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목차>
제1주제 천신 상윳따(S1)
제1장 갈대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폭류 경 | S1:1 | 137 |
| 벗어남 경 | S1:2 | 142 |
| 휩쓸려감 경 | S1:3 | 144 |
| 사라져버림 경 | S1:4 | 145 |
| 얼마나 끊음 경 | S1:5 | 146 |
| 깨어 있음 경 | S1:6 | 148 |
| 통찰하지 못함 경 | S1:7 | 149 |
| 크게 혼미함 경 | S1:8 | 150 |
| 자만에 빠진 자 경 | S1:9 | 151 |
| 숲 경 | S1:10 | 152 |
제2장 난다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난다나 경 | S1:11 | 154 |
| 기뻐함 경 | S1:12 | 156 |
| 아들에 비견하지 못함 경 | S1:13 | 157 |
| 끄샤뜨리야 경 | S1:14 | 158 |
| 스치는 소리 경 | S1:15 | 159 |
| 졸림과 나른함 경 | S1:16 | 159 |
| 행하기 어려움 경 | S1:17 | 160 |
| 양심 경 | S1:18 | 161 |
| 토굴 경 | S1:19 | 162 |
| 사밋디 경 | S1:20 | 164 |
제3장 칼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칼 경 | S1:21 | 174 |
| 닿음 경 | S1:22 | 175 |
| 엉킴 경 | S1:23 | 176 |
| 마음의 고삐 경 | S1:24 | 178 |
| 아라한 경 | S1:25 | 179 |
| 광채 경 | S1:26 | 181 |
| 흐름 경 | S1:27 | 182 |
| 큰 재산 경 | S1:28 | 183 |
| 네 바퀴 경 | S1:29 | 184 |
| 사슴 장딴지 경 | S1:30 | 185 |
제4장 사뚤라빠 무리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참된 자들과 함께 경 | S1:31 | 187 |
| 인색 경 | S1:32 | 190 |
| 좋음 경 | S1:33 | 193 |
| 있는 것이 아님 경 | S1:34 | 198 |
| 허점을 찾는 자 경 | S1:35 | 201 |
| 믿음 경 | S1:36 | 205 |
| 회합 경 | S1:37 | 207 |
| 돌조각 경 | S1:38 | 210 |
| 빳준나의 딸 경1 | S1:39 | 215 |
| 빳준나의 딸 경2 | S1:40 | 218 |
제5장 불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불 경 | S1:41 | 220 |
| 무엇을 베풂 경 | S1:42 | 221 |
| 음식 경 | S1:43 | 222 |
| 하나의 뿌리 경 | S1:44 | 223 |
| 휘지 않음 경 | S1:45 | 223 |
| 요정 경 | S1:46 | 224 |
| 숲 가꾸기 경 | S1:47 | 226 |
| 제따 숲 경 | S1:48 | 227 |
| 인색 경 | S1:49 | 229 |
| 가띠까라 경 | S1:50 | 232 |
제6장 늙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늙음 경 | S1:51 | 237 |
| 늙지 않음 경 | S1:52 | 237 |
| 친구 경 | S1:53 | 237 |
| 의지처 경 | S1:54 | 239 |
| 태어남 경1 | S1:55 | 239 |
| 태어남 경2 | S1:56 | 240 |
| 태어남 경3 | S1:57 | 240 |
| 잘못 된 길 경 | S1:58 | 241 |
| 한 짝 경 | S1:59 | 242 |
| 시인 경 | S1:60 | 243 |
제7장 짓누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이름 경 | S1:61 | 245 |
| 마음 경 | S1:62 | 245 |
| 갈애 경 | S1:63 | 246 |
| 묶음 경 | S1:64 | 247 |
| 속방 경 | S1:65 | 247 |
| 핍박 경 | S1:66 | 248 |
| 올가미에 걸림 경 | S1:67 | 249 |
| 닫힘 경 | S1:68 | 250 |
| 소망 경 | S1:69 | 250 |
| 세상 경 | S1:70 | 251 |
제8장 끊음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끊음 경 | S1:71 | 252 |
| 마차 경 | S1:72 | 253 |
| 재화 경 | S1:73 | 254 |
| 비[雨] 경 | S1:74 | 254 |
| 두려움 경 | S1:75 | 256 |
| 늙지 않음 경 | S1:76 | 257 |
| 지배력 경 | S1:77 | 259 |
| 원함 경 | S1:78 | 260 |
| 여행 준비물 경 | S1:79 | 261 |
| 광채 경 | S1:80 | 261 |
| 다투지 않음[無諍] 경 | S1:81 | 263 |
제2주제 신의 아들 상윳따(S2)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깟사빠 경1 | S2:1 | 267 |
| 깟사빠 경2 | S2:2 | 269 |
| 마가 경 | S2:3 | 271 |
| 마가다 경 | S2:4 | 272 |
| 다말리 경 | S2:5 | 272 |
| 까마다 경 | S2:6 | 274 |
| 빤잘라짠다 경 | S2:7 | 276 |
| 따야나 경 | S2:8 | 277 |
| 짠디마 경 | S2:9 | 281 |
| 수리야 경 | S2:10 | 282 |
제2장 급고독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짠디마사 경 | S2:11 | 285 |
| 웬후 경 | S2:12 | 286 |
| 디가랏티 경 | S2:13 | 287 |
| 난다나 경 | S2:14 | 288 |
| 짠다나 경 | S2:15 | 289 |
| 와수닷따 경 | S2:16 | 290 |
| 수브라흐마 경 | S2:17 | 291 |
| 까꾸다 경 | S2:18 | 293 |
| 웃따라 경 | S2:19 | 295 |
| 급고독 경 | S2:20 | 295 |
제3장 여러 외도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시와 경 | S2:21 | 299 |
| 케마 경 | S2:22 | 301 |
| 세리 경 | S2:23 | 302 |
| 가띠까라 경 | S2:24 | 306 |
| 잔뚜 경 | S2:25 | 309 |
| 로히땃사 경 | S2:26 | 311 |
| 난다 경 | S2:27 | 315 |
| 난디위살라 경 | S2:28 | 316 |
| 수시마 경 | S2:29 | 317 |
| 여러외도 경 | S2:30 | 322 |
제3주제 꼬살라 상윳따(S3)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젊은이 경 | S3:1 | 331 |
| 인간 경 | S3:2 | 336 |
| 늙음/죽음 경 | S3:3 | 337 |
| 사랑하는자 경 | S3:4 | 338 |
| 자기 보호 경 | S3:5 | 341 |
| 적음 경 | S3:6 | 342 |
| 재판정 경 | S3:7 | 343 |
| 말리까 경 | S3:8 | 345 |
| 제사 경 | S3:9 | 346 |
| 결박 경 | S3:10 | 349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 | S3:11 | 352 |
| 다섯 왕 경 | S3:12 | 356 |
| 양동이 분량의 음식 경 | S3:13 | 360 |
| 전쟁 경1 | S3:14 | 362 |
| 전쟁 경2 | S3:15 | 363 |
| 딸 경 | S3:16 | 366 |
| 불방일 경1 | S3:17 | 367 |
| 불방일 경2 | S3:18 | 368 |
| 무자식 경1 | S3:19 | 372 |
| 무자식 경2 | S3:20 | 375 |
제3장 세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인간 경 | S3:21 | 379 |
| 할머니 경 | S3:22 | 385 |
| 세상 경 | S3:23 | 386 |
| 궁술 경 | S3:24 | 387 |
| 산의 비유 경 | S3:25 | 392 |
제4주제 마라 상윳따(S4)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고행 경 | S4:1 | 399 |
| 코끼리 경 | S4:2 | 403 |
| 아름다움 경 | S4:3 | 404 |
| 마라의 올가미 경1 | S4:4 | 405 |
| 마라의 올가미 경2 | S4:5 | 407 |
| 뱀 경 | S4:6 | 409 |
| 잠 경 | S4:7 | 410 |
| 기쁨 경 | S4:8 | 412 |
| 수명 경1 | S4:9 | 413 |
| 수명 경2 | S4:10 | 414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바위 경 | S4:11 | 416 |
| 사자 경 | S4:12 | 417 |
| 돌조각 경 | S4:13 | 418 |
| 어울리는 일 경 | S4:14 | 420 |
| 정신적인 것 경 | S4:15 | 421 |
| 발우 경 | S4:16 | 422 |
| 여섯감각접촉의 장소 경 | S4:17 | 424 |
| 탁발음식 경 | S4:18 | 426 |
| 농부 경 | S4:19 | 428 |
| 통치 경 | S4:20 | 432 |
제3장 세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많음 경 | S4:21 | 435 |
| 사밋디 경 | S4:22 | 437 |
| 고디까 경 | S4:23 | 440 |
| 칠 년 동안 경 | S4:24 | 446 |
| 마라의 딸들 경 | S4:25 | 450 |
제5주제 비구니 상윳따(S5)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알라위까 경 | S5:1 | 164 |
| 소마 경 | S5:2 | 463 |
| 고따미 경 | S5:3 | 465 |
| 위자야 경 | S5:4 | 467 |
| 웁빨라완나 경 | S5:5 | 470 |
| 짤라 경 | S5:6 | 472 |
| 우빠짤라 경 | S5:7 | 474 |
| 시수빠짤라 경 | S5:8 | 475 |
| 셀라 경 | S5:9 | 477 |
| 와지라 경 | S5:10 | 479 |
제6주제 범천 상윳따(S6)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권청(勸請) 경 | S6:1 | 485 |
| 존중 경 | S6:2 | 493 |
| 브라흐마데와 경 | S6:3 | 496 |
| 바까 범천 경 | S6:4 | 501 |
| 어떤 범천 경 | S6:5 | 505 |
| 범천의 세상 경 | S6:6 | 510 |
| 꼬깔리까 경1 | S6:7 | 512 |
| 띳사까 경 | S6:8 | 513 |
| 뚜두 범천 경 | S6:9 | 514 |
| 꼬깔리까 경2 | S6:10 | 517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사낭꾸마라 경 | S6:11 | 523 |
| 데와닷따 경 | S6:12 | 524 |
| 안다까윈다 경 | S6:13 | 525 |
| 아루나와띠 경 | S6:14 | 527 |
| 반열반 경 | S6:15 | 532 |
제7주제 바라문 상윳따(S7)
제1장 아라한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다난자니 경 | S7:1 | 541 |
| 욕설 경 | S7:2 | 544 |
| 아수라 왕 같은 자 경 | S7:3 | 548 |
| 시큼한 죽 장수 경 | S7:4 | 550 |
| 해코지 않음 경 | S7:5 | 551 |
| 엉킨 머리 경 | S7:6 | 552 |
| 청정 경 | S7:7 | 554 |
| 불에 헌공하는 자 경 | S7:8 | 555 |
| 순다리까 경 | S7:9 | 559 |
| 많은 딸 경 | S7:10 | 566 |
제2장 청신사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까시 바라드와자 경 | S7:11 | 571 |
| 우다야 경 | S7:12 | 575 |
| 데와히따 경 | S7:13 | 578 |
| 부자 경 | S7:14 | 580 |
| 마낫탓다 경 | S7:15 | 583 |
| 빳짜니까 경 | S7:16 | 586 |
| 나와깜미까 경 | S7:17 | 587 |
| 땔나무 모으기 경 | S7:18 | 589 |
| 어머니 봉양 경 | S7:19 | 591 |
| 걸식자 경 | S7:20 | 592 |
| 상가라와 경 | S7:21 | 594 |
| 코마둣사 경 | S7:22 | 596 |
제8주제 왕기사 장로 상윳따(S8)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출가 경 | S8:1 | 601 |
| 따분함 경 | S8:2 | 604 |
| 온후함 경 | S8:3 | 608 |
| 아난다 경 | S8:4 | 610 |
| 금언 경 | S8:5 | 612 |
| 사리뿟다 경 | S8:6 | 615 |
| 자자[自恣] 경 | S8:7 | 617 |
| 천 명이 넘음 경 | S8:8 | 621 |
| 꼰단냐 경 | S8:9 | 626 |
| 목갈라나 경 | S8:10 | 629 |
| 각가라 경 | S8:11 | 630 |
| 왕기사 경 | S8:12 | 632 |
제9주제 숲 상윳따(S9)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한거 경 | S9:1 | 637 |
| 일깨움 경 | S9:2 | 638 |
| 깟사빠곳따 경 | S9:3 | 640 |
| 많음 경 | S9:4 | 642 |
| 아난다 경 | S9:5 | 643 |
| 아누룻다 경 | S9:6 | 644 |
| 나가닷따 경 | S9:7 | 646 |
| 집안 안주인 경 | S9:8 | 647 |
| 왓지 출신 경 | S9:9 | 649 |
| 암송 경 | S9:10 | 650 |
| 지혜롭지 못함 경 | S9:11 | 652 |
| 대낮 경 | S9:12 | 653 |
|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음 경 | S9:13 | 654 |
| 향기 도둑 경 | S9:14 | 655 |
제10주제 약카 상윳따(S10)
| 경 제목 | 경 번호 | 페이지 |
|---|
| 인다까 경 | S10:1 | 661 |
| 삭까나마까 경 | S10:2 | 664 |
| 수찔로마 경 | S10:3 | 665 |
| 마니밧다 경 | S10:4 | 669 |
| 사누 경 | S10:5 | 671 |
| 삐양까라 경 | S10:6 | 675 |
| 뿌납바수 경 | S10:7 | 676 |
| 수닷따 경 | S10:8 | 679 |
| 숙까 경1 | S10:9 | 683 |
| 숙까 경2 | S10:10 | 684 |
| 찌라 경 | S10:11 | 685 |
| 알라와까 경 | S10:12 | 686 |
제11주제 삭까 상윳따(S11)
제1장 첫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수위라 경 | S11:1 | 697 |
| 수시마 경 | S11:2 | 701 |
| 깃발 경 | S11:3 | 701 |
| 웨빠찟띠 경 | S11:4 | 706 |
| 금언의 승리 경 | S11:5 | 710 |
| 새의 보금자리 경 | S11:6 | 714 |
| 해치지 않음 경 | S11:7 | 715 |
| 아수라 왕 웨로짜나 경 | S11:8 | 716 |
| 숲의 선인 경 | S11:9 | 718 |
| 바다의 선인 경 | S11:10 | 721 |
제2장 두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서계의 조목 경 | S11:11 | 724 |
| 삭까의 이름 경 | S11:12 | 726 |
| 마할리 경 | S11:13 | 728 |
| 가난한 자 경 | S11:14 | 730 |
| 아름다운 곳 경 | S11:15 | 732 |
| 공양하는 자 경 | S11:16 | 733 |
| 부처님을 찬양함 경 | S11:17 | 734 |
| 삭까의 예배경1 | S11:18 | 736 |
| 삭까의 예배경2 | S11:19 | 738 |
| 삭까의 예배경3 | S11:20 | 740 |
제3장 세 번째 품
| 경 번호 | 페이지
|
|---|
| 끊음 경 | S11:21 | 744 |
| 못생김 경 | S11:22 | 745 |
| 요술 경 | S11:23 | 747 |
| 잘못 경 | S11:24 | 748 |
| 분노하지 않음 경 | S11:25 | 750 |
<상윳따 니까야 역자 서문>
1. 들어가는 말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하나로만 말해보라면 그것은 열반(涅槃, nibbāna)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離慾], 소멸, 열반이다."(본서 제3권 「찬나 경」 (S22:90) §5 등)로 표현되고있고,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열반 경」 (S38:1) 등)이라고도 설해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무위(無爲)라고도 정의된다. ( 「무위 상윳따」 (S43)) 그리고 "염오, 이욕,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본서 제5권 「염오 경」 (S46:20) §3 등)이라는 문맥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본서의 도처에서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소멸의 동의어요 해탈-해탈지견과 유사한 의미이기도 하다.1) 더구나 이 소멸이야말로 불교의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가운데 세 번째인 저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다.2)
그러므로 열반은 궁극적 행복이요 그 궁극적 행복은 바로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성스러운 경지인 것이다.
열반의 실현이야말로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처님의 간곡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본 『상윳따 니까야』 와 다른 니까야들의 여러 곳에서 열반의 실현(nibbānassa sacchikiriya)은 강조되고 있으며(본서제4권 「열반 경」(S38:1) §4 등),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四念處]는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본서 제5권 「암바빨리 경」(S47:1) §3 등) 『숫따니빠따』 는 "열반을 실현하는 것(nibbāna-sacchikiriya) 이야말로 으뜸가는 행복"(Sn.267 {267}) 이라 하여 열반의 실현을 궁극적 행복(parama-sukha)으로 부르고 있다.
2. 어떻게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그러면 열반은 어떻게 해서 실현되는가? 만일 그 방법이 없이도 열반이 문득 실현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행심의 논리, 저 로또 복권의 논리이다.
열반은 당연히 수행을 통해서 실현된다. 수행을 초기불전에서는 바와나(bhāvanā)라는 술어로 총칭하고 있는데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바와나(수행)는 팔정도를 근간으로 하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37보리분법, 조도품)'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무조건 37보리분법만 닦으면 열반을 실현하게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37보리분법을 닦기 위해서는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이해는 37보리분법의 근간이 되는 팔정도의 첫 번째인 정견의 내용이기도 하고, 칠각지의 택법각지이며, 오근 · 오력의 혜근 · 혜력(통찰지의 기능과 힘)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과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며 그런 수행은 더 이상 수행이 아니어서,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형국이 되고 말거나 단지 용만 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가 없이 37보리분을 실천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 진리에 대한 바르고도 완전한 이해가 바로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르치고 있는 부처님 말씀을 우리는 부처님의 교학 혹은 교법이라 부르며 이런 체계를 법(dhamma)이라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오온(五蘊, panca-kkhandha)'이라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몸뚱이,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들[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의 적집일 뿐이라는 것이다.3)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12처(혹은 6내처와 6외처)로 말씀하셨다.4) 나와 세상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조물주니 절대자니 신이니 하는 어떤 힘센 존재가 만들어낸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나와 세상은 조건발생이요 여러 조건[緣,paccaya]들이 얽히고설키어서 많은 종류의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러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구명(究明)하여 그 괴로움을 없애야 저 해탈 · 열반은 실현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나와 세상에서 진행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철저하게 밝히시는데 이것이 바로 연기의 가르침이다.5) 이러한 나와 세상과 여기에 존재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과 소멸구조에 대한 연기적 관찰은 궁극적으로 진리[諦, sacca]라는 이름으로 체계화 되는데 그것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저 사성제라 부른다.6)
이처럼 교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37보리분법의 수행이 있어야 해탈 · 열반은 실현되는 것이다.
3. 불교의 인간관 · 세계관 · 연기관 · 진리관
한편 부처님은 붓다(Buddha)의 역어이며 붓다는 깨달은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깨달음(bodhi)을 실현한 분의 가르침이 곧 불교(Buddha-sāsana, 부처님의 교법)이며 이러한 불교의 궁극적 메시지는 당연히 깨달음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초기불전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성제를 깨달은 것으로 다른 하나는 연기의 가르침을 통해서 무명 등의 연기의 구성요소가 빛바래어 소멸한 것으로 나타난다.7)
여기서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멸성제)는 바로 열반을 뜻하고 이 열반의 실현이 사성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사성제를 깨닫는 것은 열반을 실현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 된다. 그리고 무명 등이 빛바래어 소멸함의 소멸은 여러 주석서에서 열반의 동의어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라한과의 실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아라한과의 실현이야말로 탐 · 진 · 치가 완전히 해소된 열반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열반의 실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
이처럼 오온, 12처(6내외처), 연기, 사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인간관 · 세계관 · 연기관 · 진리관이고 이것은 해탈 ·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이해다. 이것을 교학이라 부른다.
이처럼 불교는 인간과 세계와 연기와 진리에 대한 교학체계를 토대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무상 · 고 · 무아를 꿰뚫어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교학체계를 빠리얏띠(pariyatti, 배움)라 부르고, 37보리분법 등의 실천수행을 빠띠빳띠 (paṭipatti, 도닦음)라 하고, 꿰뚫음을 빠띠웨다(paṭivedha, 통찰)라 칭하는데이 셋을 불교의 근본주제라고 정리하고 있다.8)
그리고 이러한 교학과 수행은 다시 최종적으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귀결이 된다.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는 고성제의 내용이고, 나와 세상이 전개되고 그래서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구명한 것이 집성제이며, 이것은 갈애를 근본으로 한다.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모든 번뇌 혹은 속박, 족쇄, 폭류, 장애, 해로운 심리현상[不善法] 등이 해소되고 제거되고 소멸된 경지를 열반이라 하며, 이것은 세 번째 진리인 멸성제이다.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도닦음이라 하며, 이것이 바로 팔정도를 근본으로 하는 도성제이다. 이처럼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번역되는 사성제로 귀결이 된다.
4.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 온 ·처 · 계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
이처럼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은 온 · 처 · 연 · 제 혹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상좌부 불교의 근간이 되며 주석서 문헌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청정도론』 XIV.32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dhātu],][根, indriya],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ññā-bhūmi)이다."(Vis.XIV.32)라고 정의하여 불교교학의 근간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조석으로 독송되는 『반야심경』에도 기본교학은 온 · 처 · 계 · 제 · 연의 다섯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수행은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된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교학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줄여서 온 · 처 · 제 · 연으로 정리가 되고, 초기불교의 수행은 37보리분법으로 집약이 된다.
5. 『상윳따 니까야』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
『상윳따 니까야』 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그 주제가 분명한 것을 주제별로 함께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경전군이다. 본 니까야는 56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상윳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해당되는 경들을 각각의 상윳따들에 담고 있다.
아래 §10에서 정리하고 있듯이 이러한 56가지 주제는 다시 크게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 ② 인물 중심 ③ 특정한 존재 중심 ④ 특정 부류의 인간 중심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가 본 니까야의 핵심이며, 이것은 26가지 주제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② 특정 인물을 주제로 삼은 상윳따 가운데 9개 상윳따는 모두 교학과 수행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도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의 상윳따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이것은 전체 상윳따 주제의 70%에 가까운 것이다.
만일 이것을 경들의 숫자로 본다면, 『상윳따 니까야』의 전체 2904개의 경들 가운데 S1~S11과 S16, 21, 23, 29~32, 37, 41~42의 21개 상윳따에 포함된 614개의 경들을 제외한 2290개의 경들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으로 된 상윳따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전체의 80%에 가까운 경들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는 35개의 상윳따를 제외한 21개 다른 상윳따들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도 사실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 중의 하나에 관계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본 『상윳따 니까야』의 경들의 핵심 주제는 모두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 가지 교학적 가르침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는 수행에 대한 가르침으로 귀결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과 『상윳따 니까야』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청정도론』 에서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으로 정리한 초기불교의 교학 가운데 온(무더기)은 본서 「무더기 상윳따」 (S22)와 S23, S24, S33의 주제이다. 처(감각장소)는 「육처 상윳따」 (S35)의 주제요, 계(요소) 「육처 상윳따」 (S35)와 「요소 상윳따」 (S14)의 주제이다. 근(기능)은 「기능 상윳따」 (S48)의 주제요, 제(진리)는 「진리 상윳따」 (S56)의 주제이며, 연(조건발생)은 「인연 상윳따」 (S12)의 주제이다.
그리고 「인연 상윳따」 (S12)와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와 「진리 상윳따」(S56)는 각각 빠알리어 원본 『상윳따 니까야』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의 핵심 주제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제2권과 제3권과 제4권은 책의 이름을 각각 『니다나 왁가』 (Nidāna Vagga, 인연 품), 『칸다 왁가』 (Khandha Vagga, 무더기 품), 『아야따나 왁가』 ( 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라고 붙였는데 더 풀어서 말하면 각각 '인연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오온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이 된다. 이처럼 이 셋은 각 권의 핵심 가르침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내용도 이들 세 권의 절반이나 절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37보리분법으로 정리한 초기불교의 수행은 모두 빠알리 원본 『상윳따 니까야』 제5권의 전반부인 S45부터 S51까지에서 기본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는 초기불교의 핵심 교학체계와 핵심 수행체계를 기본 주제로 하여 결집되었다.
6. 결집을 통한 법의 전승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직후에도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무르리라.'라고 하셨고,9) 45년간 제자들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 하셨으며,10) 사바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시는 반열반의 마지막 자리에서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11)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D16) §6.1)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기셨다. 그래서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은 부처님의 입멸이라는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뒤로 하고 부처님의 존체(尊體, sarīra, 舍利)요 부처님의 진정한 몸[法身]이며 부처님의 화현(avatāra)인 세존의가르침을 결집하는 일에 몰입하였다. 그들은 장장 일곱 달 동안12) 합송에 몰두하여 세존이 남기신 법과 율을 결집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일단 법의 바구니(Dhamma-Pitaka = Sutta-Pitaka, 經藏)와 율의 바구니(Vinaya-Pitaka, 律藏)라는 두 개의 바구니를 먼저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서 율의 바구니부터 먼저 채우기로 결의하였는데, 합송에 참석한 아라한들은 "마하깟사빠 존자시여, 율은 부처님 교법의 생명(ayu)입니다. 율이 확립될 때 교법도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율을 첫 번째로 합송해야 합니다."(DA.i.11)라고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법의 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하였는데, 법의 바구니는 다시 다섯 개의 니까야(Nikāya)로 나누어서 합송하였다.
일차합송에 참여한 아라한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정리한 기준은 길이와 주제와 숫자의 세 가지였다. 그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는 데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직계제자들의 설법들 가운데서 그 길이가 긴 경들 34개를 모아서 『디가 니까야』(長部)에 담았고, 중간 길이로 설하신 가르침들 152개를 합송해서 『맛지마 니까야』(中部)에 담았다. 그다음에는 설법의 주제별로 56개의 주제를 설정한 뒤 그 주제에 해당하는 경들을 함께 모아서(saṁyutta) 『상윳따 니까이』(相應部)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경들에 나타나는 가르침의 숫자[法數]에 주목하여 모두 하나부터 열하나까지의 법수를 가진 모음을 분류한 뒤 숫자별로 모아서 『앙굿따라 니까야』(增支部)로 합송(合誦, saṅgīti)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디가 니까야』등 네 가지 니까야를 완성한 뒤에 그외에 남은 부처님 말씀이나 여러 스님들의 설법이나 일화나 게송 등은 『쿳다까 니까야』(小部)에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합송하여 공인된 『디가 니까야』 (장부)에는 모두 3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분량은 64바나와라13)이며, 아난다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해서 그분들이 계승해 가도록 하였다. 『맛지마 니까야』 (중부)에는 모두 15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분량은 80바나와라이며, 사리빳따 존자의 제자들이 계승하도록 결의하였다. 『상윳따 니까야』 (상응부)에는 모두 7762개위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분량은 100바나와라이며, 마하깟사빠 존차의 제자들에게 부촉하여 전승하도록 하였다. 『앙굿따라니까야』 (증지부)에는 모두 9557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120바나와라 분량이며, 아누룻다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해서 전승하도록 하였다 한다.14)
7. 『상윳따 니까야』 란 무엇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는 4부 니까야 가운데 세 번째에 결집한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부처님 가르침을 결집한 첫 번째 기준은 가르침의 길이이다. 그래서 가장 길이가 긴 것 34개를 모아서 『디가 니까야』 (길게 설하신 니까야)로 이름을 붙였으며, 그 다음으로 긴 경들 152개를 모아서 『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니까야)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남은 경들을 어떤 기준을 통해서 다시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 첫 번째 기준은 그 가르침의 주제이고 두 번째 기준은 그 가르침에 포함된 주제의 숫자이다. 첫 번째 기준으로 모은 것을 『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니까야)라 하며 두 번째 기준으로 모은 것을 『앙굿따라 니까야』 (숫자별로 모은 니끼야)라 한다.
문자적으로 상윳따(Saṁyutta)는 sarh(함께)+√ yuj(to tie, to bound)에서 파생된 과거분사로 '함께 모아진 것, 함께 묶여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오온이나 사성제나 육처와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가르침들을 모두 모아서 묶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역자는 이것을 '주제별로 묶은 것'이라고 의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진리 상윳따」 (S56)는 진리 즉 사성제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두 함께 묶은 것이라는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것을 『상윳따 니까야』 로 음역하여 옮겼으며 '주제별로 모은 경'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일본에서는 『상윳따 니까야』 를 '상응부(相應部)'로 옮겼다.
『상윳따 니까야』에는 모두 56개의 주제별로 묶은 가르침 즉 상윳따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56개의 상윳따는 다섯 권으로 편집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을 주제별로 묶은 11개의 상윳따(S1~S11)는 제1권에 포함되어 있고, 연기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상윳따(S12~S21)는 제2권에, 오온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3개의 상윳따(S22~S34)는 제3권에, 육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상윳따(S35~S44)는 제4권에, 끝으로 37보리분법과 사성제 등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2개의 상윳따(S45~S56)는 제5권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가운데 분량이 많은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제4권에는 8개의 상윳따(S35~S42)를 포함시켰고, 제5권에도 8개의 상윳따(S43~S50)를, 제6권에는 나머지 6개의 상윳따(S51~S56)를 담아서 모두 여섯 권으로 출간하였다.
한편 이러한 주제별로 경들을 모아서 엮는 방식은 이미 『디가 니까야』의 제1권인 『계온품』(계의 무더기[戒蘊]를 중심에 둔 품)에도 채용되어 나타난다. 『계온품』에 포함되어 나타나는 13개의 경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계의 무더기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디가 니까야』 제1권의 이름을 『계온품』으로 지은 것이다. 그 외에도 『앙굿따라 니까야』 등에도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경들은 같은 품으로 묶어서 편집하였는데 경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결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교단뿐만 아니라 이미 인도의 여러 종교계 혹은 사상계에서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교설의 분류방법이기도 하다.
부처님 말년에 이를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해졌다. 이러한 많은 가르침을 어떻게 모아서 노래하고 기억하여 후대로 전승해 줄 것인가는 직계제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방대한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모아서 전승시킬 것인가? 그것은 기존의 인도 종교계의 전통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불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인도의 여러 바라문 가문들은 각 가문이 속하는 문파에 따라서 『베다 본집』(本集, Saṁ-hitā)과 『제의서』(祭儀書, Brāhmaṇa)와 『삼림서』(森林書, Āraṇyaka)와 『비의서』(秘義書, Upaniṣad)를 모아서 노래의 형태로 전승해 오는 전통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전체 10장(만달라, Maṇḍala)으로 구성되어 있는 『리그베다』 의 2장부터 7장까지는 『리그베다』 파에 속하는 바라문 가문들에서 전승되어 오던 찬미가(sūkta)를 각각 가문별로 모은 것이다.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 제1권 「암밧타 경」 (D3 §2.8)에서 언급되고 있는 유명한 바라문 가문들 가운데 하나인 웻사미따(Sk.Viśvāmitra)는 『리그베다』 3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며, 와마데와(Sk.Vāmadeva)는 4장을,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6장을, 와셋타(Sk.Vasiṣṭha)는 7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다. 그리고 8장은 깐와와 앙기라스 두 가문의 전승을 모은 것이며, 9장은 제사에서 아주 중요한 소마(Soma) 즙에 관계된 찬미가들을 모은 것이다. 1장과 10장은 일종의 잡장(雜藏)인데 가문과 관계없는 시대적으로 늦은 찬미가들을 모아서 구성한 만달라이다.
