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목차>
제12주제 인연 상윳따(S12)
제1장 부처님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연기(緣起) 경 | S12:1 | 85 |
| 분석 경 | S12:2 | 92 |
| 도닦음 경 | S12:3 | 104 |
| 위빠시 경 | S12:4 | 104 |
| 시키 경 | S12:5 | 112 |
| 웻사부 경 | S12:6 | 112 |
| 까꾸산다 경 | S12:7 | 113 |
| 꼬나가마나 경 | S12:8 | 113 |
| 깟사빠 경 | S12:9 | 113 |
| 사까무니 고따마 경 | S12:10 | 113 |
제2장 음식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음식 경 | S12:11 | 123 |
| 몰리야팍구나 경 | S12:12 | 128 |
| 사문/바라문 경1 | S12:13 | 135 |
| 사문/바라문 경2 | S12:14 | 136 |
| 깟짜나곳따 경 | S12:15 | 138 |
| 설법자[法師] 경 | S12:16 | 145 |
| 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 S12:17 | 147 |
| 띰바루까 경 | S12:18 | 154 |
| 우현(愚賢) 경 | S12:19 | 158 |
| 조건 경 | S12:20 | 162 |
제3장 십력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십력 경1 | S12:21 | 167 |
| 십력 경2 | S12:22 | 169 |
| 기반 경 | S12:23 | 173 |
| 외도 경 | S12:24 | 180 |
| 부미자 경 | S12:25 | 188 |
| 우빠와나 경 | S12:26 | 195 |
| 조건 경 | S12:27 | 196 |
| 비구 경 | S12:28 | 199 |
| 사문/바라문 경1 | S12:29 | 202 |
| 사문/바라문 경2 | S12:30 | 204 |
제4장 깔라라캇티야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되어있는 것 경 | S12:31 | 206 |
| 깔라라 경 | S12:32 | 212 |
| 지혜의 토대 경1 | S12:33 | 221 |
| 지혜의 토대 경2 | S12:34 | 226 |
| 무명을 조건함 경1 | S12:35 | 227 |
| 무명을 조건함 경2 | S12:36 | 232 |
| 그대들 것이 아님 경 | S12:37 | 235 |
| 의도 경1 | S12:38 | 236 |
| 의도 경2 | S12:39 | 239 |
| 의도 경3 | S12:40 | 241 |
제5장 장자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다섯 가지 증오와 두려움 경1 | S12:41 | 244 |
| 다섯 가지 증오와 두려움 경2 | S12:42 | 249 |
| 괴로움 경 | S12:43 | 250 |
| 세상 경-3 | S12:44 | 252 |
| 냐띠까 경 | S12:45 | 253 |
| 어떤 바라문 경 | S12:46 | 256 |
| 자눗소니 경 | S12:47 | 257 |
| 세상의 이치에 능통한 자 경 | S12:48 | 259 |
| 성스러운 제자 경1 | S12:49 | 261 |
| 성스러운 제자 경2 | S12:50 | 263 |
제6장 괴로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철저한 검증 경 | S12:51 | 264 |
| 취착 경 | S12:52 | 272 |
| 족쇄 경1 | S12:53 | 275 |
| 족쇄 경2 | S12:54 | 276 |
| 큰나무 경1 | S12:55 | 277 |
| 큰나무 경2 | S12:56 | 279 |
| 어린나무 경 | S12:57 | 281 |
| 정신/물질 경 | S12:58 | 282 |
| 알음알이 경 | S12:59 | 284 |
| 인연 경 | S12:60 | 286 |
제7장 대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배우지 못한 자 경1 | S12:61 | 290 |
| 배우지 못한 자 경2 | S12:62 | 295 |
| 아들의 고기 경 | S12:63 | 298 |
| 탐욕 있음 경 | S12:64 | 305 |
| 도시 경 | S12:65 | 310 |
| 명상 경 | S12:66 | 318 |
| 갈대 다발 경 | S12:67 | 326 |
| 꼬삼비 경 | S12:68 | 331 |
| 불어남 경 | S12:69 | 338 |
| 수시마 경 | S12:70 | 339 |
제8장 사문/바라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늙음/죽음 경 | S12:71 | 355 |
| 태어남 경 등 | S12:72~81 | 356 |
제9장 뒷부분의 반복
| 경 번호
| 페이지
|
|---|
| 스승 경 | S12:82 | 358 |
| 공부지음 경 등 | S12:83~93 | 359 |
제13주제 관통 상윳따(S13)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손톱 끝 경 | S13:1 | 363 |
| 연못 경 | S13:2 | 365 |
| 합류하는 물 경1 | S13:3 | 366 |
| 합류하는 물 경2 | S13:4 | 366 |
| 땅 경1 | S13:5 | 367 |
| 땅 경2 | S13:6 | 368 |
| 바다 경1 | S13:7 | 369 |
| 바다 경2 | S13:8 | 369 |
| 산의 비유 경1 | S13:9 | 370 |
| 산의 비유 경2 | S13:10 | 371 |
| 산의 비유 경3 | S13:11 | 371 |
제14주제 요소 상윳따(S14)
제1장 다양함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요소[界] 경 | S14:1 | 375 |
| 감각접촉 경 | S14:2 | 378 |
| 아님 경 | S14:3 | 379 |
| 느낌 경1 | S14:4 | 380 |
| 느낌 경2 | S14:5 | 381 |
| 요소 경 | S14:6 | 383 |
| 인식 경 | S14:7 | 383 |
| 아님 경-1 | S14:8 | 385 |
| 감각접촉 경1 | S14:9 | 387 |
| 감각접촉 경2 | S14:10 | 389 |
제2장 일곱 요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일곱 요소 경 | S14:11 | 392 |
| 근원 있음 경 | S14:12 | 394 |
| 벽돌로 만든 강당 경 | S14:13 | 399 |
| 저열한 의향 경 | S14:14 | 401 |
| 포행 경 | S14:15 | 402 |
| 게송이 있는 경 | S14:16 | 405 |
| 믿음 없는 자 경1 | S14:17 | 408 |
| 믿음 없는 자 경2 | S14:18 | 410 |
| 양심 없는 자 경 | S14:19 | 413 |
| 수치심 없는 자 경 | S14:20 | 415 |
| 적게 배운자 경 | S14:21 | 417 |
| 게으른 자 경 | S14:22 | 418 |
제3장 업의 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삼매에 들지 못하는 자 경 | S14:23 | 420 |
| 계행이 나쁜 자 경 | S14:24 | 421 |
| 다섯 가지 학습계목 경 | S14:25 | 421 |
| 일곱 가지 업의 길 경 | S14:26 | 422 |
| 열 가지 업의 길 경 | S14:27 | 422 |
| 여덟 가지 구성요소 경 | S14:28 | 423 |
| 열 가지 구성요소 경 | S14:29 | 424 |
제4장 네 가지 요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네 가지 요소 경 | S14:30 | 426 |
| 깨닫기 전 경 | S14:31 | 426 |
| 유행했음 경 | S14:32 | 429 |
| 만일 없다면 경 | S14:33 | 430 |
| 괴로움 경 | S14:34 | 432 |
| 기뻐함 경 | S14:35 | 433 |
| 일어남 경 | S14:36 | 434 |
| 사문/바라문 경1 | S14:37 | 435 |
| 사문/바라문 경2 | S14:38 | 436 |
| 사문/바라문 경3 | S14:39 | 436 |
제15주제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S15)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풀과 나무 경 | S15:1 | 441 |
| 땅 경 | S15:2 | 443 |
| 눈물 경 | S15:3 | 444 |
| 젖 경 | S15:4 | 446 |
| 산 경 | S15:5 | 447 |
| 겨자 씨 경 | S15:6 | 448 |
| 제자 경 | S15:7 | 449 |
| 강가 강 경 | S15:8 | 450 |
| 막대기 경 | S15:9 | 452 |
| 인간 경-3 | S15:10 | 452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불행 경 | S15:11 | 455 |
| 행복 경 | S15:12 | 455 |
| 삽십 명 경 | S15:13 | 456 |
| 어머니 경 | S15:14 | 459 |
| 아버지 경 | S15:15 | 460 |
| 형제 경 | S15:16 | 460 |
| 자매 경 | S15:17 | 461 |
| 아들 경 | S15:18 | 461 |
| 딸 경 | S15:19 | 462 |
| 웨뿔라 산 경 | S15:20 | 462 |
제16주제 깟사빠 상윳따(S16)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만족 경 | S16:1 | 469 |
| 수치심 없는 자 경 | S16:2 | 473 |
| 달의 비유 경 | S16:3 | 476 |
| 신도 집 방문 경 | S16:4 | 480 |
| 늙음 경 | S16:5 | 483 |
| 교계 경1 | S16:6 | 486 |
| 교계 경2 | S16:7 | 489 |
| 교계 경3 | S16:8 | 493 |
| 선(禪)과 최상의 지혜 경 | S16:9 | 496 |
| 처소 경 | S16:10 | 503 |
| 의복 경 | S16:11 | 509 |
| 사후(死後) 경 | S16:12 | 519 |
| 유사정법(類似正法) 경 | S16:13 | 521 |
제17주제 이득과 존경 상윳따(S17)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무서움 경 | S17:1 | 529 |
| 낚시바늘 경 | S17:2 | 530 |
| 거북이 경 | S17:3 | 531 |
| 긴 머리 염소 경 | S17:4 | 532 |
| 똥벌레 경 | S17:5 | 533 |
| 벼락 경 | S17:6 | 534 |
| 독화살 경 | S17:7 | 535 |
| 자칼 경 | S17:8 | 536 |
| 거센 바람 경 | S17:9 | 537 |
| 게송이 있는 경 | S17:10 | 539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금발우 경 | S17:11 | 542 |
| 은발우 경 | S17:12 | 542 |
| 금화 경 등 | S17:13~20 | 543 |
제3장 세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여인 경 | S17:21 | 545 |
| 미녀 경 | S17:22 | 545 |
| 외동아들 경 | S17:23 | 546 |
| 외동딸 경 | S17:24 | 547 |
| 사문과 바라문경1 | S17:25 | 549 |
| 사문과 바라문경2 | S17:26 | 550 |
| 사문과 바라문경3 | S17:27 | 551 |
| 겉 피부 경 | S17:28 | 552 |
| 밧줄 경 | S17:29 | 552 |
| 비구 경 | S17:30 | 553 |
제4장 네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분열 경 | S17:31 | 555 |
| 선근(善根) 경 | S17:32 | 556 |
| 선법 경 | S17:33 | 557 |
| 밝은 법 경 | S17:34 | 557 |
| 떠나감 경 | S17:35 | 558 |
| 수레 경 | S17:36 | 559 |
| 어머니 경 | S17:37 | 561 |
| 아버지 경 등 | S17:38~43 | 561 |
제18주제 라훌라 상윳따(S18)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눈[眼] 경 | S18:1 | 565 |
| 형색 경 | S18:2 | 568 |
| 알음알이 경 | S18:3 | 569 |
| 감각접촉 경 | S18:4 | 570 |
| 느낌 경 | S18:5 | 571 |
| 인식 경 | S18:6 | 572 |
| 의도 경 | S18:7 | 573 |
| 갈애 경 | S18:8 | 574 |
| 요소[界] 경 | S18:9 | 575 |
| 무더기[蘊] 경 | S18:10 | 576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눈 경 | S18:11 | 578 |
| 형색 경 등 | S18:12~20 | 579 |
| 잠재성향 경 | S18:21 | 580 |
| 빠짐 경 | S18:22 | 582 |
제19주제 락카나 상윳따(S19)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뼈 경 | S19:1 | 587 |
| 고기 조각 경 | S19:2 | 590 |
| 고깃 덩이 경 | S19:3 | 591 |
| 가죽이 벗겨진 자 경 | S19:4 | 591 |
| 칼로 된 털 경 | S19:5 | 592 |
| 창으로 된 털 경 | S19:6 | 592 |
| 화살로 된 털 경 | S19:7 | 592 |
| 바늘로 된 털 경1 | S19:8 | 593 |
| 바늘로 된 털 경2 | S19:9 | 594 |
| 항아리만한 불알 경 | S19:10 | 594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머리 째 푹 빠진 자 경 | S19:11 | 596 |
| 똥 먹는 자 경 | S19:12 | 596 |
| 가죽이 벗겨진 여인 경 | S19:13 | 597 |
| 추녀 경 | S19:14 | 597 |
| 땀 투성이 여인 경 | S19:15 | 598 |
| 머리 잘린 자 경 | S19:16 | 598 |
| 사악한 비구 경 | S19:17 | 599 |
| 사악한 비구니 경 | S19:18 | 600 |
| 사악한 식카마나 경 | S19:19 | 600 |
| 사악한 사미 경 | S19:20 | 601 |
| 사악한 사미니 경 | S19:21 | 602 |
제20주제 비유 상윳따(S20)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뾰족지붕 경 | S20:1 | 605 |
| 손톱 경 | S20:2 | 606 |
| 가문 경 | S20:3 | 607 |
| 가마솥 경 | S20:4 | 608 |
| 창(槍) 경 | S20:5 | 609 |
| 궁수 경 | S20:6 | 610 |
| 쐐기 경 | S20:7 | 611 |
| 목침 경 | S20:8 | 613 |
| 큰 코끼리 경 | S20:9 | 615 |
| 고양이 경 | S20:10 | 617 |
| 자칼 경1 | S20:11 | 619 |
| 자칼 경2 | S20:12 | 320 |
제21주제 비구 상윳따(S21)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꼴리따 경 | S21:1 | 625 |
| 우빠띳사 경 | S21:2 | 627 |
| 통(단지) 경 | S21:3 | 629 |
| 신참 경 | S21:4 | 632 |
| 수자따 경 | S21:5 | 634 |
| 라꾼따까 밧디야 경 | S21:6 | 635 |
| 위사카 경 | S21:7 | 636 |
| 난다 경 | S21:8 | 638 |
| 띳사 경 | S21:9 | 640 |
| 장로라 불리는 자 경 | S21:10 | 641 |
| 마하깝삐나 경 | S21:11 | 643 |
| 도반 경 | S21:12 | 645 |
<상윳따 니까야 제2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붓다고사 스님은『청정도론』에서 통찰지의 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교교학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들고 있다.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기능[根, indriya],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ññā-bhūmi)이다.”(Vis.XIV.32)
『청정도론』뿐만 아니라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의 서문에서도 모두 온․처․계․근․제․연을 불교교학의 기본으로 들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이러한 불교교학의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서도 인연(nidāna)을 위주로 한 10개의 주제들(saṁyutta)을 모은 것이다. 이 열 개의 상윳따 가운데서도 제일 처음인「인연 상윳따」(S12)는 바로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분량도 본 번역의 저본이 되는 Ee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제2권 286쪽 가운데 132쪽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제2권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전통적으로 니다나 왁가(Nidāna Vagga, 인연 품), 즉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라고 전승되어 왔다. 그것은 제2권의 첫 번째 상윳따이면서 연기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인연 상윳따」(S12)가 제2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 제2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2권에는「인연 상윳따」(S12)부터「비구 상윳따」(S21)까지 모두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인연(S12), 관통(S13), 요소(S14), 시작을 알지 못함(S15), 이득과 존경(S17), 비유(S20)는 주제별로 모은 것이고 깟사빠(S16)와 라훌라(S18)와 락카나(S19)와 비구(S21)는 인물 중심으로 모은 상윳따이다.
2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는 이 경들을 각각 열 개씩으로 나누어서 품(vagga)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품이 10개가 넘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품을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명칭으로 묶는데, 제2권에는 10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가 없기 때문에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분류법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3권의「무더기 상윳따」(S22)나 제4권의「육처 상윳따」(S35)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먼저『상윳따 니까야』제2권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상윳따를 개관해보도록 하자.
제12주제「인연 상윳따」(Nidāna-saṁyutta, S12)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연기(paṭiccasamuppāda)와 동의어인 인연(nidāna)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인연 상윳따」라 부르고 있다. 이들 93개 경들은 모두 9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는데,『상윳따 니까야』전체에서 가장 어렵고 심오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할 정도로 어렵고 귀중한 가르침들이다.
제13주제「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S13)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관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을 담고 있으며, 이것을 ‘관통[現觀, abhisamaya]’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어서「관통 상윳따」라 부른다.
제14주제「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S14)에는 모두 39개의 경들이 모두 네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다양하게 분류되는 요소[界, dhātu]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15주제「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S15)에는 2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두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다.”라는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다.
제16주제「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S16)에는 부처님 입멸 후에 결집을 주도했으며 두타제일로 불리는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와 관련된 13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17주제「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S17)에는 모두 43개의 경들이 네 개의 품으로 분류되어 나타나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모든 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라고 하시면서 이를 경계할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제18주제「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S18)에는 부처님의 외동아들이었으며 어릴 때 출가한 라훌라 존자와 관계된 22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으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본 상윳따의 대부분의 경들은 온․처․계 등의 무상․고․무아를 강조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제19주제「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S19)에 포함된 21개의 경들은 락카나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것인데 이 역시 두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고 있다. 이 경들은 모두 신통제일인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으로 본, 기이한 형태의 몸을 받아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묘사하고 있다.
제20주제「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S20)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비유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상윳따이다.
제2권의 마지막 상윳따인 제21주제「비구 상윳따」(Bhikkhu-saṁ- yutta, S21)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꼴리따라 불렸던 마하목갈라나 존자 등의 여러 비구들의 일화를 담고 있어서 본 상윳따를「비구 상윳따」라 이름한 것이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인연 상윳따」(S12)
⑴ 왜 인연(nidāna)인가
열두 번째 주제인「인연 상윳따」는 Nidāna Saṁyutta를 옮긴 말이다. 본 상윳따에는 93개의 경들이 제1장「부처님 품」, 제2장「음식 품」, 제3장「십력 품」, 제4장「깔라라캇띠야 품」, 제5장「장자 품」, 제6장「괴로움 품」, 제7장「대품」, 제8장「사문․바라문 품」, 제9장「뒷부분의 반복」으로 분류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제1품부터 제7품까지에는 각각 열 개의 경들이, 제8품에는 11개의 경들이, 제9품에는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7품에는 상대적으로 긴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경들은 모두 12지 연기를 위주로 한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설한 가르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연기(paṭiccasamuppāda) 상윳따라 부르지 않고 왜「인연(nidāna) 상윳따」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인연으로 옮긴 니다나(nidāna)라는 술어는 본 상윳따에「인연 경」(Nidāna-sutta, S12:60)으로도 나타나며, 이 경이 확장된 것이『디가 니까야』의「대인연경」(Mahānidāna Sutta, D15)이다. 이「인연 경」은 애-취-유-생-노사의 5지 연기를 설하고 있고,「대인연 경」은 더 확장되어 식-명색-촉-수-애-취-유-생-노사의 9지 연기를 설하고 있다.
인연(nidāna)이라는 술어는 ni(아래로)+√dā(to give)에서 파생된 명사로 ‘아래에 놓음’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기초, 기본, 원천, 근원’ 등의 뜻으로 쓰인다.「대인연경」(D15 §4) 등에는 이 술어가 “hetu(원인), ni- dāna(근원), samudaya(기원), paccaya(조건)”으로 나열되어 나타나고 있는데,『청정도론』과『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조건, 원인, 이유, 근본, 근원, 기원 등은 글자만 다를 뿐 뜻으로는 하나이다.”라고 설명하듯이 이 단어들은 모두 동의어다. 이런 배경에서 연기의 가르침은 전통적으로 모두 인연이라는 용어로 제목을 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연기의 가르침을 모은 본 상윳따도 ‘연기 상윳따’로 부르지 않고 ‘니다나 상윳따’로 즉 ‘인연 상윳따’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⑵ 경들의 분류
「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모두 93개의 경들 가운데서 12연기의 늙음․죽음[老死]과 그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道]을 하나의 주제로 삼고 있는 S12:71부터 의도적 행위[行]와 그 집․멸․도를 하나의 주제로 삼고 있는 S12:81까지를 하나의 가르침으로 취급하고, 같은 이유로 노사부터 무명까지를 각각 하나의 경의 주제로 택하고 있는 S:82∼93까지의 경들도 모두 하나의 가르침으로 간주하면,「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72개의 가르침으로 축약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72개로 축약되는 이들 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연기의 가르침을 이들에 포함되어 있는 연기의 구성요소가 몇 개인가를 중심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2지 연기 34개 경: S12:1, 2, 3, 4, 5, 6, 7, 8, 9, 10, 15, 16, 17, 18, 20, 21, 22, 23, 27, 35, 36, 37, 41, 42, 46, 47, 48, 49, 50, 51, 61, 68, 69, 70
② 11지 연기1 9개 경(행의 집(集)을 무명으로 간주하고 있음): S12:13, 14, 28, 29, 30, 33, 34, 71, 82.
