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목차>
- 넷의 모음
Ⅰ.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1장 반다가마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깨달음 경 | A4:1 | 47 |
| 떨어짐 경 | A4:2 | 50 |
| 파 엎음 경1 | A4:3 | 51 |
| 파 엎음 경2 | A4:4 | 54 |
| 흐름을 따름 경 | A4:5 | 56 |
| 적게 배움 경 | A4:6 | 60 |
| 아름다움 경 | A4:7 | 63 |
| 무외 경 | A4:8 | 64 |
| 갈애 경 | A4:9 | 68 |
| 속박 경 | A4:10 | 69 |
제2장 걷고 있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걷고 있음 경 | A4:11 | 75 |
| 계 경 | A4:12 | 77 |
| 노력 경 | A4:13 | 80 |
| 단속 경 | A4:14 | 82 |
| 알려진 것 경 | A4:15 | 85 |
| 미세함 경 | A4:16 | 86 |
| 잘못된 길 경1 | A4:17 | 88 |
| 잘못된 길 경2 | A4:18 | 88 |
| 잘못된 길 경3 | A4:19 | 89 |
| 음식 소임자 경 | A4:20 | 89 |
제3장 우루웰라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우루웰라1 경 | A4:21 | 92 |
| 우루웰라2 경 | A4:22 | 96 |
| 세상 경 | A4:23 | 98 |
| 깔라까 경 | A4:24 | 101 |
| 청정범행 경 | A4:25 | 104 |
| 속임 경 | A4:26 | 105 |
| 지족 경 | A4:27 | 106 |
| 계보 경 | A4:28 | 107 |
| 법의 부분 경 | A4:29 | 110 |
| 유행승 경 | A4:30 | 112 |
제4장 바퀴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바퀴 경 | A4:31 | 117 |
| 섭수 경 | A4:32 | 118 |
| 사자 경 | A4:33 | 118 |
| 청정한 믿음 경 | A4:34 | 121 |
| 왓사까라 경 | A4:35 | 123 |
| 세상 경 | A4:36 | 128 |
| 빗나가지 않음 경 | A4:37 | 133 |
| 초연함 경 | A4:38 | 135 |
| 웃자야 경 | A4:39 | 138 |
| 우다이 경 | A4:40 | 142 |
제5장 로히땃사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삼매 경 | A4:41 | 144 |
| 질문 경 | A4:42 | 147 |
| 분노1 | A4:43 | 148 |
| 분노2 | A4:44 | 149 |
| 로히땃사 경1 | A4:45 | 150 |
| 로히땃사 경2 | A4:46 | 153 |
| 원거리 경 | A4:47 | 156 |
| 위사카 경 | A4:48 | 157 |
| 전도 경 | A4:49 | 159 |
| 오염원 경 | A4:50 | 161 |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6장 공덕이 넘쳐흐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공덕이 넘쳐흐름 경1 | A4:51 | 164 |
| 공덕이 넘쳐흐름 경2 | A4:52 | 166 |
| 함께 삶 경1 | A4:53 | 169 |
| 함께 삶 경2 | A4:54 | 172 |
| 어울리는 삶 경1 | A4:55 | 175 |
| 어울리는 삶 경2 | A4:56 | 177 |
| 숩빠와사 경 | A4:57 | 178 |
| 수닷따 경 | A4:58 | 180 |
| 음식 경 | A4:59 | 182 |
| 재가자에 합당함 경 | A4:60 | 183 |
제7장 합리적인 행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합리적인 행위 경 | A4:61 | 184 |
| 빚 없음 경 | A4:62 | 190 |
| 범천 경 | A4:63 | 192 |
| 지옥 경 | A4:64 | 193 |
| 외모 경 | A4:65 | 193 |
| 탐하는 자 경 | A4:66 | 194 |
| 뱀 왕 경 | A4:67 | 195 |
| 데와닷따 경 | A4:68 | 198 |
| 노력 경 | A4:69 | 201 |
| 법답지 못함 경 | A4:70 | 202 |
제8장 티 없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노력 경 | A4:71 | 205 |
| 견해 경 | A4:72 | 205 |
| 참된 사람 경 | A4:73 | 206 |
| 며느리 경 | A4:74 | 208 |
| 완성 경 | A4:75 | 209 |
| 꾸시나라 경 | A4:76 | 210 |
| 생각할 수 없음 경 | A4:77 | 212 |
| 보시 경 | A4:78 | 213 |
| 장사 경 | A4:79 | 214 |
| 깜보자 경 | A4:80 | 216 |
제9장 동요하지 않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불살생 경 | A4:81 | 219 |
| 거짓말 경 | A4:82 | 219 |
| 비난 경 | A4:83 | 220 |
| 분노 경 | A4:84 | 221 |
| 암흑 경 | A4:85 | 222 |
| 낮음 경 | A4:86 | 225 |
| 음식 경 | A4:87 | 225 |
| 족쇄 경 | A4:88 | 230 |
| 견해 경 | A4:89 | 231 |
| 무더기 경 | A4:90 | 233 |
제10장 아수라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아수라 경 | A4:91 | 236 |
| 삼매 경1 | A4:92 | 237 |
| 삼매 경2 | A4:93 | 238 |
| 삼매 경3 | A4:94 | 240 |
| 화장터 나무토막 경 | A4:95 | 242 |
| 탐욕을 버림 경 | A4:96 | 243 |
| 재빠르게 앎 경 | A4:97 | 246 |
| 자신의 이익 경 | A4:98 | 249 |
| 공부지음 경 | A4:99 | 249 |
| 뽀딸리야 경 | A4:100 | 251 |
Ⅲ.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11장 비구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비구름 경1 | A4:101 | 256 |
| 비구름 경2 | A4:102 | 258 |
| 항아리 경 | A4:103 | 260 |
| 호수 경1 | A4:104 | 263 |
| 호수 경2 | A4:105 | 263 |
| 망고 경 | A4:106 | 265 |
| 쥐 경 | A4:107 | 268 |
| 황소 경 | A4:108 | 270 |
| 나무 경 | A4:109 | 272 |
| 뱀 경 | A4:110 | 274 |
제12장 께시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께시 경 | A4:111 | 278 |
| 속력 경 | A4:112 | 281 |
| 채찍 경 | A4:113 | 282 |
| 코끼리 경 | A4:114 | 285 |
| 경우 경 | A4:115 | 288 |
| 불방일 경 | A4:116 | 290 |
| 보호 경 | A4:117 | 291 |
| 절박함을 일으킴 경 | A4:118 | 292 |
| 두려움 경1 | A4:119 | 293 |
| 두려움 경2 | A4:120 | 293 |
| 자책 경 | A4:121 | 294 |
제13장 두려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파도 경 | A4:122 | 297 |
| 다른 점 경1 | A4:123 | 301 |
| 다른 점 경2 | A4:124 | 306 |
| 자애 경1 | A4:125 | 308 |
| 자애 경2 | A4:126 | 310 |
| 경이로움 경1 | A4:127 | 311 |
| 경이로움 경2 | A4:128 | 313 |
| 놀라운 법 경1 | A4:129 | 315 |
| 놀라운 법 경2 | A4:130 | 316 |
| 족쇄 경 | A4:131 | 318 |
제14장 사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응답 경 | A4:132 | 232 |
| 예리한 이해 경 | A4:133 | 324 |
| 노력 경 | A4:134 | 325 |
| 비난받아 마땅한 자 경 | A4:135 | 325 |
| 계 경1 | A4:136 | 327 |
| 계 경2 | A4:137 | 327 |
| 끌어내림 경 | A4:138 | 328 |
| 법사 경 | A4:139 | 329 |
| 논사 경 | A4:140 | 330 |
| 빛 경 | A4:141 | 332 |
제15장 빛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밝음 경 | A4:142 | 332 |
| 광명 경 | A4:143 | 332 |
| 광휘로움 경 | A4:144 | 333 |
| 광채 경 | A4:145 | 333 |
| 적절한 시기 경1 | A4:146 | 333 |
| 적절한 시기 경2 | A4:147 | 333 |
| 행위 경1 | A4:148 | 334 |
| 행위 경2 | A4:149 | 335 |
| 정수경 | A4:150 | 335 |
Ⅳ. 큰 50개 경들의 묶음
제16장 기능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기능 경 | A4:151 | 336 |
| 믿음의 힘 경 | A4:152 | 337 |
| 통찰지의 힘 경 | A4:153 | 337 |
| 마음챙김의 힘 경 | A4:154 | 337 |
| 숙고의 힘 경 | A4:155 | 338 |
| 겁 경 | A4:156 | 338 |
| 병 경 | A4:157 | 338 |
| 쇠퇴 경 | A4:158 | 340 |
| 비구니 경 | A4:159 | 341 |
| 선서의 율 경 | A4:160 | 346 |
제17장 도닦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간략하게 경 | A4:161 | 351 |
| 상세하게 경 | A4:162 | 351 |
| 부정 경 | A4:163 | 354 |
| 견딤 경1 | A4:164 | 358 |
| 견딤 경2 | A4:165 | 360 |
| 양쪽 모두 경 | A4:166 | 361 |
| 목갈라나 경 | A4:167 | 363 |
| 사리뿟따 경 | A4:168 | 364 |
| 정력적인 노력 경 | A4:169 | 365 |
| 쌍 경 | A4:170 | 367 |
제18장 의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의도 경 | A4:171 | 373 |
| 자기 존재 경 | A4:172 | 377 |
| 분석 경 | A4:173 | 379 |
| 마하꼿티따 경 | A4:174 | 381 |
| 우빠와나 경 | A4:175 | 385 |
| 포부 경 | A4:176 | 388 |
| 라훌라 경 | A4:177 | 389 |
| 마을의 못 경 | A4:178 | 390 |
| 열반 경 | A4:179 | 393 |
| 큰 권위 경 | A4:180 | 395 |
제19장 무사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무사 경 | A4:181 | 401 |
| 보증 경 | A4:182 | 403 |
| 들음 경 | A4:183 | 404 |
| 무외 경 | A4:184 | 405 |
| 바라문의 진리 경 | A4:185 | 410 |
| 용솟음 경 | A4:186 | 413 |
| 왓사까라 경 | A4:187 | 416 |
| 우빠까 경 | A4:188 | 421 |
| 실현해야 할 법 경 | A4:189 | 424 |
| 포살 경 | A4:190 | 426 |
제20장 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귀로 들음 경 | A4:191 | 430 |
| 경우 경 | A4:192 | 435 |
| 밧디야 경 | A4:193 | 442 |
| 사뿌기야 경 | A4:194 | 452 |
| 왑빠 경 | A4:195 | 456 |
| 살하 경 | A4:196 | 463 |
| 말리까 경 | A4:197 | 468 |
| 자기 학대 경 | A4:198 | 473 |
| 갈애 경 | A4:199 | 484 |
| 애정 경 | A4:200 | 488 |
Ⅴ. 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21장 참된 사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학습계목 경 | A4:201 | 496 |
| 믿음 없음 경 | A4:202 | 498 |
| 일곱 가지 업 경 | A4:203 | 500 |
| 열 가지 업 경 | A4:204 | 502 |
| 여덟 가지 구성요소 경 | A4:205 | 504 |
| 열 가지 도 경 | A4:206 | 506 |
| 악한 법 경1 | A4:207 | 508 |
| 악한 법 경2 | A4:208 | 509 |
| 악한 법 경3 | A4:209 | 510 |
| 악한 법 경4 | A4:210 | 512 |
제22장 아름다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회중 경 | A4:211 | 514 |
| 견해 경 | A4:212 | 515 |
| 은혜를 모름 경 | A4:213 | 515 |
| 살생 경 | A4:214 | 516 |
| 도 경1 | A4:215 | 516 |
| 도 경2 | A4:216 | 517 |
| 언어표현 경1 | A4:217 | 517 |
| 언어표현 경2 | A4:218 | 518 |
| 양심 없음 경 | A4:219 | 518 |
| 나쁜 통찰지 경 | A4:220 | 518 |
제23장 좋은 행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나쁜 행위 경 | A4:221 | 520 |
| 견해 경 | A4:222 | 520 |
| 은혜를 모름 경 | A4:223 | 521 |
| 살생 경 | A4:224 | 522 |
| 도 경 | A4:225 | 522 |
| 언어표현 경1 | A4:226 | 522 |
| 언어표현 경2 | A4:227 | 523 |
| 양심 없음 경 | A4:228 | 523 |
| 나쁜 통찰지 경 | A4:229 | 524 |
| 시인 경 | A4:230 | 524 |
제24장 업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간략하게 경 | A4:231 | 526 |
| 상세하게 경 | A4:232 | 527 |
| 소나까야나 경 | A4:233 | 530 |
| 학습계목 경 | A4:234 | 533 |
| 성스러운 도 경 | A4:235 | 536 |
| 깨달음의 구성요소 경 | A4:236 | 538 |
| 비난받아 마땅함 경 | A4:237 | 539 |
| 악의 없음 경 | A4:238 | 540 |
| 사문 경 | A4:239 | 541 |
| 참된 사람의 이익 경 | A4:240 | 542 |