그리고『리그베다』 의 각 장은 모두 다시 주제별로 모아져 있는데, 먼저 바라문들의 신인 아그니(Agni, 불의 신)에 관계된 찬미가를 모으고, 다음은 인드라, 그다음은 다른 여러 신들의 순서로 모았다. 이처럼 이미 불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바라문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그들의 찬미가를 모아서 노래로 전승하고 있었다.
인도 종교계의 사정이 이러하였기 때문에 불교교단도 부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방법론을 그대로 받아 들였으며, 특히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깟사빠 존자와 같은 바라문 가문 출신들에게는 자연스런 추세였을 것이다.
아무튼 긴 길이의 경들을 『디가 니까야』 로 모으고 중간 길이의 경들을 『맛지마 니까야』 로 모은 뒤에, 남은 경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한 『상윳따 니까야』 와 숫자를 중심으로 한 『앙굿따라 니까야』 로 분류하여 결집하였다.
그런데 중요 주제 즉 불교의 중요한 법수들은 모두 숫자별로도 분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들은 『상윳따 니까야』에도 포함될 수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에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성제는 『상윳따 니까야』의 진리라는 주제 즉 「진리 상윳따」 (S56)에도 포함될 수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의 「넷의 모음」 (A4)에도 포함될 수 있다. 오온은 『상윳따 니까야』「무더기 상윳따」 (S22)와 『앙굿따라 니까야』「다섯의 모음」(A5)에, 육처는 「육처 상윳따」 (S35)와 「여섯의 모음」 (A6)에, 칠각지는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S46)와 「일곱의 모음」(A7)에, 팔정도는 「도 상윳따」 (S45)와 「여덟의 모음」 (A9)에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상윳따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로 다르게 분류되었을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과 같은 중요한 주제들은 모두 주제별로 묶은 가르침 즉 『상윳따 니까야』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합송에 참여한 직계제자 들은 먼저 26개의 법수를 중심으로 한 중요 주제들을 선정하고 여기에 관계된 가르침들을 각각의 상윳따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나 목갈라나 존자 등 중요한 인물 15명을 선정하여 이들과 관계된 경들을 각각의 인물을 제목으로 하는 상윳따에 모으고, 천신이나 약카 등의 존재들 가운데 8가지를 선정하여 역시 이들과 관계된 경들을 각각의 제목으로 하고 있는 상윳따에 모으고, 그 밖에 비구니 등 특정 부류의 인간들과 숲(S9), 비유(S20) 등을 주제로 하는 7개의 상윳따를 결집하였다. 이렇게 모두 56개의 주제를 선정하고 각 주제에 해당하는 경들을 『상윳따 니까야』 로 먼저 결집하였다.
그런 뒤에 이러한 56개의 주제와 관련 없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들은 그 경들이 담고 있는 가르침의 숫자에 따라서 『앙굿따라 니까야』 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예를 들면, 사성제에 관한 경들은 거의 모두 『상윳따 니까야』 의 「진리 상윳따」 (S56)에 포함되어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의 「넷의 모음」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온, 육처, 연기 등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여서 각각 『상윳따 니까야』의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 (S47), 「바른 노력 상윳따」 (S49), 「성취수단 상윳따」 (S51), 「무더기 상윳따」 (S22), 「육처 상윳따」 (S35), 「인연 상윳따」 (S12)에 포함되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의 「넷의 모음」(A4)이나 「다섯의 모음」 (A5)이나 「여섯의 모음」 (A6) 등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윳따 니까야』 에는 탐 · 진 · 치에 관한 상윳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탐 · 진 · 치에 관계된 가르침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셋의 모음」 (A3)에 포함되어 결집되었다.
그런데 본서 제4권 「여인 상윳따」 (S37)에 포함된 34개의 경들은 여인의 특질을 '믿음, 계의 증장, 통찰지, 보시, 배움'(S37:34)과 같은 주로 다섯 가지 법수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들은 교학이나 인물의 중요 주제로 보기보다는 숫자별로 모으는 것이 더 나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다섯의 모음」(A5) 등에 포함시키지 않고 『상윳따 니까야』에 「여인 상윳따」 (S37)라는 주제를 설정하여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구차제멸(九次第滅)의 가르침도 『상윳따 니까야』에서 특정한 주제로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르침들은 대부분 『앙굿따라 니까야』 의 「아홉의 모음」 (A9)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역자의 생각으로는 4禪-4처-상수멸의 구차제멸(九次第滅)의 가르침은 여인보다는 중요한 주제인 듯한데 이것은 『상윳따 니까야』에 가칭 '차제멸 상윳따'라는 주제를 설정하지 않고 『앙굿따라 니까야』 의 「아홉의 모음」(A9)에 포함시키고 있다. 물론 본서 제3권 「사리뿟따 상윳따」 (S28)와 제4권 「목갈라나 상윳따」 (S40)에 구차제멸의 가르침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 외 법(法, dhamma)과 율(律, vinaya)을 『율장』 과『경장』과『논장』의『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조직한 상세한 내용은 역자가 번역하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판한 『디가 니까야』 제3권의 부록으로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는 『디가 니까야 주석서』 서문의 §§30~48에 잘 나타나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이 부분은 상좌부 전통에서 본 빠알리 삼장의 조직체계를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역자의 보충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제1권 역자 서문에서도 법과 율의 결집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그곳을 참조하기 바란다.
8. 『상윳따 니까야』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 는 1차결집을 주도했고,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연장자였으며, 120세까지 살았고(AA.iii.243~244), 평생을 부처님께서 주신 누더기 한 벌을 입고 지내는 두타행을 실천했으며(S16:5 §3이하; S16:11 §§13~14), 80세가 된 아난다 존자를 젊은이라 불렀던 (S16:11 §5)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이 후대로 전승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가진 이러한 권위를 일차합송에 참석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그는 니까야들 가운데서도 주제별로 교법(sāsana)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상윳따 니까야』 를 전승할 책임을 맡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상윳따 니까야』 는 주제별로 분류한 56개의 상윳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제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주제(S1) 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제2주제(S2) 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제3주제(S3) 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제4주제(S4) 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제5주제(S5) 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제6주제(S6) 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제7주제(S7) 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제8주제(S8) 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제9주제(S9) 숲 상윳따(Vana-saṁyutta)
제10주제(S10) 약카 상윳따(Yakkha-saṁyutta)
제11주제(S11) 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제12주제(S12) 인연 상윳따(Nidāna-saṁyutta)
제13주제(S13) 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제14주제(S14) 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제15주제(S15)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제16주제(S16) 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제17주제(S17) 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제18주제(S18) 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제19주제(S19) 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제20주제(S20) 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제21주제(S21) 비구 상윳따(Bhikkhu-saṁyutta)
제22주제(S22) 무더기[蘊] 상윳따(Khanda-saṁyutta)
제23주제(S23) 라다 상윳따(Rādha-saṁyutta)
제24주제(S24) 견해 상윳따(Diṭṭhi-saṁyutta)
제25주제(S25) 들어감 상윳따(Okkanti-saṁyutta)
제26주제(S26) 일어남 상윳따(Uppāda-saṁyutta)
제27주제(S27) 오염원 상윳따(Kilesa-saṁyutta)
제28주제(S28) 사리뿟따 상윳따(Sāriputta-saṁyutta)
제29주제(S29) 용 상윳따(Nāga-saṁyutta)
제30주제(S30) 금시조 상윳따(Supaṇṇa-saṁyutta)
제31주제(S31) 간답바 무리 상윳따(Gandhabbakāya-saṁyutta)
제32주제(S32) 구름의 신 상윳따(Valāhaka-saṁyutta)
제33주제(S33) 왓차곳따 상윳따(Vacchagotta-saṁyutta)
제34주제(S34) 선(禪) 상윳따(Jhāna-sṁyutta)
제35주제(S35) 육처 상윳따(Saḷāyatana-saṁyutta)
제36주제(S36) 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제37주제(S37) 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제38주제(S38) 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제39주제(S39) 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제40주제(S40) 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제41주제(S41) 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제42주제(S42) 우두머리 상윳따(Gāmani-saṁyutta)
제43주제(S43) 무위 상윳따(Asaṅkhata-saṁyutta)
제44주제(S44)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ākata-saṁyutta)
제45주제(S45) 도 상윳따(Magga-saṁyutta)
제46주제(S46)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Bojjhaṅga-saṁyutta)
제47주제(S47)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atipaṭṭhāna-saṁyutta)
제48주제(S48) 기능[根] 상윳따(Indriya-samyutta)
제49주제(S49) 바른 노력 상윳따(Sammappadhāna-saṁyutta)
제50주제(S50) 힘 상윳따(Bala-saṁyutta)
제51주제(S51) 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제52주제(S52) 아누룻다 상윳따(Anuruddha-saṁyutta)
제53주제(S53) 선(禪) 상윳따(Jhāna-saṁyutta)
제54주제(S54) 들숨날숨 상윳따( Ānāpāna-saṁyutta)
제55주제(S55) 예류 상윳따(Sotāpatti-saṁyutta)
제56주제(S56) 진리[諦] 상윳따(Sacca-saṁyutta)
한편 이들 56개 상윳따들은 Ee, Be, Se 등의 모든 판본과 필사본에서 모두 다섯 권으로 편찬되어서 전승되고 있다. 이 가운데 S1부터 S11까지는 제1권에 포함되어 있는데 인들 11개의 상윳따는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1권을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ā-vagga)이라 부른다. Ee1에 의하면 제1권은 240쪽으로 되어 있다.
S12부터 S21까지 10개의 상윳따는 제2권에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인연 상윳따」 (S12)가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면서 연기(綠起)의 가르침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에 제2권은 전통적으로 인연을 위주로 한] 가르침(Nidāna-vagga)이라 부르며 역자는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에 의하면 제2권은 285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제3권에는 S22부터 S34까지 13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인 「무더기 상윳따」 (S22)가 절반이 넘는 분량이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제3권은 무더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Khandha-vagga)이라 부르고 있는데 역자는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에 의하면 제3권은 279쪽으로 편성되어 있다.
제4권에는 S35부터 S44까지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육처 상윳따」 (S35)가 거의 삼분의 이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어서 제4권은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Saḷāyatana-vagga)이라 불린다. 역자는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의 제4권은 403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권은 S45부터 S56까지 12개의 상윳따로 구성되어 있는데 37보리분법을 위시한 불교 수행을 총망라하고 있으며(S45~54)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담고 있는 「진리 상윳따」 (S56)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제5권은 큰 가르침을 담은 가르침(Mahā-vagga)이라 불리고 있다. Ee의 제5권은 478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런데 제4권과 제5권, 특히 제5권은 그 분량이 제1권의 두 배에 해당하는 분량이라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빠알리 원본의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번역 ·출판하고 있다. 즉 1/2/3권은 빠알리 원본과 같이 출간하였으며, 본원에서 출간한 제4권은 S35부터 S42까지의 8개 상윳따를 담고 있고, 제5권은 S43부터 S50까지의 8개 상윳따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제6권은 S51부터 S56까지의 6개 상윳따를 포함하고 있다.
56개로 분류된 각 상윳따들은 많은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디가니까야 주석서』 (DA)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 는 모두 7762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15) 이것은 9557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앙굿따라 니까야』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이렇게 주제별로 상윳따로 분류된 경들은 그 숫자가 100개가 넘을 경우에 다시 50개씩의 경들로 묶어서 분류하고 있는데 이것을 '50개 경들의 묶음(Paṇṇāsaka)'이라 부르고 있다. 빤나사까(Paṇṇāsaka)는 문자 그대로 '50개로 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한 묶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은 다시 5개의 '품(Vagga)'으로 분류가 되는데, 하나의 품은 기본적으로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조직하여 전체 7762개의 경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상윳따 니까야』 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맛지마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에도 적용되는 공통적인 방법이다. 『맛지마 니까야』 는 152개의 경들을 모두 50개씩 세 개의 묶음으로 분류한 뒤에 이 셋을 각각 제1권과 제2권과 제3권(52개의 경)에 담고 있다. 이러한 '50개 경들의 묶음'은 다시 각각 다섯 개의 품으로 분류가 되며, 각 품은 10개씩의 경을 포함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에 포함된 9557개의 경들은 모두 각 경에 포함된 주제의 숫자가 몇 개인가에 따라서 모두 11개 모음(A1~A11)으로 분류하였으며, 각각의 모음들 가운데 많은 경을 포함한 모음은 다시 50개 씩의 묶음과 품으로 분류하여 편집하였다.
한편『디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은 34개뿐이라서 50개의 묶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품별로 3개의 품으로 나누어서 각각을 『계온품』 (D1~D13의 13개 경들), 『대품』 (D14~D23의 10개 경들), 「빠띠까 품』 (D24~D34의 11개 경들)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셋을 각각 제1권과 제2권과 제3권에 담고 있다. 이처럼 모든 니까야에서 많은 경들을 배열하는 데는 이러한 공통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같은 주제별 묶음인 특정 상윳따 안에서 경들의 순서를 정하는 정해진 원칙이 있는가? 원칙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은 많지만 모든 묶음들과 품들이 반드시 정해진 원칙에 의해서 결집된 것은 아닌 듯 하다.
9. 『상윳따 니까야』의 경은 모두 몇 개인가?
『디가 니까야 주석서』 등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 에는 모두 7762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DA.i.25)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쪽의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나 Ee에는 2889개의 경들로 편집되어 나타나며 Be에는 2908개, Se에는 모두 7656개의 경으로 편집되어 있다. 역자는 본서에서 모두 2904개의 경들로 편집해서 옮겼다. 다음 쪽의 도표는 이들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각 판본마다 이렇게 경의 숫자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내용상에는 다른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같은 내용을 두고 어떻게 편집했는가 하는데 따라서 이렇게 경들의 숫자가 다르게 된것이다. Se와 Ee와 Be와 같은 이러한 판본들뿐만 아니라 이 외의 스리랑카나 태국 등의 여러 공식 판본과 필사본까지도 단어의 철자법이 다른 부분이 적지 않게 있고 혹 문장이 생략된 부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경이 새로 첨가된다거나 특정한 경이 생략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차례 | 상윳따 | Ee | Be | Se | 본서 | 품수 |
S1 | 천신 | 81 | 81 | 81 | 81 | 8 |
S2 | 신의 아들 | 30 | 30 | 30 | 30 | 3 |
S3 | 꼬살라 | 25 | 25 | 25 | 25 | 3 |
S4 | 마라 | 25 | 25 | 25 | 25 | 3 |
S5 | 비구니 | 10 | 10 | 10 | 10 | 1 |
S6 | 범천 | 15 | 15 | 15 | 15 | 2 |
S7 | 바라문 | 22 | 22 | 22 | 22 | 2 |
S8 | 왕기사 장로 | 12 | 12 | 12 | 12 | 1 |
S9 | 숲 | 14 | 14 | 14 | 14 | 1 |
S10 | 약카 | 12 | 12 | 12 | 12 | 1 |
S11 | 삭까 | 25 | 25 | 25 | 25 | 3 |
소계 | 11개 상응 | 271 | 271 | 271 | 271 | 28 |
S12 | 인연 | 93 | 93 | 213* | 93 | 9 |
S13 | 관통 | 11 | 11 | 1116) | 11 | 1 |
S14 | 요소[界] | 39 | 39 | 39 | 39 | 4 |
S15 | 시작 없음 | 20 | 20 | 20 | 20 | 2 |
S16 | 깟사빠 | 13 | 13 | 13 | 13 | 1 |
S17 | 이득·존경 | 43 | 43 | 43 | 43 | 4 |
S18 | 라훌라 | 22 | 22 | 22 | 22 | 2 |
S19 | 락카나 | 21 | 21 | 21 | 21 | 2 |
S20 | 비유 | 12 | 12 | 12 | 12 | 1 |
S21 | 비구 | 12 | 12 | 12 | 12 | 1 |
소계 | 10개 상응 | 286 | 286 | 406 | 286 | 27 |
S22 | 무더기[蘊] | 158* | 159 | 159 | 159 | 15 |
S23 | 라다 | 46 | 46 | 46 | 46 | 4 |
S24 | 견해 | 114* | 96 | 96 | 96 | 4 |
S25 | 들어감 | 10 | 10 | 10 | 10 | 1 |
S26 | 일어남 | 10 | 10 | 10 | 10 | 1 |
S27 | 오염원 | 10 | 10 | 10 | 10 | 1 |
S28 | 사리뿟따 | 10 | 10 | 10 | 10 | 1 |
S29 | 용 | 50 | 50 | 50 | 50 | 1 |
S30 | 금시조 | 46 | 46 | 46 | 46 | 1 |
S31 | 간답바 | 112 | 112 | 112 | 112 | 1 |
S32 | 구름의 신 | 57 | 57 | 57 | 57 | 1 |
S33 | 왓차곳따 | 55 | 55 | 55 | 55 | 1 |
S34 | 선(禪) | 55 | 55 | 55 | 55 | 1 |
소계 | 13개 상응 | 733 | 716 | 716 | 716 | 33 |
S35 | 육처 | 207* | 248 | 248 | 248 | 19 |
S36 | 느낌 | 29* | 31 | 3117) | 31 | 3 |
S37 | 여인 | 34 | 34 | 36* | 34 | 3 |
S38 | 잠부카다까 | 16 | 16 | 16 | 16 | 1 |
S39 | 사만다까 | 16 | 16 | 16 | 16 | 1 |
S40 | 목갈라나 | 11 | 11 | 57* | 11 | 1 |
S41 | 찟따 | 10 | 10 | 10 | 10 | 1 |
S42 | 우두머리 | 13 | 13 | 13 | 13 | 1 |
S43 | 무위 | 44 | 44 | 1848 | 44 | 2 |
S44 | 무기(無記) | 11 | 11 | 11 | 11 | 1 |
소계 | 10개 상응 | 391 | 434 | 2286 | 434 | 33 |
S45 | 도(道) | 180 | 181* | 546* | 180 | 16 |
그러면 Se는 왜 다른 판본들보다 거의 세 배에 달하는 경들의 숫자로 편집하였을까? 이것이 승가의 전통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거듭 밝히지만 주석서에서는 전통적으로 『상윳따 니까야』 에는 모두 7762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고 간주한다. 주석서 문헌들은 붓다고사를 위시한 스님들이 모두 스리랑카에서 편찬한 문헌들이다. 그러다 보니 Se는 스리랑카에서 편찬된 이러한 주석서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경의 개수를 매기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0.『상윳따 니까야』 의 주제
먼저 『상윳따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56개의 상윳따는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이냐 ② 인물 중심이냐 ③ 특정한 존재 중심이냐 ④ 특정 부류의 인간 중심이냐는 네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분류해서 도표로 나타내보면 다음 쪽의 도표와 같다.
한편 특정 인물을 주제로 삼은 상윳따 가운데 「라훌라 상윳따」 (S18)에 포함된 모든 경들은 육처와 여러 가지 요소와 오온(처 · 계 ·온)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락카나 상윳따」 (S19)는 신통을, 「라다 상윳따」 (S23)는 오온을, 「사리뿟따 상윳따」 (S28)는 9禪을, 「왓차곳따 상윳따」 (S33)는 오온을, 「잠부카다까 상윳따」 (S38)는 멸(열반)과 도를, 「사만다까 상윳따」 (S39)도 멸(열반)과 도를, 「목갈라나 상윳따」 (S40)는 9禪을, 「아누룻다 상윳따」 (S52)는 마음챙김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의 상윳따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면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분류 기준 | 상윳따 | 합계 | 비율 |
교학과 수행의주제 | 연기(S12), 관통(S13), 요소(S14), 시작없음(S15), 이득·존경(S17), 온(S22), 견해(S24), 들어감(S25), 일어남(S26), 오염원(S27), 禪(S34), 육처(S35), 느낌(S36), 무위(S43), 무기(S44), 도(S45), 각지(S46), 염처(S47), 기능(S48), 바른 노력(S49), 힘(S50), 성취수단(S51), 禪(S53), 들숨날숨(S54), 예류(S55), 진리(S56) | 26개 | 46% |
특정 인물 | 꼬살라(S3), 마라(S4), 왕기사(S8), 삭까(S11), 깟사빠(S16), 라훌라(S18), 락카나(S19), 라다(S23), 사리뿟따(S28), 왓차곳따(S33), 잠부카다까(S38), 사만다까(S39), 목갈라나(S40), 찟따(S41), 아누룻다(S52) | 15개 | 14% |
특정 존재 | 천신(S1), 신의 아들(S2), 범천(S6), 약카(S10), 용(S29), 금시조(S30), 간답바(S31), 구름의 신(S32), | 8개 | 14% |
특정 부류 | 비구니(S5), 바라문(S7), 비구(S21), 여인(S37), 우두머리(S42) | 5개 | 9% |
기타 | 숲(S9), 비유(S20) | 2개 | 4% |
이렇게 『상윳따 니까야』 에 나타나는 35개의 주제에 관한 상윳따를 다시 교학과 수행과 증득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해 보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 여기서 교학에 관한 것으로는 오온 등의 여덟 가지 주제가 설해지고 있고, 수행에 관한 것은 37보리분법의 일곱 가지 주제에다 삼매(禪)를 포함한 여덟 가지 주제가 나타나고 있으며, 증득에 관한 것으로는 사성제와 열반과 신통과 예류의 네 가지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20가지 주제로 재분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8가지 교학, 8가지 수행, 4가지 증득으로 분류되는 20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압축된다.
| 주제 | 상윳따 번호 |
교학 | 오온 | 22 23 24 33 |
처 · 계 | 35 14 |
처 · 계 · 온 | 18 25 26 27 |
연기 | 12 |
느낌 | 36 |
윤회 | 15 |
이득 · 존경 | 17 |
10사 무기 | 44 |
수행 | 도 | 45 38 39 43 |
마음챙김 | 47 52 54 |
삼매(禪) | 28 24 40 53 |
4여의족 | 51 |
4정근 | 49 |
5근 · 5력 | 48 50 |
7각지 | 47 |
증득 | 4성제 | 56 13 |
멸과 도 | 38 39 43 |
신통 | 21 |
예류 | 55 |
① 온 ·처 ·계 · 연 등으로 해체한다. 해체하면 무상 · 고 · 무아가 보인다. 그러면 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 해탈-구경해탈지가 드러난다.(8가지 교학)
② 염오-이욕 해탈-구경해탈지를 체득하는 수행방법으로는 37보리분법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팔정도와 마음챙김이 강조되고 있다.(8가지 수행)
③ 이렇게 해서 사성제를 통달하고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증득하고 실현한다.(4가지 증득)
11. 『상윳따 니까야』의 특징
(1) 주제별로 모았다
『상윳따 니까야』의 가장 큰 특징은 부처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 니까야에는 불교의 기본 법수와 교학체계가 총망라되고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상좌부 불교의 근간이 되며 주석서 문헌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청정도론』 XIV.32에서 저자 붓다고사 스님은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기능[根, indri-yal,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ṇṇā-bhūmi)이다."(Vis.XIV.32)라고 정의하여 불교교학의 근간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붓다고사스님은 『디가 니까야 주석서』 (DA)와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MA)와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 (SA)와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 (AA)와 『율장 주석서』(VinA) 서문들에서 공히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초월지들과 통찰지[慧]의 정의를 내리는 것과
무더기[蘊] · 요소[界] · 감각장소[處] · 기능[根]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諦]와 여러 조건[緣=緣起]의 가르침과
극히 청정하고 능숙한 방법과 경전을 벗어나지 않은 도(道)와
위빳사나 수행 -이 모든 것은
내가 지은 『청정도론』에서 아주 청정하게 [설명되었다.]"18)
여기서 초월지는 abhiṇṇā를 옮긴 것인데 이것은 여섯 가지 신통의 지혜(육신통)를 말한다. 이 가운데 천음의 다섯 가지 신통은 반드시 제4禪이 토대가 되어야 하며19) 이것은 사마타 혹은 삼매수행으로 정리가 된다. 본서에서 삼매수행은 두 개의 「선(禪) 상윳따」 (S34, S52)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신통의 지혜는 본서 제6권 「이전 경」(S51:11) §8 이하 등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반야(般若, paṇṇā, 慧)로 알려진 통찰지는 오근 · 오력의 통찰지의 기능과 힘[慧根 ·慧力]으로 정의 되어, 본서 제5권 「기능[根] 상윳따」 (S48)의 모든 곳을 위시한 본서 여러 곳에 나타난다. 통찰지의 정의는 본서 제5권 「분석 경」 1(S48:9) §8을 참조할 것. 그리고 무더기(온)는 S22에, 감각장소(처)는 S35에, 요소(계)는 S14에, 기능(근)은 S48에 정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사성제(제)는 S56에, 연기의 가르침(연)은 S12에, 도는 S45부터 S51까지에서 37보리분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위빳사나 수행은 염오20)라는 술어로 여러 상윳따에서 아주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붓다고사 스님은 이처럼 불교의 교학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으로, 불교의 수행을 도(팔정도)를 근본으로 하는 37보리분법과 사마타와 위빳사나로 정리하고 있는데, 방금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가르침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 에는 불교의 기본 법수와 교학체계가 총망라되고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불교교학의 기본 법수인 온 · 처 · 연은 각각 『상윳따 니까야』 제3권과 제4권과 제2권의 이름으로 채택되어서 각각 『칸다왁가』 (Khandha Vagga, 무더기 품, 오온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아따나 왁가』 (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 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니다나 왁가』 (Nidāna Vagga, 인연 품, 인연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불교 수행의 기본법수인 37보리분법과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 등을 담고 있는 제5권은 『마하왁가』 (Mahā-vagga, 대품, 큰 가르침을 담은 책)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 는 불교의 중요한 주제를 주제별로 총망라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논장』의 『위방가』(分別論, Vbh)에서 최종적으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22근의 가르침은 다른 니까야들에서는 22가지가 다 나타나지 않지만 본서 「기능 상윳따」 (S48)에 모두 다 나타나고 있다.
(2) 간단명료하면서도 불교의 핵심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이 동의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4부 니까야로 나눈 주요 기준은 경의 길이이다. 그래서 첫 번째 니까야는 길게(dīgha)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라고 해서 『디가 니까야』라 불렀고, 두 번째 니까야는 중간 길이(majjhima)의 말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해서 『맛지마 니까야』 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렇게 먼저 상대적으로 긴 가르침들을 뽑아서 처음 두 개의 니까야에 모았기 때문에 나머지 경들을 담고 있는 『상윳따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다.
그러면 단순히 경의 길이만이 4부 니까야로 나눈 기준이 되었을까? Joy Manné 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21) 그녀에 의하면 『디가 니까야』는 특히 새로운 종교인 불교의 대외적인 포교에 역점을 두어 당시 여러계층의 사람들을 불교로 받아들이기 위한 가르침을 위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특히 『디가 니까야』 제1권 『계온품』에 포함된 경들을 들 수 있다. 제1권의 13개 경들 가운데서 청법자는 바라문이 여섯 군데에, 외도 유행승들이 세 군데에, 통치자(왕과 태수)가 두 군데에, 장자가 한 군데에 나타나고 있다. 세존께서는 이들에게 불교를 계 · 정 · 혜 혹은 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으로 불교의 대의를 천명하고 계신다. 제1권 『계온품』에서 비구들이 청법자(聽法者)가 된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다.
그렇다면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를, 특히 『상윳따 니까야』를 결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대적으로 긴 경들을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로 모으고 남은 경들을 단순히 주제나 주제의 숫자라는 기준만을 세워서 그냥 모아서 담아놓은 것일까?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첫째, 이 두 니까야 특히 『상윳따 니까야』에는 경을 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생략되어서, 나타나지 않거나 최소화 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에는 경을 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대부분 아주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상윳따 니까야』 에는 이러한 경을 설하게 된 배경이 단 한 줄로, 아니 sāvatthi-nidānaṁ(사왓티에서의 인연)이나 sāvatthiyaṁ viharati(사왓티에 머무셨다)라는 단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하는 표현으로 끝나버린다.
둘째, 대부분의 경들은 제자들이나 청법자들의 질문이 없이 세존께서 바로 특정 주제에 대한 설법을 시작하신다.
셋째, 때로 『상윳따 니까야』의 어떤 경들은 뛰어난 직계 제자들 간의 단도직입적인 대화로 진행이 된다.
넷째, 많은 경들은 몇 개의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 하나의 핵심 단어만 바뀌어서 여러 경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곳도 많다.22)
다섯째, 「상윳따 니까야』에는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을 모은 제1권의 몇몇 상윳따를 제외하면 비불교인들이나 불교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나 존재들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그리고 재가자들에게 설한 가르침도 많지 않다. 재가자들을 위한 보시와 지계와 천상에 태어나는 것[施 · 戒 · 生天]을 강조한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앙굿따라 니까야』에 풍부하게 나타난다.
일곱째, 나아가서 『상윳따 니까야』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들을 위한 가르침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대신에 이미 법에 대한 확신이 굳건하고 교학과 수행에 이미 깊이 들어간 구참 출가자를 위한 가르침이며 「찟따 상윳따」 (S41)에서 보듯이 찟따 장자와 같은 교학과 수행에 관한한 재가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리는 그런 뛰어난 재가자들과 관계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이런 점들을 통해서 보자면 『상윳따 니까야』는 해탈 · 열반의 실현에 대한 부처님의 단도직입적이고, 불교에만 존재하는 유일하고 독특한 통찰과 직관을 담고 있는, 간단명료하고 분명하며, 그러나 음미할수록 심오해지고 어려워지는 그러한 가르침을 위주로 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승가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법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자들인 비구나 비구니들이다. 이들은 통찰지의 가장 깊은 특질까지 모두 꿰뚫어 본 분들이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제2/3/4/5/6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연기의 가르침(제2권)과 오온의 가르침(제3권)과 육처의 가르침(제4권)과 37보리분법의 가르침(제5권)과 사성제의 가르침(제6권)은 법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탐구하여 이것을 동료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이러한 뛰어난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서 제1권 「비구니 상윳따」 (S5)에 나타나는 게송들은 그 당시 비구니 스님들의 심오한 통찰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된다.
두 번째 부류는 기본단계의 수행을 이미 성취한 비구나 비구니들이다. 본서의 많은 가르침들은 이들이 부처님의 더 깊은 말씀을 듣고 해탈 · 열반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특히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와 「도 상윳따」 (S45) 등의 37보리분법의 가르침과 「진리 상윳따」 (S46) 등에 나타나는 짧은 가르침들은 이들에게 교학과 수행의 지침서가 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는 이처럼 이들에게 교학과 수행의 지침이 되는 간단명료한 가르침들을 위주로 해서 모은 것이다. 특히 본 상윳따의 400군데가 넘는 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오온과 12처 등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 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 해탈지를 성취한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르침과, 그 방법론으로 설해지는 37보리분법의 가르침은 아마 이들에게 교학을 공부하고 수행을 실천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3) 깨달음의 실현 방법을 정확하게 밝힌다
『상윳따 니까야』 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궁극적인 행복인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은 모두 깨달음의 증득 혹은 궁극적 행복의 실현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으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는가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쾌한 가르침들을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상윳따들에서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나는 깨달음을 실현하는 방법을 몇 가지로 분류해서 살펴보자.
①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과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통해서
『상윳따 니까야』 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깨달음을 실현 하는 방법 가운데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혹은 염오-이욕 소멸의 정형구이다.
