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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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목차>

제51주제 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S51)

 제1장 짜빨라 품
경 번호
페이지
이 언덕 경S51:185
게을리함 경S51:288
성스러움 경S51:389
염오 경S51:489
부분적으로 경S51:590
완전하게 경S51:690
비구 경S51:791
부처 경S51:892
지혜 경S51:993
탑묘 경S51:1094


제2장 녹자모 강당을 흔듦 품
경 번호
페이지
이전 경S51:11107
큰 결실 경S51:12111
열의를 주로 한 삼매 경S51:13113
목갈라나 경S51:14116
운나바 바라문 경S51:15119
사문/바라문 경1S51:16122
사문/바라문 경2S51:17123
비구 경S51:18124
가르침 경S51:19124
분석 경S51:20126


제3장 철환(鐵丸) 품
경 번호
페이지
도 경S51:21134
철환 경S51:22135
비구 경S51:23139
간단한 설명 경S51:24139
결실 경1S51:25140
결실 경2S51:26140
아난다 경1S51:27141
아난다 경2S51:28142
많은 비구 경1S51:29143
많은 비구 경2S51:30143
목갈라나 경S51:31144
여래 경S51:32146


제4장 강가 강의 반복
경 번호
페이지
동쪽으로 흐름 경 등1S51:33147
동쪽으로 흐름 경 등2~6S51:34~38148
바다 경S51:39~44148


제5장 불방일 품
경 번호
페이지
여래 경 등S51:45~54150


제6장 힘쓰는 일 품
경 번호
페이지
힘 경 등S51:55~66152


제7장 추구 품
경 번호
페이지
추구 경 등S51:67~76154


제8장 폭류 품
경 번호
페이지
폭류 경 등S51:77~86156


제52주제 아누룻다 상윳따(S52)

제1장 한적한 곳 품
경 번호
페이지
한적한 곳 경1S52:1159
한적한 곳 경2S52:2159
수따누 경S52:3163
가시덤불 숲 경1S52:4166
가시덤불 숲 경2S52:5167
가시덤불 숲 경3S52:6168
갈애의 멸진 경S52:7168
살랄라 나무 집 경S52:8169
암바빨리 숲 경S52:9171
중병 경S52:10172


제2장 두 번째 품
경 번호
페이지
천 겁 경S52:11174
신통변화 경S52:12175
신성한 귀[天耳] 경S52:13175
마음에 대해서 경S52:14175
원인 경S52:15176
행한 업 경S52:16176
모든 행처로 인도함 경S52:17177
여러 요소 경S52:18177
다양한 성향 경S52:19178
기능의 한계 경S52:20178
선(禪) 등 경S52:21178
전생의 삶 경S52:22179
신성한 눈 경S52:23180
번뇌의 멸진 경S52:24180


제53주제 선[禪] 상윳따(S53)

 제1장 강가 강의 반복 품
경 번호
페이지
동쪽으로 흐름 경 등S53:1~12185


제2장 불방일 품
경 번호
페이지
여래 경 등S53:13~22188


제3장 힘쓰는 일 품
경 번호
페이지
힘 경 등S53:23~34190


제4장 추구 품
경 번호
페이지
추구 경 등S53:35~44192


제5장 폭류 품
경 번호
페이지
폭류 경 등S53:45~54193


제54주제 들숨날숨 상윳따(S54)

제1장 하나의 법 품
경 번호
페이지
하나의 법 경S54:1197
깨달음의 구성요소 경S54:2202
간단한 설명 경S54:3203
결실 경1S54:4205
결실 경2S54:5206
아릿타 경S54:6207
마하깝비나 경S54:7210
등불 비유경S54:8212
웨살리 경S54:9217
낌빌라 경S54:10222


제2장 두 번째 품
경 번호
페이지
잇차낭갈라 경S54:11230
혼란스러움 경S54:12233
아난다 경1S54:13237
아난다 경2S54:14244
비구 경1S54:15245
비구 경2S54:16246
족쇄 경S54:17247
잠재성향 경S54:18247
도정(道程) 경S54:19247
번뇌의 멸진 경S54:20247


제55주제 예류 상윳따(S55)

제1장 웰루드와라 품
경 번호
페이지
전륜성왕 경S55:1251
깊이 들어감 경S55:2254
디가유 경S55:3256
사리뿟따 경1S55:4260
사리뿟따 경2S55:5261
시종 경S55:6263
웨루드와라에 사는 자 경S55:7270
벽돌집 경1S55:8276
벽돌집 경2S55:9280
벽돌집 경3S55:10281


제2장 왕의 원림 품
경 번호
페이지
천 명의 비구니 승가 경S55:11283
바라문 경S55:12284
아난다 경S55:13285
불행한 곳 경1S55:14287
불행한 곳 경2S55:15288
친구와 동료 경1S55:16288
친구와 동료 경2S55:17289
신들을 방문함 경1S55:18291
신들을 방문함 경2S55:19293
신들을 방문함 경3S55:20293


제3장 사라까니 품
경 번호
페이지
마하나마 경1S55:21296
마하나마 경2S55:22299
고다 경S55:23299
사라까니 경1S55:24305
사라까니 경2S55:25310
아나타삔티까 경1S55:26315
아나타삔티까 경2S55:27321
두려움과 증오 경1S55:28324
두려움과 증오 경2S55:29328
릿차위 경S55:30329


제4장 공덕이 넘쳐흐름 품
경 번호
페이지
넘쳐흐름 경1S55:31331
넘쳐흐름 경2S55:32332
넘쳐흐름 경3S55:33332
신성한 발자취 경1S55:34333
신성한 발자취 경2S55:35334
신과 닮음 경S55:36336
마하나마 경S55:37337
비 경S55:38338
깔리고다 경S55:39339
난디야 경S55:40341


제5장 게송을 포함한 공덕이 넘쳐흐름 품
경 번호
페이지
넘쳐흐름 경1S55:41345
넘쳐흐름 경2S55:42347
넘쳐흐름 경3S55:43348
부유함 경1S55:44349
부유함 경2S55:45350
간단한 설명 경S55:46350
난디야 경S55:47~49351
구성요소 경S55:50352


제6장 통찰지를 지닌 자 품
경 번호
페이지
게송을 포함한 경S55:51353
안거를 마침 경S55:52354
담마딘나 경S55:53356
병 경S55:54359
예류과 경S55:55~58365
통찰지를 얻음 경 등S55:59~61366


제7장 큰 통찰지 품
경 번호
페이지
큰 통찰지 경 등S55:62~74367


제56주제 진리[諦] 상윳따(S56)

제1장 삼매 품
경 번호
페이지
삼매 경S56:1371
홀로 앉음 경S56:2372
좋은 가문의 아들(선남자) 경1S56:3373
좋은 가문의 아들(선남자) 경2S56:4375
사문/바라문 경1S56:5376
사문/바라문 경2S56:6377
생각[尋] 경S56:7378
사색 경S56:8379
논쟁의 소지가 있음 경S56:9380
쓸데없는 이야기 경S56:10381


제2장 전법륜 품
경 번호
페이지
초전법륜 경S56:11384
여래 경S56:12392
무더기 경S56:13394
안의 감각장소 경S56:14395
호지 경1S56:15396
호지 경2S56:16397
무명 경S56:17399
명지 경S56:18400
뜻의 함축 경S56:19400
진실함 경S56:20401


제3장 꼬띠가마 품
경 번호
페이지
꼬띠가마 경1S56:21403
꼬띠가마 경2S56:22404
정등각자 경S56:23406
아라한 경S56:24407
번뇌의 멸진 경S56:25408
친구 경S56:26408
진실함 경S56:27409
세상 경S56:28410
철저히 알아야함 경S56:29411
가왐빠띠 경S56:30412


제4장 심사빠 숲 품
경 번호
페이지
심사빠 숲 경S56:31414
아카시아 경S56:32415
막대기 경S56:33417
옷 경S56:34418
백 자루의 창 경S56:35419
생명체 경S56:36420
태양 경1S56:37421
태양 경2S56:38422
석주(石柱) 경S56:39423
논쟁을 원함 경S56:40425


제5장 낭떠러지 품
경 번호
페이지
세상에 대한 사색 경S56:41428
낭떠러지 경S56:42431
대열뇌(大熱腦) 경S56:43434
뾰족지붕 집 경S56:44437
머리카락 경S56:45438
암흑 경S56:46441
구멍을 가진 멍에 경1S56:47443
구멍을 가진 멍에 경2S56:48445
수미산 경1S56:49446
수미산 경2S56:50447


제6장 관통 품
경 번호
페이지
손톱 경S56:51449
연못 경S56:52450
합류하는 물 경1S56:53451
합류하는 물 경2S56:54452
땅 경1S56:55453
땅 경2S56:56453
바다 경1S56:57454
바다 경2S56:58455
산의 비유 경1S56:59456
산의 비유 경2S56:60456


제7장 첫 번째 날곡식의 반복
경 번호
페이지
다른 곳 경S56:61458
변방 경S56:62459
통찰지 경S56:63460
술과 중독성 물질 경S56:64460
물에서 태어남 경S56:65460
어머니를 존중함 경S56:66461
아버지를 존중함 경S56:67461
사문을 존중함 경S56:68461
바라문을 존중함 경S56:69461
연장자를 존중함 경S56:70461


제8장 두 번째 날곡식의 반복
경 번호
페이지
생명을 죽임 경S56:71463
주지 않은 것을 가짐 경S56:72463
삿된 음행 경S56:73463
거짓말 경S56:74464
중상모략 경S56:75464
욕설 경S56:76464
잡담 경S56:77464
씨앗류 경S56:78464
때 아닌 때 경S56:79465
향과 화장품 경S56:80465


제9장 세 번째 날곡식의 반복
경 번호
페이지
춤과 노래 경S56:81466
높은 침상 경S56:82466
금과 은 경S56:83466
날곡식 경S56:84466
생고기 경S56:85467
동녀 경S56:86467
하인 경S56:87467
염소나 양 경S56:88467
닭이나 돼지 경S56:89468
코끼리 경S56:90468


제10장 네 번째 날곡식의 반복
경 번호
페이지
농토 경S56:91469
사거나 팖 경S56:92469
심부름 꾼 경S56:93469
저울을 속임 경S56:94469
악용함 경S56:95470
상해 경 등S56:96~101470