11지 연기2 1개 경: S12:39
③ 10지 연기 4개 경: S12:12, 59, 65, 67
④ 9지 연기 2개 경: S12:11, 58
⑤ 8지 연기 4개 경: S12:24, 43, 44, 45
⑥ 7지 연기 1개 경: S12:64
⑦ 6지 연기 1개 경: S12:19
⑧ 5지 연기 8개 경: S12:32, 52, 53, 54, 55, 56, 57, 60
⑨ 4지 연기 3개 경: S12:38, 40, 66
⑩ 3지 연기 1개 경: S12:25
⑪ 2지 연기 4개 경: S12:26, 31, 62, 63
계 72개 경
위의 분류에서 살펴보았듯이 놀랍게도 12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경들은 전체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본 상윳따에는 연기의 가르침으로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11가지나 되는 다양한 연기가 설해지고 있다.
그리고 또 살펴보아야 할 측면은 이 연기의 가르침에서 유전문(流轉門, anuloma, 順觀), 즉 발생구조를 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군데에 나타나며, 환멸문(還滅門, paṭiloma, 逆觀), 즉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군데에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72개의 가르침 가운데 괴로움의 발생구조만을 설하고 있는 경은 2개(S12:20, 27)이고, 괴로움의 소멸구조만 설하고 있는 경은 4개(S12:16∼18, 62)이며,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다 설하고 있는 경은 52개 경이고, 나머지 14개의 경들은 이런 관점과는 큰 관련 없이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연기의 정형구 혹은 공식으로 잘 알고 있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는 가르침이 나타나는 경들은 모두 7개(S12:21, 22, 37, 41, 49, 61, 62)이다. 이 가운데서 62번 경을 제외한 나머지 경들은 이 정형구 바로 다음에 “즉,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라는 식으로 12연기의 정형구가 나타난다. S12:62에는 이 정형구 다음에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고 소멸한다는 2지 연기가 나타나고 있다.
역자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의 정형구도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데에만 나타나지, 이 정형구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는 것처럼 ‘제법(諸法)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설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이다.
⑶ 각각 연기의 개관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각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① 12지 연기
먼저 12지 연기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음의 가르침을 기본 정형구로 하고 있다.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깟짜야나여, 이를 일러 일어남[起]이라 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러나 같은 12지 연기를 담고 있는 경들 가운데 S12:4, 5, 6, 7, 8, 9, 10, 16, 20, 68, 70의 열한 개의 경들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부터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까지로 노사부터 무명까지의 반대방향으로 12지 연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 외의 22개 경들은 모두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부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까지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S12:20, 27은 괴로움의 발생구조 즉 유전문만을, S12:16∼18은 괴로움의 소멸구조 즉 환멸문만을 다루고 있다.
② 11지 연기
11지 연기는 모두 8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모두 무명이 빠진 행부터 노사까지의 11개 구성요소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가운데 7개 경들 즉 S12:13, 14, 28, 29, 30, 33, 34는 모두 늙음․죽음과 그 일어남(집, 원인)과 소멸(멸)과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무명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의도적 행위들[行]의 일어남(집, 원인)이 무명이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위에서 밝힌 대로 S12:71∼81까지의 11개 경들은 늙음․죽음부터 의도적 행위들까지의 구성요소들이 각각 하나의 경에 배대되어 모두 11개의 경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하나의 가르침으로 계산하였고, S12:82∼93의 12개 경들도 마찬가지여서 하나의 경으로 계산하였다.
그리고 S12:39도 의도적 행위부터 늙음․죽음까지의 11지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의도적 행위들[行]이라는 술어 대신에 “어떤 것을 의도하고 어떤 것을 계속해서 사유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 잠재성향을 가지면 그것은 [업을 짓는] 알음알이가 머무는 조건이 된다.”라고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순수한 11지 연기를 설하는 가르침은 이 S12:39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다.
③ 10지 연기
10지 연기는 S12:12, 59, 65, 67의 네 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알음알이 — 정신․물질부터 태어남 — 늙음․죽음까지 즉 식연명색부터 생연노사까지의 10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S12:12, 59의 두 개 경들은 알음알이부터 늙음․죽음까지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S12:12에서는 괴로움의 발생구조로는 10지를 들고 있지만 괴로움의 소멸구조로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 — 감각접촉 — 느낌부터 늙음․죽음까지의 8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S12:12 §9의 주해를 참조할 것.
한편 S12:65와 67은 늙음․죽음부터 정신․물질 — 알음알이까지 관찰해 올라와서 다시 알음알이의 조건으로 정신․물질을 들고 이렇게 해서 늙음․죽음까지 내려가면서 관찰하고 있다. 이것은『디가 니까야』「대전기경」(D14 §§2.18∼2.20)에 나타나는 위빳시 보살의 연기에 대한 천착과 일치한다.
④ 9지 연기
9지 연기는 S12:11, 58의 두 개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S12:11에는 네 가지 음식 — 갈애 — 느낌 — 감각접촉 — 여섯 감각장소 — 정신․물질 — 알음알이 — 의도적 행위 — 무명의 9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네 가지 음식의 근원(nidāna) 혹은 조건 혹은 인연을 구명해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무명까지 근원을 탐구해 올라간 뒤에 다시 무명부터 늙음․죽음까지의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S12:58에서는 정신․물질부터 늙음․죽음까지의 9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물론 한 생에서 정신․물질이 출현하는 조건으로 전생의 달콤함을 보는 것(주석서는 전생의 갈애라고 설명함)을 들고 있다.
⑤ 8지 연기
8지 연기는 S12:24, 43, 44, 45의 네 개 경에서 나타나고 있다.
S12:24는 늙음․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감각접촉 — 여섯 감각장소[六處]까지로 괴로움의 발생 원인을 관찰하고 다시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 — 감각접촉에서부터 늙음․죽음까지로 8가지 구성요소로 괴로움의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소멸구조에서는 여섯 감각장소 대신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가 나타나고 있다.
S12:43∼45의 세 개의 경은 괴로움의 발생구조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안식부터 의식까지) — 감각접촉 — 느낌 — 갈애를 든 뒤에 괴로움의 소멸구조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안식부터 의식까지) — 감각접촉 — 느낌 — 갈애 — 취착 — 존재 — 태어남 — 늙음․죽음의 8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그래서 8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물론 이 세 개의 경에서 여섯 가지 알음알이는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로 나타나기 때문에 육내처와 육외처를 넣어서 10지 연기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며, 발생구조로 식-촉-수-애의 넷을 들고 있기 때문에 4지 연기에도 포함시킬 수 있다. 역자는 12지 연기에서 나타나는 식-촉-수-애-취-유-생-노사를 중시하여 여기 8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⑥ 7지 연기
7지 연기는 S12:64 한 개의 경에 나타난다.
S12:64는 특이하게 네 가지 음식에 대한 갈애 — 알음알이 — 정신․물질 — 의도적 행위 — 다시 태어남[再有] — 태어남[生] — 늙음․죽음의 7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⑦ 6지 연기
6지 연기는 S12:19의 한 개의 경에 나타난다.
무명․갈애 — 몸(알음알이와 함께한 몸)을 받음 — 밖의 정신․물질 — 감각접촉(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육촉처) — 느낌(즐거움과 괴로움) — 다시 몸을 받음의 6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본경은 감각접촉에 바탕을 둔 느낌이 원인이 되어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kāyassa bhedā) 다시 몸을 받아서(kāyūpaga)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있다고 결론을 맺고 있으므로 6지 연기로 간주하였다. 물론 무명과 갈애를 제거한 현자는 다시 몸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본경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튼튼한 경전적인 근거가 된다. 역자는 기본 구조를 중시해서 6지 연기로 분류를 하였다.
⑧ 5지 연기
5지 연기는 S12:32, 52, 53, 54, 55, 56, 57, 60의 여덟 개 경에 나타난다.
S12:52∼57과 S12:60의 일곱 개 경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는 구조로 5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이것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12지 연기 가운데 금생의 원인과 내생의 결과를 설하는 후반부의 애-취-유-생-노․사의 다섯 만을 들고 있는 것이다.
S12:32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태어남이 다했음의 정형구를 통해서 태어남 — 존재 — 취착 — 갈애 — 느낌의 5지 연기를 통해서 태어남의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세존께 말씀드리고 있다. 물론 이 느낌은 괴로운 느낌[苦受] 등의 셋이며 이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인 것을 알기 때문에 느낌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⑨ 4지 연기
4지 연기는 S12:38, 40, 66의 세 개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S12:38은 의도 — 알음알이 — [내생에] 다시 존재함[再有] — 늙음․죽음의 4가지 구성요소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그리고 S12:66은 늙음․죽음 — 재생의 근거 — 갈애 —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라 불리는 여섯 감각장소의 네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각각의 구성요소에서 모두 설하고 있다.
⑩ 3지 연기
3지 연기는 S12:25 한 곳에 나타나고 있다.
S12:2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부미자 존자에게 괴로움 — 감각접촉의 2가지 구성요소를 설하였고, 이를 아난다 존자로부터 전해들은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신 뒤에 다시 괴로움 — 몸과 말과 마음의 의도적 행위 — 무명의 3가지 구성요소로 연기를 설하신다. 역자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3가지 구성요소를 중시하여 3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⑪ 2지 연기
2지 연기는 S12:26, 31, 62, 63의 네 개의 경에 나타나는데 각각 다른 연기를 들고 있다.
먼저 S12:26은 괴로움은 감각접촉에서 발생한다는 2가지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설하고 있다.
S12:31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되어있는 것(bhūta, 즉 오온) — 네 가지 음식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보고 되어있는 것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을 성취한다고 세존께 말씀드리고 있다.
S12:62는 감각접촉 — 느낌의 2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운 느낌 등의 세 가지 느낌의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S12:63은 ①덩어리진 [먹는] 음식 —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 ② 감각접촉[觸]의 음식 — 세 가지 느낌, ③ 마음의 의도의 음식 — 세 가지 갈애, ④ 알음알이의 음식 — 정신․물질의 구조로 네 가지 음식을 철저하게 알 것을 설하였다. 합송자들은 네 가지 음식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 각각을 연기의 가르침으로 파악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경이 여기「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본 상윳따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
한편 S12:2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부미자 존자에게 괴로움 — 감각접촉의 2가지 구성요소를 설하였고, 이를 아난다 존자로부터 전해들은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신 뒤에 다시 괴로움 — 몸과 말과 마음의 의도적 행위 — 무명의 3가지 구성요소로 연기를 설하신다. 역자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3가지 구성요소를 중시하여 3지 연기에 포함시켰지만, 사리뿟따 존자의 설명은 이곳 2지 연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⑷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
이상으로 93개의 경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을 72개의 가르침으로 축약하여서 12지 연기부터 2지 연기까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인연 상윳따」에 나타나는 경들을 통해서 초기경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을 대략 11가지로 살펴보자.
①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연기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연기하면 우주의 구성 원리부터 먼저 생각한다. 아니면 좀 더 불교식으로 고상하게 표현해서 제법의 상호관계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기하면 화엄에서 말하는 중중무진연기 혹은 법계연기를 떠올리고 육상원융(六相圓融)을 떠올린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 연기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괴로움의 소멸구조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으로 정리되는 사성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망각해버리고 저 밖으로 우주의 구성원리를 찾고 법계나 제법의 상호관계를 찾고 법계연기나 육상원융을 떠올린다면 연기의 가르침을 호도해도 너무 호도하는 것이 되고 만다.
여러 주석서들에서도 12연기를 주로 한 연기의 가르침의 유전문(순관)은 윤회의 발생구조(vaṭṭa)를 드러내는 것이고 12연기의 환멸문(역관)은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구조(vivaṭṭa) 혹은 윤회의 소멸구조를 설하신 것이라고 한결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12연기를 비롯한 모든 연기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런 기본적인 관점을 무시하고 연기를 더군다나 12연기를 중중무진연기로 이해해서 전우주의 상호관계로 이해하려 드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입장을 호도하는 것이 된다. 물론 초기불전의 논장(Abhidhammma Piṭaka)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을 통해서 모든 법의 상호의존[緣, paṭṭhāna] 혹은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고, 설일체유부에서는 6인-4연-5과로써, 유식에서는 10인-4연-5과로써 제법의 상호의존을 밝히고 있다. 화엄의 중중무진연기는 이러한 상호의존이 발달된 것이지 이것을 초기경의 12연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드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한편「깟짜나곳따 경」(S12:15)과「세상 경」(S12:44)과「성스러운 제자 경」1(S12:49) 등에서 12연기를 세상의 일어남과 소멸이라고 설한 곳도 나타난다. 그러나「깟짜나곳따 경」(S12:15)과「세상 경」(S12:44)에서 세상의 일어남은 12연기를 통한 괴로움의 발생구조로 설명되고 있고 세상의 소멸은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구조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12연기를 세상이나 우주의 생성원리로 이해하려는 것은 정작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말씀하신 괴로움의 해결과 해탈․열반의 실현이라는 근본 메시지를 호도할 우려가 많다 하겠다.
② 괴로움이란 윤회의 괴로움이다
이처럼 12지 연기를 비롯한 모든 연기의 가르침은 12지 연기의 정형구에서 “…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라고 말씀하셨듯이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신 것이다. 태어남과 늙음․죽음은 한자로 생과 노사이며 줄이면 생과 사, 저 생사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생사문제로 대표되는 괴로움을 뜻한다.
여기서 태어남[生]으로 옮긴 jāti는 범어로 보면 한 생에 최초로 태어나는 것 이외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절대로 생멸(生滅)한다는 의미의 생이 될 수가 없다. 생멸의 생은 일어남의 의미인 samudaya나 udaya이다. jāti는 태어남의 의미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연기의 가르침에서 존재[有]와 태어남[生] 사이에는 한 생이 개재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우현(愚賢) 경」(S12:19)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다른] 몸을 받게 된다. 그는 [다른] 몸을 받아서는 태어남,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주석서는 “‘몸을 받음(kāy- ūpaga)’이란 다른 재생연결의 몸(paṭisandhi-kāya)을 받는다는 말이다.” (SA.ii.40)라고 설명하고 있다.
③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출현
그리고 주목해야 할 곳이 의도적 행위들[行] — 알음알이[識] — 정신․물질[名色]의 부분이다. 물론 12지 연기에서는 알음알이를 위시한 이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우현 경」(S12:19)에서는 무명과 갈애가 원인이 되어서 어리석은 자의 몸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서 감각접촉과 느낌이 생기고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다시 몸이 무너진 뒤에 다른 몸을 받는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의 설명처럼 전자의 몸은 알음알이와 함께한 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12지 연기에서의 알음알이도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 즉 재생연결식으로 간주해야 한다. 특히「알음알이 경」(S12:59 §3)에는 “족쇄에 묶이게 될 법들에서 달콤함을 보면서 머무는 자에게 알음알이가 출현한다.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알음알이가 출현한다.’는 viññāṇassa avakkanti hoti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디가 니까야』「대인연경」(D15 §21)에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가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정신․물질이 모태에서 발전하겠는가?”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는 mātu- kucchiṁ na okkamissatha를 옮긴 것이다. okkamissatha는 ok- kamati(ava+√kram, to go)의 조건법 3인칭 단수형이다. 이것은 본경에서 ‘출현’으로 옮기고 있는 명사 avakkanti(ava+√kram)와 같은 어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알음알이의 출현은 바로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가 모태에서 생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전생의 갈애를 조건으로 해서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가 모태에서 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주석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모태에 듦(gabbhassa avakkanti)’이라는 표현은『맛지마 니까야』「긴 갈애의 소멸 경」(M38/i.265 §28)과「앗살라야나 경」(M93/ii. 156 §18)과『앙굿따라 니까야』「외도의 주장 경」(A3:61/i.176 §9) 등에도 나타난다. 이 가운데 특히「외도의 주장 경」(A3:61 §9)에는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라고 나타난다. 이 구절과「정신․물질 경」(S12:58)과 본경을 함께 놓고 보면 본경에 나타나는 알음알이의 출현은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재생연결식)가 어머니 모태에 드는 것 혹은 모태에서 생겨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알음알이가 출현함’은 ‘알음알이가 [모태에] 듦’으로도 옮길 수 있다.
이처럼「알음알이 경」(S12:59)을 중심으로 한 여러 경들 특히 위에서 인용한『디가 니까야』「대인연경」(D15 §21)을 보면 이 알음알이는 주석서의 한결같은 설명처럼 한 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출현’ 혹은 ‘모태에 듦’으로 옮겨지는 avakanti는「의도 경」2(S12:39 §3)와「정신․물질 경」(S12:58 §3)과「탐욕 있음 경」(S12:64 §4)에서는 ‘정신․물질의 출현(nāmarūpassa avakkanti)’이라고도 나타나고 있다. 알음알이가 언급되지 않는「정신․물질 경」(S12:58)에서는 이것을 한 생의 최초로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의도 경」2(S12:39)에서는 주석서의 설명처럼 알음알이를 업을 짓는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정신․물질의 출현을 한 생의 최초로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탐욕 있음 경」(S12:64 §4)에도 “알음알이가 확립되고 증장하는 곳에 정신․물질이 출현한다.”고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같은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정신․물질의 출현도 한 생의 최초의 정신․물질이 모태에 드는 것 혹은 생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12지 연기에서 알음알이나 정신․물질은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나 정신․물질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주석서로 들어가면 주석서는 예외 없이 이 알음알이나 정신․물질을 재생연결식이나 모태에 드는 것으로 한결같이 해석하고 있다.
특히 무명과 의도적 행위[行]가 나타나지 않고 알음알이[識]로부터 시작하여 생-노사로 끝나는 10지 연기를 설하는 경들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는 재생연결식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문맥상으로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10지 연기로 나타나는 S12:12, 59, 65, 67의 네 개 경들에 해당하는 주석서는「몰리야팍구나 경」(S12:12)의 알음알이[識]를 재생연결식으로 설명하고 있고,「알음알이 경」(S12:59)의 식은 모태에 드는 것으로,「도시 경」(S12:65)과「갈대 다발 경」(S12:67)의 식은 재생연결식이거나 위빳사나의 알음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에 의하면 이 네 개의 경들은 모두 재생연결식을 공통적인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10지 연기로 오면 알음알이는 거의 전적으로 재생연결식이나 모태에 드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④ 내생에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술어가 다시 태어남[再有]으로 번역되는 punabbhava이다.「몰리야팍구나 경」(S12:12 §4)에는 “[재생연결식이라는] 알음알이의 음식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은 āyatiṁ punabbhava-abhinibbatti를 옮긴 것이다. āyati는 미래라는 뜻인데 문맥상 내생으로 옮겨야 마땅하다. 그리고 punabbhava는 문자 그대로 다시(punar)+존재함(bhava)을 뜻하며 초기경의 문맥에서는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이 술어와 같은 의미의 술어로 ponobhavikā(다시 태어남[재생]을 가져오는 것)가 있는데, 이것은 갈애(taṇhā)의 동의어로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abhinibbatti는 탄생이나 드러남이나 존재함으로 옮겨지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여기서 ‘알음알이의 음식’은 재생연결식(paṭi- sandhi-citta)이다.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것’은 이 알음알이와 함께 일어난 정신․물질이다.”(SA.ii.31)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가르침이 있다.『앙굿따라 니까야』「존재 경」(A3:76)에서 세존께서는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 중간의 [색]계에 … 수승한 [무색]계에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된다.”라고 천명하신다. 이것은 씨앗에 비유되는 알음알이가 알음알이의 음식의 역할을 하여 모태에서 금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이 되고 이것이 음식이 되어 함께 일어나는 정신․물질[名色]을 생기게 한다는 말이다.
「몰리야팍구나 경」(S12:12)에서 주목할 점은 세존께서는 연기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를 알음알이의 음식으로 말씀하고 계시며 주석서는 이것을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인 재생연결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석서는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되는 것을 정신․물질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은 재생연결식이라는 음식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연기의 정형구의 식과 명색을 한 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과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명색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생에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을 중심한, 같은 가르침이「의도 경」1(S12:38 §3)과 S12:64 §5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출처를 통해서도 알음알이[識]와 정신․물질[名色]을 한 생의 최초에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⑤ 12연기는 삼세를 말한다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들은 역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2지 연기는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혹은 윤회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가르침이라는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의 정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무명․행과 애․취․유를 인(因)으로 이해하고 식․명색․육입․촉․수와 생․노사를 과(果)로 이해해서 삼세에 걸쳐서 이러한 인과 과가 두 번 반복된다고 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을 12지 연기를 비롯한 연기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정설로 삼고 있다.
특히 6지 연기로 분류할 수 있는「우현(愚賢) 경」(S12:19)은 12연기를 네 개의 집합(catu-saṅkhepa)과 20가지 형태(vīsat-ākāra)를 토대로 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해석하는 전통적인 견해(Ps.i.51∼52; 『청정도론』XVII.288∼298; 『아비담마 길라잡이』제8장 §§4∼8 등 참조)의 단초가 되는 중요한 경이다.
한편 유식에서는 생과 노사만을 다른 생으로 이해하여 이세일중인과(二世一重因果)를 정설로 받아들이는데, 2세1중이 지속되면 이것이 삼세양중이 되기 때문에 2세1중으로 충분하다고『성유식론』은 설명하고 있다.
