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상가니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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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상가니』제1권 목차 -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

담마상가니 [Dhammasaṅganī] - 법의 갈무리


그분 

부처님 

공양 올려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목차페이지
역자 서문27
1. 들어가는 말27
2. 부처님은 법을 강조하셨다28
3. 법(dhamma)이란 무엇인가32
   ⑴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⑵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4. 아비담마란 무엇인가36
   ⑴ 무비법[無比法]과 대법[對法]
   ⑵ 아비담마에 대한『담마상가니 주석서』의 설명
5. 왜 아비담마는 무비법(無比法, 수승한 법)인가39
   ⑴ 아비담마는 전체적으로 설하셨기 때문이다
   ⑵ 아비담마는 심오하기 때문이다
   ⑶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는 비방편설이기 때문이다
   ⑷ 아비담마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법을 비하하는 것이 아닌가
6.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이다45
   ⑴ 율장을 통한 증거
   ⑵ 경장을 통한 증거
   ⑶ 직설이라면 왜 경장과 논장은 전개가 다른가
7. 아비담마는 언제 체계화하셨는가50
   ⑴ 아비담마는 성도 후 네 번째 칠 일에 명상하신 것이다
   ⑵ 아비담마는 일곱 번째 안거 때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다
8.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들53
   ⑴ 띳사부띠 장로의 설명
   ⑵ 수마나데와 장로의 설명
   ⑶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한 17가지 질문과 답변
   ⑷ 또 다른 방법에 의한 아비담마의 기원 
9. 아비담마는 누가 인간들에게 전하였는가56
   ⑴ 사리뿟따 존자가 인간들에게 전하였다
   ⑵ 신들은 있는가
10.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와 논장의 칠론62
   ⑴ 부처님의 일대시교 - 삼장
   ⑵ 아비담마 삐따까(논장)는 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⑶『까타왓투』(논사)는 부처님 직설이 아니지 않은가
   ⑷ 아비담마 칠론의 주석서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11.『담마상가니』란 무엇인가66
   ⑴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i)’의 문자적인 뜻
   ⑵ 상가니(갈무리)는 상가하(길라잡이)이다
   ⑶ 어떻게 법을 갈무리하였나
   ⑷『담마상가니』의 구성
   ⑸『담마상가니』는 마띠까의 설명이다
12.『담마상가니』를 통해서 본 아비담마의 특징75
   ⑴ 아비담마의 관심은 개념적 존재가 아니라 오직 법이다
   ⑵ 법(dhamma)은 해체했을 때 드러난다
   ⑶ 법(dhamma)이야말로 진정한 현장성이다 
   ⑷ 아비담마는 방법(naya)이다
   ⑸ 논장의 칠론은 법의 고유성질[自性]을 논하지 않는다
   ⑹『담마상가니』는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다
13. 맺는말86



『담마상가니』제1권 해제

『담마상가니』제1권 해제
페이지
1. 들어가는 말89
2.『담마상가니』제1권의 구성90
3.『담마상가니』마띠까92
   ⑴ 마띠까란 무엇인가92
   ⑵ 마띠까의 용례95
       ①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mātikādhara)
       ② 마띠까는 물길[水路]이다
       ③ 논의의 주제는 모두 마띠까라 부른다
   ⑶『담마상가니』마띠까의 구성101
       ①『담마상가니』마띠까의 개관
       ②『담마상가니』마띠까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③『담마상가니』두 개 조 마띠까에 대한 개관
       ④ 두 개 조 마띠까에 담긴 10가지 모둠의 특징
       ⑤ 대립구조로 구성된 두 개 조 마띠까
   ⑷『담마상가니』마띠까 요약111
4.『담마상가니』제1편의 구성113
   ⑴ 마음이란 무엇인가113
   ⑵ 89가지 마음 전체에 대한 개관119
   ⑶ 업은 89가지 마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124
   ⑷ 89가지 마음과 이와 관계된 마음부수법들을 분류하는 방법128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1~57)
       ⒝ 항목의 부문(§§58~120)
       ⒞ 공함의 부문(§§121~145)
   ⑸ 유위법은 모두 조건 따라 일어난 것[緣而生]이다137
   ⑹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의 요약142
5.『담마상가니』제1편에 나타나는 마음은 몇 개인가143
   ⑴ 제1품 유익한 마음(§§1~364)144
       ① 제1장 욕계의 유익한 마음(§§1~159)
       ② 제2장 색계의 유익한 마음(§§160~264)
       ③ 제3장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265~268)
       ④ 제4장 삼계의 유익한 마음(§§269~276) 
       ⑤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277~364)
   ⑵ 제2품 열두 가지 해로운 마음(§§365~430)152
   ⑶ 제3품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431~582)152
       ⒜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431~565)
       ⒝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566~582)
6. 맺는말159




<담마상가니 역자 서문>

 

1. 들어가는 말

 불교(佛敎)는 부처님[佛, Buddha]의 가르침[敎, sasana]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헌 제1장 종명 및 종지 제2조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그 종지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교학과 수행과 전법이 조계종의 근본 종지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2장 본종, 기원 및 사법 제4조에 "본종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그분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산다. 반열반에 드시면서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훈으로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法, dhamma)과 율(律, vinaya)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6.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시대에 불교를 믿고 이해하고 행하고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그분이 제정하신 율과 그분이 설하신 법, 즉 담마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불교의 목적인 깨달음을 체득하고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과 실천, 즉 교학과 수행을 담고 있는 법은 세존의 제자들이 반드시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실 때에만 법을 의지하라고 유훈을 하셨는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의 도처에서 법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초기불전에서 법을 강조하신 부처님 말씀을 살펴보자.

 

 

2. 부처님은 법을 강조하셨다 

① 법을 의지하여 머물리라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 …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A4:21)

이것은 세존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아직 아무에게도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지 않으신 다섯 번째 칠 일에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내리신 결론이다.(AA.ii24)

 

② 법은 사성제(교학)와 팔정도(수행)로 집약된다

부처님의 최초의 가르침을 담은 경은 「초전법륜 경」 (S56:11)이다. 부처님의 최초의 가르침을 제자들은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리신 가르침이라고 존중하여 부르고 있다. 드디어 그분의 법체계가 처음으로 전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중도라는 말씀으로 성스러운 팔정도를 천명하시고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천명하신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깨달으셨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시는 법은 사성제(교학)와 팔정도(수행)로 집약이 된다.

 

③ 법을 설하라 – 전법의 당부

그리고 부처님께서 처음 법의 바퀴를 굴리신 지 오래지 않아 50여 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 아라한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라(desetha dhammaṁ)."라고 다음과 같이 전법을 당부하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역시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유행(遊行)을 떠나라.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라. 시작도 홀륨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내어라."(『율장』『대품』(Vin.i.20), S4:5 등)

 

④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

법을 존중하시는 부처님의 태도는 "법을 섬으로 삼고[法洲, 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라."(D16 §2.26 등)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⑤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법의 상속자 경」 (M3)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M3 §3)라고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셨는데 특히 출가자들이 가슴에 사무쳐야 할 말씀이다.

 

⑥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임종에 다다른 왁깔리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왁깔리여, 그만하여라. 그대가 썩어 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을 하겠는가?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왁깔리여, 법을 볼 때 나를 보고 나를 볼 때 법을 보기 때문이다."(S22:87)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런 뒤에 오온의 무상· 고 · 무아를 설하시고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셨다.

 

「왁깔리 경」 (S22:87)의 이러한 말씀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도 전승되어 나타나고 있다.

 

"형색으로 나를 보거나(若以色見我)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以音聲究我)

삿된 길을 걸을 뿐(是人行邪道)

여래 볼 수 없으리.(不能見如來)

 

법으로 부처님들을 보아야 한다.

(dharmato Buddhā draṣṭạvyā)

참으로 스승들은 법을 몸으로 하기 때문이다."1)

 

몸으로 부처님을 본다면 부처님에게도 죽음이 있다. 몸으로 부처님을 보는 한 우리는 나고 죽음[生死]으로 대표되는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한다. 일대사를 해결하는 길은 법을 보는 방법 외에는 없으며 무위법인 열반을 실현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⑦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이다. 세존께서는 간곡하게 말씀하신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⑧ 우리는 법을 귀의처로 합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얼마 뒤에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과 나눈 대화에서 "바라문이여, 우리들은 귀의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법을 귀의처로 합니다(dhamma-paṭisaraṇa)." (M108 §9)라고 바라문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아난다 존자의 이런 천명은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뒤 2,500여 년이 지난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지침이기도 하다.

 

또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두 달 뒤에 열린 일차대합송(일차결집, Paṭhama-mahāsaṅgīti)에 참석한 500명의 아라한들은 율을 합송하여 율장(律藏, Vinaya-Pitaka)을 결집하였고 법을 합송하여 경장(經藏, Sutta-Piṭaka)을 결집하였다. 수승한 법[無比法, 勝法]을 표방하는 아비담마도 이때 논장(論藏,Abhidhamma-Pitaka)으로 결집이 되었다고 한다.2)

 

이처럼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직후에도 스스로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물리라고 하셨고, 45년간 제자들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하셨으며, 반열반의 마지막 자리에서도 법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유훈을 하셨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 불자들이 가슴에 새기고 존중하면서 배우고 궁구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법(dhamma)이다.

아비담마(abhidhamma)가 법(dhamma)에 대해서(abhi)를 그 기본 의미로 하기 때문에 역자는 먼저 니까야에서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았다. 이제 주석서 문헌에서 밝히고 있는 법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3. 법(dhamma)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법이란 무엇인가? 중국에서 법(法)으로 번역되어 정착된 다르마(Sk. dharma) 혹은 담마(dhamma)3)는 √dhr(to hold)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인도의 모든 사상과 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는 용어이며 또한 방대한 인도의 제 문헌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현대의 여러 백과사전들도 다르마 혹은 담마를 간단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초기불전을 비롯한 모든 불교 문헌에서도 담마 혹은 다르마(dhamma, Sk. dharma)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초기불전에서도 담마[法, dhamma]는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과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을 통해서 법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경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경장에 해당하는 주석서인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모든 법[諸法, 一切法, sabba-dhammā, sabbe dhammā]'을 설명하면서 법(dhamma)의 용처를 열 가지 경우로 설명하고 있다. 이 주석서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법'은 ① 성전을 배움(교학, pariyatti), ② 진리(sacca), ③ 삼매(samādhi), ④ 통찰지(paññā), ⑤ 자연의 법칙(pakati), ⑥ 고유성질(sabhāva), ⑦ 공성(suññatā), ⑧ 복덕(puñña), ⑨ 범계(犯戒, āpatti), ⑩ 알아야 할 것(ñeyya)등을 나타낸다.

① "여기 비구는 경전과 게송의 법을 배운다."(A.iii.86)라는 등에서 [법은] 성전을 배움을 말한다. ② "여기 비구는 법을 보았고(diṭṭhadhamma), 법을 경험했다(viditadhamma)."(Vin.i.12)라는 등에서는 진리를 말한다. ③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지셨다."(D.ii.54)라는 등에서는 삼매를 말한다. ④ "진실함과 법과 굳건함과 관대함의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적을 이긴다."(J.i.280)라는 등에서는 통찰지를 말한다. ⑤ "태어나기 마련인 법(jātidhammā), 죽기 마련인 법(jarādhammā)."(M.i.162)이라는 등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말한다.

⑥ "유익한 법들(kusalā dhammā)"(Dhs. ma3-1)이라는 등에서는 고유성질을 말한다. ⑦ "그때 법들이 있다."(Dhs. §121)라는 등에서는 공성을 말한다. ⑧ "훌륭한 법은 행복을 가져온다."(Sn.182)라는 등에서는 복덕을 말한다. ⑨ "두 가지 결정되지 않은 법(aniyatā dhammā)이 있다."(Vin.iii.187)라는 등에서는 범계(犯戒)를 말한다. ⑩ "모든 법들(sabbe dhammā)은 모든 측면에서 부처님·세존의 지혜의 영역에 들어온다."(Ps.ii.194)라는 등에서는 알아야 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고유성질(sabhāva)을 말한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attano lakkhaṇaṁ dhārentĪti dhammā).""(MA.i.17)

아래에서 인용하는 『담마상가니 주석서』에서는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 대신에 '자신의 고유성질(sabhāv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로 나타난다.

 

(2) 논장의 주석서에 의한 설명

한편 아비담마, 즉 논장의 주석서인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법을 정의한다.

"'법(dhamma)'이란 단어는 ① 교학(pariyatti)과 ② 원인(hetu)과 ③ 공덕(guṇa)과 ④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nissatta-nijjīvatā) 등으로 보아야 한다.

① "경(經, sutta)과 응송(應頌, geyya)과 … 교리문답[方等, vedalla]이라는[아홉 가지] 법을 잘 알고 있다."(A4:102)라는 등에서 [법은] 교학을 뜻한다.

② "원인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Vbh. §720)라는 등에서 [법은] 원인을 뜻한다.

③ "법과 비법 두 가지는

같은 과보를 가져오지 않나니

비법은 지옥으로 인도하고

법은 선처에 이르게 한다."(Thag.128 (304))

라는 등에서 [법은] 공덕을 뜻한다.

④ "그런데 그때에 법들이 있고"(Dhs. §121)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D22)라는 등에서 [법은]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을 뜻한다.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에 대한 것이 여기 본문에 해당한다."(DhsA.38)

즉 여기 『담마상가니』에서 법은 중생이니 영혼이니 하는 개념적인 것(paññatti)이 아니라 고유성질(sabhāva)4)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아비담마에서의 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①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dhārenti)고 해서 '법들(dhammā)'이라 한다. ② 혹은 조건(paccayā)에 의해서 호지된다(dhāriyanti). ③ 혹은 틀림없는 고유성질에 따라 호지된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DhsA.39)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자신의 고유성질을 가진다고 해서 법들이라 한다.'로 옮긴 'attano sabhāvaṁ dhārentīti dhāmma'(DhsA.39)는 법을 정의 하는 구문으로 잘 알려진 것이며, 위의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에서 '자신의 특징(lakkhaṇa)을 가지기 때문에 법들이라 한다.'(MA.i.17)는 설명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5)

 

한편 카터(J.R. Carter) 교수는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 문헌들에 나타나는 법(dhamma)을 정의하는 용어 33가지를 열거하면서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의 법의 용처를 설명하고 있다.(J.R. Carter, 『Dhamma』 156~159쪽 참조)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법 혹은 법들에 대한 경들과 여러 주석서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법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이요, 둘째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能持自相, sabhāvaṁ dhārenti]으로서의 법이다. 니까야에서 전자는 부처님의 가르침[佛敎, Buddha-sāsana]으로 불리고 있고(M86 등)6), 북방불교에서는 '불법(佛法)'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후자는 '일체법(一切法, 諸法, sabbe dhammā)'으로 정리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요즘 서양학자들은 전자를 대문자 Dhamma로 후자를 소문자 dhamma로 표기한다. 초기불교에서 법은 전자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후자로 해석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기준으로 분석하고 분류하여 법을 표준화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佛法]과 일체법(一切法)은 같은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금강경』 에서도 "일체법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sarva-dharmā Buddhadharmā,一切法 皆是佛法)”(제17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佛法]이 바로 법이요,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一切法]을 밝힌 것이다.

 

 

4. 아비담마란 무엇인가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용어는 접두어 아비(abhi)와 명사 담마 (dhamma)로 구성되어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와『맛지마 니까야 주

석서』에서는 각각 네 가지와 열 가지로 담마[法, dhamma]의 뜻을 설명하고 있고 아비담마에서는 그 가운데 고유성질을 가진 것으로 담마를 이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접두어 아비(abhi)의 뜻을 중심으로 아비담마의 문자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1) 무비법[無比法]과 대법[對法]

PED 등에 의하면 문자적으로 접두어 abhi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향하여, 대하여(round about, around, towards, against)'의 뜻이고 둘째는 '위에(over, on top of, above)'의 뜻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등은 '위에'라는 후자의 뜻으로 abhi를 해석하고 있으며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이것을 정설로 삼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무비법(無比法, 勝法, 수승한 법, 빼어난 법)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아비달마 구사론』 을 번역하면서 현장 스님은 이것을 대법(對法, 법에 대해서)으로 옮겼는데 이것은 abhi를 전자인 '향하여, 대하여'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법(對法)은 법과 대면함, 즉 법에 대한 연구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7)

아비담마 혹은 아비달마는 중국에서 대법(對法), 무비법(無比法), 승법(勝法), 논(論) 등으로 옮겨졌고 아비담(阿毘曇), 아비달마(阿毘達磨), 아비달마(阿鼻達磨),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등으로 음역되었는데 아비담(阿毘曇)은 빠알리어 아비담마(abhidhamma)를, 아비달마(阿毘達磨)는 산스끄리뜨어 아비다르마(abhidharma)를 음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까야에서도 접두어 abhi는 대부분이 '위에'의 의미에 해당하는 '능가하는, 수승한, 특별한'의 뜻으로 쓰인다. 접두어 abhi가 '향하여, 대하여'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로는 purattha-abhimukha([비구 승가를] 마주 보고, D2 §11)와 uttara-abhimukha(북쪽을 향해, D14 §1.29) 등과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 문헌에 나타나는 nimitta-abhimukha(표상을 향하도록, Vis.IV.66)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전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을 참조하기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단어는 전자로 해석하면 무비법(無比法)이나 승법(勝法)이 되고 후자로 해석하면 대법(對法)이 된다.

 

(2) 아비담마에 대한 『담마상가니 주석서』의 설명

이제 『담마상가니 주석서』즉 『앗타살리니』 는 아비담마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알아보자. 『앗타살리니』 는 접두어 abhi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설명을 하면서 아비담마(abhidhamma)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이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여기서 [아비담마의] '아비(abhi)'라는 단어는 ① 증장(vuddhi)과 ② 특징을 가짐(lakkhana)과 ③ 공경(pajita)과 ④ 한정(paricchinna)과 ⑤ 수승함(adhika)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서

① "나에게는 극심한 괴로운 느낌들이 증가합니다(abhikkamanti), 줄어들지 않습니다."(M97/ii.192)라는 등에서는 증장의 의미로 쓰였다.

② "밤들은 좋은 날로 특별히 인정되고(abhiññāta) 특별히 알려져(abhilakkhita) 있다."(M4/i.20)라는 등에서는 특징을 가짐의 의미로 쓰였다.

③ "왕 중의 왕(rājābhirāja)이요 인간의 우두머리"(Sn.109)라는 등에서는 공경의 의미로 쓰였다.

④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로 인도할 수 있다."(cf Vin.i.64)라는 등에서는 한정의 의미로 쓰였는데 '서로서로 혼돈되지 않는 법과 율에 대해서'라고 [한정하고 구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⑤ "경이롭다는(abhikkantena) 칭송과 함께"(Vv.10)라는 등에서는 수승함의 의미로 쓰였다."(DhsA.46)

이처럼 주석서는 먼저 접두어 'abhi'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살펴본 뒤에 abhi라는 접두어가 가지는 이 다섯 가지 의미가 아비담마와 아비담마 문헌, 특히 논장의 첫 번째인 본『담마상가니』에 다 적용됨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다시 여기서

① "색계에 태어나는 도를 닦아서"(Dhs. §160)라거나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Vbh. §642; cf Dhs. §251)라는 등의 방법으로 증장을 가진 법들을 설하셨다.

② "형색을 대상으로 하거나 소리를 대상으로 하거나"(Dhs. §1)라는 등의 방법으로 대상 등을 특징지음에 의해서 특징을 가짐을 설하셨다.

③ "유학에 속하는 법들, 무학에 속하는 법들, 유학에도 무학에도 속하지 않는 법들"(ma-3-11)이라는 등의 방법으로 공경, 즉 공경할 만한 것들을 밝히셨다.

 

④ "그때에 감각접촉이 있고 느낌이 있고"(Dhs. §1)라는 등의 방법으로 고유성질을 한정하기 때문에 한정을 설하셨다.

⑤ "고귀한 법들, 무량한 법들"(ma3-12)이라는 등의 방법으로 수승한 법들을 설하셨다."(DhsA.19~20)

 

그리고『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칠론의 첫 번째인 『담마상가니』 의 주석서답게 서시(序詩) 바로 다음에 제일 먼저 "여기서 무슨 뜻에서 아비담마인가?"(DhsA.2)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① 법이 뛰어나다는 뜻과 ② 법이 특별하다는 뜻에서 그러하다. 여기서 뛰어남과 특별함의 뜻을 밝히는 것이 '아비(abhi-)'라는 접두어이다. 예를 들면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abhikkamanti) 물러가지 않습니다."(S46:14 등)와 "아주 멋진 모습(abhikkantavaṇṇā)"(S1:1 등)이라는 등과 같다. … 와 같이 이 법도① 법이 뛰어나다는 뜻과 ② 법이 특별하다는 뜻에서 아비담마라 부른다."(DhsA.2)

이처럼 『담마상가니 주석서』 (『앗타살리니』) 서문은 뛰어나다는 뜻과 특별하다는 뜻으로 abhi를 해석하고 있으며 그래서 아비담마는 뛰어난 법, 특별한 법, 수승한 법이라는 의미가 된다.

 

 

5. 왜 아비담마는 무비법(無比法, 수승한 법)인가

 그렇다면 왜 주석서는 아비담마를 법을 연구함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법에 대해서', 즉 대법(對法)으로 설명하지 않고 뛰어난 법이나 특별한 법, 즉 무비법(無比法)으로 이를 설명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담마상가니 주석서』를 통해서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1) 아비담마는 전체적으로 설하셨기 때문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에서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부분적으로(ekadesena) 분석되었고 전체적으로(nippadesa, 남김없이 = 전체가 다 완성되어 – SA.iii.263) 분석되지 않았지만, 아비담마에 이르면 '경에 따른 분류 방법'과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과 '질문을 제기함'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분석되었다. …"(DhsA.2~3)

예를 들면 『위방가』 는 무더기[蘊]에 대한 분석(khandha-vibhanga) 등의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18개의 주제는 초기불교 교학의 토대가 되는 온 · 처 · 계· 근 · 제 · 연의 여섯 가지 주제(1장부터 6장까지)와 초기불교 수행의 토대가 되는 37보리분법(7장부터 11장까지)이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초기불교의 중요한 주제인 4禪(12장)과 4무량(13장)과 계목(14장)과 4무애해(15장)와 지혜(16장)에 대한 가르침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17장과 18장에서는 200개에 달하는 초기불교의 중요한 주제들을 선택하여 이를 정의하고 설명해 내고 있다.

이러한 분석과 설명은 지금 『담마상가니 주석서』가 언급하고 있듯이 『위방가』 의 각 장은 '① 경에 따른 분류 방법(Suttanta-bhājanīya)'과 '②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Abhidhamma-bhājanīya)'과 '③ 질문을 제기함(Pañhā-pucchaka)'으로 나누어서 전개되는데, ① 경에 따른 분류 방법은 니까야의 정형구를 의지하여 설명을 하고 있고, ②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은 아비담마에서 정착시킨 정형구에 토대를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분류 방법과 3 질문을 제기함은 『위방가』 14장, 16장, 17장, 18장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중요한 분류법이다.

이 가운데 ① 경에 따른 분류 방법은 경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해석하는 것인데 『맛지마 니까야』의 제14장 「분석 품」 (M131~142)에 포함된 「요소의 분석 경」 (M140) 등 12개의 분석 경들과 『상윳따 니까야』에 실려 있는 S12:2, S45: 8, S47:40, S48:9, S48:10, S48:36, S48:37, S51:20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분석 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②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은 법들을 더 엄밀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③ 질문을 제기함은 법수(法數)를 「담마상가니』 첫머리에 나타나는 마띠까의 구조 안에서 대부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경에는 경에 따른 분류 방법만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분석되었지만 아비담마에는 경에 따른 분류 방법과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과 질문을 제기함의 셋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분석되었다고 『담마상가니 물라띠까』 는 설명하고 있다.(DhsAMT.13) 그래서 아비담마는 뛰어난 법의 체계이고 수승한 법의 체계라는 것이다.

 

(2) 아비담마는 심오하기 때문이다

왜 아비담마가 뛰어난 법이고 수승한 법인가에 대한 두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아비담마는 심오하기(gambhīra) 때문이라는 점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의 심오함을 방법(naya)의 심오함으로 설명한다. 주석서는 "이제 이 아비담마의 심오한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① 윤회의 바다(saṁsāra-sāgara), ② 물의 바다(jala-sāgara), ③ 방법의 바다(naya-sāgara), ④ 지혜의 바다(ñāna-sāgara)라는 네 가지 바다(sāgara)를 알아야 한다."(DhsA.10)라고 표제어를 드러낸 뒤에 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이 가운데 ③ 방법의 바다(naya-sāgara)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이 ③ 방법의 바다인가? 삼장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두 가지 성전을 반조하는, 믿음을 구족하고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지혜가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는 끝없는 희열과 기쁨이 생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율(vinaya)과 아비담마이다."(DhsA.11)라고 말한 뒤에 주석서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러한 네 가지 바다 가운데 방법의 바다가 여기 [아비담마]에서 의미하는 것이다. 오직 일체지를 갖추신 부처님들만이 이것을 꿰뚫으시기 때문이다."(DhsA.12)

 

(3)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는 비방편설이기 때문이다

경장(經藏, Sutta Pitaka)에서 전승되어 오는 부처님 말씀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 논장의 주석서들은 주저하지 않고 경장에 전승되어 오는 부처님의 말씀은 대기설(對機說, 방편설, pariyāya-desanā)이라고 적고 있다. 이 대기설에 해당하는 빠알리어 pariyāya-desanā 가운데 pariyāya는 pari(둘레에, 원만히)+√i(to go)에서 파생된 명사로, 기본 의미는 '일이 경우에 맞게 원만히 잘 되어 가는 것'을 뜻하며, 그런 뜻에서 '방편, 방법, 순서, 차례, 습관' 등의 의미로 쓰인다.

4부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보듯이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법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주로 재가자들)에게는 보시와 지계와 천상에 나는 것[施·戒·生天]을 설하셨고,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람의 성향이나 처한 환경이나 근기에 맞추어 다양하게 법을 설하셨다. 그리고 같은 내용도 상황에 따라서 사성제로 설하시기도 하고 팔정도로 설하시기도 하고 연기로 설하시기도 하셨다. 연기도 12연기뿐만 아니라 11지, 10지… 2지 연기를 설하시기도 하였다. 수행에 관계된 말씀도 어떤 때는 오근 · 오력으로 설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칠각지를 강조해서 설하시기도 하고 사념처를 강조하시기도 하고 성스러운 팔정도를 말씀하시기도 하고 37보리분법 전체를 설하시기도 한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문제의식이나 이해 정도나 수행 정도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설법을 하셨다. 이런 것을 우리는 대기설법이라 한다.