제25장 범계에 대한 두려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범계 경1 | A4:241 | 544 |
| 범계 경2 | A4:242 | 546 |
| 공부지음의 이익 경 | A4:243 | 550 |
| 자는 자세 경 | A4:244 | 553 |
| 탑을 세울 만한 경 | A4:245 | 554 |
| 통찰지의 증장 경 | A4:246 | 554 |
| 언어표현 경1 | A4:247 | 556 |
| 언어표현 경2 | A4:248 | 556 |
| 언어표현 경3 | A4:249 | 556 |
| 언어표현 경4 | A4:250 | 557 |
제26장 최상의 지혜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최상의 지혜 경 | A4:251 | 558 |
| 추구 경 | A4:252 | 559 |
| 섭수 경 | A4:253 | 560 |
| 말룽꺄뿟따 경 | A4:254 | 560 |
| 가문 경 | A4:255 | 562 |
| 좋은 혈통 경1 | A4:256 | 563 |
| 좋은 혈통 경2 | A4:257 | 565 |
| 힘 경 | A4:258 | 566 |
| 숲 경 | A4:259 | 567 |
| 업 경 | A4:260 | 567 |
제27장 업의 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생명을 죽임 경 | A4:261 | 569 |
| 주지 않은 것을 가짐 경 | A4:262 | 570 |
| 삿된 음행 경 | A4:263 | 570 |
| 거짓말 경 | A4:264 | 571 |
| 이간질 경 | A4:265 | 571 |
| 욕설 경 | A4:266 | 571 |
| 잡담 경 | A4:267 | 572 |
| 간탐 경 | A4:268 | 572 |
| 악의에 찬 마음 경 | A4:269 | 573 |
| 삿된 견해 경 | A4:270 | 573 |
제28장 탐욕의 반복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마음챙김의 확립 등 경 | A4:271 | 574 |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해제(解題)>
1. 들어가는 말
『앙굿따라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가운데서 그 주제의 법수가 분명한 말씀들을 숫자별로 모아서 결집한 것이다.『앙굿따라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하나부터(A1) 열하나까지(A11) 모두 11개의 모음(Nipāta)으로 분류하여 결집하였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은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그 주제의 법수가 넷인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명칭도「넷의 모음」(Catuka- nipāta)이다. PTS본에 의하면「넷의 모음」(A4)에는 모두 271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맛지마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 정도의 길이에 해당하는 경들도 많고 단지 넷에 관계된 법수를 나열하고 있는 짧은 경들도 많다. PTS본과 육차결집본에서는「넷의 모음」도「셋의 모음」처럼 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일련번호로 매기고 있다. 그래서 역자도 A4:1부터 A4:271까지로 경의 번호를 매겼다.
2.「넷의 모음」의 구성
「넷의 모음」에는 모두 27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들을 모두 28개의 품(Vagga)으로 나누어서 제27품까지는 각 품마다 10개의 경들을 배정하고, 맨 마지막 제28품에만 1개의 경을 배당하였다. 제28품은 반복되는 정형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육차결집본은 무려 510개의 경들로 번호를 매기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역자서문 §5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28개의 품은 모두 다섯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묶었다. 그래서 네 번째 묶음까지는 5개씩의 품을 배정하였고 다섯 번째 묶음에는 8개의 품을 배정하였다.
각 품의 명칭은 그 품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 가운데『앙굿따라 니까야』를 모아서 편집한 옛 스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표제어를 골라서 붙인 것이다.
그럼 각 경들의 묶음 별로 간단하게 전체를 개관해보자.
⑴「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장「반다가마 품」, 제2장「걷고 있음 품」, 제3장「우루웰라 품」, 제4장「바퀴 품」, 제5장「로히땃사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첫 번째 묶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과「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가운데 제6품과 제7품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넷의 모음」은 이처럼 게송을 포함한 경들을 먼저 모아서 편집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⑵「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6장「공덕이 넘쳐흐름 품」, 제7장「합리적인 행위 품」, 제8장「티 없음 품」, 제9장「동요하지 않음 품」, 제10장「아수라 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 두 품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주제를 가진 경들은 예를 들면「공덕이 넘쳐흐름 경」1(A4:51)과「공덕이 넘쳐흐름 경」2(A4:52)로 앞뒤로 모아서 편집하였지만 각 품에 포함된 경들 간에 서로 공통된 점은 찾기 힘들다. 물론 비슷한 주제는 함께 모아서 같은 품에 포함하여 편집한 흔적은 아주 뚜렷하지만 전체적으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주제를 가진 경들이 다른 품에 포함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⑶「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1장「비구름 품」, 제12장「께시 품」, 제13장「두려움 품」, 제14장「사람 품」, 제15장「빛 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제11장「비구름 품」은 10가지 비유를 들어서 인간을 설명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예리한지를 알 수 있는 경들이다. 제12장「께시 품」의 처음 네 경은 말과 코끼리 조련에 비유해서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고 있다. A4:119부터 A4:122까지의 네 개 경은 두려움이 주제이다. 제15품은 아주 짧은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넷의 모음」 전체에서 같은 주제의 경들은 앞뒤에 함께 모아서 편집하는 경향이 강하다.
⑷「큰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6장「기능 품」, 제17장「도닦음 품」, 제18장「의도 품」, 제19장「무사 품」, 제20장「대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들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큰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네 번째 묶음에는「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다른 경들보다 긴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제20장「대품」은 더욱 긴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제16장「기능 품」의 처음 8개의 경들은 길이가 아주 짧다. 앞의 묶음에 포함되어야 할 경들이라 할 수 있는데 50개씩 나누어서 경들의 묶음을 만들다 보니 이 묶음에 포함된 듯하다.
그리고 제17장「도닦음 품」의 8개 경들(A4:161~168)은 모두 도닦음을 넷으로 분류하여 고찰해보고 있으며 나머지 두 경도 모두 도닦음과 관련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⑸「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21장「참된 사람 품」, 제22장「아름다움 품」, 제23장「좋은 행위 품」, 제24장「업 품」, 제25장「범계에 대한 두려움 품」, 제26장「최상의 지혜 품」, 제27장「업의 길 품」, 제28장「탐욕의 반복 품」의 여덟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의 일곱 품은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고 마지막인 제28장「탐욕의 반복 품」은 한 개의 경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육차결집본에 의하면 제28장「탐욕의 반복」(Rāga-peyyāla, A4:271)으로 이름붙인 이 하나의 품은 무려 510개의 경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섯 번째 묶음의 제22장「아름다움 품」, 제23장「좋은 행위 품」, 제27장「업의 길 품」은 각 품마다 서로 관련된 주제를 가진 짧은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27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은 십불선업도와 십선업도에 해당되는 살생․불살생부터 사견․정견까지의 열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3.「넷의 모음」의 특징
「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는 271개 경들 전체를 살펴보면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70개의 경들을 경의 전반부에 편집해서 넣었다. 초기경에서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은 크게 몇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① 산문으로 된 가르침이 먼저 나오고 이러한 가르침을 게송으로 경의 후반부에 요약하는 형식이다. 즉『앙굿따라 니까야』의 경들 특히 본「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② 게송이 먼저 나오고 산문으로 이러한 게송을 설명하는 형식이다.『맛지마 니까야』의「밧다에까라따 경」(Bhaddekaratta Sutta, 성스러운 하나에의 몰입, M131)부터 131번 경까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물론 ①과 ②를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③ 산문과 게송을 자연스럽게 섞어 가면서 설하는 형식이다. 즉 본서 제2권「우루웰라 경」1(A4:21)과『디가 니까야』제2권「제석문경」(D21)과『상윳따 니까야』의「사가타 상응」(S1)을 비롯한 제1권 즉 S1부터 S11까지의 경들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긴 경들을 네 번째 묶음인「큰 50개 경들의 묶음」에 모아서 편집하였다. 이 가운데서 특히 더 긴 것들은 제20장「대품」 안에 넣었다. 긴 경들을 「대품」(Mahā-vagga)이라는 이름으로 모은 것은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셋째,「셋의 모음」(A3)에는「작은 50개 경들의 묶음」이라 하여 짧은 경들만을 모은 묶음을 따로 만들었지만 본「넷의 모음」에는 짧은 경들만을 모은 묶음이나 품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경들은 주로 마지막의「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에 모아져있다.
넷째, 넷의 주요한 법수인 사성제를 주제로 한 경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본서에서 사성제의 가르침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좋은 혈통 경」1(A4:256)과「항아리 경」(A4:103) 등 14개 정도의 경들은 그 안에 사성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사성제를 근본 주제로 한 경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러한 중요한 가르침이「넷의 모음」에서 배제된 것일까? 그 이유는 사성제는 넷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하지 않고 진리[諦, sacca]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성제와 관련된 경들 131개는『상윳따 니까야』「진리 상응」(Sacca-saṁyutta, S56)에 모아서 결집을 하였고 본서에서는 제외한 것이다.
다섯째, 넷과 관련된 주요 법수인 사념처와 사정근과 사여의족 등도 각각 한두 번 정도만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법수들도 넷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하지 않고 염처와 정근과 여의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각각「염처 상응」(Satipaṭṭhāna-saṁyutta, S47)과「정근 상응」(Sammappadhāna-saṁyutta, S49)과「여의족 상응」(Iddhipāda- saṁyutta, S51)으로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상응) 모두『상윳따 니까야』에서 각각 하나의 상응(상윳따)으로 결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이러한 기본 법수에 포함되지 않은 경들을 그 경에 담고 있는 주제의 숫자 별로 분류를 해서 모았다.
