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가타 1권 목차>
| 해제 | 페이지 |
|---|
I. 들어가는 말
| 25 |
Ⅱ.『테라가타』란 무엇인가
| 28 |
Ⅲ.『테라가타』의 구성
| 58 |
Ⅳ.『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
| 70 |
V.『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
| 85 |
VI.『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
| 93 |
Ⅶ.『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에 대한 고찰
|
|
| 『테라가타 주석서』를 중심으로 | 101 |
ⅦI.『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 116 |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
| 125 |
| X. 장로들이『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 142 |
XI. 맺는말
| 187 |
| 기원을 밝히는 게송 | 191 |
하나의 모음(Thag1:1~1:120)
첫 번째 품(Thag1:1~1:10)
| 경이름 | 목차 |
|---|
1. 수부띠 장로
| (Th1:1)
| 197 |
2. 마하꼿티따 장로
| (Th1:2)
| 206 |
3. 깡카레와따 장로
| (Th1:3)
| 211 |
4. 뿐나 장로
| (Th1:4) | 215 |
5. 답바 장로
| (Th1:5) | 220 |
6. 시따와니야 장로
| (Th1:6) | 226 |
7. 발리야(발리까) 장로
| (Th1:7) | 231 |
| 8. 위라 장로 | (Th1:8) | 235 |
9. 삘린다왓차 장로
| (Th1:9) | 236 |
10. 뿐나마사 장로
| (Th1:10) | 240 |
두 번째 품(Thag1:11~1:20)
| 경이름 | 목차 |
|---|
1. 쭐라가왓차 장로
| (Th1:11) | 243 |
2. 마하가왓차 장로
| (Th1:12)
| 245 |
3. 와나왓차 장로
| (Th1:13)
| 249 |
4. 시와까 사미
| (Th1:14)
| 250 |
5. 꾼다다나 장로
| (Th1:15)
| 252 |
6. 벨랏타시사 장로
| (Th1:16)
| 255 |
7. 다사까 장로
| (Th1:17)
| 257 |
8. 싱갈라삐따 장로
| (Th1:18)
| 259 |
9. 꿀라 장로
| (Th1:19)
| 261 |
10. 아지따 장로
| (Th1:20)
| 263 |
세 번째 품(Thag1:21~1:30)
| 경이름 | 목차 |
|---|
1. 니그로다 장로(Th1:21)
| (Th1:21)
| 265 |
2. 찌따까 장로
| (Th1:22)
| 267 |
3. 고살라 장로
| (Th1:23)
| 268 |
4. 수간다 장로
| (Th1:24)
| 271 |
5. 난디야 장로
| (Th1:25)
| 273 |
6. 아바야 장로
| (Th1:26)
| 276 |
7. 로마사깡기야 장로
| (Th1:27)
| 278 |
8. 잠부가미까뿟따 장로
| (Th1:28)
| 281 |
9. 하리따 장로
| (Th1:29)
| 283 |
10. 웃띠야 장로
| (Th1:30)
| 286 |
네 번째 품(Thag1:31~1:40)
| 경이름 | 목차 |
|---|
1. 가흐와라띠리야 장로
| (Th1:31) | 288 |
2. 숩삐야 장로
| (Th1:32)
| 290 |
3. 소빠까 장로
| (Th1:33)
| 292 |
4. 뽀시야 장로
| (Th1:34)
| 294 |
5. 사만냐까니 장로
| (Th1:35)
| 296 |
6. 꾸마뿟따 장로
| (Th1:36)
| 298 |
7. 꾸마뿟따 장로의 도반인 [수닷따] 장로
| (Th1:37)
| 301 |
8. 가왐빠띠 장로
| (Th1:38)
| 303 |
9. 떳사 장로
| (Th1:39)
| 307 |
10. 왓다마나 장로
| (Th1:40)
| 309 |
다섯 번째 품(Thag1:41~1:50)
| 경이름 | 목차 |
|---|
1. 시리왓다 장로
| (Th1:41)
| 313 |
2. 카디라와니야 장로
| (Th1:42)
| 315 |
3. 수망갈라 장로
| (Th1:43)
| 319 |
4. 사누 장로
| (Th1:44)
| 321 |
5. 라마니야위하리 장로
| (Th1:45)
| 324 |
6. 사밋디 장로
| (Th1:46)
| 325 |
7. 웃자야 장로
| (Th1:47)
| 328 |
8. 산자야 장로
| (Th1:48)
| 331 |
9. 라마네야까 장로
| (Th1:49)
| 332 |
10. 위말라 장로
| (Th1:50)
| 334 |
여섯 번째 품(Thag1:51~1:60)
| 경이름 | 목차 |
|---|
1. 고디까 장로
| (Th1:51)
| 337 |
2. 수바후 장로
| (Th1:52)
| 339 |
3. 왈리야 장로
| (Th1:53)
| 340 |
4. 웃띠야 장로
| (Th1:54)
| 341 |
5. 안자나와니야 장로
| (Th1:55)
| 342 |
6. 꾸띠위하리 장로
| (Th1:56)
| 344 |
7. 두 번째 꾸띠위하리 장로
| (Th1:57)
| 346 |
8. 라마니야꾸띠까 장로
| (Th1:58)
| 347 |
9. 꼬살라위하리 장로
| (Th1:59)
| 348 |
10. 시왈리 장로
| (Th1:60)
| 349 |
일곱 번째 품(Thag1:61~1:70)
| 경이름 | 목차 |
|---|
1. 왑빠 장로
| (Th1:61)
| 353 |
2. 왓지뿟따 장로
| (Th1:62)
| 356 |
3. 빡카 장로
| (Th1:63)
| 358 |
4. 위말라꼰단냐 장로
| (Th1:64)
| 360 |
5. 욱케빠까따왓차 장로
| (Th1:65)
| 363 |
6. 메기야 장로
| (Th1:66)
| 365 |
7. 에까담마사와니야 장로
| (Th1:67)
| 368 |
8. 에꿋다니야 장로
| (Th1:68)
| 371 |
9. 찬나 장로
| (Th1:69)
| 373 |
10. 뿐나 장로
| (Th1:70)
| 375 |
여덟 번째 품(Thag1:71~1:80)
| 경이름 | 목차 |
|---|
1. 왓차빨라 장로
| (Th1:71)
| 379 |
2. 아뚜마 장로
| (Th1:72)
| 380 |
3. 마나와 장로
| (Th1:73)
| 382 |
4. 수야마나 장로
| (Th1:74)
| 383 |
5. 수사라다 장로
| (Th1:75)
| 386 |
6. 삐얀자하 장로
| (Th1:76)
| 388 |
7. 핫타로하뿟따 장로
| (Th1:77)
| 390 |
8. 멘다시라 장로
| (Th1:78)
| 391 |
9. 락키따 장로
| (Th1:79)
| 393 |
10. 욱가 장로
| (Th1:80)
| 395 |
아홉 번째 품(Thag1:81~1:90)
| 경이름 | 목차 |
|---|
1. 사미띠굿따 장로
| (Th1:81)
| 397 |
2. 깟사빠 장로
| (Th1:82)
| 398 |
3. 시하 장로
| (Th1:83)
| 400 |
4. 니따 장로
| (Th1:84)
| 402 |
5. 수나가 장로
| (Th1:85)
| 403 |
6. 나기따 장로
| (Th1:86)
| 405 |
7. 빠윗타 장로
| (Th1:87)
| 407 |
8. 앗주나 장로
| (Th1:88)
| 409 |
9. [첫 번째] 데와사바 장로
| (Th1:89)
| 410 |
10. 사미닷따 장로
| (Th1:90)
| 412 |
열 번째 품(Thag1:91~1:100)
| 경이름 | 목차 |
|---|
1. 빠리뿐나까 장로
| (Th1:91)
| 415 |
2. 위자야 장로
| (Th1:92)
| 417 |
3. 에라까 장로
| (Th1:93)
| 418 |
4. 멧따지 장로
| (Th1:94)
| 421 |
5. 짝쿠빨라 장로
| (Th1:95)
| 422 |
6. 칸다수마나 장로
| (Th1:96)
| 426 |
7. 떳사 장로
| (Th1:97)
| 428 |
8. 아바야 장로
| (Th1:98)
| 430 |
9. 웃띠야 장로
| (Th1:99)
| 432 |
10. [두 번째] 데와사바 장로
| (Th1:100)
| 434 |
열한 번째 품(Thag101:101~1:110)
| 경이름 | 목차 |
|---|
1. 벨랏타까니 장로
| (Th1:101)
| 436 |
2. 세뚜차 장로
| (Th1:102)
| 437 |
3. 반두라 장로
| (Th1:103)
| 439 |
4. 키따까 장
| (Th1:104)
| 441 |
5. 말리따왐바 장로
| (Th1:105)
| 444 |
6. 수헤만따 장로
| (Th1:106)
| 447 |
7. 담마사와 장로
| (Th1:107)
| 449 |
8. 담마사와삐뚜 장로
| (Th1:108)
| 450 |
9. 상가락키따 장로
| (Th1:109)
| 451 |
10. 우사바 장로
| (Th1:100)
| 453 |
열두 번째 품(Thag1:111~1:120)
| 경이름 | 목차 |
|---|
1. 젠따 장로
| (Th1:111)
| 456 |
2. 왓차곳따 장로
| (Th1:112)
| 458 |
3. 와나왓차 장로
| (Th1:113)
| 461 |
4. 아디뭇따 장로
| (Th1:114)
| 462 |
5. 마하나마 장로
| (Th1:115)
| 463 |
6. 빠라빠리야 장로
| (Th1:116)
| 466 |
7. 야사 장로
| (Th1:117)
| 469 |
8. 낌빌라 장로
| (Th1:118)
| 471 |
9. 왓지뿟따 장로
| (Th1:119)
| 473 |
10. 이시닷따 장로
| (Th1:120)
| 476 |
<테라가타 1권 해제>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웬만큼 큰 절에는 응진전(應眞殿)이나 나한전이 있다. 응진전에는 주로 십육나한을 모셨고 나한전에는 오백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이 있다. 영천군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나한상과 청도 운문사의 오백나한전이 유명하다. 여기서 나한은 아라한(阿羅漢, arahan)의 줄임말이고 응진(應眞)은 아라한의 번역어인 응공(應供)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한국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예불할 때 승보에 절을 하면서 ‘영산당시수불부촉(靈山當時受佛付囑) 십대제자 십육성(十大弟子 十六聖) 오백성 독수성내지(五百聖 獨修聖乃至)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 무량자비성중(無量慈悲聖衆)’이라 읊는다. 여기서 십육성(十六聖)은 바로 이 16나한 스님들을, 오백성(五百聖)은 바로 이 500나한 스님들을 뜻한다.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은 초기불전의 여러 곳과 『금강경』등의 대승불교 경전에도 적지 않게 나타나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 1,250분을 말한다. 이처럼 나한, 즉 아라한은 한국불교에서도 천 년 이상 오랜 세월을 민중들과 함께한 분들이다.
한국불교에는 이처럼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 알려져 있지만 상좌부 불교에는 특별히 16아라한이나 500아라한이란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대신에 『테라가타 주석서』에 [80명의] ‘대제자들(mahāsāvakā)’이라는 표현과 이들 80분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부처님과 함께 나타나는 1,250명의 비구들(aḍḍhatelasehi bhikkhusatehi)인 아라한들도 잘 알려져 있다.(D2 §1; S8:8 §1) 주석서에 의하면 이 1,250명의 비구들 가운데 범부나 예류자나 일래자나 불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모두 육신통을 구족한 아라한들이었다고 한다.(MA.iii.209) 그래서 이들을 ‘고귀한 비구 승가(mahanta bhikkhu- saṅgha)’라 부르고 있다.(D2 §1; S8:8 §1)
그리고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즉 여래십호(如來十號) 가운데 두 번째인 응공(應供)도 아라한(arahan)의 번역어이다. 그러면 아라한과 부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구분하면 부처님은 도를 설하신 분이시고 아라한은 그 도를 실천하여 번뇌가 다한 분이다. 그래서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정등각자 경」(S22:58 §5)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한 분이고 도를 아는 분이고 도를 발견한 분이고 도에 능숙한 분이다. 그리고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가면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아라한‧정등각자와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한 자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S22:58 §5)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뒤 오래지 않아 아난다 존자는「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5)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바라문이여, 그분 고따마 존자 아라한‧정등각자께서 구족하셨던 모든 법들을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게 구족한 비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키셨고, …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됩니다.””(M108 §5)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아라한들의 사유와 사상과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테라가타』이다. 그러므로 『테라가타』는 한국불교에서도 나한전이나 응진전 등으로 익숙한 나한들, 즉 아라한들의 진면목을 본격적으로 밝히고 있는 초기불전이다. 이처럼 『테라가타』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인 264분(중복해서 나타나는 장로들을 모으면 259분) 아라한 장로들의 1,279개 게송들을 담고 있다.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
⑴ ‘테라가타(theragāthā)’의 문자적인 의미
‘테라가타(theragāthā)’는 장로를 뜻하는 테라(thera)와 게송을 뜻하는 가타(gāthā)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長老偈(장로게)로 옮겼다. 의외로 빠알리 삼장 안에서 theragāthā라는 용어는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이 『테라가타』의 경의 제목과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한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를 제외한 주석서 문헌들에서도 ‘테라가타’라는 용어는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에 한 번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없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① 『테라가타 주석서』 서문의 게송에서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therehi bhāsitā gāthā”(ThagA.i.1), 즉 ‘장로들에 의해서(therehi) 읊어진(bhāsitā) 게송들(gāthā)’이라고 읊고 있다. 격한정복합어[依主釋, Tat- puruṣa] 가운데 3격(도구격) 격한정복합어(Tṛtīya-tatpuruṣa)로 분석한 이 ‘테레히 바시따 가타’가 ‘테라가타’(thera-gāthā)라는 합성어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라 여겨진다.
② 한편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깝빠 장로(Th10:5 {567})가 지역 왕이었을 때 그에게 게송 10개를 읊어주셨는데 그는 출가하여 삭발할 때 아라한됨을 얻어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설해주신 그 10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참으로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ten- eva tā theragāthā nāma jātā).’(ThagA.ii.243)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장로의 게송’으로 옮긴 용어도 theragāthā인데 이 합성어도 ‘장로에 의해서(therena) 읊어진(bhāsitā) 게송(gāthā)’으로 해석이 된다. 즉 깝빠 장로가 읊은 게송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게송들은 먼저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서 읊으신 것이고 그가 아라한이 되고 나서 이 게송을 따라 읊어서 자신의 게송으로 삼았기 때문에 ‘[깝빠] 장로의(therassa) 게송(gāthā)이 되었다(jātā).’로 이해하여 격한정복합어[依主釋, Tatpuruṣa] 가운데 6격(소유격) 격한정복합어(Ṣaṣthī-tatpuruṣa)로 해석할 수도 있다.
⑵ 삼장에서 『테라가타』의 위치
이제 이 『테라가타』가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는 어디에 속하는지를 살펴보자.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고(tathāgatassa bhātā cūḷapituputta, DA.i.4),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DA.ii.425; BvA.131), 출가하여 부처님의 후반부 25년을 부처님 가까이에서 직접 모셨고(Thag. {1041}~{1043} 참조), 다문제일(多聞第一, etadagga bahussutānaṁ)이라 불리며(A1:14:4-1), 일차합송에서 경장의 결집을 주도하였고(DA.i.14),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며(DhpA.99), 그래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도 무려 40년을 더 생존해 있었던 아난다 존자는 여기 『테라가타』안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 {1024})
즉 초기불전은 8만 4천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8만 2천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2천은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이러한 초기불전은 빠알리어로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분류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그것은 율장(律藏, Vinaya Piṭaka)과 경장(經藏, Sutta Piṭaka)과 논장(論藏, Abhidhamma Piṭaka)이다. 이 가운데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法, dhamma]을 담고 있는 경장은 5부 니까야(Nikāya, 모음, 묶음)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것은 ⑴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⑵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⑶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相應部, 주제별 경들의 모음) ⑷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숫자별 경들의 모음) ⑸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그 외 여러 가르침들의 모음)이다.
이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는 다음의 15개 경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⑴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 小誦經)
⑵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⑶ 『우다나』(Udāna, 自說經)
⑷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⑸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
⑹ 『위마나왓투』(Vimānavatthu, 天宮事經)
⑺ 『뻬따왓투』(Petavatthu, 餓鬼事經)
⑻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經)
⑼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經)
⑽ 『자따까』(Jātaka, 本生經)
⑾ 『닛데사』(Niddesa, 義釋)
① 『마하닛데사』(Mahā-Niddesa, 大義釋)
② 『쭐라닛데사』(Culla-Niddesa, 小義釋)
⑿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礙解道)
⒀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
⒁ 『붓다왐사』(Buddhavaṁsa, 佛種姓經)
⒂ 『짜리야삐따까』(Cariyāpiṭaka, 所行藏經)
이 15개 가르침 가운데 ⑵ 『담마빠다』(법구경), ⑶ 『우다나』(자설경), ⑷ 『이띠웃따까』(여시어경), ⑸ 『숫따니빠따』(경집), ⑻ 『테라가타』(장로게경), ⑼ 『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 『자따까』(본생경)는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 초기불전으로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 『테라가타』(장로게경)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이것은 『장로게』(長老偈) 혹은 『장로게경』(長老偈經)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로도 분류된다. 이 아홉 가지는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인데 이미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언급되고 있다.(M22 §10; A4:6 §1; A4:103 §3; A5:155 §8; A6:51 §5 등)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 아홉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 가운데 ① [율장의] 두 가지 위방가(비구 위방가와 비구니 위방가)와 [ 『쿳다까 니까야』의] 『닛데사』(Niddesa)과 [율장의] 칸다까(健度, 건도)와 빠리와라(補遺, 보유)와 [ 『쿳다까 니까야』] 『숫따니빠따』의「큰 행복 경」(Sn2:4),「보배 경」(Sn2:1),「날라까 경」(Sn3:11),「뚜왓따까 경」(Sn4: 14)과 그 외에 경이라 이름하는 다른 여러 여래의 말씀이 바로 경(經, sutt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② 게송과 함께하는 경이 바로 응송(應頌, geyya)이라고 알아야 한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의「사가타 품」(Sagātha-vagga) 전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③ 전체 논장과 게송이 없는 경과 그 외에 다른 여덟 가지 구성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부처님 말씀이 바로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④ 『법구경』과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 ⑤ 기쁨에서 생긴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가지 경들이 바로 감흥어(感興語, udāna)라고 알아야 한다. ⑥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가지 경들이 바로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라고 알아야 한다. ⑦ 아빤나까 본생담 등 550개의 본생담이 바로 자따까(本生譚, jātaka)라고 알아야 한다. ⑧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D16 §5.16)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모든 놀랍고 경이로운 법과 관련된 경들이 바로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⑨「교리문답의 짧은 경」(M44),「교리문답의 긴 경」(M43),「바른 견해 경」(M9),「제석문경」(D21), 상카라 분석 경(?),「보름밤의 긴 경」(M109) 등 모든 신성한 지혜와 만족과 여러 가지 이익됨이 질문된 경들이 바로 문답[方等, vedalla]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3~24)
여기서 살펴보았듯이 본서 『테라가타』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그리고 이것은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 가운데 네 번째인 게송(偈頌, gāthā)의 전형적인 보기가 된다.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를 시작하면서 『테라가타』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ThagA.i.2)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III-⑴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테라가타』의 구성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으면서 위에서 인용한 『테라가타』{1024}에 나타나는 아난다 존자의 게송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Thag. {1024})라는 이 게송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는 초기불교를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으로 정의한다. 여기에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팔만사천 가르침 가운데 2천의 가르침이 비구(비구니들 포함)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은 4부 니까야의 경들에도 실려있으며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인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에도 직계 제자들인 장로들과 장로니들의 게송들이 지금까지 면면부절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⑶ 장로(thera)란 무엇인가?
① 문자적 의미
장로로 옮기는 빠알리어 thera는 √sthā(tiṭṭhati, Sk:tiṣṭhati, +te, 1류, 서 있다, to stand)의 명사이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thāvara가 니까야의 여러 곳에 쓰이고 있다.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강한, 굳건한, 고정된’ 등으로 옮겼다.
그리고 경에서는 tasa-thāvara(약하거나 강한)라는 합성어로도 나타나고 tasaṁ vā thāvaraṁ vā(떠는 자든 굳건한 자든)로도 나타난다. 여기서 tasa (Sk. trasa)는 √tras(to tremble)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떨림’이나 ‘두려움’을 뜻하고 thāvara는 √sthā(to stand)에서 파생된 형용사나 남성명사로 ‘움직이지 않는, 굳센, 늙은이’ 등을 뜻한다. 산스끄리뜨 일반에서 sthā- vara는 움직임이 없는 나무와 같은 식물들을 뜻하고 후대에는 특히 부동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산스끄리뜨 일반에서 trasa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뜻한다. 이것이 초기불전에 들어와서 이 둘이 함께 쓰이는 문맥에서는 갈애를 가진 자와 갈애가 없는 자(아라한)를 뜻하는 술어로 쓰이고 있다.( 『이띠웃따까』「일으킨 생각 경」(It2:11)의 주해에서)
그리고 문맥에 따라 tasa는 움직이는 것들, 즉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을 뜻하고 thāvara는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것들, 즉 식물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더 간단히 전자는 유정으로 후자는 무정물로 평이하게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경에는 같은 √sthā에서 파생된 thira라는 형용사가 쓰이고 있는데 ‘확고한, 견고한, 강한’으로 옮기고 있다. 특히 주석서들에서는 thera(테라)를 설명하면서 이 thira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 -ppatta)” (DA.ii.526)이나 “확고함을 얻었기 때문(thirabhāvaṁ pattā)”(AA. iii.350)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자적으로는 thera는 [오래] 서있는 자, [오래] 머무는 자, [오래] 지속되는 것, 확고한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산스끄리뜨로는 sthavira이고 중국에서는 上首, 大德, 尊者, 悉替耶, 慧命, 老, 老年, 耆年, 耆長, 長老(상수, 대덕, 존자, 실체야, 혜명, 노, 노년, 기연, 기장, 장로) 등으로 옮겼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장로로 옮기고 있다.
② 주석서에 나타나는 장로에 대한 설명
위에서 보았듯이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 기본적으로 테라(thera)는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a)으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숫따니빠따 주석서』는 “장로는 자신의 사문의 법(attano samaṇadhamma)에서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ā)이다.”(SnA.423)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제 주석서들에서 장로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본서의 주석서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테라, 즉 장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계행의 심재 등의 굳건한 덕과 결합되었기 때문에(sīlasārādi-thiraguṇa- yogato) ‘장로(thera)’이다.”(ThagA.i.30)
“확고한 무학들(thirā asekkhā)의 계행의 심재 등(sīlasārādi)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thero)’이다.”(ThagA.iii.5)
“‘장로(thera)’라고 하였다. 무학의 계의 무더기 등(asekkhā sīlakkhandh- ādī)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이다.”(ThagA.iii.105)
“확고한(thira) 계의 무더기 등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이다. 흔들림 없는 법을 가졌다(akuppadhamma)는 뜻이다.”(ThagA.iii.196)
이제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확고함을 얻어서 장로로 만드는 덕들(thera-kārakā guṇā)을 구족하였다고 해서 장로들이다.”(DA.ii.526)
여기에 대해서 『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확고함을 얻어서(thirabhāva-ppatta)’라는 것은 교법에서 확고함, 흔들림 없음(anivattitabhāva)에 도달한 것(upagata)이다. ‘장로로 만드는(therakāra -ka)’이라는 것은 장로가 됨을 성취하는 무학의 법(asekkhadhammā)인 계행 등의 공덕(sīlādiguṇā)이다.”(DAT.ii.163)
여기서 계행 등의 공덕(sīlādiguṇā)은 『청정도론 복주서』(Pm)의 설명처럼 기본적으로는 계‧정‧혜 삼학의 공덕(sīla-samādhi-ādi-guṇasampanno, Pm. i.149)이나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오법온(sīlādīhi pañca dhamma -koṭṭhāsā, Pm.i.274)을 의미한다.
한편 ① 부처님들의 전기(apadāna)와 ② 벽지불들[獨覺, pacceka-buddha]의 전기와 ③ 547분 장로들의 전기와 ④ 40분의 장로니들의 전기를 담고 있는(Hinüber 61) 『아빠다나』에 대한 주석서는 thera의 의미를 아래의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①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terovassikāni)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D22 §10; M10 §28)라는 말씀에서 thera는 시간(lāla)을 뜻함.
② 확고함(thira)이라는 뜻에서 계행(thirasīla)을 뜻함.
③ 연장자, 존자, 노후한 자라는 세상의 개념적인 말일 뿐임(lokapaññatti -matta).
④ 쭌다테라, 풋사테라는 이름임(nāmadheyya).
⑤ 연장자라는 뜻에서 장남인 아이(jeṭṭha kumāra)를 뜻함.
그런 뒤 이 『아빠다나 주석서』는 “여기서는 ① 시간(kāla)과 ② 확고함(thira)의 뜻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머물렀다고 해서 장로이다(ciraṁ kālaṁ ṭhitoti thero). 혹은 부드러움 등 더 확고해진 계행(thiratara -sīlācāra-maddavādi)의 공덕에 몰두하는 사람(guṇa-abhiyutta)이 장로라 일컬어진다.”(ApA.212)라고 설명하고 있다.
⑷ 니까야에 나타나는 thera의 용례
이상 주석서 문헌들에서 장로로 옮기고 있는 테라(thera)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테라(thera)는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문맥과 어떤 용례로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자. 역자는 테라의 용례를 경장, 그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섯 번째 니까야인 『쿳다까 니까야』에서는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를 제외하면 『법구경』에 한 번, 『숫따니빠따』에 두 번 정도 나타나고 『뻬따왓투』에 15번 정도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4부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의미 외에 다른 용례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어 보이기 때문이다.
4부 니까야 가운데 thera라는 용어는 『디가 니까야』의 4개 경들과 『맛지마 니까야』의 14개 경과 『상윳따 니까야』의 16개 경들과 『앙굿따라 니까야』의 19개 경들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된다. 이제 이들을 정리해 보자.
① thera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일곱 개의 용어들
니까야에서 thera라는 용어는 주로 ⓐ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단수로도 나타남)와 ⓑ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와 ⓒ thero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로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중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수로 표기하면 이들은 thera, rattaññū, cirapabbajita, saṅghapitu, saṅghapariṇāyaka, addhagata, vayoanuppatta의 일곱 개 용어이다. 이들의 출처에 대해서 살펴보자.
ⓐ 이 가운데 2개의 경(D16 §1.6; A7:26 §4 이하)에서는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장로들이요 구참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된)의 세 개 용어로 나타나고 『숫따니빠따』의「사비야 경」(Sabhiya sutta, S3:6)에도 나타나고 있다.
ⓑ 다른 3개의 경(M33 §3 이하; A7:21 §1; A11:18 §4 이하)에서는 이 세 개의 용어에다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가 더 첨가되어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의 다섯 개 용어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다섯 개 용어로 된 ⓑ는 ‘[비구들은] 장로들이요 구참(舊參)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승가의 아버지들이요 승가의 지도자들이다.’로 직역할 수 있다. 경들에서는 문맥에 따라 주로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이요 출가한 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로 옮겼다.
ⓒ 『디가 니까야』제3권「정신경」(D29) §§10~14에는 ⓐ의 3개 용어에다 addhagata와 vayoanuppatta가 첨가되어 단수 문장인 thero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장로요 구참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 §§2~7)에 의하면 뿌라나 깟사빠 등의 육사외도에게도 thera라는 용어가 없이 이 네 가지 용어, 즉 ratta- ññū, cirapabbajita, addhagata, vayoanuppatta가 그들을 수식하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하여 ⓐ, ⓑ, ⓒ에 나타나는 용어들은 thera, rattaññū, cira- pabbajita, saṅghapitu, saṅghapariṇāyaka, addhagata, vayo-anu- ppatta의 일곱 개로 정리된다. 이 일곱 개 가운데 rattaññū부터 vayo-anu -ppatta까지의 뒤의 여섯 개 용어들은 장로로 옮기는 thera라는 첫 번째 용어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용례들을 보면 장로는 구참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승가의 아버지들이요 승가의 지도자들이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분들을 뜻한다.
그리고 테라(thera)라는 용어가 없이 연로함을 표현할 때는 jiṇṇo vud- 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늙은, 나이 든, 노쇠한, 삶의 완숙기에 이른)라는 다섯 개의 단어로 된 정형구가 4부 니까야 가운데 8개 경들(D4 §5; M12 §62 등)의 1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바라문들이나 왕들에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대반열반경」(D16 §2.25)에서 세존께서도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후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 간다고 여겨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② thera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일곱 개 용어들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그러면 주석서는 이 일곱 가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자.「대반열반경」(D16 §1.6)에 대한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장로들(therā)’은 확고함을 얻어서 장로가 될 공덕을 구족한 분들을 말한다. [출가하여] 많은 밤들(rattiyo)이 [지나간 것을] 안다고 해서 ‘구참(rattaññū)’이다. 이들이 출가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출가한 지 오래된 분들(cirapabbajitā)’이다. 승가의 아버지의 위치에 서있다(pituṭṭhāne ṭhitattā)고 해서 ‘승가의 아버지들(saṅghapitaro)’이다. 아버지의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승가를 인도하여(parinenti) 앞장서는 자들(pubbaṅgamā)이 되어서 삼학에 [확립되어] 굴린다(tīsu sikkhāsu pavattenti)고 해서 ‘승가의 지도자들(saṅghapariṇāyakā)’이다.”(DA.ii.526)
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확고함을 얻어서’라는 것은 교법에서 확고함, 즉 옆길로 빗나가지 않음(anivattitabhāva)을 분명하게 얻은 것을 말한다. ‘장로가 될(therakārakehi)’이라는 것은 장로가 됨을 성취하게 하는 무학의 법들인 계행 등의 [삼학이나 오법온의] 덕들을 말한다. 계행 등의 덕들에 확립되게 하는(patiṭṭhā -pana) 교법에서 인도자가 되었다(pariṇāyakatā)고 해서 ‘삼학에 [확립되어] 나아간다(tīsu sikkhāsu pavattenti).’라고 하였다.”(DAṬ.ii.163)
ⓒ에 나타나는 addhagata, vayoanuppatta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이다.
“‘연로한(addhagata)’이란 시간이 지나가서 둘이나 셋의 왕의 집권 시대가 지나간 것(rājaparivaṭṭe atīto)과 동의어이다.”(DA.i.143 등)
“‘연로한’이란 많은 시간이 지났고(bahuaddhānaṁ gata)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cirakālātikkanta)이다.”(MA.ii.51)
“‘삶의 완숙기에 이른(vayoanuppatta)’이란 삶의 후반부에 도달한 것(pacchimavayaṁ anuppatta)이다.”(DA.i.143 등)
③ 세 가지 장로(thera)의 분류
이제 경에서는 장로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합송경」(D33)과 여기에 관한 주석서의 설명을 통해서 살펴보자.
『디가 니까야』제3권「합송경」(D33)은 장로(thera)를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세 가지 장로(thera)가 있으니 ―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 tthera), ⓑ 법다운 장로(dhammathera), ⓒ 인습적으로 부르는 장로(sam- muti thera)이다.”(D33 §1.10 (37))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jātimahallaka) 재가자(gihī)가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tthera)’이다.
ⓑ [진정한 장로가 되고 진정한 장로로 인정을 받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고 계시는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우루웰라 경」2(A4:22)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 그는 많이 배우고[多聞] … 네 가지 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법들 가운데 하나나 여럿을 구족한 자가 ‘법다운 장로(dhamma-thera)’이다.
ⓒ “법다운 장로 이외의 장로라 이름하는 비구들이나, 혹은 사미 등이 연로하여 출가한 자를 보고 그냥 ‘장로(thera)님,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이런 것을 두고 ‘인습적으로 부르는 장로(sammuti-thera)’라 한다.”(DA.iii.999)
이 가운데 첫 번째는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이것은 재가자들이 따지는 연장자를 말한다. 두 번째는 계‧정‧혜 삼학을 완성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완성한 법다운 장로이다. 비록 세속적인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그가 해탈을 완성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법다운 장로이다. 세 번째는 출가하여 연로해졌지만 깨닫지는 못한 스님들을 그냥 큰스님으로 부르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jātimahallaka)’이라는 것은 태어남에 의해서 더 연장자(vuḍḍhatara)이고 수명이 길고(addhagata) 나이가 든(vayo- anuppatta) 것이다. 그는 구참이기(rattaññutā) 때문에 일반적으로 태생의 법과 가문의 법이라는 토대(jātidhamma-kuladhamma-padā)에서 더 굳건함을 얻었기(thāvariyappatti) 때문에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thera)’라 한다.
ⓑ ‘장로가 되는 법들(therakaraṇā dhammā)’이라는 것은 교법에서 굳건함을 만드는 덕들(sāsane thirabhāvakarā guṇā)인데 [이것과] 상반되는 것들을 분쇄하는 것들(paṭipakkha-nimmadanakā)을 말한다. ‘장로(thera)’는 말하려고 하는 법들(vakkhamānā dhammā)에 대해서 굳건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a)이다.
ⓒ ‘장로라 이름하는(thera-nāmaka)’이라는 것은 장로라는 이러한 명칭을 가진(nāmaka)이란 말이다.”(DAṬ.iii.266)
④ 장로 비구[들](thero bhikkhu/therā bhikkhū)이라는 용어
장로 비구[들](thero bhikkhu/therā bhikkhū)이라는 용어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상대가 되는 용어인 신참 비구[들](navo bhikkhu/navā bhikkhū)과 중진 비구[들](majjhimo bhikkhu/majjhimā bhikkhū)이라는 용어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모두 복수로 표기한다.
ⓐ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둘로 나타나는 경우는「대반열반경」(D16 §6.2) 등 8개 정도의 경들이 있다.「대반열반경」을 인용한다.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āvuso)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 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구참(舊參)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참 비구는 구참 비구를 존자(bhante)라거나 장로(āyasmā)라고 불러야 한다.”(D16 §6.2)
ⓑ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과 중진 비구들(majjhim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셋으로 나타나는 경우는「정신경」(D29 §12) 등 7개 정도의 경들이 있다. 『맛지마 니까야』제4권「길들임의 경지 경」(M125)을 인용한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장로 비구가 번뇌를 부수지 못하고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어버린 장로 비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와 같이 중진 비구가 … 신참 비구가 번뇌를 부수지 못하고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어버린 신참 비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M125 §31)
ⓒ 이 외에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만으로 나타나는 경들은 22군데 정도가 되고 단수인 장로 비구(thera bhikkhu)만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14군데 정도가 되어 모두 36개 정도의 경들에서는 중진 비구들(majjhim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언급이 없이 단독으로 쓰인다. 『앙굿따라 니까야』제6권「거처 경」(A10:11) §3의 해당 부분을 인용한다.
“그 거처에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다. 그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나는 법에 대해 의심을 없애준다. 비구들이여, 거처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A10:11 §3)
⑤ 신참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과 장로 비구들을 나누는 기준
그러면 신참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과 장로 비구들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먼저 『상윳따 니까야』제1권「사밋디 경」(S1:20)에서 사밋디 존자는 그에게 질문을 하는 천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반이여, 나는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S1:20 §5)
여기에 대해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참(nava)’이라고 하였다. 다섯 안거를 채우지 못한(aparipuṇṇa-pañca -vassa) 비구를 신참이라 한다. 다섯 안거(pañcavassa) 이후부터가 중진(majjhima)이고 열 안거(dasavassa)부터가 장로이다. 다른 방법은 이러하다. ― 열 안거를 채우지 못하면(aparipuṇṇadasavassa) 신참이고 열 안거 이후부터가 중진이며 스무 안거 이후부터가(vīsativassato paṭṭhāya) 장로이다. 이들 가운데 나는 신참입니다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신참인 어떤 사람이 일곱이나 여덟 살에 출가한 뒤 12년이나 13년을 사미로 지냈다면 그는 출가한 지 오래되었다(cirapabbajita). 그러나 나는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acirapabbajita)’라고 [사밋디 존자는] 말하는 것이다.”(SA.i.43~44)
『율장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열 안거를 채웠기 때문에(paripuṇṇa-dasavassatāya) 장로(thera)이고 다섯 안거 아래이기 때문에(ūna-pañcavassatāya) 신참(nava)이며 다섯 안거를 넘어섰기 때문에(atireka-pañcavassatāya) 중진(majjhima)이라는 뜻이다.”(VinA.i.239)
다른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진(majjhima)’이라고 하였다. 다섯 안거의 기간부터(pañcavassa-kāla -to paṭṭhāya) 아홉 안거의 기간까지가(navavassakālā) 중진이다. ‘장로(thera)’라고 하였다. 열 안거의 기간부터(dasavassa-kālato paṭṭhāya) 장로라고 한다.”(PugA.215; AAṬ.ii.197)
⑥ 나이만 많으면 장로인가
그러면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나이만 많으면 연장자이고 모두 다 장로 비구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경이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깐다라야나 경」(A2:4:7)이다. 깐다라야나라는 바라문이 마하깟짜야나 존자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사문 깟짜야나는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되었고, 오래 살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깟짜야나 존자가 그렇게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되었고, 오래 살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 것은 온당하지가 않습니다.”(A2:4:7 §1)
여기에 대해서 깟짜야나 존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나이 든 자의 입장(vuddha-bhūmi)과 젊은 자의 입장(dahara-bhūmi)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아흔, 백 세가 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kāma)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고 감각적 쾌락의 불에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휩싸이고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열정적이라면 그는 어리석은 장로(bāla thera)라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비록 젊어 인생의 초반이고 머리카락이 검고 혈기가 왕성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열정적이지 않다면 그는 현명한 장로(paṇḍita thera)라 불립니다.”(A2:4:7 §2)
나이가 많다고 해서 연장자이고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벗어나야 그가 진정 장로로 불리게 된다는 답변이다.
그러자 이에 감격한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젊은 비구들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 이렇게 말하면서 삼보에 귀의하고 재가 신자가 되었다.
“존자들께서는 나이 든 어른(vuddhā)이시고 나이 든 어른의 입장(vuddha -bhūmi)에 서 계십니다. 우리는 젊은 사람(daharā)이고 성숙되지 않은 자의 입장(dahara-bhūmi)에 서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A2:4:7 §3)
이외에도 장로 비구들의 오염을 말씀하시는 몇몇 경들을 더 들 수 있겠지만「미래의 두려움 경」3(A5:79 §6)을 인용한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다섯 가지 두려움을 말씀하시면서 그 다섯 번째 두려움으로 다음과 같이 장로 비구들의 오염을 들고 계신다.
“6.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세에는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은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으면서 [옷 등 네 가지 필수품을] 너무 많이 가지고 [교법에] 방만하며 [다섯 가지 장애로 불리는]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의 임무를 내팽개쳐 버리고,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정진을 하지 않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다음 세대들도 그들의 [삿된] 견해를 이어받게 된다. … 정진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법이 오염되면 율이 오염되고 율이 오염되면 법이 오염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날 다섯 번째 미래의 두려움이니, 그대들은 이것을 자각해야 하고 자각한 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A5:79 §6)
⑸ 가타[偈, gāthā]란 무엇인가?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테라(thera)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를 살펴보자. 빠알리 gāthā(산스끄리뜨도 동일함)는 √gai(to sing)의 여성명사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gāthā를 주로 게송으로 옮기고 있다. 이 용어는 베다에서부터 gāthā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伽陀, 偈, 偈他, 偈經, 偈頌, 句, 四句, 孤起頌, 攝, 法頌, 諷頌, 頌(가타, 게, 게타, 게경, 게송, 구, 사구, 고기송, 섭, 법송, 풍송, 송) 등으로 다양하게 옮겼다. 『금강경』에서 구마라집 스님은 偈(게)로 옮겼고 현장 스님은 伽陀(가타)로 음역하였다.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역자가 정리하여 만든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 가운데서 ‘∪gātha∪’와 ‘∪gāthā∪’로 검색을 해보니(∪는 빈칸을 나타냄) 경장과 율장에서만 442번이 나타났는데 VRI본에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1,000번 이상이 쓰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논장에서는 3번 정도에 그쳤다. 이처럼 초기불전 경장과 율장의 많은 곳에 이 용어는 나타나고 있는데 경장에서는 주로 다음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 가타는 게송이다.
위의 해제 II-⑵ 삼장에서 『테라가타』의 위치에서 보았듯이 구분교 가운데 네 번째인 이 가타(게송)는 “④ 『법구경』과 『장로게』와 『장로니게』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suddhika-gāthā)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4)라고 설명되었다. 이처럼 게송으로 옮긴 가타는 구분교 가운데 네 번째로 나타나는데 이때 가타는 운율을 가진 모든 게송, 즉 시(詩)를 의미한다. 『테라가타』의 가타도 운율(dhando, Sk. chandas)을 가진 시구를 의미한다. 이처럼 가타(게송)의 핵심은 운율(chando)이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들에 대해서는 본 해제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을 참조하기 바란다.
PED의 설명에서 보듯이 빠알리 가타, 즉 게송은 아눗툽바(아누슈뚭)와 같은 사구게로 설명이 된다. 여기서 아눗툽바(Pāli: Anuṭṭhubba), 즉 아누슈뚭(Sk: Anuṣṭubh) 운율(chandas)은 한 구절(pāda)에 8개의 음절이 들어있는 네 개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래서 8×4=32음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아누슈뚭 운율은 모든 산스끄리뜨 운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 베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런 아누슈뚭 운율을 위시한 운율을 가진 모든 시(詩)들을 불교에서는 이렇게 가타(gāthā)라고 부른다. 그리고 불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도 고전 문헌에서도 이 아누슈뚭(아눗툽바) 운율을 실로까(Pāli: Siloka, Sk: Ślok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는 불교 경전의 모든 시구를 가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베다와 고전 산스끄리뜨에서 엄밀히 말하면 가타와 아누슈뚭은 다른 운율이다.
노만 교수는 『테라가타』에 포함된 게송들이 가지는 운율을 9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 9가지 운율이 혼합된 게송으로 ‘뜨리슈뚭 운율과 자가띠 운율이 혼합된 것’ 등의 10개를 소개하여 1,279개 게송들에는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본 해제 IV. 참조.)
② 주석서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에 대한 설명
그러면 니까야의 주석서들은 gāthā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 구분교와 가타(gāthā)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II-⑸-① 참조)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구분교(九分敎)를 ① 경(經, sutta) … ⑨ 문답(方等, vedalla)의 아홉 가지로 분류한 뒤 “④ 『법구경』과 『장로게』와 『장로니게』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suddhika-gāthā)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4, 본 해제 II-⑵)로 설명하였다.
ⓑ 주석서들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에 대한 설명
『숫따니빠따 주석서』는 “여기서 게송(gāthā)이란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져 있는 말(ak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로 설명하고 있다.
『쿳다까빠타 주석서』도 게송을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져서 연결된 말(akkhara-pada-niyamita-ganthita-vacana)”(KhA.117)로 정의한다. 같거나 비슷한 설명이 『닛데사 주석서』(Nd1A.ii. 270)에는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져서 연결된 말을 통해서 읊어진 것(akkhara-pada-niyamita-ganthitena vacanena abhāsi)”으로 나타난다.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디가 니까야』제2권「대회경」(大會經, D20) §5를 주석하면서 가타와 동의어인 실로까(Siloka)를 위에서 언급한 주석서들과 같은 방법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나는 게송으로 밝히리라(silokam anukassāmi).’라는 것은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의 모음(akkhara-pada-niyamita vacana-saṅghā -ta)을 전개할 것이라는 말씀이다.”(DA.ii.684)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처럼 실로까를 가타와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도 실로까와 가타가 동의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빠알리 문법서인 『삿다니띠』(Saddanītippakaraṇa)도 이와 똑같이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의 모음이 실로까(게송)이다.”(Sdnt.16)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여러 주석서들은 가타와 실로까를 ‘음절(akkhara)’과 ‘구절[句, pada]’이라는 게송의 중심이 되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
주석서와 복주서의 여러 곳에는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이라는 용어’(MA.iii.331)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주석서는 가타를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이라고 정의하였다. 기본적으로 가타는 네 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가타는 기본적으로 네 구절로 된 게송, 즉 사구게(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라 부른다.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제8품(依法出生分 第八) 등의 몇 군데에서도 catuppadikā gāthā의 산스끄리뜨인 catuṣpādikā gāthā로 나타나는데 구마라집 스님은 四句偈(사구게)로, 현장 스님은 四句伽陀(사구가타)로 옮겼다.
그리고 이러한 네 구절 모두가 8음절로 제한된 것을 아누슈뚭(아눗툽바) 운율이라 하며 이것이 가타와 실로까의 기본 운율이 된다. 이렇게 하여 가타, 즉 게송 혹은 사구게는 기본적으로 8×4=32음절로 구성된다.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D2 §40 등등)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이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을 보기로 하여 다음과 같이 시작과 중간과 끝을 설명하고 있다.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에서 첫 번째 구절(paṭhama-pāda)은 시작(ādi)이라 하고 그다음의 두 구절은 중간(majjha)이라 하며 마지막의 한 구절은 끝(pariyosāna)이라 한다.”(DA.i.175)
ⓓ 가타(게송)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
이제 『테라가타』를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가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알아보자.
본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노래한다(읊어진다, gīyati)고 해서 게송(gāthā)이다. 아누슈뚭(아눗툽바) 등(Anuṭṭhubhādi)을 통해서 선인들(isī)에 의해서 전개된(굴려진)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이다.”(ThagA.i.8)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가타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은 위에서 살펴본 다른 주석서의 설명과는 자못 다르다. 다른 주석서들에서는 모두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khara-pada-niyamita vacana)’을 가타에 대한 설명의 기본 용어로 하였는데 여기서는 ‘네 개의 구절[四句, catuppada]’과 ‘여섯 개의 구절[六句, chappad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게송의 가장 큰 특징을 네 구절로 된 게송과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게송은 기본적으로 네 구절로 되어 있다. 이것이 불교의 게송 뿐만 아니라 베다부터 시작하여 모든 산스끄리뜨 게송과 자이나교나 쁘라끄리뜨로 된 게송의 기본이다.
그러면 여섯 구절로 된 게송은 무엇인가? 이러한 정해진 음절로 구성된 6개의 구절[句, pada]로 되어 있는 게송을 말한다.
역자는 1,279개 게송을 모두 담은, 역자가 만든 ‘테라가타 데이터 베이스’의 빠알리 원문을 Foxpro로 하나하나 조사하였는데 역자가 조사한 바로는 본서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 가운데 61개 정도는 네 구절로 구성된 사구게(四句偈)가 아니라 여섯 구절로 구성된 육구게(六句偈)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표1> 『테라가타』의 육구게 |
모음 | 육구게 숫자 | 모음 | 육구게 숫자 |
하나의 모음 | 13곳 | 열둘의 모음 | 1곳 |
둘의 모음 | 7곳 | 열셋의 모음 | 2곳 |
셋의 모음 | 1곳 | 열여섯의 모음 | 1곳 |
다섯의 모음 | 2곳 | 스물의 모음 | 13곳 |
여섯의 모음 | 3곳 | 서른의 모음 | 2곳 |
일곱의 모음 | 3곳 | 마흔의 모음 | 3곳 |
여덟의 모음 | 1곳 | 예순의 모음 | 6곳 |
열의 모음 | 2곳 | 큰 모음 | 1곳 |
예를 들면 아누슈뚭 운율, 즉 실로까 운율은 기본적으로 8개의 음절(akkhara)로 된 4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4=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누슈뚭 운율로 된 육구게는 8개의 음절(akkhara)로 된 6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어서 모두 8×6=42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혼합된 운율일 경우에는 혼합된 방법대로 계산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앞의 네 구절(pada)이 아누슈뚭 운율로 되어 있고 뒤의 두 구절이 한 구절에 12음절을 담고 있는 자가띠(Jagati) 운율로 되어있다면 이것은 8×4+ 12×2=56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PTS본과 VRI본의 편집이 다른 부분이다. 사리뿟따 장로(Th30:2)의 {995}, {996}, {997} 3개 게송들을 PTS본은 이처럼 3개의 사구게로 편집하였는데 VRI본은 {995}, {996} 2개의 게송으로 편집하였다. 이 경우에 이 2개의 게송들은 당연히 육구게로 편집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PTS본과 VRI본의 게송 번호가 달라지게 된다.
수망갈라 장로(Th1:43)의 {43} 게송도 주목할 만한데 본 게송은 두 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VRI본도 본 게송을 하나의 게송으로 똑같은 게송 번호를 매기고 있다. 노만 교수는 이 전체 게송을 가나 운율(Gaṇa-cchandas)이라고 적고 있다.(K. R. Norman, 132쪽 §43의 주해 참조) 그러면서 이것은 오래된 아랴(Āryā) 운율이라는 Alsdorf의 견해를 소개한 뒤 만일 본 게송을 아랴 운율이라고 한다면 두 개의 게송으로 봐야 한다고 적고 있다.(Ibid)
그런데 이 수망갈라 장로의 어머니인 『테리가타』둘의 모음에 담겨있는 수망갈라마따 장로니(Thi2:3 {23}【설명】참조)의 게송은 『테리가타』둘의 모음 {23}과 {24}의 두 개 게송으로 나타난다. 이 두 게송도 오래된 아랴(Āryā) 운율로 되어 있다. VRI본에도 {23}과 {24} 두 개의 게송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테라가타』에는 세 구절로 구성된 삼구게[三句偈], 즉 8×3=24음절로 된 사위뜨리(Sk: Sāvitrī, Pāli: Sāvittī) 운율은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의 {1188}게송은,
“백 개나 되는 쇠못이 있고 모두 스스로 고통을 받네.
제자인 위두라와 까꾸산다 바라문을 공격하여
둣시가 고통받은 그 지옥은 이와 같다네.”({1188})
라고 삼구게처럼 옮겼지만 원문은 다음과 같다.
sataṁ āsi ayosaṅkū, sabbe paccattavedanā|
īdiso nirayo āsi, yattha dussī apaccatha|
vidhuraṁ sāvakamāsajja, kakusandhañca brāhmaṇaṁ||
이처럼 이 게송은 8+8, 8+8, 8+8, 8+8, 8+8, 9+8의 아누슈뚭 운율로 된 육구게이다. 특정 게송이 8+8+8=24개의 음절로 되어 있어야 그것이 사위뜨리 운율이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다면 담마빨라 스님이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가타(게송)를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이라고 설명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테라가타』에 담긴 1,279개 게송은 사구게이거나 육구게라는 것이 『테라가타』가 가지는 두드러진 특징이므로 담마빨라 스님은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이렇게 게송(가타)을 설명하였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D2 §40 등등)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을 보기로 하여 시작과 중간과 끝을 설명하고 있음을 위에서 보았다.(②-ⓒ) 같은 주석서는 이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육구게)을 보기로 들면서 “다섯 구절로 된 게송(오구게)이나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육구게)의(pañcapadachappadānaṁ) 첫 번째 구절(paṭhama-pāda)은 시작(ādi)이라 하고 마지막의 한 구절은 끝의 구절(pariyosāna-pada)이라 하며 [가운데 있는] 나머지들(avasesā)은 중간(majjha)이라 한다.”(DA.i. 172)라고 설명하고 있다.
③ 실로까(Siloka, Sk: Śloka)와 가타(gāthā)
이 게송(gāthā)이라는 단어 외에도 니까야에서는 실로까(Siloka, Sk: Śloka)라는 용어가 운율을 가진 게송을 뜻하는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제2권「대회경」(D20) §5에는 “그들이 의지하는 영역에 따라 / 나는 게송으로 밝히리라.(silokamanukassāmi, yattha bhummā tadassitā)”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 실로까를 “음절과 구절[句]로 제한된 표현 방법의 모음(akkharapadaniyamitaṁ vacana- saṅghāta)”(DA.ii.685)으로 설명하고 있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빠알리 문법서인 『삿다니띠』도 “음절과 구절[句]로 제한된 표현 방법의 모음이기 때문에 실로까라 한다(akkharapadaniyamito vacanasaṅghāto siloko).”(Saddanītippakaraṇa 16)라고 『디가 니까야 주석서』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와서 실로까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이 설명은 위에서 밝힌 게송(gāthā)에 대한 주석서들의 설명과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가타와 실로까는 동의어로 여겨진다.(sasilokaṁ sagāthakaṁ cuṇṇiya-ganthaṁ ― DAṬ.i.41, NetA.13)
⑹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
앞의 ‘⑷ 니까야에 나타나는 thera의 용례’에서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테라(thera)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⑸-② 등을 통해서 주석서에서는 가타(gāthā)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제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를 살펴보자.
먼저 역자는 Foxpro로 만든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에서 ‘∪gātha’와 ‘∪gāthā∪’로 검색을 해보았다. 합성어를 제외한 gāthā라는 용어는 경장과 율장에서만 442번이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었는데, VRI본에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것을 감안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논장에서는 3번 정도에 그쳤다. 이처럼 초기불전 경장과 율장의 많은 곳에 이 용어는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경장의 니까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니까야에서 gāthā는 주로 다음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 구분교의 가타(gāthā)
앞에서 본 것처럼 가타는 구분교의 네 번째 구성요소의 정형구로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본 해제 II-⑵와 II-⑸-① 참조) 예를 들면 『맛지마 니까야』제1권「뱀의 비유 경」(M22) §10 등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M22 §10 등등)
구분교를 드러내는 이 정형구는 니까야의 14개 정도의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② 동사 bhāsati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
ⓐ 접두어 없는 bhāsati와 함께 쓰인 경우
gāthā는 동사 bhāsati(√bhāṣ, 말하다, to speak, Sk:bhāṣate, +ti, 1류)의 다양한 형태와 함께 쓰여 4부 니까야 안에서만 검색해 봐도 ‘게송을 읊다(gāthaṁ bhāsati)’로 10곳 정도에, ‘게송을 읊었다(gāthaṁ abhāsi)’로 73곳 정도에, ‘게송을 읊어야겠다(gathaṁ bhāseyyāma)’로 2곳 정도에, ‘게송이 읊어졌다(gāthā bhāsitā)’로 7곳 정도에 ― 이처럼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들 가운데 경전의 출처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게송을 읊는다(gāthaṁ bhāsati)
이 표현은「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의 §4에서 각 경에 두 번씩 아래 문맥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 상윳따의 첫 번째 경인「알라위까 경」(S5:1 §4)에는 다음과 같다.
“그러자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gāthaṁ bhāsati)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는구나(gāthaṁ bhāsati).’”(S5:1 §4)
이렇게 하여「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에서 gāthaṁ bhāsati는 20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4부 니까야 안에서만 검색해 보면 과거분사를 사용하여 gāthā bhāsitā(게송이 읊어진)으로 나타나는 곳이 다섯 군데 정도 되고 절대분사를 사용하여 gāthā bhāsitvā(게송을 읊은 뒤)로 나타나는 곳도 두 군데 정도가 된다.
ⓐ-2. 게송을 읊었다(gāthaṁ abhāsi)
여기서 ‘읊었다’로 옮긴 abhāsi는 √bhāṣ(to speak)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Sg.)이다. ‘게송을 읊었다.’로 옮긴 gāthaṁ abhāsi는 4부 니까야에서 73번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이 가운데 68번 정도가 『상윳따 니까야』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에 실린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의「휩쓸려감 경」(S1:3) §2를 예로 들어본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삶은 휩쓸려가고 생명은 덧없고
늙음에 휩쓸린 자에게 보호란 없으니
죽음의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행복을 가져올 공덕 지어야 합니다.””(S1:3 §2 {3})
여기서 ‘이 게송을 읊었다.’는 imaṁ gāthaṁ abhāsi를 옮긴 것이다.
『테라가타』에는 VRI본으로 12번 정도 gāthaṁ abhāsittha(게송을 읊었다.)로 나타난다. 이 구문은 하나의 모음 첫 번째 품에 포함된 장로들의 게송 마지막에만 생략되지 않고 쓰여있으며 나머지 장로들의 경우에는 생략되었다. 생략하지 않으면 모두 264번이 나타나는 것이 된다.
그런데 PTS본에는 게송 {3}까지에만 ‘itthaṁ sudaṁ āyasmā Subhūti -tthero gāthaṁ abhāsitthāti.’로 생략 없이 나타나고 {4} 이하에서는 점진적으로 생략되어서 {8} 이하에서는 장로의 이름만이 언급되고 있다. VRI본으로는 첫 번째 품인 10까지 ‘itthaṁ sudaṁ āyasmā Subhūtitthero gāthaṁ abhāsitthāti.’로 생략 없이 나타나고 {11} 이하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장로의 이름만 언급되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여기서 읊었다로 옮긴 abhāsittha를 kathesi(말하였다, kathesi, Aor.3P.Sg.)로 설명하고 있다.
ⓑ 동사 bhāsati에 접두어가 첨가된 경우
ⓑ-1. gāthāya ajjhabhāsi(게송으로 물었다)
그리고 gāthā와 함께 동사 bhāsati(√bhāṣ, to speak)에 접두어 adhi-가 첨부되어 gāthāya ajjhabhāsi(게송으로 물었다, Aor.3P.Sg. 80곳 이상)나 gā- thāhi ajjhabhāsi(게송들로 물었다, 25곳 이상)라는 과거시제로 나타나는 곳도 100곳이 넘는다. 이 두 가지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까지의 100곳 가까이에 나타나고 이 외의 4부 니까야의 10곳 이상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 게송으로 대답하였다(gāthāya paccabhāsiṁ, gāthāya paccabhāsi)
‘게송으로 물었다(gāthāya ajjhabhāsi).’와 대비가 되는 말에 ‘게송으로 대답하였다(gāthāya paccabhāsiṁ, gāthāya paccabhāsi).’가 있다. 여기서 paccabhāsiṁ은 prati+√bhāṣ(to speak)의 아오리스트 과거 1인칭 단수(Aor.1P.Sg.)이고 paccabhāsi는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Sg.)이다. 전자는 4부 니까야의 3곳에, 후자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까지의 7곳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③ 동사 paṭibhāti와 함께 쓰인 경우
gāthā는 동사 paṭibhāti와 함께 쓰여 ‘게송들이 떠올랐다(gāthāyo paṭi- bhaṁsu)’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D14 §3.2 등 5곳을 들 수 있다. 여기서 paṭibhaṁsu는 동사 paṭibhāti(prati+√bhā, to shine)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복수(Aor.3.Pl.)이다. S3:12 §7와 S8:5 §5 등에서는 ‘영감이 떠오르다’로 옮겼다.
게송들이 떠올랐다(gāthāyo paṭibhaṁsu)로 나타나는 이 다섯 곳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기를 주저하시는 사유를 하시는 경들의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S8:8 §6에는 gāthāyo paṭibhantu(게송들을 떠올려 보라)로 나타나고 M12 §50에서는 gāthā paṭibhāsi(게송이 떠올랐다)로 나타난다. 여기서 paṭibhāsi는 prati+√bhā(to shine)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 Sg.)이다.
④ gāthā가 들어간 합성어
gāthā가 들어간 합성어는 많이 나타나지는 않아 보이는데 gāthā와 abhigīta가 합성된 gāthābhigīta(게송을 읊은)를 들 수 있다. 이 용어도 4부 니까야 가운데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의 다섯 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순다리까 경」(S7:9 §6)의 게송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읊으신다.
“게송을 읊어 생긴 것을 나는 먹지 않노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니라.
게송을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이라.({641})
독존(獨尊)이요 대성자요 번뇌 다한 자
후회가 가라앉아 버린 자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라.({642})”
이상으로 『테라가타』에 대한 언어적인 설명을 니까야와 주석서들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테라가타』라는 합성어는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래서 thera라는 용어와 gāthā라는 이 두 단어의 용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III. 『테라가타』의 구성
이러한 『테라가타』는 각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개수에 따라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로 모두 21개의 모음(nipāta)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모음에는 120분 장로들의 120개의 게송들이, 둘의 모음에는 49분 장로들의 98개 게송들이 … 이렇게 하여 마지막인 큰 모음에는 왕기사 장로의 71개 게송들이 담겨있어서 모두 264분의 1,279개 게송들을 담고 있다.
이제 본 『테라가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
⑴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테라가타』의 구성
『테라가타』의 구성은 『테라가타 주석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테라가타』에 담긴 이 1,279개 게송들의 대부분은 일차합송에서 합송되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아난다 장로의【행장】(Th30:3 {101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자가 되어서 합송하는 천막(saṅgīti-maṇḍapa)으로 들어가서 법을 합송하면서 여러 곳에서 비구들에게 교계를 베풂(ovāda- dāna)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도닦음을 밝힘 등(paṭipatti-dīpanādi)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읊었던 게송들을 한 곳에 모은 뒤(ekajjhaṁ katvā) 순서대로 『쿳다까 니까야』를 합송하는 시간에(Khuddakanikāya-saṅgāyana- kāle) 『테라가타』안에 합송하여 올리면서(theragāthāsu saṅgītiṁ āropento) 이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i.113)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서의 서문(ganth- ārambhakathā)에서 먼저 주석서를 여는 게송을 설한 뒤에 『테라가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길지만 여기에 인용해 본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수부띠 장로({1}) 등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득한 대로 도와 과의 행복을 반조한 뒤(maggaphalasukhaṁ pacca -vekkhitvā) ① 어떤 것은 우러나온 말씀(감흥어, udāna)을 통해서, ② 어떤 것은 자신의 증득의 머묾을 반조함(samāpattivihārapaccavekkhaṇa)을 통해서, ③ 어떤 것은 질문(pucchā)을 통해서, ④ 어떤 것은 반열반할 때에 교법(sāsana)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를 설명함(niyyānika-bhāva-vibhāva -na)을 통해서 말하였는데, 그 모두는 합송할 때(saṅgītikāle) 한 곳에 모아서 『테라가타』라고 법을 합송하는 분들(dhammasaṅgāhakā)에 의해서 합송되었다. 그리고 『테리가타』(Thig)는 장로니들을 지목하여(theriyo uddi- ssa) 읊어진 것이다.
이것은 율장‧경장‧논장이라는 삼장 가운데 경장에 포함되었다(suttanta -piṭaka-pariyāpannā).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라는 다섯 가지 니까야들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었다.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의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들(sāsanaṅgā = 구분교) 가운데 ④ 게송(偈頌, gāthā)의 구성요소의 함께 모음(gāthaṅga-saṅgaha)에 해당한다.
“8만 2천을 부처님으로부터 수지하였고
2천을 비구들로부터 [수지하였으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합니다.”(Thag. {1024})
라는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인 [아난다 존자]가 이와 같이 명백하게 밝힌 8만4천의 법의 무더기들 가운데 어느 정도의 법의 무더기들의 함께 모음(katipaya-dhammakkhandha-saṅgaha)에 해당한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모음(nipāta)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모음(eka- nipāta)이 있고 하나씩 증가하여 열넷의 모음까지 열네 개의 모음이 있으며, 열여섯의 모음, 스물의 모음, 서른의 모음, 마흔의 모음, 쉰의 모음, 예순의 모음, 일흔의 모음까지 모두 21가지 모음으로 함께 모았다(ekavīsati-nipāta -saṅgahā). 내려놓음(nipātana), 함께 넣음(nikkhipana)이라고 해서 ‘모음(nipāta)’이다. 하나인, 각각 하나로 된(ekeka) 게송들의 모음(nipāta), 함께 넣음(nikkhepa)이라고 해서 ‘하나의 모음(ekanipāta)’이다. 이 방법은 나머지 [모음]들에도 적용되는 뜻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의 모음에는 12개의 품들(vaggā)이 있다. 각각의 품들을 열 개씩으로 만들어서 [모두] 120명의 장로들이 포함되어 그만큼의 게송들이 있다. 그래서 [하나의 모음 발문에서] 말하였다. ―
“120분의 장로들은 할 일을 다 하였고 번뇌가 없으니
하나의 모음에서 대선인들에 의해 잘 합송되었다.”({120} 발문)
둘의 모음에는 49분의 장로들과 98개의 게송들이 있다.
셋의 모음에는 16분의 장로들과 48개의 게송들이 있다.
넷의 모음에는 13분의 장로들과 52개의 게송들이 있다.
다섯의 모음에는 12분의 장로들과 60개의 게송들이 있다.
여섯의 모음에는 14분의 장로들과 84개의 게송들이 있다.
일곱의 모음에는 다섯 분의 장로들과 35개의 게송들이 있다.
여덟의 모음에는 세 분의 장로들과 24개의 게송들이 있다.
아홉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아홉 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의 모음에는 일곱 분의 장로들과 70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하나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11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둘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24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셋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13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넷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28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다섯의 모음은 없다(pannarasanipāto natthi).
열여섯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32개의 게송들이 있다.
스물의 모음에는 열 분의 장로들과 245개의 게송들이 있다.
서른의 모음에는 세 분의 장로들과 105개의 게송들이 있다.
마흔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42개의 게송들이 있다.
쉰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55개의 게송들이 있다.
예순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68개(PTS: 62)의 게송들이 있다.
일흔의 모음(큰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71개의 게송들이 있다.
[이렇게 하여] 함께 모으면 264분의 장로들과 1,360개의 게송들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다.
“게송들은 1,360개이고
장로들은 264분임이 밝혀졌다.””(ThagA.i.2~3)
이상은 『테라가타 주석서』의 해당 부분을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테라가타』(Theragāthā)는 모두 264분 장로들의 게송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주석서에서는 『테라가타』는 1,360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고 264분의 장로들이 읊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ThagA.3). 현존하는 PTS본으로는 1,279개 게송으로 편집되어 있고 미얀마 육차결집본(VRI본)에는 1,288개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PTS본과 VRI본에 다른 내용은 없으며 게송의 편집과 특히 반복되는 부분(peyyala)의 생략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서 이렇게 9개 게송들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편집과 생략의 처리 부분은 해당 게송의 주해에서 밝히고 있는데, 본 해제 X-⑵-④-ⓓ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테리가타』(Thig)는 73명 장로니들의 게송을 담고 있고 주석서도 73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테리가타』게송의 수는 PTS본으로는 522개, VRI본으로는 524개로 편집이 되어 있으며 내용의 차이는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의 게송 수를 모두 합하면 PTS본에 의하면 1,279+522=1,801개이고 VRI본에는 1,288+524=1,812개이다.
