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아비담마 길라잡이 [Abhidhammattha Saṅgaha]
아비담맛타 상가하
그분
부처님
공양 올려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 목차 | 페이지 |
|---|
| 역자 서문 | 25 |
| 1. 들어가는 말 | 25 |
| 2. 책의 제목 | 29 |
| (1) 앗타(attha)의의미 | 29 |
| (2) 상가하(saṅgaha)의 의미 | 31 |
| 3. 아비담마란 무엇인가 | 34 |
| (1) 아비담마에 대한 두 가지 해석-무비법[無比法]과 대법[對法] | 34 |
| (2) 담마(법)이란 무엇인가 | 35 |
| 4. 아비담마의 담마[法]는 고유성질[自性]을 가진 것이다 | 38 |
| (1)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 법이다 | 38 |
| (2)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 있는가 | 40 |
| (3) 추상적 물질은 고유성질이 없는가 | 42 |
| 5. 유위법들은 찰라적 존재[有刹那,khaṇika]이다 | 44 |
| (1) 유위법들은 찰라적 존재이다 | 44 |
| (2) 찰라는 무상(無常, anicca)에서 비롯된다 | 45 |
| 6.찰나(刹那,khaṇa)란 무엇인가 | 47 |
| (1) 무상의 최소단위가 찰라이다 | 47 |
| (2) 찰라의 구명(究明) | 49 |
| (3) 1찰라는 75분의 1초이다 | 51 |
| (4) 찰나는 상속한다 | 54 |
| 7.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 56 |
| 8. 아비담마 발전의 세 단계 | 59 |
| (1) 아비담마 삐따까-상좌부 아비담마 칠론(七論) | 59 |
| (2) 아비담마의 주석서 문헌들 | 62 |
| (3)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들 | 65 |
| 9. 『아비담마타상가하』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에 대해서 | 68 |
| 10. 『아비담마타상가하』의 구성 | 69 |
| 11. 『아비담마타상가하』의 주석서들 | 71 |
| 12. 각 장의 요점 | 73 |
| 13. 번역과 해설의 배경 및 방침 | 81 |
| 14. 주요 용어들의 한글번역에 대하여 | 86 |
| 15. 전정판(全訂版)에서 바꾼 주요 용어들의 우리말 번역 | 89 |
| 16. 맺는 말 | 93 |
제1장 마음의 길라잡이 - 목차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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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마음의 길라잡이 | 95 |
| §1. 서시(序詩) | 101 |
| §2. 네 가지 구경법 | 105 |
| §3. 네 가지 마음 | 110 |
| I. 욕계의 마음들 - 54가지 | 120 |
| I.1 해로운 마음들 - 12가지 | 127 |
| §4.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들 - 8가지 | 129 |
| §5.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들 - 2가지 | 138 |
| §6.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들 - 2가지 | 140 |
| §7. 해로운 마음의 요약 | 144 |
| I.2 원인없는 마음들 - 18가지 | 144 |
| §8.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 - 7가지 | 145 |
| §9.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 - 8가지 | 149 |
| §10.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들 - 3가지 | 150 |
| §11. 원인 없는 마음의 요약 | 154 |
| §12. 아름다운 마음들 | 154 |
| I.3. 욕계의 아름다운 마음들 - 24가지 | 156 |
| §13. 욕계 유익한 마음들 - 8가지 | 156 |
| §14. 욕계 과보의 마음들 - 8가지 | 159 |
| §15. 욕계 작용만 하는 마음들 - 8가지 | 161 |
| §16. 욕계 아름다운 마음의 요약 | 162 |
| §17. 욕계 마음의 요약 | 163 |
| II. 색계 마음들 - 15가지 | 165 |
| §18. 색계 유익한 마음들 - 5가지 | 170 |
| §19. 색계 과보의 마음들 - 5가지 | 178 |
| §20. 색계 작용만 하는 마음들 - 5가지 | 179 |
| §21. 색계 마음의 요약 | 180 |
| III. 무색계 마음들 - 12가지 | 181 |
| §22. 무색계 유익한 마음들 - 4가지 | 181 |
| §23. 무색계 과보의 마음들 - 4가지 | 185 |
| §24. 무색계 작용만 하는 마음들 - 4가지 | 185 |
| §25. 무색계 마음의 요약 | 186 |
| IV. 출세간 마음들 - 8가지 | 188 |
| §26.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들 - 4가지 | 189 |
| §27.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들 - 4가지 | 193 |
| §28. 출세간 마음의 요약 | 194 |
| §29. 마음의 숫자의 길라잡이 | 197 |
| ※ 121가지 마음 | 199 |
| §30. 간략히 설하면 | 199 |
| §31. 상세히 계산하면 | 199 |
| §32. 결론 | 203 |
제2장 마음부수[心所]의 길라잡이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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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 마음부수[心所]의 길라잡이 | 207 |
| §1. 결합의 특징 | 210 |
| I. 52가지 마음부수 | 218 |
| I.1. 다른 것과 같아지는 마음부수들 - 13가지 | 218 |
| §2. 모든 마음에 공통되는 반드시들 - 7가지 | 219 |
| §3. 때때로들 - 6가지 | 234 |
| I.2. 해로운 마음부수(§4) - 14가지 | 242 |
| §4. 개요 | 242 |
| I.3. 아름다운 마음부수들 -25가지 | 255 |
| §5. 아름다움에 공통되는 마음부수들 - 19가지 | 255 |
| §6. 절제 - 3가지 | 266 |
| §7. 무량함[無量] - 2가지 | 270 |
| §8. 어리석음 없음 - 1가지 | 274 |
| §9. 요약 | 277 |
| II. 마음부수의 결합방법 = 16가지 | 277 |
| §10. 개요 | 277 |
| II.1. 다른 것과 같아지는 마음부수의 결합방법 - 7가지 | 279 |
| §11. 분석 | 279 |
| §12. 요약 | 282 |
| II.2. 해로운 마음부수의 결합방법 - 5가지 | 283 |
| §13. 분석 | 283 |
| §14. 요약 | 285 |
| II.3. 아름다운 마음부수의 결합방법 - 4가지 | 288 |
| §15. 분석 | 288 |
| §16. 요약 | 290 |
| II.4. 고정된 것과 고정되지 않은 것 | 291 |
| §17. 분석 | 292 |
| III. 마음부수의 조합방법 - 33가지 | 293 |
| §18. 개요 | 293 |
| III.1. 출세간 마음의 조합방법 - 5가지 | 294 |
| §19. 분석 | 294 |
| §20. 요약 | 295 |
| III.2. 고귀한 마음의 조합방법 - 5가지 | 297 |
| §21. 분석 | 297 |
| §22. 요약 | 298 |
| III.3. 욕계 아름다운 마음의 조합방법 - 12가지 | 299 |
| §23. 분석 | 299 |
| §24. 요약 | 301 |
| §25. 아름다운 마음들에서의 차이점 | 302 |
| III.4. 해로운 마음의 조합방법 - 7가지 | 303 |
| §26. 분석 | 303 |
| §27. 요약 | 306 |
| III.5. 원인 없는 마음의 조합방법 - 4가지 | 306 |
| §28. 분석 | 306 |
| §29. 요약 | 308 |
| §30. 결론 | 309 |
제3장 일반적인 항목의 길라잡이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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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일반적인 항목의 길라잡이 | 313 |
| §1. 서시 | 316 |
| I. 느낌의 길라잡이 | 317 |
| §2. 느낌의 분석 | 317 |
| §3. 마음에 따른 분류 | 318 |
| §4. 요약 | 320 |
| II. 원인의 길라잡이 | 322 |
| §5. 원인들의 분석 | 322 |
| §6. 마음에 따른 분류 | 324 |
| §7. 요약 | 325 |
| III. 역할의 길라잡이 | 325 |
| §8. 역할의 분석 | 326 |
| §9. 마음에 따른 분류 | 342 |
| §10. 역할의 숫자에 따른 분류 | 347 |
| §11. 요약 | 348 |
| IV. 문의 길라잡이 | 348 |
| §12. 문의 분석 | 348 |
| §13. 마음에 따른 분류 | 350 |
| §14. 문의 숫자에 따른 분류 | 354 |
| §15. 요약 | 356 |
| V. 대상의 길라잡이 | 356 |
| §16. 대상의 분석 | 356 |
| §17. 문에 따른 분류 | 361 |
| §18. 마음의 종류에 따른 분류 | 367 |
| §19. 요약 | 371 |
| VI. 토대의 길라잡이 | 372 |
| §20. 토대의 분석 | 372 |
| §21. 마음에 따른 분류 | 375 |
| §22. 요약 | 378 |
제4장 인식과정의 길라잡이 - 목차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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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인식과정의 길라잡이 | 381 |
| §1. 서시 | 386 |
| I. 범주의 열거 | 388 |
| §2. 여섯 개 조의 여섯 범주 | 388 |
| §3. 여섯 가지 알음알이 | 389 |
| §4. 여섯 가지 인식과정 | 389 |
| II. 인식과정의 분석 | 392 |
| §5. 여섯 가지 대상의 나타남 | 393 |
| II.1. 오문(五門)인식과정 | 394 |
| §6. 매우 큰 대상 | 394 |
| §7. 큰 대상 | 404 |
| §8. 작은 대상 | 405 |
| §9. 매우 작은 대상 | 407 |
| §10. 네 가지 대상의 나타남 | 408 |
| §11. 요약 | 409 |
| II.2. 의문(意門)인식과정 | 410 |
| (1) 제한된 속행과정 | 410 |
| §12. 제한된 속행과정 | 415 |
| §13. 요약 | 417 |
| (2) 의문에서 본삼매 속행과정 | 418 |
| §14. 본삼매속행과정 | 419 |
| §15. 본삼매에서의 상호관계 | 423 |
| §16. 요약 | 424 |
| II.3. 여운의 법칙 | 426 |
| §17. 여운의 분석 | 427 |
| §18. 외래의 바왕가 | 432 |
| §19. 여운의 법칙 | 434 |
| §20. 요약 | 434 |
| II.4. 속행(자와나)의 법칙 | 434 |
| §21. 욕계의 속행 | 435 |
| §22. 증득[等持]에서 속행 | 437 |
| §23. 요약 | 441 |
| III. 개인에 따른 분류 | 442 |
| §24. 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자와 원인을 갖지 않은 자 | 442 |
| §25. 세 개의 원인을 가진 자 | 443 |
| §26. 요약 | 444 |
| IV. 세상에 따른 분류 | 447 |
| §27. 분석 | 448 |
| §28. 특별한 경우 | 449 |
| §29. 요약 | 450 |
| §30. 결론 | 451 |
제5장 과정을 벗어난 마음의 길라잡이 - 목차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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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과정을 벗어난 마음의 길라잡이 | 453 |
| §1. 서시 | 456 |
| §2. 범주의 열거 | 457 |
| I. 네 가지 세상 | 458 |
| §3. 개요 | 458 |
| §4. 악처 세상 | 464 |
| §5. 욕계 선처의 세상 | 469 |
| §6. 색계 세상 | 475 |
| §7. 무색계 세상 | 480 |
| §8. 개인에 따라 | 480 |
| II. 네 가지 재생연결 | 481 |
| §9. 개요 | 481 |
| §10. 악처의 재생연결 | 481 |
| §11. 욕계 선처의 재생연결 | 482 |
| §12. 욕계의 수명 | 484 |
| §13. 색계의 재생연결 | 485 |
| §14. 색계의 수명 | 486 |
| §15. 무색계의 재생연결 | 489 |
| §16. 무색계의 수명 | 489 |
| §17. 요약 | 489 |
| III. 네 가지 업 | 490 |
| III.1. 업의 분류 | 492 |
| §18. 역할에 따라 | 492 |
| §19. 과보를 주는 순서에 따라 | 498 |
| §20. 과보를 주는 시간에 따라 | 502 |
| §21. 과보를 주는 장소에 따라 | 505 |
| §22. 해로운 업[不善業] | 506 |
| §23. 원인과 마음의 분류에 따라 | 510 |
| §24. 욕계 유익한 업[善業] | 511 |
| §25. 색계 유익한 업 | 513 |
| §26. 무색계 유익한 업 | 513 |
| III.2. 업의 과보[業報, 業異熟] | 514 |
| §27. 해로운 업의 과보 | 514 |
| §28. 욕계 유익한 업의 과보 | 515 |
| §29. 유익한 과보와 원인 | 518 |
| §30. 다른 대가들의 견해 | 519 |
| §31. 색계 유익한 업의 과보 | 522 |
| §32. 무색계 유익한 업의 과보 | 525 |
| §33. 결론 | 526 |
| IV. 죽음과 재생연결의 과정 | 526 |
| §34. 네 가지 죽음의 원인 | 527 |
| §35. 죽을 때의 표상 | 528 |
| §36. 죽을 때의 마음 | 529 |
| §37. 죽음과 재생연결 | 530 |
| §38. 욕계 재생연결의 대상 | 533 |
| §39. 고상한 재생연결의 대상 | 535 |
| §40. 재생의 법칙 | 537 |
| §41. 마음의 흐름[相續] | 541 |
| §42. 결론 | 542 |
제1권 도표 목차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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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표 0.1> 상좌부의 82법 | 41 |
| <도표 1.1> 89/121가지 마음의 개관 | 121 |
| <도표 1.2> 해로운 마음들 | 132 |
| <도표 1.3> 원인없는 마음들 | 152 |
| <도표 1.4> 욕계 아름다운 마음들 | 158 |
| <도표 1.5> 색계 마음들 | 172 |
| <도표 1.6> 무색계 마음들 | 187 |
| <도표 1.7> 출세간 마음들 | 191 |
| <도표 1.8> 89가지 마음과 선ㆍ불선ㆍ무기 | 195 |
| <도표 1.9> 89가지 마음과 4가지 경지 | 198 |
| <도표 1.10> 40가지 출세간 마음들 | 201 |
| <도표 1.11> 세간ㆍ출세간의 禪의 마음들 | 204 |
| <도표 1.12> 상좌부의 89/121가지 마음 | 206 |
| <도표 2.1> 52가지 마음부수의 개관 | 221 |
| <도표 2.2> 마음부수ㆍ마음의 결합 | 280 |
| <도표 2.3> 마음ㆍ마음부수의 조합 | 296 |
| <도표 2.4> 마음ㆍ마음부수의 자세한 도표 | 310 |
| <도표 3.1> 느낌의 길라잡이 | 321 |
| <도표 3.2> 원인의 길라잡이 | 323 |
| <도표 3.3> 역할의 길라잡이 | 343 |
| <도표 3.4> 문의 길라잡이 | 353 |
| <도표 3.5> 대상의 길라잡이 | 359 |
| <도표 3.6>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고귀한 마음들 | 370 |
| <도표 3.7> 일곱 가지 알음알이의 요소 | 377 |
| <도표 3.8> 토대의 길라잡이 | 379 |
| <도표 4.1> 눈의 문에서의 인식과정(매우 큰 대상) | 397 |
| <도표 4.2> 오문전향의 인식과정의 등급 | 406 |
| <도표 4.3> 재한된 속행과정 | 416 |
| <도표 4.4> 본삼매를 처음 증득할 때의 속행과정 | 422 |
| <도표 4.5> 개인과 세상과 마음들 | 446 |
| <도표 4.6> 인식과정의 요약 | 452 |
| <도표 5.1/A> 세상 | 462 |
| <도표 5.1/B> 대승불교의 세상 | 463 |
| <도표 5.2> 욕계 천상의 수명 | 485 |
| <도표 5.3> 업의 개요 | 495 |
| <도표 5.4/A> 욕계의 업과 그 과보 | 516 |
| <도표 5.4/B> 색계ㆍ무색계의 업과 그 과보 | 517 |
| <도표 5.5> 욕계 선업의 과보 | 521 |
| <도표 5.6> 죽음과 재생 | 531 |
| <도표 5.7/A> 재생의 결정 - 범부 | 538 |
| <도표 5.7/B> 재생의 결정 - 유학 | 539 |
<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방과 북방으로 전승되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다. 그것을 우리는 남방 불교(Southern Buddhism)와 북방 불교(Northern Buddhism)라 부른다. 남방 불교는 부처님의 적통을 자부하여 스스로를 상좌부 불교(Theravāda Buddhism)라 부르는데 상좌부 불교는 현존하는 불교문헌 가운데서 부처님의 원음이거나 적어도 부처님 원음과 가장 가깝다고 인정되는 빠알리(Pāli) 삼장(三藏, Tipiṭaka)을 근본 성전으로 하여 이를 주석하고 이 주석을 다시 주석하고 이를 또다시 주석하면서 어떤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그 일관된 체계는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그 이전에 전승되어오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싱할리 주석서들을 토대로 빠알리어 주석서들(Aṭṭha- kathā)을 완성함으로써 A.D. 4~5세기쯤에는 거의 완전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붓다고사 스님이 정착시킨 많은 주석서들 가운데서도『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이 상좌부 불교 부동의 준거가 되는 책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떤 학자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청정도론』은 그 성격상 경장의 4부 니까야(Nikāya)에 대한 주석서이기는 하지만 삼장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불법의 핵심을 계․정․혜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빠알리 삼장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다.
그러면『청정도론』을 비롯한 주석서들이나 후대의 복주서들(Ṭīkā)을 떠받치고 있는 일관된 체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아비담마(abhidhamma)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를 이해하지 못하면『청정도론』을 이해할 수 없고『청정도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좌부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상좌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빠알리 삼장도 결코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청정도론』은 원문만으로도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고 그 내용 또한 빠알리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영어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영역본을 읽고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청정도론』이 비록 아비담마의 방법론을 통해 계․정․혜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 쓰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설혹 그 내용을 파악한다 해도 이를 통해서 상좌부 아비담마의 밑그림을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상좌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 절실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좌부 아비담마를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서술해놓은 책이 없을까 하고 상좌부 불교를 공부한 분들, 특히 남방의 상좌부 스님들에게 문의하면 반드시 듣게 되는 대답이 바로 본서의 저본인『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 Saṅgaha)이다. 원문만으로는 겨우 70쪽 남짓한 분량의 책 안에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attha)가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아비담마의 주제만을 골라서 극히 간결한 문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상세한 주석서들과 함께 전승되어 왔다.
‘아비담마(abhidhamma) 주제(attha)의 길잡이(saṅgaha)’로 직역할 수 있는 이『아비담맛타상가하』는 대략 10~11세기쯤에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이 쓴 것으로 추정될 뿐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저자가 인도 출신인지 스리랑카 출신인지조차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워낙 체계적으로 잘 편집되었기 때문에 일단 이 책이 나타나자 상좌부의 모든 아비담마 체계는 이 책의 주제(attha)를 쫓아서 다시 편성되어 가르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모든 상좌부 불교국가에서 이 책은 아비담마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본 텍스트로 자리 잡아 왔으며 일찍부터 영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1881년 영국에서 설립된 빠알리 성전협회(PTS, Pāli Text Society)에서는 이미 1910년에 미얀마 학자 쉐 잔 아웅(Shwe Zan Aung)이 자세한 주를 달아서 번역한 것을 리스 데이비즈 여사(C.A.F. Rhys Davids)가 서문을 달고 교정을 하여 “Compendium of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편집자 서문에서 당시 남편 리스 데이비즈 교수의 뒤를 이어 PTS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몇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1881년 PTS가 설립되었을 때 스리랑카에서 가장 존경받는 네 분 큰스님 가운데 한 분이셨던 삿다난다 스님(Saddhananda Mahāthera)이 빠알리 논장의 칠론에 담겨있는 아비담마를 배우는 최상의 길은『아비담맛타상가하』를 배우는 것이라고 빠알리로 된 축시를 직접 써서 보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설립자인 리스 데이비즈 교수도 이를 항상 유념하고 있었으며 설립한 후 삼 년이 채 안되어서 발간한 PTS 저널(Journal)에 이미『아비담맛타상가하』교정본을 실었다. 리스 데이비즈 교수는 “Buddhism in Translation”의 저자인 헨리 와런(Henry Warren)에게『아비담맛타상가하』의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와런이 요절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 번역본을 내어놓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스리랑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금도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를 영어로 가장 왕성하게 전파하고 있는 불자출판회(BPS, Buddhist Publication Society)에서도 협회가 설립되자마자 1956년에『아비담맛타상가하』영문 번역인 “A Manual of Abhidhamma”를 먼저 출판하였다. 이것은 당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학승이었던 나라다 스님(Narada Mahāthera)이 번역하신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몇 십 년을 아비담마의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1993년에는 다시 BPS에서 현재 아비담마 학계 최고의 달인으로 알려진 미얀마의 실라난다 스님(U Sīlananda Sayadaw)과 레와따 담마 스님(U Revata Dhamma)의 도움을 받아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새롭게 번역 출판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를 내놓았고 이는 현재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빠알리 삼장의 우리말 완역을 발원하여 2002년 10월 9일에 설립된 초기불전연구원이 부처님 원음인 니까야를 먼저 번역을 하지 않고 그 첫 번역으로 이『아비담맛타상가하』를 택한 것은 ① 상좌부 불교에서 차지하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중요성을 자각하였기 때문이고 ② 세계 불교계의 이러한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③ 본서가 처음 출간되던 2002년에는 한국에서도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위빳사나 수행도 몇몇 군데에서 행해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정작 위빳사나 수행의 완벽한 이론서인 아비담마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④ 무엇보다도 부처님 원음을 온전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을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막상 빠알리 삼장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체계이며 역사적으로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아비담마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아비담맛타상가하』를『아비담마 길라잡이』로 맨 먼저 역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책의 제목
먼저 ‘아비담맛타상가하’의 문자적인 뜻부터 살펴보자.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는 abhidhamma(아비담마) + attha(앗타) + saṅgaha(상가하)의 셋이 합성된 단어이다. 레디 사야도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에서 아비담맛타상가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 설해진 주제(혹은 의미)들을 아비담맛타라 한다. 본서에서 혹은 본서를 통해서 [아누룻다] 스님이 이것들을 요약하여서 파악하고 설명했기 때문에 아비담맛타상가하라 한다.”
⑴ 앗타(attha)의 의미
이제 이 세 단어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보자. 먼저 앗타(attha)부터 살펴보자. 범어 일반에서 attha(Sk. artha)는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초기불교에서는 주로 ① ‘이로운 것, 이익’ ② ‘뜻, 의미’ ③ ‘이치, 목적, 주제, 본질’이라는 세 가지 뜻을 나타낸다.
① ‘이로운 것, 이익’의 뜻으로 쓰일 때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문맥 등에 많이 나타난다.
② ‘뜻, 의미’로는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라는 정형구에서 보듯이 ‘의미(attha)와 표현(byañjana)’이라는 문맥에서 많이 쓰인다.
③ ‘이치, 목적, 주제, 본질’의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궁극의 이치를 청정하게 한다.” 등으로 나타나며 특히 아비담마에서는 빠라맛타(paramattha, parama + attha, 구경, 궁극의 이치, 궁극적인 것)라고 정착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勝義, 眞實, 第一義(승의, 진실, 제일의) 등으로 번역하였다.
attha가 가지는 이 세 가지 뜻이 모두 abhidhammattha의 attha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지만 본서는 “여기서 설하는 아비담마의 주제들(abhi- dhammatthā)은 궁극적인 것(paramattha)으로 모두 네 가지이니”(1장 §2)라고 하여 세 번째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서 attha는 인도의 육파철학, 특히 논리학에서의 빠다르타(padārtha, Pāli: padattha, pada + attha, 논의의 주제, 즉 그 파에서 주장하고 정리하고 논의하고 관심을 가지는 근본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용어로 보는 것이 문맥에 더 적합하다. 예를 들면 인도의 나이야이까[正理派, 논리학파, Naiyāyika]에서는 16가지로, 와이세시까[勝論, Vaiśeṣika] 학파는 7가지로, 상캬[數論, Sāṅkhya] 학파는 25가지로, 베단따(Vedānta) 학파에서는 2가지로 자기 학파의 논의의 주제를 설정하여 이를 빠다르타(padārtha), 즉 논의의 주제로 명명하고 있다. 자이나(Jaina) 교리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땃뜨와아르타 아디가마 수뜨라』(Tattvārthādhigama Sūtra)에서는 지와(jīva, 영혼), 아지와(ajīva, 비영혼=물질) 등의 일곱 가지를 ‘진리의 주제(tattva+artha)’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도의 여러 사상과 종교에서는 각 파의 근본이념이나 논의의 주제나 모토들을 padārtha라거나 tattvārtha 등으로 불러온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맛타(Sk. abhidharma-artha)도 불교교학의 토대가 되는 ‘아비담마에서 논의되는 여러 주제들’이란 뜻으로 보는 것이 좋다. 본서에서 아누룻다 스님은 이들 논의의 주제를 아홉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에 관련된 주제와 법들을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⑵ 상가하(saṅgaha)의 의미
다음은 상가하(saṅgaha)에 대해서 살펴보자. 산스끄리뜨 상그라하(saṅ- graha)의 빠알리식 표기인 saṅgaha는 saṁ(함께)+√grah(to tak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함께 모은 것’이란 의미이다.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 상그라하(saṅgraha, Pāli: saṅgaha)는 인도 대륙에서 8세기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특정 형태의 문헌의 한 장르이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베다는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이 베다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本集, Saṁhitā], 브라흐마나[祭儀書, Brāhmaṇa], 아란냐까[森林書, Āraṇyaka], 우빠니샤드[秘義書, Upaṇiṣad]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이 베다, 특히 베다 본집(Saṁhit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불교가 태동하기 전부터 음운(Śikṣā), 제사(Kalpa), 문법(Vyākaraṇa), 어원(Nirukta), 운율(Chandas), 점성술(Jyotiṣa)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 많은 연구가 되었고 그것이 베당가(Vedāṅga)라는 여섯 갈래로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이미 4베다의 각 파에 속하는 방대한 분량의 브라흐마나(제의서) 문헌들이 제사(yajña)를 거행하는 각 파의 역할을 중심으로 여러 문파에서 편찬되었다.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이들 제의서들은 다시 수뜨라(Sūtra)라 불리는 간결한 형태의 문헌의 장르로 각 파마다 다시 요약, 편집되었다. 그러나 이 수뜨라는 너무 간결하여 주석서가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어 다시 이 수뜨라에 대한 주석서들이 편찬되었다. 그렇게 되자 다시 이 방대한 문헌을 요약하고 간추려서 후학들의 학문에 지남이 되고 길라잡이가 되는 간결한 문헌을 만들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상그라하라는 장르이다. 물론 이 상그라하 역시 더 후대에 여러 주석서들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인도 문헌들은 방대해지면 압축하고 압축한 것에 주석이 첨가되어 다시 번잡해지면 다시 압축하고 하면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베다의 미맘사(제사학, Mīmāṁsā)를 간략하게 집대성한 문헌으로『아르타상그라하』(Arthasaṅgraha)가 유명하고 냐야[因明, 正理, 논리학, Nyāya]를 간략하게 집대성한『따르까상그라하』(Tarkasaṅgraha)가 논리학 입문서로 초보자들에게 널리 가르쳐지고 있으며 베단따 철학을 압축한 것으로는『베단따상그라하』(Vedāntasaṅgraha)가 있다. 그리고 북방 아비다르마를 압축해 놓은 것으로는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 스님의『땃뜨와상그라하』(Tattvasaṅgraha)가 유명하다.
이런 경향은 상좌부 불교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다양한 근기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편으로 설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뜨라 형태의 마띠까[論母, Mātikā]라는 이름으로 간결하게 정리가 되었고 이것은 다시 아비담마 칠론(七論)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다시 주석서(Aṭṭhakathā)와 복주서(Ṭīkā)가 첨가되어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그래서 아비담마를 배우려는 초학자들은 그 방대함에 움츠러들게 된다. 그래서 일찍부터『아비담마아와따라』(Abhidhamma-avatāra, 아비담마 입문, 5A.D)와 같은 많은 입문서나 개설서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 주석서들이 또 첨가되면서 그 분량은 다시 커지게 된다. 그래서 아비담마 전체를 아우르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는 길라잡이가 절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이다.