4.「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주요 주제들
「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271개의 경들 가운데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사람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경들이 아주 많다. 전체적으로 61군데 이상이나 된다. 이러한 경들은 여러 관점에서 인간을 분류해보고 있는데 이러한 분류방법은 사람을 여러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는 논장의『인시설론』(人施設論, Pug)과 같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 때문에 학자들은『인시설론』은 상좌부 칠론(七論)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인시설론』은 경장에 가까운 논서라고 본다.
이 61개가 넘는 경들을 다시 그 특징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비구름 경」1(A4:101)부터「뱀 경」(A4:110)까지의 10개 경은 네 부류의 사람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분류하고 있다.
「화장터 나무토막 경」(A4:95)부터「공부지음 경」(A4:99)까지의 다섯 개 경은 도닦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하는 네 관점에서 사람을 분류해서 설하고 있다.
「음식 경」부터 네 개의 경들(A4:87~90)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있다.
「삼매경」1/2/3/(A4:92~94)과「쌍 경」(A4:170) 등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관점에서 사람을 분류하고 있는데 수행의 측면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경이다.
「흐름을 따름 경」(A4:5)과「족쇄 경」(A4:131) 등을 비롯한 다섯 개 경들은 10가지 족쇄 가운데 몇 가지 족쇄를 풀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인간을 넷으로 분류하고 있다.
제21장「참된 사람 품」의「학습계목 경」(A4:201)부터「열 가지 도 경」(A4:206)까지의 여섯 개 경들과 다른 품에 포함된「참된 사람 경」(A4:73) 등 7개 정도의 경들은 참된 사람과 참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세존께서는 참으로 예리하고 심도깊이 인간을 고찰하여 그것을 넷으로 분류하고 계신다. 이런 61개가 넘는 경들을 통해서 부처님의 인간에 대한 성찰과 고찰이 얼마나 깊고 예리한 지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부처님을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조어장부)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경들은 조어장부로서의 세존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둘째,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 삿된 견해와 바른 견해, 은혜를 앎과 은혜를 모름 등의 조합으로 된 주제를 가르치는 경들이「불방일 경」(A4:116)과「은혜를 모름 경」(A4:223) 등을 비롯한 13개 정도가 된다.
셋째,「탐하는 자 경」(A4:66)과「밧디야 경」(A4:193) 등을 비롯한 9개 정도의 경에서는 탐욕․성냄․어리석음과 자만․열의․두려움․폭력 등의 조합으로 된 주제를 설하고 있다.
넷째, 제17장「도닦음 품」의 8개 경들(A4:161~168)은 도닦음을 넷으로 분류하여 고찰해보고 있으며 나머지 두 경, 즉「정력적인 노력 경」(A4:169)과「쌍 경」(A4:170)도 모두 도닦음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특히「쌍 경」은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인데 아래 §5의 ⑺을 참조하기 바란다.
다섯째,「깨달음 경」(A4:1)과「정수 경」(A4:150) 등을 비롯한 8개 정도의 경에서는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해탈(계․정․혜․해탈)의 네 가지 법의 무더기[四法蘊]를 설하고 있다.
여섯째,「함께 삶 경」1(A4:53)부터「범천 경」(A4:63)까지의 11개 경들은 재가자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을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 외 세존의 말씀 가운데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많은 경들이「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지만 너무도 다양하여 지면 관계상 이정도로 줄인다.
5. 관심을 가져야 할 경들
이제「넷의 모음」에 포함된 세존의 금구성언 가운데서 우리가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되는 경들을 소개하면서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⑴「흐름을 따름 경」(A4:5)
『앙굿따라 니까야』 전체에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방법으로 고찰하시어 여러 가지 부류로 나누어서 설하고 계시는데 특히「넷의 모음」에는 사람을 다양하게 분류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들이 많이 나타난다. 본경은「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는 이러한 경들 가운데서 제일 처음으로 나타나는 가르침이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흐름을 따르는 사람,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 확고한 사람, [흐름을] 건너서 저 언덕에 가서 맨 땅에 서있는 바라문의 네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하신다.
여기서 흐름을 따르는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고 악한 업을 짓는 사람이고,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지 않고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며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 완전하고 지극히 깨끗한 청정범행을 닦는 사람이다.
확고한 사람은 불환과를 얻은 사람이라고 언급되는데 게송 부분에 나타나듯이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라는 유학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맨 땅에 서있는 바라문이란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이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범부를 두 가지로 나누고 성자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네 부류의 사람을 고찰하고 계신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세존께서 보여주신 해탈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처님 제자일 것이다.
⑵「우루웰라 경」1(A4:21)
본경은『상윳따 니까야』(S6:2)에도 나타나는 가르침이며 참다운 귀의처를 밝히신 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세존께서는 정등각을 이루신 뒤에 니그로다 강변의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다음과 같이 깊이 사유하신다.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
그렇다. 존중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 범부중생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황막한 광야를 치달리는 것과 같은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의지처란 무엇인가? 이러한 고뇌에서 인류에게는 종교가 생긴 것이리라. 그러면 참다운 귀의처, 끝내 우리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퇴락도 상처도 주지 않는 진정한 의지처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유하신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계의 무더기[戒蘊]가 있다면 … 삼매의 무더기[定蘊]가 있다면 … 통찰지의 무더기[慧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나보다도 더 계를 …삼매를 … 통찰지를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할 만한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줄 세상의 모든 것을 두루 고찰해보았지만 자신에게 귀의처가 되어줄 그 어떤 존재도 발견하지 못하셨다. 이것은 결코 세존의 자만심이 아니다. 깨달은 분은 있는 그대로 보시는 분이다. 초기경들의 도처에서 세존께서는 당신을 능가할 어떤 존재도 보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계신다. 만일 자신을 능가하는 다른 존재를 보셨다면 그분은 당연히 그런 존재를 찬탄하셨을 것이고 그런 존재를 의지처로 삼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고찰하신 뒤 마침내 세존께서는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셨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dhamma)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르리라.’
이것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르침이며 불교를 대표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의지처가 없는 사람은 깨달은 분일지라도 괴로운 것이다. 세존께서는 마침내 법을 의지처로 삼겠노라고 결심하셨으며 이것은 45년간 전법에 헌신한 그분의 삶에서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당신의 의지처인 그 법을 선포하셨고, 그 법으로 중생들을 제접하셨으며, 꾸시나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에 드시면서도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유훈을 남기셨다. 우리의 스승 세존께서 이처럼 법등명과 법귀의를 천명하셨는데 하물며 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말해무엇하겠는가? 불자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⑶「유행승 경」(A4:30)
본경은 세존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세존께서는 네 가지 사실은 어떤 종교집단에 속하는 출가자라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고 거절할 수 없으며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넷은 욕심 없음, 악의 없음,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라고 말씀하신다. 출가라는 거룩한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이 이러한 네 가지를 내팽개쳐버리고 산다면 그는 출가자라 부를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출가자가 이득과 명성과 환대 등에 강하게 집착하고 욕심을 내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출가자가 악의와 분노와 해코지의 생각에 가득하여 세상을 향해서 독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자이다. 마음을 챙기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평화롭지 못한 출가자는 더 이상 출가자가 아니다. 그래서 어떠한 신념체계나 어떠한 수행체계를 가진 어떠한 출가 집단도 이러한 네 가지는 과거에도 거부하지 못했고 미래에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며 지금도 거부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욱깔라 지역 사람들과 왓사와 반냐 사람들은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무인론자)들이요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들이요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하는 자(허무론자)들이었는데, 그들조차도 이러한 네 가지 법의 부분을 비난하지 않아야 하고 공박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라고 단언하셨다. 본경은 특히 출가자들이 유념해야 할 가르침이다.
⑷「로히땃사 경」1(A4:45)
인간은 구경의 진리 혹은 최고의 진리를 추구할 줄 아는 존재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추구하여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저 밖을 향하여 찾았고 그리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채 알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곤 해왔다. 끊임없이 밖으로 치달리는 이러한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거듭해서 반성과 자제를 촉구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본경에 등장하는 로히땃사는 하늘을 아주 빨리 나는 신통을 가진 신이다. 그는 이러한 신통으로 세상의 끝에 도달하려고 동서남북으로 치달렸지만 세상의 끝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세존께 와서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아무리 빨리 가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밖으로 치달려서는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러한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 세상의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단언하신다. 만일 저 밖에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이 있다면 우리는 과학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최고로 빠른 우주선을 타고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걸어감을 통해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밖으로 아무리 걸어가고 날아가도 세상의 끝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주석서의 설명대로 형성된 세상(saṅkhāra-loka), 즉 오온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괴로움의 끝, 즉 최고의 이상향, 최고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그러면 진정한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 세상의 최고점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단언하신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선언하신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세상’이란 괴로움의 진리[苦諦]이다. ‘세상의 일어남’이란 일어남의 진리[集諦]이다. ‘세상의 소멸’이란 소멸의 진리[滅諦]이다.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란 도의 진리[道諦]이다.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진리(四諦)를 풀이나 나무등걸 등에서 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몸에서 천명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AA.iii.88~89)
「로히땃사 경」은『상윳따 니까야』(S.i.61)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 가르침은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것이다. 특히 이 마지막 구절은 남방의 스님들이 즐겨 인용하는 가르침이다. 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집․멸․도를 설하셔서 나고 죽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내 안에서 그것도 바로 지금여기에서 해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중국 선불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⑸「음식 경」(A4:87)부터「무더기 경」(A4:90)까지의 네 개 경
이 네 개의 경들은 10가지 족쇄가운데 몇 가지를 풀었는가, 팔정도를 구족하였는가,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통찰하였는가,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구족하였는가,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을 성취하였는가 등을 토대로 하여 수행자들을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의 넷으로 분류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수행자들이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게 해주는 가르침이다.
⑹「삼매 경」1/2/3(A4:92~94)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불교수행을 대표하는 술어이며 특히 상좌부 불교의 수행체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핵심 술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술어는 일찍이 중국에서 각각 지(止)와 관(觀)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지와 관을 고르게 닦을 것을 강조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로 정착되었고 이것은 다시 선종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로 계승되었다. 불교 2600년사에서 내로라하는 논사들이나 수행자들이 하도 지와 관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다 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주석서나 후대 논사들이나 후대 수행자들의 견해가 아닌 초기경에서 그것도 부처님이 직접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설명하신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도대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어떻게 정의하셨는가?’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세 개의 경들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훌륭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 samatha]는 얻었지만 위빳사나[觀, vipassanā]의 높은 통찰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었다.”
이 세 개의 경들에서 “마음의 사마타”와 “통찰지라 [불리는] 법들에 대한 위빳사나”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마타는 마음의 개발을 뜻하는 삼매와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와 동의어이다.