역자가 저본으로 삼은 PTS본에 따라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장로들과 게송들의 숫자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모음: 120개 게송에 120분 장로들
둘의 모음: {121}~{218}까지의 98개 게송에 49분 장로들
셋의 모음: {219}~{266}까지의 48개 게송에 16분의 장로들
넷의 모음: {267}~{314까지의 48개 게송에 12분의 장로들
이상 120+49+16+12=197분
다섯의 모음: {315}~{374}까지의 60개 게송에 12분의 장로들
여섯의 모음: {375}~{458}까지의 84개 게송에 14분의 장로들
일곱의 모음: {459}~{493}까지의 35개 게송에 5분의 장로들
여덟의 모음: {494}~{517}까지의 24개 게송에 3분의 장로들
아홉의 모음: {518}~{526}까지의 9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의 모음: {527}~{596}까지의 70개 게송에 7분의 장로들
이상 12+14+5+3+1+7=42분
열하나의 모음: §§597~607까지의 11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둘의 모음: §§608~631까지의 24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열셋의 모음: §§632~644까지의 13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넷의 모음: §§645~672까지의 28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열여섯의 모음: §§673~704까지의 32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스물의 모음: §§705~948까지의 244개 게송에 10분의 장로들
서른의 모음: §§949~1050까지의 102개 게송에 3분의 장로들
마흔의 모음: §§1051~1090까지의 40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쉰의 모음: §§1091~1145 까지의 55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예순의 모음: §§1146~1208까지의 62개 게송에 1분의 장로
큰 모음: §§1209~1,279까지의 71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이상 8+10+7=25분(1+2+1+2+2+10+3+1+1+1+1=25)
총합 197+42+25=264분
그런데 지금 유통되는 PTS본의 게송의 개수는 VRI본과 차이가 난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 쪽의 <도표2>와 같다.
⑵ 『테라가타』의 전개 방법
이제 『테라가타』가 어떤 방법으로 264분 장로들의 1,279개 게송들을 정리하여 후대로 전승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자.
1. 264분 장로들의 게송을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 21가지 모음으로 나눈다.
2.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스물의 모음 이하의 특정 모음에 포함된 장로들의 게송은 열 개씩을 하나의 단위로 계산해서 그 모음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즉 스물의 모음이라고 해서 게송 스무 개만을 포함하고 있는 모음이 아니라 스무 개부터 스물아홉 개까지의 게송을 담고 있는 장로들의 게송들을 모두 이 스물의 모음에 넣었다는 뜻이다.
<도표2> PTS본과 VRI본의 게송의 수 |
번호 | 모음 | 장로의 수 | PTS | 주석서 | VRI |
1 | 1 | 120 | 120 | | |
2 | 2 | 49 | 98 | | |
3 | 3 | 16 | 48 | | |
4 | 4 | 12 | 48 | 13분 52게송 | 48 |
5 | 5 | 12 | 60 | | |
6 | 6 | 14 | 84 | | |
7 | 7 | 5 | 35 | | |
8 | 8 | 3 | 24 | | |
9 | 9 | 1 | 9 | | |
10 | 10 | 7 | 70 | | |
11 | 11 | 1 | 11 | | |
12 | 12 | 2 | 24 | | |
13 | 13 | 1 | 13 | | |
14 | 14 | 2 | 28 | | |
15 | 16 | 2 | 32 | | |
16 | 20 | 10 | 244 | 245 | 244 |
17 | 30 | 3 | 102 | 105 | 105 |
18 | 40 | 1 | 40 | 42 | 40 |
19 | 50 | 1 | 55 | | |
20 | 60 | 1 | 62 | 68 | 69 |
21 | 70 | 1 | 71 | | |
합계 | | 264/265 | 1,279 | | 1,288 |
예를 들면 스물의 모음에는 아디뭇따 장로(Th20:1 {705}~{725})부터 빠라빠리야 장로(Th20:10 {920}~{948})까지 모두 열 분의 게송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첫 번째로 {705}부터 {725}까지 아디뭇따 장로(Th20:1)의 21개 게송이, 두 번째로는 {726}부터 {746}까지의 빠라빠리야 장로(Th20:2)의 21개 게송이, 세 번째로는 {747}부터 {768}까지의 뗄라까니 장로(Th20:3)의 22개 게송이 … 마지막으로 {920}부터 {948}까지의 빠라빠리야 장로(Th20:10)의 29개 게송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열 분 장로들의 게송들은 모두 20단위의 게송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스물의 모음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쉰의 모음에 포함된 딸라뿌따 장로(Th50:1)의 {1091}부터 {1145}까지의 55개 게송들은 50단위의 게송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쉰의 모음에 넣은 것이다.
3. PTS본과 VRI본 『테라가타』의 편집 방법은 조금 다르다. 역자가 저본으로 삼은 것은 PTS본과 VRI본 둘 다이다. 그렇지만 본서의 편집은 VRI본을 많이 따랐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의 ‘4. VRI본과 PTS본의 편집 방법’을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두 본에서 장로들의 명칭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자는 다른 번역들에서 하던 대로 본서를 번역하면서도 PTS본의 명칭과 철자를 기본으로 하였고, PTS본과 VRI본의 표기가 다른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 )안에 VRI본을 넣어서 표기하였다. 예를 들면 마하꼿티따 장로(Th1:2)는 마하꼿티따 장로(Mahākoṭṭhita thera, VRI: Mahākoṭṭhika)로, 쭐라가왓차 장로(Th1:11)는 쭐라가왓차 장로(Cūla-gavaccha thera, VRI: Cūḷa-vaccha)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본문에서 빠알리 철자가 달라서 의미까지 달라지는 경우에는 노만 교수의 제언을 수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로마사깡기야 장로(Th1:27)의 게송 {27}c에서 PTS의 urasā panudahissāmi 보다 VRI의 urasā panudissāmi(pa+√nud, panudati, to dispel, remove, push away, 제거하다)로 읽어서 ‘나는 가슴으로부터 뽑아낼 것이고’로 옮겼다. PTS의 panudahissāmi는 어근도 명확하지 않다. 노만 교수는 Alsdorft의 padahessāmi(pra+√dhā, to strive)를 들고 있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처럼 apanessāmi로 해석해서 apaneti(apa+√nī, to take away, remove), 즉 뽑아내다로 이해하였다.
역자의 이번 번역에는 노만 교수의 영어번역본 ‘Elders' Verses I’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자는 노만 교수의 번역과 주해에서 도움이 되었던 부분들은 주해들에서 밝히고 있다.
4. VRI본과 PTS본의 편집 방법
⒜ VRI본의 편집 방법
① VRI본은 먼저 게송을 읊은 장로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모음 첫 번째인 수부띠 장로(Th1:1)는 “1_ Subhūtittheragāthā”로 소개하고 두 번째인 마하꼿티까 장로(Th1:2)는 “2_ Mahākoṭṭhika-ttheragāthā”로 소개한다.
② 그런 뒤에 그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을 나열한다.
③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이 끝나면 “이처럼 참으로 존자 XX 장로가 게송을 읊었다(itthaṁ sudaṁ āyasmā XXtthero gāthaṁ abhāsi -tthāti).”라는 표현으로 특정 장로 편을 마무리한다. 이 방법은 하나의 모음 첫 번째 품에 포함된 열 분의 장로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④ 그러나 하나의 모음 두 번째 품부터는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③ 대신에 특정 장로의 이름만을 게송의 아래에 “__ Cūḷagavaccho thero __ .”로 표기하고 있다.
⑤ 둘의 모음의 첫 번째 장로와 두 번째 장로의 경우에는 ③과 같이 전체를 다 표기하고 있으며 셋의 모음과 넷의 모음 이하에서는 모두 ④와 같이 표기하고 있다.
⑥ 『테라가타』의 맨 마지막 게송인 {1,279}가 끝날 때에는 ③과 같이 전체를 다 표기하고 있다.
이처럼 VRI본에서는 하나의 모음은 11번째 장로(Th1:11)부터, 그리고 둘의 모음은 세 번째 장로(Th2:3)부터 게송의 말미에 “__ Cūḷagavaccho thero __” 등으로 생략하는 방법으로 편집하였다. 역자는 『테라가타』한글 번역의 편집은 이러한 VRI본에 따랐으며 뻬얄라 처리가 된 부분은 모두 “쭐라가왓차 장로 (끝)”의 방법으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 PTS본의 편집 방법
① PTS본에는 하나의 모음이나 둘의 모음 등의 모음의 명칭만 맨 처음에 대문자와 큰 활자체로 나타나지 그 외에 품의 구분이나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이 처음에 나타나지 않는다.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은 게송 다음에만 언급된다.
②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이 끝나면 PTS본은 오직 하나의 모음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게송까지만 VRI본 ③의 경우처럼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 없이 모두 표기하고 있다.
③ 그리고 하나의 모음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각각 ‘i s āyasmā Puṇṇo Mantāniputto thero g a’와 ‘i s āyasmā Dabbo thero g a’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각각 ‘i s āyasmā Sītavaniyo thero’와 ‘i s āyasmā Bhalliyo thero’로 표기한 뒤에 여덟 번째 장로부터 쉰의 모음까지는 모두 ‘Vīro thero’ 등으로 뻬얄라 처리도 생략하여 표기하고 있다.
④ 예순의 모음과 큰 모음의 경우는 그 모음의 마지막에 ‘itthaṁ sudaṁ āyasmā Mahāmoggallāno thero gāthāyo abhāsitthāti’ 등으로 모두 표기하고 있다.
⒞ PTS본과 VRI본의 공통된 편집 방법
① 한 모음 안에 장로들이 20명이 넘는 하나의 모음과 둘의 모음은 10분의 장로들을 묶어서 품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하여 모두 12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는 하나의 모음은 모두 12개 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다. 모두 49분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는 둘의 모음은 모두 다섯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품부터 제4품까지에는 각각 1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고 마지막 제5품에는 9분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다.
VRI본은 이러한 품의 명칭을 그 품의 맨 앞에 밝히고 있지만 PTS본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그 품의 마지막인 품의 목록(uddāna) 앞에 ‘Vaggo paṭha -mo’ 등으로 밝힌 뒤 목록(uddāna)으로 정리하고 있다.
② 이처럼 각각의 품들이 끝나면 그 품이 끝났음을 밝히고 목록(uddāna)을 통해서 그 품에 포함된 장로들의 이름을 게송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품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셋의 모음부터 마지막인 큰 모음까지는 각 모음이 끝날 때 모음의 목록(uddāna)으로 그 모음에 포함된 장로들의 이름을 게송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③ 『테라가타』의 VRI본과 PTS본은 이러한 편집을 통하여 264분 장로의 1,279개 게송을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게송들은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 나타나는 게송들과 일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게송의 개수가 많은 뒤의 모음으로 갈수록 일치하는 숫자가 늘어난다.
예를 들면 스물의 모음에 들어있는 말룽꺄뿟따 장로(Th20:5)의 {794}~{817}의 24개의 게송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제4권「말룽꺄뿟따 경」(S35:95) §14에서 말룽꺄뿟따 존자가 읊은 게송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서 {818}부터 {841}까지의 셀라 장로(Th20:6)와 관계된 게송들 24개는 모두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16 이하에서 나타나는 게송들과 같다. 그리고 이「셀라 경」(M92)은 『숫따니빠따』에도「셀라 경」(Sn3:7/102ff)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X-⑵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의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④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자는 『테라가타』를 번역하면서 PTS를 저본으로 삼아서 장로들의 이름과 단어의 철자 등의 표기는 PTS본을 주로 하였지만 『테라가타』한글 번역의 편집은 VRI본을 따랐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컴퓨터용 텍스트 파일을 제공해 주는 VRI본을 주요한 저본으로 삼았다. 물론 게송들과 주석서의 설명은 PTS본 주석서와 VRI본 주석서를 대부분 대조하였지만 간혹 역자가 번역한 본서의【행장】이나 주해 등에 나타나는 인명이나 지명이 VRI본을 따르다 보니 PTS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
⑴ 운율(chando)이란 무엇인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는 경전이 『테라가타』이다. 『테라가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테라(thera)와 가타(gāthā), 즉 장로와 게송이다. 물론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에는 장로가 아닌 부처님이나 신들이나 마라나 합송자 등이 읊은 게송들도 담겨져 있지만(VII-⑵ 참조) 이것들도 모두 장로들이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여기 『테라가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테라(thera)와 가타(gāthā) 이 두 가지 용어에 대해서는 본 해제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에서 살펴보았다. 테라와 가타, 즉 장로와 게송 이 둘 가운데서 가타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장로들의 가르침은 본 『테라가타』가 아니더라도 『디가 니까야』등 니까야의 여러 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의 가장 큰 특징은 본서는 가타(게송)들만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는 점이다. 본서에 산문으로 된 장로들의 구경의 지혜나 감흥어나 사자후나 가르침 등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러한 가타, 즉 게송은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 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 등)으로 정의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8음절, 11음절 등으로 정해진 것(niyamita)이 정해진 음절(音節, akkhara)이고 4개의 구절 등으로 정해진 것이 정해진 구절[句, pada]이며 이렇게 정해져 있는 표현 방법이 바로 운율(chando)이다.
이제 운율에 대해서 살펴보자.
운율로 옮긴 빠알리어는 chanda 혹은 chando로 표기된다. 일반적으로 chanda는 열의[欲], 의욕, 욕망으로 옮겨지는 √chad2/chand(chādeti, Sk: chantti/chandati, 2/1류, 마음에 들다, to please, to seem)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cattaro iddhipādā]의 첫 번째가 이 chanda(열의)이다. 이것과 구분하기 위해서 운율을 뜻하는 베다와 고전 산스끄리뜨 chandas의 빠알리어를 PED는 chando로 표기하고 있고 역자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학자들은 중성명사인 이 chando(Sk: chandas)도 √chad2/chand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긴다. 이 운율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맑히고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의 세 가지 베다와 『아타르와베다』를 포함한 네 가지 베다, 즉 베다 본집(Saṁhitā)은 모두 운율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베다 본집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운율을 연구하는 것은 불교가 태동하기 전부터 발전되어 왔는데 이 운율(Chandas) 혹은 운율학은 음운(Śikṣā), 제사(Kalpa), 문법(Vyākaraṇa), 어원(Nirukta), 점성술(Jyotiṣa)과 함께 여섯 가지 베당가(Vedāṅga)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불전에서 chanda는 대부분이 열의[欲], 의욕, 욕망의 의미로 쓰이고 운율을 뜻하는 chando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는 베다를 생명으로 삼는 바라문들이 즐겨 사용했던 용어이다. 대신에 불교 교단에서는 게송을 뜻하는 gāthā라는 용어가 이를 대체하였다고 여겨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chando에 대한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들의 정의는 별도로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운율은 가타(게송), 즉 시(詩)의 음성적인 형식이기 때문에 가타에 대한 이해가 근본이지 가타를 구성하는 운율에 대한 관심은 주석가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⑵ 『테라가타』의 운율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운율은 ‘시문(詩文)의 음성적 형식. 음의 강약, 장단, 고저 또는 동음이나 유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줄여서 『테라가타』에 적용하면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이 바로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준해서 역자는 운율을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으로 이해하였다. 게송, 즉 가타(gāthā)는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 등)으로 주석서에서 설명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음절(音節, akkhara)과 구절[句, pada]로 정해진 표현 방법(vacana)이나 법칙(niyama)이 바로 음성적 형식이고 그것이 운율(chando)이다. 예를 들면 한 구절이 여덟 개의 ‘음절(akkhara)’로 ‘정해져 있고(niyamita)’ 이런 ‘구절[句, pada]’이 네 개로[四句] ‘정해진(niyamita)’ ‘표현 방법(vacana)’을 아누슈뚭(Anu- ṣṭubh, Pāli: Anuṭṭhubba) 운율(chando)이라 하고, 한 구절이 열한 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구절[句]’이 네 개로 정해진 ‘표현 방법’을 뜨리슈뚭(Triṣṭubh) 운율이라 한다. 역자는 위의 주석서의 설명에 나타나는 용어들로 운율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용어들을 ‘ ’ 안에 넣어서 표기하여 보았다.
이처럼 운율을 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정해진 음절(音節)과 정해진 구절[句]이다. 굳이 이를 빠알리어로 표기해 보면 각각 niyamita-akkhara와 niyamita-pada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빠알리 문헌에 이런 용어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처럼 운율의 핵심이 되는 키워드인 음절(音節)과 구절[句]이라는 용어는 이미 주석서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기본 설명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운율(chando)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운율에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내용은 전적으로 인도 운율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삥갈라(Piṅgala)가 지은 『운율학 수뜨라』(Chandas Sūtra)에서 정리하고 있는 바라문교 운율학의 내용과 같아져 버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아래에서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테라가타』의 운율에 대한 노만 교수의 설명은 운율학에서 사용하고 정의하는 운율학의 용어들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⑶ 운율은 게송들의 골격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석서들은 게송(gāthā)을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SnA.i.141)으로 설명하고 있다. 게송은 요즈음의 시(詩)를 말한다. 이러한 게송 혹은 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운율(chando)이다. 산문과 게송이 다른 것은 운율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시인 경」(Kavi-sutta, S1:60) §3에서 이렇게 읊으신다.
“운율이 게송들의 골격이고
음절들이 게송들을 만들며
명칭을 게송은 의지하고
시인이 게송들의 터전이로다.”(S1:60 §3 {202})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운율이 게송들의 골격이다(chando nidānaṁ gāthānaṁ).’라는 것은 가얏띠(Gāyatti, Sk. Gāyatri) 등을 [구성하는] 운율은 게송의 골격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시(pubba-paṭṭhāpana-gāthā)부터 시작해서 ‘이것은 무슨 운율로 되어 있는가?’라고 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음절이 게송들을 만든다(akkharā viyañjanaṁ).’라는 것은 음절(akkhara)이 구절[句, pada]을 만들고 구절이 게송을 만들고 게송이 뜻을 드러내기(atthaṁ pakāseti) 때문이다. ‘게송은 명칭을 의지한다(nāma-saññissitā gāthā).’는 것은 바다 등의 개념(paññatti)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게송을 지을 때 바다나 땅과 같은 명칭을 의지하여 짓기 때문이다. ‘시인이 게송들의 터전(kavi gāthānam āsayo)’이라는 것은 시인(kavi)으로부터 게송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게송들의 터전(patiṭṭhā)이다.”(SA.i.94~95)
이상 역자가 옮긴「시인 경」(S1:60)에서 인용하였다.
복주서는 주석서에서 나타나는 ‘음절이 구절[句]을 만들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석서에서] ‘음절이 구절[句]을 만들고(akkharañhi padaṁ janeti)’라고 하였다. 음절이 모인 것(akkhara-samudāya)이 구절[句]이고 구절이 모인 것(pada-samudāya)이 게송이다. 모인 것[群集, samudāya]은 모으는 것들(samudāyī)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데(vyañjīyati) 그것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taṁpavattanato). 그러므로 문장 속에 있는 것(byañjana-bhāve ṭhita)이 음절이고 음절이 모인 것이 구절이며 구절은 그 [음절을] 특징짓고 알게 한다고 해서 ‘음절이 구절을 만들고’라고 하였다.”(SAṬ.i.131)
이처럼 게송은 정해진 운율(chando)이 있고 그 운율에 맞게 음절(akkha- ra)을 배대하여 게송을 짓는다.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26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읊으신다, 같은 내용이 율장 『대품』(Vin.i.246)에도 나타나고 있다.
“불에 헌공하는 것이 제사 중에 제일이고,
사위뜨리는 운율의 제일이다.
왕은 사람들 중에 제일이고,
바다는 강들 가운데 제일이다.
달은 별들 중에 제일이고,
태양은 빛나는 것들 중의 제일이다.
공덕을 바라면서 보시를 올리는 자들에게는
승가가 제일이다.”(M92 §26 = Vin.i.246)
본 게송에서 세존께서는 ‘사위뜨리는 운율의 제일이다(Sāvittī chandaso mukhaṁ).’라고 하셨다. 여기서 ‘사위뜨리(Sk: Sāvitrī, Pāli: Sāvittī)’는 인도의 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 운율로 바라문교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운율이다.
초기불전에서처럼 베다 등의 모든 인도의 게송도 네 구절로 된 사구게(四句偈)가 기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구게 가운데서도 한 구(句, pāda)에 8개의 음절이 들어 있어서 네 개의 구에 모두 32음절로 되어있으며, 모든 산스끄리뜨 운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는 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 아누슈뚭(Anuṣṭubh, Pāli: Anuṭṭhubba) 운율(chandas)이 있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이것을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 취급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사위뜨리는 네 구절이 아니라 세 구절로 구성되어 있는 삼구게이다. 그리고 한 구절이 8음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2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도 사위뜨리를 “세 개의 구(句)에 24개의 음절로 된 것(tipada catu- vīsatakkhara ― SA.ii.403)”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위뜨리 운율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인도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셀라 경」(M92) §26의 주해에서)
그래서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베다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에 ‘사위뜨리가 운율 가운데 제일(Sāvittī chandaso mukhaṁ)’이라고 하셨다.”(MA.iii.406)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사위뜨리로 된 『리그베다』게송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 위에서 소개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에서 운율의 보기로 나타나는 바로 이 가얏띠이다. 가얏띠(gāyatti, Sk: gāyatri)는 『리그베다』에 실려있는 가야뜨리 만뜨라(Gāyatri Mantra, RV.iii.62 10)이다. 『리그베다』에 들어있는 가야뜨리 만뜨라는 다음과 같다.
“[oṁ bhūr bhuvaḥ suvaḥ]
tat savitur vareṇyaṁ
bhargo devasya dhīmahi
dhiyo yo naḥ prachodayāt.”(RV.iii.62 10)
이 가야뜨리 만뜨라는 태양의 신인 사위뜨르(Savitṛ)를 찬미하는 게송으로 그의 지혜가 찬미자들을 일깨워 주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먼저 읊는 ‘옴 부르 부와하 스와하(oṁ bhūr bhuvaḥ suvaḥ)’는 만뜨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 ] 안에 표기하였다. 인도에 여행을 가서 라디오나 스피커로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옴 부르 부와하 스와하 …’로 시작하는 이 가야뜨리 만뜨라이다.
⑷ 베다의 기본 운율 7가지
인도 바라문교의 기본 교전으로는 『리그베다』를 위시한 세 가지 베다가 있다. 그래서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도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하고(tiṇṇaṁ vedānaṁ pāragū)’라는 표현이 나타난다.(D4 §5 등등) 여기서 ‘세 가지 베다(ti-vedā)’란 『리그베다』(Ṛg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사마베다』(Sāmaveda)인데 초기불전에서 『아타르와베다』(Atharvaveda)는 베다로 인정되지 않는다. 세 가지 베다 등에 대한 논의는 『맛지마 니까야』제3권「브라흐마유 경」(M91) §2의 주해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세 가지 베다는 모두 게송, 즉 운율이 있는 시로 되어 있으며 이를 찬미가(sūkta)라 부르기도 하고 만뜨라(mantra, Pāli: manta)라 부르기도 한다. 베다에 나타나는 찬미가에는 다양한 운율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7가지 운율을 베다의 기본 운율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일곱 가지는 ① 가야뜨리(Gāyatri), ② 우슈니흐(Uṣṇih, √snih, to be sticky), ③ 아누슈뚭(Anuṣṭubh), ④ 브르하띠(Bṛhatī), ⑤ 빵끄띠(Paṅkti), ⑥ 뜨리슈뚭(Triṣṭubh), ⑦ 자가띠(Jāgati)이다. 이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① 가야뜨리(Gāyatri)는 세 구절[句, pada]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8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3=2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② 우슈니흐(Uṣṇih)는 네 구절(pada)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7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7×4=28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③ 아누슈뚭(Anuṣṭubh)은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8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4=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④ 브르하띠(Bṛhatī)는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와 네 번째 구절은 8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세 번째 구절이 12음절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모두 8×3+12=36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에 드물게 나타나며 그냥 9×4=36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⑤ 빵끄띠(Paṅkti)는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10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10×4=40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에는 한 구절에 8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다섯 구절로 된 게송으로 나타나며 그래서 8×5=40이 된다.
⑥ 뜨리슈뚭(Triṣṭubh)은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11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11×4=4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⑦ 자가띠(Jāgati)는 한 구절(pada)이 12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12×4=48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① 가야뜨리의 24음절부터 시작해서 4음절씩 증가하여 ② 우슈니흐는 28음절, ③ 아누슈뚭은 32음절, ④ 브르하띠는 36음절, ⑤ 빵끄띠는 40음절, ⑥ 뜨리슈뚭은 44음절, ⑦ 자가띠는 48음절이 된다. 이 가운데 32음절로 된 아누슈뚭과 44음절로 된 뜨리슈뚭과 48음절로 된 자가띠의 세 개 운율은 본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에도 80% 이상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베다에도 이 세 운율로 된 게송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세 구절[三句偈], 즉 8×3=24음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다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가야뜨리(Gayatri) 운율은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테라가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⑸ 『테라가타』의 게송들에 적용된 운율들
노만 교수는 그가 옮긴 『테라가타』영어 번역 ‘The Elders' Verses’의 해제(INTRODUCTION)에서 『테라가타』에 실린 1,279개 게송들의 운율에 대해서 ‘VII. THE METRES OF THERAGĀTHĀ’라는 제목으로 전체 해제의 절반에 해당하는 33쪽부터 64쪽에 걸쳐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제 노만 교수의 영어 번역에 실린 해제를 토대로 『테라가타』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은 어떤 운율들로 읊어진 것인지 살펴보자.
이 VII의 앞부분(xxxiii~xxxiv)에서 노만 교수는 『테라가타』에 포함된 게송들이 가지는 운율을 9가지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9가지 운율이 혼합된 게송으로 ‘뜨리슈뚭 운율과 자가띠 운율이 혼합된 것’ 등의 10개를 소개하여 1,279개 게송들에는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노만 교수가 정리한 이 19종류의 운율로 1,279개 게송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역자는 노만 교수의 해제(INTRODUCTION, K.R. Nor- man, xxxiii~xxxiv)에서 xxxiv쪽에 실린 실로까(Siloka)를 맨 앞에 넣어서 여기에 전재하였다. 실로까가 가장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것은 운율의 기본인 아누슈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숫자는 게송 번호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글 음역을 표기하였다.
① Śloka(슐로까, 실로까): 2, 4, 9, 11, 13-16, 18, 20, 23-34, 39-40, 44-49, 55, 58-61, 63-64, 66-67, 70, 74, 76, 78-84, 87-90, 92-97, 100, 105-108, 112-114, 116-117, 120-122, 125-141, 143-150, 153-179, 181-186, 191-198, 201-204, 208, 213-233, 236-257, 261-302, 304, 309, 311-320, 322-324, 330-355, 360-369, 375-380, 387-398, 400-410, 417-488, 491-493, 496-517, 530, 537-546, 548-550, 552-553, 557-586, 597-598, 600-723, 726-742, 744-775, 789-793, 795, 797, 799, 801, 803, 805-865, 871-873, 875-876, 878-908, 910-980, 982-1003, 1005-1008, 1010-1017, 1020-1050, 1054-1071, 1074-1088, 1090, 1146-1151, 1153-1166, 1168-1180, 1182-1183, 1185-1213, 1223-1233, 1235-1241, 1246-1251, 1254-1262, 1276-1,279.
② Triṣṭubh(뜨리슈뚭): 3, 10, 12, 17, 72, 101, 142, 151-152, 188, 303, 527-529, 532-533, 554-556, 776-783, 785-786, 866, 868-870, 1009, 1099-1100, 1263-1271, 1273-1274.
③ Jagatī(자가띠): 35, 69, 77, 86, 109, 209, 211-212, 307-308, 518-522, 524-525, 725, 1103, 1106, 1108, 1111-1112, 1114-1115, 1117-1120, 1123, 1126, 1128-1136, 1138, 1140-1145, 1184.
④ Vaitālīya(와이딸리야): 19, 41, 57, 68, 71, 75, 85, 103, 123, 180, 210, 234-235, 399, 599, 877, 1018-1019, 1051, 1167, 1234.
⑤ Aupacchandasaka(아우빳찬다사까): 5-8, 51-54, 310, 325-329, 411-416, 981.
⑥ Rathoddhatā(라톳다따): 258-260.
⑦ Vegavatī(웨가와띠): 1214-1217. 1221.
⑧ Gaṇacchandas(가낫찬다스): 22, 36, 42-43, 50, 65, 91, 104, 118, 189-190, 199-200, 321, 357-358, 386, 489, 588-589, 595-596, 1242 -1245.
⑨ 이름이 없는 운율: Ⅲ 381, 382-384.
혼합된 운율
① Triṣṭubh/Jagatī: 38, 73, 110, 187, 205-206, 305, 370-374, 490, 523, 526, 531, 534-536, 547, 724, 784, 787-788, 867, 874, 1091-1098, 1101-1102, 1104-1105, 1107, 1109-1110, 1113, 1116, 1121-1122, 1124-1125, 1127, 1137, 1139, 1252, 1272, 1275.
② Triṣṭubh/Śloka: 98-99, 743, 794, 796, 798, 800, 802, 804, 1253.
③ Jagatī/Śloka: 306, 1089.
④ Vaitālīya/Aupacchandasaka: 124, 207, 494-495, 909, 1052- 1053, 1072-1073, 1181.
⑤ Vaitālīya/Śloka: 21, 37, 551.
⑥ Vaitālīya/Gaṇacchandas: 356.
⑦ Vaitālīya/Vegavatī: 62, 119, 1218-1220, 1222.
⑧ Vaitālīya/Vegavatī/Śloka: 1004.
⑨ Aupacchandasaka/Śloka: 1.
⑩ Gaṇacchandas/Śloka: 56, 102, 115, 359, 385, 587, 590-594, 1152.
이상의 인용에서 보듯이 『테라가타』에 담긴 1,279개 게송들 가운데 거의 95% 정도가 실로까(아누슈뚭)와 뜨리슈뚭과 자가띠와 와이딸리야 네 개의 운율로 되어 있고 전체의 5분의 3, 즉 60% 정도가 실로까로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⑹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의 보기
이제 『테라가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로까와 뜨리슈뚭과 자가띠와 와이딸리야 운율에 대한 보기를 몇 가지 들어보자. 먼저 실로까 혹은 아누슈뚭 운율부터 살펴보자.
① 아누슈뚭(Anuṣṭubh, 실로까, Śloka, Siloka)
베다 산스끄리뜨의 운율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고 기본적인 운율은 아누슈뚭 운율이다. 이것이 대문법가 빠니니 이후의 산스끄리뜨 시대인 고전 산스끄리뜨 혹은 표준 산스끄리뜨에서는 Śloka(슐로까)라 불리게 되었고 빠알리어에서는 Siloka(실로까)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누슈뚭 운율과 실로까 운율은 같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운율을 결정하는 기본은 음절(akkhara)과 구절[句, pada]인데 둘 다 한 구절에 8음절씩, 전체 4구절, 즉 8×4=32음절로 구성된 게송이다. 이것을 불교 문헌에서는 사구게(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 Sk: catuṣpādikā gāthā)라 부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테라가타』에서 맨 먼저 나타나는 실로까 운율이라 할 수 있는 마하꼿티까 장로(Th1:2)의 게송을 예로 들 수 있다.
upasanto uparato,
mantabhāṇī anuddhato|
dhunāti pāpake dhamme,
dumapattaṁva māluto ||2||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빠알리 음가를 한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 안은 음절의 개수이다.
우빠산또 우빠라또 (8)
만따바니 아누닷또 (8)
두나띠 빠빠께 담메 (8)
두마빳땀 와 말루또 (8)
“고요하고 제어되고
지혜롭게 말을 하고 들뜨지 않은 사람은
사악한 법들을 흔들어 날려버리나니
마치 바람이 나무의 잎사귀를 그리하듯이.” ({2})
이처럼 이 게송의 1/2/3/4구절[句, pada]이 각각 여덟 음절(akkhara)씩을 포함하여 전체는 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8×4=32음절의 전형적인 실로까 혹은 아누슈뚭 운율로 된 게송이다.
② 뜨리슈뚭(Triṣṭubh)
그리고 『테라가타』의 세 번째 게송인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아래 게송은 44음절로 된 뜨리슈뚭(Triṣṭubh) 운율로 되어 있다.
paññaṁ imaṁ passa tathāgatānaṁ,
aggi yathā pajjalito nisīthe |
ālokadā cakkhudadā bhavanti,
ye āgatānaṁ vinayanti kaṅkhaṁ ||3||
빤남 이맘 빳사 따타가따남 (11)
악기 야타 빳잘리또 니시테 (11)
알로까다 짝쿠다다 바완디 (11)
예 아가따남 위나얀띠 깡캄 (11)
“여래들의 이 통찰지를 보라.
마치 한밤에 불이 타오르듯이
그분들은 광명을 주시고 눈을 주시나니
찾아온 자들의 의심을 길들이신다.” ({3})
이처럼 본 게송은 한 구절(pada)에 11개의 음절(akkhara)이 들어있어 모두 11×4=44개의 음절로된 전형적인 뜨리슈뚭 운율이다.
③ 자가띠(Jagatī)
그리고 사만냐까니 장로(Th1:35)의 아래 게송은 48음절로 구성된 자가띠(Jagatī) 운율의 보기가 된다.
sukhaṁ sukhattho labhate tadācaraṁ,
kittiñca pappoti yasassa vaḍḍhati |
yo ariyamaṭṭhaṅgikamañjasaṁ ujuṁ,
bhāveti maggaṁ amatassa pattiyā ||35||
수캄 수캇토 라바떼 따다짜람 (12)
낏띤짜 빱뽀띠 야삿사 왓다띠 (12)
요 [아]리얌 앗탕기깜 안자삼 우줌 (12)
바웨띠 막감 아마땃사 빳띠야 (12)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것을 실천하여
행복을 얻고 찬탄을 받고 평판을 증가시킵니다.
그것은 성스럽고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졌고
올곧고 반듯하나니
죽음 없음[不死]을 얻기 위해서
그는 그 도를 수행합니다.” ({35})
이 게송은 한 구절(pada)이 12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12×4=48 음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가띠(Jagatī) 운율의 보기가 된다. 셋째 구절[句]의 처음에 나타나는 yo ariyam의 발음은 요리얌이 된다. 두 개의 모음 즉 o와 a는 연음이 되어 하나의 음절로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셋째 구절도 12음절이 된다.
④ 와이딸리야(Vaitālīya)
그리고 아래 시리왓다 장로(Th1:41)의 게송은 와이딸리야(Vaitālīya) 운율의 보기가 된다.
vivaramanupatanti vijjutā,
vebhārassa ca paṇḍavassa ca |
nagavivaragato ca jhāyati,
putto appaṭimassa tādino ||41||
위와람 아누빠띤띠 욋주따 (11)
웨바랏사 짜 빤다왓사 짜 (10)
나가위와라가또 짜 자야띠 (11)
뿟또 압빠띰 앗사 따디노 (10)
“웨바라와 빤다와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번개들이 떨어진다.
비견(比肩)할 수 없고 여여한 분의 아들은
산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가서 참선을 한다.” ({41})
이 게송은 한 구절(pada)에 10개나 11개씩의 음절(akkhara)이 들어있어 전체 11+10+11+10=42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⑺ 역자의 변
노만 교수의 정리에 의하면 여기서 언급한 실로까(아누슈뚭), 뜨리슈뚭, 자가띠, 와이딸리야 운율이 『테라가타』에서 순서대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운율이다. 그리고 이 운율들이 혼합된 운율을 합하면 이 네 개 운율로 된 것이 1,279개 게송의 거의 95%는 되는 듯하다.
운율은 엄격히 말하면 장음과 단음, 그리고 장음과 단음의 배열 순서 등도 따져서 봐야 한다. 노만 교수는 이런 사실을 표기하고 있다. 역자는 여기서 보기로 들면서 장음‧단음은 무시하고 음절의 숫자만을 가지고 예를 들었다.
여기에서 인용한 역자의 한글 번역에서 보듯이 역자는 운율에는 개의치 않고 게송의 정확한 뜻을 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노만 교수 자신도 그러하다고 노만 교수의 서문(Introduction)에서 밝히고 있다.(K. R. Norman, xxxii)
그리고 앞에서 밝혔듯이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본서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 가운데 61개 정도는 네 구절로 구성된 사구게[四句偈]가 아니라 여섯 구절로 구성된 육구게[六句偈]로 되어 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가타를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句]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ThagA.i.8)이라고 설명하였다.(해제 II-⑸-②-ⓒ와 ⓓ 참조) 육구게일지라도 운율의 적용은 같다. 여섯 구절 전체가 실로까 운율로 되어 있으면 이 게송은 실로까이고 여섯 구절 가운데 네 구절이 뜨리슈뚭 운율로 되어 있고 두 구절이 자가띠로 되어 있다면 이것은 뜨리슈뚭과 자가띠가 혼합된 운율로 보면 될 것이다.
역자는 4구게는 네 구절의 한글로 옮기고 6구게는 여섯 구절의 한글로 옮기는 기본 원칙은 고수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위 ③ 자가띠(Jagatī)의 예문으로 인용한 사만냐까니 장로(Th1:35)의 {35}에서처럼 한 구절에 다 넣으면 편집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4구게도 여섯 구절 등으로도 옮겼고 6구게를 다섯 구절이나 네 구절로 옮긴 곳도 있다.
V.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
⑴ 들어가는 말
『테라가타』는 『테라가타 주석서』가 없이 읽어내기가 힘들다. 특히 『테라가타』의 1,279개의 게송을 읊은 264분 장로들은 그 이름만이 함께 실려서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테라가타 주석서』의 도움 없이 『테라가타』자체로서는 이분들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본 해제의 본 장 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제 이처럼 중요한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대주석가 담마빨라 스님은 방대한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분이며 그래서 그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즉 스승(ācariya)으로 호칭되고 있다.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는 역자가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판한 『우다나』의 해제와 『이띠웃따까』의 해제에서 이미 설명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적고자 한다.
『우다나』해제의 10. 『우다나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와 『이띠웃따까』해제의 6. 『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는 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인 ‘A Study in Paramattha- mañjūsā’의 제1장 서문의 ‘Dhammapāla ― the author of Pm’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우다나 주석서』와 『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적은 것이다. 그리고 『우다나』해제에서 적은 것을 요약하여 여기 『테라가타』해제에도 싣고 있음을 밝힌다.
상좌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두 분을 들라면 바로 서기 400~450년쯤에 생존하셨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과 그로부터 150년쯤 후인 서기 550 ~600년쯤에 사셨던 것으로 여겨지는 아짜리야 담마빨라 스님을 들 수 있다.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대부분의 주석서들을 완성한 분이며 담마빨라 스님은 나머지 주석서들과 특히 대부분의 복주서들을 완성하여 상좌부 불교의 삼장-주석서-복주서 전통을 완결한 분이다.
상좌부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는 대부분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온다. 『마하왐사』와 『간다왐사』등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13가지 주석서들을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붓다고사 스님이 남긴 주석서 13권과 이들에 대한 논의는 『청정도론』역자 서문 §5.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⑵ 담마빨라 스님의 저작 18권
17세기에 마얀마에서 난다빤냐(Nandapañña) 스님이 지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대한 역사서라 할 수 있는 『간다왐사』(Gandhavaṁsa)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담마빨라 스님은 모두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18개는 아래의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I.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 -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우다나』등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
II. 『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ñjūsā, Pm) - 『청정도론 복주서』1권
III. 『리낫탑빠까시니』(Līnatthappakāsinī, 숨은 뜻을 밝힘) - 경장의 복주서 - 4권
IV. 『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 숨은 뜻을 설명함) - 논장의 복주서 - 3권
V.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ṇa) 등에 대한 주석서(aṭṭhakathā) - 3권
이렇게 하여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 문헌들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전해온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인 『빠라맛타디빠니』(Parama -tthadīpanī)에 포함되어 있다. 『빠라맛타디빠니』에는
① 『우다나 주석서』(UdA)
② 『이띠웃따까 주석서』(ItA)
③ 『위마나왓투 주석서』(VvA)
④ 『뻬따왓투 주석서』(PvA)
⑤ 『테라가타 주석서』(ThagA)
⑥ 『테리가타 주석서』(ThigA)
⑦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우다나』등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이다.
⑶ 『테라가타 주석서』
여기서 보듯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 -nī)에 포함되어 『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여섯 개 경들의 주석서와 함께 전해온다. 역자는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정리한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을 통해서 이 『테라가타 주석서』를 읽고 검색과 인용을 하고 있다. 『우다나 주석서』는 1995년에 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The Udāna Commentary’(Vol. I, II)로 영역되어 PTS에서 출간되었지만, 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아직 영어로 번역‧출간이 되지 않았다.
역자는 본서의 주해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석서의 설명은 가급적이면 모두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인용하여 한글로 옮겨서 실은 뒤 출처를 밝혔다.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 )안에 빠알리 용어들을 많이 넣었다. 물론 기존의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4부 니까야의 주해를 그대로 가져온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해들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을 인용한 것이다.
⑷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림 스님도 박사학위 청구 논문에서 밝혔고 역자가 번역한 『우다나』역자 서문에서도 인용하였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담마빨라 스님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따라다닌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여러 명인가?
둘째, 담마빨라 스님과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빨라 스님은 같은 분인가 다른 분인가?
셋째, 담마빨라 스님은 어느 때 사람인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더 많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섯 가지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다나』역자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히뉘버 교수는 『우다나 주석서』(UdA.94)에 나타나는 “Kathāvatthu- pakaraṇassa ṭīkāyaṁ gahetabbo( 『까타왓투』논서의 복주서에서 취해야 한다).”를 예로 들어서, “이처럼 [ 『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디빠니』와 아비담마의 복주서인 『리낫타완나나』가 상호 참조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명의 담마빨라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의 통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역자는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교수나 피어리스(A. Pieris)나 대림 스님이나 특히 히뉘버 교수의 이 의견에 동의하며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림 스님의 제언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① 먼저 아비담마 칠론의 아누띠까(복복주서)인 『리낫타완나나』를 짓고 ② 다음에 『쿳다까 니까야』의 시로 된 7개 경전들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디빠니』를 짓고 ③ 그다음에 『청정도론』의 복주서인 Pm과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의 복주서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림 스님의 언급처럼 Pm에 『쿳다까 니까야』의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를 참조하라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에 7개 주석서들이 Pm보다는 먼저 쓰여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⑸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담마빨라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서기 5세기)보다는 후대이고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를 지은 사리뿟따 스님(서기 12세기)보다는 이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히뉘버 교수는 Porāṇagaṇthipada – Dhammasirigaṇṭhipada – Ānanda – Vajirabuddhi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이 와지라붓디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은 동시대 사람이고 남인도 출신이라고 결론짓고 이 연표에 나타나는 스님들은 서기 450년부터 서기 600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담마빨라 스님은 서기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이라고 제시한다.
『청정도론』등의 13개의 주석서들을 지은 붓다고사 스님과 아비담마 칠론에 대한 『물라띠까』(근본복주서)를 지은 아난다 스님과 『빠라맛타만주사』를 비롯한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활동한 서기 5~6세기는 상좌부 불교의 교학이 정리되고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전파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간추리면,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며, 6세기 후반부(서기 550~600년)에 실존했던 분이고 남인도 출신이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였고, 북방의 다르마빨라(法護) 스님과는 동일인이 아니다.
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
『테라가타』에는 1,279개 게송들과 이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이름만 실려서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이 1,279개 게송을 읊은 264분의 장로들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264분, 줄여서 259분 장로들에 대한 모든 행장과 일화 등은 모두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가 아니면 『테라가타』의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행장이나 게송을 읊게 된 배경이나 인연 등의 사항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의 도움이 없이 『테라가타』만으로 여기에 실려있는 게송을 읊은 장로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각 게송의 말미나 일군의 게송들의 말미에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고 게송 안에서 장로들이 자신에 대해서 읊은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것만으로 게송을 읊은 장로들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서기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로 추정되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오는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1,279개의 게송을 읊은 264분(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의 장로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이제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259분 장로들의 행장이 모두 상세하게 나타난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259분 장로 스님들이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가 없이는 게송을 읊은 분들과 이들이 특정 게송을 읊은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지만 역자는 전생의 인연들에 대해서는 본서에 옮겨 싣거나 소개하지 않았다. 각 장로들의 금생의 인연인 태어난 지역과 가문과 출가한 인연과 수행한 일화와 깨달음을 얻은 인연과 특정 게송 혹은 게송들을 읊은 인연 등에 대해서는 주석서를 인용하여 밝힘으로써 주석서에 나타나는 금생의 인연을 중시하였다.
둘째, 『테라가타 주석서』의 또 다른 큰 특징으로는 이 259분들이 언급되는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아빠다나』(Apadāna)의 구절들을 아주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길게는 몇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되기도 한다. 역자가 『테라가타 주석서』를 ‘apadān’으로 검색하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주석서는 싱갈라삐따 장로(Th1:18), 소빠까 장로(Th1:33), 왓다 장로(Th5:5)와 여섯의 모음 꿀라 장로(Th6:4)부터 삽바까미 장로(Th6:14)까지와 그 외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 등 대략 35분 장로들을 제외한 224분 정도의 『아빠다나』를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에 나타나는 이들 출처들을 거의 대부분 “[장로의 일화는] 『아빠다나』에도 나타나고 있다.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행장 등등)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각 장로들의 『아빠다나』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여 소개하였다.
셋째,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게송들을 읊은 배경도 대부분 밝히고 있다.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배경에 대해서는 본 해제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과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넷째, 『테라가타』의 특정 게송이 구경의 지혜인지 감흥어인지 사자후인지 특히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읊었는지 등의 게송의 성격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 주석서』의 모두(冒頭) 부분(ThagA.i.2)을 들 수 있다.(본 해제 IX.-⑴ 참조)
주석서의 이런 설명을 토대로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이유나 배경 등을 11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았다. 그것은,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 ② 감흥어로 읊은 것 ③ 사자후를 토한 것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것 ⑥ 반열반을 알리는 것 ⑦ 특별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 것 ⑧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 등이다.
이 열한 가지는 모두 본 해제 X-⑴ 게송들을 읊은 이유에서 정리하여 보았는데 이 가운데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였고 출처를 밝히면서 도표로 정리하였다.
다섯째, 『테라가타』는 게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뜻이 함축적이고 축약적이다. 그 함축적인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주석서의 도처에서 특정 단어나 특정 구절이나 특정 문장이나 특정 게송 전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여 특히 산문으로 전달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 주석서뿐만 아니라 산문으로 된 경들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의 공통된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을 참조하기 바란다.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
이처럼 몇 가지로 살펴본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테라가타』와 여기에 등장하는 장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그 전개 방법 등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과 이를 읊은 장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과 그 전개 방법 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테라가타 주석서』는 264분 혹은 259분의 장로들과 이분들이 읊은 게송들을 설명하는 것이 기본골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테라가타 주석서』전체는 그 구조와 전개 방법이 명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는 하나의 정해진 틀을 264곳에 똑같이 전개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로들과 그들이 읊은 게송들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⑴ 게송을 읊은 장로의 행장, ⑵ 게송을 읊은 배경, ⑶ 게송의 성격, ⑷ 게송에 대한 자세한 주석이라는 방법을 꼭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고 역자는 정리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⑴ 게송을 읊은 장로의 행장은 다시 ① 전생담, ② 금생의 인연, ③ 출가한 계기와 인연, ④ 아라한이 된 인연 ⑤ 해당 『아빠다나』의 인용이라는 다섯으로 구성된다. 이제 이 각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⑴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행장
첫째, 주석서는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 장로의 행장부터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장로들의 행장을 소개하는 것도 같은 방식에 의해서 진행하는데 이것은 다시 아래의 다섯 가지 방법(① 전생담, ② 금생의 인연, ③ 출가한 계기와 인연, ④ 아라한이 된 인연 ⑤ 해당 『아빠다나』의 인용)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① 장로들의 행장을 소개하면서 먼저 장로들의 전생담 혹은 전생 인연을 밝히고 있다. 거의 대부분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먼저 ‘무엇이 [장로의] 기원(起源)인가(kā uppatti)?’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각 장로들의 전생담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의 첫 번째 게송을 읊은 수부띠 장로(Th1:1)의 행장을 소개하면서 ‘무엇이 [장로의] 기원인가(kā uppatti)?’라고 한 뒤 ‘지금부터 십만 겁 정도 이전에 세상의 지도자이신 빠두뭇따라 세존이 태어나시기 이전에 항사와띠라는 도시에서(ito kira kappa -sata-sahassa-matthake anuppanneyeva Padumuttare bhagavati lokanāthe Haṁsavatīnāmake nagare) …’라고 아주 오래전 전생의 일화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장로인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행장을 시작하면서도 역시 ‘kā uppatti(무엇이 장로의 기원인가)?’라고 한 뒤 ‘이 장로도 역시 빠두뭇따라 세존의 시대에 항사와띠 도시에서 큰 재산을 가진 가문에 태어나서(ayampi thero Padumuttarassa bhagavato kāle haṁsavatīnagare mahābhogakule nibbattitvā) …’라고 설명을 시작한다. 이 방법은 거의 모든 장로들의 행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② 이렇게 전생의 인연을 밝힌 뒤에는 각 장로들의 금생의 인연을 밝히고 있다. 사리뿟따 장로나 아난다 장로 등의 유명한 장로들의 경우에는 아주 소상하게 밝힌다. 특히 많은 장로들의 경우에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사왓티에서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마하꼿티따 장로(Th1:2))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devamanussesu saṁsaranto imasmiṁ Buddhuppāde)’로 검색을 해보면 134곳 정도에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③ 그리고 어떤 인연과 어떤 계기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서 어떤 계기로 출가를 감행하였는가 하는 출가한 계기나 인연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답바 장로(Th1:5)는 그가 모태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어서 화장을 하였는데 그는 나무 장작 위로 떨어져서 생명을 건졌으며 일곱 살에 스승님을 뵙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 출가하였다. 그는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받았으며 첫 번째 머리카락 뭉텅이가 떨어지는 순간에 예류과에 확립되고 두 번째 머리카락 뭉텅이가 떨어질 때에는 일래과에, 세 번째에는 불환과에, 전도 후도 아닌 모든 머리카락이 다 떨어질 때에 아라한과를 실현하였다고 한다.(ThagA.i.43)
④ 여기에 더하여 특정 장로가 어떤 계기로 혹은 어떻게 절박함을 일으켜 아라한이 되었는가 하는 아라한이 된 인연을 간결한 문체로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② 금생의 인연에서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devamanussesu saṁsaranto imasmiṁ Buddhuppā- de)’로 검색하면 134곳 정도가 나타났지만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deva -manussesu saṁsaranto)’를 빼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imasmiṁ Buddhuppāde)’라는 표현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테라가타 주석서』가운데에서 217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주석서는 각 장로들이 금생에 어느 곳에서 어느 가문에 태어났는가를 밝히고 있는데 만일 특정 장로에게 특별한 행적이 있으면 그것을 드러낸 뒤 특정 장로가 어떤 인연으로 부처님이나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서 어떤 계기로 출가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인연으로 아라한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이 대략 259분 장로들의 행장에 거의 같은 패턴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뿐나마사 장로(Th1:10)는 사왓티에서 사밋디라는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 집에 있는 모든 항아리가 황금 동전으로 가득 찼다(puṇṇā)고 해서 이름이 뿐나마사(Puṇṇamāsa)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들을 한 명 두었지만 재가 생활을 혐오하여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고 하며 네 가지 진리의 명상주제에 몰두하고 몰입하여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한 뒤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⑤ 그런 뒤에 ‘ 『아빠다나』에 이렇게 설명하였다(vuttampi cetaṁ Apa- dāne)’라는 구문으로 『아빠다나』의 설명을 가져와서 싣고 있다. 이러한 『아빠다나』(전기)의 게송은 259분 장로들 가운데 대략 35분 장로들을 제외한 224분 정도의 『아빠다나』가 주석서에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는 각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장로의 일화는 『아빠다나』에도 나타나고 있다. …’라고 간단하게 언급만 하였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는 224분 장로들의 행적과 이분들의 『아빠다나』를 연결시켜주고 있다.(Hinüber, 147쪽도 참조할 것)
그리고 여기서 언급해야 할 것으로는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 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이 있다. 여기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40분 정도의 장로들은 『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테라가타』둘의 모음에 나타나는 삔돌라 바라드와자 장로(Th2:2)는 『앙굿따라 니까야』「으뜸 품」(A1:14)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자들(sīhanādikā) 가운데 으뜸이다.”(A1:14:1-8)라고 언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러한 사실도 드러내어 싣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으뜸 품」(A1:14)에는 모두 47분의 으뜸가는 장로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수부띠 장로(Th1:1)는 A1:14:2-4와 A1: 14:2-5로 두 번이 나타나고 쭐라빤타까 장로(Th10:4 {557})도 A1:14:2-1과 A1:14:2-2로 두 번이 나타나며 아난다 장로(Th30:3 {1018})는 A1:14:4-1, A1:14:4-2, A14:4-3, A14:4-4, A14:4-5로 다섯 번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 분 장로들의 경우에 중복되는 여섯 번(1+1+4=6)을 빼면「으뜸 품」에는 모두 41분의 서로 다른 장로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가 으뜸이다.”(A1:14:3-8)로 나타나는 바히야 장로와, “불의 요소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사가따가 으뜸이다.”(A1:14:4-14)로 나타나는 사가따 장로는 『테라가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으뜸 품」에 실린 41분의 각각 다른 장로들 가운데 39분이 이 『테라가타』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의 주해의 말미에서 언급한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를 포함시키면 40분이 된다.
⑵ 게송을 읊은 배경
둘째, 그런 뒤에 『테라가타 주석서』는 각 장로들의 게송 혹은 게송들이 읊어지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 예를 든 뿐나마사 장로(Th1:10)의 경우에 주석서는 “그의 전 아내가 그를 유혹하려고 멋지게 치장하고 아들과 함께 그에게 가서 아름다운 말 등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장로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자신이 어디에도 빠지지 않았음(alaggabhāva)을 설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56)라고 본 게송을 읊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⑶ 게송의 성격
셋째, 그리고 여러 게송들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주석서는 많은 경우에 특정 장로의 특정 게송이 구경의 지혜(aññā)로 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158분 정도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감흥어(우러나온 말씀, udāna)로 읊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29분 정도가 된다. 그리고 사자후(sīha- nāda)를 토하였다는 표현도 15곳 정도에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웃따라빨라 장로(Th3:12 {252}~{254})의 게송을 설명하면서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도닦음을 반조하여 사자후를 토하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 (ThagA.ii.102~103)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주석서는 이렇게 장로들이 금생에 특정 지역의 특정 가문에 태어나서 특정한 조건에서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절박함을 일으켜 아라한과를 얻어서 특정한 게송을 읊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⑷ 게송에 대한 자세한 주석
넷째, 주석서는 특정 장로의 특정한 행장이나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설명한 뒤에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게 된 『테라가타』의 게송들에 대한 주석을 자세하게 달고 있다. 그런 주석에는 문법적인 측면에 대한 설명도 담겨있고 특히 특정 단어의 동의어들을 나열하면서 단어와 문장을 설명한다. 그리고 교학적인 설명과 배경을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 뒤 이본(異本)이 있으면 그것을 제시하고 있다.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을 하면서 합성어를 통해서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주석을 다는 곳이 많다. 그리고 특정 게송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여기서 이것이 그 뜻이다(ayaṁ panettha attho).’ (ThagA.i.57 등)라고 하면서 게송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테라가타 주석서』는 264분, 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 장로들의 행장과 이분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을 거의 같은 패턴으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
역자는 이들 가운데 각 장로들의 ⑴-① 전생담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 ⑴-② 금생의 인연부터 ⑴-③/④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기까지의 인연과 ⑴-⑤ 게송을 읊은 배경 가운데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주석서의 주요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행장】이라는 표제어를 달아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역자는 259분 장로들의 행장을 대부분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지하여 적었음을 밝힌다.
VII.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에 대한 고찰 ― 『테라가타 주석서』를 중심으로
이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에 따라 『테라가타』를 읊은 259분 장로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거듭 밝히지만 역자는 각 장로들의 행장을 전적으로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존하여 적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드러내고 있는 장로 스님들의 전생담 혹은 전생의 인연에 대한 설명은 모두 생략하여 본서에 옮겨 넣지 않았고 요약도 하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간단한 언급만을 하였다.
본 해제 III. 『테라가타』의 구성에서 살펴보았듯이 본서 『테라가타』에는 PTS본으로 1,279개의 게송이 21개의 모음으로 정리되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읊은 분들은 모두 264분이다. 그런데 역자는 모두 259분이라고 하였다. 이제 그 이유부터 밝히면서 장로들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⑴ 『테라가타』에서 게송을 읊은 장로들은 몇 분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본서에 실린 1,279개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은 모두 264분이다.(ThagA.i.3) 그런데 주석서의 설명에 의하면 같은 장로가 다른 모음의 다른 게송을 읊은 경우(동명이송)로 세 분이 있고 이름은 다른데 같은 분(이명동인)이 한 분이 있다. 빠라빠리야 장로가 읊은 게송은 모두 세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은 모두 264-2-1-1-1=259분이 된다.
역자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을 ① 동명이인(同名異人, 같은 이름인데 다른 장로인 경우), ② 동명이송(同名異頌, 한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 ③ 이명동인(異名同人, 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 ④ 이명동송(異名同頌, 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나누어 보았다.
① 동명이인(同名異人, 같은 이름인데 다른 장로인 경우)
본서에는 이름은 같은데 다른 장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리해 보면 모두 다음과 같이 21분 정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 뿐나 장로(Th1:4) ― {70}과는 다른 분
2. 뿐나마사 장로(Th1:10) ― 2:26 {171}과는 다른 분
3. 와나왓차 장로(Th1:13) ― {113}과 다른 분
4. 아바야 장로(Th1:26) ― {98}과는 다른 분
5. 하리따 장로(Th1:29) ― 3:15 {261}과 다른 분
6. 웃띠야 장로(Th1:30) ― 3명. {54}, {99}와는 다른 분
7. 소빠까 장로(Th1:33) ― 7:4 {480}과는 다른 분
8. 띳사 장로(Th1:39) ― 3명. {97}, 2:17 {153}과는 다른 분
9. 위말라 장로(Th1:50) ― 3:16 {264}와는 다른 분
10. 왈리야 장로(Th1:53) ― 3명. 2:3 {125}, 2:24 {167}과는 모두 다른 분
11. 꾸띠위하리 장로(Th1:56) ― {57}과는 다른 분
12. 왓지뿟따 장로(Th1:62) ― {119}와는 다른 분
13. 데와사바 장로(Th1:89) ― 두 번째로 불리는 {100}과는 다른 분
14. 띳사 장로(Th1:97) ― 3명. {39}, 2:17과는 모두 다른 분
15. 키따까 장로(Th1:104) ― 2:36 {191}과는 다른 분
16. 우사바 장로(Th1:110) ― 2:39 {197}과는 다른 분
17. 아디뭇따 장로(Th1:114) ― 20:1 {705}와 다른 분
18. 웃따라 장로(Th2:1 {121}~{122}) ― 2:21 {161}과는 다른 분
19. 고따마 장로(Th2:9 {137}~{138}) ― 3명. 3:14 {258}, 10:7 {587}과는 모두 다른 분들임
20. 난다까 장로(Th2:27 {173}~{174}) ― 4:4 {279}와는 다른 분
21. 수마나 장로(Th5:4 {330}~{334}) ― 6:10 {429}와는 다른 분
한편 시와까 사미(Th1:14)와 시와까 장로(Th2:32 {183})는 다른 분이다. 수부띠 장로(Th1:1)와 수부따 장로(5:2 {320})는 당연히 다른 분이다. 그리고 꿀라 장로(Kuḷa, Th1:19)와 꿀라 장로(Kulla, Th6:4 {393})는 철자가 다르며 서로 다른 분이다. 나아가서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이름은 삼부따인데 삼부따 장로(Th4:7 {291})와는 다른 분이다. 그래서 이 네 경우는 언급하지 않았다.
② 동명이송(同名異頌, 같은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
동명이송(같은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인 경우는 모두 3명인데 다음과 같다.
1.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 3곳, 20:2 {726}과 20:10 {920}과 동일한 분
2. 낌빌라 장로(Th1:118) ― 2:18 {155}와 동일한 분
3. 말룽꺄뿟따 장로(Th6:5 {399}~{404}) ― 20:5 {794}와 동일한 분
③ 이명동인(異名同人, 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
이명동인(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의 경우는 한 분인데 레와따 장로이다.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레와따 장로(Th14:1 {645}~{658})는 하나의 모음 {42}를 읊은 카디라와니야 장로와 동일한 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42}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④ 이명동송(異名同頌, 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
똑같은 게송들이 다른 장로의 게송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명동송(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이라 표현하였다. 이명동송으로는 박꿀라 장로(Th3:3 {225}~{227})와 하리따 장로(Th3:15 {261}~{263})의 3개의 게송을 들 수 있다. 똑같은 게송들 3개가 두 분 장로의 게송들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주석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② 동명이송인 경우가 세 분이고 ③ 이명동인인 경우가 한 분이고 ② 동명이송에 포함되는 빠라빠리야 장로는 Th1:116과 Th20:2와
Th20:10의 세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264-4가 아니라 264-4-1이 되어 모두 259명이 된다. 이렇게 하여 『테라가타』에서 게송을 읊은 분들은 모두 259분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
『테라가타』는 이러한 259분의 장로들이 읊은 게송들을 게송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 이처럼 모두 21개의 모음으로 분류하여 싣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모음에는 120분 장로들의 게송 120개가 {1}부터 {120}까지에 실려있고 둘의 모음에는 49분 장로들의 게송 98개가 {121}부터 {218}까지에 실려있다. 이렇게 하여 21번째 마지막 모음인 큰 모음에는 1분 장로의 게송 71개가 {1209}부터 {1279}까지에 실려서 모두 259분 장로의 1,279개 게송이 담겨 있다.
그러면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1,279개 게송들은 모두 이 259분 장로들이 직접 읊은 것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적지 않은 게송들은 세존께서 특정 장로에게 설하신 것이며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도 있고 다른 장로들이나 신들과 같은 다른 존재들이 특정 장로에게 읊은 것도 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주석서의 설명을 정리해 보면 1,279개 가운데 모두 104개 정도는 그 게송을 읊은 자로 명시된 특정 장로가 읊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104개 게송을 읊은 분이나 읊은 존재와 게송 번호를 나열해 보면 다음 쪽의 <도표3>과 같다.
①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둘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의 게송 둘 모두와, 셋의 모음에 포함된 와라나 장로(Th3:7 {237}~{239})의 게송 셋 모두와, 다섯의 모음에 속하는 야사닷따 장로(Th5:10 {360}~{364})의 게송 다섯 개 모두와, 여섯의 모음에 속하는 까띠야나 장로(Th6:7 {411}~{416})의 게송 여섯 개 모두와 특히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 {567}~{576})의 게송 열 개 모두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다.
<도표3> 게송을 읊은 다른 분들이나 존재들 |
번호 | 읊은 분 | 게송 |
1 | 세존 | 하나의 모음: {17} {29} {38} {39} {40} {68} {83} {84} {93} {101} 둘의 모음: {193} {199} {200} {207} 셋의 모음: {237} {238} {239} {243} 넷의 모음: {303} {304} {305} 다섯의 모음: {350} {360} {361} {362} {363} {364} 여섯의 모음: {394} {411} {412} {413} {414} {415} {416} {431} {432} {433} {434} {435} 열의 모음: {567} {568} {569} {570} {571} {572} {573} {574} {575} {576} 열둘의 모음: {631} 스물의 모음: {824} {827} {828} {829} {830} {831} {837} {867} 서른의 모음: {1037} 큰 모음: {1275} ― 모두 60곳 |
2 | 사리뿟따 | {1178} {1179} {1180} {1181} |
3 | 아난다 | {1224} {1225} {1226} |
4 | 합송자들 | {720} {724} {869} {920} {948} {949} {1047} {1048} {1049} |
5 | 천신 | {18} {57} {187} {235} |
6 | 범천들 | {1084} {1085} |
7 | 대범천 | {1023} |
8 | 신들의 왕 삭까 | {673} |
9 | 마라 | {381} {385} |
10 | 기녀 | {461} {1154} |
11 | 빤다라 선인 | {950} |
12 | 아버지 | {28} |
13 | 어머니 | {82} |
14 | 청신사 | {597} |
15 | 도둑 두목 | {705} |
16 | 도둑들 | {721} |
17 | 코끼리 왕 | {969} {970} |
주석서에 의하면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는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임종하자 왕위에 책봉되어 감각적 쾌락들에 지나치게 빠지고 탐하면서 머물렀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더러움[不淨]에 대한 가르침(asubha-kathā)을 듣고 마음이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서 탐욕이 빛바래어 출가한 뒤 아라한이 될 것이라고 아신 뒤 허공으로 그곳에 가셔서 본 게송 10개를 읊으셨다고 한다.
더러움에 대한 말씀을 부처님의 면전에서 듣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적용시켜]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원하였으며 세존께서는 그에게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준 뒤 출가하게 하였다. 그는 삭발을 할 때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으면서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242~ 243)
여섯의 모음의 까띠야나 장로(Th6:7 {411}~{416})도 용맹정진할 때 세존께서 설해주신 여섯 개의 게송을 듣고 설법의 마지막에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게송들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176)
세존께서는 두 개의 게송으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를 엄하게 꾸짖으시면서 질책하셨는데 뼈 속을 파고드는 충격처럼, 사나운 코끼리가 길을 달려 내려오는 것처럼 그에게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고 그래서 이 두 개의 게송은 그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함이 되었다고 한다.(ThagA.ii.66~67)
한편 하나의 모음 {17} 게송을 읊은 다사까 장로(Th1:17)는 게으르고 나태하여서 법문을 듣는 시간에도 한 모퉁이에 들어가 회중의 끝(parisa-pari- yanta)에 앉아서 코고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자 세존께서 이 게송을 읊으셨고 그는 이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고 한다.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고 이것은 그에게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ThagA.i.73~74)
이처럼 세존께서 특정 장로들을 위해서 설해주신 위의 게송들은 그 장로가 아라한과를 체득하는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 장로들은 자신이 아라한과를 체득하도록 세존께서 설해주신 그 게송을 자신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으로 삼아 평생을 간직하였으며 그래서 이 『테라가타』에도 특정 장로의 게송으로 실린 것이다.
②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세존이 읊으신 이외의 게송들 가운데 특히 합송자들(saṅgītikārā)이 읊은 게송이 9개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합송자는 누구인가? 1‧2‧3차 결집을 주도한 분들인가, 아니면 더 늦은 시기일지도 모르는 이 『테라가타』를 합송하고 있는 분들인가?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9개의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 가운데 {1047}~{1049}의 세 개의 게송은 일차결집의 핵심 인물인 아난다 장로 편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합송자들은 적어도 이차결집이나 그 이후인 삼차결집 때 본 『테라가타』를 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떼낏차까리 장로나 아소까 왕의 동생인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의 게송들도 『테라가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삼차결집 때 『테라가타』가 최종적으로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노만 교수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걸쳐서 본 게송들을 모으고 합송한 분들로 보고 있다. 노만 교수는 여기서 합송자들은 일차합송과 이차합송과 삼차합송에 참석한 합송자들로 여기고 있다.(K. R. Norman, xxix)
⑶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출생 지역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게송을 읊은 259분 장로 스님들 가운데 대부분의 출생 지역을 밝히고 있다. 이 자료들을 통해서 장로들의 출생 지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259분 가운데에서 꼬살라의 수도인 사왓티 출신은 맨 처음에 실려있는 수부띠 장로(Th1:1)부터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77분 정도가 되었다.
