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목차>
제35주제 육처 상윳따(S35)
Ⅰ. 처음50개 경들의 묶음
| 제1장 무상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안의 무상경 | D35:1 | 88 |
| 안의 괴로움 경 | S35:2 | 91 |
| 안의 무아 경 | S35:3 | 91 |
| 밖의 무상 경 | S35:4 | 92 |
| 밖의 괴로움 경 | S35:5 | 93 |
| 밖의 무아 경 | S35:6 | 93 |
| 안의 무상 경 | S35:7 | 95 |
| 안의 괴로움 경 | S35:8 | 95 |
| 안의 무아 경 | S35:9 | 96 |
| 밖의 무상 경 | S35:10 | 96 |
| 밖의 괴로움 경 | S35:11 | 97 |
| 밖의 무아 경 | S35:12 | 98 |
| 제2장 쌍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깨닫기 전 경1 | S35:13 | 99 |
| 깨닫기 전 경2 | S35:14 | 101 |
| 달콤한 경1 | S35:15 | 102 |
| 달콤한 경2 | S35:16 | 103 |
| 이것이 없다면 경1 | S35:17 | 105 |
| 이것이 없다면 경2 | S35:18 | 106 |
| 기뻐함 경1 | S35:19 | 108 |
| 기뻐함 경2 | S35:20 | 108 |
| 일어남 경1 | S35:21 | 109 |
| 일어남 경2 | S35:22 | 110 |
| 제3장 일체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일체 경 | S35:23 | 111 |
| 버림 경1 | S35:24 | 112 |
| 버림 경2 | S35:25 | 114 |
| 철저하게 앎 경1 | S35:26 | 115 |
| 철저하게 앎 경2 | S35:27 | 118 |
| 불타오름 경 | S35:28 | 120 |
| 짓눌림 경 | S35:29 | 123 |
| 뿌리 뽑는데 어울림 경 | S35:30 | 125 |
|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됨 경1 | S35:31 | 128 |
|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됨 경2 | S35:32 | 130 |
| 제4장 태어나기 마련인 법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태어나기 마련인 법 경 | S35:33 | 134 |
| 늙기 마련인 법 경 등 | S35:34~42 | 135 |
| 제5장 무상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무상 경 등 | S35:43~52 | 137 |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 제6장 무명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무명 경 | S35:53 | 138 |
| 족쇄 경1 | S35:54 | 139 |
| 족쇄 경2 | S35:55 | 140 |
| 번뇌 경1/2 | S35:56~57 | 141 |
| 잠재성향 경1/2 | S35:58~59 | 142 |
| 철저하게 앎 경 | S35:60 | 142 |
| 종식 경1 | S35:61 | 144 |
| 종식 경2 | S35:62 | 145 |
| 제7장 미가잘라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미가잘라 경1 | S35:63 | 148 |
| 미가잘라 경2 | S35:64 | 150 |
| 사밋디 경1 | S35:65 | 152 |
| 사밋디 경2 | S35:66 | 153 |
| 사밋디 경3 | S35:67 | 154 |
| 사밋디 경4 | S35:68 | 154 |
| 우빠세나 경 | S35:69 | 154 |
| 우빠와나 경 | S35:70 | 157 |
|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1 | S35:71 | 159 |
|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2 | S35:72 | 160 |
|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3 | S35:73 | 162 |
| 제8장 환자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환자 경1 | S35:74 | 164 |
| 환자 경2 | S35:75 | 167 |
| 라다 경1 | S35:76 | 171 |
| 라다 경2 | S35:77 | 172 |
| 라다 경3 | S35:78 | 173 |
| 무명을 제거함 경1 | S35:79 | 173 |
| 무명을 제거함 경2 | S35:80 | 175 |
| 많은 비구 경 | S35:81 | 176 |
| 세상 경 | S35:82 | 178 |
| 팍구나 경 | S35:83 | 179 |
| 제9장 찬나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부서지기 마련임 경 | S35:84 | 182 |
| 공한 세상 경 | S35:85 | 183 |
| 간략한 법 경 | S35:86 | 184 |
| 찬나 경 | S35:87 | 187 |
| 뿐냐 경 | S35:88 | 195 |
| 바히야 경 | S35:89 | 200 |
| 동요 경1 | S35:90 | 204 |
| 동요 경2 | S35:91 | 205 |
| 쌍(雙) 경1 | S35:92 | 207 |
| 쌍(雙) 경2 | S35:93 | 208 |
| 제10장 여섯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길들이지 않고 보호하지 않음 경 | S35:94 | 211 |
| 말룽꺄뿟따 경 | S35:95 | 214 |
| 쇠퇴 경 | S35:96 | 224 |
| 방일하여 머묾 경 | S35:97 | 226 |
| 단속 경 | S35:98 | 228 |
| 삼매 경 | S35:99 | 229 |
| 홀로 앉음 경 | S35:100 | 230 |
| 그대들 것이 아님 경1 | S35:101 | 231 |
| 그대들 것이 아님 경2 | S35:102 | 232 |
| 웃다까 경 | S35:103 | 233 |
Ⅲ.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 제11장 유가안은을 설하는 자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유가안은을 설하는 자 경 | S35:104 | 237 |
| 취착 경 | S35:105 | 239 |
| 괴로움 경 | S35:106 | 241 |
| 세상 경 | S35:107 | 242 |
| 뛰어남 경 | S35:108 | 244 |
| 족쇄 경 | S35:109 | 246 |
| 취착 경 | S35:110 | 247 |
| 철저하게 앎 경1 | S35:111 | 247 |
| 철저하게 앎 경2 | S35:112 | 248 |
| 유심히 들음 경 | S35:113 | 248 |
제12장 세상과 감각적 욕망의 가닥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마라의 덧 경1 | S35:114 | 251 |
| 마라의 덧 경2 | S35:115 | 252 |
| 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 | S35:116 | 254 |
| 감각적 욕망의 가닥 경 | S35:117 | 260 |
| 삭까의 질문 경 | S35:118 | 264 |
| 빤짜시카 경 | S35:119 | 266 |
| 사리뿟따 경 | S35:120 | 267 |
| 라훌라 경 | S35:121 | 270 |
| 족쇄 경 | S35:122 | 275 |
| 취착 경 | S35:123 | 276 |
| 제13장 장자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웨살리 경 | S35:124 | 277 |
| 왓지 경 | S35:125 | 279 |
| 날란다 경 | S35:126 | 280 |
| 바라드와자 경 | S35:127 | 281 |
| 소나 경 | S35:128 | 286 |
| 고시따 경 | S35:129 | 287 |
| 할릿디까니 경 | S35:130 | 289 |
| 나꿀라삐따 경 | S35:131 | 291 |
| 로힛자 경 | S35:132 | 292 |
| 웨라핫짜니 경 | S35:133 | 299 |
| 제14장 데와다하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데와다하 경 | S35:134 | 304 |
| 기회 경 | S35:135 | 306 |
| 형색을 즐거워함 경1 | S35:136 | 308 |
| 형색을 즐거워함 경2 | S35:137 | 311 |
| 그대들 것이 아님 경1 | S35:138 | 311 |
| 그대들 것이 아님 경2 | S35:139 | 312 |
| 안의 무상의 원인 경1 | S35:140 | 312 |
| 안의 무상의 원인 경2 | S35:141 | 313 |
| 안의 무상의 원인 경3 | S35:142 | 313 |
| 밖의 무상의 원인 경1 | S35:143 | 314 |
| 밖의 무상의 원인 경2/3 | S35:144~145 | 314 |
제15장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업 경 | S35:146 | 315 |
| 열반에 도움이 됨 경1 | S35:147 | 316 |
| 열반에 도움이 됨 경2~3 | S35:148~149 | 317 |
| 열반에 도움이 됨 경4 | S35:150 | 317 |
| 제자 경 | S35:151 | 320 |
| 무슨 목적 경 | S35:152 | 322 |
| 방법이 있는가 경 | S35:153 | 323 |
| 감각기능을 구족함 경 | S35:154 | 326 |
| 설법자 경 | S35:155 | 327 |
Ⅳ. 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 제16장 즐김의 멸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즐김의 멸진 경1 | S35:156 | 329 |
| 즐김의 멸진 경2 | S35:157 | 330 |
| 즐김의 멸진 경3 | S35:158 | 330 |
| 즐김의 멸진 경4 | S35:159 | 331 |
| 지와까의 망고 숲 경1 | S35:160 | 331 |
| 지와까의 망고 숲 경2 | S35:161 | 333 |
| 꼿티따 경1 | S35:162 | 334 |
| 꼿티따 경2 | S35:163~164 | 335 |
| 삿된 견해를 제거함 경 | S35:165 | 335 |
| 유신견을 제거함 경 | S35:166 | 337 |
|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제거함 경 | S35:167 | 337 |
| 제17장 60가지의 반복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안의 무상에 대한 욕구 경 | S35:168 | 338 |
| 안의 무상에 대한 탐욕 경 | S35:169 | 338 |
| 안의 무상에 대한 욕탐 경 | S35:170 | 339 |
| 안의 괴로움에 대한 열망 경 등 | S35:171~173 | 339 |
| 안의 무아에 대한 열망 경 등 | S35:174~176 | 339 |
| 밖의 무상에 대한 열망 경 등 | S35:177~179 | 339 |
| 밖의 괴로움에 대한 열망 경 등 | S35:180~182 | 340 |
| 밖의 무아에 대한 열망 경 등 | S35:183~185 | 340 |
| 과거/현재/미래의 안의 무상 경 등 | S35:186~188 | 340 |
| 과거/현재/미래의 안의 괴로움 경 등 | S35:189~191 | 341 |
| 과거/현재/미래의 안의 무아 경 등 | S35:192~194 | 341 |
| 과거/현재/미래의 밖의 무상 경 등 | S35:195~197 | 342 |
| 과거/현재/미래의 밖의 괴로움 경 등 | S35:198~200 | 342 |
| 과거/현재/미래의 밖의 무아 경 등 | S35:201~203 | 343 |
| 과/현/미 안의 무상 경 등 | S35:204~206 | 343 |
| 과/현/미 안의 괴로움 경 등 | S35:207~209 | 344 |
| 과/현/미 안의 무아 경 등 | S35:210~212 | 344 |
| 과/현/미 밖의 무상 경 등 | S35:213~215 | 345 |
| 과/현/미 밖의 괴로움 경 등 | S35:216~218 | 346 |
| 과/현/미 밖의 무아 경 등 | S35:219~221 | 347 |
| 안의 감각장소들의 무상 경 등 | S35:222~224 | 347 |
| 밖의 감각장소들의 무상 경 등 | S35:225~227 | 348 |
| 제18장 바다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바다 경1 | S35:228 | 349 |
| 바다 경2 | S35:229 | 351 |
| 어부 비유 경 | S35:230 | 352 |
| 유액을 가진 나무 비유 경 | S35:231 | 354 |
| 꼿티따 경 | S35:232 | 358 |
| 까마부 경 | S35:233 | 361 |
| 우다이 경 | S35:234 | 362 |
| 불타오름에 대한 법문 경 | S35:235 | 365 |
| 손발의 비유 경1 | S35:236 | 370 |
| 손발의 비유 경2 | S35:237 | 371 |
| 제19장 독사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독사 경 | S35:238 | 372 |
| 마차 비유 경 | S35:239 | 378 |
| 거북이 비유 경 | S35:240 | 381 |
| 나무 더미 비유 경1 | S35:241 | 383 |
| 나무 더미 비유 경2 | S35:242 | 387 |
| 오염원들이 흐름에 대한 법문 경 | S35:243 | 388 |
|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 경 | S35:244 | 397 |
| 낑수까 나무 비유 경 | S35:245 | 403 |
| 류트 비유 경 | S35:246 | 409 |
| 여섯 동물 비유 경 | S35:247 | 415 |
| 보릿단 경 | S35:248 | 419 |
제36주제 느낌 상윳따(S36)
| 제1장 게송과 함께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삼매 경 | S36:1 | 427 |
| 행복 경 | S36:2 | 428 |
| 버림 경 | S36:3 | 430 |
| 바닥없는 구렁텅이 경 | S36:4 | 432 |
| 보아야 함 경 | S36:5 | 433 |
| 화살 경 | S36:6 | 434 |
| 간병실 경1 | S36:7 | 438 |
| 간병실 경2 | S36:8 | 444 |
| 무상 경 | S36:9 | 446 |
| 감각접촉에 뿌리박음 경 | S36:10 | 447 |
| 제2장 한적한 곳에 감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한적한 곳에 감 경 | S36:11 | 449 |
| 허공 경1 | S36:12 | 451 |
| 허공 경2 | S36:13 | 453 |
| 객사(客舍) 경 | S36:14 | 453 |
| 아난다 경1 | S36:15 | 454 |
| 아난다 경2 | S36:16 | 457 |
| 많은 비구 경1 | S36:17 | 457 |
| 많은 비구 경2 | S36:18 | 458 |
| 빤짜깡가 경 | S36:19 | 458 |
| 비구 경 | S36:20 | 467 |
| 제3장 백팔 방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시와까 경 | S36:21 | 468 |
| 백팔 방편 경 | S36:22 | 472 |
| 어떤 비구 경 | S36:23 | 474 |
| 이전 경 | S36:24 | 475 |
| 지혜 경 | S36:25 | 475 |
| 많은 비구 경 | S36:26 | 477 |
| 사문/바라문 경1 | S36:27 | 477 |
| 사문/바라문 경2 | S36:28 | 478 |
| 사문/바라문 경3 | S36:29 | 479 |
| 간단한 경 | S36:30 | 480 |
| 출세간 경 | S36:31 | 480 |
제37주제 여인 상윳따(S37)
| 제1장 첫 번째 반복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음 경1 | S37:1 | 489 |
|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음 경2 | S37:2 | 490 |
| 특별함 경 | S37:3 | 490 |
| 세 가지 법 경 | S37:4 | 491 |
| 분노 경 | S37:5 | 492 |
| 원한 경 등 | S37:6~13 | 493 |
| 오계 경 | S37:14 | 494 |
| 제2장 두 번째 반복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분노 없음 경 | S37:15 | 495 |
| 원한 없음 경 등 | S37:16~23 | 496 |
| 오계 경 | S37:24 | 497 |
| 제3장 힘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무외 경 | S37:25 | 498 |
| 이끎 경 | S37:26 | 498 |
| 통제 경 | S37:27 | 498 |
| 하나 경 | S37:28 | 499 |
| 측면 경 | S37:29 | 499 |
| 쫓아냄 경 | S37:30 | 500 |
| 원인 경 | S37:31 | 502 |
| 경우 경 | S37:32 | 502 |
| 무외 경 | S37:33 | 504 |
| 증장 경 | S37:34 | 504 |
제38주제 잠부카다까 상윳따(S38)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열반 경 | S38:1 | 509 |
| 아라한됨 경 | S38:2 | 511 |
| 설법자 경 | S38:3 | 512 |
| 무슨 목적 경 | S38:4 | 513 |
| 안식(安息) 경 | S38:5 | 514 |
| 최상의 안식(安息) 경 | S38:6 | 515 |
| 느낌 경 | S38:7 | 516 |
| 번뇌 경 | S38:8 | 517 |
| 무명 경 | S38:9 | 518 |
| 갈애 경 | S38:10 | 519 |
| 폭류 경 | S38:11 | 520 |
| 취착 경 | S38:12 | 521 |
| 존재 경 | S38:13 | 522 |
| 괴로움 경 | S38:14 | 523 |
| 자기 존재 경 | S38:15 | 524 |
| 행하기 어려움 경 | S38:16 | 525 |
제39주제 사만다까 상윳따(S39)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열반 경 등 | S39:1~16 | 529 |
제40주제 목갈라나 상윳따(S40)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초선(初禪) 경 | S40:1 | 533 |
| 제2선 경 | S40:2 | 535 |
| 제3선 경 | S40:3 | 536 |
| 제4선 경 | S40:4 | 538 |
| 공무변처 경 | S40:5 | 539 |
| 식무변처 경 | S40:6 | 540 |
| 무소유처 경 | S40:7 | 541 |
| 비상비비상처 경 | S40:8 | 542 |
| 표상 없음 경 | S40:9 | 543 |
| 삭까 경 | S40:10 | 546 |
| 짠다나 경 | S40:11 | 562 |
제41주제 찟따 상윳따(S41)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족쇄 경 | S41:1 | 567 |
| 이시닷따 경1 | S41:2 | 570 |
| 이시닷따 경2 | S41:3 | 573 |
| 마하까의 기적 경 | S41:4 | 577 |
| 까마부 경1 | S41:5 | 580 |
| 까마부 경2 | S41:6 | 583 |
| 고닷따 경 | S41:7 | 589 |
| 니간타 나따뿟따 경 | S41:8 | 594 |
| 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 S41:9 | 599 |
| 병문안 경 | S41:10 | 603 |
제42주제 우두머리 상윳따(S42)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짠다 경 | S42:1 | 609 |
| 딸라뿌따 경 | S42:2 | 611 |
| 요다지와 경 | S42:3 | 614 |
| 핫타로하 경 | S42:4 | 617 |
| 앗사로하 경 | S42:5 | 617 |
| 아시반다까뿟따 경 | S42:6 | 617 |
| 들판 비유 경 | S42:7 | 621 |
| 소라고둥 불기 경 | S42:8 | 625 |
| 가문 경 | S42:9 | 633 |
| 마니쭐라까 경 | S42:10 | 637 |
| 바드라까 경 | S42:11 | 639 |
| 라시야 경 | S42:12 | 644 |
| 빠딸리야 경 | S42:13 | 659 |
<상윳따 니까야 제4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주제별로 모은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육처(六處,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위주로 한 10개의 주제들(saṁyutta)을 모은 것인데 이 가운데 첫 번째 상윳따가「육처 상윳따」(S35)이다. 이것은『청정도론』등의 주석서 문헌들에서 초기불교의 교학에 관한 여섯 가지 주제로 언급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 가운데 처[處]에 해당하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것이다. 경의 개수도 248개가 되고, 그 분량도 본서의 저본이 되는 Ee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4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며, 제4권 403쪽 가운데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전통적으로 아야따나 왁가(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 즉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라고 전승되어 왔다. 제4권의 중심에 제4권의 첫 번째 상윳따인「육처 상윳따」(S35)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역자는 본서를 번역하면서 Ee, Se, Be에서 공히 제4권에 포함되어 나타나는「무위 상윳따」(S43)와「설명하지 않음 상윳따」(S44)를 여기 제4권에 포함시키지 않고 제5권에 포함시켜 번역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책의 분량을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Ee, Se, Be 등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오는 대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면 제4권은 750쪽에 이르게 되고, 특히 37보리분법과 사성제 등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제5권은 1150쪽에 달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섯 권으로 전승되어오는 빠알리어『상윳따 니까야』의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모두 여섯 권으로 출판하고 있는데, 제4권에는 S35부터 S42까지의 여덟 개의 상윳따를 담고, 제5권에는 S43부터 S50까지의 여덟 개의 상윳따를, 제6권에는 나머지 S51부터 S56까지의 여섯 개 상윳따를 싣고 있다.
