보충해 넣었다.
넷째, 아울러 이 두 주석서에서 모두 다 생략된 부분은『청정도론』의 해당부분을 찾아서 번역하여 넣었다.
그러므로 본서는「대념처경」과「염처경」에 관계된 빠알리 주석 문헌을 전부 참고하여 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번역하여 사념처(四念處,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상좌부 전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라고 하였다.
그러면 왜 주석서인가? 주석서는 초기경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진지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법, Dhamma)과 계율(율, Vinaya)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은 역사적으로 모두 그 주석서들과 함께 전승되어왔다. 이러한 주석서들은 대부분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5세기 초반에 엮은 것인데 붓다고사는 그 연원이 부처님의 직계제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전에 있었던 많은 고본 주석서들과 여러 대가 스님들의 견해를 모두 참고하여 빠알리어로 주석서를 편찬하였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가 결코 아니다. 사리뿟따(사리불), 목갈라나(목련), 깟짜야나(가전연) 존자 등 부처님 직계제자들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많은 옛 아라한 스님들의 경안과 혜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最古요 最高인 권위이다. 이런 권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와 우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대념처경」이나 여러 경들을 두고 벌써 자기식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을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설인양 남들에게 떠벌려서는 곤란하다. 자기식의 이해를 주장하기 이전에 무엇이 경문에 따른 정확한 이해이며 이를 옛날 대가 스님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는지를 먼저 제대로 읽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자기식의 판단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역자는 부처님이 직접 가르치신 실참수행법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먼저 섭렵하는 것이「대념처경」을 소개하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판단하여「대념처경」과 주석서를 한권으로 엮어서 한글로 옮긴다.
3. 마음챙김의 원어인 ‘sati(사띠)’에 대해서
이제 본서의 키워드인 마음챙김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주석서들을 토대로 살펴보자. 마음챙김은 빠알리어 ‘sati(Sk. smṛti, 念, 기억)’의 역어이다. 산스끄리뜨 ‘smṛti’는 어근 √smṛ(to remember)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그 사전적인 의미는 기억 혹은 억념(憶念)이다.
역자가 이미『금강경 역해』에서 밝히고 있듯이 베딕(Vedic)이나 클래식(Classic) 산스끄리뜨 문헌에서 사띠의 산스끄리뜨어에 해당하는 스므르띠(smṛti)가 수행용어로 나타나는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고층 산스끄리뜨 문헌에서 스므르띠는 천계서(天啓書)로 번역되는 슈라우띠(Śrauti)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간의 기억으로 편찬한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데,『마누법전』을 ‘마누스므르띠(Manu-smṛti)’라 부르는 등 슈라우따 문헌(天啓書)의 다음 단계의 제 문헌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후대 6파철학 등의 문헌에 와서야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편 자이나교에서도 초기 문헌으로 간주하는 아르다마가디 문헌에는 스므르띠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아르다마가디가 수행용어로서 쓰인 적은 없다 해야 하겠고 흥미롭게도 자이나 공의파(空衣派, Digambara)와 백의파(白衣派, Śvetāmbara)에서 다 같이 정전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문헌이며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하는『땃뜨와아르타 아디가마 수뜨라』(Tattvārtha-adhigāma-sūtra)에서 빠알리의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함(sati-anupaṭṭhāna)’에 해당하는 ‘smṛti- anupasthāna’라는 용어가 수행을 설명하는 장에 나타나지만 불교에서처럼 심도 깊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역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 이외에는 수행용어로 나타나는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점만 봐도 구경의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ekayāna)로 본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부처님께서 새롭게 천명하시고 제시하신 수행의 핵심이 분명하다 하겠다.
아무튼 초기경에서 sati는 거의 대부분 기억이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주로 접두어 ‘anu-’를 붙여 ‘anussati’라는 술어를 사용하거나 √smṛ에서 파생된 다른 명사인 ‘saraṇa’라는 단어가 쓰인다. 물론 수행과 관계없는 문맥에서 sati는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기억이라는 마음부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saññā)이라는 마음부수법 안에 기억이라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시간이란 것은 개념적 존재일 뿐이라서 아비담마의 82가지 구경법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별다른 큰 의미가 없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과거의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산냐)의 영역이기 때문에 기억은 구경법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sati(마음챙김)’는 유익한 마음부수법(善法)들에 포함된다. 물론 경장과 논장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수행에 관계된 유익한 마음부수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만 봐도 ‘sati’는 결코 기억이 아니다. 기억은 유익하거나 해로운 것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4. ‘sati(사띠)’는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다.
sati는 지금 한국에서 ‘마음챙김’, ‘마음지킴’ 등으로 옮겨지고 있는데 ‘마음챙김’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추세이다.〈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마음챙김’이라 정착시키고 있다. sati가 왜 마음챙김인가는 아래 §5에서 인용하고 있는 sati의 네 가지 의미를 읽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sati는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하고 그래서 마음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sati는 대상을 챙기는 심리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챙김은 일견 ‘마음을 챙김’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챙김을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라 정의한다.
물론 마음챙김을 ‘마음을 챙김’이라 해도 그 뜻이 완전히 잘 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의 네 가지로 분류하셨고, 그 마음이 세 번째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마음은 과거의 수많은 마음들 가운데 하나를 그 대상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챙김’은 마음챙김의 보편적인 이해는 될 수 없다. 몸, 느낌, 법을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라는 표현이 마음챙김의 가장 정확한 정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대상 안에 마음,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마음도 포함된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수행에 관계된 유익한 심리현상이다. 이미『청정도론』에서는,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에 굳게 묶어야 한다.”
라고 옛스님의 경책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마음챙김에 관한 가장 요긴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챙기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이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각각의 대상들에 내려가고 들어가서 확립되기 때문에(upaṭṭhānato) 확립(paṭṭhāna)이라 한다. 마음챙김 그 자체가 확립이기 때문에(sati yeva paṭṭhānaṁ) 마음챙김의 확립(念處)이라고 한다.”라고 설하고 있으며 본서에서도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把持, 把握)”라고 나타나는데 마음챙김은 이처럼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대상을 몸·느낌·마음·심리현상(법)이라는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대념처경」이다. 마음챙김과 대상에 대해서는 아래 §7에서 설명하고 있다.
5.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이제 주석서에 의거해서 마음챙김의 의미를 몇 가지로 살펴보자.
첫째,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apilāpana)이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마음챙김은〔 대상에〕깊이 들어가는 것(api- lāpana)을 특징으로 한다.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 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식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
여기서 깊이 들어가는 것으로 옮긴 apilāpana는 두 가지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첫째는 api+√lap(to prate, to speak)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헤아림, 반복함’의 뜻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반복해서 거듭 챙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a(부정접두어)+√plu(to float)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물 위로〕‘둥둥 떠다니지 않는 것(DhsA.147)’으로 풀이하는데 주석서들은 이 후자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의 추상명사형인 apilāpanatā를『앗타살리니』(DhsA)에서는 ‘들어감이라 불리는 뛰어듦에 의해서 떠다니지 않는 상태가 깊이 들어감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설명하기를 ‘예를 들면 조롱박이나 병(단지) 등은 물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깊숙이 들어가지 않지만 마음챙김은 대상에 대해 그렇지 않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삘라빠나따’라고 한다.’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상좌부 불교의 견해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대상의 주위로 맴돌지 않고 대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다. 정해진 대상이나 명상주제의 주위로 맴돌거나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그 명상주제로 바로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둘째, 마음챙김이란 대상을 거머쥐는 것(pariggahaka, 把持, 把握)이다.
본서에서 “마음챙기는 자(satimā)라는 것은〔 몸을〕철저하게 거머쥐는(pariggāhikā, 把持, 把握) 마음챙김을 구족한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 통찰지(반야)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타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일반적으로 ‘파악’으로 옮기고 있는 pariggāhikā 혹은 pariggāha는 접두어 pari(철저히, 둘레에)와 √grah(to seize, 붙잡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며 문자 그대로 철저히 붙잡음을 뜻한다. 여기서 보듯이 마음챙김은 대상을 움켜쥐거나 거머쥐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대상에 깊이 들어감이라는 첫 번째 설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거머쥐어서 그것을 파지하고 파악하는 심리현상이다.
