쿳다까 니까야 - 우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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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나 해제 목차>

해제페이지
1. 들어가는 말25
2. 우다나란 무엇인가26
    ⑴ 문자적인 의미26
    ⑵ 삼장에 나타나는 udāna(우다나)라는 용어의 용례27
        ① 구분교(九分敎)의 udāna(우다나)27
        ②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와 udāna(우다나)28
            Ⓐ 경장에 나타나는 ‘udānaṁ udānesi’의 용례29
            Ⓑ 율장에 나타나는 udāna의 용례32
3. 우다나에 대한 주석서들의 설명32
    ⑴ 우다나에 대한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32
        ① 구분교의 우다나33
        ②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33
    ⑵ 우다나에 대한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34
        ① 우다나의 일반적인 의미34
        ② 게송과 희열은 일반적인 설명일 뿐이다36
    ⑶ 붓다고사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의 차이점37
4. 부처님의 다른 게송들은 우다나가 될 수 없는가39
    ⑴ 본서에서 우다나는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이다39
    ⑵ 부처님의 다른 게송들은 우다나가 될 수 없는가40
        ① 부처님의 오도송은 우다나가 아닌가43
        ②「초전법륜경」에 나타나는 기쁨에서 우러나온 말씀44
5. 우다나는 모두 80개인가 82개인가?45
    ⑴ 82개 -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45
    ⑵ 80개 - 담마빨라 스님과 사리뿟따 스님의 견해46
    ⑶ 본서에는 모두 82개의 우다나가 나타난다47
    ⑷ 삼장 전체에는 82개이고 본서에는 80개이다48
6.『우다나』의 구성52
    ⑴ 주석서에서 정리하는『우다나』의 구성52
    ⑵ 각 경의 구성 및 전개 방법54
        ① 서문[因由分, nidāna]54
        ② 배경이 되는 일화54
        ③ 일화와 우러나온 말씀을 연결하는 정형구55
        ④ ‘attha(의미)’와 ‘udāna(우러나온 말씀)’를 통한 주석서의 정리55
        ⑤ 첨언이 없이 우러나온 말씀으로 끝남56
7. 각 품의 개관56
    ⑴ 제1품 깨달음 품(Ud1:1~10)57
    ⑵ 제2품 무짤린다 품(Ud2:1~10)58
    ⑶ 제3품 난다 품(Ud3:1~10)59
    ⑷ 제4품 메기야 품(Ud4:1~10)59
    ⑸ 제5품 소나 품(Ud5:1~10)60
    ⑹ 제6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Ud6:1~10)60
    ⑺ 제7품 작은 품(Ud7:1~10)61
    ⑻ 제8품 빠딸리 마을 품(Ud8:1~10)61
8.『우다나』에 나타나는 경들의 분류62
    ⑴ 우다나를 읊으신 곳62
    ⑵ 우다나를 읊으신 대상63
    ⑶ 게송으로 된 우다나와 산문으로 된 우다나65
    ⑷ 삼장에 나타나는 본서의 경들과 동일한 경들66
9.『우다나』의 주제68
    ⑴ 가부좌를 하고 앉음 - 24개 정도의 경들68
    ⑵ 제자들의 일상생활 및 일화 - 11개 정도의 경들70
    ⑶ 제자들의 한담 - 3개 정도의 경들71
    ⑷ 여러 가지 행복 - 무짤린다 품의 10개 경들 등72
    ⑸ 나쁜 상황이나 비극적인 상황73
    ⑹ 바라문들과 외도 유행승들76
    ⑺ 깨달음의 경지와 열반에 대한 명쾌한 말씀81
10.『우다나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85
    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 18가지86
    ⑵ 담마빨라 스님에 대한 자료 5가지88
    ⑶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93
    ⑷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97


제1품 깨달음 품(Ud1:1~10)
경이름목차
깨달음 경1(Ud1:1)103
깨달음 경2(Ud1:2)112
깨달음 경3(Ud1:3)115
흥흥거림 경(Ud1:4)121
바라문 경(Ud1:5)126
마하깟사빠 경(Ud1:6)132
아자깔라빠까 경(Ud1:7)141
상가마지 경(Ud1:8)141
헝클어진 머리를 한 고행자 경(Ud1:9)144
바히야 경(Ud1:10)146


제2품 무짤린다 품(Ud2:1~10)
경이름목차
무짤린다 경(Ud2:1)161
왕 경(Ud2:2)165
몽둥이 경(Ud2:3)169
존경 경(Ud2:4)170
청신사 경(Ud2:5)173
임산부 경(Ud2:6)174
외동아들 경(Ud2:7)177
숩빠와사 경(Ud2:8)178
위사카 경(Ud2:9)187
밧디야 경(Ud2:10)190


제3품 난다 품(Ud3:1~10)
경이름목차
업이 익어서 생김 경(Ud3:1)197
난다 경(Ud3:2)198
야소자 경(Ud3:3)206
사리뿟따 경(Ud3:4)214
마하목갈라나 경(Ud3:5)216
삘린다왓차 경(Ud3:6)219
삭까의 감흥어 경(Ud3:7)221
탁발하는 자 경(Ud3:8)226
기술 경(Ud3:9)229
세상 경(Ud3:10)232


제4품 메기야 품(Ud4:1~10)
경이름목차
메기야 경(Ud4:1)243
경솔함 경(Ud4:2)253
소치는 사람 경(Ud4:3)255
약카의 공격 경(Ud4:4)258
나가 경(Ud4:5)262
삔돌라 경(Ud4:6)267
사리뿟따 경(Ud4:7)270
순다리 경(Ud4:8)271
우빠세나 경(Ud4:9)278
사리뿟따의 고요함 경(Ud4:10)281


제5품 소나 품(Ud5:1~10)
경이름목차
더 사랑스러움 경(Ud5:1)286
단명함 경(Ud5:2)285
나환자 숩빠붓다 경(Ud5:3)288
아이 경(Ud5:4)295
포살 경(Ud5:5)296
소나 경(Ud5:6)310
깡카레와따 경(Ud5:7)318
승가의 분열 경(Ud5:8)322
무례함 경(Ud5:9)325
쭐라빤타까 경(Ud5:10)327


제6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Ud6:1~10)
경이름목차
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331
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Ud6:2)345
반조 경(Ud6:3)351
여러 외도 경1(Ud6:4)354
여러 외도 경2(Ud6:5)362
여러 외도 경3(Ud6:6)368
수부띠 경(Ud6:7)373
기녀 경(Ud6:8)376
치달려 감 경(Ud6:9)382
출현함 경(Ud6:10)384


제7품 작은 품(Ud7:1~10)
경이름목차
라꾼따까 밧디야 경1(Ud7:1)387
라꾼따까 밧디야 경2(Ud7:2)389
들러붙음 경1(Ud7:3)391
들러붙음 경2(Ud7:4)392
라꾼따까 밧디야 경3(Ud7:5)393
갈애의 멸진 경(Ud7:6)395
사량분별의 멸진 경(Ud7:7)398
깟짜나 경(Ud7:8)401
우물 경(Ud7:9)407
우데나 경(Ud7:10)410


제8품 빠딸리 마을 품(Ud8:1~10)
경이름목차
열반과 관련됨 경1(Ud8:1)417
열반과 관련됨 경2(Ud8:2)424
열반과 관련됨 경3(Ud8:3)426
열반과 관련됨 경4(Ud8:4)432
쭌다 경(Ud8:5)434
빠딸리 마을 경(Ud8:6)443
두 갈래 길 경(Ud8:7)453
위사카 경(Ud8:8)455
답바 경1(Ud8:9)458
답바 경2(Ud8:10)461


역자 후기464
참고문헌469
찾아보기483




<우다나 해제>


1. 들어가는 말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法, dhamma]을 담고 있는 빠알리 경장은 5부 니까야(Nikāya, 모음, 묶음)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것은 ⑴『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⑵『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⑶『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相應部, 주제별 경들의 모음) ⑷『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숫자별 경들의 모음) ⑸『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그 외 여러 가르침의 모음)이다.


이 가운데『쿳다까 니까야』는 15개 경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①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 小誦經), ②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③ 우다나(Udāna, 自說經), ④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⑤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 ⑥ 위마나왓투(Vimānavatthu, 天宮事經), ⑦ 뻬따왓투(Petavatthu, 餓鬼事經), ⑧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經), ⑨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經), ⑩ 자따까(Jātaka, 本生經), ⑪ 닛데사[義釋, ㉠ Mahā-Niddesa(大義釋), ㉡ Culla-Niddesa(小義釋)], ⑫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碍解道), ⑬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 ⑭ 붓다왐사(Buddhavaṁsa, 佛種姓經), ⑮ 짜리야삐따까(Cariyāpiṭaka, 所行藏經)이다.


이 15개 가르침 가운데 ② 담마빠다(법구경), ③ 우다나(자설경), ④ 이띠웃따까(여시어경), ⑤ 숫따니빠따(경집), ⑧ 테라가타(장로게경), ⑨ 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⑩ 자따까(본생경) 등은 4부 니까야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원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러나온 말씀’으로 옮기고 있는『우다나』(Udāna)는 이처럼 빠알리 삼장 가운데『쿳다까 니까야』의 세 번째로 전승되어 온다.


2. 우다나란 무엇인가

⑴ 문자적인 의미

문자적으로 udāna는 PED에서 밝히고 있듯이 ud(up)+√an(to breath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다. 그러므로 우다나는 숨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오듯이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이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와서 드러나고 표현된 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찍이 CHD에서 Childers는 ‘뿜어내는 호흡, 열렬하거나 기쁨에 넘치는 언어 표현, [기쁘거나 슬픈] 강한 느낌의 언어적 표출(upward aspiration, enthusiastic or joyous utterance, expression of intense feeling (whether of joy or sorrow) in words)’로 이해하였다. PED도 ‘내쉬는 숨, 기쁨에 찬 함성, 즉 언어 표현임. 대부분 운율의 형태로 되어있으며 기쁘거나 슬픈 특별히 강한 감정에 의해서 고무되어 있음(breathing out, exulting cry, i.e. an utterance, mostly in metrical form, inspired by a particularly intense emotion, whether it be joyful or sorrowful)’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BDD는 ‘정서적인 언어 표현(an emotional utterance)’으로 옮기고 있다. 이런 설명들을 참조하여 본서에서는 우다나[udāna(ud(up)+√an(to breathe)]를 ‘우러나온 말씀’으로 통일하여 옮겼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기쁘거나 슬픈 강한 느낌에 대한 언어적 표현은 본서에 포함된 80개 경들과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imaṁ udānaṁ udānesi(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로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 문헌에서는 드물게 ‘우다나가 전개되었다(udānaṁ pavattesi).’(ApA.66)나 ‘우다나를 설하셨다(udānaṁ abhāsi).’(UdA.189)로 나타나기도 한다.


⑵ 삼장에 나타나는 udāna(우다나)라는 용어의 용례

역자는 역자의 컴퓨터에 정리되어 있는 빠알리 삼장의 텍스트 파일 자료에서 빠알리 삼장 가운데 ‘udānena’나 ‘udānassa’나 ‘udānānaṁ’이나 ‘udānāya’나 ‘udāne’나 ‘udānesu’ 등으로 검색을 해봤다. 놀랍게도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udāna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곳의 문맥은 ① 구분교의 다섯 번째인 udāna(우다나)와 ②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의 udāna(우다나) 두 가지 외에는 없었다. 이제 이 두 가지 문맥을 중심으로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우다나라는 용어의 용례를 살펴보자.


① 구분교(九分敎)의 udāna(우다나)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용, 특히 형식에 따라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로도 분류된다. 오히려 경장 가운데『쿳다까 니까야』에 해당하는 부분은 북방에서는 따로 전승되어 오지 않으며 4부 니까야에 해당하는 부분만 4아함으로 전승되어 온다. 물론『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여러 경전들은 단행본으로 전승되어 중국에서 개별적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 구분교의 분류 방법은 상좌부 불교뿐만 아니라 북방의 여러 부파들과 대승불교에서도 공히 인정하는 방법이다. 


구분교(九分敎), 즉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 satthu-sāsana)은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자설(自說, 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의 아홉 가지이다. 우다나는 이 가운데 다섯 번째인 자설(自說, 感興語, udāna)로 나타나고 있다. 이 구분교의 정형구는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경장의 10개 경들과 논장의 세 곳에 나타나고 있는데(하나의 경 안에 몇 번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출처를 나열하면, M22 §§10~11; A4:102 §§3~6; A4:107 §3, §§5~6; A4:186 §2; A4:191 §§1~4; A5:73 §2, §6; A5:74 §2, §6; A5:155 §2, §8; A6:51 §3, §5; A7:64 §3; Vbh15 §724(Vbh.294); Pug.43; 62이다. 상좌부에서 전승되어 오는 본서『우다나』는 중국에서 한역되지는 않았지만 이 우다나는 이러한 구분교의 분류 방법 가운데 다섯 번째인 자설(自說) 혹은 무문자설(無問自說)로 번역되어 나타난다.


②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와 udāna(우다나)

둘째는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것은 본서의 80개 경들에도 모두 나타나고 있다. 본서를 제외하면 이렇게 나타나는 곳은 경장의 41군데와 율장의 15군데로 모두 56곳이었다. 이 외에 빠알리 주석서 문헌이 아닌 빠알리 삼장에서 udāna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여기서는 구분교의 다섯 번째인 udāna로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 본서의 80개 경들에 나타나는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로 나타나는 경장과 율장의 56곳을 중심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살펴볼 점은 이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라는 구문이 누구에게 적용되는가이다. 56군데의 문맥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첫째, 부처님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경우와 둘째, 다른 존재들이 읊은 경우이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경장과 율장으로 나누어서 이 구문이 나타나는 곳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경장에 나타나는 ‘udānaṁ udānesi’의 용례

경장에는 이 구문이 모두 41군데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이것을 세존께서 읊으신 경우와 다른 존재들이 읊은 경우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이 41곳 가운데 세존께서 읊으신 우다나는 9군데에 나타난다. 그리고 나머지 32군데 정도는 세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천신들이 읊은 감격과 감흥에 어린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다른 존재들이 읊은 우다나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다른 존재들이 읊은 우다나

㉠ D21 §2.1, M27 §8, M87 §29, M91 §23, M100 §2, S7:1 §2, A2:4:6 §5, A4:194 §2 등의 여덟 곳에서는 인간이나 천신들이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 -ssa).’를 세 번 읊은 것을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tikkhattuṁ udānaṁ udān -esi).’라고 언급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의 첫 번째 상윳따인 제1권「천신 상윳따」의「좋음 경」(S1:33)과「돌조각 경」(S1:38)에 담겨있는 13개의 감흥어는 천신들이 세존께 와서 세존의 면전에서 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경에는 “한 곁에 선 어떤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ekamantaṁ ṭhitā kho ek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ṁ udānaṁ udānesi).” (S1:33 §2; S1:38 §3)나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ṁ udānaṁ udānesi).” (S1:33 §§3~7; S1:38 §§4~9)로 나타나고 있다.


㉢ 그 외『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에는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읊은 두 개의 감흥어가 나타나고(§1, §12) 여기에 대해서『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희열에 찬 말(pītivacana)은 가슴에 담아둘 수 없다. 넘쳐서 안에 넣어두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것을 감흥어라 한다.”(DA.i.141)라고 우다나를 설명하고 있다.

「암밧타 경」(D3)에서는 옥까까 왕이 “오, 참으로 왕자들은 사꺄들이로구나. 오, 참으로 왕자들은 최상의 사꺄들이로구나.”(D3 §16)라고 읊은 감흥어가 나타난다.

『맛지마 니까야』제3권「웨카낫사 경」(M80)에는 웨카낫사 유행승이 세존의 곁에서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M80 §2)라고 읊은 것(ekamantaṁ ṭhito kho vekhanas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udānaṁ udānesi)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상윳따 니까야』S3:13 §6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D17 §2.2에는 마하수닷사나 왕이, M86 §18에는 앙굴리말라 존자가, M99 §31에는 자눗소니 바라문이, A5:58 §1에는 릿차위의 마하나마가, D33 §1.10(41)과 A5:170 §1에서는 광음천의 신들이 읊는 것으로 나타난다. 


ⓑ 세존께서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우다나)

세존이 읊지 않으신 이런 감흥어들을 제외하면 본서를 제외하고 경장의 5부 니까야에서 세존께서 직접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 혹은 우다나는 9군데에 나타난다. 이 가운데『디가 니까야』제2권「대반열반경」(D16)에는 §1.34와 §3.10과 §4.43에 각각 한 개씩 모두 세 개의 우러나온 말씀이 나타난다. 그리고『상윳따 니까야』제3권「감흥어 경」(S22:55 §2)과 제6권「탑묘 경」(S51:10) §15과『앙굿따라 니까야』제5권「대지의 진동 경」(A8:70) §9에도 부처님께서 읊으신 각각 한 개씩의 우러나온 말씀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본서「빠딸리 마을 경」(Ud8:6)은「대반열반경」(D16) §§1.19 ~1.34와 같으며 그래서「대반열반경」§1.34에 나타나는 우러나온 말씀은 본서「빠딸리 마을 경」(Ud8:6) §15와 같다. 그리고 본서「쭌다 경」(Ud8:5)은「대반열반경」(D16) §§4.13~4.25, §§4.39~4.43과 같다. 그래서「대반열반경」§4.43은 본서「쭌다 경」(Ud8:5) §14의 우러나온 말씀과 같다. 