「무더기 상윳따」 (S22)에 나타나는 77개의 경들은 모두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설하고 있는 경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상윳따에 포함된 159개의 경들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경들이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설하고 있다.
「육처 상윳따」 (S35) 가운데서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 · 고 · 무아 셋 다가 나타나는 경은 43개이며, 무상만이 나타나는 것은 40개, 괴로움만이 나타나는 것은 35개, 무아만이 나타나는 것은 31개이다. 이렇게 하여 248개 경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9개 정도의 경이 안의 감각장소나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이나 괴로움이나 무아를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라훌라 상윳따」 (S18)의 22개 경들 가운데서 20개 경들도 온 · 처 · 계의 무상 · 고 · 무아를 설하고 있다. 「견해 상윳따」 (S24)의 96개 경들과 「들어감 상윳따」 (S25)의 10개의 경들과 그 외 다른 상윳따에 포함된 적지 않은 경들에서도 무상 · 고 · 무아는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상윳따 니까야』에는 적어도 400개 이상의 경들이 무상 · 고 · 무아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연결된다. 주석서들은 한결같이 염오를 강한 위빳사나로 이욕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로 해탈은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로 구경해탈지는 반조의 지혜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 (S15)에 포함된 20개의 경들 전부도 무상 · 고 · 무아의 정형구는 나타나지 않지만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諸行]은 모두 염오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을 다시 풀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나 세상이라는 존재 등의 존재일반을 법(dhamma)이라는 기준으로 해체해서 설하신다. 그것은 본 니까야의 도처에 나타나며, 『청정도론』에서 정리하고 있는 오온, 12처, 18계, 12연기 등이다.
둘째, 이렇게 존재일반을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인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세째는 이렇게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 해서 존재일반에 염오하게 되고 존재일반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게 되고 그래서 해탈하게 되고 해탈하게 되면 태어남은 다했다는 해탈의 지혜가 생긴다. 혹은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면 소멸로 정의되는 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이것이 초기경의 도처 특히 본 『상윳따 니까야』 에서 중점적으로 설해지고 있는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세 가지 교학적인 단계이다.
이하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제4권의 해제 §(6) 어떻게 해탈 ·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와 제3권 「무더기 상윳따」 (S22)의 해제와 제4권 「육처 상윳따」 (S35)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본서 제2권 「인연 상윳따」 (S12)의 「설법자[法師] 경」 (S12:16) §4 이하에서 "비구여, 만일 늙음 · 죽음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라고 하여 이 염오-이욕-소멸을 12연기의 구성요소들 각각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염오-이욕 소멸은 「되어 있는 것 경」 (S12:31) §5 이하와 「갈대 다발 경」 (S12:67) §8 이하에도 비슷한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S12:61~62 §3도 참조할 것.
그리고 염오는 다음의 정형구에서도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 달콤함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달콤함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 집착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 위험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에 염오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서 벗어남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벗어남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서 벗어난다."(「육처 상윳따」 (S35) 「이것이 없다면 경」 1(S35:17) §3 등)
경들에서는 염오-이욕-소멸로 나타나기도 하고,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해탈은 과의 실현을 뜻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SA.ii.268) 그러므로 해탈과 소멸은 과의 증득이라는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리고 「인연 상윳따」에서는 12연기 각지의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으로 이욕과 소멸이 나타나고 있다.(아래 2를 참조할 것)
② 연기의 이욕 소멸을 통해서
연기의 가르침은 본서 제2권 「인연 상윳따」 (S12)의 주제이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연기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인연 상웃따」 (S12)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인연 상윳따」 (S12)의 「도닦음 경」 (S12:3)은 이렇게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바른 도닦음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도닦음이라 한다."(「도닦음 경」(S12:3) §4) 그리고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는 본 상윳따의 대부분의 경에서 괴로움의 소멸구조의 가르침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로 옮긴 것은 asesa-virāga-nirodhā를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빛바래어'으로 옮긴 virāga는 염오-이욕-소멸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이욕(탐욕의 빛바램)과 같은 단어이다. 문맥에 따라 여기서는 '탐욕의'를 빼고 그냥 '빛바래어'로 옮긴 것일 뿐이다. 소멸로 옮긴 nirodha는 당연히 염오-이욕 소멸의 소멸과 같은 단어이다. 이처럼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 등의 400여 군데에서 깨달음의 실현방법으로 강조되어 나타났던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연기의 가르침에서도 염오가 빠졌지만 이욕-소멸의 정형구로 꼭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인연 상윳따」(S12)의 「설법자[法師] 경」 (S12:16) §4 이하에서는 "비구여, 만일 늙음 · 죽음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라고 이 염오-이욕-소멸을 12연기의 구성요소들 각각에 적용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본서 「인연 상윳따」 (S12)의 여러 주해들에서 밝히고 있듯이 온 · 처 · 계의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12연기 각지의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멸(nirodha)은 바로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인 소멸의 진리(멸성제, nirodha-sacca) 즉 열반을 뜻한다.( 「분석 경」(S12:2) §16의 주해 참조) 그러므로 온 · 처 · 계의 가르침과 사성제와 12연기와 팔정도(팔정도의 바른 견해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이므로)는 모두 궁극적으로는 소멸(nirodha = 열반)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23)
『청정도론』 XIV.32와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붓다고사 스님이 강조하고 있듯이 온 · 처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의 인간관 · 존재관 · 세계관 · 진리관 · 수행관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기본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적인 인생관과 실천관을 가진 불자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③ 사성제의 통찰을 통해서
본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진리 상윳따」 (S56)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모아서 강조하고 있는 곳이다. 삼매를 닦고 홀로 앉는 수행을 하는 이유는 사성제를 꿰뚫기 위해서이며(S56:1~2), 출가자가 되는 이유도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기 위해서라고 경들은 밝히고 있다.(S56:3~4) 그뿐만 아니라 사색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항상 사성제를 사색하고 사성제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S56:5~6) 이처럼 「진리 상윳따」 의 모든 경들은 사성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사성제를 완전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라 부르며(S56:23) 아라한이라 부르며(S56:24) 사성제를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S56:25)고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깨달음은 사성제를 꿰뚫고 관통하고 알고 보아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진리 상윳따」 의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한편 다른 니까야에서는 육신통 가운데 맨 마지막이며 깨달음을 실현하는 정형구로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의 정형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 이 누진통의 정형구의 내용은 사성제의 통찰이다 . 경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 나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였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나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24)
이처럼 누진통의 정형구는 사성제의 통찰을 통한 해탈-구경해탈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오온 · 12처에 대한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와, 12연기에 대한 이욕-소멸의 정형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결국은 소멸 혹은 해탈-구경해탈지로 귀결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서에서 초기불교의 기본 교학으로 강조되고 있으며 본서 제2/3/4/6권의 핵심 가르침인 온 · 처 · 연 · 제 즉 무더기(오온, 제3권), 감각장소(12처, 제4권), 연기(제2권), 사성제(제6권)의 가르침은 모두 깨달음을 실현하는 기본 토대로 강조되고 있다.
④ 팔정도의 실현을 통해서
본서 제6권 「초전법륜경」 (S56:11)에서 세존께서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다고 천명하고 계신다. 경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초전법륜 경」 (S56:11) §§3~4)
이처럼 본서에서는 불교의 인간관인 오온과 세계관인 12처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있고, 연기관인 12연기의 이욕 소멸도 역설하고 있으며, 진리관인 사성제를 관통할 것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시며, 대표적인 수행 · 실천관이요 중도인 팔정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신다.
⑤ 37보리분법을 닦아서
교학의 토대가 되는 온 · 처 · 연 · 제의 가르침이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이듯이,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어 본서 제5권에 나타나는 수행의 가르침은 말할 필요도 없이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위에서 팔정도는 깨달음의 내용이면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이제 본서 「도 상윳따」 (S45)부터 시작해서 「성취수단 상윳따」 (S51) 까지의 일곱 가지 주제와 「들숨날숨 상윳따」 (S54)로 정리되고 있는 37보리분법의 구성요소들을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자.
팔정도
「도 상윳따」 (S45)의 도처에서 팔정도는 "불사(不死)에 이르는 길" (S45:7)이요, "무명을 찌르고 명지를 일으키고 열반을 실현하는" 도요(S45:9),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S45:33)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팔정도를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열반으로 가게 되고 열반을 목적지로 하게 되고 열반을 귀결점으로 삼게 되고"(S45:10),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S45:34)는 등으로 강조하고 계신다.
칠각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 (S46)에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으면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고"(S46:17), "염오, 탐욕의 빛바램,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하고"(S46:20), "깨달음으로 인도한다."(S46:5, 21)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갈애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도와 도닦음"(S47:26)이요,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와 도닦음(S46:27)"이라는 등으로 칠각지의 중요성은 본 상윳따의 도처에서 설해지고 있다.
오근 · 오력
다섯 가지 기능을 닦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경지를 「기능 상윳따」(S48)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기능의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 뒤 취착 없이 해탈할 때,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고 한다."(S48:4~5)
"다섯 가지 기능을 완전하게 하고 완성하기 때문에 아라한이 된다. 이보다 더 약하면 불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일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예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법을 따르는 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믿음을 따르는 자가 된다."(S48:12)
그 외 「기능 상윳따」 의 여러 경들은 오근을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념처
세존께서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자신의 고향동네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에서 다녀라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에서 다니는 자에게 마라는 내려앉을 곳을 얻지 못할 것이고 마라는 대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인가? 바로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47:6)
그리고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47:1)라고 사념처야말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의 결실이 예상되나니, 지금 · 여기(금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가 예상된다."(S54:4)라고 「들숨날숨 상윳따」 (S54)에서는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중시하고 계신다.
사여의족
네 가지 성취수단도 해탈 · 열반에 이르는 길로 「성취수단 상윳따」 (S51)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iddhi-pāda]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S51:1)
"네 가지 성취수단을 게을리 하는 사람자들은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다. 네 가지 성취수단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S51:2)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S51:4)
⑥ 심해탈 · 혜해탈 · 양면해탈을 통해서
그 외 다른 정형구들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심해탈 · 혜해탈 · 양면해탈을 들 수 있다. 먼저 심해탈과 혜해탈을 통해서 번뇌가 다한 경지 즉 깨달음을 실현하는 다음의 정형구는 본서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에서는 앞의 3에서 인용한 누진통의 정형구 대신에 심해탈과 혜해탈을 통한 이 누진통의 정형구가 육신통 중의 누진통의 정형구로 나타난다.
"나는 원하는 만큼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S16:9 등)25)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양면해탈(ubhato-bhāga-vimutti)도 언급해야 하는데, 요약하면 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āga-vimutta)는 무색계 삼매(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와 더불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뜻하고, 통찰지로 해탈한 자(paññā-vimutta)는 무색계 삼매 없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말한다. 양면해탈과 혜해탈(통찰지를 통한 해탈)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분은 『디가 니까야』 제2권 「대인연경」 (D15) §36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⑦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의 완성을 통해서
먼저 경들을 인용한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계의 무더기[戒蘊]가 있다면 … 삼매의 무더기[定蘊]가 있다면 … 통찰지의 무더기[慧蘊]가 있다면 … 해탈의 무더기[解脫蘊]가 있다면 … 해탈지견의 무더기[解脫知見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나보다도 더 계를….. 해탈지견을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S6:2)26)
"그는 무학의 계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다섯 가지 특징을 갖춘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습니다."(S3:24)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구족한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독존(獨尊)이요, 삶을 완성한 최고의 인간이라 불린다."(A10:12 등)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戒)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삼매[定]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통찰지[慧]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이제 성스러운 계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앙굿따라 니까야』 「깨달음 경」 (A4:1))
위의 여러 경우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깨달음 혹은 해탈 · 열반은 오온과 12처 등의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을 통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소멸-해탈-구경해탈지로 완성되기도 하고, 12연기의 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성취되며, 사성제의 관통으로 실현되기도 하고, 팔정도를 포함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이루어지기도 하며, 혜해탈과 양면해탈을 통해서도 성취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의 실현은 『디가 니까야』 제1권에서는 계 · 정 · 혜의 실천을 통한 누진통의 성취(즉 사성제의 체득)로 귀결되고, 이것은 위에서 인용한 경들에서 보듯이 다시 계 · 정 · 혜를 통한 해탈 · 해탈지견의 완성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최종적으로 이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들[五法蘊]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염오-이욕-소멸, 계-정-혜-해탈(혜해탈과 양면해탈 포함)-해탈지견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해탈 · 열반의 실현이나 깨달음의 체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12. 『상윳따 니까야』의 번역 원칙 몇 가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본 『상윳따 니까야』 전6권을 번역하면서 고수한 원칙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밝히고자 하는 점은 반복되는 구문과 정형구들은 생략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전통적인 방법의기 때문이다.
니까야를 위시한 빠알리 삼장은 전부 독송으로 구전된 것이다. 그것이 서력기원전 1세기 경에 스리랑카의 알루 위하라(Alu Vihāra)에서 문자로 정착이 되었다. 독송으로 구전한 것을 전통적으로는 합송(sangiti)이라 한다.
여기서 합송(saṅgīti)은 saṁ(함께)+√gai(to sing)에서 파생된 명사로 '함께 노래한 것, 함께 외운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통 일차결집이니 이차결집이니 하면서 결집(結集)이라고 옮긴 단어가 바로 saṅgīti이.다. 이러한 결집은 문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들어서 알고 있던 것을 함께 노래해서 가사와 운율을 확정한 다음 서로 공유한 일종의 합창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역자가 합송을 노래니 합창대회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래는 일단 한 번 가사와 운율이 정해져서 대중화가 되고 나면, 누군가가 틀리게 부를 때 바로 그것이 잘못된 노래라는 것을 즉시에 알게 된다. 역자는 지금도 학창시절에 즐겨 부르던 어니언스의 "편지"를 누가 부르면, 틀렸는지 옳게 불렀는지 가사와 음정과 박자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합송대회에서 내용과 음정과 박자가 정해져서 합송된 경들은 독송하는 집단이 면면부절로 이어지는 한 정확하게 전승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베다들은 바라문 학도들에 의해서 합송 되어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노래하여 결집된 경들은 그 도입부분들과 전개부분들이 같을 수밖에 없고,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교학과 수행에 관한 가르침은 같은 정형구로 정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분이나 정형구들을 모두 다 외게 되면 그 분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미 일차결집 때부터 혹은 결집을 마친 뒤에 각 문파별로 경을 독송할 때부터, 반복되는 부분을 생략하는 원칙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서력기원전 1세기 때 스리랑카의 알루 위하라에서 삼장이 문자로 정착이 되면서는 이러한 부분을 생략하는 원칙들이 분명히 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존하는 모든 필사본들은 거의 같은 형태로 생략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그 원칙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경전 도입부의 문단을 생략하였다.
먼저 생략되지 않은 경전 두 개의 서문부분을 예를 들어보자. 본서 제5권 「무명 경」 (S45:1)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 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명이 선구자가 되어 …"
그리고 본서 제1권 「젊은이 경」 (S3:1)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 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그러나 본 『상윳따 니까야』 전6권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은 이 가운데 §1과 §2는 생략되었고 §3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2904개나 되는 많은 경들을 담고 있는 본서에 나타나는 경들은 대부분의 문단번호가 §1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3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1과 §2에 해당되는 부분이 모든 경들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빠알리 원본에도 생략되어 나타나고, 역자도 이를 생략하고 옮겼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역자가 임의로 생략한 것이 결코 아니다. Ee, Be, Se에서 모두 생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다 살려 독송하거나 편집하거나 번역한다면 기력도 소진되고, 전체 뜻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고, 많은 종이가 낭비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모든 판본은 이렇게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고, 영역본을 비롯한 모든 번역서에서도 생략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먼저 출간한 『디가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모두 전통적인 이러한 편집 방법에 따라서 이 부분을 생략하고 옮겼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들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는 부분인 문단번호가 §3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단번호는 전통적인 판본들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Ee 즉 PTS본에만 나타나고 있다.
생략하여 편집하는 방법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는 거의 예외 없이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형구가 나타나지 않는 경들은 모두 사왓티,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경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상윳따의 첫 번째 경에서는 모두 살려서 옮겼고, 새로운 품(vagga)의 첫 번째 경에서는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서>"로 표기하였다. 물론 설한 분이 세존이 아니고 설한 곳이 사왓티, 제따 숲의 급고독원이 아닌 경우에는 각 경에서 반드시 이를 밝히고 있다.
둘째, 청법자들이 세존을 뵙고 인사드리고 하는 형식의 정형구나, 세존께서 경을 설하시기 전에 행하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관계된 정형구 즉 위 보기의 §2에 해당하는 문단도 대부분 생략하여 편집하였다.
(2) 반복되는 정형구들도 생략하였다
니까야를 위시한 빠알리 삼장은 전부 독송으로 구전된 것이다. 이렇게 구전되면서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교학과 수행에 관한 가르침들은 모두 같은 정형구로 정착이 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분이나 정형구들을 모두 다 외게 되면 그 분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에는 간단한 교학적 주제를 담은 짧은 경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경들의 개수도 아주 많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많은 경들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정형구들을 생략하지 않고 모두 살려서 편집한다면 이러한 정형구들 때문에 정작 경의 내용을 전달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모든 판본들뿐만 아니라 PTS에서 알파벳으로 편집 출간한 Ee까지도 이처럼 축약하여 편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경을 번역하면서 이러한 정형구를 모두 복원해서 번역할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Ee, Be, Se와 태국본과 여러 나라에 남아있는 필사본들 등 전통적인 모든 판본에서 예외 없이 생략해서 편집한 이런 입장과 이런 태도를 존중하는 것이 후학의 태도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판본에서 생략한 정형구는 대부분 생략하여 옮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생략된 정형구는 전통적으로 뻬얄라(peyyala)라는 전문술어로 표현하는데 줄어서'pe'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초기불전 즉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전의 편집 방법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뻬얄라를 모두 '…'라는 생략부호로 표기하고 있다.
(3) 경의 제목을 먼저 밝혔다
전통적으로 빠알리 문헌에서는 품의 명칭과 경의 이름은 그 품이나 그 경의 맨 마지막에 "X 품이 끝났다."라거나 "Y 경이 끝났다."는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Ee의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 는 전부 이렇게 편집되어 있다. 이것은 어떤 글의 제목을 맨 처음에 드러내는 현대식 방법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현대식 방법에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초기불전연구원의 모든 번역서는 현대식 방법에 따라 품이나 경의 이름을 모두 먼저 밝히고 이를 번역해 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Be와 Se도 모두 이런 방법을 채용하여 경의 이름을 먼저 밝힌 뒤에 경전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Ee, Be, Se에 의하면 하나의 품이 끝나면 반드시 권말 목록(uddāna)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그 품에 포함된 경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역자는 각 경의 맨 처음에 경의 이름을 넣었다.
그리고 같은 경을 두고도 Ee와 Be와 Se의 경의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도 Be와 Se의 경의 제목은 대부분 일치한다. 이처럼 같은 경을 두고 Be와 Se의 경의 제목은 같고 Ee가 다를 경우에는 Be와 Se를 따랐으며 셋이 다 다를 경우에는 보디 스님의 제안을 따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는 역자의 판단에 따라서 Ee와 Be와 Se를 참조하여 정하였다.
(4) 경의 제목에는 '경'이라는 표기를 넣었다
그리고 권말 목록(uddāna)은 모두 게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경(sutta)'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PTS의 영역본을 위시한 대부분의 서양 번역에는 제목에 대부분 경(sutta)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디 스님도 그의 영역본에서 경의 제목에 경(sutta)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고 있다.
그러나 권말 목록은 게송의 형식으로 경의 이름만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경(sutta)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았을 뿐 이러한 가르침은 엄연히 경전이다. 주석서들에도 별다른 예외가 없는 한 경(sutta)이라는 단어를 명기하고 있으며 DPPN에도 반드시 경으로 표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Be와 Se에는 모두 한 경이 시작되는 처음에 'Susima-sutta' 등으로 경의 제목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경의 이름을 그냥 '수시마' 혹은 '수시마(S12:70)' 등으로 표기 하지 않고 모두 「수시마 경」 (S12:70) 등으로 '경'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표기하고 있음을 밝힌다. 부처님 말씀으로 공인되었다는 의미의 경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 된 도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경은 부처님 말씀이요 부처님 말씀은 단순한 성인의 전기나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말씀으로 공인된 경은 도를 추구하고 해탈 · 열반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인류의 영원한 지남이 되는 금구성언이기 때문이다.
(5) 경 번호를 표기하였다
각 경의 제목 뒤에는 ( )속에 경의 번호를 표기하였다. 역자가 경의 번호를 매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상윳따 니까야』 의 모든 경들은 S로 시작한다. S는 Saṁyutta Nikāya(상윳따 니까야)를 뜻한다. S에 바로 붙어서 나타나는 숫자는 56개 상윳따를 뜻한다. 그러므로 S1은 첫 번째 상윳따인 「천신 상윳따」를 뜻하고, S35는 「육처 상윳따」를 뜻하고, S56은 맨 마지막 상윳따인 「진리 상윳따」 를 뜻한다. 그리고 그 뒤의 콜론(:) 다음에 나타나는 숫자는 그 상윳따에 나타나는 특정 경의 경번호이다. 그러므로 S12:15는 열두 번째 주제인 「인연 상윳따」 (S12)의 15번째 경이라는 뜻이다.
(6) 문단번호를 표기하였다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각각의 경에 나타나고 있는 문단번호는 Ee에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Be와 Se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단번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문단번호가 있는 것이 경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특히 특정 경을 인용하는데 아주 편리하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모든 경전의 번역에 문단번호를 매기고 있다.
앞서 발간한 『디가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의 문단번호는 모두 Ee를 따랐다. 그러나 본 『상윳따 니까야』 의 번역에서는 Ee를 참조하였지만 Ee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하나의 경에 나타나는 Ee의 문단번호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산란하기도 하고, 문단번호를 매기는 정확한 기준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장을 잘못 끊어서 전혀 엉뚱한 문단번호를 매긴 곳도 몇 군데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런 곳은 해당 주해에서 모두 밝히고 있음)
그래서 본서에 나타나는 문단번호는 Ee를 참조하여 역자가 전적으로 새로 매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지 문단번호를 매길 필요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본 번역의 저본이 되는 Ee와의 비교를 돕기 위해서 [ ]안에 Ee의 페이지 번호를 모두 표기하고 있다.
13. 번역에 임한 태도
이미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역출한 다른 책들의 서문 등에서 밝혔지만 초기불전연구원은 경을 옮김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중시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서문과 『앙굿따라 니까야』 서문에서 밝힌 것을 다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석서를 중시하였다.
경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전(正典)이다. 경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언어학적 소양만으로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경은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그분들의 안목을 빌지 않고서는 결코 심도 깊게 이해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경에 나타나는 특정한 술어와 특정한 구문과 특정한 배경과 특정한 문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고민한 것이 바로 주석서 문헌(Aṭṭhakathā)이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삼장(Tipiṭaka)에 대한 가장 오래된 권위이다.
둘째, 『청정도론」 을 중시하였다."
이미 『청정도론』 해제에서 밝혔듯이 『청정도론』 은 그 성격상 4부 니까야 전체에 대한 주석서이다. 그러므로 4부 니까야 전체에 나타나는 중요한 술어와 개념은 거의 대부분 『청정도론』에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술어들은 『청정도론』 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에 각 니까야의 주석서들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다."라고만 할 뿐이다. 그런 만큼 『청정도론』 없는 주석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청정도론』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초기불전의 체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초기불전의 번역을 평생의 원력으로 삼고 살아가는 역자가 번역을 하면 할수록, 초기불전을 깊이 음미하면 할수록 절감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인 견해의 뒷받침이 없는 자기식의 경전이해야말로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역자는 통감하고 있다.
혹자는 주석서나 『청정도론』을 단순히 붓다고사(Buddhagosa)라는 뛰어난 주석가의 견해 정도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청정도론』 서문에서 정리하였듯이 주석서나 『청정도론』은 결코 붓다고사라는 한 개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부처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된 상좌부에서 전승되어 온 정통견해를 총정리한 것이다. 붓다고사 스님은 각 주석서의 서시와 후기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셋째, 『아비담마 길라잡이』 를 중시하였다.
『청정도론』은 다시 『아비담맛타 상가하』 (『아비담마 길라잡이』)가 없이는 그 핵심이 되는 술어와 가르침을 파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먼저 『아비담마 길라잡이』 를 상 · 하로 출간하였고 이를 토대로 『청정도론』을 세 권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읽고 호평을 해 주셨듯이 『아비담마 길라잡이』는 교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한국 땅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정확한 길라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므로 본서에 나타나는 교학적인 이해는 모두 『청정도론』 과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토대로 하였으며, 본서의 주해에서 나름대로 상세하게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거나 출처를 밝혀서 이를 참고하도록 하였다.
넷째, 술어를 한글화하였다
이미 『청정도론』 해제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서문 및 『디가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역자서문 등에서도 밝혔듯이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모든 술어들을 가급적이면 한글로 풀어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은 본 『상윳따 니까야』 의 번역에서도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하다보면 한문 용어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스럽고 짜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문 불교 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많은 곳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 무더기[蘊], 기능[根] 등으로 한문을 병기했다. 그리고 무리하게 한글식 표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한국불교와 절집에서 통용되는 한자말들은 그대로 사용하려 노력하였다.
중요한 술어를 한글화한 원칙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해제 §16 '『청정도론』 에 나타나는 주요단어들의 한글번역에 대하여'를 참조하고 번역에 대한 일반원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디가 니까야』 역자 서문 §6 '번역에 임하는 몇 가지 태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14. 맺는 말
역자가 꼭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본서 번역에 있어서 보디스님이 10여 년간 노력하여 번역 출간한 『상윳따 니까야』 영역본인 The Connected Discourses of Buddha(Vol. 1&2)를 많이 참조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보디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달아 놓은 주옥같은 주해들은 역자의 번역과 주해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역자는 인도에서 유학하면서 스리랑카로 가서 두 번 스님을 친견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상하게 질문에 대답해 주시고 공부와 번역을 격려해 주시던 스님의 모습이 훤하다.
이 『상윳따 니까야』 영역 이외에 보디 스님의 역작을 꼽으라면 A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인 『아비담맛타 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영어로 옮긴 책이다. 이 책은 세계 아비담마 학계의 거장인 미얀마의 우 실라난다 스님(U. Sīlanada Saya-daw)과 우 레와따 담마 스님(U Revatadhamma Sayadaw)의 도움으로 보디 스님이 책임 교열과 편집을 담당한 것이다.
물론 이 이전에도 이미 『아비담맛타 상가하』 는 PTS에서 1910년에 미얀마 학자 쉐 잔 아웅(Shwe Zan Aung)이 자세한 주를 달아서 번역 · 출판한 것이 있고, 1956년에는 당시 유명한 학승이었던 나라다 스님(Narada Mahāthera)이 A Manual of Abhidhamma로 영역하여 BPS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CMA가 1993년에 BPS에서 출간되자말자 CMA는 세계 아비담마 학계의 기본서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림스님과 역자가 공동으로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제일 먼저 출간한 『아비담마 길라잡이』도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옮긴 것인데 바로 이 CMA와 『청정도론』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번역 · 출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자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이어서 이번 『상윳따 니까야』 번역에서도 보디 스님의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다. 지면을 빌어서 보디 스님께 절을 올리면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니까야 번역만으로 보자면 본서는 2006년에 전체 세 권으로 번역 · 출간한 『디가 니까야』에 이은 역자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기쁘고 환희심이 크다. 그러나 환희심이 큰 만큼 걱정도 훨씬 더 많아졌다. 잘못 번역한 곳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디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영역본이 큰 위안과 안심이 되었다.
이번 번역에서 가장 까다롭고 힘든 작업은 제1권이었다. 쏟아지는 게송을 운치있게 옮겨낸다는 것은 역자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자는 문학적인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서 오직 게송을 잘못 이해하여 오역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역자는 가급적이면 주석서의 전통적 이해를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본서 제1권 번역은 역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초기불전연구원> 원장이신 대림 스님이 다시 한 번 주석서와 대조해가면서 교열과 감수를 하여 여러 부분을 수정하고 다듬었기 때문에 오역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감소되었고 역자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지면을 빌어서 대림 스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역자는 대림스님이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세 권으로 출간한 『청정도론』 의 발간사에서 빠알리 삼장을 제대로 역출해내기 위해서는 언어학적 소양, 경에 대한 안목, 수행의 뒷받침이라는 세 가지 기본장비들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경전 번역을 계속하면서 '나에게는 과연 이러한 기본 장비들이 충실히 갖추어져 있는가?'를 줄곧 되물어보았다. 빠알리어를 익히면서 삼장을 공부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과연 역자는 삼장에 대한 이해와 빠알리어에 대한 이해가 다듬어지고 깊어지고 정교해지고 정치하게 되었는가? 오히려 지엽적인 지식만 는 게 아닌지 참으로 두렵다.
이제 『상윳따 니까야』 한글 번역본을 전6권으로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나름대로 몇 번을 윤문도 하고 수정도 하고 중요한 문장과 술어등에 대해서는 대림 스님과 일운 스님과 덕일 스님과 혜진 스님과 토론도하고 하면서 애를 썼지만, 역자가 오역을 하고 탈역을 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두렵다. 교정의 최종 점검을 해 주신 <초기불전연구원> 원장 대림 스님과 힘든 교정 작업을 법에 대한 환희심으로 극복하면서 꼼꼼하게 교정을 봐주신 일운 스님, 일창 스님, 덕일 스님, 혜진 스님, 그리고 『디가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에 이어 본서까지 크나큰 신심으로 교정을 해 주신 김성경 거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역자가 우치한 이유 때문이다. 읽는 도중 잘못된 부분을 발견한 독자제위께서는 반드시 지적해 주시어 다른 니까야의 출간에는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면서 역자 서문을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금생에 해탈 · 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Ciraṁ tiț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상윳따 니까야 제1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상윳따 니까야』제1권은 이렇게 모아진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1권의 제목은 사가타 왁가(Sagātha-vagga)인데, ‘게송과 함께한 품’으로 직역할 수 있다.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을 모아서 이를 다시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존재를 중심으로 천신, 신의 아들, 꼬살라 왕 등의 11개의 주제(Saṁyutta)로 분류하여 제1권에는 모두 11개의 상윳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제1권의 분류기준은 게송이며 Ee2에 의하면 본서에는 모두 945개의 게송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30여개 정도의 게송은 본서에 나타나는 다른 게송들과 완전히 같거나 일부분이 같은 게송들이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2. 제1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1권에는 모두 11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숲 상윳따」(S9)를 제외한 10개의 상윳따는 인물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네 개의 상윳따는 꼬살라 왕(S3)과 비구니(S5)와 바라문(S7)과 왕기사 존자(S8)라는 인간에 관계된 주제를 모은 것이고, 여섯 개의 상윳따는 천신(S1), 신의 아들(S2), 마라(S4), 범천(S6), 약카(S10), 삭까(인드라, S11)와 같은 비인간들을 중심으로 한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숲 상윳따」(S9)에 포함된 14개의 경들도 모두 숲 혹은 밀림에 사는 천신들이 읊은 것이기 때문에 본서에 포함된 11개의 상윳따는 모두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존재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제1권은 모두 11개의 상윳따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한 상윳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 포함된 경들의 내용에는 불교의 주요한 교학체계가 거의 대부분 포함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먼저 본서에 포함된 11개의 상윳따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주제「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S1)에는 8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8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천신들이 게송으로 세존과 문답을 나눈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나타나고 대부분이 게송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서 가장 많은 254개의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제2주제「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 포함되어 있는 30개의 경들은 신의 아들(deva-putta)로 직역되는, 상대적으로 젊은 천신들이 세존께 와서 게송으로 문답을 나누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들이다. 본 상윳따에는 천신 상윳따보다 상대적으로 산문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제3주제「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S3)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나는데, 모두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문답을 담고 있는 경들이다. 산문이 주를 이루는 경들이지만 이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을 담은 책(Sagātha-vagga)에 포함된 것이다.