반면 논장(論藏, Abhidhamma Pitaka)에서는, 경장과 비교해서 논장의 가르침은 비대기설(非對機說, nippariyāya-desanā), 즉 비방편설(非方便說)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마음의 (1) 법들을 정의하는 구문(§§1~57)의 네 번째인 도의 구성요소의 모음(§1)에서 도는 팔정도 가운데 바른 말[正語]과 바른 행위[正 ]와 바른 생계[正命]의 셋을 제외한 바른 견해 등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세간적인 마음에서 정어와 정업과 정명은 함께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셋을 뺀 다섯 가지를 도의 구성요소로 들고 있다. 그런데 "비구여, 들어온 길이란 성스러운 팔정도를 두고 한 말이다."(S35:248)라는 『상윳따 니까야』 제4권 「낑수까 나무 비유 경」 (S35:245)에서 들어온 길이라는 말로 예비단계의 도도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지만 주석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DhsA.154)라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런 뒤에 "이러한 경의 말씀은 참으로 방편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아비담마의] 이것은 비방편적인 가르침이다. 세간적인 마음에서 세 가지 절제는 한 순간에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것'이라고 설하셨다."(DhsA.154~155)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첫 번째 해로운 마음의 개요(§365)의 도의 구성요소의 모음에는 그릇된 마음챙김이 빠지고 그릇된 견해, 그릇된 사유, 그릇된 정진, 그릇된 삼매의 네 가지 구성요소만이 나타난다. 그런데 경에서는 "그릇된 마음챙김"(D23; S45:1 등)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왜 그런가?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왜 "그릇된 마음챙김"이라고 경에서는 말씀하셨는가? 해로운무더기들은 마음챙김이 제외되어 있고 마음챙김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릇된 도의 그릇됨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 방편적으로 가르침을 베푸신 것이다. [해로운 마음들에 대한] 비방편적인 [이 아비담마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없다. 그래서 취하지 않으셨다."(DhsA.250)

역자가『담마상가니』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 해당하는 『담마상가니 주석서』 에서 확인한 비방편적인 가르침이라는 용어만 해도 예닐곱 번이 넘게 나온다. 빠알리 주석서 문헌 전체에서도 비방편적인 가르침(nippari-yāya-desanā)이라는 용어는 도처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주석서 문헌들은 아비담마의 가장 큰 특징을 비방편적인 가르침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뛰어난 법(dhamma-atireka)'과 '특별한 법(dhamma-visesa)'으로 아비담마를 정의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무비법이나 승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뒤 네 번째 칠 일과 다섯 번째 칠 일에 체계화하시고(vicinanta) 명상하신(sammasanta) 것이라고 주석서들은 강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처럼 아비담마는 비방편설이기 때문에 뛰어난 법이요 수승한 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4) 아비담마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법을 비하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아비담마를 뛰어난 법과 수승한 법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칫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를 비하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담마와 아비담마는 그 초점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법, 즉 담마를 설하신 목적은 행복의 실현, 그것도 궁극적 행복으로 표현되는 열반의 실현이다. 아비담마도 부처님의 가르침인 이상 그 근본 목적은 열반의 실현일 수밖에 없겠지만(『담마상가니 주석서』 서문 §82 ⑪이하 참조) 아비담마는 법의 실상, 즉 제법실상(諸法實相, dhammānaṁhbhūta-lakkhaṇa)8)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담마와 아비담마를 설하신 것은 그 초점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아비담마는 제법의 실상[諸法實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주목적이다. 특히 『담마상가니』 는 ① 법들을 정의하고 ② 법들의 항목을 드러내고 ③ 이런 법들의 공함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9) 어떻게 행복을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경장을 봐야 한다. 다른 관점과 다른 관심을 가지고 괜히 아비담마를 비난하는 불선업을 지어서는 곤란하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말한다.

"이 아비담마에서는 오직 법들이 가르쳐져야 하기 때문이다(dhammāva desetabbā). 그리고 그들은 유익함 등의 분류에 의해서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직 법들이 가르쳐져야 한다. 이것은 인습적 표현의 가르침(vohāra-desanā)이 아니다."(DhsA.56)

 

 

6.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이다

 이처럼 법을 대면하여[對法] 수승한 법[無比法]으로 정리해 낸 것이 아비담마 체계이다. 이제 우리는 '그러면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된다.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정리해 낸 체계가 아닌가? 부처님께 기원을 두지 않은 체계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러한 사유와 고민은 아비담마를 접하는 모든 시대의 불자들이 당연히 해왔을 것이고 당연히 빠알리 주석서 문헌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 본 『담마상가니』 의 주석서에서 그것도 서문(nidāna)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담마상가니 주석서』(『앗타살리니』) 서문을 종합해서 말하면 - 부처님 가르침은 삼장으로도 분류되고 다섯 가지 니까야로도 분류되고 구분교로도 분류되고 8만4천 법문으로도 분류되는데, 아비담마는 삼장에도 포함되고 다섯 가지 니까야에도 포함되고 구분교에도 포함되고 8만4천 법문에도 포함된다. 만일 아비담마가 없으면 초기불교의 이러한 체계가 무너지고 만다. 이런 등의 이유 때문에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이라는 것이 『담마상가니 」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의 초지일관한 태도이다. 그래서 『앗타살리니』 서문은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라는 주장을 여러 곳에서 강하게 비판하면서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임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즉 『앗타살리니』 서문을 종합하면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네 번째의 칠 일 동안에 스스로 체계화하신 자내증(自內證)의 법이요 일곱 번째 안거에서 석 달 동안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며 사리뿟따 존자가 이를 인간 세계에 전한 것이요 그래서 법의 정수, 즉 수승한 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앗타살리니』를 통해서 붓다고사 스님은 아비담마를 제일 먼저 설한 분은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확고하게 말하고 있다.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부처님의 제자인 사리뿟따 존자나 아난다 존자와 같은 여러 직계 제자들도 법을 설한다. 그렇다고 해서 법의 기원이 그분 직계 제자들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법의 기원은 당연히 부처님이시다. 사리뿟따 존자는 분명히 아비담마를 설한 분이고 아비담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리뿟따 존자가 아비담마의 기원이라고 하면 안 된다. 아비담마도 부처님이 체계화하셨고 부처님께서 일곱 번째 안거에서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도 부처님으로부터 기원한 것이고 그래서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이 주석서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직설임을 율장을 통한 증거와 경장을 통한 증거를 들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율장을 통한 증거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비방할 의도가 없이 '도반은 경이나 게송이나 아비담마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 율을 배우시오'라고 하는 것은 범계가 아니다."(Vin.iv.144)라는 단타죄(單墮罪, 빠찟띠야, pacittiya) 편 §442에 나타나는 항목을 인용한다. 그리고 『비구니 경분별」에 속하는 단타죄 편 §1221에 나타나는 "[비구니가] 경에 관한 질문을 허락받은 뒤 아비담마나 율에 대해서 질문을 하거나, 아비담마에 관한 질문을 허락받은 뒤 경이나 율에 대해서 질문을 하거나, 율에 관한 질문을 허락받은 뒤 경이나 아비담마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단타죄(單墮罪)를 범한 것이다."(Vin.iv.344)라는 항목도 인용한다.

이렇게 아비담마가 언급되고 있는 율장의 두 항목을 인용한 뒤에 "이 정도만으로도 이설을 말하는 자는 논박되었다."(DhsA.28)라고 강조한다. 아비담마는 이렇게 이미 율장의 계목에 포함되어 나올 정도로 부처님 말씀으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결론짓는다. 자세한 것은 본서 제2권의 말미에 싣고 있는『담마상가니 주석서』서문 §73를 참조하기 바란다.

 

(2) 경장을 통한 증거

계속해서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가 경장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음을 『맛지마 니까야』 제2권 「고싱가살라 긴 경」 (M32) 가운데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두 비구가 있어 아비담마에 대해 논의를 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각자 받은 질문에 대답하며 그칠 줄을 모르고 그들의 대화는 법에 근거하여 계속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런 비구가 고싱가살라 숲을 빛나게 합니다."(M32 §8)라고 마하목갈라나 장로가 한 말을 인용하고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 "장하구나, 장하구나. 목갈라나는 그것을 바르게 설명하면서 그가 실제 행했던 대로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뿟따여, 목갈라나는 참으로 법에 대한 논의를 잘하는 자이기 때문이다."(M32 §15)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인용한다.

그런 뒤에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아비담마를 논하는(ābhidhammika) 비구들이야말로 참으로 법을 논하는자들(dhammakathikā)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법을 논하여 설하더라도 법을 논하는 자들이 아니다. 왜 그런가? 그들은 법을 논하여 설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업에 대해서 [혼동하고] 여러 종류의 과보에 대해서 [혼동하고] 물질과 비물질의 한계에 대해서 [혼동하고] 여러 종류의 법에 대해서 혼동하여 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비담마를 논하는 자들은 여러 종류의 업에 대해서 혼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를 논하는 비구는 법을 설하든 설하지 않든, 질문을 받은 때에 그 질문에 [바르게]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만이 전적으로 법을 설하는 자이다. 이것을 두고 스승께서는 장하다는 칭찬을 하신 뒤에 '목갈라나는 잘 설명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DhsA.29)

 

이렇게 이미 경장에저 부처님께서 아비담마를 칭송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비담마는 부처님 시대에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고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설명한다. 사실 아비담마라는 용어는 니까야에서 이 「고싱가살라 긴 경」 (M32) 이외에도 「합송경」 (D33) §3.3과 「십상경」 (D34) §2.3에서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로 나타나며 「날라까빠나 경」 (M68) §17과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 (M103) §4와 『앙굿따라 니까야』「망아지 경」 (A3:137) 등 11개 정도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이처럼 「고싱가살라 긴 경」 (M32)을 인용하여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친설(親說)임을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결론짓는다.

"아비담마를 따돌리는 것은 이 승자의 [법의] 바퀴에 주먹을 날리는 것이고, 일체지의 지혜[一切智智]를 따돌리는 것이며, 스승의 무외(無畏)의 지혜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고, [법을] 듣고자 하는 회중을 속이는 것이며, 성스러운 도에 장애로 작용하고, [승가를] 분열시키는 18가지 분파를 만드는 일[破事] 가운데 하나에 휘말려들어 승가로부터 분리하는 거죄갈마(擧罪羯磨)와 견책갈마(譴責羯磨)를 받게 된다. 이러한 업을 지은 뒤에는 '가시오. 먹다남은 음식을 먹는 자로 살아가시오.'라고 하면서 축출될 것이다."(DhsA.29)

 

(3) 직설이라면 왜 경장과 논장은 전개가 다른가

계속해서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다음과 같은 반대론자의 말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계속한다.

"그러면 [이설을 말하는 자(반대론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아비담마가 부처님이 설하신 것(Buddhabhāsita)이라면 수천 개의 경들에서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머무셨다."(D16 §1.1 등)라는 등의 방법으로 [경의] 기원(nidāna)을 밝힌 것처럼 그와 같이 [아비담마를 설하게 된] 기원을 밝혔을 것이다.'라고"(DhsA.29)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주석서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 번째는 이러하다. "저 『자따까』와 『숫따니빠따』와 『법구경』등은 그런 형태의 [경을 설하게 된] 기원이 없는데 그렇다고 이 경들이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DhsA.29)라고 논박한다.

즉 『쿳다까 니까야』 의 여러 경들에도 경을 설하게 된 기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경들을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반대론자의 문제 제기를 논파한 뒤에 주석서는 부처님들의 위대하심을 찬탄하고 나서 아비담마는 부처님들의 영역이라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아비담마는 이러한 부처님들이 설하실 수 있는 가르침이며 … 이 아비담마는 일체지를 갖추신 부처님들의 영역이지 다른 자들의 영역이 아니다."(DhsA.230)

즉 아비담마의 기원을 밝히시지 않은 것은 부처님들의 마음이고 일체지를 갖추신 그분들의 영역이지,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주석서는 "이러한 심오한 방법의 바다인 아비담마는 부처님이 설하셨다."(DhsA.12)라고 강조하고 있다.

 

 

7. 아비담마는 언제 체계화하셨는가

 이처럼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주석서는 강조하고 있다.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직설이라면 부처님께서는 언제 아비담마를 체계화하셨는가 하는 것도 우리의 관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도 후 네 번째 칠 일에 체계화하셨고, 일곱 번째 안거에서 석 달간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직접 설하셨다.

 

(1) 아비담마는 성도 후 네 번째 칠 일에 명상하신 것이다

부처님의 성도 과정과 성도 후의 일화를 담고 있는 『맛지마 니까야』 「성스러운 구함 경」 (M26)에 해당하는 주석서(MA.ii.181~186)에는 세존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뒤 49일 동안에 하셨던 일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세존께서는 깔라 용왕의 거처가 있는(Kālanāgarājassa bhavana) 만제리까(Mañjerika, ApA.77)라는 숲에서 깨달으셨는데 첫 번째 칠 일은 깨달은 바로 그 장소에서 가부좌한 하나의 자세로 좌정하고 계셨다.

② 두 번째 칠 일은 깨달음을 증득하신 바로 그 자리와 그 나무[菩提樹, bodhi-rukkha]를 눈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면서 보내셨다.

③ 세 번째 칠 일은 그곳 가까이에서 동에서 서로 길게 포행을 하시면서 보내셨다.

④ 네 번째 칠 일은 『논장』(論藏, Abhidhamma-piṭaka)을 체계화하셨다(vicinanta).

⑤ 다섯 번째 칠 일은 보리수 아래로부터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로 가셔서 아비담마에 대한 조직적인 도(naya-magga)를 명상하셨다.

⑥ 여섯 번째 칠 일은 무짤린다(Mucalinda) 나무 아래에서 머무셨다.

⑦ 일곱 번째 칠 일은 왕의 처소(Rājāyatana)라 불리는 나무 아래에서 머무셨다.

이렇게 칠 일을 보내신 뒤에 다시 염소치기의 나무 아래로 가셔서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권청(勸請) 경」 (S6:1)에 나타나는 전법을 주저하는 사유를 하셨고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께서 이 세상에 법을 설해 주시기를 간청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세존께서는 사함빠띠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오비구에게 『상윳따 니까야』 제6권의 「초전법륜 경」 (S56:11)을 설하셨고 그들은 그 후에 『상윳따 니까야』 제3권 「무아의 특징 경」 (S22:59)을 듣고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이 가운데 아비담마를 체계화하신 네 번째 칠일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인용을 하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는 … 네 번째 칠 일 동안에는 북동쪽 방향에 있는 보배창고(ratana-ghara)에 앉으셨다. 여기서 보배창고는 칠보로 된 집(geha)이 아니다. 칠론(七論, satta pakaraṇā)에 정통한 장소를 보배창고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서 『담마상가니』 논서를 명상했을(sammasanta) 때에도 몸에서 광명은 나오지 않았다. 『위방가』 논서와 『다뚜까타』 와 『뿍갈라빤낫띠』 와『까타왓투』 논서와 『야마까』논서를 명상했을 때에도 몸에서 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하빠까라나』 (큰 논서 = 『빳타나』)10)에 침잠하여 "원인의 조건, 대상의 조건 … 떠나버리지 않은 조건"이라고 명상하기 시작하여 24가지 전체 『빳타나』 를 명상하셨을 때에 그분의 일체지의 지혜는 전적으로 『마하빠까라나』 (큰 논서=『빳타나』)에서 그 어울리는 곳을 얻게 되었다. ...

칠 일 낮과 밤 동안 명상한 법은 얼마나 많은 것이었는가? 끝없고 무량한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마음으로 예측한 것만을 일컫는다. 그러나 스승께서 이와 같이 칠 일 동안 마음으로 사유한 법을 말로써 구분해서 설하신다면 백년이든 천 년이든 십만 년이 지나더라도 그 끝에 도달하여 다 설하지 못하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DhsA.12~15)

이처럼 아비담마는 성도 후 네 번째 칠 일에 명상하여 체계화하신 것이고, 세존께서 이렇게 칠론을 체계화하신 곳을 불교에서는 보배창고라고 부른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인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사에 가면 이 보배창고를 비롯한 여섯 곳이 표시되어 있어서 성지순례를 하는 불자들에게 큰 환희심을 주고 있다.

 

(2) 아비담마는 일곱 번째 안거 때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다

주석서들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이렇게 체계화하신 아비담마를 직접 설하신 것은 일곱 번째 안거 때11) 석 달간 삼십삼천에서라고 한다.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깟사빠 경」 1(S2:1)을 주석하면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세존께서 성도하신 후 7년째 되던 해에 쌍신변을 나투시어 삼십삼천에 안거를 나러 가셔서 아비담마를 설하신 것을 두고 이렇게 적고 있다.

"세존께서 성도하신 후 7년째 되던 해에 쌍신변을 나투시어 삼십삼천에 안거를 나러 가셔서 아비담마를 설하시면서 禪의 분석에서 '비구란 일반적으로 일컫는 비구와 이름만인 비구가 있다.'(Vbh.245~246)라고 비구에 대한 해설을 말씀하신 것을 이 신의 아들은 들었다."(SA.i.103)

『담마상가니 주석서』 도 이렇게 적고 있다.

"나중에도 역시(일곱 번째 안거를 말함) 여래께서는 삼십삼천의 빠릿찻따까 나무 아래에 있는 붉은 대리석 위에서12) 일만의 세계에 있는 신들 가운데 앉으셔서 어머니를 직접 대면하여 '유익한 법들과 해로운 법들과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라는 법을 가르치시면서 백으로 구분하고 천으로 구분하고 백천으로 구분하여 특별한 법으로부터 [다른] 특별한 법으로 자유자재로 옮기면서 가르치셨다. 석 달 동안 끊임없이 전개된 가르침은 폭포수처럼 혹은 거꾸로 놓은 물 항아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흐름처럼 빠르게 전개되어 끝이 없고 무량하였다."13)(DhsA.15)

더 자세한 묘사는 본서 제2권 말미에 첨부하고 있는 『담마상가니 주석서』서문 §31 이하를 참조하기 바란다.

 

 

8.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들

 이제 『담마상가니 주석서』를 통해서 아비담마의 기원(nidāna)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들을 살펴보자.

 

(1) 띳사부띠 장로의 설명

먼저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띳사부띠 장로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만달라 아라마(Maṇḍalārāma)에 머무는 띳사부띠 장로(Tissabhūti-tthera)는 이 아비담마는 [부처님이 성도하신] 대보리좌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비구들이여, 나는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뒤 [49일간]14) 머물던 것의 한 부분에 머물렀다."(S45:11; S45:12)라는 「머묾 경」 1/2(S45:11~12)을 인용하여 설하였다.

… 이와 같이 장로는 「머묾 경」 1/2(S45:11~12)를 통해서 아비담마가 [설해진] 기원을 설명하였다."(DhsA.30~31)

 

이것은 『상윳따 니까야』 제5권 「머묾 경」 2(S45:12)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나는 석 달 동안 홀로 앉고자 한다. 하루 한 끼 탁발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고, 석 달 뒤에 "비구들이여, 나는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뒤 [49일간] 머물던 것의 한 부분에 머물렀다."라고 말씀하신것을 일컫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머묾 경」 1(S45:11)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처럼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띳사부띠 장로의 이러한 주장을 가져와서 『상윳따 니까야』 제5권 「머묾 경」 1/2(S45:11~12) 등의 니까야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부처님의 일화가 부처님께서 아비담마를 사유하시고 체계화하신 것의 기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2) 수마나데와 장로의 설명

계속해서 주석서는 수마나데와 장로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마을에 머무는 수마나데와 장로(Sumanadeva tthera)는 낮은 부분의 청동 궁전에서 법을 전하면서,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라고] 이설을 말하는 자는 두 손을 들고 숲에서 우는 자와 같고 증인 없이 소송을 하는 것과 같아서 아비담마를 [설하시게 된] 기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뒤에 그 기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한때에 세존께서는 신들 가운데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나무 아래에 있는 붉은 대리석 위에서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이라고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말씀하셨다.'라고"(DhsA.31)

이처럼 수마나데와 장로는 고주석서 등에서 전승되어 오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아비담마는 일곱 번째 안거 때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서 석 달 동안 설하신 것이라고 아비담마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3)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한 17가지 질문과 답변

계속해서 『앗타살리니』는 다음과 같이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해서 17가지의 질문을 제기하고 여기에 간결한 대답을 하면서 아비담마의 기원을 정리하고 있다.

"다른 경들에서는 [설하게 된] 기원이 하나이지만 아비담마에서는 두 가지의 기원이 있으니 ① 증득에 대한 기원(adhigama-nidāna)과 ② 가르침에 대한 기원(desanā-nidāna)이다. 이 가운데 ① 증득에 대한 기원이라는 것은 디빵까라[燃燈] 부처님(Dīpaṅkara-dasabala)으로부터 시작하여 대보리좌에 이르기까지라고 알아야 한다. ② 가르침에 대한 기원이라는 것은 법의 바퀴를 굴리신 것[轉法輪]까지라고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두 가지 기원을 구족한 이 아비담마의 기원에 대해 능숙하기 위해서 다음의 질문에 대한 항목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① 이 아비담마는 무엇에 의해서 시작되었는가? … ⑯ 누구의 말씀인가? ⑰ 누가 전승해 왔는가?'라는 17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① 아비담마는 무엇에 의해서 시작되었는가? – [디빵까라 부처님 앞에서 일으킨] 깨달음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염원을 통한 믿음으로부터 생겼다. ② 어디서 성숙되었는가? – 550개의 『자따까』(본생담)에서이다. ③ 어디서 증득되었는가? –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이다. ④ 언제 증득되었는가? – 위사카 달의 보름이다. ⑤ 누구에 의해서 증득되었는가? – 일체지를 갖추신 부처님에 의해서이다. ⑥ 어디서 체계화되었는가? –깨달음을 얻으신 장소에서이다. ⑦ 언제 체계화되었는가? – 보배창고에 머무신 칠 일 동안이다. ⑧ 누구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는가? – 일체지를 갖추신 부처님에 의해서이다. ⑨ 어디서 설해졌는가? – 삼십삼천의 신들 사이에서이다. ⑩ 누구를 위해서 설해졌는가? – 신들을 위해서이다. ⑪ 무엇을 위해서 설해졌는가? –네 가지 폭류를 건너기 위해서이다. ⑫ 누구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는가? – 신들에 의해서이다. ⑬ 누가 공부하는가? – 유학들과 선한 범부들이다. ⑭ 누가 공부를 성취한 자들인가? – 번뇌 다한 아라한들이다. ⑮ 누가 수지하는가? –[아비담마에 능숙한] 자들이 수지한다. ⑯ 누구의

말씀인가? – 아라한이요 정등각자이신 세존의 말씀이다. ⑰ 누가 전승해 왔는가? – 스승들의 계보[師資相承, 사자상승]에 의해서이다."(DhsA.31~32)

 

(4) 또 다른 방법에 의한 아비담마의 기원

주석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아비담마의 기원을 제시하면서 『담마상가니 주석서』의 서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것은 ① 먼 기원(dūrenidāna)과 ② 멀지 않은 기원(avidūrenidāna)과 ③ 가까운 기원(santikenidāna)이다. 주석서의 설명을 살펴보자.

"이와 같이 증득에 대한 기원과 가르침에 대한 기원을 구족한 이 아비담마는 다시 ① 먼 기원과 ② 멀지 않은 기원과 ③ 가까운 기원이라는 또 다른 세 가지 기원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이 가운데 연등 부처님의 발아래로부터 시작하여 도솔천궁에 이르기까지가 먼 기원이다. ② 도솔천궁으로부터 시작하여 보리좌에 이르기까지가 멀지 않은 기원이다. ③ '한때에 세존께서는 신들 가운데 삼십삼천에 있는 빠릿찻따까 나무 아래에서 붉은 대리석 위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법들'(ma-3)이라고 아비담마의 교설을 말씀하셨다.'라는 이것이 가까운 기원이다. 이것이 기원에 관한 설명이다."

 

 

9. 아비담마는 누가 인간들에게 전하였는가

 이처럼 아비담마는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 주석서들은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부처님 가르침은 법을 들은 분들이 있다. 니까야의 경들에서는 이러한 법을 들은 자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게송으로 전승되어 오는 몇몇 경들이나 가르침들은 주석서에서 그 게송이나 가르침을 들은 자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아비담마가 부처님께서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라면 이 아비담마는 누가 인간인 우리들에게 전승하였는가? 주석서는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사리뿟따 존자가 인간들에게 전하였다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세존께서 석 달 동안 신들에게 설하신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장로가 이것을 듣고 인간에 전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장로도 거기에 가서 정등각자께 시중을 들고 한곁에 앉았다. 스승께서는 '사리뿟따여, 이만큼의 법을 나는 설했다.'라고 말씀해주시면서 그에게 방법(naya)을 [말씀해]주셨다. 이와 같이 정등각자께서 무애해를 증득한 상수제자에게 방법을 [말씀해]주실 때에 마치 기슭에 서서 손을 뻗어서 바다를 가리키시는 것처럼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세존께서 장로에게 백의 방법과 천의 방법과 백천의 방법으로 [설해]주신 법은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여기서 주석서는 세존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법을 설하셨다고 하지 않고 방법을 [말씀해]주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복주서들은 가르침의 순서(vācanāmagga, Pm.ii.24 = vacanappabandha, Abhi-av-pt.137)를 [설해]주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가르침의 순서는 칠론의 차례를 뜻하고 마띠까의 순서나 선 · 불선 · 무기의 순서나 89가지 마음의 순서 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리뿟따 존자도 스승께서 가르치고 가르치신 법을 가져와서 자신과 함께 머무는 오백의 비구들에게 설하였다. … 장로는 스승께서 가르치고 가르치신 법을 수지하여 그들에게 설한 것이었다. 정등각자께서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마무리하신 것과 그 비구들이 칠론을 수지한 것은 함께 이루어졌다."(DhsA.16~17)

 

이처럼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네 번째 칠 일 동안에 체계화하셨고, 삼십삼천에서 일곱 번째 안거를 하실 때에 어머니 마야 왕비를 비롯한 신들에게 설하신 것이고, 이것을 사리뿟따 존자가 듣고 와서 자신의 제자 500명의 비구들에게 전승한 것이다.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 이런 사실들이 기록이 되어 있고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서 설법을 하셨다는 것은 『맛지마 니까야』「로마사깡기야 존자와 지복한 하룻밤 경」 (M134)에도 언급되어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즉 『앗타살리니』 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아비담마에서 가르침의 순서(즉 칠논의 차례)는 사리뿟따 장로로부터 기원한다. 그리고『마하빠까라나』 (Mahāpakaraṇa, 큰 논서 = 『빳타나』)에서 숫자의 전개과정도 장로가 확정한 것이다. 장로는 이러한 방법으로 특별한법을 망가뜨리지 않고 쉽게 배우고 호지하고 이해하고 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숫자의 전개과정을 확립하였다. 이와 같다면 장로가 첫 번째로 아비담마를 논하신 분인가? 그렇지 않다. 정등각자께서 첫 번째로 아비담마를 논하신 분이시다. 부처님께서 대보리좌에 앉으셔서 꿰뚫으셨기 때문이다."(DhsA.17)

 

그리고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본서 제4편 주석 편도 사리뿟따 존자가 전승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러면 이것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사리뿟따 장로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사리뿟따 장로는 자신과 함께 머무는 어떤 [비귀]가 [본서 제3편] 간결한 설명 편의 의미를 드러냄에 대해서 주도면밀하지 못하자 이 주석 편을 가르쳐서 드러내어 주었기 때문이다."(DhsA.409~410)

그러나 고주석서는 이것도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주장한다고『담마상가니 주석서』즉『앗타살리니』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대주석서(mahā-aṭṭhakathā = 고주석서)는 이런 견해를 거부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아비담마란 제자들의 분야가 아니고 제자들의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분야이고 부처님의 영역이다.

법의 대장군(사리뿟따 존자)은 함께 머무는 [비구]로부터 질문을 받고 그를 데리고 스승의 곁에 직접 가서 정등각자께 말씀을 드렸다. 정등각자께서는 그 비구에게 주석 편을 설명하신 뒤에 드러내어 주셨다."(DhsA.410)

 

이처럼 아비담마는 사리뿟따 존자와 관계가 깊다. 신들이 아닌 우리 인간들에게 아비담마를 전승시켜 준 사람은 바로 사리뿟따 존자가 된다. 그렇더라도 부처님이 바로 첫 번째로 아비담마를 논하신 분이라고 주석서는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논장, 즉 아비담마의 칠론도 모두 부처님의 친설을 담고 있다는 것이 상좌부 불교의 확고한 주장이다. 모든 가르침의 기원을 부처님께 두는 것은 직계 제자들(sāvaka)과 그 적통임을 자부하는 상좌부 불교 구성원들의 당연한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주석서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사리뿟따 존자는 아비담마와 가장 밀접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니까야 가운데 가장 아비담마적인 경이라 할 수 있는 『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경」 (D33)과 「십상경」 (D34)도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본서의 두 개 조 마띠까에 포함되어 있는 경장의 두 개 조 가운데 정신과 물질의 두 개 조(ma2-109, §1316)부터 마지막인 멸진에 대한 지혜의 두 개 조(ma2-142, §1383)까지의 33가지 두 개 조는 「합송경」 (D33) §1.9의 두 가지로 구성된 법들의 (1)부터 (33)까지와 거의 같다.