이렇게 대상을 정확하게 거머쥐지 않으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는 삼매를 실현할 수도 없고 통찰지로써 그 대상을 무상·고·무아로 관찰할 수도 없다. 일단 대상에 깊이 들어가서 대상을 파지하는 마음챙김이 확고해야 이러한 선정과 지혜도 개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들에서는 마음챙김으로 실참수행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편 본서에서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으로 마음챙김의 확립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관찰은 대상을 정확히 거머쥐고 파악하는 심리현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거머쥠(파지, 파악)이라 설명된다.
셋째, 마음챙김은 확립(upaṭṭhāna)이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각각의 대상들에 내려가고 들어가서 확립되기 때문에 확립(paṭṭhāna)이라 한다. 마음챙김 그 자체가 확립이기 때문에(sati yeva paṭṭhānaṁ) 마음챙김의 확립(念處)이라고 한다.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에서 그들을 더러움(不淨, asubha), 괴로움, 무상, 무아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saññā)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라 한다.”
여기서 확립으로 옮긴 ‘upaṭṭhāna’는 upa+√sthā(to stand)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곁에 서다’라는 일차적인 뜻으로부터 ‘시중, 경배, 돌봄, 확립, 나타남’ 등의 뜻으로 쓰인다. 중국에서 念處로 번역한 satipaṭṭhāna는 남·북전에서 모두 ‘sati+upaṭṭhāṇa (Sk. smṛti+upasthāna)’로 분해하여 설명하고 ‘마음챙김의 확립’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이런 ‘sati+upaṭṭhāṇa’를 염두에 두고 ‘마음챙김은 확립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 확립을『청정도론』의 복주서인 Pm에서는 ‘대상을 고유성질에 따라 관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본서에서는 “일으켜 세운다(paṭṭhāti)라고 해서 확립이다. ‘일으킨다, 건넌다, 앞으로 간다, 펼친다’는 뜻이다. 마음챙김이 바로 확립이다.”라고 하여 주석서들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마음챙김이 바로 확립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첫 번째의 대상에 깊이 들어감과 두 번째의 대상을 파지함에 바탕하여 이제 대상에 확립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넷째, 마음챙김은 마음을 보호(ārakkha)한다.
그래서『청정도론』은 “그의 마음이 수승한 마음챙김으로 보호될 때(saṁrakkhiyamāna)”라고 하였다. 이 문맥에서 2세기에 안세고(安世高)가 옮긴「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이라는 경의 제목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안세고는 아나빠나(ānāpāna, 出入息)를 안반(安般)으로 음사하고 있으며 사띠는 念이 아닌 수의(守意) 즉 마음(意, mano)을 지키고 보호(守)하는 기능으로 의역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던 최초기에 마음챙김은 보호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경이『상응부』에 나타난다.『상응부』「운나바 바라문 경」(S48.42/v.217)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운나바(Uṇṇābha)라는 바라문 수행자에게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능(五根)은 마노(mano, 意, 제6근)를 의지처로 하고(paṭisaraṇa), 마노는 마음챙김을 의지처로 하며, 마음챙김은 저 해탈(vimutti)을 의지처로 하며, 해탈은 마지막으로 열반을 의지처로 한다고 고구정녕하게 가르치고 계신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법을 그 대상으로 가지는 우리의 마노(意)를 잘 보호하여 마노가 저 해탈과 열반이라는 인류최고의 가치를 지향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미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에서 설파하고 계신다.
그러면 마음챙김은 어떻게 마노를 위시한 여섯 감각기능(六根)들을 보호하는가를 주석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먼저『청정도론』의 설명을 살펴보자.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해야 한다.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에 의해 감각기능들이 확고히 머물 때 탐욕 등의 침입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차라리 시뻘겋게 불타는 쇠막대기로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에서 표상(nimitta)을 취하지 말라(S.iv.168)”라는 방법으로 설하신 불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형상 등의 대상에서 마음챙김을 놓아버리지 않고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을 방어하여 이〔 감각기능의 단속을〕잘 성취해야 한다.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은 형상 등을 대상으로 눈 등의 문에서 일어난 알음알이에게 탐욕 등이 침입하게 한다.”
한편『청정도론』XVI.82를 주석하면서 Pm은 “아름다움의 인식은 몸 등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을 거머쥠으로써 생긴 것으로 그 아름다움의 인식에 선행하는 해로움(不善)의 무더기가 삿된 마음챙김이다. 바른 마음챙김은 그것을 흔들어버린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대상에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있으면 그 대상을 통해서 나쁜 표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보호라고 말한다.
이처럼 마음챙김이 마노로 대표되는 여섯 가지 감각기능(根)들을 보호한다는 말은 여섯 가지 감각기능(六根)의 대상에 마음챙김이 확고하면 다른 나쁜 표상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보호라고 하는 것이지 마음챙김이 직접 마노나 육근을 움켜쥐고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마음챙김의 강한 힘에 의해서 마음은 나쁜 표상 등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마음을 나쁜 표상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청정도론』은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식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마음챙김이 대상을 잊지 않고 대상과 직면하고 대상을 강하게 인식하고 대상에 확립되고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마음이 나쁜 표상 등으로 홀려드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거머쥐고 대상에 확립되어 해로운 표상이나 해로운 심리현상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마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챙김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자기의 고향동네(pettika visaya)인 비구의 행동의 영역인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v.147-48)”라고 강조하셨다.
6. 마음챙김과 다른 심리현상(마음부수법)들의 관계
아비담마에 의하면 매 순간 마음이 일어날 때 여러 심리현상(마음부수법, 심소법)들도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특히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현상, 주의의 7가지 심리현상들은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이러한 심리현상들은 함께 일어나서 마음이 대상을 아는 고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도와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심소(心所)라고 정착되었고〈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부수(附隨)라고 옮겼다. 한편 유익한 심리현상이 일어나면 여기에다 믿음, 양심, 수치심, 마음챙김 등의 19가지 심리현상들이 함께 일어나며 해로운 심리현상이 일어나면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등의 14가지 해로운 심리현상들이 경우에 따라 함께 일어난다. 이것이 아비담마에서 파악하는 마음작용의 근간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마음챙김은 유익한 심리현상에 속한다. 해로운 심리현상에는 마음챙김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매치기가 대상을 주시하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마음챙김이 아니다.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탐욕이라는 해로운 심리현상이 극대화되어 주의와 집중이 강화된 현상일 뿐이다.
물론 마음챙김은 대상을 억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일어나겠지만 대상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서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되어 마음이 해로운 표상 등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유익한 심리현상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이 있을 때 삼매도 가능하다. 그래서『청정도론』은 말한다.
“이와 같이 그의 마음이 수승한 마음챙김으로 보호될 때 마음의 하나됨(心一境性)이 바른 삼매(sammā-samādhi, 正定)이다. … 삼매는 자기의 성질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서 집중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진이 노력하는 역할을 성취하고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성취할 때 그것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바른 정진 등 함께 태어난 세 가지 법들은 함께 정원으로 들어간 친구와 같다. 대상은 활짝 핀 짬빠까 나무와 같다. 자기의 성질만으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없는 삼매는 손을 뻗쳐서도〔 꽃을〕꺾을 수 없는 사람과 같다. 정진은〔 자기 등에 올라서도록〕등을 구부려준 친구와 같다. 마음챙김은 어깨를 주면서 옆에 서있는 친구와 같다. 마치 그 중에서 한 사람의 등에 올라서서 다른 사람의 어깨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이 원하는 만큼 꽃을 꺾을 수 있듯이 정진이 노력하는 역할을 하고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할 때 그 도움을 받아 삼매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챙김이 있을 때 통찰지가 있다. 마음챙김 없는 통찰지는 없다. 그래서 본서는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把持) 통찰지(반야)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믿음, 양심, 수치심 등의 선법도 마음챙김이나 삼매나 통찰지 등에 함께 작용하지만 실참수행에서는 대상(명상주제)을 챙김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마음챙김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청정도론』은 말한다.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서 강하게 요구된다. 마음챙김은 마음이 들뜸으로 치우치는 믿음과 정진과 통찰지로 인해 들뜸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고, 게으름으로 치우치는 삼매로 인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이 마음챙김은 모든 요리에 맛을 내는 소금과 향료처럼, 모든 정치적인 업무에서 일을 처리하는 대신처럼 모든 곳에서 필요하다. 그래서 말씀하였다.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서 유익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가? 마음은 마음챙김에 의지하고, 마음챙김은 보호로 나타난다. 마음챙김이 없이는 마음의 분발과 절제란 없다라고.”