한편「탑묘 경」(S51:10)과「대지의 진동 경」(A8:70)은『디가 니까야』§§3.1~3.10과 같으며 이것은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과도 같다. 그러므로「탑묘 경」(S51:10) §15와「대지의 진동 경」(A8:70) §9의 우러나온 말씀은『디가 니까야』§3.10에 나타나는 것과 같으며 이것은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 §15의 우러나온 말씀과 같다. 이처럼 이 6개 우러나온 말씀들은「대반열반경」(D16) §1.34와 §3.10과 §4.43의 3개의 우러나온 말씀으로 줄어들며 이들은 모두 본서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상윳따 니까야』제3권「감흥어 경」(S22:55) §2의 우러나온 말씀은『맛지마 니까야』제3권「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 §10과『앙굿따라 니까야』제6권「꼬살라 경」1(A10:29) §12에도 나타나고 이것은 본서「깟짜나 경」(Ud7:8) §2의 우러나온 말씀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 §10과「꼬살라 경」1(A10:29) §12에서는 우러나온 말씀, 즉 감흥어라고 부르지 않고 인용으로만 나타나고 있어서 여기서 우러나온 말씀의 계산에는 넣지 않았다. 이 둘까지 넣으면 모두 11곳이 된다.


그러나『맛지마 니까야』제3권의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 도 가운데 불사(不死)로 인도하는 /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네.”(M75 §19)와『상윳따 니까야』「초전법륜 경」(S56:11)에 나타나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56:11 §20)라는 이 두 개의 우러나온 말씀은 본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냐따꼰단냐 존자에 대한 이 우러나온 말씀은『무애해도』(Ps.ii.149)에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경장의 5부 니까야에서 세존께서 직접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 즉 우다나는 9군데에 나타나고 이들은 같은 것을 하나로 모으면 모두 5개의 우다나가 되고 이 가운데 3개는 본서에 나타나고 2개는 본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5-⑷도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게 하여 경장에는 모두 41군데에서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 율장에 나타나는 udāna의 용례

udān이나 혹은 udānaṁ udānesi로 검색해 보면 율장에도 udāna라는 용어만 단독으로 나타나는 곳은 없고 모두 15곳에서 udānaṁ udānesi의 구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율장에 나타나는 이 15개의 우다나 가운데 세존께서 읊으신 것은 아래에 밝히고 있듯이 모두 12개로『마하왁가』(대품)의 9군데와『쭐라왁가』(소품)의 3군데에 나타난다. 이 12개 가운데 11개는 본서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나머지 한 개는 위에서 언급한「초전법륜 경」(S56:11)에 나타나는 안냐따꼰단냐 존자에 대한 우러나온 말씀이다. 이 15개에 대해서도 본 해제 §5-⑷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논장에는 udānaṁ udānesi 구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논장에서 udāna라는 용어는 구분교의 명칭으로서만『위방가』에서 한 곳(Vbh.294)과『인시설론』에서 두 곳(Pug.43; 62)에 나타날 뿐이다.

이처럼 우다나라는 용어는 구분교의 문맥을 제외하면 모두 udānaṁ udānesi 구문으로 본서를 제외한 초기불전의 56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3. 우다나에 대한 주석서들의 설명

이상으로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udāna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이 udāna가 주석서 문헌에서는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⑴ 우다나에 대한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은 율장과 논장과 4부 니까야를 위시한『청정도론』등 12개의 주석서를 남겼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다나라는 용어가 구분교로서의 우다나와 udānaṁ udānesi 구문으로 나타나는 우다나의 두 가지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붓다고사 스님은 우다나라는 용어를 이 두 가지 문맥에서 설명하고 있다. 


① 구분교의 우다나

붓다고사 스님은『디가 니까야 주석서』등에서 구분교를 설명하면서 구분교 가운데 다섯 번째로 나타나는 우다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이 바로 우러나온 말씀[自說, udāna]이라고 알아야 한다(somanassañāṇamayikagāthāpaṭi -saṁyuttā dveasītisuttantā udānanti veditabbā).”(MA.ii.106, AA.iii.6, DhsA. 26 등)


여기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은 somanassa- ñāṇamayika-gāthāpaṭisaṁyuttā를 옮긴 것이다. 이 somanassañāṇa- mayika는 이전에는 ‘기쁨에서 생긴 지혜로 충만한’으로 주로 옮겼는데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을 참조해서 본서에서는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으로 통일해서 옮기고 있다. 담마빨라 스님은 본서의 첫 번째 경인 깨달음 경」1(Ud1:1) §3에 나타나는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imaṁ udā- naṁ udānesi).’를 설명하면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에서 생긴(somanassa- sampayutta-ñāṇasamuṭṭhānaṁ)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즉 흡족한 마음으로 말씀을 쏟아내 놓으셨다(attamanavācaṁ nicchāresi)는 뜻이다.” (UdA.44)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참조해서 옮긴 것이다.


②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

붓다고사 스님은『우다나』의 주석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본서를 제외하고도 삼장의 56군데(경장 41+율장 15=56)에 ‘udānaṁ udānesi(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라는 구문이 나타난다. 붓다고사 스님은 ‘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로 옮기고 있는 ‘udānaṁ udānesi’를 주석서들에서 udāhāraṁ udāhari로 설명하고 있다. 즉 ud+ā+√hṛ(to carry)에서 파생된 남성명사, 즉 위로 가져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PED 등은 이 udāhāra를 utter- ance, speech로 번역하고 있다.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의 설명을 살펴보자.


“‘우러나온 말씀을 읊었다(udānaṁ udānesi).’라는 것은 위로 솟아올랐다(udāhāraṁ udāhari)는 뜻이다. 마치 기름(tela)의 양을 재어 담아둘 수 없어 흘러넘쳐서 가면 그것을 넘쳐흐름(avaseka)이라 하고, 물(jala)을 호수에 담아둘 수 없어 넘쳐흘러서 가면 그것을 폭류(ogha)라고 하듯이, 희열에서 생긴 말씀(pītivacana)은 가슴에 담아둘 수 없다(hadayaṁ gahetuṁ na sakkoti). 그것은 더 크게 되어서(adhikaṁ hutvā) 안에 넣어두지 못하고(anto asaṇ- ṭhahitvā) 밖으로 뛰쳐나온다(bahinikkhamati). 그것을 ‘우러나온 말씀(udāna)’이라 부른다. 이와 같이 희열로 가득한 말씀을 쏟아내 놓으셨다(pītimayaṁ vacanaṁ nicchāresi)는 뜻이다.”(DA.i.141; MA.ii.198; SA.i.60; AA.ii.139 등)


이처럼 붓다고사 스님은 구분교의 하나인 우다나, 즉 본서를 설명하면서는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것(somanassa-ñāṇa- mayika-gāthā-paṭisaṁyuttā)’으로 설명하고 우다나의 일반적인 의미로는 ‘희열에서 생긴 말씀(pītivacana)이나 희열로 가득한 말씀(pītimaya vacana)이 가슴 밖으로 넘쳐흐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우다나를 ‘감흥어’로 옮겼다. 


⑵ 우다나에 대한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

① 우다나의 일반적인 의미

앞에서 우다나에 대한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을 살펴보았다.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은 일반적인 것이지 우다나의 여러 측면을 고려한 해석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을 토대로『우다나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우다나의 일반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러나온 말씀(udāna)’이라고 하셨다. 무슨 뜻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라고 하는가? ‘솟아올라옴(udānana)’의 뜻에서 그러하다. 이 우러나온 말씀이란 무엇인가? ‘희열의 충격에서 위로 솟아 나온(pītivegasamuṭṭhāpita) 솟아오름(udāhāra)’이다. 예를 들면, 길이로는 측량을 할(māna) 수가 없는 기름(tela) 등의 측량해야 하는 물건(minitabbavatthu)은 [가득 차면] 넘쳐흐르게 되는데(vissanditvā gacchati) 그것을 ‘넘쳐흐름(avaseka)’이라고 말한다. 못에 가두어 둘 수 없는(taḷākaṁ gahetuṁ na sakkoti) 물(jala)은 넓게 퍼져서 가는데(ajjhottharitvā gacchati) 그것을 ‘폭류(ogha)’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희열의 충격에서 위로 솟아 나온 것은(pītivegasamuṭṭhā- pita) 일으킨 생각으로 충만하고(vitakkavipphāra, DhsA.114~115; Vis.XIV. 89 참조) 가슴 안에다 놓아둘 수가 없으니(antohadayaṁ sandhāretuṁ na sakkoti) 그것은 더 커져서(adhiko hutvā) 안에 넣어두지 못하고(anto asaṇ- ṭhahitvā) 말의 문을 통해서 밖으로 벗어 나오고(bahi vacīdvārena nikkhanta) 고착시켜 둘 수가 없고(paṭiggāhakanirapekkha) 특히 위로 솟아오른 것(udāhāravisesa)이어서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이라 부른다. 법에 대한 절박함(dhammasaṁvega)을 통해서 이러한 모습이 얻어진다.”(UdA.3)


담마빨라 스님의 우다나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앞에서 소개한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 가운데 ②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은『우다나 주석서』에서「열반과 관련됨 경」1(Ud8:1) §2의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을 설명하면서 부처님께서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을 읊으시는 경우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참으로 우러나온 말씀이란 것은 ㉠ 희열과 기쁨에서 솟아 나오거나(pītisomanassa-samuṭṭhāpita) ㉡ 법에 대한 절박함에서 솟아 나오거나(dhammasaṁvega-samuṭṭhāpita) ㉢ 법을 받아들일 사람이 있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우러나온 것(dhammapaṭiggāhakanirapekkha udāhāra)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우러나온 말씀들은 경(sutta)이 아니라 본서와 같은 우다나의] 가르침들에서 전승되어 온다(āgata).”(UdA.389)


주석서의 설명을 참조하여 예를 들면 본서「반조 경」(Ud6:3) §2의 우러나온 말씀 등은 ㉠의 경우에 해당되고「무례함 경」(Ud5:9) §2와「우데나 경」(Ud7:10) §3의 우러나온 말씀 등은 ㉡의 보기가 되고「세상 경」(Ud3:10) §§3~6의 우러나온 말씀 등은 ㉢의 보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② 게송과 희열은 일반적인 설명일 뿐이다

다른 부분에 나타나는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을 살펴보자.

“그런 이것은 어떤 경우에는 게송으로 구성되고(gāthābandhavasena) 어떤 경우에는 문장(산문)으로 나타난다(vākyavasena pavattaṁ). 그러나 주석서들에서는 ‘기쁨과 함께하고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about some situation)]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것(somanassa-ñāṇamayika-gāthā-paṭisaṁ- yuttā)’이라고 우러나온 말씀의 특징을 설명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것을 통해서(yebhuyyavasena) 설명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러나온 말씀은 ㉠ 게송으로 구성되어 설해졌고 ㉡ 기쁨과 함께하고 [특정 상황에 대한] 지혜로 충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 ‘비구들이여, 그러한 경지가 있으니 거기에는 땅이 없고 물이 없고 …’(「열반과 관련됨 경」1, Ud8:1)라는 등에서는 [산문으로 나타나고], ⓑ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나니 / 몽둥이로 해코지하는 자는 …’(「몽둥이 경」, Ud2:3 = Dhp {131})과, ⓒ ‘만일 그대들이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 만일 그대들이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아이 경」, Ud5:4)이라는 등에서는 [기쁨과 함께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난다.”(UdA.2)


즉, 붓다고사 스님이 우다나를 ‘희열에서 생긴 말씀’이나 ‘희열로 가득한 말씀’이 가슴 밖으로 넘쳐흐른 것으로 정의하거나 담마빨라 스님이 ‘희열의 충격에서 위로 우러나온 솟아오름’으로 정의하거나 ‘게송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을 통해서(yebhuyyavasena) 설명한 것’이지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담마빨라 스님은 이처럼 세 가지 보기를 들고 있지만 역자는 여기에다 사마와띠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여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통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는「우데나 경」(Ud7:10)을 앞에서 들었다. 이「우데나 경」(Ud7:10)의 우다나에서 세존께서 읊으신 ‘세상은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있지만 /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재생의 근거에 속박되고 / 어둠에 휩싸여 있구나. / 영원한 것 같지만 멸진하나니 / 보면 그 어떤 것도 없구나.’{70}라는 우러나온 말씀이야말로 앞의 인용에서 담마빨라 스님이 강조한 ‘법에 대한 절박함(dhammasaṁvega)을 통해서 이러한 모습이 얻어진다.’(UdA.3)는 설명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여기 본 주석서에서 이것은 일반적인(yebhu- yyena) 정의라고 하면서 예외적인 경우의 보기를 들었다.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은 이 설명에서 ‘이것은 어떤 경우에는 게송으로 구성되고 어떤 경우에는 문장(산문)으로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는데 본서의 80개 우다나들 가운데 4개는 산문으로 되어 있고 한 개는 산문과 게송이 섞여 있으며 나머지 75가지는 게송만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⑶의 셋째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위에서 밝혔듯이 담마빨라 스님은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udānaṁ udānesi).’를 설명하면서는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에서 생긴(so- manassasampayutta-ñāṇasamuṭṭhānaṁ)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즉 흡족한 마음으로 말씀을 쏟아내 놓으셨다(attamanavācaṁ nicchāresi)는 뜻이다.”(UdA.44)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붓다고사 스님이 구분교의 우다나를 설명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⑶ 붓다고사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의 차이점

이처럼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은 기본적으로는 붓다고사 스님의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두 분의 설명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붓다고사 스님은 udāna를 udāhāra(위로 솟아오름, ud+ā+√hṛ, to carry)로 설명하는데, 담마빨라 스님은 ‘숨이 위로 솟구쳐 나옴(udānana, ud+√an, to breathe)’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자적으로 udāna는 담마빨라 스님의 설명처럼 ud+√an(to breath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다.


둘째, 붓다고사 스님은 udāna를 희열에서 생긴 말씀(pītivacana)이나 희열로 가득한 말씀(pītimaya vacana)이 가슴 밖으로 넘쳐흐른 것(hadayaṁ … bahinikkhamati)으로 설명하고, 담마빨라 스님은 ‘희열의 충격에서 위로 솟아 나온(pītivegasamuṭṭhāpita) 솟아오름(udāhāra)’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본서『우다나』에는 이러한 희열과 기쁨과 관계없는 우러나온 말씀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 이것은 일반적인 것을 통해서(yebhuyya- vasena)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희열과 관계없는 세 개의 우러나온 말씀을 보기로 들었다.


셋째, 붓다고사 스님은 우다나를 ‘게송과 관련된 것(gāthāpaṭisaṁyuttā)’으로 설명하지만, 담마빨라 스님은 이것도 일반적인 것을 통해서(yebhuyya -vasena)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어떤 경우에는 게송으로 구성되고 어떤 경우에는 문장(산문)으로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본서의「기녀 경」(Ud6:8) §3,「열반과 관련됨 경」1(Ud8:1) §2,「열반과 관련됨 경」3(Ud8:3) §2,「열반과 관련됨 경」4(Ud8:4) §2의 네 개의 경의 우러나온 말씀은 산문만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세상 경」(Ud3:10)의 우러나온 말씀은 §§3~7에서 4개의 게송과 두 개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석서는 이것을 큰 우러나온 말씀[大感興語, mahāudāna]으로 부르고 있다(UdA.216). 이처럼 본서에 나타나는 80개의 우다나 가운데 네 곳의 우러나온 말씀은 산문으로 되어 있고 한 곳의 우러나온 말씀은 산문과 운문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넷째, 붓다고사 스님은 여러 주석서에서 ‘82개 경들이 우러나온 말씀’(dve -asītisuttantā udāna)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담마빨라 스님은 ‘경으로는 80개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suttato asītisuttasaṅgahaṁ, UdA.4).’로도 언급하고 있고, ‘경들은 오직 80개이다(asīti eva suttantā, UdA.5).’라고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본서의 마지막 경의 목록에서도 “80개에서 모자라지 않는 수승한 경들은 / 여기 8개 품들로 잘 분류가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역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붓다고사 스님의 82개라는 설명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본서만 보면 부처님께서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은 80개이지만 경장 전체로 보면 부처님이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은 82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5-⑷를 참조하기 바란다.