 

(2) 신들은 있는가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일곱 번째 안거에서 신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라는 것이 여러 주석서 문헌에서 언급이 되고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서 설법을 하셨다는 것은 『맛지마 니까야』 「로마사깡기야 존자와 지복한 하룻밤 경」 (M134)에도 언급이 되고 있다.

아비담마가 아니더라도 니까야에서는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상윳따 니까야』 첫 번째 상윳따와 두 번째 상윳따인 「천신 상윳따」 (Devatā-saṁ-yutta, S1)와 「신의 아들 상윳따」 (Devaputta-saṁyutta, S2)는 신들에게 설하신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것이고, 언어학적으로 이 두 상윳따에 포함된 가르침들은 다른 어떤 니까야보다 더 초기적인 형태를 간직한 경들이라고 한다. 5부 니까야 전체에서 신들과 관계된 부처님의 말씀은 아주 많다.

여러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우리의 스승 부처님께서는 그냥 인간들의 스승이 아니라 니까야의 도처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 즉 천인사(天人師, Satthā devamanussānaṁ)라 불리고 계신다. 『맛지마 니까야』 제3권 「상가라와 경」 (M100) §42에서도 상가라와 바라문은 부처님께 이 문제를 질문 하였고 부처님은 신들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신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원인에 따라 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제가] '신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는데 어떻게 고따마 존자께서는 '바라드와자여,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원인에 따라 안다.'고 대답하십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존자의 대답은] 공허한 것이고 거짓이 아닙니까?"

"바라드와자여, '신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신들이 있다.'라고 말하거나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원인에 따라 안다.'라고 말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신들이 있다.'라는 확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면 왜 고따마 존자께서는 첫 번째 방법으로 제게 설명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들이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석서는 그 바라문은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이라서 세존께서 설명해주셔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MA.iii.454) 사려 깊지 못한 자들이 모를 뿐이지 신들의 존재는 당연한 것으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서문의 여러 곳에서 아비담마는 신들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들이 있고 그들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존경하면서 법을 설해주시기를 청한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나? 법왕이신 세존은 그들에게 당연히 법을 설하셔야 한다. 그들에게 법을 설하신다면 그들에게는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인습적으로 제한이 되고 제약이 따르는 방편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가르침을 설하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비담마이고 그 시작이 『담마상가니』 이고 『빳타나』로 귀결된다.

그러면 신들에게 설하신 이런 아비담마의 가르침과 인간들에게 설하신 경들의 가르침이 내용이 다른가? 같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여기 『담마상가니』 특히 『담마상가니』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통해서 드러내셨듯이 개념적 존재들을 해체하면 여러 법들이 드러나고 그 법들은 현장성을 가지며 그래서 무상한 것이요, 그 법들은 조건발생하는 연기적인 것이라는 말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경장의 니까야 도처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물론 불교는 유일신이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개념일 뿐이다. 인간들 가운데 위력이 더 있는 인간들이 있듯이 신들 가운데도 위력이 더 있는 신들은 있겠지만, 유일신은 없고 세상이나 인간을 창조한 신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다.15) 그리고 신들은 성자가 아니다. 신들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통찰하지 못하면 단지 범부일 뿐이고 윤회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 (M147)에서 수천 명의 천신들이 세존과 라홀라 존자를 따라가서 세존께서 라홀라 존자에게 설하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 무상 · 고 · 무아 - 염오 - 이욕 - 해탈 - 구경해탈지의 가르침을 듣고 '생긴 것은 무엇이건 모두 멸하기 마련이다[集法卽滅法].'라는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서(M147 §10) 어떤 천신은 예류자가 되었고, 또 어떤 천신은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MA.v.99)

 

사실 신들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아비담마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 본서만 하더라도 본서 안에 신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신은 인간이나 중생이나 축생 등과 같이 개념적 존재(paññatti)일 뿐이라서 그것은 아비담마의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역자가 역자 서문에서 이렇게 신들을 언급하는 자체가 아비담마의 관심이나 입장을 호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0.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와 논장의 칠론

 (1) 부처님의 일대시교 - 삼장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a) 경장 · 율장 · 논장의 삼장(띠삐따까)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방법(DhsA.21~24)

(b) 『디가 니까야』 ·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앙굿따라 니까야』·『쿳다까 니까야』 의 다섯 가지 니까야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방법(DhsA.25)

(c)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a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a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의 구분교(九分敎)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방법(DhsA.26)

(d) 팔만사천 법의 무더기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방법(DhsA.26~27)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 뒤 아비담마는 이 네 가지 방법에 다 적용되는 부처님의 말씀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와 같이 합송된 것(saṅgīta) 가운데서 이 아비담마는 ① 삐따까로는 아비담마 삐따까(논장)이고 ② 니까야로는 『쿳다까 니까야』이며 ③ 구성 요소[分]로는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고 ④ 법의 무더기로는 몇 천 정도(이삼천)의 법의 무더기이다."(DhsA.27~28)

 

(2) 아비담마 삐따까(논장)16)는 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논장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논서를 분류하면 이 [아비담마]는『담마상가니』[法集論, 법집론, Dhamma saṅgaṇi]와 『위방가』[分別論, 분별론, Vibhaṅga]와 『다뚜까타』[界論, 계론, Dhātukathā]와 『뿍갈라빤낫때』[人施設論, 인시설론, Puggalapaññatti]와 『까타왓투』[論事, 논사, Kathāvatthu]와 『야마까』[雙論, 쌍론, Yamaka]와 『빳타나』[發趣論, 발취론, Paṭṭhāna]의 일곱 가지 논서들로 확정되어 있다. 이것이 스승들의 공통된 말씀이다."(DhsA.3)

계속해서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이 칠론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데 전문은 본서 제2권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담마상가니 주석서』 서문 §§11~21을 참조하기 바란다.

 

(3) 『까타왓투』 (논사)는 부처님 직설이 아니지 않은가

부처님 가르침을 모든 불교에서 사장(四藏)이나 이장(二藏)이 아닌 삼장(三藏)으로 분류하듯이 아비담마도 초기부터 칠론(七論)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상좌부의 논장만이 칠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북방불교 교학의 토대가 되는 설일체유부에서도 논장을 칠론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실 상좌부의 칠론 가운데 「까타왓투』 (논사, Kathāvatthu)는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 목갈리뿟따 띳사 존자의 가르침으로 상좌부에서도 인정한다. 설일체유부의 논장도 칠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17) 이 가운데 마지막인 『발지론』 은 까땨야니뿌뜨라[迦多衍尼子, 가다연니자, Katyayaniputra]가 상좌부에서 설일체유부를 독립시키면서 지은 저작으로 알려졌다. 상좌부에서 BC 1

세기 경에 분파한 설일체유부도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처럼 후대의 저작을 하나 넣어서 논장을 칠론으로 구성하였는데 이것은 빠알리 칠론의 구성과 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논장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려면 상좌부에서는 이 『깟타왓투』 (논사)를 빼버리고 논장은 육론이라고 정리하면 되는데 굳이 칠론이라고 한 것은 늦어도 삼차결집에서는 논장이 이미 칠론으로 결집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추론된다.

 

그러면 아비담마가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주장하면서 왜 『깟타왓투』(논사)는 부처님의 직설이 아닌 것으로 전승이 되고 있는가? 빠알리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앗타살리니』는 이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까타왓투』 의 마띠까(pāliya mātika)를 확정하셨고 여기에 대해서 목갈리뿟따 띳사 스님이 삼차결집에서 상세한 설명을 붙여서 현존하는 『까타왓투」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앗타살리니』 는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이러한 마띠까를 확정하시면서 이렇게 예견하신 뒤에 확정하셨다. '내가 반열반한 지 218년이 지난 뒤에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라는 비구가 1,000명의 비구들 가운데 앉아서 정설 가운데 500개의 가르침과 이설 가운데 5,000개의 가르침을 함께 가져와서 『디가 니까야』에 해당하는 분량으로『깟타왓투』 라는 논서를 상세하게 분석할 것이다.'라고"(DhsA.4)

좀 더 자세한 논의는 본서 제2권 말미에 싣고 있는 『담마상가니 주석서』 서문 §10을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주석서는 이러한 전례는 경에서도 나타난다고 강조하면서 『맛지마 니까야』 제1권 「꿀 덩어리 경」 (M18)을 상세하게 그 실례로 든다. 『담마 상가니 주석서』 서문 §§8~9를 참조하기 바란다.

 

(4) 아비담마 칠론의 주석서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먼저 『담마상가니』에 대한 주석서인 『앗타살리니』가 있고 두 번째인 『위방가』에 대한 주석서인 『삼모하위노다니』 (Sammohavinodanī)가 있고 나머지 5론에 대한 주석서인 『빤짜빠까라나 앗타까타』 (Pañcapakaraṇa-aṭṭhakathā)가 있다. 이 주석서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청정도론』제1권의 해제 41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논장의 주석서들 가운데 으뜸은 본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 이다. 『청정도론』이 4부 니까야에 대한 종합적인 주석서이듯이 『앗타살리니』도 아비담마 혹은 논장에 대한 종합적인 주석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주석서의 설명의 토대가 되는 것은 상좌부 불교의 교학 체계 혹은 아비담마 체계이다. 이것을 『청정도론』은 니까야의 입장에서 전개하고 『앗타살리니』는 논장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앗타살리니』는 PTS에서는 이미 1920~1921년에 뻬 마웅틴이 "The Expositor"로 영역을 하여 출간하였다. 이것은 역시 뻬 마웅틴이 번역하여 제1권을 1922년에 출간한 『청정도론』 보다 1년 먼저 출간이 완료되었다. 이렇게 일찍 『앗타살리니』를 번역한 것은 이 주석서의 도움 없이 상좌부 아비담마 체계 혹은 상좌부 불교 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PTS에서도 절감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아비담마 주석서와 아비담마 칠론(논장의 칠론)을 혼돈하거나 섞어서 이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칠론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는 성전(pali)이고 현존하는 아비담마 주석서(aṭṭhakathā)는 여기에 대한 후대의 주석을 담은 문헌이다. 이 둘은 계층이 엄연히 다르다. 특히 주석서 문헌들은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빠알리는 부처님의 금구성언을 지칭하는 것이고 앗타까타는 여기에 대한 후대의 주석서이다.18)

 

 

11. 『담마상가니』 란 무엇인가

 (1)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i)'의 문자적인 뜻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의외로 주석서 문헌에서 '담마상가니'라는 타이틀을 문자적으로 설명하고 정의하는 것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DPPN도 『담마상가니』를 소개하고 중요성을 설명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담마상가니』 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에도 문자적인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9)

문자적으로 dhammasaṅgaṇi는 dhamma와 saṅgaṇi로 분석이 된다. 그런데 saṅgaṇi라는 단어는 PED 등에 표제어로 나타나지 않는다. DPL은 s.v. saṅgaṇi에서 dhammasaṅgaṇi를 설명하는 뜻만을 담고 있다. 대신에 saṅgaṇikā라는 용어가 PTS와 DPL에 표제어로 나타나는데 PED는 이 용어를 saṁ+gaṇa+ikā로 분석하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saṅgaṇi-k2a를 '무리 지어 삶(A6:68 §1)으로 옮겼다. saṅgaṇikā는 PED에서 communication, association, society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saṅgani도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한편 saṅgaṇi 혹은 saṅgaṇikā의 중심이 되는 gaṇa라는 단어는 √gan(to count)에서 파생된 명사로 숫자, 모임, 회합, 대중 등을 뜻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무리'로 옮겼다. 이 단어는 자이나교에서 그들의 출가자 집단을 뜻하는 단어로 정착이 되었으며 불교에서도 이 단어를 saṁgha(승가)와 동의어로 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빠알리 문법서인 『삿다니띠』는 이렇게 적고 있다. "가나는 비구의 무리나 다른 특정한 무리를 말한다(gaṇoti bhikkhusamūho, yesam vā kesañci samūho)."(Sadd.302)

 

이러한 뜻을 가진 gaṇa에다 접두어 saṁ-을 붙여서 saṇgaṅa가 되고 소유를 뜻하는 -in 어미를 붙여서 saṇgaṅi가 되어 모아진 것, 무리 지어진 것 이라는 뜻이 된다. 역자는 '갈무리'로 옮겼다. 그래서 dhammasaṇgani는 법을 모은 것이라는 뜻이고 역자는 '법의 갈무리'로 옮겼다. 갈무리의 사전적 의미는 ① 잘 챙겨서 간수함과 ② 쌓아서 간직하여 둠이다.(① 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②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함) 그러므로 『담마상가니』는 법(dhamma)을 –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든 수승한 법이든 – 잘 정리하여 모은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2) 상가니(갈무리)는 상가하(길라잡이)이다

그런데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는 이 『담마상가니』를 담마상가하(Dhamma-saṇgaha, 법의 안내, 법의 길라잡이)로 표기하기도 한다.20) 그리고『담마상가니 주석서』의 각 편(kaṇṇda)의 말미에서도 『담마상가니 주석서』(Dhammasaṇgaṅī-aṭṭhakathā)라는 표현 대신에 "담마상가하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의 욕계에 속하는 유익한 마음의 해설이 끝났다(Aṭṭha-sāliniyā dhammasaṅgahaṭṭhakathāya cittuppādakaņḍakathā niṭṭhitā)."(Dhs A.296 등)라는 등의 방법으로 '담마상가하 주석서(Dhammasaṅgahaṭṭha-kathā)'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위방가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도『담마상가니 주석서』 를 이처럼 담마상가하 주석서(Dhammasaṅgahaṭṭhakathā)로 언급하고 있고(VbhA.43 등) 그 외 여러 주석서에서도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담마상가하 주석서(Dhammasaṅgahaṭṭhakathā)로 언급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주석서 문헌에서 상가니는 상가하와 동의어로 쓰였다.

 

우리에게 상가하는 『아비담맛타상가하』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레디사야도는 『아비담맛타상가하』의 복주서인 『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아비담마에서 설해진 주제(혹은 의미)들을 아비담맛타라 한다. 본서에서 혹은 본서를 통해서 [아누룻다] 스님이 이것들을 요약해서 파악하고 설명했기 때문에 『아비담맛타상가하』라 한다."(PdT.14)라고 상가하를 풀이하고 있다.

산스끄리뜨어 상그라하(saṅgraha)의 빠알리식 표기인 상가하(saṅgaha)는 saṁ(함께)+√grah(to tak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함께 모은 것'이란 의미이다. 이 상그라하(빠알리. 상가하)는 인도 대륙에서 8세기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특정 형태의 문헌의 한 장르이다. 문헌의 장르로서의 상그라하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서문 §2. 책의 제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에서 상가하는 삼빠요가(sampayoga)라는 용어와 짝으로 쓰인다. 89/121가지로 분류되는 마음이 어떤 마음부수법들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고찰하는 방법을 상가하(saṅgaha)라고 부르고, 마음부수법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이 89/121가지로 분류되는 마음 중에서 어떤 마음들과 연결되는가를 고찰하는 방법을 일러 삼빠요가(sampayoga)라고 부른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전자를 '조합', 후자를 '결합'으로 옮기고 있다.21)

 

(3) 어떻게 법을 갈무리하였나

법들을 그냥 잡동사니 모으듯이 모은 것을 『담마상가니』 혹은 담마상가하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담마상가니 주석서』 는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서 욕계 첫 번째 유익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65가지 법들의 모음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기서 새로운 것이란 전혀 없다. 앞에서 취한 것을 취하여서 이런저런 곳에서 용어를 채워 넣었을 뿐이다. 서로 연관이라고는 없는 이런 가르침은 아무런 순서도 없이 마치 도둑들에 의해서 [제멋대로] 밧줄에 묶인 것과 같고 소 떼가 지나간 길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풀처럼 알지 못하고 설하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라고 제지를 한 뒤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부처님들의 가르침이 서로 연관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서로 분명한 연관이 있다. 알지 못하고 설하신 것도 역시 없다. 모든 것은 아시고 나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DhsA.135)

 

법을 갈무리하는 데는 규칙이 있다. 이것을 주석서는 '방법(naya)'이라 부른다.22)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논장의 칠론은 규칙을 정하여 법들을 모아서 엄정하게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담마상가니 주석서』를 비롯한 주석서 문헌을 읽다 보면 방법을 뜻하는 naya라는 용어와 아주 많이 마주치게 된다.23)

 

법을 모으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논의의 주제인 '마띠까(mātikā)'를 설정하는 것이다. 먼저 마띠까를 설정하고 이 마띠까에 준해서 법을 모은 것이 법의 갈무리, 즉『담마상가니』 이다. 『담마상가니』마띠까는 당연히 부처님이 설정하신 것이다.

『담마상가니』에는 두 가지 마띠까가 있다. 본서 제1권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164개의 마띠까(세 개 조의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의 마띠까 142개)는 『담마상가니』전체에 대한 마띠까일 뿐만 아니라 논장의 칠론 전체에 대한 마띠까라 할 수 있다. 특히 『위방가』의 여러 장에 나타나는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Abhidhamma-bhājanīya)'은 온 · 처 · 계 · 근 · 제 ·연(蘊 · 處 · 界 · 根 · 諦 · 緣)과 37보리분법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의 주요 법수들을 본 『담마상가니』 의 이 122개의 아비담마 마띠까(세 개 조의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의 마띠까 100개)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빳타나』의 전개도 이 마띠까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마상가니』제2편 물질 편에는 다시 279개의 물질의 마띠까를 제2편의 첫머리에 설정하고 이 마띠까에 의해서 물질에 관계된 법들을 모으고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전자와 구분하기 위해서 역자는 이 후자를 물질의 마띠까라 부르고 있다. 10세기에 출현한 『아비담맛타상가하』는 이 마띠까를 따르지 않고 아비담마를 9개 주제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법을 모으는 두 번째 중요한 방법은 '마음(citta)'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마음은 대상, 그것도 현장성을 가진 대상을 식별하는 것(ārammaṇaṁvijānāti/ cinteti)이기 때문에 특정한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정신현상들 혹은 심소법(마음부수법)들을 함께 모아서 살펴보는 방법으로 법들을 고찰하고 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이처럼 마음의 측면에서 함께 일어나는 심소법들을 고찰해 보는 것을 상가하(saṅgaha, 조합)라고 한다. 반대로 심소법들의 입장에서 이들이 일어나는 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삼빠요가(sampayoga, 결합)라 한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2장 §10의 해설을참조할 것.) 이런 의미에서 주석가들이 본서를 담마상가하라고 부르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본서, 특히 본서 제1편은 마음의 입장에서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법들을 열거하면서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dhamma-vavatthāna-vāra)과 항목의 부문(koṭṭhāsa-vāra)과 공함의 부문(suññata-vārā)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것은 상가하, 즉 조합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담마상가니』 는 법들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모으고 무리짓고 분류하고 설명해 내고 있다.

 

(4) 『담마상가니』의 구성

『담마상가니 주석서』는『담마상가니』의 구성을 이렇게 요약한다.

"여기서 『담마상가니』 논서는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1 마음의 분류(citta-vibhatti) 2 물질의 분류(rūpa-vibhatti) 3 간결한 설명의 모음(간결한 설명 편, nikkhepa-rāsi) 4 의미를 드러냄(atthuddhāra = 주석 편)이다.

 

① 여기서 욕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8가지, 해로운 것 12가지,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것 16가지,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것 7가지, 작용만 하는 것 11가지, 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5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5가지, 작용만 하는 것 5가지, 무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 작용만 하는 것 4가지, 출세간의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가 되어 89가지 마음이 마음의 분류(citta-vibhatti)가 된다. '마음의 일어남 편(Cittuppāda-kaṇḍa)'이라는 것도 이것의 이름이다. 이것은 가르침의 순서에 의하면 여섯 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

 

② 이것의 바로 다음은 한 가지와 두 가지 등의 방법으로 마띠까를 확정하여 상세하게 분류하여 보여주는 물질의 분류이다. '물질 편(Rūpa-kaṇḍa)' 이라는 것도 이것의 이름이다. 이것은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두 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

 

③ 이것의 바로 다음에는 '뿌리(mūla)를 통해서, 무더기(khandha)를 통해서, 문(dvāra)을 통해서, 경지(bhūmi)를 통해서, 뜻(attha)을 통해서, 법(dhamma)을 통해서, 이름(nāma)을 통해서, 성(linga)을 통해서'라고 이와 같이 뿌리등을 통해서 간결하게 한 뒤에 가르친 간결한 설명의 모음(nikkhepa-rāsi)이 있다. 이것은 –

 

① 뿌리를 통해서 ② 무더기를 통해서

③ 문을 통해서 ④ 경지를 통해서

⑤ 뜻을 통해서 ⑥ 법을 통해서

⑦ 이름을 통해서 ⑧ 성을 통해서

간결하게 설하셨기 때문에

간결한 설명이라고 일컬어진다.

 

'간결한 설명 편(Nikkhepa-kaṇḍa)'이라는 것도 이것의 이름이다. 이것은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세 바나와라 정도이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

 

④ 이것의 바로 다음에는 삼장에 담겨있는 부처님 가르침의 의미를 드러내면서(atthuddhāra-bhūta) 다툼의 두 개 조(§1301)까지 설명한 것을 '주석편(Aṭṭhakathā-kaṇḍa)'24)이라 한다. 『마하빠까라나』 (『빳타나』)에 나타나는 숫자의 전개에 대해서 주도면밀하지 못한 비구도 이것을 통해서 숫자의 전개를 잘 배우게 된다. 이것은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두 바나와라 정도이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전체 『담마상가니』 논서는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13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① 마음의 분류와 ② 물질의 [분류와]

③ 간결한 설명과 ④ 뜻을 밝힘(atthajotanā)이라는

이 심오하고 미묘한 주제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DhsA.6~7 §§11~12)

 

(5) 『담마상가니』 는 마띠까의 설명이다

이처럼 『담마상가니』 는 전체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본서의 첫 머리에는 논의의 주제인 마띠까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마띠까는 「담마상가니』 뿐만 아니라 논장의 칠론 전체에 대한 마띠까라 할 수 있다. 특히 칠론 가운데 으뜸이라고 해서 『마하빠까라나』 (큰 논서)라 칭하는 『빳타나』의 마띠까이기도 하다. 제2편 물질 편의 첫머리에도 물질에 관한 논의의 주제인 물질의 마띠까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물질의 마띠까들은 모두 『위방가』의 제1장 무더기[蘊]에 대한 분석 가운데 아비담마에 따른 분류 방법(Abhi-dhamma-bhājanīya)에 속하는 §33에서 물질의 무더기[色蘊]를 정의하는 것과 똑같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담마상가니』마띠까에는 아비담마에 관계된 세 개 조로 된 것 22개와 두 개 조로 된 것 100개뿐만 아니라 경장의 마띠까 42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33개는 사리뿟따 존자가 설한 「합송경」 (D33) §1.9의 두 가지로 구성된 법들(dukaṁ)의 (1)부터 (33)까지와 같다. 그래서 주석서도 이 마띠까는 사리뿟따 존자가 설한 마띠까라고 설명하고 있다.(DhsA.9 §20)

『담마상가니』 전체 4편 가운데 가장 분량도 많고 『담마상가니』의 핵심이요 백미라 할 수 있는 제1편과 제2편은 이 164개의 마띠까 가운데 첫 번째 마띠까(ma3-1)에 속하는 논의의 주제인 '유익한 법들'(ma3-1-a), '해로운 법들'(ma3-1-b),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에 대한 설명이다. 제1편에서는 유익한 법들을 욕계에 속하는 것, 색계에 속하는 것, 무색계에 속하는 것, 출세간에 속하는 것의 순서로 설명을 하고 이어서 해로운 법들을 설명하고, 계속해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을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과보로 나타난 법들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출세간의 작용만 하는 법들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제2편 물질 편에서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 가운데 남은 법들인 물질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3편은 164개의 마띠까에 담겨있는 22×3+142×2=350개의 논의의 주제에 대한 간결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4편은 경장의 마띠까를 제외한 논장의 마띠까 122개에 담겨있는 22×3+100×2=266개의 논의의 주제에 대한 간략한 주석을 달고 있다. 이것이 전체 『담마상가니』의 내용이다.

마띠까에 대한 설명과 각 편들에 대한 개관은 제1권과 제2권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12. 『담마상가니』를 통해서 본 아비담마의 특징

 이제 마지막으로『담마상가니』를 통해서 본 아비담마의 특징을 몇 가지 서술하는 것으로『담마상가니』 역자 서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 아비담마의 관심은 개념적 존재(paññatti)가 아니라 오직 법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아비담마의 관심은 인간이나 중생이나 세상이나 집이나 자동차 등과 같은 개념적인 것(paññatti)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비담마의 관심은 오직 법(dhamma)이다. 그래서 아비담마라는 용어의 문자적인 뜻도 법(dhamma)에 대해서(abhi), 즉 대법(對法)이다. 아비담마의 관심은 인간이나 중생이나 세상이나 집이나 자동차를 해체했을 때 드러나는, 바로 그 법이다. 인간이니 중생이니 하는 개념적인 용어는 아비담마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에 포함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중생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삶의 현장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아비담마는 완전한 관념론이 아닌가. 그런 관념론이 인간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라고, 아비담마는 말한다. 중생이야말로 개념(paññatti)일 뿐이고 관념 중의 관념일 뿐이라고,

중생의 세상은 늪과 같고 신기루와 같고 요술과 같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중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과 함께하고 중생을 제도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깊은 개념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중생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중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생을 해체해서 중생이 없음을 봐야 중생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입장이라 해야 한다.

이미 「와지라 경」 (S5:10)에서 아라한 과를 증득한 와지라 비구니는 이렇게 읊었다.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 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들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S5:10 (553)~{555})

 

무엇보다도 중생의 문제는 세상의 정치나 경제나 학문이나 예술이나 의술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불교까지 중생의 문제에 천착할 필요가 있을까. 불교가 중생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정치화되고 권력화되고 금권화되는 것을 우리는 한국불교의 모습을 통해서 보지는 않는가. 불교만이라도 중생을 해체해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중생이 해체되어 법이 드러나야 진정으로 중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말한다.

"욕계에 속하는 첫 번째 유익한 큰마음이 일어날 때 그때에 마음의 구성요소(cittaṅga)로 일어나는 50개가 넘는 법들을 모아보면 이들은 고유성질 이라는 뜻(sabhāvaṭṭha)에 의해서 법들이다. 다른 어떠한 중생(satta)이라거나 존재(bhāva)라거나 사람(posa)이라거나 인간(puggala)이라는 것은 없다."(DhsA.155)

 

(2) 법(dhamma)은 해체했을 때 드러난다

여기서 해체로 옮기고 있는 용어는 위밧자(vibhajja)인데 이것은 vi(분리하여)+√bhaj(to divid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분리하다, 나누다, 분석하다, 해체하다'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 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이미 『맛지마 니까야』 제3권 「수바경」 (M99) §4와『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왓지야마히따 경」(A10:94) §3에서 "나는 분석해서 말하지(vibhajja-vāda) 한쪽으로 치우쳐서 말하지 않는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나타난다. 분석해서 말함(vibhajja-vāda)에서 분석해서 말하는 자들(Vibhajja-vādin)이 유래된

것이다. 해체 혹은 해체해서 보기에 대해서는 졸저 『초기불교이해』 26쪽 이하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세상을 해체해서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아비담마는 허무맹랑한 이론에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비담마가 우리에게 재촉하는 것은 개념적 존재를 법으로 해체해서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 없이 아비담마의 법수를 외우고 이해하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체해서 보는가. 여기서 위빳사나(vipassanā)가 등장한다. 위+빳사나(vi+passanā)는 바로 해체해서(vi) 보기(passanā)이다. 구체적으로 해체해서 보는 행위, 그런 노력, 그런 수행이 해체해서 보기이다. 수행의 핵심인 바른 정진의 내용이 유익함과 해로움[善 · 不善, kusala · akusala]의 판단이고25) 선 · 불선 · 무기의 판단은 바로 『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ma3-1)이고 그 내용이 제1편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아비담마가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위빳사나의 이론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빳사나 수행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비담마는 죽은 이론이요, 학문을 위한 학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아비담마가 위빳사나요, 위빳사나가 아비담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론 없는 실천은 신비주의로 치달리고 실천 없는 이론은 냉소주의로 내닫는다.