둘째, 사왓티를 제외한 꼬살라국 출신은 에까담마사와니야 장로(Th1:67)부터 브라흐마닷따 장로(Th6:12 {441})까지 18분이었다. 그래서 수도 사왓티를 포함한 꼬살라국 출신은 259분 가운데 모두 95명 정도가 된다.
셋째, 259분 가운데에서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 출신이 시따와니야 장로(Th1:6)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36분이었다.
넷째, 라자가하를 제외한 마가다국 출신은 마하가왓차 장로(Th1:12)부터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까지 34분이었다. 그래서 마가다국 출신은 259분 가운데 모두 70명 정도이다.
다섯째, 259분 가운데 세존의 고향인 까삘라왓투 출신이 뿐나 장로(Th1:4)부터 아누룻다 장로(Th20:9 {892})까지 31분이었다. 까삘라왓투 인근인 도나왓투(2명)와 데와다하(2명)도 여기에 포함하였다. 까삘라왓투는 꼬살라에 점령된 작은 나라이지만 세존께서 탄생하신 나라이고 세존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였기 때문에 『테라가타』에 장로 아라한 스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여섯째, 릿차위와 수도인 웨살리 출신은 왓다마나 장로(Th1:40)부터 삽바까미 장로(Th6:14 {453})까지 14분이다.
일곱째, 말라와 그곳의 수도인 빠와 출신으로는 답바 장로(Th1:5) 등의 여덟 분이 있고, 아완띠 출신으로는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 등 여섯 분, 꼬삼비는 박꿀라 장로(Th3:3 {225}) 등의 네 분, 짬빠는 소나 꼴리위사 장로(Th13:1 {632}) 등의 네 분, 사께따도 멘다시라 장로(Th1:78) 등의 네 분이다. 이렇게 하여 이들 지역에서는 26분 정도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지역이 언급되고 있으며 출생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분들도 10분 정도가 된다.
⑷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태생
인도는 이미 부처님 시대에도 태생(jāti)의 문제가 강하게 대두되었고 이것은 카스트 문제와 직결된다. 당연히 세존께서는 태생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짓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와셋타 경」(M98) §12 등에서,
“태생(jāti)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태생에 의해 비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kamma)에 의해 바라문도 되고
행위에 의해 비바라문도 된다.”(M98 §12 {57})
라고 강조하신다.
그렇지만 경들과 특히 주석서들은 특정 인물이나 스님들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인도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초기불전의 니까야에서도 인도의 태생은 바라문‧끄샤뜨리야‧와이샤‧수드라(brāhmaṇa, kṣatriya, vai- sya, śūdra)의 사성계급으로 나누어진다.(cattārome vaṇṇā ― khattiyā, brā- hmaṇā, vessā, suddā, D3 §1.15, Vin.ii.239) 당연히 주석서도 도처에서 스님들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brāhmaṇo khattiyo vessā ca suddā, ThagA.iii.148 등). 그리고 이러한 사성계급에 들지 못하는 천민의 가문(caṇḍāla-kula, M93 §11; S3:21 §4 등) 등도 경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연히 끄샤뜨리야 태생이고 두 상수 제자를 비롯한 많은 부처님 제자들은 바라문 출신이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특정 장로를 설명할 때 vessa(Sk: vaisya)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장자(gahapati)나 장자의 가문(gahapati-kula), 상인(seṭṭhi, 금융업)이나 대상(sattha)이나 대상의 우두머리(satthavāha)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렇게 표현되는 가문이 와이샤(vaisya)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문에 속하는 장로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하천한 가문(ibbhakula)이나 천민(caṇḍāla) 출신 장로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259분의 태생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장로들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테라가타』게송만으로는 장로들의 태생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장로들의 행장과 행적을 설명하면서 259분 장로들의 태생을 대부분 밝히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259분 장로들의 태생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바라문 태생
첫째, 바라문 태생이다. 학자나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역할을 하였던 바라문들은 3베다를 공부하고 학문과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인도인들 가운데 가장 학구적이고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빨리 정확하게 이해한 집단이기도 하다. 물론 많은 바라문들은 베다의 계급주의나 아뜨만이나 브라흐만과 같은 절대아나 초월적인 신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시는 부처님께 대한 반감도 컸던 집단이다. 259분의 태생을 분류해 보면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바라문 출신 장로들이 116명 정도가 되었다. 역시 큰 비중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사리뿟따 장로(Th30:2 {981}),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 앙굴리말라 장로(Th20:8 {866})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는 부유한 바라문(brāhmaṇa-mahāsāla)으로 언급된 분들도 15명 정도 포함된다.
바라문 태생인 경우에는 베다에 능통하였던 분들이 적지 않다. 주석서를 살펴보면 세 가지 베다 혹은 삼베다, 즉 『리그베다』(Ṛg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사마베다』(Sāmaveda)에 능통하였던 분들로 마하꼿티따 장로(Th1:2), 꾼다다나 장로(Th1:15), 아지따 장로(Th1:20), 웃자야 장로(Th1:47), 수야마나 장로(Th1:74), 왓차곳따 장로(Th1:112),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Th20:2 {726}; Th20:10 {920}), 삔돌라 바라드와자 장로(Th2:2 {123}), 소마밋따 장로(Th2:14 {147}), 띳사 장로(Th2:17 {153}), 앙가니까바라드와자 장로(Th3:1 {219}), 왁깔리 장로(Th5:8 {350}), 우루웰라깟사빠 장로(Th6:1 {375}~{380})와 그의 동생인 나디깟사빠 장로(Th5:6, {340})와 막냇동생인 가야깟사빠 장로(Th5:7, {345}),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 {435}),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장로(Th10:6 {577}),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 셀라 장로(Th20:6 {818}), 왕기사 장로(Th70:1 {1209}) 등의 21분을 들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 사리뿟따 장로(Th30:2 {981}),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 등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젊었을 때 바라문의 명지에 통달하였지만 거기서는 심재(sāra)를 보지 못하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으로 뿐나마사 장로(Th1:10), 위자야 장로(Th1:92), 왓차곳따 장로(Th1:112), 아디뭇따 장로(Th1:114), 웃따라 장로(Th2:1 {121})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바라문 태생인 경우에는 베다에 능통하였던 분들이 적지 않았다. 베다나 바라문의 명지 등으로 장로들의 행장을 검색해 보면 위에서 밝혔듯이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대략 21분 정도가 해당되고 여기에 바라문의 명지에 통달한 분으로 언급되는 뿐나마사 장로(Th1:10) 등 다섯 분을 포함시키면 모두 29분 정도의 장로가 출가 전에 베다에 능통하였거나 바라문의 명지를 섭렵하였다고 나타난다.
② 끄샤뜨리야 태생
둘째, 끄샤뜨리야 태생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캇띠야(khattiya, 끄샤뜨리야)라는 용어로 장로들의 태생을 밝힌 경우는 두 군데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왕의 가문(rājagaha)이나 왕, 왕자, 지역의 왕(maṇḍalika- rāja) 등의 용어로 설명되고 있는 장로들은 모두 이 끄샤뜨리야 태생에 넣었다. 이런 조건으로 검색해 보니 259명 가운데 난디야 장로(Th1:25)부터 아난다 장로(Th30:3 {1018})까지 대략 55분 정도가 왕족, 즉 끄샤뜨리야 출신이었다. 그리고 주석서에서 끄샤뜨리야 가문이라고 밝히고 있는 멜라지나 장로(Th2:6 {131}) 등의 3분을 포함하면 모두 58분 정도가 된다. 여기에는 어떤 작은 지역의 왕의 아들(maṇḍalika-rañño putta)로 표기되는 데와사바 장로(Th1:89) 등도 포함시켰고 후대 아소까 대왕의 동생이었던 위따소까 장로(Th2:25 {169})도 넣었다.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다가 출가한 두 왕자가 있는데 아바야 장로(Th1:26)와 실라와 장로(Th12:1 {608})이다. 이 두 분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실라와 장로는 아자따삿투가 두 번이나 죽이려고 하였다고 한다.(ThagA.ii. 257~258)
한편 왕이었다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도 6분 정도 되는데 여기에 포함시켰다. 어떤 작은 지역의 왕이었던 [첫 번째] 데와사바 장로(Th1:89), 로루와(Roruva) 도시의 왕이었던 띳사 장로(Th1:97), 로히따 도시의 왕이었던 빳짜야 장로(Th3:2 {222}), 웨타뿌라 도시의 왕이었던 아비부따 장로(Th3:13 {255}), 사왓티에서 120요자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꾹꾸따와띠라는 나라의 왕이었던 마하깝삐나 장로(Th10:3 {547}),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이었던 깝빠 장로(Th10:5 {567})가 그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포함시킨 세뚜차 장로(Th1:102)는 어떤 작은 지역의 왕(maṇḍalika-rājā)의 아들이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절박함으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사꺄의 왕자였다가 출가한 분들로는 난디야 장로(Th1:25), 로마사깡기야 장로(Th1:27), 낌빌라 장로(Th2:18 {155}), 바구 장로(Th4:2 {271}),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 {842}), 아누룻다 장로(Th20:9 {892}), 아난다 장로(Th30:3 {1018})가 있고 데와다하 출신인 사꺄의 왕자였던 빡카 장로(Th1:63)와 락키따 장로(Th1:79)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포함시킨 안자나와니야 장로(Th1:55), 꾸띠위하리 장로(Th1:56), 두 번째 꾸띠위하리 장로(Th1:57), 라마니야 꾸띠까 장로(Th1:58), 꼬살라위하리 장로(Th1:59)는 릿차위의 왕자들(Licchavi-rājakumārā), 즉 웨살리에서 왓지의 왕의 가문(Vajji-rājakula)에 태어났는데 모두 함께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위말라꼰단냐 장로(Th1:64)는 빔비사라 왕과 암바빨리 사이에서 태어났고 실라와 장로(Th12:1 {608})는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으며 에까위하리야 장로(Th10:2 {537})는 아소까왕의 동생이었고 풋사 장로(Th30:1 {949})는 작은 지역 왕의 아들이었는데 여기에 포함시켰다.
③ 와이샤(평민) 태생
셋째, 와이샤(vaisya, Pali: vessā), 즉 평민 태생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일반적으로 평민을 뜻하는 빠알리어 웻사(vessā, Sk: vaisya, 와이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장자(gahapati)나 장자의 가문(gahapatikula), 상인(seṭṭhi, 금융업)이나 대상(sattha)이나 대상의 우두머리(satthavāha)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렇게 표현되는 가문이 와이샤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서 이런 용어들로 조사를 해보았다.
먼저 ‘장자(gahapati)’로 검색을 해보면 뿐나 장로(Th1:70)를 위시한 14분 정도가 장자 가문 출생이다. 그리고 ‘상인(setthi)’으로 조사를 해보면 수부띠 장로(Th1:1)를 비롯하여 대략 21분 정도가 되었다. 지주의 아들(kuṭumbi -kassa putta)로 태어나거나 지주의 가문(kuṭumbiya-kula)에 태어나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도 에라까 장로(Th1:93) 등 여섯 분 정도가 된다. 이들도 여기 장자나 상인처럼 와이샤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꾸마라깟사빠 장로(Th2:41 {201})는 출가한 어머니가 낳아서 사원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가 상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모두 42분 정도가 와이샤 태생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④ 하천한 가문(ibbhakula) 태생
넷째,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sudda(Sk: śūdra, 수드라)라는 용어로 특정 장로를 설명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하천한 가문(ibbhakula)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용어로 검색을 해보면 고살라 장로(Th1:23) 등 대략 8분 정도가 나타난다. 처참한 가문(duggata-kula)에 태어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 처참한 가문에 태어나서 똥만을 먹고 살았던 잠부까 장로(Th4:5 {283}), 분뇨 치우는 일을 했던 수니따 장로(Th12:2 {620})도 여기에 넣을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대략 11분 정도가 수드라 태생이라 여겨도 될 듯하다. 천민 출신으로 옮길 수 있는 짠달라(caṇḍāla)라는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에 한 번 나타나는데 특정 장로의 태생을 뜻하는 문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⑤ 유행승(遊行僧, paribbājaka) 출신 등
이렇게 분류해 보면 태생이나 계급으로는 바라문 태생 116분, 끄샤뜨리야 혹은 왕족 태생 58분, 장자나 상인 가문 태생이 42분, 하천한 가문 태생이 11분 정도가 되어 227분 정도를 사성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남은 32분 가운데는 코끼리 조련사 가문 출신 2분, 대신 가문 3분 등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가문의 언급이 없이 먼저 유행승이 되었다가 세존을 뵙고 세존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도 웃띠야 장로(Th1:30) 등 11분 정도가 된다.
⑸ 부처님 입멸 후 출가한 장로들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태생을 살펴보는 이 문맥에서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을 살펴보자.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삼부따 장로(Th4:7 {291}~{294}),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386}),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 에까위하리 장로(Th10:2 {537}~{546}) 네 분이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이다.
이 가운데 삼부따 장로(Th4:7 {291}~{294})는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뒤에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의 곁에서 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후 100년이 되었을 때 웨살리의 왓지뿟따들(Vajjiputtakā)이 10가지 비법을 거머쥐고 공공연히 행하게 되자 까깐다까뿟따 야사 장로와 7백 명의 번뇌 다한 분들이 그 견해를 척파하였다. 그때 장로는 법에 대한 절박함(dhamma-saṁvega)으로 이 게송 네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22~123) 『테라가타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으로 볼 때 삼부따 장로의 이 게송들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100년 뒤에 있었던 이차합송 후에 읊은 것이라 여겨진다.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386})는 마우리야 왕조의 시조 짠다굿따(Candagutta, 짠드라굽따) 왕의 아들이면서 제3대 아소카 대왕의 부친이요 28년간(기원전 298~273) 왕으로 재위했던 빈두사라 왕(Bindusāra rājā)의 시대에 태어났다고 한다.(ThagA.ii.165) 그는 짠다굿따(짠드라굽따) 왕의 대신인 짜낙까(Cāṇakka) 때문에 그의 부친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듣고 두려움으로 출가하였으며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와 에까위하리 장로(Th10:2 {537}~{546})는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인 아소까 대왕의 동생들이었다. 주석서는 “아소까 대왕은 스승님께서 반열반하신 후 218년 뒤에 전 인도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하여 즉위한 뒤 자신의 동생인 띳사꾸마라(Tissa- kumāra)를 부왕(副王)의 위치(oparajja)에 놓았다.”(ThagA.ii.227)라고 적고 있는데 이 띳사꾸마라가 바로 에까위하리 장로이다.
그리고 이 문맥에서는 세존께서 입멸하시기 20년 전에 구족계를 받았고 계를 받은 지 120년 만에 2차결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삽바까미 장로(Th6:14 {453}~{458})와 부처님 계실 때 출가하였지만 입멸 후에 읊은 게송들도 실려있는 빠라빠리야 장로({920} 등)도 언급할 수 있다. 『테라가타』하나의 모음에 한 번(Th1:116), 스물의 모음에 두 번(Th20:2; Th20:10), 모두 세 곳의 모음에 게송이 실려서 전승되어 오는 빠라빠리야 장로(Pārāpariya thera)에 대해서는 본 해제 X-⑴-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음의 13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처럼 마우리야 왕조의 빈두사라 왕의 시대에 태어난 떼낏차까리 장로(Th6:2)와 아소까 왕의 동생들인 위따소까 장로(Th2:25)와 에까위하리 장로(Th10:2)의 게송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테라가타』는 삼차결집이나 더 늦게는 사차결집에서 지금 형태로 최종적으로 합송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도 “빈두사라 왕의 시대에 이 장로가 태어났기 때문에 삼차합송(tatiya-saṅgīti)에서 이 게송들이 합송되었다고 알아야 한다.”(ThagA.ii.165)라고 적고 있다.
VIII.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테라가타』를 읊은 259분 장로들의 출가 시기와 출가 동기 등을 점검해 보는 것은 2,600년 후에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우리들, 더군다나 역자와 같은 출가자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고 큰 귀감이 된다. 그래서 259분의 아라한 장로들은 어떻게 출가하였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의 출가 시기부터 살펴보자.
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시기
①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 출가함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스님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마하가왓차 장로(Th1:12)의 행장에 언급되는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세존의 제자의 모습에 대해서 듣고 … 세존께 믿음이 생겨 출가하여’(ThagA.i.59)로 언급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적당한 나이가 되어 출가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몇 살을 뜻하는지, 이 적당한 나이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는 주석서나 복주서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수십 군데의 문맥을 보면 이 적당한 나이는 출가하기 적당한 나이이고 비구계를 받을 수 있는 나이이면서 성인이 되는 나이인 20살쯤으로 여기면 무방할 듯하다. 물론 이 ‘적당한 나이가 되어’라는 표현이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경우에는 ‘삼베다(tayo vedā)를 익힌 뒤 바라문의 기술(brāhmaṇa-sippa)에 통달하였다.’로 나타나고,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경우에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바라문의 기술에 통달하였다.’로 나타난다. 바라문들은 8살에 베다 학교에 들어가서 20살 정도까지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이 경우도 20살쯤으로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②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 출가함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다른 표현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가 있다. 이 표현은 숩삐야 장로(Th1:32)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대략 38분의 행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표현도 역시 스무 살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면서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숩삐야 장로(Th1:32)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그는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 스승님의 쌍신변을 보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교법에 출가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용어와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키워드로 『테라가타 주석서』를 검색해 보았다. 이 두 구절이 언급되는 장로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스무 살이나 스무 살이 조금 지난 나이, 즉 20대 초반에 출가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 {842})까지 대략 66분의 장로의 행장에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숩삐야 장로(Th1:32)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대략 38분의 행장에서는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구절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서 104분 정도의 장로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출가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나머지 장로들은 다 결혼한 뒤에 출가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리뿟따, 목갈라나, 아난다, 아누룻다 등등의 대장로들은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분들은 20살이나 그즈음의 나이에 출가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③ 결혼 여부
출가 전의 결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아내(dāra, dutiyikā)’와 ‘아들(putta)’ 등의 단어를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위라 장로(Th1:9) 등 대략 열다섯 분은 결혼을 한 뒤 출가를 하여 세속에 아내나 아들도 있었다. 아라한이 된 뒤 이들과 만나서 벌어진 일화도 몇 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도 결혼을 한 경우에 포함되어야 한다. 부부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서 밧다 까삘라니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이다. 밧다 까삘라니도 출가하여 비구니 아라한으로 이름을 떨쳤다.
④ 사미로 출가한 경우
259분 가운데 20세 전에 사미로 출가한 경우는 모두 17분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가운데 일곱 살에 출가한 분들은 열 분 정도인데 ① 답바 장로(Th1:5), ② 소빠까 장로(Th1:33), ③ 카디라와니야 장로(Th1:42 = 레와따 장로(Th14:1)) ④ 사누 장로(Th1:44), ⑤ 마나와 장로(Th1:73), ⑥ 꾸마라깟사빠 장로(Th2:41), ⑦ 수마나 장로(Th6:10), ⑧ 밧다 장로(Th7:3), ⑨ 소빠까 장로(Th7:4), ⑩ 상낏짜 장로(Th11:1)이다. 이분들은 모두 출가한 일곱 살에 아라한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의 배 속에 7년을 있었고 태어날 때도 7일을 난산(難產)의 고초를 겪었었으며(Ud2:8 §1) 난산 끝에 칠 일 만에 태어나자 바로 사리뿟따 존자와 말을 하였고(Ud2:8 §11) 사리뿟따 존자는 그를 데리고 가서 출가를 시켰으며 머리카락이 모두 다 잘랐을 때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고 하는(ThagA.i.148) 시왈리 장로(Th1:60)를 여기애 포함하면 모두 11분이 된다.
그 외 사미로 출가한 분들은 6분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 ① 시와까 사미(Th1:14)는 와나왓차 장로(Th1:14)의 여동생의 아들이었으며 사미 때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② 웃따라 장로(Th2:1)는 사리뿟따 존자를 시봉하였는데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웃따라 사미(Uttara sāmaṇera, Thag.ii.i)로 언급이 되고 있다. ③ 고따마 장로(Th2:9)는 16살에서 17살이 되던 때에 그가 모은 천 [냥]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청정범행을 파하고 살다가 스승님을 뵙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겼고 세존이 설하시는 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 바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④ 마하쭌다 장로(Th2:11)는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데 쭌다 사미(Cunda samaṇuddesa)로도 불리었다. ⑤ 밧다지 장로(Th2:22 {163})는 소년(kumā- ra)이었을 때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이 된 뒤에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 출가하였다.(ThagA.ii.39~40) ⑥ 아디뭇따장로(Th20:1)는 사미 때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나타난다.(ThagA.iii.12)
⑤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한 경우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로는 두 분이 주목되는데 한 분은 박꿀라 장로(Bakkula/Bākula thera, Th3:3)이고 또 한 분은 담마사와삐뚜(담마사와의 아버지) 장로(Th1:108)이다.
박꿀라 장로(Th3:3)는 80세에 출가하여 80년을 출가 생활을 하였으니 160세까지 살았다. 그래서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는 “박꿀라 장로는 160세를 살았는데 이분이 모두 가운데 가장 긴 수명을 가진 분(sabba-dīgh -āyuka)이지만 그도 200세는 살지 못했다.”(AAṬ.iii.183)라고 적고 있다.
담마사와삐뚜(담마사와의 아버지) 장로(Th1:108)는 120살에 출가하였다. 그는 담마사와라는 아들이 출가하고 나서 자신은 120살(vīsa-vassa-satika)이 되었다. 그는 ‘내 아들은 저렇게 젊었을 때 출가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출가하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스승님의 곁으로 가서 법을 듣고 출가하여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 그래서 본 『테라가타』에서 장로는 스스로 이렇게 읊고 있다.
“그런 나는 120살이 되어서
집 없이 출가하였다.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108})
이 문맥에서 잠부까 장로(Th4:5 {283})도 언급할 수 있어 보인다. 잠부까 장로는 55년을 똥만 먹고 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대한 고행자(mahā -tapa)요 최고로 바라는 것이 적은 자(param-appiccha)’라고 생각하여 그에게로 향하고 그에게로 기울게 되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가슴 깊은 항아리(haday-abbhantara ghaṇa)에서 밝게 타오르는 것처럼(padīpaṁ viya) 아라한됨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불타오르는 것(arahattāpanissaya pajjalanta)을 보시고 직접 그곳으로 가서 법을 설하신 뒤에 그가 예류과(sotāpatti-phala)에 확립되게 하셨다. 그런 뒤 ‘오라, 비구여.’라는 말씀으로 구족계를 받게 하셨으며(ehibhikkhu-upasampadāya laddhūpasampadaṁ)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게 하시어 아라한됨에 확립되게 하셨다고 한다. (ThagA.ii.119)
나이가 들어 아들과 아내로부터 천대를 받자 출가하였고 비구들은 나이가 많다고 거절을 하였지만 세존께서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로 출가하게 하신(ThagA.ii.12) 라다 장로(Th2:7)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로는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꼽히는 분이다.(A1:14:4-15)
⑵ 장로들의 출가 동기와 계기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의 출가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는 장로들이 어떤 동기나 계기로 출가하였는지를 살펴보자.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259분 장로들 가운데 대부분은 부처님 계실 때 태어났기 때문에 부처님을 직접 뵙고 법문을 듣고 믿음이 생겨 출가하였거나 부처님의 위신력(anubhāva)을 보고 출가한 경우가 아주 많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와까(sāvaka), 즉 성문(聲聞)의 본보기가 되는 대표적인 경우들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분들은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표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아니라 사리뿟따 장로 등의 장로들을 보고 법문을 듣고 출가한 경우(수나가 장로(Th1:85) 등)도 있다.
주석서에 나타나는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문맥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와 ②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출가한 경우와 ③ 사리뿟따 존자 등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이다.
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
첫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는 대부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다(dhammaṁ suṇanto saddhaṁ paṭilabhitvā pabba -ji ― ThagA.i.24).’라거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dhammaṁ sutvā pabbajitvā ― ThagA.i.85).’라거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믿음이 생겨서 출가하였다(dhammaṁ sutvā paṭiladdhasaddho pabbajitvā ― ThagA.i. 32; dhammadesanaṁ sutvā paṭiladdhasaddho pabbaji ― ThagA.i.47 등).’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이 나타나는 곳은 수부띠 장로(Th1:1)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모두 91분 정도의 장로들의 행장을 들 수 있다.
②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
둘째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 ‘부처님의 위신력(Buddhānubhāva)을 보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서 출가한 뒤’(니그로다 장로(Th1:21)부터 우다이 장로(Th16:2 {689})까지)라고 23분 정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나투신 쌍신변을 보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서’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부처님의 쌍신변을 보고 믿음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고디까 장로(Th1:51) 등 6분 정도가 된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는 29분 정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③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
셋째는 사리뿟따 존자 등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로 모두 20군데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예를 들면, 라다 장로(Th2:7 {133})는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존자에 의해 출가하였고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증득하였다. 그리고 이시닷따 장로(Th1:120)는 서로 본 적은 없지만 서신으로 맺은 친구인 찟따 장자로부터 부처님의 덕행을 적은 교법에 대한 [서신]을 받아 보고 교법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마하깟짜나 장로의 곁에서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을 직접 뵙거나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출가한 장로들이 120분이고 사리뿟따 존자 등의 부처님의 오래된 직계 제자들의 문하로 출가한 경우도 20군데 정도가 된다.
이처럼 140분에 달하는 축복받은 장로들은 부처님과 뛰어난 직계 제자를 직접 뵙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라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140분들이야말로 사와까(sāvaka), 즉 성문(聲聞)의 진수를 보여주는 분들이다.
<도표4> 친인척관계에 있는 장로들 |
번호 | 장로 | 친인척관계 | 관련 게송 |
1 | 수부띠 |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동생. | Th1:1 |
2 | 뿐나 | 꼰단냐 장로의 조카. | Th1:4 |
3 | 다사까 |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하인의 아들. | Th1:17 |
4 | 아바야 | 빔비사라왕의 아들. 어머니 빠두마와띠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됨. | Th1:26 |
5 | 뽀시야 | 상가마지 장로의 동생. | Th1:34 |
6 | 띳사 | 세존의 고모의 아들. | Th1:39 |
7 | 카디라와니야 = 레와따 |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레와따 장로(Th14:1)의 다른 이름임. | Th1:42; Th14:1 {645}~{658} |
8 | 시왈리 | 숩빠와사 청신녀의 아들. | Th1:60 |
9 | 위말라꼰단냐 | 암바빨리 기녀와 빔비사라 왕의 아들. | Th1:64 |
10 | 찬나 | 숫도다나 왕의 하녀의 아들. 세존과 같은 날 태어남. | Th1:69 |
11 | 수나가 | 사리뿟따 장로의 친구의 아들. | Th1:85 |
12 | 라다 | 아래 수라다 장로의 형임. | Th2:7 {133}~{134} |
13 | 수라다 | 라다 장로의 동생. 뒤따라 출가함. | Th2:8 {135}~{136} |
14 | 마하쭌다 |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 Th2:11 {141}~{142} |
15 | 난다 | 숫도다나 대왕의 아들. 세존의 이복동생. | Th2:19 {157}~{158} |
16 | 시리마 | 시리왓다 비구의 형. | Th2:20 {159}~{160} |
17 | 위따소까 | 아소까 대왕의 동생. | Th2:25 {169}~{170} |
18 | 난다까 | 바라따 장로의 동생. | Th2:27 {173}~{174} |
19 | 바라드와자 | 다음 깐하딘나 장로의 아버지. | Th2:29 {177}~{178} |
20 | 깐하딘나 | 위 바라드와자 장로의 아들. | Th2:30 {179}~{180} |
21 | 세나까 |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여동생의 아들. | Th4:6 {287}~{290} |
22 | 라훌라 | 세존의 아들. | Th4:8 {295}~{298} |
23 | 수마나 | 외삼촌 문하로 출가함. | Th5:4 {330}~{334} |
24 | 나디깟사빠 |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동생. | Th5:6 {340}~{344} |
25 | 가야깟사빠 |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막냇동생. | Th5:7 {345}~{349} |
26 | 위지따세나 | 두 외삼촌(세나, 우빠세나)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됨. | Th5:9 {355}~{359} |
27 | 미가잘라 | 녹자모 강당을 지은 위사카 청신녀의 아들. | Th6:8 {417}~{422} |
28 | 브라흐마닷따 | 꼬살라 왕의 아들. | Th6:12 {441}~{446} |
29 | 시리밋따 | 시리굿따 장로의 조카. | Th8:2 {502}~{509} |
30 | 깔루다이 | 까삘라왓투 대신의 아들. 세존과 같은 날 태어남. | Th10:1 {527}~{536} |
31 | 에까위하리야 | 아소까 대왕의 동생. | Th10:2 {537}~{546} |
32 |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 Th10:6 {577}~{586} |
33 | 상낏짜 | 아디뭇따 장로의 외삼촌. | Th11:1 {597}~{807} |
34 | 실라와 | 빔비사라 왕의 아들. | Th12:1 {608}~{619} |
35 | 아디뭇따 | 상낏짜 장로(Th11:1)의 조카. | Th20:1 {705}~{725} |
36 | 아누룻다 | 세존의 사촌. | Th20:9 {892}~{919} |
37 | 아난다 | 세존의 사촌. | Th30:3 {1018}~{1050} |
④ 세존이나 장로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
넷째,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서 언급해야 할 분들에는 먼저 출가한 장로 스님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가족이나 친지들 가운데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을 인연으로 하여 동생이나 조카나 아들 등이 되는 분들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친인척관계를 여기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37분 정도가 된다.
당연히 부처님의 아들이나 친지들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하며 그래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 장로(Th4:8 {295})와 동생인 난다 장로(Th2:19 {157}), 그리고 마부였던 찬나 장로(Th1:69)까지 이 영역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 세 분의 장로들 즉 마하쭌다 장로(Th2:11 {141})와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장로(Th10:6 {577})와 레와따 장로(Th14:1 {645} = 카디라와니야 장로(Th1:42))도 여기에 넣을 수 있고 그 외 여러 장로들을 넣을 수 있는데 이런 조건으로 검색해 보면 대략 37분 정도를 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본서에 나타나는 259명 장로들 가운데 대략 37분 정도가 친인척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친인척관계에 있는 장로들을 정리하면 <도표4>과 같다.
⑤ 그 외의 인연으로 출가한 경우
앞에서 언급한 180여 분(90+30+20+40)을 제외한 나머지 80분 정도의 장로들도 여러 가지 인연이나 계기로 출가를 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해골을 두드려 죽은 자들의 태어나는 곳을 알아내었던 왕기사 장로(Th70:1 {1209}~{1,279})와 미가시라 장로(Th2:31 {181}~{182})는 아라한들의 태어나는 곳을 아는 주문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였고 삘린다왓차 장로(Th1:9)는 자신이 호지하고 있던 쭐라간다라 주문이 듣지 않자 마하간다라(Mahā-Gandhāra) 주문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
이상으로 259분 아라한 스님들이 출가하게 된 인연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제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깨달음을 실현하여 아라한이 되었는가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⑴ 절박함(saṁvega)
① 절박함(saṁvega)이란 용어의 빈도수
『테라가타』가 아닌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를 하나만 들라면, 그리고 역자의 마음에 가장 큰 감동을 준 단어를 하나만 들라면 역자는 ‘절박함(saṁvega)’을 들고 싶다. 역자의 마음을 가장 움직인 키워드가 절박함(saṁvega)과 절박함이 생겼음(saṁvega-jāta)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saṁveg’로 단순 조회를 해보면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saṁvega라는 술어는 대략 120번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회되었다. 이 가운데 34번 정도는 ‘절박함이 생긴’으로 옮겨지는 saṁvega -jāta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박함이 생김’으로 옮기는 sañjāta-saṁvega로도 27번 정도 검색이 되었다. 나아가서 saṁvejanīya(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나 saṁvejetukāma(절박함을 일으키기 위한)나, saṁvejita(절박함을 일으킨)이나 동사 saṁvejeti(절박함을 일으키다)를 염두에 두고 ‘saṁvej’로 검색하면 16번 정도가 조회된다. 역자가 인용하여 옮긴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대략 87분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이 절박함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② ‘절박함’이란 무엇인가
‘절박함’으로 옮긴 saṁvega는 saṁ+√vij(떨다, to tremble, vijjati, Sk: vijate/ti, 6류)의 사역 동사 saṁvejeti의 남성명사이다. 이 용어는 삼장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PED는 ‘agitation, fear anxiety; thrill; re- ligious emotion caused by contemplation of the miseries of this wo- rld’로, NMD와 『청정도론』은 ‘sense of urgency’로, BDD는 ‘anxiety; agitation; religious emotion’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절박함’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saṁvejeti의 과거분사인 saṁvigga(절박해진, 절박한), saṁvejita(절박함을 일으킨)와 가능법 분사(potential participle)인 saṁvejanīya(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와 saṁvejetukāma(절박함을 일으키기 위한)도 삼장에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띠웃따까』「기쁨 경」(It2:10)에서 번뇌를 멸진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절박함을 들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머물고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한 원인을 충족하였다. 무엇이 둘인가?
①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에 대한 절박함과 ② 절박함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노력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머물고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한 원인을 충족하였다.”(It2:10 §1)
이 경에 해당하는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악처의 괴로움(apāya-dukkha), 과거의 윤회에 뿌리박은 괴로움(anāgate vaṭṭamūlaka dukkha), 미래의 윤회에 뿌리박은 괴로움, 현재의 음식을 구함에 뿌리박은 괴로움(paccuppanne āhārapariyeṭṭhimūlaka dukkha)이라는 이 [여덟 가지] 절박함의 토대들(saṁvega-vatthūni)이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saṁvejanīyaṭṭhānāni)’이 된다.”(ItA.i.115~116)라고 설명하고 있다.
『담마상가니』제3편「간결한 설명 편」(nikkhepa-kaṇḍa)은 “1376. ‘절박함(saṁvega)’이란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두려움, 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saṁvejanīya ṭhāna)’(ma2-139-a)란 태어남, 늙음, 병, 죽음이다.”로 절박함과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주석서』도 생‧노‧병‧사에 대한 두려움(bhaya)이 절박함(saṁveg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DA.iii.984)
한편 생‧노‧병‧사가 거듭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오도송에서 ‘아네까자띠 삼사라(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anekajāti-saṁsāraṁ)’로 말씀하신다.(본서 제2권 {184}의 해당 주해 참조) 이렇게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치달려 온 것에 대한 두려움(bhaya)을 내는 것이 바로 니까야와 주석서들에서 말하는 이 절박함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4대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이러한 절박함을 일으키고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 4대 성지를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saṁvejanīya ṭhāna)라고「대반열반경」(D16)은 강조하고 있다.(D16 §5.8)
그리고 이것은 비구를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saṁsāre bhayaṁ ikkha -tī ti bhikkhu, Vis.I.7; saṁsāre bhayassa ikkhanakā, ThagA.i.81)로 정의하는 상좌부 주석서 전통과도 연결되어 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야말로 생노병사에 대한 두려움을 보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절박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비구이기 때문이다. 장로들의 오도송, 즉 구경의 지혜를 담은 게송들을 모은 이 『테라가타』가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도 바로 이 윤회와 생사에 대한 절박함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임을 담마빨라 스님은 많은 게송을 주석하고 많은 장로들의 행장을 정리하여 드러내면서 이 절박함을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역자가 파악한 담마빨라 스님의 가장 큰 뜻이라고 생각한다.
③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절박함’
『테라가타 주석서』가 아닌 『테라가타』의 게송 안에서 saṁvega라는 용어는 난다까 장로(Th2:27)의 {173} 게송 등 모두 5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동사 saṁvejesi로 한 곳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우사바 장로(Th2:39)는 이렇게 읊고 있다.
“코끼리의 몸통에서 내려오자
그때 나에게 절박함이 생겼다.
그런 나는 그때 오만하였다가 곧 고요해졌나니
나는 번뇌의 멸진을 얻었다.”({198})
그리고 마하빤타까 장로(Th8:3 {510}~{517})의 {510}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나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saṁvego ahu).’는 말은 수치심과 함께하는(sahottappa) 지혜가 생겼다는 말이다.”(ThagA.ii.215)라고 설명하고 있다.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의 {791}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그때 나는 절박함을 얻었습니다(saṁvegaṁ alabhiṁ tadā).’라고 하였다. 스승님의 곁에서 법을 듣는 시간에 존재 등(bhavādika)에 대해서 절박함을 얻었다는 말이다.”(ThagA.iii.41)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서 낌빌라 장로(Th2:18)의 {155}를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절박함이 생겨서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비구들이 진정한 도반들(sahāyak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절박함이 없는 비구는 진정한 출가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석서는 설명한다.
“절박함이 생겨 출가하여(saṁveguppatti-pabbajjā) 사문의 법을 실천하며(samaṇa-dhamma-karaṇa) 함께 머무는 자들(saṁvāsā)과 함께 길을 가기 때문에(ayanato), 나아가기 때문에(pavattanato) ‘도반들(sahāyakā)’이다.”(ThagA.ii.31)
④ 절박함으로 출가함과 절박함으로 깨달음을 실현함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대략 120번 정도 나타나는 이 saṁvega(절박함)라는 용어는 크게 두 가지 문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출가할 때의 절박함으로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이고 둘째는 절박함에 사무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경우이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이 서술하고 있는 259분 장로 스님들의 행장을 통해서 보면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스님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직접 삶에서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많다. 이처럼 출가할 때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는 대략 35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위라 장로(Th1:8)는 감각적 쾌락들(kāmā)과 윤회(saṁsāra)에서 위험(ādīnava)을 보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 -jāta) 출가하였다.(ThagA.i.52) 그리고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던 아바야 장로(Th1:28)는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시해되자 절박함이 생겨(sañjāta- saṁvega) 출가하였다.(ThigA.39)
둘째, 절박함에 사무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경우는 대략 27분 정도인 듯하다. 예를 들면 수망갈라 장로(Th1:43)는 환속하려고 친척들의 마을로 가는 도중에 갈대를 묶고 들판을 경작하면서 더러운 옷을 입고 먼지를 덮어쓴 채 바람과 열기에 메마른 농부들을 보고 ‘이들은 생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구나.’라고 절박함을 얻게 되었고 어떤 나무 아래에 가서 멀리 여읨(한거, viveka)을 얻은 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도의 순서(maggapaṭipāṭi)대로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 A.i.118)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는 처참한 가문(duggata-kula)에 태어났으며 넝마 조각을 옷으로 삼고 거지처럼 살다가 어떤 번뇌 다한 장로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였다. 그는 일곱 번을(sattakkhattuṁ) 환속하였다(uppabbaji). 비구들은 그의 그런 행동을 세존께 말씀드렸고 그러던 어느 날 깝빠따꾸라 비구는 법의 회합(dhamma-sabhā)에서 회중(會衆)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런 그를 호되게 꾸짖으시는 게송 두 개({199}~{200})를 읊으셨다. 세존의 질책으로 뼛속을 파고드는 충격처럼, 사나운 코끼리가 길을 달려 내려오는 것처럼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 vega)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 A.ii.66~67)
그리고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와 절박함(saṁvega)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13번 정도가 되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이처럼 절박함으로 출가하였거나 절박함으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로 주석서는 대략 62분을 들고 있다.
그 외 25분 정도의 행장에서는 이 절박함이라는 용어가 다른 문맥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쭐라가왓차 장로(Th1:11)는 꼬삼비(Kosambi)의 비구들의 분쟁이 생겼을 때 그 비구들이 분쟁에 몰두하여 그들의 이로움이 파멸되는 것을 보고 법에 대한 절박함을 얻어(dhammasaṁvegappatta) {11}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58)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출가하면 제일이겠지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후대의 출가자들에게도 절박함은 수행의 가장 크고 튼튼한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 선종의 많은 조사 스님들도 간절 절(切) 자를 강조하셨다. 역자가 saṁvega를 절(切) 자를 넣어서 절박(切迫)함으로 옮긴 데는 역자가 대불련(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부산지부 교화부장을 하면서 화두를 받은 이후로 항상 옆에 두고 읽었고 그래서 출가를 결단하게 된 저 『선관책진』(禪關策進)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⑵ 마음챙김(sati)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마음챙김’으로 옮기고 있는 sati(Sk: smṛti)는 바라문교나 자이나교를 포함한 외도들의 가르침이나 수행 체계에는 강조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smṛti는 기억이나 기억을 통해서 기억해 낸 선조들의 가르침이나 법령 등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마누 법전으로 알려진 『마누스므르띠』등이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사띠는 그들의 기본 교학이나 수행 체계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초기불교의 핵심 수행 용어라 할 수 있는 마음챙김은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 가운데서 sati나 과거분사 sata 등으로 8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sati를 ‘∪sati’로 검색하면 27번 정도가 나타나고 빈 칸(∪)을 띄우지 않고 ‘sati’로 검색을 하면 126번이 나타나는데 bhāsati, payiru- pāsati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번역에서 폰트의 크기를 구별해서 조회하니 원문에 모두 34번이 조회되었다. 역자는 sati를 마음챙김으로만 옮기기 때문에 『테라가타』빠알리 원문에 마음챙김을 뜻하는 sati는 34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sati의 과거분사 sata의 주격인 sato 등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한글 번역에서 폰트의 크기를 구분해서 ‘마음챙’으로 검색을 하면 80번 정도가 나타난다. 여기에다 계속해서 생각함으로 옮기는 anusati 다섯 번을 포함시키면 모두 85번 정도가 된다.
그리고 폰트와 관계없이 한글 번역으로만 ‘마음챙김’으로 검색하면 83번 정도가 나타나고 ‘마음챙’으로 검색하면 125번 정도가 나타난다. 이것은 주석서를 주해로 옮기면서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 85번 가운데에는 사념처, 즉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뜻하는 마음챙김의 확립(sati- paṭṭhāna)은 다섯 곳에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소비따 장로(Th2:23)의 {166} 한 곳에서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attāro satipaṭṭhāna)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몸에 대한 마음챙김(kāyagatā sati, 혹은 kāya-gatā-sati 등)도 게송의 다섯 군데 정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마 1,279개 게송들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는 dhamma일 것이다. 179번이 검색되었다. 이외에 아주 많이 나타나는 용어들 가운데 sati는 몇 번째로 많이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괴로움과 고통 등으로 옮겨지는 dukkha라는 단어가 모두 8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봐도 아주 많은 빈도수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아라한 장로들은 마음챙김을 강조하고 있다. 마하가왓차 장로(Th1:12)는,
“통찰지의 힘을 가졌고 계행과 서계를 구족하였으며
삼매에 들고 禪을 기뻐하고 마음챙김을 가져
이치에 맞는 적절한 음식을 먹으면서
탐욕 여읜 그는 여기서 바른 시간을 기다려야 하노라.”({12})
라고 출가자의 삶과 수행의 핵심을 읊고 있다. 그리고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고 읊고 있는데 주석서는 장로가 아라한됨을 얻고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to) 읊은 게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ThagA.i.78) 이 외에도 마음챙김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⑶ 염오(nibbidā)
염오(nibbidā)는 『상윳따 니까야』에만 500번 정도 나타나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정형구’인 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② 무상‧고‧무아 ③ 염오 ④ 이욕 ⑤ 해탈 ⑥ 구경해탈지의 정형구의 세 번째인 염오에 해당한다. 여섯 단계의 과정에 대해서는 『초기불교 이해』54~55, 58, 137, 139이하, 174이하, 177이하, 191~192, 209쪽 등을 참조하고, 『상윳따 니까야』제4권 해제 §3과 제3권 해제 §3을 중심으로도 살펴볼 것을 권한다.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등은 염오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염오(nibbidā, nis+√vid1, vedeti, to know, to feel)’란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드러내고 있다.
강한 위빳사나란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④ 공포의 지혜(bhayatūpaṭṭhāne ñāṇa)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ānupassane ñāṇa) ⑦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 ⑨ 상카라[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SA.ii. 53, 『상윳따 니까야』제2권「의지처 경」(S12:23) §4에 대한 주석.)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는 “강한 위빳사나는 ④ 공포의 지혜(bhayat-ūpaṭṭhāne ñāṇa),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a-anupassane ñāṇa), ⑦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 ③ 무너짐의 지혜(bhaṅgañāṇa)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AAṬ.iii.390)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인 『청정도론 복주서』는 “⑥ 염오의(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nibbidānupassanāñāṇa)부터가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이며 그 이전은 약한 위빳사나(dubbala-vipassanā)라고 설명하고 있다.(Pm.i.324)
즉 열 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⑥ 염오의 지혜(nibbidānupassanā- ñāṇa)와 ⑦ 해탈하고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와 ⑧ 깊이 숙고하여 관찰하는 지혜(paṭisaṅkhānupassanā-ñāṇa)와 ⑨ 형성된 것들(상카라, 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와 ⑩ 수순하는 지혜(anu- loma-ñāṇa)의 다섯 가지 지혜가 강한 위빳사나이며 그 이전 단계인 ① 명상의 지혜(sammasana-ñāṇa)와 ② 생멸의 지혜(udayabbaya-ñāṇa)와 ③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bhaṅgānupassanā-ñāṇa)와 ④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bhayatupaṭṭhāna-ñāṇa)와 ⑤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a-anu- passanā-ñāṇa)의 다섯은 약한 위빳사나라는 말이다.
『테라가타』빠알리 원문에서 염오는 명사 nibbidā(염오)로 7번 정도가 나타나고 동사 nibbindati(염오하다)로 세 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나가사말라 장로(Th4:1 {267}~{270})는 탁발을 가다가 큰 도로의 한 가운데서 춤추는 여인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 생겨났다.
위험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염오가 확립되었다.”({269})
그리고 {270}에서 ‘그것 때문에 나의 마음은 해탈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주석서는 여기서 염오는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라고 밝히고 있다. (ThagA.ii.111)
부처님의 첫 번째 출가 제자요(A1:14:1~80)「초전법륜 경」(S56:11)을 듣고 맨 먼저 예류과를 얻은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688})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송에서 염오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통찰지로 볼 때
괴로움을 염오하나니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도이다.”({676}~{678}; Dhp {277}~{279})
⑷ 위빳사나 수행
이상으로 출가와 깨달음과 그리고 도와 과의 실현에서 가장 중요한 절박함(saṁvega)과 마음챙김(sati)과 염오(nibbidā)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이제 259분 장로들은 어떤 수행과 어떤 인연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하여 아라한이 되었는가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의 장로들의 행장 가운데 197분 정도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이번 번역을 하면서 이 한글 번역을 토대로 Foxpro로 ‘테라가타 한글 번역 데이터 베이스’ 자료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한글 ‘위빳사나’로만 검색을 하면 1,279개 게송을 포함한 전체 자료에서는 280번이 나타나고, 장로들의 행장에서는 197번이 나타났다. 즉 259명 장로들 가운데 62명을 제외한 분들이 이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이 위빳사나라는 용어는 ① 위빳사나의 업, ② 위빳사나의 확립, ③ 위빳사나의 증장, ④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함 등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장로들이 위빳사나를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음을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①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용어는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이다.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는 vipassanāya kam -maṁ karonto를 직역하여 옮긴 것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여기서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로 직역한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 karoti라는 표현이 59번 정도가 나타나고 『테리가타 주석서』에도 20번 정도가 나타나고 vipassanākammaṁ karontā라는 표현도 몇 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복주서에는 이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karoti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지만 수행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kammaṁ karontassa(업을 행하면서) 혹은 kammaṁ karoti(업을 짓는다)를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업을 행하면서(kammaṁ karontassa)’라는 것은 수행에 몰두하는 업을 지으면서(bhāvanā-anuyoga-kammaṁ karontassa)라는 뜻이다.”(MAṬ.ii.268)
“‘업을 짓는다(kammaṁ karoti).’는 것은 수행하는 업을 짓는다는 뜻이다(yoga-kammaṁ karoti).”(MAṬ.ii.212)
그러므로 이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는 ‘위빳사나 수행에 몰두하면서’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위빳사나를 증장하여(vipassanaṁ brūhetvā)
둘째, 위빳사나를 증장하여(vipassanaṁ brūhetvā) 아라한과를 얻었거나 세 가지 명지를 얻었거나 육신통을 얻었다는 언급이 58군데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쭐라가왓차 장로(Th1:11)와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는 ‘위빳사나를 증장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vipassanaṁ brūhetvā arahattaṁ pāpuṇi, Thag A.i.58)’라고 나타나며,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행장에서는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세 가지 명지(vijjāttaya)를 실현하였다(vipassanaṁ vaḍḍhetvā vijjā -ttayaṁ sacchākāsi, ThagA.i.47).’라고 나타난다.
③ 위빳사나를 확립하여(vipassanaṁ paṭṭhapetvā)
셋째, 위빳사나를 확립하여(vipassanaṁ paṭṭhapetvā)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언급은 38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사까 장로(Th1:17)의 행장과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ThagA.i.74)라고 언급하고 있다.
④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vipassanaṁ ussukkāpetvā)
그리고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vipassanaṁ ussukkāpetvā)라고 언급하는 곳도 29군데 정도 된다. 예를 들면 뿐나 장로(Th1:4)와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vipassa- naṁ ussukkāpetvā arahattaṁ pāpuṇi, ThagA.i.74).’라고 나타나고 있다.
그 외 웃띠야 장로(Th1:30)와 사미닷따 장로(Th1:90) 등 8분 정도도 위빳사나 수행을 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⑸ 禪 수행과 사마타 수행
불교 수행, 특히 초기불교 수행도 禪으로 음역을 한 jhāna, 즉 禪 수행을 뺄 수 없다. 역자가 인용하여 옮긴 『테라가타 주석서』를 포함하여 『테라가타』1/2/3권 전체에서 ‘禪’이라는 번역어로 검색하면 67번이 쓰인 것으로 조회가 되고, 한글로 옮긴 『테라가타』1/2/3권 전체에서 빠알리어 jhān(a)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면 59번 정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마타로 옮기는 ‘samath’로는 17번이, 증득이나 등지로 옮기는 ‘samāpatti’로는 44번이, ‘bhāvan(ā)’로는 58번이 쓰인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그리고 명상주제로 옮기는 ‘kammaṭṭhān(a)’로 검색을 하면 30군데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주석서를 인용한 것까지 포함한 것이다. samāpatti나 kammaṭṭhāna 등은 『테라가타』원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장로들의 행장 안에서만 검색하면 禪으로는 40번, 빠알리어 jhān(a)로는 33번이 나타났다. samath로는 10번, samāpatti로는 27번, bhāvanā로는 25번, kammaṭṭhāna로는 20군데 정도가 된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이것을 『테라가타』빠알리 원문 안에서만 검색하면 jhāna나 jhāne로는 8번이 나타났고 samath로는 9번, bhāvanā로는 1번이 나타났으며 samāpatti나 kammaṭṭhāna는 게송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 이러한 수행 용어에 대한 주석서의 언급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용어들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jhāna와 samatha가 특정 장로의 행장에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5번 정도 있으며 주석서의 행장들 가운데 vipassanā와 samāpatti가 함께 나타나는 장로들의 경우도 9번이 되었다. 주석서에서 vipassanā와 jhāna가 함께 나타나는 장로들의 경우도 10번이 되었다. 물론 마음챙김(sati)도 주석서의 장로들의 행장에 41번 정도 나타나고 알아차림(sampajāna)도 6번 정도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taca-pañcaka-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도 주석서에 나타나는 세 분의 장로들 행장에 있고, 더러움[不淨]의 명상주제(asubha-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도 세 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이 정도로만 살펴보아도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데는 위빳사나 수행과 禪이나 사마타나 명상주제 등의 수행을 통해서라고 주석서는 강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여기서 언급한 주석서의 수행을 통한 문맥의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① 禪(jhāna)의 문맥
급고독 장자의 동생인 수부띠 장로(Th1:1)는 자애와 함께하는 禪(mettā- jhāna)을 닦아서 아라한이 되었다.(ThagA.i.24) 그는 주로 숲에서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소빠까 장로(Th1:33)는 공동묘지(susāna)의 장작더미(citaka) 위에서 태어났고 바로 어머니는 죽었으며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부처님을 뵙고 출가하였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특별히 자애 수행(mettā-bhāvanā)에 몰두하게 하셨고 그는 자애의 명상주제(mettā-kammaṭṭhāna)로 묘지에서 살면서 자애와 함께한 禪(mettā-jhāna)을 얻은 뒤 그 禪을 기초로 하여(pādakaṁ katvā) 위빳사나를 증장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이 되어서 공동묘지에 사는 비구들에게 자애 수행의 방법(mettā-bhāvanā-vidhi)을 보여주면서 {33} 게송을 말하였다고 한다.(ThagA.i.99~100)
깡카레와따 장로(Th1:3)도 禪을 기초로 하여(pādakaṁ katvā)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A.i.37)
마하빤타까 장로(Th8:3 {510})는 네 가지 무색계 禪(arūpajjhāna)을 얻은 자가 되어 거기서 출정하여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② samatha의 문맥
주석서에서는 뿐나 장로(Th1:70), 멘다시라 장로(Th1:78), 키따까 장로(Th1:104), 왓차곳따 장로(Th1:112), 시리마 장로(Th2:20 {159}), 미가시라 장로(Th2:31 {181})의 여섯 분의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사마타 수행을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이분들은 위빳사나 수행도 당연히 하였고 이러한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라한이 된 분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여섯 분들은 모두 육신통을 구족한 분들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제4선에 능통해야 신통의 지혜가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나 꼴리위사 장로(Th13:1)는 {639}에서 자신이 사마타를 닦았고 삼명을 갖추었음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교법에 기뻐하며 머물렀다.
가장 높은 이치를 증득하기 위해서
사마타를 닦았다.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639})
③ samāpatti의 문맥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 안에는 증득[等至, 等持]으로 옮기는 samā -patti라는 술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과의 증득(phala-samāpatti)이 15번 정도 언급되고 있고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 八等持, aṭṭha samāpattiyo]이라는 문맥으로 다섯 군데 정도에 나타나며 증득의 행복(samāpatti-sukha)으로도 나타나는 등 대부분이 수행을 통한 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증득이나 삼매를 통한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여덟 가지 본삼매의 증득 등의 문맥에서 쓰이고 있다.
⑹ 삼명(三明, te-vijjā)과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
이 문맥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육신통에 대한 것이다. 『청정도론』등 주석서 문헌에 의하면 신통은 제4선의 증득을 토대로 나투게 된다. 그래서 제4선을 [신통지의] 기초가 되는 禪(pādaka-jjhāna)이라 부른다.( 『청정도론』XII.57 이하 참조)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은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여섯 가지 신통을 말하고, 삼명 즉 세 가지 명지[三明, te-vijjā]는 이 가운데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셋을 말한다. 『청정도론』은 “‘명지(vijjā)’란 세 가지 명지[三明, te-vijjā]도 있고 여덟 가지 명지[八明, aṭṭha vijjā]도 있다. 세 가지 명지는 『맛지마 니까야』「두려움과 공포 경」(M4)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하고 여덟 가지는 『디가 니까야』「암밧타 경」(D3 §2.2 = D2 §§83~98)에서 설한 대로 알아야 한다. 이처럼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 D2 §83)와 마음으로 [만드는 몸의] 신통(manomay-iddhi, D2 §85)과 함께 여섯 가지 신통지[六神通]를 더하여 여덟 가지의 명지를 설하셨다.”( 『청정도론』VII.30)라고 정리하고 있다,
『청정도론』의 설명처럼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 가운데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셋을 세 가지 명지(te-vijjā) 즉 삼명(三明)이라 하며(M4 §28 등), 이 육신통에다 위빳사나의 지혜와 마음으로 [만든 몸의] 신통을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 명지(aṭṭha vijjā), 즉 팔명(八明)이 된다. 이 여덟 가지 명지는 『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 §83 이하와 『맛지마 니까야』제3권「사꿀루다이 긴 경」(M77) §§29~36에 비유와 함께 나타난다.
육신통(chaḷabhiññā)이라는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117번 정도가 언급되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지만 『테라가타』게송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신에 게송 안에서는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의 세 가지 명지, 즉 삼명(三明, te-vijjā)이라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삼명을 뜻하는 tisso vijjā로는 23번 정도가 조회되었고 세 가지 명지를 가진 자를 뜻하는 tevijja로는 10번 정도가 언급이 되고 있다. 이처럼 삼명은 33번 정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한 장로들이 스스로 삼명을 구족하였음을 밝히는 사자후인 것이다.
이 가운데 삼명을 뜻하는 tisso vijjā(세 가지 명지)는 20번 정도가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라는 정형구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수간다 장로(Th1:24)는 출가하여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7일 만에 삼명을 얻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ThagA.i.84~85) 이렇게 읊었다.
“출가하여 안거를 하였나니
법이 수승한 법임을 보라.
세 가지 명지[三明]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24})
한편 여기서 ‘세 가지 명지[三明]를 얻었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라는 이 정형구는 『테라가타』안에서 원문으로 확인해 보면 20번 정도가 나타나고 있고, “나는 스승님을 섬겼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pariciṇṇo mayā satth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는 10번 정도가 나타나며 “나는 참된 목적을 성취하였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sadattho me anuppatto,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는 3번 정도가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 수간다 장로(Th1:24) {24}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⑺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통한 수행의 언급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통한 수행의 언급은 20분 정도에 나타난다. 물론 명상주제를 통해서 위빳사나를 한 경우가 13곳에 나타나므로 이 경우에는 모두 위의 위빳사나에 대한 검색에 포함된다. 위빳사나의 언급 없이 명상주제를 가지고 수행하였다는 언급은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7군데가 된다. 그러나 『테라가타』안에서 명상주제로 옮기는 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이 된다.
⑻ 수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
한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위빳사나 수행 등에 대한 언급이 없이 열심히 정진하여서 아라한이 된 것으로 정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위라 장로(Th1:8) 등의 여섯 분 정도가 나타나는 듯하다.
그리고 위빳사나 등의 수행에 대한 언급 없이 세존의 법문을 듣거나 세존을 뵙거나 세존의 자애로우신 설법 등의 힘으로 아라한이 된 경우도 11번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7분은 경의 가르침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우루웰라깟사빠 장로(Th6:1 {375})와 두 동생 장로와 벨랏타시사 장로(Th1:16)는「불타오름 경」(S35:28)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으며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는「무아의 특징 경」(S22:59)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런데 9분 정도의 장로들의 경우에는 수행에 대한 언급이나 세존을 친견함 등의 언급이 없이 그냥 아라한이 되었다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와 그의 형 따뿟사(Tapussa)는 부처님과 법에 귀의를 하여(그때는 아직 승가가 없었음) 첫 번째로 재가 신도(upāsakā)가 된 분들이다.
세존께서 깨달음을 실현하신 뒤 여덟 번째 칠 일에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Rājāyatana-mūla)에서 머물고 계실 때에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는 아직 출가하기 전에 상인이었을 때 그의 형 따뿟사(Tapussa)와 함께 오백 대의 수레에 물품을 싣고 장사(vāṇijjā)를 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존께 공양을 올렸고 부처님과 법에 귀의를 하여 첫 번째로 재가 신도(upāsakā)가 되었다. 그들 가운데 따뿟사(따빳수)는 예류과에 확립되어 재가 신도가 되었고 발리야(발리까)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ThagA.i.50~51)라고 주석서에 설명이 되어있다.
아바야 장로(Th1:26)도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형인 아자따삿뚜에 의해서 시해되자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수행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ThagA.i.88)
⑼ 삭발할 때 아라한과를 얻은 장로들
그런데 『테라가타 주석서』에 나타나는 각 장로들의 행장에 의하면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khuraggeyeva) 아라한과를 얻은 장로들도 일곱 분이 된다. 그들은 답바 장로(Th1:5), 산자야 장로(Th1:48), 수야마나 장로(Th1:74), 고따마 장로(Th2:9 {137},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 깝빠 장로(Th10:5 {567}), 상낏짜 장로(Th11:1 {597})이다. 이 가운데 답바 장로(Th1:5)와 깝빠 장로(Th10:5 {567})와 상낏짜 장로(Th11:1 {597})는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taca-pañcaka-kammaṭṭhāna)를 먼저 받았으며 삭발할 때 아라한이 되었다고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모태에서 7년을 머무른 뒤 태어나서 바로 사리뿟따 존자와 대화를 하고 사리뿟따 존자가 출가를 하게 하였다는 신비한 인물인 시왈리 장로(Th1:60)까지 여기에 포함시키면 모두 8분이 된다. 이들은 바로 아라한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곱 살에 출가한 장로들도 답바 장로(Th1:5)와 상낏짜 장로(Th11:1 {597}) 등의 11분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I-⑴-④ 사미로 출가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수마나 장로(Th6:10)는 {429}에서 ‘태어난 지 일곱 살이었던 내가 신참으로 출가하였을 때 / 큰 신통을 가진 용왕을 신통으로 이기고서’({429})라고 하여 자신이 7살에 출가하였음을 직접 밝히고 있다.
반면에 아주 늦게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I-⑴-⑤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테라가타』에는 259분의 아라한 장로들이 읊은 1,279개의 게송이 담겨있다. 이 장로들이 어떻게 해서 아라한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앞의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에서 살펴보았다. 부처님의 직계 제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 259분의 장로들은 어떠한 배경과 어떠한 인연과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 게송들을 읊었을까를 살펴보는 것도 『테라가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먼저 『테라가타 주석서』의 입장을 살펴보자.
⑴ 게송들을 읊은 이유
『테라가타 주석서』는 모두(冒頭)에서 서문(ganthārambhakathā)을 읊은 뒤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분명한 이유(pākaṭa-karaṇattha)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수부띠 장로 등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득한 대로 도와 과의 행복(maggaphalasukha)을 반조한 뒤(pacca- vekkhitvā) 어떤 것은 ⓐ 감흥어(udāna)를 통해서, 어떤 것은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samāpatti-vihāra-paccavekkhaṇa)을 통해서, 어떤 것은 ⓒ 질문(pucchā)을 통해서, 어떤 것은 ⓓ 반열반할 때에(parinibbāna- samaye) 교법(sāsana)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를 설명함(niyyānika- bhāva-vibhāvana)을 통해서 말하였는데 그 모두는 합송할 때에(saṅgīti- kāle) 한 곳에 모아서 『테라가타』라고 법을 합송하는 분들(dhammasaṅgāha -kā)에 의해서 합송되었다.”(ThagA.i.2)
이처럼 주석서는 여기 『테라가타』에 실린 259분의 장로들이 이 1,279개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4가지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본 해제 V-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의 넷째에서 주석서를 참조하여 장로들이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아래의 11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았다.
그것은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 ② 감흥어로 읊은 것 ③ 사자후를 토한 것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것 ⑥ 반열반을 알리는 것 ⑦ 특별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 것 ⑧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 등이다.
이 가운데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은 위에서 인용한 주석서(ThagA. i.2)의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을 통해서와 ③ 사자후를 토한 것에 배대가 되고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과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은 바로 위에서 인용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 질문(pucchā)을 통해서’에 배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도표로 정리하였다.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은 위 주석서의 ⓐ 감흥어나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 등과 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역자가 정리해 본 이 열한 가지 정도에 대해서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여 읊음
역자는 Foxpro에서 만든 ‘테라가타 데이터 베이스’에서 새로운 필드를 만들어 ‘구경의 지혜’와 ‘감흥어’와 ‘사자후’ 등의 키워드로 259분 장로들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들을 분류하여 보았다. 이렇게 하여 분류해 보니 주석서는 259분 아라한 장로들의 게송들 가운데 168분 정도의 게송을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으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의 첫 번째 게송인 수부띠 장로(Th1:1)의 게송을 충분히 설명한 뒤에 “이것은 장로가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aññā-vyākaraṇa-gāthā)이 되었다.”(ThagA.i.30~31)라고 하면서 수부띠 장로의 게송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 짓는다. 이런 방법으로 주석서는 168분 정도의 장로들의 게송을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으로 설명하고 있고 서른의 모음의 풋사 장로(Th30:1 {949}~{980})의 마지막 게송({980})을 설명한 뒤에도 “이와 같이 장로는 모인 회중(sampattaparisa)에게 교계하였다. 이것은 이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들(aññā-vyā -karaṇa-gāthā)이 되었다.”(ThagA.iii.90)라고 설명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세존께서 특정 장로의 발심과 정진을 위해서 읊어주신 게송들은 그 장로가 아라한과를 얻은 뒤에 자신의 구경의 지혜로 받아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다사까 장로(Th1:17)는 세존께서 자신을 위해서 읊어주신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jāta)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고,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으며, 그래서 이것은 장로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parivattāhāra-naya)을 통해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이 되었다(ThagA.i.73~74)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특히 세존께서는 깝빠 장로(Th10:5 {567}~{576})에게 더러움[不淨]에 대한 게송 10개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게송을 듣고 그는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하였으며 어느 장로를 통해서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듣고 삭발을 할 때(khuraggeyeva)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주석서는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구족계를 받고 스승님께 다가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아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ThagA.ii.243)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나아가 미가잘라 장로(Th6:8 {417}~{422})의 게송 여섯 개에 대해서 주석서는 “그는 승원에 가서 끊임없이 법문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으며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은 뒤에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 여섯 개를 읊었다.”(ThagA.ii.177)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여섯 개의 게송들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오도송도 되겠지만 전체가 잘 조직되어 문법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교학적인 게송들을 담고 있다. 이 여섯 개 게송은 ‘눈을 가지신 분에 의해서 잘 설해진({417}) 이 팔정도는({421}) 귀결점이 경사스러운 것이다.({422})’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179)
② 감흥어로 읊음
그리고 주석서는 45분 정도의 장로들은 감흥어(udāna)로 자신에 속하는 게송들을 읊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꼬살라위하리 장로(Th1: 59)는 아라한됨을 얻어서 해탈의 행복을 체득한 희열의 감동이 생겨 감흥어로(ThagA.i.143)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믿음으로 나는 출가하였고
숲속에 나의 초막이 지어졌습니다.
나는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며
알아차리고 마음챙깁니다.”({59})
그리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감흥어를 통해서 읊었다는 설명이 겹치는 경우도 14분이 된다.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은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경우와 뿐나 장로(Th1:4)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우는 여기 감흥어를 읊은 45분 장로들에도 포함시켰고 앞의 구경의 지혜를 읊은 168분에도 포함시켜서 계산을 하였다.