제11장 다섯 가지 태나날 곳[五度]의 반복
경 번호페이지
인간으로 죽음 경1S56:102471
인간으로 죽음 경2S56:103472
인간으로 죽음 경3S56:104472
인간으로 죽음 경4~6S56:105~107472
신으로 죽음 경1~3S56:108~110473
신으로 죽음 경4~6S56:111~113473
지옥에서 죽음 경1~3S56:114~116473
지옥에서 죽음 경4~6S56:117~119473
축생계에서 죽음 경1~3S56:120~122474
축생계에서 죽음 경4~6S56:123~125474
아귀계에서 죽음 경1~3S56:126~128474
아귀계에서 죽음 경4~6S56:129~131474




<상윳따 니까야 제6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거듭 밝히지만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에는 제6권이 없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한글 번역본『상윳따 니까야』제6권은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이 가운데 후반부에 해당하는 제51주제「성취수단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S51)부터 마지막인 제56주제「진리[諦] 상윳따」(Sacca-saṁyutta)까지 6개의 상윳따와 찾아보기 등을 포함시켜서 엮은 것이다.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은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37보리분법으로 일컬어지는 본격적인 수행과, 과위(果位)의 증득과, 진리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크게 교학과 수행으로 나누어 본다면『상윳따 니까야』제2/3/4권에서는 교학에 관한 경들, 그 중에서도 각각 연기[緣], 오온[蘊], 육처[處]를 중심으로 하고 요소[界]나 그 외 다른 가르침들을 포함하여 편집하였다. 그리고 인․천에 관계된 존재들 특히 천신(S1), 신의 아들(S2), 마라(S4), 범천(S6), 약카(S10), 삭까(인드라, S11)와 같은 신들을 중심한 경들을 제1권에 배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권인 제5권에서는 수행체계인 37보리분법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과 禪을 배당하고 수행을 통해 증득되는 첫 단계의 성자인 예류자에 대한 가르침을 모은 뒤에(S55), 맨 마지막으로 56번째 상윳따에서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배당하여『상윳따 니까야』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은 전통적으로 큰 가르침을 담은 책(Mahā-vagga)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Ee에 의하면 이 원본 제5권은 478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240쪽인 제1권의 두 배에 해당하는 많은 분량이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원본 제5권을 둘로 나누어서 제5권과 제6권으로 번역출간하고 있다. 한글 번역본 제5권은 빠알리어 원본 제4권에 나타나는 제43주제「무위 상윳따」(Asaṅkhata-saṁyutta, S43)와 제44주제「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ākata-saṁyutta, S44)와 원본 제5권의 첫 번째 여섯 개 상윳따들에 해당하는 제45주제「도 상윳따」(Magga-saṁyutta, S45)부터 제50주제인「힘 상윳따」(Bala-saṁyutta, S50)까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한글 번역본 제6권에는 나머지 상윳따들, 즉 제51주제인「성취수단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S51)부터 마지막 제56주제인「진리 상윳따」(Sacca-saṁyutta, S56)까지 6개의 상윳따와 찾아보기 등을 포함시켰다.



2. 제6권의 구성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에는 모두 12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서 한글 번역본『상윳따 니까야』제6권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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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서「성취수단 상윳따」(S51)는 37보리분법에 속하는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iddhipāda]에 관계된 것이고「선(禪) 상윳따」(S53)의 禪은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네 가지 선[四禪]을 말한다. 

「들숨날숨 상윳따」(S54)는 몸․느낌․마음․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의 주제[四念處] 가운데 첫 번째인 신념처(身念處)의 14가지 주제 중에서 다시 첫 번째이며,『맛지마 니까야』「출입식념경」(M119)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기는 공부에 관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예류 상윳따」(S55)의 예류는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의 불교의 네 단계의 성자들 가운데 첫 번째인 예류를 뜻하고, 맨 마지막인「진리[諦] 상윳따」(S56)는 사성제에 관한 가르침을 모은 것인데 이것은 붓다고사 스님이『청정도론』에서 불교 교학을 온․처․계․근․제․연의 여섯으로 정리한 가운데서 다섯 번째인 제(諦, sacca)를 뜻한다.

그리고『상윳따 니까야』의 각권에는 부처님의 제자를 중심한 상윳따가 들어 있는데, 본권에는 아누룻다 존자가「아누룻다 상윳따」(S52)로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한글 번역본 제6권은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에 나타나는 12개의 상윳따들 가운데서 후반부에 속하는 6개의 상윳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여기 제6권에서도 이러한 6개의 주제들 가운데 2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는 이 경들을 각각 열 개씩으로 나누어서 품(vagga)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다. 제3권과 제4권에서는 이러한 품이 10개가 넘을 경우에 다섯 개씩의 품을「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묶어서 편집하였다. 여기 제6권에는「진리 상윳따」(S56)가 100개 이상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비슷한 경들의 반복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분류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제6권에 포함되어 있는 6개의 상윳따를 개관해보도록 하자.


제51주제「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S51)에 포함된 86개 경들은 37보리분법에 속하는 네 가지 성취수단에 관한 경들을 담고 있다. 37보리분법에 해당하는 앞의 상윳따들(S45∼S50)에서 나타난 다섯 가지 반복은 본 상윳따의 제4장부터 제8장까지에 꼭 같이 나타나고 있다.

제52주제「아누룻다 상윳따」(Anuruddha-saṁyutta, S52)에 포함된 24개의 경들은 모두 아누룻다 존자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아누룻다 상윳따」라 부른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24개의 경들은 예외 없이 모두 아누룻다 존자의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에 대한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37보리분법이라는 수행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는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에 포함시킨 것일 것이다.

제53주제「선(禪) 상윳따」(Jhāna-saṁyutta, S53)에는 선과 관련된 5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는 모두 37보리분법에 관계된 위의 일곱 가지 상윳따들(S45∼S51)에 나타난 다섯 가지 반복과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경들만이 나타나고 그 외의 경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편『상윳따 니까야』에는 두 개의「禪 상윳따」(Jhāna-saṁyutta)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禪 상윳따」(S34)의 주해를 참조할 것.

제54주제「들숨날숨 상윳따」(Ānāpāna-saṁyutta, S54)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마음챙김 가운데서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에 관계된 것이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16단계로 잘 설명되어 있는데 본 상윳따의 경들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제55주제「예류 상윳따」(Sotāpatti-saṁyutta, S55)에는 7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류자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래서「예류 상윳따」라 부른다. 그러나 꼭 예류자에 해당하는 것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일래․불환․아라한에 적용되는 구문도 나타나고 있다.

제56주제「진리[諦] 상윳따」(Sacca-saṁyutta, S56)에 포함된 131개의 경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상윳따 니까야』는 진리 즉 사성제에 관한 경들을 마지막 상윳따인 S56에서 합송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진리를 실현하라는 것을『상윳따 니까야』의 마지막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S51)

⑴ 성취수단이란 무엇인가

쉰한 번째 주제「성취수단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S51)에는 86개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먼저 성취수단[如意足]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성취수단은 iddhi-pāda를 성취-수단으로 직역한 것이며 중국에서는 如意足(여의족)으로 옮겼다. 

성취로 옮긴 iddhi(Sk. ṛddhi)는 √ṛdh(to prosper)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 번영, 번창, 향상, 성공, 성취를 뜻하며 베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몇몇 초기불전에서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번영이 언급되고 있다. (D17/ii.177; M129/iii.176 등) 예를 들면『디가 니까야』「마하수닷사나 경」(D17 §§1.18∼21)에는 용모, 긴 수명, 병 없음, 호감의 넷을 마하수닷사나 왕이 이룬 네 가지 성취로 들고 있는데 이 넷은 대표적인 세속적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대반열반경」(D16 §4.25)과 여러 경들에서는 큰 신통과 큰 위력(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이라는 문맥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청정도론』XII.20∼21은 세 가지로 iddhi를 정의하는데 ① 성공과 획득의 성취(XII.20)와 ② 수단의 구족(XII.21)과 ③ 신통(XII.22)이다. 

이미 초기불전에서부터 iddhi는 두 가지 전문술어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① 신통변화[神足通]로 옮기는 iddhi-vidhā와, 본 상윳따(S51)의 모든 경들에 나타나는 ② 성취수단[如意足]으로 옮기고 있는 iddhi-pāda이다. 이 둘에 대해서 살펴보자


① 신통변화(iddhi-vidha)

이 가운데 신통변화는 육신통 가운데 첫 번째 신통으로, 본서「이전 경」(S51:11 §8)과 본서 제2권「수시마 경」(S12:70 §9) 등에서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로 정형화 되어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신족통(神足通)으로 옮겼다. 

그리고「께왓다 경」(D11 §1) 등에는 ‘신통의 기적’으로 옮기고 있는 iddhi-pāṭihāriya라는 술어가 나타난다. 그곳 §4에서 보듯이 이것은 6신통 가운데 첫 번째인 위의 신통변화[神足通, iddhi-vidha]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본서「탑묘 경」(S51:10) §8의 해당 주해 참조)

한편『청정도론』XII.21 이하에서는『무애해도』에 나타나는 열 가지 신통을 든 뒤에 XII장 전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결의에 의한 신통 ② 변형의 신통 ③ 마음으로 [다른 몸을] 만드는 신통 ④ 지혜가 충만함에 의한 신통 ⑤ 삼매가 충만함에 의한 신통 ⑥ 성자들의 신통 ⑦ 업의 과보로 생긴 신통 ⑧ 공덕을 가진 자의 신통 ⑨ 주술에 의한 신통 ⑩ 각각 바른 노력을 조건으로 성취한다는 뜻에서의 신통”(Ps.ii.205)이다.