 

(3) 법(dhamma)이야말로 진정한 현장성이다

혹자들은 말할 것이다. 중생이야말로 현장이고, 법은 그 중생이라는 현장을 설명하는 개념적인 것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중생이라는 관념을 해체해야만 법을 볼 수 있고 해체했을 때 드러나는 이 법이야말로 바로 지금 · 여기 이 현실, 이 현장에 있다.

중생은 개념일 뿐이다. 중생이 사는 세상도 개념일 뿐이다. 여기에 사무치지 못하면 불교의 본질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생이 사는 개념적인 세상을 현장으로 보고 그 현장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정치요 경제요 예술이요 의술일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중생이라는 관념이나 세상이라는 개념을 해체하지 않으면 불교는 세속의 정치의 논리가 되고 경제의 논리가 되고 예술의 논리가 되고 의술의 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실제로 한국불교의 많은 출가자들이 이런 세상의 논리로만 부처님 법을 대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그러면 불교는 중생의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중생(satta)으로 하여금 성자(ariya)가 되게끔 하는 체계가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관심은 중생이라고 해야 한다. 중생에 대한 불교의 관심은 전법도생(傳法度生)이라고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헌은 밝히고 있다. 우리의 스승 부처님께서 위없는 깨달음을 체득하신 뒤에 보여주신 45년간의 여정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중생에 대한 불교적 관심은 반드시 법(dhamma)을 통해서라고 역자는 받아들인다. 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불교의 관심이지 정치 등을 통해서가 아니다. 정치나 경제나 예술이나 의술 등을 통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예술가나 의료인 등에 맡겨두면 된다.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법의 현장성을 강조하는 용어에는 '보인 법'으로 직역할 수 있는 딧타담마(diṭṭha-dhamma, D19, M4, S12:16, A3:99 등)가 있다. 중국에서는 現法(현법)으로 직역하였으며 영어로는 here and now로 정착이 되고 있고 역자는 '지금 · 여기'로 옮긴다. 『담마상가니」도 불교의 禪을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인 색계의 禪"(§577 등)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주석서들은 diṭṭhadhamma를 "지금· 여기[現法, diṭṭha-dhamma]란 눈 앞에(paccakkha) [직접 보이는] 법을 말한다."(DA.i.121)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지금 · 여기란 바로 이 자신의 존재 안에서(imasmiṁ attabhāve)라는 뜻이다."(DhsAMT.36 등)라고도 설명한다.

초기불전에서 법은 "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D18, M7, S4:21, A3:40 등)로 정형화되어 있다. 이 가운데 '와서 보라는 것'으로 옮겨지는 에히빳시까(ehi-passika)도 법의 현장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청정도론』 은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와서 이 법을 보라(ehi passa imaṁ dhammaṁ).'고 이와 같이 검사하기 위해 초대를 할 만하기 때문에 와서 보라는 것(ehi-passika)이다. 무슨 이유로 초대할 만한가? 있기 때문이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빈주먹에 금화나 황금이 있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슨 이유인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변이나 대변이라면 실제로 있다 하더라도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음을 흡족케 하기 위해서는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풀이나 나뭇잎으로 가려야만 할 것이다. 왜 그런가? 더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홉 가지 출세간법은 그 고유성질로 존재하는 것이고 구름 없는 하늘에 있는 둥근 보름달처럼, 황금색 돌 위에 놓인 보석처럼 청정하다. 그러므로 있기 때문이고 청정하기 때문에 와서 보라고 초대할 만하다. 그래서 와서 보라는 것(ehi-passika)이다."(Vis.VII.82)

 

『담마상가니』 와 『위방가』 같은 논장의 칠론에서 현장성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사마야(samaya, 때, 시점, 시기)를 들고 싶다.26) 『담마상가니』는 이렇게 시작한다.

"형색을 대상으로 하거나 … 그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여 욕계의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yasmiṁ samaye), 그때에(tasmiṁ samaye) 감각접촉이 있고 … 분발이 있고 산란하지 않음이 있다. 그 밖에 그때에(ye vā panatasmiṁ samaye)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비물질인 다른 법들도 있으니 이것이 유익한 법들이다."(Dhs. §1 등)

여기서 ( ) 안에 원어로 표기하였듯이 법들은 마음이 일어나는 바로 그 '현장에서(samaye)'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현장을 떠나서 법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담마상가니』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구성하고 있는 §1부터 §582까지 582개의 문단 가운데 때나 시점이나 시기나 시간으로 옮겨지고 현장성을 뜻하는 이'tasmiṁ samaye(그때, 그 시점에)'가 들어가지 않은 문단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현장이라 한다고 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물질적인 세계만을 현장이라 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아비담마는 물질이 아닌 것(arūpa), 즉 정신[名, nāma]의 현장성을 더 강조한다. 그래서 본서 제1편에서 89가지 또는 이십만 가지가 넘는 마음의 일어남을 설명할 때 "마음이 일어날 때(마음이 일어나는 그 시점에서, yasmiṁ samaye cittaṁ uppannaṁ hoti)"(§1 등)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들이 일어날 때 여러 가지 법들이 함께 일어남을 거듭해서 밝힐 때에도 "그때에 있는"을 성과 수에 따라 'yo tasmiṁ samaye'(§2 등), 'yaṁ tasmiṁ samaye'(§3 등), 'yā tasmiṁ samaye'(§4 등)로 언급하고 있고, 예와빠나까로 "그 밖에 그때에(ye vā pana tasmiṁ samaye)"(§1, §57 등)를 덧붙이고 있으며, 결론을 지을 때도 "이것이 그때에 있는 X이다(ayaṁ tasmiṁ samaye X hoti)."(§2 등)로, 마음이 일어나는 그 현장에서 이러한 여러 법들이 함께 일어남을 강조해서 설명하면서 89가지 혹은 212,021가지 마음 각각에 대한 마음 · 마음부수(심 · 심소)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이런 어법은 논장의 칠론 가운데 두 번째인 『위방가』 에서도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지금 · 여기 마음이 일어나는 시점, 그 현장성을 통해서 법들을 드러내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비담마, 특히 아비담마 칠론(논장의 칠론)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인 『담마상가니』 와『위방가』의 세계이다. 현장성을 벗어나면 그것은 곧 관념(paññatti)이 되고 만다.

 

(4) 아비담마는 방법(naya)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주석서는 아비담마를 나야(naya), 즉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석서는 부처님께서 신들에게 가르치신 아비담마를 사리뿟따 존자에게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을 '방법을 [말씀해]주셨다(nayaṁdeti).'(DhsA.16 §3)로 표현하고 있다. 『청정도론』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 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다.'는 것은 그 방법을 기억하여(anusāra) 가르침의 길(vācanā-magga)을 확정 지었다는 뜻이다."(Pm.ii.24)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석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역자는 이것을 마띠까의 순서와 칠론의 순서와 『담마상가니』에서 법을 설하는 순서와 89가지 마음을 설하는 순서 등을 확정해주신 것으로 이해한다. 왜 법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단지 22가지 세 개 조와 100가지 두 개 조로만 확정을 지으셨으며, 왜 마띠까의 순서를 이렇게 정했으며, 왜 122가지 마띠까 가운데 선 · 불선 · 무기로 분류하는 것을 제일 처음에 두었으며, 왜 유익한 마음들을 오직 8가지로만 정했으며, 왜 불선법은 12가지로만 정했으며, 왜 색계의 마음은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정했으며, 왜 출세간 마음들을 이렇게 세분하였는가?… 하는 의문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그렇게 정하고 체계화해서 전승해주셨기 때문이라는 말로밖에는 해소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역자는 부처님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방법을 [말씀해]주신 것'(DhsA.16)이라고 주석서는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 논장의 칠론은 법의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논하지 않는다

주석서 문헌들은 한결같이 법은 고유성질(sabhāva)27)을 가진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담마상가니』 를 비롯한 논장의 칠론에는 법에 대한 이러한 정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VRI CD-ROM으로 sabhāva28)라는 키워드를 검색을 해보면 놀랍게도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빠알리 논장의 칠론 그 어디에도 sabhāva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경장의 4부 니까야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쿳다까 니까야』 의 「붓다왐사』나 『자따까』의 한두 군데 정도만 나타나는데 이것도 법의 고유성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주석서 문헌에서 고유성질을 가진 것을 법이라 한다고 정의하는(DhsA.39 등) 불교의 전문 용어인 sabhāva는 경장과 논장의 성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논장의 칠론 가운데 특히 『담마상가니』는 법의 연기 혹은 연이생, 즉 조건발생을 강조하고 있으며 『빳타나』 는 제법(諸法)의 연기적 관계를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법들이 가지는 고유한 성질을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모두 주석서 문헌에서 비롯된다. 논장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 가 그러하고 경장 4부 니까야의 종합적인 주석서인 『청정도론』 이 그러하다. 정작 아비담마를 표방하는 칠론은 고유성질을 밝히고 정의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 (1)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과 (2) 항목의 부문과 (3) 공함의 부문에서 여러 가지 법들을 정의할 때에도 항상 이 용어에 대한 동의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법들을 설명하지, 주석서처럼 특징과 역할과 일어남과 가까운 원인으로 법들의 고유성질을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성냄 없음(adosa)'은 §33 등에서 "그때에 있는 성냄 없음, 성내지 않음, 성내지 않는 상태, 악의 없음, 화내지 않음, 성냄 없음이라는 유익함의 뿌리"로 정의가 되는데 비하여 주석서 문헌에서는 "성냄 없음'은 잔악함이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혹은 수순함이 특징이다.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성가심을 버리는 것이 그 역할이다. 혹은 열을 버리는 것이 그 역할이다. 마치 전단향처럼. 차가움으로 나타난다. 마치 보름달처럼."(DhsA.127; Vis.XIV. 143 참조)으로 그 고유성질을 밝히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담마상가니』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4위 82법의 고유성질을 논하거나 밝히는 논서가 아니다.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빠알리 논장의 칠론 그 어디에도 고유성질(sabhāva)이라는 전문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유성질을 밝히는 것은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칠론의 관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82법의 고유성질을 밝히는 것은 주석서들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경장의 종합적 주석서인 『청정도론』과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이면서 칠론에 대한 종합적 주석서라 할 수 있는 『앗타살리니』도 82법의 고유성질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담마상가니』를 비롯한 칠론의 관심은 고유성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유념할 필요가 있어서 이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6) 「담마상가니』 는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다

『담마상가니』의 관심이 법들의 고유성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담마상가니』의 주된 관심은 무엇인가? 『담마상가니』 는 마띠까라는 부처님이 제정하신 논의의 주제를 통해서 제법실상(諸法實相, dhammānaṁ bhūta-lakkhaṇa)29)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담마상가니』는 바른 정진의 전제가 되는 선법· 불선법의 판단을 제일 먼저 드러내어 첫 번째 마띠까(논의의 주제)에서 법들을 선 · 불선 · 무기로 분류한 뒤(ma3-1) 이를 제1편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담마상가니』 제1편은 색계의 유익한 마음들을 실참수행의 중요한 키워드인 Ⅰ. 여덟 가지 까시나(§§160~203)와 Ⅱ.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204~247)와 Ⅲ. 세 가지 해탈(§§248~250)과 IV.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禪(§§251~262)과 V. 열 가지 부정(不淨)의 禪(§§263~264)의 다섯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아가 출세간의 마음들도 출세간의 도를 체득하는 방법을 토대로 20가지로 분류한 뒤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출세간禪을 닦음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277~361).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러한 색계의 유익한 경지들과 출세간의 도의 마음들을 체득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담마상가니』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나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는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은 『담마상가니』의 주된 관심이 아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존재일반을 해체해서 볼 때 여실히 드러나는 법들의 실상을 방편을 빌리지 않고 설명해 내는 것이 『담마상가니』의 주된 관심이라고 역자는 말하고 싶다.

이처럼 『담마상가니』 는 어떻게 법을 구현하고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것인가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고 중생의 문제이고 존재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지 법의 문제는 아니며 법을 갈무리하는 『담마상가니』 의 주된 관심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담마상가니』의 관심은 오직 법(담마) 혹은 구경법(究竟法, 빠라맛타담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나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는 분들은 경장을 봐야 한다. 다른 관점과 다른 관심을 가지고 아비담마를 비난하는 불선업을 짓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그러므로 『담마상가니』는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에게는 자칫 혼란을 줄 수 있고 이것을 보고 조금 이해가 되고 감동을 받으면 자칫 자신이 깨달은 양 착각을 하는 불행한 경우도 생긴다고 여겨진다. 이런 착각을 피할 수 있는 자와 아비담마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법의 마니아들, 저 법의 전문가들이 봐야 감명을 받거나 감동을 할 수 있는 체계가 아비담마요 『담마상가니』 일 것이다.

 

아비담마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법을 사유하고 법에 의미 부여를 하는 법의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다. 법을 대면하는 것[對法]이 바로 아비담마이기 때문이다. 본 역자 서문 §8-(3)에서 언급했듯이 아비담마는 신들에게 설해진 가르침이요 유학들과 선한 범부들30)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강조하고 있다.(DhsA.31~32) 그러므로 아비담마는 적어도 신들과 같은 심성을 가진 자들이 이해하고 기뻐할 수 있는 체계요, 선한 범부와 유학들이라는 전문가들이 공부하는 것이다. 아비담마의 전문가들은 개념적 존재들을 즐거워하지 않고 개념적인 세상을 즐기지 않는다.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용이 있어야 전문가이다. 특히 엄밀하고 정교한 아비담마 체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바르게 전승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엄정한 사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아비담마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는 대중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아비담마가 대중을 위한 가르침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비담마일 것이라고 역자는 생각한다.

 

아비담마는 특히 출가자가 할 일이요 출가자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출가자는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출가자가 법(法, dhamma)을 대면해서[對, abhi]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대법(對法)으로 번역되는 아비담마에 능통했을 때이다. 세상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세상을 구휼한다는 명분으로 출가자가 정치나 권력이나 이재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의술이나 관상이나 사주나 점성학에 프로가 되면 곤란하다. 불교의 출가자는 아비담마를 통해서 법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법의 전문가인 출가자들이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해체한 법이고, 이러한 뛰어난 법[無比法]을 대면하는 것이 바로 대법(對法)이요, 아비담마요, 『담마상가니』이다. 역자는 아비담마, 특히 『담마상가니』 를 이렇게 받아들이려 한다.

 

 

13. 맺는말

 역자는 고전음악에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감히 「담마상가니』를 고전음악에 비유해 보면서 『담마상가니』 역자 서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담마상가니』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 합창 교향곡에 비유해보고 싶다. 89가지 마음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구성된 합창단에, 이들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52가지 심소법들은 52종류의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관현악단에 비유해보고 싶다. 교향곡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구성은 보통 제1악장(소나타 형식의 빠른 악장. 이 앞에 장중한 서곡이 오는 경우도 많다), 제2악장(리트 형식의 완만한 악장), 제3악장(미뉴엣 또는 스케르초), 제4악장(론도 또는 소나타 형식의 매우 빠른 악장)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네이버 두산백과에서 인용) 이 4악장은 『담마상가니』 제1편의 유익한 마음의 일어남, 해로운 마음의 일어남,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의 일어남,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네 가지 품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담마상가니』 제2편 물질 편은 발레에 비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질[色, rūpa]은 정신[名, nāma]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을 음악이 아닌 발레에 비유해 본 것이다. 발레는 '대사 대신에 춤에 의하여 진행되는 무용극 예술'로 설명되는데 『담마상가니』 제2편 물질 편은 27명 혹은 28명의 발레단이 열한 개 조로 구성된 대본(물질의 마띠까)에 따라 펼치는 발레와 비교해보면 물질 편이 드러내 보이는 현장성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담마상가니』 제3편 간결한 설명 편과 제4편 주석 편은 오페라와 비교해보고 싶다. 오페라는 대사에 음악을 붙인 것이 특징이라 한다. 오페라의 음악은 독창과 합창, 관현악단으로 구성되고 당연히 오페라에는 발레단도 포함된다. 여기서 음악은 정신[名, nāma], 즉 심 · 심소법에, 발레는 물질[色, rūpa]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독창이나 합창단은 89가지 마음에, 관현악단은 52가지 심소법에, 발레단은 28가지 물질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막, 장, 경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오페라의 대본은 세 개 조와 두 개조와 여러 모둠들로 구성되어 있는 『담마상가니』 마띠까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담마상가니』 제3편 간결한 설명 편과 제4편 주석 편을 이러한 대본에 따라 합창단과 관현악단과 발레단이 펼치는 오페라에 비유해보면 『담마상가니』 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때 리듬이 무엇이고 화성이 무엇이고 가락이 무엇이고 발성은 어떻게 하고 하는 음악의 기본이론은 음악 이론가들의 관심이지 합창이나 오페라를 공연하는 현장의 관심은 아니다.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의 음색이나 트럼펫과 같은 관악기의 음색이나 드럼과 같은 타악기의 음색 등을 밝히는 것은 연주 이론가들의 관심이지 교향곡을 공연하는 현장의 관심은 아니다. 춤 동작에 관한 이론도 발레 이론가들의 관심이지 발레를 공연하는 현장의 관심은 아니다.

그와 같이 마음이 무엇이고 52가지 심소법들의 고유성질이 무엇이고 28가지 물질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담마상가니』의 관심이 아니다. 이런 것은 주석서들의 관심이고 『아비담맛타상가하』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관심이라 해야 한다. 『담마상가니』의 관심은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 출세간의 경지(bhūmi)와 유익한 것, 해로운 것, 과보로 나타난 것, 작용만 하는 것이라는 마음의 종류(jāti)로 이루어진 삶의 현장(samaya)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들에 대한 종합적인 관심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담마상가니』 는 교향곡 공연(제1편)이요, 발레 공연(제2편)이요, 오페라 공연(제3편 및 제4편)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고전예술의 공연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합창과 연주와 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담마상가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나 『앗타살리니』나 『청정도론』등을 통해서 아비담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무반주로 부르는 독창과 독주도 멋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담마상가니』가 전하는 깨달음의 경지, 저 조화로운 법의 경지는 그 스케일이 벌써 다르다. 『담마상가니』 의 수백, 수천, 수만의 연주자들과 합창단과 발레단이 내는 화음과 노래와 무용은 그 격이 다르지 않은가. 적어도 이 정도로는 묘사를 해야 그게 법이고 깨달음이 아닐까. 혹자는 화엄의 도리를 말할 것이다. 화엄의 언어는 한마디로 법의 언어가 아니라 개념적 언어요 중생의 언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화엄은 법의 언어를 통한 깨달음의 묘사가 아니라 중생의 언어로 깨달음을 중생에게 호소하고 중생에게 어필하는 것이라고 역자는 말하고 싶다.

 

역자는 역자 서문을 적으면서 너무 이론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담마상가니』를 내 삶과 적용시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애를 써봤다. 부디 『담마상가니』를 읽으시는 분들이 법의 교향곡과 법의 발레와 법의 오페라의 합창과 연주와 무용의 비유를 통해 비견할 데 없는 법의 즐거움[無比法樂]을 누리시기를 기원하면서 역자 서문을 접는다. 

  



1. 들어가는 말

법(dhamma)의 갈무리(saṅgaṇī)로 옮길 수 있는『담마상가니』는 빠알리 삼장의 논장에 속하는 일곱 가지 논서[七論, satta pakaraṇāni] 가운데 첫 번째 문헌이다.

『담마상가니』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①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분류하여『담마상가니』의 논의의 주제를 총괄적으로 밝히고 있는 마띠까(mātikā), ② 정신[名, nāma]을 구성하는 법들을 다양한 마음을 중심으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 ③ 물질을 한 개 조부터 열한 개 조까지의 279개의 마띠까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는 제2편 물질 편, ④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구성된『담마상가니』마띠까 164개 전체를 간략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제3편 간결한 설명 편, ⑤ 164개 마띠까 가운데 경장의 마띠까 42개를 제외한 122개 논장의 마띠까의 의미를 주석의 방법으로 밝히고 있는 제4편 주석 편이다. 

마띠까의 측면에서 보자면『담마상가니』제1편과 제2편은 164개 마띠까 가운데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라는『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에 대한 설명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하여 출간하는 우리말『담마상가니』제1권은 마띠까와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담고 있고 제2권은 제2편 물질 편과 제3편 간결한 설명 편과 제4편 주석 편의 세 편과『담마상가니 주석서』서문을 담고 있다. 반복되는 부분(peyyāla)을 생략하는 방법으로 편집되어 있는 현존하는 VRI본이나 PTS본『담마상가니』는 원문만으로는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역자가 우리말로 옮기면서 특히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서 주석서의 설명을 주해로 많이 인용하다 보니 분량이 늘어나서 이렇게 두 권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다. 


2.『담마상가니』제1권의 구성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하여 출간하는 우리말『담마상가니』제1권에는『담마상가니』의 논의의 주제를 총괄적으로 밝히고 있는 마띠까(mātikā)와, 정신[名, nāma]을 구성하는 법들을 다양한 마음을 중심으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Cittuppāda-kaṇḍa)을 담고 있다. 먼저 마띠까와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간략하게 살펴본 뒤에 이들에 대한 해제를 붙이고자 한다.

마띠까는 어머니[母]를 뜻하는 mātā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논의의 주제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본모(本母), 행모(行母), 모경(母經) 등으로 뜻번역이 되었다.『담마상가니』마띠까는 모두 164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164개는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구성되어 있다. 세 개 조 마띠까는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부터 ‘볼 수도 있고 부딪힘도 있는 법들, 볼 수는 없지만 부딪힘은 있는 법들, 볼 수도 없고 부딪힘도 없는 법들’(ma3-22)까지 22개의 마띠까를 담고 있고, 두 개 조 마띠까는 ‘원인인 법들, 원인이 아닌 법들’(ma2-1)부터 ‘멸진에 대한 지혜, 일어나지 않음에 대한 지혜’(ma2-142)까지 142개의 마띠까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담마상가니』의 마띠까는 모두 164개가 된다. 이 가운데 앞의 122개는 아비담마에 적용되는 마띠까이기 때문에 아비담마의 마띠까(abhidhamma-mātikā)라 부르고 뒤의 42개는 경장의 가르침에 토대한 마띠까이기 때문에 경장의 마띠까(suttanta-mātikā)라 부른다.(DhsAAnuṬ.55)


『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담마상가니 주석서』에서 잘 요약하고 있다. 주석서는『담마상가니』제1편을 이렇게 요약한다.

“여기서『담마상가니』논서(dhammasaṅgaṇī-pakaraṇa)는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① 마음의 분류(citta-vibhatti), ② 물질의 분류(rūpa- vibhatti), ③ 간결한 설명의 더미(nikkhepa-rāsi = 간결한 설명 편), ④ 의미를 드러냄(atthuddhāra = 주석 편)이다. 

여기서 [제1편] ‘마음의 분류’는 89가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욕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8가지, 해로운 것 12가지,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것 16가지,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것 7가지, 작용만 하는 것 11가지, 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5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5가지, 작용만 하는 것 5가지, 무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 작용만 하는 것 4가지, 출세간의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로 모두 89가지 마음으로 분류가 된다. 

‘마음의 일어남 편(Cittuppāda-kaṇḍa)’이라는 것도 이것의 이름이다. 이것은 가르침의 순서에 의하면 여섯 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DhsA.6 §11)

이처럼 주석서는 제1편을 마음의 분류(citta-vibhatti)라고 명명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마음의 일어남 편(Cittuppāda-kaṇḍa)’으로 부르고 있다. 역자도 후자를 제1편의 제목으로 택했다. PTS에서 리스 데이비즈 여사(Caroline Augusta Foley Rhys Davids, 1857~1942)가 번역하여 출간한『담마상가니』영역본(A Buddhist Manual of Psychological Ethics)과 뻬 마웅 틴(Pe Maung Tin, 1888~1973)이 번역한『담마상가니 주석서』영역본(The Ex- positor)에도 모두 후자를 제1편의 제목으로 택하고 있다.

이제 본서『담마상가니』제1권에 담고 있는『담마상가니』마띠까와『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3.『담마상가니』마띠까

⑴ 마띠까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말년에 이를수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의 양과 부처님이 제정하신 승단의 규범은 당연히 많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방대해진 부처님의 말씀과 승단의 규범을 어떻게 모아서 정리하여 호지하고, 특히 다음 세대로 전승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부처님 직계 제자들의 가장 큰 관심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심은 특히 부처님의 세랍(世臘)이 환갑을 넘기신 후부터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요 지혜제일인 사리뿟따 존자가 이 중차대한 작업을 진두지휘하였을 것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디가 니까야』제3권「합송경」(D33)과「십상경」(D34)은 사리뿟따 존자가 가르침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 부처님 가르침의 중요한 주제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별로 나누어서 각각 230개와 550개의 주제로 모아서 설한 것인데 이런 전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양한 방법으로 결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합송경」(D33)은 자이나교의 교조인 니간타 나따뿟따가 임종하자 니간타들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고 비구대중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수별로 정리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크다 하겠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법의 대장군(dhamma-senāpati-sāriputtatthera, DA.i.15; MA.iii.10; DhsA.9 등)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몇 달 전에 먼저 입적을 하였지만 이런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지 두 달 뒤부터 칠 개월에 걸쳐서 깟사빠 존자를 상수로 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거행한 일차합송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담마와 아비담마)과 율로 결집이 되었다. 문자를 중시하지 않던 인도에서는 합송을 통해서 음의 고저장단이 있는 운율을 갖춘 노래의 형식으로 삼장을 확정 지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하고 전승하는 방법은 길이에 따른 결집과 주제별 결집과 숫자, 즉 법수별 결집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4부 니까야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길이에 초점을 맞춘 결집이다. 그래서『디가 니까야』는 길이가 긴(디가) 가르침 34개를 모은 것이고『맛지마 니까야』는 중간 길이(맛지마)가 되는 경들 152개를 모은 것이다. 세 번째인『상윳따 니까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56개의 주제별(상윳따)로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 2,900개 정도를 모은 것이다. 네 번째인『앙굿따라 니까야』는 가르침의 숫자, 즉 법수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부터 열하나까지, 숫자가 증가하는 순서로(앙굿따라)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 2,200개 정도를 결집한 것이다. 

그리고 다양하고 많은 주제와 분야를 가진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이 제정하신 승가의 규범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이해하고 설명하고 전승하기 위해서 논장과 율장에서 채택된 방법을 마띠까(mātikā)라 부른다. 마띠까는 논의의 주제나 논의의 목록을 뜻한다.


‘마띠까(mātikā, Sk. mātṛkā)’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matrix(자궁, 모체)란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인데 어머니[母]를 뜻하는 mātā(Sk. mātṛ)에 -ikā 어미를 붙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문자적인 뜻 그대로 ‘어머니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여성명사이다.『모하윗체다니』(Mohavicchedanī)는 마띠까를 이렇게 설명한다.(Moh.3)

“무슨 뜻에서 마띠까라 하는가? 어머니가 가진 가능성이라는 뜻(mātu- samaṭṭha)에서 그러하다. 어머니처럼 마띠까는 연꽃의 핵심과도 같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가 여러 아들들을 낳고 보호하고 양육하듯이 이 마띠까도 여러 법들(dhammā)과 의미들을 낳고 그 법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띠까라 부른다. 마띠까를 의지하여『담마상가니』등의 일곱 가지 논서[七論]는 법들을 끝이 없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마띠까를 의지하여 그 의미를 낳고 보호하고 양육한다.”


마띠까는 ‘논의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면서 문자적으로는 ‘어머니에 속하는 것’이란 뜻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의미를 합성하여 ‘논모(論母)’로 옮기기도 한다. 북방불교에서도 마띠까는 mātṛkā(마뜨리까)로 불교 산스끄리뜨 문헌에 나타나고 있지만 베다 문헌이나 육파철학 문헌 같은 힌두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중국에서도 마띠까의 산스끄리뜨어인 마뜨리까(mātṛkā)는 摩咥里迦, 摩多羅迦, 摩夷, 摩得勒伽, 摩拏理迦, 摩憺履迦, 摩憺理迦, 摩憺里迦(마질리가, 마다라가, 마이, 마득륵가, 마나리가, 마담리가, 마담리가, 마담리가) 등으로 음역되기도 하였고 本母, 母經, 行母, 論藏(본모, 모경, 행모, 논장) 등으로 뜻 번역이 되기도 하였다.

