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띠웃따까 목차>
| 해제 | 페이지 |
|---|
| 1. 들어가는 말 | 27 |
| 2.『이띠웃따까』란 무엇인가 | 30 |
| ⑴ ‘이띠웃따까(itivuttaka)’의 문자적인 의미 | 30 |
| ⑵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itivuttaka의 용례 | 34 |
| ⑶ itivuttaka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 36 |
| ⑷『이띠웃따까』의 경들은 110개인가 112개인가 | 38 |
| 3.『이띠웃따까』경들의 구조 | 39 |
| ⑴『이띠웃따까』112개 경들의 공통된 구조 | 39 |
| ⑵ ‘evaṁ me sutaṁ’과 ‘iti me sutaṁ’ | 41 |
| ⑶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 46 |
| ⑷『이띠웃따까』는 어디서 설하셨는가 | 48 |
| 4. 쿳줏따라는 누구인가? | 49 |
| ⑴ 니까야에 나타나는 쿳줏따라 | 50 |
| ⑵ 쿳줏따라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 52 |
| ⒜ 세 개의 주석서 | 52 |
| ⒝ 예류과를 얻은 인연 | 56 |
| ⒞ 하녀요 몸이 불편했지만 통찰지를 가져 태어난 인연 | 59 |
| ⒟ 삼장을 호지하는 자가 됨 | 60 |
| 5.『이띠웃따까』의 구성 | 62 |
| ⑴「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 62 |
| ⑵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270개 게송들의 분류 | 64 |
| ⑶ 본서의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게송에 대한 소고 | 67 |
| 6.『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 68 |
| ⑴ 붓다고사 스님이 남긴 주석서 13권 | 69 |
| ⑵ 담마빨라 스님의 저작 18권 | 70 |
| ⑶ 『이띠웃따까 주석서』 | 71 |
| ⑷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72 |
| ⑸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 73 |
| 7. 각 모음의 개관 및 관심을 끄는 경들 | 75 |
| ⑴「하나의 모음」(It1) | 75 |
| ◎「하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 76 |
| ⑵「둘의 모음」(It2) | 81 |
| ◎「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 83 |
| ⑶「셋의 모음」(It3) | 87 |
| ◎「셋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 90 |
| ⑷「넷의 모음」(It4) | 91 |
| ⑸ 삼장에 나타나는 본서의 경들과 동일한 경들 | 92 |
| 8. 맺는말 -『이띠웃따까』의 특징 | 94 |
| ⑴ 재가 여신도가 들어서 모은 부처님 말씀이다 | 94 |
| ⑵「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 94 |
| ⑶ 산문과 게송으로 되어 있다 | 94 |
| ⑷ 모든 경들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95 |
| ⑸ iti me sutaṁ(이렇게 저는 들었습니다.)으로 되어 있다 | 95 |
| ⑹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 95 |
| ⑺ 33개 정도의 경은 삼장의 다른 경들과 일치한다 | 96 |
| ⑻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 96 |
| ⑼ 궁극적 행복에 관한 경들이 주류를 이룬다 | 96 |
| ⑽ 이 시대의 재가 불자들에게 수준 높은 삶의 지표가 된다 | 97 |
| ⑾ 추모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 97 |
| 보증 품(It1:1~10) | 경번호 | 목차 |
|---|
| 탐욕 경 | (It1:1) | 101 |
| 성냄 경 | (It1:2) | 107 |
| 어리석음 경 | (It1:3) | 108 |
| 분노 경 | (It1:4) | 108 |
| 모욕 경 | (It1:5) | 109 |
| 자만 경 | (It1:6) | 110 |
| 일체를 철저하게 앎 경 | (It1:7) | 111 |
| 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 | (It1:8) | 116 |
| 탐욕을 철저하게 앎 경 | (It1:9) | 117 |
| 성냄을 철저하게 앎 경 | (It1:10) | 118 |
| 두 번째 품(It1:11~20) | 경번호 | 목차 |
|---|
|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앎 경 | (It1:11) | 120 |
| 분노를 철저하게 앎 경 | (It1:12) | 121 |
| 모욕을 철저하게 앎 경 | (It1:13) | 122 |
| 무명의 장애 경 | (It1:14) | 123 |
| 갈애의 족쇄 경 | (It1:15) | 126 |
| 유학 경1 | (It1:16) | 129 |
| 유학 경2 | (It1:17) | 133 |
| 승가의 분열 경 | (It1:18) | 134 |
| 승가의 화합 경 | (It1:19) | 136 |
| 타락한 마음 경 | (It1:20) | 137 |
| 세 번째 품(It1:21~27) | 경번호 | 목차 |
|---|
| 깨끗한 마음[淸淨心] 경 | (It1:21) | 141 |
| 자애 경 | (It1:22) | 143 |
| 양쪽 경 | (It1:23) | 148 |
| 뼈 무더기 경 | (It1:24) | 151 |
| 거짓말 경 | (It1:25) | 153 |
| 보시 경 | (It1:26) | 154 |
| 자애 수행 경 | (It1:27) | 156 |
| 첫 번째 품(It2:1~10) | 경번호 | 목차 |
|---|
| 괴롭게 머묾 경 | (It2:1) | 165 |
| 행복하게 머묾 경 | (It2:2) | 167 |
| 후회 경 | (It2:3) | 169 |
| 후회 않음 경 | (It2:4) | 171 |
| 계행 경1 | (It2:5) | 172 |
| 계행 경2 | (It2:6) | 173 |
| 근면함 경 | (It2:7) | 174 |
| 계략을 부리지 않음 경1 | (It2:8) | 175 |
| 계략을 부리지 않음 경2 | (It2:9) | 178 |
| 기쁨 경 | (It2:10) | 179 |
| 두 번째 품(It2:11~22) | 경번호 | 목차 |
|---|
| 일으킨 생각 경 | (It2:11) | 182 |
| 설법 경 | (It2:12) | 187 |
| 명지 경 | (It2:13) | 191 |
| 통찰지를 버림 경 | (It2:14) | 194 |
| 밝은 법 경 | (It2:15) | 196 |
| 태어나지 않음 경 | (It2:16) | 197 |
| 열반의 요소 경 | (It2:17) | 199 |
| 홀로 앉음 경 | (It2:18) | 204 |
| 공부지음의 이익 경 | (It2:19) | 206 |
| 깨어있음 경 | (It2:20) | 209 |
| 악처에 떨어지는 자 경 | (It2:21) | 213 |
| 나쁜 견해 경 | (It2:22) | 214 |
| 첫 번째 품(It3:1~10) | 경번호 | 목차 |
|---|
| 뿌리 경 | (It3:1) | 221 |
| 요소 경 | (It3:2) | 222 |
| 느낌 경1 | (It3:3) | 224 |
| 느낌 경2 | (It3:4) | 226 |
| 추구 경1 | (It3:5) | 228 |
| 추구 경2 | (It3:6) | 230 |
| 번뇌 경1 | (It3:7) | 233 |
| 번뇌 경2 | (It3:8) | 233 |
| 갈애 경 | (It3:9) | 234 |
| 마라의 영역 경 | (It3:10) | 236 |
| 두 번째 품(It3:11~20) | 경번호 | 목차 |
|---|
| 공덕을 짓는 토대 경 | (It3:11) | 239 |
| 눈 경 | (It3:12) | 340 |
| 기능 경 | (It3:13) | 244 |
| 시간 경 | (It3:14) | 246 |
| 나쁜 행위 경 | (It3:15) | 252 |
| 좋은 행위 경 | (It3:16) | 253 |
| 깨끗함 경 | (It3:17) | 254 |
|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경 | (It3:18) | 255 |
| 갈망 경1 | (It3:19) | 257 |
| 갈망 경2 | (It3:20) | 258 |
| 세 번째 품(It3:21~30) | 경번호 | 목차 |
|---|
| 그릇된 견해 경 | (It3:21) | 262 |
| 바른 견해 경 | (It3:22) | 264 |
| 벗어남 경 | (It3:23) | 265 |
| 더 고요함 경 | (It3:24) | 267 |
| 아들 경 | (It3:25) | 267 |
| 비 없는 구름 경 | (It3:26) | 272 |
| 행복을 열망함 경[幸福希求經] | (It3:27) | 275 |
| 부서지기 마련임 경 | (It3:28) | 278 |
| 요소에 따라 함께 모임 경 | (It3:29) | 280 |
| 망가짐 경 | (It3:30) | 282 |
네 번째 품(It3:31~40)
| 경번호 | 목차 |
|---|
| 생각 경 | (It3:31) | 285 |
| 존경 경 | (It3:32) | 287 |
| 신들의 소리 경 | (It3:33) | 289 |
| 다섯 가지 전조 경 | (It3:34) | 294 |
| 많은 사람의 이익 경 | (It3:35) | 297 |
| 부정함의 관찰 경 | (It3:36) | 299 |
|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 경 | (It3:37) | 302 |
| 어둠을 만듦 경 | (It3:38) | 304 |
| 내면의 때 경 | (It3:39) | 307 |
| 데와닷따 경 | (It3:40) | 310 |
다섯 번째 품(It3:41~50)
| 경번호 | 목차 |
|---|
| 으뜸가는 청정한 믿음 경 | (It3:41) | 315 |
| 삶을 영위함 경 | (It3:42) | 318 |
| 가사 끄트머리 경 | (It3:43) | 320 |
| 불 경 | (It3:44) | 323 |
| 점검 경 | (It3:45) | 323 |
| 감각적 쾌락의 일어남 경 | (It3:46) | 328 |
| 감각적 쾌락의 속박 경 | (It3:47) | 331 |
| 좋은 계행 경 | (It3:48) | 333 |
| 보시 경 | (It3:49) | 336 |
| 삼명 경 | (It3:50) | 338 |
| 바라문과 법으로 이루어진 제사 경 | (It4:1) | 347 |
| 쉽게 얻음 경 | (It4:2) | 350 |
| 번뇌의 멸진 경 | (It4:3) | 353 |
| 사문․바라문 경 | (It4:4) | 355 |
| 계의 구족 경 | (It4:5) | 358 |
| 갈애의 일어남 경 | (It4:6) | 361 |
| 범천과 함께 경 | (It4:7) | 363 |
| 많은 도움이 됨 경 | (It4:8) | 364 |
| 속임 경 | (It4:9) | 366 |
| 강의 흐름 경 | (It4:10) | 368 |
| 걷고 있음 경 | (It4:11) | 372 |
| 계를 잘 지킴 경 | (It4:12) | 376 |
| 세상 경 | (It4:13) | 379 |
<이띠웃따까 해제>
1. 들어가는 말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을 초기불교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고(tathāgatassa bhātā cūḷapituputta, DA.i.4),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출가하여 부처님의 후반부 24년을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모셨고, 다문제일(多聞第一, etadagga bahussutānaṁ)이라 불리며(A1:14:4-1), 일차합송에서 경장의 결집을 주도하였고(DA.i.14),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며(DhpA.99), 그래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도 무려 40년을 더 생존해 있었던 아난다 존자는『장로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92 {1024})
즉 초기불전은 8만 4천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8만 2천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2천은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초기불전은 빠알리어로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분류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그것은 율장(律藏, Vinaya Piṭaka)과 경장(經藏, Sutta Piṭaka)과 논장(論藏, Abhidhamma Piṭaka)이다. 이 가운데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法, dhamma]을 담고 있는 경장은 5부 니까야(Nikāya, 모음, 묶음)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것은 ⑴『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⑵『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⑶『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相應部, 주제별 경들의 모음) ⑷『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숫자별 경들의 모음) ⑸『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그 외 여러 가르침들의 모음)이다.
이 가운데『쿳다까 니까야』는 다음의 15개 경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⑴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 小誦經)
⑵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⑶ 우다나(Udāna, 自說經)
⑷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⑸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
⑹ 위마나왓투(Vimānavatthu, 天宮事經)
⑺ 뻬따왓투(Petavatthu, 餓鬼事經)
⑻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經)
⑼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經)
⑽ 자따까(Jātaka, 本生經)
⑾ 닛데사(Niddesa, 義釋)
① 마하닛데사(Mahā-Niddesa, 大義釋)
② 쭐라닛데사(Culla-Niddesa, 小義釋)
⑿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礙解道)
⒀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
⒁ 붓다왐사(Buddhavaṁsa, 佛種姓經)
⒂ 짜리야삐따까(Cariyāpiṭaka, 所行藏經)
이 15개 가르침 가운데 ⑵ 담마빠다(법구경), ⑶ 우다나(자설경), ⑷ 이띠웃따까(여시어경), ⑸ 숫따니빠따(경집), ⑻ 테라가타(장로게경), ⑼ 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 자따까(본생경)는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 초기불전으로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이띠웃따까』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쿳다까 니까야』의 네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이것은 如是語(여시어) 혹은 如是語經(여시어경)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용, 특히 형식에 따라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로도 분류된다. 이 아홉 가지는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인데 이미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언급되고 있다.(M22 §10; A4:6 §1; A4:103 §3; A5:155 §8; A6:51 §5 등)
이러한『이띠웃따까』는 쿳줏따라(Khujjuttarā)라는 청신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서 그녀가 모시던 사마와띠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들려준 것을 모아서 전승한 것이다. 본서는『앙굿따라 니까야』처럼 각 경들에 포함된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네 개의 모음(nipāta)으로 구성되어 있으며「하나의 모음」에는 27개의 경들이,「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들어있어서 모두 112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2.『이띠웃따까』란 무엇인가
⑴ ‘이띠웃따까(itivuttaka)’의 문자적인 의미
⒜ 상좌부 불교의 전통적인 해석:
웃따까(Pāli. vuttaka)는 욱따까(Sk. uktaka)이다
① 경전의 출처
‘이띠웃따까(itivuttaka)’는 iti와 vuttaka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iti는 ‘이처럼’, ‘이렇게’, ‘이와 같이’ 등을 뜻하는 불변화사(nipāta)이며 evaṁ처럼 영어로는 주로 thus로 옮겨지고 있다. vutt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에다 명사형 어미 ‘-ka’를 붙여서 만든 명사로 ‘설해진 것’, ‘말해진 것’ 등을 뜻한다. 특히 본서의 112개 경들이 모두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로 시작하여,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로 끝나고 있기 때문에 itivuttaka의 vuttaka는 이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Sk. ukta)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로 보아야 한다.
② 주석서의 해석
상좌부 불교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 itivuttaka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itivuttaka는 본서『이띠웃따까』112개의 모든 경에 나타나는 vutta(말씀하신)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산스끄리뜨 uktaka로 해석하고 있다. 만일 이 uttaka가 다른 의미를 가졌거나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주석서는 당연히 이것을 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기서 uttaka는 산스끄리뜨 uktaka의 뜻이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 북방불교의 해석: 웃따까(vuttaka)는 워릇따까(Sk. vṛttaka)이다
그런데 BHD, 즉 불교 하이브리드 산스끄리뜨 사전에 의하면 빠알리어 itivuttaka에 대응되는 산스끄리뜨는 ityuktaka가 아닌 itivṛttaka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vutta를 ukta(√vac, to speak의 과거분사)가 아닌 vṛtta(√vṛt, to happen, to turn의 과거분사)로 이해한 것이다. BHD는 그 출처로 “nidānetivṛtta ― Kv.81.21”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와 같이 일어난 이야기(tale)’, ‘이와 같이 생긴 일화(happening)’ 등으로 해석이 되는 itivṛttaka로 이해한 것이다. PED는 이 vṛttaka의 보기로 북방불교 저술인 Divyāvadāna(天譬喻曼經, Divy.439)를 들고 있기도 하다(PED s.v. vuttaka).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itivṛttaka를 一曰多伽(일왈다가), 伊帝目多伽(이제목다가), 伊帝弗多迦(이제불다가) 등으로 음역하였고 vṛttaka를 √vṛt(to happen, to turn)의 과거분사 vṛtta에서 파생된 명사, 즉 일화나 일이나 사건으로 이해하여 事(일 사 자)를 넣어 本事(본사)나 本事經(본사경)으로 번역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이띠워릇따까는 현장 스님에 의해서 650년 경에『本事經』(본사경)으로 중국에서 번역되었다.『본사경』은 각각「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에 배대가 되는 일법품과 이법품과 삼법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38개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대략 65개 정도의 경들이 본서『이띠웃따까』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빠알리어에서는 이 √vṛt에서 파생된 단어로는 vutti에서 파생된 vuttika, 즉 ‘살아가는 자’, ‘생계를 유지하는 자’가 있다.(PED) 그러므로 빠알리 문헌에서 vuttaka는 √vac(to speak)에서 파생된 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빠알리어에서 vuttaka라는 용어는 이 itivuttaka라는 합성어 외에는 없는 것으로 PED는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빠알리어 itivuttaka는 ‘이러한 말씀’, ‘이처럼 설하신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고 iti와 vutta는 본서의 112개 모든 경들의 처음 시작 부분과 마지막의 결언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vutta의 의미
한편『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vutta의 의미를 8가지 키워드로 제시하는데(ItA.i.4)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vapana(씨를 뿌림) ② vāpasamakaraṇe(씨를 뿌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이유) ③ kesohāraṇe(삭발) ④ jīvitavuttiya(삶을 영위함, √vṛt(to be, to happen)의 과거분사 ⑤ pavuttabhāva(떨어짐을 뜻하고 PED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MOL에 언급됨) ⑥ pāvacanabhāvena pavattita(따라 설함) ⑦ ajjhena (학문) ⑧ kathana(설함)
이 가운데 ①과 ②는 vutta를 √vap(to sow)의 과거분사로 설명하고 있고 ③은 √vap(to shave)의 과거분사로, ④는 √vṛt(to be)의 과거분사로, ⑤는 pavuttabhāva로 즉 pra+√vap(to shave)의 과거분사로, ⑥은 pra+√vac(to speak)의 과거분사로, ⑦은 adhi+√i(to go)로, ⑧은 √kathā(to tell) = √vac(to speak)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주석서는 삼장에 나타나는 출처를 밝히면서 그 용례를 설명한 뒤에 “여기 본서에서도 말씀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athane daṭṭha- bbo). 그러므로 vutta(말씀하신)는 kathita(설명하신)와 bhāsita(설하신)의 뜻이다.”(ItA.i.4)라고 결론짓는다.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처럼 문자적으로만 보면 빠알리어 vutta는 √vap(to sow)의 과거분사로도 볼 수 있고 특히 √vṛt(to be, to happen)의 과거분사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vutta 혹은 vuttaka의 어근을 √vac(to speak)로 설명하지 결코 북방 불교에서 주장하는 √vṛt(to be, to happen)로 설명하지 않는다. 경에 쓰이는 문맥으로 보거나 전통적인 해석으로 보거나 vutt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이고 vuttaka는 여기에 명사형 어미 -ka가 첨가되어 중성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북방 불교에서 주장하는 itivṛtaka는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전혀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해야 한다.
⑵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itivuttaka의 용례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이띠웃따까(itivuttaka)나 웃따까(vuttaka)라는 용어가 경의 이름이 아닌 보통명사로는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PED도 밝히고 있고 VRI본 CD-ROM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본경의 이름으로는 4부 니까야에서 11번 정도 나타나는데『맛지마 니까야』에서 한 번 나타나고(M22 §10)『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적게 배움 경」(A4:6) §1 등의 열 곳 정도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11번은 예외 없이 모두 구분교의 아홉 가지를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미 살펴보았듯이 ① 경(經, sutta)부터 ⑨ 문답[方等, vedalla]까지의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 가운데 ⑥ 여시어(如是語, iti- vuttaka)라는 구성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앙굿따라 니까야』의 두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앙굿따라 니까야』제3권「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2(A5:155) §8은 구분교를 배우지 않는 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는 첫 번째 경우라고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들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A5:155 §2)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제4권「아난다 경」(A6:51) §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구분교를 전승하는 데 있어서 아난다 존자의 역할이 크다고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경(經) …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배웁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말해줍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봅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안거를 납니다.”(A6:51 §3)
율장에서도『빠라지까』에서 두 번 나타나고(Vin.iii.8) 논장의『위방가』에 한 번(Vbh.294),『뿍갈라빤냣띠』에 두 번(Pug.43 등)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들도 모두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쿳다까 니까야』의『닛데사』(義釋)의 몇 군데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들도 예외 없이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난다. 후대의『밀린다빤하』와『네띠빳까라나』에서도 각각 한 번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는데 이들도 예외 없이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빠알리 삼장에서『이띠웃따까』는 오직 본서의 이름으로만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 문헌에 나타난다.
⑶ itivuttaka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에도 ‘이띠웃따까’라는 용어의 문자적인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주석서 문헌들에서도 ‘이띠웃따까’라는 타이틀을 문자적으로 설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만날 수가 없다. DPPN도『이띠웃따까』를 소개하고 중요성을 설명만 하고 있을 뿐이다. iti(이렇게, thus)와 vuttaka(설하신 것, saying)라는 너무 평범한 뜻을 가진 단어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특별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 itivuttaka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도 itivuttaka라는 용어에 대한 문자적인 설명은 전혀 하지 않고 대신에 서문(ganthārambha -kathā)에서 본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이띠웃따까』라는 것은「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과「넷의 모음」이라는 네 가지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catu- nipātasaṅgaha). 이것은 역시 율장과 경장과 논장의 삼장(Ti-piṭaka) 가운데 경장에 포함되어 있다.『디가 니까야』,『맛지마 니까야』,『상윳따 니까야』『앙굿따라 니까야』,『쿳다까 니까야』라는 다섯 가지 니까야 가운데『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다.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이라는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nava sāsanaṅgā) 가운데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라는 구성요소가 된다.”(ItA.i.2)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 = 아난다 존자)에 의해서 인정된 8만 4천의 법의 무더기들[法蘊, dhammakkhandha] 가운데서 [본서는] 몇 개의 법의 무더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경(經, sutta)의 [관점에서 살펴보면]「하나의 모음」에 27개 경들이 있고,「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있어서 모두 112개 경들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모음들(nipātā) 가운데서는「하나의 모음」이 처음이고, 품(vaggā)들 가운데서는 보증 품(pāṭibhoga- vagga)이 처음이며, 경들 가운데서는「탐욕 경」(lobha-sutta, It1:1)이 그러하다. 이 [탐욕 경에서도]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vuttañhetaṁ bhagavatā)’라는 것이 처음이고, [이러한 경의] 기원(nidāna)도 아난다 존자가 일차대합송(一次大合誦, 一次結集, paṭhama-mahāsaṅgīti) 때에 읊은 것이 처음이다.”(ItA.i.2)
⑷『이띠웃따까』의 경들은 110개인가 112개인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이띠웃따까』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vuttañ -hetaṁ bhagavatātiādinayappavattā dasuttarasatasuttantā itivuttakanti vedi -tabbaṁ).”(DA.i.24; MA.ii.106; AA.iii.6; DhsA.26 등)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이띠웃따까』는 110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붓다고사 스님은 여러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구분교를 정의하는 문맥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면 왜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후대 주석가들은 어떻게 첨언을 하는가? 먼저 본서의 주석가인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살펴보자.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먼저 서문(ganthārambhakathā)을 마무리하면서 “그래서 주석서를 지은 스승들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2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이다.’라고 말씀하셨다.”(ItA.i.33)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후기(nigamanakathā)의 게송에서도,
“110개에 2개를 더한 경들이『이띠웃따까』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의 분류에 의해서 대선인들은 합송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 왜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하였는가? 담마빨라 스님 시대로 내려오면서 2개의 경이 늘어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드와다숫따라사따’라는 말보다는 ‘다숫따라사따’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율장의 복주서인『사랏타디빠니띠까』(Sāratthadīpanī-ṭīkā)를 지은 12세기의 사리뿟따(Sāriputta) 스님도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율장 주석서』에 나타나는 ‘110개의 경들(dasuttarasata -suttantā)’(VinA.i.28)이라는 표현을 두고 “110개의 경들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서도 경전에는 112개의 경들이라고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VinAṬ.i.102)
이외에는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언급하였지만 경에는 왜 112개가 실려 있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이론의 여지가 없이『이띠웃따까』에는 112개의 경들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석가들의 해명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3.『이띠웃따까』경들의 구조
⑴『이띠웃따까』112개 경들의 공통된 구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자적으로 itivuttaka는 iti와 vuttaka로 분석이 된다. iti/ti는 ‘~라는, 이러한, 이처럼, thus’를 뜻하는 불변사로 초기불전과 범어 일반에서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vuttak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에다 -ka 어미를 붙여서 명사화한 것인데 vuttaka가 단독으로 쓰인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여기서처럼 iti-vuttaka로 쓰여 본서의 이름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는 다음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먼저 특정 경의 주제에 대한 산문으로 된 가르침이 있고 ② 그 주제를 게송으로 정리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실려 있다. 역자는 이러한 형식은 다섯 가지 원칙이 정확히 적용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서의 모든 경들은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보듯이 이 문장에는 vutta가 두 번 나타나고 iti(ti)가 한 번 나타나고 있다.
둘째, 본서의 모든 경들의 내용이 먼저 산문으로 설해진다.「하나의 모음」에 포함된 27개의 경들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산문으로 설해지고, 같은 방법으로「둘의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에서는 두 개의 주제가,「셋의 모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에서는 세 개의 주제가,「넷의 모음」에 포함된 13개의 경들에서는 네 개의 주제가 산문으로 설해진다. 그런 뒤 모든 경들의 이 산문은 ‘etamatthaṁ bhagavā avoca(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로 마무리가 된다. 이 문장에는 불변화사 iti(이와 같이, 이처럼)와 같은 의미를 가진 대명사 etaṁ(이것)과, 과거분사 vutta의 동사 아오리스트 과거(Aor.) 삼인칭 단수인 avoca가 나타난다.
셋째, 그런 뒤에 112개의 경들은 모두 게송으로 이 가르침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게송은 112개의 경들에서 모두 ‘tatthetaṁ iti vuccati(여기서 이것을 [정리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도입이 된다. 여기서 보듯이 이 문장에도 iti와 과거분사 vutta의 동사 수동태 현재 3인칭 단수인 vuccati가 나타난다.
넷째, 그다음은 본서의 핵심이 되는 게송이 나타난다. 각 경들은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우도 있고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우도 있으며 최대 9개의 게송을 가진 경이 있다. 게송에 대해서는 본 해제 §5.『이띠웃따까』의 구성 ― ⑵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270개 게송들의 분류에서 살펴보겠다.