2. 제4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4권에는 모두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도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육처, 느낌, 여인, 무위, 무기 상윳따는 주제별로 모은 것이고 잠부카다까와 사만다까와 목갈라나와 찟따와 우두머리는 특정 인물 중심으로 모은 것이다.
본서에도 2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는 이 경들을 각각 열 개씩으로 나누어서 품(vagga)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품이 10개가 넘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품을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명칭으로 묶고 있다. 본서의 처음에 나타나는「육처 상윳따」(S35)도 이 편집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육처 상윳따」(S35)에는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S35:1부터 S35:52까지의 52개의 경들을「처음 50개 경들의 묶음」(Mūla-paññāsa)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있으며, S35: 53부터 S35:103까지의 51개의 경들은「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Dutiya-paññāsaka)으로, S35:104부터 S35:155까지의 52개의 경들은「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Tattiya-paññāsaka)으로, S35:156부터 마지막인 S35:248까지의 93개의 경들을「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Catuttha-paññāsaka)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면 먼저 제4권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상윳따를 개관해 보자.
제35주제「육처 상윳따」(Saḷāyatana-saṁyutta, S35)에는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와 관계된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본 상윳따를「육처 상윳따」라 부른다.
제36주제「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S36)에 포함된 31개의 경들은 모두 괴로운 느낌이나 즐거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것이다.
제37주제「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S37)에 포함된 34개의 경들은 여러 부류의 여인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38주제「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S38)는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bhāgineyya)인 잠부카다까 유행승(Jambukhādaka paribbājaka)과 관계된 16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각각의 경들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사리뿟따 존자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제39주제「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S39)에 포함된 16개의 경들은 사만다까 유행승과 사리뿟따 존자와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경들은 앞의「잠부카다까 상윳따」(S38)의 16개의 경들과 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러 판본에도 이 부분을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을 생략하였다.
제40주제「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S40)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11개의 경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처음의 여덟 개 경들은 각각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삼매에 관한 것이고, 아홉 번째 경은 표상 없는 삼매에 관한 것이며, 열 번째는 신의 왕 삭까(인드라)와의 문답을 담은 것이고, 열한 번째는 신의 아들 짠다나와 신의 아들 수야마와 신의 아들 산뚜시따와 신의 아들 수님미따와 신의 아들 와사왓띠와의 대화를 담은 경인데 내용은 바로 앞의「삭까 경」과 같다.
제41주제「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S41)에는 찟따 장자(Citta gahapati)와 관계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 이 경들을 통해서 찟따 장자가 몇몇 초기불전에서 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 신도로 거명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겠다.
제42주제「우두머리 상윳따」(Gāmaṇi-saṁyutta, S42)에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특히 이 가운데 6명은 촌장들임) 10명과 세존께서 나눈 대화를 담은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그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제43주제「무위 상윳따」(Asaṅkhata-saṁyutta, S43)에는 4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처음의 12개 경들은 무위를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로 설명하고 있고 무위에 이르는 길로는 37보리분법의 각 항목 등 모두 45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S43:13∼44까지의 32개 경들은 무위의 동의어를 나열하고 있다. 역자는 본 상윳따를 제5권에 포함시켜서 번역하고 있다.
제44주제「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ākata-saṁyutta, S44)에는 모두 11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S44:6까지의 여섯 경들은 모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래의 사후에 대한 네 가지 관심이 주제로 나타난다. 그리고 S44:7부터 마지막까지의 5개 경들은 ‘세상은 영원한가?’부터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까지의 소위 말하는 10사무기(十事無記)가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본 상윳따도 제5권에 포함시켜서 번역하고 있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육처 상윳따」(S35)
⑴ 육처란 무엇인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온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면 육처의 가르침은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온을 불교의 인간관이라 한다면 육처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육처 상윳따’는 Saḷāyatana-saṁyutta를 옮긴 말이다. 여기서 육처(六處, saḷāyatana)는 여섯 감각장소로 직역이 되며, 이것은 다시 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ajjhattika āyatana)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bāhira āyatana)로 구성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는 이 두 가지 감각장소가 모두 다 포함되어 있다. 세존께서는 이 안의 감각장소와 밖의 감각장소(대상)를 일체라고 정의하고 계시며, 이 12가지 외에 다른 일체는 세울 수 없다고 하신다.(「일체 경」(S35:23)) 그리고「세상 경」(S35:82)과「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S35:116) §12에서는 이 12가지야말로 세상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여기서 육처(六處, 여섯 감각장소)로 옮긴 원어는 saḷāyatana인데, 이것은 여섯을 뜻하는 saḷ과 장소[處]를 뜻하는 āyatana가 합성된 술어이다.
‘saḷ-’은 숫자 여섯을 뜻하는 산스끄리뜨 ṣaṣ/ṣat가 합성어의 처음에 올 때 saḷ-로 바뀐 것이다. 산스끄리뜨 ṣaṣ(여섯)는 빠알리에서는 cha로 정착이 되었지만 이 경우만 특별히 ‘saḷ-’로 정착이 되었다. 예를 들면 육신통은 chaḷ-abhiññā이지 saḷ-abhiññā가 아니다.
그리고 처(處) 혹은 감각장소로 옮긴 원어 āyatana는 ā(이리로) + √yat(to strech)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ā + √yam(to move)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는 중성 명사이다. 불교 이전부터 인도 바라문교의 제의서(祭儀書, Brāhmaṇa) 문헌에 많이 나타나는 단어인데 거기서는 주로 제사지내는 장소를 아야따나라 부르고 있다. 물론 동물들의 서식지를 아야따나로 부르기도 하였다.『청정도론』XV.5에 의하면 아야따나에는 ① 머무는 장소(nivāsa-ṭṭhāna) ② 광산(ākara) ③ 만나는 장소(samosaraṇa) ④ 출산지(sañjāti-desa) ⑤ 원인(kāraṇa)의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쪽으로 온다는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入으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이 단어가 장소(base, sphere)의 의미로 쓰이므로 處라고 옮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2연기의 다섯 번째 구성요소인 saḷ- āyatana는 六入으로 옮겼으며, 눈의 감각장소[眼處, cakkhu-āyatana] 등과 형색의 감각장소[色處, rūpa-āyatana] 등의 육내․외처(12처)와, 공무변처(空無邊處 ākāsanañc-āyatana)부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neva -saññānāsaññ-āyatana)까지의 4처는 處로 옮겼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감각작용과 관계된 6입이나 12처는 ‘감각장소’로 옮기고 있으며 4처는 ‘장소’로 옮기고 있다.
안의 감각장소[內處, ajjhattika āyatana]와 밖의 감각장소[外處, bāhira āyatana]에서 ‘안[內]’은 ajjhattika를 옮긴 것이다. 이 술어는 adhi+atta +ika로 분석되는데 자신(atta)에 관계된(adhi) 것(-ika)이란 뜻이다. ajjhattika는 예외 없이 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 혹은 감각기관[六內處]을 지칭하는 술어로만 쓰인다. 반대로 ‘밖[外]’은 bāhir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밖에’를 뜻하는 부사 bāhi(Sk. bahir, bahis)의 2차곡용어이다. 곡용이 되어 산스끄리뜨 bahir의 -r가 살아난 형태로 된 것이다. 이 술어는 예외 없이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 혹은 감각대상[六外處]을 지칭하는 술어로만 쓰인다. 물론 여기서 법(dhamma)은 모든 의식의 대상과 모든 심소법들을 말하지만 마노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밖의 감각장소로 불린다.
여기서 여섯 감각장소[六處]로서의 ajjhattika-bāhira와 일반적인 안과 밖(나와 남)을 뜻하는 ajjhatta-bahiddhā는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존재들의 눈 등의 감각기관은 안의 감각장소(ajjhattika)이지만 그것은 남의 것 혹은 밖의 것(bahiddhika)이고, 내 몸의 색깔, 목소리, 냄새 등은 밖의 감각장소(bāhira)이지만 그것은 나의 것 혹은 안의 것(ajjhatta)이다.
한편 주석서는 왜 안이라고 밖이라고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안의 감각장소들[內入處, ajjhattikā āyatanā]’을 ‘안’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들에 대한 욕탐이 현저하게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을 집의 내부로 여기고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外入處, bāhirā āyatanā]’을 집의 부근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아내나 재산이나 재물이나 공덕과 같은 것에 대한 욕탐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나누어 가지자는 말만 들어도 거부하는 것처럼,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안의 것이라 불린다.
마치 사람들이 집의 부근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욕탐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것도 억지로 막지 않는 것처럼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이것들은 밖의 것이라 불린다.”(SA.ii.356)
⑵「육처 상윳따」(S35)의 개관
본 상윳따에는 모두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19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 19개의 품은 다시 네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것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I.「처음 50개 경들의 묶음」
①「무상 품」- 12개 경 ②「쌍 품」- 10개 경 ③「일체 품」- 10개 경 ④「태어나기 마련인 법 품」- 10개 ⑤「무상 품」- 10개 경
II.「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⑥「무명 품」- 10개 경 ⑦「미가잘라 품」- 11개 경 ⑧「환자 품」- 10개 경 ⑨「찬나 품」- 10개 경 ⑩「여섯 품」- 10개 경
III.「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⑪「유가안은을 설하는 자 품」- 10개 경 ⑫「세상과 감각적 욕망의 가닥 품」- 10개 경 ⑬「장자 품」- 10개 경 ⑭「데와다하 품」- 12개 경 ⑮「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 10개 경
IV.「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⑯「즐김의 소멸 품」- 11개 경 ⑰「60가지의 반복 품」- 60개 경 ⑱「바다 품」- 10개 경 ⑲「독사 품」- 10개 경
여기서 보듯이 제17장「60가지의 반복 품」에는「안의 무상에 대한 욕구 경」(S35:168)부터「안의 감각장소들의 무아 경」(S35:227)까지의 비슷한 구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짧은 분량의 6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의 품은 다른 상윳따의 품들처럼 대부분 1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드물게 11개나 12개를 포함한 것도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4개의 50개 경들의 묶음 속에 19개의 품이 들어 있고, 이들에는 다시 248개의 경들이 포함된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육처 상윳따」의 기본 구성이다.
⑶ 248개 경들의 분류
「육처 상윳따」의 248개 경들은 모두 안의 감각장소와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것은 크게 다음의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안의 감각장소만을 설하고 있는 경: 79개.
② 밖의 감각장소만을 설하고 있는 경: 64개.
③ 안팎의 감각장소를 다 설하고 있는 경: 105개.
역자는 이들 248개 경들을 다시 다음의 기준으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기준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로 정형화되어 있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제2권과 제3권에서 살펴보았듯이 불교의 기본 교학인 연기의 가르침과 오온 등의 가르침에서도 이 ‘태어남은 다했다. …’라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강조되어 나타났다. 본「육처 상윳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이런 기준을 정한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무상․고․무아다. 이미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 등에서도 살펴봤지만 오온의 가르침은 무상․고․무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본「육처 상윳따」(S35)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무상․고․무아를 포함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개나 되는가를 조사해 본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248개 경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서로 중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래 분류에서 보듯이 ③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설하는 39개의 경들과 ④ 무상․고․무아를 설하는 경 43개와 ⑤ 무상만 설하는 38개 속에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①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를 설하는 경들: 118+2(이 정형구가 조금 다른 것) = 120 개
㉠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62개
Ⓐ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30개-2(구경해탈지의 정형구만 다름) =28개.
Ⓑ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S35:32, 62, 73∼75, 86,89, 105, 108, 121, 150의 11개.
Ⓒ 무상․고․무아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23개. 이 가운데 S35:28, 29, 154, 155, 186∼203, 235의 23개는 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있음.
㉡ 사량 없음과 취착 없음을 통한 구경해탈지: S35:30~31, 90~91의 4개.
㉢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한 구경해탈지: S35:74∼75, 204∼221의 20개.
㉣ 바로 구경해탈지을 설함: 32개 = S35:64, 140∼145(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바로 구경해탈지로), 153, 204∼221(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와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이 나타난 뒤에 바로 구경해탈지로), 222∼227(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바로 구경해탈지로) = 1+6+1+18+6=32개.
② 위의 정형구 없이 해탈을 설하거나, 바른 견해-염오-이욕-즐김의 소멸-해탈을 설하는 경들: 12개 = S35:15∼20, 60∼61, 156∼159
③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이 나타나는 경들: 39개 = S35:1∼12, 30∼31, 71∼72, 74∼75, 87, 90∼91, 204∼221
④ 무상․고․무아를 설하는 경들: 43개 = S35:1, 4, 7, 10, 32∼52, 60∼62, 73∼75, 86, 89, 105, 108, 121, 150, 204∼206, 213∼215
⑤ 무상만을 설하는 경들: 38개 = S35:53, 54, 56, 58, 76, 79, 93, 99, 100, 140, 143, 147, 156∼162, 165∼170, 177∼179, 182, 186∼188, 195∼197, 222, 225, 235
⑥ 괴로움만을 설하는 경들: 33개 = S35:19∼22, 26∼27, 67, 77, 81, 88, 94, 106, 111∼113, 141, 144, 148, 152, 163, 171∼173, 180∼181, 189∼191, 198∼200, 223, 226
⑦ 무아만을 설하는 경들: 31개 = S35:3, 6, 12, 55, 57, 59, 78, 142, 145, 149, 164, 174∼176, 183∼185, 192∼194, 201∼203, 210∼212, 219∼221, 224, 227
⑧ 괴로움과 무아만을 설하는 경들: 11개 = S35:2, 5, 8, 9, 11, 207∼209, 216∼218
⑨ 6내처-6외처-6식-6촉-6수에 바탕한 세 가지 느낌으로 나타나는 경들: 71개 = S35:28∼62, 76∼86, 89∼91, 99∼102, 121, 129∼130, 147∼152, 160∼167, 235
⑩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일체라고 설하는 경들: 29개 =「일체 경」(S35:23),「버림 경」1/2(S35:24∼25)와「불타오름 경」(S35: 28)부터「무상 경」등(S35:43∼52)까지를 합한 29개 경들
⑪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를 세상이라고 설하는 경들: 6개 =「사밋디 경」4(S35:68),「세상 경」(S35:82) 등
⑫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로 나타나는 경들: 7개 =「통달하여 철저하게 앎 경」(S35:60),「종식 경」1 (S35:61),「쌍(雙) 경」2(S35:93),「괴로움 경」(S35:106),「세상 경」 (S35:107),「유심히 들음 경」(S35:113),「우다이 경」(S35:234)
⑬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달콤함․위험함․벗어남을 설하는 경들: 6개 = S35:13∼18
⑭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일어남․사라짐․달콤함․위험함․벗어남을 설하는 경들: 4가지 = S35:71∼73, 103
⑷ 각 분류의 특징
①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118+2=120개 경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키나자띠, khīṇa jāti)을 선언하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포함되어 있다. 제3권의 해제에서 살펴봤듯이 이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이다. 그리고「통달하여 철저하게 앎 경」(S35:60)과「종식 경」1(S35:61)의 두 경은 염오․이욕․해탈까지는 같고 다만 위 정형구 대신에 “해탈하면 ‘나는 취착을 통달하여 철저하게 알았다.’라고 꿰뚫어 안다.”라고 나타나는 것만이 다르다. 그래서 이 두 개 경들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② 무상․고․무아의 정형구
한편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고․무아 셋 다 나타나는 경은 43개이며, 무상만이 나타나는 것은 38개, 괴로움만이 나타나는 것은 33개, 무아만이 나타나는 것은 31개, 그리고 괴로움과 무아만 나타나는 것이 11개이다. 이렇게 하여 156개 정도의 경이 안의 감각장소나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이나 괴로움이나 무아를 천명하고 있다.
③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이 가운데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포함되어 나타나는 경은 모두 28개 정도가 있다. 경들에 나타나는 이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
마노[意]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대상인] 법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리고 위의 정형구 앞에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 괴로움이다. … 무아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 괴로움이다. … 무아다.”라는 등으로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고․무아와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설하는 경들이 S35:222를 위시하여 모두 28개 정도가 된다.
물론 이 정형구는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의 도처에 나타나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와도 같다. 다만 그곳에서는 오온이 나타나고 여기서는 육내외처가 나타나는 것만이 다르다.
④ 무상․고․무아 문답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모두 11개 경들에서 나타난다. 이 정형구도 이미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의「소나 경」1(S22:49 §5 이하) 등의 여러 곳에서 오온에 대한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로 많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육처에 대해서 적용되고 있는데 경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
마노[意]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 귀에 대해서도 … 코에 대해서도 … 혀에 대해서도 … 몸에 대해서도 … 마노[意]에 대해서도 … [마노의 대상인] 법에 대해서도 …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에 대해서도 …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환자 경」1(S35:74) §7 이하 등)
⑤ 무상․고․무아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한편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는 무상․고․무아가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세 번째 설법이요 가섭 삼형제의 제자들이었다가 가섭 삼형제와 함께 부처님 제자가 된 1000명의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으로 잘 알려진 본서「불타오름 경」(S35:28)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는가?
눈은 불타오르고 있다. 형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는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탄식과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과 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
마노[意]는 …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불타오름 경」(S35:28) §§3~5)
⑥ 사량 않음과 취착 않음을 통한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그는 일체를 사량하지 않고, 일체에서 사량하지 않고, 일체로부터 사량하지 않고, ‘일체는 나의 것이다.’라고 사량하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사량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뿌리 뽑는데 어울림 경」(S35:30) 등)
⑦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한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비구들이여, 과거의 눈은 무상하였다.(S35:204) … 미래의 눈은 무상할 것이다.(S35:205) … 현재의 눈은 무상하다.(S35:206) … 과거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였다. … 미래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할 것이다. … 현재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S35:204∼206)
⑧ 벗어남, 해탈 등으로 나타나는 경들
이것은 위 ⑶의 ⑬에서 열거한 경들에 해당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중생들이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六內入處]의 달콤함을 달콤함이라고 위험함을 위험함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 때 중생들은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으로부터,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로부터 벗어나고 풀려나고 해탈하며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이것이 없다면 경」1(S35:17))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六外入處]의 달콤함을 달콤함이라고 위험함을 위험함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인정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달콤함 경」2(S35:16))
⑨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 경들
앞의 ④에서 인용한「환자 경」1(S35:74)과 ⑤에서 인용한「불타오름 경」(S35:28) 등에서 보았듯이 본 상윳따의 71개 경들은 6내처-6외처-6식-6촉-6수의 순서로 여러 가지 법들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안과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6내처-6외처-6식-6촉-6수를 설하고 있는 경들도 무려 71개가 나타난다. 이들은 12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⑩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일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라고 설하시는「일체 경」(S35:23)을 위시하여「버림 경」1/2(S35:24∼25)와「불타오름 경」(S35:28)부터「무상 경」등(S35:43∼52)까지의 28개 경들에서는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일체라 부르고 있다.