⑥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
12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2연기는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해버리면 12연기는 그때부터 혼란스러워 진다. 12연기 가운데 ①무명-②행과 ⑧애-⑨취-⑩유는 원인의 고리이고 나머지 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와 ⑪생-⑫노사우비고뇌는 결과(과보)의 연결고리이다. 이렇게 12연기는 원인의 연결고리와 결과의 연결고리가 반복적으로 연결되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중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의 공통된 설명방법이다. 유식에서는 2세1중인과를 설하는데,『성유식론』에 의하면 2세만 이야기하면 3세는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때문에 2세1중인과로 족하다고 한다. 아무튼 초기불교-아비담마-유식에서 공히 12연기는 윤회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무명은 과거의 원인이기만하고 갈애는 현재의 원인이기만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청정도론』XVII.291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① 과거의 원인이 다섯이고 ② 지금의 결과도 다섯이다.
③ 지금의 원인이 다섯이고 ④ 미래의 결과도 다섯이다.”
그리고 §292에서 “① 과거의 원인이 다섯이라고 했다. 여기서 무명과 의도적 행위들[行]의 이 둘은 이미 설했다. 무지한 자가 갈증을 느끼고, 갈증을 느끼는 자가 취착하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그러므로 갈애, 취착, 존재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이전의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어리석음이 무명이요, 노력이 의도적 행위들[行]이며, 집착이 갈애요, 접근이 취착이며, 의도가 존재다. 이와 같이 이전의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있었던] 이 다섯 가지 법들이 금생의 재생연결의 조건이 된다.”(Ps.i.52)”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296에서는 “③ 지금의 원인이 다섯이라고 했다. 이것은 갈애 등이다. 갈애, 취착, 존재가 성전에 전승되어온다. 존재가 포함될 때 그 존재에 선행하는 의도적 행위들[行]이나 혹은 그와 관련된 의도적 행위들[行]도 포함된다. 갈애와 취착이 포함될 때 그들과 관련된 무명도 — 이것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업을 쌓는다 — 포함된다. 이와 같이하여 다섯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처럼 무명, 행, 애, 취, 유의 다섯은 과거 혹은 전생에 지은 원인도 되고 지금 혹은 금생에 짓는 원인도 된다. 그러나 무명과 행은 전생에 더 두드러진 원인이 되고 애와 취와 유는 금생에 더 두드러진 원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⑦ 이세인과(二世因果)
물론「인연 상윳따」(S12)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이 모두 삼세양중인과만을 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10지 연기로 나타나는 S12:12, 59, 65, 67의 네 개 경들은 금생의 재생연결식부터 시작해서 내생의 생-노사로 연결되는 금생과 내생의 이세인과(二世因果)를 설하고 있다.
그리고 8지 연기를 설하는 S12:24, 43, 44, 45의 네 개 경도 금생과 내생의 이세인과를 설하고 있다. 특히 S12:43∼45는 식-촉-수-애-취-유-생-노사의 8지 연기를 설하는데, 여기서 식은 재생연결식이 아니라 감각장소와 대상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6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8지 연기는 금생에 지금․여기에서 찰나생․찰나멸하는 식-촉-수가 조건이 되어서 애-취-유가 전개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내생의 생-노사가 상속된다고 설하고 있다.
특히 5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S12:52∼57과 S12:60의 일곱 개 경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12지 연기 가운데 금생의 원인과 내생의 결과를 설하는 후반부의 애-취-유-생-노사의 다섯 만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세일중인과(二世一重因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금생의 원인인 애-취-유를 조건으로 해서 내생의 결과인 생-노사가 생기는 구조로 금생과 내생의 이세에 걸쳐서 인-과가 한번 거듭되는 구조의 연기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생에서만 전개되는 연기의 가르침은 나타나지 않는가? 일단 12지 연기부터 3지 연기까지는 적어도 두 생이 개입되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3지 연기를 설하는 S12:25에서 세존께서는 무명을 근본원인으로 말씀하셨고, 이것은 주석서의 설명처럼 윤회의 뿌리이기 때문에 무명이 나타난다는 것은 전생과 금생의 두 생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S12:26, 31, 62, 63의 네 개의 경은 한 생 내에서의 연기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감각접촉(촉)-괴로움(S12:26)과 감각접촉-느낌(S12:62)의 2지 연기와, 네 가지 음식과 그 원인을 설하는 S12:63의 2지 연기는 한 생 내에서의 연기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⑧ 연기에 대한 네 가지 해석
한편 경전에 나타나는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연기의 가르침은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 논서들에서는 모두 12지 연기로 정착이 된다.
이렇게 12지 연기로 정착이 되어 원인-결과의 중층적 고리로 설명이 되는 12연기는 이미 다양한 부파의 여러 대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북방 아비달마를 총괄하고 있는『아비달마 구사론』(줄여서『구사론』이라 부름)에 의하면 아비달마에서는 연기의 가르침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고 적고 있다.
첫째는 한 찰나에 연기의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는 주장인데 이것을 ‘찰나(刹那)연기’라 한다.『구사론』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행할 때 찰나에 12지가 모두 갖추어져 일어난다고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 12찰나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12지가 연이어서 상속(相續)한다는 것이 ‘연박(連縛)연기’이고, 여러 생에 걸쳐서 시간을 건너뛰어서 12지가 상속한다는 것이 ‘원속(遠續)연기’이며, 12지는 모두 5온을 본질로 하여 매순간 오온이 생멸하면서 상속하지만 특정 순간의 두드러진 상태[分位]에 근거하여[從勝立支名] 각각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 ‘분위(分位)연기’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구사론』은 경(經, sūtra)은 오로지 번뇌를 끊어[斷惑]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해졌기 때문에 연기의 가르침을 ‘유정’에만 한정시킨 반면, 논(論, abhidharma)은 법의 참된 모습 즉 법상(法相) 혹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분위로도 설하고 유정․비유정과 통하는 것으로도 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론은 이미『대비바사론』(『한글대장경』118, p. 516)에 나타나고 있는데, 분위와 원속은 오로지 유정에 국한되는 연기이고, 찰나와 연박은 비유정 즉 법에도 통하는 연기라고 한다. 이처럼 경에서는 유정 즉 중생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로 연기를 설하고 있지만 아비달마 즉 논의 가르침에서는 이러한 연기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⑨ 통시적인가 공시적인가
연기각지들이 한 순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나는가 아닌가하는 것도 학자들의 관심꺼리다. 연기각지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다는 것이 통시적 연기이고 연기각지가 한 순간에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 공시적 연기이다. 물론 경에서는 특정 연기각지들의 관계가 통시적인가 공시적인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자면 인은 인끼리 과는 과끼리 공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무명과 행과 애와 취와 유라는 인은 통시적일 수도 있고 공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과 명색과 육입과 촉과 수도 아비담마적으로 보자면 공시적일 수도 있고, 특정 순간에 어느 것이 더 강한가하는 측면에서는 통시적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과 과는 공시적으로 보면 곤란하다. 인과동시(因果同時)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유와 생, 생과 노사는 공시적일 수 없다. 물론 찰나연기의 입장에서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연박연기와 원속연기와 분위연기의 관점은 통시적이라 할 수 있고 찰나연기는 공시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남방『청정도론』과 북방『구사론』은 각각 24연과 6인-4연-5과의 이론으로 12연기각지(緣起各支)의 통시성과 공시성을 잘 밝히고 있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식-명색(XVII.201), 명색-육입(XVII.207 등), 육입-촉(XVII. 227), 촉-수(XVII.231), 애-취(XVII.248), 취-유(XVII.268~269)의 여섯 가지 등은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 즉 공시적 연기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⑩ 12연기와 상호의존[緣]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상호의존[緣, paccaya, paṭṭhāna]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미 초기불교부터 상호의존 혹은 조건발생으로 존재일반을 설명해왔다. 이러한 조건은 초기 아비담마에서부터 24가지 조건으로 정리되었고,『구사론』을 위시한 북방아비달마에서는 6인-4연-5과로 특히 4연(四緣, 네 가지 조건)으로 정리가 되었으며, 이것은 유식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서 10인-4연-5과로 특히 4연으로 정리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괴로움 특히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12연기를 이러한 24연이나 4연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24연이나 4연이 발전하여 화엄에서 법계연기로 승화한 것이지 결코 12연기가 법계연기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위의 ‘⑧ 연기에 대한 네 가지 해석’에서 밝혔듯이 북방 아비달마는 제법의 법상을 밝히는 것을 중시하다보니 이미 연기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이해하려 시도하였다.
상좌부『논장』의 마지막인『빳타나』에서는 상호의존(paṭṭhāna)의 방법으로 ⑴ 원인의 조건(hetupaccaya, 因緣) ⑵ 대상의 조건(ārammaṇa- paccaya, 所緣緣) ⑶ 지배의 조건(adhipatipaccaya, 增上緣) ⑷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anantarapaccaya, 無間緣) ⑸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samanantarapaccaya, 等無間緣) ⑹ 함께 생긴 조건(sahajātapaccaya, 俱生緣) ⑺ 서로 지탱하는 조건(aññamaññapaccaya, 相互緣) ⑻ 의지하는 조건(nissayapaccaya, 依止緣) ⑼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paccaya, 親依止緣) ⑽ 먼저 생긴 조건(purejātapaccaya, 前生緣) ⑾ 뒤에 생긴 조건(pacchājātapaccaya, 後生緣) ⑿ 반복하는 조건(āsevanapaccaya, 數數修習緣) ⒀ 업의 조건(kammapaccaya, 業緣) ⒁ 과보의 조건(vipākapaccaya, 異熟緣) ⒂ 음식의 조건(āhārapaccaya, 食緣) ⒃ 기능[根]의 조건(indriya- paccaya, 根緣) ⒄ 禪의 조건(jhānapaccaya, 禪緣) ⒅ 도의 조건(magga- paccaya, 道緣) ⒆ 서로 관련된 조건(sampayuttapaccaya, 相應緣) ⒇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vippayuttapaccaya, 不相應緣) (21) 존재하는 조건(atthipaccaya, 有緣) (22) 존재하지 않은 조건(natthipaccaya, 非有緣) (23) 떠나가 버린 조건(vigatapaccaya, 離去緣) (24) 떠나가 버리지 않은 조건(avigatapaccaya, 不離去緣)의 24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북방의『아비달마 구사론』에서는 제법의 상호관계를 6인-4연-5과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용어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⑴ 6인: 능작인, 구유인, 상응인, 동류인, 변행인, 이숙인
⑵ 4연: 증상연, 등무간연, 소연연, 인연
⑶ 5과: 증상과, 사용과, 등류과, 이숙과, 이계과
이렇게 남방불교의 핵심인『청정도론』과 북방불교의 요체라 할 수 있는『구사론』은 이러한 상호의존과 상호관계를 통해서 제법의 상호관계를 심도 깊게 설명해내고 있으며 이것은 대승 특히 화엄에서 계승․발전되어 법계연기나 육상원융 등으로 이해되었다.
아무튼 초기불전에서 설하시는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이론화한 상호의존[緣, paccaya]은 엄격해 구분되어야 한다. 12연기를 제법의 상호의존 혹은 제법의 상호관계로만 너무 천착하다보면 자칫 생사문제를 해결하여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세존의 고구정녕하신 메시지가 들어 있는 연기의 가르침을 너무 현학적으로 만들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든 상호의존이든, 이러한 연이생(緣而生)의 가르침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모든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핵심이 되는 것임은 자명하다.
⑪ 연기는 무아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12연기를 비롯한 여러 각지의 연기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연기의 가르침은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주인공이니 하는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과 하나 되는 것쯤으로 깨달음을 착각하지 말라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실체는 어느 시대 어느 불교에도 결코 발붙일 틈이 없다.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연기의 가르침을 제법의 상호관계로 승화시켜서 이해하려 한 것은 더욱더 그러하여 제법무아를 이론적으로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여래장 계열의 교학에서 주창하는 여래장이나 진여나 불성을 존재론적인 실체로 이해해버린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불교라는 깃발을 내걸고 외도짓거리를 하는 현양매구(懸羊賣狗)일 뿐이다. 이것이 교학적 측면에서 본 연기의 중요성일 것이다.
⑸ 연기의 소멸구조는 온․처의 염오-이욕-소멸과 같은 가르침
본 상윳따의「설법자[法師] 경」(S12:16 §4)과「되어있는 것 경」(S12: 31 §5)과「배우지 못한 자 경」1/2(S12:61∼62 §3)과「갈대 다발 경」(S12: 67 §8)에 “만일 비구가 늙음․죽음에 대해서 … 태어남에 대해서 … 존재에 대해서 … 취착에 대해서 … 갈애에 대해서 … 느낌에 대해서 … 감각접촉에 대해서 … 여섯 감각장소에 대해서 … 정신․물질에 대해서 … 알음알이에 대해서 … 의도적 행위들에 대해서 … 무명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일러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합니다.”(S12:67 §8) 등으로 나타나듯이 연기의 소멸구조는 결국은 염오-이욕-소멸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와 제4권「육처 상윳따」(S35) 등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는 가르침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연기각지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을 성취하여 고(苦)를 소멸할 것인가? 본「인연 상윳따」(S12)에는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무더기 상윳따」(S22)와「육처 상윳따」(S35)와「진리 상윳따」(S56)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무상․고․무아의 통찰이나 사성제의 통찰이 필요할 것이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본서 제5권에서 강조되고 있는 8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일 것이다. 혹은 12연기각지와 그 집․멸․도를 아는 것이 그 대답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것은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연기각지 즉 12지 모두를 다 소멸시켜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본 상윳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석서에도 그런듯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자면 12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소멸하면 된다. 특히 인-과의 고리로 본다면 과의 고리, 그 중에서도 현재의 과의 고리인 식-명색-육입-촉-수는 소멸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의 고리를 제거, 소멸 혹은 부수어야 하는데, 12지로 보자면 무명과 행은 과거의 인으로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금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특히 갈애가 중점이다. 그래서 사성제에서도 괴로움의 원인으로 갈애를 들고 있으며 이 갈애가 남김없이 멸진된 경지를 열반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사견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분석 경」(S12:2) §7)으로 정리되는 네 가지 취착을 없애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없앨 것인가? 사성제의 가르침에서 보듯이 8정도 혹은 8정도로 대표되는 37보리분법을 닦아야 하며 이 37보리분법은 본서 제5권에서 모아져서 전승되어 온다.
4.「관통 상윳따」(S13)
열세 번째 주제인「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S13)에는 모두 1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관통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관통’은 abhisamaya를 옮긴 것인데 abhi+saṁ+√i(to go)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문자적으로 abhisamaya는 ‘완전하게 감, 철저하게 감’ 등의 뜻인데 주석서는 abhisamaya를 paṭivedha(꿰뚫음)와 동의어로 설명하고 있어서(DA.i.20) 관통이라고 옮겼다. 중국에서는 現觀(현관)으로 옮겼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을 담고 있으며 이것을 ‘관통’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어서「관통 상윳따」라 부른다. 그래서『청정도론』XXII.92에서도 관통은 사성제를 통찰하고 관통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른 여러 주석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에는 이 관통이 “법의 관통(dhamma-abhisamaya)”으로도 나타나는데, 복주서들은 “‘법의 관통’이란 사성제의 법(catu-sacca-dhamma)에 대한 지혜와 더불어 관통하는 것을 뜻한다.”(SAṬ.ii.8; DAṬ.ii.56; MAṬ.ii. 128)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11개의 경들은 각각 다른 비유를 각 경에서 한 개씩 든 뒤에, 모두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괴로움이 대부분 멸진하고 해소되어 남아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그에게 남아있는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된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제 최대 일곱 생만이 [더 남아있다.] 비구들이여, 법의 관통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고, 이처럼 법의 눈을 얻음은 큰 이익이 있다.”로 끝을 맺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단 본 상윳따의 마지막 경인「산의 비유 경」3(S13:11)은 위의 맨 마지막 문장인 “비구들이여, 법의 관통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고, 이처럼 법의 눈을 얻는 것은 큰 이익이 있다.” 대신에 “비구들이여, 견해를 구족한 자에게는 이처럼 큰 성취가 있고, 이처럼 큰 신통의 지혜가 있다.”로 끝나는 부분만 다르다.
5.「요소 상윳따」(S14)
열네 번째 주제인「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S14)에는 모두 39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제1장「다양함 품」(Nānatta-vagga)과 제2장「일곱 요소 품」(Sattadhātu-vagga)과 제3장「업의 길 품」(Kamma -patha-vagga)의 세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품은 10개와 12개와 17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다양하게 분류되는 요소[界, dhātu]들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요소 상윳따」라 부르는 것이다. 본 상윳따에는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① 18가지 요소 —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알음알이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알음알이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알음알이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알음알이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알음알이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S14:1)
안․이․비․설․신․의를 요소로 들고 있는 S14:2∼5의 네 개의 경과 색․성․향․미․촉․법을 요소로 들고 있는 S14:6∼10의 다섯 개의 경들은 앞의 18가지 요소에 포함시켜 이해하면 되겠다.
② 일곱 가지 요소 — 특이하게도 S14:11은 빛, 아름다움, 공(空), 알음알이[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상수멸의 일곱 가지 요소를 들고 있는데, 삼장의 다른 곳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③ 세 가지 요소 — S14:12는 감각적 욕망, 악의, 해코지의 세 요소와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 않음의 세 요소를 들고 있다.
④ 네 가지 요소 — S14:30∼39의 열 개의 경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한편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법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디가 니까야』「합송경」(D33)에는 여러 종류의 요소들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세 가지 해로운 요소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요소, 악의에 대한 요소, 해코지에 대한 요소(D33.1.10 ⑾)
② 세 가지 유익한 요소 — 출리에 대한 요소, 악의 없음에 대한 요소, 해코지 않음에 대한 요소(D33.1.10 ⑿)
③ 다른 세 가지 요소[三界] — 욕계, 색계, 무색계(D33.1.10 ⒀)
④ 또 다른 세 가지 요소 — 색계, 무색계, 멸계(滅界 = 열반)(D33.1.10 ⒁)
⑤ 또 다른 세 가지 요소 — 저열한 요소, 중간의 요소, 수승한 요소(D33.1.10 ⒂)
⑥ 네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D33.1.10 ⒃)
⑦ 여섯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알음알이의 요소.(D33.2.2. ⒃) 이것은『맛지마 니까야』M112 §8, M115 §5, M140 §13, M143 §10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⑧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nissaraṇīyā dhātu) —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悲心解脫],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喜心解脫],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捨心解脫],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無相心解脫, animittā cetovimutti],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자만)을 뿌리 뽑음(D33.2.2 ⒄)
이러한 여덟 가지의 분류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요소에 대한 가장 자세한 분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논장』의『위방가』(Vbh)에는 경에 의한 방법(Suttanata-bhāja -nīya)에서 다음의 네 부류의 요소를 들고 있다.
① 여섯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알음알이의 요소.
② 다른 여섯 가지 요소 — 육체적 고통, 육체적 즐거움, 정신적 고통, 정신적 즐거움, 평온, 무명.
③ 또 다른 여섯 가지 요소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요소, 악의에 대한 요소, 해코지에 대한 요소, 출리에 대한 요소, 악의 없음에 대한 요소, 해코지 않음에 대한 요소.
④ 18가지 요소 —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알음알이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알음알이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알음알이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알음알이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알음알이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
그런데 본 상윳따의「벽돌로 만든 강당 경」(S14:13)부터「열 가지 구성 요소 경」(S14:29)까지의 17개 경들에 나타나는 요소(dhātu)라는 술어는 주석서에서 성향(ajjhāsaya)을 뜻한다고 밝히고 있듯이(SA.ii.138) 요소[界]라는 전문술어로 쓰인 것이 아니다.
특히 이 가운데 처음인「벽돌로 만든 강당 경」(S14:13)을 제외한「저열한 의향 경」(S14:14)부터「열 가지 구성 요소 경」(S14:29)까지의 16개 경들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요소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라는 문제제기가 나타나고, 바로 다음에 이어서 “X하는 자들은 X하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Y하는 자들은 Y하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 X하지 않는 자들은 X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Y하지 않는 자들은 Y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는 구문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22번째 경까지는 이것이 과거와 미래까지 확장되어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여러 조합의 요소들 즉 인간의 성향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나타내는 요소들은 전문술어가 아니기 때문에 교학적으로는 요소[界]라고 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다섯 가지 학습계목 경」(S14:25)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오계의 항목에 속하고「여덟 가지 구성 요소 경」(S14:28)에 나타나는 여덟 가지 요소는 바로 팔정도와 그 반대되는 전문술어로 이미 정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요소들로 존재를 분석해서 보는 것일까? 먼저 요소[界, dhātu]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주석서는 요소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요소[界, dhātu]’란 중생이 없다(nissatta)는 뜻과 공함(suññatā)이라는 뜻으로 불리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이다.”(SA.ii.131)
즉 중국에서 계(界)로 옮긴 dhātu는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법들(즉 18계, 4대, 3계 등)이 중생이라는 실체가 없고 공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기 때문에 요소들의 다양함이라 불린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중생이니 자아니 인간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施設, paññatti]를 요소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드러나고 그래서 개념적 존재의 공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감각장소[處, āyatana, S35의 주제]는 제법을 6가지 감각기능[根, indriya]과 6가지 대상[境, ārammaṇa]의 12가지로 나눈 것이고, 요소[界]는 제법을 6가지 감각기능과 6가지 대상과 6가지 알음알이[識, viññāṇa]의 18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다 5가지 무더기[五蘊, pañca-kkhandha]를 포함해서 5온, 12처, 18계로 분류하는 것이 불교의 존재론이다. 이 온․처․계의 가르침은 초기불교-아비담마-반야-유식 등 불교의 제파에서 공히 인정하는 기본적인 존재론이기도 하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 강조해서 설하고 있는 온․처․계의 기본 가르침은 모두 개념적 존재를 법으로 해체해서 무상․고․무아를 드러내어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불사(不死)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법수가 되는 가르침이다.