② 성취수단[如意足, iddhi-pāda]

그리고 두 번째가 본 상윳따의 주제요 ‘성취수단’으로 옮기고 있는 iddhi-pāda이다. 여기서 pāda는 √pad(to go)에서 파생된 남성 혹은 중성명사인데 다리[足]를 뜻한다. 그래서 이 전체를 중국에서는 如意足(여의족)으로 옮겼다. 주석서는 ① 성취를 위한 수단(iddhiyā pādaṁ)과 ② 성취가 된 수단(iddhi-bhūtaṁ pādaṁ)의 두 가지로 ‘성취수단(iddhi-pāda)’을 설명하고 있다.(SA.iii.250) 

성취수단의 정형구에는 ① 삼매(samādhi) ② 노력의 의도적 행위(padhāna-saṅkhāra) ③ 삼매를 낳는데 필요한 네 가지 특별한 요소들 즉 열의(chanda), 정진(viriya), 마음(citta), 검증(vīmaṁsa)의 세 가지 요소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① 삼매와 ② 노력의 의도적 행위는 네 가지 성취수단 모두에 다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보듯이 네 가지 성취수단에서의 성취(iddhi)는 특히 삼매의 성취를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삼매 특히 제4선에 자유자재해야 신통(iddhi)도 성취된다고 주석서들은 말한다. 그래서 제4선을 신통의 토대가 되는 禪(padaka-jjhāna)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성취수단을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도 머물 수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고 본서「탑묘 경」(S51:10) §5 =『디가 니까야』「대반열반경」(D22) §3.3)에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의 정형구와 여기에 관계된 중요한 구절 몇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열의를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열의를 주로 한 삼매라 한다.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정진을 의지하여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마음을 의지하여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검증을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검증을 주로 한 삼매라 한다.”(「열의를 주로 한 삼매 경」(S51:13) §§3~6)

“비구들이여, 과거에 … 미래에 … 현재에 크나큰 신통력과 크나큰 위력이 있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는 자들이다.”(「사문․바라문 경」1(S51:16)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게을리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게을리함 경」(S51:2)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염오 경」(S51:4) §3)


이처럼 초기불전의 여러 경들을 종합해보면, 네 가지 성취수단은 니까야에서 ① 삼매를 성취하는 수단 ② 신통을 성취하는 수단 ③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하는 수단의 셋으로 나타나고 있다.


⑵「성취수단 상윳따」(S51)의 개관

이제 본 상윳따를 전체적으로 개관해보자.

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에는 86개 경들이 여덟 개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에 관한 경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본 상윳따에서도 제4장부터 제8장까지의 다섯 품은 본서 제5권「도 상윳따」(S45) 해제 §5-⑵-③과「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S46) 해제 §6-⑶-② 등에서 설명한 다섯 개 품들의 54개 경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취수단 상윳따」도 ① 32개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제1장부터 제3장까지와 ② 54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제4장부터 제8장까지의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제1장부터 제3장까지

제1장「짜빨라 품」과 제2장「강당을 흔듦 품」은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담고 있고 제3장「철환(鐵丸) 품」은 12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이들 32개의 경들은 서로에 반복되는 구절이 없이 성취수단의 중요성을 설하고 있다. 32개 경들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분석 경」(S51:20)은 네 가지 성취수단의 각 항목인 열의․정진․마음․검증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정독할 것을 권한다.

한편 본서 S51:5∼6, 11∼12, 14, 16∼17, 19∼22, 27∼33 등의 18개 경들은 육신통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통들이 모두 네 가지 성취수단(사여의족)을 닦아서 성취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신통변화를 비롯한 육신통과 사여의족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이 언덕 경」등(S51:1∼4)은 네 가지 성취수단에 의해서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고 괴로움을 끝내고 염오-이욕-소멸-열반으로 인도한다고 설하고 있으며,「비구 경」등(S51:7∼9)과「큰 결실 경」(S51:12)과「비구 경」(S51:18)과「비구 경」(S51:23)과「결실 경」 1/2(S51:25∼26)는 이 네 가지에 의해서 부처님이 되고 아라한과 불환자가 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얻고 안․지․혜․명․광이 생긴다고 적고 있다.

「부분적으로 경」(S51:5)과「완전하게 경」(S51:6)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사문․바라문들은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어서 신통변화를 나툰다고 적고 있으며,「목갈라나 경」(S51:14)과「사문․바라문 경」1/2(S51:16∼17)와「도 경」(S51:21)과「철환 경」(S51:22)과「목갈라나 경」(S51:31)은 사여의족의 힘으로 육신통 등을 구족하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한편 본 상윳따의 첫 번째인「이 언덕 경」(S51:1 §5)과「게을리함 경」(S51:2 §3) 등에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라고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가르침 경」(S51:19)과「아난다 경」1 등(S51:27∼30)은 팔정도를 닦아서 성취수단을 얻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성취수단은 결국 팔정도를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며 아울러 이것은 모든 수행의 최종적인 결실인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의 실현으로 귀결이 된다. 이처럼 사여의족은 궁극적으로는 육신통의 마지막인 누진통을 통해서도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사여의족 그자체로도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구조로 설해지고 있다. 

경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iddhi(신통, 성취)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무애해도』(Ps.205∼214)에 나타나고 있다.


② 제4장부터 제8장까지

그리고 본 상윳따의 제4장부터 제8장까지의 다섯 개 품들에는 모두 5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이들은 본서 제5권의「바른 노력 상윳따」(S49) 해제 §9-⑴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다섯 가지 반복되는 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 다섯 가지 품은 ⑴「강가 강의 반복」⑵「불방일 품」⑶「힘쓰는 일 품」⑷「추구 품」⑸「폭류 품」의 다섯이다. 

이 가운데「강가 강의 반복」에는 여섯 가지 ①∼⑥ 동쪽으로 흐름, 여섯 가지 ⑦∼⑫ 바다의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불방일 품」에는 ① 여래 ② 발자국 ③ 뾰족지붕 ④ 뿌리 ⑤ 심재 ⑥ 재스민 꽃 ⑦ 왕 ⑧ 달 ⑨ 태양 ⑩ 옷감의 1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힘쓰는 일 품」에는 ① 힘 ② 씨앗 ③ 용 ④ 나무 ⑤ 항아리 ⑥ 꺼끄러기 ⑦ 허공, 두 가지 ⑧∼⑨ 구름 ⑩ 배 ⑪ 객사(客舍) ⑫ 강의 12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추구 품」에는 ① 추구 ② 자만 ③ 번뇌 ④ 존재 ⑤ 괴로움의 성질 ⑥ 삭막함 ⑦ 때 ⑧ 근심 ⑨ 느낌 ⑩ 갈애 ⑪ 목마름의 1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폭류 품」에는 ① 폭류 ② 속박 ③ 취착 ④ 매듭 ⑤ 잠재성향 ⑥ 감각적 욕망 ⑦ 장애 ⑧ 무더기 ⑨ 낮은 단계의 족쇄 ⑩ 높은 단계의 족쇄의 1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54개의 경들이 다섯 개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들의 내용은 본서 제5권「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S46)의「동쪽으로 흐름 경」1(S46:77) 이하와 더 자세한 것은「도 상윳따」(S45)「동쪽으로 흐름 경」1(S45:91) 이하를 참조할 것.

이렇게 모두 다섯 개의 품에 포함된 54개의 경들은 본서 제5권과 제6권의 37보리분법에 관계된 상윳따들(S45∼S51)과「선(禪) 상윳따」(S53)에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앞의 제1/2/3/4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4.「아누룻다 상윳따」(S52)

쉰두 번째 주제인「아누룻다 상윳따」(Anuruddha-saṁyutta, S52)에는 모두 아누룻다 존자와 관련된 2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1장「한적한 곳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품에는 10개의 경들이, 두 번째 품에는 1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24개의 경들은 예외 없이 모두 아누룻다 존자의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대한 경을 모은 것이다. 이미 본서 제5권「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47)의「부분적으로 경」(S47:26∼28) 등에서 아누룻다 존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능통하였음이 설해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는「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47)에 대한 일종의 부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를 37보리분법과 초기불교의 수행을 기본 주제로 하는 빠알리 원본『상윳따 니까야』의 제5권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경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적한 곳 경」1/2(S52:1∼2)는 사념처의 수행은 괴로움의 끝으로 인도한다고 적고 있으며,「수따누 경」(S52:3)과「가시덤불 숲 경」3(S52:6)과「천 겁 경」(S52:11)에서는 최상의 지혜로 인도한다고 하며,「갈애의 멸진 경」(S52:7)에서는 갈애의 멸진으로 인도하고,「중병 경」(S52:10)에서는 괴로운 느낌을 극복하고,「가시덤불 숲 경」1/2(S52: 4∼5)는 유학이거나 무학인 비구가 머무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신통변화 경」등(S52:12∼23)의 12개 경들에서는 신통변화 등의 다양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적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번뇌의 멸진 경」(S52:24)에서는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5.「선(禪) 상윳따」(S53)

쉰세 번째 주제인「선(禪) 상윳따」(Jhāna-saṁyutta, S53)에는 선과 관련된 54개의 경들이 전체 다섯 품으로 나누어져서 있다. 그런데 이 다섯 품들은「도 상윳따」(S45) 해제 §5-⑵-③과 위의「성취수단 상윳따」(S51) 해제 §3-② 등에서 설명한 ⑴「강가 강의 반복」⑵「불방일 품」⑶「힘쓰는 일 품」⑷「추구 품」⑸「폭류 품」의 다섯 가지 반복되는 품들과 같으며 여기에 포함된 54개의 경들도 같은 방법으로 설해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위의「성취수단 상윳따」(S51) 해제 §3-②의 설명을 참조할 것.


한편『상윳따 니까야』에는 두 개의「禪 상윳따」(Jhāna-saṁyutta)가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이곳에 나타나는「禪 상윳따」(S53)이고 다른 하나는 제3권에 나타나는「禪 상윳따」(S34)이다. 두 상윳따 가운데 본 상윳따(S53)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네 가지 선 즉 본삼매를 다루고 있고, 제3권의「선 상윳따」(S34)는 이러한 본삼매를 증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禪 상윳따」(S34)의 첫 번째 주해를 참조할 것.


본 상윳따뿐만 아니라 빠알리 삼장 전체에 나타나는 네 가지 禪의 기본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禪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성자들이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禪이 있다.”(본서「동쪽으로 흐름 경」(S53:1) 등)

여기에 소개한 네 가지 禪의 정형구는『위방가』(Vbh.244∼261)에 잘 설명되어 있다. 특히『청정도론』제4장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특히 초선의 정형구는『청정도론』제4장 §79 이하에서, 제2선의 정형구는 §139 이하에서, 제3선의 정형구는 §153 이하에서, 제4선의 정형구는 §183 이하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나타난다.


한편 주석서 문헌에서는 다섯 가지 禪의 구성요소(pañca jhān-aṅga)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일으킨 생각[尋, vitakka], 지속적인 고찰[伺, vicāra], 희열[喜, pīti], 행복[樂, sukha], 심일경성(心一境性,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 cittassa ekaggatā = 집중 = 定)이며, 한문으로는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이다.(본서 제5권「바라문 경」(S45:4) §6의 주해 참조) 

전통적으로 네 가지 禪은 심․사․희․락․정이라는 이러한 다섯 가지 심리현상들 혹은 마음부수법[心所法]들에다 평온[捨, upekkhā]의 심리현상을 더하여 여섯 가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위에 소개한 네 가지 禪의 정형구에서 보듯이 네 가지 선 가운데 초선은 심․사․희․락․정의 다섯 가지 심리현상들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제2선은 이 가운데 심과 사가 가라앉고 희․락․정이 두드러진 상태이고, 제3선은 다시 희가 가라앉아 낙(樂)과 정만이 있는 상태이며, 제4선은 낙도 가라앉고 대신에 사(捨)가 확립되어 사와 정(定)만이 드러나는 상태이다.