⑪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세상이다
「사밋디 경」4(S35:68)와「세상 경」(S35:82) 등의 여섯 개 경들에서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를 세상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경들은 세상은 영원한가 등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들도 세상을 12가지 등의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자체는 개념[施設, paññatti]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서 제3권의「들어감 상윳따」(S25)와「일어남 상윳따」(S26)와「오염원 상윳따」(S27)에 포함되어 있는 30개 경들도 6내처와 6외처와 6식을 주제로 한 경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육처 상윳따」(S35)와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육처를 주제로 한 경들은 모두 278개로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라훌라 상윳따」(S18)의 22개 경들 가운데서 처음 10개의 경들에서는 차례대로 6근, 6경, 6식, 6촉, 6수, 6상, 6의도, 6갈애(S18:1∼8)와 6대(S18:9)와 오온(S18:10)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같은 순서의 가르침이 11∼20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20개 경들도 육내처와 육외처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중점적으로 설하는 본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결국 육처의 가르침도 나와 세상을 각각 안과 밖의 여섯씩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이렇게 해서 나와 세상이 무상․고․무아임을 체득하여 이들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일으켜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뭉쳐두면 개념(paññatti)에 속고 법(dhamma)으로 해체하면 깨닫는다는 말은 이「육처 상윳따」(S35)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⑸ 육처에 대한 가르침의 특징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육처에 대한 가르침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① 12처는 일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오온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면 육처의 가르침은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그래서 오온을 불교의 인간관이라 한다면 육처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이란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이란 모두 안과 밖이 만나는 것 — 즉 눈이 형색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몸이 감촉과, 마노가 법과 조우하고 부딪히는 것 — 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육처의 가르침을 통해서 강조하고 계신다. 세상이니 존재니 일체니 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문제를 떠나서는, 나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세존께서는 일체 존재와 세상을 이렇게 안과 밖의 감각장소로 해체해서 간단명료하게 제시하시고 무아를 천명하신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육내외처가 일체라고 강조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일체 경」(S35:23) §§3∼4)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라는 것은 말로만 말하게 되는 토대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이 12가지 감각장소들을 떠나서 또 다른 고유성질을 가진 법(sabhāva-dhamma)이 있다고 설할 수 없다는 뜻이다.” (SA.ii.358)
즉 일체란 것은 단지 말로만 존재하는 개념적인 존재(paññatti)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일체라는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인 육내외처 곧 12가지 감각장소들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적어보면, 12가지 감각장소[十二處]는 ⑴ 눈의 감각장소 ⑵ 귀의 감각장소 ⑶ 코의 감각장소 ⑷ 혀의 감각장소 ⑸ 몸의 감각장소 ⑹ 마노의 감각장소 ⑺ 형색(색)의 감각장소 ⑻ 소리의 감각장소 ⑼ 냄새의 감각장소 ⑽ 맛의 감각장소 ⑾ 감촉의 장소 ⑿ 법의 감각장소이다.
이러한 12가지 감각장소는 일체(sabba)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존재일반을 나타내는 법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일체를 구성하고 있는 법들을 문(dvāra)과 마음의 대상의 측면에서 조망하고 계신다.
아비담마적으로 보자면 ⑴∼⑸의 감각장소는 다섯 가지 물질의 감성(pasāda)과 일치하고 ⑺∼⑾의 감각장소는 다섯 가지 물질의 대상(gocara)과 일치한다. 그러나 ⑹ 마노[意]의 감각장소는 마노의 문(dvāra)보다는 더 큰 범위를 나타낸다. 이것은 89가지 형태의 마음 모두를 포함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薀] 전체와 일치한다. ⑿ 법의 감각장소[法處]는 법이라는 대상(dhamma-ārammaṇa)과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처음의 다섯 가지 대상(gocara, ⑺∼⑾)과 다섯 가지 감성(pasāda, ⑴∼⑸)과 마노의 감각장소[意處, ⑹]와 일치하는 마음(citta)을 제외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념(paññatti)도 제외한다. 감각장소[處, āyatana]라는 것은 오직 구경법, 즉 본성(sabhāva)을 가진 것들에게만 적용되고 개념의 구조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들(paññatti)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감각장소[法處]는 52가지 마음부수법들과 16가지 미세한 물질(sukhuma-rūpa)과 열반으로 구성된다.(『아비담마 길라잡이』§36의 해설을 참조할 것.)
② 12처가 바로 세상이다
아울러 육내외처는 세상(loka)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기도 하다.
주석서에 의하면 초기불전에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 중생 세상, 형성된 세상의 세 가지 세상이 있다.”(DA.i.173)고 설명한다.
여기서 ① 보이는 세상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세상으로 눈에 보이는 이 물질적인 세상 즉 중국에서 기세간(器世間)으로 이해한 것을 말한다. ② 본서 제3권「꽃 경」(S22:94 §3)에서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툴 뿐이다.”라고 하신 세상은 바로 중생으로서의 세상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중생세간(衆生世間)으로 정착이 되었다. ③ 모든 형성된 것을 형성된 세상이라 한다. 물론 형성된 세상은 모든 유위법을 뜻하며 오취온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오취온은 고성제의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본 상윳따에서는 모두 형성된 세상의 측면에서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의「세상 경」(S35:82)에서 어떤 비구와 세존께서는 이렇게 문답을 나누고 있다.
“세존이시여, ‘세상,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왜 세상이라고 합니까?”
“비구여, 부서진다고 해서 세상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부서지는가? 눈은 부서진다.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부서진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부서진다.
비구여, 부서진다고 해서 세상이라 한다.”
그리고「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S35:116 §12)에서는 이렇게 설하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한편 이 문단은 본서 제1권「로히땃사 경」(S2:26)에도 나타나는데「로히땃사 경」의 핵심 내용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경은「로히땃사 경」(S2:26)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들어가시자 비구들의 간청에 의해서 아난다 존자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반들이여, 이 세상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자와 세상을 지각하는 자는 그 어떤 것을 통해서 [인식하고 지각]합니다. 이런 것을 일러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즉 여섯 감각장소를 통해서 인식되고 지각되는 것이 세상이지 다른 세상은 없다는 말씀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이란 경험된 세상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특히 본서 제1권「로히땃사 경」(S2:26)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아난다 존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 코를 통해서 … 혀를 통해서 … 몸을 통해서 … 마노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일러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눈은 세상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범부는 중생의 세상[衆生世間, satta-loka]과 우주로서의 세상[器世間, cakkavāḷa-loka]만을 두고 세상이라고 인식하고 지각한다. 그러나 눈 등의 12가지 감각장소를 떠나서 [세상이라는] 인식이나 지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반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세상의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을 통해서 이 세상의 끝을 알거나 보거나 얻거나 할 수 없다. 무너진다는 뜻에서 눈 등의 부서짐인 세상의 끝 — 이것을 열반이라 부름 — 이것을 얻지 못하고서는 윤회의 괴로움을 끝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한다.” (SA.ii.389)
“눈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인식하는 자도 없다. 안의 감각장소가 없으면 세상이라는 명칭도 없기 때문이다.”(SA.iii.25)
③ 세상이든 일체든 모두 조건발생[緣起, 緣而生]이다
「세상 경」(S35:107)에서 세존께서는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 즉 발생과 소멸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세상의 일어남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 혀와 맛을 조건으로 … 몸과 감촉을 조건으로 … 마노와 법을 조건으로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세상의 사라짐을 설하신다. 이처럼 세상은 조건발생[緣起, 緣而生]임을 말씀하신다.
④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보인다
그러면 왜 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시는가?「공한 세상 경」(S35:85)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강조하고 계신다.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공한 세상이라 한다.
아난다여, 그러면 무엇이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인가? 아난다여, 눈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공한 세상이라 한다.”(「공한 세상 경」(S35:85) §4)
세존께서 세상을 12처로 간단명료하고 명쾌하게 설명하시는 것은 세상이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천명하시기 위해서이다. 12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은 공한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 절반이 훨씬 넘는 156군데나 되는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6내외처의 무상․고․무아와 혹은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강조하시고 극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고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고․무아뿐만 아니라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38개의 경들은 내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역설하고 있으며 10군데 경들에서는 육내외처의 달콤함․위험함․벗어남 등을 설하고 있기도 한데, 이 모든 가르침은 결국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고 공한 것이고 내 것․나․나의 자아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⑤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이처럼 세상이나 일체를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살펴보면 무상․고․무아가 보이고 이렇게 되어야 세상이나 일체에 대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생겨서 해탈․열반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육처의 가르침도 오온의 가르침에서처럼 무상․고․무아와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시여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분명한 도구로 말씀하신 것이다.
본 니까야의 첫 번째 가르침인「안의 무상 경」(S35:1)과「밖의 무상 경」(S35:4)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안의 무상 경」(S35:1) §§3∼4)
“비구들이여, 형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 대상인] 법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밖의 무상 경」(S35: 4) §§3∼4)
이처럼 존재를 12가지로 한정짓고 이 열두 가지 각각이 무상․고․무아임을 천명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 12처 가르침의 핵심이다.
⑥ 12처와 18계의 특징 몇 가지
위 ⑶의 ⑨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상윳따에는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 경들이 무려 71개나 된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여섯 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6내처-6외처-6식-6촉-6수의 순서로 설하고 있는 경들도 71개나 된다. 이들 12처의 가르침은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12처와 18계의 가르침의 중요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존재를 나를 중심으로 안과 밖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신다. 법(dhamma)의 관점에서 보자면 안으로는 6내처, 밖으로는 6외처뿐이라고 하신다. 그 외의 세상이니 일체니 하는 것은 다 개념적 존재(paññatti)일 뿐이다.
둘째, 18계는 6내처에서 다시 6식을 독립시킨 것이다. 안의 감각장소 가운데서 마노의 감각장소 즉 의처(意處)를 나라고 영원한 마음이라고 자칫 집착할까봐 이를 다시 6식과 의(意)의 7가지로 분류해낸 것이다.
셋째, 이처럼 12처에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가 마노(mano, 意)에 포함되어서 나타나고 18계에서는 마노와 여섯 가지 알음알이는 구분이 되고 있다. 물론 마노[意]는 여섯 번째 알음알이인 마노의 알음알이[意識]가 발생하는 토대나 감각장소의 역할을 하지만 마노는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다. 그러므로 마음(심)이나 알음알이(식)와 같이 대상을 아는 것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미 초기불전에서부터 이 셋 즉 심․의․식은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 알음알이(식)와 마노(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노와 알음알이의 차이는 그 역할에 의해서 구분된다. 특히 아비담마는 그 역할에 따라서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 마노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첫째, 색․성․향․미․촉 외의 대상을 인지하는 정신적인 기관이다. 둘째, 전오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안식이 받아들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의식이 일어나서 이를 판단해야 하는데, 안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마노다. 아비담마의 인식과정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4장 <도표 4.1>을 참조할 것)
넷째, 이렇게 살펴봄으로써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상이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우주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라든지 우주라든지 일체라든지 존재라든지 하는 개념에 속게 된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안과 밖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12처와 18계이다.
다섯째,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육내외처로 18계로 해체해서 보면 일체 모든 존재의 무상․고․무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삼특상을 철견하면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게 된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사실「육처 상윳따」의 248개 경들 가운데 반 이상이 되는 156개 경들이 무상․고․무아를 설하고 있으며 39개 경들이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설하여 거의 80%에 해당하는 경들이 이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들도 존재일반이나 육내외처를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⑹ 어떻게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① 세 가지 과정
이쯤에서『상윳따 니까야』의 도처에서 특히 본「육처 상윳따」(S35)와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려 한다. 해탈․열반의 실현이야말로 불자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행복이요 본서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해탈․열반과 깨달음을 실현하는 과정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나 세상이라는 존재 등의 존재일반(paññatti)을 법(dhamma)이라는 기준으로 해체해서(vibhajja) 설하신다. 이 법은 초기경의 도처에서 설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청정도론』에서 정리하고 있고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의 여섯 가지 주제이다.
이것을 본서에 대입해보면 본서 제3권의 기본주제인 오온과 제4권의 기본주제인 12처와, 본서 제2권「요소 상윳따」(S14)와 본「육처 상윳따」(S35)의 도처에 나타나는 18계 등의 여러 요소들[界]과, 제2권의 기본주제인 12연기와 본서 제6권에서 대미를 장식하는「진리 상윳따」(S56)의 근본주제인 진리[諦]의 여섯 가지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초기불교 교학의 근본주제이다.
둘째, 이렇게 존재일반을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인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셋째, 이렇게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써 존재일반에 염오하게 되고 존재일반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게 되고 그래서 해탈하게 되고 혹은 소멸로 정의되는 열반을 실현하게 되고 이렇게 되어서 “태어남은 다했다. …”로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구경해탈지가 생기면서 생사문제라는 장부일대사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초기경의 도처에서 설해지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세 가지 교학적인 단계이다. 좀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② 고유성질(自相)
첫 번째 단계에서 존재일반을 해체해서 보는 기준이 법(法, dhamma)인데 이 법을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라 부른다. 아비담마의 가장 큰 성과는 이처럼 고유성질을 기준으로 개념적 존재[施設, paññatti]를 법들로 해체해서 그것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개별적인 법들의 특징을 자상(自相, sabhāva-lakkhaṇa)이라고 옮겼으며 이 자상은 아비담마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주석서들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본서「삼켜버림 경」(S22:79) §4의 주해 참조)
물질과 정신이 왜 다른가? 탐욕과 성냄이 왜 다른가? 느낌과 인식이 왜 다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각각의 법들 즉 물질, 정신, 탐욕, 성냄, 느낌, 인식 등등의 각각의 법들의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해석이다. 탐욕과 성냄이 둘이 아니라거나 탐욕과 성냄은 본래 없다는 등의 무책임한 말로는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탈․열반의 도정도 절대로 밝히지 못한다.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열반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드러내지 못하면 그것은 구세대비의 종교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이론이나 주장이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 마련이고 떠돌이는 곧 망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교학과 수행체계를 튼튼히 갖춘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와 유식이라는 불교가 있기 때문에 불교는 2600여년을 빛을 발하고 있다고 역자는 판단한다. 이것은 직관만 다그치는 반야․중관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아무튼 아비담마에서는 자상 혹은 고유성질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해서 이렇게 멋지게 법들의 차이를 설명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께서는 선법․불선법의 판단을 수행의 요체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37보리분법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 가운데 두 번째 구성요소가 바로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이다. 경은 택법각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유익하거나 해로운 법들, 나무랄 데 없는 것과 나무라야 마땅한 법들,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과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법들, 고상한 것과 천박한 법들, 흑백으로 상반되는 갖가지 법들이 있어 거기에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기를 많이 [공부]지으면 이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일어나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늘리고 드세게 만들고 수행을 성취하는 자양분이다.”(본서 제5권「몸 경」(S46:2) §12)
그리고 이러한 택법은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과 직결되고 이것은 팔정도의 여섯 번째인 정정진(正精進)의 내용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sammappadhāna]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닦아서 성취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본서 제5권「동쪽으로 흐름 경」(S49:1) §3)
이처럼 법을 내안에서 정확하게 구분하여 아는 것이 바로 바른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도 없이 해탈․열반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로또복권의 논리일 뿐이다.
물론 아비담마는 고유성질(sabhāva)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여 제법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분류하고 있지만, 법들의 성질의 차이에 따라 제법을 온․처․계․근․제․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하신 것은 바로 우리 세존 부처님이시며, 위에서 지적했듯이 본 니까야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비담마의 이러한 방법론은 초기불교에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불교 2600년사의 모든 학파에서 그대로 채용되었다. 북방 아비달마에서, 반야부에서, 유식에서 그리고 화엄에서도 강조하고 강조하는 법들의 분류 기준이다. 반야부에서도 자상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역자가 CBETA로 확인한 것이다.
③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역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말한다.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는 왕기사 존자는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 -bhajjaṁ) 설하시는 분”(S8:8) {742}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이 위밧자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 불렀다. 게다가 초기불교의 기본 수행용어인 위빳사나야 말로 해체해서(vi) 보기(passanā)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체하는가? 개념[施設, paññatti]을 해체한다. 나라는 개념, 세상이라는 개념, 돈이라는 개념, 권력이라는 개념, 신이라는 개념을 해체한다. 이런 것들에 속으면 그게 바로 생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칭이나 언어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강조하셨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설해지는 조건 지어진 법들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 법들로 해체해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厭惡)하고 탐욕이 빛바래고[離慾]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들의 일관된 흐름임을 이미 본서 도처에서 보아왔다.
한국불교에는 초기불전에서 가장 절실하게 말씀하시는 이 해체해서 보기가 빠져버린 듯하여 실로 유감이다. 우리불교는 법으로 해체해서 보라는 부처님의 명령(sāsana)은 분별망상으로 치부하면서도, 초기불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불성과 여래장을 세우기에 급급하고, 본성자리를 상정한 뒤 그것과 하나 되려고 생짜배기로 용을 쓰고 있다. 해체하지 않고 무엇을 세우는 것은 비불교적인 발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설혹 해체해서 보지 않고 직관만으로 나와 세상을 공이라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해체를 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외도의 자아이론(아상)이나 진인이론(인상)이나 영혼이론(수자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해체를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처럼 분석을 강조하던, 반야중관처럼 직관을 강조하던, 화엄처럼 종합을 강조하던, 그것은 불교적 방법론인 해체에 토대해야 할 것이다. 해체의 토대를 튼튼히 한 뒤에 직관과 종합을 해도 늦지 않다. 해체의 기본기에는 아예 무지한 채 법계장엄부터 하려드는 것은 아직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장가부터 보내려는 조급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발상 아닌가. 위에서 밝혔듯이 직관을 강조하는 반야부의 여러 경들조차 해체 끝에 드러나는 법의 자성(自性) 혹은 자상(自相)을 강조한다. 이런 토대위에 그들은 법의 무자성과 공의 직관을 다그치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뭉쳐두면 속고 해체해야 깨닫는다. 법들로 해체해서 보라.’이다. 뭉쳐두면 개념(paññatti)에 속고 법(dhamma)으로 해체하면 깨닫는다.