7. 대상의 중요성
마음챙김이란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요 마음챙기는 공부는 마음이 대상을 거듭해서 챙기는 공부요 마음챙김의 확립은 마음이 정해진 대상에 확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그 대상이 중요하다. 이 대상으로 신·수·심·법의 네 가지 영역과 전체 44가지 대상으로 구분하여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대념처경」이다.
여기에 대한 본서의 설명을 몇 가지 살펴보자.
⑴ “만일 이와 같다면 왜 ‘마음챙김의 확립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는가? 마음챙김이 많기 때문이다.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 마음챙김은 복수이다.”
⑵ “먼저 예를 들자. 바구니 만드는 숙련공은 거친 돗자리와 섬세한 돗자리와 상자와 바구니와 자루 등의 가재도구들을 만들고자 할 때 큰 대나무 하나를 네 등분으로 자른 다음에 그 각각의 대나무 토막을 다시 쪼개어서 그런 도구를 만든다. 그와 같이 세존께서도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수승함을 터득하게 하시려고 하나인 바른 마음챙김(sammā-sati, 正念)을 가지고 먼저 대상에 따라 그것을 네 등분으로 자르셨다.”
⑶ “그런데〔 옛 싱할리〕주석서에서는 ‘‘마음챙김의 확립은 기억하는 것(saraṇa)으로써 하나이고 또 하나의 상태로 들어감(ekattasamosaraṇa)에 따라서도 하나이지만, 대상에 따라서는 네 가지이다’라고 설했다. 마치 네 개의 대문을 가진 도시로 동쪽에서 오는 자는 동쪽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가지고 동쪽 문을 통해서, 남쪽, 서쪽, 북쪽에서 오는 자는 각각의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가지고 각각의 문을 통해서 도시에 들어오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 도시란 열반이라는 대도시이며 대문은 출세간의 팔정도이며 동, 남, 서, 북쪽은 몸, 느낌, 마음, 법과 같다.”
이처럼 대상을 챙기고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에 확립되어 마음을 보호하고 삼매나 통찰지 등의 모든 선법을 보호하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대해서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초기경들에서는 마음챙김으로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6의 인용문에서 봤듯이 정정진(바른 정진)과 정념(바른 마음챙김)과 정정(바른 삼매)은 모두 대상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자신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명상주제라는 대상이 없는 수행, 즉 정정진과 정념과 정정은 있을 수 없다. 한편 “이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통찰지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본서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마음챙김이 없으면 통찰지(반야)도 생길 수 없다. 이처럼 마음챙김이 대상을 챙기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고하게 될 때 선정과 지혜 즉 삼매와 통찰지는 개발되는 것이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 대상을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는 ‘muṭṭhassati(잃어버린 마음챙김)’라 하여 아주 경계하고 있다. 한편 수행자가 화두라는 대상을 놓쳐버린 것을 대혜 스님은『서장』에서 흑산의 귀굴에 앉아있는 묵조사선(黙照死禪)으로 질타하셨는데 이러한 간화선의 입장이야말로 초기경에서 강조하는 마음챙김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입만 열면 주객초월 운운하며 대상을 챙기는 것을 우습게 아는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설명하면서 ‘절뚝발이의 비유’와 ‘문지기의 비유’와 ‘톱의 비유’라는 세 가지 명쾌한 비유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이것은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마음챙기는 공부를 설명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세 가지 비유는 21가지 모든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챙겨야 하는가를 시사하는 아주 중요한 비유이다. 독자들의 정독을 권한다.
8.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에 대한 간략한 요약
본서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마음챙김의 대상을 네 가지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이를 다시 21가지로, 더 세분하면 44가지로 확실하게 구분하여 이 각각의 대상에 마음챙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비담마적으로 볼 때 모든 유익한 심리현상에는 반드시 마음챙김이 함께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을 대상으로 가지던 유익한 심리현상이 일어날 땐 반드시 마음챙김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대상을 통해서 마음챙김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렵고 초심자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매 찰나 마음챙김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더 그러하다. 그래서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확정해서 수행자들에게 제시하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身), 느낌(受), 마음(心), 심리현상(法)이다. 이처럼 신·수·심·법은 중생들이 개념지어 ‘나’라거나 ‘내 것’이라 잘 못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해체해서 네 가지로 제시하신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⑴ 몸(kāya, 身): 14가지
① 들숨날숨
② 네 가지 자세
③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
④ 32가지 몸의 형태
⑤ 사대를 분석함
⑥-⑭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⑵ 느낌(vedanā, 受): 9가지
① 즐거운 느낌 ② 괴로운 느낌 ③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④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⑥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⑦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⑧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⑨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⑶ 마음(citta, 心): 16가지
① 탐욕이 있는 마음 ② 탐욕을 여읜 마음
③ 성냄이 있는 마음 ④ 성냄을 여읜 마음
⑤ 미혹이 있는 마음 ⑥ 미혹을 여읜 마음
⑦ 위축된 마음 ⑧ 산란한 마음
⑨ 고귀한 마음 ⑩ 고귀하지 않은 마음
⑪ 위가 남아있는 마음 ⑫〔 더 이상〕위가 없는 마음
⑬ 삼매에 든 마음 ⑭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⑮ 해탈한 마음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
⑷ 심리현상(dhamma, 法): 5가지
① 장애(蓋)를 파악함
② 무더기(蘊)를 파악함
③ 감각장소(處)를 파악함
④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를 파악함
⑤ 진리(諦)를 파악함
「대념처경」은 이렇게 모두 44가지로 마음챙김의 대상을 구분하여 밝히고 있다. 이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본문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기 바란다.
10.「대념처경」에 나타나는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첫째, 마음챙김의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내안에서(ajjhattaṁ) 벌어지는 현상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밖은 큰 의미가 없다. 왜? 해탈열반은 내가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장부』제1경인「범망경」등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서(paccattaṁ eva) 완전한 평화(nibbuti)를 분명하게 안다’고 하셨다.「대념처경」에서는 이러한 나 자신을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나누고 이를 다시 몸은 14가지 느낌은 9가지 마음은 16가지 법은 5가지로 더욱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모두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서 그 중의 하나를 챙길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물론 이런 바탕 하에서 때로는 밖의(bahiddhā) 즉 남의 신·수·심·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고 계시며 때로는 나와 남 둘 다의 신·수·심·법에도 마음챙기라고도 설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출발은 항상 나 자신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개념적 존재의 해체가 중요하다.
이것이 마음챙김의 대상을 신·수·심·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초기경과 아비담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술어는 법(dhamma)이다. 법은 나니 남이니 산이니 강이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우주니 하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라고 정의한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인 법이 드러난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하지 않으면 결코 법은 드러나지 않는다. 개념적 존재는 그 실체가 없다. 그러나 중생은 개념적 존재를 나니 남이니 하여 분별하고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한다. 개념적 존재를 최소단위인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거기에는 나도 남도 내 것도 남의 것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제법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vaya, 起滅)만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개념적 존재를 해체해서 드러나는 법들은 결코 불변하는 존재론적인 최소단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기경과 아비담마에서는 결코 제법을 있다·없다는 유·무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직 제법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samudaya-vaya)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 불교는 결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하는 것이 아님을 역자는 강조한다. 아공법유라는 명제 자체는 대승불교가 초기와 아비담마 불교를 비하하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만들어낸 명제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 의하면 이러한 최소단위인 법들은 모두 찰나적인 것(無常)이고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괴로운 것(苦)이며 조건 따라 생긴 것(緣起)이기에 실체가 없다(無我). 초기경과 아비담마 그 어디에도 법을 실재론적으로 이해한 곳은 없다.