그래서「삼매 경」3(A4:94)에서는 사마타를 얻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체득한 스님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어떻게 마음을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위빳사나를 얻기 위해서는 위빳사나에 통달한 분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형성된 것[行, saṅkhāra]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 삼매를 개발하는 수행이며 위빳사나는 유위제법을 명상하고 관찰하여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다. 그리고 이 둘을 다 얻은 사람은 “유익한 법들에 굳게 서서 번뇌들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⑺「쌍 경」(A4:170)
그러면 사마타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위빳사나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가? 이것도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토론거리가 되고 있다.「쌍 경」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준다. 결론은 사마타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위빳사나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함께 닦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문제이지 어느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쌍 경」은 아난다 존자가 비구들에게 설한 것이다. 본경에서 아난다 존자는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이든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라고 하면서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는 경우,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는 경우,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 경우,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린 경우의 넷을 들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마타에 든 상태에서 위빳사나를 닦는다는 말인가? 경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러나 주석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 경우를 다름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증득[等至]에 든 마음으로 형성된 것[行]들을 명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증득에 든 만큼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는 것이고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는 만큼 [다시] 증득에 든 것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초선을 증득한다. 거기서 출정(出定)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 뒤 제2선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다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고 한다.”(AA.iii.143)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이 말씀에 대해 사마타 즉 본삼매에 든 상태에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를 동시에 닦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석서의 이 설명에서 명확해질 것이다.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그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 사마타는 표상이라는 개념(paññatti)이 그 대상이고 위빳사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dhamma)이 그 대상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서로 다른 대상을 가진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결코 함께 일어날 수 없다.
이처럼『앙굿따라 니까야』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중요한 언급들을 포함하고 있다.
⑻「항아리 경」(A4:103)
본경은 수행자에 대한 세존의 예리한 고찰을 담고 있는 경이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수행자들을 네 부류로 분류하신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항아리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텅 비었지만 잘 닫힌 자, 가득 찼지만 열린 자, 텅 비었고 열린 자, 가득 차고 잘 닫힌 자이다.”
본문에 의하면 즉 사성제를 통찰하지 못하는 자를 텅 빈 자라 하고 밖으로 위의(威儀)를 잘 갖춘 자를 닫힌 자라 한다. 가득 찬 자와 열린 자는 각각 이와 반대의 경우를 말한다.
한편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안으로 고결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를 ‘텅 빈 자’라고 한다. 밖으로 멋지게 보이는 자를 ‘잘 닫힌 자’라 한다.”(AAṬ.ii.294)
밖으로 위의를 갖추고 근엄하게 행동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외도의 견해를 굳게 거머쥐고는 자기야말로 진정한 불교 수행자요 부처님 제자라고 주장하는 가엾은 분들이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밖으로 위의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연기와 무아에 바탕한 사성제를 말씀하는 분들도 있다. 더 드물기는 하지만 밖으로 위의를 갖추었고 사성제를 통찰하여 이를 천명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나는 닫힌 자인가, 열린 자인가? 나는 텅 빈 자인가, 가득 찬 자인가?
⑼「께시 경」(A4:111)
본경은 세존께서 말 조련사 께시에게 하신 말씀이다. 께시가 말을 길들일 때 온화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혹독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온화함과 혹독함 둘 다로 길들이기도 한다고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그렇게도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라고 물으신다. 께시는 그때는 말을 죽여 버리는데 그것은 자기 스승의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세존께서도 역시 사람들을 이렇게 길들인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께시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께서는 생명을 결코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나는 그를 죽여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의아해하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께시여, 참으로 이 성스러운 율에서 여래가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이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살해된 자이니라.”
본경을 통해서 왜 세존이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신지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래서『율장 주석서』(VinA.i.120)는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을 설명하는 보기로 본경을 들고 있다. 참으로 출가 수행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⑽「다른 점 경」1/2(A4:123~124)
이 두 개의 경은 범부인 신과 예류자와 일래자와 불환자인 신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예류과와 일래과와 불환과를 증득한 불교의 성자라도 죽으면 태어나는 곳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성자들이 태어나는 곳을 이 두 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천상에 머무는 범부인 신들과 예류와 일래와 불환의 경지를 증득한 성자인 신들은 분명히 다르다. 범부인 신들은 그곳에서 수명이 다 하면 다시 육도윤회의 길로 들어서지만 성자인 신들은 그곳에서 반열반에 들거나 다시 몇 번 인간으로 태어난 뒤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성자인 신들은 삼악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 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 하면 바로 거기서 존재의 완전한 멸진인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⑾「족쇄 경」(A4:131)
본경은 열 가지 족쇄를 낮은 단계의 족쇄들,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의 셋으로 구분한 뒤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네 부류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는 경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경이다.
세존께서는 일래자(예류자도 여기에 포함됨)는 낮은 단계의 족쇄들과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과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을 모두 다 제거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분류하고 계신다. 일래자까지는 세 가지 족쇄는 풀었지만 낮은 단계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과 악의의 족쇄는 아직 미미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다 끊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아라한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과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과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을 모두 다 풀어버린 사람이라 한다. 본경에는 불환자에 해당하는 존재들을 상세하게 분류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본경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⑿「바라문의 진리 경」(A4:185)
출가란 말 그대로 집을 떠나는 행위이다. 집을 떠난다 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의무나 권리나 욕망이나 희망을 모두 접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경은 세존께서 같은 출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어떤 자가 진정한 출가자(사문)이고 진정한 종교인(바라문)인지를 밝히신 경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유행승들이여, 여기 바라문은 ‘모든 생명을 상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 ‘모든 감각적 욕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말한다. …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말한다. … ‘나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 있어서든 내 것이란 결코 없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바라문은 진리를 말한 것이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 이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생명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위해서 도를 닦는다.”
출가 수행자라면,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는 당연히 생명을 존중하고 감각적 욕망을 줄이고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라고 통찰하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이러한 네 가지를 기본 덕목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출가자나 종교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생명을 천시 여기고 욕망에 휘둘리고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것을 늘리려 아등바등한다면 그는 더 이상 출가자가 아니고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종교인이 아닐 것이다.
⒀「밧디야 경」(A4:193)
개종은 한일합방이라는 수치와 6․25 전쟁이라는 처참한 동족상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극심한 서구화를 경험한 근대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꾼다는 말이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실현하시고 인도 중원에서 전법을 시작하신 직후부터 불을 섬기던 가섭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당시에 마가다 등지에서 존경 받던 유행승들과 연로하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부처님의 신도가 되는 등 불교는 급속도로 인도에 퍼져나갔다. 그래서 부처님 당대에 이미 ‘고따마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써서 외도들을 개종시킨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 같으며 다른 교단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던 듯하다. 그럼 과연 진정한 개종이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신념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본경은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명쾌한 설명을 담고 있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본경은 릿차위의 밧디야와 세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밧디야가 세존께 와서 “사문 고따마는 요술쟁이다. 그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알아서 다른 외도들을 제자로 개종시킨다.”라고들 말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를 여쭙는다. 세존께서는 본서 제1권「깔라마 경」(A3:65)에서 깔라마 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본경에서는 한 가지를 더하여 폭력 없음에 대해서 밧디야와 대화를 나누신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신다.
“밧디야여, 세상에 있는 참된 사람[眞人]들은 그들의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이리 오시오, 아무개 사람이여. 그대는 탐욕을 길들이고 머무시오. 그대가 탐욕을 길들이고 머물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탐욕에서 생긴 업을 짓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성냄을 … 어리석음을 …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고 머무시오. 그대가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고 머물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폭력적인 마음에서 생긴 업을 짓지 않을 것이오.’라고.”
즉 모든 수행자나 종교인은 만일 그가 참된 사람이라면 모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는 것을 가르친다는 말씀이며 세존도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지 요술을 써서 사람을 개종시키기에 혈안이 된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대화 끝에 세존께 감격한 밧디야는 재가 신자가 되고 이렇게 말씀드린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개종시키는 요술은 축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개종시키는 요술은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나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이 이러한 개종으로 개종한다면 나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그의 감격에 찬 말을 크게 인정하시면서 만일 이 모든 사람들이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을 한다면”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뒤에 “밧디야여, 만일 이 큰 살라 나무들조차도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을 한다면 이 큰 살라 나무들에게 오랜 세월을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라고 결론지으신다.
우리는 스스로 불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나는 불교 신자’라고 떳떳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름만이 불자요 이름만이 불교 신자일 뿐 안으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폭력적 성향이 득시글거린다면 어찌 자신을 부처님 아들이라고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탐욕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 폭력 없음으로 개종해야 한다.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제자다. 이것이 세존께서「밧디야 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해주시는 간곡한 말씀이다.
⒁「갈애 경」(A4:199)
본경은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애의 적나라한 모습을 3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갈애에 의해서 망가지고 둘러싸이고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며 비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을 건너지 못한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등의 18가지 안을 취착하여 일어나는 갈애와 ‘이것에 의해서 내가 있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다.’ 등의 18가지 밖을 취착하여 일어나는 갈애를 들고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런 안팎의 36가지 갈애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조합이 될 때 108가지 갈애가 된다.
⒂「소나까야나 경」(A4:233)
본경은 목갈라나라는 바라문이 세존께 와서 여쭌 문제에 대한 세존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께 “소나까야나라는 바라문 학도가 말하기를 ‘사문 고따마는 모든 업들의 지음 없음(akiriya)을 천명합니다. 그는 모든 업들의 지음 없음을 천명하여 단멸론(uccheda)을 말하면서도 세상이란 것은 업이 진리이며 업의 적집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라고 여쭙는다.
즉 ‘고따마는 업을 짓는 것이란 없다는 도덕부정을 설하면서도 어떻게 다시 업이 진리라고 하여 혼란스럽게 만드느냐?’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바라문이여, 검은 과보를 가져오는 검은 업이 있다. 흰 과보를 가져오는 흰 업이 있다. 검고 흰 과보를 가져오는 검고 흰 업이 있다. 검은 과보도 흰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 있다.”고 바로 앞의「상세하게 경」(A4:232)에서처럼 네 가지 업을 말씀하시고 그 예를 들고 계신다.
세존의 가르침은 업을 뛰어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이것이 네 번째인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다. 이런 가르침을 일부 외도들과 바라문들은 단멸과 허무와 도덕부정의 가르침이라고 매도하는 것을 본경은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불자들조차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무아와 연기를 허무주의적으로 단멸론적으로 잘못 이해하여 두려워하고 겁먹고 갈팡질팡한다. 이 경을 통해서 좀 더 진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사유하고 음미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리라 기대해본다.
그리고 계속해서「성스러운 도 경」(A4:235)에서는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업 즉 업을 뛰어넘는 것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팔정도를 들고 계시며「깨달음의 구성요소 경」(A4:236)에서는 칠각지를 그 방법으로 들고 계신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육도 윤회를 종식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팔정도와 칠각지 등의 37보리분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신다.
⒃「사문 경」(A4:239)
본경은 세존께서 오직 불교에만 사문이 있다고 자신 있게 천명하시는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라고 말씀하신 뒤 이 넷을 각각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이러한 사자후는『디가 니까야』 제2권「대반열반경」(D16 §5.27)에서 세존의 마지막 출가 제자가 된 수밧다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대반열반경」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이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불자는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팔정도를 실천할 때 그가 진정한 사문이며 그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이다.