상좌부 불교의 교의는 아비담마 칠론으로 체계화되어 싱할리 주석서로 논의되고 설명되었다. 이것을 붓다고사 스님이『청정도론』과 여러 주석서들(Aṭṭhakathā)로 정리하였으며 이는 다시 아난다(Ānanda) 스님이나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 등이 복주서들(Ṭīkā)을 편찬하여 심화되고 방대해졌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저술로 더욱더 복잡하게 된 아비담마를 간략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에서 탄생된 것이 바로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이다.『아비담맛타상가하』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아비담마의 논의의 순서와 가르침은 지금까지 이 책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담마상가니』(법집론)와『청정도론』뿐만 아니라『아비담마아와따라』같은 초기 아비담마 개론서들에서는 89가지 마음을 아비담마 마띠까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분류 방법에 따라 선․불선․무기(cf. ma3-1)의 순서에 준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서 다시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의 마음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본『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는 이것을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이라는 마음의 경지의 순으로 바꾸어서 이들 경지 안에서 다시 불선․선․무기의 순서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후 지금까지 89/121가지 마음은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의 순서와 방법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 인식과정이 17심찰나로 고정이 되는 등 후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 아비담마란 무엇인가
‘앗타’와 ‘상가하’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아비담마’란 무엇인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⑴ 아비담마에 대한 두 가지 해석 — 무비법(無比法)과 대법(對法)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용어는 접두어 아비(abhi)와 명사 담마(dhamma)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접두어 아비(abhi)의 뜻을 중심으로 아비담마의 문자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PED 등에 의하면 문자적으로 접두어 abhi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향하여, 대하여(round about, around, towards, against)’의 뜻이고 둘째는 ‘위에(over, on top of, above)’의 뜻이다.『담마상가니 주석서』등은 ‘위에’라는 후자의 뜻으로 접두어 abhi를 해석하고 있으며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이것을 정설로 삼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무비법(無比法, 勝法, 수승한 법, 빼어난 법)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아비달마 구사론』을 번역하면서 현장 스님은 이것을 대법(對法, 법에 대해서)으로 옮겼는데 이것은 abhi를 전자인 ‘향하여, 대하여’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법(對法)은 법과 대면함, 법을 참구함, 즉 법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아비담마 혹은 아비달마는 중국에서 대법(對法), 무비법(無比法), 승법(勝法), 논(論) 등으로 옮겨졌고 아비담(阿毘曇), 아비달마(阿毘達磨), 아비달마(阿鼻達磨),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등으로 음역되었는데 아비담(阿毘曇)은 빠알리어 아비담마(abhidhamma)를, 아비달마(阿毘達磨)는 산스끄리뜨어 아비다르마(abhidharma)를 음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까야에서도 접두어 abhi는 대부분이 ‘위에’의 의미에 해당하는 ‘능가하는, 수승한, 특별한’의 뜻으로 쓰인다. 접두어 abhi가 ‘향하여, 대하여’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로는 purattha-abhimukha([비구 승가를] 마주 보고, D2 §11)와 uttara-abhimukha(북쪽을 향해, D14 §1.29) 등과『청정도론』등의 주석서 문헌에 나타나는 nimitta-abhimukha(표상을 향하도록, Vis.IV.66)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전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⑵ 담마(법)란 무엇인가
아비담마라는 단어에서 핵심은 무엇보다도 담마(dhamma)이다. 법(法)으로 옮기는 담마(dhamma, Sk. dharma)는 인도의 모든 사상과 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는 용어이며 또한 방대한 인도의 제 문헌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기불교 문헌에서도 dhamma(Sk. dharma)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초기불전에서 담마[法, dhamma]는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과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을 통해서 법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경장에 해당하는 주석서인『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모든 법[諸法, 一切法, sabba-dhammā, sabbe dhammā]’을 설명하면서 법(dhamma)의 용처를 열 가지 경우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① 교학(pariyatti), ② 진리(sacca), ③ 삼매(samādhi), ④ 통찰지(paññā), ⑤ 자연의 법칙(pakati), ⑥ 고유성질(sabhāva), ⑦ 공성(suññatā), ⑧ 복덕(puñña), ⑨ 범계(犯戒, āpatti), ⑩ 알아야 할 것(ñeyya)이다.
그런 뒤 주석서는 이 문맥에서는 고유성질(sabhāva)을 말하며 그 뜻은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attano lakkhaṇaṁ dhārentīti dhammā).’라고 덧붙이고 있다.(MA.i.17) 이것은 아래에서 인용하는『담마상가니 주석서』의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나 ‘자신의 고유성질(sabhāv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한편 아비담마 삐따까, 즉 논장의 주석서인『담마상가니 주석서』는 ① 교학(pariyatti)과 ② 원인(hetu)과 ③ 공덕(guṇa)과 ④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nissatta-nijjīvatā)의 4가지로 법을 정의한다. 그런 뒤에 ④ “그런데 그때에 법들이 있고”(Dhs. §121)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D22)라는 등에서 [법은]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을 뜻한다.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에 대한 것이 여기 본문에 해당한다.”(DhsA.38)라고 하여 여기『담마상가니』를 위시한 아비담마에서 법은 중생이니 영혼이니 하는 개념적인 것(paññatti)이 아니라 고유성질(sabhāva)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에서의 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①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dhārenti)고 해서 ‘법들(dhammā)’이라 한다. ② 혹은 조건(paccayā)에 의해서 호지된다(dhāriyanti), ③ 혹은 틀림없는 고유성질에 따라 호지된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DhsA.39)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로 옮긴 ‘attano sabhāvaṁ dhārentīti dhammā’(DhsA.39)는 법을 정의하는 구문으로 잘 알려진 것이며, 위의『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 ‘자신의 특징(lakkhaṇ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MA.i.17)는 설명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법 혹은 법들에 대한 경과 여러 주석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법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학(pariyatti)으로서의 법이고, 둘째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能持自相, sabhāvaṁ dhārenti]으로서의 법이다. 니까야에서 전자는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Buddha-sāsana]으로 불리고 있고(M86 등), 북방불교에서는 ‘불법(佛法)’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후자는 ‘일체법(一切法, 諸法, sabbe dhammā)’으로 정리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요즘 서양학자들은 전자를 대문자 Dhamma로, 후자를 소문자 dhamma로 표기한다. 경장, 즉 니까야에서 법은 전자의 의미로 많이 나타나고 논장, 즉 아비담마에서는 후자로 쓰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기준으로 분석하고 분류하여 법을 표준화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佛法]과 일체법(一切法)은 같은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북방불교의 반야중관 계열에 속하는『금강경』에서도 “일체법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sarvadharmā Buddhadharmā, 一切法 皆是佛法)”(제17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4. 아비담마의 담마[法]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이다
⑴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 법(dhamma)이다
이처럼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을 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아난다 스님은『담마상가니 물라띠까』에서 ‘전도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고유성질[自性]이다.’라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사람, 동물, 산, 강, 컴퓨터’ 등 우리가 개념 지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다시 여러 가지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최소 단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은 개념(paññatti)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산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최소 단위인 지․수․화․풍․색․향․미․영양소(본서 제6장 §7의 해설 11 참조) 등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이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서 뭉쳐 있는 것일 뿐, 산이라는 불변하는 고유의 성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이 만들어낸(pari- kappanā) 개념일 뿐이지 그들의 고유성질(sabhāva)에 의해서 존재하는 실재는 아닌 것이다.(cf. PdṬ.123)
그러나 법들은 더 이상 분해하고 해체할 수 없다. 분해하고 해체하면 그들의 고유성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은 땅의 요소[地界]․물의 요소[水界]․불의 요소[火界]․바람의 요소[風界] 등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로 분해가 되고 해체가 되지만 견고성이라는 땅의 요소[地界]를 더 분해하면 거기에는 견고성이라는 고유성질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을 종합하면 고유성질(sabhāva)이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성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고유성질을 가진 법(dhamma)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을 구경법(究竟法, paramattha-dhammā)이라 부른다.
여기서 ‘고유성질’은 sabhāva(Sk. svabhāva)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sa(Sk. sva, one’s own)와 성질, 성품, 상태 등을 뜻하는 bhāva(√bhū, to become)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고유성질로 옮겼다. 이것은 중국에서 自性, 本性, 自相, 自有, 自然, 自體, 體性(자성, 본성, 자상, 자유, 자연, 자체, 체성) 등으로 옮겨진 것으로 조사된다. 이 용어는『쿳다까 니까야』가운데서도『자따까』나 시대적으로 후대인 것이 분명한『붓다왐사』나『빠띠삼비다막가』에 몇 번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 경장과 율장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논장의 칠론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고유성질’로 옮기는 sabhāva는 주석서 문헌에서부터 법(dhamma)을 정의하는 전문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X라는 법과 Y라는 법이 서로 다른 이유를 각각의 법이 가진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주석가들이 고안한 것이다.
예를 들면 탐욕과 성냄은 서로 다른 법(dhamma)이다. 그러면 탐욕과 성냄이 왜 다른가? 탐욕은 대상을 거머쥐는 특징을 가지고(DhsA.248 = Vis. XIV.160) 성냄은 잔인한 특징을 가진다.(DhsA.257, cf. Vis.XIV.171) 달리 말하면 탐욕은 대상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고 성냄은 대상을 밀쳐내는 성질이 있다. 이처럼 탐욕과 성냄은 각각에 고유한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설명 방법이다.
이 고유성질[自性, sabhāva] 혹은 각각의 법들이 가지는 개별적 특징[自相, sabhāva-lakkhaṇa]이라는 표현은 상좌부 아비담마와 북방의 아비달마 문헌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CBETA로 검색을 해보면『대반야바라밀다경』,『대승입능가경』이나『유가사지론』이나『성유식론』등, 후대 북방불교의 여러 경들과 논서에서도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아비담마/아비달마, 나아가서 반야중관이나 유식이나 여래장 등과 같은 후대의 불교 체계들도 법들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기본 방법으로 이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⑵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 있는가
법(dhamma)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 혹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정의하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가 있는가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아비담마에서 법을 연구하고 참구하는 기본 출발점이다. 그래서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최소 단위로 하나의 마음(citta), 52가지 마음부수(cetasika), 28가지 물질(rūpa), 하나의 열반으로 모두 82가지를 들고 있고 북방 아비달마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에서는 75가지를 들고 있으며 대승아비달마를 표방하는 유식에서는 최종적으로 100법을 들고 있다.
<도표 0.1> 상좌부의 82법

특히 상좌부 주석가들은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 혹은 구경법들의 성질을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 이들을 정의하는 방법으로 ① 특징(lakkhaṇa) ② 역할(rasa) ③ 나타남(paccupaṭṭhāna) ④ 가까운 원인(padaṭṭhāna)이라는 네 가지를 제시하고, 이 네 가지를 통해 어떤 법이든 그 한계를 분명하게 구분 짓고 있다.『청정도론』과『담마상가니 주석서』를 비롯한 모든 주석서들이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본서 제1장 §3의 해설 참조)
이렇게 하여 본서는 제1장에서 마음을 고찰하고 제2장에서는 52가지 마음부수들을 정의하며 제6장에서는 28가지 물질을 살펴본 뒤 무위법인 열반을 정의하고 제8장에서는 개념들[施設, paññatti]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의 제1/2/6장은 구경법들의 고유성질을 구명하고 있고 이를 토대로 제3/4/5장은 제1장에서 마음의 경지와 종류에 따라 89가지 혹은 121가지로 분류해서 고찰한 마음을 여러 관점에서 심도 있게 고찰한다. 그리고 제7장은 제1장부터 제6장까지를 통해서 고찰한 구경법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구경법들 가운데 추상적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72가지 토대가 되는 법을 4가지 범주의 28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고찰한다. 다시 제8장은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12연기의 가르침을 살펴본 뒤구경법들(열반은 제외)과 개념들에 작용하는 상호의존관계를 24가지로 정리하여 고찰하고 개념들[施設]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인 제9장은 이와 같은 아비담마의 이해가 수행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것이 본서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⑶ 추상적 물질은 고유성질이 없는가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추상적 물질(anipphanna-rūpa)은 고유성질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위바위니 띠까』는 “한정하고 변화하는 등의 성질(pariccheda-vikārādi-bhāva)이 없고 따로 조건들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paccayehi anibbattattā) 이들 10가지는 추상적 [물질]이라 한다.” (VT.202)라고 추상적 물질을 정의하고 있다.
CMA는 추상적 물질에는 고유성질이 없다고 적고 있다. CMA의 이러한 입장은 “추상적이라는 것(anipphannatta)은 고유성질로는 성립되지 못한다(sabhāvato asiddhatta).”(DhsAAnuṬ.169)라는 등의 복주서 문헌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레디 사야도는『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추상적 물질이 고유성질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아래와 같이 강조하신다.
“그렇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이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따로 분리해서 이들이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는 것(sabhāvato anupalabbhamānāni)이라거나 구경[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paramatthato avijjamānāni)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인습적 표현으로만 성취되는 성질(vohāra-siddhamatta- bhāva)을 넘어서서 순수한 법의 행처에 의해서 성취되는 구경[법]의 특징에 의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suddhadhammagatiyā siddhena paramattha- lakkhaṇena upaladdhattā) 그렇지 않으면 생겨남의 특징이 없고(nibbatti- lakkhaṇa-rahita) 형성되지 않은(asaṅkhata) 열반도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구경[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paramatthato avijjamānañca nāma siya). 그러므로 단지 생겨남의 특징이 없기 때문에(nibbattilakkhaṇarahitattā-eva) 이들은 추상적 물질이라고 부를 뿐이지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na sabhāvato anupalabbhamānattāti yuttaṁ siyāti).”(PdṬ.289)
역자들은 레디 사아도의 이러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받아들여 추상적 물질도 고유성질을 가지며 그래서 구경법은 모두 82가지라고 인정한다. 물론 82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72가지만이 토대가 되는 법(vatthudhamma)이고 이 추상적 물질들은 그렇지 않다.(본서 제7장 §1의 해설 참조) 그렇기 때문에 이 추상적 물질들은 위빳사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레디 사야도는 “여기서 토대(vatthu)란 실재하는 단위(dabba, Sk. dravya, substance)를 지칭하는 것이다.”(PdṬ.332)라고 토대를 정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실재하는 단위란 것은 자신의 특성을 통해(sarūpato) 얻을 수 있는 고유성질에만 적용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5.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이다
⑴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이다
아비담마에서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을 법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을 구경법이라 부른다고 해서 이러한 법들이 영원불변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열반을 제외한 모든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고 상좌부 아비담마뿐만 아니라 북방 아비달마와 대승불교의 여러 경론도 강조하고 있으며 북방 아비달마를 대표하는『아비달마 구사론』도 마찬가지이다. 찰나야말로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강조하는 법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역자들은 고유성질과 찰나 ― 이 둘은 아비담마의 법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받아들인다.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찰나(刹那, 순간, khaṇa)를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찰나는 다시 일어남[生, uppā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ṅ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본서 제4장 §6과 해설 참조) 서양에서는 이것을 sub- moment라고 옮기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아찰나(亞刹那)’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아찰나라는 용어는 주석서의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찰나는 전문용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유성질이 없기 때문이다. 찰나를 아찰나로 쪼갤 수는 있고, 아찰나를 다시 아아찰나로 아아찰나는 다시 아아아찰나로 … 이렇게 쪼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아찰나로 쪼개버리면 법이 가지는 고유성질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전문용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찰나는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찰나 동안에 존재하는 법들은 당연히 조건발생 즉 연이생(緣而生)이다. 앞 찰나의 법들이 멸하면 바로 다음 찰나의 법들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므로 단멸론도 될 수 없다. 이것을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는 등무간연(等無間緣, 더욱 틈 없는 조건, samanantara-paccaya)이라 하여 아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앞 찰나가 멸하면 후 찰나로 흘러간다.[相續, santati] 그러므로 법은 단멸론에도 상주론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비담마/아비달마는 이렇게 법들을 찰나(khaṇa, Sk. kṣaṇa)와 흐름[相續]으로 멋지게 설명해낸다.
⑵ 찰나는 무상(無常, anicca)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찰나(刹那, khaṇa) 혹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는 용어는 빠알리 삼장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찰나(刹那, khaṇa)는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 되는 용어이다. 이렇게 말하면 참나, 진아, 대아를 찾는 것이 불교라는 헛된 주장을 늘어놓고 싶은 분들은 찰나는 부처님 원음과는 상관이 없는 후대의 주석가들이 임의로 만들어서 사용한 용어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찰나는 초기불교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무상을 정확한 시간 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초기불전에서 무상․고․무아의 중요성은 각별하다. 무상․고․무아를 주석서 문헌들은 법들의 보편적 특징[共相, sāmañña-lakkhaṇa]이라 부르면서 강조하고 있다. 무상․고․무아는 깨달음의 실현 혹은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두 번째 설법이요, 이 법문을 듣고 5비구가 아라한이 된「무아의 특징 경」(S22:59)은 이렇게 전개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S22:59)
이를 요약하면 ①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하여 ② 이들의 무상․고․무아를 꿰뚫어봐서 ③ 염오 - ④ 이욕 - ⑤ 해탈 - ⑥ 구경해탈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섯 단계의 정형구는『상윳따 니까야』에만 400번 이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된다. 주석서는 염오(nibbidā)는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이며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뜻하고, 이욕(virāga) 즉 탐욕의 빛바램은 도(magga)를, 해탈(vimutti)은 과(phala)를,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로 표현되는 구경해탈지는 반조(paccavekkhaṇā)를 뜻한다고 설명한다.(MA.ii.115 등)
해체해서 보기의 여섯 단계의 정형구에 준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무상․고․무아의 삼특상(ti-lakkhaṇa) 가운데서 고와 무아는 위에 인용한 경에서 보듯이 무상에 대한 자각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여섯 단계의 가르침은『청정도론』에서 5청정으로 체계화되는데 이 가운데 견해의 청정[見淸淨, diṭṭhi-visuddhi]과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知見淸淨]과 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知見淸淨]의 핵심 내용은 해체했을 때 드러나는 무상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체득하는 것이다.(『청정도론』제1권 해제 ‘14. 칠청정의 측면에서 본『청정도론』참조)
무상(無常)은 원어로 anicca인데 이것은 항상함[常]을 뜻하는 nicca에 부정접두어 a-를 붙여서 만든 용어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무상(無常)이라 직역하여 옮겼다. 이처럼 무상의 체득은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이며 고와 무아를 체득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당연한 전제가 되고 있다.
6. 찰나(刹那, khaṇa)란 무엇인가
⑴ 무상의 최소 단위가 찰나이다
주석서들은 “있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상이다(hutvā abhāv -aṭṭhena aniccā).”(DA.ii.635 등)로 무상을 정의한다. 그러면 정신과 물질의 법들은 어느 정도의 기간 혹은 시간 동안 있었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주석서 문헌들에서는 ‘있었다가 존재하지 않음’인 이 존재하는 기간을 찰나로 설명해내고 있다.
그래서『맛지마 니까야 복주서』는 “찰나에 부서지기 쉬운 것(khaṇa- pabhaṅgutā)이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다고 해서 무상이라 한다.”(MAṬ.ii.251)고 설명한다. 그리고『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무상을 ‘찰나적 존재임(khaṇikatā)’으로 풀어서 적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무상은 찰나라는 최소 단위의 시간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주석서 문헌들을 위시한 후대의 아비담마 해설서들은 법의 개별적 특징[自相]으로 고유성질을 강조하고 유위법들의 보편적 특징[共相]으로 찰나를 설하고 있다.
⑵ 찰나의 구명(究明)
찰나(刹那, khaṇa)의 구명은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을 비롯한 유위법들은 찰나생․찰나멸하는 일어나고 사라짐[起滅]의 문제이지, 있다․없다[有無]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주석서는 더 나아가서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uppāda-ṭṭhiti-bhaṅga) 세 [아찰나(亞刹那, sub-moment)로] 구성된다고 설명하여 자칫 빠질지도 모르는 찰나의 실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는 찰나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한정된 자신의 존속 기간”(Pm.i.358)으로 정의한다. 즉 특정한 법이 존속하는 기간(pavatti-kāla)을 찰나라 하는 것이다. 레디 사야도는 『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물질과 정신의 법들의 수명을 측정하는 [단위](rūpārūpadhammānaṁ āyu-parimāṇasaṅkhātassa khaṇassa vasena)” (PdṬ.441)라고 찰나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수명(āyu)이란 앞에서 인용한『빠라맛타만주사』에서 말하는 법들이 존속하는 기간(pavatti-kāla)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들이 존속하는 기간은 특정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자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고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탐욕이라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일어나서 대상을 탐하는 자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고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탐욕이라는 법의 존속 기간인 찰나인 것이다.
북방의 아비달마에서도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유찰나, 즉 찰나적 존재[有刹那, kṣanika]”(권오민 역,『아비달마 구사론』제2권 593쪽)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찰나란] 법(존재) 자체를 획득하고서 무간(無間)에 바로 소멸하는 것을 말하니, 이와 같은 찰나(kṣaṇa)를 갖는 법을 ‘찰나적 존재(kṣaṇika)’라고 이름한다.”라고 찰나를 정의한다.(Ibid.) 그래서『아비달마 구사론』의 역자는 “찰나적 존재를 설하는 유부에 있어 존재(유위법)와 찰나는 동의어이다.”라고 강조한다.(Ibid., 제3권 925쪽)
나아가서『아비달마 구사론』은 찰나를 “하나의 법이 지닌 온갖 상(즉 생․주․이․멸)의 작용이 모두 이루어질 때”라고 정의하기도 하고, “법(존재) 자체를 획득하고서 무간(無間)에 바로 소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Ibid., 251쪽, 244쪽, 593쪽 참조)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도 이미 찰나는 일어남[生, uppā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ṅ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본서 제4장 §6과 해설 참조) 북방의『아비달마 구사론』에서도 한 찰나에 머물고 쇠퇴하고 소멸하는 모습을 성취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방에서 공히 한 법이 일어나서 머물고 쇠퇴하고 무너지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그 기간을 찰나라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아비달마 구사론』의 어법을 빌어서 말하면 유위법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諸有為法纔得自體) 걸리는 시간이 찰나인 것이다.
이상의 여러 자료들을 취합해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찰나는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다. 그래서 역자는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라고 찰나를 정의한다.
그러면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이 최소 단위의 시간은 그 길이가 같은가? 불교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에서는 물질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과 정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은 다르다고 이해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16배 내지 17배 더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후자를 심찰나(心刹那, citta-khaṇa)라 구분하고 있다.『청정도론』은 물질이 머무는 아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정의한다.(Vis.XX.24, 본서 제4장 첫 번째 해설 참조) 그리고 같은 심찰나라도 임종 시의 심찰나의 길이는 길어진다고 한다.(본서 제4장 §21 참조) 이처럼 찰나는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길이는 달라질 수 있으며 이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실용적인 정의라고 여겨진다.
⑶ 1찰나는 75분의 1초이다
그러면 찰나라는 시간 단위는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길이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북방의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장 스님이 옮긴『아비달마 대비바사론』에는 “不說剎那臘縛牟呼栗多晝夜以為劫耶(불설 찰나 납박 모호율다 주야 이위겁야)”라는 등의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여기서 剎那(찰나), 臘縛(납박), 牟呼栗多(모호율다)가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기간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같은 현장 스님이 옮긴『아비달마 구사론』을 살펴보자.『아비달마 구사론』에 의하면 1주야(晝夜), 즉 하루는 30모호율다(牟呼栗多, muhūrta)에 해당하고, 1모호율다(牟呼栗多, 須臾, muhūrta)는 30납박(臘縛, 頃刻, lava)에, 1납박은 60달찰나(怛剎那, tatksaṇa)에, 1달찰나는 120찰나(ksaṇa)에 해당한다.
여기서 모호율다(牟呼栗多)는 무후르따(muhūrta)를 음역한 것인데 중국에서 分, 時, 牟呼栗多, 瞬息須臾, 須臾(분, 시, 모호율다, 순식수유, 수유)로도 옮겼고 빠알리 문헌에서도 muhutta로 나타난다.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24시간이 30무후르따이므로 1무후르따는 48분에 해당한다.
납박(臘縛)은 라와(lava)를 옮긴 것인데 이는 물방울을 뜻하며 중국에서는 瞬息, 羅預, 臘縛(순식, 나예, 납박)으로 옮겼다. 빠알리어에는 laya로 나타난다. 요즘 시간 단위로 계산하면 96초, 즉 1분 36초에 해당한다.
달찰나(怛剎那)로 음역한 땃크샤나(tatkṣaṇa)는 tat(그)-kṣaṇa(찰나)로 분석이 된다.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1.6초에 해당한다.
찰나(刹那)로 음역한 ksaṇa는 빠알리 khaṇa에 해당하고 이것은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여기서 찰나(刹那)로 옮긴 ksaṇa와 납박(臘縛)으로 옮긴 lava와 모호율다(牟呼栗多)로 옮긴 muhūrta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문헌 등 인도의 범어 문헌 일반에서도 자주 나타나며 윌리엄 사전이나 자이나 사전에도 위의『아비달마 구사론』의 인용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셋은 각각 빠알리어 khaṇa, laya, muhutta에 대응이 되고 이들은 상좌부의 빠알리 문헌(Vin I.12; III.92; A.iv.137; cp. Dpvs I.16, PED s.v. laya)에도 나타나고 있다. 빠알리 문헌에는 khaṇa, laya, muhutta가 어느 정도 길이의 시간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구사론』이나 범어 문헌 일반에서 정리하고 있는 시간 단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찰나는 대략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찰나는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한편 상좌부 불교에서는 물질이 ‘머무는’ 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강조한다.(Vis.XX.24) 이렇게 본다면 1초에 마음은 대략 1,200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계산할 수 있다. 그러면 백세인생 동안 ‘나’라는 개체의 흐름에서는 대략 1,200×60초×60분×24시간×365일×100년 = 3,784,320,000,000번, 즉 3조 7843억 2천만 번 정도의 마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거칠게 계산해 볼 수 있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마음들을 어떤 기준을 정해서 89가지 혹은 121가지 마음으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이 본『아비담마 길라잡이』제1장의 내용이다.
⑷ 찰나는 상속한다
나라는 개체를 이루고 있는 오온은 찰나적 존재이다. 찰나적 존재라면 일찰나에 존재하고 없어져버려야 한다. 그런데 왜 오온과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온이 찰나생․찰나멸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상속(相續, santati)이라 한다. 상속은 흐름을 뜻하는데 앞 찰나가 멸하면 뒤 찰나가 틈이 없이 뒤따라 일어나고 이 뒤 찰나가 멸하면 그 뒤 찰나가 다시 틈이 없이 뒤따라 일어나는 것을 거듭하면서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오온으로 대표되는 유위법들은 상속하기 때문에 특정한 깔라빠를 이루는 물질이나 특정한 개체를 이루는 오온은 그 개체를 유지하고 존속해가는 것이다. CBETA로 북방 한역 자료들 가운데 刹那(찰나)와 相續(상속)을 따로 검색하면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모두를 열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刹那相續(찰나상속)으로 검색을 해도『아비달마 대비바사론』에서는 “前剎那由後剎那 說名相續故名剎那相續(전찰나유후찰나 설명상속고명찰나상속)” 등으로,『아비달마 순정리론』에서는 “又何緣力 前後剎那相續有異(우하연력 전후찰나상속유이)” 등으로 『유가사지론』에서는 “當知剎那相續流轉 非一非常(당지찰나상속유전 비일비상)” 등으로,『구사론기』에서는 “剎那剎那相續生時(찰나찰나상속생시)” 등으로 150번이 넘게 조회가 된다.
그리고 찰나와 상속, 특히 상속은『아비달마 구사론』제9품「파집아품」(破執我品)에서 자아 등의 실체가 있다는 삿된 견해를 척파하는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온의 상속’, ‘제온의 상속’, ‘오온의 상속’, ‘유루온의 상속’ ‘찰나 생멸하는 제행의 불이(不異)의 상속’이라는 표현이『아비달마 구사론』제9품에는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아비달마 구사론』권오민 역, 제4권 1340쪽 등과 특히 제4권 1379~1380쪽을 참조할 것.)