③ 사자후를 토하여 읊음
그리고 주석서에서 자신에 찬 우렁찬 선언을 담고 있는 특정 장로들의 게송을 사자후(sīhanāda)라고 표현하는 곳도 10곳이 된다. 예를 들면,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고 당당하게 읊고 있다. 주석서는 이러한 아지따 장로의 행장을 간략하게 밝히면서 “그는 아라한됨을 얻고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 to)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78)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멜라지나 장로(Th2:6)의 게송 {131}~{132}을 설명하면서 “아라한됨을 얻은 뒤 나중에 비구들이 ‘도반이여, 그대는 인간을 초월한 법(uttari -manussa-dhamma)을 증득하였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to)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11)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하깟사빠 장로(Th40:1)의 {1087} 게송을 설명하면서도 “본 게송은 장로가 자신을 두고 사자후를 토하면서 설하였다.”(ThagA.iii.142)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테라가타』는 1,279개 게송을 모두 합송하여 마친 뒤 맨 마지막에서 [259분의 이 모든 장로들이] ‘사자후를 토한 뒤(sīhanādaṁ naditvāna)’라고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짓는다.
“게송들은 1,360개이고
장로들은 264분으로 드러났다.
사자후를 토한 뒤 부처님의 번뇌 다한 아들들은
안은함을 증득한 뒤 불의 무더기처럼 멸진하였다.”
이처럼 『테라가타』를 합송한 분들은 여기에 실린 모든 게송들을 아라한 장로들의 사자후라고 표현하면서 본서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④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음
『테라가타』에서 특정 장로에 속하는 게송들 가운데 전부나 혹은 일부는 특정 장로가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요청을 하여 읊은 것도 있고 비구들 등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도 있다. 『테라가타』본문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살펴보면 대략 22분 정도의 장로가 읊은 게송들의 전부나 혹은 일부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요청을 하거나 비구들 등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와나왓차 장로(Th1:13)의 게송은 “아라한됨을 얻은 뒤 세존께서 까삘라왓투에 계실 때 찾아가서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비구들과 함께하면서 비구들이 ‘도반이여, 숲에서 편안하게 머무셨습니까?’라고 묻자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61~62)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무디따 장로(Th4:12 {311}~{314})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해탈의 행복을 누리면서 동료 비구들이 그가 증득한 것(adhigata)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자신의 도닦음을 위한 행위(paṭipannākāra)를 설명하면서 본 게송 네 개를 읊었다.”(ThagA.ii.132~133)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특히 부처님과 같은 날에 까삘라왓투에서 대신의 아들로 태어난 깔루다이 장로(Th10:1 {527}~{536})의 게송 10개는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해 주시기를 요청하면서 읊은 게송들이다. 그는 숫도다나 대왕이 세존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하게 하시려고 보낸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세존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이 되어 세존의 곁에 머물렀지만 세존을 까삘라왓투로 초청하는 소임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주석서가 “그는 봄이 되었을 때 스승님께서 가족들이 있는 도시로 가시게 하기 위해서 가는 길의 모습을 칭송하면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221~223)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장로는 본서 10개의 게송({527}~{536})으로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해 주시기를 간청드리고 있다. {529}에서 그는 이렇게 읊는다.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으며
여행하기에 적합한 계절입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서쪽을 향하여 로히니 강을 건너서
사끼야들과 꼴리야들이 당신을 보게 하십시오.”({529})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음
주석서에 의하면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게송으로는 다음 15분 장로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석서의 설명과 함께 모아본다.
1. 꾸마뿟따 장로(Th1:36) ―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숲에서 몸을 강골로 만들기에 급급한(kāya-daḷhi-bahulā) 비구들을 본 뒤 그들을 교계하면서 교법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niyyānika-bhāva)를 설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105~106)
2. 아디뭇따 장로(Th1:114) ―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과 함께 사는 몸을 강골로 만들기에 급급한(kāya-daḷhi-bahulā) 비구들을 교계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238~239)
3. 아지나 장로(Th2:5 {129}~{130}) ― “장로는 그 비구들을 절박하게 하면서(saṁvejenta)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9~10)
4. 키따까 장로(Th2:36 {191}~{192}) ― “장로는 그 숲의 [수행] 장소에 가서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을 섭수(攝受)하기 위해서(pariggaṇhan- attha) 첫 번째 게송을 말했다.”(ThagA.ii.60~61)
5. 니사바 장로(Th2:38 {195}~{196}) ―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동료 비구들이 방일하게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들을 교계하면서 첫 번째 게송을 읊었다.”(ThagA.ii.63)
6. 브라흐말리 장로(Th2:43 {205}~{206}) ― “장로는 어느 날 그 숲의 [수행] 처소(araññāyatana)에 있는 비구들을 지목하여 그들이 [바른] 노력에 몰두함을 파악하도록(pariggaṇhanto)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 71~72)
7. 다니야 장로(Th3:4 {228}~{230}) ― “두타행(dhutaṅga)을 수지함에 의해서 자신들을 최고로 여겨 승가의 공양 등을 즐기면서 다른 비구들을 비난하는 비구들에게 교계하는 방법을 통해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89~90)
8. 우빨리 장로(Th3:11 {249}~{251}) ― “그는 나중에 어떤 포살일에 빠띠목카[戒目] 개요의 시간(pātimokkh-uddesa-samaya)에 비구들을 교계하면서 …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101~102)
9. 위말라 장로(Vimala thera, Th3:16 {264}~{266}) ―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동료 비구(sahāya bhikkhu)에게 교계를 주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109)
위말라 장로를 의지하여 출가한 소미밋따 장로(Somamitta thera, Th2:14)는 위말라 장로가 게으르고 혼침이 많은 상태로 밤낮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를 버리고 마하깟사빠 장로를 의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A. ii.24)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위말라 장로를 교계로써 경책하면서 본서 {147}~{148}을 읊었는데 그것은 위말라 장로의 {265}~{265}와 동일하다. 이 게송들을 듣고 위말라 장로도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A.ii.25)
10.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501}) ― 마하깟짜나 장로의 여덟 개의 게송 가운데 처음의 두 개({494}~{495})는 비구들을 교계하기 위해서 설한 것이고(ThagA.ii.207) 나머지 여섯 개 게송({496}~{501})은 아완띠의 빳조따 왕을 교계하기 위해서 읊은 것이라고 한다.(ThagA.ii.209)
11. 마하깝삐나 장로(Th10:3 {547}~{556}) ― “어느 날 장로는 비구니들을 교계하면서 본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232)
12.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81}~{688}) ― 어느 날 장로는 자신과 함께 사는 한 비구가 좋지 않은 도반과 교제하여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고 경솔하고 거들먹거리며 머무는 것을 본 뒤 신통으로 그곳에 가서 그에게 교계를 하였지만 그 비구는 장로의 말에 유념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로는 그의 그릇된 도닦음을 꾸짖고 바른 도닦음(sammā-paṭipatti)과 한거하여 머묾(viveka-vāsa)을 칭송하면서 나머지 8개 게송들({681}~{688})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i.6)
13.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1090}) ― “여기 처음 3개의 게송들({1051}~{1053})은 무리들(gaṇā)과 가문들(kulā)에 섞여(saṁsaṭṭha) 지내는 비구들을 보고 그들에게 교계를 베풂(ovādadāna)을 통해서 말했다.” (ThagA.iii.138)
14.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등)의 게송들은 모두 세 곳(Th1:116; Th20: 2; Th20:10)에 나타난다. 그가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도닦음을 반조하고 기쁨이 생겨 감흥어를 통해서 읊은 게송이 하나의 모음 {116}이다. 그리고 스물의 모음 두 번째에 포함된 21개 게송들(Th20:2 {726}~{746})은 부처님 재세 시에 읊은 것이고, 같은 스물의 모음의 열 번째로 들어있는 29개 게송들(Th20:10 {920}~{948})은 부처님 입멸 후에 읊은 것이라 한다.(Thag A.iii.73)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읊은 이 게송들에서 장로는 비구들을 엄하게 경책하고 있다. 주석서는 “미래의 비구들이 거짓된 법을 닦음(ud- dhamma-paṭipatti)을 드러냄을 통해서 [합송자들이 읊은 두 개를 제외한 27개 게송들을] 설하였다.”(ThagA.iii.73)라고 밝히고 있다.
15. 풋사 장로(Th30:1 {949}~{980})의 게송들도 미래세의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한 것이다.(ThagA.iii.82) “어느 날 빤다라 족성을 가진(Paṇḍara- gotta) 어떤 고행자(tāpasa)가 … ‘존자시여, 미래세의 비구들은 어떻게 도닦음을 행하겠습니까?’라고 장로에게 물었고 장로는 여기에 대해서 이 게송들로 대답을 하였다.”(ThagA.iii.82)
⑥ 반열반할 때에 읊음
『테라가타』에 실린 게송을 읊고 반열반에 든 장로들도 다섯 분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지따 장로(Th1:20), 뿐나 장로(Th1:70), 에까위하리야 장로(Th10:2 {537}~{546}), 레와따 장로(Th14:1 {645}~{658})에 답바 장로(Th1: 5)를 포함시키면 다섯 분이 된다.
주석서에 의하면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는 게송을 읊고 반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장로는 이 게송을 읊은 뒤 禪에 들어(jhānaṁ samāpajjitvā) 그 바로 다음에(tad-anantaraṁ) 반열반에 들었다(parinibbāyi).”(ThagA.i.79)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레와따 장로 혹은 카디라와니야 레와따 장로(Th14:1)가 반열반할 때 읊은 게송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⑦의 해당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⑦ 특별한 사례를 배경으로 하여 읊음
『테라가타 주석서』를 살펴보면 『테라가타』에 실린 많은 게송은 특별한 일화 혹은 사례를 배경으로 하여 읊어진 경우가 많다. 주석서는 특정 장로가 특정 게송을 읊게 된 데는 특별한 일화가 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화로 표현한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10곳 정도에서 ‘사례(事例, aṭṭhuppatti)’라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그 일화 혹은 사례들 가운데 몇 가지를 그 보기로 들고자 한다.
먼저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카디라와니야 장로(Khadiravaniya thera, Th1:42) 즉 레와따 장로(Revata thera, Th14:1 {645}~{658})의 일화 혹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열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레와따 장로의 게송들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부처님의 시중을 들러 가면서 도중에 사왓티에서 멀지 않은 곳의 숲에 머물렀다. 그때 도둑들(corā)이 장로의 곁에 포획한 장물(gahita -bhaṇḍa)을 버리고 달아나버려 장로는 도둑으로 몰려 왕에게 잡혀갔다.
장로는 풀려난 뒤 왕에게 태어나서부터 자신이 그러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출가하여 오염원들(kilesā)을 다 잘라버렸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설명하면서 근처에 서있는 비구들과 왕에게 법을 설하면서 {645}~{672}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 272~273)
장로는 마지막 게송({658})을 읊은 뒤 “허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불의 요소(tejo-dhātu)를 생기게 하여 타오르면서 무여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parinibbāyi).”(ThagA.ii.276)라고 한다.
이처럼 레와따 장로의 게송 14개는 그가 도둑으로 몰려 붙잡혀서 왕에게 끌려간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라마니야위하리 장로(Th1:45)는
“마치 상서로운 준마가
비틀거리다가 확고하게 서는 것처럼
그와 같이 봄[見]을 구족한 [나를]
정등각자의 제자로 [호지하십시오.]”({45})
라고 읊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출가하여 승잔죄를 범한 뒤 환속을 하리라라고 하면서 가다가 짐수레를 끄는 황소(goṇa) 한 마리가 나쁜 길에 들어서 피곤에 지쳐 쓰러지자 마차꾼(sākaṭikā)이 소의 멍에를 풀어주고 풀과 물을 주면서 피곤함(parissama)을 제거한 후 다시 짐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도 오염원(kilesa) 때문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사문의 법을 행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승원으로 되돌아 와서 우빨리 장로가 말해준 방법으로 범계(āpatti)에서 벗어나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곧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어서 해탈의 행복을 누리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123~124)
환속을 하려고 친척들의 마을로 가는 도중에 더러운 옷을 입고 먼지를 덮어쓴 채 바람과 열기에 메마른 농부들을 보고 절박함이 생겨 어떤 나무 아래에 가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은(ThagA.i.118) 수망갈라 장로(Th1:43)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본 해제 IX-⑴-④ 참조)
한편 다사까 장로(Th1:17)는 역자를 너무 부끄럽게 만드는 분이시다. 주석서에 의하면(ThagA.i.73~74) 장로는 출가할 때부터 시작해서 게으르고 정진이 저열하여 어떤 의무도 행하지 않았으며 오직 되는대로 먹은 뒤 잠을 많이 자면서 머물렀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법문을 듣는 시간에도 한 모퉁이에 들어가 회중의 끝에 앉아서 코고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가 절박함을 생기게 하기 위해서 이 게송을 읊으셨다고 한다.
“혼침에 빠지고 많이 먹고
잠잘 때는 뒤척이며 누워 자나니
마치 큰 돼지가 던져준 먹이로 살이 찌듯이
아둔한 이는 거듭거듭 모태에 든다.”({17})
그는 이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jāta)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고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ThagA.i.73~74)
⑧ 부처님을 찬탄하여 읊음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아라한 장로들의 게송이 담겨있는 본 『테라가타』에는 부처님에 대한 언급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찬탄을 위해서이고, 때로는 그분의 직계 제자임이 자랑스러워서일 것이다. 이참에 『테라가타』에서 아라한 장로 스님들은 부처님을 어떻게 칭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테라가타』의 게송들에서 장로들은 ‘부처님(Buddha)’, ‘대영웅(mahāvīra)’, ‘대선인/위대한 선인(大仙人, mahesi)’, ‘정등각자(sammā-sambuddha)’, ‘스승님(satthā)’ ‘여래(tathāgata, 복수로도 나타남)’, ‘대성인(mahāmuni)’, ‘여여한 [분](tādi)’ 등으로 부처님을 칭하고 있다.
ⓐ 부처님(Buddha)
부처님(Buddha)이라는 용어는 『테라가타』안에서만 70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소유격인 Buddhassa로 52군데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소유격 가운데 32곳 정도는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본 해제 IX-⑹의 해당 부분 참조) 그리고 주격인 Buddho로 9군데, 도구격 Buddhena로 8군데, 호격 Buddha로 한 군데 정도가 있다. 소유격 복수인 Buddhānaṁ으로는 세 곳에 나타난다.
ⓑ 대영웅(mahāvīra)
대영웅으로 옮기는 mahāvīra는 8분 장로의 9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멜라지나 장로(Th2:6)는 이렇게 읊는다.
“대상(隊商)의 우두머리요 대영웅이시며
마부들 가운데 고귀하고 가장 높으신 [그분에] 대해서
혹은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나에게는 의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132})
ⓒ 위대한 선인(mahesi)
‘위대한 선인’으로 옮긴 mahesi는 6분 장로의 12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이 12개 가운데 앙굴리말라 장로(Th20:8)의 {870}과 아난다 장로(Th30: 3)에 속하는 두 개의 게송({1047}~{1048})은 합송자들이 읊은 것이다. 이 12개 게송들은 모두 부처님을 위대한 선인으로 부르고 있다. 딸라뿌따 장로(Th50:1)는 출가하기 전에 출리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면서(ThagA.iii.154) 이렇게 읊고 있다.
“위대한 선인이 체득하신 보기 어려운 네 가지 진리들을
나 자신이 삼매에 들고 마음챙김을 갖추게 되어
언제 참으로 나는 얻게 될까?
이러한 것은 언제 이루어질까?”({1098})
ⓓ 정등각자(sammāsambuddha)
정등각자로 옮기는 sammāsambuddha는 10분의 장로의 10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정등각자(sammāsambuddha)’란 바른 원인으로 바른 방법으로(sahetunā nayena) 네 가지 진리를 스스로 깨달은 자(sayaṁ buddho)를 말하고, ‘[모든 번뇌가] 꺼졌다(sīti-bhūta).’는 것은 모든 오염원의 불길이 꺼짐(sabba-kiles-aggi-nibbāpana)으로써 꺼진 것이고, ‘적멸을 이루었다(nibbuta).’는 것은 오염원들(kilesā)이 적멸했다는 말이다.” (MA.ii.189)라고 설명한다. 셋의 모음에서 박꿀라 장로(Th3:3)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정등각자께서 설하신
열반은 참으로 지극한 행복이니
슬픔 없고 티 없고 안은하여
거기서 괴로움은 소멸합니다.”({227})
ⓔ 스승님(satthā)
스승님으로 옮기는 satthā도 39군데 정도에 나타난다. 아라한 장로들에게 스승님은 바로 부처님을 뜻한다. 이 가운데 10곳은 pariciṇṇo mayā satthā(나는 스승님을 섬겼다)라는 정형구로 나타난다. 여기서 pariciṇṇa는 섬김을 뜻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8곳에는
“나는 스승님을 섬겼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고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은 뿌리 뽑혔습니다.”({604} 등)
로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두 곳({1050}, {1088})은 마지막 구절만 다르게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습니다.’로 나타난다. 다른 한 곳에는 ‘satthā ca pari -ciṇṇo me(그리고 나는 스승님을 섬기노라.)’({178})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곳에서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은 아라한 장로들에 의해서 직접 부처님으로도 여래로도 정등각자로도 그리고 스승님으로도 불리면서 섬겨지고 있다.
ⓕ 여래(tathāgata)
여래로 옮기는 tathāgata는 8분 장로의 11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3}과 왕기사 장로(Th70:1)의 {1256} 등의 4곳에서는 복수 tathāgatā(여래들)로도 나타나고 있다.
ⓖ 대성인(mahāmuni)
한편 대성인 혹은 대성자로 옮기는 mahāmuni는 5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4곳에서는 부처님을 뜻하고 한 곳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왐빠띠 장로(Th1:38)를 칭찬하시는 용어로 사용하셨다. 세존께서는 읊으신다.
“신통으로 사라부 강을 서게 만들었던
그 가왐빠띠는 집착이 없고 동요가 없다.
모든 결박을 극복하고
존재의 저 언덕[彼岸]에 도달한
그런 대성자를 신들은 예배한다.”({38})
ⓗ 여여한 [분](tādi)
한편 여여한 [분]으로 옮기는 tādi는 『테라가타』게송의 17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니까야에서도 부처님(D16 §6.10 등)과 번뇌 다한 아라한(It3:13 §2 등)은 여여한 분으로 묘사된다. 여기 『테라가타』에서도 그러하여 역자가 살펴본 바로는 이 여여한 [분] 가운데 6곳 정도는 부처님을 칭하고 11곳 정도에서는 아라한이나 부처님 제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1067}에서 마하깟사빠 장로(Th40:1)는 “수행하며 지내기를 바라고 열심인 / 여여한 나에게 [이곳은] 충분합니다(alaṁ me yogakāmassa, pahitatta -ssa tādino).”({1067})라고 스스로를 여여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41} 등의 10곳 정도에서 여기서처럼 tādino로 소유격 단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⑨ 장로가 직접 지어서 읊지 않음
『테라가타』에는 259분 장로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이 실려있다. 그러나 본 해제 VII-⑵에서 정리해 보았듯이 104개 정도의 게송들은 읊은 분으로 명시되어 있는 바로 그 장로가 직접 지어서 읊은 것은 아니다. 이 104개 정도의 게송들은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이거나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이다. 물론 그 특정 장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특정 장로의 게송[들]로 전해오는 것이다.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게송들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도표로 정리하였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음
『테라가타』에는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게송들도 눈에 띈다. 대략 10분 정도가 읊은 25개 정도의 게송들은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게송들도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여 읊은 것이거나 ② 감흥어로 읊은 것 등이어서 이 둘의 영역 등에 넣을 수 있지만 여기에 독립해서 정리해 보았다.
특히 10번째로 정리하고 있는 삽빠까 장로(Th4:11)가 읊은 {307}~{310}의 네 개의 게송들은 모두가 다 자연의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삽빠까 장로의 이러한 게송들을 위시한 본 『테라가타』의 적지 않은 게송들은 중국 선불교에서 발달된 선시(禪詩)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라고 여겨진다.
1. 와나왓차 장로(Th1:13)
“푸른 구름의 색깔, 아름다움,
차가운 물, 깨끗한 개울,
인다고빠까 곤충으로 덮인
저 바위산들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13})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와 같이 장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머물며 수행한(cirakāla-paribhāvita) 숲에 머무는 기쁨(araññābhirati)을 드러내면서 세 가지 떨쳐버림을 기뻐함(vivekābhirati)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재생의 근거를 떨쳐버림(upadhi -viveka)에 의해서 구경의 지혜를 밝힌 것이다.”(ThagA.i.62)
“세 가지 떨쳐버림은 몸으로 떨쳐버림(kāya-viveka), 마음으로 떨쳐버림(citta-viveka), 재생의 근거를 떨쳐버림이다.”(DA.iii.1002 등)
2. 찟따까 장로(Th1:22)
“푸르고 아름다운 목을 하고 관모를 가진
공작새들은 까람위에서 울음소리를 냅니다.
그들은 차가운 바람과 놀고 있나니
禪을 하도록 잠든 자를 일깨웁니다.”({22})
주석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禪(samatha-vipassanā-jhānā)으로 禪에 드는 습관을 가지도록, 그것을 닦음에 전념하도록(bhāvanānuyutta)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뜻이다.”(ThagA.i.82)라고 설명한다.
3. 위말라 장로(Th1:50)
“대지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바람은 솔솔 불고 하늘에서 번개는 번쩍인다.
나의 생각은 고요하게 되었고
마음은 잘 삼매에 들어있다.”({50})
“계절에 맞는 [수행의] 성취로(utu-sappāya-siddha)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증득(adhigama)하여, 예비단계(pubbabhāga)에서 대체함 등(tadaṅgādi)을 통해서 [생각이] 가라앉은 뒤(vūpasantā hutvā)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 등의 모든 아홉 가지 큰 생각들(nava mahā-vitakkā)이 성스러운 도의 증득으로 고요하게 되었다(upasamanti)는 말이다.
‘나의 마음은 잘 삼매에 들어있다(cittaṁ susamāhitaṁ mama)’는 것은 출세간의 삼매(lokuttara-samādhi)에 의해서 나의 마음은 잘 삼매에 들었다(suṭṭhu samāhita)는 말이다. 이제 그것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samādhāne) 해야 할 어떤 일도 남아있지 않다고 장로는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였다.”(ThagA.i.132)
4. 우사바 장로(Th1:110)
“나무들은 산꼭대기마다 쑥쑥 자라고
활발발한 비구름으로 적셔진다.
떨쳐버림을 갈구하고
숲에 대한 다정다감함을 가진 우사바를 위해서
그들 [각각은] 더욱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110})
5. 와나왓차 장로(Th1:113)
“맑은 물을 가졌고 크고 험한 바위들이 있으며
원숭이들과 사슴들이 다니고
물이 스미어 나오는 이끼를 가진
저 바위산들이 나를 기쁘게 합니다.”({113})
“이것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었다.”(ThagA.i.238)
6. 왈리야 장로(Th2:3)
“원숭이가 다섯 개의 문을 가진
작은 초막에 다가가서
문에서 [문으로]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두드린다.”({125})
7. 삼불라깟짜나 장로(Th2:35)
“[비의] 신은 비를 내리고 [비의] 신은 천둥을 치는데
나는 혼자 무서운 동굴에 머물고 있다.
그런 나는 혼자 무서운 동굴에 머물고 있지만
두려움이나 당혹함이나 털이 곤두섬은 없다.”({189})
“혼자 두려운 동굴에서
두려움이나 무서움이나
털이 곤두섬이 없이 머무는
이런 것은 나에게는 법다운 것이다.”({190})
“철저하게 알지 못하였던 토대(apariññāta-vatthuka)에 대해서 욕탐을 제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appahīna-cchanda-rāgatāya) [전에는] 두려움 등이 존재해야 했지만 이제 나는 모든 곳에서 철저하게 알았고 욕탐도 뿌리 뽑았다. 그러므로 두려움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것은 나에게 법다운 것이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고 있다.”(ThagA.ii.60)
8. 쭐라까 장로(Th2:46)
“멋진 관모와 멋진 꼬리 깃털과 짙고 푸른 목을 가졌으며
잘생긴 얼굴로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공작들이 울고
풀이 무성한 이 대지는 물이 풍부하며
하늘은 좋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다.”({211})
“좋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어울리는 정경이니
그것을 명상하라.
훌륭한 부처님의 교법에 잘 출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희디희고 미묘하고 보기 어려운
그 가장 높고 떨어지지 않는 경지에 닿아야 한다.”({212})
9. 담미까 장로(Th4:10)
“종기의 뿌리는 산산조각이 났고
갈애의 그물은 뿌리 뽑혔습니다.
그에게는 윤회가 멸진되어 그 어떤 것도 있지 않나니
마치 휘영청 밝은 보름밤의 달과도 같습니다.”({306})
“마치 달(canda)이 구름이나 안개 등의 결점이 없이(abbha-mahikādi- dosa-rahita) 보름밤에 [원반의] 각 부분들이 가득 찬 것(paripuṇṇa-kāla)처럼 그와 같이 저도 역시 아라한됨을 증득함에 의해서 탐욕 등의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법의 모든 부분을 구족하였습니다(paripuṇṇa-dhamma- koṭṭhāsa)라는 뜻이다.”(ThagA.ii.129)
10. 삽빠까 장로(Th4:11)
“학이 깨끗하고 빛나는 날개를 가졌지만
검은 구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워하여
은신처를 찾아서 은신처로 도망가면
그때 아자까라니 강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307})
“아주 청정하고 빛나는 학이
검은 구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워하여
피난처를 찾지 않았지만 [이제는] 피난처를 찾으니
그때 아자까라니 강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308})
“거기 잠부 나무들은 양쪽 기슭에서
누구인들 기쁘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내 피난처의 뒤에서
강기슭을 아름답게 만듭니다.”({309})
“죽지 않음을 뻐기는 [뱀의] 무리들을 잘 피하여
개구리들은 깊은 소리로 개골개골 우나니
‘오늘은 산의 개울로부터 떨어져 머물 때가 아닙니다.
아자까라니 강은 안은하고 안전하며 큰 기쁨 줍니다.’라고.”({310})
이 외의 다른 게송들도 더 들 수 있겠지만 역자는 이 열 분의 게송들을 여기에 모아보았다.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음
본 해제 VIII-⑵-④ ‘세존이나 장로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에서 살펴보았듯이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 가족이나 친지들 가운데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을 인연으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친인척관계를 모아보면 대략 37분 정도가 되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이와는 달리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테라가타』에는 부모나 특히 아내와 같은 가족들을 뿌리치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뒤 그를 찾아오거나 혹은 인연이 닿은 가족들이나 친지들에게 법문으로 읊은 게송들도 담겨있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대략 아래의 17분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인용하는 사례들을 통해서 보듯이 장로들은 재가의 친지들에게 기본적으로 삼귀의계와 오계를 설하였으며 선업을 닦아 선처에 태어나는 선업 공덕을 지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1. 잠부가미까뿟따 장로(Th1:28)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출가하여 미리 해야 할 일을 하고 명상주제를 받아서 사께따의 안자나 숲(Sāketa Añjanavana)에 머물렀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나의 아들이 교법에서 기뻐하면서 머무는가, 아닌가?’라고 검증할 목적으로,
“그대는 의복에 몰두하지 않는가?
그대는 꾸미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대가
계행으로 이루어진 향기를 내뿜는가?”({28})
라는 게송을 적어서 보냈다. 그는 그것을 읽은 뒤 절박함이 생겨서(saṁvega -jāta) 애를 쓰고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친지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로 가서 교법이 출리(出離)로 인도함(niyyānika-bhāva)을 설명하면서 신통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고 친지들은 깨끗한 믿음을 가진 마음으로 많은 승원[伽藍]을 지었다. 그는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도 아버지를 공경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보낸 이 게송 {28}을 말하였다고 한다.(ThagA.i.91~92)
2. 가흐와라띠리야 장로(Th1:31)
장로는 출가하여 명상주제를 받아서 가흐와라 강 언덕(Gahvaratīra)에 있는 숲의 장소에 머물렀다. 그래서 그는 가흐와라띠리야(Gahvaratīriya)라는 일반적 호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고 나서 세존께 절을 올린 뒤 사왓티로 갔고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친지들이 모여들어 큰 보시를 하였다. 그는 그곳에 계속 머물러 달라는 친지들에게 한거를 기뻐함을 찬탄하는 방법을 통해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96~97)
3. 뽀시야 장로(Th1:34)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젊은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태어남 등을 조건으로 하여 절박함(saṁvega)이 생겨 출가하였고 수행에 몰두하여 오래지 않아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과를 얻은 뒤 세존께 절을 올리기 위해서 사왓티를 갔다가 친지들에 대한 연민으로 집에 들렀다. 거기서 전처를 만났고 전처가 처음에는 신도처럼 하다가 나중에는 여인처럼 처신하며 그를 유혹하려고 하였다. 장로는 ‘오, 눈먼 어리석은 여인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이와 같이 처신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되돌아갔다. 숲속에 머무는 비구들이 사정을 묻자 설명하면서 {34}를 읊었다고 한다.(ThagA.i.102)
4. 와나왓차 장로(Th1:113)
장로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한거를 기뻐하여 숲(vana)에서 살았고 그래서 와나왓차(Vanavaccha)라는 호칭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때 친척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라자가하에 갔고 거기서 친척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 머문 뒤 떠나려 하자 친척들이 그들을 위해서 가까운 승원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는 그들에게 산에 사는 즐거움을 찬탄하는 권위 있는 말로 한거를 기뻐함을 알려주면서 본 게송을 읊었고(본 해제 X-⑴-⑩-5 참조) 이것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ThagA.i.237~238)
5. 조띠다사 장로(Th2:12 {143}~{144})
부유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난 장로는 마하깟사빠 장로의 법문으로 절박함을 얻어(paṭiladdha-saṁvega) 출가하였고 육신통을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어느 날 장로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서 그를 보기 위해서 온 친지들 가운데서 제사의 청정함을 주장하는 자들(yañña-suddhikā)에게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20~21) 그 가운데 {144}에서,
“그것이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간에
사람이 업을 지으면
그가 무슨 업을 짓든 간에
그는 그것의 상속자가 됩니다.”({144})
라고 읊었고 이 게송들을 듣고 장로의 친척들은 업이 자신의 주인임(kamm -assakatā)에 확립되었다고 한다.(ThagA.ii.22)
6. 뿐나마사 장로(Th2:26 {171}~{172})
그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사왓티에 가서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공동묘지에 머물렀다. 그가 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그의 아들이 죽었다. 아이의 어머니, 즉 장로의 이전의 아내는 장로가 왔다는 것을 듣고 ‘아들이 없는 이 유산(sāpateyya)을 왕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라고 하면서 그를 환속시키려고(uppabbājetu-kāmā) 많은 측근들과 함께 장로 가까이에 가서 호의를 베푼 뒤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장로는 자신이 탐욕을 여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 허공에 서서 자신의 도닦음을 찬탄하는 방법을 통해 그녀에게 법을 설하면서 두 개의 게송({171}~{172})을 읊었다. 이 게송들을 통해서 이전의 아내에게 법을 설하여 그녀를 삼귀의와 오계에 확고하게 만든 뒤 떠나보냈다고 한다.(ThagA.ii.46~47) 이분은 하나의 모음 뿐나마사 장로(Th1:10)와는 다른 분이다.
7. 앙가니까바라드와자 장로(Th3:1 {219}~{221})
욱깟타라는 도시에서 위력이 있는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장로는 유행승으로 출가하여 죽음 없음[不死]을 위한 고행(amara tapa)을 행하면서 여기저기를 유행하다가 지방을 유행하시는 부처님을 뵙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였다. 장로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해탈의 행복으로 머물면서 친척들을 연민하여 자신의 태어난 곳에 가서 많은 친척들을 [삼]귀의(saraṇa)와 [오]계(sīla)에 확립되게 하였다. 장로는 이렇게 읊는다.
“전에는 나는 범천의 친척이었지만
이제 나는 참으로 바라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세 가지 명지를 가졌고 목욕을 마친 자이며
깨끗한 자요 베다를 구족한 자입니다.”({221})
8. 빳시까 장로(Th3:8 {240}~{242})
꼬살라 지역에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난 장로는 세존의 쌍신변을 보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는데 사문의 법을 행하면서 병을 얻었다. 그러자 친지들이 그를 의사에게 데려가고 약을 써서 간호하여 건강을 회복하였고 절박함이 생겨 수행을 열성적으로 행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자가 되어 허공으로 친지들에게 가까이 가서 허공에 서서 법을 설하여 그들이 삼귀의와 오계에(saraṇesu sīlesu ca) 확립되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었기 때문에 임종한 뒤 천상에 태어났다.
그때 스승님께서는 부처님을 시중들기 위해서 온 그에게 ‘빳시까여, 그대의 친지들은 무탈한가?’라고 물으셨다. 그는 친지들이 자신에게 행한 도움을 스승님께 말씀드리면서 세 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95~96) 여기에 인용한다.
“여기 믿음이 없는 친척들 가운데
[저] 혼자만 믿음을 가졌고 슬기롭지만
[제가] 법에 서있고 계행을 구족한 것은
친족들에게 이로움이 됩니다.”({240})
“저는 연민으로 저의 혈족들을 꾸짖었고
그들을 질책하였으니
친척들과 친족들에 대한 애정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비구들에게 [공양 등으로] 공경을 베풀었습니다.”({241})
“그들은 생을 마치고 임종하여
삼십삼천의 행복을 얻었습니다.
저의 형제들과 어머니는
감각적 쾌락들을 향유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242})
9. 아비부따 장로(Th3:13 {255}~{257})
장로는 웨타뿌라 도시에서 왕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서거하자 왕위에 올랐다. 그는 그곳을 방문하신 세존의 법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가져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지들과 대신들과 회중들과 도시민들과 지역민들은 모두가 ‘존자시여, 왜 당신은 우리를 주인 없게 만들고 출가하셨습니까?’라고 탄식을 하였다. 장로는 친지들을 상수로 한 그 사람들이 탄식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자신이 출가한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을 통해 법을 설하면서 세 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105~106))
10. 고따마 장로(Th3:14 {258}~{260})
사꺄의 왕의 가문에서 태어난 장로는 부처님의 친지들의 모임에서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해탈의 행복으로 머물렀다. 어느 날 친척들이 ‘존자시여, 왜 우리를 버리고 출가하였습니까?’라고 묻자 윤회에서 자신이 체험한 괴로움과 지금 증득한 열반의 행복을 분명하게 하면서 게송 세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06)
“윤회하면서 나는 지옥에 갔었고 …
이러한 존재들은 심재가 없고 형성되었고
변하기 쉽고 늘 흔들리는 것으로 잘 체득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나] 자신을 근원으로 함을 나는 체득하고서
마음챙김을 가져 평화를 얻었습니다.”({258}~{260})
11. 짠다나 장로(Th4:9 {299}~{302})
장로는 사왓티에서 부유한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아들 한 명을 얻은 뒤 출가하여 위빳사나의 명상주제를 받아서 숲에서 머물렀다. 그러던 중 그는 사왓티에 가서 공동묘지(susāna)에 머물렀다. 그가 왔다는 것을 듣고 이전의 아내는 온갖 치장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많은 사람들과 장로의 곁으로 갔다. 장로는 그녀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본 뒤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뒤 허공에 서서 그녀에게 법을 설하고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게 한 다음 스스로 자신이 전에 머물던 장소로 가서 질문을 하는 동료 비구들에게 게송 네 개로 자신의 도닦음을 말한 뒤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였다고 한다.(ThagA.ii.127)
12. 삽빠까 장로(Th4:11 {307}~{310})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 태생인 장로는 출가하여 명상주제를 받은 뒤 아자까라니(Ajakaraṇī)라는 강의 언덕에 있는 레나기리 승원(Leṇagiri-vihāra)에서 머물면서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스승님께 절을 올리기 위해서 사왓티로 와서 친지들의 시중을 받게 되었다. 장로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여 친지들로 하여금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도록 하고 나서 레나기리 승원으로 가고자 하였다. 그러자 더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친지들에게 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게송 네 개({307}~{310})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30~132)
13. 말룽꺄뿟따 장로(Th6:5 {399}~{404})
장로는 사왓티에서 꼬살라 왕의 핵심 보좌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말룽꺄였으며 그래서 말룽꺄의 아들, 즉 말룽꺄뿟따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외도 유행승으로 출가하여 유행하다가 스승님의 곁에서 법을 듣고 교법에 믿음을 얻어서 출가하였다. 그는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친척들에 대한 연민으로 친지의 집에 갔다. 친척들은 재물로 유혹하려고 ‘이 재물을 당신의 곁으로 가져가십시오. 유행을 하신 뒤 이 재물로 아들과 아내를 부양하시면서 공덕들을 지으십시오.’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는 그들의 성향(ajjhāsaya)을 바꾸게 하면서 허공에 서서 게송 6개로 법을 설하였다.(ThagA.ii.170) 그 가운데 마지막 {404}를 여기에 인용한다.
“방일함은 먼지이니
방일함으로부터 먼지는 일어납니다.
불방일과 명지를 통해서
자신의 쇠살을 뽑아야 합니다.”({399})
14. 삽바까미 장로(Th6:14 {453}~{458})
장로는 아직 세존께서 반열반에 들지 않으셨을 때 웨살리에서 끄샤뜨리야 가문에 태어났고 아난다 존자의 곁으로 출가하여 사문의 법을 행하면서 은사 스님과 함께 웨살리에 가서 속가(俗家)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서 이전의 아내는 헤어짐 때문에 고통을 받아 마르고 창백해져서 치장도 하지 않고 더러운 옷을 입고 그에게 인사를 한 뒤 울면서 한 곁에 서있었다. 그녀를 보고 장로는 연민을 앞세운 자애를 확립하였다. 그러자 [괴로움]을 겪는[忍苦] 대상에 대한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서 그에게 갑자기 오염원이 생겼다.
그는 채찍에 맞은 준마처럼 절박함이 생겨 바로 공동묘지로 가서 더러움의 표상을 취한 뒤 거기서 얻은 禪을 기초로 삼아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때 그의 장인이 치장을 하고 잘 차려입은 딸을 데리고 많은 일행들과 함께 그를 환속시키려고 승원으로 갔다. 장로는 자신이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탐욕이 빛바랬음(viratta-bhāva)과 모든 곳에 물들지 않았음(anupalittatā)을 밝히면서 게송 여섯 개를 읊었고 장인은 ‘이분을 감각적 쾌락들에 떨어뜨릴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온 길로 되돌아갔다고 한다.(ThagA.ii.191~193)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유추하면 그가 입적하였을 때 그는 적어도 140세는 되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반열반 하신 뒤 교단의 최고의 권위라 할 수 있는 아난다 존자가 120세까지 사셨고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에 의하면 아누룻다 장로는 150세까지 사셨다고 하므로(AAṬ.iii.183) 이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무튼 삽바까미 장로처럼 아난다 존자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지 120년이 된 이런 대장로들이 계셨기 때문에 부처님 원음은 2,6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승되어 왔음이 틀림없다.
15. 부따 장로(Th9:1 {518}~{526})
사께따 도시에서 아주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장로는 출가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 후에 친지들에 대한 연민으로 사께따에 가서 며칠을 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안자나 숲에 머문 뒤 다시 자신이 머무르던 곳으로 가고자 하였다. 친지들은 ‘존자시여, 여기에 머무십시오. 당신을 피곤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공덕으로 향상할 것입니다.’라고 장로에게 요청하였다. 장로는 자신이 한거를 기뻐함과 거기에 편안하게 머묾을 설명하면서 [아홉 개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217~218)
16.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596})
그는 세존보다 먼저 사왓티에서 우딧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삼베다에 능통하였고 논쟁의 도를 섭렵하여 이런저런 논쟁의 소지가 있는 말에 몰두하여 유행을 하였다. 그는 세존께서 제따와나를 수용하실 때 믿음을 얻어 스승님께 다가가서 법을 듣고 출가하기를 간청하였고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꼬살라 지방에 가서 거기서 오래 산 뒤에 다시 사왓티로 돌아왔고 많은 친지들과 유력한 바라문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어떤 사람들의 주장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것(niyyānika)이고 어떻게 도를 닦으면 윤회로부터 청정하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장로는 그들에게 그 뜻을 밝히면서 [10개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250~251)
다른 두 분의 고따마 장로(Th2:9와 Th3:14)가 각각 본서 제1권 둘의 모음 {137}~{138}과 셋의 모음 {258}~{260}을 읊은 분들로 나타나고 있다.
17.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
장로는 꾸루 지역에서 툴라꼿티까 성읍(Thullakoṭṭhika-nigama)의 랏타빨라 상인(금융업자)의 가문 출신이다.
장로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스승님의 허락을 받고 부모를 뵙기 위해서 툴라꼿티까로 가서 거기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탁발을 하면서 아버지의 거처에서 지난밤에 만든 죽을 얻어서 그것을 감로인 것처럼 먹었다. 아버지가 초청하자 내일 아침으로 약속을 하고 그다음 날에 아버지 곁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한 뒤 여인들의 처소에 있는 치장을 한 [그의 전 아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서방님, 어떤 요정들이 있기에 그들을 위해 당신은 청정범행을 닦으십니까?’(M82 §23)라는 등으로 말을 하면서 그를 유혹하는 업(palobhana-kamma)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의향을 드러낸 뒤 무상함 등과 관계된 법을 설하면서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i.33~35)
여기 『테라가타』스물의 모음 {769}~{793}으로 나타나는 랏타빨라 장로의 25개 게송 가운데 처음 {769}~{774}의 6개 게송은「랏타빨라 경」(M82) §25에 나타나는 6개의 게송과 일치한다. 그리고 {776}~{788}의 13개 게송은「랏타빨라 경」(M82) §42의 게송들과 같다. 장로의 게송으로 실린 25개 가운데 두 개를 인용한다.
“보라, 잘 치장했고 상처덩이이고
잘 세워진 저 꼭두각시를.
그것은 고통스럽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고
견고하게 머물지 않는다.”({769}=M82 §25 {1})
“사냥꾼이 올가미를 놓았으나
사슴은 덫에 걸리지 않고
미끼를 먹고서 떠나버리나니
사슴 사냥꾼을 슬피 울게 한다.”({774}=M82 §25 {6})
⑵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
이제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 가운데 『테라가타』안에서나 니까야 전체 안에서 특정 게송 전체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과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만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게송들을 정리해 보자.
역자는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을 ①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 ②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게송들, ③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 ④ 같은 장로의 게송들에서 특정 구절[句]들이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의 넷으로 분류하여 보았다.
①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
『테라가타』에는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도표5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를 들면,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 생겨났다.
위험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염오가 확립되었다.”({269})
라는 나가사말라 장로(Th4:1)가 읊은 {269}은 본서 {273}, {301}, {318}, {409}, {464}에서 다른 장로들도 읊은 것으로 모두 6곳에 나타나고 있다.
노만 교수는 특정 장로가 특정 게송을 읊어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그 장로가 그 게송을 직접 지은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적고 있다.(K.R. Nor- man, xxi~xxii) 다른 장로들이 읊었거나 승가에서 유통되고 있는 게송들도 특정 장로가 많이 읊으면서 법문을 하고 유통시키면 그 장로의 게송으로 여기에 등재된 것으로도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을 자신의 게송으로 삼아 평생을 호지한 장로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 {567}~{576})의 게송 열 개 모두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다. 그는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의 가문에 태어났고 아버지가 임종하자 왕위에 책봉되어 감각적 쾌락들에 지나치게 빠지고 탐하면서 머물렀는데 그가 아라한이 될 인연이 있는 것을 아신 세존께서 허공으로 그곳에 가셔서 본 게송 10개를 읊으셨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의 면전에서 듣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적용시켜]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원하였으며 그는 삭발을 할 때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으면서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고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242~243)
그리고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을 특정 장로가 자신의 구경의 지혜로 따라 읊어서 이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 합송자들이 그 게송을 여기 『테라가타』에서 특정 장로의 게송으로 모아 전승하고 있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도 참조하기 바란다.
②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게송들
삼장, 특히 경장에 포함된 각 장로의 게송들이 여기 이 『테라가타』에 모아져서 전승되어 오는 것도 이 『테라가타』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래 도표5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를 들면 앞의 말룽꺄뿟따 존자의 게송 {794}~{817}의 24개의 게송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제4권「말룽꺄뿟따 경」(S35:95) §14에서 말룽꺄뿟따 존자가 읊은 게송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서 {818}부터 {841}까지의 셀라 장로(Th20:6)와 관계된 게송들 24개는 모두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16 이하에서 나타나는 게송들과 같다. 그리고 이「셀라 경」(M92)은 『숫따니빠따』에도「셀라 경」(Sn3:7/102ff)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리뿟따 장로(Th30:2 {981}~{1017})의 37개 게송들 가운데는 본 『테라가타』의 다른 곳이나 『상윳따 니까야』나 『앙굿따라 니까야』나 『우다나』에 나타나는 게송들이 적지 않다. 왕기사 장로(Th70:1 {1209}~{1,279})의 게송들은 『상윳따 니까야』제1권 왕기사 상윳따(S8)에 들어있는「출가 경」(S8:1)부터「왕기사 경」(S8:12)까지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게송들을 담고 있다.
③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
도표5에서 보듯이 이 경우의 보기로는 이시닷따 장로(Th1:120)의 {120}을 들 수 있다. 장로는 읊는다.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입니다.
괴로움의 멸진은 성취되었고
나는 번뇌의 멸진을 얻었습니다.”
<도표5> 니까야의 다른 곳과 같은 게송들
모음 | 게송번호 | 참고 게송 |
하나의 모음 | {2} {9} {24} {25} {27} {31} {39} {40} {41} {44} {46} {51} {62} {68} {77} {87} {90} {97} {98} {99} {113} {114} {119} {120} | ={1006} ={885}; M86 §18 {15} bcd={286}bcd =cf. {1189} ={233} ={244}; {684} ={1162} ={1163} ={1167} S10:5 §4 {822} S4:22 §6 {489} ={1}ab cf. S9:9 {784} Ud4:7 §2; Vin.iv.54; DhpA.iii.384 ={1130} cf. cd{90cd} ab={120ab}, cf.{87}. abd={440}abd ={862} ={794}+ef ={796}+ef ={601}; {1070} =cf. {1033} S9:5 {772} abc={440}abc; ab={90ab} |
둘의 모음 | {124} {145} {147} {148} {176} {185} {186} {196} {204} {210} | ={495}; {1053} S4:10 §5 {466} ={265}; cf. S14:16 §7 {1}; cf. It3:29 §78 {1} ={266}; S14:16 §7 {2}; It3:29 §78 {2} =cf. {136} S7:13 §4 {674} S7:13 §4 {675} =cf. {606}, {1002} ={509}; S11:14 §6 {912} ={71} |
셋의 모음 | {220} {221} {233} {239} {244} {256} {257} {261} {262} {263} {265} {266} {269} | bcd={24}bcd =Thig. {251} ={27} S2:1 {255} ={31}; {684} S6:14 §9 {604} S6:14 §9 {605} ={225} ={226} ={227} ={147} ={148} ={273}; {301}; {318}; {409} |
넷의 모음 | {270} {273} {274} {278} {286} {298} {301} {302} {313} {314} | bcd={24}bcd ={269} ={270}, cf. {220} ={1078} bcd={24}bcd =cf. Thig {15} ={269}; {273} ={270}; {274} ={223} ={224} 등, cf. {220} |
다섯의 모음 | {318} {319} {322} {332} {337} {350} {351} | ={269}; {273}; {301} ={270}; {274}; {302}, cf. {220} ={226}; {262} =cf. {112} ={439} ={435} ={436} |
여섯의 모음 | {388} {388} {403} {409} {410} {435} {436} {439} {440} {441} {442} {443} {444} | ={363} =cf. {315} =cf. {1005} ={269} ={270}; {274}; {302); {319} ={350} ={351} ={337} abd={90}abd; abc={120}abc S7:2 §5 {615} S7:2 §5 {616} S7:2 §5 {617} S7:2 §5 {618} |
일곱의 모음 | {464} {465} {469} {470} {471} {472} {486} | ={269}; {409} 등 ={270} 등 A4:65 §2 {1} A4:65 §2 {2} A4:65 §2 {3} A4:65 §2 {4} =cf. {479} |
여덟의 모음 | {494} {495} {498} {507} {508} {509} {515} | ={1072} ={124}, {1053} M128 §6 S11:14 §6 {910} S11:14 §6 {911} S11:14 §6 {912} cd={107}cd 등 - 전체, {465} 주해 참조 |
열의 모음 | {550} {562} {562} | ={499} ab={332}ab 등, cd={270}cd 등 Vis.XII.65 |
열하나의 모음 | {601} {604} {605} {606} {607} | ={113}; {1070} ={656} 등 ={136}; {380} 등 =cf. {196} ={196} |
열둘의 모음 | {628} {629} {631} | ab={517}ab ={1179} M98 §13 {62} |
열셋의 모음 | {643} | ab=Dhp. {81}ab |
열넷의 모음 | {646} {650} {651} {652} {654} {655} {656} {657} {658} | =cf. {603} ={999} ={1000}; Ud3:4 §2 {24} ={1001}; S9:14 §5 {799} ={606}, cf. {196} ={196}; {607} ={604}; {687} 등 abc={136}abc; {380}abc 등 ={1017} |
열여섯의 모음 | {676} {676} {676} {676} {684} {685} {686} {687} {688} {689} {690}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700} {701} {702} {703} {704} | Dhp {277} Dhp {278} Dhp {279} ab=S8:9 §5; {746}ab ={31}; {244} ={606} 등 ={196}; {607}; {655} ={604}; {656} 등 cf. {136}, {605}, {657} A6:43 §3 {1} A6:43 §3 {2} A6:43 §3 {3} A6:43 §3 {4} A6:43 §3 {5} A6:43 §3 {6} A6:43 §3 {7} A6:43 §3 {8} A6:43 §3 {9} A6:43 §3 {10} A6:43 §3 {11} A6:43 §3 {12} A6:43 §3 {13} A6:43 §3 {14} A6:43 §3 {15} A6:43 §3 {16} |
스물의 모음 | {769} {770} {771} {772} {773} {774} {776} {777} {778} {779} {780} {781} {782} {783} {784} {785} {786} {787} {788} {792} {793} {794} {795} {796} {797} {798} {799} {800} {801} {802} {803} {804} {805} {806} {807} {808} {809} {810} {811} {812} {813} {814} {815} {816} {817} {818} {819} {820} {821} {822} {823} {824} {825} {826} {827} {828} {829} {830} {831} {832} {833} {834} {835} {836} {837} {838} {839} {840} {841} {862} {866} {867} {868} {869} {870} {871} {872} {873} {874} {875} {876} {877} {878} {879} {880} {881} {882} {883} {884} {885} {886} {891} {903} {906} {908} {909} {918} | M82 §25 {1} M82 §25 {2} M82 §25 {3} M82 §25 {4} M82 §25 {5} M82 §25 {6} M82 §42 {1} M82 §42 {2} M82 §42 {3} M82 §42 {4} M82 §42 {5} M82 §42 {6} M82 §42 {7} M82 §42 {8} M82 §42 {9} M82 §42 {10} M82 §42 {11} M82 §42 {12} M82 §42 {13} ={604}; {656} 등 ={136} 등 S35:95 §14 {1}ab S35:95 §14 {1}cde S35:95 §14 {2}ab S35:95 §14 {2}cde S35:95 §14 {3}ab S35:95 §14 {1}cde S35:95 §14 {4}ab S35:95 §14 {4}cde S35:95 §14 {5}ab S35:95 §14 {5}cde S35:95 §14 {6}ab S35:95 §14 {6}cde S35:95 §14 {7}ab S35:95 §14 {7}cde S35:95 §14 {8}ab S35:95 §14 {8}cde S35:95 §14 {9}ab S35:95 §14 {9}cde S35:95 §14 {10}ab S35:95 §14 {10}cde S35:95 §14 {11}ab S35:95 §14 {11}cde S35:95 §14 {12}ab S35:95 §14 {12}cde M92 §16 {1} M92 §16 {2} M92 §16 {3} M92 §16 {4} M92 §16 {5} M92 §16 {6} M92 §17 M92 §18 {1} M92 §18 {2} M92 §19 {1} M92 §19 {2} M92 §19 {3} M92 §19 {4} M92 §19 {5} M92 §20 {1} M92 §20 {2} M92 §20 {3} M92 §21 M92 §22 M92 §23 M92 §28 {1} M92 §28 {2} M92 §28 {3} M92 §28 {4} ={97} M86 §6 {1} M86 §6 {2} M86 §6 {3} M86 §6 {4} M86 §6 {5} M86 §18 {1} M86 §18 {2} M86 §18 {3} M86 §18 {4} M86 §18 {5} M86 §18 {6} M86 §18 {7}; = Thag {19} M86 §18 {8} M86 §18 {9} M86 §18 {10} M86 §18 {11} M86 §18 {12} M86 §18 {13} M86 §18 {14} M86 §18 {15} M86 §18 {16} ={604; {656} 등 cd={24}cd 등 S6:15 §8 {612} S9:6 §6 {777} ={1181} ={604}; {656} 등 |
서른의 모음 | {989} {990} {991} {999} {1000} {1001} {1002} {1003} {1005} {1006} {1016} {1017} {1020} {1032} {1033} {1046} {1050} | A6:14 §6; A6:15 §5 A6:14 §6; A6:15 §5 S11:15 §3 {914} ={650} ={651}; Ud3:4 {24} ={652}; S9:14 §5 {799} =cf. {196} ={606} 등 ={403} ={2} ={604} 등 ={658} 등 ={769}; M82 §25 {1} It3:37 §2 {1} =cf. {114} D16 §6.10; S6:15 {610} ={1088}, cf. {604} 등 |
마흔의 모음 | {1052} {1053} {1070} {1072} {1078} {1088} | ={494} ={124}; {495} ={113}; {601} ={494} ={278} ={1050}; cf. {604}; {1016} |
쉰의 모음 | {1130} | ={77} |
예순의 모음 | {1157} {1158} {1162} {1163} {1164} {1165} {1166} {1167} {1179} {1181} {1182} {1185} {1186} {1187} {1188} {1189} {1190} {1191} {1192} {1193} {1194} {1195} {1196} {1197} {1199} {1200} {1201} {1202} {1203} {1204} {1205} {1206} {1207} {1208} | ={769}; M82 §25 =cf. {1046} ={39} ={40} cf. S51:14 §3; §6 cf. S21:4 §7 S21:4 §7 ={41} ={629} ={909} M143 §17 등 ={604} ={136}; {605} 등 M50 §24 {1} M50 §24 {2} M50 §24 {3} M50 §24 ={1189} M50 §24 ={1189} M50 §27 ={1189} M50 §28 ={1189} M50 §29 {2} M50 §29 {3} ={1189} M50 §30 ={1189} M50 §31 {1} M50 §31 {2} M50 §31 {3} M50 §31 {4} M50 §31 {5} |
큰 모음 | {1209} {1210} {1211}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1219} {1220} {1221} {1222} {1223} {1224} {1225} {1226} {1227} {1228} {1229} {1230} {1231} {1232} {1233} {1234} {1235} {1236} {1237} {1238} {1239} {1240} {1241} {1242} {1243} {1244} {1245} {1246} {1247} {1248} {1249} {1250} {1251} {1252} {1254} {1255} {1256} {1258} {1259} {1261} | S8:1 §4 {707} S8:1 §4 {708} S8:1 §4 {709} S8:1 §4 {710} S8:1 §4 {711} S8:1 §4 {712} S8:1 §4 {713} S8:1 §4 {714} S8:1 §4 {715} S8:1 §4 {716} S8:3 §3 {717} S8:3 §3 {718} S8:3 §3 {719} S8:3 §3 {720} S8:4 §3 {721} S8:4 §3 {722} S8:4 §3 {724} S8:4 §3 {725}; Thig {20} S8:5 §6 {727} S8:5 §6 {728} S8:5 §6 {729} S8:5 §6 {730} S8:6 §5 {731} S8:6 §5 {732} S8:6 §6 {733} S8:7 §8 {734} S8:7 §8 {735} S8:7 §8 {736} S8:7 §8 {737} S8:8 §5 {738} S8:8 §5 {739} S8:8 §5 {740} S8:8 §5 {741} S8:8 §7 {742} S8:8 §7 {743} S8:8 §7 {744} S8:8 §7 {745} S8:9 §5 {746} S8:9 §5 {747} S8:9 §5 {748} S8:10 §4 {749} S8:10 §4 {750} S8:10 §4 {751} S8:11 §3 {752} =cf. S8:12 §2 {754} =cf. S8:12 §2 {754} S8:12 §2 {755} =cf. {417}; {492} =Thig {186} 등 cdef={9}; abS8:12 §2 {756}; M86 §18 |
한편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는 {440}에서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입니다.
괴로움의 멸진은 성취되었고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습니다.”
라고 읊었고, 사미닷따 장로(Th1:90)는 {90}에서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蘊]은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이로다.
태어남의 윤회는 멸진하였고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도다.”
라고 읊었다. 이처럼 이시닷따 장로(Th1:120) {120}의 첫째 둘째 셋째 구절은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 {440}의 첫째 둘째 셋째와 같다. 그리고 이시닷따 장로의 첫째 둘째 구절은 사미닷따 장로(Th1:90) {90}의 첫째 둘째와 같다. 그래서 아래 도표에서는 {120} (abc ={440}abc; ab={90ab})로 표기하였다.
④ 같은 장로의 게송들에서 특정 구절[句]들이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스물의 모음 이하에 나타나는 장로들과 같이 많은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게송들에는 앞의 특정 구절[句]들이 뒤의 게송들에서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말룽꺄뿟따 장로(Th20:5)의 24개 게송들
먼저 말룽꺄뿟따 장로(Th6:5)의 게송들을 살펴보자. 장로가 읊은 {794} ~{817}의 24개 게송들은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 이 게송들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인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색‧성‧향‧미‧촉‧법)을 차례대로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의 12개 게송들은 순서대로 형색을 보는 등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 사랑스러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후반부의 12개 게송들은 같은 순서대로 형색을 보는 등에서 ‘마음챙기면서 형색을 보고 / 형색들에 물들지 않는 자’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라고 읊은 뒤 다음의 게송에서 아울러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라고 강조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라고 읊은 뒤 다음의 게송에서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24개의 게송들 가운데 전반부의 12개는 부정적인 입장을, 후반부의 12개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794}부터 짝수 번호의 게송들과 {795}부터 홀수 번호의 게송들은 이 게송들에 들어있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과 관계된 용어들 외의 모든 구절들은 모두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794}부터의 짝수 번호 게송들 12개는 모두 사구게로 되어 있고 {795}부터의 홀수 번호 게송들 12개는 모두 육구게로 되어 있다.
ⓑ 딸라뿌따 장로(Th50:1)의 55개 게송들
다음으로는 쉰의 모음에 실려있는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1145})가 읊은 55개의 게송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쉰의 모음에 실려있는 딸라뿌따 장로가 읊은 이 55개의 게송들은 출가하기 이전에 대한 게송들({1091}~{1106}) 16개와 출가한 후에 대한 게송들({1107}~{1145}) 39개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앞의 16개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것은 언제 이루어질까?’({1093} 등)라거나 ‘언제 이런 것이 나에게 있게 될 것인가?’({1099} 등)라는 등의 ‘언제(kadā)’라는 의문사를 가진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게송들 39개({1107}~{1145})는 대부분 자신의 마음(citta)을 호격으로 불러서 꾸짖고 격려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이 후반부의 39개 게송 가운데 앞의 28개 게송들({1107}~{1134})은 마음을 꾸짖는 방법으로 교계하고 뒤의 11개 게송들({1135}~{1145})은 마음을 격려하는 방법으로 읊고 있다. 그래서 주석서는 “이와 같이 28개 게송들로({1107}~{1134}) 꾸짖음(niggaṇhana)을 통해서 마음을 교계한 뒤 이제 한거하는 장소를 묘사함 등을 통해서 격려하면서(sampahaṁsenta) 본 게송 등을 말하였다.”(ThagA.iii.159)라고 설명한다. 뒤의 39개 게송들 가운데 ‘마음이여, 이처럼 그대는 전부터 나에게 재촉하였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가진 게송들이 8개 정도가 된다.
ⓒ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의 게송들
예순의 모음에 실려있는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1208}) 63개 게송들 가운데 {1189} 게송도 {1191} 등의 여섯 곳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
스물의 모음에 실려있는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의 24개의 게송들({842}~{865}) 가운데 {844}부터 {856}까지의 13가지 두타행에 대한 게송과 {857}부터 {861}까지의 5개를 더한 모두 18개의 사구게 게송들도 언급해야 한다. 여기서 {843}부터 {861}까지의 19개 게송들은 첫 번째 구절[句]만 ‘분소의를 입는 자는 참을성 있게’ 등으로 다르고 나머지 3개의 구절들은 같은 구절들이 반복된다. PTS본과 VRI본은 모두 ‘___pe___’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하였다. 역자도 생략 부호 ‘…’로 생략하여 번역하였다.
이처럼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는 기리마난다 장로(Th5:3 {325}~{329}), 순다라사뭇다 장로(Th7:1 {459}~{465}),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688}) 등의 게송들을 들 수 있다.
ⓔ 랏타빨라 장로(Th20:4)의 게송들
그리고 언급해야 할 게송들로는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의 24개 게송들 가운데 {769}~{775}의 7개 게송들이 있다. 이 일곱 개 게송들은 아난다 장로(Th30:3 {1018}~{1050})의 게송 가운데 {1020}으로,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1208})의 게송 가운데 {1157}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PTS본에서는 랏타빨라 장로(Th20:4)의 첫 번째 게송인 {769}번 하나의 게송만을 가져와서 ‘passa cittakataṁ bimbaṁ __pa__’ ({1020}; {1157})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ala)의 생략으로 편집하고 있다. PTS본을 저본으로 삼아서 PTS본의 경 번호를 따르고 있는 역자는 {1020}과 {1157}의 한글 번역만을 각각 싣고 주해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XI. 맺는말
이상으로 역자는 본 해제에서 I부터 X까지 전체를 10장으로 나누어서 『테라가타』를 살펴보았다. 각 장의 주제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웬만큼 큰 절에 다 있는 응진전(應眞殿)이나 나한전으로부터 글을 시작하였다.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 ‘테라가타(theragāthā)’라는 용어는 담마빨라 스님에 의해서 “therehi bhāsitā gāthā”(ThagA.i.1), 즉 ‘장로들에 의해서(therehi) 읊어진(bhāsitā) 게송들(gāthā)’로 정의되는데 여기 제2장에서는 테라의 의미와 가타의 의미를 경전과 주석서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III. 『테라가타』의 구성: 259분 장로들의 게송 1,279개를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 모두 21개의 모음 안에 담고 있는 『테라가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 장로들이 읊은 게송들의 ‘음성적 형식’이 『테라가타』의 운율이다. 1,279개의 게송이 담겨있는 『테라가타』에는 기본 운율 9개와 혼합된 운율 10개,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운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V.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 『테라가타』에는 게송 1,279개와 읊은 장로들의 이름만 나타나고 있다. 259분 장로들의 행장, 즉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과 출가와 아라한이 됨과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밝히는 것은 『테라가타 주석서』이다. 그러므로 주석서가 없이는 이러한 기본 사항들을 알 수 없다. 본 장에서는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 이렇게 중요한 『 테라가타 주석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259분의 장로들과 게송들을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았다.
VII.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에 대한 고찰: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259분 장로들의 출생 지역, 태생 등을 분류해 보았다. 그리고 게송을 읊은 자로 명시된 장로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세존이나 다른 존재들이 읊은 것 등과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이 읊은 것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VIII.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장로들은 출가자이다.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출가하였는지를 분류하여 정리해 보았다.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 『테라가타』에 게송이 실린 259분 장로들은 모두 아라한들이다.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본 해제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259분 장로들이 어떤 이유와 어떤 배경 등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는지를 11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고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도 넷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으며 도표로도 정리해 보았다.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서를 마무리하면서 『테라가타』에 실린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6쪽 정도의 분량으로(ThagA.iii.203~209) 264분(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인 장로들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한 가지 방법부터 10가지 방법까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뒤 그것을 다시 20가지, 40가지, 80가지, 240가지, 1,200가지로 확장하여 언급하면서 마무리 짓고 있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이 부분을 모두 번역하여 20장 정도의 분량으로 ‘XI.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장로들에 대한 다양한 분류’로 편집까지 마쳤지만 해제의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최종 단계에서 제외하였다. 이 번역의 전문은 본서를 출판한 뒤에 초기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실을 예정이다.
그리고 역자는 259분 아라한 장로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의 주제나 사상이나 내용을 무엇을 기준으로 파악할까를 두고 나름대로 고심을 하다가 이 1,279개 게송들에 많이 나타나는 빠알리 용어들을 모두 분류하고 분석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으로 주제와 내용을 파악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며칠에 걸쳐서 1,279개 게송의 한글 번역에 나타나는 주요 용어들을 폭스프로로 입력해서 분류하여 빈도수가 많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용어들을 대략 110개 정도 뽑았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주제별로 모아서 전체를 10가지 대주제로 나누어 보았다. 그래서 ‘XII. 『테라가타』의 주요 주제에 대한 고찰 ―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용어들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본 해제에 실을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적어본 것은 A4 용지로 60장 분량이었으며 지금의 해제와 같은 신국판의 편집으로는 1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이어서 해제에는 싣지 않기로 하였다. 독자님들의 요구가 있으면 이 부분도 초기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한다.
이제 역자는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말라(khaṇo vo mā upa- ccagā).’라고 역자를 경책시켜 주신 사리뿟따 장로(Th30:2)의 말씀을 적으면서 『테라가타』의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뒤에든 앞에든 양쪽으로 이것은
오직 죽음이니 죽음이 아님이 아닙니다.
도를 닦으십시오, 멸망하지 마십시오.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1004})
마치 변방에 있는 도시를
안팎으로 잘 보호하듯이
그와 같이 자신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순간을 놓친 자들은 지옥으로 인도되어
참으로 슬퍼하기 때문입니다.”({1005})
<테라가타 1권 목차>
하나의 모음(Thag1:1~1:120)
<테라가타 1권 해제>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웬만큼 큰 절에는 응진전(應眞殿)이나 나한전이 있다. 응진전에는 주로 십육나한을 모셨고 나한전에는 오백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이 있다. 영천군 거조암 영산전의 오백나한상과 청도 운문사의 오백나한전이 유명하다. 여기서 나한은 아라한(阿羅漢, arahan)의 줄임말이고 응진(應眞)은 아라한의 번역어인 응공(應供)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한국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예불할 때 승보에 절을 하면서 ‘영산당시수불부촉(靈山當時受佛付囑) 십대제자 십육성(十大弟子 十六聖) 오백성 독수성내지(五百聖 獨修聖乃至)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 무량자비성중(無量慈悲聖衆)’이라 읊는다. 여기서 십육성(十六聖)은 바로 이 16나한 스님들을, 오백성(五百聖)은 바로 이 500나한 스님들을 뜻한다.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은 초기불전의 여러 곳과 『금강경』등의 대승불교 경전에도 적지 않게 나타나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 1,250분을 말한다. 이처럼 나한, 즉 아라한은 한국불교에서도 천 년 이상 오랜 세월을 민중들과 함께한 분들이다.