4. 부처님의 다른 게송들은 우다나가 될 수 없는가

⑴ 본서에서 우다나는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이다

담마빨라 스님은『우다나 주석서』에서 우다나를 위와 같이 설명하면서 일반적으로 우다나에는 우다나를 읊은 분들에 따라 “일체지자이신 부처님[一切智佛]이 설하신 것과 벽지불이 설하신 것과 제자가 설한 것의 세 가지가 있다.”(UdA.2)라고 덧붙인다. 벽지불이 설한 우다나로는『숫따니빠따』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 몽둥이를 내려놓고 /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괴롭히지 않는다.”(Sn {121})라는「무소의 뿔 경」을 들고 있고, 제자가 설한 것으로는 “나의 모든 갈망은 제거되었고 / 모든 성냄은 뿌리 뽑혔으며 / 나의 모든 어리석음은 사라졌고 / [모든 번뇌는]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Thag {79})라는『테라가타』의 게송과, “몸으로 나는 잘 제어되었으며 / 말과 마음으로도 [그러하다.] /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려 / [모든 번뇌가]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Thig {15})라는『테리가타』의 게송을 보기로 든다.(UdA.3)


그리고 계속해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가 읊은 ‘오, 보시가, 저 으뜸가는 보시가 깟사빠께 잘 확립되었도다!’(「삭까의 감흥어 경」, Ud3:7 §5)라는 우다나와 바라문이나 재가자들이 읊은 우러나온 말씀도 있다고 보기를 든 뒤 계속해서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귀의합니다.’(「아라마단다 경」, A2:4:6 §5)라는 등의 세 번의 암송을 제기하는 우러나온 말씀들도 있지만 이들은 여기서 뜻하는 바가 아니다(na tāni idha adhippetāni).”라고 강조한다.(UdA.3) 본서에서 우다나는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만이 본서와 본 주석서에서 말하는 우다나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우다나 주석서』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여기서는 정등각자께서 원만하게 읊으시어 말씀하신(sāmaṁ āhacca bhāsitāni) 승자의 말씀이 되는 것들(jinavacanabhūtāni)을 두고 세존께서 교학으로서의 법(pariyattidhamma)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여 가르치신 우러나온 말씀이라고 부른다(navadhā vibhajitvā uddisantena udānanti vuttāni). 법을 결집한 [장로들](dhamma-saṅgāhakā)은 이것들을 우러나온 말씀이라고 합송을 하였다(udānanti saṅgīta). 여기서는 이것만이 칭송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해졌다(saṁvaṇṇetabbabhāvena gahita).”(UdA.3)


즉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천신들이나 바라문 등이 읊은 감흥어는 본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본서는 오직 부처님께서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들만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차합송에서 법을 합송한 장로들이『우다나』로 합송한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⑵ 부처님의 다른 게송들은 우다나가 될 수 없는가

만일 세존께서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만을 우다나라 한다면 당연히 ‘그러면 부처님이 읊으신 우다나는 본서에 실려 있는 80개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된다.


첫째, 부처님께서 읊으신『법구경』등에 나타나는 많은 게송들도 우다나로 봐야 하지 않는가? 우다나란 남들의 질문을 받아서 설하신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것’이고 ‘희열의 충격에서 위로 솟아 나온 솟아오름’, 즉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을 뜻하기 때문에『법구경』등에도 이러한 우다나가 많이 들어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니『법구경』자체가 부처님이 읊으신 우다나의 모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고 북방불교에서는 이런 말씀들을 모아서『우다나와르가』(Udāna- varga, 우다나 품, 자설 품)라 부르고 있다.


『법구경』과『우다나』의 이러한 유사한 성격 때문에 우다나는 북방불교에서 다르마뜨라따[達摩多羅, 법구, Dharmatrāta] 스님에 의해서 B.C. 1세기 경에『우다나와르가』(Udānavarga)로 증편이 되는데(Norman, 61) 이것은 빠알리 경장『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우다나』와『법구경』등과 그 외 승가에 전승되어 오던 많은 게송이 합하여져서 구성된 것이다. 이것은 설일체유부의『법구경』이라 할 수 있다.(Ibid) 그리고 이것은『우다나』로 중국에서 번역되지 않고 축불염(竺佛念, 서기 350~417)이 전체 34품의『출요경』(出曜經)으로 한역하였으며 12분교 가운데 비유(譬喩, 阿波陀那, avadā -na)의 내용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이 위에서 우다나의 보기로『테라가타』와『테리가타』의 게송을 든 것처럼 『테라가타』와『테리가타』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이 열반을 실현한 뒤에 스스로 읊은 깨달음의 경지에 대한 게송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도 스스로 설했거나 감흥에 의해서 설한 우다나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담마빨라 스님은 이것은 우다나일 뿐만 아니라 사자후(sīhanāda)라고 적고 있다. 사실 어디까지가『우다나』(자설경)인지 어디까지가『법구경』이고『테라가타』나『테리가타』인지 어디까지가 우다나이고 어디까지가 시하나다(사자후)인지 등은 분명하지는 않다. 이 점을 담마빨라 스님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세상에 더 다가가려 했음이 분명한 북방 여러 부파의 불교에서는 상좌부의『우다나』대신에 더 많은 우다나와 교훈적인 게송 등을 모아서『우다나와르가』로 편성해 내었으며 9분교의 분류도 12분교로 확장하여 이것을 12분교의 아와다나(비유)의 내용으로 넣은 것일 것이다.


다른 게송들은 놓아두더라도 특히 부처님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체득하시고 읊으신 부처님의 오도송이라 할 수 있는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anekajātisaṁsāraṁ) …’(Dhp {153})로 시작되는『법구경』의 게송은 분명히 남들에게 법문으로 설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다나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최초의 우러나온 말씀으로 봐야 한다. 본서의 맨 처음에「깨달음 경」1/2/3(Ud1:1~3)으로 밤의 초저녁[初夜]과 한밤중[中夜]과 이른 새벽[後夜]에 읊으신 세 개의 우러나온 말씀은 여기에 포함되었는데 왜 이 게송은 포함되지 않았는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둘째, 본서에 포함된 우다나 외에 다른 경들에서 부처님이 읊으신 우다나라고 언급된 경이 있다면 왜 그것은 본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는가? 대표적인 것이 부처님께서 최초로 법을 설하신「초전법륜 경」(S56:11)을 들 수 있다. 부처님께서「초전법륜 경」을 통해서 처음 법을 설하시고 안냐따꼰단냐 존자가 이를 깨닫고 예류과를 체득하자 “그때 세존께서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atha kho bhagavā imaṁ udānaṁ udānesi, S56:11 §20)고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초전법륜 경」은 이러한 세존의 우러나온 말씀을 직접 우다나라고 밝히고 있다.「초전법륜 경」전체가 본서『우다나』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안냐따꼰단냐 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였고 그래서 세존께서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이 부분은 본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우러나온 말씀인 이 두 개의 우다나는 왜 세존께서 읊으신 우다나의 집대성인 본서에는 나타나지 않는가? 당연히『우다나 주석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자.


① 부처님의 오도송은 우다나가 아닌가

『우다나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anekajātisaṁsāraṁ) …’(Dhp {153})로 시작되는 [『법구경』의] 게송으로 밝히신 것은 세존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체득하시고] 우다나를 통해서 드러내신 것인데(udānavasena pavatti -tā)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수십만의 정등각자들께서(an- ekasatasahassānaṁ sammāsambuddhānaṁ) [정등각을 성취하시고] 반드시 읊는 우러나온 말씀의 게송이다(avijahita-udānagāthā). 그런데 이 [오도송]은 세존께서 ‘나중에(aparabhāge)’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 AA.iii.298)인 [아난다 존자]에게 설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법을 합송하는 자들이(dhammasaṅgāhakehi)『우다나』를 합송할 때에 상정을 하지 않고(udānapāḷiyaṁ saṅgahaṁ anāropetvā)『법구경』을 합송할 때 상정을 하였기 때문이다(dhammapade saṅgītā).”(UdA.3) 


다시 말하면 부처님의 이 오도송은 세존께서 후에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해주신 것이라서 아난다 존자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가진 일차합송에서『우다나』를 합송할 때 이 게송을 상정하여서『우다나』에 넣지 않고『법구경』을 합송할 때에 상정하여서 넣었기 때문에 이 오도송은『우다나』가 아니라『법구경』에 포함되어 전승되어 온다는 설명이다. 


그리고『법구경 주석서』도 이 ‘나중에(aparabhāge)’라는 말을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라는 이 법의 가르침은 스승께서 깨달음의 나무(보리수) 아래에 앉아 계시면서 우러나온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읊으셨지만 나중에(aparabhāge) 아난다 장로가 질문을 하자 말씀하신 것이다.”(DhpA.iii.127)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오도송은 당연히『우다나』에 들어가야 하지만 아난다 존자가 법을 합송하는 장로들이『우다나』를 합송할 때 제언을 하여 넣지 않고『법구경』을 합송할 때 제언을 하여『법구경』에 넣어서 합송하여 전승되었다는 설명이다. 한편『우다나 주석서』를 영역한 메이스필드(Masefield) 교수는 주석서에 의하면『쿳다까 니까야』가운데『법구경』이『우다나』보다 먼저 합송되었는데 본 문장에 따르면『법구경』이『우다나』뒤에 합송되었다는 뜻이라고 주를 달고 있다.(Masefield, 4쪽과 12쪽의 39번 주해 참조)


②「초전법륜 경」에 나타나는 기쁨에서 우러나온 말씀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듣고 꼰단냐 존자가 맨 먼저 예류과를 얻었다. 그래서 기쁨에서 우러난 말씀을 읊으셨고 이것은「초전법륜 경」(S56:11)에서는 우다나(감흥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중요한 부처님의 기쁨에서 우러난 말씀도 당연히 본서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주석서의 설명을 살펴보자.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56:11 §20)라는 우러나온 말씀(udānavacana)은 만 개의 세계(dasa- sahassilokadhātu)를 통해서 신과 인간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리의 진동(pavedana-samattha-nigghosa-vipphāra)으로 세존에 의해서 설해진 것이 분명하다(bhagavatā bhāsitaṁ).

이처럼 세존께서「초전법륜 경」의 가르침의 마지막에 법을 증득한 그 자리에서(adhigatadhammekadesassa) 성스러운 도를 설하셨을 때(yathādesita -ssa ariyamaggassa) 제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꼰단냐] 장로에 의해서 그 경지가 증득되었다(sabbapaṭhamaṁ therena adhigatattā).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비록 지치셨지만(attano parissamassa) 이처럼 결실이 있음을 반조함을 원인으로 하고(saphalabhāvapaccavekkhaṇahetukaṁ), 첫 번째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paṭhamabodhiyaṁ) 그 [다섯 명의] 모든 비구들이 그 바른 도닦음을 반조함을 원인으로 하여(sabbesaṁ eva bhikkhūnaṁ sammā-paṭi- pattipaccavekkhaṇahetukaṁ), [『맛지마 니까야』에서] “비구들이여, 어느 때 비구들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M21 §7)라고 말씀을 하신 것처럼 희열과 기쁨을 생기게 하고 가져오게 하였다(pītisomanassajanitaṁ udāhāra -mattaṁ).

그러나 “참으로 법들이 분명하게 드러날 때”(Ud1:1 §3)라는 등의 [본서의 첫 번째 경 등의] 말씀처럼 발생이나 정지(pavattiyā nivattiyā vā), 즉 괴로움의 일어남이나 소멸과 같은 가르침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우러나온 말씀은 법을 암송하는 자들이『우다나』에 합송해서 넣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UdA.3~4)


즉「초전법륜 경」에 나타나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56:11 §20)라는 우러나온 말씀은 희열과 기쁨에서 생긴 감격스러움에서 하신 단순한 말씀이지, 이 단순한 말씀에 발생(pavatti)과 정지(nivatti), 즉 괴로움의 일어남이나 소멸과 같은 가르침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경으로서 본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5. 우다나는 모두 80개인가 82개인가?

⑴ 82개 -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붓다고사 스님은 구분교를 설명하는 주석서들에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이 바로 우러나온 말씀[感興語, udāna]이라고 알아야 한다.”(VinA.i.28 등)라고 밝히고 있다. 현존하는『우다나』에는 모두 80개의 경들이 전승되어 오는데 왜 붓다고사 스님은 82개라고 하였을까? 여기에 대해서 후대 주석가들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⑵ 80개 - 담마빨라 스님과 사리뿟따 스님의 견해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와 복주서를 쓴 담마빨라 스님과 후대의 복주서를 쓴 스님들은『우다나』의 경은 80개라고만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12세기에 사리뿟따(Sāriputta) 스님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율장의 복주서인『사랏타디빠니 띠까』(Sāratthadīpanī-ṭīkā)는 서문(ganthārambhakathā)에서 우다나는 80개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 근거로『우다나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을 언급하고 있다. 그 외 별다른 설명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사랏타디빠니 띠까』는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율장 주석서』를 토대로 설명을 진행하면서『율장 주석서』에 나타나는 위에서 인용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이 바로 우러나온 말씀[感興語, udāna]이라고 알아야 한다.”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우다나』성전(Udānapāḷi)에는 깨달음 품 등의 여덟 개의 품 안에 열 개씩으로 만들어 오직 80개의 경들이 합송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우다나 주석서』에서 스승 담마빨라 장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경들은 오직 80개이고 품들은 8개로 구성되어 있다.

게송은 95개로 우다나는 알려져 있다.’라고.”(VinAṬ.i.101)


‘ ’ 안의 게송은『우다나 주석서』(UdA.4)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우다나 주석서』서문에 나타나는 게송을 인용한 뒤에 율장의 복주서인『사랏타디빠니 띠까』(Sāratthadīpanī-ṭīkā)의 저자인 12세기의 사리뿟따 스님은 “그러나 여기 [『율장 주석서』에서 붓다고사 스님이 밝힌] 82개의 경들(VinA.i.28)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taṁ na sameti). 그러므로 책(주석서)에는 80개의 경들이라고 되어야 한다.”(VinAṬ.i.101)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우다나』를 전승한 분들도 본서 마지막의 경의 목록에서 다음과 같이 80개라고 적고 있다.


“80개에서 모자라지 않는 수승한 경들은 

여기 8개 품들로 잘 분류가 되었다.

눈을 가지셨고 때 묻지 않은 그분이 보여주신 

그것을 참으로 우러나온 말씀이라 부른다.”


그러면 왜 붓다고사 스님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주석서에서『우다나』는 82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을까? 단순한 실수이고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이나 후대 복주서의 저자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이 80개로 수정을 하였을까? 

역자는 붓다고사 스님이 우다나는 82개라고 설명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본서에 82개의 우다나가 나타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본서에는 부처님께서 읊으신 우다나가 80개로 정리되어 있지만 삼장 전체에는 부처님이 읊으신 우다나가 모두 82개가 되기 때문이다. 


⑶ 본서에는 모두 82개의 우다나가 나타난다

본서에는 모두 82개의 우러나온 말씀이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 읊으신 감흥어 80개와「밧디야 경」(Ud2:10)에서 밧디야 존자가 끊임없이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우러나온 말(감흥어)을 읊은 것(§1)과「삭까의 감흥어 경」(Ud3:7)에서 삭까가 “오, 보시가, 저 으뜸가는 보시가 깟사빠께 잘 확립되었도다!”라고 세 번 우러나온 말을 읊은 것(§5)이다. 이처럼 본서에는 모두 82개의 우다나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은 우다나는 82개로 설명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붓다고사 스님은 구분교를 설명하는 주석서들에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이 바로 우러나온 말씀[感興語, udāna]이라고 알아야 한다.”(VinA.i.28, DA.i.24, MA.ii.106, AA.iii.6, Dhs A.26, Nd1A.ii.270 등)라고 하여 82개의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이 아니라 82개의 경들(suttantā)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에는 80개의 경들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본서에 82개의 우다나가 들어있는 것은 붓다고사 스님의 주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야 한다. 


⑷ 삼장 전체에는 82개이고 본서에는 80개이다

역자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심하다가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udānaṁ udānesi’라는 구절을 모두 검색해 보았다. 역자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빠알리 삼장에는 게송(gāthā)이 아니라 우다나(udāna)로 언급이 되고 있는 부처님이 읊으신 우다나가 모두 82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본서에 나타나는 80개의 우러나온 말씀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그래서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부처님이 읊으신 서로 다른 우다나가 나타나는 경은 82개이고 본서에서는 80개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역자는 4부 니까야에서 ‘udānaṁ udānesi’로 검색해 보면 대략 41군데 정도가 나타나며 니까야에 나타나는 이 41군데 가운데 32군데 정도가 세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천신들이 읊은 즉흥적이면서도 감격과 감흥에 어린 간단한 말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S1:33 §§2~7의 6개 감흥어는 천신들이 보시를 찬탄하는 감흥어이고 S1:38 §§3~9의 7개의 감흥어는 천신들이 코끼리 등의 동물에 비유하며 세존을 찬탄하는 감흥어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직접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은 41-32=9개가 된다. 앞에서 밝혔듯이 이 9개 가운데 같은 것을 하나로 모으면 모두 6개의 우다나가 되고 이 가운데 4개는 본서에 나타나고 2개는 본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대반열반경」(D16) §1.34 = 본서「빠딸리 마을 경」(Ud8:6) §15

②「대반열반경」(D16) §3.10 =「탑묘 경」(S51:10) §15 =「대지의 진동 경」(A8:70) §9 =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 §11

③「대반열반경」(D16) §4.43 = 본서「쭌다 경」(Ud8:5) §14

④「감흥어 경」(S22:55) §2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 §10 =「꼬살라 경」1(A10:29) §12 = 본서「깟짜나 경」(Ud7:8) §2

⑤「탑묘 경」(S51:10) §15 =「대반열반경」(D16) §3.10 =「대지의 진동 경」(A8:70) §9 =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 §11 

⑥「대지의 진동 경」(A8:70) §9 =「대반열반경」(D16) §3.10 =「탑묘 경」(S51:10) §15 =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 §11 

⑦「마간디야 경」(M75) §19

⑧「초전법륜 경」(S56:11) §20

⑨『무애해도』(Ps.ii.149) =「초전법륜 경」(S56:11) §20


이를 같은 것끼리 묶으면 모두 다음의 6개가 된다.