6.「들숨날숨 상윳따」(S54)

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란 무엇인가

① 개요

쉰네 번째 주제인「들숨날숨 상윳따」(Ānāpāna-saṁyutta, S54)에는 2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1장「하나의 법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씩의 경들을 담고 있다. 

본서 제5권「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47)의 해제 §7-⑴-④에서 살펴보았듯이 마음챙김의 대상은 몸․느낌․마음․법[身受心法]의 네 가지이다. 그래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으로 정형화되어서 경의 도처에 나타난다. 이 가운데 몸이라는 마음챙김의 대상은 다시 14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① 들숨날숨 ② 네 가지 자세 ③ 네 가지 분명히 알아차림 ④ 32가지 몸의 형태 ⑤ 사대(四大)를 분석함 ⑥∼⑭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들숨날숨이다.

부처님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이 들숨날숨은 마음챙김의 아주 중요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미『맛지마 니까야』에「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出入息念經, M118)이 따로 독립되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배경에서 37보리분법을 위주로 한 초기불교의 수행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에서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따로 분리해서 본 상윳따로 편성하였을 것이다.


②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의 중요성

부처님께서는 어떤 수행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을까? 만일 부처님께서 직접 행하신 수행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많은 불자들이 가지는 관심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 대해서 초기불전들은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언급하고 있는『맛지마 니까야』「긴 삿짜까 경」(Mahāsaccaka Sutta, M36)에 해당하는 주석서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ānapānasati, 出入息念)을 통해서 증득한 초선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고 판단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맛지마 니까야』「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Ānāpānasati Sutta, 出入息念經, M118)에서 부처님께서는 해제를 늦추시면서까지 여러 비구들에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독려하고 계시며, 역시『맛지마 니까야』「긴 라훌라 교계경」(Mahārahulovāda Sutta, M62)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도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가르치고 계신다. 여러 주석서들도 아난다 존자 등 중요한 직계제자들도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 주석서』(DA)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은 “모든 부처님과 벽지불과 성문들이 특별함을 증득하여 지금․여기서 행복하게 머무는 기초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불교 수행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에서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청정도론』은 특히 본 상윳따의 모든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열여섯 단계의 정형구를 토대로 해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을 다시 네 개씩 조를 짜서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③ 16단계의 정형구

본 상윳따의 모든 경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의 열여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sikkhati),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⑦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⑫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본서「낌빌라 경」(S54:10) §§7∼10에도 나타나지만 이 16단계는 다시 네 개의 무리로 분류되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의 각각에 배대된다. 이것은『맛지마 니까야』「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M118)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①∼④의 넷을 사념처의 신념처(身念處,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해당한다고 설하시고, ⑤∼⑧은 수념처(受念處,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⑨∼⑫는 심념처(心念處,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⑬∼⑯은 법념처(法念處,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해당한다고 설하고 계신다.

『청정도론』에서도 이 가운데서 첫 번째 네 개조는 초심자를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명상주제이며, 나머지 세 개의 네 개조(⑤∼⑯)는 ①∼④를 통해서 삼매를 증득한 자를 위해서 각각 느낌[受], 마음[心], 법(法)의 관찰로써 설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청정도론』은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통해서 제4선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빳사나를 하여 무애해를 겸한 아라한과를 얻기를 원하는 수행자를 위해서 설한 것이 바로 이 열여섯 단계의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법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청정도론』에서는 이 공부법을 ① 헤아림(gaṇanā) ② 연결(anu -bandhanā) ③ 닿음(phusanā) ④ 안주함(ṭhapanā) ⑤ 주시(sallakkhaṇā) ⑥ 환멸(還滅, vivaṭṭanā) ⑦ 두루 청정함(pārisuddhi) ⑧ 되돌아봄(paṭi- passanā)의 여덟 단계로 설명하는데 아주 요긴한 가르침이므로『청정도론』의 해당부분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것은 구마라즙 스님이 옮긴『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에 ‘마음챙김의 여섯 가지 경우[守意六事]’로 나타나는 수․수․지․관․환․정(數․隨․止․觀․還․淨)의 여섯 단계의 수행과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이고, 역시 구마라즙 스님이 옮긴『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에서 ‘들숨날숨을 통한 삼매의 6종문 16분[阿那般那三昧六種門十六分]’에 나타나는 수․수․지․관․전관․청정(數․隨․止․觀․轉觀․清淨)과도 비교가 되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아울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청정도론』에서는 들숨날숨을 챙기는 것을 ‘숨이 계속해서 닿는 부분에 마음챙김을 두고’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설명으로 남방 스님들이 많이 인용하는 구문이다.『청정도론』의 이런 설명은 지금 미얀마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하시 스님 계열의 수행법과 인도 등지에서 가르치고 있는 고엔카 수행법의 논리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우리가 정독해서 음미해봐야 할 부분이다.


⑵「들숨날숨 상윳따」(S54)의 개관

본 상윳따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모두 16단계로 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의 정형구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하나의 법 경」등(S54:1∼5) 다섯 개 경들과「등불 비유 경」(S54:8)과「낌빌라 경」(S54:10)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고 설한다. 그리고 그 결실로는 아라한과와 불환과 등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함부터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가 되는 일곱 가지 결실과 이익과 4선-4처-상수멸의 증득 등을 들고 있다.「잇차낭갈라 경」(S54:11)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아난다 경」1/2(S54:13∼14)와「비구 경」1/2(S54:15∼16)에서는 들숨날숨의 한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라는 네 가지 법을 가득 채우게 되고, 네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라는 일곱 가지 법을 가득 채우게 되고, 일곱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명지와 해탈이라는 두 가지 법을 가득 채우게 된다고 설한다.

또한「족쇄 경」등(S54:17∼20)의 네 개 경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많이 [공부]지어서 족쇄를 제거하고 잠재성향을 뿌리 뽑고 도정을 철저히 알게 되고 번뇌들을 멸진한다고 설하고 있다.

한편「웨살리 경」(S54:9)은 생소한 일화를 담고 있다. 세존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정(不淨)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반 달 동안 홀로 칩거하신 뒤에 대중들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보시게 된다. 그 이유가 세존께서 부정관을 칭송하셨기 때문에 비구들 몇 십 명이 칼로 자결한 것임을 아시고 대중들에게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수행을 가르치셨다고 본경은 적고 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물고,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일어나는 족족 즉시에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본서「웨살리 경」(S54:9) §8)

이런 이유 등으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수행을 많이 장려하셨다. 경과 주석서에 의하면 세존의 외동 아들인 라훌라 존자도, 세존의 사촌 동생이면서 오랫동안 시자소임을 보았고『경장』결집의 주역이었던 아난다 존자도 모두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7.「예류 상윳따」(S55)

⑴ 개요

이상으로 빠알리어 원본『상윳따 니까야』제5권에서는 37보리분을 위시한 초기불교의 수행에 관한 10개의 상윳따가 설해졌다. 이제 본서의 나머지 두 상윳따는 이러한 수행을 토대로 실현되는 경지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성자의 첫 번째 단계인 예류자에 대한 것이요, 두 번째는 불교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이다.


쉰다섯 번째 주제인「예류 상윳따」(Sotāpatti-saṁyutta, S55)에는 74개의 경들이 제1장「웰루드와라 품」, 제2장「왕의 원림 품」, 제3장「사라까니 품」, 제4장「공덕이 넘쳐흐름 품」, 제5장「게송을 포함한 공덕이 넘쳐흐름 품」, 제6장「통찰지를 지닌 자 품」, 제7장「큰 통찰지 품」의 일곱 개 품들로 나누어져 나타난다. 이 가운데 제1품부터 제5품까지에는 각각 1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제6품에는 11개의 경들이, 제7품에는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74개의 경들은 모두 예류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꼭 예류자에 해당하는 것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사라까니 경」1/2(S55:24∼25)와「벽돌집 경」1/2/3(S55:8)과「안거를 마침 경」(S55:52)과「예류과 경」등(S55:55∼58)에는 일래자․불환자․아라한에 대한 언급도 나타나고 있다.


⑵ 예류자의 정형구 두 가지

한편 본 상윳따에서 예류자는 대부분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는 정형구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류자의 구성요소로 두 가지 정형구를 들고 있다.

첫째는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과 계를 지니는 것이다. 경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부처님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그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그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바르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참되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합당하게 도를 닦으니, 곧 네 쌍의 인간들이요[四雙] 여덟 단계에 있는 사람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그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성취한 것에]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를 지닌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본서「전륜성왕 경」(S55:1) §5 이하 등)


두 번째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네 가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그것은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가 있다.”(「구성요소 경」(S55:50))

이 정형구는「사리뿟따 경」2(S55:5),「구성요소 경」(S55:50),「예류과 경」등(S55:55∼58),「통찰지를 얻음 경」등(S55:59∼61),「큰 통찰지 경」등(S55:62∼74)의 22개 경에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정형구에 나타난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는 sotāpattiyaṅga(예류자의 구성요소)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에서 인용한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과 계를 지님에 대한 정형구는 본 상윳따의「디가유 경」(S55:3 §7) 외의 여러 곳에서도 꼭 같은 술어인 sotāpattiyaṅga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첫 번째의 경우에 역자는 모두 ‘예류[과]를 얻은 자의 구성요소’로 옮겼다. 즉 두 번째 정형구는 예류도를 얻기 위한 ‘준비단계’의 요소들로 본 것이며, 첫 번째 정형구 즉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님의 넷은 ‘예류과를 이미 얻은’ 자들이 갖추고 있는 구성요소로 본 것이다. 역자가 같은 술어를 문맥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옮긴 것은 다른 곳의 경문과 주석서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디가 니까야』「합송경」(D33 §1.11 ⒀)에도 본경에 나타나는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의 넷이 sotāpattiyaṅga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주석서는 “원문 sotāpattiyaṅga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라는 뜻이다.”라고 설명을 달고 있다. 그리고 후자 즉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님의 넷은 그곳 ⒁에서 네 가지 ‘예류[과]를 얻은 자의 구성요소(sotāpannassa aṅga)’로 나타나고 있다. 즉 전자는 예류도를 얻기 위한 준비단계의 요소들이라는 뜻이며, 후자는 이미 예류과를 얻은 자들의 구성요소라는 뜻이다. 