한국불교에는 이처럼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이 알려져 있지만 상좌부 불교에는 특별히 16아라한이나 500아라한이란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대신에 『테라가타 주석서』에 [80명의] ‘대제자들(mahāsāvakā)’이라는 표현과 이들 80분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부처님과 함께 나타나는 1,250명의 비구들(aḍḍhatelasehi bhikkhusatehi)인 아라한들도 잘 알려져 있다.(D2 §1; S8:8 §1) 주석서에 의하면 이 1,250명의 비구들 가운데 범부나 예류자나 일래자나 불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모두 육신통을 구족한 아라한들이었다고 한다.(MA.iii.209) 그래서 이들을 ‘고귀한 비구 승가(mahanta bhikkhu- saṅgha)’라 부르고 있다.(D2 §1; S8:8 §1)
그리고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즉 여래십호(如來十號) 가운데 두 번째인 응공(應供)도 아라한(arahan)의 번역어이다. 그러면 아라한과 부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구분하면 부처님은 도를 설하신 분이시고 아라한은 그 도를 실천하여 번뇌가 다한 분이다. 그래서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정등각자 경」(S22:58 §5)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킨 분이고 아직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한 분이고 아직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한 분이고 도를 아는 분이고 도를 발견한 분이고 도에 능숙한 분이다. 그리고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가면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아라한‧정등각자와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한 자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S22:58 §5)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뒤 오래지 않아 아난다 존자는「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5)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바라문이여, 그분 고따마 존자 아라한‧정등각자께서 구족하셨던 모든 법들을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게 구족한 비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키셨고, …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됩니다.””(M108 §5)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아라한들의 사유와 사상과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테라가타』이다. 그러므로 『테라가타』는 한국불교에서도 나한전이나 응진전 등으로 익숙한 나한들, 즉 아라한들의 진면목을 본격적으로 밝히고 있는 초기불전이다. 이처럼 『테라가타』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인 264분(중복해서 나타나는 장로들을 모으면 259분) 아라한 장로들의 1,279개 게송들을 담고 있다.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
⑴ ‘테라가타(theragāthā)’의 문자적인 의미
‘테라가타(theragāthā)’는 장로를 뜻하는 테라(thera)와 게송을 뜻하는 가타(gāthā)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長老偈(장로게)로 옮겼다. 의외로 빠알리 삼장 안에서 theragāthā라는 용어는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이 『테라가타』의 경의 제목과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한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를 제외한 주석서 문헌들에서도 ‘테라가타’라는 용어는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에 한 번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없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① 『테라가타 주석서』 서문의 게송에서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therehi bhāsitā gāthā”(ThagA.i.1), 즉 ‘장로들에 의해서(therehi) 읊어진(bhāsitā) 게송들(gāthā)’이라고 읊고 있다. 격한정복합어[依主釋, Tat- puruṣa] 가운데 3격(도구격) 격한정복합어(Tṛtīya-tatpuruṣa)로 분석한 이 ‘테레히 바시따 가타’가 ‘테라가타’(thera-gāthā)라는 합성어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라 여겨진다.
② 한편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깝빠 장로(Th10:5 {567})가 지역 왕이었을 때 그에게 게송 10개를 읊어주셨는데 그는 출가하여 삭발할 때 아라한됨을 얻어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설해주신 그 10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참으로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ten- eva tā theragāthā nāma jātā).’(ThagA.ii.243)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장로의 게송’으로 옮긴 용어도 theragāthā인데 이 합성어도 ‘장로에 의해서(therena) 읊어진(bhāsitā) 게송(gāthā)’으로 해석이 된다. 즉 깝빠 장로가 읊은 게송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게송들은 먼저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서 읊으신 것이고 그가 아라한이 되고 나서 이 게송을 따라 읊어서 자신의 게송으로 삼았기 때문에 ‘[깝빠] 장로의(therassa) 게송(gāthā)이 되었다(jātā).’로 이해하여 격한정복합어[依主釋, Tatpuruṣa] 가운데 6격(소유격) 격한정복합어(Ṣaṣthī-tatpuruṣa)로 해석할 수도 있다.
⑵ 삼장에서 『테라가타』의 위치
이제 이 『테라가타』가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는 어디에 속하는지를 살펴보자.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고(tathāgatassa bhātā cūḷapituputta, DA.i.4),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DA.ii.425; BvA.131), 출가하여 부처님의 후반부 25년을 부처님 가까이에서 직접 모셨고(Thag. {1041}~{1043} 참조), 다문제일(多聞第一, etadagga bahussutānaṁ)이라 불리며(A1:14:4-1), 일차합송에서 경장의 결집을 주도하였고(DA.i.14),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며(DhpA.99), 그래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도 무려 40년을 더 생존해 있었던 아난다 존자는 여기 『테라가타』안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Thag. {1024})
즉 초기불전은 8만 4천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가운데 8만 2천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2천은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 초기불교이다. 이러한 초기불전은 빠알리어로 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분류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그것은 율장(律藏, Vinaya Piṭaka)과 경장(經藏, Sutta Piṭaka)과 논장(論藏, Abhidhamma Piṭaka)이다. 이 가운데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法, dhamma]을 담고 있는 경장은 5부 니까야(Nikāya, 모음, 묶음)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것은 ⑴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⑵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中部, 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⑶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相應部, 주제별 경들의 모음) ⑷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숫자별 경들의 모음) ⑸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그 외 여러 가르침들의 모음)이다.
이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는 다음의 15개 경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⑴ 『쿳다까빠타』(Khuddakapāṭha, 小誦經)
⑵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⑶ 『우다나』(Udāna, 自說經)
⑷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⑸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
⑹ 『위마나왓투』(Vimānavatthu, 天宮事經)
⑺ 『뻬따왓투』(Petavatthu, 餓鬼事經)
⑻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經)
⑼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經)
⑽ 『자따까』(Jātaka, 本生經)
⑾ 『닛데사』(Niddesa, 義釋)
① 『마하닛데사』(Mahā-Niddesa, 大義釋)
② 『쭐라닛데사』(Culla-Niddesa, 小義釋)
⑿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無礙解道)
⒀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
⒁ 『붓다왐사』(Buddhavaṁsa, 佛種姓經)
⒂ 『짜리야삐따까』(Cariyāpiṭaka, 所行藏經)
이 15개 가르침 가운데 ⑵ 『담마빠다』(법구경), ⑶ 『우다나』(자설경), ⑷ 『이띠웃따까』(여시어경), ⑸ 『숫따니빠따』(경집), ⑻ 『테라가타』(장로게경), ⑼ 『테리가타』(장로니게경), ⑽ 『자따까』(본생경)는 4부 니까야와 같은 권위를 가진 초기불전으로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본서 『테라가타』(장로게경)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이것은 『장로게』(長老偈) 혹은 『장로게경』(長老偈經)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로도 분류된다. 이 아홉 가지는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인데 이미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서 언급되고 있다.(M22 §10; A4:6 §1; A4:103 §3; A5:155 §8; A6:51 §5 등)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 아홉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 가운데 ① [율장의] 두 가지 위방가(비구 위방가와 비구니 위방가)와 [ 『쿳다까 니까야』의] 『닛데사』(Niddesa)과 [율장의] 칸다까(健度, 건도)와 빠리와라(補遺, 보유)와 [ 『쿳다까 니까야』] 『숫따니빠따』의「큰 행복 경」(Sn2:4),「보배 경」(Sn2:1),「날라까 경」(Sn3:11),「뚜왓따까 경」(Sn4: 14)과 그 외에 경이라 이름하는 다른 여러 여래의 말씀이 바로 경(經, sutt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② 게송과 함께하는 경이 바로 응송(應頌, geyya)이라고 알아야 한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의「사가타 품」(Sagātha-vagga) 전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③ 전체 논장과 게송이 없는 경과 그 외에 다른 여덟 가지 구성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부처님 말씀이 바로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④ 『법구경』과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 ⑤ 기쁨에서 생긴 지혜로 충만한 게송과 관련된 82가지 경들이 바로 감흥어(感興語, udāna)라고 알아야 한다. ⑥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110가지 경들이 바로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라고 알아야 한다. ⑦ 아빤나까 본생담 등 550개의 본생담이 바로 자따까(本生譚, jātaka)라고 알아야 한다. ⑧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D16 §5.16)라는 등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모든 놀랍고 경이로운 법과 관련된 경들이 바로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이라고 알아야 한다. ⑨「교리문답의 짧은 경」(M44),「교리문답의 긴 경」(M43),「바른 견해 경」(M9),「제석문경」(D21), 상카라 분석 경(?),「보름밤의 긴 경」(M109) 등 모든 신성한 지혜와 만족과 여러 가지 이익됨이 질문된 경들이 바로 문답[方等, vedalla]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3~24)
여기서 살펴보았듯이 본서 『테라가타』는 부처님 원음을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 경전으로 결집되어 전승되어 온다. 그리고 이것은 아홉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스승의 교법(navaṅga-satthu-sāsana), 즉 구분교(九分敎) 가운데 네 번째인 게송(偈頌, gāthā)의 전형적인 보기가 된다.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를 시작하면서 『테라가타』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ThagA.i.2)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III-⑴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테라가타』의 구성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으면서 위에서 인용한 『테라가타』{1024}에 나타나는 아난다 존자의 게송 “8만 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Thag. {1024})라는 이 게송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는 초기불교를 ‘부처님과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으로 정의한다. 여기에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팔만사천 가르침 가운데 2천의 가르침이 비구(비구니들 포함)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계 제자들의 가르침은 4부 니까야의 경들에도 실려있으며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인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에도 직계 제자들인 장로들과 장로니들의 게송들이 지금까지 면면부절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⑶ 장로(thera)란 무엇인가?
① 문자적 의미
장로로 옮기는 빠알리어 thera는 √sthā(tiṭṭhati, Sk:tiṣṭhati, +te, 1류, 서 있다, to stand)의 명사이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thāvara가 니까야의 여러 곳에 쓰이고 있다.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강한, 굳건한, 고정된’ 등으로 옮겼다.
그리고 경에서는 tasa-thāvara(약하거나 강한)라는 합성어로도 나타나고 tasaṁ vā thāvaraṁ vā(떠는 자든 굳건한 자든)로도 나타난다. 여기서 tasa (Sk. trasa)는 √tras(to tremble)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떨림’이나 ‘두려움’을 뜻하고 thāvara는 √sthā(to stand)에서 파생된 형용사나 남성명사로 ‘움직이지 않는, 굳센, 늙은이’ 등을 뜻한다. 산스끄리뜨 일반에서 sthā- vara는 움직임이 없는 나무와 같은 식물들을 뜻하고 후대에는 특히 부동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산스끄리뜨 일반에서 trasa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뜻한다. 이것이 초기불전에 들어와서 이 둘이 함께 쓰이는 문맥에서는 갈애를 가진 자와 갈애가 없는 자(아라한)를 뜻하는 술어로 쓰이고 있다.( 『이띠웃따까』「일으킨 생각 경」(It2:11)의 주해에서)
그리고 문맥에 따라 tasa는 움직이는 것들, 즉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을 뜻하고 thāvara는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것들, 즉 식물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더 간단히 전자는 유정으로 후자는 무정물로 평이하게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경에는 같은 √sthā에서 파생된 thira라는 형용사가 쓰이고 있는데 ‘확고한, 견고한, 강한’으로 옮기고 있다. 특히 주석서들에서는 thera(테라)를 설명하면서 이 thira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 -ppatta)” (DA.ii.526)이나 “확고함을 얻었기 때문(thirabhāvaṁ pattā)”(AA. iii.350)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자적으로는 thera는 [오래] 서있는 자, [오래] 머무는 자, [오래] 지속되는 것, 확고한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산스끄리뜨로는 sthavira이고 중국에서는 上首, 大德, 尊者, 悉替耶, 慧命, 老, 老年, 耆年, 耆長, 長老(상수, 대덕, 존자, 실체야, 혜명, 노, 노년, 기연, 기장, 장로) 등으로 옮겼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장로로 옮기고 있다.
② 주석서에 나타나는 장로에 대한 설명
위에서 보았듯이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 기본적으로 테라(thera)는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a)으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숫따니빠따 주석서』는 “장로는 자신의 사문의 법(attano samaṇadhamma)에서 확고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ā)이다.”(SnA.423)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제 주석서들에서 장로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본서의 주석서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테라, 즉 장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계행의 심재 등의 굳건한 덕과 결합되었기 때문에(sīlasārādi-thiraguṇa- yogato) ‘장로(thera)’이다.”(ThagA.i.30)
“확고한 무학들(thirā asekkhā)의 계행의 심재 등(sīlasārādi)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thero)’이다.”(ThagA.iii.5)
“‘장로(thera)’라고 하였다. 무학의 계의 무더기 등(asekkhā sīlakkhandh- ādī)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이다.”(ThagA.iii.105)
“확고한(thira) 계의 무더기 등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장로이다. 흔들림 없는 법을 가졌다(akuppadhamma)는 뜻이다.”(ThagA.iii.196)
이제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확고함을 얻어서 장로로 만드는 덕들(thera-kārakā guṇā)을 구족하였다고 해서 장로들이다.”(DA.ii.526)
여기에 대해서 『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확고함을 얻어서(thirabhāva-ppatta)’라는 것은 교법에서 확고함, 흔들림 없음(anivattitabhāva)에 도달한 것(upagata)이다. ‘장로로 만드는(therakāra -ka)’이라는 것은 장로가 됨을 성취하는 무학의 법(asekkhadhammā)인 계행 등의 공덕(sīlādiguṇā)이다.”(DAT.ii.163)
여기서 계행 등의 공덕(sīlādiguṇā)은 『청정도론 복주서』(Pm)의 설명처럼 기본적으로는 계‧정‧혜 삼학의 공덕(sīla-samādhi-ādi-guṇasampanno, Pm. i.149)이나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오법온(sīlādīhi pañca dhamma -koṭṭhāsā, Pm.i.274)을 의미한다.
한편 ① 부처님들의 전기(apadāna)와 ② 벽지불들[獨覺, pacceka-buddha]의 전기와 ③ 547분 장로들의 전기와 ④ 40분의 장로니들의 전기를 담고 있는(Hinüber 61) 『아빠다나』에 대한 주석서는 thera의 의미를 아래의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①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terovassikāni)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D22 §10; M10 §28)라는 말씀에서 thera는 시간(lāla)을 뜻함.
② 확고함(thira)이라는 뜻에서 계행(thirasīla)을 뜻함.
③ 연장자, 존자, 노후한 자라는 세상의 개념적인 말일 뿐임(lokapaññatti -matta).
④ 쭌다테라, 풋사테라는 이름임(nāmadheyya).
⑤ 연장자라는 뜻에서 장남인 아이(jeṭṭha kumāra)를 뜻함.
그런 뒤 이 『아빠다나 주석서』는 “여기서는 ① 시간(kāla)과 ② 확고함(thira)의 뜻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머물렀다고 해서 장로이다(ciraṁ kālaṁ ṭhitoti thero). 혹은 부드러움 등 더 확고해진 계행(thiratara -sīlācāra-maddavādi)의 공덕에 몰두하는 사람(guṇa-abhiyutta)이 장로라 일컬어진다.”(ApA.212)라고 설명하고 있다.
⑷ 니까야에 나타나는 thera의 용례
이상 주석서 문헌들에서 장로로 옮기고 있는 테라(thera)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테라(thera)는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문맥과 어떤 용례로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자. 역자는 테라의 용례를 경장, 그 가운데서도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섯 번째 니까야인 『쿳다까 니까야』에서는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를 제외하면 『법구경』에 한 번, 『숫따니빠따』에 두 번 정도 나타나고 『뻬따왓투』에 15번 정도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4부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의미 외에 다른 용례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어 보이기 때문이다.
4부 니까야 가운데 thera라는 용어는 『디가 니까야』의 4개 경들과 『맛지마 니까야』의 14개 경과 『상윳따 니까야』의 16개 경들과 『앙굿따라 니까야』의 19개 경들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된다. 이제 이들을 정리해 보자.
① thera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일곱 개의 용어들
니까야에서 thera라는 용어는 주로 ⓐ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단수로도 나타남)와 ⓑ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와 ⓒ thero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로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중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단수로 표기하면 이들은 thera, rattaññū, cirapabbajita, saṅghapitu, saṅghapariṇāyaka, addhagata, vayoanuppatta의 일곱 개 용어이다. 이들의 출처에 대해서 살펴보자.
ⓐ 이 가운데 2개의 경(D16 §1.6; A7:26 §4 이하)에서는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장로들이요 구참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된)의 세 개 용어로 나타나고 『숫따니빠따』의「사비야 경」(Sabhiya sutta, S3:6)에도 나타나고 있다.
ⓑ 다른 3개의 경(M33 §3 이하; A7:21 §1; A11:18 §4 이하)에서는 이 세 개의 용어에다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가 더 첨가되어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의 다섯 개 용어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다섯 개 용어로 된 ⓑ는 ‘[비구들은] 장로들이요 구참(舊參)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승가의 아버지들이요 승가의 지도자들이다.’로 직역할 수 있다. 경들에서는 문맥에 따라 주로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이요 출가한 지 오래된 장로 비구들’로 옮겼다.
ⓒ 『디가 니까야』제3권「정신경」(D29) §§10~14에는 ⓐ의 3개 용어에다 addhagata와 vayoanuppatta가 첨가되어 단수 문장인 thero rattaññū cirapabbajito addhagato vayoanuppatto(장로요 구참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 §§2~7)에 의하면 뿌라나 깟사빠 등의 육사외도에게도 thera라는 용어가 없이 이 네 가지 용어, 즉 ratta- ññū, cirapabbajita, addhagata, vayoanuppatta가 그들을 수식하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하여 ⓐ, ⓑ, ⓒ에 나타나는 용어들은 thera, rattaññū, cira- pabbajita, saṅghapitu, saṅghapariṇāyaka, addhagata, vayo-anu- ppatta의 일곱 개로 정리된다. 이 일곱 개 가운데 rattaññū부터 vayo-anu -ppatta까지의 뒤의 여섯 개 용어들은 장로로 옮기는 thera라는 첫 번째 용어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용례들을 보면 장로는 구참들이요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승가의 아버지들이요 승가의 지도자들이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분들을 뜻한다.
그리고 테라(thera)라는 용어가 없이 연로함을 표현할 때는 jiṇṇo vud- 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늙은, 나이 든, 노쇠한, 삶의 완숙기에 이른)라는 다섯 개의 단어로 된 정형구가 4부 니까야 가운데 8개 경들(D4 §5; M12 §62 등)의 1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바라문들이나 왕들에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대반열반경」(D16 §2.25)에서 세존께서도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후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 간다고 여겨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② thera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일곱 개 용어들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
그러면 주석서는 이 일곱 가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자.「대반열반경」(D16 §1.6)에 대한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장로들(therā)’은 확고함을 얻어서 장로가 될 공덕을 구족한 분들을 말한다. [출가하여] 많은 밤들(rattiyo)이 [지나간 것을] 안다고 해서 ‘구참(rattaññū)’이다. 이들이 출가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출가한 지 오래된 분들(cirapabbajitā)’이다. 승가의 아버지의 위치에 서있다(pituṭṭhāne ṭhitattā)고 해서 ‘승가의 아버지들(saṅghapitaro)’이다. 아버지의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승가를 인도하여(parinenti) 앞장서는 자들(pubbaṅgamā)이 되어서 삼학에 [확립되어] 굴린다(tīsu sikkhāsu pavattenti)고 해서 ‘승가의 지도자들(saṅghapariṇāyakā)’이다.”(DA.ii.526)
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확고함을 얻어서’라는 것은 교법에서 확고함, 즉 옆길로 빗나가지 않음(anivattitabhāva)을 분명하게 얻은 것을 말한다. ‘장로가 될(therakārakehi)’이라는 것은 장로가 됨을 성취하게 하는 무학의 법들인 계행 등의 [삼학이나 오법온의] 덕들을 말한다. 계행 등의 덕들에 확립되게 하는(patiṭṭhā -pana) 교법에서 인도자가 되었다(pariṇāyakatā)고 해서 ‘삼학에 [확립되어] 나아간다(tīsu sikkhāsu pavattenti).’라고 하였다.”(DAṬ.ii.163)
ⓒ에 나타나는 addhagata, vayoanuppatta에 대한 주석서의 설명이다.
“‘연로한(addhagata)’이란 시간이 지나가서 둘이나 셋의 왕의 집권 시대가 지나간 것(rājaparivaṭṭe atīto)과 동의어이다.”(DA.i.143 등)
“‘연로한’이란 많은 시간이 지났고(bahuaddhānaṁ gata)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cirakālātikkanta)이다.”(MA.ii.51)
“‘삶의 완숙기에 이른(vayoanuppatta)’이란 삶의 후반부에 도달한 것(pacchimavayaṁ anuppatta)이다.”(DA.i.143 등)
③ 세 가지 장로(thera)의 분류
이제 경에서는 장로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합송경」(D33)과 여기에 관한 주석서의 설명을 통해서 살펴보자.
『디가 니까야』제3권「합송경」(D33)은 장로(thera)를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세 가지 장로(thera)가 있으니 ―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 tthera), ⓑ 법다운 장로(dhammathera), ⓒ 인습적으로 부르는 장로(sam- muti thera)이다.”(D33 §1.10 (37))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jātimahallaka) 재가자(gihī)가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tthera)’이다.
ⓑ [진정한 장로가 되고 진정한 장로로 인정을 받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고 계시는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우루웰라 경」2(A4:22)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 그는 많이 배우고[多聞] … 네 가지 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법들 가운데 하나나 여럿을 구족한 자가 ‘법다운 장로(dhamma-thera)’이다.
ⓒ “법다운 장로 이외의 장로라 이름하는 비구들이나, 혹은 사미 등이 연로하여 출가한 자를 보고 그냥 ‘장로(thera)님,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이런 것을 두고 ‘인습적으로 부르는 장로(sammuti-thera)’라 한다.”(DA.iii.999)
이 가운데 첫 번째는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이것은 재가자들이 따지는 연장자를 말한다. 두 번째는 계‧정‧혜 삼학을 완성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완성한 법다운 장로이다. 비록 세속적인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그가 해탈을 완성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법다운 장로이다. 세 번째는 출가하여 연로해졌지만 깨닫지는 못한 스님들을 그냥 큰스님으로 부르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디가 니까야 복주서』(DAṬ)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jātimahallaka)’이라는 것은 태어남에 의해서 더 연장자(vuḍḍhatara)이고 수명이 길고(addhagata) 나이가 든(vayo- anuppatta) 것이다. 그는 구참이기(rattaññutā) 때문에 일반적으로 태생의 법과 가문의 법이라는 토대(jātidhamma-kuladhamma-padā)에서 더 굳건함을 얻었기(thāvariyappatti) 때문에 ‘태어남에 의해서 연로한 자(jātithera)’라 한다.
ⓑ ‘장로가 되는 법들(therakaraṇā dhammā)’이라는 것은 교법에서 굳건함을 만드는 덕들(sāsane thirabhāvakarā guṇā)인데 [이것과] 상반되는 것들을 분쇄하는 것들(paṭipakkha-nimmadanakā)을 말한다. ‘장로(thera)’는 말하려고 하는 법들(vakkhamānā dhammā)에 대해서 굳건함을 얻은 분(thirabhāvappatta)이다.
ⓒ ‘장로라 이름하는(thera-nāmaka)’이라는 것은 장로라는 이러한 명칭을 가진(nāmaka)이란 말이다.”(DAṬ.iii.266)
④ 장로 비구[들](thero bhikkhu/therā bhikkhū)이라는 용어
장로 비구[들](thero bhikkhu/therā bhikkhū)이라는 용어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상대가 되는 용어인 신참 비구[들](navo bhikkhu/navā bhikkhū)과 중진 비구[들](majjhimo bhikkhu/majjhimā bhikkhū)이라는 용어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모두 복수로 표기한다.
ⓐ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둘로 나타나는 경우는「대반열반경」(D16 §6.2) 등 8개 정도의 경들이 있다.「대반열반경」을 인용한다.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āvuso)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 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구참(舊參)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참 비구는 구참 비구를 존자(bhante)라거나 장로(āyasmā)라고 불러야 한다.”(D16 §6.2)
ⓑ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과 중진 비구들(majjhim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셋으로 나타나는 경우는「정신경」(D29 §12) 등 7개 정도의 경들이 있다. 『맛지마 니까야』제4권「길들임의 경지 경」(M125)을 인용한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장로 비구가 번뇌를 부수지 못하고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어버린 장로 비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와 같이 중진 비구가 … 신참 비구가 번뇌를 부수지 못하고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어버린 신참 비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M125 §31)
ⓒ 이 외에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만으로 나타나는 경들은 22군데 정도가 되고 단수인 장로 비구(thera bhikkhu)만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14군데 정도가 되어 모두 36개 정도의 경들에서는 중진 비구들(majjhimā bhikkhū)과 신참 비구들(navā bhikkhū)의 언급이 없이 단독으로 쓰인다. 『앙굿따라 니까야』제6권「거처 경」(A10:11) §3의 해당 부분을 인용한다.
“그 거처에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다. 그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나는 법에 대해 의심을 없애준다. 비구들이여, 거처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A10:11 §3)
⑤ 신참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과 장로 비구들을 나누는 기준
그러면 신참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과 장로 비구들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먼저 『상윳따 니까야』제1권「사밋디 경」(S1:20)에서 사밋디 존자는 그에게 질문을 하는 천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반이여, 나는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S1:20 §5)
여기에 대해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참(nava)’이라고 하였다. 다섯 안거를 채우지 못한(aparipuṇṇa-pañca -vassa) 비구를 신참이라 한다. 다섯 안거(pañcavassa) 이후부터가 중진(majjhima)이고 열 안거(dasavassa)부터가 장로이다. 다른 방법은 이러하다. ― 열 안거를 채우지 못하면(aparipuṇṇadasavassa) 신참이고 열 안거 이후부터가 중진이며 스무 안거 이후부터가(vīsativassato paṭṭhāya) 장로이다. 이들 가운데 나는 신참입니다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신참인 어떤 사람이 일곱이나 여덟 살에 출가한 뒤 12년이나 13년을 사미로 지냈다면 그는 출가한 지 오래되었다(cirapabbajita). 그러나 나는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acirapabbajita)’라고 [사밋디 존자는] 말하는 것이다.”(SA.i.43~44)
『율장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열 안거를 채웠기 때문에(paripuṇṇa-dasavassatāya) 장로(thera)이고 다섯 안거 아래이기 때문에(ūna-pañcavassatāya) 신참(nava)이며 다섯 안거를 넘어섰기 때문에(atireka-pañcavassatāya) 중진(majjhima)이라는 뜻이다.”(VinA.i.239)
다른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진(majjhima)’이라고 하였다. 다섯 안거의 기간부터(pañcavassa-kāla -to paṭṭhāya) 아홉 안거의 기간까지가(navavassakālā) 중진이다. ‘장로(thera)’라고 하였다. 열 안거의 기간부터(dasavassa-kālato paṭṭhāya) 장로라고 한다.”(PugA.215; AAṬ.ii.197)
⑥ 나이만 많으면 장로인가
그러면 출가한 지 오래되었고 나이만 많으면 연장자이고 모두 다 장로 비구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경이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깐다라야나 경」(A2:4:7)이다. 깐다라야나라는 바라문이 마하깟짜야나 존자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사문 깟짜야나는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되었고, 오래 살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깟짜야나 존자가 그렇게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되었고, 오래 살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반기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 것은 온당하지가 않습니다.”(A2:4:7 §1)
여기에 대해서 깟짜야나 존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나이 든 자의 입장(vuddha-bhūmi)과 젊은 자의 입장(dahara-bhūmi)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아흔, 백 세가 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kāma)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고 감각적 쾌락의 불에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휩싸이고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열정적이라면 그는 어리석은 장로(bāla thera)라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사람이 비록 젊어 인생의 초반이고 머리카락이 검고 혈기가 왕성하더라도 만약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 감각적 쾌락을 찾아 헤매는 것에 열정적이지 않다면 그는 현명한 장로(paṇḍita thera)라 불립니다.”(A2:4:7 §2)
나이가 많다고 해서 연장자이고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벗어나야 그가 진정 장로로 불리게 된다는 답변이다.
그러자 이에 감격한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젊은 비구들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 이렇게 말하면서 삼보에 귀의하고 재가 신자가 되었다.
“존자들께서는 나이 든 어른(vuddhā)이시고 나이 든 어른의 입장(vuddha -bhūmi)에 서 계십니다. 우리는 젊은 사람(daharā)이고 성숙되지 않은 자의 입장(dahara-bhūmi)에 서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여. …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A2:4:7 §3)
이외에도 장로 비구들의 오염을 말씀하시는 몇몇 경들을 더 들 수 있겠지만「미래의 두려움 경」3(A5:79 §6)을 인용한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다섯 가지 두려움을 말씀하시면서 그 다섯 번째 두려움으로 다음과 같이 장로 비구들의 오염을 들고 계신다.
“6.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세에는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장로 비구들(therā bhikkhū)은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으면서 [옷 등 네 가지 필수품을] 너무 많이 가지고 [교법에] 방만하며 [다섯 가지 장애로 불리는]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의 임무를 내팽개쳐 버리고,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정진을 하지 않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다음 세대들도 그들의 [삿된] 견해를 이어받게 된다. … 정진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법이 오염되면 율이 오염되고 율이 오염되면 법이 오염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날 다섯 번째 미래의 두려움이니, 그대들은 이것을 자각해야 하고 자각한 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A5:79 §6)
⑸ 가타[偈, gāthā]란 무엇인가?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테라(thera)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를 살펴보자. 빠알리 gāthā(산스끄리뜨도 동일함)는 √gai(to sing)의 여성명사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gāthā를 주로 게송으로 옮기고 있다. 이 용어는 베다에서부터 gāthā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伽陀, 偈, 偈他, 偈經, 偈頌, 句, 四句, 孤起頌, 攝, 法頌, 諷頌, 頌(가타, 게, 게타, 게경, 게송, 구, 사구, 고기송, 섭, 법송, 풍송, 송) 등으로 다양하게 옮겼다. 『금강경』에서 구마라집 스님은 偈(게)로 옮겼고 현장 스님은 伽陀(가타)로 음역하였다.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역자가 정리하여 만든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 가운데서 ‘∪gātha∪’와 ‘∪gāthā∪’로 검색을 해보니(∪는 빈칸을 나타냄) 경장과 율장에서만 442번이 나타났는데 VRI본에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1,000번 이상이 쓰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논장에서는 3번 정도에 그쳤다. 이처럼 초기불전 경장과 율장의 많은 곳에 이 용어는 나타나고 있는데 경장에서는 주로 다음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 가타는 게송이다.
위의 해제 II-⑵ 삼장에서 『테라가타』의 위치에서 보았듯이 구분교 가운데 네 번째인 이 가타(게송)는 “④ 『법구경』과 『장로게』와 『장로니게』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suddhika-gāthā)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4)라고 설명되었다. 이처럼 게송으로 옮긴 가타는 구분교 가운데 네 번째로 나타나는데 이때 가타는 운율을 가진 모든 게송, 즉 시(詩)를 의미한다. 『테라가타』의 가타도 운율(dhando, Sk. chandas)을 가진 시구를 의미한다. 이처럼 가타(게송)의 핵심은 운율(chando)이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들에 대해서는 본 해제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을 참조하기 바란다.
PED의 설명에서 보듯이 빠알리 가타, 즉 게송은 아눗툽바(아누슈뚭)와 같은 사구게로 설명이 된다. 여기서 아눗툽바(Pāli: Anuṭṭhubba), 즉 아누슈뚭(Sk: Anuṣṭubh) 운율(chandas)은 한 구절(pāda)에 8개의 음절이 들어있는 네 개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래서 8×4=32음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아누슈뚭 운율은 모든 산스끄리뜨 운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 베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런 아누슈뚭 운율을 위시한 운율을 가진 모든 시(詩)들을 불교에서는 이렇게 가타(gāthā)라고 부른다. 그리고 불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도 고전 문헌에서도 이 아누슈뚭(아눗툽바) 운율을 실로까(Pāli: Siloka, Sk: Ślok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는 불교 경전의 모든 시구를 가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베다와 고전 산스끄리뜨에서 엄밀히 말하면 가타와 아누슈뚭은 다른 운율이다.
노만 교수는 『테라가타』에 포함된 게송들이 가지는 운율을 9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 9가지 운율이 혼합된 게송으로 ‘뜨리슈뚭 운율과 자가띠 운율이 혼합된 것’ 등의 10개를 소개하여 1,279개 게송들에는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본 해제 IV. 참조.)
② 주석서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에 대한 설명
그러면 니까야의 주석서들은 gāthā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 구분교와 가타(gāthā)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II-⑸-① 참조)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구분교(九分敎)를 ① 경(經, sutta) … ⑨ 문답(方等, vedalla)의 아홉 가지로 분류한 뒤 “④ 『법구경』과 『장로게』와 『장로니게』와 『숫따니빠따』에서 경이라는 이름이 없는 순수한 게송(suddhika-gāthā)이 바로 게송(偈頌, gāthā)이라고 알아야 한다.”(DA.i.24, 본 해제 II-⑵)로 설명하였다.
ⓑ 주석서들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에 대한 설명
『숫따니빠따 주석서』는 “여기서 게송(gāthā)이란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져 있는 말(ak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로 설명하고 있다.
『쿳다까빠타 주석서』도 게송을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져서 연결된 말(akkhara-pada-niyamita-ganthita-vacana)”(KhA.117)로 정의한다. 같거나 비슷한 설명이 『닛데사 주석서』(Nd1A.ii. 270)에는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져서 연결된 말을 통해서 읊어진 것(akkhara-pada-niyamita-ganthitena vacanena abhāsi)”으로 나타난다.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디가 니까야』제2권「대회경」(大會經, D20) §5를 주석하면서 가타와 동의어인 실로까(Siloka)를 위에서 언급한 주석서들과 같은 방법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나는 게송으로 밝히리라(silokam anukassāmi).’라는 것은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의 모음(akkhara-pada-niyamita vacana-saṅghā -ta)을 전개할 것이라는 말씀이다.”(DA.ii.684)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처럼 실로까를 가타와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도 실로까와 가타가 동의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빠알리 문법서인 『삿다니띠』(Saddanītippakaraṇa)도 이와 똑같이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의 모음이 실로까(게송)이다.”(Sdnt.16)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여러 주석서들은 가타와 실로까를 ‘음절(akkhara)’과 ‘구절[句, pada]’이라는 게송의 중심이 되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
주석서와 복주서의 여러 곳에는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이라는 용어’(MA.iii.331)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주석서는 가타를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이라고 정의하였다. 기본적으로 가타는 네 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가타는 기본적으로 네 구절로 된 게송, 즉 사구게(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라 부른다.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제8품(依法出生分 第八) 등의 몇 군데에서도 catuppadikā gāthā의 산스끄리뜨인 catuṣpādikā gāthā로 나타나는데 구마라집 스님은 四句偈(사구게)로, 현장 스님은 四句伽陀(사구가타)로 옮겼다.
그리고 이러한 네 구절 모두가 8음절로 제한된 것을 아누슈뚭(아눗툽바) 운율이라 하며 이것이 가타와 실로까의 기본 운율이 된다. 이렇게 하여 가타, 즉 게송 혹은 사구게는 기본적으로 8×4=32음절로 구성된다.
한편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D2 §40 등등)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이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을 보기로 하여 다음과 같이 시작과 중간과 끝을 설명하고 있다.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에서 첫 번째 구절(paṭhama-pāda)은 시작(ādi)이라 하고 그다음의 두 구절은 중간(majjha)이라 하며 마지막의 한 구절은 끝(pariyosāna)이라 한다.”(DA.i.175)
ⓓ 가타(게송)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
이제 『테라가타』를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가타를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알아보자.
본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노래한다(읊어진다, gīyati)고 해서 게송(gāthā)이다. 아누슈뚭(아눗툽바) 등(Anuṭṭhubhādi)을 통해서 선인들(isī)에 의해서 전개된(굴려진)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이다.”(ThagA.i.8)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가타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은 위에서 살펴본 다른 주석서의 설명과는 자못 다르다. 다른 주석서들에서는 모두 ‘음절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khara-pada-niyamita vacana)’을 가타에 대한 설명의 기본 용어로 하였는데 여기서는 ‘네 개의 구절[四句, catuppada]’과 ‘여섯 개의 구절[六句, chappad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게송의 가장 큰 특징을 네 구절로 된 게송과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게송은 기본적으로 네 구절로 되어 있다. 이것이 불교의 게송 뿐만 아니라 베다부터 시작하여 모든 산스끄리뜨 게송과 자이나교나 쁘라끄리뜨로 된 게송의 기본이다.
그러면 여섯 구절로 된 게송은 무엇인가? 이러한 정해진 음절로 구성된 6개의 구절[句, pada]로 되어 있는 게송을 말한다.
역자는 1,279개 게송을 모두 담은, 역자가 만든 ‘테라가타 데이터 베이스’의 빠알리 원문을 Foxpro로 하나하나 조사하였는데 역자가 조사한 바로는 본서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 가운데 61개 정도는 네 구절로 구성된 사구게(四句偈)가 아니라 여섯 구절로 구성된 육구게(六句偈)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표1> 『테라가타』의 육구게
모음
육구게 숫자
모음
육구게 숫자
하나의 모음
13곳
열둘의 모음
1곳
둘의 모음
7곳
열셋의 모음
2곳
셋의 모음
1곳
열여섯의 모음
1곳
다섯의 모음
2곳
스물의 모음
13곳
여섯의 모음
3곳
서른의 모음
2곳
일곱의 모음
3곳
마흔의 모음
3곳
여덟의 모음
1곳
예순의 모음
6곳
열의 모음
2곳
큰 모음
1곳
예를 들면 아누슈뚭 운율, 즉 실로까 운율은 기본적으로 8개의 음절(akkhara)로 된 4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4=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누슈뚭 운율로 된 육구게는 8개의 음절(akkhara)로 된 6개의 구절로 정해져 있어서 모두 8×6=42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혼합된 운율일 경우에는 혼합된 방법대로 계산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앞의 네 구절(pada)이 아누슈뚭 운율로 되어 있고 뒤의 두 구절이 한 구절에 12음절을 담고 있는 자가띠(Jagati) 운율로 되어있다면 이것은 8×4+ 12×2=56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PTS본과 VRI본의 편집이 다른 부분이다. 사리뿟따 장로(Th30:2)의 {995}, {996}, {997} 3개 게송들을 PTS본은 이처럼 3개의 사구게로 편집하였는데 VRI본은 {995}, {996} 2개의 게송으로 편집하였다. 이 경우에 이 2개의 게송들은 당연히 육구게로 편집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PTS본과 VRI본의 게송 번호가 달라지게 된다.
수망갈라 장로(Th1:43)의 {43} 게송도 주목할 만한데 본 게송은 두 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VRI본도 본 게송을 하나의 게송으로 똑같은 게송 번호를 매기고 있다. 노만 교수는 이 전체 게송을 가나 운율(Gaṇa-cchandas)이라고 적고 있다.(K. R. Norman, 132쪽 §43의 주해 참조) 그러면서 이것은 오래된 아랴(Āryā) 운율이라는 Alsdorf의 견해를 소개한 뒤 만일 본 게송을 아랴 운율이라고 한다면 두 개의 게송으로 봐야 한다고 적고 있다.(Ibid)
그런데 이 수망갈라 장로의 어머니인 『테리가타』둘의 모음에 담겨있는 수망갈라마따 장로니(Thi2:3 {23}【설명】참조)의 게송은 『테리가타』둘의 모음 {23}과 {24}의 두 개 게송으로 나타난다. 이 두 게송도 오래된 아랴(Āryā) 운율로 되어 있다. VRI본에도 {23}과 {24} 두 개의 게송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테라가타』에는 세 구절로 구성된 삼구게[三句偈], 즉 8×3=24음절로 된 사위뜨리(Sk: Sāvitrī, Pāli: Sāvittī) 운율은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의 {1188}게송은,
“백 개나 되는 쇠못이 있고 모두 스스로 고통을 받네.
제자인 위두라와 까꾸산다 바라문을 공격하여
둣시가 고통받은 그 지옥은 이와 같다네.”({1188})
라고 삼구게처럼 옮겼지만 원문은 다음과 같다.
sataṁ āsi ayosaṅkū, sabbe paccattavedanā|
īdiso nirayo āsi, yattha dussī apaccatha|
vidhuraṁ sāvakamāsajja, kakusandhañca brāhmaṇaṁ||
이처럼 이 게송은 8+8, 8+8, 8+8, 8+8, 8+8, 9+8의 아누슈뚭 운율로 된 육구게이다. 특정 게송이 8+8+8=24개의 음절로 되어 있어야 그것이 사위뜨리 운율이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다면 담마빨라 스님이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가타(게송)를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이라고 설명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테라가타』에 담긴 1,279개 게송은 사구게이거나 육구게라는 것이 『테라가타』가 가지는 두드러진 특징이므로 담마빨라 스님은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이렇게 게송(가타)을 설명하였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D2 §40 등등)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네 구절로 된 게송(사구게)을 보기로 하여 시작과 중간과 끝을 설명하고 있음을 위에서 보았다.(②-ⓒ) 같은 주석서는 이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육구게)을 보기로 들면서 “다섯 구절로 된 게송(오구게)이나 여섯 구절로 된 게송(육구게)의(pañcapadachappadānaṁ) 첫 번째 구절(paṭhama-pāda)은 시작(ādi)이라 하고 마지막의 한 구절은 끝의 구절(pariyosāna-pada)이라 하며 [가운데 있는] 나머지들(avasesā)은 중간(majjha)이라 한다.”(DA.i. 172)라고 설명하고 있다.
③ 실로까(Siloka, Sk: Śloka)와 가타(gāthā)
이 게송(gāthā)이라는 단어 외에도 니까야에서는 실로까(Siloka, Sk: Śloka)라는 용어가 운율을 가진 게송을 뜻하는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제2권「대회경」(D20) §5에는 “그들이 의지하는 영역에 따라 / 나는 게송으로 밝히리라.(silokamanukassāmi, yattha bhummā tadassitā)”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이 실로까를 “음절과 구절[句]로 제한된 표현 방법의 모음(akkharapadaniyamitaṁ vacana- saṅghāta)”(DA.ii.685)으로 설명하고 있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빠알리 문법서인 『삿다니띠』도 “음절과 구절[句]로 제한된 표현 방법의 모음이기 때문에 실로까라 한다(akkharapadaniyamito vacanasaṅghāto siloko).”(Saddanītippakaraṇa 16)라고 『디가 니까야 주석서』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와서 실로까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이 설명은 위에서 밝힌 게송(gāthā)에 대한 주석서들의 설명과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 가타와 실로까는 동의어로 여겨진다.(sasilokaṁ sagāthakaṁ cuṇṇiya-ganthaṁ ― DAṬ.i.41, NetA.13)
⑹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
앞의 ‘⑷ 니까야에 나타나는 thera의 용례’에서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테라(thera)의 용례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⑸-② 등을 통해서 주석서에서는 가타(gāthā)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제 니까야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용례를 살펴보자.
먼저 역자는 Foxpro로 만든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에서 ‘∪gātha’와 ‘∪gāthā∪’로 검색을 해보았다. 합성어를 제외한 gāthā라는 용어는 경장과 율장에서만 442번이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었는데, VRI본에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것을 감안하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논장에서는 3번 정도에 그쳤다. 이처럼 초기불전 경장과 율장의 많은 곳에 이 용어는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경장의 니까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니까야에서 gāthā는 주로 다음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① 구분교의 가타(gāthā)
앞에서 본 것처럼 가타는 구분교의 네 번째 구성요소의 정형구로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본 해제 II-⑵와 II-⑸-① 참조) 예를 들면 『맛지마 니까야』제1권「뱀의 비유 경」(M22) §10 등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M22 §10 등등)
구분교를 드러내는 이 정형구는 니까야의 14개 정도의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② 동사 bhāsati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
ⓐ 접두어 없는 bhāsati와 함께 쓰인 경우
gāthā는 동사 bhāsati(√bhāṣ, 말하다, to speak, Sk:bhāṣate, +ti, 1류)의 다양한 형태와 함께 쓰여 4부 니까야 안에서만 검색해 봐도 ‘게송을 읊다(gāthaṁ bhāsati)’로 10곳 정도에, ‘게송을 읊었다(gāthaṁ abhāsi)’로 73곳 정도에, ‘게송을 읊어야겠다(gathaṁ bhāseyyāma)’로 2곳 정도에, ‘게송이 읊어졌다(gāthā bhāsitā)’로 7곳 정도에 ― 이처럼 아주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들 가운데 경전의 출처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게송을 읊는다(gāthaṁ bhāsati)
이 표현은「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의 §4에서 각 경에 두 번씩 아래 문맥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 상윳따의 첫 번째 경인「알라위까 경」(S5:1 §4)에는 다음과 같다.
“그러자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gāthaṁ bhāsati)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는구나(gāthaṁ bhāsati).’”(S5:1 §4)
이렇게 하여「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에서 gāthaṁ bhāsati는 20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4부 니까야 안에서만 검색해 보면 과거분사를 사용하여 gāthā bhāsitā(게송이 읊어진)으로 나타나는 곳이 다섯 군데 정도 되고 절대분사를 사용하여 gāthā bhāsitvā(게송을 읊은 뒤)로 나타나는 곳도 두 군데 정도가 된다.
ⓐ-2. 게송을 읊었다(gāthaṁ abhāsi)
여기서 ‘읊었다’로 옮긴 abhāsi는 √bhāṣ(to speak)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Sg.)이다. ‘게송을 읊었다.’로 옮긴 gāthaṁ abhāsi는 4부 니까야에서 73번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이 가운데 68번 정도가 『상윳따 니까야』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에 실린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의「휩쓸려감 경」(S1:3) §2를 예로 들어본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삶은 휩쓸려가고 생명은 덧없고
늙음에 휩쓸린 자에게 보호란 없으니
죽음의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행복을 가져올 공덕 지어야 합니다.””(S1:3 §2 {3})
여기서 ‘이 게송을 읊었다.’는 imaṁ gāthaṁ abhāsi를 옮긴 것이다.
『테라가타』에는 VRI본으로 12번 정도 gāthaṁ abhāsittha(게송을 읊었다.)로 나타난다. 이 구문은 하나의 모음 첫 번째 품에 포함된 장로들의 게송 마지막에만 생략되지 않고 쓰여있으며 나머지 장로들의 경우에는 생략되었다. 생략하지 않으면 모두 264번이 나타나는 것이 된다.
그런데 PTS본에는 게송 {3}까지에만 ‘itthaṁ sudaṁ āyasmā Subhūti -tthero gāthaṁ abhāsitthāti.’로 생략 없이 나타나고 {4} 이하에서는 점진적으로 생략되어서 {8} 이하에서는 장로의 이름만이 언급되고 있다. VRI본으로는 첫 번째 품인 10까지 ‘itthaṁ sudaṁ āyasmā Subhūtitthero gāthaṁ abhāsitthāti.’로 생략 없이 나타나고 {11} 이하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장로의 이름만 언급되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여기서 읊었다로 옮긴 abhāsittha를 kathesi(말하였다, kathesi, Aor.3P.Sg.)로 설명하고 있다.
ⓑ 동사 bhāsati에 접두어가 첨가된 경우
ⓑ-1. gāthāya ajjhabhāsi(게송으로 물었다)
그리고 gāthā와 함께 동사 bhāsati(√bhāṣ, to speak)에 접두어 adhi-가 첨부되어 gāthāya ajjhabhāsi(게송으로 물었다, Aor.3P.Sg. 80곳 이상)나 gā- thāhi ajjhabhāsi(게송들로 물었다, 25곳 이상)라는 과거시제로 나타나는 곳도 100곳이 넘는다. 이 두 가지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까지의 100곳 가까이에 나타나고 이 외의 4부 니까야의 10곳 이상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 게송으로 대답하였다(gāthāya paccabhāsiṁ, gāthāya paccabhāsi)
‘게송으로 물었다(gāthāya ajjhabhāsi).’와 대비가 되는 말에 ‘게송으로 대답하였다(gāthāya paccabhāsiṁ, gāthāya paccabhāsi).’가 있다. 여기서 paccabhāsiṁ은 prati+√bhāṣ(to speak)의 아오리스트 과거 1인칭 단수(Aor.1P.Sg.)이고 paccabhāsi는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Sg.)이다. 전자는 4부 니까야의 3곳에, 후자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실린「천신 상윳따」(S1)부터「삭까 상윳따」(S11)까지의 7곳에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③ 동사 paṭibhāti와 함께 쓰인 경우
gāthā는 동사 paṭibhāti와 함께 쓰여 ‘게송들이 떠올랐다(gāthāyo paṭi- bhaṁsu)’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D14 §3.2 등 5곳을 들 수 있다. 여기서 paṭibhaṁsu는 동사 paṭibhāti(prati+√bhā, to shine)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복수(Aor.3.Pl.)이다. S3:12 §7와 S8:5 §5 등에서는 ‘영감이 떠오르다’로 옮겼다.
게송들이 떠올랐다(gāthāyo paṭibhaṁsu)로 나타나는 이 다섯 곳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기를 주저하시는 사유를 하시는 경들의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S8:8 §6에는 gāthāyo paṭibhantu(게송들을 떠올려 보라)로 나타나고 M12 §50에서는 gāthā paṭibhāsi(게송이 떠올랐다)로 나타난다. 여기서 paṭibhāsi는 prati+√bhā(to shine)의 아오리스트 과거 3인칭 단수(Aor.3P. Sg.)이다.
④ gāthā가 들어간 합성어
gāthā가 들어간 합성어는 많이 나타나지는 않아 보이는데 gāthā와 abhigīta가 합성된 gāthābhigīta(게송을 읊은)를 들 수 있다. 이 용어도 4부 니까야 가운데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의 다섯 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순다리까 경」(S7:9 §6)의 게송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읊으신다.
“게송을 읊어 생긴 것을 나는 먹지 않노라.
바라문이여, 그것은 바르게 보는 자들의 법이 아니니라.
게송을 읊어 생긴 것을 깨달은 자들은 거부하나니
바라문이여, 이런 법이 있나니 그분들의 품행이라.({641})
독존(獨尊)이요 대성자요 번뇌 다한 자
후회가 가라앉아 버린 자에게는
다른 음식과 마실 것을 받들어 공양하라.
공덕 구하는 자에게 그가 복밭이 되기 때문이라.({642})”
이상으로 『테라가타』에 대한 언어적인 설명을 니까야와 주석서들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보았다. 『테라가타』라는 합성어는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를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래서 thera라는 용어와 gāthā라는 이 두 단어의 용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III. 『테라가타』의 구성
이러한 『테라가타』는 각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개수에 따라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로 모두 21개의 모음(nipāta)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모음에는 120분 장로들의 120개의 게송들이, 둘의 모음에는 49분 장로들의 98개 게송들이 … 이렇게 하여 마지막인 큰 모음에는 왕기사 장로의 71개 게송들이 담겨있어서 모두 264분의 1,279개 게송들을 담고 있다.
이제 본 『테라가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
⑴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테라가타』의 구성
『테라가타』의 구성은 『테라가타 주석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테라가타』에 담긴 이 1,279개 게송들의 대부분은 일차합송에서 합송되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아난다 장로의【행장】(Th30:3 {101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자가 되어서 합송하는 천막(saṅgīti-maṇḍapa)으로 들어가서 법을 합송하면서 여러 곳에서 비구들에게 교계를 베풂(ovāda- dāna)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도닦음을 밝힘 등(paṭipatti-dīpanādi)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읊었던 게송들을 한 곳에 모은 뒤(ekajjhaṁ katvā) 순서대로 『쿳다까 니까야』를 합송하는 시간에(Khuddakanikāya-saṅgāyana- kāle) 『테라가타』안에 합송하여 올리면서(theragāthāsu saṅgītiṁ āropento) 이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i.113)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서의 서문(ganth- ārambhakathā)에서 먼저 주석서를 여는 게송을 설한 뒤에 『테라가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길지만 여기에 인용해 본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수부띠 장로({1}) 등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득한 대로 도와 과의 행복을 반조한 뒤(maggaphalasukhaṁ pacca -vekkhitvā) ① 어떤 것은 우러나온 말씀(감흥어, udāna)을 통해서, ② 어떤 것은 자신의 증득의 머묾을 반조함(samāpattivihārapaccavekkhaṇa)을 통해서, ③ 어떤 것은 질문(pucchā)을 통해서, ④ 어떤 것은 반열반할 때에 교법(sāsana)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를 설명함(niyyānika-bhāva-vibhāva -na)을 통해서 말하였는데, 그 모두는 합송할 때(saṅgītikāle) 한 곳에 모아서 『테라가타』라고 법을 합송하는 분들(dhammasaṅgāhakā)에 의해서 합송되었다. 그리고 『테리가타』(Thig)는 장로니들을 지목하여(theriyo uddi- ssa) 읊어진 것이다.
이것은 율장‧경장‧논장이라는 삼장 가운데 경장에 포함되었다(suttanta -piṭaka-pariyāpannā).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라는 다섯 가지 니까야들 가운데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었다. ① 경(經, sutta), ② 응송(應頌, geyya), ③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veyyākaraṇa], ④ 게송(偈頌, gāthā), ⑤ 감흥어(感興語, udāna), ⑥ 여시어(如是語, itivuttaka), ⑦ 본생담(本生譚, jātaka), ⑧ 미증유법(未曾有法, abbhūtadhamma), ⑨ 문답(方等, vedalla)의 아홉 가지 교법의 구성요소들(sāsanaṅgā = 구분교) 가운데 ④ 게송(偈頌, gāthā)의 구성요소의 함께 모음(gāthaṅga-saṅgaha)에 해당한다.
“8만 2천을 부처님으로부터 수지하였고
2천을 비구들로부터 [수지하였으니]
나는 8만 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합니다.”(Thag. {1024})
라는 법의 창고지기(dhamma-bhaṇḍāgārika)인 [아난다 존자]가 이와 같이 명백하게 밝힌 8만4천의 법의 무더기들 가운데 어느 정도의 법의 무더기들의 함께 모음(katipaya-dhammakkhandha-saṅgaha)에 해당한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모음(nipāta)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모음(eka- nipāta)이 있고 하나씩 증가하여 열넷의 모음까지 열네 개의 모음이 있으며, 열여섯의 모음, 스물의 모음, 서른의 모음, 마흔의 모음, 쉰의 모음, 예순의 모음, 일흔의 모음까지 모두 21가지 모음으로 함께 모았다(ekavīsati-nipāta -saṅgahā). 내려놓음(nipātana), 함께 넣음(nikkhipana)이라고 해서 ‘모음(nipāta)’이다. 하나인, 각각 하나로 된(ekeka) 게송들의 모음(nipāta), 함께 넣음(nikkhepa)이라고 해서 ‘하나의 모음(ekanipāta)’이다. 이 방법은 나머지 [모음]들에도 적용되는 뜻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의 모음에는 12개의 품들(vaggā)이 있다. 각각의 품들을 열 개씩으로 만들어서 [모두] 120명의 장로들이 포함되어 그만큼의 게송들이 있다. 그래서 [하나의 모음 발문에서] 말하였다. ―
“120분의 장로들은 할 일을 다 하였고 번뇌가 없으니
하나의 모음에서 대선인들에 의해 잘 합송되었다.”({120} 발문)
둘의 모음에는 49분의 장로들과 98개의 게송들이 있다.
셋의 모음에는 16분의 장로들과 48개의 게송들이 있다.
넷의 모음에는 13분의 장로들과 52개의 게송들이 있다.
다섯의 모음에는 12분의 장로들과 60개의 게송들이 있다.
여섯의 모음에는 14분의 장로들과 84개의 게송들이 있다.
일곱의 모음에는 다섯 분의 장로들과 35개의 게송들이 있다.
여덟의 모음에는 세 분의 장로들과 24개의 게송들이 있다.
아홉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아홉 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의 모음에는 일곱 분의 장로들과 70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하나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11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둘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24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셋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13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넷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28개의 게송들이 있다.
열다섯의 모음은 없다(pannarasanipāto natthi).
열여섯의 모음에는 두 분의 장로들과 32개의 게송들이 있다.
스물의 모음에는 열 분의 장로들과 245개의 게송들이 있다.
서른의 모음에는 세 분의 장로들과 105개의 게송들이 있다.
마흔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42개의 게송들이 있다.
쉰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55개의 게송들이 있다.
예순의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68개(PTS: 62)의 게송들이 있다.
일흔의 모음(큰 모음)에는 한 분의 장로와 71개의 게송들이 있다.
[이렇게 하여] 함께 모으면 264분의 장로들과 1,360개의 게송들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다.
“게송들은 1,360개이고
장로들은 264분임이 밝혀졌다.””(ThagA.i.2~3)
이상은 『테라가타 주석서』의 해당 부분을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테라가타』(Theragāthā)는 모두 264분 장로들의 게송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주석서에서는 『테라가타』는 1,360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고 264분의 장로들이 읊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ThagA.3). 현존하는 PTS본으로는 1,279개 게송으로 편집되어 있고 미얀마 육차결집본(VRI본)에는 1,288개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PTS본과 VRI본에 다른 내용은 없으며 게송의 편집과 특히 반복되는 부분(peyyala)의 생략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서 이렇게 9개 게송들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편집과 생략의 처리 부분은 해당 게송의 주해에서 밝히고 있는데, 본 해제 X-⑵-④-ⓓ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테리가타』(Thig)는 73명 장로니들의 게송을 담고 있고 주석서도 73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테리가타』게송의 수는 PTS본으로는 522개, VRI본으로는 524개로 편집이 되어 있으며 내용의 차이는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의 게송 수를 모두 합하면 PTS본에 의하면 1,279+522=1,801개이고 VRI본에는 1,288+524=1,812개이다.
역자가 저본으로 삼은 PTS본에 따라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장로들과 게송들의 숫자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모음: 120개 게송에 120분 장로들
둘의 모음: {121}~{218}까지의 98개 게송에 49분 장로들
셋의 모음: {219}~{266}까지의 48개 게송에 16분의 장로들
넷의 모음: {267}~{314까지의 48개 게송에 12분의 장로들
이상 120+49+16+12=197분
다섯의 모음: {315}~{374}까지의 60개 게송에 12분의 장로들
여섯의 모음: {375}~{458}까지의 84개 게송에 14분의 장로들
일곱의 모음: {459}~{493}까지의 35개 게송에 5분의 장로들
여덟의 모음: {494}~{517}까지의 24개 게송에 3분의 장로들
아홉의 모음: {518}~{526}까지의 9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의 모음: {527}~{596}까지의 70개 게송에 7분의 장로들
이상 12+14+5+3+1+7=42분
열하나의 모음: §§597~607까지의 11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둘의 모음: §§608~631까지의 24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열셋의 모음: §§632~644까지의 13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열넷의 모음: §§645~672까지의 28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열여섯의 모음: §§673~704까지의 32개 게송에 2분의 장로들
스물의 모음: §§705~948까지의 244개 게송에 10분의 장로들
서른의 모음: §§949~1050까지의 102개 게송에 3분의 장로들
마흔의 모음: §§1051~1090까지의 40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쉰의 모음: §§1091~1145 까지의 55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예순의 모음: §§1146~1208까지의 62개 게송에 1분의 장로
큰 모음: §§1209~1,279까지의 71개 게송에 1분의 장로
이상 8+10+7=25분(1+2+1+2+2+10+3+1+1+1+1=25)
총합 197+42+25=264분
그런데 지금 유통되는 PTS본의 게송의 개수는 VRI본과 차이가 난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 쪽의 <도표2>와 같다.
⑵ 『테라가타』의 전개 방법
이제 『테라가타』가 어떤 방법으로 264분 장로들의 1,279개 게송들을 정리하여 후대로 전승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자.
1. 264분 장로들의 게송을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 21가지 모음으로 나눈다.
2.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스물의 모음 이하의 특정 모음에 포함된 장로들의 게송은 열 개씩을 하나의 단위로 계산해서 그 모음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즉 스물의 모음이라고 해서 게송 스무 개만을 포함하고 있는 모음이 아니라 스무 개부터 스물아홉 개까지의 게송을 담고 있는 장로들의 게송들을 모두 이 스물의 모음에 넣었다는 뜻이다.
<도표2> PTS본과 VRI본의 게송의 수
번호
모음
장로의 수
PTS
주석서
VRI
1
1
120
120
2
2
49
98
3
3
16
48
4
4
12
48
13분 52게송
48
5
5
12
60
6
6
14
84
7
7
5
35
8
8
3
24
9
9
1
9
10
10
7
70
11
11
1
11
12
12
2
24
13
13
1
13
14
14
2
28
15
16
2
32
16
20
10
244
245
244
17
30
3
102
105
105
18
40
1
40
42
40
19
50
1
55
20
60
1
62
68
69
21
70
1
71
합계
264/265
1,279
1,288
예를 들면 스물의 모음에는 아디뭇따 장로(Th20:1 {705}~{725})부터 빠라빠리야 장로(Th20:10 {920}~{948})까지 모두 열 분의 게송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첫 번째로 {705}부터 {725}까지 아디뭇따 장로(Th20:1)의 21개 게송이, 두 번째로는 {726}부터 {746}까지의 빠라빠리야 장로(Th20:2)의 21개 게송이, 세 번째로는 {747}부터 {768}까지의 뗄라까니 장로(Th20:3)의 22개 게송이 … 마지막으로 {920}부터 {948}까지의 빠라빠리야 장로(Th20:10)의 29개 게송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열 분 장로들의 게송들은 모두 20단위의 게송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스물의 모음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쉰의 모음에 포함된 딸라뿌따 장로(Th50:1)의 {1091}부터 {1145}까지의 55개 게송들은 50단위의 게송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쉰의 모음에 넣은 것이다.
3. PTS본과 VRI본 『테라가타』의 편집 방법은 조금 다르다. 역자가 저본으로 삼은 것은 PTS본과 VRI본 둘 다이다. 그렇지만 본서의 편집은 VRI본을 많이 따랐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로 아래의 ‘4. VRI본과 PTS본의 편집 방법’을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두 본에서 장로들의 명칭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자는 다른 번역들에서 하던 대로 본서를 번역하면서도 PTS본의 명칭과 철자를 기본으로 하였고, PTS본과 VRI본의 표기가 다른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 )안에 VRI본을 넣어서 표기하였다. 예를 들면 마하꼿티따 장로(Th1:2)는 마하꼿티따 장로(Mahākoṭṭhita thera, VRI: Mahākoṭṭhika)로, 쭐라가왓차 장로(Th1:11)는 쭐라가왓차 장로(Cūla-gavaccha thera, VRI: Cūḷa-vaccha)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본문에서 빠알리 철자가 달라서 의미까지 달라지는 경우에는 노만 교수의 제언을 수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로마사깡기야 장로(Th1:27)의 게송 {27}c에서 PTS의 urasā panudahissāmi 보다 VRI의 urasā panudissāmi(pa+√nud, panudati, to dispel, remove, push away, 제거하다)로 읽어서 ‘나는 가슴으로부터 뽑아낼 것이고’로 옮겼다. PTS의 panudahissāmi는 어근도 명확하지 않다. 노만 교수는 Alsdorft의 padahessāmi(pra+√dhā, to strive)를 들고 있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처럼 apanessāmi로 해석해서 apaneti(apa+√nī, to take away, remove), 즉 뽑아내다로 이해하였다.
역자의 이번 번역에는 노만 교수의 영어번역본 ‘Elders' Verses I’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자는 노만 교수의 번역과 주해에서 도움이 되었던 부분들은 주해들에서 밝히고 있다.
4. VRI본과 PTS본의 편집 방법
⒜ VRI본의 편집 방법
① VRI본은 먼저 게송을 읊은 장로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모음 첫 번째인 수부띠 장로(Th1:1)는 “1_ Subhūtittheragāthā”로 소개하고 두 번째인 마하꼿티까 장로(Th1:2)는 “2_ Mahākoṭṭhika-ttheragāthā”로 소개한다.
② 그런 뒤에 그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을 나열한다.
③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이 끝나면 “이처럼 참으로 존자 XX 장로가 게송을 읊었다(itthaṁ sudaṁ āyasmā XXtthero gāthaṁ abhāsi -tthāti).”라는 표현으로 특정 장로 편을 마무리한다. 이 방법은 하나의 모음 첫 번째 품에 포함된 열 분의 장로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④ 그러나 하나의 모음 두 번째 품부터는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③ 대신에 특정 장로의 이름만을 게송의 아래에 “__ Cūḷagavaccho thero __ .”로 표기하고 있다.
⑤ 둘의 모음의 첫 번째 장로와 두 번째 장로의 경우에는 ③과 같이 전체를 다 표기하고 있으며 셋의 모음과 넷의 모음 이하에서는 모두 ④와 같이 표기하고 있다.
⑥ 『테라가타』의 맨 마지막 게송인 {1,279}가 끝날 때에는 ③과 같이 전체를 다 표기하고 있다.
이처럼 VRI본에서는 하나의 모음은 11번째 장로(Th1:11)부터, 그리고 둘의 모음은 세 번째 장로(Th2:3)부터 게송의 말미에 “__ Cūḷagavaccho thero __” 등으로 생략하는 방법으로 편집하였다. 역자는 『테라가타』한글 번역의 편집은 이러한 VRI본에 따랐으며 뻬얄라 처리가 된 부분은 모두 “쭐라가왓차 장로 (끝)”의 방법으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 PTS본의 편집 방법
① PTS본에는 하나의 모음이나 둘의 모음 등의 모음의 명칭만 맨 처음에 대문자와 큰 활자체로 나타나지 그 외에 품의 구분이나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이 처음에 나타나지 않는다.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은 게송 다음에만 언급된다.
②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이 끝나면 PTS본은 오직 하나의 모음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게송까지만 VRI본 ③의 경우처럼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의 생략 없이 모두 표기하고 있다.
③ 그리고 하나의 모음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각각 ‘i s āyasmā Puṇṇo Mantāniputto thero g a’와 ‘i s āyasmā Dabbo thero g a’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각각 ‘i s āyasmā Sītavaniyo thero’와 ‘i s āyasmā Bhalliyo thero’로 표기한 뒤에 여덟 번째 장로부터 쉰의 모음까지는 모두 ‘Vīro thero’ 등으로 뻬얄라 처리도 생략하여 표기하고 있다.
④ 예순의 모음과 큰 모음의 경우는 그 모음의 마지막에 ‘itthaṁ sudaṁ āyasmā Mahāmoggallāno thero gāthāyo abhāsitthāti’ 등으로 모두 표기하고 있다.