물론 18계뿐만 아니라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지․수․화․풍 4계(4대)나 출리 등의 요소 등도 모두 존재의 실체 없음과 공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소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6내처-6외처-6식으로 구성된 18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본 상윳따에서 18계는 첫 번째 경 한 곳에만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본서 제3권의「들어감 상윳따」(Okkanti-saṁyutta, S25)와「일어남 상윳따」(Uppāda-saṁyutta, S26)와「오염원 상윳따」(Kilesa-saṁ -yutta, S27)의 30개 경들은 6내처와 6외처와 6식 즉 18가지 요소[界]를 주제로 한 경들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18계를 주제로 한 경들은 이처럼 다른 상윳따로 분리해 내고, 여기서는 18계 외의 다른 여러 요소들을 중심으로 경들을 모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둘째, 18계는 6내처와 6외처 즉 본서 제4권「육처 상윳따」(S35)에서 모은 248개의 가르침과 연관이 있다. 특히「육처 상윳따」(S35)에서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불타오름 경」(S35:28) 등 71개 경들은 12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그러므로 18계에 관계된 주제를 따로 모아서 독자적인 상윳따로 결집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18계의 가르침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본서 제4권「철저하게 앎 경」(S35:60) §3)는 등으로 다른 상윳따와 다른 니까야들에 포함된 경들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상윳따 니까야』에서는 따로 18계라는 주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S15)
열다섯 번째인「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S15)에는 모두 20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품에 각각 10개씩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들 20개의 경들은 모두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다(anamataggo 'yaṁ saṁsāro).”라는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시작을 알지 못함’으로 옮긴 anamatagga는 해석하기가 평이한 단어는 아니다. 주석서는 이 단어를 anu+amatagga로 분석한 뒤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백년이나 천년을 지혜(ñāṇa)로써 추구한다 하더라도(anugantvā) 그 시작을 생각하지 못하고(amata-agga) 그 시작을 알지 못한다(avidita-agga)는 말이다. 여기로부터 혹은 저기로부터 시작(agga)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인데, 시작점과 마지막 점의 한계를 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SA.ii.156) 그래서 이렇게 옮겼다. 한편 anamatagga는 불교 산스끄리뜨(Mvu.i.34 등)에서는 anavara-agra로 나타나는데, ‘낮고 높은 시작점이 없음’으로 직역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무시세(無始世)로 옮겼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모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들 20개의 경들의 시작 부분인 §3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윤회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윤회의] 처음 시작점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설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각 경별로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들어서 윤회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에 다시 맨 마지막에 결론으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諸行]은 모두 염오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즉 이 20개의 경들도 온․처․계․근․연으로 대표되는 형성된 것들 즉 유위법들에 대한 염오-이욕-해탈로 결론을 짓고 있는데, 이 구문은『디가 니까야』「마하수닷사나 경」(D17 §2.16 등)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본 니까야의 도처에서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윤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 제15 상윳따에 대한 해제를 마무리한다.
⑴ 무아와 윤회
불교는 무아(無我, anatta)를 근본으로 하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부터 무상․고․무아는 삼특상(三特相, ti-lakkhana)이라 불렸으며, 북방불교에서는 무상․무아․열반을 삼법인(三法印)이라 불렀으며,『앙굿따라 니까야』「무상 경」등(A7:16∼17)에서는 무상․고․무아․열반을 통찰하여 성자가 되는 것이 언급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가 강조되고 있으며(S22:90; M35 등), 오온에 대해서 20가지로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는 삿된 견해를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이라 하는데(S22: 82; M44; A6:14 등), 유신견은 열 가지 족쇄(結, saṁyojana) 가운데 으뜸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신견을 타파하지 못하면 그는 비록 수승한 삼매의 경지를 체득하고 신통이 자재하다 하더라도 깨달음의 처음 단계인 예류자도 될 수 없다.
이렇듯 무아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지만 윤회(輪廻, saṁsāra, vatta)도 초기불교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일견 무아와 윤회는 상호 모순되는 가르침인 듯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불교를 잘못 이해하는 자들은 무아이면서도 윤회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하여 부처님은 윤회를 설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 실정이다.
먼저 힌두교에서 설명하는 윤회와 불교에서 설명하는 윤회를 정확하게 구분지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힌두교에서는 불변하는 아뜨만(자아)이 있어서 금생에서 내생으로 ‘재육화(再肉化, reincar -nation)’하는 것을 윤회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금생의 흐름(santati, 相續)이 내생으로 연결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재생(再生, rebirth)’을 윤회라 부른다.
‘다시 태어남’은 puna-bbhava(puna = 다시, bhava = 존재함)라는 단어로 초기경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아라한은 이러한 다시 태어남 즉 재생과 윤회가 없다고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남의 원인을 갈애(taṇhā)로 들고 있으며, 초기불전에서는 갈애를 ‘재생을 하게 하는 것(ponobhāvik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아래 윤회의 원인 참조)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5온․12처․18계(蘊處界)가 연속하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을 윤회라 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서로서로 조건지워져서 생멸변천하고 천류(遷流)하는 일체법의 연기적, 상호의존적 흐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가 없는(무아) 연기적 흐름을 윤회라고 멋지게 정의하고 있다. 윤회의 원어는 삼사라(saṁ+√sṛ, to move)인데 문자적으로는 ‘함께 움직이는 것, 함께 흘러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자아의 재육화보다는 오히려 연기적 흐름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무아(연기)와 윤회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매찰나 전개되는 오온의 생멸자체가 윤회이다. 생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생에서의 마지막 마음(죽음의 마음, 死心, cūti-citta)이 일어났다 소멸하고,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paṭisandhi-viññāṇa)이 일어나는 것이 윤회이다. 많은 불자들이 힌두교의 재육화와 불교의 재생을 정확하게 구분짓지 못하고 있는듯하여 안타깝다. 힌두교의 재육화는 자아가 새 몸을 받는 것(금생의 심장안의 허공에 머물던 자아가 내생의 몸의 심장안의 허공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지만 불교의 재생은 갈애를 근본원인으로 한 오온의 흐름이요, 다시 태어남(재생)이다.
윤회는 본 상윳따의 모든 경들에서 “무명에 덮인 중생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치달리고 윤회하므로 그 시작점을 꿰뚫어 알 수 없다.”(S15:1 등)는 문맥 등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진『법구경』의 다음 게송도 윤회와 윤회의 종식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헛되이 치달려왔다.
집짓는 자를 찾으면서
거듭되는 태어남은 괴로움이었다.
집 짓는 자여, 마침내 그대는 드러났구나.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은 업형성을 멈추었고
갈애의 부서짐을 성취하였다.”(Dhp. {153∼154})
⑵ 육도윤회와 오도윤회
그리고 지옥․축생․아귀․아수라․인간․천상에 윤회하는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이미 초기경들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육도(六道, 六度)는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윤회하는 세상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면서 심리상태를 나타낸 것이기도 한다. 한편 부처님은『맛지마 니까야』「대사자후경」(M12) §35 이하에서 다섯 가지 태어날 곳(gati, 가띠)을 말씀하셨는데 지옥․축생․아귀․인간․천신이 그것이다. 가띠(gati)를 중국에서는 취(趣)라고도 옮겼고 도(道)라고도 옮겼다.『디가 니까야』「합송경」(D33) §3.2에서는 청정범행을 닦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를 언급하면서 아수라도 아울러 언급하고 있으며 본서 제1권「삭까 상윳따」(S11) 뿐만 아니라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아수라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5도에다 아수라를 넣으면 6도가 되는 것이다. 한역 경전들에는 5취, 6취, 5도, 6도가 고루 나타난다. 그런데『화엄경』(특히 60화엄)에는 이 네 단어가 모두 다 쓰이고 있으며, 후대로 올수록 육도로 정착이 되어 육도윤회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 것이다.
육도 가운데 지옥(niraya)은 천상과 해탈의 원인이 되는 공덕이 없고 행복이 없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축생(tiracchana)은 ‘옆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동물들은 직립보행을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귀(peta)는 아버지를 뜻하는 삐따(pitā)에서 파생된 말이며, 베다의 조상신들과 관계가 있다. 후손이 올리는 제사음식을 바라는 존재라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굶주린 귀신(餓鬼)’으로 불교에서 정착되었다. 아수라(asura)는 베다에서 항상 천신들과 싸우는 존재로 묘사가 되고 있어서 투쟁적인 신들을 일컫는 존재로 불교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간(manu- ssa)은 마누(Manu)의 후손이란 뜻인데, 불교에서는 마음(mano)이 탐․진․치와 불탐․부진․불치로 넘쳐흐르기 때문(ussanna)에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천신(deva)는 ‘빛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사대왕천 이상의 세상에 거주하는 신들을 말한다.
초기불전에서 육도는 분명히 중생이 사는 세상(loka)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생이 사는 세상은 모두 심리상태의 반영이라고 아비담마 불교는 설명한다. 지옥은 지옥과 어울리는 극도로 나쁜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색계 천상들은 선(禪, jhāna)이라는 고도의 행복과 고요함과 집중이 있는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색계의 범중천은 이 천상과 어울리는 초선(初禪)의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로 구성된 무색계 천상들은 무색계 삼매의 경지를 터득한 자들이 태어나서 머무는 곳이다.
이처럼 고통스럽거나 행복하거나, 저열하거나 고상한 다양한 세상은 모두 다양한 심리상태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도적 행위들의 반영이다. 이러한 의도적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業, kamma)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매순간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내가 일으키고 있는 심리상태들이 결국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앞으로 태어날 세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⑶ 윤회의 원인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윤회를 설하셨고, 초기경의 도처에서 갈애(愛, taṇhā)와 무명(無明, avijjā)이 윤회의 원인이라고 밝히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갈애(渴愛)를 ‘재생을 하게 하는 것(ponobhāvikā)’이라고 정의하셨다. 그리고 생․노사로 표현되는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밝히고 있는 12연기에서는 무명을 윤회의 근본원인으로 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본서 제6권「초전법륜 경」(S56:11 §6) 등은 다음과 같이 집성제(集聖諦, samudaya-sacca,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를 정의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S56:11 §6)
이렇게 갈애와 무명이 있는 한 윤회의 흐름은 계속된다. 이것을 우리는 생사윤회라 한다. 물론 갈애로 대표되는 번뇌들이 다한 아라한에게는 더 이상 윤회는 없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환과까지도 다시 태어남 즉 윤회는 있다.
윤회는 결코 방편설이 아니다. 갈애와 무명에 휩싸여 치달리고 흘러가는 중생들의 가장 생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윤회는 힌두교 개념이고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주장에 현혹되면 안된다. 부처님께서는 생․노사 혹은 생사로 대표되는 괴로움[苦]의 흐름인 윤회를 설하셨고, 윤회의 원인[集, 갈애]을 설하셨고, 윤회가 다한 경지[滅, 열반]를 설하셨고, 윤회가 다한 경지를 실현하는 방법[道, 팔정도]을 설하셨다. 그러므로 어설프게 ‘윤회는 없다, 부처님은 윤회를 설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7.「깟사빠 상윳따」(S16)
열여섯 번째 주제인「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S16)에는 깟사빠(가섭) 존자에 관련된 13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깟사빠는 부처님 입멸 후에 결집을 주도했으며 두타제일로 불리는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āyasmā Mahākassapa)를 말한다.
마하깟사빠 존자(āyasmā Mahā-Kassapa)는 마가다의 마하띳타(Mahā -tittha)에서 바라문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삡빨리(Pippali)였다. 그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아내(Bhaddā)와 논의하여 둘 다 출가하였다.(A1: 14:5-10의 밧다 까삘라니 주해 참조)『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1-4)에서 세존께서는 “두타행을 하는 자(dhuta-vāda)들 가운데서 마하깟사빠(대가섭)가 으뜸”이라고 칭찬하고 계시며, 그는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후 교단을 이끌었던 분이기도 하다. 본「깟사빠 상윳따」(S16)의 여러 경들은 그의 출중한 경지를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그는 교단에서 장수한 인물로 꼽히며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주석서는 초기교단에서 장수한 인물로 마하깟사빠 존자, 박꿀라 존자, 아난다 존자를 들고 있는데, 모두 120세까지 사신 분들로 알려져 있다.(AA.iii.243∼244)
깟사빠는 지금도 인도에서 유력한 바라문의 족성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제자 가운데도 깟사빠 성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DPPN에 의하면 빠알리 문헌에 나타나는 깟사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30명 가까이가 된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일차합송을 주도한 본 상윳따의 깟사빠 존자를 마하깟사빠(大迦葉)라 칭하고, 1000명의 제자와 함께 귀의한 가섭 삼형제는 우루웰라 깟사빠(優樓頻螺 迦葉)라 부르며, 나체수행자 출신 깟사빠는 아쩰라 깟사빠(나체수행자 출신 깟사빠)라 부른다.
남북방 불교에서 깟사빠 존자는 두타제일로 불리었다. 그의 두타행에 대한 언급이 본 상윳따의「늙음 경」(S16:5)에 나타난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깟사빠여, 그대는 이제 늙었다. 그리고 그대가 입고 있는 삼베로 만든 다 떨어진 분소의들은 그대에게 너무 무겁다. 그대는 장자들이 보시하는 옷을 수용하고, 공양청에 응하여 공양을 하라. 그러면서 내 곁에 머물도록 하라.”고 하신다. 그러자 존자는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을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삼의(三衣)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원하는 바가 적었고[少慾]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만족하였고[知足],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한거하였고 한거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두타행을 계속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세존께서도 그를 칭찬하신다.
중국 선종에서는 깟사빠 존자를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첫 번째 제자로 간주한다. 그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전에서 부처님이 자리를 가섭존자와 나누어 앉은 것),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독수리봉산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것),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쿠시나라에서 반열반하신 뒤 가섭존자가 7일 뒤에 찾아오자 곽 밖으로 두 다리를 내어 보이신 것)의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서 부처님의 정법을 부촉받았다고 한다.
본 상윳따의「의복 경」(S16:11)에 의하면 가섭 존자는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있는 다자탑(多子塔, 바후뿟따 탑묘)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뵙고 제자가 되었으며 세존이 주신 분소의를 평생 입었다고 한다. 이런 초기불전의 말씀이 다자탑전분반좌로 승화된 듯하다. 그리고 사라쌍수곽시쌍부는「대반열반경」(D16)에서 세존이 반열반하신 7일 뒤에 가섭존자의 일행이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로 왔다. 와서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D16 §6.22)는 표현이 승화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무튼 마하깟사빠 존자는 평생을 두타행을 하면서 승단의 모범이 되었고 특히 일차결집을 주도한 큰 공로가 있는 교단의 최고 연장자였음에 틀림없다. 본 상윳따에 포함되어 있는 13개의 경들은 이러한 그의 꼿꼿한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8.「이득과 존경 상윳따」(S17)
열일곱 번째 주제인「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S17)에는 모두 43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과 제3장「세 번째 품」과 제4장「네 번째 품」의 네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의 세 품들은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담고 있고 네 번째 품에는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모든 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라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이를 경계할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예를 들면, 세존께서는 비구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지게 되고 이를 탐하게 되면 그것은 마라의 낚싯바늘에 꿰인 것이며(S17:2) 마라의 작살에 찔린 것이라고 하셨다.(S17:3) 비구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진 것을 긴 머리를 가진 염소가 가시덤불에 들어가 걸리고 찔리고 묶이어 재난에 처하는 것에 비유하고 계시며(S17:4), 똥벌레가 그의 앞에 큰 똥 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똥을 먹고 똥으로 가득하고 똥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다시 내 앞에는 큰 똥 무더기가 있다.’라고 다른 똥벌레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신다.(S17:5) 이처럼 본 상윳따의 43개 경을 통해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진 비구를 여러 가지 비유로 경책하신다.
그러면서 모든 경의 마지막 문단에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제거하리라. 그러면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으신다.
이처럼 본 상윳따의 경들은 특히 출가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읽어야 할 부처님의 경책의 말씀을 담고 있다.
9.「라훌라 상윳따」(S18)
열여덟 번째인「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S18)는 부처님의 외동아들이었으며 어릴 때 출가한 라훌라 존자와 관계된 22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개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난다.「첫 번째 품」에는 10개의 경들이,「두 번째 품」에는 12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라훌라 존자(āyasmā Rāhula)는 세존의 외아들이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이 출가하시던 날 태어났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증득하신 지 2∼3년 뒤에 부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 왕의 간청으로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셨는데, 그때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소다라(Yasodhāra, 뒤에 출가하여서는 밧다 깟짜나(Bhaddā Kaccānā) 비구니로 불림)는 라훌라를 세존께 보내어서 상속물을 달라 하라고 시켰다. 라훌라의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를 출가시키게 하셨다. 무소유의 삶을 사시는 부처님이 아들에게 상속물로 줄 것은 출가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훌라 존자를 출가시키면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라.(mā lokaṁ punarāgam — Sn.59 {339})”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초기불전에 전승되어 온다. 그 가운데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신 최초의 경은『맛지마 니까야』「암발랏티까 라훌라 교계경」(M61)인데,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발 씻는 세숫대야의 비유로 그를 엄하게 가르치신다. 이 가르침은 아쇼까 대왕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서 그의 명령으로 바위에 새긴 아쇼까 대왕의 칙령에서도 이 경의 일부를 언급하고 있다. 라훌라 존자는「짧은 라훌라 교계 경」(M147)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외에도 라훌라를 교계하신(Rāhulovāda) 경이 몇 개 더 전해 온다.(M62; S.iii.105; A.iii.152 등) 이런 라훌라 존자였기에『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3-1)에서 세존께서는 그를 “배우기를 좋아하는(sikkhā-kāma) 비구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셨다. 북방에서는 밀행(密行)제일이라 부른다.
본 상윳따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차례대로 6근, 6경, 6식, 6촉, 6수, 6상, 6의도, 6갈애(S18:1∼8)와 6대(9)와 오온(10)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같은 순서의 가르침이 S18:11∼20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세존께서는「잠재성향 경」(S18:21)에서 오온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빠짐 경」(S18:22)에서는 오온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서 [일어나는]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에 빠진 여러 가지 생각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한다.”라고 나타난다.
이처럼 세존께서 당신의 외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 안의 감각장소, 밖의 감각장소, 알음알이,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갈애와 땅의 요소․물의 요소․불의 요소․바람의 요소․허공의 요소․알음알이의 요소인 육대와 오온으로 대표되는 유위제법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본 상윳따의 기본 골격이다.
불자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세존께서 외아들 라훌라 존자에게 특별히 하신 말씀은 특히 부처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우리 사부대중에게 강조해서 말씀하시고자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집에 참석한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상윳따 니까야』도처에 나타나는 불교 존재론과 인간론의 근본 교리인 온․처․계․연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와 무아에 관계된 가르침만을 모아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 존자와 연관된「라훌라 상윳따」로 결집하여 전승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역자는 본서의 해제와 주해 도처에서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10.「락카나 상윳따」(S19)
열아홉 번째인「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S19)에는 21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개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난다.「첫 번째 품」에는 10개의 경들이,「두 번째 품」에는 11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 21개의 경들은 락카나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것인데, 모두 신통제일인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독수리봉산에 머물면서 신통으로 본, 기이한 형태의 몸을 받아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락카나 존자에게 묘사해서 설명해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갈라나 존자의 설명이 주를 이루는 경들로 되어 있지만 “오늘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독수리봉 산을 내려오면서 어떤 장소에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대는 미소를 지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여 목갈라나 존자의 말문을 열게 하는 자가 락카나 존자이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락카나 상윳따」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신통제일인 목갈라나 존자의 삼매체험과 관련된 경들은 본서 제4권「목갈라나 상윳따」(S40)로 결집되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락카나 상윳따」로 명명하였을 것이다.