④ 무상․고․무아가 드러남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법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두 번째 단계이다. 개념적 존재(빤냣띠)로 뭉뚱그려두면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아니 진인이니 영혼이니 중생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로 그대로 두고 보면 영원불변하는 자아나 진인이나 영혼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을 색․수․상․행․식이나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과 안식․이식 … 등으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이나 고나 무아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법이든 유위법들은 모두 다 이 무상․고․무아라는 세 가지 공통되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의 특징 중의 특징이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sabbe saṅkhārā aniccā].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로움이다[諸行皆苦, sabbe saṅkhārā dukkhā]. 모든 법들은 무아다[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라고『법구경』(Dhp.40 {277∼279})과『앙굿따라 니까야』「출현 경」(A3:134)과『맛지마 니까야』「짧은 삿짜까 경」(M35) 등은 강조하고 있으며, 괴로움 부분을 제외한 구절이 본서「찬나 경」(S22:90)과「자신을 섬으로 삼음 경」(S22:43)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법들의 무상․고․무아를 아비담마에서는 보편적 성질(sāmañña-lakkhaṇa)이라 부르고 이것을 중국에서는 공상(共相)으로 옮겼다. 그리고 북방아비달마, 반야․중관, 유식과 화엄에서도 그대로 다 채용해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법의 보편적 성질 즉 공상(共相)인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써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또한 모든 불교사 흐름의 공통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무상․고․무아를 볼 것인가? 초기불전에서는 팔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조도품)을 강조한다. 이것은 본서 Ee, Be, Se의 제5권 즉 본 한글 번역의 제5권과 제6권에 S45∼S51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수행의 전문적 방법에 따라서 사마타[止]와 위빳사나[觀]로도 나눌 수 있고, 염․정․혜(念․定․慧, 마음챙김․삼매․통찰지)로도 나눌 수 있고, 계․정․혜 삼학으로도 나눌 수 있고, 더 확장하면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5법온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이것이 초기불전에서 강조하고 강조하는 구체적인 수행법들이다.
⑤ 자상(自相)을 통한 공상(共相)의 확인
초기불전에서 세존께서 강조하고 계신 교학과 수행체계는 아비담마의 용어를 빌어서 설명하자면 자상-공상-해탈의 세 가지 단계로 정리가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자상-공상-해탈의 이러한 세 가지는 이미 초기불전의 중심 교학으로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빼버리면 초기불전에 남는 것은 덕담이나 도덕적인 삶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등의 가르침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정도로 초기불교 교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수행법으로는 37보리분법으로 도처에서 정리되어 나타난다. 이런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불교가 불교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는 이미 인천교(人天敎)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후대의 불교들도 강조점에는 차이가 나지만 모두 이런 교학과 수행 체계를 받아들여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불교라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특히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는 ‘자상(自相)을 통한 공상(共相)의 확인’이라 정리된다. 고유성질의 특징(자상)에 따라서 법들을 분류하고 이들 가운데 특정 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공상)를 통찰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비담마․아비달마는 현장스님이『구사론』에서 대법(對法)이라 번역하였듯이 ‘법에 대해서’를 강조하기 때문에 제법의 자상에 따른 분류를 중시하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분류하는 것은 무상․고․무아의 공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기본에 깔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교학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는 여기에 투철하다.
물론 북방 아비달마 체계 가운데 가장 강력하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in)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一切有, sarvāsti].’는 부파의 명칭이 보여주듯이 제법의 자상(고유성질)을 확인하는 것을 엄청나게 강조하였다. 북방 아비달마 체계뿐만 아니라 모든 북방 대승불교 교학의 도구서적이 되는『아비달마 구사론』은 고․집․멸․도의 사성제의 입장에서 제법을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제법의 모습과 성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고성제와 그 원인이 되는 집성제에 초점을 맞추어 제법의 자상 혹은 고유성질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상․고․무아의 보편적 성질 즉 공상(共相)을 무시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열반과 열반을 실현하는 도닦음(각각 멸성제와 도성제)도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조점의 차이일 뿐이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는 모두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해탈․열반의 실현을 강조하지 않는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렇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거나, 자기 학파의 논리만을 내세우는 옹졸한 사람일 뿐이고 상대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는, 정말 상식이 없는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역자가 너무 심한 표현을 한 것일까?
아비담마․아비달마 특히『아비달마 구사론』에서 보듯이 북방 아비달마가 이처럼 제법의 자상의 입장을 너무 많이 강조했기 때문에 반야부 특히 용수의『중론』은 제법무아로 특징지어지는 공상(共相)을 치우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반야부의 경들에도 제법의 자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상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법들의 구분이나 차이나 분류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야․중관은 단지 공상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용수의『중론』은 공상의 입장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다. 자상을 이야기하면 실유(實有)를 이야기하는 것이 되어 외도의 가르침이라는 듯이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비달마가 자상을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기 위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자상을 실유라고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전 어디에도 법을 실유라고 설하지 않는다. 중관학파들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아비달마를 비하하고 스스로를 큰 가르침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이 임의로 지어낸 이론일 뿐인 셈이다.
⑥ 가유(假有)라거나 실유(實有)라는 방법론으로 봐서는 안된다
초기불교부터 아비담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나 직계제자들은 법을 가유니 실유니 하는 기준으로는 절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아비담마에서는 법의 찰나생․찰나멸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찰나생이기 때문에 단견(斷見, 단멸론)이 아니고 찰나멸이기 때문에 상견(常見, 상주론)이 아니다. 이처럼 유위법들을 일어남과 사라짐의 입장에서 관찰하였지 결코 있다 없다는 관점에서 관찰하지 않았다. 본서 제2권「깟짜나곳따 경」(S12: 15)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한 없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한 있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세상과 제법을 보지 않으면 있다거나 없다는 유․무의 상견이나 단견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찰나생․찰나멸은 상속(相續, santati)한다. 제법의 상속을 말하지 않으면 이것은 또한 엄청난 단견이 되고 만다. 한 순간에 멸하고(찰나멸) 다시 일어나지 않는데 세상은 왜 존재하고 있는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세상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허망한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법으로 해체해서 보실 것을 강조하셨지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허망하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일부 초기불전들을 이상하게 들이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일 뿐이다.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본서「육처 상윳따」(S35)의「일체 경」(S35:23)과「세상 경」(S35:82) 등의 도처에서 12처라는 법들을 일체(sabbe)라고 세상(loka)이라고 강조하고 계시지 않는가? 이 일체로 표현되는 혹은 온․처․계․근․제․연으로 설명되는 존재나 세상은 찰나생멸의 상속(흐름)이 아니고서는 불교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찰나생․찰나멸과 상속은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고 과학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대승의 아비달마인 유식은 찰나와 상속을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은 무위법(열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무위법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법(假法)이나 가유(假有)라는 논리를 세워서 부정해버리면 그것은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면 구세대비의 종교는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이론이나 주장이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 마련이고 떠돌이는 곧 망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으로 해체된 상태는 결코 가유라거나 실유라는 방법론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법에다 아공법유(我空法有)니 아공법공(我空法空)이니 하는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서 법을 바라보고 이전 불교를 비판한다. 이것은 일부 대승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만일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이전 불교를 비판한다면 대승은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 부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은 기준을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서 부처님까지도 소승이나 외도로 비판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관학파를 비롯한 일부 대승에서 중도를 빙자하여 극단적인 이론을 전개하자 다시 유식이 등장하여 자상(고유성질)을 포용하고 있다. 이 입장은 아비담마의 입장과 같다. 물론 유식에서는 제법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겠지만 제법을 아뢰야식이라는 마음의 현현으로 설명하고 그래서 아뢰야식의 찰나생․찰나멸을 통한 전변(轉變, parināma)과 흐름을 통해서 무상․고․무아 특히 무아를 확인하려 한다. 그 확인방법으로 자량위(資糧位) 등의 다섯 단계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이라는 아비담마의 입장은 잘 계승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법의 고유성질(자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교는 전개되지 않는다. 오온의 서로 다른 점, 12처의 서로 다른 점, 12지 연기의 서로 다른 점, 제법의 서로 다른 점은 고유성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들을 명쾌하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적인 태도를 버려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곤란하지 않은가?
그리고 누가 뭐라면 쁘라상기까(Prasaṅgika), 좋게는 귀류논증(歸謬論證)이지만 속된 말로 하자면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는 그런 논법으로 상대의 의견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의 의견을 부정하면 내가 해탈이 되는가? 아니다. 괴로움을 말하면 중관적인 입장에서는 괴로움은 본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분명 괴로움을 강조하셨고, 고성제 안에 오온을 말씀하셨고, 모든 유위법들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괴로움이 본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괴로움이 없어지는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역자부터 밖에 나가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와 무명을 말하면 이것도 본래 없다고 한다. 본래 없다는 말로 갈애와 무명이 해결되는가? 아니다.
할 말은 너무 많지만 이것으로 줄이려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은 분명히 고․집․멸․도를 불교의 진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방편설이라는 말씀은 초기불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개념적 존재(paññatti)가 아닌 법(dhamma)을 두고 방편이니 승의제(勝義諦)니 공(空)이니 가(假)니 중(中)이니 가유(假有)니 실유(實有)니 하는 희론(papañca)은『중론』이나 반야부 스스로가 지어낸 정말 희론에 지나지 않는 관점이 아닐까 염려해 본다. 부디 이러한 후대의 오히려 편협한 입장으로 초기불전을 대하지 말라고 역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⑦ 찰나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찰나는 상주론도 아니고 단멸론도 아님을 살펴보자.
아비담마․아비달마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찰나를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단위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이미 찰나는 일어남[生, uppā -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n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4장 §6과 해설 참조) 서양에서는 이것을 sub-moment라고 옮기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아찰나(亞刹那)’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아찰나라는 술어는 주석서의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찰나는 전문술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아비달마 구사론』도 이러한 찰나의 일어남과 머묾과 무너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이것은 고유성질이 없기 때문이다. 찰나를 아찰나로 쪼갤 수는 있고, 아찰나를 다시 아아찰나로 아아찰나는 다시 아아아찰나로 … 이렇게 쪼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아찰나로 쪼개버리면 법이 가지는 고유성질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전문술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관점이며 아비담마 논사들이 법을 대하는 엄정하고 치열한 자세이다. 그러므로 불교사의 적통이라고 자부하는 상좌부에서의 찰나는 절대로 상주론이 아니다. 찰나도 이미 흐름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 중관학파의 가유나 가법의 입장과 거의 같은 입장이겠지만 상좌부에서는 이런 찰나생․찰나멸의 법들을 두고 가유니 실유니 하는 관점에서는 관찰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찰나는 당연히 조건발생 즉 연이생(緣而生)이다. 그리고 전찰나의 법이 멸하면 바로 다음 찰나의 법이 조건발생한다. 그러므로 단멸론도 절대로 될 수 없다. 이것을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는 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 하여 아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전찰나가 멸하면 후찰나로 흘러간다. 그러니 법은 단멸론도 상주론도 아니다. 아비담마는 이렇게 법들을 찰나와 흐름으로 멋지게 설명해낸다.
이런 것을 상주론이니 단멸론이니 하는 양도논법으로 왈가왈부하려는 것은 초기불교부터 전개되는 불교교학의 기본입장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오히려 극단적이고 외도들이나 좋아할 만한 방법론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⑧ 한국불교에 거는 기대
역자가 반야․중관의 입장을 조금 비판했다고 해서 역자가 일방적으로 반야․중관을 폄하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역자는 반야․중관의 직관을 좋아하고 존중한다. 무아의 천명이 없으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기 때문이며, 지금 논의하고 있듯이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야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이루어져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깨달음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교학의 기본전제를 무시한 ‘오직 직관’은 곤란하다고 본다. 역자는 오히려 초기불교의 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을 불교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에 대한 더 멋진 설명으로 본다. 한국불교가 이러한 자상의 입장을 더 분명히 수용할 때 반야․중관에 토대한 직관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역자는 확신한다.
4.「느낌 상윳따」(S36)
서른여섯 번째 주제인「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S36)에는 느낌과 관계된 31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제1장「게송과 함께 품」에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고, 제2장「한적한 곳에 감 품」에는 10개의 경들이, 제3장「백팔 방편 품」에는 11개의 경들이 담겨 있다.
느낌[受, vedanā]은 오온의 두 번째로도 나타나며 우리의 감정적․정서적․예술적인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이다.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심리현상들 예를 들면 탐욕이나 성냄이나 희열 등은 느낌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온의 심리현상들[行]에 속한다. 그래서 느낌을 감정적․정서적인 ‘단초(端初)’가 되는 심리현상이라 표현한 것이다.
경들에 의하면 느낌에는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래서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는 모두 이렇게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느낌이다.”(「삼매 경」(S36:1) §3 등)
본 상윳따의 몇몇 경에 의하면 이 가운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수승한 느낌이다. 그래서 본서「버림 경」(S36:3)은 이렇게 읊고 있다.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광대한 통찰지를 가진 자 그것을 평화롭다 가르치지만
그것 또한 맛들여 매달린다면
결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버림 경」(S36:3) §5)
그리고 여러 경에서 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S36:19 §15 등)라고 하여 제4선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삼매체험이 없는 일반사람들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빤짜깡가 경」(S36:19)에 의하면 목수 빤짜깡가는 세존께서는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의 두 가지만을 설하셨다고 주장하고 있으며(§4), 세존께서는 “방편에 따라 느낌들을 두 가지로 설했고, 느낌들을 세 가지로 설했으며, 다섯 가지로, 여섯 가지로, 열여덟 가지로, 서른여섯 가지로, 때로는 백여덟 가지로 설하기도 했다.”(§10)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비담마에서는 이들 각각의 느낌에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여 육체적 즐거움[樂, sukkha], 육체적 괴로움[苦, dukkha], 정신적 즐거움[喜, somanassa], 정신적 괴로움[憂, domanassa], 평온[捨, upekkhā]의 다섯으로 분류하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3장 §2를 참조할 것.)
한편 이 다섯은「백팔 방편 경」(S36:22 §6)에도 나타나고 있고, 본서 제5권「기능 상윳따」(S48)의 제4장「즐거움의 기능 품」에 담겨있는 열 개의 경들(S48:31∼40)에서 22가지 기능들 가운데 다섯 가지로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들의 차이점은 본서 제5권「분석 경」1/2(S48:36∼37)에서 설명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어떤 느낌이든 그것을 괴로움으로 알아서 느낌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마저도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그 어떤 느낌에 접하든 간에
그 모두를 괴로움으로 아나니
거짓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들이 부딪치고 또 부딪쳐왔다가
사라져 가는 양상을 지켜봄으로써
거기서 탐욕이 빛바래도다.”(「행복 경」(S36:2) §4)
그리고 본서「간병실 경」1(S36:7) 등에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신다. 이렇게 머물면 몸과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사라지고, 몸과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사라지고, 몸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한편「아난다 경」1(S36:15)에서는 4禪-4처-상수멸의 아홉 가지 차례대로 증득하는 삼매[九次第定]를 언급하신 뒤, 이러한 삼매를 통해서 진행되는 ‘형성된 것들[行]이 차례로 소멸함(nirodha)’, ‘형성된 것들이 차례로 가라앉음(vūpasama)’, ‘형성된 것들이 차례로 고요해짐(passaddhi)’을 설하고 계시는데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빤짜깡가 경」(S36:19)에서 세존께서는 ‘앞의 것을 능가하는 한결 수승한 다른 즐거움’으로 역시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4선과 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4처와 상수멸의 아홉 가지를 들고 계신다. 이 아홉 가지 삼매의 경지는 차례대로 앞의 삼매의 경지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한 즐거움이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세존께서는 스스로, “그런데 아난다여,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사문 고따마는 인식과 느낌의 소멸을 설한다. 그리고서는 그것을 다시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신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신 뒤에, 그에게는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즐거운 느낌만을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래는 즐거움이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얻어지건 간에 즐거움이라고 천명하십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으신다.(§21)
5.「여인 상윳따」(S37)
서른일곱 번째인「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S37)에는 34개의 짧은 경들이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제1장「첫 번째 반복 품」과 제2장「두 번째 반복 품」과 제3장「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품에는 14개, 10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
본 상윳따의 경들 가운데 세 가지 성질을 가진 여인을 언급하는「세 가지 법 경」(S37:4)을 제외한 33개의 경들은 모두 여인이 가진 요소나 특질이나 성질이나 힘 등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의 33개의 경들은 숫자별로 경을 결집하고 있는『앙굿따라 니까야』「다섯의 모음」(A5)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가운데 S37:5∼24의 20개 경들은 세존께서 아누룻다 존자에게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S37:5∼14까지의 열 개의 경들은 “다섯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어두운 면’에 대해서 설하신 것이고, S37:15∼24까지의 열 개의 경들은 반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나는” ‘밝은 면’에 대해서 설하신 것이다.
6.「잠부카다까 상윳따」(S38)
서른여덟 번째인「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S38)에는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인 잠부카다까 유행승(Jambukhādaka pari- bbājaka)과 관계된 16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들 각각의 경은 특정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사리뿟따 존자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16개 경에 나타나는 주제는 ① 열반 ② 아라한됨 ③ 설법자 ④ 무슨 목적 ⑤ 안식(安息) ⑥ 최상의 안식 ⑦ 느낌 ⑧ 번뇌 ⑨ 무명 ⑩ 갈애 ⑪ 폭류 ⑫ 취착 ⑬ 존재 ⑭ 괴로움 ⑮ 자기 존재 ⑯ 행하기 어려움이다.
잠부카다까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들 주제에 대해서 “‘열반,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S38:1)라거나, “‘폭류, 폭류’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폭류입니까?”(S38:11)라는 등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나타나는 중요 술어들의 정확한 정의를 질문 드리고, 사리뿟따 존자는 정확하게 이들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 그는 이러한 경지를 실현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질문드리고, 사리뿟따 존자는 “도반이여,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하기 위한 도이고 이것이 도닦음입니다.”라고 팔정도로서 답변하고 있다.
그러면 유행승은 “도반 사리뿟따여, ~하기 위한 이러한 도는 참으로 경사로운 것이고 이러한 도닦음은 참으로 경사로운 것입니다. 참으로 그대들은 방일하지 말아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경은 끝이 난다.
16개의 경들은 모두 이런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경에서 팔정도가 강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 본서 제5권의「도 상윳따」(S45)의 하나의 품으로 포함시켜도 된다.
7.「사만다까 상윳따」(S39)
서른아홉 번째 주제인「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S39)에 포함된 16개의 경들은 사만다까 유행승과 사리뿟따 존자와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경들은 앞의「잠부카다까 상윳따」(S38)의 16개의 경들과 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러 판본에서도 이 부분은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을 생략하였다.
물론 본 상윳따의 경들도 모두 팔정도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도 본서 제5권의「도 상윳따」(S45)의 하나의 품으로 포함시켜도 된다.
8.「목갈라나 상윳따」(S40)
마흔 번째인「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S40)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11개의 경을 담고 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부처님의 상수제자들 가운데 신통제일이라 불리는 분이다. 불교의 신통은 모두 삼매 특히 제4선을 토대로 하여 나타난다. 그러다보니 마하목갈라나와 관계된 경을 모은 본 상윳따에서도 처음의 여덟 개 경들은 각각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삼매에 관한 것을 담고 있으며, 아홉 번째 경도 표상 없는 삼매에 관한 것이다.