제4주제「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S4)는 마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역시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수행자들을 방해하는 마라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는 경들이다.
제5주제「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S5)에는 10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경들은 모두 각각 경에 나타나는 비구니 스님들과 마라 사이에 얽힌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는 앞의 마라 상윳따에 포함시켜도 된다.
제6주제「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S6)에는 15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모두 사함빠띠 범천이나 바까 범천이나 사낭꾸마라 범천 등의 유력한 범천과 관련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제7주제「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S7)에는 모두 22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부처님 당시의 바라문들로서 부처님과의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에 나타나는 바라문들은 모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며 두 번째 품에 나타나는 10명의 바라문들은 모두 재가 신도가 되었다.
제8주제「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S8)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왕기사 장로는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 영감과 시작(詩作) 능력이 뛰어난 분이었다. 그가 지은 멋진 게송들이 본 상윳따의 12개 경들에 담겨있다.
제9주제「숲 상윳따」(Vana-saṁyutta, S9)에는 모두 14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담겨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다.
제10주제「약카 상윳따」(Yakkha-saṁyutta, S10)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각 경들은 각각 다른 약카와 부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와 일화를 담고 있다.
제11주제「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S11)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에 담겨있다. 이 경들은 모두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삭까(인드라)와 관련된 일화를 담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크게 교학과 수행으로 나누어 본다면 제2/3/4권에서는 교학에 관한 경들 그 중에서도 연기, 오온, 육처를 중심으로 하고 요소[界]나 기타 다른 가르침을 포함하여 편집하였으며, 마지막 권에서는 수행체계인 37보리분법(조도품)을 설한 뒤에 최종으로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배당하여 편집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개관해보았듯이 인천(人天)에 관계된 존재들 특히 천신(S1), 신의 아들(S2), 마라(S4), 범천(S6), 약카(S10), 삭까(인드라, S11)와 같은 비인간을 중심한 경들을 제1권에 배대하고 있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천신 상윳따」(S1)
첫 번째 상윳따인「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S1)에는 모두 8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천신들이 세존과 게송으로 문답을 나눈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들은 모두 8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마지막인 제8장「자름 품」(Chetvā-vagga)에만 1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 품들은 모두 10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덟 개의 품은, 제1장「갈대 품」, 제2장「난다나 품」, 제3장「칼 품」, 제4장「사뚤라빠 무리 품」, 제5장「불 품」, 제6장「늙음 품」, 제7장「짓누름 품」, 제8장「자름 품」이다.
여기서 ‘천신’은 devatā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신(神) 혹은 천신(天神)을 뜻하는 deva에다 추상명사형 어미 ‘-tā’를 붙여서 만들어진 것인데, 모든 신들을 지칭하는 여성형 명사이다. 단지 여성형 추상명사를 붙였기 때문에 단어가 여성형이 된 것이지 여자 천신을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이나 ‘천신’을 뜻하는 deva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남성 신임을 분명히 할 때는 본서 제2주제「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서처럼 deva-putta(신의 아들)로 표현하고, 여성 신임을 드러낼 때는 deva- dhuhitā(신의 딸)라 칭한다.
한편『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신들은 세 종류가 있다. 인습적인 신들(sammuti-devā), 태생적인 신들(upapatti-devā), 청정한 신들(visuddhi -devā)이다. 인습적인 신들이란 왕들과 왕비들과 왕자들을 말한다. 태생적인 신들이란 사대왕천의 신들을 포함하여 그보다 높은 신들이다. 청정한 신들이란 번뇌 다한 아라한들이다.”(MA.i.33)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태생적인 신들을 일반적으로 신들이라 한다. 즉 6가지 욕계 천상과 16가지 색계 천상과 4가지 무색계 천상에 거주하는 신들을 일반적으로 신이라 부른다. 예외적으로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도 천신(devatā)이라 불리고 있으며(본서「한거 경」(S9:1) §2 등) 향기로운 나무의 뿌리 등에 거주하는 신들도 천신(deva)이라 불리고 있다.(본서「간단한 설명 경」(S31:1) §3 등)
본서에서 deva와 devatā는 ‘천신(天神)’으로 통일해서 옮기고 있다. 본 상윳따의 이름은「천신(devatā) 상윳따」(S1)이고 다음의 두 번째 상윳따는「신의 아들(devaputta) 상윳따」(S2)이다. 천신과 신의 아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신의 아들 상윳따」(S2)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본 상윳따에는 여러 천신들이 세존께 와서 아주 다양한 주제로 문답을 나눈다. 그 다양한 주제가 대부분 각각의 경들의 제목으로 채택되었다.
「신의 아들 상윳따」(S2)에 포함된 30개의 경들에 나타나는 신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본 상윳따에는 81개의 경들 가운데「가띠까라 경」(S1:50)을 제외하고는 신들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본서「빳준나의 딸 경」1/2(S1:39∼40)는 빳준나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주제가 아니라 빳준나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딸들이 주제이다. 그러나 이 신의 딸들은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본서「제따 숲 경」(S1:48)은 급고독 장자가 죽어서 천신이 되어 와서 읊은 것이지만 경문에는 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제4장「사뚤라빠 무리 품」에 나타나는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은 집단의 이름이지 개별적인 신의 이름은 아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 나타나는 신들은 그 이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천신(devatā)이라는 일반적인 술어를 상윳따의 이름으로 삼은 본 상윳따에 나타나고, 신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경우는 모두 두 번째인「신의 아들 상윳따」(S2)에 포함하여 결집하였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은 천신들과 세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몇몇 곳에서는 세존의 게송은 나타나지 않고 천신의 게송만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빳준나의 딸 경」1/2(S1:39∼40),「불 경」(S1: 41),「하나의 뿌리 경」(S1:44),「휘지 않음 경」(S1:45),「제따 숲 경」(S1:48)이다. 세존의 설법형태로 나타나는「난다나 경」(S1:11)과「회합 경」(S1:37)에도 세존의 게송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8개 경을 제외한 나머지 73개의 경은 모두 천신들과 세존이 서로 게송으로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문답의 내용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엉킴 경」(S1:23)이다. 본경에는 “안의 엉킴이 있고, 밖의 엉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라는 천신의 게송과, 여기에 대한 세존의 답송인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는 이 두 게송은『청정도론』을 여는 게송으로『청정도론』(Vis.i.1)에 나타나는 유명한 게송이다.
『청정도론』의 방대한 내용은 계․정․혜 삼학을 표방하고 있는 본 게송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청정도론』에 나타나는 본 게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인용한다.
“① 계와 ②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표현된 삼매[定]와 ③~⑤ 세 가지의 통찰지[慧]와 ⑥ 근면함이라는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마치 사람이 땅 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 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계의 땅 위에 굳게 서서 삼매의 돌 위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정진의 힘으로 노력한 깨어 있는 통찰지의 손으로 잡아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갈애의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버릴 것이다. 그는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청정도론』i.7)
둘째, 행복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나타난다.
「휩쓸려감 경」(S1:3 §2)과「사라져버림 경」(S1:4 §2)에서 천신은 “죽음에 엄존하는 이러한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행복을 가져올 공덕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난다나 경」(S1:11 §4)에서는 “난다나 정원을 보지 못한 자들은 행복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자 다른 천신이 §5에서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라는 세존의 게송을 들려준다.
「좋음 경」(S1:33 §4)에도 행복은 나타나며, 특히「믿음 경」(S1:36 §4)에는 “방일하지 않는 자는 참선을 하여 궁극적인 행복을 얻기 때문이로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당연히 여기서 ‘궁극적 행복(parama sukha)’이란 아라한과의 행복(arahatta-sukha)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SA.i.67)
「불 경」(S1:41 §2)에는 “보시한 것은 행복한 결실을 가져온다.”고 나타나고,「자름 경」(S1:71 §3)에는 “분노를 끊은 뒤 행복하게 잠들고 분노를 자른 뒤 슬퍼하지 않노라.”라고 나타나며,「재화 경」(S1:73 §3)에는 “믿음이 여기서 인간의 으뜸가는 재화이며 법을 잘 닦아야 행복을 가져오느니라. 진리가 참으로 가장 뛰어난 맛이며 통찰지를 [구족하고] 살아야 으뜸가는 삶이라 부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셋째, 열반과 저 언덕과 불사(不死)에 대한 논의가 풍부하게 나타난다.
「벗어남 경」(S1:2)에서는 “중생의 해탈(nimokkha)과 벗어남(pamok- kha)과 떨쳐버림(viveka)”에 대해서 문답을 나누는데, 이 셋을 주석서는 열반의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나는 존재[有]에 대한 즐김을 멸절해버렸고 인식과 알음알이를 부수었고 느낌들을 소멸하고 가라앉혔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이 셋을 안다고 대답하신다.「휩쓸려감 경」(S1:3)에는 “평화를 찾는 자”라는 표현으로 열반을 실현하려는 자를 표현하고 있다.
「자만에 빠진 자 경」(S1:9)에서는 “자만을 제거하고 삼매에 잘 든 자는 고결한 마음을 가졌고 모든 곳에서 해탈하였도다. 그는 홀로 숲속에 거주하면서 방일하지 않아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라고 나타난다.
「좋음 경」(S1:33)에서는 “보시보다 법의 구절[法句]이 더 뛰어나도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참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통찰지 갖춰 오직 열반을 증득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있는 것이 아님 경」(S1:34)에서 사뚤라빠 무리에 속하는 천신이 “인간에게 욕망이란 항상한 것 아니거늘 원하는 것에 묶여 그들 방일하구나. 그 사람들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 돌아오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도다.”라고 읊는다. 그리고「무엇을 베풂 경」(S1:42)에서 세존께서는 “법을 가르치는 자는 불사(不死)를 베푸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돌조각 경」(S1:38)에서는 바라문들이 베다를 배우고 고행을 하더라도 갈애에 계박되고 서계와 계율에 묶여 있다면 저 언덕으로 가지 못한다고 강조하신 뒤에, “자만을 제거하고 바르게 잘 삼매에 드는 자는 고결한 마음으로 모든 곳에서 해탈하였도다. 그는 홀로 숲에 거주하면서 방일하지 않아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라고 읊으신다.
「요정 경」(S1:46)에서 세존께서는 “양심있어 그것(마차)의 버팀목이고 마음챙김 그것의 장비가 되며 바른 견해가 앞서 가는 법이 되나니 그런 법을 일러 나는 마부라 하네. 이 마차에 탄 사람은 여자․남자할 것 없이 이 마차에 올라타고 열반으로 가느니라.”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한 짝 경」(S1:59)에서는 “믿음이 사람의 친구이고 통찰지가 그를 가르치도다. 열반을 기뻐할 때 사람은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노라.”라고 읊으시며,「묶음 경」(S1:64)에서는 “즐김이 세상을 묶으며 일으킨 생각이 그것의 걸음걸이니라. 갈애를 버려야 열반이라 불리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넷째, 통찰지에 대한 논의도 많이 나타난다.
위에서 자세히 살펴봤듯이「통찰지는 엉킴 경」(S1:23)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 외에도 S1:13 §3; S1:23 §3; S1:31 §3; S1:33 §9; S1:45 §2; S1:48 §2; S1:51∼52 §3; S1:59 §3; S1:73 §3; S1:75 §3; S1:80 §3 등 여러 곳에서 통찰지는 강조되고 있다.
다섯째, 공덕과 보시가 찬양되어 나타난다.
S1:3 §2; S1:4 §2; S1:32 §2, §8; S1:33 §§2∼9; S1:41 §2; S1:43 §3; S1:47 §2; S1:51∼53 §3등에서 공덕과 보시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인색 경」(S1:32)에서 세존께서는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이라는] 법을 실천하는 참된 사람이 베푸는 보시를 칭송하시면서, “어떤 자들은 바르지 못하게 살면서 보시를 하나니 자르고 죽이고 고통을 준 것으로 [보시하도다.] 그 보시는 눈물과 폭력으로 얼룩진 것이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 베푼 것에 비하면 가치가 없도다. 천의 보시물로 보시하는 이런 자의 백 천 배의 보시도 참된 자의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도다.”라고 길게 읊고 계신다. 그리고「좋음 경」(S1:33)에서도 세존께서는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과 보시에 대해서 자세히 문답을 주고받으신다.
「늙음 경」등(S1:51∼52)에서는 “공덕은 도둑들이 훔쳐가지 못한다.”고 하시고,「친구 경」(S1:53)에서는 “자신이 지은 공덕이 미래의 친구”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여섯째, 이 외에도 S1:9 §§2∼3; S1:37 §4; S1:38 §§9∼10에서는 삼매가 논의 되고 있으며, S1:9 §2; S1:25 §§4∼5; S1:38 §10 등에서는 자만이 거론되고 있고, S1:23 §3; S1:34∼36; S1:50 §2, §8; S1:71 §3; S1:77 §3 등에서는 성냄과 분노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S1:23 §3; S1:28 §3; S1:44 §2; S1:74 §4에서는 무명과 어리석음이 나타나는데,「비[雨] 경」(S1:74)에서는 “명지가 솟아오르는 것 가운데 으뜸이고 무명이 떨어지는 것 가운데 최상이로다. 승가가 걸어 다니는 것 가운데 으뜸이고 깨달은 분(붓다)이 말하는 자 가운데 최상이로다.”라고 읊고 계신다.
S1:11 §3; S1:20 §§4∼5; S1:21 §2; S1:23 §3; S1:28 §2; S1:29∼30 §§2∼3; S1:34 §2; S1:36 §2; S1:40 §2; S1:45 §2; S1:50 §2; S1:76 §3 등에는 감각적 욕망이나 탐욕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늙지 않음 경」(S1:76)에서는 “애욕이 잘못 된 길이라 불리며 탐욕이 [유익한] 법들의 방해물이네. … 여인이 청정범행의 더러움이니 남성들은 여기에 걸려 있도다.”라고 읊고 계신다.
한편 본 상윳따의 제4장은「사뚤라빠 무리 품」인데, 본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회합 경」(S1:37) 등의 넷을 제외한 여섯 개의 경들은 이들과 세존의 문답을 담고 있다.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Satullapakāyikā devatā)은 문자 그대로 ‘선한 사람들(sata)을 칭송하는(ullapa) 무리(kāyika)의 천신들’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선한 사람들의 법을 받들어 행함(samādāna, 복주서는 귀의하고 오계를 지키는 등의 실천이라고 설명하고 있음)을 통해서 그분들의 법을 칭송한 뒤 천신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SA.i.54)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에 얽힌 이야기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때 700명의 해양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배로 바다를 건너다가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났다. 배가 전복되자 상인들은 모두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광적으로 기도를 올렸지만 한 상인은 요가수행자(yogi)처럼 가부좌를 한 채 태연히 앉아있었다. 감명을 받은 상인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삼귀의와 오계를 지키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들도 모두 그 상인을 스승으로 하여 삼귀의와 오계를 받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삼귀의와 오계를 준 상인을 우두머리로 하여 하나의 무리가 되어서 즉시에 삼십삼천에 재생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우두머리를 칭송하기 위해서 세존께 다가와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SA.i.54∼55)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천상의 신들이 와서 행복과 해탈과 불사(不死)와 통찰지와 공덕과 보시 등과 같은 고결한 주제를 가지고 세존과 함께 게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귀중한 가르침들이 포함되어 있다.
4.「신의 아들 상윳따」(S2)
두 번째 주제인「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는 모두 30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 제2장「급고독 품」, 제3장「여러 외도 품」의 세 품에 각각 열 개씩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신의 아들’은 deva-putta를 직역한 것이다. 그러나 신들은 천상에 화현하여 태어나기 때문에 신의 아들이란 표현은 조금 어색하기는 하다. 그래서 보디 스님은 ‘young deva(젊은 신)’라고 옮기고 있다. 역자는 deva-putta를 ‘신의 아들’로 직역하였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deva-putta를 설명하고 있다.
“‘신의 아들(deva-putta)’이라 했다. 신들의 무릎에 태어난 사람들을 신의 아들들이라 한다. 여성은 신의 딸들(deva-dhītaro)이라 부른다.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면 ‘어떤 천신(aññatarā devat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름이 분명하면 ‘아무개 이름을 가진 신의 아들’이라 부른다. 그래서 앞(S1)에서는 어떤 천신이라고 했고 여기서는 신의 아들이라 부른다.” (SA.i.103)
그러나 복주서는 이것도 일반적으로(yebhuyya-vasena) 말한 것이지 이름을 아는 천신도 어떤 천신이라고 명명할 때도 있다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SAṬ.i.125)
아무튼 본 상윳따와 앞의「천신 상윳따」(S1)를 비교해보면 이름을 아는 천신은 신의 아들이라 부르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천신은 그냥 천신이라 부른다는 주석서의 설명은 정확하다. 왜냐하면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30개의 경들에는 분명히 신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고 앞의「천신 상윳따」에 실린 81개의 경에는 신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가띠까라 경」(S1:50)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 신이 특별히 남성 신임을 분명히 할 때는 본 상윳따에서처럼 deva-putta(신의 아들)로 표현하고, 여성 신임을 드러낼 때는 deva-dhuhitā(신의 딸)라 칭한다. 그러므로 천신과 신의 아들은 동의어이지 신의 아들이라 해서 어리거나 위력이 약한 천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deva-putta는 ‘남성 신’으로 옮길 수 있고 deva -dhīta는 ‘여성 신’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베다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신들은 남성 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남성 신’으로 의역하는 것도 어색해서 여러 가지로 궁리하다가 deva(신)- putta(아들)를 ‘신의 아들’로 직역을 한 것이다.
본 상윳따는 그 이름이 분명한 남성 신들이 세존께 와서 게송으로 문답을 나누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들로 구성되어 있고 앞의「천신 상윳따」(S1)에는 여성 신들도 포함한 일반적인 신들에 관계된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본 상윳따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보자.
첫째, 본 상윳따에는「천신 상윳따」(S1)보다 상대적으로 산문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천신 상윳따」에는 일반적으로 본서에서 생략하고 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으로 시작하는 경의 서문부분을 빼면 대부분의 경들이 게송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는 산문부분이 천신 상윳따보다는 풍부하게 나타난다.
둘째, 본 상윳따의 적지 않은 게송이 다른 경들 특히 앞의「천신 상윳따」(S1)의 게송들과 중복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와수닷따 경」(S2:16)(본경에 나타나는 두 게송은「칼 경」(S1:21) {51∼52}과 같다.「웃따라 경」(S2:19)의 두 게송은「휩쓸려감 경」(S1:3) {3∼4}와 같다.「급고독 경」(S2:20)의 네 게송은「제따 숲 경」(S1:48) {156∼159}와 같다.「시와 경」(S2:21)의 일곱 게송들은「참된 자들과 함께 경」(S1:31) {78∼84}와 같다.「세리 경」(S2:23)의 세 게송은「음식 경」(S1:43) {144∼146}과 같다.「가띠까라 경」(S2:24)의 13개 게송은 모두「가띠까라 경」(S1:50) {170∼182}와 같다.「난다 경」(S2:27)의 두 게송은「사라져버림 경」(S1:4) {5∼6}과 같다. 그리고「로히땃사 경」(S2:26)은 게송을 포함하여『앙굿따라 니까야』제2권「로히땃사 경」1(A4:45)과 같은 내용이다.
셋째, 특히 본 상윳따에는 비구들의 수행에 관해서 신들과 세존이 나누는 문답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경으로서는「까마다 경」(S2:6),「빤짤라짠다 경」(S2:7),「따야나 경」(S2:8),「짠디마사 경」(S2:11),「웬후 경」(S2:12),「깟사빠 경」2(S2:2),「디가랏티 경」(S2:13),「난다나 경」(S2:14),「짠다나 경」(S2:15),「와수닷따 경」(S2:16),「수브라흐마 경」(S2:17),「잔뚜 경」(S2:25)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그 외에 특이한 경으로는 달이 의인화된「짠디마 경」(S2:9)과 태양이 의인화된「수리야 경」(S2:10)이 있으며, 인도 신화의 유력한 두 신인 위슈누(Viṣṇu)와 시와(Śiva)에 관한 경들 즉「웬후 경」(S2:12)과「시와 경」(S2:21)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세존의 게송이나 말씀이 나타나지 않는 경으로는「깟사빠 경」2(S2:2)과「디가랏티 경」(S2:13)을 들 수 있다.
5.「꼬살라 상윳따」(S3)
세 번째 주제인「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S3)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각각「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배당되어 전승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들의 묶음이 10개 이하가 되면 하나의 독립된 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상윳따 니까야』뿐만 아니라『앙굿따라 니까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서에 포함된 S3, S4, S11에는 각각 25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1품과 제2품에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배당하고 나머지 다섯 개의 경들을 제3품에 배당하여 하나의 독립된 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본서「범천 상윳따」(S6)에도 1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같은 방법으로 두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문답을 담고 있는 경들이다. 그래서 제목을「꼬살라 상윳따」로 정한 것이다. 본품에 포함된 경들은 대부분이 산문으로 되어 있지만 경의 말미에 모두 게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본서 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포함된 것이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rājā Pasenadi Kosala)은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재가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하꼬살라(Mahākosala)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 당시 인도 최고의 상업도시요 교육도시로 알려진 딱까실라(Takkasilā)로 유학하여 릿차위의 마할리(Mahāli)와 말라의 반둘라(Bandhula) 왕자 등과 함께 공부하였으며 여러 학문과 기술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자 마하꼬살라 왕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DhpA.i.338) 본 상윳따(S3)의 여러 경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선정(善政)에 힘썼으며 뇌물과 부패를 청산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일찍부터 부처님과 교분을 맺었으며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부처님의 신도였다.
그의 아내는 말리까(Mallikā) 왕비였는데, 부처님께 크나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말리까 왕비가 기증한 정사도 있었다. 그의 여동생 꼬살라데위(Kosaladevī)는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과 결혼하였다. 한편 그의 딸 와지라(Vajirā)도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아자따삿뚜 왕과 결혼시키는 등 마가다와 정략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부처님과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하며(DPPN), 그래서 부처님과는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부처님을 존경하고 흠모하였는지는『맛지마 니까야』「법탑(法塔)경」(Dhammacetiya Sutta, M89) 등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여러 문헌(DhpA.i.339; J.i.133; iv.144 등)에 의하면 그는 부처님과 인척 관계를 맺고 싶어 하였으며 그래서 사꺄족의 딸과 결혼하고자 하였다. 자부심이 강한 사꺄 족은 마하나마(Mahānāma)와 하녀 사이에서 난 딸인 와사바캇띠야(Vāsabhakhattiyā)를 보냈으며, 이들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위두다바(Vidūdabha) 왕자이다. 위두다바 왕자가 커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하였고, 그래서 후에 위두다바는 사꺄를 정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참한 살육을 하였다고 한다.
이 위두다바는 나중에 빠세나디 왕의 총사령관이었던 디가까라야나(Dīghakārāyana)의 도움으로 모반을 일으켜 왕이 되었으며, 빠세나디 왕은 마가다로 가서 아자따삿뚜의 도움을 청하려 하였지만 그가 라자가하에 도착하자 이미 성문은 닫혀 있었다. 노후한 몸에 피로가 엄습한 그는 성밖의 객사에서 그날 밤에 죽었다고 하며 아자따삿뚜가 그의 시신을 잘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에 아자따삿뚜는 위두다바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대신들의 조언으로 그만두었다고 한다.(M.ii.118; MA.ii.753; DhpA.i. 353; J.iv.150)
빠세나디 왕에게는 브라흐마닷따(Brahamadatta)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부처님 문하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ThagA.i.460) 그의 여동생 수마나(Sumanā) 공주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물론 제따 숲을 기증한 제따(Jetā) 왕자도 그의 아들이었다.
부처님께서 후반부의 24여 년 간을 사왓티에 머무실 정도로 꼬살라와 부처님과는 인연이 많은 곳이며「꼬살라 상윳따」라는 본 상윳따가 전승되어 올 정도로 그는 불교와는 가장 인연이 많았던 왕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아내 말리까 왕비(Mallikā Devī)에 대해서는『앙굿따라 니까야』제2권「말리까 경」(A4:197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본 상윳따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경을 들라면「말리까 경」(S3:8)을 들 수 있다.
빠세나디 왕과 말리까 왕비가 궁궐의 누각으로 올라가서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말리까여,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제게는 제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런데 임금님께는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있습니까?”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는 없습니다.”
왕과 왕비의 이 대화는 인도의 가장 잘 알려진 우빠니샤드인『브르하다란냐까 우빠니샤드』(Bṛhadāraṇyaka Upaniṣad ii.4.5; iv.5.6)에 나타나는 바라문 수행자인 얏냐왈꺄(Yajñavalkya)와 그의 아내 마이뜨레이(Maitre -yī)와의 대화와 비교된다. 얏나왈꺄의 대화가 자아의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왕과 왕비의 대화는 아래 부처님의 게송에서 보듯이 자비로 연결된다. 왕이 세존께 다가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보건만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자 볼 수가 없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이 사랑스러운 법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마세.”{392}
이 잘 알려진 게송은『쿳다까 니까야』의『자설경』(Ud.47)과『청정도론』IX.10에도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기 때문에 이기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절대로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세존의 이 말씀은 진정한 자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꼬살라 왕과 관계된 경들 가운데서 또 다른 잘 알려진 경은 본 상윳따의「양동이 분량의 음식 경」(S3:13)이다. 왕은 매끼마다 양동이 분량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음식을 잔뜩 먹고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아시고 그 사실에 대해서 이 게송을 읊으셨다.
“사람이 항상 마음챙기면서
음식을 대하여 적당량을 알면
괴로운 느낌은 줄어들고
목숨 보존하며 천천히 늙어가리.” {403}
그 후 왕은 수닷사나라는 바라문 학도를 시켜 그가 식사를 할 때마다 이 게송을 읊게 하여 식사량을 줄여 많아야 한 접시정도의 밥만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S3:11)은 그 당시 왕들이 수행자들 특히 고행자들을 존경했음을 알 수 있으며「전쟁 경」1/2(S3:14∼15)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꼬살라와 마가다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경이다.
「할머니 경」(S3:22)에서는 왕이 120세에 임종을 한 할머니를 애도하자 세존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모든 중생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니
목숨이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라.
업에 따라 중생들은 제각각 갈 것이니
공덕과 사악함의 결실대로 가리라.
악업 지은 중생들은 지옥으로 갈 것이고
공덕 지은 중생들은 선처로 가리로다. {431}
그러므로 유익함[善]을 지어야 하나니
이것이 존재들의 미래의 자신이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 모든 존재에게는
공덕이 저 세상에서의 기반이로다.” {432}
「궁술 경」(S3:24)에서 왕이 “어디에 보시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한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오는지”를 여쭙자 세존께서는 [자신의] 마음이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곳에 보시하지만 계를 구족한 자에게 한 보시는 큰 결실을 가져온다고 대답하신다. 그런 뒤에 다섯 가지 장애[五蓋, nīvaraṇa]를 버렸고,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法蘊, dhammakkhanda] 즉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을 구족한 무학(아라한)에게 하는 보시가 큰 결실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신다.
6.「마라 상윳따」(S4)
네 번째 주제인「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S4)에는 마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포함되어 있다. 앞의「꼬살라 상윳따」(S3)처럼 본 상윳따도「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전승되고 있다.
마라(Māra)는 초기경의 아주 다양한 문맥에서 아주 많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빠알리 주석서는 이런 다양한 마라의 언급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① 오염원(kilesa)으로서의 마라(ItvA.197; ThagA.ii.70 등) ② 무더기(蘊, khandha)로서의 마라(S.iii.195 등) ③ 업형성력(abhi- saṅkhāra)으로서의 마라 ④ 신(devaputta)으로서의 마라 ⑤ 죽음(maccu)으로서의 마라이다.(ThagA.ii.46; Vism.VII.59 등)
『청정도론』에서는 부처님은 이러한 다섯 가지 마라를 부순 분(bhaggavā)이기에 세존(bhagavā)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VII.59) 그러므로 열반이나 출세간이 아닌 모든 경지는 마라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으로서의 마라는 자재천(Vasavatti)의 경지에 있는 다마리까 천신(Dāmarika-devaputta)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라는 욕계의 최고 천상인 타화자재천(Paranimmitavasavatti)에 거주하면서 수행자들이 욕계를 벗어나 색계나 무색계나 출세간의 경지로 향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이기 때문이다.(SnA.i.44; MA.i.28) 그리고 그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삭까)처럼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마군(魔軍, Mārasena)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유력한 신이다. 그러나 수행자들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려는 그의 심성 때문에 그는 천신이나 신의 아들 등으로 불리지 않고 마라로만 언급되고 있다.
주석서들에서는 Māra의 어원을 한결같이 √mṛ(to kill, to die)로 본다. 물론 산스끄리뜨 문헌들에서도 죽음을 뜻하는 √mṛ(to die)로도 보기도 하지만 역자는 기억을 뜻하는 √smṛ(to remember)로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Māra의 산스끄리뜨는 인도 최고의 희곡인『샤꾼딸라』등에서 스마라(Smāra)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마라는 바로 기억을 뜻하는 √smṛ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힌두 신화에서 마라는 사랑의 신을 뜻하는 까마데와(Kāmadeva)이며 이 신의 많은 별명 가운데 하나가 스마라이다. 까마데와는 로마 신화의 사랑의 신인 큐피드(Cupid)에 해당한다. 사랑의 신 까마데와도 큐피드처럼 사랑의 화살을 가지고 다니면서 화살을 쏜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의 열병에 걸린다. 산스끄리뜨 문학 작품에 의하면 마라는 수련화(Aravinda), 아쇼까 꽃(Aśoka), 망고 꽃(Cūta), 재스민(Navamālikā), 청련화(Nīlotpala)의 다섯 가지 꽃 화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러한 까마데와의 꽃 화살에 맞게 되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불교주석서들에서도 이러한 다섯 가지 마라의 꽃 화살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마라는 유혹자이다. 이성을 서로 꼬드기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라는 Tempter(유혹자, 사탄)이다. 그래서 마라를 Tempter라고 옮기는 서양학자도 있다.
그리고 이 √smṛ에서 파생된 것이 빠알리의 sati 즉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과 마라는 이렇게 대비가 된다. 이처럼 마라의 어원을 √smṛ(to remember)로 이해하면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케 하는 아주 의미심장한 해석이 된다.