본 상윳따에는 여러 가지 악업의 과보로 고통 받는 21종류의 존재들이 나타나는데, 이들 존재들이 각 경들에 하나씩 나타나서 본 상윳따의 21개의 경들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허공을 날아가는 해골, 허공을 날아가는 고깃조각, 허공을 날아가는 고깃덩이, 가죽이 벗긴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칼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창으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화살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바늘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온몸이 바늘로 찔린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항아리만한 불알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똥구덩이에 머리채 푹 빠져 허공을 날아가는 자, 똥구덩이에 빠져 양손으로 똥을 먹으면서 허공을 날아가는 자, 가죽이 벗긴 채 허공을 나는 여인, 허공을 날아가는 냄새나고 추한 여자, 숯불에 그을리고 굽히고 땀투성이인 채 허공을 날아가는 여인, 머리가 잘린 채로 허공을 날아가는 자, 시뻘겋게 달구어진채로 허공을 날아가는 비구,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비구니,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식카마나,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사미이다.
그리고 각 경에서 목갈라나 존자는 왜 이들이 이런 과보를 받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11.「비유 상윳따」(S20)
스무 번째인「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S20)에는 모두 비유를 담고 있는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말 그대로 비유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상윳따이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비유는 차례대로 ① 뾰족지붕 ② 손톱 ③ 가문 ④ 가마솥 ⑤ 창(槍) ⑥ 궁수 ⑦ 쐐기 ⑧ 목침 ⑨ 큰 코끼리 ⑩ 고양이, 두 가지 ⑪∼⑫ 자칼의 비유이다.
「뾰족지붕 경」(S20:1)에 나타나는 뾰족지붕이 있는 집(kūṭ-āgāra)의 비유는 본서 S22:102, S45:11, S46:7, S48:52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뾰족지붕이 있는 집은 중각(重閣)으로 한역되었다.
「손톱 경」(S20:2)의 비유는 본서 제6권「진리 상윳따」(S56)의 여러 경들(S56:102∼31)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인간(manussa)’이란 단어에는 신(deva)들도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인간과 천상에 다시 태어나는 중생들은 참으로 적다고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가문 경」(S20:3)의 비유는『율장』(Vin.ii.256)과『앙굿따라 니까야』「고따미 경」(A8:51/iv.278 §9)에도 나타나지만 적용되는 경우가 다르다.
본 상윳따의 12개 경들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비유를 드신 뒤에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물론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가마솥 경」(S20:4)과「창(槍) 경」(S20:5))라거나, “우리는 목침을 베고 자면서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게 머무르리라.”(「목침 경」(S20:8))라는 등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들도 있다.
12.「비구 상윳따」(S21)
스물한 번째이면서 제2권의 마지막 상윳따인「비구 상윳따」(Bhikkhu -saṁyutta, S21)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목갈라나 존자 등 부처님의 직계제자 비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인「꼴리따 경」(S21:1)에는 꼴리따라 불렸던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제2선의 증득에 대해서 설한 법문을 담고 있다. 두 번째인「우빠띳사 경」(S21:2)은 우빠띳사라 불렸던 사리뿟따 존자의 간단한 설법을 담고 있다. 세 번째인「통(단지) 경」(S21:3)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의 대화를 담고 있는데,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으로 세존께 가서 세존께 들은 가르침을 사리뿟따 존자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네 번째인「신참 경」(S21:4)은 네 가지 선(禪)의 증득에 자유로운 어떤 신참 비구의 일화를 담고 있다. 다섯 번째인「수자따 경」(S21:5)은 세존께서 수자따 존자를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섯 번째인「라꾼따까 밧디야 경」(S21:6)은 난장이(라꾼따까)여서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비구들이 경멸하지만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는 라꾼따까 존자를 세존께서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곱 번째인「위사카 경」(S21:7)은 세존께서 위사카 존자를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덟 번째인「난다 경」(S21:8)은 세존의 이모의 아들(이종사촌)인 난다 존자를 세존께서 경책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홉 번째인「띳사 경」(S21:9)은 세존의 고종사촌 동생인 띳사 존자를 세존께서 격려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열 번째인「장로라 불리는 자 경」(S21:10)은 세존께서 장로라 불리던 어떤 비구에게 혼자 머무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열한 번째인「마하깝삐나 경」(S21:11)은 ‘비구들을 교계하는 자(bhikkhu-ovād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되는 마하깝삐나 존자에 대한 세존의 칭찬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도반 경」(S21:12)은 마하깝삐나 존자의 제자인 두 도반 비구를 칭찬하시는 세존의 말씀을 담고 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12개의 경들은 모두 마하목갈라나 존자 등의 여러 비구들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어서 본 상윳따를「비구 상윳따」라 이름 붙인 것이다.
13.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2권에는 286개의 경들이 10개의 상윳따로 분류되어서 나타나고 있다.『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전통적으로 연기를 위주로 한 책 혹은 가르침이라 불려왔다. 연기의 가르침은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에서 초기불교의 6개 기본 교학으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가운데 맨 마지막인 연의 가르침이다.
아비담마․아비달마의 논서들은 연기의 가르침을 모두 12연기로만 정형화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는 경장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본서「인연 상윳따」(S12)에서 보듯이 본 상윳따에는 모두 93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는데, 반복된 경들을 정리하면 모두 72개의 경이 된다. 이 가운데 34개의 경들만 12연기를 설하고 있고 나머지 38개 경들은 2지 연기부터 11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연기를 설하고 있다.
연기의 가르침은 세존께서 이미 본서「인연 경」(S12:60) §4 등에서 “심오한(gambhīra, 혹은 아주 어려운)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연기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도『청정도론』가운데서 가장 난해하다고 평이 나있는 연기의 해설(XVII장)에서 “전승된 가르침을 통달하거나 수행하여 법을 증득한 자가 아니면 연기의 주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늘 나는 연기의 구조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치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든 사람처럼 [나는] 그 발판을 찾지 못하는구나.” (Vis.XVII.25)라고 읊고 있다.
세존께서는『앙굿따라 니까야』「빠하라다 경」(A8:19) §16에서 “큰 바다가 하나의 맛, 짠 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법과 율도 하나의 맛, 해탈의 맛(vimutti-rasa)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연기를 위주로 한 제2권에 포함된 모든 경들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해탈의 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들 가르침은 우리에게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해탈․열반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을 듬뿍 안겨주시려는 우리 세존 부처님의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하다.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본서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2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
<2권 목차>
제12주제 인연 상윳따(S12)
제13주제 관통 상윳따(S13)
제14주제 요소 상윳따(S14)
제15주제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S15)
제16주제 깟사빠 상윳따(S16)
제17주제 이득과 존경 상윳따(S17)
제18주제 라훌라 상윳따(S18)
제19주제 락카나 상윳따(S19)
제20주제 비유 상윳따(S20)
제21주제 비구 상윳따(S21)
<상윳따 니까야 제2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붓다고사 스님은『청정도론』에서 통찰지의 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교교학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들고 있다.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기능[根, indriya],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ññā-bhūmi)이다.”(Vis.XIV.32)
『청정도론』뿐만 아니라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의 서문에서도 모두 온․처․계․근․제․연을 불교교학의 기본으로 들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이러한 불교교학의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서도 인연(nidāna)을 위주로 한 10개의 주제들(saṁyutta)을 모은 것이다. 이 열 개의 상윳따 가운데서도 제일 처음인「인연 상윳따」(S12)는 바로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 분량도 본 번역의 저본이 되는 Ee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제2권 286쪽 가운데 132쪽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제2권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전통적으로 니다나 왁가(Nidāna Vagga, 인연 품), 즉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라고 전승되어 왔다. 그것은 제2권의 첫 번째 상윳따이면서 연기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인연 상윳따」(S12)가 제2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 제2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2권에는「인연 상윳따」(S12)부터「비구 상윳따」(S21)까지 모두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인연(S12), 관통(S13), 요소(S14), 시작을 알지 못함(S15), 이득과 존경(S17), 비유(S20)는 주제별로 모은 것이고 깟사빠(S16)와 라훌라(S18)와 락카나(S19)와 비구(S21)는 인물 중심으로 모은 상윳따이다.
2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는 이 경들을 각각 열 개씩으로 나누어서 품(vagga)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품이 10개가 넘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품을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명칭으로 묶는데, 제2권에는 100개가 넘는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윳따가 없기 때문에 50개 경들의 묶음이라는 분류법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3권의「무더기 상윳따」(S22)나 제4권의「육처 상윳따」(S35)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면 먼저『상윳따 니까야』제2권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상윳따를 개관해보도록 하자.
제12주제「인연 상윳따」(Nidāna-saṁyutta, S12)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연기(paṭiccasamuppāda)와 동의어인 인연(nidāna)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인연 상윳따」라 부르고 있다. 이들 93개 경들은 모두 9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는데,『상윳따 니까야』전체에서 가장 어렵고 심오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할 정도로 어렵고 귀중한 가르침들이다.
제13주제「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S13)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관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을 담고 있으며, 이것을 ‘관통[現觀, abhisamaya]’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어서「관통 상윳따」라 부른다.
제14주제「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S14)에는 모두 39개의 경들이 모두 네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다양하게 분류되는 요소[界, dhātu]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15주제「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S15)에는 20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두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다.”라는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다.
제16주제「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S16)에는 부처님 입멸 후에 결집을 주도했으며 두타제일로 불리는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와 관련된 13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17주제「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S17)에는 모두 43개의 경들이 네 개의 품으로 분류되어 나타나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모든 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라고 하시면서 이를 경계할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제18주제「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S18)에는 부처님의 외동아들이었으며 어릴 때 출가한 라훌라 존자와 관계된 22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으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본 상윳따의 대부분의 경들은 온․처․계 등의 무상․고․무아를 강조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제19주제「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S19)에 포함된 21개의 경들은 락카나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것인데 이 역시 두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나고 있다. 이 경들은 모두 신통제일인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으로 본, 기이한 형태의 몸을 받아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묘사하고 있다.
제20주제「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S20)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비유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상윳따이다.
제2권의 마지막 상윳따인 제21주제「비구 상윳따」(Bhikkhu-saṁ- yutta, S21)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꼴리따라 불렸던 마하목갈라나 존자 등의 여러 비구들의 일화를 담고 있어서 본 상윳따를「비구 상윳따」라 이름한 것이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인연 상윳따」(S12)
⑴ 왜 인연(nidāna)인가
열두 번째 주제인「인연 상윳따」는 Nidāna Saṁyutta를 옮긴 말이다. 본 상윳따에는 93개의 경들이 제1장「부처님 품」, 제2장「음식 품」, 제3장「십력 품」, 제4장「깔라라캇띠야 품」, 제5장「장자 품」, 제6장「괴로움 품」, 제7장「대품」, 제8장「사문․바라문 품」, 제9장「뒷부분의 반복」으로 분류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제1품부터 제7품까지에는 각각 열 개의 경들이, 제8품에는 11개의 경들이, 제9품에는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7품에는 상대적으로 긴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경들은 모두 12지 연기를 위주로 한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설한 가르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연기(paṭiccasamuppāda) 상윳따라 부르지 않고 왜「인연(nidāna) 상윳따」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인연으로 옮긴 니다나(nidāna)라는 술어는 본 상윳따에「인연 경」(Nidāna-sutta, S12:60)으로도 나타나며, 이 경이 확장된 것이『디가 니까야』의「대인연경」(Mahānidāna Sutta, D15)이다. 이「인연 경」은 애-취-유-생-노사의 5지 연기를 설하고 있고,「대인연 경」은 더 확장되어 식-명색-촉-수-애-취-유-생-노사의 9지 연기를 설하고 있다.
인연(nidāna)이라는 술어는 ni(아래로)+√dā(to give)에서 파생된 명사로 ‘아래에 놓음’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기초, 기본, 원천, 근원’ 등의 뜻으로 쓰인다.「대인연경」(D15 §4) 등에는 이 술어가 “hetu(원인), ni- dāna(근원), samudaya(기원), paccaya(조건)”으로 나열되어 나타나고 있는데,『청정도론』과『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조건, 원인, 이유, 근본, 근원, 기원 등은 글자만 다를 뿐 뜻으로는 하나이다.”라고 설명하듯이 이 단어들은 모두 동의어다. 이런 배경에서 연기의 가르침은 전통적으로 모두 인연이라는 용어로 제목을 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연기의 가르침을 모은 본 상윳따도 ‘연기 상윳따’로 부르지 않고 ‘니다나 상윳따’로 즉 ‘인연 상윳따’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⑵ 경들의 분류
「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모두 93개의 경들 가운데서 12연기의 늙음․죽음[老死]과 그 일어남[集]과 소멸[滅]과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道]을 하나의 주제로 삼고 있는 S12:71부터 의도적 행위[行]와 그 집․멸․도를 하나의 주제로 삼고 있는 S12:81까지를 하나의 가르침으로 취급하고, 같은 이유로 노사부터 무명까지를 각각 하나의 경의 주제로 택하고 있는 S:82∼93까지의 경들도 모두 하나의 가르침으로 간주하면,「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72개의 가르침으로 축약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72개로 축약되는 이들 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연기의 가르침을 이들에 포함되어 있는 연기의 구성요소가 몇 개인가를 중심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2지 연기 34개 경: S12:1, 2, 3, 4, 5, 6, 7, 8, 9, 10, 15, 16, 17, 18, 20, 21, 22, 23, 27, 35, 36, 37, 41, 42, 46, 47, 48, 49, 50, 51, 61, 68, 69, 70
② 11지 연기1 9개 경(행의 집(集)을 무명으로 간주하고 있음): S12:13, 14, 28, 29, 30, 33, 34, 71, 82.
11지 연기2 1개 경: S12:39
③ 10지 연기 4개 경: S12:12, 59, 65, 67
④ 9지 연기 2개 경: S12:11, 58
⑤ 8지 연기 4개 경: S12:24, 43, 44, 45
⑥ 7지 연기 1개 경: S12:64
⑦ 6지 연기 1개 경: S12:19
⑧ 5지 연기 8개 경: S12:32, 52, 53, 54, 55, 56, 57, 60
⑨ 4지 연기 3개 경: S12:38, 40, 66
⑩ 3지 연기 1개 경: S12:25
⑪ 2지 연기 4개 경: S12:26, 31, 62, 63
계 72개 경
위의 분류에서 살펴보았듯이 놀랍게도 12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경들은 전체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본 상윳따에는 연기의 가르침으로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11가지나 되는 다양한 연기가 설해지고 있다.
그리고 또 살펴보아야 할 측면은 이 연기의 가르침에서 유전문(流轉門, anuloma, 順觀), 즉 발생구조를 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군데에 나타나며, 환멸문(還滅門, paṭiloma, 逆觀), 즉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는 가르침이 몇 군데에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72개의 가르침 가운데 괴로움의 발생구조만을 설하고 있는 경은 2개(S12:20, 27)이고, 괴로움의 소멸구조만 설하고 있는 경은 4개(S12:16∼18, 62)이며,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다 설하고 있는 경은 52개 경이고, 나머지 14개의 경들은 이런 관점과는 큰 관련 없이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연기의 정형구 혹은 공식으로 잘 알고 있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는 가르침이 나타나는 경들은 모두 7개(S12:21, 22, 37, 41, 49, 61, 62)이다. 이 가운데서 62번 경을 제외한 나머지 경들은 이 정형구 바로 다음에 “즉,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라는 식으로 12연기의 정형구가 나타난다. S12:62에는 이 정형구 다음에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고 소멸한다는 2지 연기가 나타나고 있다.
역자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의 정형구도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데에만 나타나지, 이 정형구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는 것처럼 ‘제법(諸法)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설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이다.
⑶ 각각 연기의 개관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각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① 12지 연기
먼저 12지 연기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음의 가르침을 기본 정형구로 하고 있다.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깟짜야나여, 이를 일러 일어남[起]이라 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그러나 같은 12지 연기를 담고 있는 경들 가운데 S12:4, 5, 6, 7, 8, 9, 10, 16, 20, 68, 70의 열한 개의 경들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부터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까지로 노사부터 무명까지의 반대방향으로 12지 연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 외의 22개 경들은 모두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부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까지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S12:20, 27은 괴로움의 발생구조 즉 유전문만을, S12:16∼18은 괴로움의 소멸구조 즉 환멸문만을 다루고 있다.
② 11지 연기
11지 연기는 모두 8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모두 무명이 빠진 행부터 노사까지의 11개 구성요소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가운데 7개 경들 즉 S12:13, 14, 28, 29, 30, 33, 34는 모두 늙음․죽음과 그 일어남(집, 원인)과 소멸(멸)과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무명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의도적 행위들[行]의 일어남(집, 원인)이 무명이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위에서 밝힌 대로 S12:71∼81까지의 11개 경들은 늙음․죽음부터 의도적 행위들까지의 구성요소들이 각각 하나의 경에 배대되어 모두 11개의 경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하나의 가르침으로 계산하였고, S12:82∼93의 12개 경들도 마찬가지여서 하나의 경으로 계산하였다.
그리고 S12:39도 의도적 행위부터 늙음․죽음까지의 11지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의도적 행위들[行]이라는 술어 대신에 “어떤 것을 의도하고 어떤 것을 계속해서 사유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 잠재성향을 가지면 그것은 [업을 짓는] 알음알이가 머무는 조건이 된다.”라고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순수한 11지 연기를 설하는 가르침은 이 S12:39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다.
③ 10지 연기
10지 연기는 S12:12, 59, 65, 67의 네 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알음알이 — 정신․물질부터 태어남 — 늙음․죽음까지 즉 식연명색부터 생연노사까지의 10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S12:12, 59의 두 개 경들은 알음알이부터 늙음․죽음까지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S12:12에서는 괴로움의 발생구조로는 10지를 들고 있지만 괴로움의 소멸구조로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 — 감각접촉 — 느낌부터 늙음․죽음까지의 8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S12:12 §9의 주해를 참조할 것.
한편 S12:65와 67은 늙음․죽음부터 정신․물질 — 알음알이까지 관찰해 올라와서 다시 알음알이의 조건으로 정신․물질을 들고 이렇게 해서 늙음․죽음까지 내려가면서 관찰하고 있다. 이것은『디가 니까야』「대전기경」(D14 §§2.18∼2.20)에 나타나는 위빳시 보살의 연기에 대한 천착과 일치한다.
④ 9지 연기
9지 연기는 S12:11, 58의 두 개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S12:11에는 네 가지 음식 — 갈애 — 느낌 — 감각접촉 — 여섯 감각장소 — 정신․물질 — 알음알이 — 의도적 행위 — 무명의 9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네 가지 음식의 근원(nidāna) 혹은 조건 혹은 인연을 구명해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무명까지 근원을 탐구해 올라간 뒤에 다시 무명부터 늙음․죽음까지의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경은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S12:58에서는 정신․물질부터 늙음․죽음까지의 9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물론 한 생에서 정신․물질이 출현하는 조건으로 전생의 달콤함을 보는 것(주석서는 전생의 갈애라고 설명함)을 들고 있다.
⑤ 8지 연기
8지 연기는 S12:24, 43, 44, 45의 네 개 경에서 나타나고 있다.
S12:24는 늙음․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감각접촉 — 여섯 감각장소[六處]까지로 괴로움의 발생 원인을 관찰하고 다시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 — 감각접촉에서부터 늙음․죽음까지로 8가지 구성요소로 괴로움의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소멸구조에서는 여섯 감각장소 대신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가 나타나고 있다.
S12:43∼45의 세 개의 경은 괴로움의 발생구조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안식부터 의식까지) — 감각접촉 — 느낌 — 갈애를 든 뒤에 괴로움의 소멸구조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안식부터 의식까지) — 감각접촉 — 느낌 — 갈애 — 취착 — 존재 — 태어남 — 늙음․죽음의 8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그래서 8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물론 이 세 개의 경에서 여섯 가지 알음알이는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로 나타나기 때문에 육내처와 육외처를 넣어서 10지 연기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며, 발생구조로 식-촉-수-애의 넷을 들고 있기 때문에 4지 연기에도 포함시킬 수 있다. 역자는 12지 연기에서 나타나는 식-촉-수-애-취-유-생-노사를 중시하여 여기 8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⑥ 7지 연기
7지 연기는 S12:64 한 개의 경에 나타난다.
S12:64는 특이하게 네 가지 음식에 대한 갈애 — 알음알이 — 정신․물질 — 의도적 행위 — 다시 태어남[再有] — 태어남[生] — 늙음․죽음의 7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⑦ 6지 연기
6지 연기는 S12:19의 한 개의 경에 나타난다.
무명․갈애 — 몸(알음알이와 함께한 몸)을 받음 — 밖의 정신․물질 — 감각접촉(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육촉처) — 느낌(즐거움과 괴로움) — 다시 몸을 받음의 6가지 구성요소를 들고 있다. 본경은 감각접촉에 바탕을 둔 느낌이 원인이 되어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kāyassa bhedā) 다시 몸을 받아서(kāyūpaga) 태어남과 늙음․죽음이 있다고 결론을 맺고 있으므로 6지 연기로 간주하였다. 물론 무명과 갈애를 제거한 현자는 다시 몸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본경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튼튼한 경전적인 근거가 된다. 역자는 기본 구조를 중시해서 6지 연기로 분류를 하였다.
⑧ 5지 연기
5지 연기는 S12:32, 52, 53, 54, 55, 56, 57, 60의 여덟 개 경에 나타난다.