한편 열 번째와 열한 번째 경은 신들과의 문답을 담은 경이다. 초기불전의 몇몇 군데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천상의 신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경책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나타난다. 이것도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제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가운데「삭까 경」(S40:10)은 목갈라나 존자가 신통력으로 삼십삼천에 가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삼보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계를 구족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여러 문맥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열한 번째는 신의 아들 짠다나와 신의 아들 수야마와 신의 아들 산뚜시따와 신의 아들 수님미따와 신의 아들 와사왓띠와의 대화를 담은 경인데 내용은 바로 앞의 삭까 경과 같다. 내용상 이 경은 다섯 개의 경으로 즉 S40:11∼15로 편집되어도 무방하겠지만 Ee, Be, Se에 모두 하나의 경으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수야마(Suyāma)와 산뚜시따(Santusita)와 수님미따(Sunimmita)와 와사왓띠(Vasavatti)는 각각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을 관장하는 신이다.
짠다나(Candana)는 본서 제1권「짠다나 경」(S2:15)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대회경」(D20 §11)에는 사대왕천의 약카로 나타나고 있으며,「아따나띠야 경」(D32 §10)에는 ‘약카들과 큰 약카들과 약카들의 장군들과 대장군들’로 언급되고 있는 40명의 신들 가운데 인드라와 함께 포함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짠다나는 사대왕천의 유력한 신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타당하다. 왜냐하면 삭까(인드라)가 삼십삼천을 관장하는 신이므로 짠다나가 사대왕천에 속하는 신이 되어야 S40:11∼12는 여섯 욕계 천상(육욕천)을 관장하는 신들이 모두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찬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9.「찟따 상윳따」(S41)
마흔한 번째 주제인「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S41)에는 찟따 장자(Citta gahapati)와 관계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6-3)에서 세존께서는 찟따 장자를 재가자들 가운데서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언급하고 계신다.
본서 제2권「외동아들 경」(S17:23) §3에서 세존께서는 “내 청신사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라고 칭찬하고 계시며『앙굿따라 니까야』제1권「발원 경」3(A2:12:3)과 제2권「포부 경」(A4:176 §3)에서도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 신도로 거명되고 있다. 본 상윳따에는 그가 여러 장로 비구들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은 왜 부처님께서 그를 두고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된다.
특히 자이나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니간타 나따뿟따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니간타 나따뿟따 경」(S41:8)에서 니간타가 “장자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 하는 것을 믿습니까?”라고 하자 “존자시여, 저는 세존께서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고 하신 것을 믿음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뒤에 그는 네 가지 선을 모두 증득하였기 때문에 믿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득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41:9)에서 자신의 오랜 친구였으며 나체 수행자가 된 나체수행자 깟사빠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를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출가하도록 인도하였고 그리하여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아라한이 되었다.
10.「우두머리 상윳따」(S42)
마흔두 번째인「우두머리 상윳따」(Gāmaṇi-saṁyutta, S42)에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10명과 세존께서 나눈 대화를 담은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① 짠다 ② 딸라뿌따 ③ 요다지와 ④ 핫타로하 ⑤ 앗사로하 ⑥ 아시반다까뿟따 ⑦ 들판 비유 ⑧ 소라고둥 불기 ⑨ 가문 ⑩ 마니쭐라까 ⑪ 바드라까 ⑫ 라시야 ⑬ 빠딸리야이다.
이 가운데「딸라뿌따 경」(S42:2)은 연극단장인 딸라뿟따와의 대화를 담은 경이며,「요다지와 경」(S42:3)은 용병 대장 요다지와와,「핫타로하 경」(S42:4)은 코끼리 부대의 우두머리 핫타로하와,「앗사로하 경」(S42:5)은 기마부대의 우두머리인 앗사로하와의 대화를 담은 경이다. 그리고「아시반다까뿟따 경」(S42:6),「들판 비유 경」(S42:7),「소라고둥 불기 경」(S42:8)과「가문 경」(S42:9)의 넷은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 외「짠다 경」(S42:1)부터「마니쭐라까 경」,「바드라까 경」,「라시야 경」,「빠딸리야 경」의 나머지 다섯 경들은 각각 다른 촌장들과 대화를 나눈 경인데 이 경들의 제목이 그 촌장들을 나타낸다. 한편「딸라뿌따 경」(S42:2)에 나타나는 딸라뿌따라는 연극단장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그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인데, 특히「라시야 경」(S42:12)과「빠딸리야 경」(S42:13)은 상대적으로 길이가 아주 길다.
「라시야 경」은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를 ①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는가 ②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아닌가 ③ 남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아닌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나눈다. 그리고 다시 이 세 가지 기준 모두에 긍정적인 사람은 다시 그 재산에 집착하는가, 아닌가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10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눈다. 그리고 다시 이를 토대로 비난 받는가, 비난 받지 않는가라는 기준으로 10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모두 20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도 ① 유익한 법[善法]을 증득했는가, 증득하지 못했는가 ②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했는가, 실현하지 못했는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세 가지 풀려남을 설명하고 있다.
11.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4권에는 423개의 경들이 10개의 상윳따로 분류되어서 나타나고 있다.『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전통적으로 육처를 위주로 한 책 혹은 가르침이라 불려왔다. 육처(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은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에서 초기불교의 6개 기본 교학으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가운데 두 번째와 세번째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육처 상윳따」(S35)에는 248개나 되는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길이가 긴 경들도 다른 상윳따들에 비해서 많이 들어 있다. 그러면 왜 부처님께서는 육처의 가르침을 이처럼 많이 설하셨을까?
육처는 ‘세상이란 무엇인가?’라거나 ‘어떤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인가?’라는 인간들이 가지는 또 다른 의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이란 모두 안과 밖이 만나는 것 — 즉 눈이 형색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몸이 감촉과, 마노가 법과 조우하고 부딪히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육처의 가르침을 통해서 강조하고 계신다. 세상이니 존재니 일체니 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문제를 떠나서는 나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세상과 이러한 일체 존재를 무시하고, 저 밖으로 세상을 만든 자나 세상의 기원을 찾아서 헤매고 있거나, 안으로 침잠해서 불변하는 영원한 실체 — 그것이 자아(아뜨만)든 개아든 영혼이든 불성이든 여래장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 를 상정하고 그것을 일체로 삼고 근원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
세존께서는 존재와 세상을 이렇게 안과 밖의 감각장소로 해체해서 간단명료하게 제시하셨고 이렇게 해서 무아를 천명하셨다. 본서 제2권이 나라는 존재를 12연기로 대표되는 연기의 흐름으로 해체해서 무아를 천명하신 가르침을 중심에 두고 있고, 제3권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로 해체해서 무아를 천명하시는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여기 제4권은 나라는 존재를 안과 밖의 감각장소들(육내외처, 12처)이 만나고 부딪혀서 전개되어가는 것으로 파악하여 이것을 통해서 무아를 천명하는 가르침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안과 밖의 부딪힘으로 파악하여, 눈․귀․코․혀․몸․마노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12가지 감각장소들이나, 마노에서 다시 안식․이식․비식․설신․신식․의식을 분리해서 18가지 요소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이고, 그래서 이를 발판으로 존재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하고, 해탈하면 태어남이 다했다는 구경해탈지가 생긴다고 본서의 도처에서 부처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신다. 이처럼 육내외처 혹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 혹은 12처의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제4권의 핵심 가르침이다. 물론 여기서도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는 각각 강한 위빳사나-도-과-반조를 뜻한다고 주석서들은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본서「무명 경」(S35:53) 등에서 눈․귀․코․혀․몸․마노의 안의 감각장소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밖의 감각장소와, 이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와 여섯 가지 감각접촉과 여섯 가지 느낌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알고 보면, 무명이 제거되어 명지가 일어나고(S35:53) 족쇄들이 제거되고(S35:54) 번뇌들이 뿌리 뽑히고(S35:55) 잠재성향들이 뿌리 뽑힌다(S35:54)고 말씀하고 계신다.
『상윳따 니까야』제4권을 읽는 모든 분들도 이처럼 세상과 존재와 일체를 모두 여섯 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들로 해체해서 알고 보아서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고 족쇄를 제거하고 번뇌와 잠재성향을 모두 뿌리 뽑기를 발원한다. 그래서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이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4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
<4권 목차>
제35주제 육처 상윳따(S35)
Ⅰ. 처음50개 경들의 묶음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Ⅲ.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Ⅳ. 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36주제 느낌 상윳따(S36)
제37주제 여인 상윳따(S37)
제38주제 잠부카다까 상윳따(S38)
제39주제 사만다까 상윳따(S39)
제40주제 목갈라나 상윳따(S40)
제41주제 찟따 상윳따(S41)
제42주제 우두머리 상윳따(S42)
<상윳따 니까야 제4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주제별로 모은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육처(六處,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위주로 한 10개의 주제들(saṁyutta)을 모은 것인데 이 가운데 첫 번째 상윳따가「육처 상윳따」(S35)이다. 이것은『청정도론』등의 주석서 문헌들에서 초기불교의 교학에 관한 여섯 가지 주제로 언급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 가운데 처[處]에 해당하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것이다. 경의 개수도 248개가 되고, 그 분량도 본서의 저본이 되는 Ee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4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며, 제4권 403쪽 가운데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전통적으로 아야따나 왁가(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 즉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라고 전승되어 왔다. 제4권의 중심에 제4권의 첫 번째 상윳따인「육처 상윳따」(S35)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역자는 본서를 번역하면서 Ee, Se, Be에서 공히 제4권에 포함되어 나타나는「무위 상윳따」(S43)와「설명하지 않음 상윳따」(S44)를 여기 제4권에 포함시키지 않고 제5권에 포함시켜 번역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책의 분량을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Ee, Se, Be 등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오는 대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면 제4권은 750쪽에 이르게 되고, 특히 37보리분법과 사성제 등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제5권은 1150쪽에 달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섯 권으로 전승되어오는 빠알리어『상윳따 니까야』의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모두 여섯 권으로 출판하고 있는데, 제4권에는 S35부터 S42까지의 여덟 개의 상윳따를 담고, 제5권에는 S43부터 S50까지의 여덟 개의 상윳따를, 제6권에는 나머지 S51부터 S56까지의 여섯 개 상윳따를 싣고 있다.
2. 제4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4권에는 모두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도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육처, 느낌, 여인, 무위, 무기 상윳따는 주제별로 모은 것이고 잠부카다까와 사만다까와 목갈라나와 찟따와 우두머리는 특정 인물 중심으로 모은 것이다.
본서에도 2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는 이 경들을 각각 열 개씩으로 나누어서 품(vagga)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품이 10개가 넘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품을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명칭으로 묶고 있다. 본서의 처음에 나타나는「육처 상윳따」(S35)도 이 편집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육처 상윳따」(S35)에는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S35:1부터 S35:52까지의 52개의 경들을「처음 50개 경들의 묶음」(Mūla-paññāsa)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있으며, S35: 53부터 S35:103까지의 51개의 경들은「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Dutiya-paññāsaka)으로, S35:104부터 S35:155까지의 52개의 경들은「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Tattiya-paññāsaka)으로, S35:156부터 마지막인 S35:248까지의 93개의 경들을「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Catuttha-paññāsaka)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면 먼저 제4권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상윳따를 개관해 보자.
제35주제「육처 상윳따」(Saḷāyatana-saṁyutta, S35)에는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六外處]와 관계된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본 상윳따를「육처 상윳따」라 부른다.
제36주제「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S36)에 포함된 31개의 경들은 모두 괴로운 느낌이나 즐거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것이다.
제37주제「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S37)에 포함된 34개의 경들은 여러 부류의 여인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제38주제「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S38)는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bhāgineyya)인 잠부카다까 유행승(Jambukhādaka paribbājaka)과 관계된 16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각각의 경들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사리뿟따 존자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제39주제「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S39)에 포함된 16개의 경들은 사만다까 유행승과 사리뿟따 존자와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경들은 앞의「잠부카다까 상윳따」(S38)의 16개의 경들과 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러 판본에도 이 부분을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을 생략하였다.
제40주제「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S40)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11개의 경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처음의 여덟 개 경들은 각각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삼매에 관한 것이고, 아홉 번째 경은 표상 없는 삼매에 관한 것이며, 열 번째는 신의 왕 삭까(인드라)와의 문답을 담은 것이고, 열한 번째는 신의 아들 짠다나와 신의 아들 수야마와 신의 아들 산뚜시따와 신의 아들 수님미따와 신의 아들 와사왓띠와의 대화를 담은 경인데 내용은 바로 앞의「삭까 경」과 같다.
제41주제「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S41)에는 찟따 장자(Citta gahapati)와 관계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 이 경들을 통해서 찟따 장자가 몇몇 초기불전에서 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 신도로 거명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겠다.
제42주제「우두머리 상윳따」(Gāmaṇi-saṁyutta, S42)에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특히 이 가운데 6명은 촌장들임) 10명과 세존께서 나눈 대화를 담은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그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제43주제「무위 상윳따」(Asaṅkhata-saṁyutta, S43)에는 4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처음의 12개 경들은 무위를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로 설명하고 있고 무위에 이르는 길로는 37보리분법의 각 항목 등 모두 45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S43:13∼44까지의 32개 경들은 무위의 동의어를 나열하고 있다. 역자는 본 상윳따를 제5권에 포함시켜서 번역하고 있다.
제44주제「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ākata-saṁyutta, S44)에는 모두 11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S44:6까지의 여섯 경들은 모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여래의 사후에 대한 네 가지 관심이 주제로 나타난다. 그리고 S44:7부터 마지막까지의 5개 경들은 ‘세상은 영원한가?’부터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까지의 소위 말하는 10사무기(十事無記)가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본 상윳따도 제5권에 포함시켜서 번역하고 있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육처 상윳따」(S35)
⑴ 육처란 무엇인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온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면 육처의 가르침은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온을 불교의 인간관이라 한다면 육처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육처 상윳따’는 Saḷāyatana-saṁyutta를 옮긴 말이다. 여기서 육처(六處, saḷāyatana)는 여섯 감각장소로 직역이 되며, 이것은 다시 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ajjhattika āyatana)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bāhira āyatana)로 구성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는 이 두 가지 감각장소가 모두 다 포함되어 있다. 세존께서는 이 안의 감각장소와 밖의 감각장소(대상)를 일체라고 정의하고 계시며, 이 12가지 외에 다른 일체는 세울 수 없다고 하신다.(「일체 경」(S35:23)) 그리고「세상 경」(S35:82)과「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S35:116) §12에서는 이 12가지야말로 세상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여기서 육처(六處, 여섯 감각장소)로 옮긴 원어는 saḷāyatana인데, 이것은 여섯을 뜻하는 saḷ과 장소[處]를 뜻하는 āyatana가 합성된 술어이다.
‘saḷ-’은 숫자 여섯을 뜻하는 산스끄리뜨 ṣaṣ/ṣat가 합성어의 처음에 올 때 saḷ-로 바뀐 것이다. 산스끄리뜨 ṣaṣ(여섯)는 빠알리에서는 cha로 정착이 되었지만 이 경우만 특별히 ‘saḷ-’로 정착이 되었다. 예를 들면 육신통은 chaḷ-abhiññā이지 saḷ-abhiññā가 아니다.
그리고 처(處) 혹은 감각장소로 옮긴 원어 āyatana는 ā(이리로) + √yat(to strech)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ā + √yam(to move)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되는 중성 명사이다. 불교 이전부터 인도 바라문교의 제의서(祭儀書, Brāhmaṇa) 문헌에 많이 나타나는 단어인데 거기서는 주로 제사지내는 장소를 아야따나라 부르고 있다. 물론 동물들의 서식지를 아야따나로 부르기도 하였다.『청정도론』XV.5에 의하면 아야따나에는 ① 머무는 장소(nivāsa-ṭṭhāna) ② 광산(ākara) ③ 만나는 장소(samosaraṇa) ④ 출산지(sañjāti-desa) ⑤ 원인(kāraṇa)의 다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쪽으로 온다는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入으로 번역하기도 하였고, 이 단어가 장소(base, sphere)의 의미로 쓰이므로 處라고 옮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2연기의 다섯 번째 구성요소인 saḷ- āyatana는 六入으로 옮겼으며, 눈의 감각장소[眼處, cakkhu-āyatana] 등과 형색의 감각장소[色處, rūpa-āyatana] 등의 육내․외처(12처)와, 공무변처(空無邊處 ākāsanañc-āyatana)부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neva -saññānāsaññ-āyatana)까지의 4처는 處로 옮겼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감각작용과 관계된 6입이나 12처는 ‘감각장소’로 옮기고 있으며 4처는 ‘장소’로 옮기고 있다.
안의 감각장소[內處, ajjhattika āyatana]와 밖의 감각장소[外處, bāhira āyatana]에서 ‘안[內]’은 ajjhattika를 옮긴 것이다. 이 술어는 adhi+atta +ika로 분석되는데 자신(atta)에 관계된(adhi) 것(-ika)이란 뜻이다. ajjhattika는 예외 없이 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 혹은 감각기관[六內處]을 지칭하는 술어로만 쓰인다. 반대로 ‘밖[外]’은 bāhir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밖에’를 뜻하는 부사 bāhi(Sk. bahir, bahis)의 2차곡용어이다. 곡용이 되어 산스끄리뜨 bahir의 -r가 살아난 형태로 된 것이다. 이 술어는 예외 없이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 혹은 감각대상[六外處]을 지칭하는 술어로만 쓰인다. 물론 여기서 법(dhamma)은 모든 의식의 대상과 모든 심소법들을 말하지만 마노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밖의 감각장소로 불린다.
여기서 여섯 감각장소[六處]로서의 ajjhattika-bāhira와 일반적인 안과 밖(나와 남)을 뜻하는 ajjhatta-bahiddhā는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른 존재들의 눈 등의 감각기관은 안의 감각장소(ajjhattika)이지만 그것은 남의 것 혹은 밖의 것(bahiddhika)이고, 내 몸의 색깔, 목소리, 냄새 등은 밖의 감각장소(bāhira)이지만 그것은 나의 것 혹은 안의 것(ajjhatta)이다.
한편 주석서는 왜 안이라고 밖이라고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안의 감각장소들[內入處, ajjhattikā āyatanā]’을 ‘안’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들에 대한 욕탐이 현저하게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을 집의 내부로 여기고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外入處, bāhirā āyatanā]’을 집의 부근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아내나 재산이나 재물이나 공덕과 같은 것에 대한 욕탐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나누어 가지자는 말만 들어도 거부하는 것처럼,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안의 것이라 불린다.