이 찰나의 상속을 드러내고 있는 조건이 등무간연(더욱 틈 없는 조건)인데 이것은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 공히 강조하고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이 찰나와 상속은 대승불교의 아비달마인 유식으로 그대로 전승되어서 유식의 가장 중요한 이론인 식전변설로 전개된다. 세친 스님의 제자인 안혜(sthiramati) 스님은『유식삼십송』의 안혜석(安慧釋)에서 전변(轉變, parināma)을 ‘다르게 됨[變異性, anyathātva]’이라고 정의한 뒤 인의 찰나[因刹那]가 소멸됨과 동시에 인의 찰나와는 특징이 다른(vilakṣana) 과(果)의 [찰나]가 일어나는 것이 전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유식의 여러 주석서에서는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현행훈종자(現行薰種子),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구조로 식전변을 멋지게 설명하고 있다.(『성유식론소초』등) 이처럼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대승 아비달마인 유식도 유위법을 찰나와 흐름[相續]으로 설명해 낸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사무치지 못하면 아비담마와 유식은 한낱 고승들의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게 될 수 있으니 두려운 일이다.
나아가서 윤회는 이러한 찰나생․찰나멸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그래서『청정도론』등은 “무더기[蘊]와 요소[界]와 장소[處]의 연속이요, 끊임없이 진행됨을 윤회라고 한다.”(Vis.XVII.115; DA.ii.496; SA.ii.97)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유성질[自性, sabhāva]과 찰나[刹那, khaṇa]는 아비담마를 구성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된다. 역자들은 이것을 아비담마의 두 가지 공리(公理)라고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강조한다. 유위법들은 ① ‘고유성질을 가진 것[任持自性, sabhāvaṁ dhāreti]’이고 ②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찰나에 대한 고찰을 마무리한다.
7.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그러면 아비담마는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를 간략히 살펴보자.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부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왓티의 급고독원(기원정사)에 머물기 시작하시면서부터 후반 20여 년간은 법의 체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노력의 흔적은 특히『상윳따 니까야』에서 볼 수 있다.『상윳따 니까야』나『맛지마 니까야』나『앙굿따라 니까야』경들의 절반 정도나 그 이상이 급고독원에서 설해졌다는 것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율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하나하나 제정하여 점점 체계화되어왔으며 부처님 재세 시부터 이미『빠띠목카 숫따』(Pātimokkha Sutta)로 정착이 되어서 학습계목(sekhiya)을 제외한 150여 조목은 비구들이 포살일에 함께 합송하여왔음이 분명하다. 한편『숫따니빠따』의 제4장과 제5장에 해당하는「앗타까 품」과「도피안 품」은 부처님 재세 시에도 아주 일찍부터 비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암송되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일차 결집에서 법(Dhamma)과 율(Vinaya)이란 타이틀로 합송되어서 전승된 것이다. 특히 부처님께서 강조해서 사용하신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의 용어는 이미 4부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체계화되어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후반부와 입멸 직후에는 이런 중요한 용어와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특히 중요시되었음이 분명하다.『디가 니까야』의「합송경」(Saṅgīti Sutta, D33)과「십상경」(十上經, Dasuttara Sutta, D34)에는 많은 법수(法數)들이 체계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전통은 자연스럽게 상좌부 칠론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위방가』[分析論, Vibhaṅga]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경장과 율장에서는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로 부르고 있다. 먼저『맛지마 니까야』에는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두 비구가 있어 아비담마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각자 받은 질문에 대답하며 그칠 줄을 모르고 그들의 대화는 법에 근거하여 계속됩니다.”(M32 §15)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 비구가 아비담마에 대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M103 §3)로 나타나는데 이럴 경우에는 뜻(attha)과 표현(byañjana)으로 두 사람의 견해를 화합시켜야 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굴릿사니 경」(M6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에 전념해야 합니다.”(M69 §17)라고 대중들을 경책하고 있다.
그 외 율장과『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단어는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법과 율을 배우고 공부하고 지니는 것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불멸 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라는 문헌군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비위나야 문헌은 발전이 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율장 자체에서 이미 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논모(論母, 논의의 주제)로 옮기고 있는 마띠까(Mātikā)로 자연스럽게 발전되었음이 분명하다. 마띠까는 문자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matrix(자궁, 모체)란 말과 같은 어원인데 어머니를 뜻하는 ‘mātā(Sk. mātṛ)’에서 파생된 말로, 문자적인 뜻 그대로 ‘어머니에 속하는’의 의미이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계율의 조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마띠까는 사실 율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율장에서는 빠띠목카[戒目]를 마띠까로 불렀다. 뒤에는 부처님 말씀도 법수(法數)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마띠까로 전승되어 오다가 여기에 설명을 붙이면서 아비담마 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늦어도 3차 결집 때까지는 이 마띠까에 대한 정의와 상세한 주석과 분석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장의 칠론(七論)으로 완성되었다고 보아진다. 이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상좌부 칠론이 정착된 것이다. 지금의 상좌부 아비담마 칠론이 최초로 완성된 형태로 언급되는 곳은 상좌부 소전의『밀린다빤하』(밀린다왕문경)의 서문 부분이다.
8. 아비담마 발전의 세 단계
불교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비담마 문헌은 역사적으로 세 단계를 통해서 발전하여 왔다. 그것은 ① 아비담마 삐따까 ― 논장의 칠론 ②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 ― 앗타까타(주석서)와 띠까(복주서)를 포함한 칠론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 ③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槪說書)이다.
여기서 ①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는 논장으로 번역이 되며 상좌부 논장의 칠론을 뜻하고 늦어도 3차결집 이전에는 완성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 ②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은 논장 칠론에 대한 주석서로 싱할리어로 전승되어온 고주석서를 토대로 5세기 무렵에 붓다고사 스님이 3권으로 완성한 것과 여기에 대한 띠까(복주서)와 아누띠까들(복복주서)을 말한다. ③ 이처럼 방대하고 어려운 논장 칠론과 여기에 대한 주석서들을 토대로 아비담마 교학 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필요에서 주석서 문헌과 같은 시기나 그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들이다.
이제 이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⑴ 아비담마 삐따까 ― 상좌부 아비담마 칠론(七論)
그러면 논장(Abhidhamma Piṭaka)의 칠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자.
①『담마상가니』[法集論, Dhammasaṅgaṇī]:
법(dhamma)의 갈무리(saṅgaṇī)로 옮길 수 있는『담마상가니』는 빠알리 삼장의 논장에 속하는 일곱 가지 논서[七論, satta pakaraṇāni] 가운데 첫 번째 문헌이다.
『담마상가니』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①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분류하여『담마상가니』의 논의의 주제를 총괄적으로 밝히고 있는 마띠까(mātikā), ② 정신[名, nāma]을 구성하는 법들을 다양한 마음을 중심으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 ③ 물질을 한 개 조부터 열한 개 조까지의 279개의 마띠까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는 제2편 물질 편, ④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구성된『담마상가니』마띠까 164개 전체를 간략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제3편 간결한 설명 편, ⑤ 164개 마띠까 가운데 경장의 마띠까 42개를 제외한 122개 논장의 마띠까의 의미를 주석의 방법으로 밝히고 있는 제4편 주석 편이다.
『담마상가니』의 중요성은 특히 아비담마의 전체 골격을 드러내어 주는 그 마띠까에서 찾아야 한다.『담마상가니』의 마띠까는 선․불선․무기로 시작하는 세 개 조(tika)로 된 22개와 두 개 조(duka)로 된 100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전체 법수를 일관성 있게 개괄한 것이다. 마띠까의 측면에서 보자면『담마상가니』제1편과 제2편은 164개 마띠까 가운데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라는『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에 대한 설명이다.
②『위방가』[分析論, Vibhaṅga]:
vibhaṅga라는 단어는 vi(분리해서)+√bhaj(to divid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분석, 분해, 해체, 분별’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주요 가르침을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 기능[根], 진리[諦], 연기[緣], 염처(念處) … 의 18가지 장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이미『맛지마 니까야』등의 경에서도 다수 등장하고 있는데 부처님 재세 시부터 법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불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자연스럽게『위방가』로 결집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위방가』의 원형은 칠론 중에서 제일 먼저 결집되었다고 간주한다.
『위방가』의 각 장들은 대부분 각각 ‘경에 따른 분류(Suttanta-bhājanīya)’와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Abhidhamma-bhājanīya)’와 ‘질문을 제기함(Pañhā -pucchaka)’으로 나누어서 전개되는데 경에 따른 분류는 니까야의 정형구를 의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는 아비담마에서 정착시킨 정형구에 토대를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질문을 제기함’은『위방가』14장, 16장, 17장, 18장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분류법인데『담마상가니』제1권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122개의 아비담마 마띠까를 통해서『위방가』의 14가지 주제들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법수(法數)들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살펴보는 품이다.
③『다뚜까타』[界論, Dhātukathā]:
‘요소(dhātu)들에 관한 가르침(kathā)’으로 번역되는『다뚜까따』는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āyatana]․요소[界, dhātu]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의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서는 이런 온․처․계의 분석으로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척파하기 위한 것이다.
④『뿍갈라빤냣띠』[人施設論, Puggalapaññatti]:
제목이 암시하듯이 여러 형태의 개인에 대해서 일부터 열까지의 법수로서 논의하고 있다. 빤냣띠는 아비담마의 근본주제가 아닌 세속적인 ‘개념’이나 ‘명칭’을 뜻하며 그래서 시설(施設)이라고 한역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의 개인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법수에 따라서 모아져 있으며 그래서 형식상『디가 니까야』의「합송경」(D33)이나「십상경」(D34)이나『앙굿따라 니까야』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결집된 형태나 내용으로 봐서 논장에 포함되기보다는 경장에 포함되어야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⑤『까타왓투』[論事, Kathāvatthu]:
칠론 중에서 부처님이 설하지 않으신 것으로 전승되어온 책이다. 이 논서는 3차 결집을 주도한 목갈리뿟따 띳사(Moggaliputta Tissa) 장로가 다른 부파의 견해를 논파하고 상좌부의 견해를 천명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으로 알려졌으며 부파불교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⑥『야마까』[雙論, Yamaka]:
아비담마의 전문용어의 애매하고 잘못된 사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집된 논서이며 문제 제기를 항상 쌍(yamaka)으로 하기 때문에『야마까』(쌍론)라 이름을 지었다.
⑦『빳타나』[發趣論, Paṭṭhāna]:
마하빠까라나(Mahā-pakaraṇa, ‘큰 책’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얀마 아비담마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논서로 취급하고 있다. 총 5권의 2,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담마상가니』제1권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 100개 전체에 대해서 24가지 조건(본서 제8장 §11 참조)을 적용시키고 있는 난해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스님들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유산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중요한 날들에 우리나라 절에서 철야기도를 하듯이 이『빳타나』를 암송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여러 스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읽어 총 80시간 이상을 독송해야 전체를 다 읽어낼 수 있다.
⑵ 아비담마의 주석서 문헌들
① 아비담마의 주석서들(Abhidhamma Aṭṭhakathā)
이런 방대한 아비담마 논서들, 즉 논장의 칠론은 다시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서 5세기경에 세 권의 주석서로 장엄이 되었다. 이 가운데서『앗타살리니』(Atthasālinī)는 칠론의 첫 책인『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이고『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ī)는 두 번째인『위방가』의 주석서이다. 세 번째인『빤짜빠까라나 앗타까타』(Pañcappakaraṇa Aṭṭhakathā)는 말 그대로 나머지 다섯 가지(pañca) 책(pakaraṇa, 논서)의 주석서이다.
전통적으로 이들 주석서들은 모두 그 이전에 있었던 싱할리 주석서들과 안다라(Andhara, 인도의 안드라쁘라데시와 타밀나두 지역)의 주석서(Andhaka- aṭṭhakathā) 등을 토대로 붓다고사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양 학자들은 붓다고사 스님의 편찬이라는 데 의문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세 아비담마의 주석서들은『청정도론』을 위시한 네 가지 경장의 주석서들과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논장의 이 세 주석서들은 붓다고사 스님의 감수하에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특히『앗타살리니』는『마하왐사』(Mahāvaṁsa) 등의 빠알리 역사서에 근거하여 붓다고사 스님이 인도에 있을 때 지은 것인데 후에 스리랑카로 건너와서 대사(大寺, Mahāvihāra)파의 싱할리 주석서들을 참고하면서 다시 고쳐 쓴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 세 주석서들이 붓다고사 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청정도론』을 참고할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청정도론』에서 이미 설명한 부분은 주석을 깊이 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붓다고사 스님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 오히려 주석서라는 문헌의 성격이 주석을 다는 그 책의 내용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방대한 양의 모든 주석서들이 한 부분에서도 견해를 달리하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붓다고사 스님 시대가 그 이전에 상좌부에서 전승되어오던 모든 견해들을 빠알리 주석서로 정착화시키는, 어찌 보면 온갖 견해가 난무하던 때라서 주석서마다 다른 견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아주 많을 것이다. 또한 붓다고사 스님 스스로도 세월이 가면서 자신의 견해나 관점이 더 정교해지면서 초기에 결집한 주석서가 후대에 결집한 것과 다른 견해를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석서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다.
이 아비담마 주석서들은 아비담마가 상좌부에서 정교한 틀로 정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책이다. 이들은 칠론에 버금갈 정도로, 어쩌면 칠론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는 책일지 모른다. 법들의 고유성질을 정의하고 설명하고 논의하는 것은 주석서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주석서들을 통해서 상좌부 아비담마의 방대한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상좌부 아비담마가 완성된 체계로 정착되기까지 있었던 무수한 견해들을 정리해내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 학계가 소화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② 아비담마의 복주서(Ṭīkā) 및 복복주서(Anuṭīkā)
한편 이 논장의 주석서들에 대한 복주서들(Ṭīkā)은 붓다고사 스님과 몇 십 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아난다(Ānanda) 스님에 의해서 역시 세 권으로 쓰여졌다. 아난다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의 정통 견해와는 다른 여러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난다 스님의 복주서들은 빠알리로 쓰여진 문헌들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책에 속한다고 정평이 나 있으며 띠까 문헌들 중에서도 최초의 책들이다. 그래서 물라띠까(Mūlaṭīkā)라 불린다. mūla는 근원이나 뿌리라는 말이다.
이 책들은 다시 아난다 스님의 제자이거나 적어도 영향을 많이 받은 스님이라고 여겨지는 대주석가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이 아누띠까(Anuṭīkā)로 주석하였다. 상좌부의 본산인 대사(大寺, Mahāvihāra)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와 상충되는 아난다 스님의 견해들을 논박하고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이렇게 해서 상좌부 아비담마 불교는 완성이 되기에 이르렀고 남방 상좌부의 세 파들 가운에서 대사파가 완전히 교리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담마빨라 스님의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역자(대림 스님)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청정도론』의 대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ñjūsā)를 읽으면서 담마빨라 스님의 예지에 감탄을 하였다.
⑶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들
이렇게 방대하게 아비담마 논서들은 주석에 주석을 거듭하면서 발전되어왔다. 그러므로 이런 상좌부 칠론과 주석서와 복주서와『청정도론』등의 방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헌을 접하면서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초심자에게는 현애상을 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이 실하게 요구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미 5세기 때부터 많은 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최초는 아마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이 지은『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āvatāra, 아비담마 입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담마빨라 스님의『빠라맛타만주사』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칠론이나 그 주석서들이나 복주서들과 관계없는 독립된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말하는 미얀마에서는 다음 9권의 아비담마 책을 들고 있다.
①『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a-avatāra): 이 책은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의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의 저술이다.『아비담마 아와따라』는 모두 1,416개의 운문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24개의 장으로 나누어지고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과 열반의 순서로 구경법들을 설명한다. 여기서 마음은『담마상가니』처럼 유익한 법들․해로운 법들․결정할 수 없는 법들[善․不善․無記]의 순서로 설명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마띠까를 중심에 두고 아비담마의 법수들을 차례대로 설명한 뒤에『청정도론』의 핵심 주제인 칠청정(七淸淨)을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②『루빠아루빠 위바가』(Rūpārūpa-vibhāga): 이 책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③『삿짜 상케빠』(Sacca-saṅkhepa): 쭐라 담마빨라(Cūḷa Dhamma- pāla)라 알려진 스님의 저술이며 387개의 운문으로 저술되었다. 본서는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온의 순서에 초점을 맞추어 82법과 개념(paññatti)까지 설명하고 있다.
④『케마 빠까라나』(Khema-pakaraṇa): 나마루빠 사마사(Nāmarūpa -samāsa)로도 알려진 이 책은 케마 스님이 지은 산문 위주의 간단한 책이다. 12세기에 이 책에 대한 주석서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보고 있다.
⑤『아비담맛타상가하』(Abhidammattha Saṅgaha): 본서.
본서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을 위시한 법들을 전통적인 분류 방법인 선․불선․무기의 순서로 설명하지 않고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의 경지를 통해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상좌부 아비담마의 설명은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⑥『나마루빠 빠릿체다』(Nāmarūpa-pariccheda): 역시 아누룻다 스님의 저작으로 13장에 총 1,845개의 운문으로 되어 있다.
⑦『빠라맛타 위닛차야』(Paramattha-vinicchaya): 이 책 역시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책의 후기에 남인도의 깐찌뿌라(Kañcipura)에 있는 까위라(Kāvīra)라는 읍에서 태어난 자가 지었다는 내용을 근거로 아누룻다 스님은 인도 출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유명한 학승이셨던 붓다닷따 스님은 이 책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과『아비담맛타상가하』와『나마루빠 빠릿체다』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⑧『모하 윗체다니』(Moha-vicchedanī): 이 책은 12세기 뽈론나루와 불교 시대의 거장이었던 깟사빠(Kassapa)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논장의 칠론에 실린 마띠까들 전체에 대한 주석을 담고 있는 중요한 책이다.
⑨『나마짜라 디빠까』(Nāmacāra-dīpaka): 이 책은 15세기에 미얀마 바간(Bagan)에 거주하던 삿담마 조띠빨라(Saddhamma-Jotipāla) 스님이 쓴 책이다.
이외에도 그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스리랑카와 태국, 특히 미얀마에서 저술되었다. 이렇게 아비담마는 역사적으로 내로라하는 많은 스님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음미되면서 체계화되었고 후학들에게 전승되었다. 사실 이런 아비담마의 모든 책들을 다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후대로 내려오면서 특히 미얀마에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한 권만을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다. 아비담마를 담고 있는 모든 책들 가운데 아비담마의 주제들을 체계적이고 간결하면서도 빠짐없이 서술한 책으로 본서를 능가할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깟짜야나 문법서』(Kaccāyana-byākaraṇa)와 본서를 강원에서 반드시 외워야 하는 책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아비담맛타상가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9. 『아비담맛타상가하』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에 대해서
불교의 인물들이 대부분 다 그러하듯이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자료는 거의 없다. 주변의 여러 정황들을 참조하여 추측할 뿐이다. 먼저 이『아비담맛타상가하』가 빠락까마바후 1세(1153~1186) 때의 뽈론나루와 불교 부흥의 주역이었던 사리뿟따 스님에 의해서 싱할리어로 옮겨진 증거가 있으므로 12세기 이후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17세기 무렵에 미얀마에서 만들어진 불교 역사서인『간다왐사』(Ganda -vaṁsa)에서 본서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을 스리랑카 출신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후기에서 아누룻다 스님은 스리랑카에 있는 것이 분명한 물라소마 승원(Mūlasoma Vihāra)에서 본서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스리랑카 출신 학자들은 아누룻다 스님을 스리랑카 사람으로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로 알려진『빠라맛타 위닛차야』(Paramattha-vinicchaya)의 후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남인도 깐찌뿌라 출신이라고 되어 있음을 근거로 아누룻다 스님이 인도 출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세기 초반 스리랑카의 대학승이셨던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은『빠라맛타 위닛차야』가 다른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A. K. Wader도 그의 Indian Buddhism에서 이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다.
10.『아비담맛타상가하』의 구성
이제 본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자.『아비담맛타상가하』는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아주 체계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마음(citta)의 길라잡이에서는 마음이 일어나는 경지(bhūmi)와 불선․선․무기라는 마음의 종류(jāti)의 차이 등에 따라서 마음을 89/121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제2장 마음부수[心所, cetasikā]의 길라잡이에서는 52가지 마음부수들을 공통되는 것 13가지, 해로운[不善] 것 14가지, 유익한[善] 것 25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떤 마음부수들이 일어나는지를 조합(saṅgaha)의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마음부수는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지를 결합(sampayoga)의 측면에서 관찰하고 있다.
제3장 일반적인 항목(pakiṇṇaka)의 길라잡이에서는 89가지로 분류되는 마음을 느낌, 원인, 역할, 문, 대상, 토대의 여섯 가지 다른 측면에서 다시 고찰해 보고 있다. 특히 마음의 역할 14가지는 상좌부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이며 이것을 이해해야 제4장의 인식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제4장 인식과정(vīthi-citta)의 길라잡이는 인식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는데 마음(citta)은 매 찰나에 어떤 과정으로 대상을 인식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가히 상좌부 아비담마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하겠다. 이런 인식과정은 설일체유부의 칠론을 비롯한 북방 아비다르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독창적인 것이다.
제5장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vīthi-mutta)의 길라잡이는 이런 인식과정을 벗어난 재생연결(paṭisandhi)과 바왕가(bhavaṅga)와 죽음의 마음(cuti- citta)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중생들의 거처를 악도에서부터 욕계․색계․무색계의 31가지 세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시 이들 세상에 태어나는 동력인(動力因)으로서 업을 16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생연결에 대한 분명한 이론을 제공하고 있다.
제6장 물질(rūpa)의 길라잡이는 28가지 물질을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과 24가지 파생된 물질로 나누고 이런 물질들을 다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물질이 생기는 요인인 업(kamma), 마음(citta), 온도(utu), 음식(āhāra)과 이들로부터 생긴 물질들을 논의하고, 물질의 무리(깔라빠, kalāpa)와 물질이 존재하는 요인 등 물질에 관한 여러 측면을 나열하고 있다. 무위법인 열반도 제6장의 뒷부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다.
제7장 범주(samuccaya)의 길라잡이에서는 다시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과 열반을 ① 향상과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법들의 범주 10가지 ② 선․불선․무기가 혼합되어 있는 범주 7가지 ③ 깨달음의 편에 있는 것들[菩提分] 7가지 ④ 불교에서 일체를 설명하는 방법인 온․처․계․제(蘊․處․界․諦)의 4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법들을 모두 28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제8장 조건[緣, paccaya]의 길라잡이는 조건을 ① 12연기와 ② 24가지 빳타나(상호의존관계, paṭṭhāna)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연기법을 삼세양중인과로 설명하고 있으며,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 간의 상호의존관계를 24가지 빳타나로써 설명하고 있다. 구경법이 아닌 개념들[施設, paññatti]도 제8장의 말미에서 설명하여 아비담마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모두 본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9장 명상주제(kammaṭṭhāna)의 길라잡이에서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수행을 통해 성자의 경지[聖位]를 증득하는 방법으로서 사마타[止, samatha]와 위빳사나[觀, vipassanā]를 제시하고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핵심 개념들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11.『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들
거듭 말하지만『아비담맛타상가하』는 대부분이 아비담마의 주제(아비담맛타)들을 간략한 정의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나열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초보자가 아무런 해설서 없이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주석서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주석서는 12세기 스리랑카의 나와위말라붓디(Navavimala -buddhi)가 지은 Porāṇa Ṭīkā(오래된 복주서)인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①『위바위니 띠까』(Abhidhammattha Vibhāvinī Ṭīkā):
『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아비담맛타상가하』를 이해하는 부동의 준거로 자리한 것은『위바위니 띠까』(Abhi –dhammattha Vibhāvinī Ṭīkā)이다. 이 책은 12세기 스리랑카의 수망갈라사미(Sumaṅgalasāmi) 스님이 썼는데 앞에서 언급한 논장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는 담마빨라 스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깊이 있게 정리되어 고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본『아비담맛타상가하』뿐만 아니라『위바위니 띠까』는 이런 담마빨라 스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아비담마를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위바위니 띠까』가 등장하자 다른 주석서들은 빛을 잃어버렸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해서 900여 년간 상좌부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기본 서적으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②『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
그러다 1897년에 근세 미얀마가 낳은 최고의 지성이요 큰스님이며 아비담마와 위빳사나의 대가였던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1846~1923)가『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를 발표하자 아비담마 대가들 사이에서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게 되었다. 레디 사야도는 무려 325군데에서『위바위니 띠까』의 잘못과 애매함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아비담마 대가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분들은『위바위니 띠까』를 변론하고 어떤 분들은『빠라맛타디빠니 띠까』를 옹호했으며 어떤 분들은 절충을 하였다. 지금 아비담마 학계(사실은 미얀마의 아비담마 대가 스님들)는 어떤 부분은『위바위니 띠까』가 더 타당하고 다른 어떤 부분은 레디 사야도가 더 타당하다는 식으로 정(正)과 반(反)을 지나 합(合)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처럼『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근세에 아비담마의 이해를 깊게 한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바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위바위니 띠까』와 쌍벽을 이루는 주석서로 자리 잡아버렸다. 레디 사야도는 1916년에 다시 이『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 대한 복주서인『아누디빠니』(Anudīpanī)를 발표했다. 본『아비담마 길라잡이』의 해설 부분은『위바위니 띠까』와 특히 레디 사야도의『빠라맛타디빠니 띠까』의 설명을 CMA의 도움으로 정리한 것에다『청정도론』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여 넣은 것을 중심으로 하였다.
12. 각 장의 요점
『아비담맛타상가하』는 아비담마의 핵심 주제를 간결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각 장에서 그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역자들이 파악한 각 장의 요점을 여기에 적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 제1장 마음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먼저 마음(citta)은 찰나생․찰나멸이라는 점에 사무쳐야 한다. 마음과 마음의 흐름[心相續, citta-santati]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세간적인 차원에서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마음의 흐름, 즉 마음들이 찰나적으로 생멸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아비담마의 마음은 한 찰나에 생겼다가 멸하는 것이다. 마음은 한 찰나에 일어나서 대상을 아는 기능을 수행하고 멸한다. 그러면 그다음 마음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이렇게 마음은 흘러간다. 이들은 너무나 빠르게 상속하기 때문에 보통의 눈으로는 각각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⑵ 아비담마에서 마음은 항상 ‘대상(ārammaṇa)을 아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은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써 오직 하나의 고유성질을 가진다. 마음은 일어나서 대상을 인식하는 기능을 하고서 멸한다. 그러면 인식과정의 법칙(niyama)에 따라 다음 찰나의 마음이 일어난다. 아비담마 전체에서 ‘마음은 대상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므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대상 없이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⑶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써는 하나이지만 ① 일어나는 경지(bhūmi)에 따라서 욕계 마음․색계 마음․무색계 마음․출세간 마음으로 분류가 된다. ② 마음은 다시 그 종류(jāti)에 따라서 넷으로 분류가 되는데 ‘해로운 것[不善, akusala]’, ‘유익한 것[善, kusala]’, ‘과보인 것(과보로 나타난 것, vipāka)’, ‘작용만 하는 것(kiriya)’이다. 이 넷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⑷ 마음은 항상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나는데 관련된 주요한 마음부수들의 특징에 따라서 더 세분해서 나누고 있다. 예를 들면 해로운 마음들은 12가지로 나누는데 탐욕에 뿌리박은 것 8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것 2가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것 2가지로 구분한다.
⑸ 이렇게 하여 ‘일어나는 경지(bhūmi)’, ‘종류(jāti)’, ‘관련된 주요한 마음부수들’에 따라서 모두 89가지로 분류가 된다. 그리고 출세간의 8가지 경지 각각이 5종禪 가운데 각각 어떠한 禪의 경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8×5=40이 되므로 89가지 마음은 89-8+40=121가지 마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⑹ 89/121가지 마음들 가운데서 초심자들이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18가지 ‘원인 없는 마음들(ahetuka-cittā)’인데 제4장 인식과정(vīthi-citta)을 이해하면 해결되므로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음미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단 이 18가지 마음들을 바르게 이해하면 아비담마는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제2장 마음부수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마음부수들은 항상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며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진다.”(제2장 §1)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⑵ 마음부수들은 모두 52가지인데 다른 것과 같아지는 것 13가지, 해로운 것 14가지, 유익한 것 25가지로 구성된다. 이 다른 것과 같아지는 것 13가지는 같이 작용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이 해로운 것이면 해로운 것이 되고 유익한 것이면 유익한 것이 되므로 이런 이름으로 분류를 했다. 이 가운데서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기능, 마음에 잡도리함’의 7가지는 모든 마음과 항상 같이 일어난다.