본 상윳따의 25개 경들 가운데「많음 경」(S4:21)과「사밋디 경」(S4:22)과「고디까 경」(S4:23)은 각각 마라가 많은 비구들과 사밋디 존자와 고디까 존자에게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고행 경」(S4:1) 등 나머지 22개의 경들은 세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편 마라는 본 상윳따의「고행 경」(S4:1),「마라의 올가미 경」1/2(S4:4∼5),「잠 경」(S4:7),「기쁨 경」(S4:8),「수명 경」1/2(S4:9∼10),「사자 경」(S4:12),「돌조각 경」(S4:13),「어울리는 일 경」(S4:14),「정신적인 것 경」(S4:15),「탁발음식 경」(S4:18),「통치 경」(S4:20),「고디까 경」(S4:23),「칠 년 동안 경」(S4:24)에서는 말로 하는 대화나 특히 게송으로 세존을 성가시게 하고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코끼리 경」(S4:2)에서는 무서운 코끼리로,「아름다움 경」(S4:3)에서는 여러 모양의 색깔로,「뱀 경」(S4:6)에서는 뱀으로,「바위 경」(S4:11)에서는 바위를 부수는 것으로,「발우 경」(S4:16)에서는 사나운 황소로,「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S4:17)과「사밋디 경」(S4:22)에서는 굉음을 내는 것으로,「농부 경」(S4:19)에서는 농부의 모습으로,「많음 경」(S4:21)에서는 바라문의 모습으로 나타나며,「마라의 딸들 경」(S4:25)에서는 마라의 세 딸들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존과 대화를 나눈다.
마라와는 관계없지만 본 상윳따의「고디까 경」(S4:23)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해탈(sāmāyika vimutti)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일시적인 해탈’이란 증득하는 순간에만 반대되는 법들로부터 해탈하고 그리고 대상에 확고하게 되는 세간적인 증득(lokiya-samāpatti)을 말한다. 한편『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자(samaya-vimutta)’란 오직 본삼매에 들어 있는 순간에만 억압된 오염원들로부터 해탈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이라 불리는 세간적인 해탈(lokiya-vimutta)을 통해 마음이 해탈한 자를 뜻한다.”(AA.iii.292)
즉 예류자부터 아라한까지의 성자의 경지는 아직 실현하지 못했지만 삼매에 든 순간에는 다섯 가지 장애로 대표되는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자라고 한다는 뜻이다.
본경에 의하면 고디까 존자는 무려 일곱 번이나 일시적인 마음의 해탈에 도달했지만 성자의 경지는 증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칼을 들어 자결을 하였다. 세존께서는 “고디까는 알음알이가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라고 그가 반열반하였음을 선언하고 계신다.
한편 다음의「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도 모두 마라와 관계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비구니 상윳따」는「마라 상윳따」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7.「비구니 상윳따」(S5)
다섯 번째 주제인「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S5)에는 10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 경들은 모두 각각 경에 나타나는 비구니 스님들과 마라 사이에 얽힌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는 앞의「마라 상윳따」(S4)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들 10개의 경들에서 마라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생기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는” 내용을 담은 게송이나 문답으로 비구니 스님들을 겁주고 그들의 한거를 방해하고 있다.
물론 이 비구니 스님들은 다들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요 아라한들이기 때문에 당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마라와의 대화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한 대장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개의 경들은 모두 깊은 불교적 사유와 성찰과 통찰을 담고 있어서 모두 다 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역자는 여기서「셀라 경」(S5:9)을 소개하고 싶다.
본경에서 마라는
“누가 이 꼭두각시를 만들었는가?
꼭두각시를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소멸하는가?”{548}
라고 다그친다.
주석서는 “‘꼭두각시(bimba)’란 자기 존재(atta-bhāva)를 두고 한 말이다.”(SA.i.193)라고 설명하고 있고 복주서는 다시, “여기서는 자기 존재라고 인식되는 이 꼭두각시는 범천(brahma), 위슈누(visaṇu), 뿌루샤[原人], 빠자빠띠(조물주) 등 가운데서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드러내었는가, 누가 창조하였는가 등을 묻는 것이다.”(SAṬ.i.199)라고 부연하고 있다.
그러자 셀라 비구니는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말한다.
“이 꼭두각시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요
이 불쌍한 것은 남이 만든 것도 아니로다.
원인을 조건으로 해서 생겼으며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49}
마치 씨앗이 들판에 뿌려져서
잘 자라기 위해서는
땅의 영영분과 수분의 둘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도다.{550}
그와 같이 무더기들[蘊]과
요소들[界]과 여섯 감각장소들[處]은
원인을 조건으로 하여 생겨났지만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51}
부처님 당시의 학자들의 주장은 괴로움은 자신이 만드는 것(atta-kata, 自作)이라는 설과 남이 만드는 것(para-kata, 他作)이라는 설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자는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의 입장이고 후자는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의 입장이다. 전자는 영원한 자아가 있어서 이 자아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에 따라 윤회전생(transmigra -tion)한다는 견해이다. 후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려서 아무 것도 남지 않으므로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모두 외부의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쟁은 본서 제2권「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12:17) 등(S12:17; 18; 24; 25)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참조할 것. 여기에 대해서 셀라 비구니는 존재란 조건발생이라는 불교의 입장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편『앙굿따라 니까야』「존재 경」(A3:76) §1 등에서 세존께서는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업(kamma)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알음알이를 확립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본 게송과 같은 말씀이다. 이렇게 해서 온․처․계가 생기고 머물고 사라지고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중생이라는 존재의 현주소이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선업과 불선업이 자라는 장소(ṭhāna)라는 뜻에서 업은 ‘들판(khetta)’이다. [업과] 함께 생긴 업을 형성하는 알음알이는 자란다는 뜻에서 ‘씨앗(bīja)’이다. [씨앗을] 돌보고 자라게 하기 때문에 ‘갈애’는 물과 같다.” (AA.ii.335)
한편「와지라 경」(S5:10)에서 와지라 비구니는
“누가 중생을 창조하였는가?
중생을 창조한 자는 어디에 있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생겼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소멸하는가?”{552}
라고 다그치는 마라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 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들[行]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553}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 {554}
단지 괴로움이 생겨나고
단지 괴로움이 머물고 없어질 뿐이니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도다.” {555}
여기서 ‘괴로움(dukkha)’이란 오온의 괴로움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이것은 {553} 게송의 ‘단지 형성된 것들[行]의 더미(suddha-saṅkhāra -puñja)’와 같은 것이다. 본서 제2권「깟짜나곳따 경」(S12:15 §5)에서도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고 나타나고 있다. 불교에서 나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은 이처럼 오온개고(五蘊皆苦)와 오온무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온․처․계․연 등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디가 니까야』「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신․수․심․법)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하거나 그 중의 하나의 무상․고․무아를 해체해서 보는 것(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본 게송에 나타나는 마차의 비유는『밀린다빤하』(Mil.27∼28)에 인용되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청정도론』XVIII.25∼28도 본경의 두 게송을 인용하면서 정신․물질을 떠나 중생이라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와지라 비구니의 명쾌한 해석은 후대 불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8.「범천 상윳따」(S6)
여섯 번째 주제인「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S6)에는 15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사함빠띠 범천이나 바까 범천이나 사낭꾸마라 범천 등 범천과 관련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본 상윳따에도 1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지만「첫 번째 품」과「두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두 품으로 나누어서 각각에 10개와 5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초기불전에서 신으로 언급이 되는 범천(Brahma, 브라흐마)이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를 뜻하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주석서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DPPN은 범천을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사는 자들로 정리하고 있다. 주석서에서는 색계 초선천부터 삼선천까지의 9가지 천상과 4선천의 무상유정천과 광과천과 다섯 가지 정거천과 네 가지 무색계 천상 — 이 20가지 천상을 모두 범천의 세상(brahma- loka)으로 부르고 있다.(VibhA. 521, 등) 마라는 욕계의 가장 높은 천상인 타화자재천에 거주하는 신인데 반해, 범천은 이러한 마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색계 이상의 천상에 거주하는 신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색계 초선천의 신들을 범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색계 초선천을 범신천(梵身天, Brahmakāyikā)이라 부르고 이 범신천은 다시 범중천(Brahmapārisajjā)과 범보천(Brahmapurohitā)과 대범천(Mahābrah- mā)으로 구분이 되는데, 이 천상의 키워드가 바로 범천(Brahma)이기 때문이다.(범신천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5장 §6의 해설을 참조할 것.) 그러나 초선천을 범천이라 부르지 않고 범신천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범천과 범신천이 정확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DPPN도 주석서의 견해를 따라서 색계 이상의 천상, 즉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머무는 신들을 통틀어서 범천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까야의 D1 §2.5, D2 §61, D11 §80, D20 §20, M49 §5, A10:29 §2 등에서도 대범천은 유력한 범천이란 뜻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D14 §3.2 이하에서도 위빳시 세존께 법을 설하기를 간청하는 범천도 대범천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디가 니까야』D19, D20 등과 본 상윳따에 해당하는 주석서인 SA.i.199와 DA.ii.177과 DAṬ.ii.351 등의 복주서에서는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범천들이 대범천(Mahābrahm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가운데서 사함빠띠 범천이 대범천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대범천(Mahābrahmā)은 초선천의 세 번째 천상을 뜻하기도 하고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사낭꾸마라(Sanaṅkumāra), 사함빠띠(Saham- patī), 뚜두(Tudu), 가띠까라(Ghaṭikāra), 바까(Baka) 등의 유력한 범천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범천으로 옮긴 brahma는 초기경에서 보통명사로도 쓰이고 있으며 특히 합성어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예외 없이 모두 ‘신성함, 거룩함, 높음, 위대함’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주석서는 “최상이라는 뜻에서(seṭṭhatthena) 브라흐마(brahma)라 부른다.”(DA.iii. 865 등)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정범행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짜리야(brahma-cāriya)와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위하라(brahma-vihāra), 최상의 존재로 옮기는 브라흐마부따(bhrahma-bhūta), 최고의 처벌로 옮기는 브라흐마단다(brahma-daṇḍa) 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색계와 무색계 천상을 일컫는 범천의 세상(brahma-loka)은 ‘거룩한 천상 세계’로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본 상윳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범천은 사함빠띠 범천(brahmā Sahampati)이다. 그는 본「범천 상윳따」S6:1∼3, 10, 12∼13, 15에 나타나고 있으며, 본서 S11:17; S22:80; S47:18, 43에도 등장하고 있다. 사함빠띠 범천은 본서「권청(勸請) 경」(S6:1)에서 보듯이 이 세상에 불교가 시작되는데 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경에서 보듯이 법의 바퀴를 굴릴 것을 간청하는 자도 사함빠띠 범천이고, 세존이 입멸하시자 맨 처음 게송을 읊은 자도 그다.(본서「반열반 경」(S6:15) {608})
그가 어떻게 막강한 신이 되었는가는 본서「사함빠띠 범천 경」(S48:57 §5)에 나타난다. 이 경에서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옛날에 저는 깟사빠 정등각자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았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저를 ‘사하까 비구, 사하까 비구’라 불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을 닦고 많이 [공부]지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을 빛바래게 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인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저를 ‘사함빠띠 범천, 사함빠띠 범천’이라 부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그는 불교의 태동(S6:1 참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부처님의 입멸(S6:15 참조)에도 등장하는 신으로 초기불전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사낭꾸마라 경」(S6:11)에 나타나는 사낭꾸마라 범천도 세존을 존중하는 범천으로 나타난다. 사낭꾸마라(Sanaṅkumāra)는 문자적으로 ‘항상(sanaṁ) 동자(kumāra, 소년)인 자’라는 뜻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전생에 머리를 다섯 가닥으로 땋아 다니던 소년이었을 때(pañca- cūḷaka-kumāra-kāle, 혹은 pañca-sikha-kumāra-kakāle) 禪을 닦아서 그 선의 힘으로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범천이 되어서도 동자의 모습을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동자 즉 사낭꾸마라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SA.i. 219; MA.ii.584; DA.ii.647.)
사낭꾸마라의 산스끄리뜨인 사낫꾸마라(Sanatkumāra)는 이미 고층 우빠니샤드인『찬도갸 우빠니샤드』(Chāṇḍogya Upaniṣad, 7.26:2)에서 언급이 되고 있으며, 인도의 대서사시인『마하바라따』(Mahābhārata, iii.185)에서도 여기서 나타나는 게송과 비슷한 게송을 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디가 니까야』제2권의「대회경」(D20 §20)과 특히「자나와사바 경」(D18 §18)과「마하고윈다 경」(D19 §1)에도 그가 등장하는데, 빤짜시카 동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1.28)에는 그가 읊은 이 게송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는 신들 가운데 부처님께 귀의한 신으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함께 자주 언급이 된다.
반면「바까 경」(S6:4)에 나타나는 바까 범천은 불변하는 자아(ātman)를 상정하는 인도 사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천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유일하며, 이것은 불멸의 법이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떨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nissaraṇa)이란 없다.”라고 주장한다. 본경의 다음에 나타나는 어떤「범천 경」(S6:5)에도 바까 범천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범천이 등장하며,「범천의 세상 경」(S6:6)에도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 불교의 사상가들은 미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석서는 바까 범천이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 그가 인간이었을 때 그는 禪을 닦아서 죽어서 제4선천인 광과천(Vehapphal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5백 겁이었다. 거기서 죽어서는 제3선천인 변정천(Subhakiṇh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64겁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제2선천인 광음천(Ābhassara)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8겁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초선천인 [범천]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1겁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전의 업과 그 과보로 태어난 천상에 대해서 기억을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이처럼 상견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SA.i.208) 즉 그는 범천인 자신의 수명이 영원하고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만을 보고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범천들이 가지는 비슷한 주장이「범망경」(D1 §2.5) 등에도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로 나타나고 있다. 거기서도 세존께서는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그곳에 먼저 태어나서 혼자됨에 싫증이 나고 초조하던 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라고 하신다.
본 상윳따의「범천의 세상 경」(S6:6)과「꼬깔리까 경」1(S6:7)과「띳사까 경」(S6:8)과「뚜두 범천 경」(S6:9)에는 벽지 범천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술어가 나타난다. S6:6∼8에는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과 숫다와사 벽지 범천이 나타나고 있으며, S6:9에는 뚜두 벽지 범천이 나타나고 있다. 뚜두 벽지 범천은 고깔리까 비구의 은사였으며 불환과를 얻었는데, 죽어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수브라흐마와 숫다와사도 세존을 존경하는 벽지 범천이다.
‘벽지 범천’은 pacceka-brahmā를 옮긴 것이다. 복주서는 “벽지 범천이란 혼자 사는(eka-cāri) 범천인데 회중과 함께하는(parisa-cāri) 범천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여기서 벽지(pacceka)라는 말은 삶의 방식(āvutti)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벽지라는 말은 혼자(ekeka)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SAṬ.i.213)
깨달았지만 대중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분을 벽지불(pacceka-buddha)라고 하듯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지만 회중과 함께하지 않는 범천을 벽지 범천(pacceka-brahmā)이라 부르고 있다.
9.「바라문 상윳따」(S7)
일곱 번째 주제인「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S7)에는 모두 22개의 경들이 나타나는데, 제1장「아라한 품」과 제2장「청신사 품」의 두 품에 각각 10개와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바라문(婆羅門)은 산스끄리뜨와 빠알리어 brāhmaṇa를 중국에서 음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범천(梵天)으로 옮기는 brahma(n)에서 파생된 말이며 어근은 √bṛh(to shine, to be bright 혹은 to make strong)이다.『디가 니까야』「세기경」(世紀經, D27 §22)에서 세존께서는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앤다(bāheti)라고 해서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생겨났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바라문(brāhmaṇa)의 어원을 bāheti에서 찾고 계신다. bāheti는 bahi(밖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그래서 ‘[불선법들을] 밖으로 한다, 밖으로 보낸다,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이다.
주지하듯이 바라문은 우리가 카스트제도라 부르는 인도의 와르나(Varṇa) 제도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계층이며 인도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문헌인 4베다와 여기에 관계된 다양한 문헌과 학문을 전승하고 복잡다단한 제사를 발전시키고 이를 관장한 지식인 계층이고 성직자 계층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전승된 종교가 바로 바라문교이다.
이들이 발전시킨 인도의 베다 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Saṁhitā, 本集), 브라흐마나(Brāhmaṇa, 祭儀書), 아란냐까(Āraṇyaka, 森林書), 우빠니샤드(Upaṇiśad, 秘義書)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삼히따(베다본집)에는 우리가 잘 아는『리그베다』,『야주르베다』,『사마베다』,『아타르와베다』의 4베다가 있다. 이 베다본집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학파와 문도와 가문들로 구성된 것이 인도 바라문들이다. 그래서 각 학파나 문도에서는 각각 그들 고유의 제의서와 삼림서와 비의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학파는 수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제사에서 각각 네 가지 역할을 분장해서 관리하면서 인도 전통 바라문교를 유지해 왔다.
초기불전에서는 이 가운데『아타르와베다』를 제외한 앞의 세 베다만을 삼베다(tevijjā)라 하여 인정하고 있다. 초기불전에서『아타르와베다』는 베다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아타르와베다』는 그 내용이 흑마술(黑魔術, black magic)에 관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신성한 베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야주르베다』와『사마베다』의 거의 모든 만뜨라는『리그베다』에 나타난다.『리그베다』가운데서 제사의식을 관장하는 야주스(yajus) 바라문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읊는 만뜨라를 모은 것이『야주르베다』이며,『리그베다』가운데서 제사에서 창(唱)을 하는 사만(sāman) 바라문들의 창에 관계된 만뜨라를 모은 것이『사마베다』이다.
그리고 초기불전에서도 이미 바라문은 사성계급가운데 최상의 계급으로 정착이 되어서 나타난다. 그래서 누가 진정한 바라문인가를 두고『맛지마 니까야』「와셋타 경」(M98) 등에서처럼 “모계와 부계의 둘 다로부터 순수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 동안 태생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무랄 데가 없어야만 바라문이다.”라는 주장과, “계행을 가지고 서계를 구족하여야만 바라문이다.”는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후자를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그래서「왓세타 경」(M98 §11)에서 세존께서는 “나는 모태나 혈통으로서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 남아있지 않고 취착하지 않는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모든 족쇄를 자르고서 떨지 않으며 기운 것을 풀어버린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라는 등의 28가지로 불교식으로 바라문을 정의하고 계신다.
그리고『법구경』「바라문 품」(Dhp.390~423)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바라문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계시는데, 탐․진․치가 다 하고 번뇌가 다한 성자야말로 진정한 바라문이라고 강조하신다.
본 상윳따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1품에 나타나는 열 명의 바라문들은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에 이 품을「아라한 품」이라고 명명하였고, 제2품에 나타나는 열두 명의 바라문들은 세존의 설법을 듣고 모두 재가 신도가 되었기 때문에「청신사품」이라 부르고 있다.
이 가운데「다난자니 경」(S7:1)에 나타나는 다난자니의 남편이었던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욕설 경」(S7:2)의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과「아수라 왕 같은 자 경」(S7:3)의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과「시큼한 죽 장수 경」(S7:4)의 시큼한 죽 장수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맏형이었다. 그는 아내가 세존께 지극한 신심을 가진 것에 분노하여 부처님께 따지러 갔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가 출가하자 그의 세 동생들도 분개하여 세존께 따지러 갔다가 모두 세존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해코지 않음 경」(S7:5)부터「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까지의 7개 경과「나와깜미까 경」(S7:17)과「땔나무 모으기 경」(S7:18)에 나타나는 바라문들도 모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들이다. 이렇게 하여 모두 13개 경들이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의 일화를 담고 있다.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유력했던 바라문 족성이다.
『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2.8)과『앙굿따라 니까야』「도나 경」(A5:192 §2) 등에는 당시에 유력했던 바라문 족성으로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웻사미따(Sk. Viśvāmitra)는『리그베다』3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며, 와마데와(Sk. Vāma- deva)는 4장을,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6장을, 와셋타(Sk. Vasiṣṭha)는 7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편「많은 딸 경」(S7:10)에 나타나는 많은 딸을 가진 바라문이 해학적으로 읊는 게송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게송을 통해서 잃어버린 지 엿새째인 열네 마리의 황소가 없고, 한 잎이나 두 잎이 달려 있는 참깨 밭이 없고, 텅 빈 헛간 안에 명랑하게 춤춰 대는 쥐들이 없고, 해충들이 바글거리는 일곱 달이나 된 담요가 없고, 한 아들이나 두 아들을 가진 과부된 딸년들이 없고, 잠자리에서 발로 깨우는 누렇게 뜬 곰보 마누라가 없고, 새벽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이 없어서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구나라고 해학적으로 읊고 있다. 그는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은『숫따니빠따』에도「까시 바라드와자 경」(Sn1:4)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이기도 하다. 본 상윳따뿐만 아니라 니까야의 도처에는 많은 바라문들이 세존을 뵙고 설법을 듣고 출가하기도 하고 재가 신도가 되기도 한다. 바라문은 인도의 지식계층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세존의 심오한 가르침을 잘 이해하였을 것이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마하깟사빠 존자 등 초기불교에서 유력한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도 바라문 출신들이 아주 많았다.
10.「왕기사 장로 상윳따」(S8)
여덟 번째 주제인「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S8)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왕기사 존자(āyasmā Vaṅgīsa)는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서 베다에 능통한 자였다. 본 상윳따에서 보듯이 그는 영감과 시작(詩作)에 능통했다. 그래서『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S1:14:3-4)에서 세존께서는 그를 “영감을 가진 자(paṭibhānavan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다.
『법구경 주석서』(DhpA.iv.226∼228)에 의하면 왕기사 존자는 방랑하는 바라문이었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죽은 사람의 해골(matānaṁ sīsa)을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그가 임종하여 어디에 태어났는가를 말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가 부처님을 만났을 때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해골을 포함한 여러 해골들을 그에게 주시고 알아맞혀보라고 하셨다. 그는 다른 해골을 통해서는 그들이 재생한 곳을 잘 알아맞혔지만 아라한의 해골을 두드려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당황하였다. 그는 아라한이 재생하는 곳을 알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그는 세존께 그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하였고 세존께서는 32가지 형태의 명상주제를 말씀해 주셨다. 그는 그것을 순으로 역으로 마음에 잡도리하여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순차적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SA.i.285∼286)
한편 왕기사 존자(āyasmā Vaṅgīsa)가 지은 게송은『장로게』(Thag) {1209∼1279}에 모아져서 전승되어 온다. 본 상윳따의 {707}∼{757} 게송은『장로게』 {1209∼1262}와 동일하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12개의 경들 가운데 S8:1, 2, 3, 12의 네 개의 경에 나타나는 게송은 자기 스스로를 경책하거나 자신에 대한 것이며, S8:5, 7, 8, 11은 세존을 칭송하는 게송이 포함되어 있으며, S8:4는 아난다 존자를, S8:6은 사리뿟따 존자를, S8:9는 꼰단냐 존자를, S8:10은 목갈라나 존자를 칭송하는 왕기사 존자의 게송이 담겨있다.
그리고 역자가 주목하고 싶은 경은「천 명이 넘음 경」(S8:8)이다. 여기서 존자는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742}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주석서는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ṁ)’란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부분으로 법을 해체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혹은 철저하게 해체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과 부분들로 해체하고(vibhajitvā) 해체해서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분들로 해체한다는 것은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와 복주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좌부 불교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즉 해체를 설하는 [상좌부], 혹은 분별[상좌부]라 부르는『율장 주석서』(VinA.i.61 = KvA.7)와『청정도론』(XVII.25) 등의 입장과 그대로 일치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남방불교 혹은 상좌부불교를 ‘분별 상좌부’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해체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paññatti)의 해체이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온․처․계․근․제․연 등으로 설해지는 법(dhamma)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특히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와 제4권「육처 상윳따」(S35)의 많은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무상 경」(S22:12 §3)의 주해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상좌부 불교가 스스로를 해체를 설하는 상좌부로 부른 데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해체(vibhajja)라고 파악한 장로들의 혜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11.「숲 상윳따」(S9)
아홉 번째 주제인「숲 상윳따」(Vana-saṁyutta, S9)에는 모두 14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담겨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본 상윳따는 본서「천신 상윳따」(S1)의 하나의 품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이 14개의 경들 가운데「한거 경」(S9:1)을 비롯한 9개의 경들은 그곳에 사는 “비구들을 연민하고 그들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들에게 절박감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읊은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많음 경」(S9:4)은 비구들이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유행을 떠나자 그 밀림에 거주하던 천신들이 비구들을 보지 못하게 되어 서운해서 읊은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아누룻다 경」(S9:6)은 아누룻다의 전생의 아내였던 잘리니라는 삼십삼천의 천신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으며,「암송 경」(S9:10)은 경을 암송하던 비구가 암송을 하지 않아서 그 비구로부터 더 이상 법을 듣지 못하게 되자 읊은 게송을 담고 있고,「대낮 경」(S9:12)은 밀림에 사는 신과 비구가 밀림을 묘사하는 게송으로 되어 있는데, 본서「스치는 소리 경」(S1:15) {28∼29}와 같다.
한편 본 상윳따에는 아난다 존자(S9:5)와 아누룻다 존자(S9:6)와 깟사빠곳따 존자(S9:3)와 나가닷따 존자(S9:7)에게 신들이 게송으로 경책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12.「약카 상윳따」(S10)
『상윳따 니까야』의 열 번째 주제인「약카 상윳따」(Yakkha-saṁ- yutta)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각 경에는 각각 다른 약카와 부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와 일화를 담고 있다.
본서에는 약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약카(yakkha, Sk. yakṣa)’는 중국에서 야차(夜叉)로 한역되었다. 이 단어는 √yakṣ(to move quick -ly)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문자적으로는 ‘재빨리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나 주석서에서는 √yaj(to sacrifice)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그에게 제사 지낸다. 그에게 제사음식을 가져간다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224) 혹은 “예배를 받을만한 자라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 333)고 풀이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제2권「빠야시 경」(D23 §23)에서 보듯이 약카는 일반적으로 비인간(amanussa)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들은 아귀(peta)들보다 높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선한 아귀들을 약카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PvA.45; 55) 그들은 많은 계통이 있는데, 후대 문헌으로 올수록 우리말의 정령, 귀신, 요정, 유령, 도깨비 등 나쁜 비인간인 존재들을 모두 일컫는 말로 정착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힌두 문헌의 삐샤짜(Piśāca, 도깨비, 유령, 악귀, 본서「요정 경」(S1:46) §2와「삐양까라 경」(S10:6) §3에도 pisāca로 나타남)와 거의 같은 존재를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약카는 힘이 아주 센 비인간을 뜻한다. 그래서『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에는 금강수 약카(Vajirapāṇī)가 금강저(벼락)를 손에 들고 부처님 곁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들의 왕인 삭까(Sakka, Indra)도 약카로 표현되기도 하며(M37/i.252; J.iv.4), 본서「삭까 상윳따」(S11)의「삭까의 예배 경」2(S11:19)에서 삭까의 마부(수행원) 마딸리는 부처님을 약카로 지칭하고 있으며『맛지마 니까야』「우빨리 경」(M56/i.386 §29)의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서 우빨리 장자도 부처님을 약카로 부르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약카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는데, 이러한 영향이 아닌가 한다.
육도윤회의 입장에서 보면 약카는 사대왕천의 북쪽에 거주하며 꾸웨라가 그들의 왕이라고 한다.(『디가 니까야』제3권「아따나띠야 경」(D32) §7 참조)『마하바라따』(Mahābhārata) 등의 힌두 문헌에도 약카(Sk. Yakṣa)는 꾸웨라의 부하들로 묘사되고 있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12개의 경들 가운데 ① 인다까 ② 삭까 ③ 수찌로마 ④ 마니밧다 ⑫ 알라와까 경은 약카의 이름을 경의 제목으로 한 것이며 모두 세존과 이들 약카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다. ⑥ 삐양까라 ⑦ 뿌납바수는 이들의 어머니 약카의 게송을 담고 있는 경이다.
⑤ 사누 경은 사누라는 사미가 환속하였다가 약카에 씌인 일화를 담고 있다. ⑧「수닷따 경」과 ⑨∼⑩「숙까 경」1/2와 ⑪「찌라 경」은 각각 수닷따 장자(급고독 장자)와 숙까 비구니와 찌라 비구니와 이들을 보호하는 약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인다까 경」(S10:1)에 나타나는 태아의 5단계를 언급하는 세존이 읊으신 다음 게송도 주목할 만하다.
“맨 처음 [모태에서] 깔랄라가 있고
깔랄라로부터는 압부다가 있네.
압부다에서 뻬시가 생기고
뻬시가 성장하여 가나가 되네.
가나에서 다시 돌출부 생겨
머리털, 몸털, 발톱 생겨나도다. {803}
13.「삭까 상윳따」(S11)
열한 번째 주제인「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S11)에는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포함되어 있다. 앞의「꼬살라 상윳따」(S3)와「마라 상윳따」(S4)처럼 본 상윳따도「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서계의 조목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배당되어 전승되고 있다.
삭까(Sakka, Sk. Śakra)는 중국에서 제석(帝釋) 혹은 석제(釋提)로 음역되었고 천주(天主)로 번역되기도 한 신이며, 인도의 베다에서부터 등장하는 인도의 유력한 신인 인드라(Indra)를 말한다. 본 상윳따의「삭까의 이름 경」(S11:12)에는 그의 이름 7가지를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 세 번째에서 그는 인간으로 있을 때 철저하게 보시를 베풀었다(sakkaccam dānam adāsi)고 해서 삭까(Sakka)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Sak -ka의 산스끄리뜨 Śakra는 √śak(to be able)에서 파생된 단어로 베다에서부터 ‘힘센, 막강한’이라는 형용사로도 쓰였고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따』에서부터 인드라의 이름으로 정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불전들에서는 또 하나의 Sakka라는 표기가 나타나는데, 석가족을 뜻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산스끄리뜨 샤꺄(Śākya)의 빠알리 표기이지 인드라를 뜻하는 산스끄리뜨 Śakra가 Sakka로 표기된 본 단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베다에서 이미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베다의 후기 시대부터 인도의 모든 신들에게도 사성(四姓)계급이 부여되는데, 아그니(Agini, 불의 신)는 바라문 계급의 신이고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이고 하는 식으로 베다 문헌에 나타난다. 베다 문헌들에서 신들은 자주 ‘인드라를 상수로 하는 신들(Indraśreṣṭāḥ devāḥ)’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이를 받아들여서 본 상윳따의 25개의 모든 경들에서는 “신들의 왕 삭까(Sakko devānam indo)”로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상윳따에도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이 표현은『디가 니까야』「께왓다 경」(D11 §70) 등과『맛지마 니까야』「짧은 갈애의 소멸 경」(M37/i.252) 등과『앙굿따라 니까야』「사대천왕 경」2(A3:37) 등의 초기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삭까는 구체적으로는 삼십삼천의 신들의 왕이며 그래서 삼십삼천은 제석천이라고도 부른다. 본서「삭까의 예배 경」1/2(S11:18) 등에 의하면 인드라는 삼십삼천의 웨자얀따(Vejayanta) 궁전에 거주한다. 초기경들 가운데 인드라가 부처님께 와서 설법을 듣고 가는 것을 묘사한 경이 몇몇 있으며, 목갈라나 존자가 이 궁전을 손가락으로 진동시켜 신들에게 무상의 법칙을 일깨웠다는 경도 나타난다.(M37 §11)『디가 니까야』제2권「제석문경」(D21)은 이런 신들의 왕 삭까가 세존과의 문답을 통해서 예류자가 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불교를 보호하는 신[護法善神]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을 개관해보자.