한편 본 상윳따의「예류과 경」등(S55:55∼74)에서는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의 네 가지를 닦으면 일래과와 불환과와 아라한과와 큰 통찰지 등도 얻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⑶「예류 상윳따」(S55)의 개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상윳따의 22개의 경들에는 두 번째 정형구인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의 네 가지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74개의 경들 가운데 이들 22개 경을 제외한 나머지 52개의 경들은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앞의 첫 번째인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과 계를 지님에 대한 정형구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불행한 곳 경」1/2(S55:14∼15)는 불․법․승에 대한 믿음과 계를 지닌 자는 “모든 불행한 곳에 대한 두려움을 건넌다.”고 설하고 있다.

「바라문 경」(S55:12)에서는 바라문들이 향상이라 부르는 잘못된 도닦음 대신에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닐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신들을 방문함 경」1/2/3(S55:18∼20)에는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계를 지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하나마 경」1/2(S55:21∼22)에서는 특별한 경지로 가게 되고 열반으로 향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고다 경」(S55:23)과「사라까니 경」1/2(S55:24∼25)와「아나타삔디까 경」1/2(S55:26∼27)와「두려움과 증오 경」1/2(S55:28∼29) 등부터「넘쳐흐름 경」3(S55:43)까지에 나타나는 여러 경들도 불․법․승에 대한 믿음과 계를 지니는 공덕으로 두려움과 증오를 가라앉히고 공덕이 넘쳐흐르는 등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병 경」(S55:54)에서 세존께서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통찰지를 가진 재가 신도에게 이러한 네 가지 안식(安息)을 가져오는 법으로 안식을 줄 것을” 강조하고 계시는데, 물론 이것은 다름 아닌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님의 넷을 말한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은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님의 넷을 칭송하고 그 공덕을 나열하고 있다.

불교는 통찰지(반야)를 강조하는 종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 상윳따에서 보듯이 믿음과 계를 지니는 것이 성자가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임은 더욱 분명하다. 그러기에 초기경의 도처에서 불자가 되는 기본 덕목으로 삼귀의와 오계를 들고 있는 것이다. 본 상윳따에서도 삼귀의와 계를 지니는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듯이 다른 니까야들도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재가자들에게 하신 설법을 많이 담고 있는『앙굿따라 니까야』에는 이것을 강조하는 경들이 많이 전승되어 온다. 불자들은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계를 지녀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며 이를 토대로 해서 통찰지를 증장하게 하고 개발하여 해탈․열반의 궁극적 행복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본 상윳따의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8.「진리[諦] 상윳따」(S56)

⑴ 진리란 무엇인가

『상윳따 니까야』의 대미는 진리[諦, sacca]로 장식된다. 모든 생명들의 발자국들이 모두 코끼리 발자국에 총섭되듯이, 모든 유익한 법[善法]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총섭된다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명처럼(M28 §2) 모든 부처님 말씀은 결국 진리의 실현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경을 결집한 장로들은「진리 상윳따」(Sacca-saṁyutta, S56)를 가르침의 맨 마지막에 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諦]로 옮긴 sacca는 √as(to b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다. √as는 ‘있다, ~이다’를 뜻하는 영어 be동사와 꼭 같이 범어 일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어근이다. 이것의 현재능동분사가 sat이고 여기에다가 가능분사를 만드는 어미 ‘-ya’를 첨가하여 satya라는 형용사를 만들었는데 이것의 빠알리 형태가 sacca이다. 그래서 형용사로 쓰이면 ‘존재하는, 진실한, 사실인’ 등의 의미가 되고, 중성명사로는 ‘진실, 진리, 사실, 실제’란 의미로 쓰인다. 초기불교를 위시한 모든 불교에서는 고․집․멸․도의 네 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을 sacca(Sk. satya)라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진리(眞理)로 정착이 되고 있다.

한편, 범어 일반에서 많이 쓰이는 또 다른 be동사로 √bhū(to be, to become)가 있다. 빠알리 삼장에서 보면 be동사는 거의 대부분 hoti(√bhū의 3인칭 현재형)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as(to be)의 삼인칭 현재형인 atthi보다 훨씬 많이 나타난다. 어원으로 살펴보면 √as는 ‘이다․아니다’나 ‘있다․없다’는 존재의 개념에 가깝고 √bhū 는 ‘된다, ~라 한다’는 의미로서 진행의 개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현상에 대해서 이다․아니다라거나 있다․없다라는 존재론적 사고를 피하는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진행이나 생성, 그리고 되어감의 개념을 나타내는 √bhū를 더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수행이나 닦음을 뜻하는 bhāvanā도 이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러나 불교의 가장 근본 가르침인 사성제를 ‘되다’를 뜻하는 √bhū에서 파생된 술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다’나 ‘있다’를 뜻하는 √as에서 파생된 술어인 sacca로 표현한 것은 이러한 네 가지 진리는 바뀌는 것이 아니라 확정된 가르침이요 불교 만대의 표준이요 세상에서 확정된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겠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는『청정도론』XVi.13∼102와『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 §38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이제 사성제에 대해서 정리해보자.


⑵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로 총섭된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움직이는 모든 생명들의 발자국들은 모두 코끼리 발자국에 총섭되고 코끼리 발자국이야말로 그 크기로서 최상이라 불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유익한 법[善法]이든 그것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총섭됩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입니다.”(『맛지마 니까야』「코끼리 발자국 비유경」(M28) §2)


한편 제4선을 토대로 해서 개발되는 여섯 가지 신통의 지혜(육신통) 가운데 맨 마지막은 번뇌를 멸진하는 지혜[漏盡通]이고 그 내용은 사성제로 귀결이 된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번뇌를 멸진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惱]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惱]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惱]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디가 니까야』「사문과경」(D2) §97 등)

한편 본서「가왐빠띠 경」(S56:30)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본다.” (S56:30 §4)

이 말씀은『청정도론』XXII.93에서 사성제를 설명하는 구절로 인용되어 잘 알려져 있다. 이제 사성제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성제 즉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다음과 같다.

①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dukkha-ariya-sacca]

②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dukkha-samudaya-ariya -sacca] 여기서 ‘일어남’으로 옮긴 samudaya는 saṁ(함께) + ud(위로) + √i(가다, to go)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③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dukkha-nirodha-ariya- sacca] 소멸로 옮긴 nirodha는 ni(아래로) + √rudh(방해하다, to obstruct)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④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dukkha -nirodha-gāmini-paṭipadā-ariya-sacca] 도닦음으로 옮긴 paṭipadā는 prati(∼에 대하여) + √pad(가다, to go)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 발로 실제 길위를 걸어가는 실천적인 의미가 강하다. 중도(中道, majjhimā paṭipadā)의 도(道)도 이 술어를 옮긴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도닦음’으로 통일해서 옮기고 있다.


니까야에서 사성제는 예외 없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dukkha ariya-sacca],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 dukkha-sam- udaya ariya-sacca],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dukkha- nirodha ariya-sacca],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dukkha-nirodhagāmini paṭipadā ariyasacca)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은『무애해도』(Ps)와,『위방가』(Vbh) 등의『논장』과,『청정도론』을 포함한 삼장의 모든 주석서 문헌들에서는 dukkha-sacca[苦諦, 괴로움의 진리], samudaya-sacca[集諦, 일어남의 진리], nirodha-sacca[滅諦, 소멸의 진리], magga-sacca[道諦, 도의 진리]로 전문술어화되고 있다.

한편 같은 구문은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loka(세상), loka-sam- udaya(세상의 일어남), loka-nirodha(세상의 소멸), loka-nirodha-gāmini paṭipadā(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X와 그 집멸도의 구문’으로 부를 수 있다. 즉 X, X-samudaya, X-nirodha, X-nirodha-gāmini paṭipadā로 초기경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X 대신에 인연 상윳따에서는 연기의 12가지 구성요소들이 들어가서 나타나며, 본서 제2권「요소 상윳따」(S14)에서는 X 대신에 지․수․화․풍 사대가 들어가서 땅과 그 집․멸․도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에서는 자기존재[有身]와 그 집․멸․도로 나타나기도 하는 등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본서 제1권의 역자서문 §11-⑶에서 역자는 불교의 궁극적인 행복인 열반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가르침을 ① 사성제를 관통함을 통해서, ② 팔정도의 실현을 통해서, ③ 온․처․계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④ 12연기의 순관․역관을 통해서라는 등의 일곱 가지로 정리하여 보았다. 그런데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사성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네 번째인 도성제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사성제에 포함된다. 물론 팔정도의 처음인 바른 견해(정견)의 내용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오온․오취온은 사성제의 첫 번째인 고성제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온․처․계의 가르침은 사성제에 포함된다. 12연기의 순관(順觀, 流轉門, anuloma)은 사성제의 고성제와 집성제에 해당하고 역관(逆觀, 還滅門, paṭiloma)은 사성제의 멸성제와 도성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은 사성제에 포함된다. 

이처럼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로 귀결이 되며 그래서 불교 2600년사에 전개되어온 모든 불교는 이 네 가지를 성스러운 진리[聖諦]라고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숫따니빠따』에서 부처님은 왜 자신이 깨달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이렇게 사성제로 밝히신다.


    “나는 알아야 할 바(고성제)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도성제)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집성제)을 버렸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 깨달은 사람이다.”(Sn. {558})


이제 사성제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⑶ 고성제는 사고팔고(四苦八苦)와 삼성(三性)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 진리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불교는 무위법인 열반을 제외한 모든 것을 괴로움이라고 파악한다. 이것은 부처님의 직관이 담긴 선언이다. 초기불전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일체가 괴로움임을 선언한다. 첫째는 세상에는 네 가지 괴로움과 여덟 가지 괴로움 즉 사고팔고(四苦八苦)가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괴로움에 대한 깊은 통찰에 바탕하였기 때문이다.


① 사고팔고(四苦八苦)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대상]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초전법륜 경」(S56:11) §5)

일반적으로 이것은 사고팔고(四苦八苦)로 정의된다. 위의 경문에서 보듯이 사고는 생․노․병․사이다. 팔고는 이 사고에다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와 구부득고(求不得苦)와 오취온고(略 五陰盛苦)의 넷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팔고를 정리하면 생사문제가 된다. 생사가 있기 때문에 나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연기의 가르침의 결론인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生緣老死憂悲苦惱).”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출가는 이러한 생사문제의 해결, 즉 생사문제로 요약되는 저 괴로움의 해결을 위한 것이다. 


② 괴로움의 세 가지 성질[三性]

한편 초기불전의 몇 군데에서는 괴로움의 세 가지 성질로서 존재가 괴로움임을 설명하고 있다.