6. 재가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들
「넷의 모음」에는 재가신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다룬 경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재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본서를 읽는 재가 불자님들을 위해서 몇 가지 경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⑴「어울리는 삶 경」1(A4:55)
우리는 주위에서 금슬이 좋은 부부도 보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부부도 본다. 금슬이 좋아서 내생에서도 부부의 인연을 맺으려 한다면 금생에 부부가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경은 여기에 대해서 그 답을 제공해준다.
본경은 500생 동안 부처님의 부모였다고 하는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나꿀라삐따 장자와 그의 아내 나꿀라마따에게 하신 말씀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장자와 부인이여, 만일 그대들 둘이 지금여기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그대들 둘은 동등한 믿음과 동등한 계행과 동등한 베풂과 동등한 통찰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지금여기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고 내생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다.”
즉 같은 인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둘 다 동등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둘 다 계를 잘 지켜야 하며, 둘 다 보시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며, 둘 다 지혜를 개발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⑵「숩빠와사 경」(A4:57)
보시하는 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보시를 해야 할까? 본경은 음식이나 물질을 승가나 남들에게 보시하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를 설하고 계신 경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여제자는 받는 자들에게 네 가지로 보시한다. 무엇이 넷인가? 수명을 보시하고 아름다움을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계속해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수명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아름다움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행복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힘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즉 이러한 네 가지 자세로 보시한 사람은 다음 생에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서 수명과 아름다움과 행복과 힘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들에게 항상 시․계․생천(施․戒․生天)을 먼저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보시하고 계를 지켜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먼저 재가자들에게 강조하신 뒤 이를 잘 실천하는 자들에게 사성제를 말씀하셨다.
⑶「합리적인 행위 경」(A4:61)
세상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물이 많기를 바라고 자신과 가문이 큰 명성을 얻기를 바라고 오래 살기를 바라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희망이면서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경에서도 부처님께서는 급고독 장자에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운 것으로 ‘법답게 재물을 얻는 것,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을 얻는 것,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지는 것,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의 네 가지를 말씀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자 하는 이러한 네 가지를 성취하게 되는가? 세존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믿음을 구족하고 계를 구족하고 보시를 구족하고 통찰지를 구족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처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구족하고, 5계를 잘 지키고, 항상 남에게 베푸는 자세를 가지고, 다섯 가지 장애로 대표되는 오염원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하신다. 믿음, 계행, 보시, 지혜의 이 네 가지를 닦고 실천할 때 그 사람은 재산과 명성과 긴 수명과 천상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재가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법답게 얻은 재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실천해서 바른 업을 지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첫째는 자신과 부모와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일꾼들과 친구와 친척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른 행복을 보호하는 것이다. 즉 자기 식솔들을 잘 부양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둘째는 이러한 재물을 재난, 즉 불과 물과 왕과 도둑과 적과 나쁜 마음을 가진 상속인 등의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재물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셋째는 친지에게 하는 헌공, 손님에게 하는 헌공, 조상신들에게 하는 헌공, 왕에게 하는 헌공(세금), 신에게 하는 헌공의 다섯 가지 헌공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의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넷째는 사문․바라문들에게 보시를 해야 한다. 이러한 사문․바라문들에게 하는 보시는 고귀한 결말을 가져다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들과 종교인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벌 줄도 알아야 하지만 쓸 줄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세존께서는 각자가 번 돈으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위의 네 가지로 설명하고 계시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재가불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이다.
⑷「빚 없음 경」(A4:62)
본경은 세존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하신 말씀을 담은 경으로 재가자가 바르게 누리는 네 가지 행복을 들고 계신다. 그것은 소유하는 행복, 재물을 누리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을 소유하는 행복을 세존께서는 재가자들이 누리는 첫 번째 행복으로 들고 계신다.
두 번째의 재물을 누리는 행복이란 이렇게 자신의 노력으로 바르게 얻은 재물로 그것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재물은 바르게 사용할 때, 특히 이러한 재물로 공덕을 지을 때 그것이 행복이 된다. 그렇지 못한 재물은 화의 근본이 될 뿐이다.
재가자가 누리는 세 번째 행복은 빚 없는 행복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런 빚도 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일 것이다.
네 번째 행복은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본경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업을 짓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몸으로 살생 투도 사음을 하지 않고 말로는 거짓말, 이간질, 욕설, 잡담을 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으로는 강한 탐욕, 악의,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편 스리랑카의 릴리 드 실바 교수는「세속인의 행복」이라는 글에서 이 넷을 기본 주제로 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⑸「범천 경」(A4:63)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아들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가문들은 범천, 최초의 스승, 고대의 신들이 함께하는 가문이고 공양 받아야 할 가문이라고 천명하신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 세존께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잘 모실 것을 설하고 계신다. 그래서 본서 제1권「은혜를 보답하지 못함 경」(A2:4:2)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신다.
“비구들이여, 수명이 백 년인 때에 태어나 백 년 동안 살면서 내내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워드리더라도, 향수를 뿌리고 안마를 해 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몸을 문질러 드리면서 봉양을 하더라도, 대소변을 받아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대지를 통치하는 최고의 왕위에 모시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⑹「말리까 경」(A4:197)
본경은 세존께서 말리까 왕비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리까 왕비가 세존께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고 가난하며 게다가 소유물이 적고 재물이 적고 따르는 사람이 적습니까?”라는 방법으로 네 가지를 질문 드리자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경이다.
세존께서는 성 잘 내고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자는 용모가 나쁜 과보를 받고. 그와 반대로 행하는 자는 용모가 좋은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보시하지 않는 자는 가난한 과보를 받고 보시를 많이 한 자는 부유한 과보를 받으며, 질투심이 많은 자는 따르는 무리가 적은 과보를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따르는 무리가 많은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말리까 왕비는 자신은 성을 잘 내어서 지금 못생긴 과보를 받았고 보시를 잘해서 부유한 과보를 받았고 질투심이 없어서 따르는 무리가 많은 과보를 받은 것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성을 내지 않고 보시하고 질투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부처님의 신도가 된다.
7. 맺는 말
이상으로「넷의 모음」을 개관해보았다.「넷의 모음」에 포함된 271개의 경들 가운데는 특히 사람을 여러 부류로 분류해서 설명하는 경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러한 가르침들을 통해서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인간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그것은 세존의 금구성언을 통해서 세세생생 악도를 여의고 선처로 향상하며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 가장 귀중한 인연이 될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은「넷의 모음」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을 담고 있는 본서 제1권보다 그 분량이 적다. 그래서 본서 제1권에 해당하는 찾아보기도 모두 본서에 모아서 엮었다. 사용에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제1권과 제2권의 분량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므로 독자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제2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增支部, 숫자별로 모은 경) (1/2/3/4/5/6)
대림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제1권(하나 ~ 셋의 모음): 664쪽 (초판 2006년, 3판 2012년)
제2권(넷의 모음): 656쪽 (초판 2006년, 재판 2012년)
제3권(다섯의 모음): 552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4권(여섯~일곱의 모음): 576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5권(여덟~아홉의 모음): 560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6권(열~열하나의 모음): 624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정가: 각권 30,000원
<2권목차>
- 넷의 모음
Ⅰ.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Ⅲ.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Ⅳ. 큰 50개 경들의 묶음
Ⅴ. 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해제(解題)>
1. 들어가는 말
『앙굿따라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가운데서 그 주제의 법수가 분명한 말씀들을 숫자별로 모아서 결집한 것이다.『앙굿따라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하나부터(A1) 열하나까지(A11) 모두 11개의 모음(Nipāta)으로 분류하여 결집하였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은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그 주제의 법수가 넷인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명칭도「넷의 모음」(Catuka- nipāta)이다. PTS본에 의하면「넷의 모음」(A4)에는 모두 271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맛지마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 정도의 길이에 해당하는 경들도 많고 단지 넷에 관계된 법수를 나열하고 있는 짧은 경들도 많다. PTS본과 육차결집본에서는「넷의 모음」도「셋의 모음」처럼 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일련번호로 매기고 있다. 그래서 역자도 A4:1부터 A4:271까지로 경의 번호를 매겼다.
2.「넷의 모음」의 구성
「넷의 모음」에는 모두 27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들을 모두 28개의 품(Vagga)으로 나누어서 제27품까지는 각 품마다 10개의 경들을 배정하고, 맨 마지막 제28품에만 1개의 경을 배당하였다. 제28품은 반복되는 정형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육차결집본은 무려 510개의 경들로 번호를 매기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역자서문 §5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28개의 품은 모두 다섯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묶었다. 그래서 네 번째 묶음까지는 5개씩의 품을 배정하였고 다섯 번째 묶음에는 8개의 품을 배정하였다.
각 품의 명칭은 그 품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 가운데『앙굿따라 니까야』를 모아서 편집한 옛 스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표제어를 골라서 붙인 것이다.
그럼 각 경들의 묶음 별로 간단하게 전체를 개관해보자.
⑴「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장「반다가마 품」, 제2장「걷고 있음 품」, 제3장「우루웰라 품」, 제4장「바퀴 품」, 제5장「로히땃사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첫 번째 묶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과「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가운데 제6품과 제7품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넷의 모음」은 이처럼 게송을 포함한 경들을 먼저 모아서 편집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⑵「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6장「공덕이 넘쳐흐름 품」, 제7장「합리적인 행위 품」, 제8장「티 없음 품」, 제9장「동요하지 않음 품」, 제10장「아수라 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 두 품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주제를 가진 경들은 예를 들면「공덕이 넘쳐흐름 경」1(A4:51)과「공덕이 넘쳐흐름 경」2(A4:52)로 앞뒤로 모아서 편집하였지만 각 품에 포함된 경들 간에 서로 공통된 점은 찾기 힘들다. 물론 비슷한 주제는 함께 모아서 같은 품에 포함하여 편집한 흔적은 아주 뚜렷하지만 전체적으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주제를 가진 경들이 다른 품에 포함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⑶「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1장「비구름 품」, 제12장「께시 품」, 제13장「두려움 품」, 제14장「사람 품」, 제15장「빛 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제11장「비구름 품」은 10가지 비유를 들어서 인간을 설명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예리한지를 알 수 있는 경들이다. 제12장「께시 품」의 처음 네 경은 말과 코끼리 조련에 비유해서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고 있다. A4:119부터 A4:122까지의 네 개 경은 두려움이 주제이다. 제15품은 아주 짧은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넷의 모음」 전체에서 같은 주제의 경들은 앞뒤에 함께 모아서 편집하는 경향이 강하다.
⑷「큰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16장「기능 품」, 제17장「도닦음 품」, 제18장「의도 품」, 제19장「무사 품」, 제20장「대품」의 다섯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품들은 모두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큰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네 번째 묶음에는「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다른 경들보다 긴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제20장「대품」은 더욱 긴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제16장「기능 품」의 처음 8개의 경들은 길이가 아주 짧다. 앞의 묶음에 포함되어야 할 경들이라 할 수 있는데 50개씩 나누어서 경들의 묶음을 만들다 보니 이 묶음에 포함된 듯하다.