「첫 번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S11:1∼10)은 삼십삼천의 신들과 아수라들 간의 지속적인 전쟁과 반목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처음 여섯 개 경들(S11:1∼6)은 신들과 아수라들간의 전쟁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 제4권「육처 상윳따」(S35)의「보릿단 경」(S35:248) §5 이하와「세상에 대한 사색 경」(S56:41) §5에서도 신들과 아수라들의 전쟁을 말하고 있다. 이런 묘사를 통해서 볼 때 신들은 광명과 평화와 화합의 힘을 대표하고 아수라들은 폭력과 분쟁과 불화의 힘을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보릿단 경」(S35:248 §7)을 참조할 것.
주석서에 의하면 신들은 다섯 무리의 전선(戰線)에 의해서 방어된다고 한다. 그 다섯은 나가(nāga, 용)들과 수빤나(supaṇṇa, 가루다)들과 꿈반다(kumbhaṇḍa)들과 약카(yakkha)들과 사대천왕(cattu-mahārāja)들이다. 아수라들이 이 다섯 전선을 돌파하면 사대천왕들은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고 한다. 그러면 삭까가 직접 마차를 타고 전선으로 가거나 그의 아들들 가운데 한 명에게 임무를 맡긴다고 한다.(SA.i.338∼340)「수위라 경」(S11:1)에서 삭까는 그의 아들 수위라(Su -vīra)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두 번째 품」(서계의 조목 품)의 처음 네 경은 신들의 왕 삭까가 어떻게 해서 신들의 왕이 되었는지를 세존께서 그의 전생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계신다.「아름다운 곳 경」(S11:15)「공양하는 자 경」(S11:16)「부처님을 찬양함 경」(S11:17) 등의 세 경은 삭까가 세존께 가서 질문을 드리고 찬탄하는 경이며,「세 번째 품」의「자름 경」(S11:21)도 삭까가 세존과 문답을 나누는 경이다.「삭까의 예배 경」1/2/3(S11:18∼20)은 삭까가 선인들과 부처님과 승가를 예배하고 존중하는 것이 묘사되어 나타난다. S11:22∼25의 네 경은 세존께서 삭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경이다.
한편 이처럼 신(deva)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아수라(asura)는 이미『리그베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후 많은 인도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고 있으며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서 보듯이 초기불전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어원으로 볼 때 아수라는 서아시아에서 유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인『아베스타』(Avesta)에 나타나는 신이나 주(主)의 개념인 아후루(ahuroo)를 뜻한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육도윤회의 입장에서 아수라는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에는 속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인간보다도 수승한 존재로 설정하기도 한다. 물론『디가 니까야』제3권「빠띠까 경」(D24 §1.7)에 나타나는 저열한 아수라들도 있는데, 이들은 본 상윳따에서처럼 신들과 경쟁하고 대적하는 아수라는 아니다. 후대로 갈수록 아수라는 저열하고 나쁜 존재로 받아들여져서 아비담마에서는 최종적으로 아수라를 악도에 포함시켜서 4악도로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의「웨빠찟띠 경」(S11:4)과「금언의 승리 경」(S11:5)과「해치지 않음 경」(S11:7)「숲의 선인 경」(S11:9)「요술 경」(S11:23)에서는 삭까와 대적하는 아수라의 왕으로 웨빠찟띠가 등장한다. 주석서와『자따까』에 의하면 삭까는 이 웨빠찟띠의 딸인 수자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삭까는 ‘수자의 남편(수잠빠띠)’이라고도 불린다고「삭까의 이름 경」(S11:12 §3)은 적고 있다. 그리고「웨로짜나 경」(S11:8)에서는 아수라 왕 웨로짜나가,「바다의 선인 경」(S11:10)에서는 아수라 왕 삼바라가 나타나고 있다.
아수라 왕 삼바라(Sambara asurinda)는 아수라 왕 웨빠찟띠와 동일인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SA.i.347. S11:10 §7의 주해 참조) 그러나 C.Rh. D는 본서「요술 경」(S11:23)을 예로 들면서 다른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요술 경」(S11:23) {943}에서 웨빠찟띠(Vepacitti)는 자신과 삼바라(Sambara)를 다른 아수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주서도 삼바라는 웨빠찟띠 이전에 아수라들의 왕을 지낸 자라고 적고 있다.
14.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1권에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 271개가 크게 11개의 주제로 분류되어서 각각의 상윳따에 담겨있다.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945개나 되는 많은 게송들이 나타나고 있다.
게송으로 된 가르침들은 운율로 압축되고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한글 운율로 살려서 번역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문학적인 재능이 신통치 않은 역자에게는 큰 고충이었고 괴로움이기도 하였다. 역자는 게송들이 가지는 시적인 맛을 살리기보다는 게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서 이를 살려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다 보니 게송의 번역이 딱딱하고 건조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게송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해석을 중시하다보니 필요 이상의 긴 주해를 단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게송의 뜻을 정확하고 깊게 전달하고자 하는 역자의 심정을 독자 여러분들이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특히 제1권 게송의 번역은 초기불전연구원장인 대림 스님의 노고가 컸다. 역자의 번역을 일일이 주석서와 복주서와 대조해가면서 철저한 교정과 교열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대림 스님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역자는 제1권을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심한 감기와 몸살을 겪으면서 열과 성으로 교열을 해 주신 대림 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본서 제1권은 나머지 다섯 권과는 달리 초기불교의 교학이나 수행에 관계된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학이나 수행의 입장에서 게송들을 분명히 이해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여겨진다. 제1권이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들은 나머지 다섯 권을 먼저 읽고 제1권은 맨 마지막에 보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모든 부처님 가르침은 해탈의 맛으로는 하나이다.”(DA.i.1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제1권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별로 모은 것은 아니지만, 본서에 포함된 모든 경들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우리에게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해탈․열반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을 듬뿍 안겨주시려는 우리 세존 부처님의 자애와 연민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본서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1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
<1권 목차>
제1주제 천신 상윳따(S1)
제2주제 신의 아들 상윳따(S2)
제3주제 꼬살라 상윳따(S3)
제4주제 마라 상윳따(S4)
제5주제 비구니 상윳따(S5)
제6주제 범천 상윳따(S6)
제7주제 바라문 상윳따(S7)
제8주제 왕기사 장로 상윳따(S8)
제9주제 숲 상윳따(S9)
제10주제 약카 상윳따(S10)
제11주제 삭까 상윳따(S11)
<상윳따 니까야 역자 서문>
1. 들어가는 말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하나로만 말해보라면 그것은 열반(涅槃, nibbāna)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行]이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離慾], 소멸, 열반이다."(본서 제3권 「찬나 경」 (S22:90) §5 등)로 표현되고있고, "탐욕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열반 경」 (S38:1) 등)이라고도 설해지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무위(無爲)라고도 정의된다. ( 「무위 상윳따」 (S43)) 그리고 "염오, 이욕,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본서 제5권 「염오 경」 (S46:20) §3 등)이라는 문맥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본서의 도처에서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소멸의 동의어요 해탈-해탈지견과 유사한 의미이기도 하다.1) 더구나 이 소멸이야말로 불교의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가운데 세 번째인 저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다.2)
그러므로 열반은 궁극적 행복이요 그 궁극적 행복은 바로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성스러운 경지인 것이다.
열반의 실현이야말로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처님의 간곡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본 『상윳따 니까야』 와 다른 니까야들의 여러 곳에서 열반의 실현(nibbānassa sacchikiriya)은 강조되고 있으며(본서제4권 「열반 경」(S38:1) §4 등),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四念處]는 이러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본서 제5권 「암바빨리 경」(S47:1) §3 등) 『숫따니빠따』 는 "열반을 실현하는 것(nibbāna-sacchikiriya) 이야말로 으뜸가는 행복"(Sn.267 {267}) 이라 하여 열반의 실현을 궁극적 행복(parama-sukha)으로 부르고 있다.
2. 어떻게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
그러면 열반은 어떻게 해서 실현되는가? 만일 그 방법이 없이도 열반이 문득 실현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행심의 논리, 저 로또 복권의 논리이다.
열반은 당연히 수행을 통해서 실현된다. 수행을 초기불전에서는 바와나(bhāvanā)라는 술어로 총칭하고 있는데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바와나(수행)는 팔정도를 근간으로 하는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37보리분법, 조도품)'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무조건 37보리분법만 닦으면 열반을 실현하게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37보리분법을 닦기 위해서는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이해는 37보리분법의 근간이 되는 팔정도의 첫 번째인 정견의 내용이기도 하고, 칠각지의 택법각지이며, 오근 · 오력의 혜근 · 혜력(통찰지의 기능과 힘)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과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도는 더 이상 도가 아니며 그런 수행은 더 이상 수행이 아니어서,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는 형국이 되고 말거나 단지 용만 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가 없이 37보리분을 실천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緣起], 진리에 대한 바르고도 완전한 이해가 바로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와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르치고 있는 부처님 말씀을 우리는 부처님의 교학 혹은 교법이라 부르며 이런 체계를 법(dhamma)이라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오온(五蘊, panca-kkhandha)'이라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몸뚱이,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들[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의 적집일 뿐이라는 것이다.3)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12처(혹은 6내처와 6외처)로 말씀하셨다.4) 나와 세상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조물주니 절대자니 신이니 하는 어떤 힘센 존재가 만들어낸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나와 세상은 조건발생이요 여러 조건[緣,paccaya]들이 얽히고설키어서 많은 종류의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러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구명(究明)하여 그 괴로움을 없애야 저 해탈 · 열반은 실현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나와 세상에서 진행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철저하게 밝히시는데 이것이 바로 연기의 가르침이다.5) 이러한 나와 세상과 여기에 존재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과 소멸구조에 대한 연기적 관찰은 궁극적으로 진리[諦, sacca]라는 이름으로 체계화 되는데 그것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저 사성제라 부른다.6)
이처럼 교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37보리분법의 수행이 있어야 해탈 · 열반은 실현되는 것이다.
3. 불교의 인간관 · 세계관 · 연기관 · 진리관
한편 부처님은 붓다(Buddha)의 역어이며 붓다는 깨달은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깨달음(bodhi)을 실현한 분의 가르침이 곧 불교(Buddha-sāsana, 부처님의 교법)이며 이러한 불교의 궁극적 메시지는 당연히 깨달음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초기불전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성제를 깨달은 것으로 다른 하나는 연기의 가르침을 통해서 무명 등의 연기의 구성요소가 빛바래어 소멸한 것으로 나타난다.7)
여기서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멸성제)는 바로 열반을 뜻하고 이 열반의 실현이 사성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사성제를 깨닫는 것은 열반을 실현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 된다. 그리고 무명 등이 빛바래어 소멸함의 소멸은 여러 주석서에서 열반의 동의어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라한과의 실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아라한과의 실현이야말로 탐 · 진 · 치가 완전히 해소된 열반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열반의 실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
이처럼 오온, 12처(6내외처), 연기, 사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인간관 · 세계관 · 연기관 · 진리관이고 이것은 해탈 ·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이해다. 이것을 교학이라 부른다.
이처럼 불교는 인간과 세계와 연기와 진리에 대한 교학체계를 토대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무상 · 고 · 무아를 꿰뚫어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교학체계를 빠리얏띠(pariyatti, 배움)라 부르고, 37보리분법 등의 실천수행을 빠띠빳띠 (paṭipatti, 도닦음)라 하고, 꿰뚫음을 빠띠웨다(paṭivedha, 통찰)라 칭하는데이 셋을 불교의 근본주제라고 정리하고 있다.8)
그리고 이러한 교학과 수행은 다시 최종적으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귀결이 된다.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는 고성제의 내용이고, 나와 세상이 전개되고 그래서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구명한 것이 집성제이며, 이것은 갈애를 근본으로 한다.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모든 번뇌 혹은 속박, 족쇄, 폭류, 장애, 해로운 심리현상[不善法] 등이 해소되고 제거되고 소멸된 경지를 열반이라 하며, 이것은 세 번째 진리인 멸성제이다.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도닦음이라 하며, 이것이 바로 팔정도를 근본으로 하는 도성제이다. 이처럼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번역되는 사성제로 귀결이 된다.
4.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 온 ·처 · 계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
이처럼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은 온 · 처 · 연 · 제 혹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상좌부 불교의 근간이 되며 주석서 문헌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청정도론』 XIV.32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dhātu],][根, indriya],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ññā-bhūmi)이다."(Vis.XIV.32)라고 정의하여 불교교학의 근간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조석으로 독송되는 『반야심경』에도 기본교학은 온 · 처 · 계 · 제 · 연의 다섯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수행은 초기불전의 도처에 나타나는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된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교학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줄여서 온 · 처 · 제 · 연으로 정리가 되고, 초기불교의 수행은 37보리분법으로 집약이 된다.
5. 『상윳따 니까야』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
『상윳따 니까야』 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그 주제가 분명한 것을 주제별로 함께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경전군이다. 본 니까야는 56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상윳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해당되는 경들을 각각의 상윳따들에 담고 있다.
아래 §10에서 정리하고 있듯이 이러한 56가지 주제는 다시 크게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 ② 인물 중심 ③ 특정한 존재 중심 ④ 특정 부류의 인간 중심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가 본 니까야의 핵심이며, 이것은 26가지 주제로 분류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② 특정 인물을 주제로 삼은 상윳따 가운데 9개 상윳따는 모두 교학과 수행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들도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의 상윳따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이것은 전체 상윳따 주제의 70%에 가까운 것이다.
만일 이것을 경들의 숫자로 본다면, 『상윳따 니까야』의 전체 2904개의 경들 가운데 S1~S11과 S16, 21, 23, 29~32, 37, 41~42의 21개 상윳따에 포함된 614개의 경들을 제외한 2290개의 경들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으로 된 상윳따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전체의 80%에 가까운 경들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는 35개의 상윳따를 제외한 21개 다른 상윳따들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도 사실은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 중의 하나에 관계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본 『상윳따 니까야』의 경들의 핵심 주제는 모두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 가지 교학적 가르침과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는 수행에 대한 가르침으로 귀결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온 · 처 ·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과 『상윳따 니까야』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청정도론』 에서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으로 정리한 초기불교의 교학 가운데 온(무더기)은 본서 「무더기 상윳따」 (S22)와 S23, S24, S33의 주제이다. 처(감각장소)는 「육처 상윳따」 (S35)의 주제요, 계(요소) 「육처 상윳따」 (S35)와 「요소 상윳따」 (S14)의 주제이다. 근(기능)은 「기능 상윳따」 (S48)의 주제요, 제(진리)는 「진리 상윳따」 (S56)의 주제이며, 연(조건발생)은 「인연 상윳따」 (S12)의 주제이다.
그리고 「인연 상윳따」 (S12)와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와 「진리 상윳따」(S56)는 각각 빠알리어 원본 『상윳따 니까야』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의 핵심 주제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제2권과 제3권과 제4권은 책의 이름을 각각 『니다나 왁가』 (Nidāna Vagga, 인연 품), 『칸다 왁가』 (Khandha Vagga, 무더기 품), 『아야따나 왁가』 ( 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라고 붙였는데 더 풀어서 말하면 각각 '인연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오온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이 된다. 이처럼 이 셋은 각 권의 핵심 가르침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내용도 이들 세 권의 절반이나 절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37보리분법으로 정리한 초기불교의 수행은 모두 빠알리 원본 『상윳따 니까야』 제5권의 전반부인 S45부터 S51까지에서 기본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는 초기불교의 핵심 교학체계와 핵심 수행체계를 기본 주제로 하여 결집되었다.
6. 결집을 통한 법의 전승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직후에도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무르리라.'라고 하셨고,9) 45년간 제자들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 하셨으며,10) 사바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시는 반열반의 마지막 자리에서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11)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D16) §6.1)
부처님께서는 이처럼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기셨다. 그래서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은 부처님의 입멸이라는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뒤로 하고 부처님의 존체(尊體, sarīra, 舍利)요 부처님의 진정한 몸[法身]이며 부처님의 화현(avatāra)인 세존의가르침을 결집하는 일에 몰입하였다. 그들은 장장 일곱 달 동안12) 합송에 몰두하여 세존이 남기신 법과 율을 결집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일단 법의 바구니(Dhamma-Pitaka = Sutta-Pitaka, 經藏)와 율의 바구니(Vinaya-Pitaka, 律藏)라는 두 개의 바구니를 먼저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서 율의 바구니부터 먼저 채우기로 결의하였는데, 합송에 참석한 아라한들은 "마하깟사빠 존자시여, 율은 부처님 교법의 생명(ayu)입니다. 율이 확립될 때 교법도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율을 첫 번째로 합송해야 합니다."(DA.i.11)라고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법의 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하였는데, 법의 바구니는 다시 다섯 개의 니까야(Nikāya)로 나누어서 합송하였다.
일차합송에 참여한 아라한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정리한 기준은 길이와 주제와 숫자의 세 가지였다. 그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는 데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직계제자들의 설법들 가운데서 그 길이가 긴 경들 34개를 모아서 『디가 니까야』(長部)에 담았고, 중간 길이로 설하신 가르침들 152개를 합송해서 『맛지마 니까야』(中部)에 담았다. 그다음에는 설법의 주제별로 56개의 주제를 설정한 뒤 그 주제에 해당하는 경들을 함께 모아서(saṁyutta) 『상윳따 니까이』(相應部)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경들에 나타나는 가르침의 숫자[法數]에 주목하여 모두 하나부터 열하나까지의 법수를 가진 모음을 분류한 뒤 숫자별로 모아서 『앙굿따라 니까야』(增支部)로 합송(合誦, saṅgīti)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디가 니까야』등 네 가지 니까야를 완성한 뒤에 그외에 남은 부처님 말씀이나 여러 스님들의 설법이나 일화나 게송 등은 『쿳다까 니까야』(小部)에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합송하여 공인된 『디가 니까야』 (장부)에는 모두 34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분량은 64바나와라13)이며, 아난다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해서 그분들이 계승해 가도록 하였다. 『맛지마 니까야』 (중부)에는 모두 15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분량은 80바나와라이며, 사리빳따 존자의 제자들이 계승하도록 결의하였다. 『상윳따 니까야』 (상응부)에는 모두 7762개위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분량은 100바나와라이며, 마하깟사빠 존차의 제자들에게 부촉하여 전승하도록 하였다. 『앙굿따라니까야』 (증지부)에는 모두 9557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120바나와라 분량이며, 아누룻다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해서 전승하도록 하였다 한다.14)
7. 『상윳따 니까야』 란 무엇인가
주석서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는 4부 니까야 가운데 세 번째에 결집한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듯이 부처님 가르침을 결집한 첫 번째 기준은 가르침의 길이이다. 그래서 가장 길이가 긴 것 34개를 모아서 『디가 니까야』 (길게 설하신 니까야)로 이름을 붙였으며, 그 다음으로 긴 경들 152개를 모아서 『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니까야)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남은 경들을 어떤 기준을 통해서 다시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 첫 번째 기준은 그 가르침의 주제이고 두 번째 기준은 그 가르침에 포함된 주제의 숫자이다. 첫 번째 기준으로 모은 것을 『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니까야)라 하며 두 번째 기준으로 모은 것을 『앙굿따라 니까야』 (숫자별로 모은 니끼야)라 한다.
문자적으로 상윳따(Saṁyutta)는 sarh(함께)+√ yuj(to tie, to bound)에서 파생된 과거분사로 '함께 모아진 것, 함께 묶여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오온이나 사성제나 육처와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가르침들을 모두 모아서 묶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역자는 이것을 '주제별로 묶은 것'이라고 의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진리 상윳따」 (S56)는 진리 즉 사성제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경들을 모두 함께 묶은 것이라는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것을 『상윳따 니까야』 로 음역하여 옮겼으며 '주제별로 모은 경'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일본에서는 『상윳따 니까야』 를 '상응부(相應部)'로 옮겼다.
『상윳따 니까야』에는 모두 56개의 주제별로 묶은 가르침 즉 상윳따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56개의 상윳따는 다섯 권으로 편집되어 전승되어 오는데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을 주제별로 묶은 11개의 상윳따(S1~S11)는 제1권에 포함되어 있고, 연기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상윳따(S12~S21)는 제2권에, 오온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3개의 상윳따(S22~S34)는 제3권에, 육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상윳따(S35~S44)는 제4권에, 끝으로 37보리분법과 사성제 등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12개의 상윳따(S45~S56)는 제5권에 포함되어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가운데 분량이 많은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제4권에는 8개의 상윳따(S35~S42)를 포함시켰고, 제5권에도 8개의 상윳따(S43~S50)를, 제6권에는 나머지 6개의 상윳따(S51~S56)를 담아서 모두 여섯 권으로 출간하였다.
한편 이러한 주제별로 경들을 모아서 엮는 방식은 이미 『디가 니까야』의 제1권인 『계온품』(계의 무더기[戒蘊]를 중심에 둔 품)에도 채용되어 나타난다. 『계온품』에 포함되어 나타나는 13개의 경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계의 무더기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디가 니까야』 제1권의 이름을 『계온품』으로 지은 것이다. 그 외에도 『앙굿따라 니까야』 등에도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경들은 같은 품으로 묶어서 편집하였는데 경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결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교단뿐만 아니라 이미 인도의 여러 종교계 혹은 사상계에서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교설의 분류방법이기도 하다.
부처님 말년에 이를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해졌다. 이러한 많은 가르침을 어떻게 모아서 노래하고 기억하여 후대로 전승해 줄 것인가는 직계제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방대한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모아서 전승시킬 것인가? 그것은 기존의 인도 종교계의 전통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불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인도의 여러 바라문 가문들은 각 가문이 속하는 문파에 따라서 『베다 본집』(本集, Saṁ-hitā)과 『제의서』(祭儀書, Brāhmaṇa)와 『삼림서』(森林書, Āraṇyaka)와 『비의서』(秘義書, Upaniṣad)를 모아서 노래의 형태로 전승해 오는 전통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전체 10장(만달라, Maṇḍala)으로 구성되어 있는 『리그베다』 의 2장부터 7장까지는 『리그베다』 파에 속하는 바라문 가문들에서 전승되어 오던 찬미가(sūkta)를 각각 가문별로 모은 것이다.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 제1권 「암밧타 경」 (D3 §2.8)에서 언급되고 있는 유명한 바라문 가문들 가운데 하나인 웻사미따(Sk.Viśvāmitra)는 『리그베다』 3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며, 와마데와(Sk.Vāmadeva)는 4장을,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6장을, 와셋타(Sk.Vasiṣṭha)는 7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다. 그리고 8장은 깐와와 앙기라스 두 가문의 전승을 모은 것이며, 9장은 제사에서 아주 중요한 소마(Soma) 즙에 관계된 찬미가들을 모은 것이다. 1장과 10장은 일종의 잡장(雜藏)인데 가문과 관계없는 시대적으로 늦은 찬미가들을 모아서 구성한 만달라이다.
그리고『리그베다』 의 각 장은 모두 다시 주제별로 모아져 있는데, 먼저 바라문들의 신인 아그니(Agni, 불의 신)에 관계된 찬미가를 모으고, 다음은 인드라, 그다음은 다른 여러 신들의 순서로 모았다. 이처럼 이미 불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바라문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그들의 찬미가를 모아서 노래로 전승하고 있었다.
인도 종교계의 사정이 이러하였기 때문에 불교교단도 부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방법론을 그대로 받아 들였으며, 특히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깟사빠 존자와 같은 바라문 가문 출신들에게는 자연스런 추세였을 것이다.
아무튼 긴 길이의 경들을 『디가 니까야』 로 모으고 중간 길이의 경들을 『맛지마 니까야』 로 모은 뒤에, 남은 경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한 『상윳따 니까야』 와 숫자를 중심으로 한 『앙굿따라 니까야』 로 분류하여 결집하였다.
그런데 중요 주제 즉 불교의 중요한 법수들은 모두 숫자별로도 분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들은 『상윳따 니까야』에도 포함될 수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에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성제는 『상윳따 니까야』의 진리라는 주제 즉 「진리 상윳따」 (S56)에도 포함될 수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 의 「넷의 모음」 (A4)에도 포함될 수 있다. 오온은 『상윳따 니까야』「무더기 상윳따」 (S22)와 『앙굿따라 니까야』「다섯의 모음」(A5)에, 육처는 「육처 상윳따」 (S35)와 「여섯의 모음」 (A6)에, 칠각지는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S46)와 「일곱의 모음」(A7)에, 팔정도는 「도 상윳따」 (S45)와 「여덟의 모음」 (A9)에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상윳따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로 다르게 분류되었을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온 · 처 · 계 · 근 · 제 · 연과 37보리분법과 같은 중요한 주제들은 모두 주제별로 묶은 가르침 즉 『상윳따 니까야』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합송에 참여한 직계제자 들은 먼저 26개의 법수를 중심으로 한 중요 주제들을 선정하고 여기에 관계된 가르침들을 각각의 상윳따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나 목갈라나 존자 등 중요한 인물 15명을 선정하여 이들과 관계된 경들을 각각의 인물을 제목으로 하는 상윳따에 모으고, 천신이나 약카 등의 존재들 가운데 8가지를 선정하여 역시 이들과 관계된 경들을 각각의 제목으로 하고 있는 상윳따에 모으고, 그 밖에 비구니 등 특정 부류의 인간들과 숲(S9), 비유(S20) 등을 주제로 하는 7개의 상윳따를 결집하였다. 이렇게 모두 56개의 주제를 선정하고 각 주제에 해당하는 경들을 『상윳따 니까야』 로 먼저 결집하였다.
그런 뒤에 이러한 56개의 주제와 관련 없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들은 그 경들이 담고 있는 가르침의 숫자에 따라서 『앙굿따라 니까야』 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예를 들면, 사성제에 관한 경들은 거의 모두 『상윳따 니까야』 의 「진리 상윳따」 (S56)에 포함되어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의 「넷의 모음」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온, 육처, 연기 등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여서 각각 『상윳따 니까야』의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 (S47), 「바른 노력 상윳따」 (S49), 「성취수단 상윳따」 (S51), 「무더기 상윳따」 (S22), 「육처 상윳따」 (S35), 「인연 상윳따」 (S12)에 포함되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의 「넷의 모음」(A4)이나 「다섯의 모음」 (A5)이나 「여섯의 모음」 (A6) 등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윳따 니까야』 에는 탐 · 진 · 치에 관한 상윳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탐 · 진 · 치에 관계된 가르침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셋의 모음」 (A3)에 포함되어 결집되었다.
그런데 본서 제4권 「여인 상윳따」 (S37)에 포함된 34개의 경들은 여인의 특질을 '믿음, 계의 증장, 통찰지, 보시, 배움'(S37:34)과 같은 주로 다섯 가지 법수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들은 교학이나 인물의 중요 주제로 보기보다는 숫자별로 모으는 것이 더 나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다섯의 모음」(A5) 등에 포함시키지 않고 『상윳따 니까야』에 「여인 상윳따」 (S37)라는 주제를 설정하여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구차제멸(九次第滅)의 가르침도 『상윳따 니까야』에서 특정한 주제로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르침들은 대부분 『앙굿따라 니까야』 의 「아홉의 모음」 (A9)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역자의 생각으로는 4禪-4처-상수멸의 구차제멸(九次第滅)의 가르침은 여인보다는 중요한 주제인 듯한데 이것은 『상윳따 니까야』에 가칭 '차제멸 상윳따'라는 주제를 설정하지 않고 『앙굿따라 니까야』 의 「아홉의 모음」(A9)에 포함시키고 있다. 물론 본서 제3권 「사리뿟따 상윳따」 (S28)와 제4권 「목갈라나 상윳따」 (S40)에 구차제멸의 가르침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 외 법(法, dhamma)과 율(律, vinaya)을 『율장』 과『경장』과『논장』의『삼장』(三藏, Tipiṭaka)으로 조직한 상세한 내용은 역자가 번역하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판한 『디가 니까야』 제3권의 부록으로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는 『디가 니까야 주석서』 서문의 §§30~48에 잘 나타나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이 부분은 상좌부 전통에서 본 빠알리 삼장의 조직체계를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역자의 보충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제1권 역자 서문에서도 법과 율의 결집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그곳을 참조하기 바란다.
8. 『상윳따 니까야』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 는 1차결집을 주도했고,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연장자였으며, 120세까지 살았고(AA.iii.243~244), 평생을 부처님께서 주신 누더기 한 벌을 입고 지내는 두타행을 실천했으며(S16:5 §3이하; S16:11 §§13~14), 80세가 된 아난다 존자를 젊은이라 불렀던 (S16:11 §5)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이 후대로 전승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가진 이러한 권위를 일차합송에 참석한 500명의 아라한들이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그는 니까야들 가운데서도 주제별로 교법(sāsana)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상윳따 니까야』 를 전승할 책임을 맡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상윳따 니까야』 는 주제별로 분류한 56개의 상윳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제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주제(S1) 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제2주제(S2) 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제3주제(S3) 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제4주제(S4) 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제5주제(S5) 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제6주제(S6) 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제7주제(S7) 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제8주제(S8) 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제9주제(S9) 숲 상윳따(Vana-saṁyutta)
제10주제(S10) 약카 상윳따(Yakkha-saṁyutta)
제11주제(S11) 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제12주제(S12) 인연 상윳따(Nidāna-saṁyutta)
제13주제(S13) 관통 상윳따(Abhisamaya-saṁyutta)
제14주제(S14) 요소 상윳따(Dhātu-saṁyutta)
제15주제(S15)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Anamatagga-saṁyutta)
제16주제(S16) 깟사빠 상윳따(Kassapa-saṁyutta)
제17주제(S17) 이득과 존경 상윳따(Lābhasakkāra-saṁyutta)
제18주제(S18) 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ṁyutta)
제19주제(S19) 락카나 상윳따(Lakkhaṇa-saṁyutta)
제20주제(S20) 비유 상윳따(Opamma-saṁyutta)
제21주제(S21) 비구 상윳따(Bhikkhu-saṁyutta)
제22주제(S22) 무더기[蘊] 상윳따(Khanda-saṁyutta)
제23주제(S23) 라다 상윳따(Rādha-saṁyutta)
제24주제(S24) 견해 상윳따(Diṭṭhi-saṁyutta)
제25주제(S25) 들어감 상윳따(Okkanti-saṁyutta)
제26주제(S26) 일어남 상윳따(Uppāda-saṁyutta)
제27주제(S27) 오염원 상윳따(Kilesa-saṁyutta)
제28주제(S28) 사리뿟따 상윳따(Sāriputta-saṁyutta)
제29주제(S29) 용 상윳따(Nāga-saṁyutta)
제30주제(S30) 금시조 상윳따(Supaṇṇa-saṁyutta)
제31주제(S31) 간답바 무리 상윳따(Gandhabbakāya-saṁyutta)
제32주제(S32) 구름의 신 상윳따(Valāhaka-saṁyutta)
제33주제(S33) 왓차곳따 상윳따(Vacchagotta-saṁyutta)
제34주제(S34) 선(禪) 상윳따(Jhāna-sṁyutta)
제35주제(S35) 육처 상윳따(Saḷāyatana-saṁyutta)
제36주제(S36) 느낌 상윳따(Vedanā-saṁyutta)
제37주제(S37) 여인 상윳따(Mātugāma-saṁyutta)
제38주제(S38) 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ṁyutta)
제39주제(S39) 사만다까 상윳따(Sāmaṇḍaka-saṁyutta)
제40주제(S40) 목갈라나 상윳따(Moggalāna-saṁyutta)
제41주제(S41) 찟따 상윳따(Citta-saṁyutta)
제42주제(S42) 우두머리 상윳따(Gāmani-saṁyutta)
제43주제(S43) 무위 상윳따(Asaṅkhata-saṁyutta)
제44주제(S44)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Avyākata-saṁyutta)
제45주제(S45) 도 상윳따(Magga-saṁyutta)
제46주제(S46)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Bojjhaṅga-saṁyutta)
제47주제(S47)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atipaṭṭhāna-saṁyutta)
제48주제(S48) 기능[根] 상윳따(Indriya-samyutta)
제49주제(S49) 바른 노력 상윳따(Sammappadhāna-saṁyutta)
제50주제(S50) 힘 상윳따(Bala-saṁyutta)
제51주제(S51) 성취수단[如意足] 상윳따(Iddhipāda-saṁyutta)
제52주제(S52) 아누룻다 상윳따(Anuruddha-saṁyutta)
제53주제(S53) 선(禪) 상윳따(Jhāna-saṁyutta)
제54주제(S54) 들숨날숨 상윳따( Ānāpāna-saṁyutta)
제55주제(S55) 예류 상윳따(Sotāpatti-saṁyutta)
제56주제(S56) 진리[諦] 상윳따(Sacca-saṁyutta)
한편 이들 56개 상윳따들은 Ee, Be, Se 등의 모든 판본과 필사본에서 모두 다섯 권으로 편찬되어서 전승되고 있다. 이 가운데 S1부터 S11까지는 제1권에 포함되어 있는데 인들 11개의 상윳따는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1권을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ā-vagga)이라 부른다. Ee1에 의하면 제1권은 240쪽으로 되어 있다.