“도반 사리뿟따여, ‘괴로움, 괴로움’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괴로움입니까?”

“도반이여,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苦性, dukkhat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런 괴로움의 성질[苦苦性], 형성된 괴로움의 성질[行苦性],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의 성질[壞苦性]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세 가지 괴로움의 성질이 있습니다.”(본서 제4권「괴로움 경」(S38:14) §3 — 잠부카다까 유행승과 사리뿟따 존자의 대화)

이 셋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고성(苦苦性, dukkha-dukkhatā): 중생의 삶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괴고성(壞苦性, viparinnāma-dukkhatā): 아무리 큰 행복일지라도 끝내 변하고 말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행고성(行苦性, saṅkhāra-dukkhatā): 본질적으로는 오온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나’라거나 ‘내 것’으로 취착하기 때문에(五取蘊) 괴로움이다.


이 세 가지는『청정도론』XVI:35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은 고유성질로서도, 이름에 따라서도 괴롭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괴로움[苦苦]이라 한다. ② 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변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壞苦]이라 한다. ③ 평온한 느낌과 나머지 삼계에 속하는 형성된 것들[行, saṅkhāra]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압박되기 때문에 형성된 괴로움[行苦]이라 한다.”

즉 첫 번째는 고통스럽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리 큰 행복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행복이나 즐거움은 마침내 변해버리기 때문에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평온한 것이나 모든 형성된 것은 생멸의 현상에 지배되기 때문에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불교는 괴로움을 말하기 때문에 염세적이라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만일 불교가 전적으로 괴로움만을 말한다면 당연히 그런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이처럼 괴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괴로움이 해결된 경지요 궁극적 행복[至福, parama-sukha]으로 표현되는 저 열반을 실현하는 것을 너무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괴로움임에 사무치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해탈․열반을 실현할 수가 없다. 괴로움이라는 맨땅에 넘어진 자는 이 괴로움이라는 맨땅을 처절하게 알아야 다시 이를 딛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⑷ 집성제(集聖諦,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갈애다

그러면 괴로움은 아무 원인도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존재를 괴롭도록 만드는 것인가? 만일 괴로움만 강조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라고 표방할 수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이 괴로움의 원인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갈애(渴愛, taṇhā)로 표현되고 있다.


① 갈애(渴愛, taṇhā)

taṇhā는 동사 √tṛṣ(to be thirsty)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목마름’이다. 그래서 목마를 갈(渴)자를 넣어서 갈애(渴愛)로 옮기고 있다. 경들은 다음과 같이 갈애를 정의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再有]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본서「초전법륜 경」(S56:11) §6 등)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갈애는 다시 태어남을 유발하는(ponobhavikā) 근본원인이라고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이 갈애가 근본원인이 되어 중생들은 끝 모를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물론 갈애만이 괴로움의 원인은 아니다. 무명과 성냄이나, 질투, 인색 등의 불선법들은 모두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생사윤회의 원인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들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라는 것은 [갈애가] 환희와 탐욕과 뜻으로는 하나라는 뜻이다.” (DA.iii.799)


②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세존께서는 갈애를 욕애, 유애, 무유애의 셋으로 말씀하셨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이 셋을 설명하고 있다.

욕애(欲愛, kāma-taṇhā):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동의어이다.”(DA. iii.800)

유애(有愛, bhava-taṇhā): 색계․무색계에 대한 갈애 — “‘존재에 대한 갈애’란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생긴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이 함께하는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과 禪을 갈망하는 것의 동의어이다.”(DA.iii.800)

무유애(無有愛, vibhava-taṇhā): 비존재에 대한 갈애 —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라는 것은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이 함께하는 탐욕의 동의어이다.”(DA.iii.800)


③ 갈애에 대한 연기적 고찰

“다시 비구들이여, 이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①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② 형색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음의 대상[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③ 눈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④ 눈의 감각접촉[觸]은 … 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⑥ 눈의 인식은 … ⑦ 눈의 의도는 … ⑧ 눈의 갈애는 … ⑨ 눈의 일으킨 생각은 … ⑩ 눈의 지속적인 고찰[伺]은 …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디가 니까야』대념처경」(D22) §19)

이것을 정리하면 갈애는 6근-6경-6식-6촉-6수-6상-6사-6애-6심-6사를 통해서 생긴다는 것이다.

한편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라는 간단한 문장이 본서 제2권「명상 경」(S12:66 §7)에 나타나고 있다.


⑸ 멸성제(滅聖諦)는 소멸이요 소멸은 열반이다

여기서 ‘소멸’은 nirodha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ni(아래로) + √rudh(to obstruct)의 명사이다. 그래서 소멸, 억압, 파괴 등의 뜻이 된다. 초기불전에서 nirodha는 다음의 문맥에서 주로 나타난다. 

첫째, 여기서처럼 사성제의 멸성제(滅聖諦, dukkha-nirodha ariya-sacca)로 나타난다. 주석서 문헌들에서는 주로 ‘멸제(滅諦, 소멸의 진리, nirodha- sacca)’라는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이 술어는 니까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경에서는 항상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dukkha- nirodha ariya-sacca]’로 나타나거나 ‘괴로움의 소멸[苦滅, dukkha-niro- dha)’로만 나타난다. 이 경우의 소멸은 당연히 열반을 뜻한다.

둘째, 12연기의 구성요소들의 소멸로 나타난다.

본서 제2권「인연 상윳따」(S12)의 도처에 12지 연기는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은 asesa-virāga-nirodh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당연히 열반의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본서 제3권「짐 경」(S22:22) §7의 주해 등 참조)

셋째, 염오-이욕-소멸(nibbidā-virāga-nirodha)의 정형구로도 많이 나타난다. 이 경우의 소멸도 아라한과나 열반을 뜻한다.

넷째, 무엇보다 소멸은 초기불전에서 이미 “일체의 생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함,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 열반이다.”(본서 제1권「권청 경」(S6:1) §2)라는 문맥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존재(오온)의 소멸이 열반이다.”(본서 제2권「꼬삼비 경」(S12:68) §5)라고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도 소멸은 열반을 뜻한다.

다섯째,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vivekanissitaṁ virāganissitaṁ nirodha- nissitaṁ vossaggapariṇāmiṁ) 바른 견해 등을 닦는다. …” 등으로 본서 제5권에 정형화 되어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본서 제5권「비구 경」(S46:5)에 해당하는 복주서는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라는 구문으로 모든 도의 역할과 과를 보이신 것이다. ‘소멸을 의지하고’라는 구문으로는 열반의 실현을 말씀하신 것이다.”(SAṬ.ii.130)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소멸도 열반과 동의어이다.

이처럼 소멸은 대부분의 문맥에서 열반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한편「아난다 경」1(S36:15 §5)에는 anupubba-saṅkhārānaṁ ni- rodha(형성된 것들[行]이 차례로 소멸함)이라는 구절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초선에서부터 제4선까지 그리고 공무변처에서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 그리고 상수멸의 아홉 가지 단계의 삼매를 차례대로 닦아서 거친 심리현상들을 차례차례 소멸해 가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디가 니까야』「합송경」(D33 §3.2 (6))과『앙굿따라 니까야』「차제멸 경」(A9:31)에서 아홉 가지 차례로 소멸함[九次第滅, nava anupubba-nirodh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열반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에 대한 경과 주석서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멸성제는 열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초전법륜 경」(S56:11) §7)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이라는 등은 모두 열반의 동의어들이다. 열반을 얻으면 갈애는 남김없이 빛바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이라고 설하셨다. 

열반은 하나이지만 그 이름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의 이름과 반대되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이다. 즉 남김없이 빛바램, 남김없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갈애의 소멸, 취착 없음, 생기지 않음, 표상 없음, 원함 없음, 업의 축적이 없음, 재생연결이 없음, 다시 태어나지 않음, 태어날 곳이 없음, 태어나지 않음, 늙지 않음, 병들지 않음, 죽지 않음, 슬픔 없음, 비탄 없음, 절망 없음, 오염되지 않음이다.”(DA.iii.801) 

주석서는 이처럼 26가지 열반의 동의어를 언급하고 있다. 한편 본서 제5권「무위 상윳따」(S43)에는 32가지 무위 즉 열반의 동의어를 나열하고 있다.(본서 제5권 해제 §3을 참조할 것.) 그리고 14세기에 스리랑카에서 편집된 빠알리 사전인『아비다나 빠디삐까』(Abhidhānappadīpikā)는 모두 43가지 열반의 동의어를 들고 있다.


② 열반은 탐․진․치의 소멸이다

“도반 사리뿟따여, ‘열반,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 이를 일러 열반이라 합니다.”(본서 제4권「열반 경」(S38:1) §3)

주석서적인 논의를 종합하면 열반은 출세간도를 체험하는 순간에 체득되는 조건 지워지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조건 지워지지 않은 상태를 체득하는 순간에 번뇌가 소멸하기 때문에 열반은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라 불리는 것이지, 단순히 탐․진․치가 없는 상태로 쇠약해지고 무기력해진 것이 열반은 아니다.(SA.ii.88 참조)


③ 갈애의 소멸에 대한 연기적 고찰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①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② 형색은 … ③ 눈의 알음알이는 … ④ 눈의 감각접촉은 … 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⑥ 눈의 인식은 … ⑦ 눈의 의도는 … ⑧ 눈의 갈애는 … ⑨ 눈의 일으킨 생각은 … ⑩ 눈의 지속적인 고찰은 …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디가 니까야』「대념처경」(D22) §20)

이것을 정리하면 갈애는 6근-6경-6식-6촉-6수-6상-6사-6애-6심-6사를 통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역시 6근-6경-6식-6촉-6수-6상-6사-6애-6심-6사를 통해서 소멸된다는 것이다. 즉 갈애가 어떤 구조를 통해서 발생하는가를 철저하게 꿰뚫어 봄으로써 갈애가 소멸되어 열반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④ 열반은 버려서 실현된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하나로 말해보라면 그것은 열반이다. 둘로 표현해보라면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특히 출가자에게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신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열반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버림이다. 그래서 초기경의 도처에서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 갈애의 소진, 탐욕의 빛바램[離慾], 소멸, 열반이다.”(「아빠나 경」(S48:50) §6 등)로 표현되고 있고,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열반 경」(S38:1) §3 등)이라고도 설해지고 있으며,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사색 경」(S56:8) §5 등)라는 문맥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이처럼 열반은 한마디로 버려서 실현되는 것이다.