마띠까는 특정한 조목이나 가르침의 주제를 지칭하는 율장과 논장의 전문 용어이고 경장에서는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장에서는 상윳따[相應, 주제별 모음]라는 이름과 앙굿따라[增支, 오름차순의 숫자별 모음]라는 이름으로 주제별 결집과 법수별 결집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율장에서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을 위나야마띠까(율장의 논모, vinaya-mātikā)라 하고 아비담마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거나 숫자별로 분류한 논의의 주제를 아비담마마띠까(논장의 논모, abhidhamma-mātikā)라 한다.


⑵ 마띠까의 용례

①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mātikādhara)

그러면 마띠까라는 용어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경장의 니까야에서는 마띠까가 물길[水路]을 뜻하는 외에 전문 용어로 단독으로 쓰인 경우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니까야에서 마띠까는 니까야의 9개 경에서 ‘마띠까다라(mātikādhara)’, 즉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로만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이 아홉 개 경에서 예외 없이 모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阿含, āgama]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비구들”이란 문맥으로만 나타난다. 주석서는 이 용어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이 배운 자들(bahussutā)’이란 하나의 니까야(nikāya) 등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운 자들이다.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한 자들(āgatāgamā)’이라고 하셨다. 하나의 니까야가 하나의 전승된 가르침이다. 둘의 … 셋의 … 넷의 … 다섯의 니까야가 다섯의 전승된 가르침이다. 이러한 전승된 가르침들 가운데 단 하나의 전승된 가르침일지라도 전승받고 능통하고 전개하는 자들을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한 자들’이라 한다.

‘법을 호지하는 자들(dhammadharā)’이란 경장을 호지하는 자들(suttanta -piṭaka-dharā)이다. 

‘율을 호지하는 자들(vinayadharā)’이란 율장을 호지하는 자들(vinaya- piṭaka-dharā)이다.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mātikādharā)’이란 두 가지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dvemātikādharā)이다.”(AA.ii.189)

이 주석서에 대한 복주서에서는 이 가운데 ‘두 가지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두 가지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이란 비구와 비구니 마띠까(bhikkhu- bhikkhuni-mātikā)의 두 가지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율장의 마띠까와 논장의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vinayābhidhamma -mātikā-dharā)이 적절하다.”(AAṬ.ii.83) 

즉 율장에서 두 가지 마띠까는 비구 마띠까와 비구니 마띠까를 뜻하지만(Vin-Kaṅ-nṭ.126) 여기서는 문맥상 율장의 마띠까와 논장의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 복주서의 견해이다.

여기서 호지한다(dhāreti)는 것은 가슴에 놓는 것(hadaye ṭhapenti ― DAṬ.ii.194), 즉 외우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이다. PED에서도 호지하다(dhāreti)를 ‘to know by heart, to bear in mind’로 설명하고 있다. 초기교단에서는 문자로 된 경전이 없었고 모두 외워서 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복주서에서도 “이러한 법과 율의 마띠까를 호지하기 때문에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이라 한다.”(AAṬ.iii.16; 285)라고 설명하고 있고『청정도론 복주서』(Pm.i.141)도 이『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와 똑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복주서(AAṬ.ii.83)와 여기서 인용한 복주서(AAṬ.iii.16; 285)의 이 두 가지 설명을 종합하면 법의 마띠까(dhamma- mātikā)는 논장의 마띠까(abhidhamma-mātikā)와 동의어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주석서 문헌은 두 가지 마띠까를 문맥에 따라서 비구 마띠까와 비구니 마띠까의 두 가지로 설명하기도 하고 율장의 마띠까와 논장의 마띠까(vinaya-abhidhamma-mātikādharā ― AAṬ.ii.83)로 이해하기도 한다.『담마상가니 아누띠까』에서는 본서에 나타나는 164개 마띠까들 가운데 아비담마에 관계된 앞의 122개 마띠까를 논장의 마띠까(abhidhamma- mātikā, 혹은 아비담마의 마띠까)라 부르고 뒤의 42개는 경장에 관계된 마띠까이기 때문에 경장의 마띠까(suttantamātikā, 혹은 경의 마띠까)라 부른다. (DhsAAnuṬ.55)


② 마띠까는 물길[水路]이다

한편 마띠까가 니까야에서 보통명사로 쓰이면 물을 인도하는 것, 즉 ‘물길[水路]’을 뜻한다.(A8:34)『앙굿따라 니까야』「들판 경」(A8:34)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들판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돌덩이가 없고, 염분이 없고, 너무 깊지 않아서 쟁기질을 할 수 있고, [물이] 제대로 들어오고, [나중에 물이] 빠질 배수로가 있고, [크고 작은] 물길이 있고, 둑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갖춘 들판에 뿌린 씨앗은 많은 결실이 있고, 많은 영양분이 있고, 잘 자란다.”(A8:34)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성스러운 팔정도에 비유하신다. 여기서 물길[水路]로 옮긴 것이 mātikā이다. 들판에는 물길이 있어야 이것을 따라 물이 잘 흘러들고 잘 배수가 되어서 농사가 풍작이 되어 많은 결실을 가져온다. 이런 뜻으로 사용되던 단어를 부처님께서는 논의의 주제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채용하신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의 말씀에 적용시키면 율장은 율장의 마띠까를 물길로 하여 설명과 논의가 전개되고 있고, 논장도『담마상가니』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이 논장의 마띠까 등을 물길로 삼아서 도도하게 흘러간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마띠까는 율장과 논장에 대한 논의의 주제가 되고 설명을 전개하는 말의 길, 즉 언로(言路) 혹은 논의의 길, 즉 논로(論路)가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띠까를 논모(論母)로 옮기면 논모는 논장의 마띠까만을 뜻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역자는 ‘논모’로 옮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마띠까’로 음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 마띠까에 포함되어 있는 개별적인 주제는 ‘논의의 주제’로 부르고 있다. 예를 들면『담마상가니』두 개 조 마띠까의 첫 번째 마띠까는 ‘원인인 법들’(ma2-1-a)과 ‘원인이 아닌 법들’(ma2-1-b)인데 이 ‘원인인 법들’이나 ‘원인이 아닌 법들’을 각각 논의의 주제라 부르고 있다.


논장의 칠론 가운데 여섯 번째인『야마까』(Yamaka)를 제외한 여섯 개의 논장에는 모두 마띠까가 나타나는데 특히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는 본서의 맨 처음에 정리한 164개의 마띠까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칠론의 마지막인『빳타나』[發趣論, Paṭṭhāna]는 아비담마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논서로 여겨지기 때문에『마하빠까라나』(Mahāpakaraṇa, 큰 논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DhsA.9) 총 5권의 2,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빳타나』는『담마상가니』에 나타나는 이 세 개 조(tika)로 된 22개의 목록과 두 개 조(duka)로 된 100개의 마띠까 전체에 대해서 24가지 조건(paccaya)을 적용시키고 있는 난해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경장의 다섯 번째 니까야인『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책의 첫머리에 “① 듣는 것에 관심을 기울임에 대한 통찰지가 들음으로 이루어진 지혜이다(sotāvadhāne paññā sutamaye ñāṇaṁ).”부터  “덮이지 않은 지혜(anāvaraṇañāṇaṁ)”(Ps.i.1~3)까지의 73개의 마띠까를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전형적인 아비담마의 방법으로 법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빠띠삼비다막가』가 논장이 아니라 경장에 포함된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편성이라 생각된다. 이미 논장은 칠론으로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경장의『쿳다까 니까야』의 마지막으로 포함시킨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백도수 교수(2009)의 지적처럼 초기불교 불교학자들이 진지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서에서는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을 “두 가지 마띠까를 호지하는 자들”(AA.ii.189)로 설명하고 이 두 가지 마띠까를 비구 마띠까와 비구니 마띠까로 정의한다.(VinAPṬ.126) 그리고 “포살건도(布薩犍度, uposathakkhan -dhaka)를 율장의 마띠까라 한다.”(VinAṬ.i.109) 그러므로 비구 계목과 비구니 계목을 율장의 마띠까로 봐야 할 것이다.


③ 논의의 주제는 모두 마띠까라 부른다

그리고 율장과 논장, 특히 논장에서는 어떤 주제든 논의의 주제가 되는 것은 모두 마띠까에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위방가』제16장 지혜에 대한 분석(ñāṇa-vibhaṅga)과 제17장 작은 토대에 대한 분석(khuddakavatthu -vibhaṅga)에서는 한 개 조의 마띠까부터 열 개 조의 마띠까까지를 설정하고 이 마띠까라는 이름 아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용어들을 마띠까로 정리하고 있다.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의 주제가 되는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의 일곱 가지 주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초기불교의 주제나 용어가 아비담마에서는 모두 마띠까, 즉 논의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실제로 논장의『위방가』등에서는 이렇게 마띠까로 제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마띠까는 주석서 문헌들에서도 어떤 것이든 논의의 주제가 되면 모두 마띠까라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 어떤 경우에 과보로 나타나는지를 밝히기 위해서(DhsAMṬ), 특히 삶의 과정과 인식과정에서 전개되고 있는 과보의 마음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앗타살리니』는 ‘과보의 도출에 대한 설명(vipākuddhāra-kathā)’이라는 소제목으로 먼저 이 논의를 위한 논의의 주제, 즉 마띠까를 밝힌 뒤에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욕계의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을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DhsA.267~288)

다른 예를 들면『앗타살리니』는「꿀 덩어리 경」(M18)에서 세존께서 “비구여, 어떤 것을 원인으로 사람에게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가 일어나는데, 그것에 대해 즐거움과 환영과 집착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갈망의 잠재성향들의 끝이요 …”(M18 §8)라고 말씀하신 것을 ‘마띠까를 확립함(mātikā-ṭhapana)’이라고 부르고 있다.(DhsA.5) 

그리고 문(門, dvāra)과 업(kamma)에 대한 설명에서 ① 세 가지 업 ② 세 가지 업의 문 ③ 다섯 가지 알음알이 ④ 다섯 가지 알음알이의 문 ⑤ 여섯 가지 감각접촉 ⑥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문 ⑦ 여덟 가지 단속하지 못함 ⑧ 여덟 가지 단속하지 못함의 문 ⑨ 여덟 가지 단속 ⑩ 여덟 가지 단속의 문 ⑪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 ⑫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을 문의 설명을 위한 마띠까의 확립(mātikāṭhapana)으로 든 뒤에 이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DhsA.82~95)

『청정도론』에서도 “① 깔라빠(kalāpa)로써 ② 쌍으로써 ③ 순간으로써 ④ 차제로써 ⑤ 사견을 버림으로써 ⑥ 자만을 제거함으로써 ⑦ 집착을 종식시킴으로써”를 정신의 칠 개 조를 통한 명상(arūpasattaka-sammasana)의 마띠까로 칭하기도 하며(Vis.XX.76) “① 안을 천착한 뒤 안으로부터 출현한다. ② 안을 천착한 뒤 밖으로부터 출현한다. ③ 밖을 천착한 뒤 밖으로부터 출현한다.”는 등을 천착과 출현(abhinivesa-vuṭṭhāna)의 설명을 위한 마띠까(mātika)라 부르기도 한다.(Vis.XXI.84)

백도수 교수는「팔리 논장의 논모(Mātikā)에 대한 연구」(2009)를 통해서 마띠까의 개념, 명칭과 종류, 법, 형식, 수의 구분 방법 등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⑶『담마상가니』마띠까의 구성

①『담마상가니』마띠까의 개관

『담마상가니』에는 마띠까가 두 곳에 나타난다. 하나는『담마상가니』전체의 논의의 주제가 되는 마띠까로『담마상가니』첫머리에 열거하여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가 있어 모두 164개의 마띠까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2편 물질 편 §§584~593에 정리되어 있는 물질의 마띠까로 한 개 조의 마띠까부터 열한 개 조의 마띠까까지 모두 279개의 마띠까가 그것이다. 역자는 전자를『담마상가니』마띠까로 칭하고 후자는『담마상가니』물질의 마띠까 혹은 줄여서 물질의 마띠까라고 부른다. 이 물질의 마띠까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담마상가니』마띠까는 세 개 조 마띠까(ma3)와 두 개 조 마띠까(ma2)로 구성되어 있다. 세 개 조 마띠까는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부터 ‘볼 수도 있고 부딪힘도 있는 법들, 볼 수는 없지만 부딪힘은 있는 법들, 볼 수도 없고 부딪힘도 없는 법들’(ma3-22)까지 22개의 마띠까를 담고 있고 두 개 조 마띠까는 ‘원인인 법들, 원인이 아닌 법들’(ma2-1)부터 ‘멸진에 대한 지혜, 일어나지 않음에 대한 지혜’(ma2-142)까지의 142개의 마띠까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담마상가니』의 마띠까는 모두 164개가 된다. 이 가운데 앞의 122개는 여기 아비담마, 즉 논장에 적용되는 마띠까이기 때문에 아비담마의 마띠까(abhidhamma- mātikā)라 부르고 뒤의 42개는 경장에 관계된 마띠까이기 때문에 경장의 마띠까(suttanta-mātikā)라 부른다.(DhsAAnuṬ.55) 


주석서는 이 42가지 경장의 두 개 조는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장로로부터 기원한 것이고 그가 확정한 것이며 그가 설한 것이다.”(DhsA.9)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42가지 경장의 마띠까 가운데 정신과 물질의 두 개 조(ma2-109, §1316)부터 본 마띠까의 마지막인 멸진에 대한 지혜의 두 개 조(ma2-142, §1383)까지의 33가지 두 개 조는 사리뿟따 존자가 설한『디가 니까야』제3권「합송경」(D33) §1.9의 ⑴부터 (33)까지의 두 가지로 구성된 법들(duka)과 거의 같다.

본서『담마상가니』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부터 제4편 주석 편까지 네 개의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전체는 이 164개 마띠까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1~582)과 제2편 물질 편(§§583~984)은 세 개 조 마띠까의 제일 첫 번째인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에 대한 설명이다. 제3편 간결한 설명 편(§§985~1383)은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로 구성된 이들 164개의 마띠까 전체에 대한 간결한 설명을 담고 있다. 제4편 주석 편(§§1384~1616)은 이들 164개의 마띠까 가운데 경장의 마띠까 42개를 제외한 아비담마의 마띠까 122개에 대한 뜻을 밝히는 것[義要]이다. 

그러므로 마띠까의 입장에서 보면『담마상가니』는『담마상가니』마띠까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마띠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제1편과 제2편이고 간결한 설명이 제3편이고 주석의 형태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제4편이다. 이처럼 논장에서 마띠까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마띠까 없는 논장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②『담마상가니』마띠까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그러면『담마상가니』에 대한 상좌부의 전통적인 견해를 담고 있는『담마상가니 주석서』는 아비담마의 마띠까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유익함의 세 개 조(ma3-1) 등의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원인인 법들과 원인이 아닌 법들(ma2-1)부터 다툼인 법들과 다툼이 없는 법들(ma2-100)까지의 두 개 조 마띠까 100개가 있고 또 다른 것들로는 명지의 일부가 되는 법들, 무명의 일부가 되는 법들(ma2-101)부터 멸진에 대한 지혜와 일어나지 않음에 대한 지혜(ma2-142)까지의 경장의 두 개 조 마띠까 42개가 있다. 이 가운데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마띠까 100개는 일체지를 갖추신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으로 직접 설하신 것들이요 승자의 말씀이 되고 일곱 가지 논서들의 마띠까가 된다.

그러면 경장의 두 개 조 마띠까 42개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이고 누가 확정한 것이며 누가 설한 것인가?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장로로부터 기원한 것이고 그가 확정한 것이며 그가 설한 것이다. 그러나 사리뿟따 장로는 이것을 확립하면서 자신이 직접 얻은(sāmukkaṁsika) 지혜로 확립한 것이 아니다. 한 개 조로부터 시작해서 이것은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의]「하나의 모음」(A1)과「둘의 모음」(A2)과 [『디가 니까야』제3권의]「합송경」(D33)과「십상경」(D34)으로부터 함께 모아서 아비담마를 논하는 장로들(ābhi- dhammika-ttherā)이 경을 언급할 때 피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정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담마상가니』제3편] 간결한 설명 편 한 곳에서만 포함되어서 분석되었다. [22개의 세 개 조와 다툼의 두 개 조(saraṇa-duka)까지 100개의 두 개 조로 구성된] 아비담마 마띠까는 나머지 편들에서 분석되었다.”(DhsA.9)


이러한『담마상가니』마띠까 164개 가운데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을 22개의 세 개 조 마띠까의 첫 번째뿐만 아니라 논장 칠론의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로 설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담마상가니』본문의 3분의 2가 넘는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과 제2편 물질 편은 이 첫 번째 마띠까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 그리고 법은 다양한 관점에서 분류가 되겠지만 법을 갈무리하는 출발점을 유익함[善]과 해로움[不善]으로 삼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선․불선의 판단이야말로 부처님이 제시하신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바른 노력[正勤]과 바른 정진[正精進]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분석 경」(S45:8) §9,「동쪽으로 흐름 경」(S49:1) §3 등)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 즉 선법과 불선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졸저『초기불교이해』제20장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과 선법․불선법(299쪽 이하)을 참조하기 바란다.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142개의 마띠까를 담고 있는 두 개 조 마띠까의 구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원인인 법들, 원인이 아닌 법들’(ma2-1)로 시작하는 여섯 개의 두 개 조는 구성(gantha)과 뜻(attha)에 있어서 서로서로 연결되어서 버섯이나 항아리처럼 [모아]져서 놓여있기 때문에 ‘원인의 모둠(hetu-gocchaka)’이라 부른다.

② ‘조건을 가진 법들, 조건을 가지지 않은 법들’(ma2-7)로 시작하는 일곱 개의 두 개 조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단지 두 개 조를 공통점으로 하여 뽑아내고 뽑아내어서 따로따로 모둠들의 사이에(gocchakantara) 놓여있고 다른 긴 두 개 조들보다는 짧기 때문에(cūḷakattā) ‘틈새에 있는 짧은 두 개 조(cūḷantara-dukā)’라고 알아야 한다.

③ 그다음에 번뇌의 두 개 조로 시작하는 여섯 개는 [그 주제에] 따라 ‘번뇌의 모둠(āsava-gocchaka)’이다. 

④ 그다음에 족쇄의 두 개 조 등은 [그 주제에] 따라 ‘족쇄의 모둠(saṁyojana-gocchaka)’이다. 

⑤~⑧ 매듭/폭류/속박/장애의 두 개 조로 시작하는 것은 [그 주제에] 따라 ‘매듭/폭류/속박/장애의 모둠(gantha-ogha-yoga-nīvaraṇa-gocchakā)’이다. 

⑨ 집착[固守]의 두 개 조로 시작하는 다섯 개는 [그 주제에] 따라 ‘집착[固守]의 모둠(parāmāsa-gocchaka)’이다. [번뇌의 모둠부터 집착의 모둠까지는] 모두 일곱 개의 모둠이라고 알아야 한다. 

⑩ 그다음에 대상을 가진 법들(ma2-55-a) 등의 열네 가지 두 개 조는 ‘틈새에 있는 긴 두 개 조(mahantara-dukā)’라 한다. 

⑪ 그다음에 취착의 두 개 조로 시작하는 여섯 가지 두 개 조는 ‘취착의 모둠(upādāna-gocchaka)’이라 한다.

⑫ 그다음에 오염원의 두 개 조로 시작하는 여덟 가지 두 개 조는 ‘오염원의 모둠(kilesa-gocchaka)’이라 한다. 

⑬ 그 뒤에 봄[見]으로써 버려야 하는 법들(ma2-83-a)로 시작하는 열여덟 개 두 개 조는 아비담마 마띠까의 마지막에 놓아진 것이라 하여 ‘마지막 두 개 조(piṭṭhi-dukā)’라 한다.

⑭ ‘명지의 일부가 되는 법들, 무명의 일부가 되는 법들’(ma2-101)로 시작하는 42개의 두 개 조는 ‘경장의 두 개 조(suttantika-dukā)’라 한다. 

이와 같이 [세 개 조는 한 개의 범주가 되고 두 개 조는 14개의 범주가 되어] 마띠까는 모두 열다섯 가지 범주들로 구분되어 있다고 알아야 한다.” (DhsA.36~37)

이처럼『앗타살리니』는 142개의 두 개 조 마띠까를 그 주제에 따라 크게 14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③『담마상가니』두 개 조 마띠까에 대한 개관

두 개 조 마띠까의 14가지 범주들 가운데 ③ 번뇌의 모둠 ④ 족쇄의 모둠 ⑤ 매듭의 모둠 ⑥ 폭류의 모둠 ⑦ 속박의 모둠 ⑧ 장애의 모둠 ⑨ 집착[固守]의 모둠 ⑪ 취착의 모둠 ⑫ 오염원의 모둠이라는 9가지 모둠(곳차까, gocchaka)은 불선법들의 모둠이다. 이 9가지 불선법들의 모둠은『아비담맛타상가하』제7장의 첫 번째인 해로운 범주의 내용으로 채택이 되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 §§3~12에는『담마상가니』마띠까에 나타나는 이러한 불선법들의 모둠과 니까야에 나타나는 불선법들에 대한 가르침을 모두 10개의 모음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 10가지 모음은 ① 네 가지 번뇌, ② 네 가지 폭류, ③ 네 가지 속박, ④ 네 가지 매듭, ⑤ 네 가지 취착, ⑥ 다섯 가지 장애, ⑦ 일곱 가지 잠재성향, ⑧ 열 가지 족쇄(경의 방법에 따라), ⑨ 열 가지 족쇄(아비담마의 방법에 따라), ⑩ 열 가지 오염원이다. 이처럼 족쇄를 경의 방법과 아비담마의 방법에 따라 둘로 나누어서 모두 10개의 모둠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리고 각 모둠에 포함된 불선법들의 개수에 따라 이 열 가지를 오름차순으로 배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100개의 아비담마 마띠까 가운데 ② 일곱 개로 구성된 틈새에 있는 짧은 두 개 조와 ⑩ 열네 개로 구성된 틈새에 있는 긴 두 개 조와 ⑬ 열여덟 개로 구성된 마지막 두 개 조의 39개의 두 개 조를 제외한 61개의 두 개 조는 불선법들과 관계가 있다. 물론 ① 원인의 모둠에는 선법에 속하는 불탐․부진․불치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처럼『담마상가니』의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 100개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61개의 두 개 조는 불선법들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것은『담마상가니』제3편과 제4편은 불선법들을 중심으로 법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니까야의 여러 군데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라고 강조하고 있고,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S49:1 등) 이것이 바로 네 가지 바른 노력, 즉 바른 정진의 정형구 가운데 불선법에 해당하는 정형구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에서도 우리가 제거해야 하고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불선법들을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하고 분류해서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④ 두 개 조 마띠까에 담긴 10가지 모둠의 특징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 이 두 개 조 마띠까의 10가지 모둠들 가운데 ① 원인의 모둠 ③ 번뇌의 모둠 ④ 족쇄의 모둠 ⑤ 매듭의 모둠 ⑥ 폭류의 모둠 ⑦ 속박의 모둠 ⑧ 장애의 모둠 ⑪ 취착의 모둠은 각각 여섯 개의 두 개 조 마띠까로 구성되어 있으며 ⑨ 집착[固守]의 모둠은 다섯 개의 마띠까로 ⑫ 오염원의 모둠은 여덟 개의 두 개 조 마띠까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원인 등의 여덟 가지 모둠을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마띠까는 예외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    X인 법들

    X가 아닌 법들

2.    X의 대상인 법들

    X의 대상이 아닌 법들

3.    X와 결합된 법들

    X와 결합되지 않은 법들

4.    X이면서 X의 대상인 법들

    X의 대상이지만 X가 아닌 법들

5.    X이면서 X와 결합된 법들

    X와 결합되었지만 X가 아닌 법들

6.    X와 결합되지 않았지만 X의 대상인 법들

    [X와 결합되지 않았으면서] X의 대상이 아닌 법들


이것을 빠알리어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X dhammā

    no X dhammā

2.    Xniyā dhammā

    aXniyā dhammā

3.    X-sampayuttā dhammā

    X-vipayuttā dhammā

4.    X c’eva dhammā Xniyā ca 

    Xniyā c’eva dhammā no ca X

5.    X c’eva dhammā X-sampayuttā ca

    X-sampayuttā c’eva dhammā no ca X

6.    X-vipayuttā kho pana dhammā Xniyā-pi

    [X-vipayuttā kho pana dhammā] aXniyā-pi


여기서 보듯이 이 여섯 가지 마띠까 가운데 처음의 셋은 1. X인가, 아닌가 2. X의 대상인가, 아닌가 3. X와 결합되었는가, 아닌가 ― 즉 X와 그 대상과 그것과 결합된 것의 셋을 밝히고 있다. 뒤의 셋은 4. X와 대상과의 관계 5. X와 결합된 것과의 관계 6. X와 결합된 것과 대상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원인의 모둠에서 세 가지 유익한 원인인 불탐․부진․불치를 제외하고 모든 모둠에서 X라는 불선법에 대해서 이러한 여섯 가지 관점에서 일체법을 분류하는 것이 두 개 조 마띠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⑨ 집착[固守]의 모둠은 이 가운데 ‘5. X이면서 X와 결합된 법들/ X와 결합되었지만 X가 아닌 법들’이 빠져서 전체가 다섯 개의 마띠까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에 ⑫ 오염원의 모둠에는 ‘오염된 법들, 오염되지 않은 법들’(ma2-77)이 세 번째에 첨가가 되고 ‘오염원이면서 오염된 법들, 오염되었지만 오염원이 아닌 법들’(ma2-80)이 여섯 번째로 더 들어가서 모두 8개의 마띠까로 나타나고 있다. 


⑤ 대립구조로 구성된 두 개 조 마띠까

두 개 조 마띠까에 포함되어 있는 100개의 아비담마 마띠까 가운데 무려 77개 정도의 마띠까는 ‘원인인 법들’(ma2-1-a)과 ‘원인이 아닌 법들’(ma2- 1-b)처럼 서로 대립구조를 이루는 논의의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구문의 정리에서 보듯이 1, 2, 3은 각각 X - no X, Xniyā - aXniyā, X-samyuttā - X-vipayuttā(번뇌의 경우는 saX - aX임)로 되어 있고 6은 첫 번째 논의의 주제와 두 번째 논의의 주제에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는 X-vipayuttā kho pana dhammā를 제외하면 Xniyā-pi와 aXniyā-pi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정리해보면 모두 A - no A, A - aA, A-sampayuttā - A-vipayuttā, saA - aA의 네 가지가 된다. Xniyā-pi와 aXniyā-pi는 A - aA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10가지 모둠 전체에 적용하면 모두 4×10=40가지 마띠까가 이러한 대립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② 틈새에 있는 짧은 두 개 조에 포함된 7개의 마띠까 가운데 여섯 개는 saA - aA, A - aA, A - na A의 대립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⑩ 틈새에 있는 긴 두 개 조에 포함된 14개의 마띠까 가운데 12개도 saA - aA, A - aA, A - no A의 대립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덟 개는 A - no A의 대립구조이다. ⑬ 마지막 두 개 조에 포함된 18개의 마띠까는 모두 saA - aA, A - aA, A - na A의 대립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열 개는 A - na A의 대립구조이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 가지 두 개 조에 포함된 6+12+18=36개도 대립구조에 포함되어 지금까지 모두 76개가 된다. 그리고 ⑫ 오염원(kilesa)의 모둠에서 추가된 ma2-77의 saṁkiliṭṭhā와 a-saṁkiliṭṭhā를 더하면 이런 대립구조로 된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는 모두 77개가 된다.