그리고 제17장「도닦음 품」의 8개 경들(A4:161~168)은 모두 도닦음을 넷으로 분류하여 고찰해보고 있으며 나머지 두 경도 모두 도닦음과 관련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⑸「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본 묶음은 제21장「참된 사람 품」, 제22장「아름다움 품」, 제23장「좋은 행위 품」, 제24장「업 품」, 제25장「범계에 대한 두려움 품」, 제26장「최상의 지혜 품」, 제27장「업의 길 품」, 제28장「탐욕의 반복 품」의 여덟 개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의 일곱 품은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고 마지막인 제28장「탐욕의 반복 품」은 한 개의 경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육차결집본에 의하면 제28장「탐욕의 반복」(Rāga-peyyāla, A4:271)으로 이름붙인 이 하나의 품은 무려 510개의 경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섯 번째 묶음의 제22장「아름다움 품」, 제23장「좋은 행위 품」, 제27장「업의 길 품」은 각 품마다 서로 관련된 주제를 가진 짧은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27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은 십불선업도와 십선업도에 해당되는 살생․불살생부터 사견․정견까지의 열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3.「넷의 모음」의 특징
「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는 271개 경들 전체를 살펴보면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70개의 경들을 경의 전반부에 편집해서 넣었다. 초기경에서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은 크게 몇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① 산문으로 된 가르침이 먼저 나오고 이러한 가르침을 게송으로 경의 후반부에 요약하는 형식이다. 즉『앙굿따라 니까야』의 경들 특히 본「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② 게송이 먼저 나오고 산문으로 이러한 게송을 설명하는 형식이다.『맛지마 니까야』의「밧다에까라따 경」(Bhaddekaratta Sutta, 성스러운 하나에의 몰입, M131)부터 131번 경까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물론 ①과 ②를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③ 산문과 게송을 자연스럽게 섞어 가면서 설하는 형식이다. 즉 본서 제2권「우루웰라 경」1(A4:21)과『디가 니까야』제2권「제석문경」(D21)과『상윳따 니까야』의「사가타 상응」(S1)을 비롯한 제1권 즉 S1부터 S11까지의 경들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긴 경들을 네 번째 묶음인「큰 50개 경들의 묶음」에 모아서 편집하였다. 이 가운데서 특히 더 긴 것들은 제20장「대품」 안에 넣었다. 긴 경들을 「대품」(Mahā-vagga)이라는 이름으로 모은 것은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셋째,「셋의 모음」(A3)에는「작은 50개 경들의 묶음」이라 하여 짧은 경들만을 모은 묶음을 따로 만들었지만 본「넷의 모음」에는 짧은 경들만을 모은 묶음이나 품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경들은 주로 마지막의「다섯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에 모아져있다.
넷째, 넷의 주요한 법수인 사성제를 주제로 한 경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본서에서 사성제의 가르침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좋은 혈통 경」1(A4:256)과「항아리 경」(A4:103) 등 14개 정도의 경들은 그 안에 사성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사성제를 근본 주제로 한 경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러한 중요한 가르침이「넷의 모음」에서 배제된 것일까? 그 이유는 사성제는 넷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하지 않고 진리[諦, sacca]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성제와 관련된 경들 131개는『상윳따 니까야』「진리 상응」(Sacca-saṁyutta, S56)에 모아서 결집을 하였고 본서에서는 제외한 것이다.
다섯째, 넷과 관련된 주요 법수인 사념처와 사정근과 사여의족 등도 각각 한두 번 정도만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법수들도 넷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결집하지 않고 염처와 정근과 여의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각각「염처 상응」(Satipaṭṭhāna-saṁyutta, S47)과「정근 상응」(Sammappadhāna-saṁyutta, S49)과「여의족 상응」(Iddhipāda- saṁyutta, S51)으로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상응) 모두『상윳따 니까야』에서 각각 하나의 상응(상윳따)으로 결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이러한 기본 법수에 포함되지 않은 경들을 그 경에 담고 있는 주제의 숫자 별로 분류를 해서 모았다.
4.「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주요 주제들
「넷의 모음」에 나타나는 271개의 경들 가운데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사람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경들이 아주 많다. 전체적으로 61군데 이상이나 된다. 이러한 경들은 여러 관점에서 인간을 분류해보고 있는데 이러한 분류방법은 사람을 여러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는 논장의『인시설론』(人施設論, Pug)과 같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 때문에 학자들은『인시설론』은 상좌부 칠론(七論)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인시설론』은 경장에 가까운 논서라고 본다.
이 61개가 넘는 경들을 다시 그 특징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비구름 경」1(A4:101)부터「뱀 경」(A4:110)까지의 10개 경은 네 부류의 사람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분류하고 있다.
「화장터 나무토막 경」(A4:95)부터「공부지음 경」(A4:99)까지의 다섯 개 경은 도닦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남의 이익을 위하는 네 관점에서 사람을 분류해서 설하고 있다.
「음식 경」부터 네 개의 경들(A4:87~90)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있다.
「삼매경」1/2/3/(A4:92~94)과「쌍 경」(A4:170) 등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관점에서 사람을 분류하고 있는데 수행의 측면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경이다.
「흐름을 따름 경」(A4:5)과「족쇄 경」(A4:131) 등을 비롯한 다섯 개 경들은 10가지 족쇄 가운데 몇 가지 족쇄를 풀었는가에 초점을 두면서 인간을 넷으로 분류하고 있다.
제21장「참된 사람 품」의「학습계목 경」(A4:201)부터「열 가지 도 경」(A4:206)까지의 여섯 개 경들과 다른 품에 포함된「참된 사람 경」(A4:73) 등 7개 정도의 경들은 참된 사람과 참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세존께서는 참으로 예리하고 심도깊이 인간을 고찰하여 그것을 넷으로 분류하고 계신다. 이런 61개가 넘는 경들을 통해서 부처님의 인간에 대한 성찰과 고찰이 얼마나 깊고 예리한 지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부처님을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조어장부)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경들은 조어장부로서의 세존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둘째,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 삿된 견해와 바른 견해, 은혜를 앎과 은혜를 모름 등의 조합으로 된 주제를 가르치는 경들이「불방일 경」(A4:116)과「은혜를 모름 경」(A4:223) 등을 비롯한 13개 정도가 된다.
셋째,「탐하는 자 경」(A4:66)과「밧디야 경」(A4:193) 등을 비롯한 9개 정도의 경에서는 탐욕․성냄․어리석음과 자만․열의․두려움․폭력 등의 조합으로 된 주제를 설하고 있다.
넷째, 제17장「도닦음 품」의 8개 경들(A4:161~168)은 도닦음을 넷으로 분류하여 고찰해보고 있으며 나머지 두 경, 즉「정력적인 노력 경」(A4:169)과「쌍 경」(A4:170)도 모두 도닦음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특히「쌍 경」은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인데 아래 §5의 ⑺을 참조하기 바란다.
다섯째,「깨달음 경」(A4:1)과「정수 경」(A4:150) 등을 비롯한 8개 정도의 경에서는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해탈(계․정․혜․해탈)의 네 가지 법의 무더기[四法蘊]를 설하고 있다.
여섯째,「함께 삶 경」1(A4:53)부터「범천 경」(A4:63)까지의 11개 경들은 재가자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을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 외 세존의 말씀 가운데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많은 경들이「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지만 너무도 다양하여 지면 관계상 이정도로 줄인다.
5. 관심을 가져야 할 경들
이제「넷의 모음」에 포함된 세존의 금구성언 가운데서 우리가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되는 경들을 소개하면서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⑴「흐름을 따름 경」(A4:5)
『앙굿따라 니까야』 전체에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방법으로 고찰하시어 여러 가지 부류로 나누어서 설하고 계시는데 특히「넷의 모음」에는 사람을 다양하게 분류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들이 많이 나타난다. 본경은「넷의 모음」에 포함되어 있는 이러한 경들 가운데서 제일 처음으로 나타나는 가르침이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흐름을 따르는 사람,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 확고한 사람, [흐름을] 건너서 저 언덕에 가서 맨 땅에 서있는 바라문의 네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하신다.
여기서 흐름을 따르는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고 악한 업을 짓는 사람이고,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지내지 않고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며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 완전하고 지극히 깨끗한 청정범행을 닦는 사람이다.
확고한 사람은 불환과를 얻은 사람이라고 언급되는데 게송 부분에 나타나듯이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라는 유학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맨 땅에 서있는 바라문이란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이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범부를 두 가지로 나누고 성자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네 부류의 사람을 고찰하고 계신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세존께서 보여주신 해탈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처님 제자일 것이다.
⑵「우루웰라 경」1(A4:21)
본경은『상윳따 니까야』(S6:2)에도 나타나는 가르침이며 참다운 귀의처를 밝히신 경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세존께서는 정등각을 이루신 뒤에 니그로다 강변의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다음과 같이 깊이 사유하신다.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
그렇다. 존중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 범부중생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황막한 광야를 치달리는 것과 같은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의지처란 무엇인가? 이러한 고뇌에서 인류에게는 종교가 생긴 것이리라. 그러면 참다운 귀의처, 끝내 우리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퇴락도 상처도 주지 않는 진정한 의지처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유하신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계의 무더기[戒蘊]가 있다면 … 삼매의 무더기[定蘊]가 있다면 … 통찰지의 무더기[慧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나보다도 더 계를 …삼매를 … 통찰지를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할 만한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줄 세상의 모든 것을 두루 고찰해보았지만 자신에게 귀의처가 되어줄 그 어떤 존재도 발견하지 못하셨다. 이것은 결코 세존의 자만심이 아니다. 깨달은 분은 있는 그대로 보시는 분이다. 초기경들의 도처에서 세존께서는 당신을 능가할 어떤 존재도 보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계신다. 만일 자신을 능가하는 다른 존재를 보셨다면 그분은 당연히 그런 존재를 찬탄하셨을 것이고 그런 존재를 의지처로 삼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고찰하신 뒤 마침내 세존께서는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셨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dhamma)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무르리라.’
이것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르침이며 불교를 대표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의지처가 없는 사람은 깨달은 분일지라도 괴로운 것이다. 세존께서는 마침내 법을 의지처로 삼겠노라고 결심하셨으며 이것은 45년간 전법에 헌신한 그분의 삶에서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당신의 의지처인 그 법을 선포하셨고, 그 법으로 중생들을 제접하셨으며, 꾸시나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에 드시면서도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유훈을 남기셨다. 우리의 스승 세존께서 이처럼 법등명과 법귀의를 천명하셨는데 하물며 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말해무엇하겠는가? 불자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⑶「유행승 경」(A4:30)
본경은 세존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세존께서는 네 가지 사실은 어떤 종교집단에 속하는 출가자라 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고 거절할 수 없으며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넷은 욕심 없음, 악의 없음,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라고 말씀하신다. 출가라는 거룩한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이 이러한 네 가지를 내팽개쳐버리고 산다면 그는 출가자라 부를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출가자가 이득과 명성과 환대 등에 강하게 집착하고 욕심을 내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출가자가 악의와 분노와 해코지의 생각에 가득하여 세상을 향해서 독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자이다. 마음을 챙기지 않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평화롭지 못한 출가자는 더 이상 출가자가 아니다. 그래서 어떠한 신념체계나 어떠한 수행체계를 가진 어떠한 출가 집단도 이러한 네 가지는 과거에도 거부하지 못했고 미래에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며 지금도 거부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욱깔라 지역 사람들과 왓사와 반냐 사람들은 원인 없음을 말하는 자(무인론자)들이요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들이요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하는 자(허무론자)들이었는데, 그들조차도 이러한 네 가지 법의 부분을 비난하지 않아야 하고 공박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라고 단언하셨다. 본경은 특히 출가자들이 유념해야 할 가르침이다.