S12:52∼57과 S12:60의 일곱 개 경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는 구조로 5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이것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12지 연기 가운데 금생의 원인과 내생의 결과를 설하는 후반부의 애-취-유-생-노․사의 다섯 만을 들고 있는 것이다.
S12:32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태어남이 다했음의 정형구를 통해서 태어남 — 존재 — 취착 — 갈애 — 느낌의 5지 연기를 통해서 태어남의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세존께 말씀드리고 있다. 물론 이 느낌은 괴로운 느낌[苦受] 등의 셋이며 이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인 것을 알기 때문에 느낌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⑨ 4지 연기
4지 연기는 S12:38, 40, 66의 세 개의 경에 나타나고 있다.
S12:38은 의도 — 알음알이 — [내생에] 다시 존재함[再有] — 늙음․죽음의 4가지 구성요소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그리고 S12:66은 늙음․죽음 — 재생의 근거 — 갈애 —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라 불리는 여섯 감각장소의 네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각각의 구성요소에서 모두 설하고 있다.
⑩ 3지 연기
3지 연기는 S12:25 한 곳에 나타나고 있다.
S12:2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부미자 존자에게 괴로움 — 감각접촉의 2가지 구성요소를 설하였고, 이를 아난다 존자로부터 전해들은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신 뒤에 다시 괴로움 — 몸과 말과 마음의 의도적 행위 — 무명의 3가지 구성요소로 연기를 설하신다. 역자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3가지 구성요소를 중시하여 3지 연기에 포함시켰다.
⑪ 2지 연기
2지 연기는 S12:26, 31, 62, 63의 네 개의 경에 나타나는데 각각 다른 연기를 들고 있다.
먼저 S12:26은 괴로움은 감각접촉에서 발생한다는 2가지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설하고 있다.
S12:31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되어있는 것(bhūta, 즉 오온) — 네 가지 음식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보고 되어있는 것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을 성취한다고 세존께 말씀드리고 있다.
S12:62는 감각접촉 — 느낌의 2가지 구성요소를 통해서 괴로운 느낌 등의 세 가지 느낌의 소멸구조를 설하고 있다.
S12:63은 ①덩어리진 [먹는] 음식 —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 ② 감각접촉[觸]의 음식 — 세 가지 느낌, ③ 마음의 의도의 음식 — 세 가지 갈애, ④ 알음알이의 음식 — 정신․물질의 구조로 네 가지 음식을 철저하게 알 것을 설하였다. 합송자들은 네 가지 음식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 각각을 연기의 가르침으로 파악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경이 여기「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본 상윳따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
한편 S12:25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부미자 존자에게 괴로움 — 감각접촉의 2가지 구성요소를 설하였고, 이를 아난다 존자로부터 전해들은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신 뒤에 다시 괴로움 — 몸과 말과 마음의 의도적 행위 — 무명의 3가지 구성요소로 연기를 설하신다. 역자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3가지 구성요소를 중시하여 3지 연기에 포함시켰지만, 사리뿟따 존자의 설명은 이곳 2지 연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⑷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
이상으로 93개의 경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을 72개의 가르침으로 축약하여서 12지 연기부터 2지 연기까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인연 상윳따」에 나타나는 경들을 통해서 초기경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연기의 가르침의 특징을 대략 11가지로 살펴보자.
①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연기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연기하면 우주의 구성 원리부터 먼저 생각한다. 아니면 좀 더 불교식으로 고상하게 표현해서 제법의 상호관계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기하면 화엄에서 말하는 중중무진연기 혹은 법계연기를 떠올리고 육상원융(六相圓融)을 떠올린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 연기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괴로움의 소멸구조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으로 정리되는 사성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망각해버리고 저 밖으로 우주의 구성원리를 찾고 법계나 제법의 상호관계를 찾고 법계연기나 육상원융을 떠올린다면 연기의 가르침을 호도해도 너무 호도하는 것이 되고 만다.
여러 주석서들에서도 12연기를 주로 한 연기의 가르침의 유전문(순관)은 윤회의 발생구조(vaṭṭa)를 드러내는 것이고 12연기의 환멸문(역관)은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구조(vivaṭṭa) 혹은 윤회의 소멸구조를 설하신 것이라고 한결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12연기를 비롯한 모든 연기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런 기본적인 관점을 무시하고 연기를 더군다나 12연기를 중중무진연기로 이해해서 전우주의 상호관계로 이해하려 드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입장을 호도하는 것이 된다. 물론 초기불전의 논장(Abhidhammma Piṭaka)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을 통해서 모든 법의 상호의존[緣, paṭṭhāna] 혹은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고, 설일체유부에서는 6인-4연-5과로써, 유식에서는 10인-4연-5과로써 제법의 상호의존을 밝히고 있다. 화엄의 중중무진연기는 이러한 상호의존이 발달된 것이지 이것을 초기경의 12연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드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한편「깟짜나곳따 경」(S12:15)과「세상 경」(S12:44)과「성스러운 제자 경」1(S12:49) 등에서 12연기를 세상의 일어남과 소멸이라고 설한 곳도 나타난다. 그러나「깟짜나곳따 경」(S12:15)과「세상 경」(S12:44)에서 세상의 일어남은 12연기를 통한 괴로움의 발생구조로 설명되고 있고 세상의 소멸은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구조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12연기를 세상이나 우주의 생성원리로 이해하려는 것은 정작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말씀하신 괴로움의 해결과 해탈․열반의 실현이라는 근본 메시지를 호도할 우려가 많다 하겠다.
② 괴로움이란 윤회의 괴로움이다
이처럼 12지 연기를 비롯한 모든 연기의 가르침은 12지 연기의 정형구에서 “…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라고 말씀하셨듯이 태어남과 늙음․죽음으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신 것이다. 태어남과 늙음․죽음은 한자로 생과 노사이며 줄이면 생과 사, 저 생사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생사문제로 대표되는 괴로움을 뜻한다.
여기서 태어남[生]으로 옮긴 jāti는 범어로 보면 한 생에 최초로 태어나는 것 이외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절대로 생멸(生滅)한다는 의미의 생이 될 수가 없다. 생멸의 생은 일어남의 의미인 samudaya나 udaya이다. jāti는 태어남의 의미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연기의 가르침에서 존재[有]와 태어남[生] 사이에는 한 생이 개재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우현(愚賢) 경」(S12:19)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다른] 몸을 받게 된다. 그는 [다른] 몸을 받아서는 태어남, 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주석서는 “‘몸을 받음(kāy- ūpaga)’이란 다른 재생연결의 몸(paṭisandhi-kāya)을 받는다는 말이다.” (SA.ii.40)라고 설명하고 있다.
③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출현
그리고 주목해야 할 곳이 의도적 행위들[行] — 알음알이[識] — 정신․물질[名色]의 부분이다. 물론 12지 연기에서는 알음알이를 위시한 이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우현 경」(S12:19)에서는 무명과 갈애가 원인이 되어서 어리석은 자의 몸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서 감각접촉과 느낌이 생기고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다시 몸이 무너진 뒤에 다른 몸을 받는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의 설명처럼 전자의 몸은 알음알이와 함께한 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12지 연기에서의 알음알이도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 즉 재생연결식으로 간주해야 한다. 특히「알음알이 경」(S12:59 §3)에는 “족쇄에 묶이게 될 법들에서 달콤함을 보면서 머무는 자에게 알음알이가 출현한다.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알음알이가 출현한다.’는 viññāṇassa avakkanti hoti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디가 니까야』「대인연경」(D15 §21)에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가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정신․물질이 모태에서 발전하겠는가?”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는 mātu- kucchiṁ na okkamissatha를 옮긴 것이다. okkamissatha는 ok- kamati(ava+√kram, to go)의 조건법 3인칭 단수형이다. 이것은 본경에서 ‘출현’으로 옮기고 있는 명사 avakkanti(ava+√kram)와 같은 어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알음알이의 출현은 바로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가 모태에서 생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것은 전생의 갈애를 조건으로 해서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가 모태에서 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주석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모태에 듦(gabbhassa avakkanti)’이라는 표현은『맛지마 니까야』「긴 갈애의 소멸 경」(M38/i.265 §28)과「앗살라야나 경」(M93/ii. 156 §18)과『앙굿따라 니까야』「외도의 주장 경」(A3:61/i.176 §9) 등에도 나타난다. 이 가운데 특히「외도의 주장 경」(A3:61 §9)에는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라고 나타난다. 이 구절과「정신․물질 경」(S12:58)과 본경을 함께 놓고 보면 본경에 나타나는 알음알이의 출현은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재생연결식)가 어머니 모태에 드는 것 혹은 모태에서 생겨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알음알이가 출현함’은 ‘알음알이가 [모태에] 듦’으로도 옮길 수 있다.
이처럼「알음알이 경」(S12:59)을 중심으로 한 여러 경들 특히 위에서 인용한『디가 니까야』「대인연경」(D15 §21)을 보면 이 알음알이는 주석서의 한결같은 설명처럼 한 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출현’ 혹은 ‘모태에 듦’으로 옮겨지는 avakanti는「의도 경」2(S12:39 §3)와「정신․물질 경」(S12:58 §3)과「탐욕 있음 경」(S12:64 §4)에서는 ‘정신․물질의 출현(nāmarūpassa avakkanti)’이라고도 나타나고 있다. 알음알이가 언급되지 않는「정신․물질 경」(S12:58)에서는 이것을 한 생의 최초로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의도 경」2(S12:39)에서는 주석서의 설명처럼 알음알이를 업을 짓는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정신․물질의 출현을 한 생의 최초로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탐욕 있음 경」(S12:64 §4)에도 “알음알이가 확립되고 증장하는 곳에 정신․물질이 출현한다.”고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같은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정신․물질의 출현도 한 생의 최초의 정신․물질이 모태에 드는 것 혹은 생기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12지 연기에서 알음알이나 정신․물질은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나 정신․물질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주석서로 들어가면 주석서는 예외 없이 이 알음알이나 정신․물질을 재생연결식이나 모태에 드는 것으로 한결같이 해석하고 있다.
특히 무명과 의도적 행위[行]가 나타나지 않고 알음알이[識]로부터 시작하여 생-노사로 끝나는 10지 연기를 설하는 경들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는 재생연결식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문맥상으로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10지 연기로 나타나는 S12:12, 59, 65, 67의 네 개 경들에 해당하는 주석서는「몰리야팍구나 경」(S12:12)의 알음알이[識]를 재생연결식으로 설명하고 있고,「알음알이 경」(S12:59)의 식은 모태에 드는 것으로,「도시 경」(S12:65)과「갈대 다발 경」(S12:67)의 식은 재생연결식이거나 위빳사나의 알음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석서에 의하면 이 네 개의 경들은 모두 재생연결식을 공통적인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10지 연기로 오면 알음알이는 거의 전적으로 재생연결식이나 모태에 드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④ 내생에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술어가 다시 태어남[再有]으로 번역되는 punabbhava이다.「몰리야팍구나 경」(S12:12 §4)에는 “[재생연결식이라는] 알음알이의 음식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은 āyatiṁ punabbhava-abhinibbatti를 옮긴 것이다. āyati는 미래라는 뜻인데 문맥상 내생으로 옮겨야 마땅하다. 그리고 punabbhava는 문자 그대로 다시(punar)+존재함(bhava)을 뜻하며 초기경의 문맥에서는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이 술어와 같은 의미의 술어로 ponobhavikā(다시 태어남[재생]을 가져오는 것)가 있는데, 이것은 갈애(taṇhā)의 동의어로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abhinibbatti는 탄생이나 드러남이나 존재함으로 옮겨지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여기서 ‘알음알이의 음식’은 재생연결식(paṭi- sandhi-citta)이다.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을 일으키는 것’은 이 알음알이와 함께 일어난 정신․물질이다.”(SA.ii.31)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가르침이 있다.『앙굿따라 니까야』「존재 경」(A3:76)에서 세존께서는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 중간의 [색]계에 … 수승한 [무색]계에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된다.”라고 천명하신다. 이것은 씨앗에 비유되는 알음알이가 알음알이의 음식의 역할을 하여 모태에서 금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이 되고 이것이 음식이 되어 함께 일어나는 정신․물질[名色]을 생기게 한다는 말이다.
「몰리야팍구나 경」(S12:12)에서 주목할 점은 세존께서는 연기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를 알음알이의 음식으로 말씀하고 계시며 주석서는 이것을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인 재생연결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석서는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하게 되는 것을 정신․물질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은 재생연결식이라는 음식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연기의 정형구의 식과 명색을 한 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과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명색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생에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을 중심한, 같은 가르침이「의도 경」1(S12:38 §3)과 S12:64 §5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출처를 통해서도 알음알이[識]와 정신․물질[名色]을 한 생의 최초에 모태에 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⑤ 12연기는 삼세를 말한다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들은 역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2지 연기는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 혹은 윤회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가르침이라는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의 정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는 무명․행과 애․취․유를 인(因)으로 이해하고 식․명색․육입․촉․수와 생․노사를 과(果)로 이해해서 삼세에 걸쳐서 이러한 인과 과가 두 번 반복된다고 해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을 12지 연기를 비롯한 연기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정설로 삼고 있다.
특히 6지 연기로 분류할 수 있는「우현(愚賢) 경」(S12:19)은 12연기를 네 개의 집합(catu-saṅkhepa)과 20가지 형태(vīsat-ākāra)를 토대로 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해석하는 전통적인 견해(Ps.i.51∼52; 『청정도론』XVII.288∼298; 『아비담마 길라잡이』제8장 §§4∼8 등 참조)의 단초가 되는 중요한 경이다.
한편 유식에서는 생과 노사만을 다른 생으로 이해하여 이세일중인과(二世一重因果)를 정설로 받아들이는데, 2세1중이 지속되면 이것이 삼세양중이 되기 때문에 2세1중으로 충분하다고『성유식론』은 설명하고 있다.
⑥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
12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2연기는 ‘원인과 결과의 반복적 지속’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해버리면 12연기는 그때부터 혼란스러워 진다. 12연기 가운데 ①무명-②행과 ⑧애-⑨취-⑩유는 원인의 고리이고 나머지 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와 ⑪생-⑫노사우비고뇌는 결과(과보)의 연결고리이다. 이렇게 12연기는 원인의 연결고리와 결과의 연결고리가 반복적으로 연결되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를 중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의 공통된 설명방법이다. 유식에서는 2세1중인과를 설하는데,『성유식론』에 의하면 2세만 이야기하면 3세는 자연스럽게 인정되기 때문에 2세1중인과로 족하다고 한다. 아무튼 초기불교-아비담마-유식에서 공히 12연기는 윤회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무명은 과거의 원인이기만하고 갈애는 현재의 원인이기만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청정도론』XVII.291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① 과거의 원인이 다섯이고 ② 지금의 결과도 다섯이다.
③ 지금의 원인이 다섯이고 ④ 미래의 결과도 다섯이다.”
그리고 §292에서 “① 과거의 원인이 다섯이라고 했다. 여기서 무명과 의도적 행위들[行]의 이 둘은 이미 설했다. 무지한 자가 갈증을 느끼고, 갈증을 느끼는 자가 취착하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그러므로 갈애, 취착, 존재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이전의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어리석음이 무명이요, 노력이 의도적 행위들[行]이며, 집착이 갈애요, 접근이 취착이며, 의도가 존재다. 이와 같이 이전의 업으로서의 존재에서 [있었던] 이 다섯 가지 법들이 금생의 재생연결의 조건이 된다.”(Ps.i.52)”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296에서는 “③ 지금의 원인이 다섯이라고 했다. 이것은 갈애 등이다. 갈애, 취착, 존재가 성전에 전승되어온다. 존재가 포함될 때 그 존재에 선행하는 의도적 행위들[行]이나 혹은 그와 관련된 의도적 행위들[行]도 포함된다. 갈애와 취착이 포함될 때 그들과 관련된 무명도 — 이것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업을 쌓는다 — 포함된다. 이와 같이하여 다섯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처럼 무명, 행, 애, 취, 유의 다섯은 과거 혹은 전생에 지은 원인도 되고 지금 혹은 금생에 짓는 원인도 된다. 그러나 무명과 행은 전생에 더 두드러진 원인이 되고 애와 취와 유는 금생에 더 두드러진 원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⑦ 이세인과(二世因果)
물론「인연 상윳따」(S12)에 나타나는 연기의 가르침이 모두 삼세양중인과만을 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10지 연기로 나타나는 S12:12, 59, 65, 67의 네 개 경들은 금생의 재생연결식부터 시작해서 내생의 생-노사로 연결되는 금생과 내생의 이세인과(二世因果)를 설하고 있다.
그리고 8지 연기를 설하는 S12:24, 43, 44, 45의 네 개 경도 금생과 내생의 이세인과를 설하고 있다. 특히 S12:43∼45는 식-촉-수-애-취-유-생-노사의 8지 연기를 설하는데, 여기서 식은 재생연결식이 아니라 감각장소와 대상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6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8지 연기는 금생에 지금․여기에서 찰나생․찰나멸하는 식-촉-수가 조건이 되어서 애-취-유가 전개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내생의 생-노사가 상속된다고 설하고 있다.
특히 5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S12:52∼57과 S12:60의 일곱 개 경은 삼세양중인과를 설하는 12지 연기 가운데 금생의 원인과 내생의 결과를 설하는 후반부의 애-취-유-생-노사의 다섯 만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세일중인과(二世一重因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금생의 원인인 애-취-유를 조건으로 해서 내생의 결과인 생-노사가 생기는 구조로 금생과 내생의 이세에 걸쳐서 인-과가 한번 거듭되는 구조의 연기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생에서만 전개되는 연기의 가르침은 나타나지 않는가? 일단 12지 연기부터 3지 연기까지는 적어도 두 생이 개입되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3지 연기를 설하는 S12:25에서 세존께서는 무명을 근본원인으로 말씀하셨고, 이것은 주석서의 설명처럼 윤회의 뿌리이기 때문에 무명이 나타난다는 것은 전생과 금생의 두 생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지 연기를 설하고 있는 S12:26, 31, 62, 63의 네 개의 경은 한 생 내에서의 연기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감각접촉(촉)-괴로움(S12:26)과 감각접촉-느낌(S12:62)의 2지 연기와, 네 가지 음식과 그 원인을 설하는 S12:63의 2지 연기는 한 생 내에서의 연기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⑧ 연기에 대한 네 가지 해석
한편 경전에 나타나는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형태의 연기의 가르침은 남북방 아비담마․아비달마 논서들에서는 모두 12지 연기로 정착이 된다.
이렇게 12지 연기로 정착이 되어 원인-결과의 중층적 고리로 설명이 되는 12연기는 이미 다양한 부파의 여러 대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북방 아비달마를 총괄하고 있는『아비달마 구사론』(줄여서『구사론』이라 부름)에 의하면 아비달마에서는 연기의 가르침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고 적고 있다.
첫째는 한 찰나에 연기의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는 주장인데 이것을 ‘찰나(刹那)연기’라 한다.『구사론』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행할 때 찰나에 12지가 모두 갖추어져 일어난다고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 12찰나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12지가 연이어서 상속(相續)한다는 것이 ‘연박(連縛)연기’이고, 여러 생에 걸쳐서 시간을 건너뛰어서 12지가 상속한다는 것이 ‘원속(遠續)연기’이며, 12지는 모두 5온을 본질로 하여 매순간 오온이 생멸하면서 상속하지만 특정 순간의 두드러진 상태[分位]에 근거하여[從勝立支名] 각각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 ‘분위(分位)연기’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구사론』은 경(經, sūtra)은 오로지 번뇌를 끊어[斷惑]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해졌기 때문에 연기의 가르침을 ‘유정’에만 한정시킨 반면, 논(論, abhidharma)은 법의 참된 모습 즉 법상(法相) 혹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분위로도 설하고 유정․비유정과 통하는 것으로도 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론은 이미『대비바사론』(『한글대장경』118, p. 516)에 나타나고 있는데, 분위와 원속은 오로지 유정에 국한되는 연기이고, 찰나와 연박은 비유정 즉 법에도 통하는 연기라고 한다. 이처럼 경에서는 유정 즉 중생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로 연기를 설하고 있지만 아비달마 즉 논의 가르침에서는 이러한 연기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⑨ 통시적인가 공시적인가
연기각지들이 한 순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나는가 아닌가하는 것도 학자들의 관심꺼리다. 연기각지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다는 것이 통시적 연기이고 연기각지가 한 순간에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 공시적 연기이다. 물론 경에서는 특정 연기각지들의 관계가 통시적인가 공시적인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자면 인은 인끼리 과는 과끼리 공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무명과 행과 애와 취와 유라는 인은 통시적일 수도 있고 공시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과 명색과 육입과 촉과 수도 아비담마적으로 보자면 공시적일 수도 있고, 특정 순간에 어느 것이 더 강한가하는 측면에서는 통시적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과 과는 공시적으로 보면 곤란하다. 인과동시(因果同時)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유와 생, 생과 노사는 공시적일 수 없다. 물론 찰나연기의 입장에서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연박연기와 원속연기와 분위연기의 관점은 통시적이라 할 수 있고 찰나연기는 공시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남방『청정도론』과 북방『구사론』은 각각 24연과 6인-4연-5과의 이론으로 12연기각지(緣起各支)의 통시성과 공시성을 잘 밝히고 있다. 한편『청정도론』에서는 식-명색(XVII.201), 명색-육입(XVII.207 등), 육입-촉(XVII. 227), 촉-수(XVII.231), 애-취(XVII.248), 취-유(XVII.268~269)의 여섯 가지 등은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 즉 공시적 연기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⑩ 12연기와 상호의존[緣]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상호의존[緣, paccaya, paṭṭhāna]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미 초기불교부터 상호의존 혹은 조건발생으로 존재일반을 설명해왔다. 이러한 조건은 초기 아비담마에서부터 24가지 조건으로 정리되었고,『구사론』을 위시한 북방아비달마에서는 6인-4연-5과로 특히 4연(四緣, 네 가지 조건)으로 정리가 되었으며, 이것은 유식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서 10인-4연-5과로 특히 4연으로 정리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괴로움 특히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12연기를 이러한 24연이나 4연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24연이나 4연이 발전하여 화엄에서 법계연기로 승화한 것이지 결코 12연기가 법계연기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위의 ‘⑧ 연기에 대한 네 가지 해석’에서 밝혔듯이 북방 아비달마는 제법의 법상을 밝히는 것을 중시하다보니 이미 연기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이해하려 시도하였다.