이처럼 개념적 존재를 법들로 해체하게 될 때 무상·고·무아라는 제법의 보편적 특징(sāmañña-lakkhaṇa, 共相)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더 이상 개념적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해체는 중요하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 나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이다. 그래서 초기경 곳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오온무아를 설하셔서 나라는 존재는 오온의 일시적인 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거듭 천명하고 계시며「대념처경」에서는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이런 나를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해체해서 마음챙길 것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해체해서 통찰하지 못하면 진아니 대아니 마음이니 본자청정이니 여래장이니 불성이니 주인공이니 자성청정불이니 심즉시불이니 중생즉불이니 하는 개념적 명제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여래장이나 불성이나 주인공이나 심지어는 자아나 대아까지 세워서 이러한 것과 합일되는 경지쯤으로 깨달음을 이해하게 되고 이런 것을 불교의 궁극으로 오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대념처경」에서 나라는 존재를 신·수·심·법으로 해체하고 다시 이를 21가지나 44가지로 더 분해해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제시하신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paññatti)에 속는다. 해체하면 법(dhamma)을 보고 지금 여기서 해탈·열반을 실현한다.
셋째, 마음챙김은 대상이 중요하다.
이런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네 가지로 집대성한 것이「대념처경」이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대념처경」은 거친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미세한 대상으로 나열하여 들어간다. 그러나「대념처경」에서 나타난 순서대로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을 모두 다 챙기고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청정도론』18장에 의하면 먼저 물질적 현상 즉 몸을 챙겨서 몸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인줄 살피고 다시 이것을 바탕으로 이런 물질을 보는 마음과 심리현상들도 역시 무상이요 고요 무아라고 통찰하는 과정으로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 항상 선행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몸에 마음챙기는 경」(念身經, M119)이 따로 설해졌으며 그 가운데서도 다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는 모든 수행법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出入息念經, M118)이 따로 독립되어 설해졌다고 본다.
그리고『청정도론』에 의하면 스승은 수행자에게 그의 기질에 따라서 특정 명상주제를 정해준다. 그러므로「대념처경」에 나타나는 이들 21가지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를 대상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챙기면 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스승의 지시에 따라 대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실참수행에서 스승의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구체적인 수행법은 지도자를 만나서 배워야 할 것이다. 눈밝은 지도자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요즘 현실을 감안할 때 옛스님들의 안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주석서를 바탕으로 한 본서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넷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사마타수행과 위빳사나수행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지(止)로 한역되었고 후자는 관(觀)으로 한역되었으며 지관수행은 중국불교를 지탱해온 수행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마타는 삼매(定)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慧)수행과 동의어이다.『청정도론』에서도 전자는「정품」(III장-XIII장)에서 40가지 명상주제를 통해서 익힌 표상(uggaha-nimitta)과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을 일으키고 이것에 집중하여 본삼매를 증득하는 삼매수행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후자는「혜품」(XIV-XXIII장)에서 82법의 고유성질과 연기성을 각각 찰라(khaṇika)와 조건(paccaya)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5청정을 닦아서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를 체득하여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성자가 되는 통찰지수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을 통해서 이러한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집중이던 관찰이던 마음챙김이 없이는 불가능이다. 그리고 집중을 강조하는 사마타(삼매)의 경지에서는 위빳사나가 불가능하고 관찰이나 통찰을 강조하는 위빳사나(통찰지)의 경지에서는 본삼매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둘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타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대상으로 하고 위빳사나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dhamma)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이런 두 종류의 수행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실참수행의 다섯 가지 강력한 기능과 힘을 설명하고 있는 오근(五根, 다섯 가지 기능)과 오력(五力, 다섯 가지 힘)에서도 마음챙김의 기능(念根) 혹은 마음챙김의 힘(念力)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고 강조되고 있으며 본삼매인 제4선도 평온에 기인한 마음챙김의 청정(upekkhā-satipārisuddhi, 捨念淸淨)을 그 강력한 특징으로 들고 있으며 9차제정의 법수를 열거하는『중부』제111경에서도 마음챙김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aññā)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상·고·무아의 삼특상 가운데서 고의 특상과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꿰뚫어 아는 것으로, 해탈·열반을 성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본문의 주석을 보면 알겠지만 21가지 각각의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의 설명을 마치면서「대념처경」의 주석은 모두 고·집·멸·도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無相) 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無願) 해탈이라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 요달한 해탈을 공한 해탈이라 한다.「대념처경」은 그러므로 고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 무원의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 초지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깨달음이요 열반의 실현이다.
11. 맺는 말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불교수행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나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설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역자는 상좌부의 정통견해를 담고 있는 주석서를 중시한다. 그래서 마음챙김에 대한 역자의 설명도 주석서에 의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나름대로 전개하였다.
독자들의 개인적 관심과 취향에 따라서「대념처경」을 토대로 하여 좀 더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역자서문에서 가급적이면 이런 언급은 삼가하려 하였다. 실참수행에 대한 성급한 자기식의 이해는 오히려 바른 길을 막아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념처경」에서 설하고 있는 실참수행의 핵심은 주석서와『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본서에서 역자는 그런 주석서들을 취합해서 나름대로 상세하게 옮겼다. 그러므로 초기수행법에 관계된 상세한 설명은 이를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본서를 정독한다면「대념처경」과 주석서 문헌이 전하고자하는 실참수행법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역자의 관점을 가급적이면 자제하였음을 밝힌다.
이번에 본서의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초판을 점검해보면서 역자가 누락하였거나 잘못 옮긴 부분을 상당수 발견하였다. 너무 성급하게 출판을 하였다는 자책감이 많았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이 애정 어린 지적을 해주신 바에 힘입어서 이번에 완전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대림스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이다. 오역, 누락, 오자, 탈자 어느 하나에 대림스님의 안목과 날카로운 지적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다가 편집과 교정까지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대림스님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개정판 출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누린 역자의 가장 큰 기쁨을 들라면 일묵, 일창 두 분 스님을 만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체를 읽어내는 뛰어난 안목과 꼼꼼한 교정능력, 게다가 놀랍게도 탄탄한 빠알리 원전 독해력까지 갖추어서 누락된 부분까지 지적을 해주면서 철저한 교정을 해주었다. 두 분 스님들은 분명 한국 불교의 동량이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본 지면을 빌어 일묵, 일창 두 스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초기불전연구원〉홈페이지를 통해서나 전화를 통해서나 직접 찾아오셔서, 질문도 하고 오자 탈자와 잘못된 부분을 지적도 해주고 여러 제언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도 본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멋진 표지 디자인으로 본서의 ‘얼굴’을 만들어준 황영수 불자님께도 감사드린다.
이런 선우(kalyāna-mitta)들의 도움에 힘입어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내어 고치고 문장을 더 다듬고 역자서문을 붙여서 이제 개정판을 발간한다. 초판의 미흡한 점을 이렇게라도 회복할 수 있어서 큰 짐을 든 느낌이다.
경전번역은 하면 할수록 두렵고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나름대로 고치고 다듬는다고 하기는 했지만 역자의 경전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고 수행이 부족하고 언어적인 소양이 모자라서 잘못 옮긴 부분이 더 있을 줄로 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들의 매서운 질정을 바란다.
불기 2548년 8월
화림원에서
각묵 삼가 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대념처경 및 주석서)
각묵 스님 옮김/변형신국판 280쪽
정가: 10,000원 (초판 2003년, 개정판 1쇄 2004년, 개정판 3쇄 2011년)
<네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목차>
<네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역자서문>
1.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육성이 생생히 살아있는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법을 설한 경을 들라면『장부』의「대념처경」과『중부』의「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과「몸에 마음챙기는 경」의 셋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중부』의「염처경」과「긴 라훌라 교계경」과『상응부』의「들숨날숨 상응」(S54) 등을 들 수 있지만「염처경」은 사성제의 설명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대념처경」과 완전히 일치하며「긴 라훌라 교계경」과「들숨날숨 상응」은 내용상「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먼저 언급한 세 경들을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을 설하신 수행삼경(修行三經)이라 불러도 괜찮다.
이 가운데서「대념처경」은 초기불교수행법을 몸(身)·느낌(受)· 마음(心)· 법(法)의 네 가지 주제 하에 집대성한 경으로 초기수행법에 관한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가장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오고 있으며 남방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위빳사나 수행법은 모두 이 경을 토대로 하여 가르쳐지고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본경은 남방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을 지은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집대성한『장부 주석서』(DA) 안에 상세하게 주석되어 심도깊이 설명되고 있다.