⒞ PTS본과 VRI본의 공통된 편집 방법
① 한 모음 안에 장로들이 20명이 넘는 하나의 모음과 둘의 모음은 10분의 장로들을 묶어서 품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하여 모두 12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는 하나의 모음은 모두 12개 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다. 모두 49분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는 둘의 모음은 모두 다섯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품부터 제4품까지에는 각각 10분의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고 마지막 제5품에는 9분 장로들의 게송을 담고 있다.
VRI본은 이러한 품의 명칭을 그 품의 맨 앞에 밝히고 있지만 PTS본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그 품의 마지막인 품의 목록(uddāna) 앞에 ‘Vaggo paṭha -mo’ 등으로 밝힌 뒤 목록(uddāna)으로 정리하고 있다.
② 이처럼 각각의 품들이 끝나면 그 품이 끝났음을 밝히고 목록(uddāna)을 통해서 그 품에 포함된 장로들의 이름을 게송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품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셋의 모음부터 마지막인 큰 모음까지는 각 모음이 끝날 때 모음의 목록(uddāna)으로 그 모음에 포함된 장로들의 이름을 게송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③ 『테라가타』의 VRI본과 PTS본은 이러한 편집을 통하여 264분 장로의 1,279개 게송을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게송들은 니까야의 여러 경들에 나타나는 게송들과 일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게송의 개수가 많은 뒤의 모음으로 갈수록 일치하는 숫자가 늘어난다.
예를 들면 스물의 모음에 들어있는 말룽꺄뿟따 장로(Th20:5)의 {794}~{817}의 24개의 게송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제4권「말룽꺄뿟따 경」(S35:95) §14에서 말룽꺄뿟따 존자가 읊은 게송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서 {818}부터 {841}까지의 셀라 장로(Th20:6)와 관계된 게송들 24개는 모두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16 이하에서 나타나는 게송들과 같다. 그리고 이「셀라 경」(M92)은 『숫따니빠따』에도「셀라 경」(Sn3:7/102ff)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X-⑵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의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④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자는 『테라가타』를 번역하면서 PTS를 저본으로 삼아서 장로들의 이름과 단어의 철자 등의 표기는 PTS본을 주로 하였지만 『테라가타』한글 번역의 편집은 VRI본을 따랐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컴퓨터용 텍스트 파일을 제공해 주는 VRI본을 주요한 저본으로 삼았다. 물론 게송들과 주석서의 설명은 PTS본 주석서와 VRI본 주석서를 대부분 대조하였지만 간혹 역자가 번역한 본서의【행장】이나 주해 등에 나타나는 인명이나 지명이 VRI본을 따르다 보니 PTS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
⑴ 운율(chando)이란 무엇인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는 경전이 『테라가타』이다. 『테라가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테라(thera)와 가타(gāthā), 즉 장로와 게송이다. 물론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에는 장로가 아닌 부처님이나 신들이나 마라나 합송자 등이 읊은 게송들도 담겨져 있지만(VII-⑵ 참조) 이것들도 모두 장로들이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여기 『테라가타』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테라(thera)와 가타(gāthā) 이 두 가지 용어에 대해서는 본 해제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에서 살펴보았다. 테라와 가타, 즉 장로와 게송 이 둘 가운데서 가타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장로들의 가르침은 본 『테라가타』가 아니더라도 『디가 니까야』등 니까야의 여러 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의 가장 큰 특징은 본서는 가타(게송)들만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는 점이다. 본서에 산문으로 된 장로들의 구경의 지혜나 감흥어나 사자후나 가르침 등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러한 가타, 즉 게송은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 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 등)으로 정의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8음절, 11음절 등으로 정해진 것(niyamita)이 정해진 음절(音節, akkhara)이고 4개의 구절 등으로 정해진 것이 정해진 구절[句, pada]이며 이렇게 정해져 있는 표현 방법이 바로 운율(chando)이다.
이제 운율에 대해서 살펴보자.
운율로 옮긴 빠알리어는 chanda 혹은 chando로 표기된다. 일반적으로 chanda는 열의[欲], 의욕, 욕망으로 옮겨지는 √chad2/chand(chādeti, Sk: chantti/chandati, 2/1류, 마음에 들다, to please, to seem)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cattaro iddhipādā]의 첫 번째가 이 chanda(열의)이다. 이것과 구분하기 위해서 운율을 뜻하는 베다와 고전 산스끄리뜨 chandas의 빠알리어를 PED는 chando로 표기하고 있고 역자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학자들은 중성명사인 이 chando(Sk: chandas)도 √chad2/chand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긴다. 이 운율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맑히고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리그베다』, 『야주르베다』, 『사마베다』의 세 가지 베다와 『아타르와베다』를 포함한 네 가지 베다, 즉 베다 본집(Saṁhitā)은 모두 운율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베다 본집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운율을 연구하는 것은 불교가 태동하기 전부터 발전되어 왔는데 이 운율(Chandas) 혹은 운율학은 음운(Śikṣā), 제사(Kalpa), 문법(Vyākaraṇa), 어원(Nirukta), 점성술(Jyotiṣa)과 함께 여섯 가지 베당가(Vedāṅga)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불전에서 chanda는 대부분이 열의[欲], 의욕, 욕망의 의미로 쓰이고 운율을 뜻하는 chando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용어는 베다를 생명으로 삼는 바라문들이 즐겨 사용했던 용어이다. 대신에 불교 교단에서는 게송을 뜻하는 gāthā라는 용어가 이를 대체하였다고 여겨진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chando에 대한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들의 정의는 별도로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운율은 가타(게송), 즉 시(詩)의 음성적인 형식이기 때문에 가타에 대한 이해가 근본이지 가타를 구성하는 운율에 대한 관심은 주석가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⑵ 『테라가타』의 운율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운율은 ‘시문(詩文)의 음성적 형식. 음의 강약, 장단, 고저 또는 동음이나 유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줄여서 『테라가타』에 적용하면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이 바로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준해서 역자는 운율을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음성적 형식’으로 이해하였다. 게송, 즉 가타(gāthā)는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akkhara-pada-niyamita vacana)”(SnA.i.141 등)으로 주석서에서 설명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음절(音節, akkhara)과 구절[句, pada]로 정해진 표현 방법(vacana)이나 법칙(niyama)이 바로 음성적 형식이고 그것이 운율(chando)이다. 예를 들면 한 구절이 여덟 개의 ‘음절(akkhara)’로 ‘정해져 있고(niyamita)’ 이런 ‘구절[句, pada]’이 네 개로[四句] ‘정해진(niyamita)’ ‘표현 방법(vacana)’을 아누슈뚭(Anu- ṣṭubh, Pāli: Anuṭṭhubba) 운율(chando)이라 하고, 한 구절이 열한 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구절[句]’이 네 개로 정해진 ‘표현 방법’을 뜨리슈뚭(Triṣṭubh) 운율이라 한다. 역자는 위의 주석서의 설명에 나타나는 용어들로 운율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용어들을 ‘ ’ 안에 넣어서 표기하여 보았다.
이처럼 운율을 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정해진 음절(音節)과 정해진 구절[句]이다. 굳이 이를 빠알리어로 표기해 보면 각각 niyamita-akkhara와 niyamita-pada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빠알리 문헌에 이런 용어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처럼 운율의 핵심이 되는 키워드인 음절(音節)과 구절[句]이라는 용어는 이미 주석서에 나타나는 가타(gāthā)의 기본 설명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운율(chando)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운율에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내용은 전적으로 인도 운율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삥갈라(Piṅgala)가 지은 『운율학 수뜨라』(Chandas Sūtra)에서 정리하고 있는 바라문교 운율학의 내용과 같아져 버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아래에서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테라가타』의 운율에 대한 노만 교수의 설명은 운율학에서 사용하고 정의하는 운율학의 용어들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⑶ 운율은 게송들의 골격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석서들은 게송(gāthā)을 “음절(音節)과 구절[句]로 정해진 표현 방법”(SnA.i.141)으로 설명하고 있다. 게송은 요즈음의 시(詩)를 말한다. 이러한 게송 혹은 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운율(chando)이다. 산문과 게송이 다른 것은 운율의 유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시인 경」(Kavi-sutta, S1:60) §3에서 이렇게 읊으신다.
“운율이 게송들의 골격이고
음절들이 게송들을 만들며
명칭을 게송은 의지하고
시인이 게송들의 터전이로다.”(S1:60 §3 {202})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운율이 게송들의 골격이다(chando nidānaṁ gāthānaṁ).’라는 것은 가얏띠(Gāyatti, Sk. Gāyatri) 등을 [구성하는] 운율은 게송의 골격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시(pubba-paṭṭhāpana-gāthā)부터 시작해서 ‘이것은 무슨 운율로 되어 있는가?’라고 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음절이 게송들을 만든다(akkharā viyañjanaṁ).’라는 것은 음절(akkhara)이 구절[句, pada]을 만들고 구절이 게송을 만들고 게송이 뜻을 드러내기(atthaṁ pakāseti) 때문이다. ‘게송은 명칭을 의지한다(nāma-saññissitā gāthā).’는 것은 바다 등의 개념(paññatti)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게송을 지을 때 바다나 땅과 같은 명칭을 의지하여 짓기 때문이다. ‘시인이 게송들의 터전(kavi gāthānam āsayo)’이라는 것은 시인(kavi)으로부터 게송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게송들의 터전(patiṭṭhā)이다.”(SA.i.94~95)
이상 역자가 옮긴「시인 경」(S1:60)에서 인용하였다.
복주서는 주석서에서 나타나는 ‘음절이 구절[句]을 만들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석서에서] ‘음절이 구절[句]을 만들고(akkharañhi padaṁ janeti)’라고 하였다. 음절이 모인 것(akkhara-samudāya)이 구절[句]이고 구절이 모인 것(pada-samudāya)이 게송이다. 모인 것[群集, samudāya]은 모으는 것들(samudāyī)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데(vyañjīyati) 그것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taṁpavattanato). 그러므로 문장 속에 있는 것(byañjana-bhāve ṭhita)이 음절이고 음절이 모인 것이 구절이며 구절은 그 [음절을] 특징짓고 알게 한다고 해서 ‘음절이 구절을 만들고’라고 하였다.”(SAṬ.i.131)
이처럼 게송은 정해진 운율(chando)이 있고 그 운율에 맞게 음절(akkha- ra)을 배대하여 게송을 짓는다.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26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읊으신다, 같은 내용이 율장 『대품』(Vin.i.246)에도 나타나고 있다.
“불에 헌공하는 것이 제사 중에 제일이고,
사위뜨리는 운율의 제일이다.
왕은 사람들 중에 제일이고,
바다는 강들 가운데 제일이다.
달은 별들 중에 제일이고,
태양은 빛나는 것들 중의 제일이다.
공덕을 바라면서 보시를 올리는 자들에게는
승가가 제일이다.”(M92 §26 = Vin.i.246)
본 게송에서 세존께서는 ‘사위뜨리는 운율의 제일이다(Sāvittī chandaso mukhaṁ).’라고 하셨다. 여기서 ‘사위뜨리(Sk: Sāvitrī, Pāli: Sāvittī)’는 인도의 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 운율로 바라문교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운율이다.
초기불전에서처럼 베다 등의 모든 인도의 게송도 네 구절로 된 사구게(四句偈)가 기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구게 가운데서도 한 구(句, pāda)에 8개의 음절이 들어 있어서 네 개의 구에 모두 32음절로 되어있으며, 모든 산스끄리뜨 운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는 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 아누슈뚭(Anuṣṭubh, Pāli: Anuṭṭhubba) 운율(chandas)이 있다.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이것을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로 취급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사위뜨리는 네 구절이 아니라 세 구절로 구성되어 있는 삼구게이다. 그리고 한 구절이 8음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2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도 사위뜨리를 “세 개의 구(句)에 24개의 음절로 된 것(tipada catu- vīsatakkhara ― SA.ii.403)”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위뜨리 운율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인도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셀라 경」(M92) §26의 주해에서)
그래서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베다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에 ‘사위뜨리가 운율 가운데 제일(Sāvittī chandaso mukhaṁ)’이라고 하셨다.”(MA.iii.406)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사위뜨리로 된 『리그베다』게송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 위에서 소개한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에서 운율의 보기로 나타나는 바로 이 가얏띠이다. 가얏띠(gāyatti, Sk: gāyatri)는 『리그베다』에 실려있는 가야뜨리 만뜨라(Gāyatri Mantra, RV.iii.62 10)이다. 『리그베다』에 들어있는 가야뜨리 만뜨라는 다음과 같다.
“[oṁ bhūr bhuvaḥ suvaḥ]
tat savitur vareṇyaṁ
bhargo devasya dhīmahi
dhiyo yo naḥ prachodayāt.”(RV.iii.62 10)
이 가야뜨리 만뜨라는 태양의 신인 사위뜨르(Savitṛ)를 찬미하는 게송으로 그의 지혜가 찬미자들을 일깨워 주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먼저 읊는 ‘옴 부르 부와하 스와하(oṁ bhūr bhuvaḥ suvaḥ)’는 만뜨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 ] 안에 표기하였다. 인도에 여행을 가서 라디오나 스피커로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옴 부르 부와하 스와하 …’로 시작하는 이 가야뜨리 만뜨라이다.
⑷ 베다의 기본 운율 7가지
인도 바라문교의 기본 교전으로는 『리그베다』를 위시한 세 가지 베다가 있다. 그래서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도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하고(tiṇṇaṁ vedānaṁ pāragū)’라는 표현이 나타난다.(D4 §5 등등) 여기서 ‘세 가지 베다(ti-vedā)’란 『리그베다』(Ṛg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사마베다』(Sāmaveda)인데 초기불전에서 『아타르와베다』(Atharvaveda)는 베다로 인정되지 않는다. 세 가지 베다 등에 대한 논의는 『맛지마 니까야』제3권「브라흐마유 경」(M91) §2의 주해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세 가지 베다는 모두 게송, 즉 운율이 있는 시로 되어 있으며 이를 찬미가(sūkta)라 부르기도 하고 만뜨라(mantra, Pāli: manta)라 부르기도 한다. 베다에 나타나는 찬미가에는 다양한 운율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7가지 운율을 베다의 기본 운율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일곱 가지는 ① 가야뜨리(Gāyatri), ② 우슈니흐(Uṣṇih, √snih, to be sticky), ③ 아누슈뚭(Anuṣṭubh), ④ 브르하띠(Bṛhatī), ⑤ 빵끄띠(Paṅkti), ⑥ 뜨리슈뚭(Triṣṭubh), ⑦ 자가띠(Jāgati)이다. 이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① 가야뜨리(Gāyatri)는 세 구절[句, pada]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8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3=2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② 우슈니흐(Uṣṇih)는 네 구절(pada)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7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7×4=28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③ 아누슈뚭(Anuṣṭubh)은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8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8×4=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④ 브르하띠(Bṛhatī)는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와 네 번째 구절은 8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세 번째 구절이 12음절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모두 8×3+12=36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에 드물게 나타나며 그냥 9×4=36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⑤ 빵끄띠(Paṅkti)는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10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10×4=40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리그베다에는 한 구절에 8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다섯 구절로 된 게송으로 나타나며 그래서 8×5=40이 된다.
⑥ 뜨리슈뚭(Triṣṭubh)은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한 구절이 11개의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모두 11×4=44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⑦ 자가띠(Jāgati)는 한 구절(pada)이 12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12×4=48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① 가야뜨리의 24음절부터 시작해서 4음절씩 증가하여 ② 우슈니흐는 28음절, ③ 아누슈뚭은 32음절, ④ 브르하띠는 36음절, ⑤ 빵끄띠는 40음절, ⑥ 뜨리슈뚭은 44음절, ⑦ 자가띠는 48음절이 된다. 이 가운데 32음절로 된 아누슈뚭과 44음절로 된 뜨리슈뚭과 48음절로 된 자가띠의 세 개 운율은 본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에도 80% 이상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베다에도 이 세 운율로 된 게송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세 구절[三句偈], 즉 8×3=24음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다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가야뜨리(Gayatri) 운율은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테라가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⑸ 『테라가타』의 게송들에 적용된 운율들
노만 교수는 그가 옮긴 『테라가타』영어 번역 ‘The Elders' Verses’의 해제(INTRODUCTION)에서 『테라가타』에 실린 1,279개 게송들의 운율에 대해서 ‘VII. THE METRES OF THERAGĀTHĀ’라는 제목으로 전체 해제의 절반에 해당하는 33쪽부터 64쪽에 걸쳐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제 노만 교수의 영어 번역에 실린 해제를 토대로 『테라가타』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은 어떤 운율들로 읊어진 것인지 살펴보자.
이 VII의 앞부분(xxxiii~xxxiv)에서 노만 교수는 『테라가타』에 포함된 게송들이 가지는 운율을 9가지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9가지 운율이 혼합된 게송으로 ‘뜨리슈뚭 운율과 자가띠 운율이 혼합된 것’ 등의 10개를 소개하여 1,279개 게송들에는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노만 교수가 정리한 이 19종류의 운율로 1,279개 게송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역자는 노만 교수의 해제(INTRODUCTION, K.R. Nor- man, xxxiii~xxxiv)에서 xxxiv쪽에 실린 실로까(Siloka)를 맨 앞에 넣어서 여기에 전재하였다. 실로까가 가장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것은 운율의 기본인 아누슈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숫자는 게송 번호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글 음역을 표기하였다.
① Śloka(슐로까, 실로까): 2, 4, 9, 11, 13-16, 18, 20, 23-34, 39-40, 44-49, 55, 58-61, 63-64, 66-67, 70, 74, 76, 78-84, 87-90, 92-97, 100, 105-108, 112-114, 116-117, 120-122, 125-141, 143-150, 153-179, 181-186, 191-198, 201-204, 208, 213-233, 236-257, 261-302, 304, 309, 311-320, 322-324, 330-355, 360-369, 375-380, 387-398, 400-410, 417-488, 491-493, 496-517, 530, 537-546, 548-550, 552-553, 557-586, 597-598, 600-723, 726-742, 744-775, 789-793, 795, 797, 799, 801, 803, 805-865, 871-873, 875-876, 878-908, 910-980, 982-1003, 1005-1008, 1010-1017, 1020-1050, 1054-1071, 1074-1088, 1090, 1146-1151, 1153-1166, 1168-1180, 1182-1183, 1185-1213, 1223-1233, 1235-1241, 1246-1251, 1254-1262, 1276-1,279.
② Triṣṭubh(뜨리슈뚭): 3, 10, 12, 17, 72, 101, 142, 151-152, 188, 303, 527-529, 532-533, 554-556, 776-783, 785-786, 866, 868-870, 1009, 1099-1100, 1263-1271, 1273-1274.
③ Jagatī(자가띠): 35, 69, 77, 86, 109, 209, 211-212, 307-308, 518-522, 524-525, 725, 1103, 1106, 1108, 1111-1112, 1114-1115, 1117-1120, 1123, 1126, 1128-1136, 1138, 1140-1145, 1184.
④ Vaitālīya(와이딸리야): 19, 41, 57, 68, 71, 75, 85, 103, 123, 180, 210, 234-235, 399, 599, 877, 1018-1019, 1051, 1167, 1234.
⑤ Aupacchandasaka(아우빳찬다사까): 5-8, 51-54, 310, 325-329, 411-416, 981.
⑥ Rathoddhatā(라톳다따): 258-260.
⑦ Vegavatī(웨가와띠): 1214-1217. 1221.
⑧ Gaṇacchandas(가낫찬다스): 22, 36, 42-43, 50, 65, 91, 104, 118, 189-190, 199-200, 321, 357-358, 386, 489, 588-589, 595-596, 1242 -1245.
⑨ 이름이 없는 운율: Ⅲ 381, 382-384.
혼합된 운율
① Triṣṭubh/Jagatī: 38, 73, 110, 187, 205-206, 305, 370-374, 490, 523, 526, 531, 534-536, 547, 724, 784, 787-788, 867, 874, 1091-1098, 1101-1102, 1104-1105, 1107, 1109-1110, 1113, 1116, 1121-1122, 1124-1125, 1127, 1137, 1139, 1252, 1272, 1275.
② Triṣṭubh/Śloka: 98-99, 743, 794, 796, 798, 800, 802, 804, 1253.
③ Jagatī/Śloka: 306, 1089.
④ Vaitālīya/Aupacchandasaka: 124, 207, 494-495, 909, 1052- 1053, 1072-1073, 1181.
⑤ Vaitālīya/Śloka: 21, 37, 551.
⑥ Vaitālīya/Gaṇacchandas: 356.
⑦ Vaitālīya/Vegavatī: 62, 119, 1218-1220, 1222.
⑧ Vaitālīya/Vegavatī/Śloka: 1004.
⑨ Aupacchandasaka/Śloka: 1.
⑩ Gaṇacchandas/Śloka: 56, 102, 115, 359, 385, 587, 590-594, 1152.
이상의 인용에서 보듯이 『테라가타』에 담긴 1,279개 게송들 가운데 거의 95% 정도가 실로까(아누슈뚭)와 뜨리슈뚭과 자가띠와 와이딸리야 네 개의 운율로 되어 있고 전체의 5분의 3, 즉 60% 정도가 실로까로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⑹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의 보기
이제 『테라가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로까와 뜨리슈뚭과 자가띠와 와이딸리야 운율에 대한 보기를 몇 가지 들어보자. 먼저 실로까 혹은 아누슈뚭 운율부터 살펴보자.
① 아누슈뚭(Anuṣṭubh, 실로까, Śloka, Siloka)
베다 산스끄리뜨의 운율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고 기본적인 운율은 아누슈뚭 운율이다. 이것이 대문법가 빠니니 이후의 산스끄리뜨 시대인 고전 산스끄리뜨 혹은 표준 산스끄리뜨에서는 Śloka(슐로까)라 불리게 되었고 빠알리어에서는 Siloka(실로까)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누슈뚭 운율과 실로까 운율은 같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운율을 결정하는 기본은 음절(akkhara)과 구절[句, pada]인데 둘 다 한 구절에 8음절씩, 전체 4구절, 즉 8×4=32음절로 구성된 게송이다. 이것을 불교 문헌에서는 사구게(四句偈, catuppadikā gāthā, Sk: catuṣpādikā gāthā)라 부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테라가타』에서 맨 먼저 나타나는 실로까 운율이라 할 수 있는 마하꼿티까 장로(Th1:2)의 게송을 예로 들 수 있다.
upasanto uparato,
mantabhāṇī anuddhato|
dhunāti pāpake dhamme,
dumapattaṁva māluto ||2||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빠알리 음가를 한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 안은 음절의 개수이다.
우빠산또 우빠라또 (8)
만따바니 아누닷또 (8)
두나띠 빠빠께 담메 (8)
두마빳땀 와 말루또 (8)
“고요하고 제어되고
지혜롭게 말을 하고 들뜨지 않은 사람은
사악한 법들을 흔들어 날려버리나니
마치 바람이 나무의 잎사귀를 그리하듯이.” ({2})
이처럼 이 게송의 1/2/3/4구절[句, pada]이 각각 여덟 음절(akkhara)씩을 포함하여 전체는 32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8×4=32음절의 전형적인 실로까 혹은 아누슈뚭 운율로 된 게송이다.
② 뜨리슈뚭(Triṣṭubh)
그리고 『테라가타』의 세 번째 게송인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아래 게송은 44음절로 된 뜨리슈뚭(Triṣṭubh) 운율로 되어 있다.
paññaṁ imaṁ passa tathāgatānaṁ,
aggi yathā pajjalito nisīthe |
ālokadā cakkhudadā bhavanti,
ye āgatānaṁ vinayanti kaṅkhaṁ ||3||
빤남 이맘 빳사 따타가따남 (11)
악기 야타 빳잘리또 니시테 (11)
알로까다 짝쿠다다 바완디 (11)
예 아가따남 위나얀띠 깡캄 (11)
“여래들의 이 통찰지를 보라.
마치 한밤에 불이 타오르듯이
그분들은 광명을 주시고 눈을 주시나니
찾아온 자들의 의심을 길들이신다.” ({3})
이처럼 본 게송은 한 구절(pada)에 11개의 음절(akkhara)이 들어있어 모두 11×4=44개의 음절로된 전형적인 뜨리슈뚭 운율이다.
③ 자가띠(Jagatī)
그리고 사만냐까니 장로(Th1:35)의 아래 게송은 48음절로 구성된 자가띠(Jagatī) 운율의 보기가 된다.
sukhaṁ sukhattho labhate tadācaraṁ,
kittiñca pappoti yasassa vaḍḍhati |
yo ariyamaṭṭhaṅgikamañjasaṁ ujuṁ,
bhāveti maggaṁ amatassa pattiyā ||35||
수캄 수캇토 라바떼 따다짜람 (12)
낏띤짜 빱뽀띠 야삿사 왓다띠 (12)
요 [아]리얌 앗탕기깜 안자삼 우줌 (12)
바웨띠 막감 아마땃사 빳띠야 (12)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것을 실천하여
행복을 얻고 찬탄을 받고 평판을 증가시킵니다.
그것은 성스럽고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졌고
올곧고 반듯하나니
죽음 없음[不死]을 얻기 위해서
그는 그 도를 수행합니다.” ({35})
이 게송은 한 구절(pada)이 12개의 음절(akkhara)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12×4=48 음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가띠(Jagatī) 운율의 보기가 된다. 셋째 구절[句]의 처음에 나타나는 yo ariyam의 발음은 요리얌이 된다. 두 개의 모음 즉 o와 a는 연음이 되어 하나의 음절로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셋째 구절도 12음절이 된다.
④ 와이딸리야(Vaitālīya)
그리고 아래 시리왓다 장로(Th1:41)의 게송은 와이딸리야(Vaitālīya) 운율의 보기가 된다.
vivaramanupatanti vijjutā,
vebhārassa ca paṇḍavassa ca |
nagavivaragato ca jhāyati,
putto appaṭimassa tādino ||41||
위와람 아누빠띤띠 욋주따 (11)
웨바랏사 짜 빤다왓사 짜 (10)
나가위와라가또 짜 자야띠 (11)
뿟또 압빠띰 앗사 따디노 (10)
“웨바라와 빤다와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번개들이 떨어진다.
비견(比肩)할 수 없고 여여한 분의 아들은
산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가서 참선을 한다.” ({41})
이 게송은 한 구절(pada)에 10개나 11개씩의 음절(akkhara)이 들어있어 전체 11+10+11+10=42개의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⑺ 역자의 변
노만 교수의 정리에 의하면 여기서 언급한 실로까(아누슈뚭), 뜨리슈뚭, 자가띠, 와이딸리야 운율이 『테라가타』에서 순서대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운율이다. 그리고 이 운율들이 혼합된 운율을 합하면 이 네 개 운율로 된 것이 1,279개 게송의 거의 95%는 되는 듯하다.
운율은 엄격히 말하면 장음과 단음, 그리고 장음과 단음의 배열 순서 등도 따져서 봐야 한다. 노만 교수는 이런 사실을 표기하고 있다. 역자는 여기서 보기로 들면서 장음‧단음은 무시하고 음절의 숫자만을 가지고 예를 들었다.
여기에서 인용한 역자의 한글 번역에서 보듯이 역자는 운율에는 개의치 않고 게송의 정확한 뜻을 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노만 교수 자신도 그러하다고 노만 교수의 서문(Introduction)에서 밝히고 있다.(K. R. Norman, xxxii)
그리고 앞에서 밝혔듯이 역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본서에 포함된 1,279개 게송들 가운데 61개 정도는 네 구절로 구성된 사구게[四句偈]가 아니라 여섯 구절로 구성된 육구게[六句偈]로 되어 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도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가타를 “네 개의 구절[句, pada]을 가졌거나 여섯 개의 구절[句]을 가진 표현 방법(catuppada chappada vā vacana)”(ThagA.i.8)이라고 설명하였다.(해제 II-⑸-②-ⓒ와 ⓓ 참조) 육구게일지라도 운율의 적용은 같다. 여섯 구절 전체가 실로까 운율로 되어 있으면 이 게송은 실로까이고 여섯 구절 가운데 네 구절이 뜨리슈뚭 운율로 되어 있고 두 구절이 자가띠로 되어 있다면 이것은 뜨리슈뚭과 자가띠가 혼합된 운율로 보면 될 것이다.
역자는 4구게는 네 구절의 한글로 옮기고 6구게는 여섯 구절의 한글로 옮기는 기본 원칙은 고수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위 ③ 자가띠(Jagatī)의 예문으로 인용한 사만냐까니 장로(Th1:35)의 {35}에서처럼 한 구절에 다 넣으면 편집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4구게도 여섯 구절 등으로도 옮겼고 6구게를 다섯 구절이나 네 구절로 옮긴 곳도 있다.
V.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
⑴ 들어가는 말
『테라가타』는 『테라가타 주석서』가 없이 읽어내기가 힘들다. 특히 『테라가타』의 1,279개의 게송을 읊은 264분 장로들은 그 이름만이 함께 실려서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테라가타 주석서』의 도움 없이 『테라가타』자체로서는 이분들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본 해제의 본 장 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제 이처럼 중요한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대주석가 담마빨라 스님은 방대한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분이며 그래서 그는 상좌부 불교에서 아짜리야 담마빨라(Ācariya Dhammapāla)로, 즉 스승(ācariya)으로 호칭되고 있다.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는 역자가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판한 『우다나』의 해제와 『이띠웃따까』의 해제에서 이미 설명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적고자 한다.
『우다나』해제의 10. 『우다나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와 『이띠웃따까』해제의 6. 『이띠웃따까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는 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인 ‘A Study in Paramattha- mañjūsā’의 제1장 서문의 ‘Dhammapāla ― the author of Pm’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우다나 주석서』와 『이띠웃따까 주석서』의 저자인 담마빨라 스님에 대해서 적은 것이다. 그리고 『우다나』해제에서 적은 것을 요약하여 여기 『테라가타』해제에도 싣고 있음을 밝힌다.
상좌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두 분을 들라면 바로 서기 400~450년쯤에 생존하셨던 대주석가 붓다고사 스님과 그로부터 150년쯤 후인 서기 550 ~600년쯤에 사셨던 것으로 여겨지는 아짜리야 담마빨라 스님을 들 수 있다.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대부분의 주석서들을 완성한 분이며 담마빨라 스님은 나머지 주석서들과 특히 대부분의 복주서들을 완성하여 상좌부 불교의 삼장-주석서-복주서 전통을 완결한 분이다.
상좌부의 빠알리 삼장에 대한 주석서는 대부분이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온다. 『마하왐사』와 『간다왐사』등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붓다고사 스님은 빠알리 삼장에 대한 13가지 주석서들을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붓다고사 스님이 남긴 주석서 13권과 이들에 대한 논의는 『청정도론』역자 서문 §5.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주석서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⑵ 담마빨라 스님의 저작 18권
17세기에 마얀마에서 난다빤냐(Nandapañña) 스님이 지은 상좌부 불교 문헌에 대한 역사서라 할 수 있는 『간다왐사』(Gandhavaṁsa)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담마빨라 스님은 모두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를 지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18개는 아래의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I.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nī) -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우다나』등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
II. 『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ñjūsā, Pm) - 『청정도론 복주서』1권
III. 『리낫탑빠까시니』(Līnatthappakāsinī, 숨은 뜻을 밝힘) - 경장의 복주서 - 4권
IV. 『리낫타완나나』(Līnatthavaṇṇanā, 숨은 뜻을 설명함) - 논장의 복주서 - 3권
V.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ṇa) 등에 대한 주석서(aṭṭhakathā) - 3권
이렇게 하여 18개의 주석서와 복주서 문헌들이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로 전해온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인 『빠라맛타디빠니』(Parama -tthadīpanī)에 포함되어 있다. 『빠라맛타디빠니』에는
① 『우다나 주석서』(UdA)
② 『이띠웃따까 주석서』(ItA)
③ 『위마나왓투 주석서』(VvA)
④ 『뻬따왓투 주석서』(PvA)
⑤ 『테라가타 주석서』(ThagA)
⑥ 『테리가타 주석서』(ThigA)
⑦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우다나』등 7개의 경들에 대한 주석서이다.
⑶ 『테라가타 주석서』
여기서 보듯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빠라맛타디빠니』(Paramatthadīpa -nī)에 포함되어 『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여섯 개 경들의 주석서와 함께 전해온다. 역자는 VRI본 삼장과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Foxpro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정리한 ‘빠알리 원전 데이터 베이스’ 자료들을 통해서 이 『테라가타 주석서』를 읽고 검색과 인용을 하고 있다. 『우다나 주석서』는 1995년에 Masefield 교수에 의해서 ‘The Udāna Commentary’(Vol. I, II)로 영역되어 PTS에서 출간되었지만, 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아직 영어로 번역‧출간이 되지 않았다.
역자는 본서의 주해에서 인용하고 있는 주석서의 설명은 가급적이면 모두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인용하여 한글로 옮겨서 실은 뒤 출처를 밝혔다.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 )안에 빠알리 용어들을 많이 넣었다. 물론 기존의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4부 니까야의 주해를 그대로 가져온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해들은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을 인용한 것이다.
⑷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림 스님도 박사학위 청구 논문에서 밝혔고 역자가 번역한 『우다나』역자 서문에서도 인용하였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담마빨라 스님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따라다닌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여러 명인가?
둘째, 담마빨라 스님과 북방불교의 대논사 다르마빨라 스님은 같은 분인가 다른 분인가?
셋째, 담마빨라 스님은 어느 때 사람인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문제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인가 두 명인가, 아니면 더 많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섯 가지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다나』역자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히뉘버 교수는 『우다나 주석서』(UdA.94)에 나타나는 “Kathāvatthu- pakaraṇassa ṭīkāyaṁ gahetabbo( 『까타왓투』논서의 복주서에서 취해야 한다).”를 예로 들어서, “이처럼 [ 『쿳다까 니까야』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디빠니』와 아비담마의 복주서인 『리낫타완나나』가 상호 참조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명의 담마빨라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의 통일성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적고 있다. 역자는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교수나 피어리스(A. Pieris)나 대림 스님이나 특히 히뉘버 교수의 이 의견에 동의하며 그래서 담마빨라 스님은 한 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림 스님의 제언처럼 담마빨라 스님은 ① 먼저 아비담마 칠론의 아누띠까(복복주서)인 『리낫타완나나』를 짓고 ② 다음에 『쿳다까 니까야』의 시로 된 7개 경전들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디빠니』를 짓고 ③ 그다음에 『청정도론』의 복주서인 Pm과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의 복주서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림 스님의 언급처럼 Pm에 『쿳다까 니까야』의 『짜리야삐따까 주석서』(CpA)를 참조하라는 언급이 나타나기 때문에 7개 주석서들이 Pm보다는 먼저 쓰여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⑸ 담마빨라 스님의 연대
담마빨라 스님은 붓다고사 스님(서기 5세기)보다는 후대이고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를 지은 사리뿟따 스님(서기 12세기)보다는 이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히뉘버 교수는 Porāṇagaṇthipada – Dhammasirigaṇṭhipada – Ānanda – Vajirabuddhi의 연표를 제시하면서 이 와지라붓디 스님과 담마빨라 스님은 동시대 사람이고 남인도 출신이라고 결론짓고 이 연표에 나타나는 스님들은 서기 450년부터 서기 600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담마빨라 스님은 서기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이라고 제시한다.
『청정도론』등의 13개의 주석서들을 지은 붓다고사 스님과 아비담마 칠론에 대한 『물라띠까』(근본복주서)를 지은 아난다 스님과 『빠라맛타만주사』를 비롯한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이 활동한 서기 5~6세기는 상좌부 불교의 교학이 정리되고 체계화되고 심화되고 전파된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간추리면, 18개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을 지은 담마빨라 스님은 한 분이며, 6세기 후반부(서기 550~600년)에 실존했던 분이고 남인도 출신이며 아난다 스님의 제자였고, 북방의 다르마빨라(法護) 스님과는 동일인이 아니다.
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
『테라가타』에는 1,279개 게송들과 이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이름만 실려서 전승되고 있기 때문에 이 1,279개 게송을 읊은 264분의 장로들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264분, 줄여서 259분 장로들에 대한 모든 행장과 일화 등은 모두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가 아니면 『테라가타』의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행장이나 게송을 읊게 된 배경이나 인연 등의 사항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의 도움이 없이 『테라가타』만으로 여기에 실려있는 게송을 읊은 장로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각 게송의 말미나 일군의 게송들의 말미에 게송을 읊은 장로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고 게송 안에서 장로들이 자신에 대해서 읊은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것만으로 게송을 읊은 장로들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서기 550~600년의 어느 때의 인물로 추정되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승되어 오는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1,279개의 게송을 읊은 264분(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의 장로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이제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259분 장로들의 행장이 모두 상세하게 나타난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259분 장로 스님들이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가 없이는 게송을 읊은 분들과 이들이 특정 게송을 읊은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지만 역자는 전생의 인연들에 대해서는 본서에 옮겨 싣거나 소개하지 않았다. 각 장로들의 금생의 인연인 태어난 지역과 가문과 출가한 인연과 수행한 일화와 깨달음을 얻은 인연과 특정 게송 혹은 게송들을 읊은 인연 등에 대해서는 주석서를 인용하여 밝힘으로써 주석서에 나타나는 금생의 인연을 중시하였다.
둘째, 『테라가타 주석서』의 또 다른 큰 특징으로는 이 259분들이 언급되는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아빠다나』(Apadāna)의 구절들을 아주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길게는 몇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되기도 한다. 역자가 『테라가타 주석서』를 ‘apadān’으로 검색하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주석서는 싱갈라삐따 장로(Th1:18), 소빠까 장로(Th1:33), 왓다 장로(Th5:5)와 여섯의 모음 꿀라 장로(Th6:4)부터 삽바까미 장로(Th6:14)까지와 그 외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 등 대략 35분 장로들을 제외한 224분 정도의 『아빠다나』를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에 나타나는 이들 출처들을 거의 대부분 “[장로의 일화는] 『아빠다나』에도 나타나고 있다.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행장 등등)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각 장로들의 『아빠다나』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여 소개하였다.
셋째,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게송들을 읊은 배경도 대부분 밝히고 있다.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배경에 대해서는 본 해제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과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넷째, 『테라가타』의 특정 게송이 구경의 지혜인지 감흥어인지 사자후인지 특히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읊었는지 등의 게송의 성격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 주석서』의 모두(冒頭) 부분(ThagA.i.2)을 들 수 있다.(본 해제 IX.-⑴ 참조)
주석서의 이런 설명을 토대로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이유나 배경 등을 11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았다. 그것은,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 ② 감흥어로 읊은 것 ③ 사자후를 토한 것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것 ⑥ 반열반을 알리는 것 ⑦ 특별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 것 ⑧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 등이다.
이 열한 가지는 모두 본 해제 X-⑴ 게송들을 읊은 이유에서 정리하여 보았는데 이 가운데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였고 출처를 밝히면서 도표로 정리하였다.
다섯째, 『테라가타』는 게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뜻이 함축적이고 축약적이다. 그 함축적인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주석서의 도처에서 특정 단어나 특정 구절이나 특정 문장이나 특정 게송 전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여 특히 산문으로 전달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 주석서뿐만 아니라 산문으로 된 경들에 대한 주석서 문헌들의 공통된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을 참조하기 바란다.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
이처럼 몇 가지로 살펴본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테라가타』와 여기에 등장하는 장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그 전개 방법 등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과 이를 읊은 장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과 그 전개 방법 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테라가타 주석서』는 264분 혹은 259분의 장로들과 이분들이 읊은 게송들을 설명하는 것이 기본골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테라가타 주석서』전체는 그 구조와 전개 방법이 명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는 하나의 정해진 틀을 264곳에 똑같이 전개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로들과 그들이 읊은 게송들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⑴ 게송을 읊은 장로의 행장, ⑵ 게송을 읊은 배경, ⑶ 게송의 성격, ⑷ 게송에 대한 자세한 주석이라는 방법을 꼭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고 역자는 정리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⑴ 게송을 읊은 장로의 행장은 다시 ① 전생담, ② 금생의 인연, ③ 출가한 계기와 인연, ④ 아라한이 된 인연 ⑤ 해당 『아빠다나』의 인용이라는 다섯으로 구성된다. 이제 이 각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⑴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행장
첫째, 주석서는 특정 장로가 읊은 게송 혹은 게송들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 장로의 행장부터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장로들의 행장을 소개하는 것도 같은 방식에 의해서 진행하는데 이것은 다시 아래의 다섯 가지 방법(① 전생담, ② 금생의 인연, ③ 출가한 계기와 인연, ④ 아라한이 된 인연 ⑤ 해당 『아빠다나』의 인용)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① 장로들의 행장을 소개하면서 먼저 장로들의 전생담 혹은 전생 인연을 밝히고 있다. 거의 대부분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먼저 ‘무엇이 [장로의] 기원(起源)인가(kā uppatti)?’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각 장로들의 전생담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의 첫 번째 게송을 읊은 수부띠 장로(Th1:1)의 행장을 소개하면서 ‘무엇이 [장로의] 기원인가(kā uppatti)?’라고 한 뒤 ‘지금부터 십만 겁 정도 이전에 세상의 지도자이신 빠두뭇따라 세존이 태어나시기 이전에 항사와띠라는 도시에서(ito kira kappa -sata-sahassa-matthake anuppanneyeva Padumuttare bhagavati lokanāthe Haṁsavatīnāmake nagare) …’라고 아주 오래전 전생의 일화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장로인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행장을 시작하면서도 역시 ‘kā uppatti(무엇이 장로의 기원인가)?’라고 한 뒤 ‘이 장로도 역시 빠두뭇따라 세존의 시대에 항사와띠 도시에서 큰 재산을 가진 가문에 태어나서(ayampi thero Padumuttarassa bhagavato kāle haṁsavatīnagare mahābhogakule nibbattitvā) …’라고 설명을 시작한다. 이 방법은 거의 모든 장로들의 행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② 이렇게 전생의 인연을 밝힌 뒤에는 각 장로들의 금생의 인연을 밝히고 있다. 사리뿟따 장로나 아난다 장로 등의 유명한 장로들의 경우에는 아주 소상하게 밝힌다. 특히 많은 장로들의 경우에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사왓티에서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마하꼿티따 장로(Th1:2))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devamanussesu saṁsaranto imasmiṁ Buddhuppāde)’로 검색을 해보면 134곳 정도에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③ 그리고 어떤 인연과 어떤 계기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서 어떤 계기로 출가를 감행하였는가 하는 출가한 계기나 인연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답바 장로(Th1:5)는 그가 모태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어서 화장을 하였는데 그는 나무 장작 위로 떨어져서 생명을 건졌으며 일곱 살에 스승님을 뵙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 출가하였다. 그는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받았으며 첫 번째 머리카락 뭉텅이가 떨어지는 순간에 예류과에 확립되고 두 번째 머리카락 뭉텅이가 떨어질 때에는 일래과에, 세 번째에는 불환과에, 전도 후도 아닌 모든 머리카락이 다 떨어질 때에 아라한과를 실현하였다고 한다.(ThagA.i.43)
④ 여기에 더하여 특정 장로가 어떤 계기로 혹은 어떻게 절박함을 일으켜 아라한이 되었는가 하는 아라한이 된 인연을 간결한 문체로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② 금생의 인연에서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devamanussesu saṁsaranto imasmiṁ Buddhuppā- de)’로 검색하면 134곳 정도가 나타났지만 ‘천상과 인간에서 윤회하고(deva -manussesu saṁsaranto)’를 빼고 ‘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imasmiṁ Buddhuppāde)’라는 표현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테라가타 주석서』가운데에서 217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주석서는 각 장로들이 금생에 어느 곳에서 어느 가문에 태어났는가를 밝히고 있는데 만일 특정 장로에게 특별한 행적이 있으면 그것을 드러낸 뒤 특정 장로가 어떤 인연으로 부처님이나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서 어떤 계기로 출가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인연으로 아라한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이 대략 259분 장로들의 행장에 거의 같은 패턴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뿐나마사 장로(Th1:10)는 사왓티에서 사밋디라는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 집에 있는 모든 항아리가 황금 동전으로 가득 찼다(puṇṇā)고 해서 이름이 뿐나마사(Puṇṇamāsa)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들을 한 명 두었지만 재가 생활을 혐오하여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고 하며 네 가지 진리의 명상주제에 몰두하고 몰입하여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한 뒤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⑤ 그런 뒤에 ‘ 『아빠다나』에 이렇게 설명하였다(vuttampi cetaṁ Apa- dāne)’라는 구문으로 『아빠다나』의 설명을 가져와서 싣고 있다. 이러한 『아빠다나』(전기)의 게송은 259분 장로들 가운데 대략 35분 장로들을 제외한 224분 정도의 『아빠다나』가 주석서에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자는 각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장로의 일화는 『아빠다나』에도 나타나고 있다. …’라고 간단하게 언급만 하였다. 그러므로 『테라가타 주석서』는 224분 장로들의 행적과 이분들의 『아빠다나』를 연결시켜주고 있다.(Hinüber, 147쪽도 참조할 것)
그리고 여기서 언급해야 할 것으로는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 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이 있다. 여기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40분 정도의 장로들은 『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으뜸 품」(A1:14)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테라가타』둘의 모음에 나타나는 삔돌라 바라드와자 장로(Th2:2)는 『앙굿따라 니까야』「으뜸 품」(A1:14)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자들(sīhanādikā) 가운데 으뜸이다.”(A1:14:1-8)라고 언급이 되고 있다. 그래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러한 사실도 드러내어 싣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으뜸 품」(A1:14)에는 모두 47분의 으뜸가는 장로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수부띠 장로(Th1:1)는 A1:14:2-4와 A1: 14:2-5로 두 번이 나타나고 쭐라빤타까 장로(Th10:4 {557})도 A1:14:2-1과 A1:14:2-2로 두 번이 나타나며 아난다 장로(Th30:3 {1018})는 A1:14:4-1, A1:14:4-2, A14:4-3, A14:4-4, A14:4-5로 다섯 번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 분 장로들의 경우에 중복되는 여섯 번(1+1+4=6)을 빼면「으뜸 품」에는 모두 41분의 서로 다른 장로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가 으뜸이다.”(A1:14:3-8)로 나타나는 바히야 장로와, “불의 요소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사가따가 으뜸이다.”(A1:14:4-14)로 나타나는 사가따 장로는 『테라가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으뜸 품」에 실린 41분의 각각 다른 장로들 가운데 39분이 이 『테라가타』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의 주해의 말미에서 언급한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를 포함시키면 40분이 된다.
⑵ 게송을 읊은 배경
둘째, 그런 뒤에 『테라가타 주석서』는 각 장로들의 게송 혹은 게송들이 읊어지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 예를 든 뿐나마사 장로(Th1:10)의 경우에 주석서는 “그의 전 아내가 그를 유혹하려고 멋지게 치장하고 아들과 함께 그에게 가서 아름다운 말 등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장로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자신이 어디에도 빠지지 않았음(alaggabhāva)을 설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56)라고 본 게송을 읊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⑶ 게송의 성격
셋째, 그리고 여러 게송들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주석서는 많은 경우에 특정 장로의 특정 게송이 구경의 지혜(aññā)로 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158분 정도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감흥어(우러나온 말씀, udāna)로 읊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29분 정도가 된다. 그리고 사자후(sīha- nāda)를 토하였다는 표현도 15곳 정도에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웃따라빨라 장로(Th3:12 {252}~{254})의 게송을 설명하면서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도닦음을 반조하여 사자후를 토하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 (ThagA.ii.102~103)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주석서는 이렇게 장로들이 금생에 특정 지역의 특정 가문에 태어나서 특정한 조건에서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절박함을 일으켜 아라한과를 얻어서 특정한 게송을 읊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⑷ 게송에 대한 자세한 주석
넷째, 주석서는 특정 장로의 특정한 행장이나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설명한 뒤에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게 된 『테라가타』의 게송들에 대한 주석을 자세하게 달고 있다. 그런 주석에는 문법적인 측면에 대한 설명도 담겨있고 특히 특정 단어의 동의어들을 나열하면서 단어와 문장을 설명한다. 그리고 교학적인 설명과 배경을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 뒤 이본(異本)이 있으면 그것을 제시하고 있다.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을 하면서 합성어를 통해서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주석을 다는 곳이 많다. 그리고 특정 게송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여기서 이것이 그 뜻이다(ayaṁ panettha attho).’ (ThagA.i.57 등)라고 하면서 게송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테라가타 주석서』는 264분, 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 장로들의 행장과 이분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을 거의 같은 패턴으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
역자는 이들 가운데 각 장로들의 ⑴-① 전생담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 ⑴-② 금생의 인연부터 ⑴-③/④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기까지의 인연과 ⑴-⑤ 게송을 읊은 배경 가운데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주석서의 주요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행장】이라는 표제어를 달아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역자는 259분 장로들의 행장을 대부분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지하여 적었음을 밝힌다.
VII.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에 대한 고찰 ― 『테라가타 주석서』를 중심으로
이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에 따라 『테라가타』를 읊은 259분 장로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거듭 밝히지만 역자는 각 장로들의 행장을 전적으로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존하여 적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드러내고 있는 장로 스님들의 전생담 혹은 전생의 인연에 대한 설명은 모두 생략하여 본서에 옮겨 넣지 않았고 요약도 하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간단한 언급만을 하였다.
본 해제 III. 『테라가타』의 구성에서 살펴보았듯이 본서 『테라가타』에는 PTS본으로 1,279개의 게송이 21개의 모음으로 정리되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읊은 분들은 모두 264분이다. 그런데 역자는 모두 259분이라고 하였다. 이제 그 이유부터 밝히면서 장로들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⑴ 『테라가타』에서 게송을 읊은 장로들은 몇 분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본서에 실린 1,279개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은 모두 264분이다.(ThagA.i.3) 그런데 주석서의 설명에 의하면 같은 장로가 다른 모음의 다른 게송을 읊은 경우(동명이송)로 세 분이 있고 이름은 다른데 같은 분(이명동인)이 한 분이 있다. 빠라빠리야 장로가 읊은 게송은 모두 세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은 모두 264-2-1-1-1=259분이 된다.
역자는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을 ① 동명이인(同名異人, 같은 이름인데 다른 장로인 경우), ② 동명이송(同名異頌, 한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 ③ 이명동인(異名同人, 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 ④ 이명동송(異名同頌, 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나누어 보았다.
① 동명이인(同名異人, 같은 이름인데 다른 장로인 경우)
본서에는 이름은 같은데 다른 장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리해 보면 모두 다음과 같이 21분 정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 뿐나 장로(Th1:4) ― {70}과는 다른 분
2. 뿐나마사 장로(Th1:10) ― 2:26 {171}과는 다른 분
3. 와나왓차 장로(Th1:13) ― {113}과 다른 분
4. 아바야 장로(Th1:26) ― {98}과는 다른 분
5. 하리따 장로(Th1:29) ― 3:15 {261}과 다른 분
6. 웃띠야 장로(Th1:30) ― 3명. {54}, {99}와는 다른 분
7. 소빠까 장로(Th1:33) ― 7:4 {480}과는 다른 분
8. 띳사 장로(Th1:39) ― 3명. {97}, 2:17 {153}과는 다른 분
9. 위말라 장로(Th1:50) ― 3:16 {264}와는 다른 분
10. 왈리야 장로(Th1:53) ― 3명. 2:3 {125}, 2:24 {167}과는 모두 다른 분
11. 꾸띠위하리 장로(Th1:56) ― {57}과는 다른 분
12. 왓지뿟따 장로(Th1:62) ― {119}와는 다른 분
13. 데와사바 장로(Th1:89) ― 두 번째로 불리는 {100}과는 다른 분
14. 띳사 장로(Th1:97) ― 3명. {39}, 2:17과는 모두 다른 분
15. 키따까 장로(Th1:104) ― 2:36 {191}과는 다른 분
16. 우사바 장로(Th1:110) ― 2:39 {197}과는 다른 분
17. 아디뭇따 장로(Th1:114) ― 20:1 {705}와 다른 분
18. 웃따라 장로(Th2:1 {121}~{122}) ― 2:21 {161}과는 다른 분
19. 고따마 장로(Th2:9 {137}~{138}) ― 3명. 3:14 {258}, 10:7 {587}과는 모두 다른 분들임
20. 난다까 장로(Th2:27 {173}~{174}) ― 4:4 {279}와는 다른 분
21. 수마나 장로(Th5:4 {330}~{334}) ― 6:10 {429}와는 다른 분
한편 시와까 사미(Th1:14)와 시와까 장로(Th2:32 {183})는 다른 분이다. 수부띠 장로(Th1:1)와 수부따 장로(5:2 {320})는 당연히 다른 분이다. 그리고 꿀라 장로(Kuḷa, Th1:19)와 꿀라 장로(Kulla, Th6:4 {393})는 철자가 다르며 서로 다른 분이다. 나아가서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이름은 삼부따인데 삼부따 장로(Th4:7 {291})와는 다른 분이다. 그래서 이 네 경우는 언급하지 않았다.
② 동명이송(同名異頌, 같은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
동명이송(같은 장로가 여러 게송을 읊은 경우)인 경우는 모두 3명인데 다음과 같다.
1.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 3곳, 20:2 {726}과 20:10 {920}과 동일한 분
2. 낌빌라 장로(Th1:118) ― 2:18 {155}와 동일한 분
3. 말룽꺄뿟따 장로(Th6:5 {399}~{404}) ― 20:5 {794}와 동일한 분
③ 이명동인(異名同人, 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
이명동인(다른 이름인데 같은 장로인 경우)의 경우는 한 분인데 레와따 장로이다.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레와따 장로(Th14:1 {645}~{658})는 하나의 모음 {42}를 읊은 카디라와니야 장로와 동일한 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42}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④ 이명동송(異名同頌, 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
똑같은 게송들이 다른 장로의 게송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명동송(다른 장로가 같은 게송들을 읊은 경우)이라 표현하였다. 이명동송으로는 박꿀라 장로(Th3:3 {225}~{227})와 하리따 장로(Th3:15 {261}~{263})의 3개의 게송을 들 수 있다. 똑같은 게송들 3개가 두 분 장로의 게송들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주석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② 동명이송인 경우가 세 분이고 ③ 이명동인인 경우가 한 분이고 ② 동명이송에 포함되는 빠라빠리야 장로는 Th1:116과 Th20:2와
Th20:10의 세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264-4가 아니라 264-4-1이 되어 모두 259명이 된다. 이렇게 하여 『테라가타』에서 게송을 읊은 분들은 모두 259분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
『테라가타』는 이러한 259분의 장로들이 읊은 게송들을 게송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 이처럼 모두 21개의 모음으로 분류하여 싣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모음에는 120분 장로들의 게송 120개가 {1}부터 {120}까지에 실려있고 둘의 모음에는 49분 장로들의 게송 98개가 {121}부터 {218}까지에 실려있다. 이렇게 하여 21번째 마지막 모음인 큰 모음에는 1분 장로의 게송 71개가 {1209}부터 {1279}까지에 실려서 모두 259분 장로의 1,279개 게송이 담겨 있다.
그러면 『테라가타』에 실려있는 1,279개 게송들은 모두 이 259분 장로들이 직접 읊은 것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적지 않은 게송들은 세존께서 특정 장로에게 설하신 것이며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도 있고 다른 장로들이나 신들과 같은 다른 존재들이 특정 장로에게 읊은 것도 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주석서의 설명을 정리해 보면 1,279개 가운데 모두 104개 정도는 그 게송을 읊은 자로 명시된 특정 장로가 읊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104개 게송을 읊은 분이나 읊은 존재와 게송 번호를 나열해 보면 다음 쪽의 <도표3>과 같다.
①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둘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의 게송 둘 모두와, 셋의 모음에 포함된 와라나 장로(Th3:7 {237}~{239})의 게송 셋 모두와, 다섯의 모음에 속하는 야사닷따 장로(Th5:10 {360}~{364})의 게송 다섯 개 모두와, 여섯의 모음에 속하는 까띠야나 장로(Th6:7 {411}~{416})의 게송 여섯 개 모두와 특히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 {567}~{576})의 게송 열 개 모두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다.
<도표3> 게송을 읊은 다른 분들이나 존재들
번호
읊은 분
게송
1
세존
하나의 모음: {17} {29} {38} {39} {40} {68} {83} {84} {93} {101}
둘의 모음: {193} {199} {200} {207}
셋의 모음: {237} {238} {239} {243}
넷의 모음: {303} {304} {305}
다섯의 모음: {350} {360} {361} {362} {363} {364}
여섯의 모음: {394} {411} {412} {413} {414} {415} {416} {431} {432} {433} {434} {435}
열의 모음: {567} {568} {569} {570} {571} {572} {573} {574} {575} {576}
열둘의 모음: {631}
스물의 모음: {824} {827} {828} {829} {830} {831} {837} {867}
서른의 모음: {1037}
큰 모음: {1275} ― 모두 60곳
2
사리뿟따
{1178} {1179} {1180} {1181}
3
아난다
{1224} {1225} {1226}
4
합송자들
{720} {724} {869} {920} {948} {949} {1047} {1048} {1049}
5
천신
{18} {57} {187} {235}
6
범천들
{1084} {1085}
7
대범천
{1023}
8
신들의 왕 삭까
{673}
9
마라
{381} {385}
10
기녀
{461} {1154}
11
빤다라 선인
{950}
12
아버지
{28}
13
어머니
{82}
14
청신사
{597}
15
도둑 두목
{705}
16
도둑들
{721}
17
코끼리 왕
{969} {970}
주석서에 의하면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는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임종하자 왕위에 책봉되어 감각적 쾌락들에 지나치게 빠지고 탐하면서 머물렀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더러움[不淨]에 대한 가르침(asubha-kathā)을 듣고 마음이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서 탐욕이 빛바래어 출가한 뒤 아라한이 될 것이라고 아신 뒤 허공으로 그곳에 가셔서 본 게송 10개를 읊으셨다고 한다.
더러움에 대한 말씀을 부처님의 면전에서 듣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적용시켜]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원하였으며 세존께서는 그에게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준 뒤 출가하게 하였다. 그는 삭발을 할 때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으면서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242~ 243)
여섯의 모음의 까띠야나 장로(Th6:7 {411}~{416})도 용맹정진할 때 세존께서 설해주신 여섯 개의 게송을 듣고 설법의 마지막에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게송들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176)
세존께서는 두 개의 게송으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를 엄하게 꾸짖으시면서 질책하셨는데 뼈 속을 파고드는 충격처럼, 사나운 코끼리가 길을 달려 내려오는 것처럼 그에게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고 그래서 이 두 개의 게송은 그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함이 되었다고 한다.(ThagA.ii.66~67)
한편 하나의 모음 {17} 게송을 읊은 다사까 장로(Th1:17)는 게으르고 나태하여서 법문을 듣는 시간에도 한 모퉁이에 들어가 회중의 끝(parisa-pari- yanta)에 앉아서 코고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자 세존께서 이 게송을 읊으셨고 그는 이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고 한다.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고 이것은 그에게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ThagA.i.73~74)
이처럼 세존께서 특정 장로들을 위해서 설해주신 위의 게송들은 그 장로가 아라한과를 체득하는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 이 장로들은 자신이 아라한과를 체득하도록 세존께서 설해주신 그 게송을 자신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으로 삼아 평생을 간직하였으며 그래서 이 『테라가타』에도 특정 장로의 게송으로 실린 것이다.
②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세존이 읊으신 이외의 게송들 가운데 특히 합송자들(saṅgītikārā)이 읊은 게송이 9개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합송자는 누구인가? 1‧2‧3차 결집을 주도한 분들인가, 아니면 더 늦은 시기일지도 모르는 이 『테라가타』를 합송하고 있는 분들인가?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9개의 합송자들이 읊은 게송들 가운데 {1047}~{1049}의 세 개의 게송은 일차결집의 핵심 인물인 아난다 장로 편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합송자들은 적어도 이차결집이나 그 이후인 삼차결집 때 본 『테라가타』를 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떼낏차까리 장로나 아소까 왕의 동생인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의 게송들도 『테라가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삼차결집 때 『테라가타』가 최종적으로 『쿳다까 니까야』에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노만 교수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걸쳐서 본 게송들을 모으고 합송한 분들로 보고 있다. 노만 교수는 여기서 합송자들은 일차합송과 이차합송과 삼차합송에 참석한 합송자들로 여기고 있다.(K. R. Norman, xxix)
⑶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출생 지역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게송을 읊은 259분 장로 스님들 가운데 대부분의 출생 지역을 밝히고 있다. 이 자료들을 통해서 장로들의 출생 지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259분 가운데에서 꼬살라의 수도인 사왓티 출신은 맨 처음에 실려있는 수부띠 장로(Th1:1)부터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77분 정도가 되었다.
둘째, 사왓티를 제외한 꼬살라국 출신은 에까담마사와니야 장로(Th1:67)부터 브라흐마닷따 장로(Th6:12 {441})까지 18분이었다. 그래서 수도 사왓티를 포함한 꼬살라국 출신은 259분 가운데 모두 95명 정도가 된다.
셋째, 259분 가운데에서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 출신이 시따와니야 장로(Th1:6)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36분이었다.
넷째, 라자가하를 제외한 마가다국 출신은 마하가왓차 장로(Th1:12)부터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까지 34분이었다. 그래서 마가다국 출신은 259분 가운데 모두 70명 정도이다.
다섯째, 259분 가운데 세존의 고향인 까삘라왓투 출신이 뿐나 장로(Th1:4)부터 아누룻다 장로(Th20:9 {892})까지 31분이었다. 까삘라왓투 인근인 도나왓투(2명)와 데와다하(2명)도 여기에 포함하였다. 까삘라왓투는 꼬살라에 점령된 작은 나라이지만 세존께서 탄생하신 나라이고 세존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였기 때문에 『테라가타』에 장로 아라한 스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여섯째, 릿차위와 수도인 웨살리 출신은 왓다마나 장로(Th1:40)부터 삽바까미 장로(Th6:14 {453})까지 14분이다.
일곱째, 말라와 그곳의 수도인 빠와 출신으로는 답바 장로(Th1:5) 등의 여덟 분이 있고, 아완띠 출신으로는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 등 여섯 분, 꼬삼비는 박꿀라 장로(Th3:3 {225}) 등의 네 분, 짬빠는 소나 꼴리위사 장로(Th13:1 {632}) 등의 네 분, 사께따도 멘다시라 장로(Th1:78) 등의 네 분이다. 이렇게 하여 이들 지역에서는 26분 정도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지역이 언급되고 있으며 출생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분들도 10분 정도가 된다.
⑷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태생
인도는 이미 부처님 시대에도 태생(jāti)의 문제가 강하게 대두되었고 이것은 카스트 문제와 직결된다. 당연히 세존께서는 태생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짓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와셋타 경」(M98) §12 등에서,
“태생(jāti)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태생에 의해 비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kamma)에 의해 바라문도 되고
행위에 의해 비바라문도 된다.”(M98 §12 {57})
라고 강조하신다.
그렇지만 경들과 특히 주석서들은 특정 인물이나 스님들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인도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초기불전의 니까야에서도 인도의 태생은 바라문‧끄샤뜨리야‧와이샤‧수드라(brāhmaṇa, kṣatriya, vai- sya, śūdra)의 사성계급으로 나누어진다.(cattārome vaṇṇā ― khattiyā, brā- hmaṇā, vessā, suddā, D3 §1.15, Vin.ii.239) 당연히 주석서도 도처에서 스님들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brāhmaṇo khattiyo vessā ca suddā, ThagA.iii.148 등). 그리고 이러한 사성계급에 들지 못하는 천민의 가문(caṇḍāla-kula, M93 §11; S3:21 §4 등) 등도 경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연히 끄샤뜨리야 태생이고 두 상수 제자를 비롯한 많은 부처님 제자들은 바라문 출신이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특정 장로를 설명할 때 vessa(Sk: vaisya)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장자(gahapati)나 장자의 가문(gahapati-kula), 상인(seṭṭhi, 금융업)이나 대상(sattha)이나 대상의 우두머리(satthavāha)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렇게 표현되는 가문이 와이샤(vaisya)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문에 속하는 장로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하천한 가문(ibbhakula)이나 천민(caṇḍāla) 출신 장로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259분의 태생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도 장로들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단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테라가타』게송만으로는 장로들의 태생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장로들의 행장과 행적을 설명하면서 259분 장로들의 태생을 대부분 밝히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259분 장로들의 태생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바라문 태생
첫째, 바라문 태생이다. 학자나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역할을 하였던 바라문들은 3베다를 공부하고 학문과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인도인들 가운데 가장 학구적이고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빨리 정확하게 이해한 집단이기도 하다. 물론 많은 바라문들은 베다의 계급주의나 아뜨만이나 브라흐만과 같은 절대아나 초월적인 신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시는 부처님께 대한 반감도 컸던 집단이다. 259분의 태생을 분류해 보면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바라문 출신 장로들이 116명 정도가 되었다. 역시 큰 비중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사리뿟따 장로(Th30:2 {981}),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 앙굴리말라 장로(Th20:8 {866})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는 부유한 바라문(brāhmaṇa-mahāsāla)으로 언급된 분들도 15명 정도 포함된다.
바라문 태생인 경우에는 베다에 능통하였던 분들이 적지 않다. 주석서를 살펴보면 세 가지 베다 혹은 삼베다, 즉 『리그베다』(Ṛg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사마베다』(Sāmaveda)에 능통하였던 분들로 마하꼿티따 장로(Th1:2), 꾼다다나 장로(Th1:15), 아지따 장로(Th1:20), 웃자야 장로(Th1:47), 수야마나 장로(Th1:74), 왓차곳따 장로(Th1:112),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Th20:2 {726}; Th20:10 {920}), 삔돌라 바라드와자 장로(Th2:2 {123}), 소마밋따 장로(Th2:14 {147}), 띳사 장로(Th2:17 {153}), 앙가니까바라드와자 장로(Th3:1 {219}), 왁깔리 장로(Th5:8 {350}), 우루웰라깟사빠 장로(Th6:1 {375}~{380})와 그의 동생인 나디깟사빠 장로(Th5:6, {340})와 막냇동생인 가야깟사빠 장로(Th5:7, {345}),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 {435}),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장로(Th10:6 {577}),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 셀라 장로(Th20:6 {818}), 왕기사 장로(Th70:1 {1209}) 등의 21분을 들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 사리뿟따 장로(Th30:2 {981}),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 등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젊었을 때 바라문의 명지에 통달하였지만 거기서는 심재(sāra)를 보지 못하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으로 뿐나마사 장로(Th1:10), 위자야 장로(Th1:92), 왓차곳따 장로(Th1:112), 아디뭇따 장로(Th1:114), 웃따라 장로(Th2:1 {121})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바라문 태생인 경우에는 베다에 능통하였던 분들이 적지 않았다. 베다나 바라문의 명지 등으로 장로들의 행장을 검색해 보면 위에서 밝혔듯이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왕기사 장로(Th70:1 {1209})까지 대략 21분 정도가 해당되고 여기에 바라문의 명지에 통달한 분으로 언급되는 뿐나마사 장로(Th1:10) 등 다섯 분을 포함시키면 모두 29분 정도의 장로가 출가 전에 베다에 능통하였거나 바라문의 명지를 섭렵하였다고 나타난다.