마치 사람들이 집의 부근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욕탐이 그렇게 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것도 억지로 막지 않는 것처럼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이것들은 밖의 것이라 불린다.”(SA.ii.356)
⑵「육처 상윳따」(S35)의 개관
본 상윳따에는 모두 248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19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 19개의 품은 다시 네 개의 50개 경들의 묶음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것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I.「처음 50개 경들의 묶음」
①「무상 품」- 12개 경 ②「쌍 품」- 10개 경 ③「일체 품」- 10개 경 ④「태어나기 마련인 법 품」- 10개 ⑤「무상 품」- 10개 경
II.「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⑥「무명 품」- 10개 경 ⑦「미가잘라 품」- 11개 경 ⑧「환자 품」- 10개 경 ⑨「찬나 품」- 10개 경 ⑩「여섯 품」- 10개 경
III.「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⑪「유가안은을 설하는 자 품」- 10개 경 ⑫「세상과 감각적 욕망의 가닥 품」- 10개 경 ⑬「장자 품」- 10개 경 ⑭「데와다하 품」- 12개 경 ⑮「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품」- 10개 경
IV.「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⑯「즐김의 소멸 품」- 11개 경 ⑰「60가지의 반복 품」- 60개 경 ⑱「바다 품」- 10개 경 ⑲「독사 품」- 10개 경
여기서 보듯이 제17장「60가지의 반복 품」에는「안의 무상에 대한 욕구 경」(S35:168)부터「안의 감각장소들의 무아 경」(S35:227)까지의 비슷한 구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짧은 분량의 60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의 품은 다른 상윳따의 품들처럼 대부분 1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드물게 11개나 12개를 포함한 것도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4개의 50개 경들의 묶음 속에 19개의 품이 들어 있고, 이들에는 다시 248개의 경들이 포함된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육처 상윳따」의 기본 구성이다.
⑶ 248개 경들의 분류
「육처 상윳따」의 248개 경들은 모두 안의 감각장소와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것은 크게 다음의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안의 감각장소만을 설하고 있는 경: 79개.
② 밖의 감각장소만을 설하고 있는 경: 64개.
③ 안팎의 감각장소를 다 설하고 있는 경: 105개.
역자는 이들 248개 경들을 다시 다음의 기준으로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기준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로 정형화되어 있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제2권과 제3권에서 살펴보았듯이 불교의 기본 교학인 연기의 가르침과 오온 등의 가르침에서도 이 ‘태어남은 다했다. …’라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강조되어 나타났다. 본「육처 상윳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이런 기준을 정한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무상․고․무아다. 이미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 등에서도 살펴봤지만 오온의 가르침은 무상․고․무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본「육처 상윳따」(S35)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무상․고․무아를 포함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개나 되는가를 조사해 본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248개 경들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서로 중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래 분류에서 보듯이 ③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설하는 39개의 경들과 ④ 무상․고․무아를 설하는 경 43개와 ⑤ 무상만 설하는 38개 속에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①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를 설하는 경들: 118+2(이 정형구가 조금 다른 것) = 120 개
㉠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62개
Ⓐ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30개-2(구경해탈지의 정형구만 다름) =28개.
Ⓑ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S35:32, 62, 73∼75, 86,89, 105, 108, 121, 150의 11개.
Ⓒ 무상․고․무아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23개. 이 가운데 S35:28, 29, 154, 155, 186∼203, 235의 23개는 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있음.
㉡ 사량 없음과 취착 없음을 통한 구경해탈지: S35:30~31, 90~91의 4개.
㉢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한 구경해탈지: S35:74∼75, 204∼221의 20개.
㉣ 바로 구경해탈지을 설함: 32개 = S35:64, 140∼145(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바로 구경해탈지로), 153, 204∼221(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와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이 나타난 뒤에 바로 구경해탈지로), 222∼227(무상․고․무아 가운데 하나만 나타나고 바로 구경해탈지로) = 1+6+1+18+6=32개.
② 위의 정형구 없이 해탈을 설하거나, 바른 견해-염오-이욕-즐김의 소멸-해탈을 설하는 경들: 12개 = S35:15∼20, 60∼61, 156∼159
③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이 나타나는 경들: 39개 = S35:1∼12, 30∼31, 71∼72, 74∼75, 87, 90∼91, 204∼221
④ 무상․고․무아를 설하는 경들: 43개 = S35:1, 4, 7, 10, 32∼52, 60∼62, 73∼75, 86, 89, 105, 108, 121, 150, 204∼206, 213∼215
⑤ 무상만을 설하는 경들: 38개 = S35:53, 54, 56, 58, 76, 79, 93, 99, 100, 140, 143, 147, 156∼162, 165∼170, 177∼179, 182, 186∼188, 195∼197, 222, 225, 235
⑥ 괴로움만을 설하는 경들: 33개 = S35:19∼22, 26∼27, 67, 77, 81, 88, 94, 106, 111∼113, 141, 144, 148, 152, 163, 171∼173, 180∼181, 189∼191, 198∼200, 223, 226
⑦ 무아만을 설하는 경들: 31개 = S35:3, 6, 12, 55, 57, 59, 78, 142, 145, 149, 164, 174∼176, 183∼185, 192∼194, 201∼203, 210∼212, 219∼221, 224, 227
⑧ 괴로움과 무아만을 설하는 경들: 11개 = S35:2, 5, 8, 9, 11, 207∼209, 216∼218
⑨ 6내처-6외처-6식-6촉-6수에 바탕한 세 가지 느낌으로 나타나는 경들: 71개 = S35:28∼62, 76∼86, 89∼91, 99∼102, 121, 129∼130, 147∼152, 160∼167, 235
⑩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일체라고 설하는 경들: 29개 =「일체 경」(S35:23),「버림 경」1/2(S35:24∼25)와「불타오름 경」(S35: 28)부터「무상 경」등(S35:43∼52)까지를 합한 29개 경들
⑪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를 세상이라고 설하는 경들: 6개 =「사밋디 경」4(S35:68),「세상 경」(S35:82) 등
⑫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로 나타나는 경들: 7개 =「통달하여 철저하게 앎 경」(S35:60),「종식 경」1 (S35:61),「쌍(雙) 경」2(S35:93),「괴로움 경」(S35:106),「세상 경」 (S35:107),「유심히 들음 경」(S35:113),「우다이 경」(S35:234)
⑬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달콤함․위험함․벗어남을 설하는 경들: 6개 = S35:13∼18
⑭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일어남․사라짐․달콤함․위험함․벗어남을 설하는 경들: 4가지 = S35:71∼73, 103
⑷ 각 분류의 특징
①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118+2=120개 경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키나자띠, khīṇa jāti)을 선언하는 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포함되어 있다. 제3권의 해제에서 살펴봤듯이 이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이다. 그리고「통달하여 철저하게 앎 경」(S35:60)과「종식 경」1(S35:61)의 두 경은 염오․이욕․해탈까지는 같고 다만 위 정형구 대신에 “해탈하면 ‘나는 취착을 통달하여 철저하게 알았다.’라고 꿰뚫어 안다.”라고 나타나는 것만이 다르다. 그래서 이 두 개 경들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② 무상․고․무아의 정형구
한편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고․무아 셋 다 나타나는 경은 43개이며, 무상만이 나타나는 것은 38개, 괴로움만이 나타나는 것은 33개, 무아만이 나타나는 것은 31개, 그리고 괴로움과 무아만 나타나는 것이 11개이다. 이렇게 하여 156개 정도의 경이 안의 감각장소나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이나 괴로움이나 무아를 천명하고 있다.
③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이 가운데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포함되어 나타나는 경은 모두 28개 정도가 있다. 경들에 나타나는 이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
마노[意]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대상인] 법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리고 위의 정형구 앞에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 괴로움이다. … 무아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 괴로움이다. … 무아다.”라는 등으로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고․무아와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설하는 경들이 S35:222를 위시하여 모두 28개 정도가 된다.
물론 이 정형구는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의 도처에 나타나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와도 같다. 다만 그곳에서는 오온이 나타나고 여기서는 육내외처가 나타나는 것만이 다르다.
④ 무상․고․무아 문답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모두 11개 경들에서 나타난다. 이 정형구도 이미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의「소나 경」1(S22:49 §5 이하) 등의 여러 곳에서 오온에 대한 무상․고․무아의 문답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로 많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육처에 대해서 적용되고 있는데 경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
마노[意]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 귀에 대해서도 … 코에 대해서도 … 혀에 대해서도 … 몸에 대해서도 … 마노[意]에 대해서도 … [마노의 대상인] 법에 대해서도 …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에 대해서도 …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환자 경」1(S35:74) §7 이하 등)
⑤ 무상․고․무아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
한편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는 무상․고․무아가 없는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가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세 번째 설법이요 가섭 삼형제의 제자들이었다가 가섭 삼형제와 함께 부처님 제자가 된 1000명의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으로 잘 알려진 본서「불타오름 경」(S35:28)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는가?
눈은 불타오르고 있다. 형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는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탄식과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과 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
마노[意]는 …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불타오름 경」(S35:28) §§3~5)
⑥ 사량 않음과 취착 않음을 통한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그는 일체를 사량하지 않고, 일체에서 사량하지 않고, 일체로부터 사량하지 않고, ‘일체는 나의 것이다.’라고 사량하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사량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뿌리 뽑는데 어울림 경」(S35:30) 등)
⑦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한 구경해탈지의 정형구
“비구들이여, 과거의 눈은 무상하였다.(S35:204) … 미래의 눈은 무상할 것이다.(S35:205) … 현재의 눈은 무상하다.(S35:206) … 과거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였다. … 미래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할 것이다. … 현재의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S35:204∼206)
⑧ 벗어남, 해탈 등으로 나타나는 경들
이것은 위 ⑶의 ⑬에서 열거한 경들에 해당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중생들이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六內入處]의 달콤함을 달콤함이라고 위험함을 위험함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 때 중생들은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으로부터,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로부터 벗어나고 풀려나고 해탈하며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이것이 없다면 경」1(S35:17))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六外入處]의 달콤함을 달콤함이라고 위험함을 위험함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내 스스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인정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달콤함 경」2(S35:16))
⑨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 경들
앞의 ④에서 인용한「환자 경」1(S35:74)과 ⑤에서 인용한「불타오름 경」(S35:28) 등에서 보았듯이 본 상윳따의 71개 경들은 6내처-6외처-6식-6촉-6수의 순서로 여러 가지 법들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안과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6내처-6외처-6식-6촉-6수를 설하고 있는 경들도 무려 71개가 나타난다. 이들은 12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⑩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일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라고 설하시는「일체 경」(S35:23)을 위시하여「버림 경」1/2(S35:24∼25)와「불타오름 경」(S35:28)부터「무상 경」등(S35:43∼52)까지의 28개 경들에서는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를 일체라 부르고 있다.
⑪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가 바로 세상이다
「사밋디 경」4(S35:68)와「세상 경」(S35:82) 등의 여섯 개 경들에서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를 세상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경들은 세상은 영원한가 등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들도 세상을 12가지 등의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자체는 개념[施設, paññatti]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서 제3권의「들어감 상윳따」(S25)와「일어남 상윳따」(S26)와「오염원 상윳따」(S27)에 포함되어 있는 30개 경들도 6내처와 6외처와 6식을 주제로 한 경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육처 상윳따」(S35)와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육처를 주제로 한 경들은 모두 278개로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라훌라 상윳따」(S18)의 22개 경들 가운데서 처음 10개의 경들에서는 차례대로 6근, 6경, 6식, 6촉, 6수, 6상, 6의도, 6갈애(S18:1∼8)와 6대(S18:9)와 오온(S18:10)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같은 순서의 가르침이 11∼20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20개 경들도 육내처와 육외처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중점적으로 설하는 본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결국 육처의 가르침도 나와 세상을 각각 안과 밖의 여섯씩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이렇게 해서 나와 세상이 무상․고․무아임을 체득하여 이들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일으켜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뭉쳐두면 개념(paññatti)에 속고 법(dhamma)으로 해체하면 깨닫는다는 말은 이「육처 상윳따」(S35)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⑸ 육처에 대한 가르침의 특징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육처에 대한 가르침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① 12처는 일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오온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면 육처의 가르침은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그래서 오온을 불교의 인간관이라 한다면 육처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이란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이란 모두 안과 밖이 만나는 것 — 즉 눈이 형색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몸이 감촉과, 마노가 법과 조우하고 부딪히는 것 — 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육처의 가르침을 통해서 강조하고 계신다. 세상이니 존재니 일체니 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문제를 떠나서는, 나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세존께서는 일체 존재와 세상을 이렇게 안과 밖의 감각장소로 해체해서 간단명료하게 제시하시고 무아를 천명하신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육내외처가 일체라고 강조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일체 경」(S35:23) §§3∼4)
주석서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라는 것은 말로만 말하게 되는 토대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이 12가지 감각장소들을 떠나서 또 다른 고유성질을 가진 법(sabhāva-dhamma)이 있다고 설할 수 없다는 뜻이다.” (SA.ii.358)
즉 일체란 것은 단지 말로만 존재하는 개념적인 존재(paññatti)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일체라는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인 육내외처 곧 12가지 감각장소들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적어보면, 12가지 감각장소[十二處]는 ⑴ 눈의 감각장소 ⑵ 귀의 감각장소 ⑶ 코의 감각장소 ⑷ 혀의 감각장소 ⑸ 몸의 감각장소 ⑹ 마노의 감각장소 ⑺ 형색(색)의 감각장소 ⑻ 소리의 감각장소 ⑼ 냄새의 감각장소 ⑽ 맛의 감각장소 ⑾ 감촉의 장소 ⑿ 법의 감각장소이다.
이러한 12가지 감각장소는 일체(sabba)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존재일반을 나타내는 법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일체를 구성하고 있는 법들을 문(dvāra)과 마음의 대상의 측면에서 조망하고 계신다.
아비담마적으로 보자면 ⑴∼⑸의 감각장소는 다섯 가지 물질의 감성(pasāda)과 일치하고 ⑺∼⑾의 감각장소는 다섯 가지 물질의 대상(gocara)과 일치한다. 그러나 ⑹ 마노[意]의 감각장소는 마노의 문(dvāra)보다는 더 큰 범위를 나타낸다. 이것은 89가지 형태의 마음 모두를 포함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薀] 전체와 일치한다. ⑿ 법의 감각장소[法處]는 법이라는 대상(dhamma-ārammaṇa)과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처음의 다섯 가지 대상(gocara, ⑺∼⑾)과 다섯 가지 감성(pasāda, ⑴∼⑸)과 마노의 감각장소[意處, ⑹]와 일치하는 마음(citta)을 제외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념(paññatti)도 제외한다. 감각장소[處, āyatana]라는 것은 오직 구경법, 즉 본성(sabhāva)을 가진 것들에게만 적용되고 개념의 구조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들(paññatti)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감각장소[法處]는 52가지 마음부수법들과 16가지 미세한 물질(sukhuma-rūpa)과 열반으로 구성된다.(『아비담마 길라잡이』§36의 해설을 참조할 것.)
② 12처가 바로 세상이다
아울러 육내외처는 세상(loka)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기도 하다.
주석서에 의하면 초기불전에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 중생 세상, 형성된 세상의 세 가지 세상이 있다.”(DA.i.173)고 설명한다.
여기서 ① 보이는 세상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세상으로 눈에 보이는 이 물질적인 세상 즉 중국에서 기세간(器世間)으로 이해한 것을 말한다. ② 본서 제3권「꽃 경」(S22:94 §3)에서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툴 뿐이다.”라고 하신 세상은 바로 중생으로서의 세상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중생세간(衆生世間)으로 정착이 되었다. ③ 모든 형성된 것을 형성된 세상이라 한다. 물론 형성된 세상은 모든 유위법을 뜻하며 오취온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오취온은 고성제의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본 상윳따에서는 모두 형성된 세상의 측면에서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의「세상 경」(S35:82)에서 어떤 비구와 세존께서는 이렇게 문답을 나누고 있다.
“세존이시여, ‘세상,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왜 세상이라고 합니까?”
“비구여, 부서진다고 해서 세상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부서지는가? 눈은 부서진다.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부서진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부서진다.
비구여, 부서진다고 해서 세상이라 한다.”
그리고「세상의 끝에 도달함 경」(S35:116 §12)에서는 이렇게 설하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한편 이 문단은 본서 제1권「로히땃사 경」(S2:26)에도 나타나는데「로히땃사 경」의 핵심 내용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경은「로히땃사 경」(S2:26)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들어가시자 비구들의 간청에 의해서 아난다 존자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반들이여, 이 세상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자와 세상을 지각하는 자는 그 어떤 것을 통해서 [인식하고 지각]합니다. 이런 것을 일러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즉 여섯 감각장소를 통해서 인식되고 지각되는 것이 세상이지 다른 세상은 없다는 말씀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이란 경험된 세상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특히 본서 제1권「로히땃사 경」(S2:26)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아난다 존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 코를 통해서 … 혀를 통해서 … 몸을 통해서 … 마노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을 일러 성자의 율에서는 세상이라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눈은 세상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범부는 중생의 세상[衆生世間, satta-loka]과 우주로서의 세상[器世間, cakkavāḷa-loka]만을 두고 세상이라고 인식하고 지각한다. 그러나 눈 등의 12가지 감각장소를 떠나서 [세상이라는] 인식이나 지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반들이여, 눈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고 세상을 지각하는 자가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세상의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을 통해서 이 세상의 끝을 알거나 보거나 얻거나 할 수 없다. 무너진다는 뜻에서 눈 등의 부서짐인 세상의 끝 — 이것을 열반이라 부름 — 이것을 얻지 못하고서는 윤회의 괴로움을 끝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한다.” (SA.ii.389)
“눈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인식하는 자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인식하는 자도 없다. 안의 감각장소가 없으면 세상이라는 명칭도 없기 때문이다.”(SA.iii.25)
③ 세상이든 일체든 모두 조건발생[緣起, 緣而生]이다
「세상 경」(S35:107)에서 세존께서는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 즉 발생과 소멸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세상의 일어남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 혀와 맛을 조건으로 … 몸과 감촉을 조건으로 … 마노와 법을 조건으로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세상의 사라짐을 설하신다. 이처럼 세상은 조건발생[緣起, 緣而生]임을 말씀하신다.
④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보인다
그러면 왜 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시는가?「공한 세상 경」(S35:85)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강조하고 계신다.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공한 세상이라 한다.
아난다여, 그러면 무엇이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인가? 아난다여, 눈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형색은 … 눈의 알음알이는 … 눈의 감각접촉은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 [마노의 대상인] 법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한 것이다.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공한 세상이라 한다.”(「공한 세상 경」(S35:85) §4)
세존께서 세상을 12처로 간단명료하고 명쾌하게 설명하시는 것은 세상이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천명하시기 위해서이다. 12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은 공한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 절반이 훨씬 넘는 156군데나 되는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6내외처의 무상․고․무아와 혹은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강조하시고 극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고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고․무아뿐만 아니라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38개의 경들은 내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역설하고 있으며 10군데 경들에서는 육내외처의 달콤함․위험함․벗어남 등을 설하고 있기도 한데, 이 모든 가르침은 결국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보면 세상이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고 공한 것이고 내 것․나․나의 자아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⑤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이처럼 세상이나 일체를 육내외처로 해체해서 살펴보면 무상․고․무아가 보이고 이렇게 되어야 세상이나 일체에 대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생겨서 해탈․열반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육처의 가르침도 오온의 가르침에서처럼 무상․고․무아와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통해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시여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분명한 도구로 말씀하신 것이다.