①「대반열반경」(D16) §1.34 = 본서「빠딸리 마을 경」(Ud8:6) §15

②「대반열반경」(D16) §3.10 =「탑묘 경」(S51:10) §15 =「대지의 진동 경」(A8:70) §9 = 본서「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 §11

③「대반열반경」(D16) §4.43 = 본서「쭌다 경」(Ud8:5) §14

④「감흥어 경」(S22:55) §2 = 본서「깟짜나 경」(Ud7:8) §2

⑤「마간디야 경」(M75) §19

⑥「초전법륜 경」(S56:11) §20


이처럼 세존이 읊으신 이 6개의 우러나온 말씀들 가운데『맛지마 니까야』제3권「마간디야 경」(M75)의,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도 가운데 불사(不死)로 인도하는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네.”(M75 §19)


와『상윳따 니까야』제6권「초전법륜 경」(S56:11)에서 읊으신,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56:11 §20)라는 이 두 개의 우다나를 제외한 ①~④의 4개의 우러나온 말씀이 담긴 경들은 본서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경들 혹은 경장에 나타나는 우러나온 말씀은 본서의 80개와 이 2개가 되어 모두 82개가 된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은 dveasīti-suttantā, 즉 82개의 경들(suttantā)이라고 하여서 경의 개수가 82개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그러면 율장에서는 어떻게 될까? udān이나 혹은 udānaṁ udānesi로 검색해 보면 율장에는 모두 15곳에서 udānaṁ udānesi 구문이 나타나고 있다. 율장에 나타나는 이 15개의 우다나 가운데 세존께서 읊으신 것은 아래에 밝히고 있듯이 모두『마하왁가』(대품)의 9군데와『쭐라왁가』(소품)의 3군데로 모두 12곳에 나타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깨달음 경」1(Ud1:1) = Vin.i.2

②「깨달음 경」2(Ud1:2) = Vin.i.2

③「깨달음 경」3(Ud1:3) = Vin.i.2

④「흥흥거림 경」(Ud1:4) = Vin.i.3

⑤「무짤린다 경」(Ud2:1) = Vin.i.3

⑥「소나 경」(Ud5:6) = Vin.i.197

⑦「빠딸리 마을 경」(Ud8:6) = Vin.i.226~230

⑧「나가 경」(Ud4:5) = Vin.i.353

⑨「밧디야 경」(Ud2:10) = Vin.ii.184

⑩「승가의 분열 경」(Ud5:8) = Vin.ii.198

⑪「포살 경」(Ud5:5) = Vin.ii.240

⑫「초전법륜 경」(S56:11) §20 = Vin.i.12 - 본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이들 가운데 11개는 본서에도 나타나며 한 개는「초전법륜 경」(S56:11)에 나타나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56:11 §20)라는 안냐따꼰단냐 존자에 대한 우러나온 말씀이다. 그러므로 율장에 나타나는 세존이 읊으신 우다나도 모두 붓다고사 스님이 강조한 이 82개에 포함이 된다. 


한편 논장에는 udānaṁ udānesi 구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udāna라는 용어는 구분교의 명칭으로서만『위방가』에서 한 곳(Vbh.294)과『인시설론』에서 두 곳(Pug.43; 62)에 나타날 뿐이라서 해당 사항이 없다.


이런 근거로 역자는 붓다고사 스님이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이 바로 우러나온 말씀[感興語, udāna]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고 이해한다. 이렇게 본다면 12세기의 사리뿟따 스님이 “그러나 여기 [『율장 주석서』에서 붓다고사 스님이 밝힌] 82개의 경들(VinA.i.28)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책(주석서)에는 80개의 경들이라고 되어야 한다.”(VinAṬ.i.101)라는 주장은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6.『우다나』의 구성 

⑴ 주석서에서 정리하는『우다나』의 구성 

먼저 주석서는『우다나』의 구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우다나 주석서』서문의 해당 부분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우다나』는 율장․경장․논장이라는 삼장 가운데(tīsu piṭakesu) 경장(suttantapiṭaka)의 가르침에 포함된다.

②『디가 니까야』․『맛지마 니까야』․『상윳따 니까야』․『앙굿따라 니까야』․『쿳다까 니까야』라는 다섯 가지 니까야들 가운데(pañcasu nikāyesu)『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다. 

③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자설(自說),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의 아홉 가지 가운데서 자설(우다나)로 구성되어 있다(udānasaṅgaha).


④ [법의 무더기[法蘊, dhammakkhandha] 가운데]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92 {1024})

라고, 이와 같이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인 [아난다 존자가] 인정한 8만 4천 법의 무더기[法蘊, dhammakkhandha] 가운데 몇 개의 법의 무더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⑤ 품(vagga)으로는 깨달음 품, 무짤린다 품, 난다 품, 메기야 품, 소나 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 작은 품, 빠딸리 마을 품이라는 8개의 품이 있다.

⑥ 경(sutta)으로는 80개의 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⑦ 게송(gāthā)으로는 95개 우다나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⑧ 바나와라(bhāṇavāra)로는 8개 반 정도의 바나와라이다. 

⑨ 주제(결론, anusandhi)로는「깨달음 경」(Ud1:1)에는 질문에 따른 주제(pucchānusandhi)를 통해서 하나의 주제가 있고,「숩빠와사 경」(Ud2:8)에는 질문에 따른 주제(pucchānusandhi)와 순서에 따른 주제(yathānusandhi)를 통해서 두 개의 주제가 있고, 나머지 [경들]에는 순서에 따른 주제(yath- ānusandhi)를 통해서 각각 하나의 주제이고 성향에 따른 주제(ajjhāsay- ānusandhi)는 여기에는 없다. 이렇게 하여 [『우다나』는] 모두 81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⑩ 단어(pada)로는 21,000개에 몇 백 개를 더한 것이 있다. 

⑪ 게송의 구[偈頌句, gāthāpāda]로는 8,423개가 있다. 

⑫ 음절(akkhara)로는 67,382개의 음절들이 있다.”(UdA.4~5)


한편『우다나 주석서』는『우다나』에 실려 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등의 산문은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가 읊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⑵ 각 경의 구성 및 전개 방법

『우다나』에 들어있는 80개의 경들은 다음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역자는 정리한다.


① 서문[因由分, nidāna]

첫째는 경의 서문, 즉 그 경이 설해진 인연을 밝히는 인유분(因由分, nidā -na)이다.『우다나』의 80개 경들은 산문으로 시작하는 니까야의 다른 경들처럼 모두 evaṁ me sutta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각 경들의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장소 등을 니까야의 다른 경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한때(ekaṁ samayṁ) …’ 등으로  밝히고 있다. 4부 니까야의 경우처럼『우다나』의 반이 넘는 45개 경들은 급고독원에서 설하신 것이고 4개는 녹자모 강당에서 설하셔서 모두 49개 정도의 경들이 사왓티에서 설해졌다. 그 외에도 왕사성 등에서 설하신 것이 적지 않고 특히 4부 니까야에는 나타나지 않는 세존의 이복동생인 난다 존자(āyasmā Nanda, Ud3:2)와 야소자 존자(āyasmā Yaso- ja, Ud3:3) 등의 깨달음에 대한 일화를 담은 경들도 나타난다.


② 배경이 되는 일화

둘째, 각 경들에 나타나는 우러나온 말씀의 배경이 되는 일화가 기술된다. 대부분이 간단명료하지만 긴 내용을 담은 경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바히야 경」(Ud1:10),「숩빠와사 경」(Ud2:8),「난다 경」(Ud3:2),「야소자 경」(Ud3:3), 세존에 대한 외도들의 음해를 담은「순다리 경」(Ud4:8),「나환자 숩빠붓다 경」(Ud5:3),「소나 경」(Ud5:6)과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로 잘 알려진「여러 외도 경」1(Ud6:4) 등이다.


③ 일화와 우러나온 말씀을 연결하는 정형구

셋째, 그다음에는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라는 정형구로 앞의 산문으로 된 일화의 내용과 바로 다음의 우러나온 말씀을 연결 짓고 있다.

본서『우다나』에 나타나는 80개 경들 가운데 76개 경들은 바로 이 정형화된 문장을 통해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산문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는 우러나온 말씀으로 되어 있다. 이 문장 가운데 전반부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① ‘attha(의미)’이고 후반부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② ‘udāna(우러나온 말씀)’이다. 


④ ‘attha(의미)’와 ‘udāna(우러나온 말씀)’를 통한 주석서의 정리

넷째, 특히 주석서는 이 80개 우러나온 말씀을 설하신 배경을 다시 한 번 ① ‘attha(의미)’와 ② ‘udāna(우러나온 말씀)’라는 이 키워드들을 통해서 각 경들의 주제를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우다나 주석서』는 본서「깨달음 경」2(Ud1:2) §3을 설명하면서 본경에서 ① attha(의미)의 내용으로는 12연기의 역관에 의한 괴로움의 무더기의 소멸(dukkhakkhandhassa nirodha)을, ② 본경에서 udāna(우러나온 말씀)의 내용으로는 이 역관을 깨달으신 위력(avabodhānubhāva)을 들고 있다. 


역자는 주석서의 이러한 요약과 정리가 각각의 경들에 들어있는 우러나온 말씀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고 생각하여 주석서의 이 설명들을 모두 주해로 실었다. 주석서에 이런 정리가 나타나지 않는 곳은 두 군데 정도뿐이다.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 특정한 경이나 우러나온 말씀이 바로 앞의 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미 앞 경의 주석에서 설명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답바 경」2, Ud8:10 §3의 주해 참조)


⑤ 첨언이 없이 우러나온 말씀으로 끝남

다섯째, 이렇게 하여 우러나온 말씀을 드러내고 더 이상의 정리나 소개 없이 각각의 경들은 끝을 맺고 있다. 예를 들면『이띠웃따까』에서는 게송으로 된 가르침이 마무리되어 경들이 끝날 때에도 이들 112개의 경들은 모두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로 끝나고 있지만『우다나』에서는 그렇지 않다. 본서의 80개 경들은 그 경의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을 마지막에 드러내고 각각의 경들은 자연스럽게 끝이 난다.


다시 정리해 보면『우다나』에 나타나는 80개의 경들 가운데 76개 경들은 모두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라는 똑같은 문장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산문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는 우러나온 말씀으로 되어 있다. 이 문장 가운데 전반부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attha(의미)’이고 후반부를 지칭하는 키워드는 ‘udāna(우러나온 말씀)’이다.『우다나 주석서』는 각각의 경들을 설명하면서 이 두 개 키워드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여 밝히고 있다. 


전반부는 우다나를 읊으시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니까야의 경들처럼 문답식으로 길게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예를 들면「난다 경」(Ud3:2)) 드물지만 법을 설하시고 이를 요약하는 형태로 우다나를 말씀하신 곳도 있다.(예를 들면「메기야 경」(Ud4:1))


이처럼 76개 경들은 모두 정확하게 ‘그때 세존께서는 이 의미를 아시고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라는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나가 경」(Ud4:5) §7,「우빠세나 경」(Ud4:9) §2,「반조 경」(Ud6:3) §2,「사량분별의 멸진 경」(Ud7:7) §2는 이 경들의 문맥에 따라서 우다나를 도입하는 부분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 네 개의 경들에서도 우러나온 말씀은 모두 “그 즉시 바로 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라는 정형구를 통해서 읊고 계신다.

이렇게 해서『우다나』의 80개 경들은 모두 산문으로 된 도입부, 즉 특정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상황이나 배경 일화를 먼저 밝히고 위의 정형구로 우러나온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네 개의 경들 가운데「우빠세나 경」(Ud4:9)을 제외한 세 개의 경들은 모두 세존께서 자신을 반조해 보시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경우이다. 이처럼 본서 80개 경들은 모두 산문으로 세존께서 특정한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시게 된 일화나 그때의 상황 등을 설명한 뒤 똑같은 문장과 방법으로 특정한 우러나온 말씀을 도입하고 있다.


7. 각 품의 개관 

우다나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우다나』의 80개 경들에서 설해지고 있는 중요한 주제를 먼저 각 품별로 살펴보자. 우다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경(sutta)들과는 달리 부처님께서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난 생각과 판단을 즉각적으로 드러내시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이런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국에서는 이를 무문자설(無問自說)로 옮기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근본 사상을 다른 어느 경들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4부 니까야에서는 각 품에 들어있는 경들이 서로 관련성이나 통일성을 발견하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지만『우다나』의 8개 품에 포함된 80개의 경들은 나름대로 서로 비슷한 특징을 가진 경들을 같은 품에 넣어서 전승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⑴ 제1품 깨달음 품(Bodhi-vagga, Ud1:1~10)

『우다나』의 제1품은 깨달음 품(Bodhi-vagga)이며「깨달음 경」1(Ud1: 1)부터「바히야 경」(Ud1: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1품 깨달음 품은 품의 명칭이 보여주듯이 세존의 깨달음과 관계된 세 개의 경과 특히 참된 바라문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우러나온 말씀을 담은 6개 경들(Ud1:4~9)과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다는 가르침으로 잘 알려진「바히야 경」(Ud1:10)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제1품 전체에 공통되는 키워드는 바라문이다. 제1품의 10개 경들의 모든 우다나에는 ‘바라문’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다. 부처님께서는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특히『숫따니빠따』나『법구경』에 포함된 최초기의 가르침에는 참된 바라문, 참된 종교인을 천명하시는 가르침이 많다. 우다나를 결집한 일차합송에 참여한 오백 아라한들은 이런 참된 바라문에 대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을 제1품에 모아놓은 것이다. 이것이 제1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⑵ 제2품 무짤린다 품(Mucalinda-vagga, Ud2:1~10)

본서의 제2품인 무짤린다 품(Mucalinda-vagga)에는「무짤린다 경」(Ud2:1)부터「밧디야 경」(Ud2: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2품 무짤린다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에 담긴 우러나온 말씀의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해 보라면 그것은 바로 행복(sukha)이다. 세존께서는 본 품의「몽둥이 경」(Ud2:3)에서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나니’(§2 {13})라고 강조하시는데 본 품에 담긴 10개의 경들은 진정한 행복, 으뜸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시는 부처님의 말씀과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무짤린다 경」(Ud2:1)에서 세존께서는 멀리 여읨도 행복이고, 탐욕의 빛바램도 세상에서 행복이며, ‘나다.’라는 자만(asmimāna)을 길들임은 참으로 궁극적 행복이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다.(§4) 그리고「왕 경」(Ud2:2)에서는 이 세상의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행복과 천상에서 누리는 행복은 갈애의 멸진으로 오는 행복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읊으신다.(§4)


⑶ 제3품 난다 품(Nanda-vagga, Ud3:1~10)

『우다나』제3품은 난다 품(Nanda-vagga)인데「업이 익어서 생김 경」(Ud3:1)부터「세상 경」(Ud3: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3품 난다 품은 세존의 이복동생인 난다 존자(āyasmā Nanda)의 깨달음의 일화를 담고 있는「난다 경」(Ud3:2)을 담고 있어서 난다 품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본 품에는 사리뿟따 존자나 마하목갈라나 존자나 마하깟사빠 존자와 같은 부처님 제자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간단한 경들 9개를 담고 있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의「세상 경」(Ud3:10)은 세존께서 처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해탈의 행복을 누리시면서 첫 번째 칠 일을 한자리에서 가부좌하고 삼매에 드신 후 삼매로부터 출정하셔서 부처의 눈[佛眼]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신 뒤에 읊으신 상대적으로 긴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이 우러나온 말씀은 두 개의 산문과 네 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여여한 자는 모든 존재들을 넘어섰도다.’로 마무리가 된다.(§§3~6) 주석서는 이 우러나온 말씀을 ‘큰 우러나온 말씀[大感興語, mahāudāna]’으로 부르고 있다.


⑷ 제4품 메기야 품(Meghiya-vagga, Ud4:1~10)

제4품 메기야 품(Meghiya-vagga)에는「메기야 경」(Ud4:1)부터「사리뿟따의 고요함 경」(Ud4: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4품 메기야 품은 세존의 시자를 잠시 살았던 메기야 존자의 일화를 담은「메기야 경」(Ud4:1)에서 따온 명칭이다.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 8개의 경들은 비구들과 승단의 일화를 담고 있는데 특히「순다리 경」(Ud4:8)은 외도들이 순다리 유행녀를 몰래 죽여서 세존을 공격한 순다리 유행녀 사건을 담고 있다. 그리고「소치는 사람 경」(Ud4:3)은 세존께 공양을 올리고 세존의 설법을 들은 소치는 사람이 살해되는 사건을 담고 있다. 그리고「나가 경」(Ud4:5)은 세존께서 혼자 동행인 없이 유행을 떠나셔서 어떤 코끼리 우두머리와 만난 일화를 담고 있다. 