② 끄샤뜨리야 태생
둘째, 끄샤뜨리야 태생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캇띠야(khattiya, 끄샤뜨리야)라는 용어로 장로들의 태생을 밝힌 경우는 두 군데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왕의 가문(rājagaha)이나 왕, 왕자, 지역의 왕(maṇḍalika- rāja) 등의 용어로 설명되고 있는 장로들은 모두 이 끄샤뜨리야 태생에 넣었다. 이런 조건으로 검색해 보니 259명 가운데 난디야 장로(Th1:25)부터 아난다 장로(Th30:3 {1018})까지 대략 55분 정도가 왕족, 즉 끄샤뜨리야 출신이었다. 그리고 주석서에서 끄샤뜨리야 가문이라고 밝히고 있는 멜라지나 장로(Th2:6 {131}) 등의 3분을 포함하면 모두 58분 정도가 된다. 여기에는 어떤 작은 지역의 왕의 아들(maṇḍalika-rañño putta)로 표기되는 데와사바 장로(Th1:89) 등도 포함시켰고 후대 아소까 대왕의 동생이었던 위따소까 장로(Th2:25 {169})도 넣었다.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다가 출가한 두 왕자가 있는데 아바야 장로(Th1:26)와 실라와 장로(Th12:1 {608})이다. 이 두 분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실라와 장로는 아자따삿투가 두 번이나 죽이려고 하였다고 한다.(ThagA.ii. 257~258)
한편 왕이었다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도 6분 정도 되는데 여기에 포함시켰다. 어떤 작은 지역의 왕이었던 [첫 번째] 데와사바 장로(Th1:89), 로루와(Roruva) 도시의 왕이었던 띳사 장로(Th1:97), 로히따 도시의 왕이었던 빳짜야 장로(Th3:2 {222}), 웨타뿌라 도시의 왕이었던 아비부따 장로(Th3:13 {255}), 사왓티에서 120요자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꾹꾸따와띠라는 나라의 왕이었던 마하깝삐나 장로(Th10:3 {547}),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이었던 깝빠 장로(Th10:5 {567})가 그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포함시킨 세뚜차 장로(Th1:102)는 어떤 작은 지역의 왕(maṇḍalika-rājā)의 아들이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절박함으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사꺄의 왕자였다가 출가한 분들로는 난디야 장로(Th1:25), 로마사깡기야 장로(Th1:27), 낌빌라 장로(Th2:18 {155}), 바구 장로(Th4:2 {271}),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 {842}), 아누룻다 장로(Th20:9 {892}), 아난다 장로(Th30:3 {1018})가 있고 데와다하 출신인 사꺄의 왕자였던 빡카 장로(Th1:63)와 락키따 장로(Th1:79)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포함시킨 안자나와니야 장로(Th1:55), 꾸띠위하리 장로(Th1:56), 두 번째 꾸띠위하리 장로(Th1:57), 라마니야 꾸띠까 장로(Th1:58), 꼬살라위하리 장로(Th1:59)는 릿차위의 왕자들(Licchavi-rājakumārā), 즉 웨살리에서 왓지의 왕의 가문(Vajji-rājakula)에 태어났는데 모두 함께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위말라꼰단냐 장로(Th1:64)는 빔비사라 왕과 암바빨리 사이에서 태어났고 실라와 장로(Th12:1 {608})는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으며 에까위하리야 장로(Th10:2 {537})는 아소까왕의 동생이었고 풋사 장로(Th30:1 {949})는 작은 지역 왕의 아들이었는데 여기에 포함시켰다.
③ 와이샤(평민) 태생
셋째, 와이샤(vaisya, Pali: vessā), 즉 평민 태생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테라가타 주석서』는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일반적으로 평민을 뜻하는 빠알리어 웻사(vessā, Sk: vaisya, 와이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장자(gahapati)나 장자의 가문(gahapatikula), 상인(seṭṭhi, 금융업)이나 대상(sattha)이나 대상의 우두머리(satthavāha)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렇게 표현되는 가문이 와이샤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서 이런 용어들로 조사를 해보았다.
먼저 ‘장자(gahapati)’로 검색을 해보면 뿐나 장로(Th1:70)를 위시한 14분 정도가 장자 가문 출생이다. 그리고 ‘상인(setthi)’으로 조사를 해보면 수부띠 장로(Th1:1)를 비롯하여 대략 21분 정도가 되었다. 지주의 아들(kuṭumbi -kassa putta)로 태어나거나 지주의 가문(kuṭumbiya-kula)에 태어나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도 에라까 장로(Th1:93) 등 여섯 분 정도가 된다. 이들도 여기 장자나 상인처럼 와이샤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꾸마라깟사빠 장로(Th2:41 {201})는 출가한 어머니가 낳아서 사원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가 상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모두 42분 정도가 와이샤 태생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④ 하천한 가문(ibbhakula) 태생
넷째,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sudda(Sk: śūdra, 수드라)라는 용어로 특정 장로를 설명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에 하천한 가문(ibbhakula)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용어로 검색을 해보면 고살라 장로(Th1:23) 등 대략 8분 정도가 나타난다. 처참한 가문(duggata-kula)에 태어난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 처참한 가문에 태어나서 똥만을 먹고 살았던 잠부까 장로(Th4:5 {283}), 분뇨 치우는 일을 했던 수니따 장로(Th12:2 {620})도 여기에 넣을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대략 11분 정도가 수드라 태생이라 여겨도 될 듯하다. 천민 출신으로 옮길 수 있는 짠달라(caṇḍāla)라는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에 한 번 나타나는데 특정 장로의 태생을 뜻하는 문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⑤ 유행승(遊行僧, paribbājaka) 출신 등
이렇게 분류해 보면 태생이나 계급으로는 바라문 태생 116분, 끄샤뜨리야 혹은 왕족 태생 58분, 장자나 상인 가문 태생이 42분, 하천한 가문 태생이 11분 정도가 되어 227분 정도를 사성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남은 32분 가운데는 코끼리 조련사 가문 출신 2분, 대신 가문 3분 등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가문의 언급이 없이 먼저 유행승이 되었다가 세존을 뵙고 세존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도 웃띠야 장로(Th1:30) 등 11분 정도가 된다.
⑸ 부처님 입멸 후 출가한 장로들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의 태생을 살펴보는 이 문맥에서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을 살펴보자.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삼부따 장로(Th4:7 {291}~{294}),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386}),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 에까위하리 장로(Th10:2 {537}~{546}) 네 분이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이다.
이 가운데 삼부따 장로(Th4:7 {291}~{294})는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뒤에 법의 창고지기인 아난다 존자의 곁에서 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후 100년이 되었을 때 웨살리의 왓지뿟따들(Vajjiputtakā)이 10가지 비법을 거머쥐고 공공연히 행하게 되자 까깐다까뿟따 야사 장로와 7백 명의 번뇌 다한 분들이 그 견해를 척파하였다. 그때 장로는 법에 대한 절박함(dhamma-saṁvega)으로 이 게송 네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22~123) 『테라가타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으로 볼 때 삼부따 장로의 이 게송들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100년 뒤에 있었던 이차합송 후에 읊은 것이라 여겨진다.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386})는 마우리야 왕조의 시조 짠다굿따(Candagutta, 짠드라굽따) 왕의 아들이면서 제3대 아소카 대왕의 부친이요 28년간(기원전 298~273) 왕으로 재위했던 빈두사라 왕(Bindusāra rājā)의 시대에 태어났다고 한다.(ThagA.ii.165) 그는 짠다굿따(짠드라굽따) 왕의 대신인 짜낙까(Cāṇakka) 때문에 그의 부친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듣고 두려움으로 출가하였으며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따소까 장로(Th2:25 {169}~{170})와 에까위하리 장로(Th10:2 {537}~{546})는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인 아소까 대왕의 동생들이었다. 주석서는 “아소까 대왕은 스승님께서 반열반하신 후 218년 뒤에 전 인도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하여 즉위한 뒤 자신의 동생인 띳사꾸마라(Tissa- kumāra)를 부왕(副王)의 위치(oparajja)에 놓았다.”(ThagA.ii.227)라고 적고 있는데 이 띳사꾸마라가 바로 에까위하리 장로이다.
그리고 이 문맥에서는 세존께서 입멸하시기 20년 전에 구족계를 받았고 계를 받은 지 120년 만에 2차결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삽바까미 장로(Th6:14 {453}~{458})와 부처님 계실 때 출가하였지만 입멸 후에 읊은 게송들도 실려있는 빠라빠리야 장로({920} 등)도 언급할 수 있다. 『테라가타』하나의 모음에 한 번(Th1:116), 스물의 모음에 두 번(Th20:2; Th20:10), 모두 세 곳의 모음에 게송이 실려서 전승되어 오는 빠라빠리야 장로(Pārāpariya thera)에 대해서는 본 해제 X-⑴-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음의 13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처럼 마우리야 왕조의 빈두사라 왕의 시대에 태어난 떼낏차까리 장로(Th6:2)와 아소까 왕의 동생들인 위따소까 장로(Th2:25)와 에까위하리 장로(Th10:2)의 게송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테라가타』는 삼차결집이나 더 늦게는 사차결집에서 지금 형태로 최종적으로 합송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떼낏차까리 장로(Th6:2 {381})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도 “빈두사라 왕의 시대에 이 장로가 태어났기 때문에 삼차합송(tatiya-saṅgīti)에서 이 게송들이 합송되었다고 알아야 한다.”(ThagA.ii.165)라고 적고 있다.
VIII.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테라가타』를 읊은 259분 장로들의 출가 시기와 출가 동기 등을 점검해 보는 것은 2,600년 후에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우리들, 더군다나 역자와 같은 출가자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고 큰 귀감이 된다. 그래서 259분의 아라한 장로들은 어떻게 출가하였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의 출가 시기부터 살펴보자.
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시기
①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 출가함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스님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마하가왓차 장로(Th1:12)의 행장에 언급되는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세존의 제자의 모습에 대해서 듣고 … 세존께 믿음이 생겨 출가하여’(ThagA.i.59)로 언급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적당한 나이가 되어 출가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몇 살을 뜻하는지, 이 적당한 나이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는 주석서나 복주서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수십 군데의 문맥을 보면 이 적당한 나이는 출가하기 적당한 나이이고 비구계를 받을 수 있는 나이이면서 성인이 되는 나이인 20살쯤으로 여기면 무방할 듯하다. 물론 이 ‘적당한 나이가 되어’라는 표현이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경우에는 ‘삼베다(tayo vedā)를 익힌 뒤 바라문의 기술(brāhmaṇa-sippa)에 통달하였다.’로 나타나고,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경우에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바라문의 기술에 통달하였다.’로 나타난다. 바라문들은 8살에 베다 학교에 들어가서 20살 정도까지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이 경우도 20살쯤으로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②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 출가함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다른 표현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가 있다. 이 표현은 숩삐야 장로(Th1:32)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대략 38분의 행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표현도 역시 스무 살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면서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숩삐야 장로(Th1:32)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그는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 스승님의 쌍신변을 보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교법에 출가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용어와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키워드로 『테라가타 주석서』를 검색해 보았다. 이 두 구절이 언급되는 장로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스무 살이나 스무 살이 조금 지난 나이, 즉 20대 초반에 출가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마하꼿티따 장로(Th1:2)부터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 {842})까지 대략 66분의 장로의 행장에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vayappatta)’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숩삐야 장로(Th1:32)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대략 38분의 행장에서는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viññutaṁ patta)’라는 구절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서 104분 정도의 장로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출가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나머지 장로들은 다 결혼한 뒤에 출가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리뿟따, 목갈라나, 아난다, 아누룻다 등등의 대장로들은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분들은 20살이나 그즈음의 나이에 출가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③ 결혼 여부
출가 전의 결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아내(dāra, dutiyikā)’와 ‘아들(putta)’ 등의 단어를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위라 장로(Th1:9) 등 대략 열다섯 분은 결혼을 한 뒤 출가를 하여 세속에 아내나 아들도 있었다. 아라한이 된 뒤 이들과 만나서 벌어진 일화도 몇 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도 결혼을 한 경우에 포함되어야 한다. 부부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서 밧다 까삘라니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이다. 밧다 까삘라니도 출가하여 비구니 아라한으로 이름을 떨쳤다.
④ 사미로 출가한 경우
259분 가운데 20세 전에 사미로 출가한 경우는 모두 17분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가운데 일곱 살에 출가한 분들은 열 분 정도인데 ① 답바 장로(Th1:5), ② 소빠까 장로(Th1:33), ③ 카디라와니야 장로(Th1:42 = 레와따 장로(Th14:1)) ④ 사누 장로(Th1:44), ⑤ 마나와 장로(Th1:73), ⑥ 꾸마라깟사빠 장로(Th2:41), ⑦ 수마나 장로(Th6:10), ⑧ 밧다 장로(Th7:3), ⑨ 소빠까 장로(Th7:4), ⑩ 상낏짜 장로(Th11:1)이다. 이분들은 모두 출가한 일곱 살에 아라한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의 배 속에 7년을 있었고 태어날 때도 7일을 난산(難產)의 고초를 겪었었으며(Ud2:8 §1) 난산 끝에 칠 일 만에 태어나자 바로 사리뿟따 존자와 말을 하였고(Ud2:8 §11) 사리뿟따 존자는 그를 데리고 가서 출가를 시켰으며 머리카락이 모두 다 잘랐을 때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고 하는(ThagA.i.148) 시왈리 장로(Th1:60)를 여기애 포함하면 모두 11분이 된다.
그 외 사미로 출가한 분들은 6분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 ① 시와까 사미(Th1:14)는 와나왓차 장로(Th1:14)의 여동생의 아들이었으며 사미 때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② 웃따라 장로(Th2:1)는 사리뿟따 존자를 시봉하였는데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웃따라 사미(Uttara sāmaṇera, Thag.ii.i)로 언급이 되고 있다. ③ 고따마 장로(Th2:9)는 16살에서 17살이 되던 때에 그가 모은 천 [냥]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청정범행을 파하고 살다가 스승님을 뵙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겼고 세존이 설하시는 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 바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④ 마하쭌다 장로(Th2:11)는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데 쭌다 사미(Cunda samaṇuddesa)로도 불리었다. ⑤ 밧다지 장로(Th2:22 {163})는 소년(kumā- ra)이었을 때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이 된 뒤에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 출가하였다.(ThagA.ii.39~40) ⑥ 아디뭇따장로(Th20:1)는 사미 때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나타난다.(ThagA.iii.12)
⑤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한 경우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로는 두 분이 주목되는데 한 분은 박꿀라 장로(Bakkula/Bākula thera, Th3:3)이고 또 한 분은 담마사와삐뚜(담마사와의 아버지) 장로(Th1:108)이다.
박꿀라 장로(Th3:3)는 80세에 출가하여 80년을 출가 생활을 하였으니 160세까지 살았다. 그래서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는 “박꿀라 장로는 160세를 살았는데 이분이 모두 가운데 가장 긴 수명을 가진 분(sabba-dīgh -āyuka)이지만 그도 200세는 살지 못했다.”(AAṬ.iii.183)라고 적고 있다.
담마사와삐뚜(담마사와의 아버지) 장로(Th1:108)는 120살에 출가하였다. 그는 담마사와라는 아들이 출가하고 나서 자신은 120살(vīsa-vassa-satika)이 되었다. 그는 ‘내 아들은 저렇게 젊었을 때 출가하였다. 그런데 왜 나는 출가하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스승님의 곁으로 가서 법을 듣고 출가하여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 그래서 본 『테라가타』에서 장로는 스스로 이렇게 읊고 있다.
“그런 나는 120살이 되어서
집 없이 출가하였다.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108})
이 문맥에서 잠부까 장로(Th4:5 {283})도 언급할 수 있어 보인다. 잠부까 장로는 55년을 똥만 먹고 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대한 고행자(mahā -tapa)요 최고로 바라는 것이 적은 자(param-appiccha)’라고 생각하여 그에게로 향하고 그에게로 기울게 되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가슴 깊은 항아리(haday-abbhantara ghaṇa)에서 밝게 타오르는 것처럼(padīpaṁ viya) 아라한됨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이 불타오르는 것(arahattāpanissaya pajjalanta)을 보시고 직접 그곳으로 가서 법을 설하신 뒤에 그가 예류과(sotāpatti-phala)에 확립되게 하셨다. 그런 뒤 ‘오라, 비구여.’라는 말씀으로 구족계를 받게 하셨으며(ehibhikkhu-upasampadāya laddhūpasampadaṁ)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게 하시어 아라한됨에 확립되게 하셨다고 한다. (ThagA.ii.119)
나이가 들어 아들과 아내로부터 천대를 받자 출가하였고 비구들은 나이가 많다고 거절을 하였지만 세존께서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로 출가하게 하신(ThagA.ii.12) 라다 장로(Th2:7)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로는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꼽히는 분이다.(A1:14:4-15)
⑵ 장로들의 출가 동기와 계기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장로들의 출가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는 장로들이 어떤 동기나 계기로 출가하였는지를 살펴보자.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259분 장로들 가운데 대부분은 부처님 계실 때 태어났기 때문에 부처님을 직접 뵙고 법문을 듣고 믿음이 생겨 출가하였거나 부처님의 위신력(anubhāva)을 보고 출가한 경우가 아주 많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와까(sāvaka), 즉 성문(聲聞)의 본보기가 되는 대표적인 경우들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분들은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표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아니라 사리뿟따 장로 등의 장로들을 보고 법문을 듣고 출가한 경우(수나가 장로(Th1:85) 등)도 있다.
주석서에 나타나는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문맥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와 ②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출가한 경우와 ③ 사리뿟따 존자 등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이다.
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
첫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는 대부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다(dhammaṁ suṇanto saddhaṁ paṭilabhitvā pabba -ji ― ThagA.i.24).’라거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다(dhammaṁ sutvā pabbajitvā ― ThagA.i.85).’라거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믿음이 생겨서 출가하였다(dhammaṁ sutvā paṭiladdhasaddho pabbajitvā ― ThagA.i. 32; dhammadesanaṁ sutvā paṭiladdhasaddho pabbaji ― ThagA.i.47 등).’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이 나타나는 곳은 수부띠 장로(Th1:1)부터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까지 모두 91분 정도의 장로들의 행장을 들 수 있다.
②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
둘째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 ‘부처님의 위신력(Buddhānubhāva)을 보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서 출가한 뒤’(니그로다 장로(Th1:21)부터 우다이 장로(Th16:2 {689})까지)라고 23분 정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나투신 쌍신변을 보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서’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부처님의 쌍신변을 보고 믿음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고디까 장로(Th1:51) 등 6분 정도가 된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믿음이 생겨 출가한 경우는 29분 정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③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
셋째는 사리뿟따 존자 등 다른 장로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경우로 모두 20군데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예를 들면, 라다 장로(Th2:7 {133})는 법의 대장군 사리뿟따 존자에 의해 출가하였고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증득하였다. 그리고 이시닷따 장로(Th1:120)는 서로 본 적은 없지만 서신으로 맺은 친구인 찟따 장자로부터 부처님의 덕행을 적은 교법에 대한 [서신]을 받아 보고 교법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마하깟짜나 장로의 곁에서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을 직접 뵙거나 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출가한 장로들이 120분이고 사리뿟따 존자 등의 부처님의 오래된 직계 제자들의 문하로 출가한 경우도 20군데 정도가 된다.
이처럼 140분에 달하는 축복받은 장로들은 부처님과 뛰어난 직계 제자를 직접 뵙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라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140분들이야말로 사와까(sāvaka), 즉 성문(聲聞)의 진수를 보여주는 분들이다.
<도표4> 친인척관계에 있는 장로들
번호
장로
친인척관계
관련 게송
1
수부띠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동생.
Th1:1
2
뿐나
꼰단냐 장로의 조카.
Th1:4
3
다사까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하인의 아들.
Th1:17
4
아바야
빔비사라왕의 아들. 어머니 빠두마와띠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됨.
Th1:26
5
뽀시야
상가마지 장로의 동생.
Th1:34
6
띳사
세존의 고모의 아들.
Th1:39
7
카디라와니야
= 레와따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레와따 장로(Th14:1)의 다른 이름임.
Th1:42;
Th14:1 {645}~{658}
8
시왈리
숩빠와사 청신녀의 아들.
Th1:60
9
위말라꼰단냐
암바빨리 기녀와 빔비사라 왕의 아들.
Th1:64
10
찬나
숫도다나 왕의 하녀의 아들. 세존과 같은 날 태어남.
Th1:69
11
수나가
사리뿟따 장로의 친구의 아들.
Th1:85
12
라다
아래 수라다 장로의 형임.
Th2:7 {133}~{134}
13
수라다
라다 장로의 동생. 뒤따라 출가함.
Th2:8 {135}~{136}
14
마하쭌다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Th2:11 {141}~{142}
15
난다
숫도다나 대왕의 아들.
세존의 이복동생.
Th2:19 {157}~{158}
16
시리마
시리왓다 비구의 형.
Th2:20 {159}~{160}
17
위따소까
아소까 대왕의 동생.
Th2:25 {169}~{170}
18
난다까
바라따 장로의 동생.
Th2:27 {173}~{174}
19
바라드와자
다음 깐하딘나 장로의 아버지.
Th2:29 {177}~{178}
20
깐하딘나
위 바라드와자 장로의 아들.
Th2:30 {179}~{180}
21
세나까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여동생의 아들.
Th4:6 {287}~{290}
22
라훌라
세존의 아들.
Th4:8 {295}~{298}
23
수마나
외삼촌 문하로 출가함.
Th5:4 {330}~{334}
24
나디깟사빠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동생.
Th5:6 {340}~{344}
25
가야깟사빠
우루웰라깟사빠 장로의 막냇동생.
Th5:7 {345}~{349}
26
위지따세나
두 외삼촌(세나, 우빠세나)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됨.
Th5:9 {355}~{359}
27
미가잘라
녹자모 강당을 지은 위사카 청신녀의 아들.
Th6:8 {417}~{422}
28
브라흐마닷따
꼬살라 왕의 아들.
Th6:12 {441}~{446}
29
시리밋따
시리굿따 장로의 조카.
Th8:2 {502}~{509}
30
깔루다이
까삘라왓투 대신의 아들. 세존과 같은 날 태어남.
Th10:1 {527}~{536}
31
에까위하리야
아소까 대왕의 동생.
Th10:2 {537}~{546}
32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사리뿟따 장로의 동생.
Th10:6 {577}~{586}
33
상낏짜
아디뭇따 장로의 외삼촌.
Th11:1 {597}~{807}
34
실라와
빔비사라 왕의 아들.
Th12:1 {608}~{619}
35
아디뭇따
상낏짜 장로(Th11:1)의 조카.
Th20:1 {705}~{725}
36
아누룻다
세존의 사촌.
Th20:9 {892}~{919}
37
아난다
세존의 사촌.
Th30:3 {1018}~{1050}
④ 세존이나 장로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
넷째,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서 언급해야 할 분들에는 먼저 출가한 장로 스님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가족이나 친지들 가운데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을 인연으로 하여 동생이나 조카나 아들 등이 되는 분들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친인척관계를 여기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37분 정도가 된다.
당연히 부처님의 아들이나 친지들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하며 그래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 장로(Th4:8 {295})와 동생인 난다 장로(Th2:19 {157}), 그리고 마부였던 찬나 장로(Th1:69)까지 이 영역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인 세 분의 장로들 즉 마하쭌다 장로(Th2:11 {141})와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 장로(Th10:6 {577})와 레와따 장로(Th14:1 {645} = 카디라와니야 장로(Th1:42))도 여기에 넣을 수 있고 그 외 여러 장로들을 넣을 수 있는데 이런 조건으로 검색해 보면 대략 37분 정도를 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본서에 나타나는 259명 장로들 가운데 대략 37분 정도가 친인척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친인척관계에 있는 장로들을 정리하면 <도표4>과 같다.
⑤ 그 외의 인연으로 출가한 경우
앞에서 언급한 180여 분(90+30+20+40)을 제외한 나머지 80분 정도의 장로들도 여러 가지 인연이나 계기로 출가를 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해골을 두드려 죽은 자들의 태어나는 곳을 알아내었던 왕기사 장로(Th70:1 {1209}~{1,279})와 미가시라 장로(Th2:31 {181}~{182})는 아라한들의 태어나는 곳을 아는 주문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였고 삘린다왓차 장로(Th1:9)는 자신이 호지하고 있던 쭐라간다라 주문이 듣지 않자 마하간다라(Mahā-Gandhāra) 주문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
이상으로 259분 아라한 스님들이 출가하게 된 인연을 정리하여 보았다. 이제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깨달음을 실현하여 아라한이 되었는가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⑴ 절박함(saṁvega)
① 절박함(saṁvega)이란 용어의 빈도수
『테라가타』가 아닌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를 하나만 들라면, 그리고 역자의 마음에 가장 큰 감동을 준 단어를 하나만 들라면 역자는 ‘절박함(saṁvega)’을 들고 싶다. 역자의 마음을 가장 움직인 키워드가 절박함(saṁvega)과 절박함이 생겼음(saṁvega-jāta)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saṁveg’로 단순 조회를 해보면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saṁvega라는 술어는 대략 120번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회되었다. 이 가운데 34번 정도는 ‘절박함이 생긴’으로 옮겨지는 saṁvega -jāta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박함이 생김’으로 옮기는 sañjāta-saṁvega로도 27번 정도 검색이 되었다. 나아가서 saṁvejanīya(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나 saṁvejetukāma(절박함을 일으키기 위한)나, saṁvejita(절박함을 일으킨)이나 동사 saṁvejeti(절박함을 일으키다)를 염두에 두고 ‘saṁvej’로 검색하면 16번 정도가 조회된다. 역자가 인용하여 옮긴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대략 87분 장로들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이 절박함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② ‘절박함’이란 무엇인가
‘절박함’으로 옮긴 saṁvega는 saṁ+√vij(떨다, to tremble, vijjati, Sk: vijate/ti, 6류)의 사역 동사 saṁvejeti의 남성명사이다. 이 용어는 삼장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PED는 ‘agitation, fear anxiety; thrill; re- ligious emotion caused by contemplation of the miseries of this wo- rld’로, NMD와 『청정도론』은 ‘sense of urgency’로, BDD는 ‘anxiety; agitation; religious emotion’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절박함’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saṁvejeti의 과거분사인 saṁvigga(절박해진, 절박한), saṁvejita(절박함을 일으킨)와 가능법 분사(potential participle)인 saṁvejanīya(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와 saṁvejetukāma(절박함을 일으키기 위한)도 삼장에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띠웃따까』「기쁨 경」(It2:10)에서 번뇌를 멸진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절박함을 들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머물고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한 원인을 충족하였다. 무엇이 둘인가?
①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에 대한 절박함과 ② 절박함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노력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머물고 번뇌들을 멸진하기 위한 원인을 충족하였다.”(It2:10 §1)
이 경에 해당하는 『이띠웃따까 주석서』는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악처의 괴로움(apāya-dukkha), 과거의 윤회에 뿌리박은 괴로움(anāgate vaṭṭamūlaka dukkha), 미래의 윤회에 뿌리박은 괴로움, 현재의 음식을 구함에 뿌리박은 괴로움(paccuppanne āhārapariyeṭṭhimūlaka dukkha)이라는 이 [여덟 가지] 절박함의 토대들(saṁvega-vatthūni)이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saṁvejanīyaṭṭhānāni)’이 된다.”(ItA.i.115~116)라고 설명하고 있다.
『담마상가니』제3편「간결한 설명 편」(nikkhepa-kaṇḍa)은 “1376. ‘절박함(saṁvega)’이란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두려움, 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saṁvejanīya ṭhāna)’(ma2-139-a)란 태어남, 늙음, 병, 죽음이다.”로 절박함과 절박함을 일으키는 토대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주석서』도 생‧노‧병‧사에 대한 두려움(bhaya)이 절박함(saṁveg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DA.iii.984)
한편 생‧노‧병‧사가 거듭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오도송에서 ‘아네까자띠 삼사라(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anekajāti-saṁsāraṁ)’로 말씀하신다.(본서 제2권 {184}의 해당 주해 참조) 이렇게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치달려 온 것에 대한 두려움(bhaya)을 내는 것이 바로 니까야와 주석서들에서 말하는 이 절박함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4대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이러한 절박함을 일으키고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 4대 성지를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saṁvejanīya ṭhāna)라고「대반열반경」(D16)은 강조하고 있다.(D16 §5.8)
그리고 이것은 비구를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saṁsāre bhayaṁ ikkha -tī ti bhikkhu, Vis.I.7; saṁsāre bhayassa ikkhanakā, ThagA.i.81)로 정의하는 상좌부 주석서 전통과도 연결되어 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야말로 생노병사에 대한 두려움을 보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절박함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비구이기 때문이다. 장로들의 오도송, 즉 구경의 지혜를 담은 게송들을 모은 이 『테라가타』가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도 바로 이 윤회와 생사에 대한 절박함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임을 담마빨라 스님은 많은 게송을 주석하고 많은 장로들의 행장을 정리하여 드러내면서 이 절박함을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역자가 파악한 담마빨라 스님의 가장 큰 뜻이라고 생각한다.
③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절박함’
『테라가타 주석서』가 아닌 『테라가타』의 게송 안에서 saṁvega라는 용어는 난다까 장로(Th2:27)의 {173} 게송 등 모두 5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동사 saṁvejesi로 한 곳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우사바 장로(Th2:39)는 이렇게 읊고 있다.
“코끼리의 몸통에서 내려오자
그때 나에게 절박함이 생겼다.
그런 나는 그때 오만하였다가 곧 고요해졌나니
나는 번뇌의 멸진을 얻었다.”({198})
그리고 마하빤타까 장로(Th8:3 {510}~{517})의 {510}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나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saṁvego ahu).’는 말은 수치심과 함께하는(sahottappa) 지혜가 생겼다는 말이다.”(ThagA.ii.215)라고 설명하고 있다.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의 {791}을 설명하면서 주석서는 “‘그때 나는 절박함을 얻었습니다(saṁvegaṁ alabhiṁ tadā).’라고 하였다. 스승님의 곁에서 법을 듣는 시간에 존재 등(bhavādika)에 대해서 절박함을 얻었다는 말이다.”(ThagA.iii.41)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서 낌빌라 장로(Th2:18)의 {155}를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절박함이 생겨서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비구들이 진정한 도반들(sahāyak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절박함이 없는 비구는 진정한 출가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석서는 설명한다.
“절박함이 생겨 출가하여(saṁveguppatti-pabbajjā) 사문의 법을 실천하며(samaṇa-dhamma-karaṇa) 함께 머무는 자들(saṁvāsā)과 함께 길을 가기 때문에(ayanato), 나아가기 때문에(pavattanato) ‘도반들(sahāyakā)’이다.”(ThagA.ii.31)
④ 절박함으로 출가함과 절박함으로 깨달음을 실현함
『테라가타 주석서』전체에서 대략 120번 정도 나타나는 이 saṁvega(절박함)라는 용어는 크게 두 가지 문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출가할 때의 절박함으로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이고 둘째는 절박함에 사무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경우이다.
첫째, 담마빨라 스님이 서술하고 있는 259분 장로 스님들의 행장을 통해서 보면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스님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직접 삶에서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도 많다. 이처럼 출가할 때 절박함을 얻어 출가한 경우는 대략 35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위라 장로(Th1:8)는 감각적 쾌락들(kāmā)과 윤회(saṁsāra)에서 위험(ādīnava)을 보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 -jāta) 출가하였다.(ThagA.i.52) 그리고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던 아바야 장로(Th1:28)는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시해되자 절박함이 생겨(sañjāta- saṁvega) 출가하였다.(ThigA.39)
둘째, 절박함에 사무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경우는 대략 27분 정도인 듯하다. 예를 들면 수망갈라 장로(Th1:43)는 환속하려고 친척들의 마을로 가는 도중에 갈대를 묶고 들판을 경작하면서 더러운 옷을 입고 먼지를 덮어쓴 채 바람과 열기에 메마른 농부들을 보고 ‘이들은 생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구나.’라고 절박함을 얻게 되었고 어떤 나무 아래에 가서 멀리 여읨(한거, viveka)을 얻은 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도의 순서(maggapaṭipāṭi)대로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 A.i.118)
깝빠따꾸라 장로(Th2:40 {199}~{200})는 처참한 가문(duggata-kula)에 태어났으며 넝마 조각을 옷으로 삼고 거지처럼 살다가 어떤 번뇌 다한 장로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였다. 그는 일곱 번을(sattakkhattuṁ) 환속하였다(uppabbaji). 비구들은 그의 그런 행동을 세존께 말씀드렸고 그러던 어느 날 깝빠따꾸라 비구는 법의 회합(dhamma-sabhā)에서 회중(會衆)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런 그를 호되게 꾸짖으시는 게송 두 개({199}~{200})를 읊으셨다. 세존의 질책으로 뼛속을 파고드는 충격처럼, 사나운 코끼리가 길을 달려 내려오는 것처럼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 vega)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 A.ii.66~67)
그리고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와 절박함(saṁvega)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13번 정도가 되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이처럼 절박함으로 출가하였거나 절박함으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로 주석서는 대략 62분을 들고 있다.
그 외 25분 정도의 행장에서는 이 절박함이라는 용어가 다른 문맥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쭐라가왓차 장로(Th1:11)는 꼬삼비(Kosambi)의 비구들의 분쟁이 생겼을 때 그 비구들이 분쟁에 몰두하여 그들의 이로움이 파멸되는 것을 보고 법에 대한 절박함을 얻어(dhammasaṁvegappatta) {11}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58)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출가하면 제일이겠지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후대의 출가자들에게도 절박함은 수행의 가장 크고 튼튼한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 선종의 많은 조사 스님들도 간절 절(切) 자를 강조하셨다. 역자가 saṁvega를 절(切) 자를 넣어서 절박(切迫)함으로 옮긴 데는 역자가 대불련(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부산지부 교화부장을 하면서 화두를 받은 이후로 항상 옆에 두고 읽었고 그래서 출가를 결단하게 된 저 『선관책진』(禪關策進)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⑵ 마음챙김(sati)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마음챙김’으로 옮기고 있는 sati(Sk: smṛti)는 바라문교나 자이나교를 포함한 외도들의 가르침이나 수행 체계에는 강조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smṛti는 기억이나 기억을 통해서 기억해 낸 선조들의 가르침이나 법령 등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마누 법전으로 알려진 『마누스므르띠』등이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사띠는 그들의 기본 교학이나 수행 체계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초기불교의 핵심 수행 용어라 할 수 있는 마음챙김은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 가운데서 sati나 과거분사 sata 등으로 8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sati를 ‘∪sati’로 검색하면 27번 정도가 나타나고 빈 칸(∪)을 띄우지 않고 ‘sati’로 검색을 하면 126번이 나타나는데 bhāsati, payiru- pāsati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번역에서 폰트의 크기를 구별해서 조회하니 원문에 모두 34번이 조회되었다. 역자는 sati를 마음챙김으로만 옮기기 때문에 『테라가타』빠알리 원문에 마음챙김을 뜻하는 sati는 34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sati의 과거분사 sata의 주격인 sato 등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한글 번역에서 폰트의 크기를 구분해서 ‘마음챙’으로 검색을 하면 80번 정도가 나타난다. 여기에다 계속해서 생각함으로 옮기는 anusati 다섯 번을 포함시키면 모두 85번 정도가 된다.
그리고 폰트와 관계없이 한글 번역으로만 ‘마음챙김’으로 검색하면 83번 정도가 나타나고 ‘마음챙’으로 검색하면 125번 정도가 나타난다. 이것은 주석서를 주해로 옮기면서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 85번 가운데에는 사념처, 즉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뜻하는 마음챙김의 확립(sati- paṭṭhāna)은 다섯 곳에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소비따 장로(Th2:23)의 {166} 한 곳에서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attāro satipaṭṭhāna)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몸에 대한 마음챙김(kāyagatā sati, 혹은 kāya-gatā-sati 등)도 게송의 다섯 군데 정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마 1,279개 게송들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용어는 dhamma일 것이다. 179번이 검색되었다. 이외에 아주 많이 나타나는 용어들 가운데 sati는 몇 번째로 많이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괴로움과 고통 등으로 옮겨지는 dukkha라는 단어가 모두 80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봐도 아주 많은 빈도수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아라한 장로들은 마음챙김을 강조하고 있다. 마하가왓차 장로(Th1:12)는,
“통찰지의 힘을 가졌고 계행과 서계를 구족하였으며
삼매에 들고 禪을 기뻐하고 마음챙김을 가져
이치에 맞는 적절한 음식을 먹으면서
탐욕 여읜 그는 여기서 바른 시간을 기다려야 하노라.”({12})
라고 출가자의 삶과 수행의 핵심을 읊고 있다. 그리고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고 읊고 있는데 주석서는 장로가 아라한됨을 얻고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to) 읊은 게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ThagA.i.78) 이 외에도 마음챙김은 장로들이 읊은 게송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⑶ 염오(nibbidā)
염오(nibbidā)는 『상윳따 니까야』에만 500번 정도 나타나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정형구’인 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② 무상‧고‧무아 ③ 염오 ④ 이욕 ⑤ 해탈 ⑥ 구경해탈지의 정형구의 세 번째인 염오에 해당한다. 여섯 단계의 과정에 대해서는 『초기불교 이해』54~55, 58, 137, 139이하, 174이하, 177이하, 191~192, 209쪽 등을 참조하고, 『상윳따 니까야』제4권 해제 §3과 제3권 해제 §3을 중심으로도 살펴볼 것을 권한다.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등은 염오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염오(nibbidā, nis+√vid1, vedeti, to know, to feel)’란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드러내고 있다.
강한 위빳사나란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④ 공포의 지혜(bhayatūpaṭṭhāne ñāṇa)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ānupassane ñāṇa) ⑦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 ⑨ 상카라[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SA.ii. 53, 『상윳따 니까야』제2권「의지처 경」(S12:23) §4에 대한 주석.)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는 “강한 위빳사나는 ④ 공포의 지혜(bhayat-ūpaṭṭhāne ñāṇa),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a-anupassane ñāṇa), ⑦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 ③ 무너짐의 지혜(bhaṅgañāṇa)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AAṬ.iii.390)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 스님의 저술인 『청정도론 복주서』는 “⑥ 염오의(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nibbidānupassanāñāṇa)부터가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이며 그 이전은 약한 위빳사나(dubbala-vipassanā)라고 설명하고 있다.(Pm.i.324)
즉 열 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⑥ 염오의 지혜(nibbidānupassanā- ñāṇa)와 ⑦ 해탈하고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와 ⑧ 깊이 숙고하여 관찰하는 지혜(paṭisaṅkhānupassanā-ñāṇa)와 ⑨ 형성된 것들(상카라, 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와 ⑩ 수순하는 지혜(anu- loma-ñāṇa)의 다섯 가지 지혜가 강한 위빳사나이며 그 이전 단계인 ① 명상의 지혜(sammasana-ñāṇa)와 ② 생멸의 지혜(udayabbaya-ñāṇa)와 ③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bhaṅgānupassanā-ñāṇa)와 ④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bhayatupaṭṭhāna-ñāṇa)와 ⑤ 위험함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a-anu- passanā-ñāṇa)의 다섯은 약한 위빳사나라는 말이다.
『테라가타』빠알리 원문에서 염오는 명사 nibbidā(염오)로 7번 정도가 나타나고 동사 nibbindati(염오하다)로 세 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나가사말라 장로(Th4:1 {267}~{270})는 탁발을 가다가 큰 도로의 한 가운데서 춤추는 여인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 생겨났다.
위험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염오가 확립되었다.”({269})
그리고 {270}에서 ‘그것 때문에 나의 마음은 해탈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주석서는 여기서 염오는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라고 밝히고 있다. (ThagA.ii.111)
부처님의 첫 번째 출가 제자요(A1:14:1~80)「초전법륜 경」(S56:11)을 듣고 맨 먼저 예류과를 얻은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688})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송에서 염오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통찰지로 볼 때
괴로움을 염오하나니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도이다.”({676}~{678}; Dhp {277}~{279})
⑷ 위빳사나 수행
이상으로 출가와 깨달음과 그리고 도와 과의 실현에서 가장 중요한 절박함(saṁvega)과 마음챙김(sati)과 염오(nibbidā)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이제 259분 장로들은 어떤 수행과 어떤 인연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하여 아라한이 되었는가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259분의 장로들의 행장 가운데 197분 정도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이번 번역을 하면서 이 한글 번역을 토대로 Foxpro로 ‘테라가타 한글 번역 데이터 베이스’ 자료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한글 ‘위빳사나’로만 검색을 하면 1,279개 게송을 포함한 전체 자료에서는 280번이 나타나고, 장로들의 행장에서는 197번이 나타났다. 즉 259명 장로들 가운데 62명을 제외한 분들이 이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이 위빳사나라는 용어는 ① 위빳사나의 업, ② 위빳사나의 확립, ③ 위빳사나의 증장, ④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함 등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장로들이 위빳사나를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음을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담마빨라 스님은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다음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①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용어는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vipassanāya kammaṁ karonta)’이다.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는 vipassanāya kam -maṁ karonto를 직역하여 옮긴 것이다.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여기서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로 직역한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 karoti라는 표현이 59번 정도가 나타나고 『테리가타 주석서』에도 20번 정도가 나타나고 vipassanākammaṁ karontā라는 표현도 몇 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다.
복주서에는 이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karoti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지 않지만 수행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kammaṁ karontassa(업을 행하면서) 혹은 kammaṁ karoti(업을 짓는다)를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업을 행하면서(kammaṁ karontassa)’라는 것은 수행에 몰두하는 업을 지으면서(bhāvanā-anuyoga-kammaṁ karontassa)라는 뜻이다.”(MAṬ.ii.268)
“‘업을 짓는다(kammaṁ karoti).’는 것은 수행하는 업을 짓는다는 뜻이다(yoga-kammaṁ karoti).”(MAṬ.ii.212)
그러므로 이 vipassanāya kammaṁ karonto는 ‘위빳사나 수행에 몰두하면서’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위빳사나를 증장하여(vipassanaṁ brūhetvā)
둘째, 위빳사나를 증장하여(vipassanaṁ brūhetvā) 아라한과를 얻었거나 세 가지 명지를 얻었거나 육신통을 얻었다는 언급이 58군데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쭐라가왓차 장로(Th1:11)와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는 ‘위빳사나를 증장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vipassanaṁ brūhetvā arahattaṁ pāpuṇi, Thag A.i.58)’라고 나타나며, 시따와니야 장로(Th1:6)의 행장에서는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세 가지 명지(vijjāttaya)를 실현하였다(vipassanaṁ vaḍḍhetvā vijjā -ttayaṁ sacchākāsi, ThagA.i.47).’라고 나타난다.
③ 위빳사나를 확립하여(vipassanaṁ paṭṭhapetvā)
셋째, 위빳사나를 확립하여(vipassanaṁ paṭṭhapetvā)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언급은 38번 정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사까 장로(Th1:17)의 행장과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ThagA.i.74)라고 언급하고 있다.
④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vipassanaṁ ussukkāpetvā)
그리고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vipassanaṁ ussukkāpetvā)라고 언급하는 곳도 29군데 정도 된다. 예를 들면 뿐나 장로(Th1:4)와 여러 장로들의 행장에서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vipassa- naṁ ussukkāpetvā arahattaṁ pāpuṇi, ThagA.i.74).’라고 나타나고 있다.
그 외 웃띠야 장로(Th1:30)와 사미닷따 장로(Th1:90) 등 8분 정도도 위빳사나 수행을 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⑸ 禪 수행과 사마타 수행
불교 수행, 특히 초기불교 수행도 禪으로 음역을 한 jhāna, 즉 禪 수행을 뺄 수 없다. 역자가 인용하여 옮긴 『테라가타 주석서』를 포함하여 『테라가타』1/2/3권 전체에서 ‘禪’이라는 번역어로 검색하면 67번이 쓰인 것으로 조회가 되고, 한글로 옮긴 『테라가타』1/2/3권 전체에서 빠알리어 jhān(a)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면 59번 정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마타로 옮기는 ‘samath’로는 17번이, 증득이나 등지로 옮기는 ‘samāpatti’로는 44번이, ‘bhāvan(ā)’로는 58번이 쓰인 것으로 검색이 되었다. 그리고 명상주제로 옮기는 ‘kammaṭṭhān(a)’로 검색을 하면 30군데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주석서를 인용한 것까지 포함한 것이다. samāpatti나 kammaṭṭhāna 등은 『테라가타』원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장로들의 행장 안에서만 검색하면 禪으로는 40번, 빠알리어 jhān(a)로는 33번이 나타났다. samath로는 10번, samāpatti로는 27번, bhāvanā로는 25번, kammaṭṭhāna로는 20군데 정도가 된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이것을 『테라가타』빠알리 원문 안에서만 검색하면 jhāna나 jhāne로는 8번이 나타났고 samath로는 9번, bhāvanā로는 1번이 나타났으며 samāpatti나 kammaṭṭhāna는 게송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 이러한 수행 용어에 대한 주석서의 언급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용어들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jhāna와 samatha가 특정 장로의 행장에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5번 정도 있으며 주석서의 행장들 가운데 vipassanā와 samāpatti가 함께 나타나는 장로들의 경우도 9번이 되었다. 주석서에서 vipassanā와 jhāna가 함께 나타나는 장로들의 경우도 10번이 되었다. 물론 마음챙김(sati)도 주석서의 장로들의 행장에 41번 정도 나타나고 알아차림(sampajāna)도 6번 정도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taca-pañcaka-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도 주석서에 나타나는 세 분의 장로들 행장에 있고, 더러움[不淨]의 명상주제(asubha-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도 세 분의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이 정도로만 살펴보아도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데는 위빳사나 수행과 禪이나 사마타나 명상주제 등의 수행을 통해서라고 주석서는 강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여기서 언급한 주석서의 수행을 통한 문맥의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① 禪(jhāna)의 문맥
급고독 장자의 동생인 수부띠 장로(Th1:1)는 자애와 함께하는 禪(mettā- jhāna)을 닦아서 아라한이 되었다.(ThagA.i.24) 그는 주로 숲에서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소빠까 장로(Th1:33)는 공동묘지(susāna)의 장작더미(citaka) 위에서 태어났고 바로 어머니는 죽었으며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부처님을 뵙고 출가하였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특별히 자애 수행(mettā-bhāvanā)에 몰두하게 하셨고 그는 자애의 명상주제(mettā-kammaṭṭhāna)로 묘지에서 살면서 자애와 함께한 禪(mettā-jhāna)을 얻은 뒤 그 禪을 기초로 하여(pādakaṁ katvā) 위빳사나를 증장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이 되어서 공동묘지에 사는 비구들에게 자애 수행의 방법(mettā-bhāvanā-vidhi)을 보여주면서 {33} 게송을 말하였다고 한다.(ThagA.i.99~100)
깡카레와따 장로(Th1:3)도 禪을 기초로 하여(pādakaṁ katvā)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ThagA.i.37)
마하빤타까 장로(Th8:3 {510})는 네 가지 무색계 禪(arūpajjhāna)을 얻은 자가 되어 거기서 출정하여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② samatha의 문맥
주석서에서는 뿐나 장로(Th1:70), 멘다시라 장로(Th1:78), 키따까 장로(Th1:104), 왓차곳따 장로(Th1:112), 시리마 장로(Th2:20 {159}), 미가시라 장로(Th2:31 {181})의 여섯 분의 장로의 행장을 설명하면서 사마타 수행을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이분들은 위빳사나 수행도 당연히 하였고 이러한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아라한이 된 분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여섯 분들은 모두 육신통을 구족한 분들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제4선에 능통해야 신통의 지혜가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소나 꼴리위사 장로(Th13:1)는 {639}에서 자신이 사마타를 닦았고 삼명을 갖추었음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교법에 기뻐하며 머물렀다.
가장 높은 이치를 증득하기 위해서
사마타를 닦았다.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639})
③ samāpatti의 문맥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 안에는 증득[等至, 等持]으로 옮기는 samā -patti라는 술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과의 증득(phala-samāpatti)이 15번 정도 언급되고 있고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 八等持, aṭṭha samāpattiyo]이라는 문맥으로 다섯 군데 정도에 나타나며 증득의 행복(samāpatti-sukha)으로도 나타나는 등 대부분이 수행을 통한 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증득이나 삼매를 통한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여덟 가지 본삼매의 증득 등의 문맥에서 쓰이고 있다.
⑹ 삼명(三明, te-vijjā)과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
이 문맥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육신통에 대한 것이다. 『청정도론』등 주석서 문헌에 의하면 신통은 제4선의 증득을 토대로 나투게 된다. 그래서 제4선을 [신통지의] 기초가 되는 禪(pādaka-jjhāna)이라 부른다.( 『청정도론』XII.57 이하 참조)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은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여섯 가지 신통을 말하고, 삼명 즉 세 가지 명지[三明, te-vijjā]는 이 가운데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셋을 말한다. 『청정도론』은 “‘명지(vijjā)’란 세 가지 명지[三明, te-vijjā]도 있고 여덟 가지 명지[八明, aṭṭha vijjā]도 있다. 세 가지 명지는 『맛지마 니까야』「두려움과 공포 경」(M4)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하고 여덟 가지는 『디가 니까야』「암밧타 경」(D3 §2.2 = D2 §§83~98)에서 설한 대로 알아야 한다. 이처럼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 D2 §83)와 마음으로 [만드는 몸의] 신통(manomay-iddhi, D2 §85)과 함께 여섯 가지 신통지[六神通]를 더하여 여덟 가지의 명지를 설하셨다.”( 『청정도론』VII.30)라고 정리하고 있다,
『청정도론』의 설명처럼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육신통(六神通, chaḷ-abhiññā) 가운데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셋을 세 가지 명지(te-vijjā) 즉 삼명(三明)이라 하며(M4 §28 등), 이 육신통에다 위빳사나의 지혜와 마음으로 [만든 몸의] 신통을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 명지(aṭṭha vijjā), 즉 팔명(八明)이 된다. 이 여덟 가지 명지는 『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D2) §83 이하와 『맛지마 니까야』제3권「사꿀루다이 긴 경」(M77) §§29~36에 비유와 함께 나타난다.
육신통(chaḷabhiññā)이라는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117번 정도가 언급되는 것으로 검색이 되었지만 『테라가타』게송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신에 게송 안에서는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의 세 가지 명지, 즉 삼명(三明, te-vijjā)이라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삼명을 뜻하는 tisso vijjā로는 23번 정도가 조회되었고 세 가지 명지를 가진 자를 뜻하는 tevijja로는 10번 정도가 언급이 되고 있다. 이처럼 삼명은 33번 정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한 장로들이 스스로 삼명을 구족하였음을 밝히는 사자후인 것이다.
이 가운데 삼명을 뜻하는 tisso vijjā(세 가지 명지)는 20번 정도가 “세 가지 명지를 얻었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라는 정형구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수간다 장로(Th1:24)는 출가하여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 7일 만에 삼명을 얻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ThagA.i.84~85) 이렇게 읊었다.
“출가하여 안거를 하였나니
법이 수승한 법임을 보라.
세 가지 명지[三明]를 얻었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24})
한편 여기서 ‘세 가지 명지[三明]를 얻었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라는 이 정형구는 『테라가타』안에서 원문으로 확인해 보면 20번 정도가 나타나고 있고, “나는 스승님을 섬겼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pariciṇṇo mayā satth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는 10번 정도가 나타나며 “나는 참된 목적을 성취하였고 /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sadattho me anuppatto,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는 3번 정도가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 수간다 장로(Th1:24) {24}의 해당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⑺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통한 수행의 언급
그리고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통한 수행의 언급은 20분 정도에 나타난다. 물론 명상주제를 통해서 위빳사나를 한 경우가 13곳에 나타나므로 이 경우에는 모두 위의 위빳사나에 대한 검색에 포함된다. 위빳사나의 언급 없이 명상주제를 가지고 수행하였다는 언급은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7군데가 된다. 그러나 『테라가타』안에서 명상주제로 옮기는 kammaṭṭhāna라는 용어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색이 된다.
⑻ 수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
한편 『테라가타 주석서』에는 위빳사나 수행 등에 대한 언급이 없이 열심히 정진하여서 아라한이 된 것으로 정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위라 장로(Th1:8) 등의 여섯 분 정도가 나타나는 듯하다.
그리고 위빳사나 등의 수행에 대한 언급 없이 세존의 법문을 듣거나 세존을 뵙거나 세존의 자애로우신 설법 등의 힘으로 아라한이 된 경우도 11번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7분은 경의 가르침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우루웰라깟사빠 장로(Th6:1 {375})와 두 동생 장로와 벨랏타시사 장로(Th1:16)는「불타오름 경」(S35:28)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으며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는「무아의 특징 경」(S22:59)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런데 9분 정도의 장로들의 경우에는 수행에 대한 언급이나 세존을 친견함 등의 언급이 없이 그냥 아라한이 되었다고 『테라가타 주석서』는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와 그의 형 따뿟사(Tapussa)는 부처님과 법에 귀의를 하여(그때는 아직 승가가 없었음) 첫 번째로 재가 신도(upāsakā)가 된 분들이다.
세존께서 깨달음을 실현하신 뒤 여덟 번째 칠 일에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Rājāyatana-mūla)에서 머물고 계실 때에 발리야(발리까) 장로(Th1:7)는 아직 출가하기 전에 상인이었을 때 그의 형 따뿟사(Tapussa)와 함께 오백 대의 수레에 물품을 싣고 장사(vāṇijjā)를 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존께 공양을 올렸고 부처님과 법에 귀의를 하여 첫 번째로 재가 신도(upāsakā)가 되었다. 그들 가운데 따뿟사(따빳수)는 예류과에 확립되어 재가 신도가 되었고 발리야(발리까)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ThagA.i.50~51)라고 주석서에 설명이 되어있다.
아바야 장로(Th1:26)도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형인 아자따삿뚜에 의해서 시해되자 절박함이 생겨(sañjātasaṁvega)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수행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ThagA.i.88)
⑼ 삭발할 때 아라한과를 얻은 장로들
그런데 『테라가타 주석서』에 나타나는 각 장로들의 행장에 의하면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khuraggeyeva) 아라한과를 얻은 장로들도 일곱 분이 된다. 그들은 답바 장로(Th1:5), 산자야 장로(Th1:48), 수야마나 장로(Th1:74), 고따마 장로(Th2:9 {137},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 깝빠 장로(Th10:5 {567}), 상낏짜 장로(Th11:1 {597})이다. 이 가운데 답바 장로(Th1:5)와 깝빠 장로(Th10:5 {567})와 상낏짜 장로(Th11:1 {597})는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taca-pañcaka-kammaṭṭhāna)를 먼저 받았으며 삭발할 때 아라한이 되었다고 행장에 나타나고 있다. 모태에서 7년을 머무른 뒤 태어나서 바로 사리뿟따 존자와 대화를 하고 사리뿟따 존자가 출가를 하게 하였다는 신비한 인물인 시왈리 장로(Th1:60)까지 여기에 포함시키면 모두 8분이 된다. 이들은 바로 아라한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곱 살에 출가한 장로들도 답바 장로(Th1:5)와 상낏짜 장로(Th11:1 {597}) 등의 11분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I-⑴-④ 사미로 출가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수마나 장로(Th6:10)는 {429}에서 ‘태어난 지 일곱 살이었던 내가 신참으로 출가하였을 때 / 큰 신통을 가진 용왕을 신통으로 이기고서’({429})라고 하여 자신이 7살에 출가하였음을 직접 밝히고 있다.
반면에 아주 늦게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장로들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I-⑴-⑤ 아주 늦은 나이에 출가한 경우를 참조하기 바란다.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테라가타』에는 259분의 아라한 장로들이 읊은 1,279개의 게송이 담겨있다. 이 장로들이 어떻게 해서 아라한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앞의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에서 살펴보았다. 부처님의 직계 제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 259분의 장로들은 어떠한 배경과 어떠한 인연과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 게송들을 읊었을까를 살펴보는 것도 『테라가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먼저 『테라가타 주석서』의 입장을 살펴보자.
⑴ 게송들을 읊은 이유
『테라가타 주석서』는 모두(冒頭)에서 서문(ganthārambhakathā)을 읊은 뒤 장로들이 게송들을 읊은 분명한 이유(pākaṭa-karaṇattha)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테라가타』는 수부띠 장로 등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득한 대로 도와 과의 행복(maggaphalasukha)을 반조한 뒤(pacca- vekkhitvā) 어떤 것은 ⓐ 감흥어(udāna)를 통해서, 어떤 것은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samāpatti-vihāra-paccavekkhaṇa)을 통해서, 어떤 것은 ⓒ 질문(pucchā)을 통해서, 어떤 것은 ⓓ 반열반할 때에(parinibbāna- samaye) 교법(sāsana)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를 설명함(niyyānika- bhāva-vibhāvana)을 통해서 말하였는데 그 모두는 합송할 때에(saṅgīti- kāle) 한 곳에 모아서 『테라가타』라고 법을 합송하는 분들(dhammasaṅgāha -kā)에 의해서 합송되었다.”(ThagA.i.2)
이처럼 주석서는 여기 『테라가타』에 실린 259분의 장로들이 이 1,279개 게송들을 읊은 배경을 4가지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본 해제 V-⑹ 『테라가타 주석서』의 중요성의 넷째에서 주석서를 참조하여 장로들이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아래의 11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았다.
그것은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 ② 감흥어로 읊은 것 ③ 사자후를 토한 것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것 ⑥ 반열반을 알리는 것 ⑦ 특별한 일화를 배경으로 한 것 ⑧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 등이다.
이 가운데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것은 위에서 인용한 주석서(ThagA. i.2)의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을 통해서와 ③ 사자후를 토한 것에 배대가 되고 ④ 비구들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과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은 것은 바로 위에서 인용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 질문(pucchā)을 통해서’에 배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⑨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것 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도표로 정리하였다.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은 위 주석서의 ⓐ 감흥어나 ⓑ 자신의 증득에 머묾을 반조함 등과 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역자가 정리해 본 이 열한 가지 정도에 대해서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여 읊음
역자는 Foxpro에서 만든 ‘테라가타 데이터 베이스’에서 새로운 필드를 만들어 ‘구경의 지혜’와 ‘감흥어’와 ‘사자후’ 등의 키워드로 259분 장로들에 대한 『테라가타 주석서』의 설명들을 분류하여 보았다. 이렇게 하여 분류해 보니 주석서는 259분 아라한 장로들의 게송들 가운데 168분 정도의 게송을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으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테라가타 주석서』는 『테라가타』의 첫 번째 게송인 수부띠 장로(Th1:1)의 게송을 충분히 설명한 뒤에 “이것은 장로가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aññā-vyākaraṇa-gāthā)이 되었다.”(ThagA.i.30~31)라고 하면서 수부띠 장로의 게송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 짓는다. 이런 방법으로 주석서는 168분 정도의 장로들의 게송을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으로 설명하고 있고 서른의 모음의 풋사 장로(Th30:1 {949}~{980})의 마지막 게송({980})을 설명한 뒤에도 “이와 같이 장로는 모인 회중(sampattaparisa)에게 교계하였다. 이것은 이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들(aññā-vyā -karaṇa-gāthā)이 되었다.”(ThagA.iii.90)라고 설명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세존께서 특정 장로의 발심과 정진을 위해서 읊어주신 게송들은 그 장로가 아라한과를 얻은 뒤에 자신의 구경의 지혜로 받아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다사까 장로(Th1:17)는 세존께서 자신을 위해서 읊어주신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jāta)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고,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으며, 그래서 이것은 장로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parivattāhāra-naya)을 통해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게송]이 되었다(ThagA.i.73~74)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특히 세존께서는 깝빠 장로(Th10:5 {567}~{576})에게 더러움[不淨]에 대한 게송 10개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게송을 듣고 그는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하였으며 어느 장로를 통해서 피부의 오개조(五個組)의 명상주제를 듣고 삭발을 할 때(khuraggeyeva)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주석서는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구족계를 받고 스승님께 다가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아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다.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ThagA.ii.243)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나아가 미가잘라 장로(Th6:8 {417}~{422})의 게송 여섯 개에 대해서 주석서는 “그는 승원에 가서 끊임없이 법문을 듣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으며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은 뒤에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 여섯 개를 읊었다.”(ThagA.ii.177)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여섯 개의 게송들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오도송도 되겠지만 전체가 잘 조직되어 문법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교학적인 게송들을 담고 있다. 이 여섯 개 게송은 ‘눈을 가지신 분에 의해서 잘 설해진({417}) 이 팔정도는({421}) 귀결점이 경사스러운 것이다.({422})’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179)
② 감흥어로 읊음
그리고 주석서는 45분 정도의 장로들은 감흥어(udāna)로 자신에 속하는 게송들을 읊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꼬살라위하리 장로(Th1: 59)는 아라한됨을 얻어서 해탈의 행복을 체득한 희열의 감동이 생겨 감흥어로(ThagA.i.143)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믿음으로 나는 출가하였고
숲속에 나의 초막이 지어졌습니다.
나는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며
알아차리고 마음챙깁니다.”({59})
그리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한 게송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감흥어를 통해서 읊었다는 설명이 겹치는 경우도 14분이 된다.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면서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은 마하꼿티따 장로(Th1:2)의 경우와 뿐나 장로(Th1:4)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우는 여기 감흥어를 읊은 45분 장로들에도 포함시켰고 앞의 구경의 지혜를 읊은 168분에도 포함시켜서 계산을 하였다.
③ 사자후를 토하여 읊음
그리고 주석서에서 자신에 찬 우렁찬 선언을 담고 있는 특정 장로들의 게송을 사자후(sīhanāda)라고 표현하는 곳도 10곳이 된다. 예를 들면,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고 당당하게 읊고 있다. 주석서는 이러한 아지따 장로의 행장을 간략하게 밝히면서 “그는 아라한됨을 얻고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 to)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78)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멜라지나 장로(Th2:6)의 게송 {131}~{132}을 설명하면서 “아라한됨을 얻은 뒤 나중에 비구들이 ‘도반이여, 그대는 인간을 초월한 법(uttari -manussa-dhamma)을 증득하였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사자후를 토하면서(sīhanādaṁ nadanto)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11)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하깟사빠 장로(Th40:1)의 {1087} 게송을 설명하면서도 “본 게송은 장로가 자신을 두고 사자후를 토하면서 설하였다.”(ThagA.iii.142)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테라가타』는 1,279개 게송을 모두 합송하여 마친 뒤 맨 마지막에서 [259분의 이 모든 장로들이] ‘사자후를 토한 뒤(sīhanādaṁ naditvāna)’라고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짓는다.
“게송들은 1,360개이고
장로들은 264분으로 드러났다.
사자후를 토한 뒤 부처님의 번뇌 다한 아들들은
안은함을 증득한 뒤 불의 무더기처럼 멸진하였다.”
이처럼 『테라가타』를 합송한 분들은 여기에 실린 모든 게송들을 아라한 장로들의 사자후라고 표현하면서 본서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④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읊음
『테라가타』에서 특정 장로에 속하는 게송들 가운데 전부나 혹은 일부는 특정 장로가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요청을 하여 읊은 것도 있고 비구들 등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도 있다. 『테라가타』본문과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살펴보면 대략 22분 정도의 장로가 읊은 게송들의 전부나 혹은 일부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요청을 하거나 비구들 등의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읊은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와나왓차 장로(Th1:13)의 게송은 “아라한됨을 얻은 뒤 세존께서 까삘라왓투에 계실 때 찾아가서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비구들과 함께하면서 비구들이 ‘도반이여, 숲에서 편안하게 머무셨습니까?’라고 묻자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61~62)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무디따 장로(Th4:12 {311}~{314})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해탈의 행복을 누리면서 동료 비구들이 그가 증득한 것(adhigata)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자신의 도닦음을 위한 행위(paṭipannākāra)를 설명하면서 본 게송 네 개를 읊었다.”(ThagA.ii.132~133)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특히 부처님과 같은 날에 까삘라왓투에서 대신의 아들로 태어난 깔루다이 장로(Th10:1 {527}~{536})의 게송 10개는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해 주시기를 요청하면서 읊은 게송들이다. 그는 숫도다나 대왕이 세존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하게 하시려고 보낸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세존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이 되어 세존의 곁에 머물렀지만 세존을 까삘라왓투로 초청하는 소임은 잊지 않고 있었다. 주석서가 “그는 봄이 되었을 때 스승님께서 가족들이 있는 도시로 가시게 하기 위해서 가는 길의 모습을 칭송하면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221~223)라고 설명하고 있듯이 장로는 본서 10개의 게송({527}~{536})으로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해 주시기를 간청드리고 있다. {529}에서 그는 이렇게 읊는다.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으며
여행하기에 적합한 계절입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서쪽을 향하여 로히니 강을 건너서
사끼야들과 꼴리야들이 당신을 보게 하십시오.”({529})
⑤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음
주석서에 의하면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해서 읊은 게송으로는 다음 15분 장로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석서의 설명과 함께 모아본다.