⑤ 열반은 삶에 대한 의미부여가 끝나야 드러난다

이처럼 열반은 온갖 종류의 삶에 대한 의미부여가 끝나야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삶에 대한 무한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삶이 아닌 것은 허무요 끝장이라 생각하며 바들바들 떨어온 게 중생의 역사 아니던가? 물질문명의 극치를 구가하는 현대의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삶에 대한 강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삶에 대한 의미부여가 끝나야 열반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인가!

이런 인간들의 구미를 맞추려다보니 역사적으로 불교 안에서부터 가장 난도질당하고 곡해당해 온 것이 부처님 제일의 메시지인 이 열반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서 열반은 무주처열반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생사뿐만 아니라 열반마저도 허망하다고 이해되었고, 마침내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으며, 탐․진․치 그대로가 열반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어 왔다. 그런데 이런 말들의 이면에는 생사로 대표되는 삶에 대한 무한한 의미부여가 들어 있고, 이 삶 속에서 오래오래 단맛을 쪽쪽 빨아먹으리라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 있다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혹자는 반박할 것이다. 생사를 떠난 열반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분법적인 사고라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는 이미 스스로가 이 삶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로는 절대로 열반을 알 수도 볼 수도 실현할 수도 없다고.


⑥ 스승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부처님 제자다. 제자가 자기 스승의 말씀에 대고 자신의 부질없는 생각으로 마구 황칠을 해대면 곤란하지 않은가? 부처님께서 세속에 넌더리치고 열반을 실현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른 제자 아닌가? 세속문제는 세속의 정치인, 경제인, 지식인, 문화인, 의료인 등 세속전문가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출가자는 열반을 바르게 실현하고 드러내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이세상의 진정한 복밭[福田, puñña-kkhetta]이 되지 않겠는가?


⑹ 도성제

도성제는 이미 본서 제5권「도 상윳따」(S45)의 해제(제5권 해제 §5-⑵ 이하를 참조할 것)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팔정도의 정의만 다시 인용하겠다.


도성제는 팔정도다

“도반이여, 그러면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고 어떤 것이 도닦음입니까?”

“도반이여,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도이고 이것이 도닦음입니다.”(본서 제4권「열반 경」(S38:1) §4)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초전법륜 경」(S56:11) §8)


⑺ 사성제 종합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pariññeyya).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pahātabba).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sacchikātabba).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bhāvetabba).”(「철저히 알아야함 경」(S56:29) §5)


“바르게 그 스스로 모든 법들을 깨달으셨기 때문에 바르게 깨달으신 분(Sammā-sambuddha, 正等覺者)이라 한다. 그분은 모든 법을 바르게 그 스스로 깨달으셨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법들(즉, 사성제)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한다고 깨달으셨고, 철저히 알아야 할 법들(즉, 고성제)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깨달으셨고, 버려야 할 법들(즉, 집성제)을 버려야 한다고 깨달으셨고, 실현해야 할 법들(즉, 멸성제=열반)을 실현해야 한다고 깨달으셨고, 닦아야 할 법들(즉, 도성제)을 닦아야 한다고 깨달으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나는 알아야 할 바(고성제)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도성제)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집성제)을 버렸다.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 깨달은 사람이다.’”(Sn. {558}

―『청정도론』VII.26.


이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성제 —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함 — abhiññeyya

고성제 — 철저하게 알아야 함 — pariññeyya

집성제 — 버려야 함 — pahātabba

멸성제 — 실현해야 함 — sacchikātabba

도성제 — 닦아야 함 — bhāvetabba

⑻「진리[聖] 상윳따」(S56)의 개관

이제 본 상윳따를 전체적으로 개관해보자.

제56주제「진리 상윳따」(Sacca-saṁyutta)에는 131개의 경들이 모두 열한 개의 품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상윳따 니까야』는 사성제에 관한 경들을 마지막 상윳따인 S56에서 언급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실현’을『상윳따 니까야』의 마지막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열한 개의 품은, 제1장「삼매 품」, 제2장「전법륜 품」, 제3장「꼬띠가마 품」, 제4장「심사빠 숲 품」, 제5장「낭떠러지 품」, 제6장「관통 품」, 제7장「첫 번째 날곡식의 반복」, 제8장「두 번째 날곡식의 반복」, 제9장「세 번째 날곡식의 반복」, 제10장「네 번째 날곡식의 반복」, 제11장「다섯 가지 태어날 곳[五度]의 반복」이다.

이 가운데 제1장「삼매 품」부터 제6장「관통 품」까지의 여섯 개 품에는 각 품마다 10개씩의 경들이 포함되어서 모두 60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나머지 71개의 경들은 꼭 같은 가르침을 반복해서 담고 있는 경들이라서 반복(Peyyāla)이라 불리는 품에 담아서 전승하고 있다. 이들은 제7장「첫 번째 날곡식의 반복」부터 제11장「다섯 가지 태어날 곳의 반복」까지의 5개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제7장「첫 번째 날곡식의 반복」과, 제8장「두 번째 날곡식의 반복」과, 제9장「세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는 각각 10개씩의 경들이, 제10장「네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는 11개의 경들이, 마지막인 제11장「다섯 가지 태어날 곳의 반복」에는 3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제1장부터 제6장까지

「진리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제6장까지에 포함된 60개의 경들은 세존께서 사성제를 통찰할 것을 고구정녕하게 설하시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모두 중요하지만 그 가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을 들라면 역시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을 담고 있는「초전법륜경」(S56:11)을 들어야 한다.

「초전법륜경」은 오비구에게 중도(中道, majjhimā paṭipadā)의 천명을 시작으로 설법을 하셔서 중도인 팔정도를 설하시고, 연이어서 사성제를 설하시는 경이다. 중도로 팔정도를 천명하시는 중요한 경이지만 경의 전체 내용은 사성제를 정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본경을「도 상윳따」(S45)에 포함시키지 않고 본 상윳따에 포함시킨 것이다.

「초전법륜 경」(S56:11)과「무더기 경」(S56:13)과「안의 감각장소 경」(S56:14)은 고성제․집성제․멸성제․도성제를 정의하고 있는 중요한 경이다.

그리고「철저히 알아야함 경」(S56:29 §5)에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타나고 있다.

「가왐빠띠 경」(S56:30)에는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본다.”라는 잘 알려진 구절이 나타난다.

「무명 경」(S56:17)과「명지 경」(S56:18)에서는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요 사성제를 아는 것이 명지라고 정의하고 있다.「진실함 경」(S56:20)과「진실함 경」(S56:27)에서는 사성제야말로 진실함이요「뜻의 함축 경」(S56:19)에서는 사성제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설한다.

「정등각자 경」등(S56:23∼25)에서는 사성제를 깨달은 자가 정등각자요 아라한이요 번뇌 다한 자라고 설한다.

「삼매 경」(S56:1)과「홀로 앉음 경」(S56:2)은 삼매나 홀로 앉음을 닦아서 사성제를 꿰뚫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좋은 가문의 아들(선남자) 경」1/2(S56:3∼4)는 출가한 선남자들은 이 사성제를 관통하기 위해서 출가하였으며 이 사성제를 관통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사문․바라문 경」1/2(S56:5∼6)도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문․바라문들도 이 사성제를 바르게 깨달았고 드러낸다고 설한다.「생각[尋] 경」등(S56:7∼10)도 삿되고 해로운 것을 생각하거나 사색하거나 논쟁하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사성제를 두고 그렇게 하라고 설한다. 

한편「심사빠 숲 경」(S56:31)부터「논쟁을 원함 경」(S56:40)까지의 제4장에 포함된 열 개의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각각 다른 비유를 드시면서 사성제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러한 종류의 비유나 예는「세상에 대한 사색 경」(S56:41)부터「수미산 경」2(S56:50)까지의 제5장에 포함된 10개의 경과,「손톱 경」(S56:51)부터「산의 비유 경」2(S56:60)까지의 제6장에 나타나는 열 개의 경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해서 30개 정도의 경에서 세존께서는 다양한 비유와 예를 드시면서 사성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본 상윳따 제6장「관통 품」에 포함된 열 개의 경들은 본서 제2권의「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S13)의 열 개의 경들(S13:1∼10)과 같은 방법으로 설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지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로 나타나지만 거기서는 “대지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로 나타나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사성제에 적용시키는 결론부분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튼 사성제는 관통[現觀, abhisamaya]해야 할 대상으로 경과 주석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관통 상윳따」(S13)「손톱 끝 경」(S13:1)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② 제7장부터 제11장까지

그리고 반복을 담고 있는 본 상윳따의 제7장부터 제11장까지를 구성하는 71개의 경들도 모두 이러한 예를 들면서 전개되고 있다. 조금 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제7장「첫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은 모두 세존께서 조그만 먼지를 손톱 끝에 올린 뒤에 그것을 대지의 흙과 비교하신 뒤에 “그와 같이 X의 중생들은 적고 X아닌 중생들은 많다.”고 결론지으신 뒤에, 그 이유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비슷한 방법으로 제8장「두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 나타나는 10개의 경들과 제9장「세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 나타나는 10개의 경들과 제10장「네 번째 날곡식의 반복」에 나타나는 11개의 경들과 제11장「다섯 가지 태어날 곳의 반복」에 포함된 30개의 경들도 모두 이러한 다양한 예를 들면서 사성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심사빠 숲 경」(S56:31)을 인용하면서『상윳따 니까야』의 마지막 상윳따인「진리 상윳따」(S56)의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것들 가운데 내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다. 내가 가르친 것은 아주 적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왜 가르치지 않았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은 이익을 주지 못하고, 이것은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비구들이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라고 가르쳤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가르쳤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이것은 청정범행의 시작이고,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르쳤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본 상윳따에서 고구정녕히 반복하고 계시는 다음의 정형구로 경을 마무리 지으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9. 불교는 행복을 추구한다

이제『상윳따 니까야』번역도 마지막 권에 이르렀다. 역자는 마지막 권의 해제를 마무리하면서 불교의 목적에 대해서 음미해보고자 한다.

본서「예류 상윳따」(S55)에서 보았듯이 불교는 성자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본서「진리 상윳따」(S56)에서 보았듯이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 저 열반의 실현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궁극적 행복인 열반은 팔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을 닦아서 존재를 온․처․계․근․연으로 해체해서 이들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성취됨으로써 실현된다. 이처럼 불교는 통찰지(반야)를 강조하는 종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서「예류 상윳따」(S55)에서 보았듯이 믿음과 계를 지니는 것이 성자가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임은 더욱 분명하다. 불자들은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계를 지녀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며, 이를 토대로 통찰지를 증장하게 하고 개발하여 해탈․열반의 궁극적 행복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본서 전체 6권의 해제를 마무리하면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행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① 불교의 목적: 행복의 실현(이고득락, 離苦得樂)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경제행위, 정치행위, 문화행위, 철학행위, 의술행위, 종교행위 등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불교도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예부터 스님들은 불교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표현하였다. 초기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양한 행복을 말씀하셨다. 그것을 간추려보면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구경의 행복이 된다.