⑸ 제5품 소나 품(Soṇa-vagga, Ud5:1~10)

『우다나』제5품은 소나 품(Soṇa-vagga)으로,「더 사랑스러움 경」(Ud5: 1)부터「쭐라빤타까 경」(Ud5: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5품 소나 품은 소나 꾸띠깐나 존자의 일화를 담고 있는「소나 경」(Ud5:6)에서 따온 명칭이다.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 여섯 개 경들은 비구나 비구들의 일화를 담고 있다. 그리고 본 품의 첫 번째인「더 사랑스러움 경」(Ud5:1)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말리까 왕비의 일화를 담고 있는『상윳따 니까야』제1권「말리까 경」(S3:8)과 같다. 본 품에는 특히 나환자 숩빠붓다의 깨달음의 일화를 담은「나환자 숩빠붓다 경」(Ud5:3)이 있고 세존께서 물고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설하시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아이 경」(Ud5:4)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이 경은 세속의 아이들에게 설법하신 것으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유일한 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존께서는 아이들에게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쁜 업을 짓지 말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다.(§3)


⑹ 제6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Jaccandha-vagga, Ud6:1~10)

본서 제6품은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Jaccandha-vagga)인데「수명(壽命)의 형성을 놓아버리심 경」(Ud6:1)부터「출현함 경」(Ud6: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 제6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은 본 품에 포함된「여러 외도 경」1(Ud6:4)에 나타나는 우리에게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로 알려진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의 비유에서 품의 명칭을 따왔다.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 5개의 경들은 유행승이나 외도들의 견해 등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여러 외도 경」1/2/3(Ud6:4~6)은 외도들이 가지는 십사무기(十事無記)에 대한 의미 부여와 자아와 세상에 대한 16가지 견해를 들고 있다. 세존께서는 그들은 자만에 속박되어 견해들에 대해서 말하지만 윤회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읊으신다.(Ud6:6 §5) 그리고「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Ud6:2)에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고행자들과 니간타들과 나체 수행자들과 한 벌 옷만 입는 수행자들과 유행승들이 언급되어 있고「출현함 경」(Ud6:10)에는 외도 유행승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반조 경」(Ud6:3)은 세존께서 자신에게서 제거된 여러 가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과 닦아서 성취된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을 반조해 보신 뒤에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많은 날벌레들이 기름 등불들에 떨어져 재앙에 처하는 것을 보시고는 오취온으로 치달려 가기만 하고 심재(心材)로는 향하지 않는 가련한 자들을 경책하는 우러나온 말씀을 담은「치달려 감 경」(Ud6:9)도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⑺ 제7품 작은 품(Cūḷa-vagga, Ud7:1~10)

『우다나』제7품의 명칭은 작은 품(Cūḷa-vagga)이고「라꾼따까 밧디야 경」1(Ud7:1)부터「우데나 경」(Ud7: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7품 작은 품에 포함된 경들은 상대적으로 그 길이가 작기 때문에 작은 품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여겨진다. 10개 중의 9개 경들은 비구나 비구들에 관한 것인데 세 개의 경(Ud7:1~2; 5)은 볼품없고 못생겼지만 큰 신통력과 위력을 가진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에 관한 것이며 두 개의 경(Ud7:3~4)은 사왓티 사람들이 대체로 감각적 쾌락을 지나치게 탐하는 것을 아시고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그리고「사량분별의 멸진 경」(Ud7:7)은 세존께서 자신의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를 버렸음을 아시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것이다.

특히「우데나 경」(Ud7:10)은 우데나의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이 마간디야와 그녀의 삼촌 삼촌의 계략으로 모두 불에 타서 죽은 사건을 비구들로부터 들으시고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⑻ 제8품 빠딸리 마을 품(Pāṭaligāmiyavagga, Ud8:1~10)

마지막으로 본서 제8품은 빠딸리 마을 품(Pāṭaligāmiyavagga)이며「열반과 관련됨 경」1(Ud8:1)부터「답바 경」2(Ud8:10)까지의 열 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제8품 빠딸리 마을 품은 본 품에 포함되어 있는「빠딸리 마을 경」(Ud8:6)에서 명칭을 따왔다. 본경은『디가 니까야』제2권「대반열반경」(D16) §§1.19~1.34와 같다. 본 품의「쭌다 경」(Ud8:5)의 경우처럼「대반열반경」(D16)의 첫 번째 바나와라도 §1.34에 나타나는 우러나온 말씀으로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대반열반경」의 이 부분은 우러나온 말씀들을 합송한 본서에도 포함되어 결집되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러한 품의 명칭이 암시하듯이 본 품은 열반과 반열반과 관계된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처음의 네 개의 경들, 즉「열반과 관련됨 경」1/2/3/4(Ud8:1~4)는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분명한 말씀을 담고 있으며『우다나 주석서』도 열반에 대한 담마빨라 스님의 명쾌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우다나 주석서』는 메이스필드(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1995년에 영역(英譯)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메이스필드 교수는 7,000개가 넘는 주해를 달면서 심혈을 기울여 영역을 하였다.

본 품의「빠딸리 마을 경」(Ud8:6)과「쭌다 경」(Ud8:5)은 경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와 반열반에 관한 경이며「대반열반경」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한편「두 갈래 길 경」(Ud8:7)은 세존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곤경에 처한 나가사말라 존자의 일화를 담고 있는데 열반을 실현하지 못하는 그릇된 길을 상징하는 일화로 간주하여 본 품에 넣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위사카 경」(Ud8:8)은 손녀의 죽음을 당하고 세존을 뵈러온 위사카 청신녀를 만나서 읊은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의 두 경「답바 경」1/2(Ud8:9~10)는 답바 존자의 반열반을 보고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8.『우다나』에 나타나는 경들의 분류 

위와 같은 구조로 본서에는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을 담은 80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제 이 80개의 경들을 설하신 곳과 설하신 대상과 설하신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고찰해 보자. 


⑴ 우다나를 읊으신 곳

본서에 들어있는 80개의 우다나 가운데 45개가 사왓티의 급고독원에서 읊으신 것이고 사왓티의 녹자모 강당에서 읊으신 것이 4개가 된다. 이렇게 하여 본서의 80개 경들 가운데 반이 넘는 49개의 경들이 사왓티에서 설해진 것이다.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 가운데서도 사왓티 그중에서도 사왓티의 급고독원에서 설하신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것은 세존의 44번의 안거 가운데 23번의 안거를 이곳 사왓티(급고독원에서 18번, 녹자모 강당에서 5번)에서 하신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많은 곳이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으로 10개의 경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세존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우루웰라를 배경으로 한 것이 8개의 경들인데 세존께서는 깔라 용왕의 거처가 있는(Kāla- nāgarājassa bhavana) 만제리까(Mañjerika, ApA.77)라는 숲에서 깨달으셨는데 세존께서 깨달으시고 49일 동안 깨달은 바로 그 자리와 그 나무[菩提樹, bodhi-rukkha]와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와 무짤린다 나무 아래 등에 머무시면서 우러나온 말씀들을 읊으셨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꼬살라에서 두 번, 말라에서 두 번 우다나를 읊으셨다. 그리고 빠와, 가야시사, 꼴리야, 아누삐야, 짤리까, 꾸시나라, 웨살리, 꼬삼비, 마가다의 빠딸리 마을도 각각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⑵ 우다나를 읊으신 대상

그다음에는 우다나를 읊으신 대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경들은 부처님께서 그 경을 설하신 대상이 있다. 4부 니까야의 경들 가운데는 늘 세존을 모시고 함께 머무는 비구들이나 특정 비구를 대상으로 설하신 경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상윳따 니까야』와『앙굿따라 니까야』의 경들이 그러하다. 본서『우다나』는 어떠할까? 본서에 포함된 우다나 경들 가운데서도 비구대중을 대상으로 우다나를 읊으신 경들이 22개가 되고 사리뿟따 존자나 아난다 존자 등의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 가운데 특정 제자를 대상으로 읊으신 경도 32개나 된다. 이렇게 하여 비구들을 대상으로 우다나를 읊으신 경우가 54개가 되어 4부 니까야의 경들의 경우와 비슷한 비율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36개의 경들 가운데 사리뿟따 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7개, 아난다 존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6개,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2개, 마하깟사빠 존자가 2개,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가 3개, 답바 존자가 2개로 22개가 되고 그 외 상가마지, 밧디야, 이복동생 난다, 야소자, 삘린다왓차, 메기야, 삔돌라 바라드와자, 우빠세나, 소나 꾸띠깐나, 깡카레와따, 쭐라빤타까, 수부띠, 안냐따꼰단냐, 나가사말라 존자 등을 대상으로 읊으신 우다나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남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우러나온 말씀을 담은 우다나도 6개가 있다. 우루웰라의 깨달음의 나무[菩提樹] 아래에서 읊으신 본서의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의 우러나온 말씀이 대표적인 것이다. 역시 이곳에서 읊으신 본서「세상 경」(Ud3:10)의 산문과 운문이 섞인 긴 우러나온 말씀은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제거된 여러 가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과 닦아서 성취된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을 앉아서 반조하면서 읊으신「반조 경」(Ud6:3)의 우다나가 있고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를 버렸음을 반조하신「사량분별의 멸진 경」(Ud 7:7)도 있다.


나아가 청신사를 대상으로 한 경이 4개, 청신녀를 대상으로 한 것이 3개, 왕 2개, 바라문 2개, 외도들 3개, 아이들 2개, 약카 1개, 용왕 1개, 동물(코끼리) 1개, 날벌레 1개도 있다. 이처럼 특히 세존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경이 두 개가 있다. 이 가운데 날벌레들이 등불에 치달려 가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읊으신「치달려 감 경」(Ud6:9)의 우러나온 말씀도 있는데 특히 이 시대 비구들과 불자들이 뼈아프게 점검해 봐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몽둥이 경」(Ud2:3)은 뱀을 때리는 아이들을 보시고 스스로 읊으신 것이고 특히「아이 경」(Ud5:4)에서는 물고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시고 그들과 직접 이러한 대화를 나누시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다.

“얘들아, 너희들은 괴로움을 두려워하느냐? 너희들은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지 않느냐?”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괴로움을 두려워합니다. 저희들은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2)

이런 의미에서 본경은 니까야에서 세존께서 세속의 아이들에게 설법을 하신 유일한 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⑶ 게송으로 된 우다나와 산문으로 된 우다나

그리고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우러나온 말씀은 운문만으로 구성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우다나』에는 산문으로 된 우러나온 말씀이 4개 있고 산문과 운문이 섞여있는 우러나온 말씀도 한 개가 있다. 즉「기녀 경」(Ud6:8) §3,「열반과 관련됨 경」1(Ud8:1) §2,「열반과 관련됨 경」3(Ud8:3) §2,「열반과 관련됨 경」4(Ud8:4) §2이라는 네 개의 경의 우러나온 말씀은 산문만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세상 경」(Ud3:10)의 우러나온 말씀은 §§3 ~7에서 4개의 게송과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석서는 이것을 큰 우러나온 말씀[大感興語, mahāudāna]으로 부르고 있다(UdA.216).


① 산문으로 된 우다나 4개

② 산문과 운문이 섞인 우다나 1개 —「세상 경」(Ud3:10): 4개의 게송과 산문으로 됨

③ 게송만으로 된 우다나 75개

     1개의 게송으로 된 우다나 — 64개 경

     2개의 게송으로 된 우다나 — 10, 11, 13, 17, 31, 32, 39, 44, 60, 78번 경 = 10개 경 

     3개의 게송으로 된 우다나 — 56번 경 = 1개 경


그래서 본서는 모두 (64×1)+(10×2)+(1×3)+(1×4) = 91개의 게송들을 담고 있고, 산문으로 된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는 경들이 4개가 있다. 그래서『우다나 주석서』는 ‘게송(gāthā)으로는 95개의 우다나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UdA.5)고 밝히고 있다.


⑷ 삼장에 나타나는 본서의 경들과 동일한 경들

본서에는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우다나)을 중심에 두고 아난다 존자를 인도자로 하여(dhuraṁ katvā, DA.i.13) 모은 부처님의 가르침 80개가 담겨있다. 그러므로 이 80개의 가르침들 가운데는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일차합송에서 500 비구들과 함께 합송하여 전승한 경장 4부 니까야와 우빨리 존자가 주축이 되어 역시 일차합송에서 합송해 낸 율장의 일화들과 같은 내용을 담은 경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본서의 80개 가르침들 가운데 대략 22개의 경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과 율장에 포함된 일화들과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본서의 11개의 경들은 율장의『마하왁가』(8개)와『쭐라왁가』(3개)와 일치한다. 그리고 본서의 4개의 경들은 경장 4부 니까야의 6개 경들과 일치하고(중복 포함), 본서의 2개의 경들은 4부 니까야 2개의 경들과 산문 부분만 일치하고, 본서의 5개 경들은 4부 니까야 5개의 경들과 게송, 즉 감흥어만 일치하고, 본서의 하나의 경은 4부 니까야 가운데 하나의 경과 상황이 같다. 이들에 대해서는 아래 <도표:『우다나』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도표:『우다나』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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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우다나』의 주제

⑴ 가부좌를 하고 앉음 - 24개 정도의 경들

부처님을 위시한 출가자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과는 좌선일 것이다. 그래서 니까야의 수백 곳에서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sāyanhasamayaṁ paṭisallānā vuṭṭhito)’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세존께도 적용되고(D14 §1.14 등) 제자들에게도 적용된다(M8 §2 등). 여기서 ‘홀로 앉음’은 paṭisallāṇa의 역어이다. paṭisallāṇa는 prati(대하여)+saṁ (함께)+√lī(to cling, to adhere)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경에서는 주로 부처님이나 비구들이 공양을 마치고 낮 동안 나무 아래나 승원에서 홀로 앉아 지내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홀로 앉음’으로 옮겼다. 주석서에서는 “홀로 앉음(paṭisallāna)이란 혼자 있는 상태(ekībhāva)이다.”(DA.iii.1040)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홀로 앉음에서 일어남(paṭisallāṇā vuṭṭhita)’이란 과의 증득(phala -samāpatti)에서 출정한 것을 말한다.”(MA.i.181)라는 주석서의 설명에서 보듯이 부처님이나 직계 제자들의 이러한 홀로 앉음은 열반을 대상으로 한 과(果)의 증득의 경지에 든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을 모은 본서에서는 부처님이나 직계 제자들의 가부좌를 하고 앉음이나 삼매에 대한 언급이 많다. 본서에서는 세존과 관계된 것으로는 8개 정도의 경들을 들 수 있고 제자들과 관련된 것으로는 16개 정도가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24개 정도의 경들이 부처님과 제자들의 홀로 앉음, 가부좌를 하고 앉음, 삼매에 대한 일화와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① 세존의 성도와 연관된 가부좌하고 앉음 - 8개 정도의 경들

먼저 세존의 성도와 연관된 경들을 살펴보자.「깨달음 경」1/2/3(Ud1:1~3)과「세상 경」(Ud3:10)의 네 개 경은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흥흥거림 경」(Ud1:4)은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무짤린다 경」(Ud2:1)은 무짤린다 나무 아래에서 앉아 계셨는데 이 6개 경들에는 모두 “그때 세존께서는 해탈의 행복을 누리시면서 칠 일 동안 단 한 번의 가부좌로 앉아 계셨다.”(§1)라고 언급이 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칠 일이 지난 뒤 그 삼매로부터 출정하셔서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 경이 이 여섯 개의 경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존께서 앉아서 자신을 반조해 보시는 경들 두 개, 즉 자신에게서 제거된 여러 가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과 닦아서 성취된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을 반조하면서 앉아 계셨던「반조 경」(Ud6:3)과 자신의 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를 버렸음을 반조하면서 앉아 계셨던「사량분별의 멸진 경」(Ud7:7)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② 직계 제자들의 가부좌하고 앉음 - 16개 정도의 경들

다음에는 직계 제자들의 가부좌하고 앉음과 관련된 일화를 담고 있는 경들을 살펴보자.『우다나』의 11개의 경들은 세존의 제자들이 가부좌하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는데 이 경들은 “그때 XX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YY로 앉아있었다.”(Ud3:1 §1 등)라는 기본 정형구로 되어 있다.

여기서 XX에는 존자들의 이름이 들어가고, YY에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안으로 잘 확립하여’나,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여’나, ‘자신의 고요함을 반조하면서’ 등이 들어간다. 이 11개의 경들 가운데 세 개의 경은 사리뿟따 존자에 관한 것이고(Ud3:4, Ud4:7, Ud4:10) 나머지는 마하목갈라나 존자(Ud3:5), 삔돌라 바라드와자 존자(Ud4:6), 깡카레와따 존자(Ud5:7), 쭐라빤타까 존자(Ud5:10), 수부띠 존자(Ud6:7), 안냐따꼰단냐 존자(Ud7:6), 마하깟짜나 존자(Ud7:8), 그리고 어떤 비구(Ud3:1)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삼매를 증득하여 칠 일 동안 단 한 번의 가부좌로 앉아있었다.’(§1)로 나타나는「삭까의 감흥어 경」(Ud3:7)의 마하깟사빠 존자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야소자 경」(Ud3:3)에 나타나는 야소자를 상수로 하는 500명의 비구들은 왁구무다 강의 언덕에서 나뭇잎으로 움막을 만들어서 안거를 시작하였고 그 안거 동안 그들은 모두 세 가지 명지[三明]를 실현하였는데 세존께서는 이들에 대해서 “나와 이 500명의 비구들은 모두 흔들림 없는 삼매에 들어 좌정하고 있었느니라.”(§11)라고 하신 본경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삼매의 경지에 들어있는 사리뿟따 존자를 약카가 공격을 했다가 바로 대지옥에 떨어졌다는 일화를 담은「약카의 공격 경」(Ud4:4)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고, 아울러 답바 존자의 반열반과 관계되어 있으며 ‘하늘에 올라간 뒤 허공의 빈 공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불의 요소를 통해서 삼매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반열반에 들었다.’(§2 등)로 나타나는「답바 경」1/2(Ud8:9~10)의 두 개의 경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이처럼 16개의 경들은 직계 제자들의 이러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좌선과 삼매 수행을 보고 읊으신 것이다. 이처럼 제자들의 좌선과 삼매 수행과 삼매를 통해 드러내는 특별한 경지는 세존의 우러나온 말씀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들에서 udāna는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대로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 바로 감흥어(感興語)로 옮길 수 있겠다.