⑷「로히땃사 경」1(A4:45)
인간은 구경의 진리 혹은 최고의 진리를 추구할 줄 아는 존재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추구하여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저 밖을 향하여 찾았고 그리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채 알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곤 해왔다. 끊임없이 밖으로 치달리는 이러한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거듭해서 반성과 자제를 촉구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본경에 등장하는 로히땃사는 하늘을 아주 빨리 나는 신통을 가진 신이다. 그는 이러한 신통으로 세상의 끝에 도달하려고 동서남북으로 치달렸지만 세상의 끝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세존께 와서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아무리 빨리 가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밖으로 치달려서는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러한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 세상의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단언하신다. 만일 저 밖에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이 있다면 우리는 과학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최고로 빠른 우주선을 타고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걸어감을 통해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밖으로 아무리 걸어가고 날아가도 세상의 끝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주석서의 설명대로 형성된 세상(saṅkhāra-loka), 즉 오온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결코 괴로움의 끝, 즉 최고의 이상향, 최고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그러면 진정한 세상의 끝, 세상의 궁극, 세상의 최고점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단언하신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선언하신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세상’이란 괴로움의 진리[苦諦]이다. ‘세상의 일어남’이란 일어남의 진리[集諦]이다. ‘세상의 소멸’이란 소멸의 진리[滅諦]이다.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란 도의 진리[道諦]이다.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나는 이러한 네 가지 진리(四諦)를 풀이나 나무등걸 등에서 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몸에서 천명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AA.iii.88~89)
「로히땃사 경」은『상윳따 니까야』(S.i.61)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 가르침은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것이다. 특히 이 마지막 구절은 남방의 스님들이 즐겨 인용하는 가르침이다. 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집․멸․도를 설하셔서 나고 죽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내 안에서 그것도 바로 지금여기에서 해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중국 선불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⑸「음식 경」(A4:87)부터「무더기 경」(A4:90)까지의 네 개 경
이 네 개의 경들은 10가지 족쇄가운데 몇 가지를 풀었는가, 팔정도를 구족하였는가,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통찰하였는가,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구족하였는가,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을 성취하였는가 등을 토대로 하여 수행자들을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의 넷으로 분류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수행자들이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게 해주는 가르침이다.
⑹「삼매 경」1/2/3(A4:92~94)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불교수행을 대표하는 술어이며 특히 상좌부 불교의 수행체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핵심 술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술어는 일찍이 중국에서 각각 지(止)와 관(觀)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지와 관을 고르게 닦을 것을 강조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로 정착되었고 이것은 다시 선종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로 계승되었다. 불교 2600년사에서 내로라하는 논사들이나 수행자들이 하도 지와 관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다 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주석서나 후대 논사들이나 후대 수행자들의 견해가 아닌 초기경에서 그것도 부처님이 직접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설명하신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도대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어떻게 정의하셨는가?’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세 개의 경들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훌륭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 samatha]는 얻었지만 위빳사나[觀, vipassanā]의 높은 통찰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도 얻었다.”
이 세 개의 경들에서 “마음의 사마타”와 “통찰지라 [불리는] 법들에 대한 위빳사나”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마타는 마음의 개발을 뜻하는 삼매와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와 동의어이다.
그래서「삼매 경」3(A4:94)에서는 사마타를 얻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체득한 스님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어떻게 마음을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위빳사나를 얻기 위해서는 위빳사나에 통달한 분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형성된 것[行, saṅkhāra]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 삼매를 개발하는 수행이며 위빳사나는 유위제법을 명상하고 관찰하여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다. 그리고 이 둘을 다 얻은 사람은 “유익한 법들에 굳게 서서 번뇌들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⑺「쌍 경」(A4:170)
그러면 사마타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위빳사나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가? 이것도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토론거리가 되고 있다.「쌍 경」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준다. 결론은 사마타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위빳사나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함께 닦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문제이지 어느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쌍 경」은 아난다 존자가 비구들에게 설한 것이다. 본경에서 아난다 존자는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이든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라고 하면서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는 경우,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는 경우,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 경우,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린 경우의 넷을 들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마타에 든 상태에서 위빳사나를 닦는다는 말인가? 경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러나 주석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 경우를 다름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증득[等至]에 든 마음으로 형성된 것[行]들을 명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증득에 든 만큼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는 것이고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는 만큼 [다시] 증득에 든 것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초선을 증득한다. 거기서 출정(出定)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 뒤 제2선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다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고 한다.”(AA.iii.143)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이 말씀에 대해 사마타 즉 본삼매에 든 상태에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를 동시에 닦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석서의 이 설명에서 명확해질 것이다.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그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 사마타는 표상이라는 개념(paññatti)이 그 대상이고 위빳사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dhamma)이 그 대상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서로 다른 대상을 가진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결코 함께 일어날 수 없다.
이처럼『앙굿따라 니까야』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중요한 언급들을 포함하고 있다.
⑻「항아리 경」(A4:103)
본경은 수행자에 대한 세존의 예리한 고찰을 담고 있는 경이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수행자들을 네 부류로 분류하신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항아리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텅 비었지만 잘 닫힌 자, 가득 찼지만 열린 자, 텅 비었고 열린 자, 가득 차고 잘 닫힌 자이다.”
본문에 의하면 즉 사성제를 통찰하지 못하는 자를 텅 빈 자라 하고 밖으로 위의(威儀)를 잘 갖춘 자를 닫힌 자라 한다. 가득 찬 자와 열린 자는 각각 이와 반대의 경우를 말한다.
한편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안으로 고결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를 ‘텅 빈 자’라고 한다. 밖으로 멋지게 보이는 자를 ‘잘 닫힌 자’라 한다.”(AAṬ.ii.294)
밖으로 위의를 갖추고 근엄하게 행동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외도의 견해를 굳게 거머쥐고는 자기야말로 진정한 불교 수행자요 부처님 제자라고 주장하는 가엾은 분들이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밖으로 위의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연기와 무아에 바탕한 사성제를 말씀하는 분들도 있다. 더 드물기는 하지만 밖으로 위의를 갖추었고 사성제를 통찰하여 이를 천명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 나는 닫힌 자인가, 열린 자인가? 나는 텅 빈 자인가, 가득 찬 자인가?
⑼「께시 경」(A4:111)
본경은 세존께서 말 조련사 께시에게 하신 말씀이다. 께시가 말을 길들일 때 온화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혹독하게 길들이기도 하고 온화함과 혹독함 둘 다로 길들이기도 한다고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그렇게도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라고 물으신다. 께시는 그때는 말을 죽여 버리는데 그것은 자기 스승의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세존께서도 역시 사람들을 이렇게 길들인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께시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께서는 생명을 결코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나는 그를 죽여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의아해하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께시여, 참으로 이 성스러운 율에서 여래가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청정범행을 닦는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이 훈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살해된 자이니라.”
본경을 통해서 왜 세존이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신지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래서『율장 주석서』(VinA.i.120)는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을 설명하는 보기로 본경을 들고 있다. 참으로 출가 수행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⑽「다른 점 경」1/2(A4:123~124)
이 두 개의 경은 범부인 신과 예류자와 일래자와 불환자인 신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예류과와 일래과와 불환과를 증득한 불교의 성자라도 죽으면 태어나는 곳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성자들이 태어나는 곳을 이 두 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천상에 머무는 범부인 신들과 예류와 일래와 불환의 경지를 증득한 성자인 신들은 분명히 다르다. 범부인 신들은 그곳에서 수명이 다 하면 다시 육도윤회의 길로 들어서지만 성자인 신들은 그곳에서 반열반에 들거나 다시 몇 번 인간으로 태어난 뒤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성자인 신들은 삼악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 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 하면 바로 거기서 존재의 완전한 멸진인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⑾「족쇄 경」(A4:131)
본경은 열 가지 족쇄를 낮은 단계의 족쇄들,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의 셋으로 구분한 뒤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네 부류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는 경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경이다.
세존께서는 일래자(예류자도 여기에 포함됨)는 낮은 단계의 족쇄들과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과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을 모두 다 제거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분류하고 계신다. 일래자까지는 세 가지 족쇄는 풀었지만 낮은 단계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과 악의의 족쇄는 아직 미미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다 끊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아라한은 낮은 단계의 족쇄들과 태어남을 얻게 하는 족쇄들과 태어남의 조건인 존재를 얻게 하는 족쇄들을 모두 다 풀어버린 사람이라 한다. 본경에는 불환자에 해당하는 존재들을 상세하게 분류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본경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⑿「바라문의 진리 경」(A4:185)
출가란 말 그대로 집을 떠나는 행위이다. 집을 떠난다 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의무나 권리나 욕망이나 희망을 모두 접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경은 세존께서 같은 출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어떤 자가 진정한 출가자(사문)이고 진정한 종교인(바라문)인지를 밝히신 경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유행승들이여, 여기 바라문은 ‘모든 생명을 상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 ‘모든 감각적 욕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말한다. …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말한다. … ‘나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 있어서든 내 것이란 결코 없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바라문은 진리를 말한 것이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 이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생명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위해서 도를 닦는다.”
출가 수행자라면,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는 당연히 생명을 존중하고 감각적 욕망을 줄이고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라고 통찰하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이러한 네 가지를 기본 덕목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출가자나 종교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생명을 천시 여기고 욕망에 휘둘리고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것을 늘리려 아등바등한다면 그는 더 이상 출가자가 아니고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종교인이 아닐 것이다.
⒀「밧디야 경」(A4:193)
개종은 한일합방이라는 수치와 6․25 전쟁이라는 처참한 동족상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극심한 서구화를 경험한 근대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꾼다는 말이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실현하시고 인도 중원에서 전법을 시작하신 직후부터 불을 섬기던 가섭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당시에 마가다 등지에서 존경 받던 유행승들과 연로하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부처님의 신도가 되는 등 불교는 급속도로 인도에 퍼져나갔다. 그래서 부처님 당대에 이미 ‘고따마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써서 외도들을 개종시킨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 같으며 다른 교단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던 듯하다. 그럼 과연 진정한 개종이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신념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진정한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본경은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명쾌한 설명을 담고 있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본경은 릿차위의 밧디야와 세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밧디야가 세존께 와서 “사문 고따마는 요술쟁이다. 그는 개종시키는 요술을 알아서 다른 외도들을 제자로 개종시킨다.”라고들 말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를 여쭙는다. 세존께서는 본서 제1권「깔라마 경」(A3:65)에서 깔라마 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본경에서는 한 가지를 더하여 폭력 없음에 대해서 밧디야와 대화를 나누신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신다.
“밧디야여, 세상에 있는 참된 사람[眞人]들은 그들의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이리 오시오, 아무개 사람이여. 그대는 탐욕을 길들이고 머무시오. 그대가 탐욕을 길들이고 머물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탐욕에서 생긴 업을 짓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성냄을 … 어리석음을 …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고 머무시오. 그대가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고 머물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폭력적인 마음에서 생긴 업을 짓지 않을 것이오.’라고.”