⑶ 52가지 마음부수법들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비슷비슷한 마음부수들, 예를 들면 양심과 수치심, 마음챙김과 마음에 잡도리함 등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음부수법들을 매 순간 내 안에서 분명하게 찾아내어 확인하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토대가 된다.
⑷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이렇게 항상 같이 일어나고 같이 멸한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부수들은 어떤 마음들과 함께 일어나며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떤 마음부수들이 같이 일어나는가를 자세하게 분석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52가지 마음부수가 어떤 마음들과 같이 일어나는가를 분석하는 것을 결합(sampayoga)의 방법이라 하고 89/121가지 마음이 어떤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나는가를 고찰하는 것을 조합(saṅgaha)의 방법이라 한다. 결합과 조합을 통해서 마음↔마음부수들이 자유롭게 짝지어지도록 해야 한다.
· 제3장 일반적인 항목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본 장에서는 마음을 다시 ‘느낌, 원인, 역할, 문, 대상, 토대’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고 있다. 이것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개념들이며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특히 마음의 14가지 역할과 마음의 6가지 대상은 더욱더 중요한 개념이다.
⑵ 제1장에서 마음은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써는 오직 하나이지만 일어나는 경지와 종류와 관련된 마음부수들에 의해서 89/121가지라고 했다. 이런 마음은 다시 14가지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그것은 ① 재생연결 ② 존재지속 ③ 전향 ④ 봄 ⑤ 들음 ⑥ 냄새 맡음 ⑦ 맛봄 ⑧ 닿음 ⑨ 받아들임 ⑩ 조사 ⑪ 결정 ⑫ 속행 ⑬ 여운 ⑭ 죽음이다. 제3장의 해설들을 통해서 이 14가지를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⑶ 거듭 강조하지만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핵심 명제이다. 불교에서 대상은 형색[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마노의 대상인] 법(法)의 여섯 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마노의 대상인 법은 6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① 감성(pasāda)의 물질 ② 미세한 물질(sukhuma -rūpa) 16가지 ③ 이전의 마음(citta) ④ 마음부수(cetasikā) 52가지 ⑤ 열반(nibbāna) ― 유학(有學)과 아라한[無學]에게만 ⑥ 개념들[施設, paññatti]이다. 나의 마음은 매찰나 이 여섯 가지들 중의 어떤 것을 대상으로 삼아서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해 보려 노력할 때 아비담마가 위빳사나요 위빳사나가 아비담마가 될 것이다.
⑷ 문에 따라서 관찰해 보면 눈․귀․코․혀․몸의 문에서 일어나는 알음알이들, 즉 전오식(前五識)은 모두 현재의 물질적인 대상을 대상으로 취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대상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속하는 것이며 시간을 벗어난 것, 즉 열반과 개념도 포함된다.
· 제4장 인식과정의 길라잡이의 요점
인식과정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백미이다. 다음 몇 가지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⑴ 인식과정은 크게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오문(五門)인식과정과 마노[意]의 대상을 인식하는 의문(意門)인식과정으로 나누어진다.
⑵ 상좌부에서는 물질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과 마음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상좌부에서는 물질이 머무는 아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정의한다.
⑶ 그러므로 오문인식과정에서, 예를 들면 눈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대상’을 두고 17번의 마음이 생멸한다. 이것도 대상에 따라서 ① 매우 큰 것 ② 큰 것 ③ 작은 것 ④ 매우 작은 것의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며 이것은 다시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져 총 15가지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기서 크고 작다는 말은 물질적인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충격을 주는 힘의 ‘강약’을 나타낸다.
⑷ 매우 큰 대상일 경우에 17번 일어나는 마음들은 바왕가(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오문전향, 전오식, 받아들임, 조사, 결정, 일곱 번의 자와나(속행), 두 가지 여운이다. 이 가운데서 15가지 인식의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키워드는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인데 이것은 대상이 나타났지만 그 대상의 충격이 미약하여서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충격이 매우 작은 대상들은 바왕가의 동요만 일으키고 인식과정이 끝나 버린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마지막 15번째 경우에는 대상이 문으로 들어왔는데도 15번째의 심찰나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흘러가 버려 겨우 두 번만 바왕가의 동요가 일어나고서 인식과정이 끝나 버리는 경우이다. 이렇게 15가지를 음미해 보기 바란다.(<도표 4.2> 참조)
⑸ 의문인식과정은 오문인식과정보다 단순한데 그 이유는 오문전향, 전오식, 받아들임, 조사, 결정의 과정이 없이 의문전향 다음에 바로 자와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노[意]의 대상은 이처럼 즉각적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의문인식과정은 마노의 대상에 따라 선명한 것과 희미한 것의 둘로 나누어진다.
⑹ 이런 관점에서 본삼매 속행과정도 본문을 보면서 숙지하면 된다.
⑺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각각의 인식과정은 반드시 하나 이상의 바왕가, 즉 존재지속심을 거쳐서 그다음의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 제5장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인식과정이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이라면 인식과정을 벗어난 것은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들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바왕가(존재지속심)와 재생연결식과 죽음의 마음이 포함된다.
⑵ 본 장은 재생연결의 과정, 즉 윤회의 과정을 윤회하는 세상과 윤회하는 재생연결식과 죽음과 그 원동력이 되는 업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⑶ 저자는 이러한 윤회의 원리와 과정을 심도 있게 설명하기 위해 먼저 유정들이 태어나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상을 31가지로 분류하고(§§3~17) 이런 세상에 태어나는 동력인으로서 업(kamma)에 대해 상세하게 열거한 뒤(§§18~33) 죽음과 재생연결의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34~42)
⑷ 특히 마음의 흐름과 재생연결의 원동력인 업에 대해서 16가지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제시하는 업설(業說)을 나 자신의 삶에 비추어서 이해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⑸ 이런 이해를 토대로 하여 본 장에서는 ① 죽음과 재생연결의 과정과 ② 바왕가를 중심한 마음의 상속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죽음과 재생연결은 중요한 부분이니 숙지해야 한다.
· 제6장 물질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상좌부 아비담마는 물질을 총 28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⑵ 이 중에서 18가지는 구체적 물질(nipphanna-rūpa)이라 하고 나머지 10가지는 추상적 물질(anipphanna-rūpa)이라 한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구체적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에서 생긴 물질이고 추상적 물질은 허공, 몸의 암시와 말의 암시, 물질의 가벼움․부드러움․적합함, 그리고 물질의 생․주․이․멸을 말하며 이 추상적인 것들을 상좌부 아비담마는 물질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⑶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으로 인하여 생긴다.
⑷ 물질에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avinibbhoga, 즉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개념이다. 아비담마에서는 지․수․화․풍 사대(四大)와 형색[色, rūpa], 냄새[香, gandha], 맛[味, rasa], 영양소(ojā)의 여덟 가지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용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은 항상 서로 묶여서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아주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적인 것에 현현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ojaṭṭhamaka, 즉 영양소를 여덟 번째로 한 것이라든가 suddhaṭṭhaka, 즉 순수한 팔원소라는 등의 용어로도 나타난다.
⑸ 아비담마에서 현실적으로 물질은 이런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묶여서 존재한다고 관찰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리지어서 존재하는 것을 깔라빠(kalāpa)라 부른다. 깔라빠는 물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므로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⑹ 그래서 이 세상의 물질은 아주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담마에서 물질의 존재 유형, 즉 깔라빠는 오직 21가지뿐이라고 한다. 욕계와 색계의 모든 물질은 제 아무리 많아도 21가지 형태뿐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외부에 있는 깔라빠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⑺ 이 가운데서 9가지는 업에서 생긴 것이고, 6가지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고, 4가지는 온도에서 생긴 것이고, 2가지는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 물질은 이것뿐이다. 물론 이 가운데 겹치는 것도 있다. 제6장 §§9~15를 참조해서 음미해 보기 바란다.
⑻ 제6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으로 열반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의한다.
· 제7장 범주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여기서는 이때까지 배운 아비담마의 구경법(究竟法)들가운데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제외한 토대가 되는 법들 72가지를 ① 해로운 범주 ② 혼합된 범주 ③ 보리분(菩提分)의 범주 ④ 일체(一切)의 범주로 나누어서 아비담마 칠론, 특히『위방가』에서 정리하고 있는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Abhidhamma-bhājanīya)’과 배대(配對)해서 관찰해 보고 있다.
⑵ 첫 번째 범주로 정리하는 해로운 범주의 길라잡이에는 모두 10개의 모둠이 나타나고 있다. 그 10가지는 ① 번뇌(āsava), ② 폭류(ogha), ③ 속박(yoga), ④ 매듭(gantha), ⑤ 취착(upādāna), ⑥ 장애(nīvaraṇa), ⑦ 잠재성향(anusaya), ⑧ 족쇄(saṁyojana, 경에 따른 분류), ⑨ 족쇄(saṁyojana,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⑩ 오염원(kilesa)이다. 이들은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마띠까[論母, mātikā]에 포함되어 있는 10가지 모둠 가운데, 첫 번째 주제인 ‘원인(hetu)’은 혼합된 범주에 속하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고, 족쇄를 경에 따른 분류와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로 나누어서 해로운 법들을 모두 열 개의 모둠으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다.
⑶ 두 번째 범주로 정리하고 있는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에서는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과 무기(avyākata)의 요소들이 함께 혼합된 여러 범주들을 고찰한다. 그래서 혼합된(missaka)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원인, 禪의 구성요소, 도의 구성요소, 기능[根], 힘[力], 지배[增上], 음식[食]의 일곱 가지 범주가 다루어지고 있다.
⑷ 세 번째 범주인 보리분(菩提分)의 길라잡이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八正道]의 7가지 주제로 정리되는 37보리분법 가운데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의 22가지 기능에 포함되어 있는 다섯 가지 기능[五根]을 제외한 여섯 가지 범주가 정리되어 있다.
⑸ 네 번째 범주인 일체(一切)의 길라잡이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khandha], 열두 가지 감각장소[十二處, āyatana],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 dhātu], 네 가지 진리[四諦, sacca], 즉 온․처․계․제의 네 가지 주제를 들고 있다. 초기불교 교학의 주제인 온․처․계․근․제․연의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 근은 이미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에서 설명이 되었고 연은 제8장 조건의 길라잡이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 네 가지만을 여기 일체의 길라잡이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 제8장 조건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조건(paccaya)이라는 제목하에 저자는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방법과 상호의존관계(paṭṭhāna)의 방법을 들고 있다.
⑵ 연기의 방법에서는 연기의 12가지 구성요소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즉 삼세에 걸친 인과의 반복적 지속의 측면에서 설명하며 상호의존관계의 방법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을 들고 있다.
⑶ 이 조건의 길라잡이에서 중요한 개념은 ① 조건짓는 법(paccaya- dhamma)과 ② 조건따라 생긴 법(paccaya-upanna-dhamma)과 ③ 조건짓는 힘(paccaya-satti)이다. 레디 사야도는 연기(緣起)는 조건짓는 법과 조건따라 생긴 법의 관계를 중점으로 분석하는 것이고 상호의존관계(빳타나)는 이 둘에다 다시 조건짓는 힘의 측면을 더 중시해서 물․심의 여러 현상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⑷ 상호의존관계(빳타나)는 아비담마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본서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은 이 24가지 상호의존관계를 정신․물질[名色]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6가지 경우(제8장 §§12~18 참조)에 배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⑸ 제8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개념[施設, paññatti]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여 아비담마의 주제를 모두 마무리 짓고 있다.
· 제9장 명상주제의 길라잡이의 요점
이 장은 아비담마를 수행과 연결짓는 중요한 부분이다.
⑴ 저자는 명상주제를 사마타[止, samatha]와 위빳사나[觀, vipassanā]의 둘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모두『청정도론』의 핵심만을 간추린 것이어서 가히 “청정도론 길라잡이”라 부를 만한 멋진 요약이다.
⑵ 먼저 분명히 해야 하는 전제는 사마타의 대상은 개념(paññatti)이고 위빳사나의 대상은 법(dhamma), 즉 구경법이라는 점이다.
⑶ 사마타의 키워드는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사마타는 준비단계의 표상(parikkama-nimitta)을 마음에 잡도리하여서 익힌 표상(uggaha-nimitta)을 얻고 다시 이것이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이 되도록 하여 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마음이 본삼매에 들도록 하는 수행법이다.
⑷ 위빳사나의 키워드는 무상․고․무아라는 법의 삼특상이다. 수행자가 매 순간을 물․심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훈련된 방법으로 이 무상․고․무아를 관찰함[隨觀]으로써 번뇌를 멸절하여 성자의 경지를 증득하고 구경에는 아라한이 되어 완전히 해탈하는 체계가 위빳사나이다.
⑸ 그 외 중요한 개념들은 본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역자들은 특히『청정도론』가운데서 수행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많이 옮겨놓았다.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13. 번역과 해설의 배경 및 방침
상좌부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역자들이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역자들이 미얀마의 사가잉(Sagaing)에 있는 수보다용(Subodhayong, 대림 스님)과 시따구(Sitagu, 각묵 스님)에 머물 때였으며 대림 스님의『청정도론』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두어 달이 지난 2001년 10월에 각묵 스님이 제안을 하면서부터이다. 대림 스님은 박사 과정에서『청정도론』의 주석서인『빠라맛타만주사』의 혜품을 연구했기 때문에『청정도론』도 혜품(XIV장〜XXIII장)부터 번역을 시작했다.『청정도론』번역을 하면 할수록 아비담마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가 없이는『청정도론』혜품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대림 스님은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청정도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아비담마의 개론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청정도론』뿐만 아니라 상좌부 불교를 이해하는 선결 조건이 된다고 판단하고 두 역자가 나름대로 역할을 분담하여 그 작업을 진행하였다.『청정도론』혜품의 일차 번역이 마무리된 12월 말에는 아비담마의 개론서도 거의 틀이 잡혀갔다. 그 후 2002년 1월 한 달을 틈틈이 더 다듬어 봤지만 전체적으로 무리한 곳이 많았다. 특히 아비담마를 우리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청정도론』만으로는 아비담마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이 결여되는 점도 문제였다.
이런 고민 끝에 2002년 2월 중순에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중심으로 다시 전체를 고쳐 쓰고 미흡한 부분은 보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아비담맛타상가하』의 원문을 먼저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을 토대로『청정도론』에서 관련된 부분을 다시 발췌하여 넣고 그동안 준비해둔 글들도 접목시켰다. 그리고 아비담마에 관한 한 제일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편찬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의 설명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참조하였다. 본서를 엮으면서 역자들은 CMA의 정확한 해설에 재삼 감탄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출처는 논장의 칠론을 비롯한 여러 아비담마 주석서들, 특히『위바위니 띠까』와『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발췌하여 보강하였다. 이렇게 해서 2002년 6월 말쯤에는 본서가 거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몸통으로 하고『청정도론』을 날개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역자들은 본서를 준비하면서 다음 사항들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아비담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길라잡이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부동의 길라잡이로 통하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저본으로 택한 것이다. 물론 본서가 아비담마에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는 분들과 빠알리어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어렵다는 점도 역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은 본 역자 서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특히 아비담마에 관한 기본 개념은 역자 서문의 ‘12. 각 장의 요점’과 본서의 목차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아비담마에 관한 간략하고 개괄적인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 초심자가 아비담마를 읽어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비담마는 들어서 배워야 한다. 아비담마의 요점을 몇 번만 강의로 들으면 쉽게 아비담마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역자들 자신이 실감하였다.
둘째, 위빳사나 수행의 제대로 된 지침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상좌부 불교 나라, 특히 미얀마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 체계는 모두 아비담마에 바탕을 하고 있다. 이런 바탕하에서 각 센터마다 지도자 스님들이 여러 가지 독특한 기법을 고안하여 수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여러 물․심의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지금 미얀마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수행기법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먼저 미얀마 역사상 최고의 학승이면서 위빳사나의 대가이셨던 레디 사야도 맥을 들 수 있다. 레디 사야도께서는 빠알리로 22권의 책을 집필하셨고 미얀마어로는 78권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집필하신 미얀마 불교사의 독보적인 분이다. 특히 본『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상좌부 불교 문헌에 길이 남을 명저로 꼽힌다. 그는 위빳사나 수행으로도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이며 그의 4대째 제자가 인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위빳사나 수행을 보급하고 있는 고엔카(S.N. Goenka) 거사님이다.
두 번째로는 마하시 스님 계열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마하시 사야도가 위빳사나의 대가로만 거의 알려졌지만 미얀마에서는 삼장에 능통한 분으로 더 알려졌다. 특히 1966년에서 1968년까지 미얀마어로 번역 출판한『위숫디막가 마하띠까 닛사야』(Visuddhimagga Mahāṭīkā Nissaya, 청정도론 대주석서 대역)는『마하띠까』가 빠알리로 쓰여진 지 거의 1,400여 년 만에 다른 나라 말로 완전하게 번역된 최초의 책으로 꼽힌다. 아직 태국과 스리랑카에는『마하띠까』의 자국 번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으로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은 전 미얀마에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미얀마에서 위빳사나 센터를 개설하여 수행자들을 제접(諸接)하고 계신 스님들은 대부분 마하시 스님의 제자들이다. 이외에도 두어 분을 더 들 수 있겠지만 생략한다.
본서에서 역자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난 세기 미얀마 최고의 인물로 추앙받는 레디 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 두 분 스님은 아비담마에도 최고의 달인들이셨다는 점이다. 이 두 분 스님들이야말로 아비담마에 대한 통찰지가 위빳사나 수행의 큰 디딤돌임을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라 해야 한다. 하물며 후학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아비담마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자칫 테크닉에만 치중하여 자기가 배운 기법만을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고집할 우려가 있고 이 기법이라는 지엽적인 것에 걸려 위빳사나를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로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를 통해서 물․심의 여러 현상을 분석해서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 중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에 속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위빳사나 수행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본서 제9장 명상주제의 길라잡이는『청정도론』의 멋진 요약이다. 역자들은 제9장을 해설하면서『청정도론』가운데서 수행에 요긴한 가르침을 되도록 많이 본서에 인용하고 있다. 위빳사나 수행의 이론적인 배경을 알고자 하는 분에게는 제9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장의 해설도 가능하면 수행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아비담마는 수행의 길라잡이라는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수행이라는 근본을 잃어버리면 아비담마는 그냥 고담준론이나 메마른 해석학에 떨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셋째,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로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reference book)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은 거의 대부분 어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각주를 통해서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있으며『청정도론』을 제외한 인용문은 거의 대부분 빠알리 원문을 각주에서 제시하고 있다. 도표는 CMA에 나타난 것을 참조하였고 많은 부분은 실라난다 스님(U Silananda Sayadaw)의『아비담맛타상가하 강의 교본』에 나타나는 원래의 도표를 참고하여 반영하였다. 본서는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이나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를 알고자 하는 불교 전공자들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넷째, 무엇보다도『아비담맛타상가하』에 나열되고 있는 아비담마의 주제와 가르침을 가능하면『청정도론』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는 것이다.『청정도론』이야말로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전문용어들의 해설은『청정도론』을 인용하고 있다.『청정도론』에 나타나지 않는 설명은 다른 주석서들을 인용하고 있다. 물론 극히 드물게『청정도론』과『아비담맛타상가하』의 관점이 다른 곳도 있다. 예를 들면 물질과 마음의 존속 기간을『청정도론』은 1:16으로 보지만『아비담맛타상가하』와 후대 주석서들에서는 1:17로 정착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관점의 차이일 뿐 결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본서에서 해당되는 부분에서 해설을 달고 있다. 본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제를 따라서『청정도론』의 핵심을 골라서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이면서 “청정도론 길라잡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역자들은 본서를 한국 불교 1,6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상좌부 아비담마를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한 책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란 수행을 중시하는 한국 선불교 전통을 말한다.
14. 주요 용어들의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은 다 그렇겠지만 역자들은 본서를 엮으면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 것인가 하는 데 무척 고심하였고 잘못 옮기지 않았나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이 용어들 가운데서 상당한 부분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정착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한문만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우리말로 풀어 적자니 말이 길어지고 산만해져서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 둘 가운데서 중도를 취해야 하겠지만 역자들은 의논 끝에 일단 정확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우리말이 어색하고 말이 길어지더라도 일단 정확한 이해를 하고 나면 다음에 더 좋은 우리말 역어로 정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해를 기본 신조로 하여 번역과 해설을 하면서 고심을 한 몇 가지 문제를 적어본다.
첫째, 우리에게 생소한 중요한 용어들을 어떻게 해설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였다. 일단 모든 해설은 아비담마 전문용어들의 어원과 기본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능하다면 초기불전에서는 어떤 문맥에서 나타나고 이것이 어떻게 아비담마에서 정착이 되었나 하는 것을 나타내려 하였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해설이 너무 길고 산만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비담마 용어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하는 처음 시도이므로 가급적이면 자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특히 아비담마는 기본 용어의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자기 식의 잘못된 이해에 빠져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용어는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풀어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cakkhu-viññāṇa[眼識] 등은 ‘눈의 알음알이’ 등으로 옮겼다. citta[心]는 ‘마음’으로 cetasika[心所]는 ‘마음부수’로 옮겼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기본 법수가 되는 khandha[蘊]는 ‘무더기’로, dhātu[界]는 ‘요소’로, indriya[根]는 ‘기능’ 혹은 ‘감각기능’으로, āyatana[處]는 ‘장소’ 혹은 ‘감각장소’로 옮겼다. 이렇게 옮긴 배경은 이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에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문 용어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스럽고 짜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문 불교 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많은 곳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 무더기[蘊], 기능[根] 등으로 [ ] 안에 한자를 병기했다. 무리하게 한글식 표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셋째, 선․불선(善․不善)으로 한역한 꾸살라․아꾸살라(kusala-akusal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선(善, kusala)과 불선(不善, akusala)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을 선과 불선과 이 두 개념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無記, abyākata]으로 분류하고, 이 결정할 수 없는 것[無記]을 다시 과보로 나타난 것(vipāka)과 작용만 하는 것(kiriya)으로 나눈다. 이 관점을 놓쳐 버리면 아비담마는 혼란스럽게 된다. 중국에서 kusala를 선(善)으로 akusala를 불선(不善)으로 옮겼다. 이를 중국에서 선․불선(善․不善)으로 옮긴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말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는 선(善)을 ‘착할 선’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심(善心)으로 한역되는 kusala-citta를 ‘착한 마음’으로 옮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착한 마음으로 이해해 버리면 문제가 있다.
꾸살라(kusala)의 원의미는 ‘유익한, 숙련된, 능숙한, 이로운, 좋은’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뜻하지만 초기불전에서 kusala[善]는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akusala[不善]는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역자들은 과감하게 선․불선이라는 역어보다는 우리말로 풀어 적기로 했다. 그래서 kusala[善]는 ‘유익한’으로 akusala[不善]는 ‘해로운’으로 옮겼다. 물론 많은 곳에서 ‘유익한[善]’, ‘해로운[不善]’으로 한자를 병기하여 옮기고 있다.
넷째, 법(法)으로 옮긴 dhamma의 문제이다. 중국에서 法(법)으로 번역을 한 dhamma 혹은 산스끄리뜨 dharma는 達摩(달마), 達磨(달마), 曇摩(담마), 曇磨(담마)로도 음역이 되었다. 앞의 두 가지는 산스끄리뜨어 dharma를 음역한 것이고 뒤의 두 가지는 빠알리어 dhamma를 옮긴 것으로 여겨진다. 아비담마에서 dhamma는 대부분 고유성질을 가진 물․심의 현상을 뜻한다. 이것을 법(法)이라고 옮기면 현실성이 없어져버린다. 그렇다고 현상이나 성질로 옮기는 것도 문제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중국에서 법(法)으로 옮겨서 우리에게도 정착이 된 ‘법(法)’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서 ‘것’이라고 옮기기도 하였고 ‘현상’이나 ‘성질’ 등으로 옮긴 곳도 있다. 중요한 경우에는 모두 괄호 안에 dhamma라고 병기하고 있다.
다섯째, 경우에 따라 둘 다 ‘지혜’로 옮기기도 하는 빤냐[慧, 반야, paññā]와 냐나[知, 智, ñāṇ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이 둘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냐나[知, 智, ñāṇa]는 빠린냐(통달지, pariññā), 아빈냐(신통지, abhiññā), 안냐(구경의 지혜, aññā), 빤냐(통찰지, paññā) 등과 특히 막가냐나(magga-ñāṇa, 도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고결한 지혜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다. 빤냐는 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데 특히『청정도론』에서는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로 설명되고 있다.(Vis.XIV.2) 역자들은 본서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모든 책에서 paññā를 과감히 ‘통찰지’로 옮기고 있는데 한문 洞察智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경이나 아비담마에서 빤냐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paṭivedha)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문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통찰지[慧]’나 ‘통찰지(반야)’ 등으로도 옮겼다. ñāṇa는 모두 ‘지혜’로 옮겼다.
15. 전정판(全訂版)에서 바꾼 주요 용어들의 우리말 번역
역자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본 전정판에서 바꾼 내용과 주요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2002년 11월 29일에 출판한『아비담마 길라잡이』초판은 2002년 10월 9일에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한 뒤 가장 먼저 출간한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초판에는 그 후에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한『청정도론』과 4부 니까야와 일치하지 않는 우리말 용어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하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전정판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모두 일치시키고 통일하려고 하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오히려『청정도론』과 4부 니까야 번역에서 미진해 보이는 부분은 수정하여 싣기도 하였음을 밝힌다.
② 본서에 싣고 있는 본서의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청정도론』의 인용도 모두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 출간한『청정도론』(초판 2004년, 제1권 5쇄 2013, 제2권 4쇄 2011, 제3권 4쇄 2012)과 일치시켰다.
③ 초판에 실려 있던 빠알리어 술어들에 대한 한글 발음 표기를 거의 대부분 제거하였다. 예를 들면 ‘탐욕[貪, 로바, lobha]’이나 ‘마음의 경안(찟따 빳삿디, citta-passaddhi)’에서처럼 [ ]나 ( ) 안에 표기한 ‘로바’나 ‘찟따 빳삿디’와 같은 빠알리어의 한글 발음 표기는 모두 없앴다. 본서의 초판을 찍었던 2002년에는 알파벳으로 표기된 빠알리어를 읽는 것이 생소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④ 본서의 초판에서 saṅkhāra는 ‘상카라(行)’로 음역을 하였다. 본 전정판에서는 saṅkhāra를 문맥에 따라 ① 형성된 것 ② 심리현상들 ③ [업]형성 ④ 자극 등으로 우리말로 옮겼다.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상카라(saṅkhāra)의 용례와 우리말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는『초기불교이해』127쪽 이하와『담마상가니』제1권 해제(127쪽)를 참조하기 바란다.
⑤ 초판에서 ‘잠재의식’이나 ‘잠재의식(바왕가)’ 등으로 옮긴 bhavaṅga를 전정판에서는 ‘존재지속심’으로 옮기고 있다. 물론 문맥에 따라 ‘바왕가’로 음역을 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장 §8의 해설 2를 참조하기 바란다.
⑥ 초판에서 ‘등록의 마음’으로 옮긴 tadārammaṇa를 본서에서는 ‘여운의 마음’으로 옮기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장 §8의 해설 13을 참조하기 바란다.
⑦ 초판에서 주로 ‘궁극적 실재’로 옮긴 paramattha나 paramattha- dhamma를 ‘궁극적인 것’이나 ‘구경법’으로 옮겼다. ‘실재’라는 표현이 자칫 고정 불변하는 실체를 상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⑧ 초판에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나 ‘[탐욕에] 뿌리한 마음’으로 옮긴 [lobha]-mūla-cittā를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으로 통일하여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과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과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 등으로 옮겼다.