S12부터 S21까지 10개의 상윳따는 제2권에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인연 상윳따」 (S12)가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면서 연기(綠起)의 가르침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에 제2권은 전통적으로 인연을 위주로 한] 가르침(Nidāna-vagga)이라 부르며 역자는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에 의하면 제2권은 285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제3권에는 S22부터 S34까지 13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인 「무더기 상윳따」 (S22)가 절반이 넘는 분량이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제3권은 무더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Khandha-vagga)이라 부르고 있는데 역자는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에 의하면 제3권은 279쪽으로 편성되어 있다.
제4권에는 S35부터 S44까지 10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인 「육처 상윳따」 (S35)가 거의 삼분의 이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어서 제4권은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Saḷāyatana-vagga)이라 불린다. 역자는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으로 옮겼다. Ee의 제4권은 403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권은 S45부터 S56까지 12개의 상윳따로 구성되어 있는데 37보리분법을 위시한 불교 수행을 총망라하고 있으며(S45~54)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담고 있는 「진리 상윳따」 (S56)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제5권은 큰 가르침을 담은 가르침(Mahā-vagga)이라 불리고 있다. Ee의 제5권은 478쪽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런데 제4권과 제5권, 특히 제5권은 그 분량이 제1권의 두 배에 해당하는 분량이라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빠알리 원본의 제4권과 제5권을 세 권으로 나누어서 번역 ·출판하고 있다. 즉 1/2/3권은 빠알리 원본과 같이 출간하였으며, 본원에서 출간한 제4권은 S35부터 S42까지의 8개 상윳따를 담고 있고, 제5권은 S43부터 S50까지의 8개 상윳따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제6권은 S51부터 S56까지의 6개 상윳따를 포함하고 있다.
56개로 분류된 각 상윳따들은 많은 경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디가니까야 주석서』 (DA)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 는 모두 7762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15) 이것은 9557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앙굿따라 니까야』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이렇게 주제별로 상윳따로 분류된 경들은 그 숫자가 100개가 넘을 경우에 다시 50개씩의 경들로 묶어서 분류하고 있는데 이것을 '50개 경들의 묶음(Paṇṇāsaka)'이라 부르고 있다. 빤나사까(Paṇṇāsaka)는 문자 그대로 '50개로 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한 묶음에 포함된 50개의 경들은 다시 5개의 '품(Vagga)'으로 분류가 되는데, 하나의 품은 기본적으로 10개씩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조직하여 전체 7762개의 경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상윳따 니까야』 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맛지마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에도 적용되는 공통적인 방법이다. 『맛지마 니까야』 는 152개의 경들을 모두 50개씩 세 개의 묶음으로 분류한 뒤에 이 셋을 각각 제1권과 제2권과 제3권(52개의 경)에 담고 있다. 이러한 '50개 경들의 묶음'은 다시 각각 다섯 개의 품으로 분류가 되며, 각 품은 10개씩의 경을 포함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에 포함된 9557개의 경들은 모두 각 경에 포함된 주제의 숫자가 몇 개인가에 따라서 모두 11개 모음(A1~A11)으로 분류하였으며, 각각의 모음들 가운데 많은 경을 포함한 모음은 다시 50개 씩의 묶음과 품으로 분류하여 편집하였다.
한편『디가 니까야』에 포함된 경들은 34개뿐이라서 50개의 묶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품별로 3개의 품으로 나누어서 각각을 『계온품』 (D1~D13의 13개 경들), 『대품』 (D14~D23의 10개 경들), 「빠띠까 품』 (D24~D34의 11개 경들)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셋을 각각 제1권과 제2권과 제3권에 담고 있다. 이처럼 모든 니까야에서 많은 경들을 배열하는 데는 이러한 공통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같은 주제별 묶음인 특정 상윳따 안에서 경들의 순서를 정하는 정해진 원칙이 있는가? 원칙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은 많지만 모든 묶음들과 품들이 반드시 정해진 원칙에 의해서 결집된 것은 아닌 듯 하다.
9. 『상윳따 니까야』의 경은 모두 몇 개인가?
『디가 니까야 주석서』 등에 의하면 『상윳따 니까야』 에는 모두 7762개의 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DA.i.25)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쪽의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나 Ee에는 2889개의 경들로 편집되어 나타나며 Be에는 2908개, Se에는 모두 7656개의 경으로 편집되어 있다. 역자는 본서에서 모두 2904개의 경들로 편집해서 옮겼다. 다음 쪽의 도표는 이들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각 판본마다 이렇게 경의 숫자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내용상에는 다른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같은 내용을 두고 어떻게 편집했는가 하는데 따라서 이렇게 경들의 숫자가 다르게 된것이다. Se와 Ee와 Be와 같은 이러한 판본들뿐만 아니라 이 외의 스리랑카나 태국 등의 여러 공식 판본과 필사본까지도 단어의 철자법이 다른 부분이 적지 않게 있고 혹 문장이 생략된 부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경이 새로 첨가된다거나 특정한 경이 생략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차례
상윳따
Ee
Be
Se
본서
품수
S1
천신
81
81
81
81
8
S2
신의 아들
30
30
30
30
3
S3
꼬살라
25
25
25
25
3
S4
마라
25
25
25
25
3
S5
비구니
10
10
10
10
1
S6
범천
15
15
15
15
2
S7
바라문
22
22
22
22
2
S8
왕기사 장로
12
12
12
12
1
S9
숲
14
14
14
14
1
S10
약카
12
12
12
12
1
S11
삭까
25
25
25
25
3
소계
11개 상응
271
271
271
271
28
S12
인연
93
93
213*
93
9
S13
관통
11
11
1116)
11
1
S14
요소[界]
39
39
39
39
4
S15
시작 없음
20
20
20
20
2
S16
깟사빠
13
13
13
13
1
S17
이득·존경
43
43
43
43
4
S18
라훌라
22
22
22
22
2
S19
락카나
21
21
21
21
2
S20
비유
12
12
12
12
1
S21
비구
12
12
12
12
1
소계
10개 상응
286
286
406
286
27
S22
무더기[蘊]
158*
159
159
159
15
S23
라다
46
46
46
46
4
S24
견해
114*
96
96
96
4
S25
들어감
10
10
10
10
1
S26
일어남
10
10
10
10
1
S27
오염원
10
10
10
10
1
S28
사리뿟따
10
10
10
10
1
S29
용
50
50
50
50
1
S30
금시조
46
46
46
46
1
S31
간답바
112
112
112
112
1
S32
구름의 신
57
57
57
57
1
S33
왓차곳따
55
55
55
55
1
S34
선(禪)
55
55
55
55
1
소계
13개 상응
733
716
716
716
33
S35
육처
207*
248
248
248
19
S36
느낌
29*
31
3117)
31
3
S37
여인
34
34
36*
34
3
S38
잠부카다까
16
16
16
16
1
S39
사만다까
16
16
16
16
1
S40
목갈라나
11
11
57*
11
1
S41
찟따
10
10
10
10
1
S42
우두머리
13
13
13
13
1
S43
무위
44
44
1848
44
2
S44
무기(無記)
11
11
11
11
1
소계
10개 상응
391
434
2286
434
33
S45
도(道)
180
181*
546*
180
16
그러면 Se는 왜 다른 판본들보다 거의 세 배에 달하는 경들의 숫자로 편집하였을까? 이것이 승가의 전통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거듭 밝히지만 주석서에서는 전통적으로 『상윳따 니까야』 에는 모두 7762개의 경들이 들어 있다고 간주한다. 주석서 문헌들은 붓다고사를 위시한 스님들이 모두 스리랑카에서 편찬한 문헌들이다. 그러다 보니 Se는 스리랑카에서 편찬된 이러한 주석서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경의 개수를 매기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0.『상윳따 니까야』 의 주제
먼저 『상윳따 니까야』에 포함되어 있는 56개의 상윳따는 ①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이냐 ② 인물 중심이냐 ③ 특정한 존재 중심이냐 ④ 특정 부류의 인간 중심이냐는 네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분류해서 도표로 나타내보면 다음 쪽의 도표와 같다.
한편 특정 인물을 주제로 삼은 상윳따 가운데 「라훌라 상윳따」 (S18)에 포함된 모든 경들은 육처와 여러 가지 요소와 오온(처 · 계 ·온)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락카나 상윳따」 (S19)는 신통을, 「라다 상윳따」 (S23)는 오온을, 「사리뿟따 상윳따」 (S28)는 9禪을, 「왓차곳따 상윳따」 (S33)는 오온을, 「잠부카다까 상윳따」 (S38)는 멸(열반)과 도를, 「사만다까 상윳따」 (S39)도 멸(열반)과 도를, 「목갈라나 상윳따」 (S40)는 9禪을, 「아누룻다 상윳따」 (S52)는 마음챙김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과 수행의 주제 중심의 상윳따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면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분류 기준
상윳따
합계
비율
교학과 수행의주제
연기(S12), 관통(S13), 요소(S14), 시작없음(S15), 이득·존경(S17), 온(S22), 견해(S24), 들어감(S25), 일어남(S26), 오염원(S27), 禪(S34), 육처(S35), 느낌(S36), 무위(S43), 무기(S44), 도(S45), 각지(S46), 염처(S47), 기능(S48), 바른 노력(S49), 힘(S50), 성취수단(S51), 禪(S53), 들숨날숨(S54), 예류(S55), 진리(S56)
26개
46%
특정 인물
꼬살라(S3), 마라(S4), 왕기사(S8), 삭까(S11), 깟사빠(S16), 라훌라(S18), 락카나(S19), 라다(S23), 사리뿟따(S28), 왓차곳따(S33), 잠부카다까(S38), 사만다까(S39), 목갈라나(S40), 찟따(S41), 아누룻다(S52)
15개
14%
특정 존재
천신(S1), 신의 아들(S2), 범천(S6), 약카(S10), 용(S29), 금시조(S30), 간답바(S31), 구름의 신(S32),
8개
14%
특정 부류
비구니(S5), 바라문(S7), 비구(S21), 여인(S37), 우두머리(S42)
5개
9%
기타
숲(S9), 비유(S20)
2개
4%
이렇게 『상윳따 니까야』 에 나타나는 35개의 주제에 관한 상윳따를 다시 교학과 수행과 증득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해 보면, 아래의 도표와 같다. 여기서 교학에 관한 것으로는 오온 등의 여덟 가지 주제가 설해지고 있고, 수행에 관한 것은 37보리분법의 일곱 가지 주제에다 삼매(禪)를 포함한 여덟 가지 주제가 나타나고 있으며, 증득에 관한 것으로는 사성제와 열반과 신통과 예류의 네 가지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20가지 주제로 재분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8가지 교학, 8가지 수행, 4가지 증득으로 분류되는 20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압축된다.
주제
상윳따 번호
교학
오온
22 23 24 33
처 · 계
35 14
처 · 계 · 온
18 25 26 27
연기
12
느낌
36
윤회
15
이득 · 존경
17
10사 무기
44
수행
도
45 38 39 43
마음챙김
47 52 54
삼매(禪)
28 24 40 53
4여의족
51
4정근
49
5근 · 5력
48 50
7각지
47
증득
4성제
56 13
멸과 도
38 39 43
신통
21
예류
55
① 온 ·처 ·계 · 연 등으로 해체한다. 해체하면 무상 · 고 · 무아가 보인다. 그러면 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 해탈-구경해탈지가 드러난다.(8가지 교학)
② 염오-이욕 해탈-구경해탈지를 체득하는 수행방법으로는 37보리분법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팔정도와 마음챙김이 강조되고 있다.(8가지 수행)
③ 이렇게 해서 사성제를 통달하고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증득하고 실현한다.(4가지 증득)
11. 『상윳따 니까야』의 특징
(1) 주제별로 모았다
『상윳따 니까야』의 가장 큰 특징은 부처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 니까야에는 불교의 기본 법수와 교학체계가 총망라되고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상좌부 불교의 근간이 되며 주석서 문헌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청정도론』 XIV.32에서 저자 붓다고사 스님은 "여기서 무더기[蘊, khandha], 감각장소[處, āyatana], 요소[界, dhātu], 기능[根, indri-yal, 진리[諦, sacca],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ṇṇā-bhūmi)이다."(Vis.XIV.32)라고 정의하여 불교교학의 근간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의 여섯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붓다고사스님은 『디가 니까야 주석서』 (DA)와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MA)와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 (SA)와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 (AA)와 『율장 주석서』(VinA) 서문들에서 공히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초월지들과 통찰지[慧]의 정의를 내리는 것과
무더기[蘊] · 요소[界] · 감각장소[處] · 기능[根]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諦]와 여러 조건[緣=緣起]의 가르침과
극히 청정하고 능숙한 방법과 경전을 벗어나지 않은 도(道)와
위빳사나 수행 -이 모든 것은
내가 지은 『청정도론』에서 아주 청정하게 [설명되었다.]"18)
여기서 초월지는 abhiṇṇā를 옮긴 것인데 이것은 여섯 가지 신통의 지혜(육신통)를 말한다. 이 가운데 천음의 다섯 가지 신통은 반드시 제4禪이 토대가 되어야 하며19) 이것은 사마타 혹은 삼매수행으로 정리가 된다. 본서에서 삼매수행은 두 개의 「선(禪) 상윳따」 (S34, S52)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신통의 지혜는 본서 제6권 「이전 경」(S51:11) §8 이하 등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반야(般若, paṇṇā, 慧)로 알려진 통찰지는 오근 · 오력의 통찰지의 기능과 힘[慧根 ·慧力]으로 정의 되어, 본서 제5권 「기능[根] 상윳따」 (S48)의 모든 곳을 위시한 본서 여러 곳에 나타난다. 통찰지의 정의는 본서 제5권 「분석 경」 1(S48:9) §8을 참조할 것. 그리고 무더기(온)는 S22에, 감각장소(처)는 S35에, 요소(계)는 S14에, 기능(근)은 S48에 정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사성제(제)는 S56에, 연기의 가르침(연)은 S12에, 도는 S45부터 S51까지에서 37보리분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위빳사나 수행은 염오20)라는 술어로 여러 상윳따에서 아주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붓다고사 스님은 이처럼 불교의 교학을 온 · 처 · 계 · 근 · 제 · 연으로, 불교의 수행을 도(팔정도)를 근본으로 하는 37보리분법과 사마타와 위빳사나로 정리하고 있는데, 방금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가르침들은 모두 『상윳따 니까야』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 에는 불교의 기본 법수와 교학체계가 총망라되고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불교교학의 기본 법수인 온 · 처 · 연은 각각 『상윳따 니까야』 제3권과 제4권과 제2권의 이름으로 채택되어서 각각 『칸다왁가』 (Khandha Vagga, 무더기 품, 오온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아따나 왁가』 (Āyatana Vagga, 감각장소 품, 여섯 감각장소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 『니다나 왁가』 (Nidāna Vagga, 인연 품, 인연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책)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불교 수행의 기본법수인 37보리분법과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 등을 담고 있는 제5권은 『마하왁가』 (Mahā-vagga, 대품, 큰 가르침을 담은 책)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상윳따 니까야』 는 불교의 중요한 주제를 주제별로 총망라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논장』의 『위방가』(分別論, Vbh)에서 최종적으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22근의 가르침은 다른 니까야들에서는 22가지가 다 나타나지 않지만 본서 「기능 상윳따」 (S48)에 모두 다 나타나고 있다.
(2) 간단명료하면서도 불교의 핵심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이 동의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4부 니까야로 나눈 주요 기준은 경의 길이이다. 그래서 첫 번째 니까야는 길게(dīgha) 설하신 경들을 모은 것이라고 해서 『디가 니까야』라 불렀고, 두 번째 니까야는 중간 길이(majjhima)의 말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해서 『맛지마 니까야』 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렇게 먼저 상대적으로 긴 가르침들을 뽑아서 처음 두 개의 니까야에 모았기 때문에 나머지 경들을 담고 있는 『상윳따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다.
그러면 단순히 경의 길이만이 4부 니까야로 나눈 기준이 되었을까? Joy Manné 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21) 그녀에 의하면 『디가 니까야』는 특히 새로운 종교인 불교의 대외적인 포교에 역점을 두어 당시 여러계층의 사람들을 불교로 받아들이기 위한 가르침을 위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특히 『디가 니까야』 제1권 『계온품』에 포함된 경들을 들 수 있다. 제1권의 13개 경들 가운데서 청법자는 바라문이 여섯 군데에, 외도 유행승들이 세 군데에, 통치자(왕과 태수)가 두 군데에, 장자가 한 군데에 나타나고 있다. 세존께서는 이들에게 불교를 계 · 정 · 혜 혹은 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으로 불교의 대의를 천명하고 계신다. 제1권 『계온품』에서 비구들이 청법자(聽法者)가 된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다.
그렇다면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를, 특히 『상윳따 니까야』를 결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대적으로 긴 경들을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로 모으고 남은 경들을 단순히 주제나 주제의 숫자라는 기준만을 세워서 그냥 모아서 담아놓은 것일까?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첫째, 이 두 니까야 특히 『상윳따 니까야』에는 경을 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생략되어서, 나타나지 않거나 최소화 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에는 경을 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대부분 아주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상윳따 니까야』 에는 이러한 경을 설하게 된 배경이 단 한 줄로, 아니 sāvatthi-nidānaṁ(사왓티에서의 인연)이나 sāvatthiyaṁ viharati(사왓티에 머무셨다)라는 단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하는 표현으로 끝나버린다.
둘째, 대부분의 경들은 제자들이나 청법자들의 질문이 없이 세존께서 바로 특정 주제에 대한 설법을 시작하신다.
셋째, 때로 『상윳따 니까야』의 어떤 경들은 뛰어난 직계 제자들 간의 단도직입적인 대화로 진행이 된다.
넷째, 많은 경들은 몇 개의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 하나의 핵심 단어만 바뀌어서 여러 경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곳도 많다.22)
다섯째, 「상윳따 니까야』에는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을 모은 제1권의 몇몇 상윳따를 제외하면 비불교인들이나 불교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나 존재들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그리고 재가자들에게 설한 가르침도 많지 않다. 재가자들을 위한 보시와 지계와 천상에 태어나는 것[施 · 戒 · 生天]을 강조한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앙굿따라 니까야』에 풍부하게 나타난다.
일곱째, 나아가서 『상윳따 니까야』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들을 위한 가르침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대신에 이미 법에 대한 확신이 굳건하고 교학과 수행에 이미 깊이 들어간 구참 출가자를 위한 가르침이며 「찟따 상윳따」 (S41)에서 보듯이 찟따 장자와 같은 교학과 수행에 관한한 재가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리는 그런 뛰어난 재가자들과 관계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이런 점들을 통해서 보자면 『상윳따 니까야』는 해탈 · 열반의 실현에 대한 부처님의 단도직입적이고, 불교에만 존재하는 유일하고 독특한 통찰과 직관을 담고 있는, 간단명료하고 분명하며, 그러나 음미할수록 심오해지고 어려워지는 그러한 가르침을 위주로 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승가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법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자들인 비구나 비구니들이다. 이들은 통찰지의 가장 깊은 특질까지 모두 꿰뚫어 본 분들이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제2/3/4/5/6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연기의 가르침(제2권)과 오온의 가르침(제3권)과 육처의 가르침(제4권)과 37보리분법의 가르침(제5권)과 사성제의 가르침(제6권)은 법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탐구하여 이것을 동료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이러한 뛰어난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서 제1권 「비구니 상윳따」 (S5)에 나타나는 게송들은 그 당시 비구니 스님들의 심오한 통찰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된다.
두 번째 부류는 기본단계의 수행을 이미 성취한 비구나 비구니들이다. 본서의 많은 가르침들은 이들이 부처님의 더 깊은 말씀을 듣고 해탈 · 열반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특히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와 「도 상윳따」 (S45) 등의 37보리분법의 가르침과 「진리 상윳따」 (S46) 등에 나타나는 짧은 가르침들은 이들에게 교학과 수행의 지침서가 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는 이처럼 이들에게 교학과 수행의 지침이 되는 간단명료한 가르침들을 위주로 해서 모은 것이다. 특히 본 상윳따의 400군데가 넘는 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오온과 12처 등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 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 해탈지를 성취한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르침과, 그 방법론으로 설해지는 37보리분법의 가르침은 아마 이들에게 교학을 공부하고 수행을 실천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
(3) 깨달음의 실현 방법을 정확하게 밝힌다
『상윳따 니까야』 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궁극적인 행복인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은 모두 깨달음의 증득 혹은 궁극적 행복의 실현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으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는가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쾌한 가르침들을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상윳따들에서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나는 깨달음을 실현하는 방법을 몇 가지로 분류해서 살펴보자.
①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과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통해서
『상윳따 니까야』 뿐만 아니라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깨달음을 실현 하는 방법 가운데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 혹은 염오-이욕 소멸의 정형구이다.
「무더기 상윳따」 (S22)에 나타나는 77개의 경들은 모두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설하고 있는 경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상윳따에 포함된 159개의 경들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경들이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설하고 있다.
「육처 상윳따」 (S35) 가운데서 안과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 · 고 · 무아 셋 다가 나타나는 경은 43개이며, 무상만이 나타나는 것은 40개, 괴로움만이 나타나는 것은 35개, 무아만이 나타나는 것은 31개이다. 이렇게 하여 248개 경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9개 정도의 경이 안의 감각장소나 밖의 감각장소의 무상이나 괴로움이나 무아를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라훌라 상윳따」 (S18)의 22개 경들 가운데서 20개 경들도 온 · 처 · 계의 무상 · 고 · 무아를 설하고 있다. 「견해 상윳따」 (S24)의 96개 경들과 「들어감 상윳따」 (S25)의 10개의 경들과 그 외 다른 상윳따에 포함된 적지 않은 경들에서도 무상 · 고 · 무아는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상윳따 니까야』에는 적어도 400개 이상의 경들이 무상 · 고 · 무아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연결된다. 주석서들은 한결같이 염오를 강한 위빳사나로 이욕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로 해탈은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로 구경해탈지는 반조의 지혜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 제2권의 「시작을 알지 못함 상윳따」 (S15)에 포함된 20개의 경들 전부도 무상 · 고 · 무아의 정형구는 나타나지 않지만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諸行]은 모두 염오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을 다시 풀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나 세상이라는 존재 등의 존재일반을 법(dhamma)이라는 기준으로 해체해서 설하신다. 그것은 본 니까야의 도처에 나타나며, 『청정도론』에서 정리하고 있는 오온, 12처, 18계, 12연기 등이다.
둘째, 이렇게 존재일반을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드디어 무상이 보이고 괴로움이 보이고 무아가 보인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세째는 이렇게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봄으로 해서 존재일반에 염오하게 되고 존재일반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게 되고 그래서 해탈하게 되고 해탈하게 되면 태어남은 다했다는 해탈의 지혜가 생긴다. 혹은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면 소멸로 정의되는 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이것이 초기경의 도처 특히 본 『상윳따 니까야』 에서 중점적으로 설해지고 있는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세 가지 교학적인 단계이다.
이하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제4권의 해제 §(6) 어떻게 해탈 ·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와 제3권 「무더기 상윳따」 (S22)의 해제와 제4권 「육처 상윳따」 (S35)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본서 제2권 「인연 상윳따」 (S12)의 「설법자[法師] 경」 (S12:16) §4 이하에서 "비구여, 만일 늙음 · 죽음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라고 하여 이 염오-이욕-소멸을 12연기의 구성요소들 각각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염오-이욕 소멸은 「되어 있는 것 경」 (S12:31) §5 이하와 「갈대 다발 경」 (S12:67) §8 이하에도 비슷한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S12:61~62 §3도 참조할 것.
그리고 염오는 다음의 정형구에서도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 달콤함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달콤함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 집착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 위험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에 염오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형색에서 벗어남이 없다면 중생들은 형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색에는 벗어남이 있다. 그래서 중생들은 형색에서 벗어난다."(「육처 상윳따」 (S35) 「이것이 없다면 경」 1(S35:17) §3 등)
경들에서는 염오-이욕-소멸로 나타나기도 하고,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해탈은 과의 실현을 뜻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SA.ii.268) 그러므로 해탈과 소멸은 과의 증득이라는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리고 「인연 상윳따」에서는 12연기 각지의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으로 이욕과 소멸이 나타나고 있다.(아래 2를 참조할 것)
② 연기의 이욕 소멸을 통해서
연기의 가르침은 본서 제2권 「인연 상윳따」 (S12)의 주제이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93개의 경들은 모두 2지 연기부터 12지 연기까지의 다양한 연기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인연 상웃따」 (S12)의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인연 상윳따」 (S12)의 「도닦음 경」 (S12:3)은 이렇게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바른 도닦음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도닦음이라 한다."(「도닦음 경」(S12:3) §4) 그리고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는 본 상윳따의 대부분의 경에서 괴로움의 소멸구조의 가르침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로 옮긴 것은 asesa-virāga-nirodhā를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빛바래어'으로 옮긴 virāga는 염오-이욕-소멸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이욕(탐욕의 빛바램)과 같은 단어이다. 문맥에 따라 여기서는 '탐욕의'를 빼고 그냥 '빛바래어'로 옮긴 것일 뿐이다. 소멸로 옮긴 nirodha는 당연히 염오-이욕 소멸의 소멸과 같은 단어이다. 이처럼 「무더기 상윳따」 (S22)와 「육처 상윳따」 (S35) 등의 400여 군데에서 깨달음의 실현방법으로 강조되어 나타났던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는 연기의 가르침에서도 염오가 빠졌지만 이욕-소멸의 정형구로 꼭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인연 상윳따」(S12)의 「설법자[法師] 경」 (S12:16) §4 이하에서는 "비구여, 만일 늙음 · 죽음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라고 이 염오-이욕-소멸을 12연기의 구성요소들 각각에 적용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본서 「인연 상윳따」 (S12)의 여러 주해들에서 밝히고 있듯이 온 · 처 · 계의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12연기 각지의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멸(nirodha)은 바로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인 소멸의 진리(멸성제, nirodha-sacca) 즉 열반을 뜻한다.( 「분석 경」(S12:2) §16의 주해 참조) 그러므로 온 · 처 · 계의 가르침과 사성제와 12연기와 팔정도(팔정도의 바른 견해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이므로)는 모두 궁극적으로는 소멸(nirodha = 열반)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23)
『청정도론』 XIV.32와 4부 니까야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붓다고사 스님이 강조하고 있듯이 온 · 처 ·계 · 근 · 제 · 연 · 37보리분법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의 인간관 · 존재관 · 세계관 · 진리관 · 수행관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기본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적인 인생관과 실천관을 가진 불자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③ 사성제의 통찰을 통해서
본서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진리 상윳따」 (S56)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모아서 강조하고 있는 곳이다. 삼매를 닦고 홀로 앉는 수행을 하는 이유는 사성제를 꿰뚫기 위해서이며(S56:1~2), 출가자가 되는 이유도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기 위해서라고 경들은 밝히고 있다.(S56:3~4) 그뿐만 아니라 사색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항상 사성제를 사색하고 사성제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S56:5~6) 이처럼 「진리 상윳따」 의 모든 경들은 사성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사성제를 완전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라 부르며(S56:23) 아라한이라 부르며(S56:24) 사성제를 알고 보기 때문에 번뇌가 멸진한다(S56:25)고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깨달음은 사성제를 꿰뚫고 관통하고 알고 보아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진리 상윳따」 의 경들은 강조하고 있다.
한편 다른 니까야에서는 육신통 가운데 맨 마지막이며 깨달음을 실현하는 정형구로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의 정형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 이 누진통의 정형구의 내용은 사성제의 통찰이다 . 경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 나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였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나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24)
이처럼 누진통의 정형구는 사성제의 통찰을 통한 해탈-구경해탈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오온 · 12처에 대한 염오-이욕 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의 정형구와, 12연기에 대한 이욕-소멸의 정형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결국은 소멸 혹은 해탈-구경해탈지로 귀결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서에서 초기불교의 기본 교학으로 강조되고 있으며 본서 제2/3/4/6권의 핵심 가르침인 온 · 처 · 연 · 제 즉 무더기(오온, 제3권), 감각장소(12처, 제4권), 연기(제2권), 사성제(제6권)의 가르침은 모두 깨달음을 실현하는 기본 토대로 강조되고 있다.
④ 팔정도의 실현을 통해서
본서 제6권 「초전법륜경」 (S56:11)에서 세존께서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다고 천명하고 계신다. 경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초전법륜 경」 (S56:11) §§3~4)
이처럼 본서에서는 불교의 인간관인 오온과 세계관인 12처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설하고 있고, 연기관인 12연기의 이욕 소멸도 역설하고 있으며, 진리관인 사성제를 관통할 것도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시며, 대표적인 수행 · 실천관이요 중도인 팔정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신다.
⑤ 37보리분법을 닦아서
교학의 토대가 되는 온 · 처 · 연 · 제의 가르침이 깨달음과 해탈 ·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이듯이, 37보리분법으로 정리되어 본서 제5권에 나타나는 수행의 가르침은 말할 필요도 없이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위에서 팔정도는 깨달음의 내용이면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이제 본서 「도 상윳따」 (S45)부터 시작해서 「성취수단 상윳따」 (S51) 까지의 일곱 가지 주제와 「들숨날숨 상윳따」 (S54)로 정리되고 있는 37보리분법의 구성요소들을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자.