1. 꾸마뿟따 장로(Th1:36) ―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숲에서 몸을 강골로 만들기에 급급한(kāya-daḷhi-bahulā) 비구들을 본 뒤 그들을 교계하면서 교법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상태(niyyānika-bhāva)를 설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105~106)
2. 아디뭇따 장로(Th1:114) ―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과 함께 사는 몸을 강골로 만들기에 급급한(kāya-daḷhi-bahulā) 비구들을 교계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ThagA.i.238~239)
3. 아지나 장로(Th2:5 {129}~{130}) ― “장로는 그 비구들을 절박하게 하면서(saṁvejenta)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9~10)
4. 키따까 장로(Th2:36 {191}~{192}) ― “장로는 그 숲의 [수행] 장소에 가서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을 섭수(攝受)하기 위해서(pariggaṇhan- attha) 첫 번째 게송을 말했다.”(ThagA.ii.60~61)
5. 니사바 장로(Th2:38 {195}~{196}) ―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동료 비구들이 방일하게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들을 교계하면서 첫 번째 게송을 읊었다.”(ThagA.ii.63)
6. 브라흐말리 장로(Th2:43 {205}~{206}) ― “장로는 어느 날 그 숲의 [수행] 처소(araññāyatana)에 있는 비구들을 지목하여 그들이 [바른] 노력에 몰두함을 파악하도록(pariggaṇhanto)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ThagA.ii. 71~72)
7. 다니야 장로(Th3:4 {228}~{230}) ― “두타행(dhutaṅga)을 수지함에 의해서 자신들을 최고로 여겨 승가의 공양 등을 즐기면서 다른 비구들을 비난하는 비구들에게 교계하는 방법을 통해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89~90)
8. 우빨리 장로(Th3:11 {249}~{251}) ― “그는 나중에 어떤 포살일에 빠띠목카[戒目] 개요의 시간(pātimokkh-uddesa-samaya)에 비구들을 교계하면서 …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101~102)
9. 위말라 장로(Vimala thera, Th3:16 {264}~{266}) ―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동료 비구(sahāya bhikkhu)에게 교계를 주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었다.”(ThagA.ii.109)
위말라 장로를 의지하여 출가한 소미밋따 장로(Somamitta thera, Th2:14)는 위말라 장로가 게으르고 혼침이 많은 상태로 밤낮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를 버리고 마하깟사빠 장로를 의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A. ii.24)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위말라 장로를 교계로써 경책하면서 본서 {147}~{148}을 읊었는데 그것은 위말라 장로의 {265}~{265}와 동일하다. 이 게송들을 듣고 위말라 장로도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agA.ii.25)
10. 마하깟짜나 장로(Th8:1 {494}~{501}) ― 마하깟짜나 장로의 여덟 개의 게송 가운데 처음의 두 개({494}~{495})는 비구들을 교계하기 위해서 설한 것이고(ThagA.ii.207) 나머지 여섯 개 게송({496}~{501})은 아완띠의 빳조따 왕을 교계하기 위해서 읊은 것이라고 한다.(ThagA.ii.209)
11. 마하깝삐나 장로(Th10:3 {547}~{556}) ― “어느 날 장로는 비구니들을 교계하면서 본 게송들을 읊었다.”(ThagA.ii.232)
12.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81}~{688}) ― 어느 날 장로는 자신과 함께 사는 한 비구가 좋지 않은 도반과 교제하여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고 경솔하고 거들먹거리며 머무는 것을 본 뒤 신통으로 그곳에 가서 그에게 교계를 하였지만 그 비구는 장로의 말에 유념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로는 그의 그릇된 도닦음을 꾸짖고 바른 도닦음(sammā-paṭipatti)과 한거하여 머묾(viveka-vāsa)을 칭송하면서 나머지 8개 게송들({681}~{688})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i.6)
13. 마하깟사빠 장로(Th40:1 {1051}~{1090}) ― “여기 처음 3개의 게송들({1051}~{1053})은 무리들(gaṇā)과 가문들(kulā)에 섞여(saṁsaṭṭha) 지내는 비구들을 보고 그들에게 교계를 베풂(ovādadāna)을 통해서 말했다.” (ThagA.iii.138)
14. 빠라빠리야 장로(Th1:116 등)의 게송들은 모두 세 곳(Th1:116; Th20: 2; Th20:10)에 나타난다. 그가 아라한됨을 얻은 뒤 자신의 도닦음을 반조하고 기쁨이 생겨 감흥어를 통해서 읊은 게송이 하나의 모음 {116}이다. 그리고 스물의 모음 두 번째에 포함된 21개 게송들(Th20:2 {726}~{746})은 부처님 재세 시에 읊은 것이고, 같은 스물의 모음의 열 번째로 들어있는 29개 게송들(Th20:10 {920}~{948})은 부처님 입멸 후에 읊은 것이라 한다.(Thag A.iii.73)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뒤에 읊은 이 게송들에서 장로는 비구들을 엄하게 경책하고 있다. 주석서는 “미래의 비구들이 거짓된 법을 닦음(ud- dhamma-paṭipatti)을 드러냄을 통해서 [합송자들이 읊은 두 개를 제외한 27개 게송들을] 설하였다.”(ThagA.iii.73)라고 밝히고 있다.
15. 풋사 장로(Th30:1 {949}~{980})의 게송들도 미래세의 비구들을 경책하기 위한 것이다.(ThagA.iii.82) “어느 날 빤다라 족성을 가진(Paṇḍara- gotta) 어떤 고행자(tāpasa)가 … ‘존자시여, 미래세의 비구들은 어떻게 도닦음을 행하겠습니까?’라고 장로에게 물었고 장로는 여기에 대해서 이 게송들로 대답을 하였다.”(ThagA.iii.82)
⑥ 반열반할 때에 읊음
『테라가타』에 실린 게송을 읊고 반열반에 든 장로들도 다섯 분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지따 장로(Th1:20), 뿐나 장로(Th1:70), 에까위하리야 장로(Th10:2 {537}~{546}), 레와따 장로(Th14:1 {645}~{658})에 답바 장로(Th1: 5)를 포함시키면 다섯 분이 된다.
주석서에 의하면 아지따 장로(Th1:20)는,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삶에 대한 열망이 없다.
알아차리고 마음챙겨
나는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20})
라는 게송을 읊고 반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장로는 이 게송을 읊은 뒤 禪에 들어(jhānaṁ samāpajjitvā) 그 바로 다음에(tad-anantaraṁ) 반열반에 들었다(parinibbāyi).”(ThagA.i.79)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레와따 장로 혹은 카디라와니야 레와따 장로(Th14:1)가 반열반할 때 읊은 게송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⑦의 해당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⑦ 특별한 사례를 배경으로 하여 읊음
『테라가타 주석서』를 살펴보면 『테라가타』에 실린 많은 게송은 특별한 일화 혹은 사례를 배경으로 하여 읊어진 경우가 많다. 주석서는 특정 장로가 특정 게송을 읊게 된 데는 특별한 일화가 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화로 표현한 용어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10곳 정도에서 ‘사례(事例, aṭṭhuppatti)’라는 용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그 일화 혹은 사례들 가운데 몇 가지를 그 보기로 들고자 한다.
먼저 사리뿟따 존자의 막냇동생인 카디라와니야 장로(Khadiravaniya thera, Th1:42) 즉 레와따 장로(Revata thera, Th14:1 {645}~{658})의 일화 혹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열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레와따 장로의 게송들을 설명하면서 『테라가타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부처님의 시중을 들러 가면서 도중에 사왓티에서 멀지 않은 곳의 숲에 머물렀다. 그때 도둑들(corā)이 장로의 곁에 포획한 장물(gahita -bhaṇḍa)을 버리고 달아나버려 장로는 도둑으로 몰려 왕에게 잡혀갔다.
장로는 풀려난 뒤 왕에게 태어나서부터 자신이 그러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출가하여 오염원들(kilesā)을 다 잘라버렸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설명하면서 근처에 서있는 비구들과 왕에게 법을 설하면서 {645}~{672}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 272~273)
장로는 마지막 게송({658})을 읊은 뒤 “허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불의 요소(tejo-dhātu)를 생기게 하여 타오르면서 무여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parinibbāyi).”(ThagA.ii.276)라고 한다.
이처럼 레와따 장로의 게송 14개는 그가 도둑으로 몰려 붙잡혀서 왕에게 끌려간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라마니야위하리 장로(Th1:45)는
“마치 상서로운 준마가
비틀거리다가 확고하게 서는 것처럼
그와 같이 봄[見]을 구족한 [나를]
정등각자의 제자로 [호지하십시오.]”({45})
라고 읊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출가하여 승잔죄를 범한 뒤 환속을 하리라라고 하면서 가다가 짐수레를 끄는 황소(goṇa) 한 마리가 나쁜 길에 들어서 피곤에 지쳐 쓰러지자 마차꾼(sākaṭikā)이 소의 멍에를 풀어주고 풀과 물을 주면서 피곤함(parissama)을 제거한 후 다시 짐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도 오염원(kilesa) 때문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사문의 법을 행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승원으로 되돌아 와서 우빨리 장로가 말해준 방법으로 범계(āpatti)에서 벗어나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곧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어서 해탈의 행복을 누리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123~124)
환속을 하려고 친척들의 마을로 가는 도중에 더러운 옷을 입고 먼지를 덮어쓴 채 바람과 열기에 메마른 농부들을 보고 절박함이 생겨 어떤 나무 아래에 가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은(ThagA.i.118) 수망갈라 장로(Th1:43)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본 해제 IX-⑴-④ 참조)
한편 다사까 장로(Th1:17)는 역자를 너무 부끄럽게 만드는 분이시다. 주석서에 의하면(ThagA.i.73~74) 장로는 출가할 때부터 시작해서 게으르고 정진이 저열하여 어떤 의무도 행하지 않았으며 오직 되는대로 먹은 뒤 잠을 많이 자면서 머물렀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법문을 듣는 시간에도 한 모퉁이에 들어가 회중의 끝에 앉아서 코고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가 절박함을 생기게 하기 위해서 이 게송을 읊으셨다고 한다.
“혼침에 빠지고 많이 먹고
잠잘 때는 뒤척이며 누워 자나니
마치 큰 돼지가 던져준 먹이로 살이 찌듯이
아둔한 이는 거듭거듭 모태에 든다.”({17})
그는 이 게송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saṁvega-jāta)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실현하였고 아라한됨을 얻은 뒤 그는 이 게송이 자신에게 갈고리(aṅkusa)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게송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ThagA.i.73~74)
⑧ 부처님을 찬탄하여 읊음
부처님의 직계 제자인 아라한 장로들의 게송이 담겨있는 본 『테라가타』에는 부처님에 대한 언급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찬탄을 위해서이고, 때로는 그분의 직계 제자임이 자랑스러워서일 것이다. 이참에 『테라가타』에서 아라한 장로 스님들은 부처님을 어떻게 칭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테라가타』의 게송들에서 장로들은 ‘부처님(Buddha)’, ‘대영웅(mahāvīra)’, ‘대선인/위대한 선인(大仙人, mahesi)’, ‘정등각자(sammā-sambuddha)’, ‘스승님(satthā)’ ‘여래(tathāgata, 복수로도 나타남)’, ‘대성인(mahāmuni)’, ‘여여한 [분](tādi)’ 등으로 부처님을 칭하고 있다.
ⓐ 부처님(Buddha)
부처님(Buddha)이라는 용어는 『테라가타』안에서만 70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소유격인 Buddhassa로 52군데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소유격 가운데 32곳 정도는 kataṁ Buddhassa sāsanaṁ(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다.)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본 해제 IX-⑹의 해당 부분 참조) 그리고 주격인 Buddho로 9군데, 도구격 Buddhena로 8군데, 호격 Buddha로 한 군데 정도가 있다. 소유격 복수인 Buddhānaṁ으로는 세 곳에 나타난다.
ⓑ 대영웅(mahāvīra)
대영웅으로 옮기는 mahāvīra는 8분 장로의 9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멜라지나 장로(Th2:6)는 이렇게 읊는다.
“대상(隊商)의 우두머리요 대영웅이시며
마부들 가운데 고귀하고 가장 높으신 [그분에] 대해서
혹은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나에게는 의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132})
ⓒ 위대한 선인(mahesi)
‘위대한 선인’으로 옮긴 mahesi는 6분 장로의 12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이 12개 가운데 앙굴리말라 장로(Th20:8)의 {870}과 아난다 장로(Th30: 3)에 속하는 두 개의 게송({1047}~{1048})은 합송자들이 읊은 것이다. 이 12개 게송들은 모두 부처님을 위대한 선인으로 부르고 있다. 딸라뿌따 장로(Th50:1)는 출가하기 전에 출리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면서(ThagA.iii.154) 이렇게 읊고 있다.
“위대한 선인이 체득하신 보기 어려운 네 가지 진리들을
나 자신이 삼매에 들고 마음챙김을 갖추게 되어
언제 참으로 나는 얻게 될까?
이러한 것은 언제 이루어질까?”({1098})
ⓓ 정등각자(sammāsambuddha)
정등각자로 옮기는 sammāsambuddha는 10분의 장로의 10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정등각자(sammāsambuddha)’란 바른 원인으로 바른 방법으로(sahetunā nayena) 네 가지 진리를 스스로 깨달은 자(sayaṁ buddho)를 말하고, ‘[모든 번뇌가] 꺼졌다(sīti-bhūta).’는 것은 모든 오염원의 불길이 꺼짐(sabba-kiles-aggi-nibbāpana)으로써 꺼진 것이고, ‘적멸을 이루었다(nibbuta).’는 것은 오염원들(kilesā)이 적멸했다는 말이다.” (MA.ii.189)라고 설명한다. 셋의 모음에서 박꿀라 장로(Th3:3)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정등각자께서 설하신
열반은 참으로 지극한 행복이니
슬픔 없고 티 없고 안은하여
거기서 괴로움은 소멸합니다.”({227})
ⓔ 스승님(satthā)
스승님으로 옮기는 satthā도 39군데 정도에 나타난다. 아라한 장로들에게 스승님은 바로 부처님을 뜻한다. 이 가운데 10곳은 pariciṇṇo mayā satthā(나는 스승님을 섬겼다)라는 정형구로 나타난다. 여기서 pariciṇṇa는 섬김을 뜻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8곳에는
“나는 스승님을 섬겼고
부처님의 교법을 실천하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고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은 뿌리 뽑혔습니다.”({604} 등)
로 정형화되어 나타나고, 두 곳({1050}, {1088})은 마지막 구절만 다르게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습니다.’로 나타난다. 다른 한 곳에는 ‘satthā ca pari -ciṇṇo me(그리고 나는 스승님을 섬기노라.)’({178})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곳에서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은 아라한 장로들에 의해서 직접 부처님으로도 여래로도 정등각자로도 그리고 스승님으로도 불리면서 섬겨지고 있다.
ⓕ 여래(tathāgata)
여래로 옮기는 tathāgata는 8분 장로의 11개 게송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깡카레와따 장로(Th1:3)의 {3}과 왕기사 장로(Th70:1)의 {1256} 등의 4곳에서는 복수 tathāgatā(여래들)로도 나타나고 있다.
ⓖ 대성인(mahāmuni)
한편 대성인 혹은 대성자로 옮기는 mahāmuni는 5곳 정도에 나타나는데 4곳에서는 부처님을 뜻하고 한 곳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왐빠띠 장로(Th1:38)를 칭찬하시는 용어로 사용하셨다. 세존께서는 읊으신다.
“신통으로 사라부 강을 서게 만들었던
그 가왐빠띠는 집착이 없고 동요가 없다.
모든 결박을 극복하고
존재의 저 언덕[彼岸]에 도달한
그런 대성자를 신들은 예배한다.”({38})
ⓗ 여여한 [분](tādi)
한편 여여한 [분]으로 옮기는 tādi는 『테라가타』게송의 17곳 정도에 나타나고 있다. 니까야에서도 부처님(D16 §6.10 등)과 번뇌 다한 아라한(It3:13 §2 등)은 여여한 분으로 묘사된다. 여기 『테라가타』에서도 그러하여 역자가 살펴본 바로는 이 여여한 [분] 가운데 6곳 정도는 부처님을 칭하고 11곳 정도에서는 아라한이나 부처님 제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1067}에서 마하깟사빠 장로(Th40:1)는 “수행하며 지내기를 바라고 열심인 / 여여한 나에게 [이곳은] 충분합니다(alaṁ me yogakāmassa, pahitatta -ssa tādino).”({1067})라고 스스로를 여여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용어는 {41} 등의 10곳 정도에서 여기서처럼 tādino로 소유격 단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⑨ 장로가 직접 지어서 읊지 않음
『테라가타』에는 259분 장로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이 실려있다. 그러나 본 해제 VII-⑵에서 정리해 보았듯이 104개 정도의 게송들은 읊은 분으로 명시되어 있는 바로 그 장로가 직접 지어서 읊은 것은 아니다. 이 104개 정도의 게송들은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이거나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이다. 물론 그 특정 장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특정 장로의 게송[들]로 전해오는 것이다. 장로가 직접 짓지 않은 게송들은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에서 도표로 정리하였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⑩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음
『테라가타』에는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의 현상을 읊은 게송들도 눈에 띈다. 대략 10분 정도가 읊은 25개 정도의 게송들은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게송들도 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여 읊은 것이거나 ② 감흥어로 읊은 것 등이어서 이 둘의 영역 등에 넣을 수 있지만 여기에 독립해서 정리해 보았다.
특히 10번째로 정리하고 있는 삽빠까 장로(Th4:11)가 읊은 {307}~{310}의 네 개의 게송들은 모두가 다 자연의 현상을 노래하고 있다. 삽빠까 장로의 이러한 게송들을 위시한 본 『테라가타』의 적지 않은 게송들은 중국 선불교에서 발달된 선시(禪詩)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라고 여겨진다.
1. 와나왓차 장로(Th1:13)
“푸른 구름의 색깔, 아름다움,
차가운 물, 깨끗한 개울,
인다고빠까 곤충으로 덮인
저 바위산들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13})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와 같이 장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머물며 수행한(cirakāla-paribhāvita) 숲에 머무는 기쁨(araññābhirati)을 드러내면서 세 가지 떨쳐버림을 기뻐함(vivekābhirati)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재생의 근거를 떨쳐버림(upadhi -viveka)에 의해서 구경의 지혜를 밝힌 것이다.”(ThagA.i.62)
“세 가지 떨쳐버림은 몸으로 떨쳐버림(kāya-viveka), 마음으로 떨쳐버림(citta-viveka), 재생의 근거를 떨쳐버림이다.”(DA.iii.1002 등)
2. 찟따까 장로(Th1:22)
“푸르고 아름다운 목을 하고 관모를 가진
공작새들은 까람위에서 울음소리를 냅니다.
그들은 차가운 바람과 놀고 있나니
禪을 하도록 잠든 자를 일깨웁니다.”({22})
주석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禪(samatha-vipassanā-jhānā)으로 禪에 드는 습관을 가지도록, 그것을 닦음에 전념하도록(bhāvanānuyutta)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뜻이다.”(ThagA.i.82)라고 설명한다.
3. 위말라 장로(Th1:50)
“대지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바람은 솔솔 불고 하늘에서 번개는 번쩍인다.
나의 생각은 고요하게 되었고
마음은 잘 삼매에 들어있다.”({50})
“계절에 맞는 [수행의] 성취로(utu-sappāya-siddha)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증득(adhigama)하여, 예비단계(pubbabhāga)에서 대체함 등(tadaṅgādi)을 통해서 [생각이] 가라앉은 뒤(vūpasantā hutvā)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 등의 모든 아홉 가지 큰 생각들(nava mahā-vitakkā)이 성스러운 도의 증득으로 고요하게 되었다(upasamanti)는 말이다.
‘나의 마음은 잘 삼매에 들어있다(cittaṁ susamāhitaṁ mama)’는 것은 출세간의 삼매(lokuttara-samādhi)에 의해서 나의 마음은 잘 삼매에 들었다(suṭṭhu samāhita)는 말이다. 이제 그것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samādhāne) 해야 할 어떤 일도 남아있지 않다고 장로는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였다.”(ThagA.i.132)
4. 우사바 장로(Th1:110)
“나무들은 산꼭대기마다 쑥쑥 자라고
활발발한 비구름으로 적셔진다.
떨쳐버림을 갈구하고
숲에 대한 다정다감함을 가진 우사바를 위해서
그들 [각각은] 더욱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110})
5. 와나왓차 장로(Th1:113)
“맑은 물을 가졌고 크고 험한 바위들이 있으며
원숭이들과 사슴들이 다니고
물이 스미어 나오는 이끼를 가진
저 바위산들이 나를 기쁘게 합니다.”({113})
“이것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었다.”(ThagA.i.238)
6. 왈리야 장로(Th2:3)
“원숭이가 다섯 개의 문을 가진
작은 초막에 다가가서
문에서 [문으로]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두드린다.”({125})
7. 삼불라깟짜나 장로(Th2:35)
“[비의] 신은 비를 내리고 [비의] 신은 천둥을 치는데
나는 혼자 무서운 동굴에 머물고 있다.
그런 나는 혼자 무서운 동굴에 머물고 있지만
두려움이나 당혹함이나 털이 곤두섬은 없다.”({189})
“혼자 두려운 동굴에서
두려움이나 무서움이나
털이 곤두섬이 없이 머무는
이런 것은 나에게는 법다운 것이다.”({190})
“철저하게 알지 못하였던 토대(apariññāta-vatthuka)에 대해서 욕탐을 제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appahīna-cchanda-rāgatāya) [전에는] 두려움 등이 존재해야 했지만 이제 나는 모든 곳에서 철저하게 알았고 욕탐도 뿌리 뽑았다. 그러므로 두려움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것은 나에게 법다운 것이다라고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고 있다.”(ThagA.ii.60)
8. 쭐라까 장로(Th2:46)
“멋진 관모와 멋진 꼬리 깃털과 짙고 푸른 목을 가졌으며
잘생긴 얼굴로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공작들이 울고
풀이 무성한 이 대지는 물이 풍부하며
하늘은 좋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다.”({211})
“좋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어울리는 정경이니
그것을 명상하라.
훌륭한 부처님의 교법에 잘 출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희디희고 미묘하고 보기 어려운
그 가장 높고 떨어지지 않는 경지에 닿아야 한다.”({212})
9. 담미까 장로(Th4:10)
“종기의 뿌리는 산산조각이 났고
갈애의 그물은 뿌리 뽑혔습니다.
그에게는 윤회가 멸진되어 그 어떤 것도 있지 않나니
마치 휘영청 밝은 보름밤의 달과도 같습니다.”({306})
“마치 달(canda)이 구름이나 안개 등의 결점이 없이(abbha-mahikādi- dosa-rahita) 보름밤에 [원반의] 각 부분들이 가득 찬 것(paripuṇṇa-kāla)처럼 그와 같이 저도 역시 아라한됨을 증득함에 의해서 탐욕 등의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법의 모든 부분을 구족하였습니다(paripuṇṇa-dhamma- koṭṭhāsa)라는 뜻이다.”(ThagA.ii.129)
10. 삽빠까 장로(Th4:11)
“학이 깨끗하고 빛나는 날개를 가졌지만
검은 구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워하여
은신처를 찾아서 은신처로 도망가면
그때 아자까라니 강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307})
“아주 청정하고 빛나는 학이
검은 구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서워하여
피난처를 찾지 않았지만 [이제는] 피난처를 찾으니
그때 아자까라니 강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308})
“거기 잠부 나무들은 양쪽 기슭에서
누구인들 기쁘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내 피난처의 뒤에서
강기슭을 아름답게 만듭니다.”({309})
“죽지 않음을 뻐기는 [뱀의] 무리들을 잘 피하여
개구리들은 깊은 소리로 개골개골 우나니
‘오늘은 산의 개울로부터 떨어져 머물 때가 아닙니다.
아자까라니 강은 안은하고 안전하며 큰 기쁨 줍니다.’라고.”({310})
이 외의 다른 게송들도 더 들 수 있겠지만 역자는 이 열 분의 게송들을 여기에 모아보았다.
⑪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읊음
본 해제 VIII-⑵-④ ‘세존이나 장로들과 친인척관계가 있는 경우’에서 살펴보았듯이 장로들이 출가한 계기를 살펴보면 가족이나 친지들 가운데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분들을 인연으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친인척관계를 모아보면 대략 37분 정도가 되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이와는 달리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테라가타』에는 부모나 특히 아내와 같은 가족들을 뿌리치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뒤 그를 찾아오거나 혹은 인연이 닿은 가족들이나 친지들에게 법문으로 읊은 게송들도 담겨있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대략 아래의 17분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인용하는 사례들을 통해서 보듯이 장로들은 재가의 친지들에게 기본적으로 삼귀의계와 오계를 설하였으며 선업을 닦아 선처에 태어나는 선업 공덕을 지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1. 잠부가미까뿟따 장로(Th1:28)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출가하여 미리 해야 할 일을 하고 명상주제를 받아서 사께따의 안자나 숲(Sāketa Añjanavana)에 머물렀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나의 아들이 교법에서 기뻐하면서 머무는가, 아닌가?’라고 검증할 목적으로,
“그대는 의복에 몰두하지 않는가?
그대는 꾸미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대가
계행으로 이루어진 향기를 내뿜는가?”({28})
라는 게송을 적어서 보냈다. 그는 그것을 읽은 뒤 절박함이 생겨서(saṁvega -jāta) 애를 쓰고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친지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로 가서 교법이 출리(出離)로 인도함(niyyānika-bhāva)을 설명하면서 신통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고 친지들은 깨끗한 믿음을 가진 마음으로 많은 승원[伽藍]을 지었다. 그는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도 아버지를 공경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보낸 이 게송 {28}을 말하였다고 한다.(ThagA.i.91~92)
2. 가흐와라띠리야 장로(Th1:31)
장로는 출가하여 명상주제를 받아서 가흐와라 강 언덕(Gahvaratīra)에 있는 숲의 장소에 머물렀다. 그래서 그는 가흐와라띠리야(Gahvaratīriya)라는 일반적 호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고 나서 세존께 절을 올린 뒤 사왓티로 갔고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친지들이 모여들어 큰 보시를 하였다. 그는 그곳에 계속 머물러 달라는 친지들에게 한거를 기뻐함을 찬탄하는 방법을 통해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본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96~97)
3. 뽀시야 장로(Th1:34)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젊은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태어남 등을 조건으로 하여 절박함(saṁvega)이 생겨 출가하였고 수행에 몰두하여 오래지 않아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과를 얻은 뒤 세존께 절을 올리기 위해서 사왓티를 갔다가 친지들에 대한 연민으로 집에 들렀다. 거기서 전처를 만났고 전처가 처음에는 신도처럼 하다가 나중에는 여인처럼 처신하며 그를 유혹하려고 하였다. 장로는 ‘오, 눈먼 어리석은 여인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이와 같이 처신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되돌아갔다. 숲속에 머무는 비구들이 사정을 묻자 설명하면서 {34}를 읊었다고 한다.(ThagA.i.102)
4. 와나왓차 장로(Th1:113)
장로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한거를 기뻐하여 숲(vana)에서 살았고 그래서 와나왓차(Vanavaccha)라는 호칭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때 친척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라자가하에 갔고 거기서 친척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 머문 뒤 떠나려 하자 친척들이 그들을 위해서 가까운 승원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는 그들에게 산에 사는 즐거움을 찬탄하는 권위 있는 말로 한거를 기뻐함을 알려주면서 본 게송을 읊었고(본 해제 X-⑴-⑩-5 참조) 이것은 장로의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ThagA.i.237~238)
5. 조띠다사 장로(Th2:12 {143}~{144})
부유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난 장로는 마하깟사빠 장로의 법문으로 절박함을 얻어(paṭiladdha-saṁvega) 출가하였고 육신통을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어느 날 장로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서 그를 보기 위해서 온 친지들 가운데서 제사의 청정함을 주장하는 자들(yañña-suddhikā)에게 본 게송 두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20~21) 그 가운데 {144}에서,
“그것이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간에
사람이 업을 지으면
그가 무슨 업을 짓든 간에
그는 그것의 상속자가 됩니다.”({144})
라고 읊었고 이 게송들을 듣고 장로의 친척들은 업이 자신의 주인임(kamm -assakatā)에 확립되었다고 한다.(ThagA.ii.22)
6. 뿐나마사 장로(Th2:26 {171}~{172})
그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사왓티에 가서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공동묘지에 머물렀다. 그가 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 그의 아들이 죽었다. 아이의 어머니, 즉 장로의 이전의 아내는 장로가 왔다는 것을 듣고 ‘아들이 없는 이 유산(sāpateyya)을 왕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라고 하면서 그를 환속시키려고(uppabbājetu-kāmā) 많은 측근들과 함께 장로 가까이에 가서 호의를 베푼 뒤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장로는 자신이 탐욕을 여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 허공에 서서 자신의 도닦음을 찬탄하는 방법을 통해 그녀에게 법을 설하면서 두 개의 게송({171}~{172})을 읊었다. 이 게송들을 통해서 이전의 아내에게 법을 설하여 그녀를 삼귀의와 오계에 확고하게 만든 뒤 떠나보냈다고 한다.(ThagA.ii.46~47) 이분은 하나의 모음 뿐나마사 장로(Th1:10)와는 다른 분이다.
7. 앙가니까바라드와자 장로(Th3:1 {219}~{221})
욱깟타라는 도시에서 위력이 있는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장로는 유행승으로 출가하여 죽음 없음[不死]을 위한 고행(amara tapa)을 행하면서 여기저기를 유행하다가 지방을 유행하시는 부처님을 뵙고 마음에 청정한 믿음이 생겨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였다. 장로는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해탈의 행복으로 머물면서 친척들을 연민하여 자신의 태어난 곳에 가서 많은 친척들을 [삼]귀의(saraṇa)와 [오]계(sīla)에 확립되게 하였다. 장로는 이렇게 읊는다.
“전에는 나는 범천의 친척이었지만
이제 나는 참으로 바라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세 가지 명지를 가졌고 목욕을 마친 자이며
깨끗한 자요 베다를 구족한 자입니다.”({221})
8. 빳시까 장로(Th3:8 {240}~{242})
꼬살라 지역에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난 장로는 세존의 쌍신변을 보고 믿음을 얻어 출가하였는데 사문의 법을 행하면서 병을 얻었다. 그러자 친지들이 그를 의사에게 데려가고 약을 써서 간호하여 건강을 회복하였고 절박함이 생겨 수행을 열성적으로 행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자가 되어 허공으로 친지들에게 가까이 가서 허공에 서서 법을 설하여 그들이 삼귀의와 오계에(saraṇesu sīlesu ca) 확립되게 하였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었기 때문에 임종한 뒤 천상에 태어났다.
그때 스승님께서는 부처님을 시중들기 위해서 온 그에게 ‘빳시까여, 그대의 친지들은 무탈한가?’라고 물으셨다. 그는 친지들이 자신에게 행한 도움을 스승님께 말씀드리면서 세 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95~96) 여기에 인용한다.
“여기 믿음이 없는 친척들 가운데
[저] 혼자만 믿음을 가졌고 슬기롭지만
[제가] 법에 서있고 계행을 구족한 것은
친족들에게 이로움이 됩니다.”({240})
“저는 연민으로 저의 혈족들을 꾸짖었고
그들을 질책하였으니
친척들과 친족들에 대한 애정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비구들에게 [공양 등으로] 공경을 베풀었습니다.”({241})
“그들은 생을 마치고 임종하여
삼십삼천의 행복을 얻었습니다.
저의 형제들과 어머니는
감각적 쾌락들을 향유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242})
9. 아비부따 장로(Th3:13 {255}~{257})
장로는 웨타뿌라 도시에서 왕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서거하자 왕위에 올랐다. 그는 그곳을 방문하신 세존의 법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가져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됨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지들과 대신들과 회중들과 도시민들과 지역민들은 모두가 ‘존자시여, 왜 당신은 우리를 주인 없게 만들고 출가하셨습니까?’라고 탄식을 하였다. 장로는 친지들을 상수로 한 그 사람들이 탄식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자신이 출가한 이유를 설명하는 방법을 통해 법을 설하면서 세 개의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105~106))
10. 고따마 장로(Th3:14 {258}~{260})
사꺄의 왕의 가문에서 태어난 장로는 부처님의 친지들의 모임에서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육신통을 갖춘 뒤 해탈의 행복으로 머물렀다. 어느 날 친척들이 ‘존자시여, 왜 우리를 버리고 출가하였습니까?’라고 묻자 윤회에서 자신이 체험한 괴로움과 지금 증득한 열반의 행복을 분명하게 하면서 게송 세 개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06)
“윤회하면서 나는 지옥에 갔었고 …
이러한 존재들은 심재가 없고 형성되었고
변하기 쉽고 늘 흔들리는 것으로 잘 체득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나] 자신을 근원으로 함을 나는 체득하고서
마음챙김을 가져 평화를 얻었습니다.”({258}~{260})
11. 짠다나 장로(Th4:9 {299}~{302})
장로는 사왓티에서 부유한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아들 한 명을 얻은 뒤 출가하여 위빳사나의 명상주제를 받아서 숲에서 머물렀다. 그러던 중 그는 사왓티에 가서 공동묘지(susāna)에 머물렀다. 그가 왔다는 것을 듣고 이전의 아내는 온갖 치장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많은 사람들과 장로의 곁으로 갔다. 장로는 그녀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본 뒤 위빳사나를 열성적으로 행하여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육신통을 갖춘 뒤 허공에 서서 그녀에게 법을 설하고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게 한 다음 스스로 자신이 전에 머물던 장소로 가서 질문을 하는 동료 비구들에게 게송 네 개로 자신의 도닦음을 말한 뒤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였다고 한다.(ThagA.ii.127)
12. 삽빠까 장로(Th4:11 {307}~{310})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 태생인 장로는 출가하여 명상주제를 받은 뒤 아자까라니(Ajakaraṇī)라는 강의 언덕에 있는 레나기리 승원(Leṇagiri-vihāra)에서 머물면서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스승님께 절을 올리기 위해서 사왓티로 와서 친지들의 시중을 받게 되었다. 장로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여 친지들로 하여금 삼귀의와 오계에 확립되도록 하고 나서 레나기리 승원으로 가고자 하였다. 그러자 더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친지들에게 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게송 네 개({307}~{310})를 읊었다고 한다.(ThagA.ii.130~132)
13. 말룽꺄뿟따 장로(Th6:5 {399}~{404})
장로는 사왓티에서 꼬살라 왕의 핵심 보좌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말룽꺄였으며 그래서 말룽꺄의 아들, 즉 말룽꺄뿟따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외도 유행승으로 출가하여 유행하다가 스승님의 곁에서 법을 듣고 교법에 믿음을 얻어서 출가하였다. 그는 위빳사나의 업을 행하여 오래지 않아 육신통을 갖춘 분이 되었다.
그는 친척들에 대한 연민으로 친지의 집에 갔다. 친척들은 재물로 유혹하려고 ‘이 재물을 당신의 곁으로 가져가십시오. 유행을 하신 뒤 이 재물로 아들과 아내를 부양하시면서 공덕들을 지으십시오.’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는 그들의 성향(ajjhāsaya)을 바꾸게 하면서 허공에 서서 게송 6개로 법을 설하였다.(ThagA.ii.170) 그 가운데 마지막 {404}를 여기에 인용한다.
“방일함은 먼지이니
방일함으로부터 먼지는 일어납니다.
불방일과 명지를 통해서
자신의 쇠살을 뽑아야 합니다.”({399})
14. 삽바까미 장로(Th6:14 {453}~{458})
장로는 아직 세존께서 반열반에 들지 않으셨을 때 웨살리에서 끄샤뜨리야 가문에 태어났고 아난다 존자의 곁으로 출가하여 사문의 법을 행하면서 은사 스님과 함께 웨살리에 가서 속가(俗家)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서 이전의 아내는 헤어짐 때문에 고통을 받아 마르고 창백해져서 치장도 하지 않고 더러운 옷을 입고 그에게 인사를 한 뒤 울면서 한 곁에 서있었다. 그녀를 보고 장로는 연민을 앞세운 자애를 확립하였다. 그러자 [괴로움]을 겪는[忍苦] 대상에 대한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서 그에게 갑자기 오염원이 생겼다.
그는 채찍에 맞은 준마처럼 절박함이 생겨 바로 공동묘지로 가서 더러움의 표상을 취한 뒤 거기서 얻은 禪을 기초로 삼아서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때 그의 장인이 치장을 하고 잘 차려입은 딸을 데리고 많은 일행들과 함께 그를 환속시키려고 승원으로 갔다. 장로는 자신이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탐욕이 빛바랬음(viratta-bhāva)과 모든 곳에 물들지 않았음(anupalittatā)을 밝히면서 게송 여섯 개를 읊었고 장인은 ‘이분을 감각적 쾌락들에 떨어뜨릴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온 길로 되돌아갔다고 한다.(ThagA.ii.191~193)
『테라가타 주석서』를 통해서 유추하면 그가 입적하였을 때 그는 적어도 140세는 되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반열반 하신 뒤 교단의 최고의 권위라 할 수 있는 아난다 존자가 120세까지 사셨고 『앙굿따라 니까야 복주서』에 의하면 아누룻다 장로는 150세까지 사셨다고 하므로(AAṬ.iii.183) 이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무튼 삽바까미 장로처럼 아난다 존자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지 120년이 된 이런 대장로들이 계셨기 때문에 부처님 원음은 2,6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승되어 왔음이 틀림없다.
15. 부따 장로(Th9:1 {518}~{526})
사께따 도시에서 아주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장로는 출가하여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 후에 친지들에 대한 연민으로 사께따에 가서 며칠을 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안자나 숲에 머문 뒤 다시 자신이 머무르던 곳으로 가고자 하였다. 친지들은 ‘존자시여, 여기에 머무십시오. 당신을 피곤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공덕으로 향상할 것입니다.’라고 장로에게 요청하였다. 장로는 자신이 한거를 기뻐함과 거기에 편안하게 머묾을 설명하면서 [아홉 개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217~218)
16. [다른] 고따마 장로(Th10:7 {587}~{596})
그는 세존보다 먼저 사왓티에서 우딧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삼베다에 능통하였고 논쟁의 도를 섭렵하여 이런저런 논쟁의 소지가 있는 말에 몰두하여 유행을 하였다. 그는 세존께서 제따와나를 수용하실 때 믿음을 얻어 스승님께 다가가서 법을 듣고 출가하기를 간청하였고 출가하면서 삭발을 할 때 아라한됨을 얻었다.
그는 꼬살라 지방에 가서 거기서 오래 산 뒤에 다시 사왓티로 돌아왔고 많은 친지들과 유력한 바라문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어떤 사람들의 주장이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것(niyyānika)이고 어떻게 도를 닦으면 윤회로부터 청정하게 됩니까?’라고 물었다. 장로는 그들에게 그 뜻을 밝히면서 [10개의]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250~251)
다른 두 분의 고따마 장로(Th2:9와 Th3:14)가 각각 본서 제1권 둘의 모음 {137}~{138}과 셋의 모음 {258}~{260}을 읊은 분들로 나타나고 있다.
17.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
장로는 꾸루 지역에서 툴라꼿티까 성읍(Thullakoṭṭhika-nigama)의 랏타빨라 상인(금융업자)의 가문 출신이다.
장로는 아라한됨을 얻은 뒤 스승님의 허락을 받고 부모를 뵙기 위해서 툴라꼿티까로 가서 거기서 집집마다 차례대로 탁발을 하면서 아버지의 거처에서 지난밤에 만든 죽을 얻어서 그것을 감로인 것처럼 먹었다. 아버지가 초청하자 내일 아침으로 약속을 하고 그다음 날에 아버지 곁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한 뒤 여인들의 처소에 있는 치장을 한 [그의 전 아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서방님, 어떤 요정들이 있기에 그들을 위해 당신은 청정범행을 닦으십니까?’(M82 §23)라는 등으로 말을 하면서 그를 유혹하는 업(palobhana-kamma)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의향을 드러낸 뒤 무상함 등과 관계된 법을 설하면서 게송들을 읊었다고 한다.(ThagA.iii.33~35)
여기 『테라가타』스물의 모음 {769}~{793}으로 나타나는 랏타빨라 장로의 25개 게송 가운데 처음 {769}~{774}의 6개 게송은「랏타빨라 경」(M82) §25에 나타나는 6개의 게송과 일치한다. 그리고 {776}~{788}의 13개 게송은「랏타빨라 경」(M82) §42의 게송들과 같다. 장로의 게송으로 실린 25개 가운데 두 개를 인용한다.
“보라, 잘 치장했고 상처덩이이고
잘 세워진 저 꼭두각시를.
그것은 고통스럽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고
견고하게 머물지 않는다.”({769}=M82 §25 {1})
“사냥꾼이 올가미를 놓았으나
사슴은 덫에 걸리지 않고
미끼를 먹고서 떠나버리나니
사슴 사냥꾼을 슬피 울게 한다.”({774}=M82 §25 {6})
⑵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
이제 『테라가타』의 1,279개 게송들 가운데 『테라가타』안에서나 니까야 전체 안에서 특정 게송 전체가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과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만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게송들을 정리해 보자.
역자는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을 ①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 ②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게송들, ③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 ④ 같은 장로의 게송들에서 특정 구절[句]들이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의 넷으로 분류하여 보았다.
①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
『테라가타』에는 여러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게송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도표5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를 들면,
“그 때문에 나에게는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 생겨났다.
위험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염오가 확립되었다.”({269})
라는 나가사말라 장로(Th4:1)가 읊은 {269}은 본서 {273}, {301}, {318}, {409}, {464}에서 다른 장로들도 읊은 것으로 모두 6곳에 나타나고 있다.
노만 교수는 특정 장로가 특정 게송을 읊어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그 장로가 그 게송을 직접 지은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적고 있다.(K.R. Nor- man, xxi~xxii) 다른 장로들이 읊었거나 승가에서 유통되고 있는 게송들도 특정 장로가 많이 읊으면서 법문을 하고 유통시키면 그 장로의 게송으로 여기에 등재된 것으로도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을 자신의 게송으로 삼아 평생을 호지한 장로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열의 모음에 포함된 깝빠 장로(Th10:5 {567}~{576})의 게송 열 개 모두는 세존께서 읊으신 것이다. 그는 마가다 지역에서 작은 지역의 왕의 가문에 태어났고 아버지가 임종하자 왕위에 책봉되어 감각적 쾌락들에 지나치게 빠지고 탐하면서 머물렀는데 그가 아라한이 될 인연이 있는 것을 아신 세존께서 허공으로 그곳에 가셔서 본 게송 10개를 읊으셨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의 면전에서 듣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적용시켜] 절박한 가슴으로(saṁvigga-hadaya) 출가를 원하였으며 그는 삭발을 할 때 무애해체지와 더불어 아라한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아라한됨을 얻으면서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구경의 지혜를 천명하면서 세존께서 먼저 그에게 읊어주신 그 게송들을 읊었고 그래서 그 게송들은 장로의 게송(theragāthā)이 되었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ThagA.ii.242~243)
그리고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을 특정 장로가 자신의 구경의 지혜로 따라 읊어서 이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 합송자들이 그 게송을 여기 『테라가타』에서 특정 장로의 게송으로 모아 전승하고 있기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 해제 VII-⑵ 세존께서 읊으신 게송들과 다른 장로나 존재가 읊은 게송들도 참조하기 바란다.
②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게송들
삼장, 특히 경장에 포함된 각 장로의 게송들이 여기 이 『테라가타』에 모아져서 전승되어 오는 것도 이 『테라가타』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래 도표5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를 들면 앞의 말룽꺄뿟따 존자의 게송 {794}~{817}의 24개의 게송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제4권「말룽꺄뿟따 경」(S35:95) §14에서 말룽꺄뿟따 존자가 읊은 게송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서 {818}부터 {841}까지의 셀라 장로(Th20:6)와 관계된 게송들 24개는 모두 『맛지마 니까야』제3권「셀라 경」(M92) §16 이하에서 나타나는 게송들과 같다. 그리고 이「셀라 경」(M92)은 『숫따니빠따』에도「셀라 경」(Sn3:7/102ff)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리뿟따 장로(Th30:2 {981}~{1017})의 37개 게송들 가운데는 본 『테라가타』의 다른 곳이나 『상윳따 니까야』나 『앙굿따라 니까야』나 『우다나』에 나타나는 게송들이 적지 않다. 왕기사 장로(Th70:1 {1209}~{1,279})의 게송들은 『상윳따 니까야』제1권 왕기사 상윳따(S8)에 들어있는「출가 경」(S8:1)부터「왕기사 경」(S8:12)까지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게송들을 담고 있다.
③ 특정 게송 안의 특정 구절[句]들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
도표5에서 보듯이 이 경우의 보기로는 이시닷따 장로(Th1:120)의 {120}을 들 수 있다. 장로는 읊는다.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입니다.
괴로움의 멸진은 성취되었고
나는 번뇌의 멸진을 얻었습니다.”
<도표5> 니까야의 다른 곳과 같은 게송들
모음
게송번호
참고 게송
하나의 모음
{2}
{9}
{24}
{25}
{27}
{31}
{39}
{40}
{41}
{44}
{46}
{51}
{62}
{68}
{77}
{87}
{90}
{97}
{98}
{99}
{113}
{114}
{119}
{120}
={1006}
={885}; M86 §18 {15}
bcd={286}bcd
=cf. {1189}
={233}
={244}; {684}
={1162}
={1163}
={1167}
S10:5 §4 {822}
S4:22 §6 {489}
={1}ab
cf. S9:9 {784}
Ud4:7 §2; Vin.iv.54; DhpA.iii.384
={1130}
cf. cd{90cd}
ab={120ab}, cf.{87}. abd={440}abd
={862}
={794}+ef
={796}+ef
={601}; {1070}
=cf. {1033}
S9:5 {772}
abc={440}abc; ab={90ab}
둘의 모음
{124}
{145}
{147}
{148}
{176}
{185}
{186}
{196}
{204}
{210}
={495}; {1053}
S4:10 §5 {466}
={265}; cf. S14:16 §7 {1}; cf. It3:29 §78 {1}
={266}; S14:16 §7 {2}; It3:29 §78 {2}
=cf. {136}
S7:13 §4 {674}
S7:13 §4 {675}
=cf. {606}, {1002}
={509}; S11:14 §6 {912}
={71}
셋의 모음
{220}
{221}
{233}
{239}
{244}
{256}
{257}
{261}
{262}
{263}
{265}
{266}
{269}
bcd={24}bcd
=Thig. {251}
={27}
S2:1 {255}
={31}; {684}
S6:14 §9 {604}
S6:14 §9 {605}
={225}
={226}
={227}
={147}
={148}
={273}; {301}; {318}; {409}
넷의 모음
{270}
{273}
{274}
{278}
{286}
{298}
{301}
{302}
{313}
{314}
bcd={24}bcd
={269}
={270}, cf. {220}
={1078}
bcd={24}bcd
=cf. Thig {15}
={269}; {273}
={270}; {274}
={223}
={224} 등, cf. {220}
다섯의 모음
{318}
{319}
{322}
{332}
{337}
{350}
{351}
={269}; {273}; {301}
={270}; {274}; {302}, cf. {220}
={226}; {262}
=cf. {112}
={439}
={435}
={436}
여섯의 모음
{388}
{388}
{403}
{409}
{410}
{435}
{436}
{439}
{440}
{441}
{442}
{443}
{444}
={363}
=cf. {315}
=cf. {1005}
={269}
={270}; {274}; {302); {319}
={350}
={351}
={337}
abd={90}abd; abc={120}abc
S7:2 §5 {615}
S7:2 §5 {616}
S7:2 §5 {617}
S7:2 §5 {618}
일곱의 모음
{464}
{465}
{469}
{470}
{471}
{472}
{486}
={269}; {409} 등
={270} 등
A4:65 §2 {1}
A4:65 §2 {2}
A4:65 §2 {3}
A4:65 §2 {4}
=cf. {479}
여덟의 모음
{494}
{495}
{498}
{507}
{508}
{509}
{515}
={1072}
={124}, {1053}
M128 §6
S11:14 §6 {910}
S11:14 §6 {911}
S11:14 §6 {912}
cd={107}cd 등 - 전체, {465} 주해 참조
열의 모음
{550}
{562}
{562}
={499}
ab={332}ab 등, cd={270}cd 등
Vis.XII.65
열하나의 모음
{601}
{604}
{605}
{606}
{607}
={113}; {1070}
={656} 등
={136}; {380} 등
=cf. {196}
={196}
열둘의 모음
{628}
{629}
{631}
ab={517}ab
={1179}
M98 §13 {62}
열셋의 모음
{643}
ab=Dhp. {81}ab
열넷의 모음
{646}
{650}
{651}
{652}
{654}
{655}
{656}
{657}
{658}
=cf. {603}
={999}
={1000}; Ud3:4 §2 {24}
={1001}; S9:14 §5 {799}
={606}, cf. {196}
={196}; {607}
={604}; {687} 등
abc={136}abc; {380}abc 등
={1017}
열여섯의 모음
{676}
{676}
{676}
{676}
{684}
{685}
{686}
{687}
{688}
{689}
{690}
{691}
{692}
{693}
{694}
{695}
{696}
{697}
{698}
{699}
{700}
{701}
{702}
{703}
{704}
Dhp {277}
Dhp {278}
Dhp {279}
ab=S8:9 §5; {746}ab
={31}; {244}
={606} 등
={196}; {607}; {655}
={604}; {656} 등
cf. {136}, {605}, {657}
A6:43 §3 {1}
A6:43 §3 {2}
A6:43 §3 {3}
A6:43 §3 {4}
A6:43 §3 {5}
A6:43 §3 {6}
A6:43 §3 {7}
A6:43 §3 {8}
A6:43 §3 {9}
A6:43 §3 {10}
A6:43 §3 {11}
A6:43 §3 {12}
A6:43 §3 {13}
A6:43 §3 {14}
A6:43 §3 {15}
A6:43 §3 {16}
스물의 모음
{769}
{770}
{771}
{772}
{773}
{774}
{776}
{777}
{778}
{779}
{780}
{781}
{782}
{783}
{784}
{785}
{786}
{787}
{788}
{792}
{793}
{794}
{795}
{796}
{797}
{798}
{799}
{800}
{801}
{802}
{803}
{804}
{805}
{806}
{807}
{808}
{809}
{810}
{811}
{812}
{813}
{814}
{815}
{816}
{817}
{818}
{819}
{820}
{821}
{822}
{823}
{824}
{825}
{826}
{827}
{828}
{829}
{830}
{831}
{832}
{833}
{834}
{835}
{836}
{837}
{838}
{839}
{840}
{841}
{862}
{866}
{867}
{868}
{869}
{870}
{871}
{872}
{873}
{874}
{875}
{876}
{877}
{878}
{879}
{880}
{881}
{882}
{883}
{884}
{885}
{886}
{891}
{903}
{906}
{908}
{909}
{918}
M82 §25 {1}
M82 §25 {2}
M82 §25 {3}
M82 §25 {4}
M82 §25 {5}
M82 §25 {6}
M82 §42 {1}
M82 §42 {2}
M82 §42 {3}
M82 §42 {4}
M82 §42 {5}
M82 §42 {6}
M82 §42 {7}
M82 §42 {8}
M82 §42 {9}
M82 §42 {10}
M82 §42 {11}
M82 §42 {12}
M82 §42 {13}
={604}; {656} 등
={136} 등
S35:95 §14 {1}ab
S35:95 §14 {1}cde
S35:95 §14 {2}ab
S35:95 §14 {2}cde
S35:95 §14 {3}ab
S35:95 §14 {1}cde
S35:95 §14 {4}ab
S35:95 §14 {4}cde
S35:95 §14 {5}ab
S35:95 §14 {5}cde
S35:95 §14 {6}ab
S35:95 §14 {6}cde
S35:95 §14 {7}ab
S35:95 §14 {7}cde
S35:95 §14 {8}ab
S35:95 §14 {8}cde
S35:95 §14 {9}ab
S35:95 §14 {9}cde
S35:95 §14 {10}ab
S35:95 §14 {10}cde
S35:95 §14 {11}ab
S35:95 §14 {11}cde
S35:95 §14 {12}ab
S35:95 §14 {12}cde
M92 §16 {1}
M92 §16 {2}
M92 §16 {3}
M92 §16 {4}
M92 §16 {5}
M92 §16 {6}
M92 §17
M92 §18 {1}
M92 §18 {2}
M92 §19 {1}
M92 §19 {2}
M92 §19 {3}
M92 §19 {4}
M92 §19 {5}
M92 §20 {1}
M92 §20 {2}
M92 §20 {3}
M92 §21
M92 §22
M92 §23
M92 §28 {1}
M92 §28 {2}
M92 §28 {3}
M92 §28 {4}
={97}
M86 §6 {1}
M86 §6 {2}
M86 §6 {3}
M86 §6 {4}
M86 §6 {5}
M86 §18 {1}
M86 §18 {2}
M86 §18 {3}
M86 §18 {4}
M86 §18 {5}
M86 §18 {6}
M86 §18 {7}; = Thag {19}
M86 §18 {8}
M86 §18 {9}
M86 §18 {10}
M86 §18 {11}
M86 §18 {12}
M86 §18 {13}
M86 §18 {14}
M86 §18 {15}
M86 §18 {16}
={604; {656} 등
cd={24}cd 등
S6:15 §8 {612}
S9:6 §6 {777}
={1181}
={604}; {656} 등
서른의 모음
{989}
{990}
{991}
{999}
{1000}
{1001}
{1002}
{1003}
{1005}
{1006}
{1016}
{1017}
{1020}
{1032}
{1033}
{1046}
{1050}
A6:14 §6; A6:15 §5
A6:14 §6; A6:15 §5
S11:15 §3 {914}
={650}
={651}; Ud3:4 {24}
={652}; S9:14 §5 {799}
=cf. {196}
={606} 등
={403}
={2}
={604} 등
={658} 등
={769}; M82 §25 {1}
It3:37 §2 {1}
=cf. {114}
D16 §6.10; S6:15 {610}
={1088}, cf. {604} 등
마흔의 모음
{1052}
{1053}
{1070}
{1072}
{1078}
{1088}
={494}
={124}; {495}
={113}; {601}
={494}
={278}
={1050}; cf. {604}; {1016}
쉰의 모음
{1130}
={77}
예순의 모음
{1157}
{1158}
{1162}
{1163}
{1164}
{1165}
{1166}
{1167}
{1179}
{1181}
{1182}
{1185}
{1186}
{1187}
{1188}
{1189}
{1190}
{1191}
{1192}
{1193}
{1194}
{1195}
{1196}
{1197}
{1199}
{1200}
{1201}
{1202}
{1203}
{1204}
{1205}
{1206}
{1207}
{1208}
={769}; M82 §25
=cf. {1046}
={39}
={40}
cf. S51:14 §3; §6
cf. S21:4 §7
S21:4 §7
={41}
={629}
={909}
M143 §17 등
={604}
={136}; {605} 등
M50 §24 {1}
M50 §24 {2}
M50 §24 {3}
M50 §24
={1189}
M50 §24
={1189}
M50 §27
={1189}
M50 §28
={1189}
M50 §29 {2}
M50 §29 {3}
={1189}
M50 §30
={1189}
M50 §31 {1}
M50 §31 {2}
M50 §31 {3}
M50 §31 {4}
M50 §31 {5}
큰 모음
{1209}
{1210}
{1211}
{1212}
{1213}
{1214}
{1215}
{1216}
{1217}
{1218}
{1219}
{1220}
{1221}
{1222}
{1223}
{1224}
{1225}
{1226}
{1227}
{1228}
{1229}
{1230}
{1231}
{1232}
{1233}
{1234}
{1235}
{1236}
{1237}
{1238}
{1239}
{1240}
{1241}
{1242}
{1243}
{1244}
{1245}
{1246}
{1247}
{1248}
{1249}
{1250}
{1251}
{1252}
{1254}
{1255}
{1256}
{1258}
{1259}
{1261}
S8:1 §4 {707}
S8:1 §4 {708}
S8:1 §4 {709}
S8:1 §4 {710}
S8:1 §4 {711}
S8:1 §4 {712}
S8:1 §4 {713}
S8:1 §4 {714}
S8:1 §4 {715}
S8:1 §4 {716}
S8:3 §3 {717}
S8:3 §3 {718}
S8:3 §3 {719}
S8:3 §3 {720}
S8:4 §3 {721}
S8:4 §3 {722}
S8:4 §3 {724}
S8:4 §3 {725}; Thig {20}
S8:5 §6 {727}
S8:5 §6 {728}
S8:5 §6 {729}
S8:5 §6 {730}
S8:6 §5 {731}
S8:6 §5 {732}
S8:6 §6 {733}
S8:7 §8 {734}
S8:7 §8 {735}
S8:7 §8 {736}
S8:7 §8 {737}
S8:8 §5 {738}
S8:8 §5 {739}
S8:8 §5 {740}
S8:8 §5 {741}
S8:8 §7 {742}
S8:8 §7 {743}
S8:8 §7 {744}
S8:8 §7 {745}
S8:9 §5 {746}
S8:9 §5 {747}
S8:9 §5 {748}
S8:10 §4 {749}
S8:10 §4 {750}
S8:10 §4 {751}
S8:11 §3 {752}
=cf. S8:12 §2 {754}
=cf. S8:12 §2 {754}
S8:12 §2 {755}
=cf. {417}; {492}
=Thig {186} 등
cdef={9}; abS8:12 §2 {756}; M86 §18
한편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는 {440}에서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입니다.
괴로움의 멸진은 성취되었고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습니다.”
라고 읊었고, 사미닷따 장로(Th1:90)는 {90}에서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蘊]은 철저하게 알아져서
뿌리가 잘린 채로 서있을 뿐이로다.
태어남의 윤회는 멸진하였고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도다.”
라고 읊었다. 이처럼 이시닷따 장로(Th1:120) {120}의 첫째 둘째 셋째 구절은 느하따까무니 장로(Th6:11) {440}의 첫째 둘째 셋째와 같다. 그리고 이시닷따 장로의 첫째 둘째 구절은 사미닷따 장로(Th1:90) {90}의 첫째 둘째와 같다. 그래서 아래 도표에서는 {120} (abc ={440}abc; ab={90ab})로 표기하였다.
④ 같은 장로의 게송들에서 특정 구절[句]들이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스물의 모음 이하에 나타나는 장로들과 같이 많은 게송을 읊은 장로들의 게송들에는 앞의 특정 구절[句]들이 뒤의 게송들에서 후렴구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말룽꺄뿟따 장로(Th20:5)의 24개 게송들
먼저 말룽꺄뿟따 장로(Th6:5)의 게송들을 살펴보자. 장로가 읊은 {794} ~{817}의 24개 게송들은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 이 게송들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인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색‧성‧향‧미‧촉‧법)을 차례대로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의 12개 게송들은 순서대로 형색을 보는 등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 사랑스러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후반부의 12개 게송들은 같은 순서대로 형색을 보는 등에서 ‘마음챙기면서 형색을 보고 / 형색들에 물들지 않는 자’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라고 읊은 뒤 다음의 게송에서 아울러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라고 강조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라고 읊은 뒤 다음의 게송에서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24개의 게송들 가운데 전반부의 12개는 부정적인 입장을, 후반부의 12개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794}부터 짝수 번호의 게송들과 {795}부터 홀수 번호의 게송들은 이 게송들에 들어있는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과 관계된 용어들 외의 모든 구절들은 모두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794}부터의 짝수 번호 게송들 12개는 모두 사구게로 되어 있고 {795}부터의 홀수 번호 게송들 12개는 모두 육구게로 되어 있다.
ⓑ 딸라뿌따 장로(Th50:1)의 55개 게송들
다음으로는 쉰의 모음에 실려있는 딸라뿌따 장로(Th50:1 {1091}~{1145})가 읊은 55개의 게송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쉰의 모음에 실려있는 딸라뿌따 장로가 읊은 이 55개의 게송들은 출가하기 이전에 대한 게송들({1091}~{1106}) 16개와 출가한 후에 대한 게송들({1107}~{1145}) 39개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앞의 16개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것은 언제 이루어질까?’({1093} 등)라거나 ‘언제 이런 것이 나에게 있게 될 것인가?’({1099} 등)라는 등의 ‘언제(kadā)’라는 의문사를 가진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게송들 39개({1107}~{1145})는 대부분 자신의 마음(citta)을 호격으로 불러서 꾸짖고 격려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이 후반부의 39개 게송 가운데 앞의 28개 게송들({1107}~{1134})은 마음을 꾸짖는 방법으로 교계하고 뒤의 11개 게송들({1135}~{1145})은 마음을 격려하는 방법으로 읊고 있다. 그래서 주석서는 “이와 같이 28개 게송들로({1107}~{1134}) 꾸짖음(niggaṇhana)을 통해서 마음을 교계한 뒤 이제 한거하는 장소를 묘사함 등을 통해서 격려하면서(sampahaṁsenta) 본 게송 등을 말하였다.”(ThagA.iii.159)라고 설명한다. 뒤의 39개 게송들 가운데 ‘마음이여, 이처럼 그대는 전부터 나에게 재촉하였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가진 게송들이 8개 정도가 된다.
ⓒ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의 게송들
예순의 모음에 실려있는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1208}) 63개 게송들 가운데 {1189} 게송도 {1191} 등의 여섯 곳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
스물의 모음에 실려있는 깔리고다의 아들 밧디야 장로(Th20:7)의 24개의 게송들({842}~{865}) 가운데 {844}부터 {856}까지의 13가지 두타행에 대한 게송과 {857}부터 {861}까지의 5개를 더한 모두 18개의 사구게 게송들도 언급해야 한다. 여기서 {843}부터 {861}까지의 19개 게송들은 첫 번째 구절[句]만 ‘분소의를 입는 자는 참을성 있게’ 등으로 다르고 나머지 3개의 구절들은 같은 구절들이 반복된다. PTS본과 VRI본은 모두 ‘___pe___’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하였다. 역자도 생략 부호 ‘…’로 생략하여 번역하였다.
이처럼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āla)을 생략한 경우는 기리마난다 장로(Th5:3 {325}~{329}), 순다라사뭇다 장로(Th7:1 {459}~{465}), 안냐꼰단냐 장로(Th16:1 {673}~{688}) 등의 게송들을 들 수 있다.
ⓔ 랏타빨라 장로(Th20:4)의 게송들
그리고 언급해야 할 게송들로는 랏타빨라 장로(Th20:4 {769}~{793})의 24개 게송들 가운데 {769}~{775}의 7개 게송들이 있다. 이 일곱 개 게송들은 아난다 장로(Th30:3 {1018}~{1050})의 게송 가운데 {1020}으로, 마하목갈라나 장로(Th60:1 {1146~1208})의 게송 가운데 {1157}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PTS본에서는 랏타빨라 장로(Th20:4)의 첫 번째 게송인 {769}번 하나의 게송만을 가져와서 ‘passa cittakataṁ bimbaṁ __pa__’ ({1020}; {1157})로 반복되는 부분(뻬얄라, peyyala)의 생략으로 편집하고 있다. PTS본을 저본으로 삼아서 PTS본의 경 번호를 따르고 있는 역자는 {1020}과 {1157}의 한글 번역만을 각각 싣고 주해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XI. 맺는말
이상으로 역자는 본 해제에서 I부터 X까지 전체를 10장으로 나누어서 『테라가타』를 살펴보았다. 각 장의 주제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웬만큼 큰 절에 다 있는 응진전(應眞殿)이나 나한전으로부터 글을 시작하였다.
II. 『테라가타』란 무엇인가: ‘테라가타(theragāthā)’라는 용어는 담마빨라 스님에 의해서 “therehi bhāsitā gāthā”(ThagA.i.1), 즉 ‘장로들에 의해서(therehi) 읊어진(bhāsitā) 게송들(gāthā)’로 정의되는데 여기 제2장에서는 테라의 의미와 가타의 의미를 경전과 주석서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III. 『테라가타』의 구성: 259분 장로들의 게송 1,279개를 하나의 모음부터 큰 모음까지 모두 21개의 모음 안에 담고 있는 『테라가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IV.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운율(chando): 장로들이 읊은 게송들의 ‘음성적 형식’이 『테라가타』의 운율이다. 1,279개의 게송이 담겨있는 『테라가타』에는 기본 운율 9개와 혼합된 운율 10개, 모두 19종류의 운율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운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V.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 담마빨라 스님: 『테라가타』에는 게송 1,279개와 읊은 장로들의 이름만 나타나고 있다. 259분 장로들의 행장, 즉 장로들의 전생의 인연과 금생에 태어난 지역과 가문과 출가와 아라한이 됨과 게송을 읊은 배경 등을 밝히는 것은 『테라가타 주석서』이다. 그러므로 주석서가 없이는 이러한 기본 사항들을 알 수 없다. 본 장에서는 『테라가타 주석서』와 저자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VI. 『테라가타 주석서』의 구성 및 전개 방법: 이렇게 중요한 『 테라가타 주석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259분의 장로들과 게송들을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았다.
VII. 『테라가타』를 읊은 장로들에 대한 고찰: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259분 장로들의 출생 지역, 태생 등을 분류해 보았다. 그리고 게송을 읊은 자로 명시된 장로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세존이나 다른 존재들이 읊은 것 등과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에 출가한 장로들이 읊은 것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VIII.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의 출가: 장로들은 출가자이다.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출가하였는지를 분류하여 정리해 보았다.
IX. 장로들이 아라한이 된 인연: 『테라가타』에 게송이 실린 259분 장로들은 모두 아라한들이다. 이분들은 어떤 인연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X. 장로들이 『테라가타』의 게송들을 읊은 배경: 본 해제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259분 장로들이 어떤 이유와 어떤 배경 등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는지를 11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고 『테라가타』에 중복하여 나타나는 게송들이나 구절들도 넷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으며 도표로도 정리해 보았다.
『테라가타 주석서』의 저자 담마빨라 스님은 주석서를 마무리하면서 『테라가타』에 실린 게송들을 읊은 장로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테라가타 주석서』는 6쪽 정도의 분량으로(ThagA.iii.203~209) 264분(중복되는 장로들을 한 분으로 계산하면 259분)인 장로들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한 가지 방법부터 10가지 방법까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뒤 그것을 다시 20가지, 40가지, 80가지, 240가지, 1,200가지로 확장하여 언급하면서 마무리 짓고 있다. 역자는 『테라가타 주석서』의 이 부분을 모두 번역하여 20장 정도의 분량으로 ‘XI. 『테라가타 주석서』에서 정리하는 장로들에 대한 다양한 분류’로 편집까지 마쳤지만 해제의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최종 단계에서 제외하였다. 이 번역의 전문은 본서를 출판한 뒤에 초기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실을 예정이다.
그리고 역자는 259분 아라한 장로들이 읊은 1,279개 게송들의 주제나 사상이나 내용을 무엇을 기준으로 파악할까를 두고 나름대로 고심을 하다가 이 1,279개 게송들에 많이 나타나는 빠알리 용어들을 모두 분류하고 분석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으로 주제와 내용을 파악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며칠에 걸쳐서 1,279개 게송의 한글 번역에 나타나는 주요 용어들을 폭스프로로 입력해서 분류하여 빈도수가 많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용어들을 대략 110개 정도 뽑았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주제별로 모아서 전체를 10가지 대주제로 나누어 보았다. 그래서 ‘XII. 『테라가타』의 주요 주제에 대한 고찰 ― 『테라가타』에 나타나는 용어들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본 해제에 실을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적어본 것은 A4 용지로 60장 분량이었으며 지금의 해제와 같은 신국판의 편집으로는 1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이어서 해제에는 싣지 않기로 하였다. 독자님들의 요구가 있으면 이 부분도 초기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한다.
이제 역자는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말라(khaṇo vo mā upa- ccagā).’라고 역자를 경책시켜 주신 사리뿟따 장로(Th30:2)의 말씀을 적으면서 『테라가타』의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뒤에든 앞에든 양쪽으로 이것은
오직 죽음이니 죽음이 아님이 아닙니다.
도를 닦으십시오, 멸망하지 마십시오.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1004})
마치 변방에 있는 도시를
안팎으로 잘 보호하듯이
그와 같이 자신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순간이 그대들을 지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순간을 놓친 자들은 지옥으로 인도되어
참으로 슬퍼하기 때문입니다.”({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