2. 왜 주석서인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이제 본서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적어본다.
첫째, 본서는「대념처경」과 그 주석서를 옮긴 것으로 본서의 제1장은 빠알리 경장(Sutta Piṭaka)의『장부』가운데「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ii.290-315)을 번역한 것이다.
둘째, 본서의 제2장은『장부 주석서』(DA) 가운데서「대념처경 주석」(DA.iii.341-404)을 저본으로 번역하였다.
셋째, 그러나『장부 주석서』의「대념처경 주석」에서 생략된 부분은『중부 주석서』(MA)의「염처경 주석」(MA.i.225-302)과 비교하여 보충해 넣었다.
넷째, 아울러 이 두 주석서에서 모두 다 생략된 부분은『청정도론』의 해당부분을 찾아서 번역하여 넣었다.
그러므로 본서는「대념처경」과「염처경」에 관계된 빠알리 주석 문헌을 전부 참고하여 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번역하여 사념처(四念處,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상좌부 전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라고 하였다.
그러면 왜 주석서인가? 주석서는 초기경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진지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법, Dhamma)과 계율(율, Vinaya)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은 역사적으로 모두 그 주석서들과 함께 전승되어왔다. 이러한 주석서들은 대부분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5세기 초반에 엮은 것인데 붓다고사는 그 연원이 부처님의 직계제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전에 있었던 많은 고본 주석서들과 여러 대가 스님들의 견해를 모두 참고하여 빠알리어로 주석서를 편찬하였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가 결코 아니다. 사리뿟따(사리불), 목갈라나(목련), 깟짜야나(가전연) 존자 등 부처님 직계제자들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많은 옛 아라한 스님들의 경안과 혜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最古요 最高인 권위이다. 이런 권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와 우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대념처경」이나 여러 경들을 두고 벌써 자기식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을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설인양 남들에게 떠벌려서는 곤란하다. 자기식의 이해를 주장하기 이전에 무엇이 경문에 따른 정확한 이해이며 이를 옛날 대가 스님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는지를 먼저 제대로 읽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자기식의 판단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역자는 부처님이 직접 가르치신 실참수행법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먼저 섭렵하는 것이「대념처경」을 소개하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판단하여「대념처경」과 주석서를 한권으로 엮어서 한글로 옮긴다.
3. 마음챙김의 원어인 ‘sati(사띠)’에 대해서
이제 본서의 키워드인 마음챙김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주석서들을 토대로 살펴보자. 마음챙김은 빠알리어 ‘sati(Sk. smṛti, 念, 기억)’의 역어이다. 산스끄리뜨 ‘smṛti’는 어근 √smṛ(to remember)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그 사전적인 의미는 기억 혹은 억념(憶念)이다.
역자가 이미『금강경 역해』에서 밝히고 있듯이 베딕(Vedic)이나 클래식(Classic) 산스끄리뜨 문헌에서 사띠의 산스끄리뜨어에 해당하는 스므르띠(smṛti)가 수행용어로 나타나는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고층 산스끄리뜨 문헌에서 스므르띠는 천계서(天啓書)로 번역되는 슈라우띠(Śrauti)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간의 기억으로 편찬한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데,『마누법전』을 ‘마누스므르띠(Manu-smṛti)’라 부르는 등 슈라우따 문헌(天啓書)의 다음 단계의 제 문헌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후대 6파철학 등의 문헌에 와서야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편 자이나교에서도 초기 문헌으로 간주하는 아르다마가디 문헌에는 스므르띠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아르다마가디가 수행용어로서 쓰인 적은 없다 해야 하겠고 흥미롭게도 자이나 공의파(空衣派, Digambara)와 백의파(白衣派, Śvetāmbara)에서 다 같이 정전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문헌이며 그만큼 중요하게 취급하는『땃뜨와아르타 아디가마 수뜨라』(Tattvārtha-adhigāma-sūtra)에서 빠알리의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함(sati-anupaṭṭhāna)’에 해당하는 ‘smṛti- anupasthāna’라는 용어가 수행을 설명하는 장에 나타나지만 불교에서처럼 심도 깊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역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 이외에는 수행용어로 나타나는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점만 봐도 구경의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ekayāna)로 본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부처님께서 새롭게 천명하시고 제시하신 수행의 핵심이 분명하다 하겠다.
아무튼 초기경에서 sati는 거의 대부분 기억이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주로 접두어 ‘anu-’를 붙여 ‘anussati’라는 술어를 사용하거나 √smṛ에서 파생된 다른 명사인 ‘saraṇa’라는 단어가 쓰인다. 물론 수행과 관계없는 문맥에서 sati는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기억이라는 마음부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saññā)이라는 마음부수법 안에 기억이라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시간이란 것은 개념적 존재일 뿐이라서 아비담마의 82가지 구경법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별다른 큰 의미가 없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과거의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산냐)의 영역이기 때문에 기억은 구경법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sati(마음챙김)’는 유익한 마음부수법(善法)들에 포함된다. 물론 경장과 논장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수행에 관계된 유익한 마음부수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만 봐도 ‘sati’는 결코 기억이 아니다. 기억은 유익하거나 해로운 것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4. ‘sati(사띠)’는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다.
sati는 지금 한국에서 ‘마음챙김’, ‘마음지킴’ 등으로 옮겨지고 있는데 ‘마음챙김’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추세이다.〈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마음챙김’이라 정착시키고 있다. sati가 왜 마음챙김인가는 아래 §5에서 인용하고 있는 sati의 네 가지 의미를 읽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sati는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하고 그래서 마음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sati는 대상을 챙기는 심리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챙김은 일견 ‘마음을 챙김’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챙김을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라 정의한다.
물론 마음챙김을 ‘마음을 챙김’이라 해도 그 뜻이 완전히 잘 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의 네 가지로 분류하셨고, 그 마음이 세 번째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마음은 과거의 수많은 마음들 가운데 하나를 그 대상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챙김’은 마음챙김의 보편적인 이해는 될 수 없다. 몸, 느낌, 법을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라는 표현이 마음챙김의 가장 정확한 정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대상 안에 마음,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마음도 포함된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수행에 관계된 유익한 심리현상이다. 이미『청정도론』에서는,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에 굳게 묶어야 한다.”
라고 옛스님의 경책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마음챙김에 관한 가장 요긴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챙기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이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각각의 대상들에 내려가고 들어가서 확립되기 때문에(upaṭṭhānato) 확립(paṭṭhāna)이라 한다. 마음챙김 그 자체가 확립이기 때문에(sati yeva paṭṭhānaṁ) 마음챙김의 확립(念處)이라고 한다.”라고 설하고 있으며 본서에서도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把持, 把握)”라고 나타나는데 마음챙김은 이처럼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대상을 몸·느낌·마음·심리현상(법)이라는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대념처경」이다. 마음챙김과 대상에 대해서는 아래 §7에서 설명하고 있다.
5.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이제 주석서에 의거해서 마음챙김의 의미를 몇 가지로 살펴보자.
첫째,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apilāpana)이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마음챙김은〔 대상에〕깊이 들어가는 것(api- lāpana)을 특징으로 한다.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 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식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
여기서 깊이 들어가는 것으로 옮긴 apilāpana는 두 가지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첫째는 api+√lap(to prate, to speak)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헤아림, 반복함’의 뜻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반복해서 거듭 챙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a(부정접두어)+√plu(to float)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물 위로〕‘둥둥 떠다니지 않는 것(DhsA.147)’으로 풀이하는데 주석서들은 이 후자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의 추상명사형인 apilāpanatā를『앗타살리니』(DhsA)에서는 ‘들어감이라 불리는 뛰어듦에 의해서 떠다니지 않는 상태가 깊이 들어감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설명하기를 ‘예를 들면 조롱박이나 병(단지) 등은 물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깊숙이 들어가지 않지만 마음챙김은 대상에 대해 그렇지 않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삘라빠나따’라고 한다.’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상좌부 불교의 견해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챙김은 대상의 주위로 맴돌지 않고 대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다. 정해진 대상이나 명상주제의 주위로 맴돌거나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그 명상주제로 바로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둘째, 마음챙김이란 대상을 거머쥐는 것(pariggahaka, 把持, 把握)이다.