⑵ 제자들의 일상생활 및 일화 - 11개 정도의 경들

부처님 제자들의 일상은 당연히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의 중요한 대상이 된다. 그래서『우다나』에는 위의 제자들 외에도 여러 부처님 제자들이 언급된다.

끊임없이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1)라고 우러나온 말을 읊었다는 밧디야 존자의 일화를 담은「밧디야 경」(Ud2:10)과, 세존의 이복동생인 난다 존자의 깨달음의 일화를 담고 있는「난다 경」(Ud3:2)과, 500생 동안 바라문이어서 익힌 습관 때문에 비구들을 비천하다는 말로 대하였던 삘린다왓차 존자의 일화를 담은「삘린다왓차 경」(Ud3:6)과, 한때 세존의 시자로 있었고 세존께서 9개의 요긴한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메기야 존자의 일화를 담은「메기야 경」(Ud4:1)과, 아라한이었던 우빠세나 존자의 일화를 담은「우빠세나 경」(Ud4:9)이 있다. 그리고 청신사로 마하깟짜나 존자의 시자로 있다가 늦게 출가하여 세존을 뵈었고 세존께서 “비구여, 왜 그대는 이처럼 늦었는가?”(§11)라고 말씀하신 소나 꾸띠깐나 존자의 일화를 담은「소나 경」(Ud5:6)이 있고, 따로 승가의 갈마를 행하여 승가의 분열을 획책하는 데와닷따의 일화를 담은「승가의 분열 경」(Ud5:8)이 있으며, 두 갈래 길에서 세존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갔다가 ‘도중에 도둑들을 만나서 손과 발로 구타를 당하고 발우가 부수어지고 가사가 찢어진’(§3) 나가사말라 존자의 일화를 담은「두 갈래 길 경」(Ud8:7)도 있다. 본경은 특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부대중이 어떤 태도로 수행과 신행을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일화라고 역자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대부분의 비구들이 경멸하는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이지만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다. 그리고 이 비구가 이미 얻지 못한 증득[等持]을 찾기란 쉽지 않다.”(§2)라고 말씀하시는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의 일화를 담은 세 개의 경인「라꾼따까 밧디야 경」1/2/3(Ud7:1~2; 5)이 있다.


⑶ 제자들의 한담 - 3개 정도의 경들

한편 비구들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는 장면도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구들이 모여서 세니야 빔비사라 마가다 왕과 빠세나디 꼬살라 왕 중에서 누가 더 재물, 재산, 영토, 군대, 번영, 위력이 있는가를 두고 한담하는 비구대중을 경책하신「왕 경」(Ud2:2)과, 역시 모여앉아 탁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한담을 해대는 비구대중에게 경책을 하시는「탁발하는 자 경」(Ud3:8)과, 세상의 여러 가지 기술에 대해서 역시 한담을 해대는 비구대중에게 경책을 하시는「기술 경」(Ud3:9)이 본서에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이 세 개의 경들에서 공히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오직 두 가지 할 일이 있나니,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dhammī vā kathā ariyo vā tuṇhī- bhāvo).”(Ud2:2 §3 등)라고 분명하면서도 엄하게 경책을 하신다.


⑷ 여러 가지 행복 - 무짤린다 품의 10개 경들 등

특히 제2품 무짤린다 품(Ud2:1~10)에 포함된 열 개의 경들은 행복에 관계된 경들로 구성되었다.「무짤린다 경」(Ud2:1)의 우러나온 말씀은 만족하는 자의 멀리 여읨, 악의 없음, 탐욕의 빛바램도 행복이요, ‘나다.’라는 자만을 길들임은 참으로 궁극적 행복이라고 강조하신다.(§4)

「왕 경」(Ud2:2)의 우다나에서는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행복, 천상에서 누리는 행복은 갈애의 멸진으로 오는 행복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궁극적 행복을 강조하신다.(§4)

「몽둥이 경」(Ud2:3)에서도 몽둥이로 뱀을 때리는 아이들을 보시고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나니”(§2 {13})라고 강조하시면서 몽둥이로 생명을 해코지하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나 죽은 뒤에 행복을 얻지 못하지만, 몽둥이로 이들을 해코지 않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여서 죽은 뒤에 행복을 얻는다고 강조하신다.

「청신사 경」(Ud2:5)과「임산부 경」(Ud2:6)의 우다나에서 세존께서는 소유하지 않은 자, 무소유인 자들이 행복한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소유한 자는 고통스러워한다고 말씀하신다.

「외동아들 경」(Ud2:7)의 우다나에서는 슬픔과 괴로움과 불만족 등은 사랑스러운 대상으로부터 발생하지만 사랑스러운 대상이 없으면 이들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숩빠와사 경」(Ud2:8)은 칠 년째 전치태반(前置胎盤)으로 난산의 고통을 겪은 숩빠와사였지만 더 많은 아들을 가지고 싶어 하는 세속적 행복을 바라는 모습을 담았다.

「위사카 경」(Ud2:9)에서는 어떤 일로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얽혀 있었던 위사카 청신녀에게 남의 통제를 받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고 지배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거움, 즉 행복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우다나로 말씀하신다. 

「밧디야 경」(Ud2:10)은 출가하기 전에 왕국을 통치한 밧디야 존자가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라고 감흥어를 읊고 다니는 일화를 담고 있는데 세존께서는 우러나온 말씀으로 “그의 내면에 분노가 없고 / 이런저런 것을 건넜으며 / 두려움이 없고 행복하고 슬픔 없는 그를 / 신들도 볼 수가 없도다.”(§7 {20})라고 칭찬하고 계신다.

물론 이 외에도「깨달음 경」1/2/3(Ud1:1~3)과「세상 경」(Ud3:10)의 네 개 경은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흥흥거림 경」(Ud1:4)은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무짤린다 경」(Ud2:1)은 무짤린다 나무 아래에서 앉아 계시면서 세존께서 누리신 해탈의 행복(vimutti-sukha)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나가 경」(Ud4:5) §5에서는 혼자 지내는 행복(anākiṇṇa sukha)을,「답바 경」2(Ud8:10) §3에서는 흔들림 없는 행복(acala sukha)을 말씀하고 계신다.


⑸ 나쁜 상황이나 비극적인 상황

한편 앞에서도 계속해서 살펴보았듯이 붓다고사 스님은 우다나를 “기쁨과 함께하고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개 경들”(VinA.i.28 등)이라고 정의하였듯이 우다나는 많은 경우에 감흥어(感興語)로 옮겨졌다. 그러나 감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가 ‘마음에 깊이 감동되어 일어나는 흥취’이기 때문에 본서의 제목인 우다나의 역어로는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본서 80개의 우다나 가운데 흥취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죽음 등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나쁜 상황에 대한 우러나온 말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경이「순다리 경」(Ud4:8)이다.「존경 경」(Ud2:4)에서처럼 본경도 그 당시에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고 네 가지 필수품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다른 외도 수행자들은 존경을 받지도 못했고 필수품도 쉽게 구할 수가 없었음을 언급한다. 외도 수행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참을 수 없자 부처님을 곤경에 빠뜨릴 계략을 꾸몄다. 그들은 순다리(Sundari)라는 여자 유행승(paribbājikā)에게 밤마다 제따 숲을 찾아가서 다음날 날이 밝을 때 돌아와 사람들이 부처님을 의심하도록 했다. 그들은 얼마 후에 그녀를 살해하여 제따 숲 근처에 매장하고는 빠세나디 왕에게 이 유행녀가 보이지 않는다고 고했다. 외도들은 그곳을 뒤져서 그녀의 시체를 발견했고, 그 시체를 사왓티에 보내어 부처님의 소행이라고 비난을 시작했고, 사람들도 그 말을 믿고는 부처님과 비구 승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부처님께서는 탁발에서 돌아온 비구들에게서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비구들에게 “그런 말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7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7일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7)라고 말씀하시고 인내하며 참으신다. 사건이 끝나자 세존께서는 이런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제어되지 못한 사람들은 말로 사람을 꿰찌르니 / 마치 화살로 전쟁터의 코끼리를 꿰찌르는 것과 같구나. / 자기에게 쏟아진 거친 말을 듣더라도 / 비구는 성 내지 않는 마음으로 견뎌내야 하리.”(§11 {38})


본서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을 담은 경은 우데나 왕의 정원에 있던 내전이 불에 타서 사마와띠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여인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담은「우데나 경」(Ud7:10)일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 슬픈 소식을 듣고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 가운데는 예류자가 있고 일래자가 있고 불환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은 모두 결실이 없이 죽은 것은 아니다.”(§2)라고 말씀하시고,


    “세상은 어리석음에 속박되어 있지만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재생의 근거에 속박되고

    어둠에 휩싸여 있구나.

    영원한 것 같지만 멸진하나니

    보면 그 어떤 것도 없구나.”(§3 {70})


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사랑하는 손녀가 죽은 위사카 청신녀에게 “위사카여, 백 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자들에게는 백 개의 괴로움이 있다.  …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한 개의 괴로움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무 괴로움이 없다. 그들은 슬픔이 없고 티끌이 없고 절망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4)라고 말씀하시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위사카 경」(Ud8:8)도 이 영역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송아지를 가진 암소가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를 공격하여 생명을 빼앗아버린 일화를 담은「바히야 경」(Ud1:10)도 있다. 물론 본경 §§7~8에서 보듯이 그는 탁발하시는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기 때문에『앙굿따라 니까야』제1권「하나의 모음」(A1:14:3-8)에서 “빠르게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khippa -abhiññ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 문자적으로 바히야(bāhiya)는 외국인 혹은 이방인을 뜻하므로(UdA.78) 인도 밖, 즉 외국 출신 스님들을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송아지를 가진 암소의 공격으로 생명을 잃은 일화로는「나환자 숩빠붓다 경」(Ud5:3)도 있다. 가난하고 불쌍한 인간이었던 나환자 숩빠붓다는 예류과를 얻었다.

세존께 공양을 올리고 세존의 법문을 들은 어떤 소치는 사람이 마을의 경계에서 살해를 당한「소치는 사람 경」(Ud4:3)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도둑이 도둑에게 저지르고 

    적이 적에게 저지르는 것보다

    그 그릇되게 지향된 마음은

    그를 더욱 사악하게 만들 것이로다.”(§6 {33})


라고 읊으셨다. 많은 아이들이 사왓티와 제따 숲 사이에서 물고기를 괴롭히는 것을 보시고는 “만일 그대들이 사악한 업을 / 지으려고 하거나 짓고 있다면 / 그대들이 아무리 위로 날아 도망친다 하더라도 /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3 {44})라고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신「아이 경」(Ud5:4)이 있다.


「기녀 경」(Ud6:8)은 산문으로 된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는데 라자가하의 두 파벌이 어떤 기녀(妓女)에 홀리고 마음이 묶여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여 고통받은 사실을 담은 우다나이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처럼 그 당시 사왓티 사람들도 대체로 감각적 쾌락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탐하고 갈망하고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감각적 쾌락에 취해서 지냈는데 이를 걱정하시는 우러나온 말씀을 담은 두 개의 경, 즉「들러붙음 경」1/2(Ud7:3~4)도 관심을 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서 언급하고 있는 ⑹ 바라문들과 외도 유행승들에 대한 일화를 담은 경들 등은 모두 나쁜 일화를 담은 우러나온 말씀이다. 이처럼 본서에는 좋지 않은 상황과 나쁜 상황에 대한 우다나도 적지 않게 들어있다.


⑹ 바라문들과 외도 유행승들

본서「여러 외도 경」1/2/3(Ud6:4~6)에는 ‘여러 외도의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유행승들(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이라는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외도는 titthiya/añña-titthiya/titthī/añña- titthī를, 사문은 samaṇa를, 바라문은 brāhmaṇa를, 유행승은 paribbājaka를 옮긴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① 외도(titthiya)

초기불전에서 ‘외도’는 titthiya/añña-titthiya/titthī/añña-titthī 등으로 나타난다. 본서에서는「나가 경」(Ud4:5) §1, §5에서는 titthiyā(외도들)로 나타나고,「존경 경」(Ud2:4) §§1~2와,「순다리 경」(Ud4:8) §§1~4와,「여러 외도 경」1/2/3(Ud6:4~6)의 §4 등과,「출현함 경」(Ud6:10) §§2~3에는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외도 유행승들)로 나타나며「외도 경」1/2/3(Ud6:4~6) §1에는 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여러 외도의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유행승들)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외도’로 옮기는 titthiya는 √tṝ(to cross)에서 파생된 명사 tittha(Sk. tīrtha, 성소(聖所)의 계단)와 관계가 있다. 문자적으로 titthiya는 이 ‘tittha에 속하는 자’라는 뜻이다. tittha(Sk. tīrtha)는 인도 바라나시의 강가 강 등의 성스러운 곳[聖所]의 기슭에 있는 계단을 말하며 añña-tittha는 다른 쪽(añña)에 있는 성소의 계단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añña-titthiya는 다른 쪽 성소의 계단에 속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외도를 뜻한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외도(añña-titthiya)’라는 것은 견해(dassana)도 외관(ākappa)도 처신(kutta)도 행실(ācāra)도 거처(vihāra)도 행동거지(iriyāpatha)도 모두 다른 쪽에 있는 자라고 해서 외도라 한다.”(DA.iii.833) 


② 사문(沙門, samaṇa)

『우다나』에는 Ud1:7부터 Ud8:7까지 모두 16개 정도의 경들에서 ‘사문(samaṇa)’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문과 바라문 혹은 사문/바라문의 문맥으로 나타나는 곳은 다음과 같다.

㉠ ‘사문이나 바라문(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으로 나타나는 곳(Ud2:6 §3; Ud3:10 §4)

㉡ ‘사문/바라문을 포함하는(sassamaṇabrāhmaṇiyā)’(Ud8:5 §5)

㉢ ‘그가 바라문이고 그가 사문이고 그가 비구이다(so brāhmaṇo so samaṇo sa bhikkhu).’(Ud3:6 §4)

㉣ ‘사문 고따마(samaṇa gotama)’(Ud5:3 §3; Ud7 :9 §1; Ud8:6 §13)

㉤ 앞에서 인용한 ‘여러 외도의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유행승들(nānātitthiya -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로도 나타남.

그 외 Ud1:7 §2 등의 7개 정도의 경들에서는 samaṇa가 단독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우물 경」(Ud7:9) §1에서는 투나에 사는 말라족의 바라문들이 사문들을 ‘까까머리 사문들(muṇḍakā samaṇakā)’이라고 비하하고 있다.


초기불전에서는 집을 떠나 독신생활을 하는 수행자를 ‘사문(沙門, samaṇa, Sk. śramaṇa)’이라 통칭하고 있으며 계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문이 될 수 있다. 육사외도(六邪外道,「심재 비유의 짧은 경」(M30) §2의 주해 참조)로 불리는 집단과 불교 교단이 대표적인 사문 집단이다. 사문 집단에 대한 경전적 설명은『디가 니까야』제3권「세기경」(D27) §26을 참조할 것. 네 종류의 사문에 대해서는『앙굿따라 니까야』제2권「음식 경」(A4:87)을 참조하기 바란다. 


③ 바라문(婆羅門, brāhmaṇa)

‘바라문(brāhmaṇa)’이라는 용어는 본서의 20개 정도의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본서 제1품 깨달음 품(Bodhi-vagga)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에는 이 바라문(brāhmaṇa)이라는 용어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 ②에서 보았듯이 본서의 7개 정도의 경들에서는 사문과 바라문이라는 문맥으로 나타나며, 그 외에도 사문이라는 용어와 함께 나타나는 경들이 4개 정도가 더 있다.


여기서 보듯이 ‘바라문(婆羅門)’은 brāhmaṇa(Sk.와 동일)를 음역한 것이다. 바라문은 인도의 종교인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바라문이라는 특정 계급 출신이라야 하며, 결혼을 하고 독신이 아니다. 물론 8세부터 20세까지 12년간은 스승의 문하에서 독신으로 금욕 생활을 하면서 베다 등을 학습한다.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도 사리뿟따, 목갈라나, 깟사빠, 뿐나, 만따니뿟따 등등 교단을 대표하는 많은 인물들이 바라문 출신들이었다. 주석서들에서는 “‘바라문(brāhmaṇa)’이란 최상(seṭṭha)이며 결점이 없다는(nid- dosa) 뜻이다.”(AA.iii.4)라거나 “사악함을 내몰았기(bāhita-pāpatā) 때문에 바라문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이니 번뇌 다한 자(khīṇāsava)를 말한다.”(AA Ṭ.ii.203)라는 등으로 바라문을 정의하고 있다.