다섯째, 그리고 게송으로 된 가르침이 마무리되어 경들이 끝날 때에도 이들 112개의 경들은 모두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로 끝나고 있다. 이처럼 이 문장에도 iti와 vutta라는 용어가 들어있다.
이처럼 본서에 포함된 모든 경은 ① iti - vutta 구문으로 시작하고 ② etaṁ - avoca로 산문이 종결되고 ③ iti - vuccati 구문으로 게송이 도입되고 ④ 게송을 드러내고 ⑤ iti - vutta 구문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이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처님 제자들, 특히 재가자들이 개인적으로나 함께 독송하기에 좋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112개의 경들에서 iti와 vutta는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모두 포함되어 있고 둘째 문장에는 etaṁ과 avoca가, 셋째 문장에는 iti와 vuccati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 두 단어, 즉 iti와 vutta가 자연스럽게 iti + vutta로 결합이 되어 itivutta가 되고 여기에다 명사형 어미 -ka를 붙여서 itivuttaka가 되어 본서의 이름으로 정착이 된 것이다.
⑵ ‘evaṁ me sutaṁ’과 ‘iti me sutaṁ’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
그 다음으로 살펴볼 점은 본서에 포함된 112개 경들의 도입부인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이다. 본서 itivuttaka를 제외한 경장의 5부 니까야의 모든 경들은 게송만으로 되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부터『앙굿따라 니까야』까지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예외 없이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된다.
물론 전통적으로 이 문장은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으로 편집되어 이것이 나타나지 않고 그래서 번역되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다. 이미 ‘반복되는 부분의 [생략에 의한] 결집(peyyālasaṅgaha)’이라는 용어가『디가 니까야 주석서』서문(DA.i.25) 등에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은 아주 일찍부터 상좌부 불교 교단에 있었던 관행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에서 me(나)는 당연히 아난다 존자이다. 이 모든 경들은 아난다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경장을 암송하여 499명의 부처님의 직계 제자 아라한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아난다 존자가 이와 같이 들었음을 인정하는 구절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15개 경들 가운데 게송만으로 되어 있는 ―
⑵『담마빠다』(법구경), ⑹『위마나왓투』(천궁사경), ⑺『뻬따왓투』(아귀사경), ⑻『테라가타』(장로게경), ⑼『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자따까』(본생경), ⑾『닛데사』(의석), ⒀『아빠다나』(비유경), ⒁『붓다왐사』(불종성경), ⒂『짜리야삐따까』(소행장경)의 10가지와 ⑸『숫따니빠따』(경집) 가운데 게송만으로 된 경들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외에 본서 ⑷『이띠웃따까』(여시어경)를 제외한 ⑶『우다나』(자설경)와 ⑸『숫따니빠따』(경집) 가운데 산문으로 시작하는 경들과 ⑿『빠띠삼비다막가』(무애해도)의 경들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경들을 모아서 갓 출가한 스님들의 교재로 쓰였음직한 ⑴『쿳다까빠타』(소송경)에는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는 경들이 있는데 게송으로 시작하는 경들에서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라는 언급은 일차합송에서 499명의 아라한들 앞에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로부터 들었음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경전의 권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문장이다. 그래서 후대에 결집된 대승경전들도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율장은 우빨리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율을 풀이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율장의 조항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지 않고 빠라지까 항목(pārājika)의 구문들과 빠찟띠야 항목(pācittiya)의 구문들은 바로 ‘그때 부처님, 세존께서는 웨란자에서 머무셨다(tena samayena Buddho bhagavā Verañjāyaṁ viharati).’(Vin.iii.1) 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비대기설법임을 강조하는 논장에는 그 성격상 evaṁ me sutaṁ이나 설하신 장소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담마상가니』역자 서문 §6-⑶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처럼 경장의 5부 니까야 가운데 본서와 게송으로 구성된 경들을 제외한 모든 경들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로 시작한다.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일차합송에서 제기를 하였고 499명의 아라한들이 합송하여 승인하는 형식으로 경장은 출발되었기 때문이다.
②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iti me sutaṁ)
그런데 본서『이띠웃따까』에는 이러한 도입부가 들어있지 않다. 본서의 112개 경에는 evaṁ me sutaṁ,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합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의 경들도 엄연히 부처님 말씀이고 이것은 쿳줏따라 청신녀가 들어서 사마와띠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들려준 것이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사실을 모든 경의 처음에 드러내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준 뒤에는 반드시 부처님 말씀은 이것으로 끝이 났음을 밝혀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채택한 방법이 iti me sutaṁ, 즉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이다. 물론 여기서 me(저)는 쿳줏따라 청신녀이다. 이 구문은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 경들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①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 즉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에도 들어있고, 모든 경들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②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즉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라는 문장에도 나타난다.
③ evaṁ과 iti는 같은 뜻이다
빠알리 사전들과 산스끄리뜨 사전들의 설명처럼 ‘이처럼’으로 옮긴 iti me sutaṁ의 ‘iti’와 ‘이와 같이’로 옮긴 evaṁ me sutaṁ의 ‘evaṁ’은 둘 다 불변화사(nipātapada, 부사)로 그 의미는 같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 주석서』등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은 ‘evaṁ’이 가지는 의미를 ① 비유(upama) ② 지시(upadesa) ③ 기쁘게 함(sampahaṁsana) ④ 비난함(gara- haṇa) ⑤ 말에 동의함(vacanasampaṭiggaha)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의 8가지로 요약하고 그 용례들을 경의 예문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그런 뒤에 “여기서는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DA.i.26 이하; MA.i.3 이하; SA.i.4 이하; AA.i.4 이하)
한편 본서의 주석서는 먼저 ‘iti’가 가지는 의미를 ① 원인(hetu) ② 확정지음(parisamāpana) ③ 등(等)의 뜻(ādi) ④ 단어의 뜻을 전개함(padattha- vipariyāya) ⑤ 방법(pakāra) ⑥ 드러냄(nidassana) ⑦ 결론(avadhāraṇa) 등의 7가지 뜻으로 요약한다. 그런 뒤에 이 7가지에 대한 용례를 경을 인용하여 드러낸 뒤 “여기서 iti는 ⑤ 방법과 ⑥ 드러냄과 ⑦ 결론(pakāra- nidassana-avadhāraṇa)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ItA.i.19)라고 결론짓는다.
즉 iti me sut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은 ⑤ 본경에서 설한 방법대로 저는 들었습니다, ⑥ 본경에서 드러내신 대로 저는 들었습니다, ⑦ 본경에서 결론지으신 대로 저는 들었습니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밝힌 evaṁ이 가지는 8개의 뜻 가운데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과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주석서들에 의하면 evaṁ me sutaṁ의 ‘evaṁ’과 iti me sutaṁ의 ‘iti’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같은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우다나 주석서』도『우다나』의 제1품 깨달음 품의 끝에 나타나는 ‘이 우러나온 말씀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나는 들었다(ayampi udān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ṁ)’를 설명하면서 “여기서 ‘이처럼’이라는 단어(iti-sadda)가 드러내는 의미(atthuddhāra)는 ‘이와 같이’라는 단어(evaṁ-sadda)와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에(samānatthatāy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처럼『이띠웃따까』의 해설에서 설명한 방법이 여기서도 그 뜻이 적용되어야 한다.”(UdA.45~46)라고 강조하고 있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이러한 어법으로 자기가 지금 읊으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임을 알리고 나서 부처님 말씀을 다 읊은 뒤에는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었고 제가 들은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고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아진 일련의 부처님 가르침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vutta)을 이처럼(iti) 저는 들었습니다.’라는 어법에서 iti와 vutta를 따와서 itivuttaka라는 제목을 달아서 유통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본서의 제목 자체가 본서의 가르침은 아난다 존자가 전승한 경들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본서는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합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evaṁ me suttaṁ이라는 이러한 권위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에 본서의 모든 경들은 evaṁ 대신에 같은 의미를 가진 iti를 써서 iti me sutaṁ으로 전개가 된다. 물론 이처럼(iti) 들은 것은 아라한이신 세존으로부터 들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이라고 이 경들의 출처가 부처님임을 먼저 밝힌 뒤에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iti me sutaṁ).”라고 부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본서는 구분교의 분류에서도 특별하게 취급되어 이 itivuttaka라는 용어는 부처님 말씀, 즉 스승의 교법(satthu-sāsana)을 전승하는 독립된 형식으로 받아들여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 -sāsana)’인 구분교(九分敎)에 넣어서 이 가운데 여섯 번째인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로 정리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일차합송에는 500명의 아라한들만이 참석했기 때문에 본서는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의 입을 통해서 정전으로 공인이 되었다.
⑶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경장의 경들은 게송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일부 경들을 제외하고 모두 그 경의 가르침을 설하신 장소와 시간과 청법자 등이 언급되지만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이띠웃따까 주석서』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다른 경들에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이라는 등으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여(kāladese apadisitvā) [경이 설해진] 기원(nidāna)을 밝혔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그렇게 밝히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말하였다.(apare tāva āhu) ― [이 경들은 아난다] 장로가 드러내어 밝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na pana therena bhāsitattā).
참으로 [여기서 언급되는 이 경이 설해진] 기원은 아난다 존자가 맨 처음 전한 것이 아니다(idañhi nidānaṁ na āyasmatā Ānandena paṭhamaṁ bhāsi- taṁ). 이것은 쿳줏따라(Khujjuttarā)라는 여자 신도가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다시] 사마와띠를 상수로 하는(Sāmāvatippamukhā) 500명의 여인들(itthi)에게 맨 처음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paṭhama bhāsita). [쿳줏따라]는 세존께서 여자 신도들(upāsikā) 가운데서 많이 배운 존재(bahussuta-bhāva)로 으뜸에 놓으셨으며(etadagge ṭhapitā, A1:14:7-3) 유학의 무애해체지를 증득한 성스러운 여제자(sekkhappaṭisambhidāppattā ariyasāvikā)이었다.” (ItA.i.29)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 뒤 본서가 어떤 배경에서 모아져서 전승되어 왔는지를 자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서는 구부정한 웃따라, 혹은 꼽추 웃따라, 즉 쿳자(khujja)-웃따라(Uttarā)가 들어서 전해준 부처님 말씀이다. 등이 구부정하여서(khujja) 쿳줏따라(Khujjuttarā)라 불리던 굽정이 웃따라는 우데나 왕의 왕비였던 사마와띠 청신녀의 하녀였다. 굽정이 웃따라는 우연히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예류자가 되어 그 말씀을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들려주자 기뻐한 왕비가 매일 가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와서 자기들에게 들려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쿳줏따라는 그렇게 하였다.(ItA.i.31) 이렇게 해서 모아진 것이 바로 본서인『이띠웃따까』― 쿳줏따라가 듣고 와서 전해준 부처님 말씀이다. 역자는 Khujjuttarā라는 이름을 대부분 쿳줏따라로 음역하거나 꼽추라는 단어 대신에 필요에 따라서 ‘구부정한 웃따라’로 풀어서 적고 있음을 밝힌다.
이처럼 본서는 경장의 5부 니까야 가운데 유일하게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결집한 경이 아니다. 재가자가, 그것도 여자 신도가, 그것도 하녀가, 그것도 몸이 불편한 여인이 들어서 전한 부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청신녀의 암송으로 가르침을 전해 들은 500명은 불에 타 죽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그들은 이미 예류과를 얻었고 죽을 때는 더 높은 성자의 경지까지 증득하였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 등이 모아졌을 것이고 그래서 이미 부처님 재세 시에도 본서는 많은 불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애송되었음이 분명하고 아난다 존자까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가 전적으로 부처님 말씀으로 대합송에서 제기하여 정전(正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놀랍도록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명쾌한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는 본서는 특히 합리성이 존중받는 이 시대에 전 인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⑷『이띠웃따까』는 어디서 설하셨는가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에는 부처님께서 어디서 이 경들을 설하셨는지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주석서는 부처님께서 꼬삼비에서 이 112개의 경들을 설하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ItA.i.29 이하) 꼬삼비의 왕비였던 사마와띠 왕비의 간청으로 쿳줏따라가 이 경들을 꼬삼비에서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ItA.i.31)
주석서에 의하면 꼬삼비에는 세 개의 승원이 있었다. 그것은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과 꾹꾸따 원림(Kukkuṭārāma)과 빠와리까 원림(Pavārikārāma)인데 각각 고시따 장자(Ghosita gahapati)와 꾹꾸따(Kukkuṭa) 상인과 빠와리까(Pavārika) 상인이 지어서 승단에 기증한 것이었다.(ItA.i.29~30; DhpA. i.203) 4부 니까야 가운데 30개 정도가 꼬삼비의 이 승원 세 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조사된다. 그것은『디가 니까야』의 한 개 경(D7),『맛지마 니까야』의 세 개 경들(M48, M76, M128),『상윳따 니까야』의「꼬삼비 경」(S12:68) 등 13개 경들,『앙굿따라 니까야』의「아지와까 경」(A3:72) 등 13개 경들이다. 이 가운데 강가 강의 언덕(S35:241)과 심사빠 숲(S56:31)을 제외한 28개 경들은 모두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에서 설하신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9번째 안거를 꼬삼비에서 하셨다.(AA.ii. 124; BvA.3) 그러나 일 년 중에 안거 기간 석 달을 제외한 9개월 동안의 산철에는 꼬삼비에 자주 방문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전승되는 경들도 30개나 되고 쿳줏따라도 112개의 경들을 본서에서 전승하는 것이다. 주석서는 이 112개의 경들이 구체적으로 꼬삼비의 어느 곳에서 설해졌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니까야에 나타나는 꼬삼비에서 설하신 30개의 경들 가운데 28개가 고시따 원림에서 설해졌고 이 고시따 원림을 지은 고시따 장자는 사마와띠 왕비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후원자였기 때문에 사마와띠의 하녀였던 쿳줏따라도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법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한편 주석서는 왜 설하신 곳은 언급되지 않는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112개의 경들은] 그 도시(꼬삼비)에서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sammukhā sutvā) 바로 그날에(tadaheva) 그녀가 그들에게 설하여 [전해준] 것이기 때문에 ‘한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에 머무셨다(ekaṁ sama- yaṁ bhagavā Kosambiyaṁ viharati).’라고 때와 장소(kāladesa)를 언급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명백하였기 때문이다(supākaṭabhāvato). 그리고 비구니들도 그녀의 곁에서 이 경들을 수지하였다. 이와 같이 전해져서 비구들에게도 그녀가 제기한 [이 경들의] 기원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칠엽굴(sattapaṇṇiguhā)에서 아자따사뚜 왕이 건립해 준 정법의 천막(saddhammamaṇḍapa)에서 마하깟사빠 존자를 상수로 하는 자유자재한 무리의 가운데 앉아서 법을 합송하면서 이 경들의 기원에 대한 의심(dveḷhaka)을 제거하면서 그녀가 제기한 확정된 방법(āropita-niyāma)에 의해서 [이 경들의] 기원(nidāna)을 제기하였다.”(ItA.i.32)
4. 쿳줏따라는 누구인가?
그러면 쿳줏따라는 누구인가?『이띠웃따까』를 처음 모아서 유통시킨 사람이 아난다 존자가 아니라 쿳줏따라라는 재가자요, 여자 신도요, 하녀요, 몸이 불편한 쿳줏따라가 확실하다면(ItA.i.32) 이것은 불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그녀는 초기불전이 인정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재가 전승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세존으로부터 친히 “많이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A1:14:7 ⑶)이라고 인정받았고,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A2:12:4; A4:176 §4)이라고 칭찬을 받았으며, 세존께서 직접 “나도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처럼 되기를!”이라고 발원해야 한다(Ibid.)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쿳줏따라는 비록 궁녀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녀이고 몸도 불편하였지만 실로 재가자들 가운데 아난다 존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모셨던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궁궐의 시녀들이 셋째 왕비인 마간디야의 간교한 획책으로 불에 타서 죽는 참극이 빚어지자 그녀는 남은 인생을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라도 본서를 엮어서 재가자들 사이에서 유통하였을 것이고, 이 부처님의 직절근원(直截根源, 곧바로 뿌리를 끊음)의 명쾌한 가르침을 담은 아름답고 울림을 주는 본서는『숫따니빠따』제4장과 제5장처럼 이미 세존 재세 시에 널리 재가자들에게 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비구니 스님들을 위시한(ItA.i.32) 승가에도 유통이 되어 있어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가 전격적으로 합송에 상정하여 부처님의 직설을 모은 경장의 내용으로 당당하게 인정이 되었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형식과 종류별로 분류하는 방법인 구분교에도 당당하게 이띠웃따까가 나타나고 있다고 역자는 굳게 믿고 있다. 이제『이띠웃따까』를 처음 모아서 유통시킨 쿳줏따라에 대해서 살펴보자.
⑴ 니까야에 나타나는 쿳줏따라
먼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쿳줏따라에 대한 출처부터 살펴보자.『상윳따 니까야』제2권「외동딸 경」(S17:24) §3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신심있는 청신녀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동딸에게 바르게 원한다면 이렇게 원해야 한다. ‘얘야, 너는 쿳줏따라 청신녀와 웰루깐다끼의 난다마따처럼 되어라.’라고. 비구들이여, 쿳줏따라 청신녀와 웰루깐다끼의 난다마따는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기 때문이다.”(S17:24 §3)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신심 있는 여자 신도가 바르게 원한다면 이렇게 원해야 한다. ‘나도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처럼 되기를!’ 비구들이여, 이들은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니 다름 아닌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이다.”(A2:12:4)
“비구들이여, 믿음을 가진 청신녀는 이와 같은 바른 포부를 가져야 한다. ‘나는 청신녀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 같은 그런 분이 되기를!’ 비구들이여, 청신녀 쿳줏따라와 난다의 어머니 웰루깐다끼야는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다.”(A4:176 §4)
나아가『앙굿따라 니까야』제5권「청신녀 경」(A8:91)에는 쿳줏따라가 27명의 청신녀들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앙굿따라 니까야』제1권「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서 세존께서는 “많이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이다.”(A1:14:7-3)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한편『청정도론』제14장은 “이 네 가지 걸림 없는 해체의 지혜[無礙解體智, cattāro paṭisambhidā]는 유학의 경지와 무학의 경지의 두 단계에서 통달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 상수 제자들과 큰 제자들은 무학의 경지에서 통달했고 아난 존자와 찟따 장자와 담미까 청신사와 우빨리 장자와 쿳줏따라 청신녀 등은 유학의 경지에서 통달했다.”(Vis.XIV.27)라고 하여 쿳줏따라 청신녀가 무애해체지를 갖춘 사람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쿳줏따라 청신녀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을 지어 승가에 보시한 고시따(혹은 고사까) 장자의 집의 하녀의 딸로 태어나 하녀로 있었으며 그 뒤에는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왕비가 된 사마와띠(Sāmāvati) 왕비의 하녀가 되어 궁궐로 들어갔다. 그녀는 왕비의 심부름으로 매일 궁궐 밖으로 나가 꽃을 사왔는데 그러던 중 세존을 뵙고 가르침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환희로 가득한 그녀를 보고 사마와띠가 전말을 묻자 모두 이야기 해주었고 사마와띠 왕비는 그녀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날부터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대했다고 한다.(mātuṭṭhāne ca ācariyaṭṭhāne ca ṭhatvā) 사마와띠는 세존께서 꼬삼비에 오시면 그녀가 법을 듣고 와서 자신과 500명의 시녀들에게 설해주도록 하였다. 그들도 쿳줏따라가 들려주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모두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존께서는 그녀를 많이 들은(bahussutā) 여자 신도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며(A1:14:7-3)「발원 경」4(A2:12:4)와「포부 경」(A4:176) §4에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여자 신도로 쿳줏따라와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를 거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⑵ 쿳줏따라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 세 개의 주석서
쿳줏따라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주석서들에도 전해오지만 특히 ①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의 경의 기원에 대한 설명(nidānavaṇṇanā, ItA.i.4 이하)과 ②『법구경 주석서』의 불방일 품(appamādavagga)에 대한 주석의 사마와띠의 일화(Sāmāvatīvatthu, DhpA.i.161 이하)와 ③『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의『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 대한 주석(AA.i.418 이하)에 자세히 전승되어 온다.
부연하면 ① 본서는 쿳줏따라가 들어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기 때문에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이띠웃따까 주석서』의 경의 기원에 대한 설명(nidānavaṇṇanā)은 그녀에 대한 일화를 자세히 담고 있다.
② 그리고 쿳줏따라는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이었기 때문에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법구경 주석서』가운데 사마와띠의 일화(Sāmā- vatīvatthu, DhpA.i.161 이하)에도 나타난다. 이것은『이띠웃따까 주석서』와 거의 같게 나타나지만 이보다 좀 더 자세한 부분도 있고『이띠웃따까 주석서』가 더 자세한 경우도 있다.
③ 그리고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의 으뜸 품(A1:14)에 대한 주석 가운데 쿳줏따라와 사마와띠의 일화(Khujjuttarā- Sāmāvatīvatthu)에도 자세히 언급이 되는데 기본 줄거리는 앞의 두 주석서와 동일하다. 역자는 이 가운데『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서문을 중심으로 나머지 둘을 취합하여 이를 토대로 쿳줏따라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띠웃따까 주석서』에 의하면 쿳줏따라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장자의 집에서 하녀로 있던 여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으며 웃따라(Uttarā)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꼽추(khujja)로 태어났으며 그래서 구부정한(khujja) 웃따라(Uttarā), 즉 쿳줏따라(Khujjuttarā)로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고사까(Ghosaka, 혹은 Ghosita) 장자가 꼬삼비의 우데나(Udena/Utena) 왕에게 사마와띠를 시집보낼 때 쿳줏따라는 그녀의 하녀로 함께 가게 되어 우데나 왕의 내전에 머물렀다고 한다. 주석서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행운의 겁에 우리 세존이 계시는 시기에 그녀는 천상세계에서 떨어져서 고사까 상인(Ghosaka-seṭṭhi)의 집에 있던 하녀(dāsi)의 태중에 재생연결을 취하여 웃따라(Uttarā)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에 꼽추(khujjā)였다고 해서 쿳줏따라(Khujjuttarā)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고사까 상인이 우데나(Udena/Utena) 왕에게 사마와띠를 시집보낼 때에 그녀의 하녀가 되어(paricārikabhāvena) 함께 보내져서 우데나 왕의 내전(antepura)에 머물게 되었다.”(ItA.i.29)
계속해서 주석서는 말한다.
“그 무렵에 꼬삼비에는 고사까 상인과 꾹꾸따 상인(Kukkuṭa-seṭṭhi)과 빠와리까 상인(Pāvārika-seṭṭhi)이 세존을 지목해서 세 개의 승원(vihāra)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존께서 지방을 유행하시다가 꼬삼비 도시에 당도하시면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의 승원으로 사용하도록 지정을 하고 많은 보시물들(mahādānāni)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한 달쯤이 지났다. 그때 그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들은 참으로 모든 세상을 연민하신다(sabbalokānukampakā).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그들은 꼬삼비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꼬삼비 사람들은 도로마다 일률적으로(vīthisabhāgena) 무리마다 일률적으로(gaṇa-sabhāgena) 큰 보시를 하였다.”(ItA.i.29~30)
한편『법구경 주석서』에는 다음 구절이 나타난다.
“세존께서는 매일 각각의 승원에서 머무셨으며 그 머무는 곳의 대문에서 탁발을 하셨다. 거기에는 이 세 상인들을 시중드는(upaṭṭhāka) 수마나(Suma -na)라는 화환을 만드는 자(mālākāra)가 있었다. 그는 그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저는 오랫동안 당신들을 시중들었습니다. 저도 세존께 공양을 올리고자(bhojetukāma) 합니다. 우리도 하루를 스승께 보시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는 내일 공양을 올리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주인님.’이라고 말한 뒤 그는 세존께 공양청을 한 뒤 공경(sakkāra)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DhpA.i.208)
⒝ 예류과를 얻은 인연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께서는 비구승가에 둘러싸여 화환을 만드는 장인(mālākāra-jeṭṭhaka)의 집에 앉아계셨다. 그 순간에 쿳줏따라는 사마와띠에게 줄 꽃들(pupphāni)을 구하기 위해서 8 까하빠나(aṭṭha kahāpaṇa)를 가지고 그 집에 갔다.”
『법구경 주석서』는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그때 왕은 매일 사마와띠 왕비에게 꽃값으로 8 까하빠나를 주었으며(tadā rājā Sāmāvatiyā devasikaṁ pupphamūle aṭṭha kahāpaṇe deti)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인 쿳줏따라가 수마나라는 화환 만드는 자에게 가서 정기적으로(nibaddhaṁ) 꽃들을 [구입해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DhpA.i.208)라고 하여 왕이 직접 꽃값으로 8 까하빠나를 왕비에게 주었고 그것을 왕비가 쿳줏따라에게 건네준 것으로 적고 있다.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계속한다.
“화환을 만드는 장인은 그녀를 보고 ‘웃따라 이모, 오늘은 그대에게 꽃들을 줄 시간이 없어요. 나는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에 음식 공양을 올리는 시중을 들기 위해서 갑니다. 그대도 음식 공양을 올리는 시중을 드는 데 동참하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섬기는 행위(veyyāvacca- karaṇa)로부터 풀려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쿳줏따라는 부처님 일행들의 공양 장소에 가서 가까이에서 음식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스승께서 가까이 앉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upanisinnaka-kathā)을 통해서 모든 법을 섭렵하였고 [공덕을] 함께 기뻐하시는 [말씀](anumodanā)을 듣고 예류과에 확립되었다.”(ItA.i.30)
『법구경 주석서』에는 “쿳줏따라는 스승의 법문을 듣고 예류과에 확립되었다.”(DhpA.i.209)라고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말한다.
“[공양 시중을 마치고 내전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이전의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를 주고 꽃들을 구해서 갔지만 그날에는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남의 재물(parasantaka, sa+antaka)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8 까하빠나를 주고 바구니를 가득 채워서 꽃들을 들고 사마와띠의 곁으로 갔다. 그러자 사마와띠는 그녀에게 물었다. ‘웃따라 이모, 그대는 다른 날들에는 많은 꽃들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많구나. 왕께서 그대에게 더 많은 은총을 주셨느냐?’ 그녀는 [성자가 되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그녀가 행한 것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그때 ‘그런데 오늘은 왜 많은 꽃들을 가지고 왔느냐?’라고 묻자 ‘오늘은 제가 정등각자의 법을 듣고 불사를 실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속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사마와띠 왕비는] ‘아니, 이런 나쁜 하녀를 봤나. 이때까지 네가 가져간 까하빠나를 모두 가져오너라.’라고 책망하지 않고(atajjetvā) 앞의 이유로 경책을 하면서 ‘이모여, 그렇다면 그대가 마신 감로를 우리들도 마시게 해다오(amma, tayā pivitaṁ amataṁ amhepi pāyehi).’라고 말하였다.”(ItA.30)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도 위와 같이 나타난다. 법구경 주석서는, “그녀는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는 자신이 갖고(attano gahetvā) 4 [까하빠나]로 꽃을 구해서 갔지만 그날은 8 [까하빠나로] 꽃을 구해서 갔다.” (DhpA.i.209)라고 4 까하빠나를 자신이 가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해서『법구경 주석서』는 이렇게 좀 더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자 사마와띠가 물었다.