세존께서는 본서 제1권「알라와까 경」(S10:12)에서 이렇게 읊으신다.


    “믿음이 여기서 인간의 으뜸가는 재화이며 

    법을 잘 닦아야 행복을 가져오느니라. 

    진리가 참으로 가장 뛰어난 맛이며 

    통찰지를 [구족하여] 살아야 으뜸가는 삶이라 부르느니라.”{847}


주석서와 복주서는 여기서 ‘법을 잘 닦는다.’는 것은 보시와 지계와 수행(dāna-sīla-bhāvanā-dhamma)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A.i.329) 그리고 계속해서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은 이 법을 닦으면 인간의 행복(manussa-sukha = 금생의 행복)과 천상의 행복(dibba-sukha =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으로는(pariyosāne) 열반의 행복(nibbāna-sukha =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온다는 뜻이다.”(SA.i.329)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가운데서 보시(dāna)와 지계(sīla)는 인간의 행복과 천상의 행복을 얻는 수단이며, 수행(bhāvanā) 즉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고 팔정도로 귀결되는 도닦음(paṭipadā)은 궁극적인 행복을 얻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셋은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에도 모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전에서 행복으로 옮겨지는 단어는 즐거움을 뜻하는 sukha와 길상, 행복, 행운 등으로 옮기고 있는 망갈라(maṅgala)라는 술어이다. 이 망갈라라는 단어는 행복을 뜻하는 의미로 초기경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베다 문헌이나 대승불교 문헌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행복을 강조하고 있는 경으로는『숫따니빠따』「마하망갈라 경」(Mahā -maṅgala-sutta, 大吉祥經, Sn2:4/46∼47)을 들 수 있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12개의 게송을 통해서 아주 다양한 행복을 말씀하시는데, 특히 금생의 행복을 여러 가지로 나열하신 뒤에


    “엄격한 삶을 살고 청정범행을 닦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고

    열반을 실현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로다.”{267}


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열반의 실현이야말로 궁극적인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경에서 인간의 행복, 천상의 행복, 열반의 행복, 혹은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궁극적 행복은 강조되고 있다. 이처럼 불교는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을 얻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러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세 가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을까?


② 금생의 행복

초기불전은 금생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특히 학문과 기술(sippa, vijjā, sikkha)을 익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기 소질에 맞는 기술을 익혀서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를 하고 급여를 받거나 이윤을 창출하여 금생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중요한 행복이다.(D2 §14 참조)

그러나 기술만으로 금생의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 사람이 전문직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나쁜 인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사회와 자신을 망가지게 한다. 바른 인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각각 지계와 보시로 강조하셨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익히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므로 해서 금생의 행복을 얻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강조하셨다.

그래서『숫따니빠따』「마하망갈라 경」(Sn2:4)에서도 많이 배움(bahu -sacca), 기술(sippa), 규율[律, vinaya], 잘 공부지음(susikkhita), 보시(dā- na), 공덕을 쌓음(kata-puññatā) 등을 금생의 행복의 조건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보시, 지계, 학문, 기술이 된다.


③ 내생의 행복

인간이 짓는 종교행위는 기본적으로 내생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금생에 종교행위를 함으로 해서 사후에 인간이나 천상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거나 천당에 가게 된다고 각 종교마다 이론은 다르지만 이구동성으로 사후세계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짓는 의도적 행위(업)가 원인이 되어, 해로운 업(불선업)을 많이 지은 자는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에 태어나게 되고 유익한 업(선업)을 많이 지은 자는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 가르친다.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방법으로 보시와 지계를 말씀하셨다. 한역『아함경』에서는 이를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고 옮겼다. 금생에 이웃에 봉사하고 승가에 보시하며,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살면 내생에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는 말씀이다. 특히『디가 니까야』「삼십이상경」(D30)에서는 세존께서 32상(相)의 각각을 갖춘 것은 아주 이전 생에서부터 보시를 하고 계를 호지하고 십선업을 짓고 포살일을 준수하는 등을 통해서 천상에 태어나 큰 행복을 누리 신 뒤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러한 대인상(大人相)을 얻으셨다고 강조하고 있다.(D30 §1.4 이하 참조) 

물론 불․법․승․계에 대한 믿음도 강조되고 있는데, 불․법․승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계를 지님의 넷은 예류과를 얻은 자들이 갖추고 있는 구성요소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앙굿따라 니까야』의 많은 경들에서도 천상에 태어나는 방법으로 이러한 보시와 계의 구족과 믿음이 강조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면「공덕이 넘쳐흐름 경」1(A4:51)과「견해 경」(A4:212) 이하의 여러 경들을 들 수 있다. 특히『앙굿따라 니까야』「합리적인 행위 경」(A4:61)에서 세존께서는 급고독 장자에게 “믿음을 구족하고 계를 구족하고 보시에 대해 관대함을 구족하고 통찰지를 구족하면”, “금생에 법답게 재물을 얻고,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을 얻고,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진 뒤,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그러므로 특히 재가자들은 이처럼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보시와 지계를 닦아서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할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④ 궁극적 행복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 번째 행복은 궁극적인 행복(parama-sukha, 至福)이며 이것은 열반이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깨달음, 해탈, 열반, 성불은 세상의 어떤 가치체계나 신념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교만이 제시하는 고귀한 가르침이다. 스님들은 이러한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서 출가하여 수행을 하며, 재가 신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가치체계와 신념체계로 받아들이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아무튼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은 주로 재가자들에게 가르치셨으며 궁극적 행복은 출가자들에게 주로 가르치셨다. 물론 역량이 되는 재가자들에게도 궁극적 행복을 도처에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 제1권「알라와까 경」(S10:12)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재가자는 바른 직업을 가지고 삼귀의를 하고 보시와 공양을 하고 계를 구족하고 포살을 실천하는 재가의 도닦음을 실천한다. 출가자는 이를 넘어서서 후회하지 않음을 행하는 계행을 갖추고[戒] 마음을 청정하게 함 등으로 구분되는 출가자의 도닦음을 닦아서[定] 통찰지를 갖추어서[慧] 삶을 영위한다.” (SA.i.330)고 적고 있다. 


궁극적인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존재(施設)를 해체해서 법(dhamma)으로 환원해서 보아야 하는데, 초기불전에서 부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성제의 통찰, 팔정도의 완성, 온․처․계의 무상․고․무아에 대한 철견(徹見), 12연기의 역관(逆觀) 등으로 말씀하셨다. 초기불전에서 보자면 이러한 세 가지 행복을 바르게 추구하는 방법은 37보리분법이며 이것은 팔정도로 귀결이 된다. 

이렇게 하여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불자이다. 


이러한 세 가지 행복 가운데서 특히 궁극적 행복을 실현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본『상윳따 니까야』이다. 물론『상윳따 니까야』에도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니까야들과 비교해볼 때 현저하게 그 숫자가 줄어든다. 예를 들면『앙굿따라 니까야』의 도처에는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에 대해서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나『상윳따 니까야』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56개의 주제들 가운데 특정 존재들에게 설하신 몇몇 상윳따를 제외한, 법수를 중심으로 한 35개의 상윳따 등 대부분의 상윳따에서는 궁극적 행복과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강조해서 설하고 계신다.

예를 들면 사성제는 56번째 상윳따에, 팔정도는 45번째에, 오온은 22번째에, 육처는 35번째에, 18계는 14번째와 35번째에, 연기는 12번째에, 37보리분법은 45부터 51번째 상윳따에 나타나며『상윳따 니까야』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그래서 S12부터 S21까지의 10개의 주제를 담은 두 번째 책은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S22부터 S34까지의 13개의 주제를 담은 세 번째 책은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S35부터 S44까지의 10개의 주제를 담은 네 번째 책은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37보리분과 사성제를 담은 다섯 번째 책은 큰 가르침으로 불리고 있다.


10. 맺는 말

우리는『상윳따 니까야』전체 여섯 권을 통해서 이러한 세 가지 행복의 실현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며 특히 궁극적 행복인 해탈․열반의 실현에 대해서 심도 깊게 살펴보았다.


이러한 행복을 실현하는 토대로 본서「예류 상윳따」(S55)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계를 지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불자가 되는 기본 덕목으로 삼귀의와 오계를 들고 있기도 하다.「예류 상윳따」에서도 삼귀의와 계를 지니는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듯이 다른 니까야들도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재가자들에게 하신 설법을 많이 담고 있는『앙굿따라 니까야』에는 이것을 강조하는 경들이 많이 전승되어 온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세존의 사촌동생이었던 마하나마가 본서「고다 경」(S55:23 §13)에서 부처님께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다음 구절이 그 본보기가 된다.

“세존이시여, 여기 법에 대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세존께서 한 쪽이 되고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와 청신사와 청신녀와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신의 세상이나 혹은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인간] 세상이 다른 쪽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저는 당연히 세존께서 택하신 쪽에 대해서 청정한 믿음을 가집니다. 세존께서는 제가 이렇다고 섭수하여 주십시오.” 

마하나마의 이런 말은 법에 관한한 부처님의 제자들과 신들을 포함한 천하의 모든 존재가 다 옳다고 인정하는 어떤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세존께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면 나도 세존의 말씀을 따라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세존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표하는 말이다. 불제자라면 이 정도로 부처님께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일 것이다.

법에 대한 믿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온․처․계․근․제․연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를 통찰하게 되고 그래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실현하게 되며 그 방법으로 팔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을 설하신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근본으로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존재를 법들으로 해체해서 보아서 제법의 자상-공상을 확인하여 해탈할 것을 말씀하신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다.

승에 대한 믿음은 승가는 궁극적 행복인 소멸, 무위, 열반를 실현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행복이나 가치를 버린 집단이기에 일체 존재들에게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 puñña-kkhetta]이시다.”라고 확신하고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계를 지니는 것은 “성자들이 좋아하며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성취한 것에]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오계 등을 받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불자들은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계를 지녀 금생에도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며, 이를 토대로 해서 통찰지를 증장하게 하고 개발하여 해탈․열반의 궁극적 행복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나는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부처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 다양하고도 많은 행복을 누리시기를 염원하고 본서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상윳따 니까야』의 마지막 권인 제6권의 해제를 마무리 짓는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