⑨ 초판에서는 aṅga를 주로 ‘각지(各支)’로 옮겼는데 본 전정판에서는 모두 ‘구성요소’로 바꾸었다. 그래서 禪의 각지를 ‘禪의 구성요소’로 도의 각지는 ‘도의 구성요소’ 등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1장 §18의 해설과 제7장 §17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⑩ 아비담마의 두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찰나(刹那. khaṇa)를 초판에서 주로 ‘순간’으로 표기하였는데 전정판에서는 대부분 ‘찰나’로 바꾸었다. 순간(瞬間)은 불교 한문에서 khaṇa(Sk. kṣaṇa)의 번역어로는 쓰이지 않은 듯하다. CBETA로 검색을 해보면 눈 깜짝이는(瞬) 사이(間)를 뜻하는 순간(瞬間)이라는 단어는 단지 후대의 조사 어록 몇 군데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khaṇa(Sk. kṣaṇa)는 CBETA로 검색해보면 중국에서 대부분 찰나(刹那)로 음역이 되어 16,000번이 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전정판에서는 문맥상 편하게 느껴지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 ‘찰나’로 바꾸었다.
⑪ 초판에서는 appamaññā를 ‘무량(無量)’으로 옮겼는데 전정판에서는 모두 ‘무량함’으로 옮겼다. appamaññā는 pra+√mā의 가능법(Pot.) 분사인 pamañña(Sk. pramānya)에 부정접두어 ‘a-’를 첨가하여 이루어진 단어로서 ‘잴 수 없는’을 뜻하며 여성명사로 쓰여서 ‘잴 수 없음, 잴 수 없이 많음, 무량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⑫ 초판의 제6장에서 ‘일어나는 원인’으로 옮긴 사뭇타나(samuṭṭhāna)를 본 전정판에서는 ‘생기는 요인’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원인’으로 옮기는 hetu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⑬ 초판에서는 눈의 알음알이[眼識]의 대상인 rūpa를 ‘형상’으로 옮겼는데 초기불전연구원의 다른 번역서들과 같이 전정판에서는 ‘형색’으로 통일하였다.
⑭ 초판에서 ‘상호의존’으로 옮긴 paṭṭhāna를 전정판에서는 ‘상호의존관계’로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8장 §2의 해설 3을 참조하기 바란다.
⑮ 전정판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가장 고심을 한 것은 24가지 조건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었다. 24가지 조건의 명칭들 가운데 초판의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은 ‘틈 없는 조건’으로,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은 ‘더욱 틈 없는 조건으로, 서로 관련된 조건은 ‘결합된 조건’으로,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은 ‘결합되지 않은 조건’으로, 떠나가버린 조건은 ‘떠나간 조건’으로,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은 ‘떠나가지 않은 조건’으로 옮겼다. 24가지 조건을 우리말로 옮긴 원칙에 대해서는 제8장 §11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⑯ 초판에서 사용하였던 ‘남방불교’를 ‘상좌부 불교’로 통일하였다. 상좌부 불교라는 용어가 빠알리 삼장을 근본으로 남방에서 전승되어 오는 초기불교 전통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⑰ 산스끄리뜨어와 빠알리어는 영어처럼 단수와 복수의 표기가 엄격하다.(산스끄리뜨는 양수(兩數)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초판에서는 단수와 복수의 표기에 대한 원칙이 없었다. 본 전정판에서는 단수와 복수의 표기 원칙을 정하였다. 원문에 복수로 표기된 것은 복수로 표기함을 기본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숫자와 함께 나타나는 복수는 단수로 표기하는 것이 우리말의 원칙이다.(이러한 원칙도 영어의 영향으로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오온은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아니라 ‘다섯 가지 무더기’로, 오개는 ‘다섯 가지 장애들’이 아니라 ‘다섯 가지 장애’로, 칠각지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아니라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등으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⑱ 본 전정판의 색인에는 영어를 병기하였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 시대에 영어는 세계 공용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불교의 주요 용어들은 서구에서 영어로 잘 정착되어 있어서 우리말-영어 혼용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영어가 불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색인에서 병기하고 있는 영어는 CMA의 색인에서 정리한 빠알리-영어 색인을 토대로 하였다.
⑲ 그 외에도 본문의 편집은 초기불전연구원의 다른 책들과 같은 형태로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으며 도표들을 다듬고 더 추가하였다.
⑳ 이렇게 하면서 본서의 주해와 설명을 보강하고 다듬어서 초판에서 상․하권 합하여 358개이던 주해가 이번 전정판에서는 모두 627개에 달하여 269개 정도가 추가되었다. 초판에서 상권 492쪽, 하권 400쪽으로 상․하권을 합하여 892쪽이던 초판의 지면이 전정판에는 제1권이 544쪽, 제2권이 480쪽으로 모두 1,024쪽이 되어 142쪽이 늘어났다.
16. 맺는말
부처님께서는 반열반하시면서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는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D16 §6.1) 그러므로 법(담마)을 대면하는(아비) 아비담마/아비달마는 특히 부처님의 법과 율을 생명으로 삼는 출가자가 할 일이요 출가자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출가자는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출가자가 법(法, dhamma)을 대면해서[對, abhi]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대법(對法)으로 번역되는 아비담마/아비달마에 능통했을 때이다. 세상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세상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출가자가 정치나 권력이나 이재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의술이나 관상이나 사주나 점성학에 프로가 되면 곤란하다. 불교의 출가자는 아비담마를 통해서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종헌 제1장 종명 및 종지 제2조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自覺覺他 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奉體)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그 종지로 한다.”라고 ‘전법도생(傳法度生)’을 종지에 넣어서 세상에 대한 불교적 관심은 법을 통해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dhamma)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불교의 관심이여야 한다. 정치나 경제나 예술이나 의술 등을 통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예술가나 의료인 등에 맡겨두면 된다.
‘구사팔․유식삼(俱舍八․唯識三)’이라는 말이 있다. 출가자가 불교 교학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아비달마 구사론』을 8년 배우고 대승 아비달마라 불리는 유식을 3년 배우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비달마를 제대로 익혀야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에 능통하게 된다고 중국과 한국의 옛 스님들은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한국불교에서 아비달마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전통 강원이나 승가대학에서 아비달마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본서는 이러한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우리말 세대의 출가자들이 우리말로 아비달마를 사유하는 노둣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는 위빳사나를 위시한 불교 수행의 길라잡이가 된다. 그래서 아비담마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위빳사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 테크닉(기법) 위주의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고 성스러운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이 되도록 하는 토대가 된다. 본서는 수행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한국불교에 바른 수행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 여긴다.
아비담마는 아주 섬세하다. 그래서 한 부분이라도 잘못 이해하면 아비담마 전체를 오해하게 됨을 역자들은 절감했고 아비담마의 큰 틀이나 큰 전제를 망각하고 엉뚱한 주장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번역에 임하면서 우리말 번역은 어색하더라도 오역과 잘못된 해설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였다. 그러나 역시 잘못은 있기 마련일 것이다. 교학과 수행은 탁마를 통해서 더욱더 원숙해진다. 눈 밝은 분들이 본서를 읽고 부디 잘못을 지적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초기불교와 아비담마를 자신의 신념 체계로 삼고 살아가는 역자들에게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독자 제위의 질정을 바라면서 역자 서문을 마무리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아비담맛타 상가하 역해) (상/하)
대림 스님/각묵 스님 옮김/신국판
상권: 490쪽/ 하권: 408쪽
전정판 제1권:544쪽/ 제2권:480쪽
정가: 초판 각권 15,000원 (초판 2002년, 12쇄 2016년)
전정판 각권 25,000원(2017년, 전정판 2쇄 2018년)
* 어려운 논서임에도 모두 14쇄까지 출간한 본원의 베스트셀러 불서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아비담마 길라잡이 [Abhidhammattha Saṅgaha]
아비담맛타 상가하
그분
부처님
공양 올려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방과 북방으로 전승되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다. 그것을 우리는 남방 불교(Southern Buddhism)와 북방 불교(Northern Buddhism)라 부른다. 남방 불교는 부처님의 적통을 자부하여 스스로를 상좌부 불교(Theravāda Buddhism)라 부르는데 상좌부 불교는 현존하는 불교문헌 가운데서 부처님의 원음이거나 적어도 부처님 원음과 가장 가깝다고 인정되는 빠알리(Pāli) 삼장(三藏, Tipiṭaka)을 근본 성전으로 하여 이를 주석하고 이 주석을 다시 주석하고 이를 또다시 주석하면서 어떤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그 일관된 체계는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그 이전에 전승되어오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싱할리 주석서들을 토대로 빠알리어 주석서들(Aṭṭha- kathā)을 완성함으로써 A.D. 4~5세기쯤에는 거의 완전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붓다고사 스님이 정착시킨 많은 주석서들 가운데서도『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이 상좌부 불교 부동의 준거가 되는 책이라는 데 대해서는 어떤 학자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청정도론』은 그 성격상 경장의 4부 니까야(Nikāya)에 대한 주석서이기는 하지만 삼장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불법의 핵심을 계․정․혜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빠알리 삼장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다.
그러면『청정도론』을 비롯한 주석서들이나 후대의 복주서들(Ṭīkā)을 떠받치고 있는 일관된 체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아비담마(abhidhamma)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를 이해하지 못하면『청정도론』을 이해할 수 없고『청정도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좌부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상좌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빠알리 삼장도 결코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청정도론』은 원문만으로도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고 그 내용 또한 빠알리어에 능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영어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영역본을 읽고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청정도론』이 비록 아비담마의 방법론을 통해 계․정․혜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 쓰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설혹 그 내용을 파악한다 해도 이를 통해서 상좌부 아비담마의 밑그림을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상좌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담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 절실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좌부 아비담마를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서술해놓은 책이 없을까 하고 상좌부 불교를 공부한 분들, 특히 남방의 상좌부 스님들에게 문의하면 반드시 듣게 되는 대답이 바로 본서의 저본인『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 Saṅgaha)이다. 원문만으로는 겨우 70쪽 남짓한 분량의 책 안에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attha)가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아비담마의 주제만을 골라서 극히 간결한 문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상세한 주석서들과 함께 전승되어 왔다.
‘아비담마(abhidhamma) 주제(attha)의 길잡이(saṅgaha)’로 직역할 수 있는 이『아비담맛타상가하』는 대략 10~11세기쯤에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이 쓴 것으로 추정될 뿐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저자가 인도 출신인지 스리랑카 출신인지조차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워낙 체계적으로 잘 편집되었기 때문에 일단 이 책이 나타나자 상좌부의 모든 아비담마 체계는 이 책의 주제(attha)를 쫓아서 다시 편성되어 가르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모든 상좌부 불교국가에서 이 책은 아비담마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본 텍스트로 자리 잡아 왔으며 일찍부터 영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1881년 영국에서 설립된 빠알리 성전협회(PTS, Pāli Text Society)에서는 이미 1910년에 미얀마 학자 쉐 잔 아웅(Shwe Zan Aung)이 자세한 주를 달아서 번역한 것을 리스 데이비즈 여사(C.A.F. Rhys Davids)가 서문을 달고 교정을 하여 “Compendium of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편집자 서문에서 당시 남편 리스 데이비즈 교수의 뒤를 이어 PTS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몇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1881년 PTS가 설립되었을 때 스리랑카에서 가장 존경받는 네 분 큰스님 가운데 한 분이셨던 삿다난다 스님(Saddhananda Mahāthera)이 빠알리 논장의 칠론에 담겨있는 아비담마를 배우는 최상의 길은『아비담맛타상가하』를 배우는 것이라고 빠알리로 된 축시를 직접 써서 보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설립자인 리스 데이비즈 교수도 이를 항상 유념하고 있었으며 설립한 후 삼 년이 채 안되어서 발간한 PTS 저널(Journal)에 이미『아비담맛타상가하』교정본을 실었다. 리스 데이비즈 교수는 “Buddhism in Translation”의 저자인 헨리 와런(Henry Warren)에게『아비담맛타상가하』의 번역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와런이 요절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 번역본을 내어놓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스리랑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금도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를 영어로 가장 왕성하게 전파하고 있는 불자출판회(BPS, Buddhist Publication Society)에서도 협회가 설립되자마자 1956년에『아비담맛타상가하』영문 번역인 “A Manual of Abhidhamma”를 먼저 출판하였다. 이것은 당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학승이었던 나라다 스님(Narada Mahāthera)이 번역하신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몇 십 년을 아비담마의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1993년에는 다시 BPS에서 현재 아비담마 학계 최고의 달인으로 알려진 미얀마의 실라난다 스님(U Sīlananda Sayadaw)과 레와따 담마 스님(U Revata Dhamma)의 도움을 받아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새롭게 번역 출판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를 내놓았고 이는 현재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빠알리 삼장의 우리말 완역을 발원하여 2002년 10월 9일에 설립된 초기불전연구원이 부처님 원음인 니까야를 먼저 번역을 하지 않고 그 첫 번역으로 이『아비담맛타상가하』를 택한 것은 ① 상좌부 불교에서 차지하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중요성을 자각하였기 때문이고 ② 세계 불교계의 이러한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③ 본서가 처음 출간되던 2002년에는 한국에서도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위빳사나 수행도 몇몇 군데에서 행해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정작 위빳사나 수행의 완벽한 이론서인 아비담마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④ 무엇보다도 부처님 원음을 온전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을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막상 빠알리 삼장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체계이며 역사적으로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아비담마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아비담맛타상가하』를『아비담마 길라잡이』로 맨 먼저 역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책의 제목
먼저 ‘아비담맛타상가하’의 문자적인 뜻부터 살펴보자.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는 abhidhamma(아비담마) + attha(앗타) + saṅgaha(상가하)의 셋이 합성된 단어이다. 레디 사야도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에서 아비담맛타상가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 설해진 주제(혹은 의미)들을 아비담맛타라 한다. 본서에서 혹은 본서를 통해서 [아누룻다] 스님이 이것들을 요약하여서 파악하고 설명했기 때문에 아비담맛타상가하라 한다.”
⑴ 앗타(attha)의 의미
이제 이 세 단어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보자. 먼저 앗타(attha)부터 살펴보자. 범어 일반에서 attha(Sk. artha)는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초기불교에서는 주로 ① ‘이로운 것, 이익’ ② ‘뜻, 의미’ ③ ‘이치, 목적, 주제, 본질’이라는 세 가지 뜻을 나타낸다.
① ‘이로운 것, 이익’의 뜻으로 쓰일 때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문맥 등에 많이 나타난다.
② ‘뜻, 의미’로는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라는 정형구에서 보듯이 ‘의미(attha)와 표현(byañjana)’이라는 문맥에서 많이 쓰인다.
③ ‘이치, 목적, 주제, 본질’의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궁극의 이치를 청정하게 한다.” 등으로 나타나며 특히 아비담마에서는 빠라맛타(paramattha, parama + attha, 구경, 궁극의 이치, 궁극적인 것)라고 정착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勝義, 眞實, 第一義(승의, 진실, 제일의) 등으로 번역하였다.
attha가 가지는 이 세 가지 뜻이 모두 abhidhammattha의 attha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지만 본서는 “여기서 설하는 아비담마의 주제들(abhi- dhammatthā)은 궁극적인 것(paramattha)으로 모두 네 가지이니”(1장 §2)라고 하여 세 번째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서 attha는 인도의 육파철학, 특히 논리학에서의 빠다르타(padārtha, Pāli: padattha, pada + attha, 논의의 주제, 즉 그 파에서 주장하고 정리하고 논의하고 관심을 가지는 근본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용어로 보는 것이 문맥에 더 적합하다. 예를 들면 인도의 나이야이까[正理派, 논리학파, Naiyāyika]에서는 16가지로, 와이세시까[勝論, Vaiśeṣika] 학파는 7가지로, 상캬[數論, Sāṅkhya] 학파는 25가지로, 베단따(Vedānta) 학파에서는 2가지로 자기 학파의 논의의 주제를 설정하여 이를 빠다르타(padārtha), 즉 논의의 주제로 명명하고 있다. 자이나(Jaina) 교리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땃뜨와아르타 아디가마 수뜨라』(Tattvārthādhigama Sūtra)에서는 지와(jīva, 영혼), 아지와(ajīva, 비영혼=물질) 등의 일곱 가지를 ‘진리의 주제(tattva+artha)’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도의 여러 사상과 종교에서는 각 파의 근본이념이나 논의의 주제나 모토들을 padārtha라거나 tattvārtha 등으로 불러온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맛타(Sk. abhidharma-artha)도 불교교학의 토대가 되는 ‘아비담마에서 논의되는 여러 주제들’이란 뜻으로 보는 것이 좋다. 본서에서 아누룻다 스님은 이들 논의의 주제를 아홉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에 관련된 주제와 법들을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다.
⑵ 상가하(saṅgaha)의 의미
다음은 상가하(saṅgaha)에 대해서 살펴보자. 산스끄리뜨 상그라하(saṅ- graha)의 빠알리식 표기인 saṅgaha는 saṁ(함께)+√grah(to tak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함께 모은 것’이란 의미이다.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 상그라하(saṅgraha, Pāli: saṅgaha)는 인도 대륙에서 8세기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특정 형태의 문헌의 한 장르이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베다는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이 베다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本集, Saṁhitā], 브라흐마나[祭儀書, Brāhmaṇa], 아란냐까[森林書, Āraṇyaka], 우빠니샤드[秘義書, Upaṇiṣad]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이 베다, 특히 베다 본집(Saṁhit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불교가 태동하기 전부터 음운(Śikṣā), 제사(Kalpa), 문법(Vyākaraṇa), 어원(Nirukta), 운율(Chandas), 점성술(Jyotiṣa)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 많은 연구가 되었고 그것이 베당가(Vedāṅga)라는 여섯 갈래로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이미 4베다의 각 파에 속하는 방대한 분량의 브라흐마나(제의서) 문헌들이 제사(yajña)를 거행하는 각 파의 역할을 중심으로 여러 문파에서 편찬되었다.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이들 제의서들은 다시 수뜨라(Sūtra)라 불리는 간결한 형태의 문헌의 장르로 각 파마다 다시 요약, 편집되었다. 그러나 이 수뜨라는 너무 간결하여 주석서가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어 다시 이 수뜨라에 대한 주석서들이 편찬되었다. 그렇게 되자 다시 이 방대한 문헌을 요약하고 간추려서 후학들의 학문에 지남이 되고 길라잡이가 되는 간결한 문헌을 만들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상그라하라는 장르이다. 물론 이 상그라하 역시 더 후대에 여러 주석서들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인도 문헌들은 방대해지면 압축하고 압축한 것에 주석이 첨가되어 다시 번잡해지면 다시 압축하고 하면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베다의 미맘사(제사학, Mīmāṁsā)를 간략하게 집대성한 문헌으로『아르타상그라하』(Arthasaṅgraha)가 유명하고 냐야[因明, 正理, 논리학, Nyāya]를 간략하게 집대성한『따르까상그라하』(Tarkasaṅgraha)가 논리학 입문서로 초보자들에게 널리 가르쳐지고 있으며 베단따 철학을 압축한 것으로는『베단따상그라하』(Vedāntasaṅgraha)가 있다. 그리고 북방 아비다르마를 압축해 놓은 것으로는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 스님의『땃뜨와상그라하』(Tattvasaṅgraha)가 유명하다.
이런 경향은 상좌부 불교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다양한 근기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편으로 설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뜨라 형태의 마띠까[論母, Mātikā]라는 이름으로 간결하게 정리가 되었고 이것은 다시 아비담마 칠론(七論)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다시 주석서(Aṭṭhakathā)와 복주서(Ṭīkā)가 첨가되어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그래서 아비담마를 배우려는 초학자들은 그 방대함에 움츠러들게 된다. 그래서 일찍부터『아비담마아와따라』(Abhidhamma-avatāra, 아비담마 입문, 5A.D)와 같은 많은 입문서나 개설서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 주석서들이 또 첨가되면서 그 분량은 다시 커지게 된다. 그래서 아비담마 전체를 아우르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는 길라잡이가 절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이다.
상좌부 불교의 교의는 아비담마 칠론으로 체계화되어 싱할리 주석서로 논의되고 설명되었다. 이것을 붓다고사 스님이『청정도론』과 여러 주석서들(Aṭṭhakathā)로 정리하였으며 이는 다시 아난다(Ānanda) 스님이나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 등이 복주서들(Ṭīkā)을 편찬하여 심화되고 방대해졌다. 그 후에도 수많은 저술로 더욱더 복잡하게 된 아비담마를 간략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에서 탄생된 것이 바로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이다.『아비담맛타상가하』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아비담마의 논의의 순서와 가르침은 지금까지 이 책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담마상가니』(법집론)와『청정도론』뿐만 아니라『아비담마아와따라』같은 초기 아비담마 개론서들에서는 89가지 마음을 아비담마 마띠까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분류 방법에 따라 선․불선․무기(cf. ma3-1)의 순서에 준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서 다시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의 마음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본『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는 이것을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이라는 마음의 경지의 순으로 바꾸어서 이들 경지 안에서 다시 불선․선․무기의 순서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후 지금까지 89/121가지 마음은 이『아비담맛타상가하』의 순서와 방법대로 설명하고 있다. 또 인식과정이 17심찰나로 고정이 되는 등 후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 아비담마란 무엇인가
‘앗타’와 ‘상가하’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아비담마’란 무엇인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⑴ 아비담마에 대한 두 가지 해석 — 무비법(無比法)과 대법(對法)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용어는 접두어 아비(abhi)와 명사 담마(dhamma)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접두어 아비(abhi)의 뜻을 중심으로 아비담마의 문자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PED 등에 의하면 문자적으로 접두어 abhi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향하여, 대하여(round about, around, towards, against)’의 뜻이고 둘째는 ‘위에(over, on top of, above)’의 뜻이다.『담마상가니 주석서』등은 ‘위에’라는 후자의 뜻으로 접두어 abhi를 해석하고 있으며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이것을 정설로 삼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무비법(無比法, 勝法, 수승한 법, 빼어난 법)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아비달마 구사론』을 번역하면서 현장 스님은 이것을 대법(對法, 법에 대해서)으로 옮겼는데 이것은 abhi를 전자인 ‘향하여, 대하여’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법(對法)은 법과 대면함, 법을 참구함, 즉 법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아비담마 혹은 아비달마는 중국에서 대법(對法), 무비법(無比法), 승법(勝法), 논(論) 등으로 옮겨졌고 아비담(阿毘曇), 아비달마(阿毘達磨), 아비달마(阿鼻達磨),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등으로 음역되었는데 아비담(阿毘曇)은 빠알리어 아비담마(abhidhamma)를, 아비달마(阿毘達磨)는 산스끄리뜨어 아비다르마(abhidharma)를 음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까야에서도 접두어 abhi는 대부분이 ‘위에’의 의미에 해당하는 ‘능가하는, 수승한, 특별한’의 뜻으로 쓰인다. 접두어 abhi가 ‘향하여, 대하여’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로는 purattha-abhimukha([비구 승가를] 마주 보고, D2 §11)와 uttara-abhimukha(북쪽을 향해, D14 §1.29) 등과『청정도론』등의 주석서 문헌에 나타나는 nimitta-abhimukha(표상을 향하도록, Vis.IV.66)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전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⑵ 담마(법)란 무엇인가
아비담마라는 단어에서 핵심은 무엇보다도 담마(dhamma)이다. 법(法)으로 옮기는 담마(dhamma, Sk. dharma)는 인도의 모든 사상과 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는 용어이며 또한 방대한 인도의 제 문헌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기불교 문헌에서도 dhamma(Sk. dharma)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초기불전에서 담마[法, dhamma]는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과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을 통해서 법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경장에 해당하는 주석서인『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모든 법[諸法, 一切法, sabba-dhammā, sabbe dhammā]’을 설명하면서 법(dhamma)의 용처를 열 가지 경우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① 교학(pariyatti), ② 진리(sacca), ③ 삼매(samādhi), ④ 통찰지(paññā), ⑤ 자연의 법칙(pakati), ⑥ 고유성질(sabhāva), ⑦ 공성(suññatā), ⑧ 복덕(puñña), ⑨ 범계(犯戒, āpatti), ⑩ 알아야 할 것(ñeyya)이다.
그런 뒤 주석서는 이 문맥에서는 고유성질(sabhāva)을 말하며 그 뜻은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attano lakkhaṇaṁ dhārentīti dhammā).’라고 덧붙이고 있다.(MA.i.17) 이것은 아래에서 인용하는『담마상가니 주석서』의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나 ‘자신의 고유성질(sabhāv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한편 아비담마 삐따까, 즉 논장의 주석서인『담마상가니 주석서』는 ① 교학(pariyatti)과 ② 원인(hetu)과 ③ 공덕(guṇa)과 ④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nissatta-nijjīvatā)의 4가지로 법을 정의한다. 그런 뒤에 ④ “그런데 그때에 법들이 있고”(Dhs. §121)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D22)라는 등에서 [법은]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을 뜻한다.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에 대한 것이 여기 본문에 해당한다.”(DhsA.38)라고 하여 여기『담마상가니』를 위시한 아비담마에서 법은 중생이니 영혼이니 하는 개념적인 것(paññatti)이 아니라 고유성질(sabhāva)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에서의 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①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dhārenti)고 해서 ‘법들(dhammā)’이라 한다. ② 혹은 조건(paccayā)에 의해서 호지된다(dhāriyanti), ③ 혹은 틀림없는 고유성질에 따라 호지된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DhsA.39)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로 옮긴 ‘attano sabhāvaṁ dhārentīti dhammā’(DhsA.39)는 법을 정의하는 구문으로 잘 알려진 것이며, 위의『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 ‘자신의 특징(lakkhaṇ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MA.i.17)는 설명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법 혹은 법들에 대한 경과 여러 주석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법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학(pariyatti)으로서의 법이고, 둘째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能持自相, sabhāvaṁ dhārenti]으로서의 법이다. 니까야에서 전자는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Buddha-sāsana]으로 불리고 있고(M86 등), 북방불교에서는 ‘불법(佛法)’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후자는 ‘일체법(一切法, 諸法, sabbe dhammā)’으로 정리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요즘 서양학자들은 전자를 대문자 Dhamma로, 후자를 소문자 dhamma로 표기한다. 경장, 즉 니까야에서 법은 전자의 의미로 많이 나타나고 논장, 즉 아비담마에서는 후자로 쓰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기준으로 분석하고 분류하여 법을 표준화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佛法]과 일체법(一切法)은 같은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북방불교의 반야중관 계열에 속하는『금강경』에서도 “일체법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sarvadharmā Buddhadharmā, 一切法 皆是佛法)”(제17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4. 아비담마의 담마[法]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이다
⑴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 법(dhamma)이다
이처럼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을 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아난다 스님은『담마상가니 물라띠까』에서 ‘전도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고유성질[自性]이다.’라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사람, 동물, 산, 강, 컴퓨터’ 등 우리가 개념 지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다시 여러 가지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최소 단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은 개념(paññatti)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산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최소 단위인 지․수․화․풍․색․향․미․영양소(본서 제6장 §7의 해설 11 참조) 등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이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서 뭉쳐 있는 것일 뿐, 산이라는 불변하는 고유의 성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이 만들어낸(pari- kappanā) 개념일 뿐이지 그들의 고유성질(sabhāva)에 의해서 존재하는 실재는 아닌 것이다.(cf. PdṬ.123)
그러나 법들은 더 이상 분해하고 해체할 수 없다. 분해하고 해체하면 그들의 고유성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은 땅의 요소[地界]․물의 요소[水界]․불의 요소[火界]․바람의 요소[風界] 등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로 분해가 되고 해체가 되지만 견고성이라는 땅의 요소[地界]를 더 분해하면 거기에는 견고성이라는 고유성질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을 종합하면 고유성질(sabhāva)이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성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고유성질을 가진 법(dhamma)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을 구경법(究竟法, paramattha-dhammā)이라 부른다.