‘이모여, 오늘은 우리 왕께서 꽃값으로 두 배를 주셨느냐?’
‘아닙니다, 왕비님.’
‘그렇다면 왜 꽃이 이렇게 많으냐?’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를 제가 갖고 4 [까하빠나]로 꽃을 사서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왜 갖지 않았느냐?’
‘정등각자의 법문을 듣고 법을 증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왕비는 ‘오, 이 나쁜 하녀를 보게나. 이때까지 네가 가져간 까하빠나를 내게 가져오너라.’라고 책망하지 않고 ‘이모여, 그렇다면 그대가 마신 감로를 우리들도 마시게 해다오.’라고 말하였다.”(DhpA.i.209)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쿳줏따라가] ‘그러면 저를 목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16가지의 향기 나는 물 항아리로 목욕을 하게 한 뒤 광택이 나는 옷감 두 벌을 그녀에게 내어 주게 하였다. 그녀는 한 벌은 입고 한 벌은 [자리에] 덮어서 자리를 정돈한 뒤 그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잘 장엄된 부채(vicitra-bījani)를 든 뒤 유학의 무애해체지(sekhappaṭisambhidā)에 확고하게 서서 낮은 자리에 앉아있는 500명의 여인들을 불러서 스승께서 가르치신 확고한 방법(desita- niyāma)에 따라 그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그들 모두는 예류과(sotāpattiphala)에 확립되었다. 그들 모두는 쿳줏따라에게 예배한 뒤 ‘귀한 분이여, 오늘부터 당신은 잡스러운 일일랑 하지 마시오. 당신은 우리들의 어머니의 위치(mātuṭṭhāna)와 스승의 위치(ācariyaṭṭhāna)에 머물러주십시오.’라고 하면서 그녀를 공경하는 위치(garuṭṭhāna)에 놓았다.”(ItA.31)
⒞ 하녀요 몸이 불편했지만 통찰지를 가져 태어난 인연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① 그녀가 하녀로 태어난 인연과 ② 꼽추가 된 인연과 ③ 그러면서도 통찰지를 갖추게 된 인연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① 그러면 그녀는 왜 하녀(dāsī)가 되어 태어났는가? 그녀는 깟사빠 정등각자의 시기에 바라나시에서 상인의 딸(seṭṭhidhītā)로 태어났다. 어떤 번뇌 다한 장로니(khīṇāsavattheri)가 그 신도 집에 가자 그녀는 ‘여보시오, 나에게 장식용 바구니를 가져다 주시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까이서 시중을 들도록(veyyāvaccaṁ) 하였다. 그 장로니는 ‘그대에게 주지 않으면 나에 대해 증오(āghāta)가 생겨서 그대가 지옥(niraya)에 태어날 것이고 내가 그대에게 주면 그대는 남들의 하녀로 태어날 것이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하녀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그녀를 동정을 한 것(anuddaya)을 반연하여 그녀가 말한 대로 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업으로 오백 생을 남들의 하녀로 태어났다.
② 그러면 왜 꼽추(khujjā)가 되었는가? 부처님이 나시지 않은 시기에 이 바라나시의 왕의 궁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어떤 왕의 가문과 관련이 있는 벽지불(paccekabuddha)이 조금 구부정한 자세인 것(thoka khujjadhātuka)을 보고 함께 사는 여인들의 무리 앞에서 비웃고 조롱을 하면서 자신이 그 흉내를 내어 꼽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꼽추로 태어났다.
③ 그러면 무엇을 지어서 통찰지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부처님이 나시지 않은 시기에 이 바라나시 왕의 궁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여덟 분의 벽지불들이 궁전에서 뜨거운 죽(uṇhapāyāsa)으로 가득 찬 발우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돌리면서 [죽을] 드시는 것을 본 뒤 자신이 가진 여덟 개의 상아로 만든 팔찌들(dantavalayāni)을 드려서 ‘여기에 놓고 드십시오.’라면서 보시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한 뒤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당신들께 이것들을 드립니다.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nandamūlaka-pabbhāraṁ) 돌아갔다. 그녀는 이러한 결과로 통찰지를 가진 자가 되었다.”(ItA.31)
⒟ 삼장을 호지하는 자가 됨
“그러자 사마와띠를 상수로 한 500명의 여인들은 그녀에게 ‘귀한 분이여, 당신은 매일 매일 스승의 곁에 가서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들은 뒤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서 나중에 삼장을 호지하는 자(tipiṭaka-dharā)가 되었다.”(ItA.31)
같은 방법으로『법구경 주석서』는 “그런데 쿳줏따라는 ① 무슨 업으로 꼽추로 태어났는가? ② 무슨 업으로 큰 통찰지(mahāpaññā)를 가지게 되었는가? ③ 무슨 업으로 예류과를 증득했는가? ④ 무슨 업으로 남들의 하녀가 되었는가?”(DhpA.i.225~226)라는 네 가지 질문을 하고 위에서 인용한『이띠웃따까 주석서』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예류과를 얻은 업에 대한 설명은 위에서 인용한『이띠웃따까 주석서』에는 없다.『법구경 주석서』는 그녀는 그 벽지불들을 시봉한 그 [과보가] 흘러내려(pacceka- buddhānaṁ kataupaṭṭhānassa nissandena) 예류과를 얻었다고 하며 이것이 부처님들의 출현의 사이에서 있었던(Buddhantare) 그녀의 이전의 업(pubbakamma)이라고 적고 있다.(DhpA.i.226)
『우다나』의「우데나 경」(Ud7:10)에 나타나듯이 사마와띠 왕비는 시녀 500명과 함께 불에 타서 죽음을 맞았다. 주석서에 의하면 마간디야(Māgaṇḍiya)의 삼촌(cūḷapitara)이 계략을 꾸며서 마간디야의 친지들이 사마와띠 왕비의 거처의 기둥들을 모두 기름에 흠뻑 적신 천으로 감싼 뒤에 왕비와 시녀들이 집 안에 있을 때 집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UdA.383) 사마와띠 왕비는 그 불이 사방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 시녀들에게 ‘자매들이여, 시작이 없는 윤회에서 배회하면서 이와 같이 우리가 불에 탈 수밖에 없는 상황(evameva agginā jhāmattabhāvānaṃ)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지혜로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paricchedo na sukaro). 부디 방일하지 마시오.’라고 간곡한 교계를 하였다. 그들은 이미 쿳줏따라가 들려준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예류과를 증득하였고 사마와띠의 이러한 교계로 느낌을 파악하는 명상주제를 마음에 잡도리하여 어떤 자들은 일래자가 되고 어떤 자들은 불환자가 되어서(vedanāpariggaha-kammaṭṭhānaṁ manasikarontiyo kāci dutiyaphalaṁ, kāci tatiyaphalaṁ pāpuṇiṁsu)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UdA. 383~384; DhpA.i.221)
『법구경 주석서』에 의하면 우데나 왕은 이것이 마간디야의 작은 삼촌(cūḷapitara)과 그 친지들(ñātigaṇa)이 꾸민 일임을 마간디야로부터 알아내고 그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모두 모이게 하여 구덩이를 파고 그들을 밀어 넣어서 짚으로 덮고 불로 태운 뒤 쟁기로 갈아엎게 한다. 그리고 곁에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마간디야에게 튀어서 몸에 묻은 타다 만 시신 조각들은 마간디야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고 한다.(DhpA.i.223)
『우다나 주석서』는 “쿳줏따라는 아직 남은 수명이 있었고(āyusesassa atthitāya) 전에 그런 업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pubbe tādisassa kammassa akatattā) 그때 그 궁궐 밖에(pāsādato bahi) 있었다. 그녀는 10 요자나(120 ㎞) 정도 멀리 나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UdA.384)라고 적고 있다.
이런 참화에서 살아남은 쿳줏따라의 노력으로 이 아름답고 품격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슬픈 배경을 간직한 채 부처님 재세 시에 이미 널리 퍼지게 되었을 것이며 이를 아난다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아라한들과 함께 합송하여『이띠웃따까』라는 정전(正典)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쿳줏따라와 사마와띠 왕비, 사마와띠 왕비와 마간디야와의 관계 등은 특히『법구경 주석서』에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법구경 이야기』1(335~396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5.『이띠웃따까』의 구성
⑴「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본서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경에 대한 길라잡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27개 [경으로 된 것이]「하나의 모음」이고
「둘의 모음」은 22개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딱 50개로 된 것이「셋의 모음」이요
13개로 된 것은「넷의 모음」이다.
[웃따라 청신녀가 들은] 112개의 높은 경들을
<도표1:『이띠웃따까』의 구성>

합송하여 옛 분들은 잘 내려놓았나니
[이 세상에] 아라한들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이띠웃따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도 본서에는 “「하나의 모음」에 27개 경들이 있고「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있어서 모두 112개 경들의 조합이 된다.”(ItA.i.2)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하나의 모음」에 포함된 27개 경들은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22개의 경들이 포함된「둘의 모음」은 두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개 경들이 포함된「셋의 모음」은 다섯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13개의 경들이 포함된「넷의 모음」은 품의 구분이 없다.
각각의 모음에 들어있는 각 품은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등으로 서수를 사용하여 품의 명칭을 삼았다. 그러나「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도표1:『이띠웃따까』의 구성>과 같다.
여기서 보듯이「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보증 품’으로 불리고 있다. ‘보증 품’은 PTS본에서 ‘Pāṭibhoga-vagga’를 취하여 옮겼다. 주석가 담마빨라 스님도『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본서「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인 본품을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 부르고 있다.(ItA.i.2) VRI본은 단순히 첫 번째 품(Pathama-vagga)으로 표기하고 있고 PTS본은 \‘보증 품인 첫 번째 품(Pāṭibhogavaggo paṭhamo)’으로 적고 있다.
본 품, 나아가서 본서의 백미는 본서 맨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1:6)에서 부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1)일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합송가와 주석가들은 다른 모음들의 다른 품들은 모두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등으로 단순하게 품의 명칭을 붙였지만 본 품만은 ‘보증 품’이라 불렀다고 여겨진다.
⑵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270개 게송들의 분류
본서의 핵심은 게송이라 할 수 있다. 쿳줏따라는 특히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게송을 귀담아 듣고 외워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산문으로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핵심만을 드러내어 본서의 경들처럼 간단명료하게 하여 전해주었을 것이다.
본서의 많은 게송은 실로까(siloka, Sk. śloka, 혹은 아누슈뚭(anuśtubh)이라고도 함), 즉 4구게로 되어 있어서 한 구절에 8음절씩 모두 32음절로 되어 있다. 그러나 46개라는 적지 않은 게송은 하나의 게송에 6개의 구절을 가져 모두 48음절로 이루어진 6구게 형식의 운율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경들에 포함된 게송의 숫자는 경들마다 다르다. 그것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탐욕 경」(It1:1) 등 29개
②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후회 경」(It2:3) 등 45개
③ 세 개의 게송을 가진 경:「타락한 마음 경」(It1:20),「괴롭게 머묾 경」(It2:1) 등 23개
④ 네 개의 게송을 가진 경:「뼈 무더기 경」(It1:24),「으뜸가는 청정한 믿음 경」(It3:41) 등 7개
⑤ 다섯 개의 게송을 가진 경:「자애 수행 경」(It1:27),「비 없는 구름 경」(It3:26)의 두 개
⑥ 일곱 개의 게송을 가진 경:「행복을 열망함 경」(It3:27),「다섯 가지 전조 경」(It3:34),「데와닷따 경」(It3:40),「불 경」(It3:44),「세상 경」(It4:13)의 다섯 개
⑦ 아홉 개의 게송을 가진 경:「내면의 때 경」(It3:39) 한 개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29×1)+(45×2)+(23×3)+(7×4)+(2×5)+ (5×7)+(1×9) = 29+90+69+28+10+35+9 =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본서에는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게송[六句偈, 6구게]이 모두 46개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하나의 모음」의 27개 경들 가운데 15개가 6구게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20번 경 이후의 8개를 빼면 19개 경들 가운데 1:7, 1:8, 1:14, 1:15의 네 개 경들을 제외한 15개 경들이 6구게를 포함하고 있다.
베다에서 가장 신성한 운율이 3구게, 즉 3×8=24음절로 된 가야뜨리 만뜨라(Gāyatrī Mantra)이다. 역자는 개인적으로 본서에 나타나는 이 6개의 구절을 가져 모두 48음절로 이루어진 6구게 형식의 게송은 이러한 24음절의 가야뜨리 운율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히 본서의 모두(冒頭)를 장식하는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It1:6)에는 각각 탐․진․치․분노․모욕․자만을 버리면 불환과를 얻는다는 같은 형식의 6구게가 들어있는데 이 6구게의 48음절은 24음절씩으로 나누면 두 개의 가야뜨리 운율이 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경에 들어있는 게송(It1:1 §2) 가운데 전반부의 24개의 음절은 탐욕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후반부 24개의 음절은 이것을 버리고 불환과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을 담고 있다. 이처럼 탐․진․치․분노․모욕․자만의 위험을 꿰뚫어 본 뒤 이것을 버리면 성자가 된다는 부처님의 강력한 보증을 담은 여섯 개 경들(It1:1~It1:6)을, 그것도 인도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가야뜨리 운율에 담아서 세존께서 읊으신 이러한 게송들을 본서의 맨 처음에 배대한 쿳줏따라 청신녀의 안목이 참으로 뛰어나다고 역자는 판단한다.
그러면 각 모음에는 몇 개의 게송들이 들어있을까? 이들을 위의 게송의 숫자별 분류에 맞추어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하나의 모음」: 17+5+2+2+1+0+0=27개 경 →
17+(5×2)+(2×3)+(2×4)+(1×5)=46개 게송
②「둘의 모음」: 2+11+9+0+0+0+0=22개 경 →
2+(11×2)+(9×3)=51개 게송
③「셋의 모음」: 9+25+7+3+1+4+1=50개 경 →
9+(25×2)+(7×3)+(3×4)+(1×5)+(4×7)+(1×9) =134개 게송
④「넷의 모음」: 1+4+5+2+0+1+0=13개 경 →
1+(4×2)+(5×3)+(2×4)+(1×7)=39개 게송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⑶ 본서의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게송에 대한 소고
물론 대부분의 게송은 부처님께서 직접 읊으신 것이지만 내용으로 보거나 주석서의 언급처럼 부처님이 아니라 쿳줏따라나 다른 사람이 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한두 곳이 있다. 예를 들면,
“여기 타락한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을 알고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의 곁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셨다.”(It1:20 §2)
로 나타나는「타락한 마음 경」(It1:20) §2의 |1|번 게송은 주석서가 “합송을 한 분들이 엮은 게송들(saṅgītikārehi upanibandhagāthā)”(ItA.i.73)이라고 설명하듯이 누가 보아도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주석서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라고 하지만 합송자나 다른 사람이 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게송도
<도표2: 각 모음에 포함된 게송들의 개수>

있는데「일으킨 생각 경」(It2:11) §5의 게송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주석서는 It1:20 §2의 |1|번 게송을 제외한 본서에 나타나는 모든 게송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본서의 첫 번째 경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iti vuccati).’라고 했다. 누가 말씀하신 것인가? 바로 세존이시다(bhagavatā va). 다른 그러한 경우들에는 [예를 들면 It1:20 §2의 |1|번 게송처럼] 합송을 한 분들이 엮은 게송들(saṅgītikārehi upani- bandhagāthā)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존께서 게송을 좋아하는 사람(gāthā- rucikā puggalā)들의 의향(ajjhāsaya)을 고려하여 [이미] 설하신 의미를 간추려서(saṅgahetvā) 게송으로 말씀하신 것(gāthā bhāsitā)이다.”(ItA.i.44)
6.『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이제『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상좌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두 분을 들라면 바로 서기 400~450년쯤에 생존하셨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과 그로부터 150년쯤 후인 서기 550~600년쯤에 사셨던 것으로 여겨지는 아짜리야 담마빨라 스님이다.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대부분의 주석서들을 완성한 분이며 담마빨라 스님은 나머지 주석서들과 특히 대부분의 복주서들을 완성하여 상좌부 불교의 삼장-주석서-복주서 전통을 완결한 분이다.
⑴ 붓다고사 스님이 남긴 주석서 13권
상좌부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는 대부분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온다.『마하왐사』와『간다왐사』등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다음 13가지 주석서들을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I. 율장의 주석서들
① 사만따빠사디까(Samantapāsādīka): 율장의 주석서(VinA)
② 깡카위따라니(Kaṅkhāvitaraṇī): 빠띠목카에 대한 주석서(VinA)
II. 경장의 주석서들
③ 수망갈라윌라시니(Sumaṅgalavilāsinī): 디가 니까야 주석서(DA)
④ 빠빤짜수다니(Pāpañcasūdanī):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MA)
⑤ 사랏탑빠까시니(Sāratthappakāsinī):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SA)
⑥ 마노라타뿌라니(Manorathapūraṇī):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AA)
⑦ 청정도론(Visuddhimagga): 4부 니까야에 대한 종합적인 주석서(Vis)
⑧ 빠라맛타조띠까(Paramatthajotikā):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와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주석서(KhuA, SnA)
⑨ 담마빠다앗타까타(Dhammapadatthakathā): 법구경 주석서(DhpA)
⑩ 자따까앗타까타(Jātakatthakathā): 자따까 주석서(JāA)
III. 논장의 주석서들
⑪ 앗타살리니(Aṭṭhasālinī):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 주석서(DhsA)
⑫ 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ī): 위방가(Vibhaṅga) 주석서(VbhA)
⑬ 빤짜빠까라나-앗타까타(Pañcapakaraṇatthakathā): 나머지 다섯 논 장의 주석서
이들에 대한 논의는『청정도론』역자 서문 §5.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⑵ 담마빨라 스님의 저작 18권
담마빨라 스님도 방대한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분이며 그래서 그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즉 스승(ācariya)으로 호칭되고 있다.
17세기에 마얀마에서 난다빤냐(Nandapañña)가 지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대한 역사서라 할 수 있는『간다왐사』(Gandhavaṁsa)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담마빨라 스님은 아래에서 언급하는 모두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18개는 아래의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I.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
① 담마빠다 주석서(DhpA)
② 우다나 주석서(UdA)
③ 이띠웃따까 주석서(ItA)
④ 숫따니빠따 주석서(SnA)
⑤ 테라가타 주석서(ThagA)
⑥ 테리가타 주석서(ThigA)
⑦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
이들은『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게송을 포함하는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이다.
II. 빠라맛타만주사(Paramtthamañjūsā, Pm) - ⑧ 청정도론 복주서
III. 리낫타빠까시니(Līnatthappakāsinī, 숨은 뜻을 밝힘) - 경장의 복주서
⑨ 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
⑩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MAṬ)
⑪ 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
⑫ 자따까 복주서(JAṬ)
IV. 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 숨은 뜻을 설명함) - 논장의 복주서
⑬ 담마상가니 복주서(DhsAṬ)
⑭ 위방가 복주서(VbhAṬ)
⑮ 빤짜빠까라나 복주서(Pañcapakaraṇa-mūlaṭīkā) - 나머지 5론의 복주서
V. ⑯ 넷띠빠까라나 주석서(Nettippakaraṇa-aṭṭhakathā)
⑰ 넷띠빠까라나 복주서(Nettippakaraṇa-ṭīkā)
⑱ 붓다왐사 복주서(Buddhavaṁsa-ṭīkā)
이렇게 하여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 문헌들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전해온다.
⑶『이띠웃따까 주석서』
여기서 보듯이『이띠웃따까 주석서』는『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 -dīpanī)에 포함되어『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여섯 개 경들의 주석서와 함께 전해온다. 역자는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정리한 개인적인 자료를 통해서 이『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읽고 검색과 인용을 하였다.『우다나 주석서』는 1995년에 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The Udāna Commentary’(Vol. I, II)로 영역이 되어 PTS에서 출간이 되었지만 이『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아직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지 않았다.
본서의 주해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석서의 설명은 가급적이면 모두『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인용하였다. 물론 기존의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4부 니까야의 주해를 그대로 가져온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해들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을 인용한 것이다.『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참조해서 주해를 달면서 살펴보면 의외로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서와 담마빨라 스님의 주석서가 문장까지 같은 설명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문장 표현은 다르더라도 내용은 거의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특히『우다나 주석서』나『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설명이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복주서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와『맛지마 니까야 복주서』(MAṬ)와『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와 문장까지 같은 부분이 적지 않았으며 12세기에 사리뿟따 스님이 지은『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AAṬ)와도 같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역자도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과 복주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동일인으로 보는 의견에 동의한다.
⑷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자가 번역한『우다나』역자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담마빨라 스님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여러 명인가?
둘째, 담마빨라 스님과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빨라 스님은 같은 분인가 다른 분인가?
셋째, 담마빨라 스님은 어느 때 사람인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이며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더 많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섯 가지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우다나』역자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히뉘버 교수는『우다나 주석서』(UdA.94)에 나타나는 “kathāvatthu- pakaraṇassa ṭīkāyaṁ gahetabbo(까타왓투 논서의 복주서에서 취해야 한다).”를 예로 들어서, “이처럼 [『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와 아비담마의 복주서인『리낫타완나나』가 상호 참조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명의 담마빨라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의 통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역자는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교수나 피어리스(A. Pieris)나 대림 스님이나 특히 히뉘버 교수의 이 의견에 동의하며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림 스님의 제언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① 먼저 아비담마 칠론의 아누띠까인『리낫타완나나』를 짓고 ② 다음에『쿳다까 니까야』의 시로 된 7개 경전들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를 짓고 ③ 그다음에 Pm과『디가 니까야』와『맛지마 니까야』와『상윳따 니까야』의 복주서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림 스님의 언급처럼 Pm에『쿳다까 니까야』의『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를 참조하라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에 7개 주석서들이 Pm보다는 먼저 쓰여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⑸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담마빨라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A.D. 5세기)보다는 후대이고『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를 지은 사리뿟따 스님(A.D. 12세기)보다는 이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피어리스(Pieris)는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10세기가 아닌 6세기로 제안한다. 노만 교수는 두 분의 담마빨라 스님을 인정하지만 주석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A.D. 6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히뉘버 교수는 “아난다 스님은 그의 스승이라는 것이 확정적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히뉘버 교수는 Porāṇagaṇthipada – Dhammasirigaṇṭhipada – Ānanda – Vajirabuddhi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이 와지라붓디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은 동시대 사람이고 남인도 출신이라고 결론짓고 이 연표에 나타나는 스님들은 A.D. 450년부터 A.D. 600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담마빨라 스님은 A.D.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이라고 제시한다.
이처럼『청정도론』등의 13개의 주석서들을 지은 붓다고사 스님과 아비담마 칠론에 대한『물라띠까』(근본복주서)를 지은 아난다 스님과『빠라맛타만주사』를 비롯한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활동한 A.D. 5~6세기는 상좌부 불교의 교학이 정리되고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전파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역자는『우다나』해제를 적으면서 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인 ‘A Study in Paramatthamañjūsā.’의 제1장 서문의 ‘Dhammapāla – the author of Pm’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우다나 주석서』와『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기술을 하였다. 그리고『우다나』해제에서 적은 것을 요약하여 여기에 실었다.
간추리면,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며, 6세기 후반부에 실존했던 분이고 남인도 출신이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였고, 북방의 다르마빨라(法護) 스님과는 동일인이 아니다.
7. 각 모음의 개관 및 관심을 끄는 경들
본서에 포함된 경들은 개개의 경들에 포함된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 네 개의 모음으로 나누어져서 전승되어 온다. 그러면 같은 모음에 포함된 경들은 어떤 원칙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순서로 정착이 되었을까? 주석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본서를 모은 쿳줏따라 청신녀가 이런 순서로 경들을 합송하여 전승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와 원칙이 있을 것이다. 역자는 본서「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에 대해서 개관해 보고 각 모음에서 역자의 관심을 끄는 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⑴「하나의 모음」(It1)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It1:1부터 1:13까지의 13개 경들이고 둘째는 1:14부터 1:21까지의 8개 경이며 셋째는 나머지, 즉 1:22부터 마지막인 1:27까지의 6개 경들이다.
첫 번째에서 언급한 It1:1부터 1:6까지의 6개 각각의 경의 주제는 1:8부터 1:13까지의 각각의 경의 주제와 같다. 특히 1:1부터 1:5까지의 5개 경의 게송과 이들 각각에 대응되는 1:9부터 1:13까지의 5개 경의 게송은 각각 같다. 두 번째에서 언급한 1:14부터 1:21까지의 8개 경은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4개의 쌍으로 된 경들이다. 세 번째에서 언급한 6개 경들은 서로 큰 연관성이 없는 경들을 뒤쪽에 배열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담겨있지만 이러한 품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은 비단「하나의 모음」뿐만 아니라 다른 모음들에서도 그러하다. 본서에서 품의 구분은 단순히 순서대로 10개씩을 잘라서 하나의 품을 만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여기「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에는 괴로움의 멸진에 관계된 경들이 두 번째 품에도 배열이 되고 특히「타락한 마음을 가진 자 경」(It1:20)과「깨끗한 마음 가진 자 경」(It1:21)은 서로 대조가 되지만 서로 다른 품에 속해 있다.
이렇게 볼 때 품은 오히려 단순히 순서대로 10개씩 잘라서 품을 만들었을 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본서 전체에 나타나는 10개의 품은 특별한 명칭이 없고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세 번째 품으로 부르게 된 듯하다. 물론「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PTS본과 주석서에서는 이를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VRI본은 이것도 단순히 첫 번째 품으로 부르고 있다.