상좌부『논장』의 마지막인『빳타나』에서는 상호의존(paṭṭhāna)의 방법으로 ⑴ 원인의 조건(hetupaccaya, 因緣) ⑵ 대상의 조건(ārammaṇa- paccaya, 所緣緣) ⑶ 지배의 조건(adhipatipaccaya, 增上緣) ⑷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anantarapaccaya, 無間緣) ⑸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samanantarapaccaya, 等無間緣) ⑹ 함께 생긴 조건(sahajātapaccaya, 俱生緣) ⑺ 서로 지탱하는 조건(aññamaññapaccaya, 相互緣) ⑻ 의지하는 조건(nissayapaccaya, 依止緣) ⑼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paccaya, 親依止緣) ⑽ 먼저 생긴 조건(purejātapaccaya, 前生緣) ⑾ 뒤에 생긴 조건(pacchājātapaccaya, 後生緣) ⑿ 반복하는 조건(āsevanapaccaya, 數數修習緣) ⒀ 업의 조건(kammapaccaya, 業緣) ⒁ 과보의 조건(vipākapaccaya, 異熟緣) ⒂ 음식의 조건(āhārapaccaya, 食緣) ⒃ 기능[根]의 조건(indriya- paccaya, 根緣) ⒄ 禪의 조건(jhānapaccaya, 禪緣) ⒅ 도의 조건(magga- paccaya, 道緣) ⒆ 서로 관련된 조건(sampayuttapaccaya, 相應緣) ⒇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vippayuttapaccaya, 不相應緣) (21) 존재하는 조건(atthipaccaya, 有緣) (22) 존재하지 않은 조건(natthipaccaya, 非有緣) (23) 떠나가 버린 조건(vigatapaccaya, 離去緣) (24) 떠나가 버리지 않은 조건(avigatapaccaya, 不離去緣)의 24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북방의『아비달마 구사론』에서는 제법의 상호관계를 6인-4연-5과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용어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⑴ 6인: 능작인, 구유인, 상응인, 동류인, 변행인, 이숙인
⑵ 4연: 증상연, 등무간연, 소연연, 인연
⑶ 5과: 증상과, 사용과, 등류과, 이숙과, 이계과
이렇게 남방불교의 핵심인『청정도론』과 북방불교의 요체라 할 수 있는『구사론』은 이러한 상호의존과 상호관계를 통해서 제법의 상호관계를 심도 깊게 설명해내고 있으며 이것은 대승 특히 화엄에서 계승․발전되어 법계연기나 육상원융 등으로 이해되었다.
아무튼 초기불전에서 설하시는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와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이론화한 상호의존[緣, paccaya]은 엄격해 구분되어야 한다. 12연기를 제법의 상호의존 혹은 제법의 상호관계로만 너무 천착하다보면 자칫 생사문제를 해결하여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세존의 고구정녕하신 메시지가 들어 있는 연기의 가르침을 너무 현학적으로 만들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든 상호의존이든, 이러한 연이생(緣而生)의 가르침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온 모든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핵심이 되는 것임은 자명하다.
⑪ 연기는 무아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12연기를 비롯한 여러 각지의 연기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연기의 가르침은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주인공이니 하는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과 하나 되는 것쯤으로 깨달음을 착각하지 말라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실체는 어느 시대 어느 불교에도 결코 발붙일 틈이 없다. 남북 아비담마․아비달마에서 연기의 가르침을 제법의 상호관계로 승화시켜서 이해하려 한 것은 더욱더 그러하여 제법무아를 이론적으로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여래장 계열의 교학에서 주창하는 여래장이나 진여나 불성을 존재론적인 실체로 이해해버린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불교라는 깃발을 내걸고 외도짓거리를 하는 현양매구(懸羊賣狗)일 뿐이다. 이것이 교학적 측면에서 본 연기의 중요성일 것이다.
⑸ 연기의 소멸구조는 온․처의 염오-이욕-소멸과 같은 가르침
본 상윳따의「설법자[法師] 경」(S12:16 §4)과「되어있는 것 경」(S12: 31 §5)과「배우지 못한 자 경」1/2(S12:61∼62 §3)과「갈대 다발 경」(S12: 67 §8)에 “만일 비구가 늙음․죽음에 대해서 … 태어남에 대해서 … 존재에 대해서 … 취착에 대해서 … 갈애에 대해서 … 느낌에 대해서 … 감각접촉에 대해서 … 여섯 감각장소에 대해서 … 정신․물질에 대해서 … 알음알이에 대해서 … 의도적 행위들에 대해서 … 무명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일러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합니다.”(S12:67 §8) 등으로 나타나듯이 연기의 소멸구조는 결국은 염오-이욕-소멸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와 제4권「육처 상윳따」(S35) 등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성취하는 가르침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연기각지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을 성취하여 고(苦)를 소멸할 것인가? 본「인연 상윳따」(S12)에는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무더기 상윳따」(S22)와「육처 상윳따」(S35)와「진리 상윳따」(S56)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무상․고․무아의 통찰이나 사성제의 통찰이 필요할 것이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본서 제5권에서 강조되고 있는 8정도를 위시한 37보리분법일 것이다. 혹은 12연기각지와 그 집․멸․도를 아는 것이 그 대답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것은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연기각지 즉 12지 모두를 다 소멸시켜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본 상윳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석서에도 그런듯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자면 12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소멸하면 된다. 특히 인-과의 고리로 본다면 과의 고리, 그 중에서도 현재의 과의 고리인 식-명색-육입-촉-수는 소멸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의 고리를 제거, 소멸 혹은 부수어야 하는데, 12지로 보자면 무명과 행은 과거의 인으로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금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특히 갈애가 중점이다. 그래서 사성제에서도 괴로움의 원인으로 갈애를 들고 있으며 이 갈애가 남김없이 멸진된 경지를 열반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사견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분석 경」(S12:2) §7)으로 정리되는 네 가지 취착을 없애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없앨 것인가? 사성제의 가르침에서 보듯이 8정도 혹은 8정도로 대표되는 37보리분법을 닦아야 하며 이 37보리분법은 본서 제5권에서 모아져서 전승되어 온다.
4.「관통 상윳따」(S13)
열세 번째 주제인「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S13)에는 모두 1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관통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관통’은 abhisamaya를 옮긴 것인데 abhi+saṁ+√i(to go)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문자적으로 abhisamaya는 ‘완전하게 감, 철저하게 감’ 등의 뜻인데 주석서는 abhisamaya를 paṭivedha(꿰뚫음)와 동의어로 설명하고 있어서(DA.i.20) 관통이라고 옮겼다. 중국에서는 現觀(현관)으로 옮겼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을 담고 있으며 이것을 ‘관통’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어서「관통 상윳따」라 부른다. 그래서『청정도론』XXII.92에서도 관통은 사성제를 통찰하고 관통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른 여러 주석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에는 이 관통이 “법의 관통(dhamma-abhisamaya)”으로도 나타나는데, 복주서들은 “‘법의 관통’이란 사성제의 법(catu-sacca-dhamma)에 대한 지혜와 더불어 관통하는 것을 뜻한다.”(SAṬ.ii.8; DAṬ.ii.56; MAṬ.ii. 128)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11개의 경들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11개의 경들은 각각 다른 비유를 각 경에서 한 개씩 든 뒤에, 모두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괴로움이 대부분 멸진하고 해소되어 남아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그에게 남아있는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된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제 최대 일곱 생만이 [더 남아있다.] 비구들이여, 법의 관통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고, 이처럼 법의 눈을 얻음은 큰 이익이 있다.”로 끝을 맺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단 본 상윳따의 마지막 경인「산의 비유 경」3(S13:11)은 위의 맨 마지막 문장인 “비구들이여, 법의 관통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고, 이처럼 법의 눈을 얻는 것은 큰 이익이 있다.” 대신에 “비구들이여, 견해를 구족한 자에게는 이처럼 큰 성취가 있고, 이처럼 큰 신통의 지혜가 있다.”로 끝나는 부분만 다르다.
5.「요소 상윳따」(S14)
열네 번째 주제인「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S14)에는 모두 39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제1장「다양함 품」(Nānatta-vagga)과 제2장「일곱 요소 품」(Sattadhātu-vagga)과 제3장「업의 길 품」(Kamma -patha-vagga)의 세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품은 10개와 12개와 17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다양하게 분류되는 요소[界, dhātu]들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요소 상윳따」라 부르는 것이다. 본 상윳따에는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① 18가지 요소 —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알음알이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알음알이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알음알이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알음알이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알음알이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S14:1)
안․이․비․설․신․의를 요소로 들고 있는 S14:2∼5의 네 개의 경과 색․성․향․미․촉․법을 요소로 들고 있는 S14:6∼10의 다섯 개의 경들은 앞의 18가지 요소에 포함시켜 이해하면 되겠다.
② 일곱 가지 요소 — 특이하게도 S14:11은 빛, 아름다움, 공(空), 알음알이[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상수멸의 일곱 가지 요소를 들고 있는데, 삼장의 다른 곳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③ 세 가지 요소 — S14:12는 감각적 욕망, 악의, 해코지의 세 요소와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 않음의 세 요소를 들고 있다.
④ 네 가지 요소 — S14:30∼39의 열 개의 경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한편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법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디가 니까야』「합송경」(D33)에는 여러 종류의 요소들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세 가지 해로운 요소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요소, 악의에 대한 요소, 해코지에 대한 요소(D33.1.10 ⑾)
② 세 가지 유익한 요소 — 출리에 대한 요소, 악의 없음에 대한 요소, 해코지 않음에 대한 요소(D33.1.10 ⑿)
③ 다른 세 가지 요소[三界] — 욕계, 색계, 무색계(D33.1.10 ⒀)
④ 또 다른 세 가지 요소 — 색계, 무색계, 멸계(滅界 = 열반)(D33.1.10 ⒁)
⑤ 또 다른 세 가지 요소 — 저열한 요소, 중간의 요소, 수승한 요소(D33.1.10 ⒂)
⑥ 네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D33.1.10 ⒃)
⑦ 여섯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알음알이의 요소.(D33.2.2. ⒃) 이것은『맛지마 니까야』M112 §8, M115 §5, M140 §13, M143 §10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⑧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nissaraṇīyā dhātu) —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悲心解脫],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喜心解脫],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捨心解脫],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無相心解脫, animittā cetovimutti],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자만)을 뿌리 뽑음(D33.2.2 ⒄)
이러한 여덟 가지의 분류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요소에 대한 가장 자세한 분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논장』의『위방가』(Vbh)에는 경에 의한 방법(Suttanata-bhāja -nīya)에서 다음의 네 부류의 요소를 들고 있다.
① 여섯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알음알이의 요소.
② 다른 여섯 가지 요소 — 육체적 고통, 육체적 즐거움, 정신적 고통, 정신적 즐거움, 평온, 무명.
③ 또 다른 여섯 가지 요소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요소, 악의에 대한 요소, 해코지에 대한 요소, 출리에 대한 요소, 악의 없음에 대한 요소, 해코지 않음에 대한 요소.
④ 18가지 요소 —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알음알이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알음알이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알음알이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알음알이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알음알이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
그런데 본 상윳따의「벽돌로 만든 강당 경」(S14:13)부터「열 가지 구성 요소 경」(S14:29)까지의 17개 경들에 나타나는 요소(dhātu)라는 술어는 주석서에서 성향(ajjhāsaya)을 뜻한다고 밝히고 있듯이(SA.ii.138) 요소[界]라는 전문술어로 쓰인 것이 아니다.
특히 이 가운데 처음인「벽돌로 만든 강당 경」(S14:13)을 제외한「저열한 의향 경」(S14:14)부터「열 가지 구성 요소 경」(S14:29)까지의 16개 경들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요소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라는 문제제기가 나타나고, 바로 다음에 이어서 “X하는 자들은 X하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Y하는 자들은 Y하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 X하지 않는 자들은 X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Y하지 않는 자들은 Y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는 구문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22번째 경까지는 이것이 과거와 미래까지 확장되어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여러 조합의 요소들 즉 인간의 성향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나타내는 요소들은 전문술어가 아니기 때문에 교학적으로는 요소[界]라고 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다섯 가지 학습계목 경」(S14:25)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오계의 항목에 속하고「여덟 가지 구성 요소 경」(S14:28)에 나타나는 여덟 가지 요소는 바로 팔정도와 그 반대되는 전문술어로 이미 정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요소들로 존재를 분석해서 보는 것일까? 먼저 요소[界, dhātu]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주석서는 요소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요소[界, dhātu]’란 중생이 없다(nissatta)는 뜻과 공함(suññatā)이라는 뜻으로 불리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의미이다.”(SA.ii.131)
즉 중국에서 계(界)로 옮긴 dhātu는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법들(즉 18계, 4대, 3계 등)이 중생이라는 실체가 없고 공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기 때문에 요소들의 다양함이라 불린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중생이니 자아니 인간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施設, paññatti]를 요소들로 해체해서 보면 무상․고․무아가 드러나고 그래서 개념적 존재의 공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감각장소[處, āyatana, S35의 주제]는 제법을 6가지 감각기능[根, indriya]과 6가지 대상[境, ārammaṇa]의 12가지로 나눈 것이고, 요소[界]는 제법을 6가지 감각기능과 6가지 대상과 6가지 알음알이[識, viññāṇa]의 18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다 5가지 무더기[五蘊, pañca-kkhandha]를 포함해서 5온, 12처, 18계로 분류하는 것이 불교의 존재론이다. 이 온․처․계의 가르침은 초기불교-아비담마-반야-유식 등 불교의 제파에서 공히 인정하는 기본적인 존재론이기도 하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 강조해서 설하고 있는 온․처․계의 기본 가르침은 모두 개념적 존재를 법으로 해체해서 무상․고․무아를 드러내어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불사(不死)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법수가 되는 가르침이다.
물론 18계뿐만 아니라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지․수․화․풍 4계(4대)나 출리 등의 요소 등도 모두 존재의 실체 없음과 공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소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6내처-6외처-6식으로 구성된 18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본 상윳따에서 18계는 첫 번째 경 한 곳에만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본서 제3권의「들어감 상윳따」(Okkanti-saṁyutta, S25)와「일어남 상윳따」(Uppāda-saṁyutta, S26)와「오염원 상윳따」(Kilesa-saṁ -yutta, S27)의 30개 경들은 6내처와 6외처와 6식 즉 18가지 요소[界]를 주제로 한 경들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18계를 주제로 한 경들은 이처럼 다른 상윳따로 분리해 내고, 여기서는 18계 외의 다른 여러 요소들을 중심으로 경들을 모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둘째, 18계는 6내처와 6외처 즉 본서 제4권「육처 상윳따」(S35)에서 모은 248개의 가르침과 연관이 있다. 특히「육처 상윳따」(S35)에서 6내처-6외처-6식-6촉-6수로 나타나는「불타오름 경」(S35:28) 등 71개 경들은 12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18계(즉 6내처-6외처-6식)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그러므로 18계에 관계된 주제를 따로 모아서 독자적인 상윳따로 결집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18계의 가르침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본서 제4권「철저하게 앎 경」(S35:60) §3)는 등으로 다른 상윳따와 다른 니까야들에 포함된 경들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상윳따 니까야』에서는 따로 18계라는 주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S15)
열다섯 번째인「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S15)에는 모두 20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품에 각각 10개씩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들 20개의 경들은 모두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다(anamataggo 'yaṁ saṁsāro).”라는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서 ‘시작을 알지 못함’으로 옮긴 anamatagga는 해석하기가 평이한 단어는 아니다. 주석서는 이 단어를 anu+amatagga로 분석한 뒤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백년이나 천년을 지혜(ñāṇa)로써 추구한다 하더라도(anugantvā) 그 시작을 생각하지 못하고(amata-agga) 그 시작을 알지 못한다(avidita-agga)는 말이다. 여기로부터 혹은 저기로부터 시작(agga)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인데, 시작점과 마지막 점의 한계를 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SA.ii.156) 그래서 이렇게 옮겼다. 한편 anamatagga는 불교 산스끄리뜨(Mvu.i.34 등)에서는 anavara-agra로 나타나는데, ‘낮고 높은 시작점이 없음’으로 직역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무시세(無始世)로 옮겼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20개의 경들은 모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들 20개의 경들의 시작 부분인 §3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윤회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윤회의] 처음 시작점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설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각 경별로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들어서 윤회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에 다시 맨 마지막에 결론으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諸行]은 모두 염오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즉 이 20개의 경들도 온․처․계․근․연으로 대표되는 형성된 것들 즉 유위법들에 대한 염오-이욕-해탈로 결론을 짓고 있는데, 이 구문은『디가 니까야』「마하수닷사나 경」(D17 §2.16 등)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본 니까야의 도처에서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이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윤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 제15 상윳따에 대한 해제를 마무리한다.
⑴ 무아와 윤회
불교는 무아(無我, anatta)를 근본으로 하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부터 무상․고․무아는 삼특상(三特相, ti-lakkhana)이라 불렸으며, 북방불교에서는 무상․무아․열반을 삼법인(三法印)이라 불렀으며,『앙굿따라 니까야』「무상 경」등(A7:16∼17)에서는 무상․고․무아․열반을 통찰하여 성자가 되는 것이 언급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가 강조되고 있으며(S22:90; M35 등), 오온에 대해서 20가지로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는 삿된 견해를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이라 하는데(S22: 82; M44; A6:14 등), 유신견은 열 가지 족쇄(結, saṁyojana) 가운데 으뜸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신견을 타파하지 못하면 그는 비록 수승한 삼매의 경지를 체득하고 신통이 자재하다 하더라도 깨달음의 처음 단계인 예류자도 될 수 없다.
이렇듯 무아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지만 윤회(輪廻, saṁsāra, vatta)도 초기불교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일견 무아와 윤회는 상호 모순되는 가르침인 듯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불교를 잘못 이해하는 자들은 무아이면서도 윤회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하여 부처님은 윤회를 설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 실정이다.
먼저 힌두교에서 설명하는 윤회와 불교에서 설명하는 윤회를 정확하게 구분지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힌두교에서는 불변하는 아뜨만(자아)이 있어서 금생에서 내생으로 ‘재육화(再肉化, reincar -nation)’하는 것을 윤회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금생의 흐름(santati, 相續)이 내생으로 연결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재생(再生, rebirth)’을 윤회라 부른다.
‘다시 태어남’은 puna-bbhava(puna = 다시, bhava = 존재함)라는 단어로 초기경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아라한은 이러한 다시 태어남 즉 재생과 윤회가 없다고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남의 원인을 갈애(taṇhā)로 들고 있으며, 초기불전에서는 갈애를 ‘재생을 하게 하는 것(ponobhāvik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아래 윤회의 원인 참조)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5온․12처․18계(蘊處界)가 연속하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을 윤회라 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서로서로 조건지워져서 생멸변천하고 천류(遷流)하는 일체법의 연기적, 상호의존적 흐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가 없는(무아) 연기적 흐름을 윤회라고 멋지게 정의하고 있다. 윤회의 원어는 삼사라(saṁ+√sṛ, to move)인데 문자적으로는 ‘함께 움직이는 것, 함께 흘러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자아의 재육화보다는 오히려 연기적 흐름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무아(연기)와 윤회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매찰나 전개되는 오온의 생멸자체가 윤회이다. 생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생에서의 마지막 마음(죽음의 마음, 死心, cūti-citta)이 일어났다 소멸하고,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paṭisandhi-viññāṇa)이 일어나는 것이 윤회이다. 많은 불자들이 힌두교의 재육화와 불교의 재생을 정확하게 구분짓지 못하고 있는듯하여 안타깝다. 힌두교의 재육화는 자아가 새 몸을 받는 것(금생의 심장안의 허공에 머물던 자아가 내생의 몸의 심장안의 허공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지만 불교의 재생은 갈애를 근본원인으로 한 오온의 흐름이요, 다시 태어남(재생)이다.