본서에서 “마음챙기는 자(satimā)라는 것은〔 몸을〕철저하게 거머쥐는(pariggāhikā, 把持, 把握) 마음챙김을 구족한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 통찰지(반야)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타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일반적으로 ‘파악’으로 옮기고 있는 pariggāhikā 혹은 pariggāha는 접두어 pari(철저히, 둘레에)와 √grah(to seize, 붙잡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며 문자 그대로 철저히 붙잡음을 뜻한다. 여기서 보듯이 마음챙김은 대상을 움켜쥐거나 거머쥐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대상에 깊이 들어감이라는 첫 번째 설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거머쥐어서 그것을 파지하고 파악하는 심리현상이다.
이렇게 대상을 정확하게 거머쥐지 않으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는 삼매를 실현할 수도 없고 통찰지로써 그 대상을 무상·고·무아로 관찰할 수도 없다. 일단 대상에 깊이 들어가서 대상을 파지하는 마음챙김이 확고해야 이러한 선정과 지혜도 개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들에서는 마음챙김으로 실참수행을 설명하는 것이다.
한편 본서에서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으로 마음챙김의 확립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관찰은 대상을 정확히 거머쥐고 파악하는 심리현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거머쥠(파지, 파악)이라 설명된다.
셋째, 마음챙김은 확립(upaṭṭhāna)이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각각의 대상들에 내려가고 들어가서 확립되기 때문에 확립(paṭṭhāna)이라 한다. 마음챙김 그 자체가 확립이기 때문에(sati yeva paṭṭhānaṁ) 마음챙김의 확립(念處)이라고 한다.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에서 그들을 더러움(不淨, asubha), 괴로움, 무상, 무아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saññā)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라 한다.”
여기서 확립으로 옮긴 ‘upaṭṭhāna’는 upa+√sthā(to stand)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곁에 서다’라는 일차적인 뜻으로부터 ‘시중, 경배, 돌봄, 확립, 나타남’ 등의 뜻으로 쓰인다. 중국에서 念處로 번역한 satipaṭṭhāna는 남·북전에서 모두 ‘sati+upaṭṭhāṇa (Sk. smṛti+upasthāna)’로 분해하여 설명하고 ‘마음챙김의 확립’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이런 ‘sati+upaṭṭhāṇa’를 염두에 두고 ‘마음챙김은 확립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이 확립을『청정도론』의 복주서인 Pm에서는 ‘대상을 고유성질에 따라 관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본서에서는 “일으켜 세운다(paṭṭhāti)라고 해서 확립이다. ‘일으킨다, 건넌다, 앞으로 간다, 펼친다’는 뜻이다. 마음챙김이 바로 확립이다.”라고 하여 주석서들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마음챙김이 바로 확립이라고 설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첫 번째의 대상에 깊이 들어감과 두 번째의 대상을 파지함에 바탕하여 이제 대상에 확립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넷째, 마음챙김은 마음을 보호(ārakkha)한다.
그래서『청정도론』은 “그의 마음이 수승한 마음챙김으로 보호될 때(saṁrakkhiyamāna)”라고 하였다. 이 문맥에서 2세기에 안세고(安世高)가 옮긴「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이라는 경의 제목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안세고는 아나빠나(ānāpāna, 出入息)를 안반(安般)으로 음사하고 있으며 사띠는 念이 아닌 수의(守意) 즉 마음(意, mano)을 지키고 보호(守)하는 기능으로 의역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던 최초기에 마음챙김은 보호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경이『상응부』에 나타난다.『상응부』「운나바 바라문 경」(S48.42/v.217)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운나바(Uṇṇābha)라는 바라문 수행자에게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능(五根)은 마노(mano, 意, 제6근)를 의지처로 하고(paṭisaraṇa), 마노는 마음챙김을 의지처로 하며, 마음챙김은 저 해탈(vimutti)을 의지처로 하며, 해탈은 마지막으로 열반을 의지처로 한다고 고구정녕하게 가르치고 계신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법을 그 대상으로 가지는 우리의 마노(意)를 잘 보호하여 마노가 저 해탈과 열반이라는 인류최고의 가치를 지향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미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에서 설파하고 계신다.
그러면 마음챙김은 어떻게 마노를 위시한 여섯 감각기능(六根)들을 보호하는가를 주석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먼저『청정도론』의 설명을 살펴보자.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해야 한다. 감각기능의 단속은 마음챙김으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에 의해 감각기능들이 확고히 머물 때 탐욕 등의 침입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차라리 시뻘겋게 불타는 쇠막대기로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에서 표상(nimitta)을 취하지 말라(S.iv.168)”라는 방법으로 설하신 불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형상 등의 대상에서 마음챙김을 놓아버리지 않고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을 방어하여 이〔 감각기능의 단속을〕잘 성취해야 한다. 표상 등을 취하는 것은 형상 등을 대상으로 눈 등의 문에서 일어난 알음알이에게 탐욕 등이 침입하게 한다.”
한편『청정도론』XVI.82를 주석하면서 Pm은 “아름다움의 인식은 몸 등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을 거머쥠으로써 생긴 것으로 그 아름다움의 인식에 선행하는 해로움(不善)의 무더기가 삿된 마음챙김이다. 바른 마음챙김은 그것을 흔들어버린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대상에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있으면 그 대상을 통해서 나쁜 표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보호라고 말한다.
이처럼 마음챙김이 마노로 대표되는 여섯 가지 감각기능(根)들을 보호한다는 말은 여섯 가지 감각기능(六根)의 대상에 마음챙김이 확고하면 다른 나쁜 표상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보호라고 하는 것이지 마음챙김이 직접 마노나 육근을 움켜쥐고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마음챙김의 강한 힘에 의해서 마음은 나쁜 표상 등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마음을 나쁜 표상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청정도론』은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강한 인식이 가까운 원인이다. 혹은 몸 등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마음챙김이 대상을 잊지 않고 대상과 직면하고 대상을 강하게 인식하고 대상에 확립되고 대상에 든든하게 서있기 때문에 마음이 나쁜 표상 등으로 홀려드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거머쥐고 대상에 확립되어 해로운 표상이나 해로운 심리현상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마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챙김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자기의 고향동네(pettika visaya)인 비구의 행동의 영역인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v.147-48)”라고 강조하셨다.
6. 마음챙김과 다른 심리현상(마음부수법)들의 관계
아비담마에 의하면 매 순간 마음이 일어날 때 여러 심리현상(마음부수법, 심소법)들도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특히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현상, 주의의 7가지 심리현상들은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이러한 심리현상들은 함께 일어나서 마음이 대상을 아는 고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도와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심소(心所)라고 정착되었고〈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부수(附隨)라고 옮겼다. 한편 유익한 심리현상이 일어나면 여기에다 믿음, 양심, 수치심, 마음챙김 등의 19가지 심리현상들이 함께 일어나며 해로운 심리현상이 일어나면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등의 14가지 해로운 심리현상들이 경우에 따라 함께 일어난다. 이것이 아비담마에서 파악하는 마음작용의 근간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마음챙김은 유익한 심리현상에 속한다. 해로운 심리현상에는 마음챙김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매치기가 대상을 주시하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마음챙김이 아니다.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탐욕이라는 해로운 심리현상이 극대화되어 주의와 집중이 강화된 현상일 뿐이다.
물론 마음챙김은 대상을 억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일어나겠지만 대상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서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되어 마음이 해로운 표상 등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유익한 심리현상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이 있을 때 삼매도 가능하다. 그래서『청정도론』은 말한다.