◎「하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들어있다. ‘하나’라는 말이 드러내듯이 본 모음에 담긴 경들은 모두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명쾌하다. 이 27개의 경들은 모두 부처님의 간명한 가르침(desana) 혹은 명령(sāsana)을 담고 있지만 특히 본 모음에서 역자의 관심을 끄는 경들은 첫 번째 품인 보증 품에 들어있는「탐욕 경」(It1:1) 등 10개 경들 전체와 두 번째 품의 처음 3개의 경들을 포함한 13개 경들이다.
이 가운데「탐욕 경」(It1:1)부터「자만 경」(It1:6)까지의 6개 경은 다시「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부터「모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13)까지 같은 주제어로 연결되는데「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을 앞에 두었을 뿐이다. 즉 It1:1부터 It1:6까지의 주제어가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의 순서였는데 이것이 It1:8부터 It1:13까지에서는 자만-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의 순서로 바뀌었는데 이것은「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이 이들 두 모둠 사이에 들어있는「일체를 철저하게 앎 경」(It1:7)과 같은 방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 경 다음에 배치하였을 것이다.
여기「하나의 모음」, 나아가서 본서 전체에서 백미는 본서 맨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1:6)에서 부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1:6)일 것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합송가와 주석가들은 본 품을 ‘보증 품’이라고 불렀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보증’은 pāṭibhoga를 옮긴 것이다.『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여기서 ‘빠띠보가(pāṭibhoga)’는 보증(paṭibhū)을 뜻한다. 채무자(dhāraṇaka)를 반연하여 채권자에게(dhanika), 채권자를 반연하여 채무자에게 담보가 되어(paṭinidhibhūta) 채권자에게 예속된 위탁물 등(haraṇādi)이라 불리는 재산(bhoga)이라고 해서 보증이라 한다.”(ItA.i.40)라고 설명한다.
본서『이띠웃따까』는 쿳줏따라가 모은 것인데 이것은 그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왕궁에서 외부로 나오기가 어려웠던 자신의 주인인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을 모은 것이다. 재가자요, 여자 신도요, 하녀요, 몸이 불편한 쿳줏따라에게는 스승께서 보증을 서주시고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 ‘보증(pāṭibhoga)’이라는 용어가 큰 감격(veda)과 큰 영감(paṭibhāna)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을 버린 자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자됨)를 보증하신 이 여섯 가지 가르침을 쿳줏따라는 본서의 맨 처음에 놓아서 전승하였으며 다시 이 여섯 가지 주제를 바로 다음의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로 강조하고 있다고 역자는 생각해 본다.
이처럼 여기 It1:1부터 It1:6까지의 6개 경들은 불환과를 보증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고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은 그 보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인 최상의 지혜로 앎 - 철저하게 앎 - 탐욕의 빛바램 - 제거(abhijāna - parijāna - virājaya - pajaha)를 강조하고 있다. 이 네 가지는 주석서 문헌들에서 세 가지 통달지(pariññā)로 설명이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일체를 철저하게 앎 경」(It1:7)의 해당 주해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부처님께서 행복과 깨달음의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는 이런 말씀을 담은 세존의 가르침 13개를 쿳줏따라는 여기『이띠웃따까』의 맨 처음의 여섯 개 경(It1:1~1:6)과 그다음의 일곱 개 경(It1:8~1:13)으로 담아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자(佛子, Buddha-putta, Buddha-dhītā)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다. 우리 부처님의 아들딸들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했는데도 행복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부처님께서 보증을 서주셨으니 부처님께 빚을 받으러 가야 할까?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불교는 2600년 동안 전승되어 오면서 보증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셨던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모든 성자들이 보증인이 되어주셨고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님들까지 등장하셔서 연대보증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존자처럼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Ud2:10)라고 외치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부처님의 보증을 담은 1번 경부터 6번 경까지는
“탐욕으로 탐내는 중생들은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나니
통찰력 가진 자들은 이러한 탐욕을
바른 구경의 지혜로 버리노라.
버리고 나서는 이 세상으로
결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느니라.”
라는 게송에서 탐욕 대신에 성냄, 어리석음, 분노, 모욕, 자만 등의 나머지 키워드를 넣으면 되는 형태로 게송이 되어 있다. 그리고「자만 경」(It1:6)을 제외한 처음의 다섯 개 게송들은「탐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9)부터「모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13)까지의 다섯 개 경에서 같은 게송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문만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 무엇이 한 가지 법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이라는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대신에 “비구들이여, 탐욕을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지 못하고 [오염원을] 제거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탐욕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고 [오염원을] 제거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있다.”(It1:9)로 바뀌고 있다.
즉 불환과의 경지는 ① 최상의 지혜로 알고 ② 철저하게 알고 ③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고 ④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서 체득되는 것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주석서는 이 넷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상의 지혜로 알고(abhijānaṁ)’를 통해서는 안 것의 통달지[知遍知, ñātapariññā]를 말씀하셨다. 두 번째인 ‘철저하게 알고(parijānaṁ)’를 통해서는 조사의 통달지[審察遍知, tīraṇapariññā]를, 세 번째와 네 번째인 ‘탐욕의 빛바램(virājaya)’과 ‘제거함(pajaha)’을 통해서는 버림의 통달지[斷遍知, pahānapariññā]를 설하셨다. 이처럼 본경에서는 세 가지 통달지를 설하셨다. … 무엇이 안 것의 통달지인가? 오온에 대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이다. 무엇이 조사의 통달지인가? 이렇게 안 뒤에 오온에 대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병이라는 등의 42가지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버림의 통달지인가? 이렇게 조사한 뒤에 으뜸가는 도(agga-magga)에 의해서 욕탐(chanda-rāga)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SA.i.44~45, cf. ItA.i.53)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한다.
“[『청정도론』제18장] 견해의 청정[見淸淨]과 [제19장]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渡疑淸淨]이 ① 안 것의 통달지(ñāta-pariññā)이다.
[제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知見淸淨]과 [제21장]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知見淸淨], 즉 [제20장과 제21장의] 깔라빠에 대한 명상의 [지혜]로부터 시작해서 수순하는 [지혜]로 종결되는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가 ② 조사의 통달지(tīraṇa-pariññā)이다.
[제22장] 성스러운 도(ariyamagga)에 의해서 버리는 것이 ③ 버림의 통달지(pahāna-pariññā)이다. 그러므로 일체를 철저하게 안다는 것은 이들 세 가지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본경에서 철저하게 아는 것은] 탐욕의 빛바램에 의한 버림들(virāgappahānā), 즉 [③ 버림의 통달지를] 배제하여 각각 취한 것이기 때문에 ① 안 것의 통달지와 ② 조사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parijānanā)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와 같이 [① 안 것의 통달지와 ② 조사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aparijānaṁ)’라고 말씀하신 것이다.”(ItA.i.53)
그러므로 이 세 가지 통달지는 위빳사나 수행을 칠청정 가운데 다섯 가지 청정으로 설명하며, 이것은『청정도론』에서 설명하는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인『청정도론』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로 정리가 된다.
역자가 역자 서문을 적으면서 왜 갑자기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교학적 이해를 가져와서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비록 본서의 맨 처음인「하나의 모음」의 13개 경들에서 간단한 문장에서 키워드만 바꾸어 나가고 그리고 쉬운 반복 구문으로 게송을 만드는 식으로 누구라도 따라 부르고 따라 외울 수 있도록 본서의 맨 앞부분에 배치를 하였지만 이러한 간단한 산문과 게송이 실제로는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이처럼 섬세하고 지극히 높은 위빳사나 수행은 본서의 맨 처음인「하나의 모음」의 13개 경들(It1:1~13)의 게송으로 본서의 맨 앞부분에 배치를 하였다. 이런 배려로 본서와 본서의 게송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1~6번 경에서 부처님은 보증을 하셨고 그 보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7~13번 경에서 ‘최상의 지혜로 앎(abhijāna)’과 ‘철저하게 앎(parijāna)’과 ‘탐욕의 빛바램(virājaya)’과 ‘제거함(pajaha)’의 네 가지를 말씀하셨으며 주석가들은 이것을 세 가지 통달지로 정리한다. 그리고 본경의 주석서는 이것을『청정도론』의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인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에 배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이 가운데 도의 경지인 버림의 통달지는 본경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친절함까지 베푼다. 이처럼 쿳줏따라는 부처님 말씀을 보증과 실참수행으로 멋지게 정리하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왜 그녀가 재가자들 가운데 그것도 예류자인 유학이면서도 무애해체지를 가졌다고 부처님께서 인정하셨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⑵「둘의 모음」(It2)
「둘의 모음」에는 22개의 경들이 첫 번째 품과 두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두 개의 품에 담겨서 전승되어 온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때 그 두 가지는 서로 대비되는 것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긴 것과 짧은 것, 선처와 악처, 있음과 없음 등이다. 여기「둘의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도 서로 대비되는 것을 담은 경들이 많다.
「둘의 모음」에서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드러내고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경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의 경 안에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자는 본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을 ① 두 개의 경으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와 ② 한 개의 경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와 ③ 그 외 두 가지를 나열하고 설명하는 경우로 나누어보았다.
① 두 개의 경으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 - 6개 경
「괴롭게 머묾 경」(It2:1)과「행복하게 머묾 경」(It2:2)은 각각 악처에 태어나는 두 가지 경우와 선처에 태어나는 두 가지 경우를 들고 있다.「후회 경」(It2:3)과「후회 않음 경」(It2:4)은 각각 후회를 가져오는 두 가지와 후회를 가져오지 않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계행 경」1(It2:5)과「계행 경」2(It2:6)는 각각 지옥에 떨어지는 두 가지와 천상에 태어나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이처럼 본 모음의 처음 6개 경들은 세 쌍이 되어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② 한 개의 경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 - 9개 경
「근면함 경」(It2:7)은 한 경 안에 근면하지 않은 경우와 근면한 경우를 대비시켜 결과를 설명한다.「계략을 부리지 않음 경」1/2(It2:8~9)는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A를 위함이 아니라 B를 위함이라는 형식으로 설명을 한다.「명지 경」(It2:13)은 무명이 선구자가 되는 것과 명지가 선구자가 되는 것을 대비시켜 설명한다.「통찰지를 버림 경」(It2:14)은 통찰지를 버린 중생은 악처에 나고 버리지 않은 중생은 선처에 나는 것을 대비시켜 강조한다.
마찬가지로「태어나지 않음 경」(It2:16)은 태어남과 태어나지 않음을 대비시키고「열반의 요소 경」(It2:17)은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을 대비시키고「나쁜 견해 경」(It2:22)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잘못 이해함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청정범행을 닦는 서원을 가진 척하는 것과 근거 없이 청정범행을 닦지 않는다고 비방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악처와 지옥에 떨어진다고 강조하는「악처에 떨어지는 자 경」(It2:21)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③ 그 외 두 가지를 나열하고 설명하는 경들 - 7개 경
먼저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설명하는 다음 세 개의 경을 들고 싶다.「홀로 앉음 경」(It2:18)은 홀로 앉음을 즐기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으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강조하고,「공부지음의 이익 경」(It2:19)은 공부지어서 통찰지, 해탈, 마음챙김을 통달하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하며,「깨어있음 경」(It2:20)은 깨어있어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과 환희와 삼매와 통찰지를 갖추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강조한다.
그 외에도「기쁨 경」(It2:10)은 절박함과 절박함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노력은 행복과 기쁨을 가져온다고 설하고,「일으킨 생각 경」(It2:11)은 여래의 [중생의] 안은함에 대한 생각과 한거에 대한 생각을,「설법 경」(It2:12)은 여래의 두 가지 설법으로 사악한 법을 여실히 봄과 염오․이욕․해탈을 설한다.「밝은 법 경」(It2:15)은 양심과 수치심이 세상을 보호한다고 강조한다.
◎「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①「설법 경」(It2:12)
「둘의 모음」에서는 특히「설법 경」(It2:12)을 주목하고 싶다.「설법 경」(It2:12)에서 세존께서는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보라.’는 이것이 첫 번째 설법이다.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본 뒤 염오하라, 탐욕을 빛바래게 하라[離慾], 해탈하라.’는 이것이 두 번째 설법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는 방편에 따라 이러한 두 가지 설법이 있다.”라고 강조하신다.
본서「둘의 모음」에서 백미는 아무래도 본경이라고 해야 한다. 초기불전 500군데 이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가르침의 핵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졸저『초기불교 이해』등에서 역자는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깨달음과 열반을 실현하는 단계를 해체해서 보기 - 무상․고․무아 - 염오 - 이욕 - 해탈 - 구경해탈지의 여섯 단계로 정리하여 강조하였다. 여기서는 이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염오 - 이욕 - 해탈을 강조하고 있다.
②「열반의 요소 경」(It2:17)
다음으로는「열반의 요소 경」(It2:17)을 들고 싶다.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미「대념처경」등 수행을 강조하는 초기불전에서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D22 §1 등)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궁극적 행복이 바로 열반의 실현(nibbānassa sacchikiriya)이다. 이러한 열반에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의 두 가지가 있다. 본경은 이것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경에서 유여열반의 요소[有餘涅槃界]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러나 그의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머물러 있어서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만나서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경험한다. 비구들이여, 그의 갈망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 이를 일러 유여열반의 요소라 한다.” (It2:17 §2)
그리고 무여열반의 요소[無餘涅槃界]는 이렇게 설명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바로 여기서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껴진 것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여열반의 요소라 한다.”(It2:17 §3)
불교의 궁극적 행복인 열반은 출세간이며, 형성된 것들[有爲, saṅkhatā]을 완전히 벗어난 형성되지 않은 것이고[無爲, asaṅkhata], 고요함(santi)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고유성질(sabhāva)을 가졌다. 그러나 구분하는 방편에 따라 유여열반의 요소와 무여열반의 요소의 두 가지이다. 고요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하나이지만 우빠디(upādi)가 남아 있느냐 없느냐 하는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 중심이 되는 용어는 upādi인데 이것은 upa(위로)+ā(이쪽으로)+√dā(to give)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거머쥐고 있음, 남아 있음을 뜻하며 오온이나 오취온을 말한다.(ItA.i.165, Pm.568) 자세한 것은 이 경 §1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요소[界, dhātu]라는 용어를 써서 열반을 표현하는 것은 열반도 구경법(paramattha)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서는 일체법(一切法, sabba-dhammā, sabbe dhammā, 諸法, 구경법)을 [81가지] 유위법과 [한 가지] 무위법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일체법의 법(dhamma)은 √dhṛ(to hold)에서 파생된 용어이며 이 dhātu(계, 요소)도 같은 어근에서 생긴 용어이다. 자세한 것은『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 §37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일체법[諸法]은 18계(요소)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상좌부에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의 <도표 7.4>에서 보듯이 열반도 법의 요소[法界]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본경에서처럼 무위법인 열반도 요소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⑶「셋의 모음」(It3)
「셋의 모음」은 본서의 모음들 가운데 가장 많은 50개 경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품에 열 개씩 모두 다섯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는 이 50개 경들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개관해 보았다.
① 용어를 정의하는 경들(It3:1~It3:18)
「셋의 모음」에 포함된 경들 가운데 거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경들은 특정 용어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셋의 모음」의「뿌리 경」(It3:1) 부터「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경」(It3:18) 까지의 17개 경들(「마라의 영역 경」(It3:10) 제외)은 이 17가지 주제들을 세 가지로 정의하는 경들이다. 먼저 이 17개 경의 주제들을 하나씩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뿌리 경」(It3:1) - 세 가지 해로움의 뿌리 ― 탐욕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성냄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어리석음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요소 경」(It3:2) 세 가지 요소[三界] ―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멸계(滅界)
「느낌 경」1/2(It3:3~4)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추구 경」1/2(It3:5~6) ― 감각적 쾌락의 추구, 존재의 추구, 청정범행의 추구
「번뇌 경」1/2(It3:7~8) ―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
「갈애 경」(It3:9) ―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
「공덕을 짓는 토대 경」(It3:11) ― 보시․지계․수행으로 이루어진 공덕을 짓는 토대
「눈 경」(It3:12) ― 육체적인 눈[肉眼], 신성한 눈[天眼], 통찰지의 눈[慧眼]
「기능 경」(It3:13) ―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구경의 지혜의 기능[已知根],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자의 기능[具知根]
「시간 경」(It3:14) ― 과거의 시간, 미래의 시간, 현재의 시간
「나쁜 행위[惡行] 경」(It3:15)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
「좋은 행위[善行] 경」(It3:16)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
「깨끗함 경」(It3:17) ― 몸의 깨끗함, 말의 깨끗함, 마음의 깨끗함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경」(It3:18)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그리고「벗어남 경」(It3:23)은 세 가지 벗어남의 요소를 설명한다. 여기에다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을 멸시받지 않음과 관련된 생각과 이득과 존경과 명성과 관련된 생각과 남들에 대한 동정심과 관련된 생각으로 구분하는「생각 경」(It3:31)과, 갈망․성냄․어리석음의 불로 나누는「불 경」(It3:44)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세 가지 감각적 쾌락의 일어남을 설명하는「감각적 쾌락의 일어남 경」(It3:46)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보시 경」(It3:49)은 각각 두 가지로 구성된 보시, 함께 나눔, 호의의 세 가지를 설명한다. 그래서「셋의 모음」에 넣었다.「넷의 모음」의 바라문과 법으로 이루어진「제사 경」(It4:1)은 여기에다 두 가지 제사를 넣어서 네 가지가 된다.
이런 것은 재가자들에게 불교식 사유를 하는 토대가 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셋의 모음」에 있는 이들 19개 경들은 불교식 사유를 하는 기본 토대를 제공한다 할 수 있겠다.
「갈망 경」1(It3:19)을 비롯한 나머지 반 정도의 경들은 대부분이 설명 형태의 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을 다시 대략 네 가지로 나누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② 주제나 정형구를 먼저 말씀하시고 이것을 설명하시는 경들
「아들 경」(It3:26)은 세상에는 더 뛰어나게 태어난 [아들]과 비슷하게 태어난 [아들]과 못하게 태어난 [아들]의 세 가지 아들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고 이 셋을 하나씩 설명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비 없는 구름 경」(It3:26)도 먼저 비 없는 구름과 같은 [사람], 국지적으로 내리는 비와 [같은 사람], 모든 곳에 내리는 비와 [같은 사람]을 나열하고 이 셋을 설명하고 있다.
「요소에 따라 함께 모임 경」(It3:29)은 “중생들은 요소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로 시작하는 정형구를 과거․미래․현재에 적용시키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면의 때 경」(It3:39)은 세 가지 내면의 때,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가 있다고 한 뒤 이를 설명한다.「으뜸가는 청정한 믿음 경」(It3:41)은 세 가지 으뜸가는 청정한 믿음이 있다고 한 뒤 이를 설명한다.「좋은 계행 경」(It3:48)은 세 가지를 담은 정형구를 먼저 말씀하시고 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가 된다.「삼명 경」(It3:50)은 나는 법에 의해서 삼명을 갖춘 바라문을 선언한다고 말씀하시고 숙명통․천안통․짧은 누진통의 정형구로 삼명을 설명하신다.
③ 서로 상반되는 형태로 설하신 경들
「갈망 경」1(It3:19) 등은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 성냄을 버리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면” 이를 일러 ‘마라에게 묶였다.’ 등으로 말한다고 하시고, 반대로 “갈망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면” 이를 일러 ‘마라에게 묶이지 않았다.’라고 한다고 이런 식으로 서로 상반되는 형태로 설한 경들이 많다.「갈망 경」2(It3:20)도 위와 같지만 보기가 다르다.
「망가짐 경」(It3:30)은 한 개의 경 안에 유학을 망가지게 하는 법 세 가지와 망가지지 않게 하는 법 세 가지를 드러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어둠을 만듦 경」(It3:38)은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은 어둠을 만들고 세 가지 유익한 생각은 어둡지 않음을 만든다고 하고 있으며,「가사 끄트머리 경」(It3:43)도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내용을 유념해야 한다.
「그릇된 견해 경」(It3:21)과「바른 견해 경」(It3:22)의 두 경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못된 짓을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고 반대로 좋은 일을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서로 상반되는 가르침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④ 점진적인 형태로 설명하는 경들
예를 들면,「더 고요함 경」(It3:24)은 더 고요함을 정의하는 경이 아니고 “비구들이여, 물질들보다 비물질들이 더 고요하고 비물질들보다 소멸이 더 고요하다.”(§1)라고 설명을 하는 경이다.「부서지기 마련임 경」(It3:28)도 “이 몸은 부서지기 마련이고, 알음알이는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고, 모든 재생의 근거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1)라고 같은 형태로 전개된다.
그 외「존경 경」(It3:32) 등은 A․B․A&B의 형식으로 세 가지를 열거하고 설명한다. 즉 존경에 압도됨, 존경받지 못함에 압도됨, 존경과 존경받지 못함 둘 다에 압도됨이다.
◎「셋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먼저「가사 끄트머리 경」(It3:43)을 들고 싶다. 이 경은 불자들이 그 내용을 유념해야 한다. 비구가 나의 가사 끄트머리를 잡고 바로 뒤에 바싹 붙어 오더라도 탐욕과 악의와 마음챙김을 놓아버리는 등으로 수행을 게을리한다면 그는 나로부터 멀리에 있고 나도 그로부터 멀리에 있다. 그 비구는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보지 않으면 나를 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반대로 바른 경우를 말씀하시는 이 경은 불자들이 유념해야 한다.
「다섯 가지 전조 경」(It3:34)도 주목할 만하다. 신들이 5가지 전조를 가지면 천상세계에서 떨어지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고 여래의 법과 율을 만나고 거기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선처로 가는 것 등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다.「많은 사람의 이익 경」(It3:35)은 여래와 아라한과 유학의 태어남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됨을 강조하신다.
본서에는 수행에 관한 경들도 있다. 예를 들면「부정함의 관찰 경」(It3: 36)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은 몸의 부정함을 관찰함,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을 관찰함의 셋을 들고 있다.
⑷「넷의 모음」(It4)
「넷의 모음」에는 13개의 경들이 품의 구분이 없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경들에 포함된 주제가 네 가지라는 점 외에 이 경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몇 개의 경을 살펴보는 것으로「넷의 모음」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번뇌의 멸진 경」(It4:3)은 사성제를 알고 보는 자의 번뇌가 멸진한다고 설하고 있으며「사문․바라문 경」(It4:4)에서는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문․바라문은 사문․바라문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반대로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문․바라문은 사문․바라문으로 인정된다고 설하시어 사성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
한편「계의 구족 경」(It4:5)에는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다섯 가지가 나타나지만「넷의 모음」에 들어있다. 주석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걷고 있음 경」(It4:11)은「넷의 모음」에 들어있는 수행과 관계된 경이라 할 수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나 악의에 대한 생각이나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바르지 못한 사유가 행․주․좌․와의 네 가지 자세[威儀] 가운데서 일어났을 때 이를 버리고 제거하게 되면 그를 일러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한다고 강조하시며 이렇게 정진할 것을 독려하신다.
「계를 잘 지킴 경」(It4:12)은 행․주․좌․와의 자세에서 계를 잘 지키는 정형구를 통해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정진․마음챙김․경안․삼매에 든다면 그를 일러 한결같이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한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마지막으로「세상 경」(It4:13)은 여래를 네 가지로 정의하며 본서를 마무리한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이처럼 본서를 부처님의 여섯 가지 보증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It1:1~6) 성자가 된다는 이러한 최고의 보증을 서주신 여래를 정의하고 여래의 덕을 흠모하면서(It4:13)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으로 편찬하였다. 이를 통해 쿳줏따라의 관심과 신심과 고결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겠다.
⑸ 삼장에 나타나는 본서의 경들과 동일한 경들
<도표3:『이띠웃따까』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

본서에는 쿳줏따라 청신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112개의 경들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들은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전승한 4부 니까야를 비롯한 빠알리 삼장과 같은 내용을 담은 경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본서의 112개 경들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대략 33개의 경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특히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과 일치하며『청정도론』에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13개 정도의 경들은 게송까지 포함하여 삼장의 다른 경들과 완전히 일치하고 나머지는 게송을 제외한 산문 부분만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해서는〈도표3:『이띠웃따까』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8. 맺는말 -『이띠웃따까』의 특징
이상으로 역자는 본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미진하지만『이띠웃따까』해제를 적어보았다. 이제 이들을 정리하여 본서가 가지는 특징을 나열하면서 맺는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⑴ 재가 여신도가 들어서 모은 부처님 말씀이다
역자는 이것을 본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으로 여긴다. 경장은 모두 일차합송에서 마하깟사빠 존자가 질문을 하고 아난다 존자가 읊어서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본서는 아니다. 본서는 쿳줏따라라는 재가자, 그것도 하녀, 몸까지 구부정한 여인이 듣고 외워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주면서 함께 합송하여 사부대중에게 퍼져나갔고 그래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의 제안으로 정전(正典)으로 채택된 것이다.(ItA.i.29)
⑵「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은 각 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까지로 나누어서 편성되었다.「하나의 모음」에는 27개의 경들이,「둘의 모음」에는 22개의 경들이,「셋의 모음」에는 50개의 경들이,「넷의 모음」에는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⑶ 산문과 게송으로 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부처님이 읊으신 게송들을 담고 있고 이 게송들이 각 경의 중심이 된다. 본서에는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9개,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 45개, 세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3개, 네 개의 게송을 가진 경 7개, 다섯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개, 일곱 개의 게송을 가진 경 5개, 아홉 개의 게송을 가진 경 한 개가 포함되어 본서에는 모두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⑷ 모든 경들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① iti - vutta 구문으로 시작하고 ② etaṁ - avoca로 산문이 종결되고 ③ iti - vuccati 구문으로 게송이 도입되고 ④ 게송을 드러내고 ⑤ iti - vutta 구문으로 마무리되는 다섯 가지 원칙이 정확히 적용된다. 이와 같이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재가자들이 개인적으로나 함께 독송하기에 좋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의 명칭도 itivuttaka이며 이것은 구분교(九分敎)에도 포함되어 여섯 번째인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로 정리되었다.
⑸ iti me su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으로 되어 있다
본서의 112개 경에는 산문으로 된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evaṁ me sutaṁ(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송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쿳줏따라가 채택한 방법은 iti me su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이다. 물론 여기서 me(저)는 당연히 쿳줏따라 청신녀이다. 이 구문은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 경들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①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에도 들어있고 모든 경들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②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라는 문장에도 들어있다.
⑹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경장의 경들은 그 경의 가르침을 설하신 장소와 시간과 청법자 등이 언급되지만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명백하였기 때문이다.(ItA.i.32) 이 112개의 경들은 부처님께서 꼬삼비 한 곳에서 설하신 것이며 사마와띠 왕비의 간청으로 쿳줏따라가 이 경들을 꼬삼비에서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다.(ItA.i. 29 이하) 대부분 꼬삼비의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에서 설하셨을 것이다.