윤회는 본 상윳따의 모든 경들에서 “무명에 덮인 중생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치달리고 윤회하므로 그 시작점을 꿰뚫어 알 수 없다.”(S15:1 등)는 문맥 등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진『법구경』의 다음 게송도 윤회와 윤회의 종식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헛되이 치달려왔다.
집짓는 자를 찾으면서
거듭되는 태어남은 괴로움이었다.
집 짓는 자여, 마침내 그대는 드러났구나.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음은 업형성을 멈추었고
갈애의 부서짐을 성취하였다.”(Dhp. {153∼154})
⑵ 육도윤회와 오도윤회
그리고 지옥․축생․아귀․아수라․인간․천상에 윤회하는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이미 초기경들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다. 육도(六道, 六度)는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윤회하는 세상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면서 심리상태를 나타낸 것이기도 한다. 한편 부처님은『맛지마 니까야』「대사자후경」(M12) §35 이하에서 다섯 가지 태어날 곳(gati, 가띠)을 말씀하셨는데 지옥․축생․아귀․인간․천신이 그것이다. 가띠(gati)를 중국에서는 취(趣)라고도 옮겼고 도(道)라고도 옮겼다.『디가 니까야』「합송경」(D33) §3.2에서는 청정범행을 닦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를 언급하면서 아수라도 아울러 언급하고 있으며 본서 제1권「삭까 상윳따」(S11) 뿐만 아니라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아수라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5도에다 아수라를 넣으면 6도가 되는 것이다. 한역 경전들에는 5취, 6취, 5도, 6도가 고루 나타난다. 그런데『화엄경』(특히 60화엄)에는 이 네 단어가 모두 다 쓰이고 있으며, 후대로 올수록 육도로 정착이 되어 육도윤회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 것이다.
육도 가운데 지옥(niraya)은 천상과 해탈의 원인이 되는 공덕이 없고 행복이 없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축생(tiracchana)은 ‘옆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동물들은 직립보행을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귀(peta)는 아버지를 뜻하는 삐따(pitā)에서 파생된 말이며, 베다의 조상신들과 관계가 있다. 후손이 올리는 제사음식을 바라는 존재라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굶주린 귀신(餓鬼)’으로 불교에서 정착되었다. 아수라(asura)는 베다에서 항상 천신들과 싸우는 존재로 묘사가 되고 있어서 투쟁적인 신들을 일컫는 존재로 불교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간(manu- ssa)은 마누(Manu)의 후손이란 뜻인데, 불교에서는 마음(mano)이 탐․진․치와 불탐․부진․불치로 넘쳐흐르기 때문(ussanna)에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천신(deva)는 ‘빛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사대왕천 이상의 세상에 거주하는 신들을 말한다.
초기불전에서 육도는 분명히 중생이 사는 세상(loka)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생이 사는 세상은 모두 심리상태의 반영이라고 아비담마 불교는 설명한다. 지옥은 지옥과 어울리는 극도로 나쁜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색계 천상들은 선(禪, jhāna)이라는 고도의 행복과 고요함과 집중이 있는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색계의 범중천은 이 천상과 어울리는 초선(初禪)의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나서 머무는 곳이다.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로 구성된 무색계 천상들은 무색계 삼매의 경지를 터득한 자들이 태어나서 머무는 곳이다.
이처럼 고통스럽거나 행복하거나, 저열하거나 고상한 다양한 세상은 모두 다양한 심리상태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도적 행위들의 반영이다. 이러한 의도적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業, kamma)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매순간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내가 일으키고 있는 심리상태들이 결국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앞으로 태어날 세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⑶ 윤회의 원인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윤회를 설하셨고, 초기경의 도처에서 갈애(愛, taṇhā)와 무명(無明, avijjā)이 윤회의 원인이라고 밝히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갈애(渴愛)를 ‘재생을 하게 하는 것(ponobhāvikā)’이라고 정의하셨다. 그리고 생․노사로 표현되는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밝히고 있는 12연기에서는 무명을 윤회의 근본원인으로 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본서 제6권「초전법륜 경」(S56:11 §6) 등은 다음과 같이 집성제(集聖諦, samudaya-sacca,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를 정의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S56:11 §6)
이렇게 갈애와 무명이 있는 한 윤회의 흐름은 계속된다. 이것을 우리는 생사윤회라 한다. 물론 갈애로 대표되는 번뇌들이 다한 아라한에게는 더 이상 윤회는 없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환과까지도 다시 태어남 즉 윤회는 있다.
윤회는 결코 방편설이 아니다. 갈애와 무명에 휩싸여 치달리고 흘러가는 중생들의 가장 생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윤회는 힌두교 개념이고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주장에 현혹되면 안된다. 부처님께서는 생․노사 혹은 생사로 대표되는 괴로움[苦]의 흐름인 윤회를 설하셨고, 윤회의 원인[集, 갈애]을 설하셨고, 윤회가 다한 경지[滅, 열반]를 설하셨고, 윤회가 다한 경지를 실현하는 방법[道, 팔정도]을 설하셨다. 그러므로 어설프게 ‘윤회는 없다, 부처님은 윤회를 설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7.「깟사빠 상윳따」(S16)
열여섯 번째 주제인「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S16)에는 깟사빠(가섭) 존자에 관련된 13개의 경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깟사빠는 부처님 입멸 후에 결집을 주도했으며 두타제일로 불리는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āyasmā Mahākassapa)를 말한다.
마하깟사빠 존자(āyasmā Mahā-Kassapa)는 마가다의 마하띳타(Mahā -tittha)에서 바라문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삡빨리(Pippali)였다. 그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아내(Bhaddā)와 논의하여 둘 다 출가하였다.(A1: 14:5-10의 밧다 까삘라니 주해 참조)『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1-4)에서 세존께서는 “두타행을 하는 자(dhuta-vāda)들 가운데서 마하깟사빠(대가섭)가 으뜸”이라고 칭찬하고 계시며, 그는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후 교단을 이끌었던 분이기도 하다. 본「깟사빠 상윳따」(S16)의 여러 경들은 그의 출중한 경지를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그는 교단에서 장수한 인물로 꼽히며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주석서는 초기교단에서 장수한 인물로 마하깟사빠 존자, 박꿀라 존자, 아난다 존자를 들고 있는데, 모두 120세까지 사신 분들로 알려져 있다.(AA.iii.243∼244)
깟사빠는 지금도 인도에서 유력한 바라문의 족성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제자 가운데도 깟사빠 성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DPPN에 의하면 빠알리 문헌에 나타나는 깟사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30명 가까이가 된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일차합송을 주도한 본 상윳따의 깟사빠 존자를 마하깟사빠(大迦葉)라 칭하고, 1000명의 제자와 함께 귀의한 가섭 삼형제는 우루웰라 깟사빠(優樓頻螺 迦葉)라 부르며, 나체수행자 출신 깟사빠는 아쩰라 깟사빠(나체수행자 출신 깟사빠)라 부른다.
남북방 불교에서 깟사빠 존자는 두타제일로 불리었다. 그의 두타행에 대한 언급이 본 상윳따의「늙음 경」(S16:5)에 나타난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깟사빠여, 그대는 이제 늙었다. 그리고 그대가 입고 있는 삼베로 만든 다 떨어진 분소의들은 그대에게 너무 무겁다. 그대는 장자들이 보시하는 옷을 수용하고, 공양청에 응하여 공양을 하라. 그러면서 내 곁에 머물도록 하라.”고 하신다. 그러자 존자는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을 숲에 머무는 자였고 숲에 머무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였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자였고 분소의를 입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삼의(三衣)만 수용하는 자였고 삼의만 수용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원하는 바가 적었고[少慾] 원하는 것이 적은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만족하였고[知足], 만족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한거하였고 한거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삶을 칭송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두타행을 계속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세존께서도 그를 칭찬하신다.
중국 선종에서는 깟사빠 존자를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첫 번째 제자로 간주한다. 그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전에서 부처님이 자리를 가섭존자와 나누어 앉은 것),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독수리봉산에서 꽃을 들어 보이신 것),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쿠시나라에서 반열반하신 뒤 가섭존자가 7일 뒤에 찾아오자 곽 밖으로 두 다리를 내어 보이신 것)의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서 부처님의 정법을 부촉받았다고 한다.
본 상윳따의「의복 경」(S16:11)에 의하면 가섭 존자는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있는 다자탑(多子塔, 바후뿟따 탑묘)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뵙고 제자가 되었으며 세존이 주신 분소의를 평생 입었다고 한다. 이런 초기불전의 말씀이 다자탑전분반좌로 승화된 듯하다. 그리고 사라쌍수곽시쌍부는「대반열반경」(D16)에서 세존이 반열반하신 7일 뒤에 가섭존자의 일행이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로 왔다. 와서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D16 §6.22)는 표현이 승화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무튼 마하깟사빠 존자는 평생을 두타행을 하면서 승단의 모범이 되었고 특히 일차결집을 주도한 큰 공로가 있는 교단의 최고 연장자였음에 틀림없다. 본 상윳따에 포함되어 있는 13개의 경들은 이러한 그의 꼿꼿한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8.「이득과 존경 상윳따」(S17)
열일곱 번째 주제인「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S17)에는 모두 43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과 제3장「세 번째 품」과 제4장「네 번째 품」의 네 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의 세 품들은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담고 있고 네 번째 품에는 13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모든 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라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이를 경계할 것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예를 들면, 세존께서는 비구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지게 되고 이를 탐하게 되면 그것은 마라의 낚싯바늘에 꿰인 것이며(S17:2) 마라의 작살에 찔린 것이라고 하셨다.(S17:3) 비구가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진 것을 긴 머리를 가진 염소가 가시덤불에 들어가 걸리고 찔리고 묶이어 재난에 처하는 것에 비유하고 계시며(S17:4), 똥벌레가 그의 앞에 큰 똥 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똥을 먹고 똥으로 가득하고 똥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다시 내 앞에는 큰 똥 무더기가 있다.’라고 다른 똥벌레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신다.(S17:5) 이처럼 본 상윳따의 43개 경을 통해서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빠진 비구를 여러 가지 비유로 경책하신다.
그러면서 모든 경의 마지막 문단에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은 무섭고 혹독하고 고약한 것이다. 그것은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는 데 방해물이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제거하리라. 그러면 일어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으신다.
이처럼 본 상윳따의 경들은 특히 출가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읽어야 할 부처님의 경책의 말씀을 담고 있다.
9.「라훌라 상윳따」(S18)
열여덟 번째인「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S18)는 부처님의 외동아들이었으며 어릴 때 출가한 라훌라 존자와 관계된 22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개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난다.「첫 번째 품」에는 10개의 경들이,「두 번째 품」에는 12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라훌라 존자(āyasmā Rāhula)는 세존의 외아들이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이 출가하시던 날 태어났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증득하신 지 2∼3년 뒤에 부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 왕의 간청으로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셨는데, 그때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소다라(Yasodhāra, 뒤에 출가하여서는 밧다 깟짜나(Bhaddā Kaccānā) 비구니로 불림)는 라훌라를 세존께 보내어서 상속물을 달라 하라고 시켰다. 라훌라의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를 출가시키게 하셨다. 무소유의 삶을 사시는 부처님이 아들에게 상속물로 줄 것은 출가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훌라 존자를 출가시키면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라.(mā lokaṁ punarāgam — Sn.59 {339})”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초기불전에 전승되어 온다. 그 가운데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신 최초의 경은『맛지마 니까야』「암발랏티까 라훌라 교계경」(M61)인데,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발 씻는 세숫대야의 비유로 그를 엄하게 가르치신다. 이 가르침은 아쇼까 대왕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서 그의 명령으로 바위에 새긴 아쇼까 대왕의 칙령에서도 이 경의 일부를 언급하고 있다. 라훌라 존자는「짧은 라훌라 교계 경」(M147)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외에도 라훌라를 교계하신(Rāhulovāda) 경이 몇 개 더 전해 온다.(M62; S.iii.105; A.iii.152 등) 이런 라훌라 존자였기에『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3-1)에서 세존께서는 그를 “배우기를 좋아하는(sikkhā-kāma) 비구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셨다. 북방에서는 밀행(密行)제일이라 부른다.
본 상윳따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에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차례대로 6근, 6경, 6식, 6촉, 6수, 6상, 6의도, 6갈애(S18:1∼8)와 6대(9)와 오온(10)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계신다. 그리고 같은 순서의 가르침이 S18:11∼20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세존께서는「잠재성향 경」(S18:21)에서 오온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빠짐 경」(S18:22)에서는 오온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 뒤에 취착 없이 해탈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서 [일어나는]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에 빠진 여러 가지 생각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한다.”라고 나타난다.
이처럼 세존께서 당신의 외아들인 라훌라 존자에게 안의 감각장소, 밖의 감각장소, 알음알이,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갈애와 땅의 요소․물의 요소․불의 요소․바람의 요소․허공의 요소․알음알이의 요소인 육대와 오온으로 대표되는 유위제법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본 상윳따의 기본 골격이다.
불자는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세존께서 외아들 라훌라 존자에게 특별히 하신 말씀은 특히 부처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우리 사부대중에게 강조해서 말씀하시고자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집에 참석한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상윳따 니까야』도처에 나타나는 불교 존재론과 인간론의 근본 교리인 온․처․계․연의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와 무아에 관계된 가르침만을 모아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 존자와 연관된「라훌라 상윳따」로 결집하여 전승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역자는 파악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역자는 본서의 해제와 주해 도처에서 무상․고․무아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10.「락카나 상윳따」(S19)
열아홉 번째인「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S19)에는 21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과 제2장「두 번째 품」의 두 개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난다.「첫 번째 품」에는 10개의 경들이,「두 번째 품」에는 11개의 경들이 담겨있다. 이 21개의 경들은 락카나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관련된 것인데, 모두 신통제일인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독수리봉산에 머물면서 신통으로 본, 기이한 형태의 몸을 받아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락카나 존자에게 묘사해서 설명해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갈라나 존자의 설명이 주를 이루는 경들로 되어 있지만 “오늘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독수리봉 산을 내려오면서 어떤 장소에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대는 미소를 지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여 목갈라나 존자의 말문을 열게 하는 자가 락카나 존자이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락카나 상윳따」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신통제일인 목갈라나 존자의 삼매체험과 관련된 경들은 본서 제4권「목갈라나 상윳따」(S40)로 결집되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본 상윳따는「락카나 상윳따」로 명명하였을 것이다.
본 상윳따에는 여러 가지 악업의 과보로 고통 받는 21종류의 존재들이 나타나는데, 이들 존재들이 각 경들에 하나씩 나타나서 본 상윳따의 21개의 경들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허공을 날아가는 해골, 허공을 날아가는 고깃조각, 허공을 날아가는 고깃덩이, 가죽이 벗긴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칼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창으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화살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바늘로 된 털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온몸이 바늘로 찔린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항아리만한 불알을 가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자, 똥구덩이에 머리채 푹 빠져 허공을 날아가는 자, 똥구덩이에 빠져 양손으로 똥을 먹으면서 허공을 날아가는 자, 가죽이 벗긴 채 허공을 나는 여인, 허공을 날아가는 냄새나고 추한 여자, 숯불에 그을리고 굽히고 땀투성이인 채 허공을 날아가는 여인, 머리가 잘린 채로 허공을 날아가는 자, 시뻘겋게 달구어진채로 허공을 날아가는 비구,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비구니,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식카마나,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허공을 날아가는 사미이다.
그리고 각 경에서 목갈라나 존자는 왜 이들이 이런 과보를 받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11.「비유 상윳따」(S20)
스무 번째인「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S20)에는 모두 비유를 담고 있는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말 그대로 비유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은 상윳따이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비유는 차례대로 ① 뾰족지붕 ② 손톱 ③ 가문 ④ 가마솥 ⑤ 창(槍) ⑥ 궁수 ⑦ 쐐기 ⑧ 목침 ⑨ 큰 코끼리 ⑩ 고양이, 두 가지 ⑪∼⑫ 자칼의 비유이다.
「뾰족지붕 경」(S20:1)에 나타나는 뾰족지붕이 있는 집(kūṭ-āgāra)의 비유는 본서 S22:102, S45:11, S46:7, S48:52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뾰족지붕이 있는 집은 중각(重閣)으로 한역되었다.
「손톱 경」(S20:2)의 비유는 본서 제6권「진리 상윳따」(S56)의 여러 경들(S56:102∼31)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인간(manussa)’이란 단어에는 신(deva)들도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인간과 천상에 다시 태어나는 중생들은 참으로 적다고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가문 경」(S20:3)의 비유는『율장』(Vin.ii.256)과『앙굿따라 니까야』「고따미 경」(A8:51/iv.278 §9)에도 나타나지만 적용되는 경우가 다르다.
본 상윳따의 12개 경들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비유를 드신 뒤에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물론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가마솥 경」(S20:4)과「창(槍) 경」(S20:5))라거나, “우리는 목침을 베고 자면서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게 머무르리라.”(「목침 경」(S20:8))라는 등으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들도 있다.
12.「비구 상윳따」(S21)
스물한 번째이면서 제2권의 마지막 상윳따인「비구 상윳따」(Bhikkhu -saṁyutta, S21)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목갈라나 존자 등 부처님의 직계제자 비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인「꼴리따 경」(S21:1)에는 꼴리따라 불렸던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제2선의 증득에 대해서 설한 법문을 담고 있다. 두 번째인「우빠띳사 경」(S21:2)은 우빠띳사라 불렸던 사리뿟따 존자의 간단한 설법을 담고 있다. 세 번째인「통(단지) 경」(S21:3)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의 대화를 담고 있는데,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으로 세존께 가서 세존께 들은 가르침을 사리뿟따 존자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네 번째인「신참 경」(S21:4)은 네 가지 선(禪)의 증득에 자유로운 어떤 신참 비구의 일화를 담고 있다. 다섯 번째인「수자따 경」(S21:5)은 세존께서 수자따 존자를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섯 번째인「라꾼따까 밧디야 경」(S21:6)은 난장이(라꾼따까)여서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비구들이 경멸하지만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는 라꾼따까 존자를 세존께서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곱 번째인「위사카 경」(S21:7)은 세존께서 위사카 존자를 칭찬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덟 번째인「난다 경」(S21:8)은 세존의 이모의 아들(이종사촌)인 난다 존자를 세존께서 경책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홉 번째인「띳사 경」(S21:9)은 세존의 고종사촌 동생인 띳사 존자를 세존께서 격려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열 번째인「장로라 불리는 자 경」(S21:10)은 세존께서 장로라 불리던 어떤 비구에게 혼자 머무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열한 번째인「마하깝삐나 경」(S21:11)은 ‘비구들을 교계하는 자(bhikkhu-ovād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되는 마하깝삐나 존자에 대한 세존의 칭찬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도반 경」(S21:12)은 마하깝삐나 존자의 제자인 두 도반 비구를 칭찬하시는 세존의 말씀을 담고 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12개의 경들은 모두 마하목갈라나 존자 등의 여러 비구들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어서 본 상윳따를「비구 상윳따」라 이름 붙인 것이다.
13.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2권에는 286개의 경들이 10개의 상윳따로 분류되어서 나타나고 있다.『상윳따 니까야』제2권은 전통적으로 연기를 위주로 한 책 혹은 가르침이라 불려왔다. 연기의 가르침은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청정도론』에서 초기불교의 6개 기본 교학으로 강조하고 있는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가운데 맨 마지막인 연의 가르침이다.
아비담마․아비달마의 논서들은 연기의 가르침을 모두 12연기로만 정형화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는 경장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본서「인연 상윳따」(S12)에서 보듯이 본 상윳따에는 모두 93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는데, 반복된 경들을 정리하면 모두 72개의 경이 된다. 이 가운데 34개의 경들만 12연기를 설하고 있고 나머지 38개 경들은 2지 연기부터 11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연기를 설하고 있다.
연기의 가르침은 세존께서 이미 본서「인연 경」(S12:60) §4 등에서 “심오한(gambhīra, 혹은 아주 어려운)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연기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도『청정도론』가운데서 가장 난해하다고 평이 나있는 연기의 해설(XVII장)에서 “전승된 가르침을 통달하거나 수행하여 법을 증득한 자가 아니면 연기의 주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늘 나는 연기의 구조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치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든 사람처럼 [나는] 그 발판을 찾지 못하는구나.” (Vis.XVII.25)라고 읊고 있다.
세존께서는『앙굿따라 니까야』「빠하라다 경」(A8:19) §16에서 “큰 바다가 하나의 맛, 짠 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법과 율도 하나의 맛, 해탈의 맛(vimutti-rasa)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연기를 위주로 한 제2권에 포함된 모든 경들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해탈의 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들 가르침은 우리에게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해탈․열반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을 듬뿍 안겨주시려는 우리 세존 부처님의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하다.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본서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2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