여기에다 ma2-12의 lokiyā - lokuttara와 ma2-59의 saṁsaṭṭha - visaṁsaṭṭha와 ma2-66의 ajjhattikā - bāhirā처럼 반의어로 구성된 두 개 조 마띠까 세 개까지 넣으면 이 숫자는 모두 80개로 늘어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4. X c’eva dhammā Xniyā ca -     Xniyā c’eva dhammā no ca X와 5. X c’eva dhammā Xsampayuttā ca - Xsampayuttā c’eva dhammā no ca X, 즉 4. X이면서 X의 대상인 법들 - X의 대상이지만 X가 아닌 법들과 5. X이면서 X와 결합된 법들 - X와 결합되었지만 X가 아닌 법들도 넓은 의미에서 모두 대립구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열 개의 모둠 전체에서 20개가 더 포함되어 100개의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는 모두 넓은 의미에서 대립구조로 된 논의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경지와 아라한의 경지는 갈애와 무명으로 대표되는 모든 오염원이 제거되어야 실현된다. 이처럼 모든 불선법들이 극복된 분들이 부처님이시고 아라한들이다. 그리고 마음이 일어나는 특정한 찰나에 해로운 법과 유익한 법은 공존할 수가 없다. 이것은 불교 특히 아비담마의 상식이다. 그러므로『담마상가니』마띠까 가운데 두 개 조의 아비담마 마띠까는 이러한 대립구조를 통해서 특히 유익한 법들과 해로운 법들을 엄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선악이 둘이 아니라거나 번뇌와 보리는 둘이 아니라거나 생사와 열반은 둘이 아니라는, 들으면 가슴을 요동치게 하나 허황돼 보이는 구호는 이처럼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이것이『담마상가니』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역자는 받아들인다.

물론 이것은 니까야의 여러 군데에서 강조하고 있는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혹은 바른 정진[正精進]의 정형구가 선법․불선법에 대한 판단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비담마는 우리가 제거해야 하고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불선법들과 증장시켜야 하고 일어나게 해야 하는 선법들의 대립구조로 마띠까를 만들어서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하고 분류해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경장의 두 개 조 마띠까 42개 가운데는 A - aA의 대립구조로 된 ma2-101, ma2-105, ma2-113, ma2-123의 네 개가 있고 반의어로 된 것으로는 ma2-111, ma2-112의 둘을 들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세 개 조 마띠까 22개 가운데 B - ~B - ~(B and ~B)의 구조로 된 마띠까들 가운데 B - ~B는 대립구조로 된 것이다. 예를 들면 ma3-1의 ‘유익한 법들’과 ‘해로운 법들’과 ‘결정할 수 없는 법들’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대립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ma3-1, ma3-2, ma3-8, ma3-9, ma3-10, ma3-11, ma3-15의 일곱 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ma3-20, ma3-21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 범주에 포함 시킬 수 있고 더 넓게 보면 ma3-4, ma3-5, ma3-6, ma3-17, ma3-18, ma3-19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22개 가운데 15개가 이처럼 대립구조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164개의 마띠까들은 본서 제2권에 싣고 있는 제3편 간결한 설명 편에서 설명이 되어 있고 이 가운데 경장의 마띠까 42개를 제외한 세 개 조 마띠까 22개와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 100개는 제4편 주석 편에서 설명되어 있으므로 이 마띠까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설명은 제2권의 해제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상으로『담마상가니』마띠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⑷『담마상가니』마띠까 요약

이상의 설명을 바탕으로『담마상가니』마띠까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담마상가니』마띠까는 세 개 조와 두 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②『담마상가니』마띠까는 칠론의 마지막인『빳타나』의 마띠까 역할도 한다.

③ 세 개 조 마띠까 22개의 순서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하지만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을 논장 칠론의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로 설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④ 두 개 조 마띠까 142개는 아비담마 마띠까와 경장의 마띠까로 구성된다.

⑤ 이들은 크게 15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⑥ 이 가운데 10개의 모둠은 원인의 모둠의 불탐․부진․불치를 제외하면 모두 불선법들의 모둠이다.

⑦ 이 10가지 모둠들은 기본적으로 여섯 가지 공통되는 유형의 마띠까들로 구성되어 있다.

⑧ 집착의 모둠은 한 가지 유형의 마띠까가 빠져 다섯 가지 마띠까로 구성되어 있고 반면에 오염원의 모둠은 두 가지 유형의 마띠까가 더해져서 모두 여덟 가지 마띠까로 구성되어 있다.

⑨ 아비담마 마띠까, 특히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는 대립구조로 되어 있다. 대립구조로 된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는 모두 77개가 되고 확장하면 100개의 두 개 조 아비담마 마띠까 전부가 이런 대립구조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⑩『담마상가니』마띠까가 이처럼 불선법들의 모둠을 강조하고 특히 선․불선의 대립구조를 다양하게 드러내며 첫 번째 마띠까도 선․불선․무기의 법들을 담고 있는 것은 바른 정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른 정진의 정형구는 선법과 불선법들에 대한 판단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⑪ 이런 마띠까의 배열을 통해서『담마상가니』는 제1편에서, 특히 색계 마음과 출세간 마음 편에서는 선법을 강조하고 있고 제3편과 제4편에서는 불선법들을 바르게 아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⑫ 이처럼『담마상가니』는 간접적으로 괴로움의 원인인 불선법들을 나열하고 궁극적 행복의 원인인 禪수행과 출세간 경지의 체득을 세밀하게 열거하여 마침내 불교의 근본 목적인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실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⑬『담마상가니』는『담마상가니』마띠까에 대한 설명이다.


4.『담마상가니』제1편의 구성

이상으로『담마상가니』마띠까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마띠까의 이해를 토대로 이제『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개관해 보자.


⑴ 마음이란 무엇인가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 한다. 한국의 불자들은 ‘마음 깨쳐 성불한다.’거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일체유심조).’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불교를 심학(心學)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심리학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도 마음은 중요한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빠알리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 이『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편도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제목으로 이 마음을 다루고 있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부처님 가르침은 무아(無我, anatta, 실체 없음)를 근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무아는 불교를 특징짓는 말로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아비달마와 반야/중관과 유식을 망라한 모든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뜨만이니 자아니 대아니 진아니 하는 무언가 변하지 않고 영원한 실체가 나라는 존재나 세계의 안에 혹은 배후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단지 개념(산냐, 相)일 뿐이라 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만일 우리가 마음을 영원한 그 무엇으로 생각해 버린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게 된다. 


① 심․의․식은 동의어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불교 용어는 심(心)과 의(意)와 식(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중국에서 한자로 심․의․식으로 옮긴 범어 원어를 살펴보면, 심(心)은 citta(Sk. citta)이고, 의(意)는 mano(Sk. manas)이며, 식(識)은 viññāṇa(Sk. vijñāṇa)이다. 

초기불전과『청정도론』등의 주석서 문헌뿐만 아니라 북방 아비달마와 유식에서도 심․의․식은 동의어라고 한결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미 초기불전의 몇 군데에서 “마음[心]이라고도 마노[意]라고도 알음알이[識]라고도 부르는 것”이라고 나타난다. 그리고『청정도론』에서도 “마음과 마노와 알음알이[心․意․識]는 뜻에서는 하나이다.”(Vis.XIV.82)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주석서 문헌들은 한결같이 이 셋을 동의어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세 용어가 쓰이는 용도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용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역할이나 문맥에 따라서 엄격히 구분되고 있다. 


②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주석서 문헌에서는 마음(citta)을 “대상을 사량(思量)한다고 해서 마음이라 한다. [대상을] 안다는 뜻이다.”라는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마음은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대상을 아는가? 아비담마는 이를 정밀하게 설명해 낸다. 아비담마의 설명을 종합하면 마음은 여러 마음부수법들[心所法, cetasikā]의 도움을 받아서 대상을 안다. 마음이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마음부수법들 혹은 심리현상들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이 일어날 때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 7가지와 때때로 일어나는 6가지와 해로운 마음부수 14가지와 유익한 마음부수 25가지의 총 52가지 마음부수법[心所法]들을 들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2장 마음부수의 길라잡이를 참조할 것.) 


③ 마음은 오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초기불교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로 이해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독립 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色, rūpa]의 무더기[蘊, khandha]와 느낌[受, vedanā,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심리현상의 단초가 되는 것]의 무더기와 인식[想, saññā, 이지적인 심리현상의 단초가 되는 것]의 무더기와 심리현상들[行, saṅkhāra, 오온의 문맥에서는 항상 복수로 나타나며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작용을 뜻함]의 무더기와 알음알이[識, viññāṇa,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의 도움으로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하는 것]의 무더기가 함께 뭉쳐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薀]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오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절대화하면 안 된다. 마음을 절대화하면 즉시 외도의 자아이론[我相, ātma-saṁjñā]이나 개아이론[人相, pudgala- saṁjñā]이나 영혼이론[壽者相, ājiva-saṁjñā]이나 진인이론[士夫想, puruśa- saṁjñā]으로 떨어지고 만다.


초기불교는 마음(citta/viññāṇa)과 정신[名, nāma]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정신은 수온, 상온, 행온, 식온, 즉 느낌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알음알이의 무더기의 네 가지 무더기들인데 정신 가운데서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우리는 알음알이[識]라 하고 마음[心]이라 한다. 마음(알음알이)은 느낌[受]과 인식[想]과 심리현상들[行]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법들의 도움으로 대상을 식별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은 우리의 정신적 영역 가운데서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을 뜻할 뿐이지 마음이 우리의 정신 영역 모두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④ 마음은 무상하다

본품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하고 강조해야 하는 것은 무상(無常, anicca)이다. 마음은 무상하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것(무아)이다. 특히『상윳따 니까야』「무더기 상윳따」(S22) 도처에서 알음알이를 비롯한 오온의 무상은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 투철하고 사무쳐야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일어나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성자가 된다. 그렇지 않고 마음을 절대화해 버리면 결코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 알음알이[識], 즉 마음을 비롯한 오온을 절대화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유신견이라 하셨고, 이것은 중생을 중생이게끔 얽어매는 열 가지 족쇄 가운데 첫 번째로 초기경의 도처에서 나타나며, 이러한 유신견이 있는 한 그는 성자가 될 수 없다.


⑤ 마음은 찰나와 상속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은 찰나생․찰나멸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citta)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도 쉽지 않다.”(『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 A.i.9)라고 강조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주석서와 아비담마에서 카나(khaṇa, 刹那, 찰나, 순간)로 정착이 된다. 찰나의 구명은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을 비롯한 법들은 찰나생․찰나멸하는 일어나고 사라짐[起滅]의 문제이지, 있다․없다[有無]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주석서는 더 나아가서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uppāda-ṭṭhiti-bhaṅga) 세 아찰나(亞刹那, sub-moment)로 구성된다고 설명하여 자칫 빠질지도 모르는 찰나의 실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은 상속(相續, santati)한다. 흘러간다는 뜻이다. 마음이 찰나생․찰나멸이라면 지금․여기에서 생생히 유지되어 가는 우리의 이 마음은 무엇인가? 이렇게 명명백백한데 어떻게 없다 할 수 있는가? 초기불교와 주석서에서는 지금․여기에서 생생히 전개되는 이 마음을 흐름으로 설명한다. 이를 주석서에서는 심상속(心相續, citta-dhāra, Sk. citta-srota)이나 바왕가의 흐름(bhavaṅga-sota)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남․북방 불교에서 공히 강조하고 있다. 마음은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근본 원인인 갈애와 무명으로 대표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탐․진․치)이 다할 때까지 흐르는 것[相續]이다.


『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도 당연히 이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짐, 생멸, 즉 찰나생․찰나멸이 전제되고 있다.『대비바사론』이나『아비달마 구사론』등에 나타나는 시간 단위들을 현대의 시간 관념으로 환산해 보면 1찰나는 대략 75분의 1초에 해당된다고 한다.(『불교사전』운허용하 저, s.v. 찰나(刹那))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마음은 물질보다 16배가 더 빠르게 생멸한다고 한다.(『청정도론』XX.24,『아비담마 길라잡이』제4장 제목의 해설과 §6의 해설 참조) 즉 1물질찰나는 16마음찰나[心刹那]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은 1초에 1,200번 정도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거칠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계산한다면 백 세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평생에 걸쳐서 1,200 번×60초×60분×24시간×365일×100년=3,784,320,000,000번, 즉 3조 7,843억 번 이상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3조 7,843억 번을 70억 인구에 대입하거나 수많은 동물 등에 대입하거나 지옥이나 아귀나 아수라나 천상에 사는 존재들에게까지 대입한다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자 그대로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의 마음들이 일어나고 사라졌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고, 일어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⑥ 마음을 분류하는 기준

이처럼 불가설․불가설로 많이 존재하고 생멸하고 흘러가는 이 마음을 분류해서 설명할 수는 없는가? 불교 2,600년의 흐름 가운데 상좌부 아비담마는 여기에 대한 깊은 관심과 분류를 해왔다. 이러한 것이 빠알리 삼장의 논장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장인 마음의 일어남 편에서 적나라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고 있다.

상좌부 아비담마의 주석서에서는 찰나생․찰나멸하는 이 엄청나게 많은 마음들을 89가지로 분명하게 분류하고 있다. 그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첫 번째 마띠까(ma3-1)에서 제시한 유익한 것[善]과 해로운 것[不善]과 결정할 수 없는[無記] 것(과보로 나타난 것과 작용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경지로 욕계에 속하는 것과 색계에 속하는 것과 무색계에 속하는 것과 출세간에 속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89가지로 분류하거나 121가지로 분류하거나 본품에서처럼 211,605가지로 분류한다. 211,605개의 마음에 대해서는 본 해제의 아래 §5를 참조하기 바란다.


⑵ 89가지 마음 전체에 대한 개관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담마상가니』마띠까 가운데 첫 번째인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주석서는 제1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제1편] ‘마음의 분류(citta-vibhatti)’는 89가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욕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8가지, 해로운 것 12가지,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것 16가지,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것 7가지, 작용만 하는 것 11가지, 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5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5가지, 작용만 하는 것 5가지, 무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 작용만 하는 것 4가지, 출세간의 유익한 것 4가지, 과보로 나타난 것 4가지로 모두 89가지 마음으로 분류가 된다. ‘마음의 일어남 편(Cittuppāda- kaṇḍa)’이라는 것도 이것의 이름이다. 이것은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여섯 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DhsA.6 §11)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을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표1.1> 89가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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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본서 제1편은 ‘마음의 분류’ 혹은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편의 명칭이 말해주듯이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분류하는 89가지 마음을 중심으로 이들과 함께 일어나는 물질이 아닌(arūpa) 정신적인 법들을 분류해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마음을 욕계, 색계, 무색계, 출세간이라는 네 가지 일어나는 경지(bhūmi)와 유익한 마음, 해로운 마음,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이라는 네 가지 종류(jāti)를 기준으로 89가지로 상세하게 분류해서 제시하는 부파(kāya)는 불교의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 만큼 상좌부 논장의 칠론 가운데도 첫 번째 논서인 이『담마상가니』에서, 그것도 제일 첫 번째 편에서 불교의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 아비담마 체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이 89가지 마음의 분류를 심도 있게 설명하면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담마상가니』가 가장 크게 평가받아야 할 점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이러한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 전체가 3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제1품 유익한 마음(kusala-citta) 품(§§1~364)과 제2품 해로운 마음(akusala-citta) 품(§§365~430)과 제3품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avyākata -dhammā) 품(§§431~582)이다. 

거듭 강조하지만『담마상가니』제1편이 이렇게 세 품으로 구성된 것은 제1편이 갈무리(saṅganī)하려는 법(dhamma)의 체계가 본서의 첫머리에 모아둔 164개 마띠까들 가운데 제일 첫 번째 마띠까인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제1품 유익한 마음 품은 이 첫 번째 마띠까의 첫 번째 논의의 주제인 ‘유익한 법들’(ma3-1-a)을 설명하는 품이고 제2품 해로운 마음 품은 두 번째 논의의 주제인 ‘해로운 법들’(ma3-1-b)을, 제3품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 품은 세 번째 논의의 주제인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을 설명하는 품이다.

이러한 본서 제1편의 제1품 유익한 마음 품은 다시 제1장 욕계에 속하는 유익한 마음(§§1~159), 제2장 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마음(§§160~264), 제3장 무색계에 속하는 유익한 마음(§§265~268), 제4장 삼계에 속하는 유익한 마음(§§269~276),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277~364)의 다섯 가지 장으로 세분이 된다. 제2품은 12가지 해로운 마음들을 설명하고 있으며(§§365 ~430) 제3품 결정할 수 없는 법들 품은 다시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431~565)과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566~582)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담마상가니』제1편은 존재들에게서 일어나는 마음을 ① 유익한 업을 짓는 마음과 ② 해로운 업을 짓는 마음, 그리고 이 둘의 ③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④ 업과 과보와는 관계없이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으로 해체하여 ‘유익하거나[善, kusala] 해롭거나[不善, akusala] 이 둘로 결정할 수 없는[無記, avyākata] 법들’(ma3-1)을 장대한 스케일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


불교 2,600년의 흐름에서 마음을 이처럼 ① 유익한 것, 해로운 것,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것, 작용만하는 결정할 수 없는 것과 ② 욕계, 색계, 무색계, 출세간이라는 경지 혹은 일어나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89가지로 분류하는 것은 불교 적통을 자부하는 상좌부 불교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세한 분류는 후대의 주석서 문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본서에서 보듯이 이미 상좌부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에서, 그것도 첫 번째 품에서, 그것도 아주 정교하게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류법은 경장의 종합적인 주석서인『청정도론』에서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薀]를 설명하는 방법론으로 채용되고 있으며 10세기에 정리된 상좌부 아비담마의 입문서이면서 필독서인『아비담맛타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에도 계승되었다. 그런데 이『아비담맛타상가하』는 마띠까를 중심에 두지 않고 먼저 마음을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이라는 네 가지 경지로 분류한 뒤 그다음에 이들을 해로운 것, 유익한 것, 과보로 나타난 것, 작용만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89가지로 정리하고 있다.『담마상가니』와『청정도론』과『아비담맛타상가하』에 나타나는 89가지 마음의 순서에 대한 비교는 다음 쪽의 <표 1.2>를 참조하기 바란다.


<표1.2> 상좌부 불교 89가지 마음 번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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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서 제2권의 제2편 물질 편은 계속해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에 속하는 물질들을 279개의 마띠까를 설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담마상가니』의 제1편과 제2편은 본서의 논의의 주제로 책의 첫머리에서 설정한 164개 마띠까들 가운데 단지 첫 번째 마띠까 하나를 설명하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선법(善法, kusala-dhamma)과 불선법(不善法, akusala-dhamma)과 선․불선으로 결정할 수 없는 법[無記法, avyākata-dhamma]의 판단은 니까야에서도, 특히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이었듯이 이처럼 아비담마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다.


⑶ 업(kamma)은 89가지 마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①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은 업을 짓는 마음이다.

본서 §431부터 §565까지에 나타나는 욕계/색계/무색계의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과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vipākābyākata)을 설명하는 구절 가운데 “욕계의 유익한/색계의 유익한/무색계의 유익한/해로운 업을 지었고 쌓았기 때문에(kammassa katattā upacita -ttā)”(§431, §499, §501, §556 등)라는 구문이 15번 정도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담마상가니』의 이러한 구절들을 토대로 우리는 ‘유익한 마음’(§§1~364)은 유익한 업을 짓는 마음이고, ‘해로운 마음’(§§365~430)은 해로운 업을 짓는 마음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출세간 마음을 설명하는 §§505~553의 모든 문단에는 “이러한 출세간의 유익한 禪을 지었고 수행하였기 때문에(tasseva lokuttarassa kusalassa jhānassa katattā bhāvitattā)”라는 구절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출세간의 유익한 禪은 당연히 유익한 업에 속한다. 이처럼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은 업을 짓는 마음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업은 반드시 과보(vipāka)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보는 금생이나 내생의 삶의 과정(pavatti) 중에서 과보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인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으로도 나타난다. 이것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고 이것은 본서 §§431~565에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업과 과보와의 관계와 관련이 없는 것들이 작용만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이고 이것은 본서 §§566~582에서 설명되고 있다.


② 업은 89가지 마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그러므로 업(kamma)은 본서의 첫 번째 마띠까인 ‘유익한 법들, 해로운 법들,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을 이해하는 핵심이요, 여기 본서 제1편의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그래서 담마상가니 주석서도 업에 대한 설명을 따로 모아 ‘문(門)에 대한 설명(dvāra-kathā)’이라는 부제목을 달아서 업을 짓는 문(門, dvāra)을 중심으로 업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주석서는 먼저 ① 세 가지 업(kammāni) ② 세 가지 업의 문(kamma-dvārāni) ③ 다섯 가지 알음알이(viññāṇāni) ④ 다섯 가지 알음알이의 문(viññāṇa-dvārāni) ⑤ 여섯 가지 감각접촉(phassā) ⑥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문(phassa-dvārāni) ⑦ 여덟 가지 단속하지 못함(asaṁvarā) ⑧ 여덟 가지 단속하지 못함의 문(asaṁvara- dvārāni) ⑨ 여덟 가지 단속(saṁvarā) ⑩ 여덟 가지 단속의 문(saṁvara- dvārāni) ⑪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kusala-kammapathā) ⑫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akusala-kammapathā)이라는 12가지 논의의 주제를 확립(mātikā-ṭhapana)한 뒤에(DhsA.82) 이를 토대로 업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DhsA.82~95) 역자는 업의 설명에 대한 이 부분을 본서의 부록으로 실을 요량으로 모두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국판으로 50쪽에 달하는 많은 분량이라서 다 실을 수가 없어서 편집과정에서 빼기로 결정하였다.


③ 업이란 무엇인가

『담마상가니 주석서』는 “그러면 무엇이 업(kamma)인가?”라고 질문을 한 뒤 “㉠ 의도(cetanā)와 ㉡ 의도와 결합된 어떤 법들(ekacce ca cetanā -sampayuttakā dhammā)”(DhsA.88)이라고 업을 정의한다. 그런 뒤에 ㉠의 보기로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이라고 나는 말하노니 의도하고(cetayitvā)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다.”(「꿰뚫음 경」(A6:63))라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부처님 말씀과「부미자 경」(S12:25)과『까타왓투』(論事, Kv.393)와「업 분석의 긴 경」(M136)의 가르침을 예로 들고 있다.(DhsA.88)

그리고 ㉡의 보기로는「간략하게 경」(A4:231)과「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 경」(A4:236)과「성스러운 도 경」(A4:235)을 든 뒤 “간탐(慳貪, abhijjhā), 악의(vyāpāda),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 간탐 없음, 악의 없음, 바른 견해라는 이 여섯과 더불어서 의도와 결합된 법들을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DhsA.89)


그런데 의도(cetanā)라는 마음부수법은 마음이 일어날 때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반드시들[遍行心所, 변행심소, sādhārana]에 속한다. 상좌부 아비담마 뿐만 아니라 북방의 아비달마와 대승의 아비달마라 일컬어지는 유식에서도 의도는 반드시들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의도는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작용만하는 마음에도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에 일어나는 의도는 업이라고 부를 수 없다. 과보로 나타난 마음은 업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고 작용만하는 마음은 말 그대로 업과 과보와 관계가 없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석서들은 의도도 유익한 의도, 해로운 의도, 과보로 나타난 의도, 작용만 하는 의도의 넷으로 구분을 하고(yepime kusalacetanā akusalacetanā vipākacetanā kiriyacetanāti cattāro cetanārāsayo vuttā, AA.ii. 274) 이 가운데 유익한 의도와 해로운 의도만을 업이라고 설명한다. 인식과정에서 보면 이 두 가지 의도는 속행(速行, javana)에서만 일어난다. 


업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12연기의 두 번째 구성요소인 [업] 형성(상카라)의 설명에서 더욱 분명하게 된다.『청정도론』은 “삼계의 유익하거나 해로운 의도를 ‘업형성의 상카라[行]’라 부른다(tebhuumika-kusala-akusala- cetanā pana abhisaṅkharaṇaka-saṅkhāro ti vuccati).”(Vis.XVII.46)라고 12연기의 두 번째 구성요소인 상카라(행)를 업형성의 상카라(abhisaṅkharaṇaka -saṅkhāra)라고 규정하고 이것을 ‘삼계의 유익하거나 해로운 의도’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12연기의 행(行, saṅkhāra)은 업과 전적으로 동의어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12연기의 상카라(행)를 어떻게 한글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두고 고심을 많이 하였다. 주석서들과 volitional activities, volitional formations, karmic formations와 같은 영역을 참조하여 의도적 행위로 옮기느냐 [업] 형성으로 옮기느냐를 두고 고심하다가 의도적 행위로 옮겼는데 이렇게 되니 의도(cetanā)와 겹치는 번역이 되었고 모든 의도(cetanā)가 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12연기의 상카라(행)를 ‘[업] 형성’으로 옮기고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유위법(有爲法, saṅkhata-dhamma)으로서의 상카라를 일반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에 12연기의 상카라도 [업] 형성으로 옮기면 일관성이 있기도 하다. 상카라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는 졸저『초기불교이해』제7장 오온 가운데 심리현상들 편의 해당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상을 통해서 업(kamma)을 종합적으로 정의해보면 업은 12연기의 상카라(saṅkhāra, 行, 업 형성) 즉 업형성의 상카라(abhisaṅkharaṇaka-saṅkhāra)와 동의어이고 이것은 유익한 의도(kusala-cetanā)나 해로운 의도(akusala- cetanā), 그리고 이러한 유익하거나  해로운 의도와 결합된 [마음부수]법들(cetanāsampayutta-dhamm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업을 16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불교의 업설(業說, kammakath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설명이다. 자세한 것은『아비담마 길라잡이』제5장 §18이하 III. 네 가지 업을 참조하기 바란다.