즉 모든 수행자나 종교인은 만일 그가 참된 사람이라면 모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폭력적인 마음을 길들이는 것을 가르친다는 말씀이며 세존도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지 요술을 써서 사람을 개종시키기에 혈안이 된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대화 끝에 세존께 감격한 밧디야는 재가 신자가 되고 이렇게 말씀드린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개종시키는 요술은 축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개종시키는 요술은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나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이 이러한 개종으로 개종한다면 나의 사랑하는 혈육과 친척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그의 감격에 찬 말을 크게 인정하시면서 만일 이 모든 사람들이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을 한다면”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뒤에 “밧디야여, 만일 이 큰 살라 나무들조차도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을 한다면 이 큰 살라 나무들에게 오랜 세월을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라고 결론지으신다.
우리는 스스로 불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나는 불교 신자’라고 떳떳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름만이 불자요 이름만이 불교 신자일 뿐 안으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폭력적 성향이 득시글거린다면 어찌 자신을 부처님 아들이라고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탐욕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 폭력 없음으로 개종해야 한다. “해로운 법들을 버리고 유익한 법들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개종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진정한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제자다. 이것이 세존께서「밧디야 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해주시는 간곡한 말씀이다.
⒁「갈애 경」(A4:199)
본경은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애의 적나라한 모습을 3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갈애에 의해서 망가지고 둘러싸이고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며 비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을 건너지 못한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등의 18가지 안을 취착하여 일어나는 갈애와 ‘이것에 의해서 내가 있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여기에 있다.’ 등의 18가지 밖을 취착하여 일어나는 갈애를 들고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런 안팎의 36가지 갈애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조합이 될 때 108가지 갈애가 된다.
⒂「소나까야나 경」(A4:233)
본경은 목갈라나라는 바라문이 세존께 와서 여쭌 문제에 대한 세존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께 “소나까야나라는 바라문 학도가 말하기를 ‘사문 고따마는 모든 업들의 지음 없음(akiriya)을 천명합니다. 그는 모든 업들의 지음 없음을 천명하여 단멸론(uccheda)을 말하면서도 세상이란 것은 업이 진리이며 업의 적집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라고 여쭙는다.
즉 ‘고따마는 업을 짓는 것이란 없다는 도덕부정을 설하면서도 어떻게 다시 업이 진리라고 하여 혼란스럽게 만드느냐?’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바라문이여, 검은 과보를 가져오는 검은 업이 있다. 흰 과보를 가져오는 흰 업이 있다. 검고 흰 과보를 가져오는 검고 흰 업이 있다. 검은 과보도 흰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 있다.”고 바로 앞의「상세하게 경」(A4:232)에서처럼 네 가지 업을 말씀하시고 그 예를 들고 계신다.
세존의 가르침은 업을 뛰어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이것이 네 번째인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다. 이런 가르침을 일부 외도들과 바라문들은 단멸과 허무와 도덕부정의 가르침이라고 매도하는 것을 본경은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불자들조차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무아와 연기를 허무주의적으로 단멸론적으로 잘못 이해하여 두려워하고 겁먹고 갈팡질팡한다. 이 경을 통해서 좀 더 진지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사유하고 음미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리라 기대해본다.
그리고 계속해서「성스러운 도 경」(A4:235)에서는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업 즉 업을 뛰어넘는 것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팔정도를 들고 계시며「깨달음의 구성요소 경」(A4:236)에서는 칠각지를 그 방법으로 들고 계신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육도 윤회를 종식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팔정도와 칠각지 등의 37보리분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신다.
⒃「사문 경」(A4:239)
본경은 세존께서 오직 불교에만 사문이 있다고 자신 있게 천명하시는 가르침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라고 말씀하신 뒤 이 넷을 각각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이러한 사자후는『디가 니까야』 제2권「대반열반경」(D16 §5.27)에서 세존의 마지막 출가 제자가 된 수밧다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대반열반경」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이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불자는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팔정도를 실천할 때 그가 진정한 사문이며 그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이다.
6. 재가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들
「넷의 모음」에는 재가신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다룬 경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재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본서를 읽는 재가 불자님들을 위해서 몇 가지 경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⑴「어울리는 삶 경」1(A4:55)
우리는 주위에서 금슬이 좋은 부부도 보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부부도 본다. 금슬이 좋아서 내생에서도 부부의 인연을 맺으려 한다면 금생에 부부가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경은 여기에 대해서 그 답을 제공해준다.
본경은 500생 동안 부처님의 부모였다고 하는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나꿀라삐따 장자와 그의 아내 나꿀라마따에게 하신 말씀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장자와 부인이여, 만일 그대들 둘이 지금여기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그대들 둘은 동등한 믿음과 동등한 계행과 동등한 베풂과 동등한 통찰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지금여기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고 내생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다.”
즉 같은 인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둘 다 동등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둘 다 계를 잘 지켜야 하며, 둘 다 보시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며, 둘 다 지혜를 개발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⑵「숩빠와사 경」(A4:57)
보시하는 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보시를 해야 할까? 본경은 음식이나 물질을 승가나 남들에게 보시하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를 설하고 계신 경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여제자는 받는 자들에게 네 가지로 보시한다. 무엇이 넷인가? 수명을 보시하고 아름다움을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계속해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수명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아름다움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행복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힘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즉 이러한 네 가지 자세로 보시한 사람은 다음 생에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서 수명과 아름다움과 행복과 힘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들에게 항상 시․계․생천(施․戒․生天)을 먼저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보시하고 계를 지켜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먼저 재가자들에게 강조하신 뒤 이를 잘 실천하는 자들에게 사성제를 말씀하셨다.
⑶「합리적인 행위 경」(A4:61)
세상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물이 많기를 바라고 자신과 가문이 큰 명성을 얻기를 바라고 오래 살기를 바라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희망이면서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경에서도 부처님께서는 급고독 장자에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운 것으로 ‘법답게 재물을 얻는 것,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을 얻는 것,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지는 것,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것’의 네 가지를 말씀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자 하는 이러한 네 가지를 성취하게 되는가? 세존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믿음을 구족하고 계를 구족하고 보시를 구족하고 통찰지를 구족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처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구족하고, 5계를 잘 지키고, 항상 남에게 베푸는 자세를 가지고, 다섯 가지 장애로 대표되는 오염원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하신다. 믿음, 계행, 보시, 지혜의 이 네 가지를 닦고 실천할 때 그 사람은 재산과 명성과 긴 수명과 천상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재가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법답게 얻은 재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실천해서 바른 업을 지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첫째는 자신과 부모와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일꾼들과 친구와 친척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른 행복을 보호하는 것이다. 즉 자기 식솔들을 잘 부양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둘째는 이러한 재물을 재난, 즉 불과 물과 왕과 도둑과 적과 나쁜 마음을 가진 상속인 등의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재물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셋째는 친지에게 하는 헌공, 손님에게 하는 헌공, 조상신들에게 하는 헌공, 왕에게 하는 헌공(세금), 신에게 하는 헌공의 다섯 가지 헌공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의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넷째는 사문․바라문들에게 보시를 해야 한다. 이러한 사문․바라문들에게 하는 보시는 고귀한 결말을 가져다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들과 종교인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벌 줄도 알아야 하지만 쓸 줄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세존께서는 각자가 번 돈으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위의 네 가지로 설명하고 계시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재가불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이다.
⑷「빚 없음 경」(A4:62)
본경은 세존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하신 말씀을 담은 경으로 재가자가 바르게 누리는 네 가지 행복을 들고 계신다. 그것은 소유하는 행복, 재물을 누리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을 소유하는 행복을 세존께서는 재가자들이 누리는 첫 번째 행복으로 들고 계신다.
두 번째의 재물을 누리는 행복이란 이렇게 자신의 노력으로 바르게 얻은 재물로 그것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재물은 바르게 사용할 때, 특히 이러한 재물로 공덕을 지을 때 그것이 행복이 된다. 그렇지 못한 재물은 화의 근본이 될 뿐이다.
재가자가 누리는 세 번째 행복은 빚 없는 행복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런 빚도 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일 것이다.
네 번째 행복은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본경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업을 짓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몸으로 살생 투도 사음을 하지 않고 말로는 거짓말, 이간질, 욕설, 잡담을 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으로는 강한 탐욕, 악의,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편 스리랑카의 릴리 드 실바 교수는「세속인의 행복」이라는 글에서 이 넷을 기본 주제로 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⑸「범천 경」(A4:63)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아들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가문들은 범천, 최초의 스승, 고대의 신들이 함께하는 가문이고 공양 받아야 할 가문이라고 천명하신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여러 곳에서 세존께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잘 모실 것을 설하고 계신다. 그래서 본서 제1권「은혜를 보답하지 못함 경」(A2:4:2)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신다.
“비구들이여, 수명이 백 년인 때에 태어나 백 년 동안 살면서 내내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워드리더라도, 향수를 뿌리고 안마를 해 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몸을 문질러 드리면서 봉양을 하더라도, 대소변을 받아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대지를 통치하는 최고의 왕위에 모시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⑹「말리까 경」(A4:197)
본경은 세존께서 말리까 왕비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리까 왕비가 세존께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나쁘고 못생기고 보기에 흉하고 가난하며 게다가 소유물이 적고 재물이 적고 따르는 사람이 적습니까?”라는 방법으로 네 가지를 질문 드리자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경이다.
세존께서는 성 잘 내고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자는 용모가 나쁜 과보를 받고. 그와 반대로 행하는 자는 용모가 좋은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보시하지 않는 자는 가난한 과보를 받고 보시를 많이 한 자는 부유한 과보를 받으며, 질투심이 많은 자는 따르는 무리가 적은 과보를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따르는 무리가 많은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말리까 왕비는 자신은 성을 잘 내어서 지금 못생긴 과보를 받았고 보시를 잘해서 부유한 과보를 받았고 질투심이 없어서 따르는 무리가 많은 과보를 받은 것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성을 내지 않고 보시하고 질투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부처님의 신도가 된다.
7. 맺는 말
이상으로「넷의 모음」을 개관해보았다.「넷의 모음」에 포함된 271개의 경들 가운데는 특히 사람을 여러 부류로 분류해서 설명하는 경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러한 가르침들을 통해서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인간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그것은 세존의 금구성언을 통해서 세세생생 악도를 여의고 선처로 향상하며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 가장 귀중한 인연이 될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은「넷의 모음」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하나의 모음」과「둘의 모음」과「셋의 모음」을 담고 있는 본서 제1권보다 그 분량이 적다. 그래서 본서 제1권에 해당하는 찾아보기도 모두 본서에 모아서 엮었다. 사용에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제1권과 제2권의 분량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므로 독자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제2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增支部, 숫자별로 모은 경) (1/2/3/4/5/6)
대림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제1권(하나 ~ 셋의 모음): 664쪽 (초판 2006년, 3판 2012년)
제2권(넷의 모음): 656쪽 (초판 2006년, 재판 2012년)
제3권(다섯의 모음): 552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4권(여섯~일곱의 모음): 576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5권(여덟~아홉의 모음): 560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제6권(열~열하나의 모음): 624쪽 (초판 2007년, 재판 2013년)
정가: 각권 3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