여기서 ‘고유성질’은 sabhāva(Sk. svabhāva)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sa(Sk. sva, one’s own)와 성질, 성품, 상태 등을 뜻하는 bhāva(√bhū, to become)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고유성질로 옮겼다. 이것은 중국에서 自性, 本性, 自相, 自有, 自然, 自體, 體性(자성, 본성, 자상, 자유, 자연, 자체, 체성) 등으로 옮겨진 것으로 조사된다. 이 용어는『쿳다까 니까야』가운데서도『자따까』나 시대적으로 후대인 것이 분명한『붓다왐사』나『빠띠삼비다막가』에 몇 번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 경장과 율장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논장의 칠론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고유성질’로 옮기는 sabhāva는 주석서 문헌에서부터 법(dhamma)을 정의하는 전문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X라는 법과 Y라는 법이 서로 다른 이유를 각각의 법이 가진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주석가들이 고안한 것이다.
예를 들면 탐욕과 성냄은 서로 다른 법(dhamma)이다. 그러면 탐욕과 성냄이 왜 다른가? 탐욕은 대상을 거머쥐는 특징을 가지고(DhsA.248 = Vis. XIV.160) 성냄은 잔인한 특징을 가진다.(DhsA.257, cf. Vis.XIV.171) 달리 말하면 탐욕은 대상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고 성냄은 대상을 밀쳐내는 성질이 있다. 이처럼 탐욕과 성냄은 각각에 고유한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설명 방법이다.
이 고유성질[自性, sabhāva] 혹은 각각의 법들이 가지는 개별적 특징[自相, sabhāva-lakkhaṇa]이라는 표현은 상좌부 아비담마와 북방의 아비달마 문헌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CBETA로 검색을 해보면『대반야바라밀다경』,『대승입능가경』이나『유가사지론』이나『성유식론』등, 후대 북방불교의 여러 경들과 논서에서도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아비담마/아비달마, 나아가서 반야중관이나 유식이나 여래장 등과 같은 후대의 불교 체계들도 법들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기본 방법으로 이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⑵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 있는가
법(dhamma)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 혹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 단위’라고 정의하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가 있는가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아비담마에서 법을 연구하고 참구하는 기본 출발점이다. 그래서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최소 단위로 하나의 마음(citta), 52가지 마음부수(cetasika), 28가지 물질(rūpa), 하나의 열반으로 모두 82가지를 들고 있고 북방 아비달마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에서는 75가지를 들고 있으며 대승아비달마를 표방하는 유식에서는 최종적으로 100법을 들고 있다.
<도표 0.1> 상좌부의 82법
특히 상좌부 주석가들은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 혹은 구경법들의 성질을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 이들을 정의하는 방법으로 ① 특징(lakkhaṇa) ② 역할(rasa) ③ 나타남(paccupaṭṭhāna) ④ 가까운 원인(padaṭṭhāna)이라는 네 가지를 제시하고, 이 네 가지를 통해 어떤 법이든 그 한계를 분명하게 구분 짓고 있다.『청정도론』과『담마상가니 주석서』를 비롯한 모든 주석서들이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본서 제1장 §3의 해설 참조)
이렇게 하여 본서는 제1장에서 마음을 고찰하고 제2장에서는 52가지 마음부수들을 정의하며 제6장에서는 28가지 물질을 살펴본 뒤 무위법인 열반을 정의하고 제8장에서는 개념들[施設, paññatti]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의 제1/2/6장은 구경법들의 고유성질을 구명하고 있고 이를 토대로 제3/4/5장은 제1장에서 마음의 경지와 종류에 따라 89가지 혹은 121가지로 분류해서 고찰한 마음을 여러 관점에서 심도 있게 고찰한다. 그리고 제7장은 제1장부터 제6장까지를 통해서 고찰한 구경법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구경법들 가운데 추상적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72가지 토대가 되는 법을 4가지 범주의 28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고찰한다. 다시 제8장은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12연기의 가르침을 살펴본 뒤구경법들(열반은 제외)과 개념들에 작용하는 상호의존관계를 24가지로 정리하여 고찰하고 개념들[施設]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인 제9장은 이와 같은 아비담마의 이해가 수행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것이 본서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⑶ 추상적 물질은 고유성질이 없는가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추상적 물질(anipphanna-rūpa)은 고유성질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위바위니 띠까』는 “한정하고 변화하는 등의 성질(pariccheda-vikārādi-bhāva)이 없고 따로 조건들에 의해서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paccayehi anibbattattā) 이들 10가지는 추상적 [물질]이라 한다.” (VT.202)라고 추상적 물질을 정의하고 있다.
CMA는 추상적 물질에는 고유성질이 없다고 적고 있다. CMA의 이러한 입장은 “추상적이라는 것(anipphannatta)은 고유성질로는 성립되지 못한다(sabhāvato asiddhatta).”(DhsAAnuṬ.169)라는 등의 복주서 문헌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레디 사야도는『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추상적 물질이 고유성질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아래와 같이 강조하신다.
“그렇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이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따로 분리해서 이들이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는 것(sabhāvato anupalabbhamānāni)이라거나 구경[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paramatthato avijjamānāni)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인습적 표현으로만 성취되는 성질(vohāra-siddhamatta- bhāva)을 넘어서서 순수한 법의 행처에 의해서 성취되는 구경[법]의 특징에 의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suddhadhammagatiyā siddhena paramattha- lakkhaṇena upaladdhattā) 그렇지 않으면 생겨남의 특징이 없고(nibbatti- lakkhaṇa-rahita) 형성되지 않은(asaṅkhata) 열반도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구경[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paramatthato avijjamānañca nāma siya). 그러므로 단지 생겨남의 특징이 없기 때문에(nibbattilakkhaṇarahitattā-eva) 이들은 추상적 물질이라고 부를 뿐이지 고유성질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na sabhāvato anupalabbhamānattāti yuttaṁ siyāti).”(PdṬ.289)
역자들은 레디 사아도의 이러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받아들여 추상적 물질도 고유성질을 가지며 그래서 구경법은 모두 82가지라고 인정한다. 물론 82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72가지만이 토대가 되는 법(vatthudhamma)이고 이 추상적 물질들은 그렇지 않다.(본서 제7장 §1의 해설 참조) 그렇기 때문에 이 추상적 물질들은 위빳사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레디 사야도는 “여기서 토대(vatthu)란 실재하는 단위(dabba, Sk. dravya, substance)를 지칭하는 것이다.”(PdṬ.332)라고 토대를 정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실재하는 단위란 것은 자신의 특성을 통해(sarūpato) 얻을 수 있는 고유성질에만 적용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5.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이다
⑴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이다
아비담마에서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을 법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을 구경법이라 부른다고 해서 이러한 법들이 영원불변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열반을 제외한 모든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고 상좌부 아비담마뿐만 아니라 북방 아비달마와 대승불교의 여러 경론도 강조하고 있으며 북방 아비달마를 대표하는『아비달마 구사론』도 마찬가지이다. 찰나야말로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강조하는 법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역자들은 고유성질과 찰나 ― 이 둘은 아비담마의 법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받아들인다.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찰나(刹那, 순간, khaṇa)를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찰나는 다시 일어남[生, uppā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ṅ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본서 제4장 §6과 해설 참조) 서양에서는 이것을 sub- moment라고 옮기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아찰나(亞刹那)’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아찰나라는 용어는 주석서의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찰나는 전문용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유성질이 없기 때문이다. 찰나를 아찰나로 쪼갤 수는 있고, 아찰나를 다시 아아찰나로 아아찰나는 다시 아아아찰나로 … 이렇게 쪼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아찰나로 쪼개버리면 법이 가지는 고유성질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전문용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찰나는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찰나 동안에 존재하는 법들은 당연히 조건발생 즉 연이생(緣而生)이다. 앞 찰나의 법들이 멸하면 바로 다음 찰나의 법들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므로 단멸론도 될 수 없다. 이것을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는 등무간연(等無間緣, 더욱 틈 없는 조건, samanantara-paccaya)이라 하여 아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앞 찰나가 멸하면 후 찰나로 흘러간다.[相續, santati] 그러므로 법은 단멸론에도 상주론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비담마/아비달마는 이렇게 법들을 찰나(khaṇa, Sk. kṣaṇa)와 흐름[相續]으로 멋지게 설명해낸다.
⑵ 찰나는 무상(無常, anicca)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찰나(刹那, khaṇa) 혹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는 용어는 빠알리 삼장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찰나(刹那, khaṇa)는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 되는 용어이다. 이렇게 말하면 참나, 진아, 대아를 찾는 것이 불교라는 헛된 주장을 늘어놓고 싶은 분들은 찰나는 부처님 원음과는 상관이 없는 후대의 주석가들이 임의로 만들어서 사용한 용어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찰나는 초기불교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무상을 정확한 시간 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초기불전에서 무상․고․무아의 중요성은 각별하다. 무상․고․무아를 주석서 문헌들은 법들의 보편적 특징[共相, sāmañña-lakkhaṇa]이라 부르면서 강조하고 있다. 무상․고․무아는 깨달음의 실현 혹은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두 번째 설법이요, 이 법문을 듣고 5비구가 아라한이 된「무아의 특징 경」(S22:59)은 이렇게 전개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S22:59)
이를 요약하면 ①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하여 ② 이들의 무상․고․무아를 꿰뚫어봐서 ③ 염오 - ④ 이욕 - ⑤ 해탈 - ⑥ 구경해탈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섯 단계의 정형구는『상윳따 니까야』에만 400번 이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된다. 주석서는 염오(nibbidā)는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이며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뜻하고, 이욕(virāga) 즉 탐욕의 빛바램은 도(magga)를, 해탈(vimutti)은 과(phala)를,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로 표현되는 구경해탈지는 반조(paccavekkhaṇā)를 뜻한다고 설명한다.(MA.ii.115 등)
해체해서 보기의 여섯 단계의 정형구에 준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무상․고․무아의 삼특상(ti-lakkhaṇa) 가운데서 고와 무아는 위에 인용한 경에서 보듯이 무상에 대한 자각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여섯 단계의 가르침은『청정도론』에서 5청정으로 체계화되는데 이 가운데 견해의 청정[見淸淨, diṭṭhi-visuddhi]과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知見淸淨]과 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知見淸淨]의 핵심 내용은 해체했을 때 드러나는 무상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체득하는 것이다.(『청정도론』제1권 해제 ‘14. 칠청정의 측면에서 본『청정도론』참조)
무상(無常)은 원어로 anicca인데 이것은 항상함[常]을 뜻하는 nicca에 부정접두어 a-를 붙여서 만든 용어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무상(無常)이라 직역하여 옮겼다. 이처럼 무상의 체득은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이며 고와 무아를 체득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당연한 전제가 되고 있다.
6. 찰나(刹那, khaṇa)란 무엇인가
⑴ 무상의 최소 단위가 찰나이다
주석서들은 “있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상이다(hutvā abhāv -aṭṭhena aniccā).”(DA.ii.635 등)로 무상을 정의한다. 그러면 정신과 물질의 법들은 어느 정도의 기간 혹은 시간 동안 있었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주석서 문헌들에서는 ‘있었다가 존재하지 않음’인 이 존재하는 기간을 찰나로 설명해내고 있다.
그래서『맛지마 니까야 복주서』는 “찰나에 부서지기 쉬운 것(khaṇa- pabhaṅgutā)이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다고 해서 무상이라 한다.”(MAṬ.ii.251)고 설명한다. 그리고『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무상을 ‘찰나적 존재임(khaṇikatā)’으로 풀어서 적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무상은 찰나라는 최소 단위의 시간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주석서 문헌들을 위시한 후대의 아비담마 해설서들은 법의 개별적 특징[自相]으로 고유성질을 강조하고 유위법들의 보편적 특징[共相]으로 찰나를 설하고 있다.
⑵ 찰나의 구명(究明)
찰나(刹那, khaṇa)의 구명은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을 비롯한 유위법들은 찰나생․찰나멸하는 일어나고 사라짐[起滅]의 문제이지, 있다․없다[有無]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주석서는 더 나아가서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uppāda-ṭṭhiti-bhaṅga) 세 [아찰나(亞刹那, sub-moment)로] 구성된다고 설명하여 자칫 빠질지도 모르는 찰나의 실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는 찰나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한정된 자신의 존속 기간”(Pm.i.358)으로 정의한다. 즉 특정한 법이 존속하는 기간(pavatti-kāla)을 찰나라 하는 것이다. 레디 사야도는 『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물질과 정신의 법들의 수명을 측정하는 [단위](rūpārūpadhammānaṁ āyu-parimāṇasaṅkhātassa khaṇassa vasena)” (PdṬ.441)라고 찰나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수명(āyu)이란 앞에서 인용한『빠라맛타만주사』에서 말하는 법들이 존속하는 기간(pavatti-kāla)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들이 존속하는 기간은 특정한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자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고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탐욕이라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일어나서 대상을 탐하는 자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고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탐욕이라는 법의 존속 기간인 찰나인 것이다.
북방의 아비달마에서도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유찰나, 즉 찰나적 존재[有刹那, kṣanika]”(권오민 역,『아비달마 구사론』제2권 593쪽)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찰나란] 법(존재) 자체를 획득하고서 무간(無間)에 바로 소멸하는 것을 말하니, 이와 같은 찰나(kṣaṇa)를 갖는 법을 ‘찰나적 존재(kṣaṇika)’라고 이름한다.”라고 찰나를 정의한다.(Ibid.) 그래서『아비달마 구사론』의 역자는 “찰나적 존재를 설하는 유부에 있어 존재(유위법)와 찰나는 동의어이다.”라고 강조한다.(Ibid., 제3권 925쪽)
나아가서『아비달마 구사론』은 찰나를 “하나의 법이 지닌 온갖 상(즉 생․주․이․멸)의 작용이 모두 이루어질 때”라고 정의하기도 하고, “법(존재) 자체를 획득하고서 무간(無間)에 바로 소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Ibid., 251쪽, 244쪽, 593쪽 참조)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도 이미 찰나는 일어남[生, uppā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ṅ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본서 제4장 §6과 해설 참조) 북방의『아비달마 구사론』에서도 한 찰나에 머물고 쇠퇴하고 소멸하는 모습을 성취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방에서 공히 한 법이 일어나서 머물고 쇠퇴하고 무너지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그 기간을 찰나라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아비달마 구사론』의 어법을 빌어서 말하면 유위법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諸有為法纔得自體) 걸리는 시간이 찰나인 것이다.
이상의 여러 자료들을 취합해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찰나는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다. 그래서 역자는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라고 찰나를 정의한다.
그러면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이 최소 단위의 시간은 그 길이가 같은가? 불교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에서는 물질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과 정신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최소 단위의 시간은 다르다고 이해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16배 내지 17배 더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후자를 심찰나(心刹那, citta-khaṇa)라 구분하고 있다.『청정도론』은 물질이 머무는 아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정의한다.(Vis.XX.24, 본서 제4장 첫 번째 해설 참조) 그리고 같은 심찰나라도 임종 시의 심찰나의 길이는 길어진다고 한다.(본서 제4장 §21 참조) 이처럼 찰나는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길이는 달라질 수 있으며 이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실용적인 정의라고 여겨진다.
⑶ 1찰나는 75분의 1초이다
그러면 찰나라는 시간 단위는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길이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북방의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장 스님이 옮긴『아비달마 대비바사론』에는 “不說剎那臘縛牟呼栗多晝夜以為劫耶(불설 찰나 납박 모호율다 주야 이위겁야)”라는 등의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여기서 剎那(찰나), 臘縛(납박), 牟呼栗多(모호율다)가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기간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같은 현장 스님이 옮긴『아비달마 구사론』을 살펴보자.『아비달마 구사론』에 의하면 1주야(晝夜), 즉 하루는 30모호율다(牟呼栗多, muhūrta)에 해당하고, 1모호율다(牟呼栗多, 須臾, muhūrta)는 30납박(臘縛, 頃刻, lava)에, 1납박은 60달찰나(怛剎那, tatksaṇa)에, 1달찰나는 120찰나(ksaṇa)에 해당한다.
여기서 모호율다(牟呼栗多)는 무후르따(muhūrta)를 음역한 것인데 중국에서 分, 時, 牟呼栗多, 瞬息須臾, 須臾(분, 시, 모호율다, 순식수유, 수유)로도 옮겼고 빠알리 문헌에서도 muhutta로 나타난다.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24시간이 30무후르따이므로 1무후르따는 48분에 해당한다.
납박(臘縛)은 라와(lava)를 옮긴 것인데 이는 물방울을 뜻하며 중국에서는 瞬息, 羅預, 臘縛(순식, 나예, 납박)으로 옮겼다. 빠알리어에는 laya로 나타난다. 요즘 시간 단위로 계산하면 96초, 즉 1분 36초에 해당한다.
달찰나(怛剎那)로 음역한 땃크샤나(tatkṣaṇa)는 tat(그)-kṣaṇa(찰나)로 분석이 된다.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1.6초에 해당한다.
찰나(刹那)로 음역한 ksaṇa는 빠알리 khaṇa에 해당하고 이것은 요즘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여기서 찰나(刹那)로 옮긴 ksaṇa와 납박(臘縛)으로 옮긴 lava와 모호율다(牟呼栗多)로 옮긴 muhūrta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문헌 등 인도의 범어 문헌 일반에서도 자주 나타나며 윌리엄 사전이나 자이나 사전에도 위의『아비달마 구사론』의 인용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셋은 각각 빠알리어 khaṇa, laya, muhutta에 대응이 되고 이들은 상좌부의 빠알리 문헌(Vin I.12; III.92; A.iv.137; cp. Dpvs I.16, PED s.v. laya)에도 나타나고 있다. 빠알리 문헌에는 khaṇa, laya, muhutta가 어느 정도 길이의 시간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구사론』이나 범어 문헌 일반에서 정리하고 있는 시간 단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찰나는 대략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찰나는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한편 상좌부 불교에서는 물질이 ‘머무는’ 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강조한다.(Vis.XX.24) 이렇게 본다면 1초에 마음은 대략 1,200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계산할 수 있다. 그러면 백세인생 동안 ‘나’라는 개체의 흐름에서는 대략 1,200×60초×60분×24시간×365일×100년 = 3,784,320,000,000번, 즉 3조 7843억 2천만 번 정도의 마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거칠게 계산해 볼 수 있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마음들을 어떤 기준을 정해서 89가지 혹은 121가지 마음으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이 본『아비담마 길라잡이』제1장의 내용이다.
⑷ 찰나는 상속한다
나라는 개체를 이루고 있는 오온은 찰나적 존재이다. 찰나적 존재라면 일찰나에 존재하고 없어져버려야 한다. 그런데 왜 오온과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온이 찰나생․찰나멸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상속(相續, santati)이라 한다. 상속은 흐름을 뜻하는데 앞 찰나가 멸하면 뒤 찰나가 틈이 없이 뒤따라 일어나고 이 뒤 찰나가 멸하면 그 뒤 찰나가 다시 틈이 없이 뒤따라 일어나는 것을 거듭하면서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오온으로 대표되는 유위법들은 상속하기 때문에 특정한 깔라빠를 이루는 물질이나 특정한 개체를 이루는 오온은 그 개체를 유지하고 존속해가는 것이다. CBETA로 북방 한역 자료들 가운데 刹那(찰나)와 相續(상속)을 따로 검색하면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모두를 열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래서 刹那相續(찰나상속)으로 검색을 해도『아비달마 대비바사론』에서는 “前剎那由後剎那 說名相續故名剎那相續(전찰나유후찰나 설명상속고명찰나상속)” 등으로,『아비달마 순정리론』에서는 “又何緣力 前後剎那相續有異(우하연력 전후찰나상속유이)” 등으로 『유가사지론』에서는 “當知剎那相續流轉 非一非常(당지찰나상속유전 비일비상)” 등으로,『구사론기』에서는 “剎那剎那相續生時(찰나찰나상속생시)” 등으로 150번이 넘게 조회가 된다.
그리고 찰나와 상속, 특히 상속은『아비달마 구사론』제9품「파집아품」(破執我品)에서 자아 등의 실체가 있다는 삿된 견해를 척파하는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온의 상속’, ‘제온의 상속’, ‘오온의 상속’, ‘유루온의 상속’ ‘찰나 생멸하는 제행의 불이(不異)의 상속’이라는 표현이『아비달마 구사론』제9품에는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아비달마 구사론』권오민 역, 제4권 1340쪽 등과 특히 제4권 1379~1380쪽을 참조할 것.)
이 찰나의 상속을 드러내고 있는 조건이 등무간연(더욱 틈 없는 조건)인데 이것은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 공히 강조하고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이 찰나와 상속은 대승불교의 아비달마인 유식으로 그대로 전승되어서 유식의 가장 중요한 이론인 식전변설로 전개된다. 세친 스님의 제자인 안혜(sthiramati) 스님은『유식삼십송』의 안혜석(安慧釋)에서 전변(轉變, parināma)을 ‘다르게 됨[變異性, anyathātva]’이라고 정의한 뒤 인의 찰나[因刹那]가 소멸됨과 동시에 인의 찰나와는 특징이 다른(vilakṣana) 과(果)의 [찰나]가 일어나는 것이 전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유식의 여러 주석서에서는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현행훈종자(現行薰種子),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구조로 식전변을 멋지게 설명하고 있다.(『성유식론소초』등) 이처럼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대승 아비달마인 유식도 유위법을 찰나와 흐름[相續]으로 설명해 낸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사무치지 못하면 아비담마와 유식은 한낱 고승들의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게 될 수 있으니 두려운 일이다.
나아가서 윤회는 이러한 찰나생․찰나멸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그래서『청정도론』등은 “무더기[蘊]와 요소[界]와 장소[處]의 연속이요, 끊임없이 진행됨을 윤회라고 한다.”(Vis.XVII.115; DA.ii.496; SA.ii.97)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유성질[自性, sabhāva]과 찰나[刹那, khaṇa]는 아비담마를 구성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된다. 역자들은 이것을 아비담마의 두 가지 공리(公理)라고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강조한다. 유위법들은 ① ‘고유성질을 가진 것[任持自性, sabhāvaṁ dhāreti]’이고 ② ‘찰나적 존재[有刹那, khaṇika]’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찰나에 대한 고찰을 마무리한다.
7.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그러면 아비담마는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를 간략히 살펴보자.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부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왓티의 급고독원(기원정사)에 머물기 시작하시면서부터 후반 20여 년간은 법의 체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노력의 흔적은 특히『상윳따 니까야』에서 볼 수 있다.『상윳따 니까야』나『맛지마 니까야』나『앙굿따라 니까야』경들의 절반 정도나 그 이상이 급고독원에서 설해졌다는 것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율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하나하나 제정하여 점점 체계화되어왔으며 부처님 재세 시부터 이미『빠띠목카 숫따』(Pātimokkha Sutta)로 정착이 되어서 학습계목(sekhiya)을 제외한 150여 조목은 비구들이 포살일에 함께 합송하여왔음이 분명하다. 한편『숫따니빠따』의 제4장과 제5장에 해당하는「앗타까 품」과「도피안 품」은 부처님 재세 시에도 아주 일찍부터 비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암송되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일차 결집에서 법(Dhamma)과 율(Vinaya)이란 타이틀로 합송되어서 전승된 것이다. 특히 부처님께서 강조해서 사용하신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의 용어는 이미 4부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체계화되어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후반부와 입멸 직후에는 이런 중요한 용어와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특히 중요시되었음이 분명하다.『디가 니까야』의「합송경」(Saṅgīti Sutta, D33)과「십상경」(十上經, Dasuttara Sutta, D34)에는 많은 법수(法數)들이 체계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전통은 자연스럽게 상좌부 칠론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위방가』[分析論, Vibhaṅga]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경장과 율장에서는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로 부르고 있다. 먼저『맛지마 니까야』에는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두 비구가 있어 아비담마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각자 받은 질문에 대답하며 그칠 줄을 모르고 그들의 대화는 법에 근거하여 계속됩니다.”(M32 §15)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 비구가 아비담마에 대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M103 §3)로 나타나는데 이럴 경우에는 뜻(attha)과 표현(byañjana)으로 두 사람의 견해를 화합시켜야 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굴릿사니 경」(M6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에 전념해야 합니다.”(M69 §17)라고 대중들을 경책하고 있다.
그 외 율장과『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단어는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법과 율을 배우고 공부하고 지니는 것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불멸 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라는 문헌군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비위나야 문헌은 발전이 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율장 자체에서 이미 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논모(論母, 논의의 주제)로 옮기고 있는 마띠까(Mātikā)로 자연스럽게 발전되었음이 분명하다. 마띠까는 문자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matrix(자궁, 모체)란 말과 같은 어원인데 어머니를 뜻하는 ‘mātā(Sk. mātṛ)’에서 파생된 말로, 문자적인 뜻 그대로 ‘어머니에 속하는’의 의미이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계율의 조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마띠까는 사실 율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율장에서는 빠띠목카[戒目]를 마띠까로 불렀다. 뒤에는 부처님 말씀도 법수(法數)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마띠까로 전승되어 오다가 여기에 설명을 붙이면서 아비담마 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늦어도 3차 결집 때까지는 이 마띠까에 대한 정의와 상세한 주석과 분석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장의 칠론(七論)으로 완성되었다고 보아진다. 이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상좌부 칠론이 정착된 것이다. 지금의 상좌부 아비담마 칠론이 최초로 완성된 형태로 언급되는 곳은 상좌부 소전의『밀린다빤하』(밀린다왕문경)의 서문 부분이다.
8. 아비담마 발전의 세 단계
불교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비담마 문헌은 역사적으로 세 단계를 통해서 발전하여 왔다. 그것은 ① 아비담마 삐따까 ― 논장의 칠론 ②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 ― 앗타까타(주석서)와 띠까(복주서)를 포함한 칠론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 ③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槪說書)이다.
여기서 ①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는 논장으로 번역이 되며 상좌부 논장의 칠론을 뜻하고 늦어도 3차결집 이전에는 완성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 ②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은 논장 칠론에 대한 주석서로 싱할리어로 전승되어온 고주석서를 토대로 5세기 무렵에 붓다고사 스님이 3권으로 완성한 것과 여기에 대한 띠까(복주서)와 아누띠까들(복복주서)을 말한다. ③ 이처럼 방대하고 어려운 논장 칠론과 여기에 대한 주석서들을 토대로 아비담마 교학 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필요에서 주석서 문헌과 같은 시기나 그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들이다.
이제 이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⑴ 아비담마 삐따까 ― 상좌부 아비담마 칠론(七論)
그러면 논장(Abhidhamma Piṭaka)의 칠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자.
①『담마상가니』[法集論, Dhammasaṅgaṇī]:
법(dhamma)의 갈무리(saṅgaṇī)로 옮길 수 있는『담마상가니』는 빠알리 삼장의 논장에 속하는 일곱 가지 논서[七論, satta pakaraṇāni] 가운데 첫 번째 문헌이다.
『담마상가니』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①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분류하여『담마상가니』의 논의의 주제를 총괄적으로 밝히고 있는 마띠까(mātikā), ② 정신[名, nāma]을 구성하는 법들을 다양한 마음을 중심으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 ③ 물질을 한 개 조부터 열한 개 조까지의 279개의 마띠까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는 제2편 물질 편, ④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구성된『담마상가니』마띠까 164개 전체를 간략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제3편 간결한 설명 편, ⑤ 164개 마띠까 가운데 경장의 마띠까 42개를 제외한 122개 논장의 마띠까의 의미를 주석의 방법으로 밝히고 있는 제4편 주석 편이다.
『담마상가니』의 중요성은 특히 아비담마의 전체 골격을 드러내어 주는 그 마띠까에서 찾아야 한다.『담마상가니』의 마띠까는 선․불선․무기로 시작하는 세 개 조(tika)로 된 22개와 두 개 조(duka)로 된 100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전체 법수를 일관성 있게 개괄한 것이다. 마띠까의 측면에서 보자면『담마상가니』제1편과 제2편은 164개 마띠까 가운데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라는『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에 대한 설명이다.
②『위방가』[分析論, Vibhaṅga]:
vibhaṅga라는 단어는 vi(분리해서)+√bhaj(to divid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분석, 분해, 해체, 분별’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주요 가르침을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 기능[根], 진리[諦], 연기[緣], 염처(念處) … 의 18가지 장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이미『맛지마 니까야』등의 경에서도 다수 등장하고 있는데 부처님 재세 시부터 법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불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자연스럽게『위방가』로 결집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위방가』의 원형은 칠론 중에서 제일 먼저 결집되었다고 간주한다.