특히『맛지마 니까야』제10장 바라문 품(Brāhmaṇa-vagga, M91~100)에 포함된 열 개의 경들은 부처님 당시의 유명했던 바라문들에 대한 일화를 담고 있다. 본 품은 인도의 종교인과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바라문들과 관계되는 경들을 모은 것이다.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듯이 바라문들은 세존과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한 지적이고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바라문 계급의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맛지마 니까야』의 이 바라문 품에도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강한 비판이 담겨 있는 경들이 많다.


그리고 본서 제1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의 모든 우러나온 말씀에는 ‘바라문(brāhmaṇa)’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다. 이것도 제1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제1품의 10개의 경들에서 깨달음을 체득하고 열반을 실현한 완성된 인간, 완성된 존재, 이상적인 인간, 이상적인 존재를 바라문이라 부르고 계신다. 본서뿐만 아니라『숫따니빠따』와『법구경』등에서도 이처럼 바라문은 완성된 인격체를 뜻하는 용어로 쓰였다. 특히『맛지마 니까야』「와셋타 경」(M98)에서 세존께서는 57개의 게송으로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세존께서 와셋타 바라문 학도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에게 설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바라문 계급의 사람들 가운데는 나쁜 인격을 가진 존재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바라문 학도들이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무례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일화를 담은 본서「무례함 경」(Ud5:9)과, 세존의 일행이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우물을 풀과 왕겨로 가장자리까지 채워버린 투나라는 말라들의 바라문 마을 일화를 다룬 본서「우물 경」(Ud7:9)을 나쁜 바라문들의 일화로 들 수 있다.


④ 유행승(遊行僧, paribbājaka)

본서에서 ‘유행승(paribbājaka)’이라는 용어는 8개 정도의 경들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앞의 ①에서 밝힌 외도 유행승들(aññatitthiyā paribbājakā)과 여러 외도의 사문들과 바라문들과 유행승들(nānātitthiya-samaṇa-brāhmaṇa -paribbājakā)로 나타나고 있다.


‘유행승(遊行僧, paribbājaka)’에 대해서는 본서「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Ud6:2) §2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본서의 외도 혹은 외도 유행승에 관계된 경들도 모두 나쁜 상황에 대한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순다리 경」(Ud4:8)이 그러하다. 그리고 존경과 존중을 받지 못함을 견디지 못하는 외도 유행승을 언급하는「존경 경」(Ud2:4)과 임신한 아내가 기름을 먹고 싶다고 하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곳간에 가서 기름을 원하는 대로 마셨지만 집으로 와서 위로 토해낼 수도 없었고 아래로 내릴 수도 없었고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는 느낌들에 닿아서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렀다는 유행승의 일화를 담은「임산부 경」(Ud2:6)이 있다.


본서에는 특히 제6품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을 중심으로 외도들에 관계된 우다나도 적지 않게 실려 있다. 제6품의 명칭인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 품이 바로「여러 외도 경」1(Ud6:4)에 나타나는 “비구들이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먼 사람들이고 눈이 없는 자들이다.”(§4)로 시작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에서 가져온 것이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헝클어진 머리를 한 고행자들 등을 향해 합장을 하고 공경한 뒤 “세상에는 아라한들이나 아라한의 길을 증득한 자들이 있는데 저분들은 그들 가운데 일부입니다.”(§3)라고 하자 세존께서 “그대가 이들이 아라한들인지 아니면 아라한의 길을 증득한 자들인지 알기란 어렵습니다.”(§4)라고 하시고 “계행은 함께 살아야 알 수 있습니다. … 어리석은 사람에 의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5)라고 말씀하신「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Ud6:2)이 있다.


「여러 외도 경」1/2/3(Ud6:4~6)에서는 그들이 각각 다른 견해를 가지고 각각 다른 신념을 가지고 각각 다른 취향을 가져서 각각 다른 견해의 의지처에 의지하고 있음을 십사(十事)와 16가지 견해를 통해서 드러내신다. 

특히 여러「외도 경」1(Ud6:4)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먼 사람들이고 눈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로운 것을 모른다. 그들은 이롭지 않은 것을 모른다. 그들은 법을 모른다. 그들은 비법(非法)을 모른다. 그들은 이로운 것을 모르고 이롭지 않은 것을 모르고 법을 모르고 비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법이고 저런 것은 법이 아니다. 이런 것은 법이 아니고 저런 것이 법이다.’라고 하면서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면서 머문다.”(§4)라고 말씀하시고 저 유명한 선천적으로 눈먼 사람의 비유를 드셨다.


⑺ 깨달음의 경지와 열반에 대한 명쾌한 말씀

『우다나』는 부처님께서 네란자라 강의 언덕에 있는 깨달음의 나무[菩提樹] 아래에서(bodhirukkhamūle) 깨달음을 체득하시고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들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인 제8품 빠딸리 마을 품(Ud8:1~10)의 열반과 반열반과 관계된 우러나온 말씀들로 끝을 맺는다. 본서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본서에는 이처럼 깨달음의 경지와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들이 담겨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깨달음과 열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깨달음을 체득하는 것은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고 열반을 실현해야 깨달음이 체득되기 때문이다. 이제 깨달음의 경지와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들을 살펴보자.


① 깨달음을 체득하시고 읊으신 6개의 우러나온 말씀들

본서『우다나』에는 부처님께서 네란자라 강의 언덕에 있는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체득하시고 읊으신 감흥어가 6개 실려 있다. 그것은「깨달음 경」1/2/3(Ud1:1~3)과「흥흥거림 경」(Ud1:4)과「무짤린다 경」(Ud2:1)과「세상 경」(Ud3:10)이다. 이 여섯 개 경은 모두 ‘세존께서 해탈의 행복을 누리시면서 칠 일 동안 단 한 번의 가부좌로 앉아 계신’(§1) 뒤에 읊으신 우러나온 말씀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처음 세 개의 경은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드러내고 계시며 그래서 “참으로 법들이 분명하게 드러날 때 / 그의 모든 의문들은 사라지나니”(Ud1:1~3 §1)라고 우러나온 말씀에서 밝히고 계신다. 이 세 개의 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을 통한 연기법의 자각임이 밝혀졌다.

「흥흥거림 경」(Ud1:4)에서 세존께서는 자만으로 가득한 바라문에게 지혜를 구족하여 청정범행을 완성한 바라문이야말로 진정한 바라문이라는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무짤린다 경」(Ud2:1)에서 세존께서는 깨달음의 실현을 통해서 성취된 멀리 여읨과 악의 없음과 탐욕의 빛바램이 바로 행복임을 말씀하신 뒤 ‘나다.’라는 자만을 길들임이 궁극적 행복이라고 읊으시는데 깨달음의 체득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요 궁극적인 행복임을 역설하시는 우다나라 하겠다.


그리고「세상 경」(Ud3:10)에서는 산문과 운문이 섞인 긴 길이의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시는데 ‘존재에 대한 갈애는 제거되고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 여여한 자는 모든 존재들을 넘어섰도다.’(§6)라고 사자후를 토하시는 우러나온 말씀이 담겨있다. 주석서는 “이처럼 세존께서는 무여열반의 경지[無餘涅槃界]를 정점으로 하여 이 큰 우러나온 말씀(mahāudāna)을 완성시키셨다.”(UdA.216)라고 찬탄하고 있다. 이처럼 주석서는 이 우러나온 말씀을 ‘큰 우러나온 말씀(mahāudāna)’이라 찬탄하는데 단지 길이가 길어서가 아니라 존재[有]에 집착하고, 존재에 압도되어서도 또 존재를 즐기고, 그러면서도 또 즐기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연민으로 가득한 이 말씀이야말로 가장 감동적이고 위대하다고 판단해서 주석가들은 이것을 이렇게 ‘큰 우러나온 말씀’이라고 표현을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깨달음을 실현하시고 읊으신 여섯 개의 우러나온 말씀들 가운데 처음의 넷은 지혜를, 다섯 번째는 행복을, 여섯 번째는 자비를 말씀하고 계신다. 깨달음의 완성은 지혜와 자비와 행복의 완성이라고 세존께서는 우러나온 말씀을 통해서 사자후를 토하고 계신다 하겠다.


②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들

한편『우다나』의 마지막인 제8품 빠딸리 마을 품(Ud8:1~10)은 열반과 반열반과 관계된 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처음의 네 개의 경들, 즉「열반과 관련됨 경」1/2/3/4(Nibbānapaṭisaṁyutta-sutta, Ud8:1~4)는 열반에 대한 부처님의 분명한 말씀을 담고 있으며『우다나 주석서』도 열반에 대한 담마빨라 스님의 명쾌한 설명을 담고 있다. 

열반의 실현(nibbānassa sacchikiriya, D22 §1 등)은 궁극적 행복(parama- sukha, DhpA.iii.261)이며 그래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그러나 4부 니까야의 경전들에서 열반은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로 설명이 되고 ‘전적으로 염오함, 이욕,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ekantanibbidā virāga nirodha upasama abhiññā sambodha nibbā -na, S46:20 §3 등)’으로 설명이 되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sabbūpadhipaṭinissagga taṇhā-kkhaya virāga nirodha, M26 §19 등)’로도 설명이 되지만 더 이상의 열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본 품의「열반과 관련됨 경」1/2/3/4(Ud8:1~4)의 우러나온 말씀들은 열반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네 개의 우러나온 말씀 가운데 첫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경의 우러나온 말씀은 산문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경의 우러나온 말씀은 게송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도 “비구들이여, 그러한 경지가 있으니 거기에는 ① 땅이 없고 … ⑤ 공무변처도 없고 … 거기에는 역시 ⑬ 옴이 없고 … ⑳ 참으로 이것은 대상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2 {71})로 설하시는 첫 번째 경, 즉「열반과 관련됨 경」1(Ud8:1)의 산문으로 설하신 우러나온 말씀은 이처럼 열반을 ‘20가지가 아닌 것’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 우러나온 말씀은 ‘법에 대한 배제를 방법으로 함(dhamma-apohana-mukha)’에 의해서 열반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분석하는 우다나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UdA.390)

여기서 배제로 옮긴 apohana(아뽀하나)는 불교 인식논리학의 거장 딕나가(Dignāga) 스님이 제창한 아뽀하(apoha, 타(他)의 배제) 논리에 해당하는 술어이다. 예를 들면 같은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에는 “단어의 다른 의미를 배제함(saddantaratthāpohana)에 의해서 단어는 의미를 드러내는데 머리털(kesā)이라고 말하면 머리털이 아닌 것들이 아니다(akesā na honti)라는 이 의미를 알게 한다(saddantarattha- apohanavasena saddo atthaṁ vadatīti `kesā'ti vutte `akesā na hontī'ti ayam attho viññāyati).”(Pm.i.300, cf. UdA.12)라고 나타나는데 ‘단어의 다른 의미를 배제함(saddantaratthāpohana)’이 아뽀하 혹은 아뽀하나의 기본 의미이다.


본경에서도 세존께서는 ‘① 땅이 없고’부터 ‘⑳ 참으로 이것은 대상이 없다.’까지를 통해서 20가지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열반을 드러내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을『우다나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법에 대한 배제를 방법으로 함(dhamma-apohana-mukha)’이라고 설명하여 다른 의미를 배제함(antaratthāpohana)을 통해서 열반을 드러내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컴퓨터로 빠알리 문헌들을 검색해 보면 배제로 옮긴 이 apohana라는 용어는 빠알리 삼장과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 문헌들에는 나타나지 않고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우다나 주석서』와『이띠웃따까 주석서』및 복주서들에서 12번 정도 나타나는데 주로 앞에서 인용한 ‘saddantara- tthāpohanavasena saddo atthaṁ vadati(단어의 다른 의미를 배제함에 의해서 [특정] 단어는 그 의미를 드러낸다).’(UdA.12, Pm.i.300, DAṬ.i.48 등, cf. UdA. 390)라는 문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apoha도 itarāpohe vā 등으로 복주서 문헌에만 서너 번 정도 나타나는데 apohana와 같은 의미이지만 중요한 빠알리 용어로 정착되지는 않은 듯하다.

apohana 혹은 apoha(apa+√ūh, ūhati, 1류, to remove, 중국에서 除(제)나 離(이)로 옮김)는 PED나 BDD 등의 어떤 빠알리 사전에도 표제어로 등재되지 않았고 불교 산스끄리뜨 사전인 BSD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범영사전에는 exclusion으로 나타난다. 


그리고「열반과 관련됨 경」3(Ud8:3)의 우러나온 말씀에서는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고 만들어지지 않았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있다. …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고 만들어지지 않았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에 태어났고 존재했고 만들어졌고 형성된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천명하게 된다.”(§2 {73})라고 하시어 ‘열반의 요소(nibbānadhātu)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존재함(paramatthato sambhavo)’(UdA. 396)을 천명하셨다. 역자는 이 네 개의 경들, 즉「열반과 관련됨 경」1/2/ 3/4(Ud8:1~4)에 대한 설명으로『우다나 주석서』의 해당 부분을 주해에서 많이 인용하였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본서의 마지막 경인「답바 경」2(Ud8:10)는 “말라의 후예 답바가 하늘에 올라간 뒤 허공의 빈 공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불의 요소를 통해서 삼매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반열반에 들자 그의 몸은 불타고 다 타버려서 재조차도 남지 않았고 그을음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다.”(§2)로 설명이 마무리가 되고 “그와같이 바르게 해탈하였고 / 감각적 쾌락의 속박인 폭류를 건넜으며 / 흔들림 없는 행복을 증득한 분들의 / 행처는 드러낼 수 없도다.”(§3 {80})로 부처님의 우러나온 말씀도 마무리가 된다. 이처럼 반열반을 맨 마지막에 놓는 방식으로『우다나』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0.『우다나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우다나』를 접하면서 우리는 담마빨라(Dhammapāla)라는 상좌부 불교의 또 한 분의 중요한 주석가를 만나게 되었다. 상좌부 불교의 2,600년 단절 없는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두 분을 들라면 붓다고사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을 꼽을 수밖에 없다. 전자는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 전승되어 오던 초기불전에 대한 논의와 설명을『청정도론』과 빠알리 삼장의 주석서들로 정리해서 체계화한 분이며, 후자는 이 전통을『빠라맛타만주사』와 3부 니까야의 복주서로 계승해서 정착시킴과 동시에 붓다고사 스님이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 주석서들을 완성시킨 분이다.『우다나 주석서』도 바로 이 담마빨라 스님이 지었다. 이제『우다나 주석서』와 이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 18가지

담마빨라 스님은 방대한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분이며 그래서 그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즉 스승(ācariya)으로 호칭되고 있다. 상좌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두 분을 들라면 바로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과 이 아짜리야 담마빨라 스님이다. 전통적으로 붓다고사 스님은『청정도론』을 포함한 13개의 주석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된다. 


17세기에 미얀마에서 난다빤냐(Nandapañña)가 지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대한 역사서라 할 수 있는『간다왐사』(Gandhavaṁsa)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담마빨라 스님은 아래에서 언급하는 모두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18개는 아래의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I.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

  ① 담마빠다 주석서(DhpA) 

  ② 우다나 주석서(UdA) 

  ③ 이띠웃따까 주석서(ItA) 

  ④ 숫따니빠따 주석서(SnA) 

  ⑤ 테라가타 주석서(ThagA) 

  ⑥ 테리가타 주석서(ThigA) 

  ⑦ 자따까 주석서(JāA)

이들은『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게송을 포함하는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이다.


II.『빠라맛타만주사』(Paramtthamañjūsā, Pm) - 청정도론 복주서


III. 리낫타빠까시니(Līnatthappakāsinī, 숨은 뜻을 밝힘) - 경장의 복주서

  ① 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

  ②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MAṬ) 

  ③ 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 

  ④ 자따까 복주서(JāAṬ)이다. 


IV. 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 숨은 뜻을 설명함) - 논장의 복주서

  ① 담마상가니 복주서(DhsAṬ) 

  ② 위방가 복주서(VbhAṬ) 

  ③ 빤짜빠까라나 복주서(Pañcapakaraṇa-mūlaṭīkā) - 5론의 복주서


V. ① 넷띠빠까라나 주석서(Nettippakaraṇa-aṭṭhakathā)

  ② 넷띠빠까라나 복주서(Nettippakaraṇa-ṭīkā)

  ③ 붓다왐사 복주서(Buddhavaṁsa-ṭīkā)

그런데 이『붓다왐사 복주서』(BvAṬ)는 히뉘버(Hinüber) 교수의 Hand -book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 문헌들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전해온다. 


여기서 보듯이『우다나 주석서』는『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에 포함되어『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여섯 개 경들의 주석서와 함께 전해온다. 역자는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정리한 개인적인 자료를 통해서 이『우다나 주석서』를 읽고 검색과 인용을 하였다. 그리고 이『우다나 주석서』는 1995년에 메이스필드(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The Udāna Commentary’(Vol. I/II)로 영역이 되어 PTS에서 출간이 되었다. 전체 8품 가운데 제3품 난다 품(Ud3:1~10)에 대한 주석까지가 이 책의 제1권에 포함되어 있고 제4품 메기야 품(Ud4:1~10)의 주석부터 마지막까지가 제2권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제1품의 영어 번역에는 1,500개가 넘는 주해가 달려 있고 제2품에는 1,200개가 넘는 주해가 들어있으며 나머지 품들에도 각각 700개가 훨씬 넘는 주해가 달려 있으니 전체적으로 주해는 7,000개가 넘는다. 가히 빠알리 문헌의 번역에서 격조 높은 방법을 제시했다고 여겨진다. 역자는『우다나 주석서』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⑵ 담마빨라 스님에 대한 자료 5가지

현대에 들어와서 담마빨라 스님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여러 명인가? 