⑺ 33개 정도의 경은 삼장의 다른 경들과 일치한다
본서의 112개 경들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대략 33개의 경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특히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과 일치하며『청정도론』에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13개 정도의 경들은 게송까지 포함하여 삼장의 다른 경들과 완전히 일치한다.
⑻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의 주제는 하나인 것부터 네 개인 것까지만 나타나고 그것도 간단하고 명료한 가르침만 전승이 되어오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에 관계된 가르침, 즉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 등을 주제로 한 경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비구들이여, 탐욕이라는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1)와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본 뒤 염오하라, 탐욕을 빛바래게 하라[離慾], 해탈하라.”(It2:12 §1)와 같은 간단명료한 부처님의 메시지와 명령(sāsana)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⑼ 궁극적 행복에 관한 경들이 주류를 이룬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북방불교에서는 이고득락(離苦得樂)으로 정리하고 있다.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 행복을 말씀하셨다.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은 주로 재가자들에게 말씀하셨고 깨달음의 체득과 열반의 실현이라는 궁극적 행복은 주로 출가자들에게 설하셨다. 재가자인 쿳줏따라가 들어서 전승한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금생의 행복이나 내생의 행복보다는 궁극적 행복에 관한 경들이 대부분이고 쿳줏따라로부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은 예류과와 일래과와 불환과를 얻었다.
⑽ 이 시대의 재가 불자들에게 수준 높은 삶의 지표가 된다
재가불자인 쿳줏따라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서 전해준 본서에 담긴 112개의 경들은 인간 평등, 성평등, 생명체 평등에다 출재가 평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민주주의 시대와 과학과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자들, 특히 수준 높은 재가 불자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600년 전에 굽정이 청신녀가 전해준 부처님 말씀은 불교의 본질을 꿰뚫는 참으로 수준 높고 격조 높은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⑾ 추모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역자는 쿳줏따라 청신녀가 자기가 모시던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이 참화로 먼저 간 것을 기리며 추모의 마음으로『이띠웃따까』에 담긴 112개의 경들을 모았고, 그래서 경의 처음 여섯 가지는 부처님의 보증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여래의 덕을 흠모하는「세상 경」(It4:13)으로 마무리하였다고 받아들인다.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의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우다나』의「우데나 경」(Ud7:10)으로 전해오는데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 가운데는 예류자가 있고 일래자가 있고 불환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은 모두 결실이 없이 죽은 것은 아니다.”(Ud7:10 §2)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이유로 쿳줏따라는 부처님께서 불환자를 보증하시는 경 여섯 개(It1:1~6)와 그 보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인 최상의 지혜로 앎 - 철저하게 앎 - 탐욕의 빛바램 - 제거(abhijāna - parijāna - virājaya - pajaha)를 강조하고 있는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을 책의 모두(冒頭)에 담았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불자(佛子)는 부처님의 아들딸들(Buddha-puttā ca Buddha-dhītāro ca)이다. 우리 부처님의 아들딸들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깨달은 성자가 된다고 부처님께서 본서의 여러 경들에서 보증을 서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의 보증인은 2,600년 동안 전승되어 오면서 더욱 늘어났다. 이 세상에 존재하셨던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모든 성자들이 보증인이 되어주셨고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님들까지 등장하셔서 연대보증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존자처럼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Ud2:10)라고 외치고 다녀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본서는 사마와띠와 500명의 시녀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궁극적 행복(parama-sukha)의 실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본서를 읽는 분들이 모두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고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시기를 기원하며 역자 서문을 접는다.
이 세상에 부처님의 정법이 오래오래 머물기를!
<이띠웃따까 목차>
<이띠웃따까 해제>
1. 들어가는 말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을 초기불교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고(tathāgatassa bhātā cūḷapituputta, DA.i.4),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출가하여 부처님의 후반부 24년을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모셨고, 다문제일(多聞第一, etadagga bahussutānaṁ)이라 불리며(A1:14:4-1), 일차합송에서 경장의 결집을 주도하였고(DA.i.14),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며(DhpA.99), 그래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도 무려 40년을 더 생존해 있었던 아난다 존자는『장로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92 {1024})
즉 초기불전은 8만 4천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8만 2천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2천은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초기불전은 빠알리어로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분류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그것은 율장(律藏, Vinaya Piṭaka)과 경장(經藏, Sutta Piṭaka)과 논장(論藏, Abhidhamma Piṭaka)이다. 이 가운데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法, dhamma]을 담고 있는 경장은 5부 니까야(Nikāya, 모음, 묶음)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것은 ⑴『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⑵『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⑶『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相應部, 주제별 경들의 모음) ⑷『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숫자별 경들의 모음) ⑸『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그 외 여러 가르침들의 모음)이다.
이 가운데『쿳다까 니까야』는 다음의 15개 경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⑴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 小誦經)
⑵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⑶ 우다나(Udāna, 自說經)
⑷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⑸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
⑹ 위마나왓투(Vimānavatthu, 天宮事經)
⑺ 뻬따왓투(Petavatthu, 餓鬼事經)
⑻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經)
⑼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經)
⑽ 자따까(Jātaka, 本生經)
⑾ 닛데사(Niddesa, 義釋)
① 마하닛데사(Mahā-Niddesa, 大義釋)
② 쭐라닛데사(Culla-Niddesa, 小義釋)
⑿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礙解道)
⒀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
⒁ 붓다왐사(Buddhavaṁsa, 佛種姓經)
⒂ 짜리야삐따까(Cariyāpiṭaka, 所行藏經)
이 15개 가르침 가운데 ⑵ 담마빠다(법구경), ⑶ 우다나(자설경), ⑷ 이띠웃따까(여시어경), ⑸ 숫따니빠따(경집), ⑻ 테라가타(장로게경), ⑼ 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 자따까(본생경)는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 초기불전으로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이띠웃따까』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쿳다까 니까야』의 네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이것은 如是語(여시어) 혹은 如是語經(여시어경)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용, 특히 형식에 따라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로도 분류된다. 이 아홉 가지는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인데 이미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언급되고 있다.(M22 §10; A4:6 §1; A4:103 §3; A5:155 §8; A6:51 §5 등)
이러한『이띠웃따까』는 쿳줏따라(Khujjuttarā)라는 청신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서 그녀가 모시던 사마와띠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들려준 것을 모아서 전승한 것이다. 본서는『앙굿따라 니까야』처럼 각 경들에 포함된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네 개의 모음(nipāta)으로 구성되어 있으며「하나의 모음」에는 27개의 경들이,「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들어있어서 모두 112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2.『이띠웃따까』란 무엇인가
⑴ ‘이띠웃따까(itivuttaka)’의 문자적인 의미
⒜ 상좌부 불교의 전통적인 해석:
웃따까(Pāli. vuttaka)는 욱따까(Sk. uktaka)이다
① 경전의 출처
‘이띠웃따까(itivuttaka)’는 iti와 vuttaka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iti는 ‘이처럼’, ‘이렇게’, ‘이와 같이’ 등을 뜻하는 불변화사(nipāta)이며 evaṁ처럼 영어로는 주로 thus로 옮겨지고 있다. vutt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에다 명사형 어미 ‘-ka’를 붙여서 만든 명사로 ‘설해진 것’, ‘말해진 것’ 등을 뜻한다. 특히 본서의 112개 경들이 모두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로 시작하여,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로 끝나고 있기 때문에 itivuttaka의 vuttaka는 이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Sk. ukta)에서 파생된 중성명사로 보아야 한다.
② 주석서의 해석
상좌부 불교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 itivuttaka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itivuttaka는 본서『이띠웃따까』112개의 모든 경에 나타나는 vutta(말씀하신)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산스끄리뜨 uktaka로 해석하고 있다. 만일 이 uttaka가 다른 의미를 가졌거나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주석서는 당연히 이것을 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기서 uttaka는 산스끄리뜨 uktaka의 뜻이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 북방불교의 해석: 웃따까(vuttaka)는 워릇따까(Sk. vṛttaka)이다
그런데 BHD, 즉 불교 하이브리드 산스끄리뜨 사전에 의하면 빠알리어 itivuttaka에 대응되는 산스끄리뜨는 ityuktaka가 아닌 itivṛttaka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vutta를 ukta(√vac, to speak의 과거분사)가 아닌 vṛtta(√vṛt, to happen, to turn의 과거분사)로 이해한 것이다. BHD는 그 출처로 “nidānetivṛtta ― Kv.81.21”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와 같이 일어난 이야기(tale)’, ‘이와 같이 생긴 일화(happening)’ 등으로 해석이 되는 itivṛttaka로 이해한 것이다. PED는 이 vṛttaka의 보기로 북방불교 저술인 Divyāvadāna(天譬喻曼經, Divy.439)를 들고 있기도 하다(PED s.v. vuttaka).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itivṛttaka를 一曰多伽(일왈다가), 伊帝目多伽(이제목다가), 伊帝弗多迦(이제불다가) 등으로 음역하였고 vṛttaka를 √vṛt(to happen, to turn)의 과거분사 vṛtta에서 파생된 명사, 즉 일화나 일이나 사건으로 이해하여 事(일 사 자)를 넣어 本事(본사)나 本事經(본사경)으로 번역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이띠워릇따까는 현장 스님에 의해서 650년 경에『本事經』(본사경)으로 중국에서 번역되었다.『본사경』은 각각「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에 배대가 되는 일법품과 이법품과 삼법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38개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대략 65개 정도의 경들이 본서『이띠웃따까』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빠알리어에서는 이 √vṛt에서 파생된 단어로는 vutti에서 파생된 vuttika, 즉 ‘살아가는 자’, ‘생계를 유지하는 자’가 있다.(PED) 그러므로 빠알리 문헌에서 vuttaka는 √vac(to speak)에서 파생된 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빠알리어에서 vuttaka라는 용어는 이 itivuttaka라는 합성어 외에는 없는 것으로 PED는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빠알리어 itivuttaka는 ‘이러한 말씀’, ‘이처럼 설하신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고 iti와 vutta는 본서의 112개 모든 경들의 처음 시작 부분과 마지막의 결언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vutta의 의미
한편『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vutta의 의미를 8가지 키워드로 제시하는데(ItA.i.4)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vapana(씨를 뿌림) ② vāpasamakaraṇe(씨를 뿌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이유) ③ kesohāraṇe(삭발) ④ jīvitavuttiya(삶을 영위함, √vṛt(to be, to happen)의 과거분사 ⑤ pavuttabhāva(떨어짐을 뜻하고 PED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MOL에 언급됨) ⑥ pāvacanabhāvena pavattita(따라 설함) ⑦ ajjhena (학문) ⑧ kathana(설함)
이 가운데 ①과 ②는 vutta를 √vap(to sow)의 과거분사로 설명하고 있고 ③은 √vap(to shave)의 과거분사로, ④는 √vṛt(to be)의 과거분사로, ⑤는 pavuttabhāva로 즉 pra+√vap(to shave)의 과거분사로, ⑥은 pra+√vac(to speak)의 과거분사로, ⑦은 adhi+√i(to go)로, ⑧은 √kathā(to tell) = √vac(to speak)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주석서는 삼장에 나타나는 출처를 밝히면서 그 용례를 설명한 뒤에 “여기 본서에서도 말씀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athane daṭṭha- bbo). 그러므로 vutta(말씀하신)는 kathita(설명하신)와 bhāsita(설하신)의 뜻이다.”(ItA.i.4)라고 결론짓는다.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처럼 문자적으로만 보면 빠알리어 vutta는 √vap(to sow)의 과거분사로도 볼 수 있고 특히 √vṛt(to be, to happen)의 과거분사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vutta 혹은 vuttaka의 어근을 √vac(to speak)로 설명하지 결코 북방 불교에서 주장하는 √vṛt(to be, to happen)로 설명하지 않는다. 경에 쓰이는 문맥으로 보거나 전통적인 해석으로 보거나 vutt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이고 vuttaka는 여기에 명사형 어미 -ka가 첨가되어 중성명사로 사용된 것이다. 북방 불교에서 주장하는 itivṛtaka는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전혀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해야 한다.
⑵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itivuttaka의 용례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이띠웃따까(itivuttaka)나 웃따까(vuttaka)라는 용어가 경의 이름이 아닌 보통명사로는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PED도 밝히고 있고 VRI본 CD-ROM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본경의 이름으로는 4부 니까야에서 11번 정도 나타나는데『맛지마 니까야』에서 한 번 나타나고(M22 §10)『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적게 배움 경」(A4:6) §1 등의 열 곳 정도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11번은 예외 없이 모두 구분교의 아홉 가지를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미 살펴보았듯이 ① 경(經, sutta)부터 ⑨ 문답[方等, vedalla]까지의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 가운데 ⑥ 여시어(如是語, iti- vuttaka)라는 구성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앙굿따라 니까야』의 두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앙굿따라 니까야』제3권「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2(A5:155) §8은 구분교를 배우지 않는 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는 첫 번째 경우라고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들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A5:155 §2)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제4권「아난다 경」(A6:51) §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구분교를 전승하는 데 있어서 아난다 존자의 역할이 크다고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경(經) …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배웁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말해줍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봅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안거를 납니다.”(A6:51 §3)
율장에서도『빠라지까』에서 두 번 나타나고(Vin.iii.8) 논장의『위방가』에 한 번(Vbh.294),『뿍갈라빤냣띠』에 두 번(Pug.43 등)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들도 모두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쿳다까 니까야』의『닛데사』(義釋)의 몇 군데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들도 예외 없이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난다. 후대의『밀린다빤하』와『네띠빳까라나』에서도 각각 한 번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는데 이들도 예외 없이 구분교의 이름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빠알리 삼장에서『이띠웃따까』는 오직 본서의 이름으로만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 문헌에 나타난다.
⑶ itivuttaka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그리고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에도 ‘이띠웃따까’라는 용어의 문자적인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주석서 문헌들에서도 ‘이띠웃따까’라는 타이틀을 문자적으로 설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만날 수가 없다. DPPN도『이띠웃따까』를 소개하고 중요성을 설명만 하고 있을 뿐이다. iti(이렇게, thus)와 vuttaka(설하신 것, saying)라는 너무 평범한 뜻을 가진 단어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특별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 itivuttaka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도 itivuttaka라는 용어에 대한 문자적인 설명은 전혀 하지 않고 대신에 서문(ganthārambha -kathā)에서 본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이띠웃따까』라는 것은「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과「넷의 모음」이라는 네 가지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catu- nipātasaṅgaha). 이것은 역시 율장과 경장과 논장의 삼장(Ti-piṭaka) 가운데 경장에 포함되어 있다.『디가 니까야』,『맛지마 니까야』,『상윳따 니까야』『앙굿따라 니까야』,『쿳다까 니까야』라는 다섯 가지 니까야 가운데『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다.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이라는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nava sāsanaṅgā) 가운데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라는 구성요소가 된다.”(ItA.i.2)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 = 아난다 존자)에 의해서 인정된 8만 4천의 법의 무더기들[法蘊, dhammakkhandha] 가운데서 [본서는] 몇 개의 법의 무더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경(經, sutta)의 [관점에서 살펴보면]「하나의 모음」에 27개 경들이 있고,「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있어서 모두 112개 경들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모음들(nipātā) 가운데서는「하나의 모음」이 처음이고, 품(vaggā)들 가운데서는 보증 품(pāṭibhoga- vagga)이 처음이며, 경들 가운데서는「탐욕 경」(lobha-sutta, It1:1)이 그러하다. 이 [탐욕 경에서도]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vuttañhetaṁ bhagavatā)’라는 것이 처음이고, [이러한 경의] 기원(nidāna)도 아난다 존자가 일차대합송(一次大合誦, 一次結集, paṭhama-mahāsaṅgīti) 때에 읊은 것이 처음이다.”(ItA.i.2)
⑷『이띠웃따까』의 경들은 110개인가 112개인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여러 주석서들은 본서『이띠웃따까』를 한결같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라고 알아야 한다(vuttañ -hetaṁ bhagavatātiādinayappavattā dasuttarasatasuttantā itivuttakanti vedi -tabbaṁ).”(DA.i.24; MA.ii.106; AA.iii.6; DhsA.26 등)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이띠웃따까』는 110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붓다고사 스님은 여러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구분교를 정의하는 문맥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면 왜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후대 주석가들은 어떻게 첨언을 하는가? 먼저 본서의 주석가인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살펴보자.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먼저 서문(ganthārambhakathā)을 마무리하면서 “그래서 주석서를 지은 스승들이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2개의 경들이『이띠웃따까』이다.’라고 말씀하셨다.”(ItA.i.33)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후기(nigamanakathā)의 게송에서도,
“110개에 2개를 더한 경들이『이띠웃따까』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의 분류에 의해서 대선인들은 합송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 왜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하였는가? 담마빨라 스님 시대로 내려오면서 2개의 경이 늘어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드와다숫따라사따’라는 말보다는 ‘다숫따라사따’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율장의 복주서인『사랏타디빠니띠까』(Sāratthadīpanī-ṭīkā)를 지은 12세기의 사리뿟따(Sāriputta) 스님도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율장 주석서』에 나타나는 ‘110개의 경들(dasuttarasata -suttantā)’(VinA.i.28)이라는 표현을 두고 “110개의 경들이라고 하였지만 여기서도 경전에는 112개의 경들이라고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VinAṬ.i.102)
이외에는 붓다고사 스님은 110개라고 언급하였지만 경에는 왜 112개가 실려 있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이론의 여지가 없이『이띠웃따까』에는 112개의 경들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석가들의 해명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3.『이띠웃따까』경들의 구조
⑴『이띠웃따까』112개 경들의 공통된 구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자적으로 itivuttaka는 iti와 vuttaka로 분석이 된다. iti/ti는 ‘~라는, 이러한, 이처럼, thus’를 뜻하는 불변사로 초기불전과 범어 일반에서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vuttaka는 √vac(to speak)의 과거분사 vutta에다 -ka 어미를 붙여서 명사화한 것인데 vuttaka가 단독으로 쓰인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여기서처럼 iti-vuttaka로 쓰여 본서의 이름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는 다음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먼저 특정 경의 주제에 대한 산문으로 된 가르침이 있고 ② 그 주제를 게송으로 정리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실려 있다. 역자는 이러한 형식은 다섯 가지 원칙이 정확히 적용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서의 모든 경들은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보듯이 이 문장에는 vutta가 두 번 나타나고 iti(ti)가 한 번 나타나고 있다.
둘째, 본서의 모든 경들의 내용이 먼저 산문으로 설해진다.「하나의 모음」에 포함된 27개의 경들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산문으로 설해지고, 같은 방법으로「둘의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에서는 두 개의 주제가,「셋의 모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에서는 세 개의 주제가,「넷의 모음」에 포함된 13개의 경들에서는 네 개의 주제가 산문으로 설해진다. 그런 뒤 모든 경들의 이 산문은 ‘etamatthaṁ bhagavā avoca(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로 마무리가 된다. 이 문장에는 불변화사 iti(이와 같이, 이처럼)와 같은 의미를 가진 대명사 etaṁ(이것)과, 과거분사 vutta의 동사 아오리스트 과거(Aor.) 삼인칭 단수인 avoca가 나타난다.
셋째, 그런 뒤에 112개의 경들은 모두 게송으로 이 가르침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게송은 112개의 경들에서 모두 ‘tatthetaṁ iti vuccati(여기서 이것을 [정리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도입이 된다. 여기서 보듯이 이 문장에도 iti와 과거분사 vutta의 동사 수동태 현재 3인칭 단수인 vuccati가 나타난다.
넷째, 그다음은 본서의 핵심이 되는 게송이 나타난다. 각 경들은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우도 있고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우도 있으며 최대 9개의 게송을 가진 경이 있다. 게송에 대해서는 본 해제 §5.『이띠웃따까』의 구성 ― ⑵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270개 게송들의 분류에서 살펴보겠다.
다섯째, 그리고 게송으로 된 가르침이 마무리되어 경들이 끝날 때에도 이들 112개의 경들은 모두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로 끝나고 있다. 이처럼 이 문장에도 iti와 vutta라는 용어가 들어있다.
이처럼 본서에 포함된 모든 경은 ① iti - vutta 구문으로 시작하고 ② etaṁ - avoca로 산문이 종결되고 ③ iti - vuccati 구문으로 게송이 도입되고 ④ 게송을 드러내고 ⑤ iti - vutta 구문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이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부처님 제자들, 특히 재가자들이 개인적으로나 함께 독송하기에 좋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112개의 경들에서 iti와 vutta는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모두 포함되어 있고 둘째 문장에는 etaṁ과 avoca가, 셋째 문장에는 iti와 vuccati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 두 단어, 즉 iti와 vutta가 자연스럽게 iti + vutta로 결합이 되어 itivutta가 되고 여기에다 명사형 어미 -ka를 붙여서 itivuttaka가 되어 본서의 이름으로 정착이 된 것이다.
⑵ ‘evaṁ me sutaṁ’과 ‘iti me sutaṁ’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
그 다음으로 살펴볼 점은 본서에 포함된 112개 경들의 도입부인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이다. 본서 itivuttaka를 제외한 경장의 5부 니까야의 모든 경들은 게송만으로 되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부터『앙굿따라 니까야』까지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예외 없이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된다.
물론 전통적으로 이 문장은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으로 편집되어 이것이 나타나지 않고 그래서 번역되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다. 이미 ‘반복되는 부분의 [생략에 의한] 결집(peyyālasaṅgaha)’이라는 용어가『디가 니까야 주석서』서문(DA.i.25) 등에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은 아주 일찍부터 상좌부 불교 교단에 있었던 관행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에서 me(나)는 당연히 아난다 존자이다. 이 모든 경들은 아난다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경장을 암송하여 499명의 부처님의 직계 제자 아라한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아난다 존자가 이와 같이 들었음을 인정하는 구절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15개 경들 가운데 게송만으로 되어 있는 ―
⑵『담마빠다』(법구경), ⑹『위마나왓투』(천궁사경), ⑺『뻬따왓투』(아귀사경), ⑻『테라가타』(장로게경), ⑼『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자따까』(본생경), ⑾『닛데사』(의석), ⒀『아빠다나』(비유경), ⒁『붓다왐사』(불종성경), ⒂『짜리야삐따까』(소행장경)의 10가지와 ⑸『숫따니빠따』(경집) 가운데 게송만으로 된 경들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외에 본서 ⑷『이띠웃따까』(여시어경)를 제외한 ⑶『우다나』(자설경)와 ⑸『숫따니빠따』(경집) 가운데 산문으로 시작하는 경들과 ⑿『빠띠삼비다막가』(무애해도)의 경들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경들을 모아서 갓 출가한 스님들의 교재로 쓰였음직한 ⑴『쿳다까빠타』(소송경)에는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는 경들이 있는데 게송으로 시작하는 경들에서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라는 언급은 일차합송에서 499명의 아라한들 앞에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로부터 들었음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경전의 권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문장이다. 그래서 후대에 결집된 대승경전들도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율장은 우빨리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율을 풀이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율장의 조항은 evaṁ me sutaṁ으로 시작하지 않고 빠라지까 항목(pārājika)의 구문들과 빠찟띠야 항목(pācittiya)의 구문들은 바로 ‘그때 부처님, 세존께서는 웨란자에서 머무셨다(tena samayena Buddho bhagavā Verañjāyaṁ viharati).’(Vin.iii.1) 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비대기설법임을 강조하는 논장에는 그 성격상 evaṁ me sutaṁ이나 설하신 장소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담마상가니』역자 서문 §6-⑶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처럼 경장의 5부 니까야 가운데 본서와 게송으로 구성된 경들을 제외한 모든 경들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ṁ me sutaṁ)’로 시작한다.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일차합송에서 제기를 하였고 499명의 아라한들이 합송하여 승인하는 형식으로 경장은 출발되었기 때문이다.
②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iti me sutaṁ)
그런데 본서『이띠웃따까』에는 이러한 도입부가 들어있지 않다. 본서의 112개 경에는 evaṁ me sutaṁ,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합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의 경들도 엄연히 부처님 말씀이고 이것은 쿳줏따라 청신녀가 들어서 사마와띠 왕비와 시녀 500명에게 들려준 것이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사실을 모든 경의 처음에 드러내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준 뒤에는 반드시 부처님 말씀은 이것으로 끝이 났음을 밝혀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채택한 방법이 iti me sutaṁ, 즉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이다. 물론 여기서 me(저)는 쿳줏따라 청신녀이다. 이 구문은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 경들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①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 즉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에도 들어있고, 모든 경들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②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즉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라는 문장에도 나타난다.
③ evaṁ과 iti는 같은 뜻이다
빠알리 사전들과 산스끄리뜨 사전들의 설명처럼 ‘이처럼’으로 옮긴 iti me sutaṁ의 ‘iti’와 ‘이와 같이’로 옮긴 evaṁ me sutaṁ의 ‘evaṁ’은 둘 다 불변화사(nipātapada, 부사)로 그 의미는 같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 주석서』등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은 ‘evaṁ’이 가지는 의미를 ① 비유(upama) ② 지시(upadesa) ③ 기쁘게 함(sampahaṁsana) ④ 비난함(gara- haṇa) ⑤ 말에 동의함(vacanasampaṭiggaha)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의 8가지로 요약하고 그 용례들을 경의 예문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그런 뒤에 “여기서는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DA.i.26 이하; MA.i.3 이하; SA.i.4 이하; AA.i.4 이하)
한편 본서의 주석서는 먼저 ‘iti’가 가지는 의미를 ① 원인(hetu) ② 확정지음(parisamāpana) ③ 등(等)의 뜻(ādi) ④ 단어의 뜻을 전개함(padattha- vipariyāya) ⑤ 방법(pakāra) ⑥ 드러냄(nidassana) ⑦ 결론(avadhāraṇa) 등의 7가지 뜻으로 요약한다. 그런 뒤에 이 7가지에 대한 용례를 경을 인용하여 드러낸 뒤 “여기서 iti는 ⑤ 방법과 ⑥ 드러냄과 ⑦ 결론(pakāra- nidassana-avadhāraṇa)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ItA.i.19)라고 결론짓는다.