『위방가』의 각 장들은 대부분 각각 ‘경에 따른 분류(Suttanta-bhājanīya)’와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Abhidhamma-bhājanīya)’와 ‘질문을 제기함(Pañhā -pucchaka)’으로 나누어서 전개되는데 경에 따른 분류는 니까야의 정형구를 의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는 아비담마에서 정착시킨 정형구에 토대를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질문을 제기함’은『위방가』14장, 16장, 17장, 18장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분류법인데『담마상가니』제1권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122개의 아비담마 마띠까를 통해서『위방가』의 14가지 주제들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법수(法數)들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살펴보는 품이다.
③『다뚜까타』[界論, Dhātukathā]:
‘요소(dhātu)들에 관한 가르침(kathā)’으로 번역되는『다뚜까따』는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āyatana]․요소[界, dhātu]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의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서는 이런 온․처․계의 분석으로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척파하기 위한 것이다.
④『뿍갈라빤냣띠』[人施設論, Puggalapaññatti]:
제목이 암시하듯이 여러 형태의 개인에 대해서 일부터 열까지의 법수로서 논의하고 있다. 빤냣띠는 아비담마의 근본주제가 아닌 세속적인 ‘개념’이나 ‘명칭’을 뜻하며 그래서 시설(施設)이라고 한역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의 개인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법수에 따라서 모아져 있으며 그래서 형식상『디가 니까야』의「합송경」(D33)이나「십상경」(D34)이나『앙굿따라 니까야』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결집된 형태나 내용으로 봐서 논장에 포함되기보다는 경장에 포함되어야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⑤『까타왓투』[論事, Kathāvatthu]:
칠론 중에서 부처님이 설하지 않으신 것으로 전승되어온 책이다. 이 논서는 3차 결집을 주도한 목갈리뿟따 띳사(Moggaliputta Tissa) 장로가 다른 부파의 견해를 논파하고 상좌부의 견해를 천명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으로 알려졌으며 부파불교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⑥『야마까』[雙論, Yamaka]:
아비담마의 전문용어의 애매하고 잘못된 사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집된 논서이며 문제 제기를 항상 쌍(yamaka)으로 하기 때문에『야마까』(쌍론)라 이름을 지었다.
⑦『빳타나』[發趣論, Paṭṭhāna]:
마하빠까라나(Mahā-pakaraṇa, ‘큰 책’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얀마 아비담마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논서로 취급하고 있다. 총 5권의 2,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담마상가니』제1권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 100개 전체에 대해서 24가지 조건(본서 제8장 §11 참조)을 적용시키고 있는 난해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스님들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유산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중요한 날들에 우리나라 절에서 철야기도를 하듯이 이『빳타나』를 암송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여러 스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읽어 총 80시간 이상을 독송해야 전체를 다 읽어낼 수 있다.
⑵ 아비담마의 주석서 문헌들
① 아비담마의 주석서들(Abhidhamma Aṭṭhakathā)
이런 방대한 아비담마 논서들, 즉 논장의 칠론은 다시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서 5세기경에 세 권의 주석서로 장엄이 되었다. 이 가운데서『앗타살리니』(Atthasālinī)는 칠론의 첫 책인『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이고『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ī)는 두 번째인『위방가』의 주석서이다. 세 번째인『빤짜빠까라나 앗타까타』(Pañcappakaraṇa Aṭṭhakathā)는 말 그대로 나머지 다섯 가지(pañca) 책(pakaraṇa, 논서)의 주석서이다.
전통적으로 이들 주석서들은 모두 그 이전에 있었던 싱할리 주석서들과 안다라(Andhara, 인도의 안드라쁘라데시와 타밀나두 지역)의 주석서(Andhaka- aṭṭhakathā) 등을 토대로 붓다고사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양 학자들은 붓다고사 스님의 편찬이라는 데 의문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세 아비담마의 주석서들은『청정도론』을 위시한 네 가지 경장의 주석서들과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논장의 이 세 주석서들은 붓다고사 스님의 감수하에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특히『앗타살리니』는『마하왐사』(Mahāvaṁsa) 등의 빠알리 역사서에 근거하여 붓다고사 스님이 인도에 있을 때 지은 것인데 후에 스리랑카로 건너와서 대사(大寺, Mahāvihāra)파의 싱할리 주석서들을 참고하면서 다시 고쳐 쓴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 세 주석서들이 붓다고사 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청정도론』을 참고할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청정도론』에서 이미 설명한 부분은 주석을 깊이 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붓다고사 스님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 오히려 주석서라는 문헌의 성격이 주석을 다는 그 책의 내용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방대한 양의 모든 주석서들이 한 부분에서도 견해를 달리하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붓다고사 스님 시대가 그 이전에 상좌부에서 전승되어오던 모든 견해들을 빠알리 주석서로 정착화시키는, 어찌 보면 온갖 견해가 난무하던 때라서 주석서마다 다른 견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아주 많을 것이다. 또한 붓다고사 스님 스스로도 세월이 가면서 자신의 견해나 관점이 더 정교해지면서 초기에 결집한 주석서가 후대에 결집한 것과 다른 견해를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석서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다.
이 아비담마 주석서들은 아비담마가 상좌부에서 정교한 틀로 정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책이다. 이들은 칠론에 버금갈 정도로, 어쩌면 칠론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는 책일지 모른다. 법들의 고유성질을 정의하고 설명하고 논의하는 것은 주석서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주석서들을 통해서 상좌부 아비담마의 방대한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상좌부 아비담마가 완성된 체계로 정착되기까지 있었던 무수한 견해들을 정리해내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 학계가 소화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② 아비담마의 복주서(Ṭīkā) 및 복복주서(Anuṭīkā)
한편 이 논장의 주석서들에 대한 복주서들(Ṭīkā)은 붓다고사 스님과 몇 십 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아난다(Ānanda) 스님에 의해서 역시 세 권으로 쓰여졌다. 아난다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의 정통 견해와는 다른 여러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난다 스님의 복주서들은 빠알리로 쓰여진 문헌들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책에 속한다고 정평이 나 있으며 띠까 문헌들 중에서도 최초의 책들이다. 그래서 물라띠까(Mūlaṭīkā)라 불린다. mūla는 근원이나 뿌리라는 말이다.
이 책들은 다시 아난다 스님의 제자이거나 적어도 영향을 많이 받은 스님이라고 여겨지는 대주석가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이 아누띠까(Anuṭīkā)로 주석하였다. 상좌부의 본산인 대사(大寺, Mahāvihāra)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와 상충되는 아난다 스님의 견해들을 논박하고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이렇게 해서 상좌부 아비담마 불교는 완성이 되기에 이르렀고 남방 상좌부의 세 파들 가운에서 대사파가 완전히 교리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담마빨라 스님의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역자(대림 스님)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청정도론』의 대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ñjūsā)를 읽으면서 담마빨라 스님의 예지에 감탄을 하였다.
⑶ 후대의 아비담마 개설서들
이렇게 방대하게 아비담마 논서들은 주석에 주석을 거듭하면서 발전되어왔다. 그러므로 이런 상좌부 칠론과 주석서와 복주서와『청정도론』등의 방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헌을 접하면서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초심자에게는 현애상을 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이 실하게 요구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미 5세기 때부터 많은 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최초는 아마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이 지은『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āvatāra, 아비담마 입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담마빨라 스님의『빠라맛타만주사』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칠론이나 그 주석서들이나 복주서들과 관계없는 독립된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말하는 미얀마에서는 다음 9권의 아비담마 책을 들고 있다.
①『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a-avatāra): 이 책은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의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의 저술이다.『아비담마 아와따라』는 모두 1,416개의 운문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모두 24개의 장으로 나누어지고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과 열반의 순서로 구경법들을 설명한다. 여기서 마음은『담마상가니』처럼 유익한 법들․해로운 법들․결정할 수 없는 법들[善․不善․無記]의 순서로 설명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마띠까를 중심에 두고 아비담마의 법수들을 차례대로 설명한 뒤에『청정도론』의 핵심 주제인 칠청정(七淸淨)을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②『루빠아루빠 위바가』(Rūpārūpa-vibhāga): 이 책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③『삿짜 상케빠』(Sacca-saṅkhepa): 쭐라 담마빨라(Cūḷa Dhamma- pāla)라 알려진 스님의 저술이며 387개의 운문으로 저술되었다. 본서는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온의 순서에 초점을 맞추어 82법과 개념(paññatti)까지 설명하고 있다.
④『케마 빠까라나』(Khema-pakaraṇa): 나마루빠 사마사(Nāmarūpa -samāsa)로도 알려진 이 책은 케마 스님이 지은 산문 위주의 간단한 책이다. 12세기에 이 책에 대한 주석서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보고 있다.
⑤『아비담맛타상가하』(Abhidammattha Saṅgaha): 본서.
본서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을 위시한 법들을 전통적인 분류 방법인 선․불선․무기의 순서로 설명하지 않고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의 경지를 통해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상좌부 아비담마의 설명은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⑥『나마루빠 빠릿체다』(Nāmarūpa-pariccheda): 역시 아누룻다 스님의 저작으로 13장에 총 1,845개의 운문으로 되어 있다.
⑦『빠라맛타 위닛차야』(Paramattha-vinicchaya): 이 책 역시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책의 후기에 남인도의 깐찌뿌라(Kañcipura)에 있는 까위라(Kāvīra)라는 읍에서 태어난 자가 지었다는 내용을 근거로 아누룻다 스님은 인도 출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유명한 학승이셨던 붓다닷따 스님은 이 책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과『아비담맛타상가하』와『나마루빠 빠릿체다』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⑧『모하 윗체다니』(Moha-vicchedanī): 이 책은 12세기 뽈론나루와 불교 시대의 거장이었던 깟사빠(Kassapa)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논장의 칠론에 실린 마띠까들 전체에 대한 주석을 담고 있는 중요한 책이다.
⑨『나마짜라 디빠까』(Nāmacāra-dīpaka): 이 책은 15세기에 미얀마 바간(Bagan)에 거주하던 삿담마 조띠빨라(Saddhamma-Jotipāla) 스님이 쓴 책이다.
이외에도 그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스리랑카와 태국, 특히 미얀마에서 저술되었다. 이렇게 아비담마는 역사적으로 내로라하는 많은 스님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음미되면서 체계화되었고 후학들에게 전승되었다. 사실 이런 아비담마의 모든 책들을 다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후대로 내려오면서 특히 미얀마에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한 권만을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다. 아비담마를 담고 있는 모든 책들 가운데 아비담마의 주제들을 체계적이고 간결하면서도 빠짐없이 서술한 책으로 본서를 능가할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깟짜야나 문법서』(Kaccāyana-byākaraṇa)와 본서를 강원에서 반드시 외워야 하는 책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아비담맛타상가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9. 『아비담맛타상가하』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에 대해서
불교의 인물들이 대부분 다 그러하듯이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자료는 거의 없다. 주변의 여러 정황들을 참조하여 추측할 뿐이다. 먼저 이『아비담맛타상가하』가 빠락까마바후 1세(1153~1186) 때의 뽈론나루와 불교 부흥의 주역이었던 사리뿟따 스님에 의해서 싱할리어로 옮겨진 증거가 있으므로 12세기 이후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17세기 무렵에 미얀마에서 만들어진 불교 역사서인『간다왐사』(Ganda -vaṁsa)에서 본서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을 스리랑카 출신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후기에서 아누룻다 스님은 스리랑카에 있는 것이 분명한 물라소마 승원(Mūlasoma Vihāra)에서 본서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스리랑카 출신 학자들은 아누룻다 스님을 스리랑카 사람으로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로 알려진『빠라맛타 위닛차야』(Paramattha-vinicchaya)의 후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남인도 깐찌뿌라 출신이라고 되어 있음을 근거로 아누룻다 스님이 인도 출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세기 초반 스리랑카의 대학승이셨던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은『빠라맛타 위닛차야』가 다른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A. K. Wader도 그의 Indian Buddhism에서 이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다.
10.『아비담맛타상가하』의 구성
이제 본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자.『아비담맛타상가하』는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아주 체계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마음(citta)의 길라잡이에서는 마음이 일어나는 경지(bhūmi)와 불선․선․무기라는 마음의 종류(jāti)의 차이 등에 따라서 마음을 89/121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제2장 마음부수[心所, cetasikā]의 길라잡이에서는 52가지 마음부수들을 공통되는 것 13가지, 해로운[不善] 것 14가지, 유익한[善] 것 25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떤 마음부수들이 일어나는지를 조합(saṅgaha)의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마음부수는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지를 결합(sampayoga)의 측면에서 관찰하고 있다.
제3장 일반적인 항목(pakiṇṇaka)의 길라잡이에서는 89가지로 분류되는 마음을 느낌, 원인, 역할, 문, 대상, 토대의 여섯 가지 다른 측면에서 다시 고찰해 보고 있다. 특히 마음의 역할 14가지는 상좌부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이며 이것을 이해해야 제4장의 인식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제4장 인식과정(vīthi-citta)의 길라잡이는 인식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는데 마음(citta)은 매 찰나에 어떤 과정으로 대상을 인식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가히 상좌부 아비담마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하겠다. 이런 인식과정은 설일체유부의 칠론을 비롯한 북방 아비다르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독창적인 것이다.
제5장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vīthi-mutta)의 길라잡이는 이런 인식과정을 벗어난 재생연결(paṭisandhi)과 바왕가(bhavaṅga)와 죽음의 마음(cuti- citta)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중생들의 거처를 악도에서부터 욕계․색계․무색계의 31가지 세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시 이들 세상에 태어나는 동력인(動力因)으로서 업을 16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생연결에 대한 분명한 이론을 제공하고 있다.
제6장 물질(rūpa)의 길라잡이는 28가지 물질을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과 24가지 파생된 물질로 나누고 이런 물질들을 다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물질이 생기는 요인인 업(kamma), 마음(citta), 온도(utu), 음식(āhāra)과 이들로부터 생긴 물질들을 논의하고, 물질의 무리(깔라빠, kalāpa)와 물질이 존재하는 요인 등 물질에 관한 여러 측면을 나열하고 있다. 무위법인 열반도 제6장의 뒷부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다.
제7장 범주(samuccaya)의 길라잡이에서는 다시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과 열반을 ① 향상과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법들의 범주 10가지 ② 선․불선․무기가 혼합되어 있는 범주 7가지 ③ 깨달음의 편에 있는 것들[菩提分] 7가지 ④ 불교에서 일체를 설명하는 방법인 온․처․계․제(蘊․處․界․諦)의 4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법들을 모두 28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제8장 조건[緣, paccaya]의 길라잡이는 조건을 ① 12연기와 ② 24가지 빳타나(상호의존관계, paṭṭhāna)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연기법을 삼세양중인과로 설명하고 있으며,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 간의 상호의존관계를 24가지 빳타나로써 설명하고 있다. 구경법이 아닌 개념들[施設, paññatti]도 제8장의 말미에서 설명하여 아비담마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모두 본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9장 명상주제(kammaṭṭhāna)의 길라잡이에서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수행을 통해 성자의 경지[聖位]를 증득하는 방법으로서 사마타[止, samatha]와 위빳사나[觀, vipassanā]를 제시하고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핵심 개념들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11.『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들
거듭 말하지만『아비담맛타상가하』는 대부분이 아비담마의 주제(아비담맛타)들을 간략한 정의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나열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초보자가 아무런 해설서 없이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주석서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주석서는 12세기 스리랑카의 나와위말라붓디(Navavimala -buddhi)가 지은 Porāṇa Ṭīkā(오래된 복주서)인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①『위바위니 띠까』(Abhidhammattha Vibhāvinī Ṭīkā):
『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아비담맛타상가하』를 이해하는 부동의 준거로 자리한 것은『위바위니 띠까』(Abhi –dhammattha Vibhāvinī Ṭīkā)이다. 이 책은 12세기 스리랑카의 수망갈라사미(Sumaṅgalasāmi) 스님이 썼는데 앞에서 언급한 논장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는 담마빨라 스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깊이 있게 정리되어 고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본『아비담맛타상가하』뿐만 아니라『위바위니 띠까』는 이런 담마빨라 스님의 견해를 바탕으로 아비담마를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위바위니 띠까』가 등장하자 다른 주석서들은 빛을 잃어버렸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해서 900여 년간 상좌부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기본 서적으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②『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
그러다 1897년에 근세 미얀마가 낳은 최고의 지성이요 큰스님이며 아비담마와 위빳사나의 대가였던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1846~1923)가『빠라맛타디빠니 띠까』(Paramatthadīpanī Ṭīkā)를 발표하자 아비담마 대가들 사이에서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게 되었다. 레디 사야도는 무려 325군데에서『위바위니 띠까』의 잘못과 애매함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아비담마 대가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분들은『위바위니 띠까』를 변론하고 어떤 분들은『빠라맛타디빠니 띠까』를 옹호했으며 어떤 분들은 절충을 하였다. 지금 아비담마 학계(사실은 미얀마의 아비담마 대가 스님들)는 어떤 부분은『위바위니 띠까』가 더 타당하고 다른 어떤 부분은 레디 사야도가 더 타당하다는 식으로 정(正)과 반(反)을 지나 합(合)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처럼『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근세에 아비담마의 이해를 깊게 한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바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위바위니 띠까』와 쌍벽을 이루는 주석서로 자리 잡아버렸다. 레디 사야도는 1916년에 다시 이『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 대한 복주서인『아누디빠니』(Anudīpanī)를 발표했다. 본『아비담마 길라잡이』의 해설 부분은『위바위니 띠까』와 특히 레디 사야도의『빠라맛타디빠니 띠까』의 설명을 CMA의 도움으로 정리한 것에다『청정도론』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여 넣은 것을 중심으로 하였다.
12. 각 장의 요점
『아비담맛타상가하』는 아비담마의 핵심 주제를 간결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각 장에서 그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역자들이 파악한 각 장의 요점을 여기에 적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 제1장 마음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먼저 마음(citta)은 찰나생․찰나멸이라는 점에 사무쳐야 한다. 마음과 마음의 흐름[心相續, citta-santati]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세간적인 차원에서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마음의 흐름, 즉 마음들이 찰나적으로 생멸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아비담마의 마음은 한 찰나에 생겼다가 멸하는 것이다. 마음은 한 찰나에 일어나서 대상을 아는 기능을 수행하고 멸한다. 그러면 그다음 마음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이렇게 마음은 흘러간다. 이들은 너무나 빠르게 상속하기 때문에 보통의 눈으로는 각각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⑵ 아비담마에서 마음은 항상 ‘대상(ārammaṇa)을 아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은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써 오직 하나의 고유성질을 가진다. 마음은 일어나서 대상을 인식하는 기능을 하고서 멸한다. 그러면 인식과정의 법칙(niyama)에 따라 다음 찰나의 마음이 일어난다. 아비담마 전체에서 ‘마음은 대상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므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담마빨라(Dhammapāla)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대상 없이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⑶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써는 하나이지만 ① 일어나는 경지(bhūmi)에 따라서 욕계 마음․색계 마음․무색계 마음․출세간 마음으로 분류가 된다. ② 마음은 다시 그 종류(jāti)에 따라서 넷으로 분류가 되는데 ‘해로운 것[不善, akusala]’, ‘유익한 것[善, kusala]’, ‘과보인 것(과보로 나타난 것, vipāka)’, ‘작용만 하는 것(kiriya)’이다. 이 넷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⑷ 마음은 항상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나는데 관련된 주요한 마음부수들의 특징에 따라서 더 세분해서 나누고 있다. 예를 들면 해로운 마음들은 12가지로 나누는데 탐욕에 뿌리박은 것 8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것 2가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것 2가지로 구분한다.
⑸ 이렇게 하여 ‘일어나는 경지(bhūmi)’, ‘종류(jāti)’, ‘관련된 주요한 마음부수들’에 따라서 모두 89가지로 분류가 된다. 그리고 출세간의 8가지 경지 각각이 5종禪 가운데 각각 어떠한 禪의 경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8×5=40이 되므로 89가지 마음은 89-8+40=121가지 마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⑹ 89/121가지 마음들 가운데서 초심자들이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18가지 ‘원인 없는 마음들(ahetuka-cittā)’인데 제4장 인식과정(vīthi-citta)을 이해하면 해결되므로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음미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단 이 18가지 마음들을 바르게 이해하면 아비담마는 본궤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제2장 마음부수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마음부수들은 항상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며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진다.”(제2장 §1)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⑵ 마음부수들은 모두 52가지인데 다른 것과 같아지는 것 13가지, 해로운 것 14가지, 유익한 것 25가지로 구성된다. 이 다른 것과 같아지는 것 13가지는 같이 작용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이 해로운 것이면 해로운 것이 되고 유익한 것이면 유익한 것이 되므로 이런 이름으로 분류를 했다. 이 가운데서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기능, 마음에 잡도리함’의 7가지는 모든 마음과 항상 같이 일어난다.
⑶ 52가지 마음부수법들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비슷비슷한 마음부수들, 예를 들면 양심과 수치심, 마음챙김과 마음에 잡도리함 등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음부수법들을 매 순간 내 안에서 분명하게 찾아내어 확인하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토대가 된다.
⑷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이렇게 항상 같이 일어나고 같이 멸한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부수들은 어떤 마음들과 함께 일어나며 어떤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떤 마음부수들이 같이 일어나는가를 자세하게 분석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52가지 마음부수가 어떤 마음들과 같이 일어나는가를 분석하는 것을 결합(sampayoga)의 방법이라 하고 89/121가지 마음이 어떤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나는가를 고찰하는 것을 조합(saṅgaha)의 방법이라 한다. 결합과 조합을 통해서 마음↔마음부수들이 자유롭게 짝지어지도록 해야 한다.
· 제3장 일반적인 항목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본 장에서는 마음을 다시 ‘느낌, 원인, 역할, 문, 대상, 토대’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고 있다. 이것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개념들이며 아비담마를 이해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특히 마음의 14가지 역할과 마음의 6가지 대상은 더욱더 중요한 개념이다.
⑵ 제1장에서 마음은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써는 오직 하나이지만 일어나는 경지와 종류와 관련된 마음부수들에 의해서 89/121가지라고 했다. 이런 마음은 다시 14가지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그것은 ① 재생연결 ② 존재지속 ③ 전향 ④ 봄 ⑤ 들음 ⑥ 냄새 맡음 ⑦ 맛봄 ⑧ 닿음 ⑨ 받아들임 ⑩ 조사 ⑪ 결정 ⑫ 속행 ⑬ 여운 ⑭ 죽음이다. 제3장의 해설들을 통해서 이 14가지를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⑶ 거듭 강조하지만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핵심 명제이다. 불교에서 대상은 형색[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마노의 대상인] 법(法)의 여섯 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마노의 대상인 법은 6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① 감성(pasāda)의 물질 ② 미세한 물질(sukhuma -rūpa) 16가지 ③ 이전의 마음(citta) ④ 마음부수(cetasikā) 52가지 ⑤ 열반(nibbāna) ― 유학(有學)과 아라한[無學]에게만 ⑥ 개념들[施設, paññatti]이다. 나의 마음은 매찰나 이 여섯 가지들 중의 어떤 것을 대상으로 삼아서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해 보려 노력할 때 아비담마가 위빳사나요 위빳사나가 아비담마가 될 것이다.
⑷ 문에 따라서 관찰해 보면 눈․귀․코․혀․몸의 문에서 일어나는 알음알이들, 즉 전오식(前五識)은 모두 현재의 물질적인 대상을 대상으로 취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대상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속하는 것이며 시간을 벗어난 것, 즉 열반과 개념도 포함된다.
· 제4장 인식과정의 길라잡이의 요점
인식과정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백미이다. 다음 몇 가지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⑴ 인식과정은 크게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오문(五門)인식과정과 마노[意]의 대상을 인식하는 의문(意門)인식과정으로 나누어진다.
⑵ 상좌부에서는 물질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과 마음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상좌부에서는 물질이 머무는 아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정의한다.
⑶ 그러므로 오문인식과정에서, 예를 들면 눈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대상’을 두고 17번의 마음이 생멸한다. 이것도 대상에 따라서 ① 매우 큰 것 ② 큰 것 ③ 작은 것 ④ 매우 작은 것의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며 이것은 다시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져 총 15가지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기서 크고 작다는 말은 물질적인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충격을 주는 힘의 ‘강약’을 나타낸다.
⑷ 매우 큰 대상일 경우에 17번 일어나는 마음들은 바왕가(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오문전향, 전오식, 받아들임, 조사, 결정, 일곱 번의 자와나(속행), 두 가지 여운이다. 이 가운데서 15가지 인식의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키워드는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인데 이것은 대상이 나타났지만 그 대상의 충격이 미약하여서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충격이 매우 작은 대상들은 바왕가의 동요만 일으키고 인식과정이 끝나 버린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마지막 15번째 경우에는 대상이 문으로 들어왔는데도 15번째의 심찰나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흘러가 버려 겨우 두 번만 바왕가의 동요가 일어나고서 인식과정이 끝나 버리는 경우이다. 이렇게 15가지를 음미해 보기 바란다.(<도표 4.2> 참조)
⑸ 의문인식과정은 오문인식과정보다 단순한데 그 이유는 오문전향, 전오식, 받아들임, 조사, 결정의 과정이 없이 의문전향 다음에 바로 자와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노[意]의 대상은 이처럼 즉각적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의문인식과정은 마노의 대상에 따라 선명한 것과 희미한 것의 둘로 나누어진다.
⑹ 이런 관점에서 본삼매 속행과정도 본문을 보면서 숙지하면 된다.
⑺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각각의 인식과정은 반드시 하나 이상의 바왕가, 즉 존재지속심을 거쳐서 그다음의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 제5장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인식과정이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이라면 인식과정을 벗어난 것은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들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바왕가(존재지속심)와 재생연결식과 죽음의 마음이 포함된다.
⑵ 본 장은 재생연결의 과정, 즉 윤회의 과정을 윤회하는 세상과 윤회하는 재생연결식과 죽음과 그 원동력이 되는 업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⑶ 저자는 이러한 윤회의 원리와 과정을 심도 있게 설명하기 위해 먼저 유정들이 태어나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상을 31가지로 분류하고(§§3~17) 이런 세상에 태어나는 동력인으로서 업(kamma)에 대해 상세하게 열거한 뒤(§§18~33) 죽음과 재생연결의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34~42)
⑷ 특히 마음의 흐름과 재생연결의 원동력인 업에 대해서 16가지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제시하는 업설(業說)을 나 자신의 삶에 비추어서 이해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⑸ 이런 이해를 토대로 하여 본 장에서는 ① 죽음과 재생연결의 과정과 ② 바왕가를 중심한 마음의 상속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죽음과 재생연결은 중요한 부분이니 숙지해야 한다.
· 제6장 물질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상좌부 아비담마는 물질을 총 28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⑵ 이 중에서 18가지는 구체적 물질(nipphanna-rūpa)이라 하고 나머지 10가지는 추상적 물질(anipphanna-rūpa)이라 한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구체적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에서 생긴 물질이고 추상적 물질은 허공, 몸의 암시와 말의 암시, 물질의 가벼움․부드러움․적합함, 그리고 물질의 생․주․이․멸을 말하며 이 추상적인 것들을 상좌부 아비담마는 물질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⑶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으로 인하여 생긴다.
⑷ 물질에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avinibbhoga, 즉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개념이다. 아비담마에서는 지․수․화․풍 사대(四大)와 형색[色, rūpa], 냄새[香, gandha], 맛[味, rasa], 영양소(ojā)의 여덟 가지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용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은 항상 서로 묶여서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아주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적인 것에 현현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ojaṭṭhamaka, 즉 영양소를 여덟 번째로 한 것이라든가 suddhaṭṭhaka, 즉 순수한 팔원소라는 등의 용어로도 나타난다.
⑸ 아비담마에서 현실적으로 물질은 이런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묶여서 존재한다고 관찰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리지어서 존재하는 것을 깔라빠(kalāpa)라 부른다. 깔라빠는 물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므로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⑹ 그래서 이 세상의 물질은 아주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비담마에서 물질의 존재 유형, 즉 깔라빠는 오직 21가지뿐이라고 한다. 욕계와 색계의 모든 물질은 제 아무리 많아도 21가지 형태뿐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외부에 있는 깔라빠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⑺ 이 가운데서 9가지는 업에서 생긴 것이고, 6가지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고, 4가지는 온도에서 생긴 것이고, 2가지는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 물질은 이것뿐이다. 물론 이 가운데 겹치는 것도 있다. 제6장 §§9~15를 참조해서 음미해 보기 바란다.