⑷ 89가지 마음과 이와 관계된 마음부수법들을 분류하는 방법

이제『담마상가니』제1편을 통해서 이들 89가지 마음의 각각에서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1편에서 89가지 마음을 설명하는 방법은 이들 가운데 제일 처음에 언급되는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법들에 대한 설명 방법이 기본이 된다. 제1편은 여기서 확정된 방법을 나머지 88가지 마음의 일어남에도 똑같이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번째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법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부문(vāra)으로 갈무리(saṅganī)가 되어 있다.(DhsA.54~55) 그것은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dhamma-vavatthāna-vāra, §§1~57)과 ⒝ 항목의 부문(koṭṭhāsa-vāra, §§58~120)과 ⒞ 공함의 부문(suññatā-vāra, §§121~145)이다. 그리고 이 셋은 각각 ① 개요(uddesa)와 ② 해설(niddesa)과 필요에 따라 ③ 재해설(paṭiniddesa)로 나누어진다. 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dhamma-vavatthāna-vāra, §§1~57)

이 가운데 첫 번째인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1~57)은 먼저 ① 개요(§1)에서 모두 56가지 법들과 예와빠나까(그밖에들, yevāpanaka)를 열거한 뒤 ② 해설(niddesa)과 ③ 재해설(paṭiniddesa)에 해당되는 §2부터 §57까지에서 이 56가지 법들을 하나하나 동의어를 나열하는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57에서 예와빠나까(그밖에들)를 언급하는 것으로 법의 개요에서 나열된 법들을 모두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정신의 법들을 여러 가지 모음을 통해서 분류해 보면 모두 56개가 된다. 그리고 그밖에들(예와빠나까, §57)이 마지막으로 언급된다. 주석서는 여기에 상응하는 그밖에들(예와빠나까)의 법들로 열의[欲], 결심[勝慧], 마음에 잡도리함[作意], 중립, 연민[悲], 함께 기뻐함[喜], 몸의 나쁜 행위를 절제함[正業], 말의 나쁜 행위를 절제함[正語], 그릇된 생계를 절제함[正命]의 9가지를 들고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56가지 법들이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계산이 된다. 이처럼 이 부문에서는 56가지 법들의 항목을 하나씩 하나씩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첫 번째를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dhamma-vavatthāna-vāra)이라고 주석서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 56가지는 여러 가지 모음을 통해서 분류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마음챙김은 기능과 도와 힘의 모음과 편안함 등의 쌍에 각각 한 번씩 나타나서 모두 네 번이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주석서는 이들 가운데 마음, 생각, 믿음, 양심, 수치심, 탐욕 없음, 성냄 없음의 7가지 법들은 두 군데에서 분류되어 나타나고, 느낌 한 가지는 세 곳에서, 정진과 마음챙김 두 가지는 네 곳에서, 삼매 한 가지는 여섯 곳에서, 통찰지 한 가지는 일곱 곳에서 분류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DhsA. 134, 본서 §57의 마지막 주해를 참조할 것.)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그밖에들을 제외하고 성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대로 취하면 56개가 된다. 그런데 중복된 것을 제외시킴으로써 여기서는 감각접촉을 다섯 번째로 하는 것, 일으킨 생각, 지속적 고찰, 희열, 마음이 한끝으로 [집중]됨, 다섯 가지 기능,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이라는 두 가지 힘, 탐욕 없음, 성냄 없음의 두 가지 뿌리에다 몸의 편안함과 마음의 편안함 등의 12가지 법들을 [더하면] 정확히 30가지 법들이 된다.”(DhsA.134)

이렇게 하여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에서는 모두 30가지 법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다 9가지 예와빠나까(그밖에들)을 더하면 30+9=39개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다 해로운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14가지 해로운 심소법들(본서 §421의 마지막 주해 참조)을 더하면 모두 53가지가 된다. 이 53가지는『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분류하는 한 가지 마음[心]과 52가지 마음부수법들[心所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 항목의 부문(koṭṭhāsa-vāra, §§58~120)

『담마상가니 물라띠까』가 “‘항목들’이란 부분들(aṁsā), 구성성분들(avayavā)이라는 뜻이다.”(DhsAMṬ.140)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이 항목의 부문은 법들을 여러 가지 항목들로 분류해서 드러내는 부문이다. 그래서 여기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큰마음에 속하는 ‘항목의 부문’(§§58~120)에서는 앞의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2~57)에서 정의된 56가지 법들을 먼저 개요(§58)를 통해서 ① 네 가지 무더기가 있고부터 ㉓ 한 가지 법의 요소가 있다까지 23가지 항목과 예와빠나까(그밖에들)로 정리한다.(§58) 그래서 주석서는 이 항목의 부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욕계의 첫 번째 유익한 큰마음이 일어날 때, 그때에 그밖에들(예와빠나까)은 제외하고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로 일어나는 50개가 넘는 법들을 모아보면 이러하다. 

모음(더미)의 뜻에 의하면 오직 네 가지 무더기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감각장소의 뜻에 의하면 두 가지 감각장소가 있다. 고유성질이라는 뜻과 공하다는 뜻과 중생이 없다는 뜻에 의하면 단지 두 가지 요소가 있다. …”(Dhs A.152~153) 

이처럼 §58에서 개요(uddesa)로 23가지 항목들을 제시한 뒤 §59부터 §120까지의 해설(niddesa, §§59~120)에서는 개요로 정리된 이 51가지들을 하나하나 설명한 뒤에 §120에서 예와빠나까(그밖에들)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여기 항목의 부문에서 정리하고 있는 23가지 항목은 ① 네 가지 무더기 ② 두 가지 감각장소 ③ 두 가지 요소 ④ 세 가지 음식 ⑤ 여덟 가지 기능 ⑥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禪 ⑦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도 ⑧ 일곱 가지 힘 ⑨ 세 가지 원인 ⑩ 한 가지 감각접촉 ⑪ 한 가지 느낌 ⑫ 한 가지 인식 ⑬ 한 가지 의도 ⑭ 한 가지 마음 ⑮ 한 가지 느낌의 무더기 ⑯ 한 가지 인식의 무더기 ⑰ 한 가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⑱ 한 가지 알음알이의 무더기 ⑲ 한 가지 마노의 감각장소 ⑳ 한 가지 마노의 기능 ㉑ 한 가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 ㉒ 한 가지 법의 감각장소 ㉓ 한 가지 법의 요소이다.

이 23가지는 온․처․계․근(蘊․處․界․根, khandha․āyatana․dhātu․indriya) 등의 초기불교의 중요한 항목들이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욕계에 속하는 첫 번째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예와빠나까(그밖에들) 9가지를 제외한 정신[名, nāma]에 속하는 법들 56가지가 함께 일어난다. 이 56가지 정신에 속하는 법들 가운데는 5온 가운데 물질의 무더기(색온)를 제외한 느낌의 무더기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인식의 무더기나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나 알음알이의 무더기에 포함되는 것도 있다. 즉 이들 56가지 법들은 네 가지 무더기(4온)의 항목에도 포함된다. 그래서 이 항목의 부문에서는 먼저 ‘네 가지 무더기가 있고’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56가지 법들 가운데는 12가지 감각장소(12처) 가운데 물질로 된 감각장소인 앞의 10가지 감각장소들(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을 제외한 마노의 감각장소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법의 감각장소에 포함되는 것도 있다. 그래서 ‘두 가지 감각장소가 있고’라고 두 번째로 항목의 부문에서 드러내고 있다. 같이 하여 56가지 법들 가운데는 18가지 요소(18계) 가운데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와 법의 요소라는 두 가지 요소의 항목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네 가지 음식 가운데 덩어리진 먹는 음식을 제외한 감각접촉[觸]의 음식, 마음의 의도의 음식, 알음알이의 음식인 세 가지 음식의 항목에 포함되는 것도 있으며 … 12가지 감각장소 가운데 법의 감각장소라는 한 가지 항목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18가지 요소 가운데 법의 요소인 한 가지 항목에 포함되는 것도 있다. 이처럼 23가지 항목을 설정하고 여기에 속하는 법들을 정리하여 관찰하는 것이 이 항목의 부문이다.


그러면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1~57)에서 39가지 법들을 여러 가지 모음을 통해서 65가지로 드러낸 뒤에 왜 다시 ⒝ 항목의 부문(§§58~120)을 설정하여 이 법들을 다른 측면에서 모아서 드러내고 있을까?『담마상가니 주석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듯하다. 역자는 이 ⒝ 항목의 부문(§§58~120)은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1~57)을 다음의 ⒞ 공함의 부문(§§121~145)과 연결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싶다. 이 56가지 법들을 여기 항목의 부문에서 23가지 항목으로 정리를 한 뒤에 이것을 그대로 다음의 공함의 부문에 가져가서 23가지 항목으로 정리되는 이러한 법들만이 실상이고 그 외의 개념적인 것들은 모두 실체가 없고 공하다고 천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존재에는 23가지 항목으로 분류되는 법들만이 있지(dhamma-mattā), 자아니 인간이니 중생이니 개니 돼지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하는 등의 개념적인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이 항목의 부문을 넣었다고 이해한다.


⒞ 공함의 부문(suññatā-vāra, §§121~145)

세 번째인 ‘공함의 부문’(§§121~145)도 ① 개요와 ②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함의 부문은 두 번째인 항목의 부문에서 분류한 23가지 항목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이 23가지 항목의 앞에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라는 하나의 항목을 더 추가하여 모두 24가지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여기서는 먼저 §121에서 ① 개요를 통해서 ‘법들이 있고’부터 ‘법의 요소가 있다.’까지 24가지와 예와빠나까(그밖에들)를 밝힌 뒤 §§122~145에서 이들 24가지를 간략하게 정의하는 ② 해설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앞의 항목의 부문과 이 공함의 부문의 다른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앞의 항목의 부문에서 “네 가지 무더기가 있고 두 가지 감각장소가 있고 …”로 언급되었던 항목들이 여기 공함의 부문에서는 “무더기가 있고 두 가지 감각장소가 있고 …”로 숫자의 언급이 없이 항목들만 나열되고 있다. 공함의 부문에서 숫자의 언급이 없는 이유는 앞의 항목의 부문에서 이미 숫자로 제한되었기 때문이고 거기서 숫자로 제한된 법들(paricchinna- dhammā)이 여기서도 그대로 설해지기 때문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DhsA.155)

둘째, 여기 공함의 부문에서 주목할 것은 앞의 항목의 부문에는 없는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121)라는 구절이 제일 앞에 첨가가 되고 그다음에 항목의 부문에 나타난 23가지 항목들을 열거하여 모두 24가지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본 부문은 공함[空性, suññatā]을 밝히는 부문이면서도 오히려 법들이 있음을 강조하는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라는 구절이 제일 앞에 첨가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직 법들만이 있고 개념적 존재(paññatti)들은 실체가 없고 공한 것을 밝히기 위해서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라는 구절을 맨 먼저 언급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공함의 구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담마상가니 주석서』를 보면 이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중생(satta)이라거나 존재(bhāva)라거나 자아(atta)라는 것은 얻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법들이고(dhammāva ete) 단지 법들일 뿐(dhamma-mattā)이고 실체가 없고(asārā) 인도자가 아니다(apariṇāyakā). 그래서 이러한 공함[空性, suññatā]을 밝히기 위해서 [공함의 부문을] 설하셨다.”(DhsA.155)


그리고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라는『담마상가니』의 이 구절은 주석서 문헌들의 여러 곳에서도 인용이 되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때에 법들이 있고,  무더기들이 있고’(Dhs. §121)라는 등에서 [법들은] 중생이 아님(nissattā)을 뜻한다.”(DA.i.99)

“여기서 ‘그런데 그때에 법들이 있고’(Dhs. §121)라는 말씀처럼 중생이 아니라는 뜻(nissattaṭṭha)에 의해서 법이 알아져야 한다.”(AA.i.29)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Dhs. §121)라고 하셨다. 공한 법이기 때문에 고유성질만이 있다는 뜻이다(suññadhammattā sabhāvamattā hontīti attho).” (DhsAMṬ.28) 

“‘법들이 있고(dhammā honti)’(Dhs. §121)라는 것은 [개념적 존재가] 공한 법들만이 있다는 뜻이다(suññā dhammamattā hontīti attho).”(DAṬ.i.172)


나아가 주석서 문헌들 특히 아비담마에 관계된 주석서 문헌들에서 법은 ‘중생이 아님과 영혼이 아님(nissatta-nijjīvatā)’(DhsA.38; MAṬ.i.122; Moh.8 등)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주석서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여기 공함의 부문에서는 자아[我, atta]나 중생(satta)이나 영혼[壽者, jīva] 등의 개념적 존재를 배제시키고 ‘법들만이 있음(dhammamattā honti)’(DhsA.155; DAṬ.i.172)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법들이 있고’라는 항목을 제일 먼저 넣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공함[空性, suññatā]은 자아나 인간이나 중생이나 영혼이라는 개념적 존재가 공하고 오직 법들만이 존재함(dhammamattā honti)을 뜻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처럼 주석서는 ‘법들은 단지 법들일 뿐(dhammāva dhamma-mattā)’이어서 거기에는 중생도 존재도 자아도 실체도 지배자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공함[空性, suññatā]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공함은 단지 법들만이 있을 뿐, 개념적 존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이처럼 주석서는 중생이나 자아나 영혼 등으로 부르는 개념적 존재가 공하기 때문에 공이라고 설명하고 있지 법들 자체가 공이라고는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석서 문헌들을 검색해보면 아공(我空)으로 직역되는 atta[我]-suñña[空]라는 용어는 아주 많이 나타나지만 법공(法空)으로 직역할 수 있는 dhamma-suññatā라는 용어는 단 한 번만, 그것도 법공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문맥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상좌부 주석서 문헌은 아공은 강조하고 있지만 법공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공함의 부문에 나타나는 공함을 대승불교에서 즐겨 사용하는 법공(法空, Sk. dharma-śūñyatā, Pāli. dhamma-suññatā)과 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이 공함의 부문은 개념적 존재가 실재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아공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비담마는 법의 실유[法有]를 강조한다고 억측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비담마에서는 법에 관한한 가유(假有)라거나 실유(實有)라는 관점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여기 본서 제1편의 도처에서 법들은 조건 따라 일어난 것임[緣而生]을 강조하고 있듯이 아비담마는 법들이 조건발생 즉 연기요 연이생임을 거듭해서 천명한다. 이처럼『담마상가니』제1편이야말로 법들은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paṭiccasamuppannā dhamm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인연소생인 법을 대승의 반야중관 계열에 속하는 용수스님은『중론송』에서 공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담마상가니』에서는 이렇게 비약하지 않는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역자는 오히려 이러한 인연소생인 법들을『중론송』등에서 공이라고 강조하다 보니 후대로 오면서 공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하여 법들에 대한 혼동과 오해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상좌부 주석서 문헌들의 도처에서 법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 것으로 강조가 되는데 그것은 개별적 특징[自相, sabhāva-lakkhaṇa]과 보편적 특징[共相, sāmañña-lakkhaṇa]이다. VRI CD-ROM으로 검색을 해보면 주석서 문헌에서 개별적 특징으로 옮겨지는 sabhāva-lakkhaṇa는 45번 정도가 검색이 되고 보편적 특징으로 옮겨지는 sāmañña-lakkhṇā는 114번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이 된다. 이 가운데 전자는 자상(自相)으로 중국에서 번역이 되었으며 후자는 공상(共相)으로 번역이 되었다. CBETA로 한문불전 자료들을 검색을 해보면 자상(自相)은 12,404번, 공상(共相)은 10,815번이나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된다. 이처럼 이미 상좌부 주석서 문헌들에서부터 법은 무상․고․무아라는 보편적 특징으로 설명이 되고 있지 가유(假有)라거나 실유(實有)라는 관점에서 고찰되지 않는다. 법의 자상(自相, sabhāva-lakkhaṇa)과 공상(共相, sāmañña-lakkhaṇa) 등에 대한 논의는 졸저『초기불교이해』제14장 어떻게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인가의 ⑵ 이하(210쪽 이하)와 113쪽 이하 등에 나타나고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공함(suññatā)은 다시 본편의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lokuttara- kusala)에서도 나타나고(§343 등)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lokuttara-vipāka)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505 등) 출세간 마음에서의 공함은 도와 과를 실현하는 해탈의 관문으로서 강조되고 있다. 출세간 마음에서의 공함에 대해서는 본서 §343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법이 공하다는 비약적인 언어를 구사하기보다는 이처럼 도와 과를 체득하고 깨달음을 실현하는 해탈의 관문으로 공을 파악하는 상좌부의 절제된 태도를 역자는 존중하고 싶다. 굳이 법공(法空)을 상좌부 불교에서 찾고 싶다면 법의 보편적 특징[共相]에 속하는 무아(無我)와 이 해탈의 관문으로 강조되고 있는 공성(共性)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⑸ 유위법은 모두[有爲諸法] 조건 따라 일어난 것[緣而生]이다

이상에서『담마상가니』제1편의 전개 방법을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과 ⒝ 항목의 부문과 ⒞ 공함의 부문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건 따라 일어남’으로 옮기고 있는 연이생(緣而生, paṭiccasamuppanna)이다. 이 세 가지 부문에는 모두 예와빠나까(yevāpanaka, 그밖에들)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 예와빠나까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예와빠나까 구문에는 예외 없이 모두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법들(paṭiccasamuppannā dhammā)’이란 용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본서 제1편에는 42군데 정도의 예와빠나까 구문이 있는데 그 구문은 모두 “그 밖에 그때에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비물질인 다른 법들도 있다. ― 이것이 유익한/해로운/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이다.”(§1, §365, §431 등)라는 정형구로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항목의 부문에서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는 “감각접촉, 의도 … 그 밖에 그때에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느낌의 무더기를 제외하고 … 비물질인 다른 법들 ― 이것이 그때에 있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이다.”(§62 등)라는 정형구로 해설이 되고 있다. 이 정형구는 31번 정도 언급이 되고 있다. 이처럼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비물질인 다른 법들(paṭiccasam- uppanā arūpino dhammā)’은 이러한 정형구들을 통해서 제1편의 모든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과 모든 항목의 부문과 모든 공함의 부문에 계속해서 나타나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만 §1부터 §575 사이에 73번 정도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비물질인 다른 법들’이라는 구문 속에 포함된 ‘비물질인(arūpino)’이라는 용어가 예와빠나까뿐만 아니라 모든 마음[心]과 마음부수법[心所]에 적용되는 것처럼 이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 paṭiccasamuppannā]’ 혹은 ‘조건 따라 일어난 법들[緣而生法, paṭiccasamuppannā … dhammā]’은 이 예와빠나까(그밖에들)에 속하는 법들뿐만 아니라『담마상가니』에서 정리되고 있는 형성된 법들[有爲法]이 모두 조건발생임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불교의 기본이 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처럼 연이생(緣而生, paṭiccasamuppannā) 혹은 연이생법(緣而生法, paṭiccasamuppannā dhammā)은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서 거듭해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조건 따라 일어난 법들[緣而生法, paṭiccasamuppannā dhammā]이란 용어는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과 ⒝ 항목의 부문과 ⒞ 공함의 부문에 모두 다 포함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 법들을 하나하나 정의하는 법의 개요의 입장에서 봐도 유위제법은 연이생이요 ⒝ 법들을 23가지 항목으로 분류하는 입장에서 봐도 유위제법은 연이생이며 ⒞ 이렇게 분류하여 법들만(dhammamattā)이 존재하지 개념적 존재들[施設, paññatti]은 모두 실체가 없음을 강조하는 공함의 측면에서 봐도 유위제법은 당연히 연이생임을 본서의 마음의 일어남 편은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담마상가니』는 모든 유위법들이 연이생이요 조건발생임을 강조한다. 본서에서 ‘조건 따라 일어난[緣而生]’으로 옮기고 있는 paṭiccasamuppanna를 비롯한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조건[緣, paccaya]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57의 해당 주해와 제2권 §1008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연이생(緣而生), 즉 ‘조건 따라 일어난’으로 옮긴 과거분사 paṭiccasamuppannā는 북방불교의 논서인 용수(Nāgārjuna) 스님의『중론송』(Madhyamaka Kārikā)의 핵심이 되며 ‘중론송 삼제게(中論頌 三諦偈)’로 우리에게 알려진『중론송』제24품「관사제품」의 18번째 게송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pratītyasamutpāda(Pāli. paṭiccasamuppāda), 즉 연기(緣起)라는 용어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삼제게의 첫 구절인 ‘yaḥ pratītya- samutpādaḥ’를 현장 스님은 ‘重因緣生法(중인연생법)’으로 장수 스님은 ‘因緣所生法(인연소생법)’으로 ‘법(法)’이라는 용어를 넣어서 옮겼다.『중론송』이 강조하는 인연소생법이야말로『담마상가니』제1편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조건 따라 일어난 법들[緣而生法, paṭiccasamuppannā dhammā]’과 상통하는 용어이다.


빠알리 논장의 칠론 가운데 첫 번째인『담마상가니』에서 유위제법이 조건 따라 일어난 것임(조건발생)을 강조하고 있는 ‘조건 따라 일어난 법들[緣而生法]’이라는 이런 용례가 자연스럽게 발전하여『중론송』삼제게의 첫 구절인 ‘조건발생인 법들[因緣所生法, yaḥ pratītyasamutpādaḥ dharmaḥ]’로 발전하여 반야중관에서도 유위제법이 조건발생임[因緣所生法]을 드러내는 용어로 정착이 되었을 것이다.


⑹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의 요약

이제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담마상가니』제1편에서 89가지 혹은 211,605가지 마음과 이와 관계된 마음부수법들을 분류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① 마음의 일어남 편은 먼저 욕계 첫 번째 유익한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1) 

② 그리고 이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설명해 나간다. (§§1~145) 

③ 이것은 세 가지 방법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은 ⒜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1~57)과 ⒝ 항목의 부문(§§58~120)과 ⒞ 공함의 부문(§§121~145)이다. 

④ 이 세 가지 부문은 유위제법은 연이생(緣而生)임을 강조한다.

⑤ 여기 공함의 부문에서는 ‘법들은 단지 법들일 뿐’임을 강조한다. 주석서는 중생이나 자아나 영혼 등으로 부르는 개념적 존재가 공하기 때문에 공이라고 설명하고 있지 법들 자체가 공이라고는 설명하지 않는다.

⑥ 이 방법은 나머지 88가지 혹은 211,604가지 마음들에도 모두 그대로 적용된다.

⑦ 이렇게 전개하면서, 예를 들면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을 정의하는 §296처럼, 각 마음들에서 특별히 일어나는 마음부수법들[心所法]을 설명한다. 

⑧ 그 외의 부문들은 전통적으로 전부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ala)의 생략으로 편집되었다.

⑨ PTS본은 이 반복되는 부분의 정리가 잘못된 곳이 적지 않고 리스 데이비즈 여사가 지적하고 있듯이 편집이 잘못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부분들은 본서 제2권 해제 §8을 참조하기 바란다.

⑩ 제1편은 이렇게 하여 211,605개의 마음을 통해서 법의 갈무리를 진행한다. 

⑪ 만일 반복되는 부분(peyyala)을 생략하지 않는다면『담마상가니』는 엄청나게 긴 분량이 되어 제1편만 해도 이론상으로는 211,600배 이상의 분량이 된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남은『담마상가니』아비담마 마띠까 121개에 적용하여 설명을 하게 되면 그 분량은 실로 불가설․불가설에 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주석서도 본편은 “문장의 길이에 의하면 여섯 바나와라 분량이 넘고 확장하면 끝이 없고 무량한 것이 된다.”(DhsA.6 §11)고 적고 있다. 

⑫ 그러므로『담마상가니』, 특히 제1편은 상좌부 불교의 반복되는 부분의 생략에 대한 정수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5.『담마상가니』제1편(§§1~582)에 나타나는 마음은 몇 개인가

『담마상가니』제1편에는 몇 개의 마음이 거론되고 있는가는 역자가『담마상가니』를 옮기기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관심이다. 번역을 하고 주해를 달고 역자 서문을 작성하고 각 권의 해제를 만들고 본문을 다듬을수록『담마상가니』에 나타나는 마음의 개수를 정확하게 살펴보는 것은『담마상가니』의 구조를 바르게 이해하고 상좌부에서 설하는 마음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역자가 헤아려 본 것을 토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는 모두 211,605개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들을 각 품별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헤아려보자.


⑴ 제1품 유익한 마음(§§1~364)

① 제1장 욕계의 유익한 마음(§§1~159)

본서에서 욕계의 유익한 마음은 모두 8가지로 분류되어 설해져 있다. 이러한 여덟 가지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본 장은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설명해 나가고 있다. 욕계의 유익한 마음을 8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기쁨(samanassa)의 유무와 지혜(ñāṇa)의 유무와 자극(saṅkhāra)의 유무이다.(2×2×2=8) 이 분류의 기준은 후대까지 고스란히 전승이 되어서『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도 욕계의 원인이 있는 마음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채용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1장 §13을 참조하기 바란다.


② 제2장 색계의 유익한 마음(§§160~264)

색계의 유익한 마음은  여덟 가지 까시나(§§160~203)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204~247)  세 가지 해탈(§§248~250)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禪(§§251~262)  열 가지 부정(不淨)의 禪(§§263~264)의 다섯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첫 번째 기준은 여덟 가지 까시나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인 여덟 가지 까시나 가운데 첫 번째 까시나인 땅의 까시나를 통해서 일어나는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160~202에서 자세하게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이것은 나머지 색계 마음들을 설명하는 토대가 된다. 먼저 색계 마음들은 모두 4종禪과 5종禪의 9가지로 분류가 되고 이것은 모든 색계 마음과 출세간 마음에 기본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색계 마음은 네 가지 도닦음과 네 가지 대상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지 않은 ① 순수한 9가지 禪과 ② 네 가지 도닦음에 의해서 분류되는 네 가지와 ③ 네 가지 대상에 의해서 분류되는 네 가지와 ④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과 네 가지 대상이 결합된 4×4=16가지로 확장이 된다. 이렇게 하여 이 9가지 禪은 순수한 禪 한 가지 + 도닦음 네 가지 + 대상 네 가지 + 도닦음과 대상의 결합 16가지로 모두 1+4+4+16=25가지로 적용이 된다. 이렇게 하여 땅의 까시나 하나에 대해서 모두 25가지×9禪=225가지의 마음이 분류가 되어 나타난다. 주석서도 이렇게 계산하고 있다.(DhsA. 185~186, §202의 마지막 주해를 참조할 것.) 이것이 색계 마음들을 분류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도 있다. 이렇게 하여 여덟 가지 까시나에는 모두 225×8=1,800개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두 번째 기준은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이다.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204~247)에도 여덟 가지 까시나를 통한 색계 마음의 분류 방법이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러나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에는 네 가지 대상 가운데 오직 두 가지 대상만이 적용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 제한되었고 제한된 대상을 가진 禪 ㉡ 제한되었지만 무량한 대상을 가진 禪 ㉢ 무량하지만 제한된 대상을 가진 禪 ㉣ 무량하고 무량한 대상을 가진 禪의 네 가지 가운데 여기서는 ㉠ 제한되었고 제한된 대상을 가진 禪과 ㉢ 무량하지만 제한된 대상을 가진 禪의 두 가지만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순수한 禪 한 가지 + 도닦음 네 가지 + 대상 두 가지 + 도닦음과 대상의 결합 8가지로 모두 1+4+2+8=15가지가 적용이 된다. 그러므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들 가운데 첫 번째인 제한된 물질들의 경우에는 모두 15가지×9禪=135가지의 마음이 분류가 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 가운데 처음의 넷에는 모두 135×4=540개의 마음이 일어나고 청․황․적․백의 색깔을 가진 물질들에 대한 지배의 경지에는 네 가지 대상이 다 적용이 되어 이들 각각에는 까시나의 경우처럼 1+4+4+16= 25×9禪=225가지가 되어 청․황․적․백 모두에는 225×4=900개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에는 모두 540+900=1,440개의 마음이 적용이 된다.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세 번째 기준은 세 가지 해탈이다. 경에 나타나는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 가운데 ‘① 색계禪을 가진 자가 색깔들을 본다. ② 안으로 색계禪에 대한 인식이 없이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③ 청정하다고 확신한다.’라는 처음의 세 가지가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이 세 번째 기준으로 적용된다. 여덟 가지 해탈 가운데 4번째부터 7번째까지의 네 가지는 무색계에 속하고 8번째는 상수멸이라서 색계의 마음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 세 가지가 ‘세 가지 해탈(tīni vimokkhāni)’(§§248~250)이라는 주제로 색계의 경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세 가지 해탈도 각각 까시나의 경우처럼 25가지×9禪=225가지가 되어서 모두 25가지×9禪×3해탈=675개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250의 마지막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색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네 번째 기준은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혹은 사무량심이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인 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 평온의 네 가지 주제 가운데 처음의 셋으로는 4종선의 세 번째 禪과 5종선의 네 번째 禪까지 증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에는 9가지 禪 가운데 이 두 가지 禪을 제외한 7가지가 적용이 된다. 그래서 각각 25가지×7禪=175가지 색계의 마음이 이 셋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 

한편 평온은 4종선의 제4선과 5종선의 제5선만이 적용이 된다. 이러한 禪의 경지에서만 평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VRI본과 PTS본에 모두 5종선의 제5선은 언급이 되지 않고 오직 4종선의 제4선만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25가지×1=25가지의 색계 마음이 적용이 된다. 이렇게 하여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에 토대한 색계의 유익한 마음에는 모두 자․비․희․사 ― 175+175+175+25=550가지가 나타나고 있다.


 색계 유익한 마음을 분류하는 다섯 번째 기준은 열 가지 부정(不淨)의 禪이다. 열 가지 부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초선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264의 해당 주해(DhsA.199)와『청정도론』(Vis.VI.86)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은 모두 25가지×1禪×10부정=250가지의 마음이 된다.


③ 제3장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265~268)

무색계 마음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이다. 그리고 무색계는 그 경지로는 모두 색계 제4선과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265의 해당 주해와(DhsA.209)『청정도론』(Vis.X.5; 58)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은 25가지×1(제4선)×4처=100가지가 된다.