즉 iti me sut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은 ⑤ 본경에서 설한 방법대로 저는 들었습니다, ⑥ 본경에서 드러내신 대로 저는 들었습니다, ⑦ 본경에서 결론지으신 대로 저는 들었습니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밝힌 evaṁ이 가지는 8개의 뜻 가운데 ⑥ 형태(방법, ākāra) ⑦ 드러냄(nidassana) ⑧ 결론(avadhāraṇa)과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주석서들에 의하면 evaṁ me sutaṁ의 ‘evaṁ’과 iti me sutaṁ의 ‘iti’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같은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우다나 주석서』도『우다나』의 제1품 깨달음 품의 끝에 나타나는 ‘이 우러나온 말씀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나는 들었다(ayampi udān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ṁ)’를 설명하면서 “여기서 ‘이처럼’이라는 단어(iti-sadda)가 드러내는 의미(atthuddhāra)는 ‘이와 같이’라는 단어(evaṁ-sadda)와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에(samānatthatāy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처럼『이띠웃따까』의 해설에서 설명한 방법이 여기서도 그 뜻이 적용되어야 한다.”(UdA.45~46)라고 강조하고 있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이러한 어법으로 자기가 지금 읊으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임을 알리고 나서 부처님 말씀을 다 읊은 뒤에는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었고 제가 들은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고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아진 일련의 부처님 가르침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vutta)을 이처럼(iti) 저는 들었습니다.’라는 어법에서 iti와 vutta를 따와서 itivuttaka라는 제목을 달아서 유통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본서의 제목 자체가 본서의 가르침은 아난다 존자가 전승한 경들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본서는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합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evaṁ me suttaṁ이라는 이러한 권위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에 본서의 모든 경들은 evaṁ 대신에 같은 의미를 가진 iti를 써서 iti me sutaṁ으로 전개가 된다. 물론 이처럼(iti) 들은 것은 아라한이신 세존으로부터 들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이라고 이 경들의 출처가 부처님임을 먼저 밝힌 뒤에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iti me sutaṁ).”라고 부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본서는 구분교의 분류에서도 특별하게 취급되어 이 itivuttaka라는 용어는 부처님 말씀, 즉 스승의 교법(satthu-sāsana)을 전승하는 독립된 형식으로 받아들여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 -sāsana)’인 구분교(九分敎)에 넣어서 이 가운데 여섯 번째인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로 정리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일차합송에는 500명의 아라한들만이 참석했기 때문에 본서는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의 입을 통해서 정전으로 공인이 되었다.
⑶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경장의 경들은 게송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일부 경들을 제외하고 모두 그 경의 가르침을 설하신 장소와 시간과 청법자 등이 언급되지만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이띠웃따까 주석서』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다른 경들에서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이라는 등으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여(kāladese apadisitvā) [경이 설해진] 기원(nidāna)을 밝혔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그렇게 밝히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말하였다.(apare tāva āhu) ― [이 경들은 아난다] 장로가 드러내어 밝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na pana therena bhāsitattā).
참으로 [여기서 언급되는 이 경이 설해진] 기원은 아난다 존자가 맨 처음 전한 것이 아니다(idañhi nidānaṁ na āyasmatā Ānandena paṭhamaṁ bhāsi- taṁ). 이것은 쿳줏따라(Khujjuttarā)라는 여자 신도가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다시] 사마와띠를 상수로 하는(Sāmāvatippamukhā) 500명의 여인들(itthi)에게 맨 처음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paṭhama bhāsita). [쿳줏따라]는 세존께서 여자 신도들(upāsikā) 가운데서 많이 배운 존재(bahussuta-bhāva)로 으뜸에 놓으셨으며(etadagge ṭhapitā, A1:14:7-3) 유학의 무애해체지를 증득한 성스러운 여제자(sekkhappaṭisambhidāppattā ariyasāvikā)이었다.” (ItA.i.29)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 뒤 본서가 어떤 배경에서 모아져서 전승되어 왔는지를 자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서는 구부정한 웃따라, 혹은 꼽추 웃따라, 즉 쿳자(khujja)-웃따라(Uttarā)가 들어서 전해준 부처님 말씀이다. 등이 구부정하여서(khujja) 쿳줏따라(Khujjuttarā)라 불리던 굽정이 웃따라는 우데나 왕의 왕비였던 사마와띠 청신녀의 하녀였다. 굽정이 웃따라는 우연히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예류자가 되어 그 말씀을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들려주자 기뻐한 왕비가 매일 가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와서 자기들에게 들려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쿳줏따라는 그렇게 하였다.(ItA.i.31) 이렇게 해서 모아진 것이 바로 본서인『이띠웃따까』― 쿳줏따라가 듣고 와서 전해준 부처님 말씀이다. 역자는 Khujjuttarā라는 이름을 대부분 쿳줏따라로 음역하거나 꼽추라는 단어 대신에 필요에 따라서 ‘구부정한 웃따라’로 풀어서 적고 있음을 밝힌다.
이처럼 본서는 경장의 5부 니까야 가운데 유일하게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결집한 경이 아니다. 재가자가, 그것도 여자 신도가, 그것도 하녀가, 그것도 몸이 불편한 여인이 들어서 전한 부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청신녀의 암송으로 가르침을 전해 들은 500명은 불에 타 죽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그들은 이미 예류과를 얻었고 죽을 때는 더 높은 성자의 경지까지 증득하였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 등이 모아졌을 것이고 그래서 이미 부처님 재세 시에도 본서는 많은 불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애송되었음이 분명하고 아난다 존자까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가 전적으로 부처님 말씀으로 대합송에서 제기하여 정전(正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놀랍도록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명쾌한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는 본서는 특히 합리성이 존중받는 이 시대에 전 인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⑷『이띠웃따까』는 어디서 설하셨는가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에는 부처님께서 어디서 이 경들을 설하셨는지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주석서는 부처님께서 꼬삼비에서 이 112개의 경들을 설하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ItA.i.29 이하) 꼬삼비의 왕비였던 사마와띠 왕비의 간청으로 쿳줏따라가 이 경들을 꼬삼비에서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ItA.i.31)
주석서에 의하면 꼬삼비에는 세 개의 승원이 있었다. 그것은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과 꾹꾸따 원림(Kukkuṭārāma)과 빠와리까 원림(Pavārikārāma)인데 각각 고시따 장자(Ghosita gahapati)와 꾹꾸따(Kukkuṭa) 상인과 빠와리까(Pavārika) 상인이 지어서 승단에 기증한 것이었다.(ItA.i.29~30; DhpA. i.203) 4부 니까야 가운데 30개 정도가 꼬삼비의 이 승원 세 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조사된다. 그것은『디가 니까야』의 한 개 경(D7),『맛지마 니까야』의 세 개 경들(M48, M76, M128),『상윳따 니까야』의「꼬삼비 경」(S12:68) 등 13개 경들,『앙굿따라 니까야』의「아지와까 경」(A3:72) 등 13개 경들이다. 이 가운데 강가 강의 언덕(S35:241)과 심사빠 숲(S56:31)을 제외한 28개 경들은 모두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에서 설하신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9번째 안거를 꼬삼비에서 하셨다.(AA.ii. 124; BvA.3) 그러나 일 년 중에 안거 기간 석 달을 제외한 9개월 동안의 산철에는 꼬삼비에 자주 방문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전승되는 경들도 30개나 되고 쿳줏따라도 112개의 경들을 본서에서 전승하는 것이다. 주석서는 이 112개의 경들이 구체적으로 꼬삼비의 어느 곳에서 설해졌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니까야에 나타나는 꼬삼비에서 설하신 30개의 경들 가운데 28개가 고시따 원림에서 설해졌고 이 고시따 원림을 지은 고시따 장자는 사마와띠 왕비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후원자였기 때문에 사마와띠의 하녀였던 쿳줏따라도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법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한편 주석서는 왜 설하신 곳은 언급되지 않는가를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112개의 경들은] 그 도시(꼬삼비)에서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sammukhā sutvā) 바로 그날에(tadaheva) 그녀가 그들에게 설하여 [전해준] 것이기 때문에 ‘한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에 머무셨다(ekaṁ sama- yaṁ bhagavā Kosambiyaṁ viharati).’라고 때와 장소(kāladesa)를 언급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명백하였기 때문이다(supākaṭabhāvato). 그리고 비구니들도 그녀의 곁에서 이 경들을 수지하였다. 이와 같이 전해져서 비구들에게도 그녀가 제기한 [이 경들의] 기원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칠엽굴(sattapaṇṇiguhā)에서 아자따사뚜 왕이 건립해 준 정법의 천막(saddhammamaṇḍapa)에서 마하깟사빠 존자를 상수로 하는 자유자재한 무리의 가운데 앉아서 법을 합송하면서 이 경들의 기원에 대한 의심(dveḷhaka)을 제거하면서 그녀가 제기한 확정된 방법(āropita-niyāma)에 의해서 [이 경들의] 기원(nidāna)을 제기하였다.”(ItA.i.32)
4. 쿳줏따라는 누구인가?
그러면 쿳줏따라는 누구인가?『이띠웃따까』를 처음 모아서 유통시킨 사람이 아난다 존자가 아니라 쿳줏따라라는 재가자요, 여자 신도요, 하녀요, 몸이 불편한 쿳줏따라가 확실하다면(ItA.i.32) 이것은 불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그녀는 초기불전이 인정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재가 전승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세존으로부터 친히 “많이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A1:14:7 ⑶)이라고 인정받았고,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A2:12:4; A4:176 §4)이라고 칭찬을 받았으며, 세존께서 직접 “나도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처럼 되기를!”이라고 발원해야 한다(Ibid.)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쿳줏따라는 비록 궁녀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녀이고 몸도 불편하였지만 실로 재가자들 가운데 아난다 존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모셨던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궁궐의 시녀들이 셋째 왕비인 마간디야의 간교한 획책으로 불에 타서 죽는 참극이 빚어지자 그녀는 남은 인생을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라도 본서를 엮어서 재가자들 사이에서 유통하였을 것이고, 이 부처님의 직절근원(直截根源, 곧바로 뿌리를 끊음)의 명쾌한 가르침을 담은 아름답고 울림을 주는 본서는『숫따니빠따』제4장과 제5장처럼 이미 세존 재세 시에 널리 재가자들에게 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비구니 스님들을 위시한(ItA.i.32) 승가에도 유통이 되어 있어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가 전격적으로 합송에 상정하여 부처님의 직설을 모은 경장의 내용으로 당당하게 인정이 되었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형식과 종류별로 분류하는 방법인 구분교에도 당당하게 이띠웃따까가 나타나고 있다고 역자는 굳게 믿고 있다. 이제『이띠웃따까』를 처음 모아서 유통시킨 쿳줏따라에 대해서 살펴보자.
⑴ 니까야에 나타나는 쿳줏따라
먼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쿳줏따라에 대한 출처부터 살펴보자.『상윳따 니까야』제2권「외동딸 경」(S17:24) §3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신심있는 청신녀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동딸에게 바르게 원한다면 이렇게 원해야 한다. ‘얘야, 너는 쿳줏따라 청신녀와 웰루깐다끼의 난다마따처럼 되어라.’라고. 비구들이여, 쿳줏따라 청신녀와 웰루깐다끼의 난다마따는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기 때문이다.”(S17:24 §3)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신심 있는 여자 신도가 바르게 원한다면 이렇게 원해야 한다. ‘나도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처럼 되기를!’ 비구들이여, 이들은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니 다름 아닌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이다.”(A2:12:4)
“비구들이여, 믿음을 가진 청신녀는 이와 같은 바른 포부를 가져야 한다. ‘나는 청신녀 쿳줏따라와 웰루깐다끼 마을의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 같은 그런 분이 되기를!’ 비구들이여, 청신녀 쿳줏따라와 난다의 어머니 웰루깐다끼야는 내 청신녀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다.”(A4:176 §4)
나아가『앙굿따라 니까야』제5권「청신녀 경」(A8:91)에는 쿳줏따라가 27명의 청신녀들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앙굿따라 니까야』제1권「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서 세존께서는 “많이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이다.”(A1:14:7-3)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한편『청정도론』제14장은 “이 네 가지 걸림 없는 해체의 지혜[無礙解體智, cattāro paṭisambhidā]는 유학의 경지와 무학의 경지의 두 단계에서 통달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 상수 제자들과 큰 제자들은 무학의 경지에서 통달했고 아난 존자와 찟따 장자와 담미까 청신사와 우빨리 장자와 쿳줏따라 청신녀 등은 유학의 경지에서 통달했다.”(Vis.XIV.27)라고 하여 쿳줏따라 청신녀가 무애해체지를 갖춘 사람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쿳줏따라 청신녀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을 지어 승가에 보시한 고시따(혹은 고사까) 장자의 집의 하녀의 딸로 태어나 하녀로 있었으며 그 뒤에는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왕비가 된 사마와띠(Sāmāvati) 왕비의 하녀가 되어 궁궐로 들어갔다. 그녀는 왕비의 심부름으로 매일 궁궐 밖으로 나가 꽃을 사왔는데 그러던 중 세존을 뵙고 가르침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환희로 가득한 그녀를 보고 사마와띠가 전말을 묻자 모두 이야기 해주었고 사마와띠 왕비는 그녀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날부터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대했다고 한다.(mātuṭṭhāne ca ācariyaṭṭhāne ca ṭhatvā) 사마와띠는 세존께서 꼬삼비에 오시면 그녀가 법을 듣고 와서 자신과 500명의 시녀들에게 설해주도록 하였다. 그들도 쿳줏따라가 들려주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모두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존께서는 그녀를 많이 들은(bahussutā) 여자 신도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며(A1:14:7-3)「발원 경」4(A2:12:4)와「포부 경」(A4:176) §4에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여자 신도로 쿳줏따라와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를 거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⑵ 쿳줏따라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 세 개의 주석서
쿳줏따라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주석서들에도 전해오지만 특히 ①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의 경의 기원에 대한 설명(nidānavaṇṇanā, ItA.i.4 이하)과 ②『법구경 주석서』의 불방일 품(appamādavagga)에 대한 주석의 사마와띠의 일화(Sāmāvatīvatthu, DhpA.i.161 이하)와 ③『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의『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 대한 주석(AA.i.418 이하)에 자세히 전승되어 온다.
부연하면 ① 본서는 쿳줏따라가 들어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기 때문에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이띠웃따까 주석서』의 경의 기원에 대한 설명(nidānavaṇṇanā)은 그녀에 대한 일화를 자세히 담고 있다.
② 그리고 쿳줏따라는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이었기 때문에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법구경 주석서』가운데 사마와띠의 일화(Sāmā- vatīvatthu, DhpA.i.161 이하)에도 나타난다. 이것은『이띠웃따까 주석서』와 거의 같게 나타나지만 이보다 좀 더 자세한 부분도 있고『이띠웃따까 주석서』가 더 자세한 경우도 있다.
③ 그리고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의 으뜸 품(A1:14)에 대한 주석 가운데 쿳줏따라와 사마와띠의 일화(Khujjuttarā- Sāmāvatīvatthu)에도 자세히 언급이 되는데 기본 줄거리는 앞의 두 주석서와 동일하다. 역자는 이 가운데『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서문을 중심으로 나머지 둘을 취합하여 이를 토대로 쿳줏따라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띠웃따까 주석서』에 의하면 쿳줏따라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장자의 집에서 하녀로 있던 여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으며 웃따라(Uttarā)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꼽추(khujja)로 태어났으며 그래서 구부정한(khujja) 웃따라(Uttarā), 즉 쿳줏따라(Khujjuttarā)로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고사까(Ghosaka, 혹은 Ghosita) 장자가 꼬삼비의 우데나(Udena/Utena) 왕에게 사마와띠를 시집보낼 때 쿳줏따라는 그녀의 하녀로 함께 가게 되어 우데나 왕의 내전에 머물렀다고 한다. 주석서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행운의 겁에 우리 세존이 계시는 시기에 그녀는 천상세계에서 떨어져서 고사까 상인(Ghosaka-seṭṭhi)의 집에 있던 하녀(dāsi)의 태중에 재생연결을 취하여 웃따라(Uttarā)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에 꼽추(khujjā)였다고 해서 쿳줏따라(Khujjuttarā)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고사까 상인이 우데나(Udena/Utena) 왕에게 사마와띠를 시집보낼 때에 그녀의 하녀가 되어(paricārikabhāvena) 함께 보내져서 우데나 왕의 내전(antepura)에 머물게 되었다.”(ItA.i.29)
계속해서 주석서는 말한다.
“그 무렵에 꼬삼비에는 고사까 상인과 꾹꾸따 상인(Kukkuṭa-seṭṭhi)과 빠와리까 상인(Pāvārika-seṭṭhi)이 세존을 지목해서 세 개의 승원(vihāra)을 만들었다. 그래서 세존께서 지방을 유행하시다가 꼬삼비 도시에 당도하시면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의 승원으로 사용하도록 지정을 하고 많은 보시물들(mahādānāni)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한 달쯤이 지났다. 그때 그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들은 참으로 모든 세상을 연민하신다(sabbalokānukampakā).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그들은 꼬삼비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때부터 시작하여 꼬삼비 사람들은 도로마다 일률적으로(vīthisabhāgena) 무리마다 일률적으로(gaṇa-sabhāgena) 큰 보시를 하였다.”(ItA.i.29~30)
한편『법구경 주석서』에는 다음 구절이 나타난다.
“세존께서는 매일 각각의 승원에서 머무셨으며 그 머무는 곳의 대문에서 탁발을 하셨다. 거기에는 이 세 상인들을 시중드는(upaṭṭhāka) 수마나(Suma -na)라는 화환을 만드는 자(mālākāra)가 있었다. 그는 그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저는 오랫동안 당신들을 시중들었습니다. 저도 세존께 공양을 올리고자(bhojetukāma) 합니다. 우리도 하루를 스승께 보시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는 내일 공양을 올리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주인님.’이라고 말한 뒤 그는 세존께 공양청을 한 뒤 공경(sakkāra)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DhpA.i.208)
⒝ 예류과를 얻은 인연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께서는 비구승가에 둘러싸여 화환을 만드는 장인(mālākāra-jeṭṭhaka)의 집에 앉아계셨다. 그 순간에 쿳줏따라는 사마와띠에게 줄 꽃들(pupphāni)을 구하기 위해서 8 까하빠나(aṭṭha kahāpaṇa)를 가지고 그 집에 갔다.”
『법구경 주석서』는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그때 왕은 매일 사마와띠 왕비에게 꽃값으로 8 까하빠나를 주었으며(tadā rājā Sāmāvatiyā devasikaṁ pupphamūle aṭṭha kahāpaṇe deti)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인 쿳줏따라가 수마나라는 화환 만드는 자에게 가서 정기적으로(nibaddhaṁ) 꽃들을 [구입해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DhpA.i.208)라고 하여 왕이 직접 꽃값으로 8 까하빠나를 왕비에게 주었고 그것을 왕비가 쿳줏따라에게 건네준 것으로 적고 있다.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계속한다.
“화환을 만드는 장인은 그녀를 보고 ‘웃따라 이모, 오늘은 그대에게 꽃들을 줄 시간이 없어요. 나는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에 음식 공양을 올리는 시중을 들기 위해서 갑니다. 그대도 음식 공양을 올리는 시중을 드는 데 동참하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섬기는 행위(veyyāvacca- karaṇa)로부터 풀려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쿳줏따라는 부처님 일행들의 공양 장소에 가서 가까이에서 음식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스승께서 가까이 앉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upanisinnaka-kathā)을 통해서 모든 법을 섭렵하였고 [공덕을] 함께 기뻐하시는 [말씀](anumodanā)을 듣고 예류과에 확립되었다.”(ItA.i.30)
『법구경 주석서』에는 “쿳줏따라는 스승의 법문을 듣고 예류과에 확립되었다.”(DhpA.i.209)라고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말한다.
“[공양 시중을 마치고 내전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이전의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를 주고 꽃들을 구해서 갔지만 그날에는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남의 재물(parasantaka, sa+antaka)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8 까하빠나를 주고 바구니를 가득 채워서 꽃들을 들고 사마와띠의 곁으로 갔다. 그러자 사마와띠는 그녀에게 물었다. ‘웃따라 이모, 그대는 다른 날들에는 많은 꽃들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많구나. 왕께서 그대에게 더 많은 은총을 주셨느냐?’ 그녀는 [성자가 되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그녀가 행한 것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그때 ‘그런데 오늘은 왜 많은 꽃들을 가지고 왔느냐?’라고 묻자 ‘오늘은 제가 정등각자의 법을 듣고 불사를 실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속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사마와띠 왕비는] ‘아니, 이런 나쁜 하녀를 봤나. 이때까지 네가 가져간 까하빠나를 모두 가져오너라.’라고 책망하지 않고(atajjetvā) 앞의 이유로 경책을 하면서 ‘이모여, 그렇다면 그대가 마신 감로를 우리들도 마시게 해다오(amma, tayā pivitaṁ amataṁ amhepi pāyehi).’라고 말하였다.”(ItA.30)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도 위와 같이 나타난다. 법구경 주석서는, “그녀는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는 자신이 갖고(attano gahetvā) 4 [까하빠나]로 꽃을 구해서 갔지만 그날은 8 [까하빠나로] 꽃을 구해서 갔다.” (DhpA.i.209)라고 4 까하빠나를 자신이 가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해서『법구경 주석서』는 이렇게 좀 더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자 사마와띠가 물었다.
‘이모여, 오늘은 우리 왕께서 꽃값으로 두 배를 주셨느냐?’
‘아닙니다, 왕비님.’
‘그렇다면 왜 꽃이 이렇게 많으냐?’
‘다른 날들에는 4 까하빠나를 제가 갖고 4 [까하빠나]로 꽃을 사서 왔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왜 갖지 않았느냐?’
‘정등각자의 법문을 듣고 법을 증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왕비는 ‘오, 이 나쁜 하녀를 보게나. 이때까지 네가 가져간 까하빠나를 내게 가져오너라.’라고 책망하지 않고 ‘이모여, 그렇다면 그대가 마신 감로를 우리들도 마시게 해다오.’라고 말하였다.”(DhpA.i.209)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쿳줏따라가] ‘그러면 저를 목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16가지의 향기 나는 물 항아리로 목욕을 하게 한 뒤 광택이 나는 옷감 두 벌을 그녀에게 내어 주게 하였다. 그녀는 한 벌은 입고 한 벌은 [자리에] 덮어서 자리를 정돈한 뒤 그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잘 장엄된 부채(vicitra-bījani)를 든 뒤 유학의 무애해체지(sekhappaṭisambhidā)에 확고하게 서서 낮은 자리에 앉아있는 500명의 여인들을 불러서 스승께서 가르치신 확고한 방법(desita- niyāma)에 따라 그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그들 모두는 예류과(sotāpattiphala)에 확립되었다. 그들 모두는 쿳줏따라에게 예배한 뒤 ‘귀한 분이여, 오늘부터 당신은 잡스러운 일일랑 하지 마시오. 당신은 우리들의 어머니의 위치(mātuṭṭhāna)와 스승의 위치(ācariyaṭṭhāna)에 머물러주십시오.’라고 하면서 그녀를 공경하는 위치(garuṭṭhāna)에 놓았다.”(ItA.31)
⒞ 하녀요 몸이 불편했지만 통찰지를 가져 태어난 인연
계속해서『이띠웃따까 주석서』는 ① 그녀가 하녀로 태어난 인연과 ② 꼽추가 된 인연과 ③ 그러면서도 통찰지를 갖추게 된 인연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① 그러면 그녀는 왜 하녀(dāsī)가 되어 태어났는가? 그녀는 깟사빠 정등각자의 시기에 바라나시에서 상인의 딸(seṭṭhidhītā)로 태어났다. 어떤 번뇌 다한 장로니(khīṇāsavattheri)가 그 신도 집에 가자 그녀는 ‘여보시오, 나에게 장식용 바구니를 가져다 주시오.’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까이서 시중을 들도록(veyyāvaccaṁ) 하였다. 그 장로니는 ‘그대에게 주지 않으면 나에 대해 증오(āghāta)가 생겨서 그대가 지옥(niraya)에 태어날 것이고 내가 그대에게 주면 그대는 남들의 하녀로 태어날 것이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하녀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그녀를 동정을 한 것(anuddaya)을 반연하여 그녀가 말한 대로 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업으로 오백 생을 남들의 하녀로 태어났다.
② 그러면 왜 꼽추(khujjā)가 되었는가? 부처님이 나시지 않은 시기에 이 바라나시의 왕의 궁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어떤 왕의 가문과 관련이 있는 벽지불(paccekabuddha)이 조금 구부정한 자세인 것(thoka khujjadhātuka)을 보고 함께 사는 여인들의 무리 앞에서 비웃고 조롱을 하면서 자신이 그 흉내를 내어 꼽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꼽추로 태어났다.