“이와 같이 그의 마음이 수승한 마음챙김으로 보호될 때 마음의 하나됨(心一境性)이 바른 삼매(sammā-samādhi, 正定)이다. … 삼매는 자기의 성질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서 집중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진이 노력하는 역할을 성취하고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성취할 때 그것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바른 정진 등 함께 태어난 세 가지 법들은 함께 정원으로 들어간 친구와 같다. 대상은 활짝 핀 짬빠까 나무와 같다. 자기의 성질만으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없는 삼매는 손을 뻗쳐서도〔 꽃을〕꺾을 수 없는 사람과 같다. 정진은〔 자기 등에 올라서도록〕등을 구부려준 친구와 같다. 마음챙김은 어깨를 주면서 옆에 서있는 친구와 같다. 마치 그 중에서 한 사람의 등에 올라서서 다른 사람의 어깨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이 원하는 만큼 꽃을 꺾을 수 있듯이 정진이 노력하는 역할을 하고 마음챙김이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할 때 그 도움을 받아 삼매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챙김이 있을 때 통찰지가 있다. 마음챙김 없는 통찰지는 없다. 그래서 본서는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거머쥐고(把持) 통찰지(반야)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믿음, 양심, 수치심 등의 선법도 마음챙김이나 삼매나 통찰지 등에 함께 작용하지만 실참수행에서는 대상(명상주제)을 챙김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마음챙김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청정도론』은 말한다.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서 강하게 요구된다. 마음챙김은 마음이 들뜸으로 치우치는 믿음과 정진과 통찰지로 인해 들뜸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고, 게으름으로 치우치는 삼매로 인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이 마음챙김은 모든 요리에 맛을 내는 소금과 향료처럼, 모든 정치적인 업무에서 일을 처리하는 대신처럼 모든 곳에서 필요하다. 그래서 말씀하였다.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서 유익하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가? 마음은 마음챙김에 의지하고, 마음챙김은 보호로 나타난다. 마음챙김이 없이는 마음의 분발과 절제란 없다라고.”
7. 대상의 중요성
마음챙김이란 마음이 대상을 챙기는 것이요 마음챙기는 공부는 마음이 대상을 거듭해서 챙기는 공부요 마음챙김의 확립은 마음이 정해진 대상에 확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그 대상이 중요하다. 이 대상으로 신·수·심·법의 네 가지 영역과 전체 44가지 대상으로 구분하여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대념처경」이다.
여기에 대한 본서의 설명을 몇 가지 살펴보자.
⑴ “만일 이와 같다면 왜 ‘마음챙김의 확립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는가? 마음챙김이 많기 때문이다.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 마음챙김은 복수이다.”
⑵ “먼저 예를 들자. 바구니 만드는 숙련공은 거친 돗자리와 섬세한 돗자리와 상자와 바구니와 자루 등의 가재도구들을 만들고자 할 때 큰 대나무 하나를 네 등분으로 자른 다음에 그 각각의 대나무 토막을 다시 쪼개어서 그런 도구를 만든다. 그와 같이 세존께서도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수승함을 터득하게 하시려고 하나인 바른 마음챙김(sammā-sati, 正念)을 가지고 먼저 대상에 따라 그것을 네 등분으로 자르셨다.”
⑶ “그런데〔 옛 싱할리〕주석서에서는 ‘‘마음챙김의 확립은 기억하는 것(saraṇa)으로써 하나이고 또 하나의 상태로 들어감(ekattasamosaraṇa)에 따라서도 하나이지만, 대상에 따라서는 네 가지이다’라고 설했다. 마치 네 개의 대문을 가진 도시로 동쪽에서 오는 자는 동쪽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가지고 동쪽 문을 통해서, 남쪽, 서쪽, 북쪽에서 오는 자는 각각의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가지고 각각의 문을 통해서 도시에 들어오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 도시란 열반이라는 대도시이며 대문은 출세간의 팔정도이며 동, 남, 서, 북쪽은 몸, 느낌, 마음, 법과 같다.”
이처럼 대상을 챙기고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에 확립되어 마음을 보호하고 삼매나 통찰지 등의 모든 선법을 보호하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대해서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초기경들에서는 마음챙김으로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6의 인용문에서 봤듯이 정정진(바른 정진)과 정념(바른 마음챙김)과 정정(바른 삼매)은 모두 대상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자신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명상주제라는 대상이 없는 수행, 즉 정정진과 정념과 정정은 있을 수 없다. 한편 “이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통찰지로써 관찰한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이 없는 자에게 관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본서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마음챙김이 없으면 통찰지(반야)도 생길 수 없다. 이처럼 마음챙김이 대상을 챙기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고하게 될 때 선정과 지혜 즉 삼매와 통찰지는 개발되는 것이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 대상을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는 ‘muṭṭhassati(잃어버린 마음챙김)’라 하여 아주 경계하고 있다. 한편 수행자가 화두라는 대상을 놓쳐버린 것을 대혜 스님은『서장』에서 흑산의 귀굴에 앉아있는 묵조사선(黙照死禪)으로 질타하셨는데 이러한 간화선의 입장이야말로 초기경에서 강조하는 마음챙김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입만 열면 주객초월 운운하며 대상을 챙기는 것을 우습게 아는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설명하면서 ‘절뚝발이의 비유’와 ‘문지기의 비유’와 ‘톱의 비유’라는 세 가지 명쾌한 비유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이것은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마음챙기는 공부를 설명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세 가지 비유는 21가지 모든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챙겨야 하는가를 시사하는 아주 중요한 비유이다. 독자들의 정독을 권한다.
8.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에 대한 간략한 요약
본서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마음챙김의 대상을 네 가지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이를 다시 21가지로, 더 세분하면 44가지로 확실하게 구분하여 이 각각의 대상에 마음챙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비담마적으로 볼 때 모든 유익한 심리현상에는 반드시 마음챙김이 함께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을 대상으로 가지던 유익한 심리현상이 일어날 땐 반드시 마음챙김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대상을 통해서 마음챙김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렵고 초심자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매 찰나 마음챙김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더 그러하다. 그래서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확정해서 수행자들에게 제시하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身), 느낌(受), 마음(心), 심리현상(法)이다. 이처럼 신·수·심·법은 중생들이 개념지어 ‘나’라거나 ‘내 것’이라 잘 못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해체해서 네 가지로 제시하신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⑴ 몸(kāya, 身): 14가지
① 들숨날숨
② 네 가지 자세
③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
④ 32가지 몸의 형태
⑤ 사대를 분석함
⑥-⑭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⑵ 느낌(vedanā, 受): 9가지
① 즐거운 느낌 ② 괴로운 느낌 ③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④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⑥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⑦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⑧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⑨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⑶ 마음(citta, 心): 16가지
① 탐욕이 있는 마음 ② 탐욕을 여읜 마음
③ 성냄이 있는 마음 ④ 성냄을 여읜 마음
⑤ 미혹이 있는 마음 ⑥ 미혹을 여읜 마음
⑦ 위축된 마음 ⑧ 산란한 마음
⑨ 고귀한 마음 ⑩ 고귀하지 않은 마음
⑪ 위가 남아있는 마음 ⑫〔 더 이상〕위가 없는 마음
⑬ 삼매에 든 마음 ⑭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⑮ 해탈한 마음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
⑷ 심리현상(dhamma, 法): 5가지
① 장애(蓋)를 파악함
② 무더기(蘊)를 파악함
③ 감각장소(處)를 파악함
④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를 파악함
⑤ 진리(諦)를 파악함
「대념처경」은 이렇게 모두 44가지로 마음챙김의 대상을 구분하여 밝히고 있다. 이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본문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기 바란다.
10.「대념처경」에 나타나는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첫째, 마음챙김의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내안에서(ajjhattaṁ) 벌어지는 현상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밖은 큰 의미가 없다. 왜? 해탈열반은 내가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장부』제1경인「범망경」등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서(paccattaṁ eva) 완전한 평화(nibbuti)를 분명하게 안다’고 하셨다.「대념처경」에서는 이러한 나 자신을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나누고 이를 다시 몸은 14가지 느낌은 9가지 마음은 16가지 법은 5가지로 더욱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모두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서 그 중의 하나를 챙길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물론 이런 바탕 하에서 때로는 밖의(bahiddhā) 즉 남의 신·수·심·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고 계시며 때로는 나와 남 둘 다의 신·수·심·법에도 마음챙기라고도 설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출발은 항상 나 자신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개념적 존재의 해체가 중요하다.