본 니까야의 첫 번째 가르침인「안의 무상 경」(S35:1)과「밖의 무상 경」(S35:4)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意]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안의 무상 경」(S35:1) §§3∼4)
“비구들이여, 형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 대상인] 법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밖의 무상 경」(S35: 4) §§3∼4)
이처럼 존재를 12가지로 한정짓고 이 열두 가지 각각이 무상․고․무아임을 천명하여 이들 각각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 12처 가르침의 핵심이다.
⑥ 12처와 18계의 특징 몇 가지
위 ⑶의 ⑨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상윳따에는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 경들이 무려 71개나 된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여섯 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에 대한 가르침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6내처-6외처-6식-6촉-6수의 순서로 설하고 있는 경들도 71개나 된다. 이들 12처의 가르침은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12처와 18계의 가르침의 중요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존재를 나를 중심으로 안과 밖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신다. 법(dhamma)의 관점에서 보자면 안으로는 6내처, 밖으로는 6외처뿐이라고 하신다. 그 외의 세상이니 일체니 하는 것은 다 개념적 존재(paññatti)일 뿐이다.
둘째, 18계는 6내처에서 다시 6식을 독립시킨 것이다. 안의 감각장소 가운데서 마노의 감각장소 즉 의처(意處)를 나라고 영원한 마음이라고 자칫 집착할까봐 이를 다시 6식과 의(意)의 7가지로 분류해낸 것이다.
셋째, 이처럼 12처에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가 마노(mano, 意)에 포함되어서 나타나고 18계에서는 마노와 여섯 가지 알음알이는 구분이 되고 있다. 물론 마노[意]는 여섯 번째 알음알이인 마노의 알음알이[意識]가 발생하는 토대나 감각장소의 역할을 하지만 마노는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다. 그러므로 마음(심)이나 알음알이(식)와 같이 대상을 아는 것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미 초기불전에서부터 이 셋 즉 심․의․식은 동의어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 알음알이(식)와 마노(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노와 알음알이의 차이는 그 역할에 의해서 구분된다. 특히 아비담마는 그 역할에 따라서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 마노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첫째, 색․성․향․미․촉 외의 대상을 인지하는 정신적인 기관이다. 둘째, 전오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안식이 받아들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의식이 일어나서 이를 판단해야 하는데, 안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마노다. 아비담마의 인식과정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4장 <도표 4.1>을 참조할 것)
넷째, 이렇게 살펴봄으로써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상이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우주라든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라든지 우주라든지 일체라든지 존재라든지 하는 개념에 속게 된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안과 밖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12처와 18계이다.
다섯째,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육내외처로 18계로 해체해서 보면 일체 모든 존재의 무상․고․무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삼특상을 철견하면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게 된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사실「육처 상윳따」의 248개 경들 가운데 반 이상이 되는 156개 경들이 무상․고․무아를 설하고 있으며 39개 경들이 내 것․나․나의 자아 아님을 설하여 거의 80%에 해당하는 경들이 이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들도 존재일반이나 육내외처를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⑹ 어떻게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① 세 가지 과정
이쯤에서『상윳따 니까야』의 도처에서 특히 본「육처 상윳따」(S35)와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려 한다. 해탈․열반의 실현이야말로 불자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행복이요 본서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해탈․열반과 깨달음을 실현하는 과정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나 세상이라는 존재 등의 존재일반(paññatti)을 법(dhamma)이라는 기준으로 해체해서(vibhajja) 설하신다. 이 법은 초기경의 도처에서 설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청정도론』에서 정리하고 있고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의 여섯 가지 주제이다.
이것을 본서에 대입해보면 본서 제3권의 기본주제인 오온과 제4권의 기본주제인 12처와, 본서 제2권「요소 상윳따」(S14)와 본「육처 상윳따」(S35)의 도처에 나타나는 18계 등의 여러 요소들[界]과, 제2권의 기본주제인 12연기와 본서 제6권에서 대미를 장식하는「진리 상윳따」(S56)의 근본주제인 진리[諦]의 여섯 가지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초기불교 교학의 근본주제이다.
둘째, 이렇게 존재일반을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인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셋째, 이렇게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써 존재일반에 염오하게 되고 존재일반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게 되고 그래서 해탈하게 되고 혹은 소멸로 정의되는 열반을 실현하게 되고 이렇게 되어서 “태어남은 다했다. …”로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구경해탈지가 생기면서 생사문제라는 장부일대사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초기경의 도처에서 설해지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세 가지 교학적인 단계이다. 좀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② 고유성질(自相)
첫 번째 단계에서 존재일반을 해체해서 보는 기준이 법(法, dhamma)인데 이 법을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自性, sabhāva)을 가진 것라 부른다. 아비담마의 가장 큰 성과는 이처럼 고유성질을 기준으로 개념적 존재[施設, paññatti]를 법들로 해체해서 그것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고유성질을 가진 개별적인 법들의 특징을 자상(自相, sabhāva-lakkhaṇa)이라고 옮겼으며 이 자상은 아비담마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주석서들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본서「삼켜버림 경」(S22:79) §4의 주해 참조)
물질과 정신이 왜 다른가? 탐욕과 성냄이 왜 다른가? 느낌과 인식이 왜 다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각각의 법들 즉 물질, 정신, 탐욕, 성냄, 느낌, 인식 등등의 각각의 법들의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해석이다. 탐욕과 성냄이 둘이 아니라거나 탐욕과 성냄은 본래 없다는 등의 무책임한 말로는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탈․열반의 도정도 절대로 밝히지 못한다.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열반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드러내지 못하면 그것은 구세대비의 종교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이론이나 주장이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 마련이고 떠돌이는 곧 망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교학과 수행체계를 튼튼히 갖춘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와 유식이라는 불교가 있기 때문에 불교는 2600여년을 빛을 발하고 있다고 역자는 판단한다. 이것은 직관만 다그치는 반야․중관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아무튼 아비담마에서는 자상 혹은 고유성질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해서 이렇게 멋지게 법들의 차이를 설명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께서는 선법․불선법의 판단을 수행의 요체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37보리분법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 가운데 두 번째 구성요소가 바로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이다. 경은 택법각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유익하거나 해로운 법들, 나무랄 데 없는 것과 나무라야 마땅한 법들,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과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법들, 고상한 것과 천박한 법들, 흑백으로 상반되는 갖가지 법들이 있어 거기에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기를 많이 [공부]지으면 이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일어나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늘리고 드세게 만들고 수행을 성취하는 자양분이다.”(본서 제5권「몸 경」(S46:2) §12)
그리고 이러한 택법은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과 직결되고 이것은 팔정도의 여섯 번째인 정정진(正精進)의 내용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sammappadhāna]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닦아서 성취하기 위해서 열의를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본서 제5권「동쪽으로 흐름 경」(S49:1) §3)
이처럼 법을 내안에서 정확하게 구분하여 아는 것이 바로 바른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도 없이 해탈․열반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로또복권의 논리일 뿐이다.
물론 아비담마는 고유성질(sabhāva)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여 제법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분류하고 있지만, 법들의 성질의 차이에 따라 제법을 온․처․계․근․제․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하신 것은 바로 우리 세존 부처님이시며, 위에서 지적했듯이 본 니까야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비담마의 이러한 방법론은 초기불교에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불교 2600년사의 모든 학파에서 그대로 채용되었다. 북방 아비달마에서, 반야부에서, 유식에서 그리고 화엄에서도 강조하고 강조하는 법들의 분류 기준이다. 반야부에서도 자상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역자가 CBETA로 확인한 것이다.
③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역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말한다.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는 왕기사 존자는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 -bhajjaṁ) 설하시는 분”(S8:8) {742}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이 위밧자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 불렀다. 게다가 초기불교의 기본 수행용어인 위빳사나야 말로 해체해서(vi) 보기(passanā)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체하는가? 개념[施設, paññatti]을 해체한다. 나라는 개념, 세상이라는 개념, 돈이라는 개념, 권력이라는 개념, 신이라는 개념을 해체한다. 이런 것들에 속으면 그게 바로 생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칭이나 언어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강조하셨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설해지는 조건 지어진 법들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 법들로 해체해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厭惡)하고 탐욕이 빛바래고[離慾]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들의 일관된 흐름임을 이미 본서 도처에서 보아왔다.
한국불교에는 초기불전에서 가장 절실하게 말씀하시는 이 해체해서 보기가 빠져버린 듯하여 실로 유감이다. 우리불교는 법으로 해체해서 보라는 부처님의 명령(sāsana)은 분별망상으로 치부하면서도, 초기불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불성과 여래장을 세우기에 급급하고, 본성자리를 상정한 뒤 그것과 하나 되려고 생짜배기로 용을 쓰고 있다. 해체하지 않고 무엇을 세우는 것은 비불교적인 발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설혹 해체해서 보지 않고 직관만으로 나와 세상을 공이라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해체를 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외도의 자아이론(아상)이나 진인이론(인상)이나 영혼이론(수자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해체를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처럼 분석을 강조하던, 반야중관처럼 직관을 강조하던, 화엄처럼 종합을 강조하던, 그것은 불교적 방법론인 해체에 토대해야 할 것이다. 해체의 토대를 튼튼히 한 뒤에 직관과 종합을 해도 늦지 않다. 해체의 기본기에는 아예 무지한 채 법계장엄부터 하려드는 것은 아직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장가부터 보내려는 조급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발상 아닌가. 위에서 밝혔듯이 직관을 강조하는 반야부의 여러 경들조차 해체 끝에 드러나는 법의 자성(自性) 혹은 자상(自相)을 강조한다. 이런 토대위에 그들은 법의 무자성과 공의 직관을 다그치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뭉쳐두면 속고 해체해야 깨닫는다. 법들로 해체해서 보라.’이다. 뭉쳐두면 개념(paññatti)에 속고 법(dhamma)으로 해체하면 깨닫는다.
④ 무상․고․무아가 드러남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법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두 번째 단계이다. 개념적 존재(빤냣띠)로 뭉뚱그려두면 이것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아니 진인이니 영혼이니 중생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로 그대로 두고 보면 영원불변하는 자아나 진인이나 영혼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을 색․수․상․행․식이나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과 안식․이식 … 등으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이나 고나 무아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법이든 유위법들은 모두 다 이 무상․고․무아라는 세 가지 공통되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의 특징 중의 특징이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sabbe saṅkhārā aniccā].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로움이다[諸行皆苦, sabbe saṅkhārā dukkhā]. 모든 법들은 무아다[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라고『법구경』(Dhp.40 {277∼279})과『앙굿따라 니까야』「출현 경」(A3:134)과『맛지마 니까야』「짧은 삿짜까 경」(M35) 등은 강조하고 있으며, 괴로움 부분을 제외한 구절이 본서「찬나 경」(S22:90)과「자신을 섬으로 삼음 경」(S22:43)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법들의 무상․고․무아를 아비담마에서는 보편적 성질(sāmañña-lakkhaṇa)이라 부르고 이것을 중국에서는 공상(共相)으로 옮겼다. 그리고 북방아비달마, 반야․중관, 유식과 화엄에서도 그대로 다 채용해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법의 보편적 성질 즉 공상(共相)인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써 해탈․열반을 실현하고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또한 모든 불교사 흐름의 공통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무상․고․무아를 볼 것인가? 초기불전에서는 팔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조도품)을 강조한다. 이것은 본서 Ee, Be, Se의 제5권 즉 본 한글 번역의 제5권과 제6권에 S45∼S51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수행의 전문적 방법에 따라서 사마타[止]와 위빳사나[觀]로도 나눌 수 있고, 염․정․혜(念․定․慧, 마음챙김․삼매․통찰지)로도 나눌 수 있고, 계․정․혜 삼학으로도 나눌 수 있고, 더 확장하면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의 5법온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이것이 초기불전에서 강조하고 강조하는 구체적인 수행법들이다.
⑤ 자상(自相)을 통한 공상(共相)의 확인
초기불전에서 세존께서 강조하고 계신 교학과 수행체계는 아비담마의 용어를 빌어서 설명하자면 자상-공상-해탈의 세 가지 단계로 정리가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자상-공상-해탈의 이러한 세 가지는 이미 초기불전의 중심 교학으로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빼버리면 초기불전에 남는 것은 덕담이나 도덕적인 삶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등의 가르침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정도로 초기불교 교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수행법으로는 37보리분법으로 도처에서 정리되어 나타난다. 이런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불교가 불교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는 이미 인천교(人天敎)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후대의 불교들도 강조점에는 차이가 나지만 모두 이런 교학과 수행 체계를 받아들여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불교라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특히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는 ‘자상(自相)을 통한 공상(共相)의 확인’이라 정리된다. 고유성질의 특징(자상)에 따라서 법들을 분류하고 이들 가운데 특정 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공상)를 통찰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비담마․아비달마는 현장스님이『구사론』에서 대법(對法)이라 번역하였듯이 ‘법에 대해서’를 강조하기 때문에 제법의 자상에 따른 분류를 중시하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분류하는 것은 무상․고․무아의 공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기본에 깔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교학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는 여기에 투철하다.
물론 북방 아비달마 체계 가운데 가장 강력하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in)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一切有, sarvāsti].’는 부파의 명칭이 보여주듯이 제법의 자상(고유성질)을 확인하는 것을 엄청나게 강조하였다. 북방 아비달마 체계뿐만 아니라 모든 북방 대승불교 교학의 도구서적이 되는『아비달마 구사론』은 고․집․멸․도의 사성제의 입장에서 제법을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제법의 모습과 성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고성제와 그 원인이 되는 집성제에 초점을 맞추어 제법의 자상 혹은 고유성질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상․고․무아의 보편적 성질 즉 공상(共相)을 무시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열반과 열반을 실현하는 도닦음(각각 멸성제와 도성제)도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조점의 차이일 뿐이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는 모두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해탈․열반의 실현을 강조하지 않는 불교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렇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거나, 자기 학파의 논리만을 내세우는 옹졸한 사람일 뿐이고 상대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는, 정말 상식이 없는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역자가 너무 심한 표현을 한 것일까?
아비담마․아비달마 특히『아비달마 구사론』에서 보듯이 북방 아비달마가 이처럼 제법의 자상의 입장을 너무 많이 강조했기 때문에 반야부 특히 용수의『중론』은 제법무아로 특징지어지는 공상(共相)을 치우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반야부의 경들에도 제법의 자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상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법들의 구분이나 차이나 분류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야․중관은 단지 공상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용수의『중론』은 공상의 입장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다. 자상을 이야기하면 실유(實有)를 이야기하는 것이 되어 외도의 가르침이라는 듯이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비달마가 자상을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기 위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자상을 실유라고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전 어디에도 법을 실유라고 설하지 않는다. 중관학파들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아비달마를 비하하고 스스로를 큰 가르침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이 임의로 지어낸 이론일 뿐인 셈이다.
⑥ 가유(假有)라거나 실유(實有)라는 방법론으로 봐서는 안된다
초기불교부터 아비담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이나 직계제자들은 법을 가유니 실유니 하는 기준으로는 절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아비담마에서는 법의 찰나생․찰나멸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찰나생이기 때문에 단견(斷見, 단멸론)이 아니고 찰나멸이기 때문에 상견(常見, 상주론)이 아니다. 이처럼 유위법들을 일어남과 사라짐의 입장에서 관찰하였지 결코 있다 없다는 관점에서 관찰하지 않았다. 본서 제2권「깟짜나곳따 경」(S12: 15)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한 없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한 있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세상과 제법을 보지 않으면 있다거나 없다는 유․무의 상견이나 단견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찰나생․찰나멸은 상속(相續, santati)한다. 제법의 상속을 말하지 않으면 이것은 또한 엄청난 단견이 되고 만다. 한 순간에 멸하고(찰나멸) 다시 일어나지 않는데 세상은 왜 존재하고 있는가?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세상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허망한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법으로 해체해서 보실 것을 강조하셨지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허망하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일부 초기불전들을 이상하게 들이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일 뿐이다.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본서「육처 상윳따」(S35)의「일체 경」(S35:23)과「세상 경」(S35:82) 등의 도처에서 12처라는 법들을 일체(sabbe)라고 세상(loka)이라고 강조하고 계시지 않는가? 이 일체로 표현되는 혹은 온․처․계․근․제․연으로 설명되는 존재나 세상은 찰나생멸의 상속(흐름)이 아니고서는 불교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찰나생․찰나멸과 상속은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고 과학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와 대승의 아비달마인 유식은 찰나와 상속을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은 무위법(열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무위법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가법(假法)이나 가유(假有)라는 논리를 세워서 부정해버리면 그것은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하면 구세대비의 종교는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이론이나 주장이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기 마련이고 떠돌이는 곧 망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으로 해체된 상태는 결코 가유라거나 실유라는 방법론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법에다 아공법유(我空法有)니 아공법공(我空法空)이니 하는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서 법을 바라보고 이전 불교를 비판한다. 이것은 일부 대승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만일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이전 불교를 비판한다면 대승은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 부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은 기준을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서 부처님까지도 소승이나 외도로 비판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관학파를 비롯한 일부 대승에서 중도를 빙자하여 극단적인 이론을 전개하자 다시 유식이 등장하여 자상(고유성질)을 포용하고 있다. 이 입장은 아비담마의 입장과 같다. 물론 유식에서는 제법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겠지만 제법을 아뢰야식이라는 마음의 현현으로 설명하고 그래서 아뢰야식의 찰나생․찰나멸을 통한 전변(轉變, parināma)과 흐름을 통해서 무상․고․무아 특히 무아를 확인하려 한다. 그 확인방법으로 자량위(資糧位) 등의 다섯 단계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이라는 아비담마의 입장은 잘 계승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법의 고유성질(자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교는 전개되지 않는다. 오온의 서로 다른 점, 12처의 서로 다른 점, 12지 연기의 서로 다른 점, 제법의 서로 다른 점은 고유성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들을 명쾌하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적인 태도를 버려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곤란하지 않은가?
그리고 누가 뭐라면 쁘라상기까(Prasaṅgika), 좋게는 귀류논증(歸謬論證)이지만 속된 말로 하자면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는 그런 논법으로 상대의 의견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의 의견을 부정하면 내가 해탈이 되는가? 아니다. 괴로움을 말하면 중관적인 입장에서는 괴로움은 본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분명 괴로움을 강조하셨고, 고성제 안에 오온을 말씀하셨고, 모든 유위법들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괴로움이 본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괴로움이 없어지는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역자부터 밖에 나가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와 무명을 말하면 이것도 본래 없다고 한다. 본래 없다는 말로 갈애와 무명이 해결되는가? 아니다.
할 말은 너무 많지만 이것으로 줄이려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은 분명히 고․집․멸․도를 불교의 진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방편설이라는 말씀은 초기불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개념적 존재(paññatti)가 아닌 법(dhamma)을 두고 방편이니 승의제(勝義諦)니 공(空)이니 가(假)니 중(中)이니 가유(假有)니 실유(實有)니 하는 희론(papañca)은『중론』이나 반야부 스스로가 지어낸 정말 희론에 지나지 않는 관점이 아닐까 염려해 본다. 부디 이러한 후대의 오히려 편협한 입장으로 초기불전을 대하지 말라고 역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⑦ 찰나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찰나는 상주론도 아니고 단멸론도 아님을 살펴보자.