둘째, 담마빨라 스님과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빨라 스님은 같은가, 다른가? 

셋째, 담마빨라 스님은 어느 때 사람인가?

물론 이 가운데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에 의존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 거의 모든 학자들은 이 두 스님은 다른 분인 것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제일 중요한 문제이며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더 많을 수 있는가이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다섯 가지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①『쿳다까 니까야』의 일곱 경전에 대한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의 간기(刊記, nigamana)

②『넷띠빠까라나 주석서』의 간기(刊記)

③『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Pm)의 간기

④ 17세기에 미얀마의 난다빤냐(Nandapañña) 스님이 지은『간다왐사』(Gandhavaṁsa)

⑤ 북방불교에 나타나는 다르마빨라(Dharmapāla, 護法) 스님에 대한 자료.

이제 이 다섯 가지 자료를 중심으로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살펴보자.


① 담마빨라 스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자료는 요즘처럼 책의 맨 마지막에 넣는 저자 등에 대한 간행 기록[刊記, nigamana, colophon]이다.『쿳다까 니까야』의 일곱 경전에 대한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와『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와『넷띠빠까라나 주석서』의 간기에는 모두 저자가 “바다라띳타 승원에 거주하는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논하는 학자들은 모두 이 자료를 첫 번째로 언급한다. A. Pieris는 이 바다라띳타는 승원의 이름이 아니라 지역의 명칭이라고 설명한다.


② 두 번째 자료는『넷띠빠까라나 주석서』의 간기(刊記)이다.『넷띠빠까라나 주석서』의 게송으로 된 간기에는 저자가 성스러운 법이 전승되어 온 곳, 즉 인도에 있으며 아소까 왕의 이름과 관련된 나가빳따나에 있는 승원에 머물렀다고 나타난다.

그래서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자료를 연결하여 바다라띳타는 남인도 해변가에 있는 네가빠딴(Negapatan, Nāgapaṭṭana의 현재 지명)의 북쪽과 꼰지와람(Conjeevaram, Kāñcipura)의 남쪽에 있는 승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 Pieris는 너무 성급한 결론이라면서 동의하지 않는다.


③ 세 번째 자료는『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Pm)의 간기이다. 이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자료이다. Pm의 이 간기에서 저자는 싯다가마의 빠리웨나(Siddhagāma-pariveṇa)에 살고 있는 다타나가(Dāṭhanāga)라는 현명한 장로의 요청으로 이 책을 썼다고 적고 있다. 스라랑카의 역사서인『쭐라왐사』(Cūḷavaṃsa)에 의하면 이 빠리웨나는 세나 4세 왕(서기 954~956) 때 그가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 승려로서 머물렀던 곳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의 왕위 계승자인 마힌다 4세 왕(서기 956~972)은 다타나가 장로를 주지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담마빨라 스님은 Pm을 싯다가마 빠리웨나에 거주하는 바로 이 다타나가 장로의 요청으로 쓴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Pm은 10세기 후반에 쓰여진 것이 된다.


이 세 번째 자료를 토대로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은 이들 주석서와 복주서의 저자가 10세기 때의 스님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고 아래 다섯 번째에서 언급되는 북방불교의 다르마빨라 스님일 수가 없다고도 결론짓는다. 사실 이 세 번째 자료는 두 명 혹은 세 명의 담마빨라 스님이 있다는 주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래서 삿다띳사(Saddhatissa) 스님도 아래 네 번째 자료를 함께 언급하면서 두 명의 담마빨라 스님이 있어서 주석서들의 저자와 복주서들의 저자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6세기 때 스님이고 후자는 10세기 때 스님이며, 전자는 아짜리야 담마빨라이고 후자는 아래 네 번째 자료에서 언급하는 쭐라 담마빨라 스님이며, 전자는 인도 사람이고 후자는 스리랑카 출신이라고 역설한다.

저명한 초기불교 학자인 노만 교수(K. R. Norman)도 아래 네 번째 자료를 함께 언급하면서 두 명의 담마빨라 스님이 있어서 주석서들의 저자와 복주서들의 저자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한 명의 저자라고 믿는 학자들은 이 세 번째 자료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자료를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래서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교수는 싯다가마(Siddhagāma)라는 명칭과 가까운 이름이 지금은 타밀에서 다르게 발음하지만, 예를 들면 Siddhakovil, Siddha- malai, Saddhavādi Nāḍu, Siddhapura 등이 깐찌뿌라 주위의 여러 곳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싯다뿌라는 아소까 칙령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A. Pieris도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라는 것에 동의하는데 그는 이 자료는 엄정한 검증을 하지 않는 한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구문으로 볼 때 이 게송은 간기에 나타나는 다른 게송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④ 네 번째 자료는 17세기에 미얀마의 난다빤냐(Nandapañña)가 지은『간다왐사』(Gandhavaṁsa)이다.『간다왐사』의 ‘저자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장에 의하면 담마빨라라는 이름을 쓰는 스님들이 네 명 언급된다. 첫 번째가 10명의 큰 스승들에 대한 언급에 나타나는 아짜리야 담마빨라이며 그는 붓다닷따 스님과 아난다 스님 바로 다음에 언급되고 있으며 위에서 밝혔듯이 14개의 저술(『리낫타빠까시니』와『리낫타완나나』를 각각 3개로 풀어내면 모두 18개가 됨)을 남겼다고 한다. 두 번째는 쭐라 담마빨라 스님인데 디빵까라와 깟사빠 스님 다음에 언급되며 그는『삿짜상케빠』의 저자로 언급되고 아난다 스님의 상수 제자라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상가락킷따와 아누룻다 스님 사이에 언급되고 있으며, 네 번째는 마리맛다나뿌라의 스님들의 목록에 나타난다고 한다. 물론 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지금의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도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알려진 18권의 저자가 두 명이라고 믿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삿다띳사 스님은 그래서 복주서들은 이 쭐라 담마빨라가 지었다고 주장하지만 릴리 드 실바 교수가 반박하였다.


한편 말랄라세께라(Malalasekera) 교수는 DPPN에서 쭐라 담마빨라는 와나라따나 아난다 스님의 수제자였으며『삿짜상케빠』를 지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 담마빨라 스님이 복주서들을 지었고 아난다 스님의『물라띠까』에 대한 아누띠까인『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를 지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는 없다. 


⑤ 다섯 번째는 북방불교에 나타나는 다르마빨라(Dharmapāla, 護法) 스님에 대한 자료인데 현장 스님의『대당서역기』와 현장 스님의 행장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다르마빨라는 남인도 깐찌뿌라(Kāñcipura)에서 태어났으며 날란다(Nālanda) 대학의 가장 유명한 교수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제자인 실라바드라 스님이 날란다 대학에 있을 때인 서기 640년에 현장 스님은 날란다 대학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다르마빨라 스님은 유식의 대가였으며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끼르띠 스님과 실라바드라 스님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논의하는 상좌부 불교의 담마빨라 스님도 깐찌뿌라 출신이었음을 말랄라세께라 교수와 삿다띳사 스님과 릴리 드 실바 교수는 인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그렇다고 해서 다르마빨라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이 동일인이라고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삿다띳사 스님과 릴리 드 실바 교수는 붓다닷따 스님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담마빨라가 깐찌뿌라 출신이라고 주장하지만 남방의 담마빨라와 북방의 다르마빨라가 같은 사람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리스 데이비즈 교수나 노만 교수나 오스카 히뉘버 교수나 더 이전의 윈터니쯔 교수나 빌헬름 가이거 교수는 이를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르마빨라 스님은 유식학파에 속하는 스님인데 담마빨라 스님은 Pm에서 유식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Pm에 나타나는 담마빨라 스님의 논리학 등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우다나 주석서』와『디가 니까야 복주서』등과 같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apohana(배제)의 이론 등을 볼 때 비슷한 시대에 같은 곳에서 태어났으며 이름까지 같은 두 분이 동일인이 아닐까 하는 관심을 역자도 가지고는 있다.


⑶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상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진행되는 담마빨라 스님이 한 명이다, 두 명이다, 혹은 여러 명이다라거나 생존 연대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추정과 논의와 주장은 명료하지 못하다.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이 인도 출신인지 스리랑카 출신인지도 분명하지 못하다. A. Pieris와 히뉘버(Hinüber) 교수의 제언처럼 우리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과 복주서들 상호간의 상호 참조(cross reference)나 내적인 통일성 등의 더 많은 증거를 모아야 한다.


릴리 드 실바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이런 측면에서 유용하다 할 수 있다.『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쭐라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삿짜상케빠』와 유사점이 없다. 그리고 만일 쭐라 담마빨라 스님이 Pm과 복주서들을 지었다고 한다면 culla(cūla, 작은)라는 용어는 이런 중요한 많은 저술을 한 담마빨라 스님에게 어울리는 용어가 아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  복주서』에 나타나는 문법 용어들은 10세기에 유행했을 깟짜야나 문법의 용어들이 아니라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서들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릴리 드 실바 교수는『디가  니까야  복주서』의 문장들이『우다나 주석서』나『이띠웃따까 주석서』나『짜리야삐따까 주석서』와 놀라울 정도로 같은 보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도 주석서들을 쓴 담마빨라 스님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동일인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를 들면, VRI에서 발행한 육차결집본 텍스트 파일을 검색해 보면 ‘imasmiṁ sati eva, nāsati. imassuppādā eva, nānuppādā. anirodhā eva, na nirodhāti(오직 이것이 있을 때이지 없을 때가 아니고, 오직 이것이 일어날 때이지 일어나지 않을 때가 아니며, 소멸이 아님 때문이지 소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중심으로 한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imasmiṁ sati idaṁ hoti)로 시작되는 연기의 정형구에 대한 설명이『우다나 주석서』(UdA.38)에 나타나는데 이 문장은 빠알리 문헌 전체 가운데『상윳따 니까야 복주서』에만 “imasmiṁ sati eva, nāsati, imassa uppādā eva, nānuppādā, nirodhā eva, nānirodhāti”(SAṬ.ii.260)로 나타난다. 거의 같은 설명들이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빠라맛타만주사』(Pm)에도 나타나고 있다.(Pm.ii.246)

그리고 이 문맥에서 ‘tenedaṁ lakkhaṇaṁ antogadhaniyamaṁ idha paṭiccasamuppādassa vuttanti(이러한 것을 통해서 여기서 이 연기의 특징은 정해진 법칙으로 암묵적으로 분명하게 설해진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라는 문장이 나타나는데 이 문장도 빠알리 문헌 전체에서『우다나 주석서』(UdA.38)와『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ii.260)에 나타나고 더군다나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Pm)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고(Pm.ii.246)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자료들도 주석서들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과 복주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이 동일인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만일 역자가 이런 관심을 가지고 VRI본 빠알리 문헌 텍스트 파일의 자료들을 살펴보았다면 훨씬 많은 자료들을 모았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아가 히뉘버 교수는 담마빨라 스님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를 밝혔다. 그는『우다나 주석서』(UdA.94)에 나타나는 “kathā- vatthupakaraṇassa ṭīkāyaṁ gahetabbo(『까타왓투』논서의 복주서에서 취해야 한다).”를 예로 든다. 여기『우다나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아난다 스님이 지은『까타왓투 띠까』(KvAṬ)를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지은『까타왓투 아누띠까』(KvAnuṬ.122)를 들고 있다. 이처럼 주석서 문헌인『우다나 주석서』에서 주석서보다 후대의 문헌인 자신이 지은 복주서가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우다나 주석서』뿐만 아니라 복주서에 속하는 논장의 아누띠까도 담마빨라 스님 자신이 지었음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히뉘버 교수는 “이 결정적인 상호 참조는 이런 일관성이 있는 일련의 복주서들도 담마빨라의 저술임을 보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적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이처럼 [『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와 아비담마의 복주서인『리낫타완나나』가 상호 참조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명의 담마빨라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의 통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대림 스님의 제언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① 먼저 아비담마 칠론의 아누띠까인『리낫타완나나』를 짓고 ② 다음에『쿳다까 니까야』의 시로 된 7개 경전들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를 짓고 ③ 그다음에 Pm과『디가 니까야』와『맛지마 니까야』와『상윳따 니까야』의 복주서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림 스님의 언급처럼 Pm에『쿳다까 니까야』의『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를 참조하라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에 7개 주석서들이 Pm보다는 먼저 쓰여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장의 복주서들이 경장『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들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상하게 볼 필요는 전혀 없다. 경장의『쿳다까 니까야』에 대한 주석서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난다 스님이 이미 논장의 띠까를 먼저 완성하였으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이거나 적어도 영향을 많이 받았음이 분명한 담마빨라 스님은 여기에 대한 아누띠까(복복주서)를 지어서 상좌부 불교 교학의 집대성인 상좌부 아비담마를 완벽한 구조로 정착시켰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작업을 끝내고 이를 토대로 그다음에『쿳다까 니까야』7개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완성하고 그다음에『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만주사』와 경장의 복주서들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적통인 상좌부의 논장 칠론과 주석서와 복주서와『청정도론』등의 방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헌을 통해서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초심자에게는 현애상을 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이 절실하게 요구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미 5세기 때부터 많은 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최초는 아마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이 지은『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āvatāra, 아비담마 입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담마빨라 스님의『빠라맛타만주사』에도 언급되고 있다. 그 외에도 중요한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일찍부터 상좌부 불교에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역자 서문 §8. 아비담마 발전의 세 단계를 참조하기 바란다.


⑷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담마빨라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5세기)보다는 후대이고『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를 지은 사리뿟따 스님(12세기) 보다는 이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다른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릴리 드 실바 교수는 담마빨라 스님이 아난다 스님이 지은『담마상가니 복주서』를 언급하면서 “『물라띠까』에서 말하기를(Mūlaṭīkāyam āha)”이라는 표현 대신에 ‘아난다 스승이 말하기를(Ānandācariyo avoca)’이라는 어법을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아난다 스님은 담마빨라 스님에게 아주 익숙한 스님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 히뉘버 교수는 담마빨라 스님이 여기서 일반적인 과거분사로 표현하지 않고 avoca라는 보통은 잘 쓰지 않는 아오리스트 과거를 사용한 것은 빠니니 문법(Pāṇini 3.3.175)에서 밝히듯이 가까운 과거를 뜻한다고 첨언을 하고 있다. 그래서 히뉘버 교수는 “아난다 스님은 그의 스승이라는 것이 확정적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담마빨라 스님이 붓다고사 스님과 적통 상좌부인 대사(大寺, Mahāvihāra)의 입장을 옹호하고 아난다 스님의 입장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관점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담마빨라 스님은 아난다 스님의『물라띠까』의 입장을 아주 많이 인용하고 있다.

특히 그는 아난다 스님의『위방가』의『물라띠까』를 많이 인용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가 지은 아누띠까는 이러한 아난다 스님의『물라띠까』를 더 자세히 설명하고 보완하기 위해서『쿳다까 니까야』에 대한 7개의 주석서들(Paramatthadīpani)보다 먼저 아누띠까, 즉『리낫타완나나』(Līnattha- vaṇṇanā)를 지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아난다 스님의 제자였거나 적어도 아난다 스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뜻한다. 그는 결코 아난다 스님과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이는 아니다. 아난다 스님이 지은 아비담마『물라띠까』와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빠라맛타만주사』(청정도론 복주서)는 상좌부 불교에서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는 저술로 쌍벽을 이룬다. 


A. Pieris는 담마빨라 스님이 적통 상좌부의 교학을 옹호하는 조띠빨라 스님을 자주 인용하는 사실을 든다. 조띠빨라 스님은 악가보디 1세(Agga- bodhi I)의 통치기간인 6세기 말경에 인도에서 온 분이다. 그래서 Pieris는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10세기가 아닌 6세기로 제안한다.


노만 교수는 두 분의 담마빨라 스님을 인정하지만 주석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에서 우빠세나(Upasena)나 마하나마(Mahānāma) 같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을 들어서 이 세 사람은 동시대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주석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서기 6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히뉘버 교수는 뽀라나간티빠다(Porāṇagaṇthipada) – 담마시리간티빠다(Dhammasirigaṇṭhipada) – 아난다(Ānanda) – 와지라붓디(Vajirabuddhi)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이 와지라붓디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은 동시대 사람이고 남인도 출신이라고 결론짓고 이 연표에 나타나는 스님들은 서기 450년부터 600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담마빨라 스님은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이라고 제시한다.


이처럼『청정도론』과 12개의 주석서들을 지은 붓다고사 스님과 아비담마 칠론에 대한『물라띠까』(근본복주서)를 지은 아난다 스님과『빠라맛타만주사』를 위시한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활동한 서기 5〜6세기는 상좌부 불교의 교학이 정리되고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전파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역자는 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인 ‘A Study in Paramatthamañjūsā.’의 제1장 서문의 ‘Dhammapāla – the author of Pm’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우다나 주석서』와『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간추리면,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며 6세기 후반부에 실존했던 분이고 남인도 출신이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이고 북방의 다르마빨라(護法) 스님과는 동일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