⑻ 제6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으로 열반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의한다.
· 제7장 범주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여기서는 이때까지 배운 아비담마의 구경법(究竟法)들가운데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제외한 토대가 되는 법들 72가지를 ① 해로운 범주 ② 혼합된 범주 ③ 보리분(菩提分)의 범주 ④ 일체(一切)의 범주로 나누어서 아비담마 칠론, 특히『위방가』에서 정리하고 있는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Abhidhamma-bhājanīya)’과 배대(配對)해서 관찰해 보고 있다.
⑵ 첫 번째 범주로 정리하는 해로운 범주의 길라잡이에는 모두 10개의 모둠이 나타나고 있다. 그 10가지는 ① 번뇌(āsava), ② 폭류(ogha), ③ 속박(yoga), ④ 매듭(gantha), ⑤ 취착(upādāna), ⑥ 장애(nīvaraṇa), ⑦ 잠재성향(anusaya), ⑧ 족쇄(saṁyojana, 경에 따른 분류), ⑨ 족쇄(saṁyojana,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⑩ 오염원(kilesa)이다. 이들은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의 첫머리에 실려있는 마띠까[論母, mātikā]에 포함되어 있는 10가지 모둠 가운데, 첫 번째 주제인 ‘원인(hetu)’은 혼합된 범주에 속하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고, 족쇄를 경에 따른 분류와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로 나누어서 해로운 법들을 모두 열 개의 모둠으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다.
⑶ 두 번째 범주로 정리하고 있는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에서는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과 무기(avyākata)의 요소들이 함께 혼합된 여러 범주들을 고찰한다. 그래서 혼합된(missaka)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원인, 禪의 구성요소, 도의 구성요소, 기능[根], 힘[力], 지배[增上], 음식[食]의 일곱 가지 범주가 다루어지고 있다.
⑷ 세 번째 범주인 보리분(菩提分)의 길라잡이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八正道]의 7가지 주제로 정리되는 37보리분법 가운데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의 22가지 기능에 포함되어 있는 다섯 가지 기능[五根]을 제외한 여섯 가지 범주가 정리되어 있다.
⑸ 네 번째 범주인 일체(一切)의 길라잡이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khandha], 열두 가지 감각장소[十二處, āyatana], 열여덟 가지 요소[十八界, dhātu], 네 가지 진리[四諦, sacca], 즉 온․처․계․제의 네 가지 주제를 들고 있다. 초기불교 교학의 주제인 온․처․계․근․제․연의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 근은 이미 혼합된 범주의 길라잡이에서 설명이 되었고 연은 제8장 조건의 길라잡이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 네 가지만을 여기 일체의 길라잡이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 제8장 조건의 길라잡이의 요점
⑴ 조건(paccaya)이라는 제목하에 저자는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방법과 상호의존관계(paṭṭhāna)의 방법을 들고 있다.
⑵ 연기의 방법에서는 연기의 12가지 구성요소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즉 삼세에 걸친 인과의 반복적 지속의 측면에서 설명하며 상호의존관계의 방법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을 들고 있다.
⑶ 이 조건의 길라잡이에서 중요한 개념은 ① 조건짓는 법(paccaya- dhamma)과 ② 조건따라 생긴 법(paccaya-upanna-dhamma)과 ③ 조건짓는 힘(paccaya-satti)이다. 레디 사야도는 연기(緣起)는 조건짓는 법과 조건따라 생긴 법의 관계를 중점으로 분석하는 것이고 상호의존관계(빳타나)는 이 둘에다 다시 조건짓는 힘의 측면을 더 중시해서 물․심의 여러 현상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⑷ 상호의존관계(빳타나)는 아비담마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본서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은 이 24가지 상호의존관계를 정신․물질[名色]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6가지 경우(제8장 §§12~18 참조)에 배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⑸ 제8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개념[施設, paññatti]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여 아비담마의 주제를 모두 마무리 짓고 있다.
· 제9장 명상주제의 길라잡이의 요점
이 장은 아비담마를 수행과 연결짓는 중요한 부분이다.
⑴ 저자는 명상주제를 사마타[止, samatha]와 위빳사나[觀, vipassanā]의 둘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모두『청정도론』의 핵심만을 간추린 것이어서 가히 “청정도론 길라잡이”라 부를 만한 멋진 요약이다.
⑵ 먼저 분명히 해야 하는 전제는 사마타의 대상은 개념(paññatti)이고 위빳사나의 대상은 법(dhamma), 즉 구경법이라는 점이다.
⑶ 사마타의 키워드는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사마타는 준비단계의 표상(parikkama-nimitta)을 마음에 잡도리하여서 익힌 표상(uggaha-nimitta)을 얻고 다시 이것이 닮은 표상(paṭibhāga-nimitta)이 되도록 하여 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마음이 본삼매에 들도록 하는 수행법이다.
⑷ 위빳사나의 키워드는 무상․고․무아라는 법의 삼특상이다. 수행자가 매 순간을 물․심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훈련된 방법으로 이 무상․고․무아를 관찰함[隨觀]으로써 번뇌를 멸절하여 성자의 경지를 증득하고 구경에는 아라한이 되어 완전히 해탈하는 체계가 위빳사나이다.
⑸ 그 외 중요한 개념들은 본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역자들은 특히『청정도론』가운데서 수행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많이 옮겨놓았다.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13. 번역과 해설의 배경 및 방침
상좌부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역자들이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역자들이 미얀마의 사가잉(Sagaing)에 있는 수보다용(Subodhayong, 대림 스님)과 시따구(Sitagu, 각묵 스님)에 머물 때였으며 대림 스님의『청정도론』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두어 달이 지난 2001년 10월에 각묵 스님이 제안을 하면서부터이다. 대림 스님은 박사 과정에서『청정도론』의 주석서인『빠라맛타만주사』의 혜품을 연구했기 때문에『청정도론』도 혜품(XIV장〜XXIII장)부터 번역을 시작했다.『청정도론』번역을 하면 할수록 아비담마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가 없이는『청정도론』혜품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대림 스님은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청정도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아비담마의 개론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청정도론』뿐만 아니라 상좌부 불교를 이해하는 선결 조건이 된다고 판단하고 두 역자가 나름대로 역할을 분담하여 그 작업을 진행하였다.『청정도론』혜품의 일차 번역이 마무리된 12월 말에는 아비담마의 개론서도 거의 틀이 잡혀갔다. 그 후 2002년 1월 한 달을 틈틈이 더 다듬어 봤지만 전체적으로 무리한 곳이 많았다. 특히 아비담마를 우리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청정도론』만으로는 아비담마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이 결여되는 점도 문제였다.
이런 고민 끝에 2002년 2월 중순에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중심으로 다시 전체를 고쳐 쓰고 미흡한 부분은 보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아비담맛타상가하』의 원문을 먼저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을 토대로『청정도론』에서 관련된 부분을 다시 발췌하여 넣고 그동안 준비해둔 글들도 접목시켰다. 그리고 아비담마에 관한 한 제일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편찬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의 설명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참조하였다. 본서를 엮으면서 역자들은 CMA의 정확한 해설에 재삼 감탄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출처는 논장의 칠론을 비롯한 여러 아비담마 주석서들, 특히『위바위니 띠까』와『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발췌하여 보강하였다. 이렇게 해서 2002년 6월 말쯤에는 본서가 거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몸통으로 하고『청정도론』을 날개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역자들은 본서를 준비하면서 다음 사항들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아비담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길라잡이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부동의 길라잡이로 통하는『아비담맛타상가하』를 저본으로 택한 것이다. 물론 본서가 아비담마에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는 분들과 빠알리어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어렵다는 점도 역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은 본 역자 서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특히 아비담마에 관한 기본 개념은 역자 서문의 ‘12. 각 장의 요점’과 본서의 목차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아비담마에 관한 간략하고 개괄적인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 초심자가 아비담마를 읽어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비담마는 들어서 배워야 한다. 아비담마의 요점을 몇 번만 강의로 들으면 쉽게 아비담마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역자들 자신이 실감하였다.
둘째, 위빳사나 수행의 제대로 된 지침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상좌부 불교 나라, 특히 미얀마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 체계는 모두 아비담마에 바탕을 하고 있다. 이런 바탕하에서 각 센터마다 지도자 스님들이 여러 가지 독특한 기법을 고안하여 수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여러 물․심의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지금 미얀마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수행기법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먼저 미얀마 역사상 최고의 학승이면서 위빳사나의 대가이셨던 레디 사야도 맥을 들 수 있다. 레디 사야도께서는 빠알리로 22권의 책을 집필하셨고 미얀마어로는 78권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집필하신 미얀마 불교사의 독보적인 분이다. 특히 본『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상좌부 불교 문헌에 길이 남을 명저로 꼽힌다. 그는 위빳사나 수행으로도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이며 그의 4대째 제자가 인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위빳사나 수행을 보급하고 있는 고엔카(S.N. Goenka) 거사님이다.
두 번째로는 마하시 스님 계열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마하시 사야도가 위빳사나의 대가로만 거의 알려졌지만 미얀마에서는 삼장에 능통한 분으로 더 알려졌다. 특히 1966년에서 1968년까지 미얀마어로 번역 출판한『위숫디막가 마하띠까 닛사야』(Visuddhimagga Mahāṭīkā Nissaya, 청정도론 대주석서 대역)는『마하띠까』가 빠알리로 쓰여진 지 거의 1,400여 년 만에 다른 나라 말로 완전하게 번역된 최초의 책으로 꼽힌다. 아직 태국과 스리랑카에는『마하띠까』의 자국 번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으로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은 전 미얀마에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미얀마에서 위빳사나 센터를 개설하여 수행자들을 제접(諸接)하고 계신 스님들은 대부분 마하시 스님의 제자들이다. 이외에도 두어 분을 더 들 수 있겠지만 생략한다.
본서에서 역자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난 세기 미얀마 최고의 인물로 추앙받는 레디 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 두 분 스님은 아비담마에도 최고의 달인들이셨다는 점이다. 이 두 분 스님들이야말로 아비담마에 대한 통찰지가 위빳사나 수행의 큰 디딤돌임을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라 해야 한다. 하물며 후학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아비담마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자칫 테크닉에만 치중하여 자기가 배운 기법만을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고집할 우려가 있고 이 기법이라는 지엽적인 것에 걸려 위빳사나를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로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를 통해서 물․심의 여러 현상을 분석해서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 중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에 속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위빳사나 수행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본서 제9장 명상주제의 길라잡이는『청정도론』의 멋진 요약이다. 역자들은 제9장을 해설하면서『청정도론』가운데서 수행에 요긴한 가르침을 되도록 많이 본서에 인용하고 있다. 위빳사나 수행의 이론적인 배경을 알고자 하는 분에게는 제9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장의 해설도 가능하면 수행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아비담마는 수행의 길라잡이라는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수행이라는 근본을 잃어버리면 아비담마는 그냥 고담준론이나 메마른 해석학에 떨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셋째,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로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reference book)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은 거의 대부분 어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각주를 통해서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있으며『청정도론』을 제외한 인용문은 거의 대부분 빠알리 원문을 각주에서 제시하고 있다. 도표는 CMA에 나타난 것을 참조하였고 많은 부분은 실라난다 스님(U Silananda Sayadaw)의『아비담맛타상가하 강의 교본』에 나타나는 원래의 도표를 참고하여 반영하였다. 본서는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이나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를 알고자 하는 불교 전공자들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넷째, 무엇보다도『아비담맛타상가하』에 나열되고 있는 아비담마의 주제와 가르침을 가능하면『청정도론』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는 것이다.『청정도론』이야말로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전문용어들의 해설은『청정도론』을 인용하고 있다.『청정도론』에 나타나지 않는 설명은 다른 주석서들을 인용하고 있다. 물론 극히 드물게『청정도론』과『아비담맛타상가하』의 관점이 다른 곳도 있다. 예를 들면 물질과 마음의 존속 기간을『청정도론』은 1:16으로 보지만『아비담맛타상가하』와 후대 주석서들에서는 1:17로 정착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관점의 차이일 뿐 결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본서에서 해당되는 부분에서 해설을 달고 있다. 본서는『아비담맛타상가하』의 주제를 따라서『청정도론』의 핵심을 골라서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이면서 “청정도론 길라잡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역자들은 본서를 한국 불교 1,6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상좌부 아비담마를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한 책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란 수행을 중시하는 한국 선불교 전통을 말한다.
14. 주요 용어들의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은 다 그렇겠지만 역자들은 본서를 엮으면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아비담마의 전문용어들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 것인가 하는 데 무척 고심하였고 잘못 옮기지 않았나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이 용어들 가운데서 상당한 부분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정착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한문만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우리말로 풀어 적자니 말이 길어지고 산만해져서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 둘 가운데서 중도를 취해야 하겠지만 역자들은 의논 끝에 일단 정확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우리말이 어색하고 말이 길어지더라도 일단 정확한 이해를 하고 나면 다음에 더 좋은 우리말 역어로 정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해를 기본 신조로 하여 번역과 해설을 하면서 고심을 한 몇 가지 문제를 적어본다.
첫째, 우리에게 생소한 중요한 용어들을 어떻게 해설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였다. 일단 모든 해설은 아비담마 전문용어들의 어원과 기본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능하다면 초기불전에서는 어떤 문맥에서 나타나고 이것이 어떻게 아비담마에서 정착이 되었나 하는 것을 나타내려 하였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해설이 너무 길고 산만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비담마 용어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하는 처음 시도이므로 가급적이면 자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특히 아비담마는 기본 용어의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자기 식의 잘못된 이해에 빠져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용어는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풀어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cakkhu-viññāṇa[眼識] 등은 ‘눈의 알음알이’ 등으로 옮겼다. citta[心]는 ‘마음’으로 cetasika[心所]는 ‘마음부수’로 옮겼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기본 법수가 되는 khandha[蘊]는 ‘무더기’로, dhātu[界]는 ‘요소’로, indriya[根]는 ‘기능’ 혹은 ‘감각기능’으로, āyatana[處]는 ‘장소’ 혹은 ‘감각장소’로 옮겼다. 이렇게 옮긴 배경은 이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에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문 용어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스럽고 짜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문 불교 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많은 곳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 무더기[蘊], 기능[根] 등으로 [ ] 안에 한자를 병기했다. 무리하게 한글식 표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셋째, 선․불선(善․不善)으로 한역한 꾸살라․아꾸살라(kusala-akusal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선(善, kusala)과 불선(不善, akusala)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을 선과 불선과 이 두 개념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無記, abyākata]으로 분류하고, 이 결정할 수 없는 것[無記]을 다시 과보로 나타난 것(vipāka)과 작용만 하는 것(kiriya)으로 나눈다. 이 관점을 놓쳐 버리면 아비담마는 혼란스럽게 된다. 중국에서 kusala를 선(善)으로 akusala를 불선(不善)으로 옮겼다. 이를 중국에서 선․불선(善․不善)으로 옮긴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말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는 선(善)을 ‘착할 선’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심(善心)으로 한역되는 kusala-citta를 ‘착한 마음’으로 옮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착한 마음으로 이해해 버리면 문제가 있다.
꾸살라(kusala)의 원의미는 ‘유익한, 숙련된, 능숙한, 이로운, 좋은’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뜻하지만 초기불전에서 kusala[善]는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akusala[不善]는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역자들은 과감하게 선․불선이라는 역어보다는 우리말로 풀어 적기로 했다. 그래서 kusala[善]는 ‘유익한’으로 akusala[不善]는 ‘해로운’으로 옮겼다. 물론 많은 곳에서 ‘유익한[善]’, ‘해로운[不善]’으로 한자를 병기하여 옮기고 있다.
넷째, 법(法)으로 옮긴 dhamma의 문제이다. 중국에서 法(법)으로 번역을 한 dhamma 혹은 산스끄리뜨 dharma는 達摩(달마), 達磨(달마), 曇摩(담마), 曇磨(담마)로도 음역이 되었다. 앞의 두 가지는 산스끄리뜨어 dharma를 음역한 것이고 뒤의 두 가지는 빠알리어 dhamma를 옮긴 것으로 여겨진다. 아비담마에서 dhamma는 대부분 고유성질을 가진 물․심의 현상을 뜻한다. 이것을 법(法)이라고 옮기면 현실성이 없어져버린다. 그렇다고 현상이나 성질로 옮기는 것도 문제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중국에서 법(法)으로 옮겨서 우리에게도 정착이 된 ‘법(法)’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서 ‘것’이라고 옮기기도 하였고 ‘현상’이나 ‘성질’ 등으로 옮긴 곳도 있다. 중요한 경우에는 모두 괄호 안에 dhamma라고 병기하고 있다.
다섯째, 경우에 따라 둘 다 ‘지혜’로 옮기기도 하는 빤냐[慧, 반야, paññā]와 냐나[知, 智, ñāṇ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이 둘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냐나[知, 智, ñāṇa]는 빠린냐(통달지, pariññā), 아빈냐(신통지, abhiññā), 안냐(구경의 지혜, aññā), 빤냐(통찰지, paññā) 등과 특히 막가냐나(magga-ñāṇa, 도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고결한 지혜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다. 빤냐는 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데 특히『청정도론』에서는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로 설명되고 있다.(Vis.XIV.2) 역자들은 본서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모든 책에서 paññā를 과감히 ‘통찰지’로 옮기고 있는데 한문 洞察智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경이나 아비담마에서 빤냐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paṭivedha)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문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통찰지[慧]’나 ‘통찰지(반야)’ 등으로도 옮겼다. ñāṇa는 모두 ‘지혜’로 옮겼다.
15. 전정판(全訂版)에서 바꾼 주요 용어들의 우리말 번역
역자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본 전정판에서 바꾼 내용과 주요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2002년 11월 29일에 출판한『아비담마 길라잡이』초판은 2002년 10월 9일에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한 뒤 가장 먼저 출간한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초판에는 그 후에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한『청정도론』과 4부 니까야와 일치하지 않는 우리말 용어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하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전정판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모두 일치시키고 통일하려고 하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오히려『청정도론』과 4부 니까야 번역에서 미진해 보이는 부분은 수정하여 싣기도 하였음을 밝힌다.
② 본서에 싣고 있는 본서의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청정도론』의 인용도 모두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 출간한『청정도론』(초판 2004년, 제1권 5쇄 2013, 제2권 4쇄 2011, 제3권 4쇄 2012)과 일치시켰다.
③ 초판에 실려 있던 빠알리어 술어들에 대한 한글 발음 표기를 거의 대부분 제거하였다. 예를 들면 ‘탐욕[貪, 로바, lobha]’이나 ‘마음의 경안(찟따 빳삿디, citta-passaddhi)’에서처럼 [ ]나 ( ) 안에 표기한 ‘로바’나 ‘찟따 빳삿디’와 같은 빠알리어의 한글 발음 표기는 모두 없앴다. 본서의 초판을 찍었던 2002년에는 알파벳으로 표기된 빠알리어를 읽는 것이 생소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④ 본서의 초판에서 saṅkhāra는 ‘상카라(行)’로 음역을 하였다. 본 전정판에서는 saṅkhāra를 문맥에 따라 ① 형성된 것 ② 심리현상들 ③ [업]형성 ④ 자극 등으로 우리말로 옮겼다.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상카라(saṅkhāra)의 용례와 우리말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는『초기불교이해』127쪽 이하와『담마상가니』제1권 해제(127쪽)를 참조하기 바란다.
⑤ 초판에서 ‘잠재의식’이나 ‘잠재의식(바왕가)’ 등으로 옮긴 bhavaṅga를 전정판에서는 ‘존재지속심’으로 옮기고 있다. 물론 문맥에 따라 ‘바왕가’로 음역을 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장 §8의 해설 2를 참조하기 바란다.
⑥ 초판에서 ‘등록의 마음’으로 옮긴 tadārammaṇa를 본서에서는 ‘여운의 마음’으로 옮기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장 §8의 해설 13을 참조하기 바란다.
⑦ 초판에서 주로 ‘궁극적 실재’로 옮긴 paramattha나 paramattha- dhamma를 ‘궁극적인 것’이나 ‘구경법’으로 옮겼다. ‘실재’라는 표현이 자칫 고정 불변하는 실체를 상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⑧ 초판에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나 ‘[탐욕에] 뿌리한 마음’으로 옮긴 [lobha]-mūla-cittā를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으로 통일하여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과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과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 등으로 옮겼다.
⑨ 초판에서는 aṅga를 주로 ‘각지(各支)’로 옮겼는데 본 전정판에서는 모두 ‘구성요소’로 바꾸었다. 그래서 禪의 각지를 ‘禪의 구성요소’로 도의 각지는 ‘도의 구성요소’ 등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1장 §18의 해설과 제7장 §17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⑩ 아비담마의 두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찰나(刹那. khaṇa)를 초판에서 주로 ‘순간’으로 표기하였는데 전정판에서는 대부분 ‘찰나’로 바꾸었다. 순간(瞬間)은 불교 한문에서 khaṇa(Sk. kṣaṇa)의 번역어로는 쓰이지 않은 듯하다. CBETA로 검색을 해보면 눈 깜짝이는(瞬) 사이(間)를 뜻하는 순간(瞬間)이라는 단어는 단지 후대의 조사 어록 몇 군데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khaṇa(Sk. kṣaṇa)는 CBETA로 검색해보면 중국에서 대부분 찰나(刹那)로 음역이 되어 16,000번이 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전정판에서는 문맥상 편하게 느껴지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 ‘찰나’로 바꾸었다.
⑪ 초판에서는 appamaññā를 ‘무량(無量)’으로 옮겼는데 전정판에서는 모두 ‘무량함’으로 옮겼다. appamaññā는 pra+√mā의 가능법(Pot.) 분사인 pamañña(Sk. pramānya)에 부정접두어 ‘a-’를 첨가하여 이루어진 단어로서 ‘잴 수 없는’을 뜻하며 여성명사로 쓰여서 ‘잴 수 없음, 잴 수 없이 많음, 무량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⑫ 초판의 제6장에서 ‘일어나는 원인’으로 옮긴 사뭇타나(samuṭṭhāna)를 본 전정판에서는 ‘생기는 요인’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원인’으로 옮기는 hetu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⑬ 초판에서는 눈의 알음알이[眼識]의 대상인 rūpa를 ‘형상’으로 옮겼는데 초기불전연구원의 다른 번역서들과 같이 전정판에서는 ‘형색’으로 통일하였다.
⑭ 초판에서 ‘상호의존’으로 옮긴 paṭṭhāna를 전정판에서는 ‘상호의존관계’로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8장 §2의 해설 3을 참조하기 바란다.
⑮ 전정판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가장 고심을 한 것은 24가지 조건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었다. 24가지 조건의 명칭들 가운데 초판의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은 ‘틈 없는 조건’으로,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은 ‘더욱 틈 없는 조건으로, 서로 관련된 조건은 ‘결합된 조건’으로,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은 ‘결합되지 않은 조건’으로, 떠나가버린 조건은 ‘떠나간 조건’으로,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은 ‘떠나가지 않은 조건’으로 옮겼다. 24가지 조건을 우리말로 옮긴 원칙에 대해서는 제8장 §11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⑯ 초판에서 사용하였던 ‘남방불교’를 ‘상좌부 불교’로 통일하였다. 상좌부 불교라는 용어가 빠알리 삼장을 근본으로 남방에서 전승되어 오는 초기불교 전통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⑰ 산스끄리뜨어와 빠알리어는 영어처럼 단수와 복수의 표기가 엄격하다.(산스끄리뜨는 양수(兩數)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초판에서는 단수와 복수의 표기에 대한 원칙이 없었다. 본 전정판에서는 단수와 복수의 표기 원칙을 정하였다. 원문에 복수로 표기된 것은 복수로 표기함을 기본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숫자와 함께 나타나는 복수는 단수로 표기하는 것이 우리말의 원칙이다.(이러한 원칙도 영어의 영향으로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오온은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아니라 ‘다섯 가지 무더기’로, 오개는 ‘다섯 가지 장애들’이 아니라 ‘다섯 가지 장애’로, 칠각지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이 아니라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등으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⑱ 본 전정판의 색인에는 영어를 병기하였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 시대에 영어는 세계 공용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불교의 주요 용어들은 서구에서 영어로 잘 정착되어 있어서 우리말-영어 혼용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영어가 불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색인에서 병기하고 있는 영어는 CMA의 색인에서 정리한 빠알리-영어 색인을 토대로 하였다.
⑲ 그 외에도 본문의 편집은 초기불전연구원의 다른 책들과 같은 형태로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으며 도표들을 다듬고 더 추가하였다.
⑳ 이렇게 하면서 본서의 주해와 설명을 보강하고 다듬어서 초판에서 상․하권 합하여 358개이던 주해가 이번 전정판에서는 모두 627개에 달하여 269개 정도가 추가되었다. 초판에서 상권 492쪽, 하권 400쪽으로 상․하권을 합하여 892쪽이던 초판의 지면이 전정판에는 제1권이 544쪽, 제2권이 480쪽으로 모두 1,024쪽이 되어 142쪽이 늘어났다.
16. 맺는말
부처님께서는 반열반하시면서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는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D16 §6.1) 그러므로 법(담마)을 대면하는(아비) 아비담마/아비달마는 특히 부처님의 법과 율을 생명으로 삼는 출가자가 할 일이요 출가자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출가자는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출가자가 법(法, dhamma)을 대면해서[對, abhi]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대법(對法)으로 번역되는 아비담마/아비달마에 능통했을 때이다. 세상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세상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출가자가 정치나 권력이나 이재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의술이나 관상이나 사주나 점성학에 프로가 되면 곤란하다. 불교의 출가자는 아비담마를 통해서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종헌 제1장 종명 및 종지 제2조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自覺覺他 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奉體)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그 종지로 한다.”라고 ‘전법도생(傳法度生)’을 종지에 넣어서 세상에 대한 불교적 관심은 법을 통해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dhamma)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불교의 관심이여야 한다. 정치나 경제나 예술이나 의술 등을 통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예술가나 의료인 등에 맡겨두면 된다.
‘구사팔․유식삼(俱舍八․唯識三)’이라는 말이 있다. 출가자가 불교 교학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아비달마 구사론』을 8년 배우고 대승 아비달마라 불리는 유식을 3년 배우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비달마를 제대로 익혀야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에 능통하게 된다고 중국과 한국의 옛 스님들은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한국불교에서 아비달마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전통 강원이나 승가대학에서 아비달마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본서는 이러한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우리말 세대의 출가자들이 우리말로 아비달마를 사유하는 노둣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는 위빳사나를 위시한 불교 수행의 길라잡이가 된다. 그래서 아비담마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위빳사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 테크닉(기법) 위주의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고 성스러운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이 되도록 하는 토대가 된다. 본서는 수행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한국불교에 바른 수행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 여긴다.
아비담마는 아주 섬세하다. 그래서 한 부분이라도 잘못 이해하면 아비담마 전체를 오해하게 됨을 역자들은 절감했고 아비담마의 큰 틀이나 큰 전제를 망각하고 엉뚱한 주장을 늘어놓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번역에 임하면서 우리말 번역은 어색하더라도 오역과 잘못된 해설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였다. 그러나 역시 잘못은 있기 마련일 것이다. 교학과 수행은 탁마를 통해서 더욱더 원숙해진다. 눈 밝은 분들이 본서를 읽고 부디 잘못을 지적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초기불교와 아비담마를 자신의 신념 체계로 삼고 살아가는 역자들에게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독자 제위의 질정을 바라면서 역자 서문을 마무리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아비담맛타 상가하 역해) (상/하)
대림 스님/각묵 스님 옮김/신국판
상권: 490쪽/ 하권: 408쪽
전정판 제1권:544쪽/ 제2권:480쪽
정가: 초판 각권 15,000원 (초판 2002년, 12쇄 2016년)
전정판 각권 25,000원(2017년, 전정판 2쇄 2018년)
* 어려운 논서임에도 모두 14쇄까지 출간한 본원의 베스트셀러 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