아비담마․아비달마 특히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찰나를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단위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이미 찰나는 일어남[生, uppā -da]과 머묾[住, ṭhiti]과 무너짐[壞, bhanga]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석서들은 말하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4장 §6과 해설 참조) 서양에서는 이것을 sub-moment라고 옮기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아찰나(亞刹那)’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아찰나라는 술어는 주석서의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찰나는 전문술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아비달마 구사론』도 이러한 찰나의 일어남과 머묾과 무너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이것은 고유성질이 없기 때문이다. 찰나를 아찰나로 쪼갤 수는 있고, 아찰나를 다시 아아찰나로 아아찰나는 다시 아아아찰나로 … 이렇게 쪼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아찰나로 쪼개버리면 법이 가지는 고유성질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전문술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관점이며 아비담마 논사들이 법을 대하는 엄정하고 치열한 자세이다. 그러므로 불교사의 적통이라고 자부하는 상좌부에서의 찰나는 절대로 상주론이 아니다. 찰나도 이미 흐름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 중관학파의 가유나 가법의 입장과 거의 같은 입장이겠지만 상좌부에서는 이런 찰나생․찰나멸의 법들을 두고 가유니 실유니 하는 관점에서는 관찰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찰나는 당연히 조건발생 즉 연이생(緣而生)이다. 그리고 전찰나의 법이 멸하면 바로 다음 찰나의 법이 조건발생한다. 그러므로 단멸론도 절대로 될 수 없다. 이것을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에서는 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 하여 아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전찰나가 멸하면 후찰나로 흘러간다. 그러니 법은 단멸론도 상주론도 아니다. 아비담마는 이렇게 법들을 찰나와 흐름으로 멋지게 설명해낸다.
이런 것을 상주론이니 단멸론이니 하는 양도논법으로 왈가왈부하려는 것은 초기불교부터 전개되는 불교교학의 기본입장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오히려 극단적이고 외도들이나 좋아할 만한 방법론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⑧ 한국불교에 거는 기대
역자가 반야․중관의 입장을 조금 비판했다고 해서 역자가 일방적으로 반야․중관을 폄하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역자는 반야․중관의 직관을 좋아하고 존중한다. 무아의 천명이 없으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기 때문이며, 지금 논의하고 있듯이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야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이루어져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깨달음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교학의 기본전제를 무시한 ‘오직 직관’은 곤란하다고 본다. 역자는 오히려 초기불교의 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자상을 통한 공상의 확인’을 불교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에 대한 더 멋진 설명으로 본다. 한국불교가 이러한 자상의 입장을 더 분명히 수용할 때 반야․중관에 토대한 직관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역자는 확신한다.
4.「느낌 상윳따」(S36)
서른여섯 번째 주제인「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S36)에는 느낌과 관계된 31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제1장「게송과 함께 품」에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고, 제2장「한적한 곳에 감 품」에는 10개의 경들이, 제3장「백팔 방편 품」에는 11개의 경들이 담겨 있다.
느낌[受, vedanā]은 오온의 두 번째로도 나타나며 우리의 감정적․정서적․예술적인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이다.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심리현상들 예를 들면 탐욕이나 성냄이나 희열 등은 느낌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온의 심리현상들[行]에 속한다. 그래서 느낌을 감정적․정서적인 ‘단초(端初)’가 되는 심리현상이라 표현한 것이다.
경들에 의하면 느낌에는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래서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는 모두 이렇게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느낌이다.”(「삼매 경」(S36:1) §3 등)
본 상윳따의 몇몇 경에 의하면 이 가운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수승한 느낌이다. 그래서 본서「버림 경」(S36:3)은 이렇게 읊고 있다.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광대한 통찰지를 가진 자 그것을 평화롭다 가르치지만
그것 또한 맛들여 매달린다면
결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버림 경」(S36:3) §5)
그리고 여러 경에서 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소멸되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S36:19 §15 등)라고 하여 제4선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삼매체험이 없는 일반사람들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본 상윳따의「빤짜깡가 경」(S36:19)에 의하면 목수 빤짜깡가는 세존께서는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의 두 가지만을 설하셨다고 주장하고 있으며(§4), 세존께서는 “방편에 따라 느낌들을 두 가지로 설했고, 느낌들을 세 가지로 설했으며, 다섯 가지로, 여섯 가지로, 열여덟 가지로, 서른여섯 가지로, 때로는 백여덟 가지로 설하기도 했다.”(§10)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비담마에서는 이들 각각의 느낌에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여 육체적 즐거움[樂, sukkha], 육체적 괴로움[苦, dukkha], 정신적 즐거움[喜, somanassa], 정신적 괴로움[憂, domanassa], 평온[捨, upekkhā]의 다섯으로 분류하고 있다.(『아비담마 길라잡이』제3장 §2를 참조할 것.)
한편 이 다섯은「백팔 방편 경」(S36:22 §6)에도 나타나고 있고, 본서 제5권「기능 상윳따」(S48)의 제4장「즐거움의 기능 품」에 담겨있는 열 개의 경들(S48:31∼40)에서 22가지 기능들 가운데 다섯 가지로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들의 차이점은 본서 제5권「분석 경」1/2(S48:36∼37)에서 설명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어떤 느낌이든 그것을 괴로움으로 알아서 느낌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마저도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그 어떤 느낌에 접하든 간에
그 모두를 괴로움으로 아나니
거짓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들이 부딪치고 또 부딪쳐왔다가
사라져 가는 양상을 지켜봄으로써
거기서 탐욕이 빛바래도다.”(「행복 경」(S36:2) §4)
그리고 본서「간병실 경」1(S36:7) 등에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신다. 이렇게 머물면 몸과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사라지고, 몸과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사라지고, 몸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한편「아난다 경」1(S36:15)에서는 4禪-4처-상수멸의 아홉 가지 차례대로 증득하는 삼매[九次第定]를 언급하신 뒤, 이러한 삼매를 통해서 진행되는 ‘형성된 것들[行]이 차례로 소멸함(nirodha)’, ‘형성된 것들이 차례로 가라앉음(vūpasama)’, ‘형성된 것들이 차례로 고요해짐(passaddhi)’을 설하고 계시는데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빤짜깡가 경」(S36:19)에서 세존께서는 ‘앞의 것을 능가하는 한결 수승한 다른 즐거움’으로 역시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4선과 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4처와 상수멸의 아홉 가지를 들고 계신다. 이 아홉 가지 삼매의 경지는 차례대로 앞의 삼매의 경지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한 즐거움이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세존께서는 스스로, “그런데 아난다여,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사문 고따마는 인식과 느낌의 소멸을 설한다. 그리고서는 그것을 다시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신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신 뒤에, 그에게는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즐거운 느낌만을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래는 즐거움이면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얻어지건 간에 즐거움이라고 천명하십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으신다.(§21)
5.「여인 상윳따」(S37)
서른일곱 번째인「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S37)에는 34개의 짧은 경들이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제1장「첫 번째 반복 품」과 제2장「두 번째 반복 품」과 제3장「힘 품」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품에는 14개, 10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
본 상윳따의 경들 가운데 세 가지 성질을 가진 여인을 언급하는「세 가지 법 경」(S37:4)을 제외한 33개의 경들은 모두 여인이 가진 요소나 특질이나 성질이나 힘 등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의 33개의 경들은 숫자별로 경을 결집하고 있는『앙굿따라 니까야』「다섯의 모음」(A5)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가운데 S37:5∼24의 20개 경들은 세존께서 아누룻다 존자에게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S37:5∼14까지의 열 개의 경들은 “다섯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어두운 면’에 대해서 설하신 것이고, S37:15∼24까지의 열 개의 경들은 반대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나는” ‘밝은 면’에 대해서 설하신 것이다.
6.「잠부카다까 상윳따」(S38)
서른여덟 번째인「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S38)에는 사리뿟따 존자의 조카인 잠부카다까 유행승(Jambukhādaka pari- bbājaka)과 관계된 16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들 각각의 경은 특정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사리뿟따 존자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16개 경에 나타나는 주제는 ① 열반 ② 아라한됨 ③ 설법자 ④ 무슨 목적 ⑤ 안식(安息) ⑥ 최상의 안식 ⑦ 느낌 ⑧ 번뇌 ⑨ 무명 ⑩ 갈애 ⑪ 폭류 ⑫ 취착 ⑬ 존재 ⑭ 괴로움 ⑮ 자기 존재 ⑯ 행하기 어려움이다.
잠부카다까 유행승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들 주제에 대해서 “‘열반,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S38:1)라거나, “‘폭류, 폭류’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폭류입니까?”(S38:11)라는 등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나타나는 중요 술어들의 정확한 정의를 질문 드리고, 사리뿟따 존자는 정확하게 이들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 그는 이러한 경지를 실현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질문드리고, 사리뿟따 존자는 “도반이여,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하기 위한 도이고 이것이 도닦음입니다.”라고 팔정도로서 답변하고 있다.
그러면 유행승은 “도반 사리뿟따여, ~하기 위한 이러한 도는 참으로 경사로운 것이고 이러한 도닦음은 참으로 경사로운 것입니다. 참으로 그대들은 방일하지 말아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경은 끝이 난다.
16개의 경들은 모두 이런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경에서 팔정도가 강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 본서 제5권의「도 상윳따」(S45)의 하나의 품으로 포함시켜도 된다.
7.「사만다까 상윳따」(S39)
서른아홉 번째 주제인「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S39)에 포함된 16개의 경들은 사만다까 유행승과 사리뿟따 존자와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경들은 앞의「잠부카다까 상윳따」(S38)의 16개의 경들과 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러 판본에서도 이 부분은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을 생략하였다.
물론 본 상윳따의 경들도 모두 팔정도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도 본서 제5권의「도 상윳따」(S45)의 하나의 품으로 포함시켜도 된다.
8.「목갈라나 상윳따」(S40)
마흔 번째인「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S40)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11개의 경을 담고 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부처님의 상수제자들 가운데 신통제일이라 불리는 분이다. 불교의 신통은 모두 삼매 특히 제4선을 토대로 하여 나타난다. 그러다보니 마하목갈라나와 관계된 경을 모은 본 상윳따에서도 처음의 여덟 개 경들은 각각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의 삼매에 관한 것을 담고 있으며, 아홉 번째 경도 표상 없는 삼매에 관한 것이다.
한편 열 번째와 열한 번째 경은 신들과의 문답을 담은 경이다. 초기불전의 몇몇 군데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천상의 신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경책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나타난다. 이것도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제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가운데「삭까 경」(S40:10)은 목갈라나 존자가 신통력으로 삼십삼천에 가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삼보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계를 구족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이 여러 문맥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열한 번째는 신의 아들 짠다나와 신의 아들 수야마와 신의 아들 산뚜시따와 신의 아들 수님미따와 신의 아들 와사왓띠와의 대화를 담은 경인데 내용은 바로 앞의 삭까 경과 같다. 내용상 이 경은 다섯 개의 경으로 즉 S40:11∼15로 편집되어도 무방하겠지만 Ee, Be, Se에 모두 하나의 경으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수야마(Suyāma)와 산뚜시따(Santusita)와 수님미따(Sunimmita)와 와사왓띠(Vasavatti)는 각각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을 관장하는 신이다.
짠다나(Candana)는 본서 제1권「짠다나 경」(S2:15)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디가 니까야』「대회경」(D20 §11)에는 사대왕천의 약카로 나타나고 있으며,「아따나띠야 경」(D32 §10)에는 ‘약카들과 큰 약카들과 약카들의 장군들과 대장군들’로 언급되고 있는 40명의 신들 가운데 인드라와 함께 포함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짠다나는 사대왕천의 유력한 신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타당하다. 왜냐하면 삭까(인드라)가 삼십삼천을 관장하는 신이므로 짠다나가 사대왕천에 속하는 신이 되어야 S40:11∼12는 여섯 욕계 천상(육욕천)을 관장하는 신들이 모두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찬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9.「찟따 상윳따」(S41)
마흔한 번째 주제인「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S41)에는 찟따 장자(Citta gahapati)와 관계된 10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6-3)에서 세존께서는 찟따 장자를 재가자들 가운데서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언급하고 계신다.
본서 제2권「외동아들 경」(S17:23) §3에서 세존께서는 “내 청신사 제자들의 모범이고 표준”이라고 칭찬하고 계시며『앙굿따라 니까야』제1권「발원 경」3(A2:12:3)과 제2권「포부 경」(A4:176 §3)에서도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 신도로 거명되고 있다. 본 상윳따에는 그가 여러 장로 비구들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은 왜 부처님께서 그를 두고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된다.
특히 자이나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니간타 나따뿟따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니간타 나따뿟따 경」(S41:8)에서 니간타가 “장자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 하는 것을 믿습니까?”라고 하자 “존자시여, 저는 세존께서 ‘일으킨 생각이 없고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가 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의 소멸은 존재한다.’라고 하신 것을 믿음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뒤에 그는 네 가지 선을 모두 증득하였기 때문에 믿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득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41:9)에서 자신의 오랜 친구였으며 나체 수행자가 된 나체수행자 깟사빠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를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출가하도록 인도하였고 그리하여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아라한이 되었다.
10.「우두머리 상윳따」(S42)
마흔두 번째인「우두머리 상윳따」(Gāmaṇi-saṁyutta, S42)에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10명과 세존께서 나눈 대화를 담은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① 짠다 ② 딸라뿌따 ③ 요다지와 ④ 핫타로하 ⑤ 앗사로하 ⑥ 아시반다까뿟따 ⑦ 들판 비유 ⑧ 소라고둥 불기 ⑨ 가문 ⑩ 마니쭐라까 ⑪ 바드라까 ⑫ 라시야 ⑬ 빠딸리야이다.
이 가운데「딸라뿌따 경」(S42:2)은 연극단장인 딸라뿟따와의 대화를 담은 경이며,「요다지와 경」(S42:3)은 용병 대장 요다지와와,「핫타로하 경」(S42:4)은 코끼리 부대의 우두머리 핫타로하와,「앗사로하 경」(S42:5)은 기마부대의 우두머리인 앗사로하와의 대화를 담은 경이다. 그리고「아시반다까뿟따 경」(S42:6),「들판 비유 경」(S42:7),「소라고둥 불기 경」(S42:8)과「가문 경」(S42:9)의 넷은 니간타의 제자인 아시반다까뿟따 촌장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 외「짠다 경」(S42:1)부터「마니쭐라까 경」,「바드라까 경」,「라시야 경」,「빠딸리야 경」의 나머지 다섯 경들은 각각 다른 촌장들과 대화를 나눈 경인데 이 경들의 제목이 그 촌장들을 나타낸다. 한편「딸라뿌따 경」(S42:2)에 나타나는 딸라뿌따라는 연극단장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그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인데, 특히「라시야 경」(S42:12)과「빠딸리야 경」(S42:13)은 상대적으로 길이가 아주 길다.
「라시야 경」은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를 ①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는가 ②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아닌가 ③ 남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아닌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나눈다. 그리고 다시 이 세 가지 기준 모두에 긍정적인 사람은 다시 그 재산에 집착하는가, 아닌가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10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눈다. 그리고 다시 이를 토대로 비난 받는가, 비난 받지 않는가라는 기준으로 10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모두 20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도 ① 유익한 법[善法]을 증득했는가, 증득하지 못했는가 ②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했는가, 실현하지 못했는가하는 기준을 가지고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세 가지 풀려남을 설명하고 있다.
11.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4권에는 423개의 경들이 10개의 상윳따로 분류되어서 나타나고 있다.『상윳따 니까야』제4권은 전통적으로 육처를 위주로 한 책 혹은 가르침이라 불려왔다. 육처(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은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에서 초기불교의 6개 기본 교학으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가운데 두 번째와 세번째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육처 상윳따」(S35)에는 248개나 되는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길이가 긴 경들도 다른 상윳따들에 비해서 많이 들어 있다. 그러면 왜 부처님께서는 육처의 가르침을 이처럼 많이 설하셨을까?
육처는 ‘세상이란 무엇인가?’라거나 ‘어떤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인가?’라는 인간들이 가지는 또 다른 의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일체)이란 모두 안과 밖이 만나는 것 — 즉 눈이 형색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몸이 감촉과, 마노가 법과 조우하고 부딪히는 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육처의 가르침을 통해서 강조하고 계신다. 세상이니 존재니 일체니 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문제를 떠나서는 나라는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세상과 이러한 일체 존재를 무시하고, 저 밖으로 세상을 만든 자나 세상의 기원을 찾아서 헤매고 있거나, 안으로 침잠해서 불변하는 영원한 실체 — 그것이 자아(아뜨만)든 개아든 영혼이든 불성이든 여래장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 를 상정하고 그것을 일체로 삼고 근원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
세존께서는 존재와 세상을 이렇게 안과 밖의 감각장소로 해체해서 간단명료하게 제시하셨고 이렇게 해서 무아를 천명하셨다. 본서 제2권이 나라는 존재를 12연기로 대표되는 연기의 흐름으로 해체해서 무아를 천명하신 가르침을 중심에 두고 있고, 제3권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로 해체해서 무아를 천명하시는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여기 제4권은 나라는 존재를 안과 밖의 감각장소들(육내외처, 12처)이 만나고 부딪혀서 전개되어가는 것으로 파악하여 이것을 통해서 무아를 천명하는 가르침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안과 밖의 부딪힘으로 파악하여, 눈․귀․코․혀․몸․마노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12가지 감각장소들이나, 마노에서 다시 안식․이식․비식․설신․신식․의식을 분리해서 18가지 요소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이고, 그래서 이를 발판으로 존재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하고, 해탈하면 태어남이 다했다는 구경해탈지가 생긴다고 본서의 도처에서 부처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신다. 이처럼 육내외처 혹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 혹은 12처의 무상․고․무아를 통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제4권의 핵심 가르침이다. 물론 여기서도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는 각각 강한 위빳사나-도-과-반조를 뜻한다고 주석서들은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본서「무명 경」(S35:53) 등에서 눈․귀․코․혀․몸․마노의 안의 감각장소와,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의 밖의 감각장소와, 이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와 여섯 가지 감각접촉과 여섯 가지 느낌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알고 보면, 무명이 제거되어 명지가 일어나고(S35:53) 족쇄들이 제거되고(S35:54) 번뇌들이 뿌리 뽑히고(S35:55) 잠재성향들이 뿌리 뽑힌다(S35:54)고 말씀하고 계신다.
『상윳따 니까야』제4권을 읽는 모든 분들도 이처럼 세상과 존재와 일체를 모두 여섯 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들로 해체해서 알고 보아서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고 족쇄를 제거하고 번뇌와 잠재성향을 모두 뿌리 뽑기를 발원한다. 그래서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이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4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