③ 그러면 무엇을 지어서 통찰지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부처님이 나시지 않은 시기에 이 바라나시 왕의 궁전에서 살고 있었을 때 여덟 분의 벽지불들이 궁전에서 뜨거운 죽(uṇhapāyāsa)으로 가득 찬 발우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돌리면서 [죽을] 드시는 것을 본 뒤 자신이 가진 여덟 개의 상아로 만든 팔찌들(dantavalayāni)을 드려서 ‘여기에 놓고 드십시오.’라면서 보시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한 뒤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당신들께 이것들을 드립니다.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nandamūlaka-pabbhāraṁ) 돌아갔다. 그녀는 이러한 결과로 통찰지를 가진 자가 되었다.”(ItA.31)
⒟ 삼장을 호지하는 자가 됨
“그러자 사마와띠를 상수로 한 500명의 여인들은 그녀에게 ‘귀한 분이여, 당신은 매일 매일 스승의 곁에 가서 세존께서 설하시는 법을 들은 뒤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서 나중에 삼장을 호지하는 자(tipiṭaka-dharā)가 되었다.”(ItA.31)
같은 방법으로『법구경 주석서』는 “그런데 쿳줏따라는 ① 무슨 업으로 꼽추로 태어났는가? ② 무슨 업으로 큰 통찰지(mahāpaññā)를 가지게 되었는가? ③ 무슨 업으로 예류과를 증득했는가? ④ 무슨 업으로 남들의 하녀가 되었는가?”(DhpA.i.225~226)라는 네 가지 질문을 하고 위에서 인용한『이띠웃따까 주석서』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예류과를 얻은 업에 대한 설명은 위에서 인용한『이띠웃따까 주석서』에는 없다.『법구경 주석서』는 그녀는 그 벽지불들을 시봉한 그 [과보가] 흘러내려(pacceka- buddhānaṁ kataupaṭṭhānassa nissandena) 예류과를 얻었다고 하며 이것이 부처님들의 출현의 사이에서 있었던(Buddhantare) 그녀의 이전의 업(pubbakamma)이라고 적고 있다.(DhpA.i.226)
『우다나』의「우데나 경」(Ud7:10)에 나타나듯이 사마와띠 왕비는 시녀 500명과 함께 불에 타서 죽음을 맞았다. 주석서에 의하면 마간디야(Māgaṇḍiya)의 삼촌(cūḷapitara)이 계략을 꾸며서 마간디야의 친지들이 사마와띠 왕비의 거처의 기둥들을 모두 기름에 흠뻑 적신 천으로 감싼 뒤에 왕비와 시녀들이 집 안에 있을 때 집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UdA.383) 사마와띠 왕비는 그 불이 사방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 시녀들에게 ‘자매들이여, 시작이 없는 윤회에서 배회하면서 이와 같이 우리가 불에 탈 수밖에 없는 상황(evameva agginā jhāmattabhāvānaṃ)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지혜로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paricchedo na sukaro). 부디 방일하지 마시오.’라고 간곡한 교계를 하였다. 그들은 이미 쿳줏따라가 들려준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예류과를 증득하였고 사마와띠의 이러한 교계로 느낌을 파악하는 명상주제를 마음에 잡도리하여 어떤 자들은 일래자가 되고 어떤 자들은 불환자가 되어서(vedanāpariggaha-kammaṭṭhānaṁ manasikarontiyo kāci dutiyaphalaṁ, kāci tatiyaphalaṁ pāpuṇiṁsu)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UdA. 383~384; DhpA.i.221)
『법구경 주석서』에 의하면 우데나 왕은 이것이 마간디야의 작은 삼촌(cūḷapitara)과 그 친지들(ñātigaṇa)이 꾸민 일임을 마간디야로부터 알아내고 그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모두 모이게 하여 구덩이를 파고 그들을 밀어 넣어서 짚으로 덮고 불로 태운 뒤 쟁기로 갈아엎게 한다. 그리고 곁에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마간디야에게 튀어서 몸에 묻은 타다 만 시신 조각들은 마간디야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고 한다.(DhpA.i.223)
『우다나 주석서』는 “쿳줏따라는 아직 남은 수명이 있었고(āyusesassa atthitāya) 전에 그런 업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pubbe tādisassa kammassa akatattā) 그때 그 궁궐 밖에(pāsādato bahi) 있었다. 그녀는 10 요자나(120 ㎞) 정도 멀리 나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UdA.384)라고 적고 있다.
이런 참화에서 살아남은 쿳줏따라의 노력으로 이 아름답고 품격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슬픈 배경을 간직한 채 부처님 재세 시에 이미 널리 퍼지게 되었을 것이며 이를 아난다 존자가 일차합송에서 아라한들과 함께 합송하여『이띠웃따까』라는 정전(正典)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쿳줏따라와 사마와띠 왕비, 사마와띠 왕비와 마간디야와의 관계 등은 특히『법구경 주석서』에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법구경 이야기』1(335~396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5.『이띠웃따까』의 구성
⑴「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본서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경에 대한 길라잡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27개 [경으로 된 것이]「하나의 모음」이고
「둘의 모음」은 22개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딱 50개로 된 것이「셋의 모음」이요
13개로 된 것은「넷의 모음」이다.
[웃따라 청신녀가 들은] 112개의 높은 경들을
<도표1:『이띠웃따까』의 구성>
합송하여 옛 분들은 잘 내려놓았나니
[이 세상에] 아라한들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이띠웃따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이띠웃따까 주석서』도 본서에는 “「하나의 모음」에 27개 경들이 있고「둘의 모음」에는 22개가,「셋의 모음」에는 50개가,「넷의 모음」에는 13개가 있어서 모두 112개 경들의 조합이 된다.”(ItA.i.2)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하나의 모음」에 포함된 27개 경들은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22개의 경들이 포함된「둘의 모음」은 두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개 경들이 포함된「셋의 모음」은 다섯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13개의 경들이 포함된「넷의 모음」은 품의 구분이 없다.
각각의 모음에 들어있는 각 품은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등으로 서수를 사용하여 품의 명칭을 삼았다. 그러나「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도표1:『이띠웃따까』의 구성>과 같다.
여기서 보듯이「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보증 품’으로 불리고 있다. ‘보증 품’은 PTS본에서 ‘Pāṭibhoga-vagga’를 취하여 옮겼다. 주석가 담마빨라 스님도『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본서「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인 본품을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 부르고 있다.(ItA.i.2) VRI본은 단순히 첫 번째 품(Pathama-vagga)으로 표기하고 있고 PTS본은 \‘보증 품인 첫 번째 품(Pāṭibhogavaggo paṭhamo)’으로 적고 있다.
본 품, 나아가서 본서의 백미는 본서 맨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1:6)에서 부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1)일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합송가와 주석가들은 다른 모음들의 다른 품들은 모두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등으로 단순하게 품의 명칭을 붙였지만 본 품만은 ‘보증 품’이라 불렀다고 여겨진다.
⑵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270개 게송들의 분류
본서의 핵심은 게송이라 할 수 있다. 쿳줏따라는 특히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게송을 귀담아 듣고 외워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산문으로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핵심만을 드러내어 본서의 경들처럼 간단명료하게 하여 전해주었을 것이다.
본서의 많은 게송은 실로까(siloka, Sk. śloka, 혹은 아누슈뚭(anuśtubh)이라고도 함), 즉 4구게로 되어 있어서 한 구절에 8음절씩 모두 32음절로 되어 있다. 그러나 46개라는 적지 않은 게송은 하나의 게송에 6개의 구절을 가져 모두 48음절로 이루어진 6구게 형식의 운율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경들에 포함된 게송의 숫자는 경들마다 다르다. 그것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탐욕 경」(It1:1) 등 29개
②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후회 경」(It2:3) 등 45개
③ 세 개의 게송을 가진 경:「타락한 마음 경」(It1:20),「괴롭게 머묾 경」(It2:1) 등 23개
④ 네 개의 게송을 가진 경:「뼈 무더기 경」(It1:24),「으뜸가는 청정한 믿음 경」(It3:41) 등 7개
⑤ 다섯 개의 게송을 가진 경:「자애 수행 경」(It1:27),「비 없는 구름 경」(It3:26)의 두 개
⑥ 일곱 개의 게송을 가진 경:「행복을 열망함 경」(It3:27),「다섯 가지 전조 경」(It3:34),「데와닷따 경」(It3:40),「불 경」(It3:44),「세상 경」(It4:13)의 다섯 개
⑦ 아홉 개의 게송을 가진 경:「내면의 때 경」(It3:39) 한 개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29×1)+(45×2)+(23×3)+(7×4)+(2×5)+ (5×7)+(1×9) = 29+90+69+28+10+35+9 =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본서에는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게송[六句偈, 6구게]이 모두 46개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하나의 모음」의 27개 경들 가운데 15개가 6구게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20번 경 이후의 8개를 빼면 19개 경들 가운데 1:7, 1:8, 1:14, 1:15의 네 개 경들을 제외한 15개 경들이 6구게를 포함하고 있다.
베다에서 가장 신성한 운율이 3구게, 즉 3×8=24음절로 된 가야뜨리 만뜨라(Gāyatrī Mantra)이다. 역자는 개인적으로 본서에 나타나는 이 6개의 구절을 가져 모두 48음절로 이루어진 6구게 형식의 게송은 이러한 24음절의 가야뜨리 운율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히 본서의 모두(冒頭)를 장식하는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It1:6)에는 각각 탐․진․치․분노․모욕․자만을 버리면 불환과를 얻는다는 같은 형식의 6구게가 들어있는데 이 6구게의 48음절은 24음절씩으로 나누면 두 개의 가야뜨리 운율이 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경에 들어있는 게송(It1:1 §2) 가운데 전반부의 24개의 음절은 탐욕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후반부 24개의 음절은 이것을 버리고 불환과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을 담고 있다. 이처럼 탐․진․치․분노․모욕․자만의 위험을 꿰뚫어 본 뒤 이것을 버리면 성자가 된다는 부처님의 강력한 보증을 담은 여섯 개 경들(It1:1~It1:6)을, 그것도 인도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가야뜨리 운율에 담아서 세존께서 읊으신 이러한 게송들을 본서의 맨 처음에 배대한 쿳줏따라 청신녀의 안목이 참으로 뛰어나다고 역자는 판단한다.
그러면 각 모음에는 몇 개의 게송들이 들어있을까? 이들을 위의 게송의 숫자별 분류에 맞추어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하나의 모음」: 17+5+2+2+1+0+0=27개 경 →
17+(5×2)+(2×3)+(2×4)+(1×5)=46개 게송
②「둘의 모음」: 2+11+9+0+0+0+0=22개 경 →
2+(11×2)+(9×3)=51개 게송
③「셋의 모음」: 9+25+7+3+1+4+1=50개 경 →
9+(25×2)+(7×3)+(3×4)+(1×5)+(4×7)+(1×9) =134개 게송
④「넷의 모음」: 1+4+5+2+0+1+0=13개 경 →
1+(4×2)+(5×3)+(2×4)+(1×7)=39개 게송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⑶ 본서의 경들에 포함되어 있는 게송에 대한 소고
물론 대부분의 게송은 부처님께서 직접 읊으신 것이지만 내용으로 보거나 주석서의 언급처럼 부처님이 아니라 쿳줏따라나 다른 사람이 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한두 곳이 있다. 예를 들면,
“여기 타락한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을 알고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의 곁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셨다.”(It1:20 §2)
로 나타나는「타락한 마음 경」(It1:20) §2의 |1|번 게송은 주석서가 “합송을 한 분들이 엮은 게송들(saṅgītikārehi upanibandhagāthā)”(ItA.i.73)이라고 설명하듯이 누가 보아도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주석서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라고 하지만 합송자나 다른 사람이 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게송도
<도표2: 각 모음에 포함된 게송들의 개수>
있는데「일으킨 생각 경」(It2:11) §5의 게송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주석서는 It1:20 §2의 |1|번 게송을 제외한 본서에 나타나는 모든 게송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본서의 첫 번째 경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iti vuccati).’라고 했다. 누가 말씀하신 것인가? 바로 세존이시다(bhagavatā va). 다른 그러한 경우들에는 [예를 들면 It1:20 §2의 |1|번 게송처럼] 합송을 한 분들이 엮은 게송들(saṅgītikārehi upani- bandhagāthā)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존께서 게송을 좋아하는 사람(gāthā- rucikā puggalā)들의 의향(ajjhāsaya)을 고려하여 [이미] 설하신 의미를 간추려서(saṅgahetvā) 게송으로 말씀하신 것(gāthā bhāsitā)이다.”(ItA.i.44)
6.『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이제『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상좌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두 분을 들라면 바로 서기 400~450년쯤에 생존하셨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과 그로부터 150년쯤 후인 서기 550~600년쯤에 사셨던 것으로 여겨지는 아짜리야 담마빨라 스님이다.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대부분의 주석서들을 완성한 분이며 담마빨라 스님은 나머지 주석서들과 특히 대부분의 복주서들을 완성하여 상좌부 불교의 삼장-주석서-복주서 전통을 완결한 분이다.
⑴ 붓다고사 스님이 남긴 주석서 13권
상좌부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는 대부분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온다.『마하왐사』와『간다왐사』등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다음 13가지 주석서들을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I. 율장의 주석서들
① 사만따빠사디까(Samantapāsādīka): 율장의 주석서(VinA)
② 깡카위따라니(Kaṅkhāvitaraṇī): 빠띠목카에 대한 주석서(VinA)
II. 경장의 주석서들
③ 수망갈라윌라시니(Sumaṅgalavilāsinī): 디가 니까야 주석서(DA)
④ 빠빤짜수다니(Pāpañcasūdanī):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MA)
⑤ 사랏탑빠까시니(Sāratthappakāsinī):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SA)
⑥ 마노라타뿌라니(Manorathapūraṇī):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AA)
⑦ 청정도론(Visuddhimagga): 4부 니까야에 대한 종합적인 주석서(Vis)
⑧ 빠라맛타조띠까(Paramatthajotikā):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와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주석서(KhuA, SnA)
⑨ 담마빠다앗타까타(Dhammapadatthakathā): 법구경 주석서(DhpA)
⑩ 자따까앗타까타(Jātakatthakathā): 자따까 주석서(JāA)
III. 논장의 주석서들
⑪ 앗타살리니(Aṭṭhasālinī):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 주석서(DhsA)
⑫ 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ī): 위방가(Vibhaṅga) 주석서(VbhA)
⑬ 빤짜빠까라나-앗타까타(Pañcapakaraṇatthakathā): 나머지 다섯 논 장의 주석서
이들에 대한 논의는『청정도론』역자 서문 §5.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⑵ 담마빨라 스님의 저작 18권
담마빨라 스님도 방대한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분이며 그래서 그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즉 스승(ācariya)으로 호칭되고 있다.
17세기에 마얀마에서 난다빤냐(Nandapañña)가 지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대한 역사서라 할 수 있는『간다왐사』(Gandhavaṁsa)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담마빨라 스님은 아래에서 언급하는 모두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18개는 아래의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I.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
① 담마빠다 주석서(DhpA)
② 우다나 주석서(UdA)
③ 이띠웃따까 주석서(ItA)
④ 숫따니빠따 주석서(SnA)
⑤ 테라가타 주석서(ThagA)
⑥ 테리가타 주석서(ThigA)
⑦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
이들은『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게송을 포함하는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이다.
II. 빠라맛타만주사(Paramtthamañjūsā, Pm) - ⑧ 청정도론 복주서
III. 리낫타빠까시니(Līnatthappakāsinī, 숨은 뜻을 밝힘) - 경장의 복주서
⑨ 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
⑩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MAṬ)
⑪ 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
⑫ 자따까 복주서(JAṬ)
IV. 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 숨은 뜻을 설명함) - 논장의 복주서
⑬ 담마상가니 복주서(DhsAṬ)
⑭ 위방가 복주서(VbhAṬ)
⑮ 빤짜빠까라나 복주서(Pañcapakaraṇa-mūlaṭīkā) - 나머지 5론의 복주서
V. ⑯ 넷띠빠까라나 주석서(Nettippakaraṇa-aṭṭhakathā)
⑰ 넷띠빠까라나 복주서(Nettippakaraṇa-ṭīkā)
⑱ 붓다왐사 복주서(Buddhavaṁsa-ṭīkā)
이렇게 하여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 문헌들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전해온다.
⑶『이띠웃따까 주석서』
여기서 보듯이『이띠웃따까 주석서』는『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 -dīpanī)에 포함되어『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여섯 개 경들의 주석서와 함께 전해온다. 역자는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정리한 개인적인 자료를 통해서 이『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읽고 검색과 인용을 하였다.『우다나 주석서』는 1995년에 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The Udāna Commentary’(Vol. I, II)로 영역이 되어 PTS에서 출간이 되었지만 이『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아직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지 않았다.
본서의 주해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석서의 설명은 가급적이면 모두『이띠웃따까 주석서』에서 인용하였다. 물론 기존의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4부 니까야의 주해를 그대로 가져온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해들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을 인용한 것이다.『이띠웃따까 주석서』를 참조해서 주해를 달면서 살펴보면 의외로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서와 담마빨라 스님의 주석서가 문장까지 같은 설명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문장 표현은 다르더라도 내용은 거의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특히『우다나 주석서』나『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설명이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복주서들,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와『맛지마 니까야 복주서』(MAṬ)와『상윳따 니까야 복주서』(SAṬ)와 문장까지 같은 부분이 적지 않았으며 12세기에 사리뿟따 스님이 지은『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AAṬ)와도 같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역자도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과 복주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동일인으로 보는 의견에 동의한다.
⑷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자가 번역한『우다나』역자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담마빨라 스님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여러 명인가?
둘째, 담마빨라 스님과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빨라 스님은 같은 분인가 다른 분인가?
셋째, 담마빨라 스님은 어느 때 사람인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이며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더 많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섯 가지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우다나』역자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히뉘버 교수는『우다나 주석서』(UdA.94)에 나타나는 “kathāvatthu- pakaraṇassa ṭīkāyaṁ gahetabbo(까타왓투 논서의 복주서에서 취해야 한다).”를 예로 들어서, “이처럼 [『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와 아비담마의 복주서인『리낫타완나나』가 상호 참조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명의 담마빨라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의 통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역자는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교수나 피어리스(A. Pieris)나 대림 스님이나 특히 히뉘버 교수의 이 의견에 동의하며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림 스님의 제언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① 먼저 아비담마 칠론의 아누띠까인『리낫타완나나』를 짓고 ② 다음에『쿳다까 니까야』의 시로 된 7개 경전들의 주석서인『빠라맛타디빠니』를 짓고 ③ 그다음에 Pm과『디가 니까야』와『맛지마 니까야』와『상윳따 니까야』의 복주서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림 스님의 언급처럼 Pm에『쿳다까 니까야』의『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를 참조하라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에 7개 주석서들이 Pm보다는 먼저 쓰여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⑸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담마빨라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A.D. 5세기)보다는 후대이고『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를 지은 사리뿟따 스님(A.D. 12세기)보다는 이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피어리스(Pieris)는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10세기가 아닌 6세기로 제안한다. 노만 교수는 두 분의 담마빨라 스님을 인정하지만 주석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를 A.D. 6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히뉘버 교수는 “아난다 스님은 그의 스승이라는 것이 확정적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히뉘버 교수는 Porāṇagaṇthipada – Dhammasirigaṇṭhipada – Ānanda – Vajirabuddhi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이 와지라붓디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은 동시대 사람이고 남인도 출신이라고 결론짓고 이 연표에 나타나는 스님들은 A.D. 450년부터 A.D. 600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담마빨라 스님은 A.D.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이라고 제시한다.
이처럼『청정도론』등의 13개의 주석서들을 지은 붓다고사 스님과 아비담마 칠론에 대한『물라띠까』(근본복주서)를 지은 아난다 스님과『빠라맛타만주사』를 비롯한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활동한 A.D. 5~6세기는 상좌부 불교의 교학이 정리되고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전파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역자는『우다나』해제를 적으면서 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인 ‘A Study in Paramatthamañjūsā.’의 제1장 서문의 ‘Dhammapāla – the author of Pm’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우다나 주석서』와『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기술을 하였다. 그리고『우다나』해제에서 적은 것을 요약하여 여기에 실었다.
간추리면,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며, 6세기 후반부에 실존했던 분이고 남인도 출신이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였고, 북방의 다르마빨라(法護) 스님과는 동일인이 아니다.
7. 각 모음의 개관 및 관심을 끄는 경들
본서에 포함된 경들은 개개의 경들에 포함된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 네 개의 모음으로 나누어져서 전승되어 온다. 그러면 같은 모음에 포함된 경들은 어떤 원칙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순서로 정착이 되었을까? 주석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본서를 모은 쿳줏따라 청신녀가 이런 순서로 경들을 합송하여 전승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와 원칙이 있을 것이다. 역자는 본서「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에 대해서 개관해 보고 각 모음에서 역자의 관심을 끄는 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⑴「하나의 모음」(It1)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It1:1부터 1:13까지의 13개 경들이고 둘째는 1:14부터 1:21까지의 8개 경이며 셋째는 나머지, 즉 1:22부터 마지막인 1:27까지의 6개 경들이다.
첫 번째에서 언급한 It1:1부터 1:6까지의 6개 각각의 경의 주제는 1:8부터 1:13까지의 각각의 경의 주제와 같다. 특히 1:1부터 1:5까지의 5개 경의 게송과 이들 각각에 대응되는 1:9부터 1:13까지의 5개 경의 게송은 각각 같다. 두 번째에서 언급한 1:14부터 1:21까지의 8개 경은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4개의 쌍으로 된 경들이다. 세 번째에서 언급한 6개 경들은 서로 큰 연관성이 없는 경들을 뒤쪽에 배열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담겨있지만 이러한 품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은 비단「하나의 모음」뿐만 아니라 다른 모음들에서도 그러하다. 본서에서 품의 구분은 단순히 순서대로 10개씩을 잘라서 하나의 품을 만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여기「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에는 괴로움의 멸진에 관계된 경들이 두 번째 품에도 배열이 되고 특히「타락한 마음을 가진 자 경」(It1:20)과「깨끗한 마음 가진 자 경」(It1:21)은 서로 대조가 되지만 서로 다른 품에 속해 있다.
이렇게 볼 때 품은 오히려 단순히 순서대로 10개씩 잘라서 품을 만들었을 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본서 전체에 나타나는 10개의 품은 특별한 명칭이 없고 첫 번째 품, 두 번째 품, 세 번째 품으로 부르게 된 듯하다. 물론「하나의 모음」의 첫 번째 품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PTS본과 주석서에서는 이를 ‘보증 품(Pāṭibhoga-vagga)’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VRI본은 이것도 단순히 첫 번째 품으로 부르고 있다.
◎「하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하나의 모음」에는 모두 27개의 경들이 들어있다. ‘하나’라는 말이 드러내듯이 본 모음에 담긴 경들은 모두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명쾌하다. 이 27개의 경들은 모두 부처님의 간명한 가르침(desana) 혹은 명령(sāsana)을 담고 있지만 특히 본 모음에서 역자의 관심을 끄는 경들은 첫 번째 품인 보증 품에 들어있는「탐욕 경」(It1:1) 등 10개 경들 전체와 두 번째 품의 처음 3개의 경들을 포함한 13개 경들이다.
이 가운데「탐욕 경」(It1:1)부터「자만 경」(It1:6)까지의 6개 경은 다시「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부터「모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13)까지 같은 주제어로 연결되는데「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을 앞에 두었을 뿐이다. 즉 It1:1부터 It1:6까지의 주제어가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의 순서였는데 이것이 It1:8부터 It1:13까지에서는 자만-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의 순서로 바뀌었는데 이것은「자만을 철저하게 앎 경」(It1:8)이 이들 두 모둠 사이에 들어있는「일체를 철저하게 앎 경」(It1:7)과 같은 방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 경 다음에 배치하였을 것이다.
여기「하나의 모음」, 나아가서 본서 전체에서 백미는 본서 맨 처음의 여섯 개 경들(It1:1~1:6)에서 부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는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1:6)일 것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합송가와 주석가들은 본 품을 ‘보증 품’이라고 불렀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보증’은 pāṭibhoga를 옮긴 것이다.『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여기서 ‘빠띠보가(pāṭibhoga)’는 보증(paṭibhū)을 뜻한다. 채무자(dhāraṇaka)를 반연하여 채권자에게(dhanika), 채권자를 반연하여 채무자에게 담보가 되어(paṭinidhibhūta) 채권자에게 예속된 위탁물 등(haraṇādi)이라 불리는 재산(bhoga)이라고 해서 보증이라 한다.”(ItA.i.40)라고 설명한다.
본서『이띠웃따까』는 쿳줏따라가 모은 것인데 이것은 그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왕궁에서 외부로 나오기가 어려웠던 자신의 주인인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을 모은 것이다. 재가자요, 여자 신도요, 하녀요, 몸이 불편한 쿳줏따라에게는 스승께서 보증을 서주시고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 ‘보증(pāṭibhoga)’이라는 용어가 큰 감격(veda)과 큰 영감(paṭibhāna)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을 버린 자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자됨)를 보증하신 이 여섯 가지 가르침을 쿳줏따라는 본서의 맨 처음에 놓아서 전승하였으며 다시 이 여섯 가지 주제를 바로 다음의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로 강조하고 있다고 역자는 생각해 본다.
이처럼 여기 It1:1부터 It1:6까지의 6개 경들은 불환과를 보증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고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은 그 보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인 최상의 지혜로 앎 - 철저하게 앎 - 탐욕의 빛바램 - 제거(abhijāna - parijāna - virājaya - pajaha)를 강조하고 있다. 이 네 가지는 주석서 문헌들에서 세 가지 통달지(pariññā)로 설명이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일체를 철저하게 앎 경」(It1:7)의 해당 주해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부처님께서 행복과 깨달음의 보증인이 되어주시겠다는 이런 말씀을 담은 세존의 가르침 13개를 쿳줏따라는 여기『이띠웃따까』의 맨 처음의 여섯 개 경(It1:1~1:6)과 그다음의 일곱 개 경(It1:8~1:13)으로 담아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자(佛子, Buddha-putta, Buddha-dhītā)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이다. 우리 부처님의 아들딸들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했는데도 행복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부처님께서 보증을 서주셨으니 부처님께 빚을 받으러 가야 할까?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불교는 2600년 동안 전승되어 오면서 보증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셨던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모든 성자들이 보증인이 되어주셨고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님들까지 등장하셔서 연대보증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존자처럼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Ud2:10)라고 외치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부처님의 보증을 담은 1번 경부터 6번 경까지는
“탐욕으로 탐내는 중생들은
불행한 곳[惡處]으로 가나니
통찰력 가진 자들은 이러한 탐욕을
바른 구경의 지혜로 버리노라.
버리고 나서는 이 세상으로
결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느니라.”
라는 게송에서 탐욕 대신에 성냄, 어리석음, 분노, 모욕, 자만 등의 나머지 키워드를 넣으면 되는 형태로 게송이 되어 있다. 그리고「자만 경」(It1:6)을 제외한 처음의 다섯 개 게송들은「탐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9)부터「모욕을 철저하게 앎 경」(It1:13)까지의 다섯 개 경에서 같은 게송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문만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 무엇이 한 가지 법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이라는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대신에 “비구들이여, 탐욕을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지 못하고 [오염원을] 제거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탐욕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여기에 대해서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고 [오염원을] 제거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있다.”(It1:9)로 바뀌고 있다.
즉 불환과의 경지는 ① 최상의 지혜로 알고 ② 철저하게 알고 ③ 마음이 탐욕으로부터 빛바래고 ④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서 체득되는 것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주석서는 이 넷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상의 지혜로 알고(abhijānaṁ)’를 통해서는 안 것의 통달지[知遍知, ñātapariññā]를 말씀하셨다. 두 번째인 ‘철저하게 알고(parijānaṁ)’를 통해서는 조사의 통달지[審察遍知, tīraṇapariññā]를, 세 번째와 네 번째인 ‘탐욕의 빛바램(virājaya)’과 ‘제거함(pajaha)’을 통해서는 버림의 통달지[斷遍知, pahānapariññā]를 설하셨다. 이처럼 본경에서는 세 가지 통달지를 설하셨다. … 무엇이 안 것의 통달지인가? 오온에 대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이다. 무엇이 조사의 통달지인가? 이렇게 안 뒤에 오온에 대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병이라는 등의 42가지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버림의 통달지인가? 이렇게 조사한 뒤에 으뜸가는 도(agga-magga)에 의해서 욕탐(chanda-rāga)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SA.i.44~45, cf. ItA.i.53)
본서의 주석서인『이띠웃따까 주석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한다.