이것이 마음챙김의 대상을 신·수·심·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초기경과 아비담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술어는 법(dhamma)이다. 법은 나니 남이니 산이니 강이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우주니 하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라고 정의한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인 법이 드러난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하지 않으면 결코 법은 드러나지 않는다. 개념적 존재는 그 실체가 없다. 그러나 중생은 개념적 존재를 나니 남이니 하여 분별하고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한다. 개념적 존재를 최소단위인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거기에는 나도 남도 내 것도 남의 것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제법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vaya, 起滅)만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개념적 존재를 해체해서 드러나는 법들은 결코 불변하는 존재론적인 최소단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기경과 아비담마에서는 결코 제법을 있다·없다는 유·무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직 제법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samudaya-vaya)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 불교는 결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하는 것이 아님을 역자는 강조한다. 아공법유라는 명제 자체는 대승불교가 초기와 아비담마 불교를 비하하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만들어낸 명제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 의하면 이러한 최소단위인 법들은 모두 찰나적인 것(無常)이고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괴로운 것(苦)이며 조건 따라 생긴 것(緣起)이기에 실체가 없다(無我). 초기경과 아비담마 그 어디에도 법을 실재론적으로 이해한 곳은 없다.
이처럼 개념적 존재를 법들로 해체하게 될 때 무상·고·무아라는 제법의 보편적 특징(sāmañña-lakkhaṇa, 共相)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더 이상 개념적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해체는 중요하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 나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이다. 그래서 초기경 곳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오온무아를 설하셔서 나라는 존재는 오온의 일시적인 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거듭 천명하고 계시며「대념처경」에서는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이런 나를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해체해서 마음챙길 것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해체해서 통찰하지 못하면 진아니 대아니 마음이니 본자청정이니 여래장이니 불성이니 주인공이니 자성청정불이니 심즉시불이니 중생즉불이니 하는 개념적 명제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여래장이나 불성이나 주인공이나 심지어는 자아나 대아까지 세워서 이러한 것과 합일되는 경지쯤으로 깨달음을 이해하게 되고 이런 것을 불교의 궁극으로 오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대념처경」에서 나라는 존재를 신·수·심·법으로 해체하고 다시 이를 21가지나 44가지로 더 분해해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제시하신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paññatti)에 속는다. 해체하면 법(dhamma)을 보고 지금 여기서 해탈·열반을 실현한다.
셋째, 마음챙김은 대상이 중요하다.
이런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네 가지로 집대성한 것이「대념처경」이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대념처경」은 거친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미세한 대상으로 나열하여 들어간다. 그러나「대념처경」에서 나타난 순서대로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을 모두 다 챙기고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청정도론』18장에 의하면 먼저 물질적 현상 즉 몸을 챙겨서 몸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인줄 살피고 다시 이것을 바탕으로 이런 물질을 보는 마음과 심리현상들도 역시 무상이요 고요 무아라고 통찰하는 과정으로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 항상 선행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몸에 마음챙기는 경」(念身經, M119)이 따로 설해졌으며 그 가운데서도 다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는 모든 수행법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出入息念經, M118)이 따로 독립되어 설해졌다고 본다.
그리고『청정도론』에 의하면 스승은 수행자에게 그의 기질에 따라서 특정 명상주제를 정해준다. 그러므로「대념처경」에 나타나는 이들 21가지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를 대상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챙기면 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스승의 지시에 따라 대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실참수행에서 스승의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구체적인 수행법은 지도자를 만나서 배워야 할 것이다. 눈밝은 지도자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요즘 현실을 감안할 때 옛스님들의 안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주석서를 바탕으로 한 본서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넷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사마타수행과 위빳사나수행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지(止)로 한역되었고 후자는 관(觀)으로 한역되었으며 지관수행은 중국불교를 지탱해온 수행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마타는 삼매(定)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慧)수행과 동의어이다.『청정도론』에서도 전자는「정품」(III장-XIII장)에서 40가지 명상주제를 통해서 익힌 표상(uggaha-nimitta)과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을 일으키고 이것에 집중하여 본삼매를 증득하는 삼매수행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후자는「혜품」(XIV-XXIII장)에서 82법의 고유성질과 연기성을 각각 찰라(khaṇika)와 조건(paccaya)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5청정을 닦아서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를 체득하여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성자가 되는 통찰지수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을 통해서 이러한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집중이던 관찰이던 마음챙김이 없이는 불가능이다. 그리고 집중을 강조하는 사마타(삼매)의 경지에서는 위빳사나가 불가능하고 관찰이나 통찰을 강조하는 위빳사나(통찰지)의 경지에서는 본삼매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둘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타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대상으로 하고 위빳사나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dhamma)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이런 두 종류의 수행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실참수행의 다섯 가지 강력한 기능과 힘을 설명하고 있는 오근(五根, 다섯 가지 기능)과 오력(五力, 다섯 가지 힘)에서도 마음챙김의 기능(念根) 혹은 마음챙김의 힘(念力)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고 강조되고 있으며 본삼매인 제4선도 평온에 기인한 마음챙김의 청정(upekkhā-satipārisuddhi, 捨念淸淨)을 그 강력한 특징으로 들고 있으며 9차제정의 법수를 열거하는『중부』제111경에서도 마음챙김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aññā)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상·고·무아의 삼특상 가운데서 고의 특상과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꿰뚫어 아는 것으로, 해탈·열반을 성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본문의 주석을 보면 알겠지만 21가지 각각의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의 설명을 마치면서「대념처경」의 주석은 모두 고·집·멸·도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無相) 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無願) 해탈이라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 요달한 해탈을 공한 해탈이라 한다.「대념처경」은 그러므로 고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 무원의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 초지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깨달음이요 열반의 실현이다.
11. 맺는 말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불교수행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나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설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역자는 상좌부의 정통견해를 담고 있는 주석서를 중시한다. 그래서 마음챙김에 대한 역자의 설명도 주석서에 의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나름대로 전개하였다.
독자들의 개인적 관심과 취향에 따라서「대념처경」을 토대로 하여 좀 더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역자서문에서 가급적이면 이런 언급은 삼가하려 하였다. 실참수행에 대한 성급한 자기식의 이해는 오히려 바른 길을 막아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념처경」에서 설하고 있는 실참수행의 핵심은 주석서와『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본서에서 역자는 그런 주석서들을 취합해서 나름대로 상세하게 옮겼다. 그러므로 초기수행법에 관계된 상세한 설명은 이를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본서를 정독한다면「대념처경」과 주석서 문헌이 전하고자하는 실참수행법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역자의 관점을 가급적이면 자제하였음을 밝힌다.
이번에 본서의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초판을 점검해보면서 역자가 누락하였거나 잘못 옮긴 부분을 상당수 발견하였다. 너무 성급하게 출판을 하였다는 자책감이 많았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이 애정 어린 지적을 해주신 바에 힘입어서 이번에 완전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대림스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이다. 오역, 누락, 오자, 탈자 어느 하나에 대림스님의 안목과 날카로운 지적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다가 편집과 교정까지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대림스님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개정판 출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누린 역자의 가장 큰 기쁨을 들라면 일묵, 일창 두 분 스님을 만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체를 읽어내는 뛰어난 안목과 꼼꼼한 교정능력, 게다가 놀랍게도 탄탄한 빠알리 원전 독해력까지 갖추어서 누락된 부분까지 지적을 해주면서 철저한 교정을 해주었다. 두 분 스님들은 분명 한국 불교의 동량이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본 지면을 빌어 일묵, 일창 두 스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초기불전연구원〉홈페이지를 통해서나 전화를 통해서나 직접 찾아오셔서, 질문도 하고 오자 탈자와 잘못된 부분을 지적도 해주고 여러 제언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도 본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멋진 표지 디자인으로 본서의 ‘얼굴’을 만들어준 황영수 불자님께도 감사드린다.
이런 선우(kalyāna-mitta)들의 도움에 힘입어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내어 고치고 문장을 더 다듬고 역자서문을 붙여서 이제 개정판을 발간한다. 초판의 미흡한 점을 이렇게라도 회복할 수 있어서 큰 짐을 든 느낌이다.
경전번역은 하면 할수록 두렵고 어려운 일임을 절감한다. 나름대로 고치고 다듬는다고 하기는 했지만 역자의 경전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고 수행이 부족하고 언어적인 소양이 모자라서 잘못 옮긴 부분이 더 있을 줄로 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들의 매서운 질정을 바란다.
불기 2548년 8월
화림원에서
각묵 삼가 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대념처경 및 주석서)
각묵 스님 옮김/변형신국판 280쪽
정가: 10,000원 (초판 2003년, 개정판 1쇄 2004년, 개정판 3쇄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