④ 제4장 삼계의 유익한 마음(§§269~276) 

본서에는 네 번째 유익한 마음으로 삼계의 유익한 마음을 나열하고 있다. 여기서는 유익한 마음들을 ① 저열한 것 ② 중간인 것 ③ 수승한 것 등부터 시작해서 ⑱ 저열한 검증의 지배를 가진 것 ⑲ 중간인 검증의 지배를 가진 것 ⑳ 수승한 검증의 지배를 가진 것 등으로 모두 20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20가지 방법의 분류는『청정도론』에도 나타나지 않고『아비담맛타상가하』즉『아비담마 길라잡이』에도 언급하지 않는다. 주석서의 설명처럼 이것은『빳타나』에서 나타난다고 한다.(본서 §269의 마지막 주해 참조) 

이 분류법을 적용하면 1. 욕계의 유익한 마음(§§269~270) 여덟 가지 가운데 네 가지는 지혜와 결합되지 않은 마음인데 이 경우에는 열의, 정진, 마음, 검증의 네 가지 지배 가운데 검증의 지배를 가진 마음은 빼야 한다. 그래서 ① 지혜와 결합된 욕계 유익한 마음은 4×20=80개이고 ② 지혜와 결합되지 않은 욕계 유익한 마음은 4×16=64개(검증은 뺌)가 되어 모두 144개의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269의 마지막 주해와 §270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색계의 유익한 마음(§§271~272)으로는 9禪×20=180개의 마음이,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273~276)으로는 1(제4선)×4×20=80개의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삼계의 유익한 마음에서는 모두 144+180+80=404개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⑤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277~364)

본서 §§277~364에서 설명하고 있는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도 복잡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마음이다. “‘출세간 마음(lokuttaracittāni)’이란 열반을 대상으로 가지는 것(nibbānārammaṇāni)이다.”(『아비담맛타상가하』(Abhi-Sgh.21) =『아비담마 길라잡이』제3장 §18)라고 정의되듯이 출세간 마음은 열반을 대상으로 한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의 네 가지 도와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네 가지 과의 마음을 뜻하고, 이 가운데 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네 가지는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에 해당하고, 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의 네 가지는 출세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에 속한다. 그래서 본서도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을 첫 번째 도부터 네 번째 도까지, 즉 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넷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도를 자세하게 분류하여 설명하고 이것을 생략 구문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와 네 번째 도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런데 성자들에게서 일어나는 마음들은 모두 출세간의 마음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만을 출세간 마음이라 한다. 예류자부터 불환자까지의 성자들에게서 일어나는 유익한 마음은 유익한 마음일 뿐이다. 이것을 출세간 마음이라고 결코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유학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해로운 마음은 해로운 마음일 뿐이다. 유학에게서 일어나는 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음들은 모두 과보를 가져온다. 물론 이러한 마음들은 악도에 태어나게 하는 재생연결식의 과보는 가져올 수 없다. 이것들은 결코 출세간의 마음이 아니다. 열반을 대상으로 한 마음만이 출세간 마음이다. 

아라한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마음이 일어나도 이것은 과보를 가져오지 못한다. 이처럼 아라한들에게 일어나는 좋은 마음은 유익한 마음이라 하지 않고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 한다. 즉 아라한에게 열반을 대상으로 한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출세간의 마음이고 아라한에게 그 외의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좋은 마음들은 작용만 하는 마음들이다. 과보로 나타난 마음은 아라한에게도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라한도 삶의 과정에서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마음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아라한에게 해로운 마음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출세간의 마음들의 개수에 대해서 살펴보자. 출세간도는  첫 번째 도(예류도, §§277~360),  두 번째 도(일래도, §361),  세 번째 도(불환도, §362),  네 번째 도(아라한도, §§363~364)로 나누어진다. 본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 도를 §§277~360에 걸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것을 두 번째부터 네 번째 도에 적용시키고 있다.

먼저 본서는 출세간의 도를 체득하는 방법을 다음의 20가지로 분류하고 이 가운데 첫 번째인 ① 출세간禪을 닦음에 초점을 맞추어서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 즉 출세간의 도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도 출세간의 마음을 5종선에 배대해서 (5禪×4도)+(5禪×4과)=40가지로 설명해내고 있다.


이렇게 하여 본서는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도 색계 유익한 마음에서처럼 먼저 禪을 4종선과 5종선의 아홉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은 당연히 도를 닦아서 실현된다. 그래서 순수한 도닦음으로 4종선과 5종선을 네 가지 도닦음과 배대해서 분류하고 있다. 출세간의 경지는 위빳사나에 토대한 반야 통찰지를 통해서 실현된다. 통찰지는 무상․고․무아의 삼특상을 통찰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343과 §350의 첫 번째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고․무아는 각각 무상해탈(無相解脫)과 무원해탈(無願解脫)과 공해탈(空解脫)과 연결이 된다.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이 가운데 무상해탈을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상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고 성스러운 팔정도에 믿음 혹은 바른 믿음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함과 원함 없음에 관한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만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351의 마지막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게 하여 본서는 네 가지 순수한 도닦음으로 4×9禪=36개의 마음을 배대하고 공함(§§343~344)으로 1×9禪=9개, 공함에 뿌리박은 도닦음(§§345~349)으로 4×9禪=36개, 원함 없음(§§350~351)으로 1×9禪=9개, 원함 없음에 뿌리박은 도닦음(§§352~356)으로 4×9禪=36개를 배대하여 모두 36+9+36+9+36=126개의 마음을 분류해 낸다.

이들을 다시 남은 19가지에도 적용시키면 된다.

그러면 모두 126×20=2,520개의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이 된다.


이들은 다시 네 가지 지배를 가짐에 적용이 된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여기서 ‘지배를 가짐’은 앞의 §204 이하에 나타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勝處, abhibhāyatana]가 아니라, 앞의 제4장 삼계의 유익한 마음(§§269~276)에서 언급된 열의․정진․마음․검증의 네 가지 지배(adhipati)를 뜻한다는 것이다. §358의 첫 번째 주해에서 인용한 주석서의 설명에서 보듯이 엄격히 분류하면 앞의 §§278~357은 순수한 것(suddhika)이고 여기서는 이 순수한 것 전체가 열의․정진․마음․검증의 네 가지 지배(adhipati)의 각각에 적용이 된다. 그러면 지배를 가짐(§§358~360)은 모두 2,520×4지배=10,080개가 된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 도에는 모두 2,520+10,080=12,600개가 된다. 즉 예류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12,600가지가 된다는 의미로 파악하면 되겠다.

그런데 §358의 첫 번째 주해에서 인용하였듯이 주석서는 스무 가지 큰 방법의 경우를 모두 200가지라고 하고 지배를 가짐에 200×4=800개가 되어서 첫 번째 도의 경우에 모두 1,000개가 되고 같이 하여 두 번째부터 네 번째도 각각 1,000개로 하여 모두 4,000개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겠다. 역자는 언급되고 있는 마음을 모두 다 계산하여 첫 번째 도를 통해서 12,600개의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고 같이 하여 남은 세 가지 도에도 각각 12,600개가 적용이 되는 것으로 계산하였다. 이렇게 하면,

 두 번째 도(§361)에도 2,520+10,080=12,600개의 마음이,

 세 번째 도(§362)에도 2,520+10,080=12,600개의 마음이,

 네 번째 도(§§363~364)에도 2,520+10,080=12,600개의 마음이 적용이 되어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에는 모두 12,600×4=50,400개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⑵ 제2품 열두 가지 해로운 마음(§§365~430)

본서 제2품 열두 가지 해로운 마음은 첫 번째 세 개 조 마띠까(ma3-1)의 두 번째인 해로운 법들(ma3-1-b)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모두 12개의 해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본서는 해로운 마음을 I. 첫 번째 해로운 마음(§§365~398)부터 XII. 열두 번째 해로운 마음(§§427~430)까지로 배대하여 이러한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아비담맛타상가하』로 그대로 전승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1장 I.1 해로운 마음 §§4~7를 참조하기 바란다.


⑶ 제3품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431~582)

본서는 제3품에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431~582)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첫 번째 세 개 조 마띠까(ma3-1)의 세 번째 논의의 주제인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다시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431~565)과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566~582)의 둘로 구성이 되는데 줄여서 과보의 마음과 작용의 마음, 즉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이 된다.


⒜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431~565)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은 다시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431~555)과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556~565)으로 나누어진다. 


·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431~555)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에는 다시 ① 욕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 16가지(원인 없는 마음 8가지(§§431~497)와 원인 있는 마음 8가지(§498))와 ② 색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 9가지(4종선 + 5종선, §§499~500)와 ③ 무색계 과보로 나타난 마음 4가지(§§501~504)와 ④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505~555)이 배대된다. 이것은『아비담맛타상가하』에도 그대로 전승이 되었다. 물론 색계 4종선은 5종선에 포함되기 때문에『아비담맛타상가하』에는 5종선만이 색계 마음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업을 짓는 마음인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은 반드시 과보를 가져온다. 과보의 마음[異熟識, vipāka-citta]은 풀어서 옮기면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다. 과보의 마음은,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이며 그 생에서 바왕가(존재지속심)의 역할을 하는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고, 삶의 과정(pavatti)에서 대상과 조우하는 마음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주석서 문헌들은 재생연결식의 역할을 하는 마음을 모두 19가지로 정리하고 있으며 삶의 과정에서 대상과 조우하는 역할을 하는 마음은 눈의 알음알이부터 몸의 알음알이까지의 전오식과 마노[意]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의 역할을 한다.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원인 없는 마음은 여덟 가지이고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원인 없는 마음은 일곱 가지이다.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것에는 열렬히 원하는(ati-iṭṭha) 대상에 대하여 일어난 기쁨이 함께하는 마음이 하나 더 있다.

이전에 지었던 유익한 업은 윤회의 과정에서는 유익한 재생연결식이라는 과보의 마음을 생기게 할 것이고 삶의 과정에서는 유익한 원인 없는 마음들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해로운 업은 당연히 해로운 재생연결식과 해로운 원인 없는 마음들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그러면 해로운 재생연결식의 역할을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평온이 함께하는 원인 없는 해로운 마노의 알음알이가 악도(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에 태어나는 재생연결식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선처에 태어났더라도 불구로 태어나고 천상이라는 선처에 태어났더라도 나무의 신이나 물의 신처럼 저열한 신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평온이 함께하는 원인 없는 유익한 마노의 알음알이가 이러한 곳에 태어나는 재생연결식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3장 §9와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들에서도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은 I. 첫 번째 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505~552)부터 IV. 네 번째 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555)의 넷으로 나누어지는데 각각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에 해당한다.

여기서도 첫 번째 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을 상세하게 분류하여 설명하고 이를 나머지 과보로 나타난 마음에 적용시키고 있다. 이들은 본서 제1품의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을 분류한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 즉 도의 마음에서는 모두 36+9+36+9+36=126개의 마음을 분류해 내었지만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에서는 다르다. 여기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에는 이들 다섯 가지 경우에 각각 공과 무상과 무원의 세 가지가 배대가 된다. 그리하여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은 출세간의 도의 마음의 세 배가 된다. 즉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도의 마음)으로는 모두 50,400개가 적용이 되었는데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은 이것의 세 배인 151,200개가 된다.

이것을 적어보면, ① [네 가지] 순수한 도닦음(§§505~509)에 3(공․무상․무원)×9禪×4도닦음=108개의 마음이, ② 순수한 공함(§§510~513)에 공1×3(공․무상․무원)×9선=27개의 마음이, ③ 공함과 도닦음(§§514~518)에 공1×3(공․무상․무원)×9선×4도닦음=108개의 마음이, ④ 순수한 원함 없음(§§519~522)에 무원1×3(공․무상․무원)×9선=27개의 마음이, ⑤ 원함 없음과 도닦음(§§523~527)에 무원1×3(공․무상․무원)×9선×4도닦음=108개의 마음이 배대되어 모두 108+27+108+27+108=378개의 마음이 배대된다. 이것은 출세간의 도의 마음에서 36+9+36+9+36=126개의 마음이 적용된 것에 3배가 된다. 이것은 지배를 가짐(§§529~552)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출세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에는 151,200개의 마음이 적용되어 이것은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 50,400개의 세 배가 된다. 이처럼『담마상가니』는 출세간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을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이를 통해서 각각 무상해탈과 무원해탈과 공해탈을 얻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556~565)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에는 ①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556~561)와 ②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요소(§§562~563)와 ③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64~565)가 있어서 5+1+1=7개가 된다.


⒝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566~582)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도 1.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66~576)과 2. 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7~578)과 3. 무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9~582)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은 ⑴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566~575)과 ⑵ 원인을 가진 작용만 하는 마음(§576)으로 구성된다.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 가운데 ① 작용만 하는 마노의 요소(§§566~567)와 ③ 평온이 함께한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74~575)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라한에게만 일어나는 마음이다. 특히 ② 기쁨이 함께하는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68~573)는 후대 주석서 문헌에서는 미소 짓는 마음으로 불리고 있다. 

아라한에게서 일어나는 좋은 마음은 과보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들을 유익한 마음이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 부르면서 유익한 마음과 구분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라한에게 일어나는 작용만 하는 마음의 개수는 유익한 마음과 일치한다. 그래서 원인을 가


<표1.3>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 나타나는 마음의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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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67)에도 8가지가 있고 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7~578)에도 색계 유익한 마음처럼 4,715개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무색계 작용만 하는 마음(§§579~582)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같이 네 개의 마음이 된다.


이렇게 하여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 마음에는 모두 3+8+4,715+4= 4,730개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하여『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는 유익한 것 55,627개 + 해로운 것 12개 + 과보로 나타난 것 151,236개 + 작용만 하는 것 4,730개 = 211,605개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 페이지와 같다.


한편 이들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심소)법들을 고유성질별로 정리하면 모두 52가지가 된다. 이러한 마음과 마음부수법들은『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89/121가지 마음과 52가지 심소법들로 정리가 되었다. 지면 관계상 211,605개의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심소법들을 살펴보는 것은 생략하겠다. 89/121가지 마음과 52가지 심소법들의 결합과 조합에 대한 도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2장의 말미에 실려 있는 <도표 2.4> 마음-마음부수의 자세한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상에서 보았듯이『담마상가니』제1편은 색계 마음과 출세간 마음을 아주 자세히 분류하고 열거하고 나열하고 있다. 역자는 이것이『담마상가니』제1편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만 봐도『담마상가니』는 4종선과 5종선으로 분류되는 본삼매를 증득하고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를 체득하여 출세간의 경지를 성취한 성자들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이러한 경지를 체득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역자는『담마상가니』는 禪을 체득한 분들이나 깨달은 분들 혹은 성자의 경지를 체득한 분들, 특히 아라한들이 법을 체득한 기쁨과 법을 체득한 즐거움을 누리고 만끽하는 방법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광대무변이라는 말도 붙일 수 없는 법의 바다에서 뒤 파도가 앞 파도에 연이어 출렁대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거듭하듯이 법들의 갈무리와 법들의 교향곡과 법들의 오페라도 이렇게 끊임없이 조건생․조건멸하며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담마상가니』요 법들의 갈무리요 법의 교향곡이요 법의 오페라인 것이다. 


『담마상가니』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드러난 제법의 실상을 조화롭고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중생이 없다. 깨달은 자도 성자도 없다. 단지 법들만이 있다. 광활한 바다와 같이 단지 법들의 조화로운 흐름만 있을 뿐이다.『담마상가니』는 이것을 법의 언어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ala)의 생략의 기법을 총동원하여 묘사하고 있다.


6. 맺는말

이상으로『담마상가니』제1권을 구성하고 있는『담마상가니』마띠까와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담마상가니』는 마띠까에 대한 설명이고 이 마띠까를 마음의 일어남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하려 한다. 본서 제3편 간결한 설명 편의 주석에서『담마상가니 주석서』는 본서 제1편에서『담마상가니』의 첫 번째 마띠까를 마음의 일어남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이 방법이 나머지 마띠까들에도 다 적용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DhsA.343, §985의 해당 주해 참조)


역자는 본서 역자 서문 §12-⑶에서 법은 현장성을 가진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 법의 현장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시점이 바로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 순간 마음이 일어나는 지금․여기를 떠나서 현장은 있을 수 없고, 이런 마음의 일어남을 떠나서 법들(dhamm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1편의 강조점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담마상가니』제1편에서 현장성을 나타내는 단어는 사마야(samaya, 때, 시점, 시기)이다. 놀라운 것은『담마상가니』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구성하고 있는 582개의 문단 가운데 때나 시점이나 시기나 시간으로 옮겨지고 현장성을 뜻하는 이 tasmiṁ samaya(그때, 그 시점에)가 들어가지 않은 문단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을 통해서 법은 마음이 일어나는 바로 그 시점,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마음의 일어남이라는 현장을 떠나서 법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이 일어나는 지금․여기, 특히 나의 삶의 현장인 내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의 마음이 일어나는 지금․여기에서 함께 일어나는 법들은 조건발생임을 본서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현장성을 가진 법들의 연기(緣起) 혹은 조건발생을 파악할 것인가? 현장성을 가진 법들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초기불전이 강조하는 것은 마음챙김․삼매․통찰지, 즉 사띠․사마디․빤냐[念․定․慧, 염․정․혜, sati-samādhi-paññā]이다. 몸․느낌․마음․법[身․受․心․法]의 21가지 명상주제로 나누어지는 법들 가운데 하나를 대상으로 마음을 챙기고[念, 마음챙김, sati] 이 대상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心一境, 삼매, cittassa ekaggatā] 이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는 것[般若, 통찰지, paññā]이 바로 염․정․혜이다. 그리고 마음챙김을 토대로 하여[念處] 구체화된 수행 방법이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며, 사마타는 집중을 중히 여기고 위빳사나는 통찰지를 중히 여긴다. 

본서를 읽는 독자들께서 부디 지금․여기 나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마음이 일어나는 지금․여기에서 함께 일어나는 법들을 통찰하여 이들이 조건발생임을 체득하기를 기원하며 제1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담마상가니』마띠까[論母]
페이지
I. 세 개 조 마띠까(ma3-1~22)163
II. 두 개 조 마띠까(ma2-1~142)178
    ⑴ 원인의 모둠(ma2-1~6)179
    ⑵ 틈새에 있는 짧은 두 개 조(ma2-7~13)181
    ⑶ 번뇌의 모둠(ma2-14~19)183
    ⑷ 족쇄의 모둠(ma2-20~25)185
    ⑸ 매듭의 모둠(ma2-26~31)186
    ⑹ 폭류의 모둠(ma2-32~37)188
    ⑺ 속박의 모둠(ma2-38~43)189
    ⑻ 장애의 모둠(ma2-44~49)190
    ⑼ 집착[固守]의 모둠(ma2-50~54)191
    ⑽ 틈새에 있는 긴 두 개 조(ma2-55~68)192
    ⑾ 취착의 모둠(ma2-69~74)196
    ⑿ 오염원의 모둠(ma2-75~82)198
    ⒀ 마지막 두 개 조(ma2-83~100)199
    ⒁ 경장의 두 개 조 마띠까(ma2-101~142)203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1~582)
페이지
 제1품 유익한 마음(§§1~364)217
 제1장 욕계의 유익한 마음(§§1~159)223
     I. 첫 번째 마음(§§1~145)225
        ⑴ 법들을 정의하는 부문225
        - 용어의 분류(§§1〜57)
          ⒜ 법의 개요에 관한 부문(§1)240
          ⒝ 법의 해설에 관한 부문(§§2~57)242
        ⑵ 항목의 부문(§§58~120)291
          ⒜ 개요(§58)291
          ⒝ 해설(§§59~120)295
        ⑶ 공함의 부문(§§121~145)308
          ⒜ 개요(§121)308
          ⒝ 해설(§§122~145)310
     II. 두 번째 마음(§146)313
     III. 세 번째 마음(§§147~148)314
     IV. 네 번째 마음(§149)318
     V. 다섯 번째 마음(§§150~155)318
     VI. 여섯 번째 마음(§156)323
     VII. 일곱 번째 마음(§§157~158)323
     VIII. 여덟 번째 마음(§159)326
 제2장 색계의 유익한 마음(§§160~264)328
     I. 여덟 가지 까시나(§§160~203)328
        1. 땅의 까시나(§§160~202)328
           ⑴ 4종禪의 방법(§§160~166)328
           ⑵ 5종禪의 방법(§§167~175)337
           ⑶ 네 가지 도닦음(§§176~180)344
           ⑷ 네 가지 대상(§§181~185)348
           ⑸ 열여섯 번의 결합(§§186~202)350
        2. 여덟 가지 까시나 [가운데 남은 일곱 가지]와 
           열여섯 번의 결합(§203)358
     II.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勝處](§§204~247)360
        1. 제한된 물질들(§§204~222)361
           ⑴ 4종禪의 초선(初禪)(§204)361
           ⑵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205)363
           ⑶ 네 가지 도닦음(§§206~210)364
           ⑷ 두 가지 대상(§§211~213)366
           ⑸ 여덟 번의 결합(§§214~222)367
        2. 제한되었고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물질들 
            ― 이것 역시 여덟 번의 결합(§223)370
           ⑴ 4종禪의 초선(初禪)(§223)370
           ⑵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224)371
        3. 무량한 물질들(§§225~243)372
           ⑴ 4종禪의 초선(§225)372
           ⑵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226)372
           ⑶ 네 가지 도닦음(§§227~231)373
           ⑷ 두 가지 대상(§§232~234)374
           ⑸ 또 다른 여덟 번의 결합(§§235~243)375
        4. 무량하고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물질들 
            ― 이것 역시 여덟 번의 결합(§§244~245)379
           ⑴ 4종선의 초선(§244)379
           ⑵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245)379
            5. 푸른 색깔의 물질들(§246)380
            6~8. 노란 색깔 등의 물질들(§247)381
     III. 세 가지 해탈 ― 열여섯 번의 결합(§§248~250)381
        1. 첫 번째(§248) 
        2. 두 번째(§249) 
        3. 세 번째(§250) 
     IV.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禪 ― 열여섯 번의 결합(§§251~262)385
        1. 자애[慈](§§251~257)385
           ⑴ 4종禪의 방법(§§251~253)
           ⑵ 5종禪의 방법(§§254~257) 
        2. 연민[悲](§§258~259)388
        3. 함께 기뻐함[喜](§§260~261)389
        4. 평온[捨](§262)390
     V. 열 가지 부정(不淨)의 禪 
       ― 열여섯 번의 결합(§§263~264)391
 제3장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265~268)396
     네 가지 무색계禪 ― 열여섯 번의 결합(§§265~268)396
     1. 공무변처(§265)396
     2. 식무변처(§266)399
     3. 무소유처(§267)400
     4. 비상비비상처(§268)401
 제4장 삼계의 유익한 마음(§§269~276)403
     1. 욕계의 유익한 마음(§§269~270)403
     2. 색계의 유익한 마음(§§271~272)405
     3.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273~276)407
 제5장 출세간의 유익한 마음(§§277~364)410
     I. 첫 번째 도 ― 스무 가지 큰 방법(§§277~360)411
        1. 禪(§§277~356)411
          ⑴ [네 가지] 순수한 도닦음(§§277~342)411
             ⒜ 4종禪의 초선(§§277~341)
               ① 도닦음도 어렵고 초월지도 느린 초선(§§277~338)
               ②~④ 도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초선 등(§§339~341)
             ⒝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342)
          ⑵ 공함[空性](§§343~344)437
               ① 4종선의 초선(§343)
               ②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344) 
          ⑶ 공함에 뿌리박은 도닦음(§§345~349)439
          ⑷ 원함 없음[無願](§§350~351)441
               ① 4종선의 초선(§350)
               ②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351) 
          ⑸ 원함 없음[無願]에 뿌리박은 도닦음(§§352~356)445
        2~20. 스무 가지 [가운데 남은 열아홉 가지] 큰 방법(§357)447
        지배를 가짐(§§358~360)449
     II. 두 번째 도(§361)451
     III. 세 번째 도(§362)152
     IV. 네 번째 도(§§363~364)453
제2품 열두 가지 해로운 마음(ma3-1-b, §§365~430)456
     I. 첫 번째 해로운 마음(§§365~398)456
       ⒜ 법의 개요에 관한 부문(§365)457
       ⒝ 법의 해설에 관한 부문(§§366~398)463
     II.  두 번째 [해로운 마음](§399)474
     III. 세 번째 [해로운 마음](§§400~401)475
     IV. 네 번째 [해로운 마음](§402)478
     V.  다섯 번째 [해로운 마음](§§403~408)478
     VI. 여섯 번째 [해로운 마음](§409)482
     VII.  일곱 번째 [해로운 마음](§§410~411)482
     VIII. 여덟 번째 [해로운 마음](§412)485
     IX.  아홉 번째 [해로운 마음](§§413~420)486
     X.   열 번째 [해로운 마음](§421)492
     XI.  열한 번째 [해로운 마음](§§422~426)493
     XII. 열두 번째 [해로운 마음](§§427~430)497
제3품 결정할 수 없는[無記] 법들(ma3-1-c, §§431~582)503
 제1장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431~565)504
    1.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431~555)504
       ⑴ 욕계 과보의 마음(§§431~498)504
           ①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다섯 가지 알음알이들(§§431~454)504
               ⓐ 눈의 알음알이(§§431~442)
               ⓑ 귀의 알음알이부터 몸의 알음알이까지(§§443~454) 
           ②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요소(§§455~468)513
           ③ 유익한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469~497)517
               ⓐ 기쁨이 함께하는 경우(§§469~483)
               ⓑ 평온이 함께하는 경우(§§484~497)
           ④ 여덟 가지 과보로 나타난 큰마음(§498)525
       ⑵ 색계 과보의 마음(§§499~500)531
           ① 4종선의 초선(§499)
           ② 4종禪의 나머지와 5종禪(§500) 
       ⑶ 무색계 과보의 마음(§§501~504)532
       ⑷ 출세간의 과보의 마음(§§505~555)535
         I. 첫 번째 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 
           스무 가지 큰 방법(§§505~552)535
           ⑴ 출세간禪(§§505~527)535
               ① [네 가지] 순수한 도닦음(§§505~509) 
               ② 순수한 공함(§§510~513) 
               ③ 공함과 도닦음(§§514~518) 
               ④ 순수한 원함 없음(§§519~522) 
               ⑤ 원함 없음과 도닦음(§§523~527) 
           ⑵~⒇ 스무 가지 [가운데 남은 열아홉 가지] 큰 방법(§528)551
            지배를 가짐(§§529~552)553
            ⑴ 열의의 지배를 가진 출세간禪(§§529~551)553
               ① 열의의 지배를 가진 순수한 도닦음(§§529~533)
               ② 열의의 지배를 가진 순수한 공함(§§534~537)
               ③ 열의의 지배를 가진 공함과 도닦음(§§538~542)
               ④ 열의의 지배를 가진 순수한 원함 없음(§§543~546)
               ⑤ 열의의 지배를 가진 원함 없음과 도닦음(§§547~551)
            ⑵~⒇ 스무 가지 [가운데 남은 열아홉 가지] 큰 방법(§552)568
                     나머지 세 가지 지배를 가짐(§552)569
         II~IV. 두 번째 도부터 네 번째 도의 과보로 나타난 
                 마음(§§553~555)569
    2.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결정할 수 없는 마음(§§556~565)573
       ①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다섯 가지 알음알이들[前五識](§§556~561)
       ②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요소(§§562~563)
       ③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64~565) 
 제2장 작용만 하는 결정할 수 없는[無記] 마음(§§566~582)579
    1.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66~576)579
       ⑴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566~575)579
          ① 작용만 하는 마노의 요소(§§566~567)
          ② 기쁨이 함께하는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68~573)
          ③ 평온이 함께하는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574~575)
       ⑵ 원인을 가진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6)586
    2. 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7~578)587
    3. 무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79~582)588
부록 - VRI(Be)본과 PTS(Ee)본의 문단 번호 대조표591


<표1.1> 89가지 마음119
<표1.2> 상좌부 불교 89가지 마음 번호 비교122
<표1.3> 제1편 마음의 일어남 편에 나타나는 마음의 개수156





담마상가니 (法集論, 법의 갈무리) (1/2)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제1권: 600쪽/ 제2권 646쪽

정가: 각권 30,000원 (초판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