“[『청정도론』제18장] 견해의 청정[見淸淨]과 [제19장]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渡疑淸淨]이 ① 안 것의 통달지(ñāta-pariññā)이다.
[제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道非道知見淸淨]과 [제21장]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行道知見淸淨], 즉 [제20장과 제21장의] 깔라빠에 대한 명상의 [지혜]로부터 시작해서 수순하는 [지혜]로 종결되는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가 ② 조사의 통달지(tīraṇa-pariññā)이다.
[제22장] 성스러운 도(ariyamagga)에 의해서 버리는 것이 ③ 버림의 통달지(pahāna-pariññā)이다. 그러므로 일체를 철저하게 안다는 것은 이들 세 가지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본경에서 철저하게 아는 것은] 탐욕의 빛바램에 의한 버림들(virāgappahānā), 즉 [③ 버림의 통달지를] 배제하여 각각 취한 것이기 때문에 ① 안 것의 통달지와 ② 조사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아는 것(parijānanā)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와 같이 [① 안 것의 통달지와 ② 조사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aparijānaṁ)’라고 말씀하신 것이다.”(ItA.i.53)
그러므로 이 세 가지 통달지는 위빳사나 수행을 칠청정 가운데 다섯 가지 청정으로 설명하며, 이것은『청정도론』에서 설명하는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인『청정도론』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로 정리가 된다.
역자가 역자 서문을 적으면서 왜 갑자기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교학적 이해를 가져와서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비록 본서의 맨 처음인「하나의 모음」의 13개 경들에서 간단한 문장에서 키워드만 바꾸어 나가고 그리고 쉬운 반복 구문으로 게송을 만드는 식으로 누구라도 따라 부르고 따라 외울 수 있도록 본서의 맨 앞부분에 배치를 하였지만 이러한 간단한 산문과 게송이 실제로는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이처럼 섬세하고 지극히 높은 위빳사나 수행은 본서의 맨 처음인「하나의 모음」의 13개 경들(It1:1~13)의 게송으로 본서의 맨 앞부분에 배치를 하였다. 이런 배려로 본서와 본서의 게송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1~6번 경에서 부처님은 보증을 하셨고 그 보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7~13번 경에서 ‘최상의 지혜로 앎(abhijāna)’과 ‘철저하게 앎(parijāna)’과 ‘탐욕의 빛바램(virājaya)’과 ‘제거함(pajaha)’의 네 가지를 말씀하셨으며 주석가들은 이것을 세 가지 통달지로 정리한다. 그리고 본경의 주석서는 이것을『청정도론』의 위빳사나 수행의 핵심인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에 배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이 가운데 도의 경지인 버림의 통달지는 본경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친절함까지 베푼다. 이처럼 쿳줏따라는 부처님 말씀을 보증과 실참수행으로 멋지게 정리하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왜 그녀가 재가자들 가운데 그것도 예류자인 유학이면서도 무애해체지를 가졌다고 부처님께서 인정하셨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⑵「둘의 모음」(It2)
「둘의 모음」에는 22개의 경들이 첫 번째 품과 두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두 개의 품에 담겨서 전승되어 온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때 그 두 가지는 서로 대비되는 것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긴 것과 짧은 것, 선처와 악처, 있음과 없음 등이다. 여기「둘의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도 서로 대비되는 것을 담은 경들이 많다.
「둘의 모음」에서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드러내고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경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의 경 안에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자는 본 모음에 포함된 22개의 경들을 ① 두 개의 경으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와 ② 한 개의 경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와 ③ 그 외 두 가지를 나열하고 설명하는 경우로 나누어보았다.
① 두 개의 경으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 - 6개 경
「괴롭게 머묾 경」(It2:1)과「행복하게 머묾 경」(It2:2)은 각각 악처에 태어나는 두 가지 경우와 선처에 태어나는 두 가지 경우를 들고 있다.「후회 경」(It2:3)과「후회 않음 경」(It2:4)은 각각 후회를 가져오는 두 가지와 후회를 가져오지 않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계행 경」1(It2:5)과「계행 경」2(It2:6)는 각각 지옥에 떨어지는 두 가지와 천상에 태어나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이처럼 본 모음의 처음 6개 경들은 세 쌍이 되어 서로 대비되는 두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② 한 개의 경 안에서 서로 대비되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 - 9개 경
「근면함 경」(It2:7)은 한 경 안에 근면하지 않은 경우와 근면한 경우를 대비시켜 결과를 설명한다.「계략을 부리지 않음 경」1/2(It2:8~9)는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A를 위함이 아니라 B를 위함이라는 형식으로 설명을 한다.「명지 경」(It2:13)은 무명이 선구자가 되는 것과 명지가 선구자가 되는 것을 대비시켜 설명한다.「통찰지를 버림 경」(It2:14)은 통찰지를 버린 중생은 악처에 나고 버리지 않은 중생은 선처에 나는 것을 대비시켜 강조한다.
마찬가지로「태어나지 않음 경」(It2:16)은 태어남과 태어나지 않음을 대비시키고「열반의 요소 경」(It2:17)은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을 대비시키고「나쁜 견해 경」(It2:22)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잘못 이해함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청정범행을 닦는 서원을 가진 척하는 것과 근거 없이 청정범행을 닦지 않는다고 비방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악처와 지옥에 떨어진다고 강조하는「악처에 떨어지는 자 경」(It2:21)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③ 그 외 두 가지를 나열하고 설명하는 경들 - 7개 경
먼저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설명하는 다음 세 개의 경을 들고 싶다.「홀로 앉음 경」(It2:18)은 홀로 앉음을 즐기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으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강조하고,「공부지음의 이익 경」(It2:19)은 공부지어서 통찰지, 해탈, 마음챙김을 통달하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하며,「깨어있음 경」(It2:20)은 깨어있어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과 환희와 삼매와 통찰지를 갖추면 아라한이나 불환자가 된다고 강조한다.
그 외에도「기쁨 경」(It2:10)은 절박함과 절박함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노력은 행복과 기쁨을 가져온다고 설하고,「일으킨 생각 경」(It2:11)은 여래의 [중생의] 안은함에 대한 생각과 한거에 대한 생각을,「설법 경」(It2:12)은 여래의 두 가지 설법으로 사악한 법을 여실히 봄과 염오․이욕․해탈을 설한다.「밝은 법 경」(It2:15)은 양심과 수치심이 세상을 보호한다고 강조한다.
◎「둘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①「설법 경」(It2:12)
「둘의 모음」에서는 특히「설법 경」(It2:12)을 주목하고 싶다.「설법 경」(It2:12)에서 세존께서는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보라.’는 이것이 첫 번째 설법이다.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본 뒤 염오하라, 탐욕을 빛바래게 하라[離慾], 해탈하라.’는 이것이 두 번째 설법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는 방편에 따라 이러한 두 가지 설법이 있다.”라고 강조하신다.
본서「둘의 모음」에서 백미는 아무래도 본경이라고 해야 한다. 초기불전 500군데 이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가르침의 핵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졸저『초기불교 이해』등에서 역자는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깨달음과 열반을 실현하는 단계를 해체해서 보기 - 무상․고․무아 - 염오 - 이욕 - 해탈 - 구경해탈지의 여섯 단계로 정리하여 강조하였다. 여기서는 이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염오 - 이욕 - 해탈을 강조하고 있다.
②「열반의 요소 경」(It2:17)
다음으로는「열반의 요소 경」(It2:17)을 들고 싶다.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미「대념처경」등 수행을 강조하는 초기불전에서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D22 §1 등)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궁극적 행복이 바로 열반의 실현(nibbānassa sacchikiriya)이다. 이러한 열반에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의 두 가지가 있다. 본경은 이것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경에서 유여열반의 요소[有餘涅槃界]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러나 그의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머물러 있어서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만나서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경험한다. 비구들이여, 그의 갈망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 이를 일러 유여열반의 요소라 한다.” (It2:17 §2)
그리고 무여열반의 요소[無餘涅槃界]는 이렇게 설명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라한이어서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바로 여기서 즐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껴진 것들도 바로 여기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여열반의 요소라 한다.”(It2:17 §3)
불교의 궁극적 행복인 열반은 출세간이며, 형성된 것들[有爲, saṅkhatā]을 완전히 벗어난 형성되지 않은 것이고[無爲, asaṅkhata], 고요함(santi)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고유성질(sabhāva)을 가졌다. 그러나 구분하는 방편에 따라 유여열반의 요소와 무여열반의 요소의 두 가지이다. 고요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하나이지만 우빠디(upādi)가 남아 있느냐 없느냐 하는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 중심이 되는 용어는 upādi인데 이것은 upa(위로)+ā(이쪽으로)+√dā(to give)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거머쥐고 있음, 남아 있음을 뜻하며 오온이나 오취온을 말한다.(ItA.i.165, Pm.568) 자세한 것은 이 경 §1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요소[界, dhātu]라는 용어를 써서 열반을 표현하는 것은 열반도 구경법(paramattha)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서는 일체법(一切法, sabba-dhammā, sabbe dhammā, 諸法, 구경법)을 [81가지] 유위법과 [한 가지] 무위법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일체법의 법(dhamma)은 √dhṛ(to hold)에서 파생된 용어이며 이 dhātu(계, 요소)도 같은 어근에서 생긴 용어이다. 자세한 것은『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 §37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일체법[諸法]은 18계(요소)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상좌부에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의 <도표 7.4>에서 보듯이 열반도 법의 요소[法界]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본경에서처럼 무위법인 열반도 요소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⑶「셋의 모음」(It3)
「셋의 모음」은 본서의 모음들 가운데 가장 많은 50개 경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품에 열 개씩 모두 다섯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는 이 50개 경들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개관해 보았다.
① 용어를 정의하는 경들(It3:1~It3:18)
「셋의 모음」에 포함된 경들 가운데 거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경들은 특정 용어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셋의 모음」의「뿌리 경」(It3:1) 부터「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경」(It3:18) 까지의 17개 경들(「마라의 영역 경」(It3:10) 제외)은 이 17가지 주제들을 세 가지로 정의하는 경들이다. 먼저 이 17개 경의 주제들을 하나씩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뿌리 경」(It3:1) - 세 가지 해로움의 뿌리 ― 탐욕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성냄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어리석음이라는 해로움의 뿌리
「요소 경」(It3:2) 세 가지 요소[三界] ―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멸계(滅界)
「느낌 경」1/2(It3:3~4)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추구 경」1/2(It3:5~6) ― 감각적 쾌락의 추구, 존재의 추구, 청정범행의 추구
「번뇌 경」1/2(It3:7~8) ―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
「갈애 경」(It3:9) ―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
「공덕을 짓는 토대 경」(It3:11) ― 보시․지계․수행으로 이루어진 공덕을 짓는 토대
「눈 경」(It3:12) ― 육체적인 눈[肉眼], 신성한 눈[天眼], 통찰지의 눈[慧眼]
「기능 경」(It3:13) ― 구경의 지혜를 가지려는 기능[未知當知根], 구경의 지혜의 기능[已知根], 구경의 지혜를 구족한 자의 기능[具知根]
「시간 경」(It3:14) ― 과거의 시간, 미래의 시간, 현재의 시간
「나쁜 행위[惡行] 경」(It3:15)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
「좋은 행위[善行] 경」(It3:16)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
「깨끗함 경」(It3:17) ― 몸의 깨끗함, 말의 깨끗함, 마음의 깨끗함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경」(It3:18)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성자에게 어울리는 행위
그리고「벗어남 경」(It3:23)은 세 가지 벗어남의 요소를 설명한다. 여기에다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을 멸시받지 않음과 관련된 생각과 이득과 존경과 명성과 관련된 생각과 남들에 대한 동정심과 관련된 생각으로 구분하는「생각 경」(It3:31)과, 갈망․성냄․어리석음의 불로 나누는「불 경」(It3:44)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세 가지 감각적 쾌락의 일어남을 설명하는「감각적 쾌락의 일어남 경」(It3:46)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보시 경」(It3:49)은 각각 두 가지로 구성된 보시, 함께 나눔, 호의의 세 가지를 설명한다. 그래서「셋의 모음」에 넣었다.「넷의 모음」의 바라문과 법으로 이루어진「제사 경」(It4:1)은 여기에다 두 가지 제사를 넣어서 네 가지가 된다.
이런 것은 재가자들에게 불교식 사유를 하는 토대가 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셋의 모음」에 있는 이들 19개 경들은 불교식 사유를 하는 기본 토대를 제공한다 할 수 있겠다.
「갈망 경」1(It3:19)을 비롯한 나머지 반 정도의 경들은 대부분이 설명 형태의 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을 다시 대략 네 가지로 나누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② 주제나 정형구를 먼저 말씀하시고 이것을 설명하시는 경들
「아들 경」(It3:26)은 세상에는 더 뛰어나게 태어난 [아들]과 비슷하게 태어난 [아들]과 못하게 태어난 [아들]의 세 가지 아들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고 이 셋을 하나씩 설명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비 없는 구름 경」(It3:26)도 먼저 비 없는 구름과 같은 [사람], 국지적으로 내리는 비와 [같은 사람], 모든 곳에 내리는 비와 [같은 사람]을 나열하고 이 셋을 설명하고 있다.
「요소에 따라 함께 모임 경」(It3:29)은 “중생들은 요소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로 시작하는 정형구를 과거․미래․현재에 적용시키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면의 때 경」(It3:39)은 세 가지 내면의 때, 내면의 적, 내면의 원수, 내면의 살인자, 내면의 반대자가 있다고 한 뒤 이를 설명한다.「으뜸가는 청정한 믿음 경」(It3:41)은 세 가지 으뜸가는 청정한 믿음이 있다고 한 뒤 이를 설명한다.「좋은 계행 경」(It3:48)은 세 가지를 담은 정형구를 먼저 말씀하시고 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가 된다.「삼명 경」(It3:50)은 나는 법에 의해서 삼명을 갖춘 바라문을 선언한다고 말씀하시고 숙명통․천안통․짧은 누진통의 정형구로 삼명을 설명하신다.
③ 서로 상반되는 형태로 설하신 경들
「갈망 경」1(It3:19) 등은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 성냄을 버리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면” 이를 일러 ‘마라에게 묶였다.’ 등으로 말한다고 하시고, 반대로 “갈망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면” 이를 일러 ‘마라에게 묶이지 않았다.’라고 한다고 이런 식으로 서로 상반되는 형태로 설한 경들이 많다.「갈망 경」2(It3:20)도 위와 같지만 보기가 다르다.
「망가짐 경」(It3:30)은 한 개의 경 안에 유학을 망가지게 하는 법 세 가지와 망가지지 않게 하는 법 세 가지를 드러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어둠을 만듦 경」(It3:38)은 세 가지 해로운 생각은 어둠을 만들고 세 가지 유익한 생각은 어둡지 않음을 만든다고 하고 있으며,「가사 끄트머리 경」(It3:43)도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내용을 유념해야 한다.
「그릇된 견해 경」(It3:21)과「바른 견해 경」(It3:22)의 두 경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못된 짓을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고 반대로 좋은 일을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서로 상반되는 가르침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④ 점진적인 형태로 설명하는 경들
예를 들면,「더 고요함 경」(It3:24)은 더 고요함을 정의하는 경이 아니고 “비구들이여, 물질들보다 비물질들이 더 고요하고 비물질들보다 소멸이 더 고요하다.”(§1)라고 설명을 하는 경이다.「부서지기 마련임 경」(It3:28)도 “이 몸은 부서지기 마련이고, 알음알이는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고, 모든 재생의 근거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1)라고 같은 형태로 전개된다.
그 외「존경 경」(It3:32) 등은 A․B․A&B의 형식으로 세 가지를 열거하고 설명한다. 즉 존경에 압도됨, 존경받지 못함에 압도됨, 존경과 존경받지 못함 둘 다에 압도됨이다.
◎「셋의 모음」에서 관심을 끄는 경들
먼저「가사 끄트머리 경」(It3:43)을 들고 싶다. 이 경은 불자들이 그 내용을 유념해야 한다. 비구가 나의 가사 끄트머리를 잡고 바로 뒤에 바싹 붙어 오더라도 탐욕과 악의와 마음챙김을 놓아버리는 등으로 수행을 게을리한다면 그는 나로부터 멀리에 있고 나도 그로부터 멀리에 있다. 그 비구는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보지 않으면 나를 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반대로 바른 경우를 말씀하시는 이 경은 불자들이 유념해야 한다.
「다섯 가지 전조 경」(It3:34)도 주목할 만하다. 신들이 5가지 전조를 가지면 천상세계에서 떨어지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고 여래의 법과 율을 만나고 거기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선처로 가는 것 등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다.「많은 사람의 이익 경」(It3:35)은 여래와 아라한과 유학의 태어남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됨을 강조하신다.
본서에는 수행에 관한 경들도 있다. 예를 들면「부정함의 관찰 경」(It3: 36)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은 몸의 부정함을 관찰함,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을 관찰함의 셋을 들고 있다.
⑷「넷의 모음」(It4)
「넷의 모음」에는 13개의 경들이 품의 구분이 없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경들에 포함된 주제가 네 가지라는 점 외에 이 경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몇 개의 경을 살펴보는 것으로「넷의 모음」을 개관해 보고자 한다.
「번뇌의 멸진 경」(It4:3)은 사성제를 알고 보는 자의 번뇌가 멸진한다고 설하고 있으며「사문․바라문 경」(It4:4)에서는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문․바라문은 사문․바라문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반대로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문․바라문은 사문․바라문으로 인정된다고 설하시어 사성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
한편「계의 구족 경」(It4:5)에는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다섯 가지가 나타나지만「넷의 모음」에 들어있다. 주석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걷고 있음 경」(It4:11)은「넷의 모음」에 들어있는 수행과 관계된 경이라 할 수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나 악의에 대한 생각이나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바르지 못한 사유가 행․주․좌․와의 네 가지 자세[威儀] 가운데서 일어났을 때 이를 버리고 제거하게 되면 그를 일러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한다고 강조하시며 이렇게 정진할 것을 독려하신다.
「계를 잘 지킴 경」(It4:12)은 행․주․좌․와의 자세에서 계를 잘 지키는 정형구를 통해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정진․마음챙김․경안․삼매에 든다면 그를 일러 한결같이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한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마지막으로「세상 경」(It4:13)은 여래를 네 가지로 정의하며 본서를 마무리한다.
쿳줏따라 청신녀는 이처럼 본서를 부처님의 여섯 가지 보증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It1:1~6) 성자가 된다는 이러한 최고의 보증을 서주신 여래를 정의하고 여래의 덕을 흠모하면서(It4:13)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으로 편찬하였다. 이를 통해 쿳줏따라의 관심과 신심과 고결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겠다.
⑸ 삼장에 나타나는 본서의 경들과 동일한 경들
<도표3:『이띠웃따까』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
본서에는 쿳줏따라 청신녀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112개의 경들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들은 아난다 존자가 들어서 전승한 4부 니까야를 비롯한 빠알리 삼장과 같은 내용을 담은 경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본서의 112개 경들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대략 33개의 경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특히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과 일치하며『청정도론』에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13개 정도의 경들은 게송까지 포함하여 삼장의 다른 경들과 완전히 일치하고 나머지는 게송을 제외한 산문 부분만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해서는〈도표3:『이띠웃따까』의 경들과 같은 경들의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8. 맺는말 -『이띠웃따까』의 특징
이상으로 역자는 본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미진하지만『이띠웃따까』해제를 적어보았다. 이제 이들을 정리하여 본서가 가지는 특징을 나열하면서 맺는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⑴ 재가 여신도가 들어서 모은 부처님 말씀이다
역자는 이것을 본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으로 여긴다. 경장은 모두 일차합송에서 마하깟사빠 존자가 질문을 하고 아난다 존자가 읊어서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본서는 아니다. 본서는 쿳줏따라라는 재가자, 그것도 하녀, 몸까지 구부정한 여인이 듣고 외워서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주면서 함께 합송하여 사부대중에게 퍼져나갔고 그래서 일차합송에서 아난다 존자의 제안으로 정전(正典)으로 채택된 것이다.(ItA.i.29)
⑵「하나의 모음」(It1)부터「넷의 모음」(It4)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은 각 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주제의 개수에 따라「하나의 모음」부터「넷의 모음」까지로 나누어서 편성되었다.「하나의 모음」에는 27개의 경들이,「둘의 모음」에는 22개의 경들이,「셋의 모음」에는 50개의 경들이,「넷의 모음」에는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⑶ 산문과 게송으로 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부처님이 읊으신 게송들을 담고 있고 이 게송들이 각 경의 중심이 된다. 본서에는 한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9개, 두 개의 게송을 가진 경 45개, 세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3개, 네 개의 게송을 가진 경 7개, 다섯 개의 게송을 가진 경 2개, 일곱 개의 게송을 가진 경 5개, 아홉 개의 게송을 가진 경 한 개가 포함되어 본서에는 모두 270개의 게송이 실려 있다.
⑷ 모든 경들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① iti - vutta 구문으로 시작하고 ② etaṁ - avoca로 산문이 종결되고 ③ iti - vuccati 구문으로 게송이 도입되고 ④ 게송을 드러내고 ⑤ iti - vutta 구문으로 마무리되는 다섯 가지 원칙이 정확히 적용된다. 이와 같이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재가자들이 개인적으로나 함께 독송하기에 좋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의 명칭도 itivuttaka이며 이것은 구분교(九分敎)에도 포함되어 여섯 번째인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로 정리되었다.
⑸ iti me su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으로 되어 있다
본서의 112개 경에는 산문으로 된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evaṁ me sutaṁ(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난다 존자가 직접 들어서 송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쿳줏따라가 채택한 방법은 iti me sutaṁ(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이다. 물론 여기서 me(저)는 당연히 쿳줏따라 청신녀이다. 이 구문은 본서에 들어있는 112개 경들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① vuttañhetaṁ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ṁ에도 들어있고 모든 경들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②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라는 문장에도 들어있다.
⑹ 경들을 설하신 기원(nidāna)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경장의 경들은 그 경의 가르침을 설하신 장소와 시간과 청법자 등이 언급되지만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에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명백하였기 때문이다.(ItA.i.32) 이 112개의 경들은 부처님께서 꼬삼비 한 곳에서 설하신 것이며 사마와띠 왕비의 간청으로 쿳줏따라가 이 경들을 꼬삼비에서 듣고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전해준 것이다.(ItA.i. 29 이하) 대부분 꼬삼비의 고시따 원림(Ghositārāma)에서 설하셨을 것이다.
⑺ 33개 정도의 경은 삼장의 다른 경들과 일치한다
본서의 112개 경들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대략 33개의 경들이 빠알리 삼장 가운데 특히 4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과 일치하며『청정도론』에 인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13개 정도의 경들은 게송까지 포함하여 삼장의 다른 경들과 완전히 일치한다.
⑻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은 나타나지 않는다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의 주제는 하나인 것부터 네 개인 것까지만 나타나고 그것도 간단하고 명료한 가르침만 전승이 되어오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에 관계된 가르침, 즉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 등을 주제로 한 경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비구들이여, 탐욕이라는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It1:1 §1)와 “사악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본 뒤 염오하라, 탐욕을 빛바래게 하라[離慾], 해탈하라.”(It2:12 §1)와 같은 간단명료한 부처님의 메시지와 명령(sāsana)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⑼ 궁극적 행복에 관한 경들이 주류를 이룬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북방불교에서는 이고득락(離苦得樂)으로 정리하고 있다.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 행복을 말씀하셨다.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은 주로 재가자들에게 말씀하셨고 깨달음의 체득과 열반의 실현이라는 궁극적 행복은 주로 출가자들에게 설하셨다. 재가자인 쿳줏따라가 들어서 전승한 본서에 포함된 112개의 경들은 금생의 행복이나 내생의 행복보다는 궁극적 행복에 관한 경들이 대부분이고 쿳줏따라로부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은 예류과와 일래과와 불환과를 얻었다.
⑽ 이 시대의 재가 불자들에게 수준 높은 삶의 지표가 된다
재가불자인 쿳줏따라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서 전해준 본서에 담긴 112개의 경들은 인간 평등, 성평등, 생명체 평등에다 출재가 평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민주주의 시대와 과학과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자들, 특히 수준 높은 재가 불자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600년 전에 굽정이 청신녀가 전해준 부처님 말씀은 불교의 본질을 꿰뚫는 참으로 수준 높고 격조 높은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⑾ 추모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역자는 쿳줏따라 청신녀가 자기가 모시던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이 참화로 먼저 간 것을 기리며 추모의 마음으로『이띠웃따까』에 담긴 112개의 경들을 모았고, 그래서 경의 처음 여섯 가지는 부처님의 보증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여래의 덕을 흠모하는「세상 경」(It4:13)으로 마무리하였다고 받아들인다. 사마와띠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의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우다나』의「우데나 경」(Ud7:10)으로 전해오는데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 가운데는 예류자가 있고 일래자가 있고 불환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 청신녀들은 모두 결실이 없이 죽은 것은 아니다.”(Ud7:10 §2)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이유로 쿳줏따라는 부처님께서 불환자를 보증하시는 경 여섯 개(It1:1~6)와 그 보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인 최상의 지혜로 앎 - 철저하게 앎 - 탐욕의 빛바램 - 제거(abhijāna - parijāna - virājaya - pajaha)를 강조하고 있는 It1:7부터 It1:13까지의 7개 경들을 책의 모두(冒頭)에 담았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불자(佛子)는 부처님의 아들딸들(Buddha-puttā ca Buddha-dhītāro ca)이다. 우리 부처님의 아들딸들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깨달은 성자가 된다고 부처님께서 본서의 여러 경들에서 보증을 서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의 보증인은 2,600년 동안 전승되어 오면서 더욱 늘어났다. 이 세상에 존재하셨던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모든 성자들이 보증인이 되어주셨고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님들까지 등장하셔서 연대보증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존자처럼 “아, 행복하다! 아, 행복하다!”(Ud2:10)라고 외치고 다녀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본서는 사마와띠와 500명의 시녀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궁극적 행복(parama-sukha)의 실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본서를 읽는 분들이 모두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고 궁극적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시기를 기원하며 역자 서문을 접는다.
이 세상에 부처님의 정법이 오래오래 머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