팔정도
「도 상윳따」 (S45)의 도처에서 팔정도는 "불사(不死)에 이르는 길" (S45:7)이요, "무명을 찌르고 명지를 일으키고 열반을 실현하는" 도요(S45:9),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S45:33)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팔정도를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열반으로 가게 되고 열반을 목적지로 하게 되고 열반을 귀결점으로 삼게 되고"(S45:10),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S45:34)는 등으로 강조하고 계신다.
칠각지
「깨달음의 구성요소 상윳따」 (S46)에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으면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고"(S46:17), "염오, 탐욕의 빛바램, 소멸, 고요함,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인도하고"(S46:20), "깨달음으로 인도한다."(S46:5, 21)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갈애의 멸진으로 인도하는 도와 도닦음"(S47:26)이요, "갈애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와 도닦음(S46:27)"이라는 등으로 칠각지의 중요성은 본 상윳따의 도처에서 설해지고 있다.
오근 · 오력
다섯 가지 기능을 닦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경지를 「기능 상윳따」(S48)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기능의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 뒤 취착 없이 해탈할 때,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고 한다."(S48:4~5)
"다섯 가지 기능을 완전하게 하고 완성하기 때문에 아라한이 된다. 이보다 더 약하면 불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일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예류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법을 따르는 자가 되고, 이보다 더 약하면 믿음을 따르는 자가 된다."(S48:12)
그 외 「기능 상윳따」 의 여러 경들은 오근을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념처
세존께서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자신의 고향동네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에서 다녀라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에서 다니는 자에게 마라는 내려앉을 곳을 얻지 못할 것이고 마라는 대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인가? 바로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47:6)
그리고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S47:1)라고 사념처야말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의 결실이 예상되나니, 지금 · 여기(금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가 예상된다."(S54:4)라고 「들숨날숨 상윳따」 (S54)에서는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중시하고 계신다.
사여의족
네 가지 성취수단도 해탈 · 열반에 이르는 길로 「성취수단 상윳따」 (S51)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iddhi-pāda]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이 언덕에서부터 저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S51:1)
"네 가지 성취수단을 게을리 하는 사람자들은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다. 네 가지 성취수단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S51:2)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S51:4)
⑥ 심해탈 · 혜해탈 · 양면해탈을 통해서
그 외 다른 정형구들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심해탈 · 혜해탈 · 양면해탈을 들 수 있다. 먼저 심해탈과 혜해탈을 통해서 번뇌가 다한 경지 즉 깨달음을 실현하는 다음의 정형구는 본서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에서는 앞의 3에서 인용한 누진통의 정형구 대신에 심해탈과 혜해탈을 통한 이 누진통의 정형구가 육신통 중의 누진통의 정형구로 나타난다.
"나는 원하는 만큼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S16:9 등)25)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양면해탈(ubhato-bhāga-vimutti)도 언급해야 하는데, 요약하면 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āga-vimutta)는 무색계 삼매(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와 더불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뜻하고, 통찰지로 해탈한 자(paññā-vimutta)는 무색계 삼매 없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를 말한다. 양면해탈과 혜해탈(통찰지를 통한 해탈)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분은 『디가 니까야』 제2권 「대인연경」 (D15) §36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⑦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의 완성을 통해서
먼저 경들을 인용한다.
"내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계의 무더기[戒蘊]가 있다면 … 삼매의 무더기[定蘊]가 있다면 … 통찰지의 무더기[慧蘊]가 있다면 … 해탈의 무더기[解脫蘊]가 있다면 … 해탈지견의 무더기[解脫知見蘊]가 있다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나보다도 더 계를….. 해탈지견을 잘 구족하여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다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보지 못한다."(S6:2)26)
"그는 무학의 계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다섯 가지 특징을 갖춘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습니다."(S3:24)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구족한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독존(獨尊)이요, 삶을 완성한 최고의 인간이라 불린다."(A10:12 등)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戒)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삼매[定]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통찰지[慧]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이제 성스러운 계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앙굿따라 니까야』 「깨달음 경」 (A4:1))
위의 여러 경우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깨달음 혹은 해탈 · 열반은 오온과 12처 등의 무상 · 고 · 무아의 통찰을 통한 염오-이욕-소멸 혹은 염오-이욕-소멸-해탈-구경해탈지로 완성되기도 하고, 12연기의 이욕-소멸을 통해서도 성취되며, 사성제의 관통으로 실현되기도 하고, 팔정도를 포함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이루어지기도 하며, 혜해탈과 양면해탈을 통해서도 성취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의 실현은 『디가 니까야』 제1권에서는 계 · 정 · 혜의 실천을 통한 누진통의 성취(즉 사성제의 체득)로 귀결되고, 이것은 위에서 인용한 경들에서 보듯이 다시 계 · 정 · 혜를 통한 해탈 · 해탈지견의 완성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최종적으로 이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들[五法蘊]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염오-이욕-소멸, 계-정-혜-해탈(혜해탈과 양면해탈 포함)-해탈지견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해탈 · 열반의 실현이나 깨달음의 체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12. 『상윳따 니까야』의 번역 원칙 몇 가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출간하는 본 『상윳따 니까야』 전6권을 번역하면서 고수한 원칙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밝히고자 하는 점은 반복되는 구문과 정형구들은 생략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전통적인 방법의기 때문이다.
니까야를 위시한 빠알리 삼장은 전부 독송으로 구전된 것이다. 그것이 서력기원전 1세기 경에 스리랑카의 알루 위하라(Alu Vihāra)에서 문자로 정착이 되었다. 독송으로 구전한 것을 전통적으로는 합송(sangiti)이라 한다.
여기서 합송(saṅgīti)은 saṁ(함께)+√gai(to sing)에서 파생된 명사로 '함께 노래한 것, 함께 외운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통 일차결집이니 이차결집이니 하면서 결집(結集)이라고 옮긴 단어가 바로 saṅgīti이.다. 이러한 결집은 문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들어서 알고 있던 것을 함께 노래해서 가사와 운율을 확정한 다음 서로 공유한 일종의 합창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역자가 합송을 노래니 합창대회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래는 일단 한 번 가사와 운율이 정해져서 대중화가 되고 나면, 누군가가 틀리게 부를 때 바로 그것이 잘못된 노래라는 것을 즉시에 알게 된다. 역자는 지금도 학창시절에 즐겨 부르던 어니언스의 "편지"를 누가 부르면, 틀렸는지 옳게 불렀는지 가사와 음정과 박자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합송대회에서 내용과 음정과 박자가 정해져서 합송된 경들은 독송하는 집단이 면면부절로 이어지는 한 정확하게 전승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베다들은 바라문 학도들에 의해서 합송 되어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노래하여 결집된 경들은 그 도입부분들과 전개부분들이 같을 수밖에 없고,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교학과 수행에 관한 가르침은 같은 정형구로 정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분이나 정형구들을 모두 다 외게 되면 그 분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미 일차결집 때부터 혹은 결집을 마친 뒤에 각 문파별로 경을 독송할 때부터, 반복되는 부분을 생략하는 원칙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서력기원전 1세기 때 스리랑카의 알루 위하라에서 삼장이 문자로 정착이 되면서는 이러한 부분을 생략하는 원칙들이 분명히 정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존하는 모든 필사본들은 거의 같은 형태로 생략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그 원칙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경전 도입부의 문단을 생략하였다.
먼저 생략되지 않은 경전 두 개의 서문부분을 예를 들어보자. 본서 제5권 「무명 경」 (S45:1)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 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무명이 선구자가 되어 …"
그리고 본서 제1권 「젊은이 경」 (S3:1)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 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그러나 본 『상윳따 니까야』 전6권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은 이 가운데 §1과 §2는 생략되었고 §3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2904개나 되는 많은 경들을 담고 있는 본서에 나타나는 경들은 대부분의 문단번호가 §1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3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1과 §2에 해당되는 부분이 모든 경들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빠알리 원본에도 생략되어 나타나고, 역자도 이를 생략하고 옮겼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역자가 임의로 생략한 것이 결코 아니다. Ee, Be, Se에서 모두 생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다 살려 독송하거나 편집하거나 번역한다면 기력도 소진되고, 전체 뜻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고, 많은 종이가 낭비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모든 판본은 이렇게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고, 영역본을 비롯한 모든 번역서에서도 생략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먼저 출간한 『디가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모두 전통적인 이러한 편집 방법에 따라서 이 부분을 생략하고 옮겼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들은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는 부분인 문단번호가 §3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단번호는 전통적인 판본들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Ee 즉 PTS본에만 나타나고 있다.
생략하여 편집하는 방법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는 거의 예외 없이 생략하여 편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형구가 나타나지 않는 경들은 모두 사왓티,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경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상윳따의 첫 번째 경에서는 모두 살려서 옮겼고, 새로운 품(vagga)의 첫 번째 경에서는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서>"로 표기하였다. 물론 설한 분이 세존이 아니고 설한 곳이 사왓티, 제따 숲의 급고독원이 아닌 경우에는 각 경에서 반드시 이를 밝히고 있다.
둘째, 청법자들이 세존을 뵙고 인사드리고 하는 형식의 정형구나, 세존께서 경을 설하시기 전에 행하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관계된 정형구 즉 위 보기의 §2에 해당하는 문단도 대부분 생략하여 편집하였다.
(2) 반복되는 정형구들도 생략하였다
니까야를 위시한 빠알리 삼장은 전부 독송으로 구전된 것이다. 이렇게 구전되면서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교학과 수행에 관한 가르침들은 모두 같은 정형구로 정착이 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부분이나 정형구들을 모두 다 외게 되면 그 분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특히 『상윳따 니까야』 에는 간단한 교학적 주제를 담은 짧은 경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경들의 개수도 아주 많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많은 경들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정형구들을 생략하지 않고 모두 살려서 편집한다면 이러한 정형구들 때문에 정작 경의 내용을 전달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모든 판본들뿐만 아니라 PTS에서 알파벳으로 편집 출간한 Ee까지도 이처럼 축약하여 편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경을 번역하면서 이러한 정형구를 모두 복원해서 번역할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Ee, Be, Se와 태국본과 여러 나라에 남아있는 필사본들 등 전통적인 모든 판본에서 예외 없이 생략해서 편집한 이런 입장과 이런 태도를 존중하는 것이 후학의 태도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판본에서 생략한 정형구는 대부분 생략하여 옮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생략된 정형구는 전통적으로 뻬얄라(peyyala)라는 전문술어로 표현하는데 줄어서'pe'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초기불전 즉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전의 편집 방법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 뻬얄라를 모두 '…'라는 생략부호로 표기하고 있다.
(3) 경의 제목을 먼저 밝혔다
전통적으로 빠알리 문헌에서는 품의 명칭과 경의 이름은 그 품이나 그 경의 맨 마지막에 "X 품이 끝났다."라거나 "Y 경이 끝났다."는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Ee의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 는 전부 이렇게 편집되어 있다. 이것은 어떤 글의 제목을 맨 처음에 드러내는 현대식 방법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현대식 방법에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초기불전연구원의 모든 번역서는 현대식 방법에 따라 품이나 경의 이름을 모두 먼저 밝히고 이를 번역해 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Be와 Se도 모두 이런 방법을 채용하여 경의 이름을 먼저 밝힌 뒤에 경전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Ee, Be, Se에 의하면 하나의 품이 끝나면 반드시 권말 목록(uddāna)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그 품에 포함된 경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역자는 각 경의 맨 처음에 경의 이름을 넣었다.
그리고 같은 경을 두고도 Ee와 Be와 Se의 경의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도 Be와 Se의 경의 제목은 대부분 일치한다. 이처럼 같은 경을 두고 Be와 Se의 경의 제목은 같고 Ee가 다를 경우에는 Be와 Se를 따랐으며 셋이 다 다를 경우에는 보디 스님의 제안을 따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는 역자의 판단에 따라서 Ee와 Be와 Se를 참조하여 정하였다.
(4) 경의 제목에는 '경'이라는 표기를 넣었다
그리고 권말 목록(uddāna)은 모두 게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경(sutta)'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PTS의 영역본을 위시한 대부분의 서양 번역에는 제목에 대부분 경(sutta)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디 스님도 그의 영역본에서 경의 제목에 경(sutta)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고 있다.
그러나 권말 목록은 게송의 형식으로 경의 이름만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경(sutta)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았을 뿐 이러한 가르침은 엄연히 경전이다. 주석서들에도 별다른 예외가 없는 한 경(sutta)이라는 단어를 명기하고 있으며 DPPN에도 반드시 경으로 표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Be와 Se에는 모두 한 경이 시작되는 처음에 'Susima-sutta' 등으로 경의 제목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경의 이름을 그냥 '수시마' 혹은 '수시마(S12:70)' 등으로 표기 하지 않고 모두 「수시마 경」 (S12:70) 등으로 '경'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표기하고 있음을 밝힌다. 부처님 말씀으로 공인되었다는 의미의 경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 된 도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경은 부처님 말씀이요 부처님 말씀은 단순한 성인의 전기나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말씀으로 공인된 경은 도를 추구하고 해탈 · 열반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인류의 영원한 지남이 되는 금구성언이기 때문이다.
(5) 경 번호를 표기하였다
각 경의 제목 뒤에는 ( )속에 경의 번호를 표기하였다. 역자가 경의 번호를 매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상윳따 니까야』 의 모든 경들은 S로 시작한다. S는 Saṁyutta Nikāya(상윳따 니까야)를 뜻한다. S에 바로 붙어서 나타나는 숫자는 56개 상윳따를 뜻한다. 그러므로 S1은 첫 번째 상윳따인 「천신 상윳따」를 뜻하고, S35는 「육처 상윳따」를 뜻하고, S56은 맨 마지막 상윳따인 「진리 상윳따」 를 뜻한다. 그리고 그 뒤의 콜론(:) 다음에 나타나는 숫자는 그 상윳따에 나타나는 특정 경의 경번호이다. 그러므로 S12:15는 열두 번째 주제인 「인연 상윳따」 (S12)의 15번째 경이라는 뜻이다.
(6) 문단번호를 표기하였다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각각의 경에 나타나고 있는 문단번호는 Ee에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Be와 Se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단번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문단번호가 있는 것이 경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특히 특정 경을 인용하는데 아주 편리하다. 그래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모든 경전의 번역에 문단번호를 매기고 있다.
앞서 발간한 『디가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의 문단번호는 모두 Ee를 따랐다. 그러나 본 『상윳따 니까야』 의 번역에서는 Ee를 참조하였지만 Ee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하나의 경에 나타나는 Ee의 문단번호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산란하기도 하고, 문단번호를 매기는 정확한 기준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장을 잘못 끊어서 전혀 엉뚱한 문단번호를 매긴 곳도 몇 군데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런 곳은 해당 주해에서 모두 밝히고 있음)
그래서 본서에 나타나는 문단번호는 Ee를 참조하여 역자가 전적으로 새로 매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지 문단번호를 매길 필요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본 번역의 저본이 되는 Ee와의 비교를 돕기 위해서 [ ]안에 Ee의 페이지 번호를 모두 표기하고 있다.
13. 번역에 임한 태도
이미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역출한 다른 책들의 서문 등에서 밝혔지만 초기불전연구원은 경을 옮김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중시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 서문과 『앙굿따라 니까야』 서문에서 밝힌 것을 다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석서를 중시하였다.
경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전(正典)이다. 경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언어학적 소양만으로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경은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그분들의 안목을 빌지 않고서는 결코 심도 깊게 이해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경에 나타나는 특정한 술어와 특정한 구문과 특정한 배경과 특정한 문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고민한 것이 바로 주석서 문헌(Aṭṭhakathā)이다. 그러므로 주석서는 삼장(Tipiṭaka)에 대한 가장 오래된 권위이다.
둘째, 『청정도론」 을 중시하였다."
이미 『청정도론』 해제에서 밝혔듯이 『청정도론』 은 그 성격상 4부 니까야 전체에 대한 주석서이다. 그러므로 4부 니까야 전체에 나타나는 중요한 술어와 개념은 거의 대부분 『청정도론』에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술어들은 『청정도론』 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에 각 니까야의 주석서들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였다."라고만 할 뿐이다. 그런 만큼 『청정도론』 없는 주석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청정도론』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초기불전의 체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초기불전의 번역을 평생의 원력으로 삼고 살아가는 역자가 번역을 하면 할수록, 초기불전을 깊이 음미하면 할수록 절감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인 견해의 뒷받침이 없는 자기식의 경전이해야말로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역자는 통감하고 있다.
혹자는 주석서나 『청정도론』을 단순히 붓다고사(Buddhagosa)라는 뛰어난 주석가의 견해 정도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청정도론』 서문에서 정리하였듯이 주석서나 『청정도론』은 결코 붓다고사라는 한 개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부처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된 상좌부에서 전승되어 온 정통견해를 총정리한 것이다. 붓다고사 스님은 각 주석서의 서시와 후기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셋째, 『아비담마 길라잡이』 를 중시하였다.
『청정도론』은 다시 『아비담맛타 상가하』 (『아비담마 길라잡이』)가 없이는 그 핵심이 되는 술어와 가르침을 파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먼저 『아비담마 길라잡이』 를 상 · 하로 출간하였고 이를 토대로 『청정도론』을 세 권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읽고 호평을 해 주셨듯이 『아비담마 길라잡이』는 교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한국 땅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정확한 길라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므로 본서에 나타나는 교학적인 이해는 모두 『청정도론』 과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토대로 하였으며, 본서의 주해에서 나름대로 상세하게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거나 출처를 밝혀서 이를 참고하도록 하였다.
넷째, 술어를 한글화하였다
이미 『청정도론』 해제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서문 및 『디가 니까야』 와 『앙굿따라 니까야』 역자서문 등에서도 밝혔듯이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모든 술어들을 가급적이면 한글로 풀어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은 본 『상윳따 니까야』 의 번역에서도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하다보면 한문 용어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스럽고 짜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문 불교 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많은 곳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 무더기[蘊], 기능[根] 등으로 한문을 병기했다. 그리고 무리하게 한글식 표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한국불교와 절집에서 통용되는 한자말들은 그대로 사용하려 노력하였다.
중요한 술어를 한글화한 원칙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해제 §16 '『청정도론』 에 나타나는 주요단어들의 한글번역에 대하여'를 참조하고 번역에 대한 일반원칙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디가 니까야』 역자 서문 §6 '번역에 임하는 몇 가지 태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14. 맺는 말
역자가 꼭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본서 번역에 있어서 보디스님이 10여 년간 노력하여 번역 출간한 『상윳따 니까야』 영역본인 The Connected Discourses of Buddha(Vol. 1&2)를 많이 참조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보디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달아 놓은 주옥같은 주해들은 역자의 번역과 주해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역자는 인도에서 유학하면서 스리랑카로 가서 두 번 스님을 친견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상하게 질문에 대답해 주시고 공부와 번역을 격려해 주시던 스님의 모습이 훤하다.
이 『상윳따 니까야』 영역 이외에 보디 스님의 역작을 꼽으라면 A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인 『아비담맛타 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영어로 옮긴 책이다. 이 책은 세계 아비담마 학계의 거장인 미얀마의 우 실라난다 스님(U. Sīlanada Saya-daw)과 우 레와따 담마 스님(U Revatadhamma Sayadaw)의 도움으로 보디 스님이 책임 교열과 편집을 담당한 것이다.
물론 이 이전에도 이미 『아비담맛타 상가하』 는 PTS에서 1910년에 미얀마 학자 쉐 잔 아웅(Shwe Zan Aung)이 자세한 주를 달아서 번역 · 출판한 것이 있고, 1956년에는 당시 유명한 학승이었던 나라다 스님(Narada Mahāthera)이 A Manual of Abhidhamma로 영역하여 BPS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CMA가 1993년에 BPS에서 출간되자말자 CMA는 세계 아비담마 학계의 기본서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림스님과 역자가 공동으로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제일 먼저 출간한 『아비담마 길라잡이』도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옮긴 것인데 바로 이 CMA와 『청정도론』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번역 · 출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자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이어서 이번 『상윳따 니까야』 번역에서도 보디 스님의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다. 지면을 빌어서 보디 스님께 절을 올리면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니까야 번역만으로 보자면 본서는 2006년에 전체 세 권으로 번역 · 출간한 『디가 니까야』에 이은 역자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기쁘고 환희심이 크다. 그러나 환희심이 큰 만큼 걱정도 훨씬 더 많아졌다. 잘못 번역한 곳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디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영역본이 큰 위안과 안심이 되었다.
이번 번역에서 가장 까다롭고 힘든 작업은 제1권이었다. 쏟아지는 게송을 운치있게 옮겨낸다는 것은 역자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자는 문학적인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서 오직 게송을 잘못 이해하여 오역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역자는 가급적이면 주석서의 전통적 이해를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본서 제1권 번역은 역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초기불전연구원> 원장이신 대림 스님이 다시 한 번 주석서와 대조해가면서 교열과 감수를 하여 여러 부분을 수정하고 다듬었기 때문에 오역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감소되었고 역자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지면을 빌어서 대림 스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역자는 대림스님이 번역하여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세 권으로 출간한 『청정도론』 의 발간사에서 빠알리 삼장을 제대로 역출해내기 위해서는 언어학적 소양, 경에 대한 안목, 수행의 뒷받침이라는 세 가지 기본장비들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경전 번역을 계속하면서 '나에게는 과연 이러한 기본 장비들이 충실히 갖추어져 있는가?'를 줄곧 되물어보았다. 빠알리어를 익히면서 삼장을 공부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과연 역자는 삼장에 대한 이해와 빠알리어에 대한 이해가 다듬어지고 깊어지고 정교해지고 정치하게 되었는가? 오히려 지엽적인 지식만 는 게 아닌지 참으로 두렵다.
이제 『상윳따 니까야』 한글 번역본을 전6권으로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나름대로 몇 번을 윤문도 하고 수정도 하고 중요한 문장과 술어등에 대해서는 대림 스님과 일운 스님과 덕일 스님과 혜진 스님과 토론도하고 하면서 애를 썼지만, 역자가 오역을 하고 탈역을 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두렵다. 교정의 최종 점검을 해 주신 <초기불전연구원> 원장 대림 스님과 힘든 교정 작업을 법에 대한 환희심으로 극복하면서 꼼꼼하게 교정을 봐주신 일운 스님, 일창 스님, 덕일 스님, 혜진 스님, 그리고 『디가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에 이어 본서까지 크나큰 신심으로 교정을 해 주신 김성경 거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래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역자가 우치한 이유 때문이다. 읽는 도중 잘못된 부분을 발견한 독자제위께서는 반드시 지적해 주시어 다른 니까야의 출간에는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면서 역자 서문을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금생에 해탈 · 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Ciraṁ tiț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상윳따 니까야 제1권 해제>
1. 들어가는 말
『상윳따 니까야』는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아서(saṁyutta) 결집한 것이다.『상윳따 니까야』는 이러한 주제를 모두 56개 상윳따로 분류하여 결집하고 있다.
이들 56개 상윳따 가운데「숲 상윳따」(S9)와「비유 상윳따」(S20) 등 2개의 기타 상윳따를 제외하면,「인연 상윳따」(S12)를 비롯한 26개 상윳따는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꼬살라 상윳따」(S3) 등의 15개 상윳따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며,「천신 상윳따」(S1) 등 8개는 특정한 존재(비인간)에게 설하셨거나 혹은 이러한 특정한 존재와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고,「비구니 상윳따」(S5) 등 5개의 상윳따는 특정한 부류의 인간에게 설하셨거나 이들과 관계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한편 특정한 인물과 관계된 상윳따들 가운데「라훌라 상윳따」(S18) 등의 9개 상윳따는 모두 오온 등의 특정한 주제를 각 상윳따에서 하나씩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9개 상윳따도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학적인 주제 중심의 상윳따는 모두 35개로 늘어난다.
주석서에 의하면『상윳따 니까야』는 일차결집에서 결집(합송)되어서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의 제자들에게 부촉되어 그들이 함께 외워서 전승하여 왔다고 한다.(DA.i.15)
『상윳따 니까야』제1권은 이렇게 모아진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상윳따 니까야』제1권의 제목은 사가타 왁가(Sagātha-vagga)인데, ‘게송과 함께한 품’으로 직역할 수 있다.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을 모아서 이를 다시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존재를 중심으로 천신, 신의 아들, 꼬살라 왕 등의 11개의 주제(Saṁyutta)로 분류하여 제1권에는 모두 11개의 상윳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제1권의 분류기준은 게송이며 Ee2에 의하면 본서에는 모두 945개의 게송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30여개 정도의 게송은 본서에 나타나는 다른 게송들과 완전히 같거나 일부분이 같은 게송들이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2. 제1권의 구성
『상윳따 니까야』제1권에는 모두 11개의 상윳따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상윳따들과 각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숲 상윳따」(S9)를 제외한 10개의 상윳따는 인물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네 개의 상윳따는 꼬살라 왕(S3)과 비구니(S5)와 바라문(S7)과 왕기사 존자(S8)라는 인간에 관계된 주제를 모은 것이고, 여섯 개의 상윳따는 천신(S1), 신의 아들(S2), 마라(S4), 범천(S6), 약카(S10), 삭까(인드라, S11)와 같은 비인간들을 중심으로 한 경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숲 상윳따」(S9)에 포함된 14개의 경들도 모두 숲 혹은 밀림에 사는 천신들이 읊은 것이기 때문에 본서에 포함된 11개의 상윳따는 모두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존재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제1권은 모두 11개의 상윳따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학적인 주제를 중심한 상윳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 포함된 경들의 내용에는 불교의 주요한 교학체계가 거의 대부분 포함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먼저 본서에 포함된 11개의 상윳따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주제「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S1)에는 8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8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천신들이 게송으로 세존과 문답을 나눈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나타나고 대부분이 게송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본서에서 가장 많은 254개의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제2주제「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 포함되어 있는 30개의 경들은 신의 아들(deva-putta)로 직역되는, 상대적으로 젊은 천신들이 세존께 와서 게송으로 문답을 나누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들이다. 본 상윳따에는 천신 상윳따보다 상대적으로 산문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제3주제「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S3)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나타나는데, 모두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문답을 담고 있는 경들이다. 산문이 주를 이루는 경들이지만 이 경들은 모두 게송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을 담은 책(Sagātha-vagga)에 포함된 것이다.
제4주제「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S4)는 마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역시 세 개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수행자들을 방해하는 마라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는 경들이다.
제5주제「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S5)에는 10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경들은 모두 각각 경에 나타나는 비구니 스님들과 마라 사이에 얽힌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는 앞의 마라 상윳따에 포함시켜도 된다.
제6주제「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S6)에는 15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모두 사함빠띠 범천이나 바까 범천이나 사낭꾸마라 범천 등의 유력한 범천과 관련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제7주제「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S7)에는 모두 22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부처님 당시의 바라문들로서 부처님과의 대화를 담고 있는 경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에 나타나는 바라문들은 모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며 두 번째 품에 나타나는 10명의 바라문들은 모두 재가 신도가 되었다.
제8주제「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S8)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왕기사 장로는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서 영감과 시작(詩作) 능력이 뛰어난 분이었다. 그가 지은 멋진 게송들이 본 상윳따의 12개 경들에 담겨있다.
제9주제「숲 상윳따」(Vana-saṁyutta, S9)에는 모두 14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담겨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다.
제10주제「약카 상윳따」(Yakkha-saṁyutta, S10)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각 경들은 각각 다른 약카와 부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와 일화를 담고 있다.
제11주제「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S11)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세 개의 품에 담겨있다. 이 경들은 모두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삭까(인드라)와 관련된 일화를 담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크게 교학과 수행으로 나누어 본다면 제2/3/4권에서는 교학에 관한 경들 그 중에서도 연기, 오온, 육처를 중심으로 하고 요소[界]나 기타 다른 가르침을 포함하여 편집하였으며, 마지막 권에서는 수행체계인 37보리분법(조도품)을 설한 뒤에 최종으로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를 배당하여 편집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개관해보았듯이 인천(人天)에 관계된 존재들 특히 천신(S1), 신의 아들(S2), 마라(S4), 범천(S6), 약카(S10), 삭까(인드라, S11)와 같은 비인간을 중심한 경들을 제1권에 배대하고 있다.
이제 각각의 상윳따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3.「천신 상윳따」(S1)
첫 번째 상윳따인「천신 상윳따」(Devatā-saṁyutta, S1)에는 모두 8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천신들이 세존과 게송으로 문답을 나눈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들은 모두 8개의 품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마지막인 제8장「자름 품」(Chetvā-vagga)에만 11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 품들은 모두 10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덟 개의 품은, 제1장「갈대 품」, 제2장「난다나 품」, 제3장「칼 품」, 제4장「사뚤라빠 무리 품」, 제5장「불 품」, 제6장「늙음 품」, 제7장「짓누름 품」, 제8장「자름 품」이다.
여기서 ‘천신’은 devatā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신(神) 혹은 천신(天神)을 뜻하는 deva에다 추상명사형 어미 ‘-tā’를 붙여서 만들어진 것인데, 모든 신들을 지칭하는 여성형 명사이다. 단지 여성형 추상명사를 붙였기 때문에 단어가 여성형이 된 것이지 여자 천신을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이나 ‘천신’을 뜻하는 deva와 동의어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남성 신임을 분명히 할 때는 본서 제2주제「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서처럼 deva-putta(신의 아들)로 표현하고, 여성 신임을 드러낼 때는 deva- dhuhitā(신의 딸)라 칭한다.
한편『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신들은 세 종류가 있다. 인습적인 신들(sammuti-devā), 태생적인 신들(upapatti-devā), 청정한 신들(visuddhi -devā)이다. 인습적인 신들이란 왕들과 왕비들과 왕자들을 말한다. 태생적인 신들이란 사대왕천의 신들을 포함하여 그보다 높은 신들이다. 청정한 신들이란 번뇌 다한 아라한들이다.”(MA.i.33)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태생적인 신들을 일반적으로 신들이라 한다. 즉 6가지 욕계 천상과 16가지 색계 천상과 4가지 무색계 천상에 거주하는 신들을 일반적으로 신이라 부른다. 예외적으로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도 천신(devatā)이라 불리고 있으며(본서「한거 경」(S9:1) §2 등) 향기로운 나무의 뿌리 등에 거주하는 신들도 천신(deva)이라 불리고 있다.(본서「간단한 설명 경」(S31:1) §3 등)
본서에서 deva와 devatā는 ‘천신(天神)’으로 통일해서 옮기고 있다. 본 상윳따의 이름은「천신(devatā) 상윳따」(S1)이고 다음의 두 번째 상윳따는「신의 아들(devaputta) 상윳따」(S2)이다. 천신과 신의 아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신의 아들 상윳따」(S2) 해제를 참조하기 바란다.
본 상윳따에는 여러 천신들이 세존께 와서 아주 다양한 주제로 문답을 나눈다. 그 다양한 주제가 대부분 각각의 경들의 제목으로 채택되었다.
「신의 아들 상윳따」(S2)에 포함된 30개의 경들에 나타나는 신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본 상윳따에는 81개의 경들 가운데「가띠까라 경」(S1:50)을 제외하고는 신들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본서「빳준나의 딸 경」1/2(S1:39∼40)는 빳준나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주제가 아니라 빳준나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딸들이 주제이다. 그러나 이 신의 딸들은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본서「제따 숲 경」(S1:48)은 급고독 장자가 죽어서 천신이 되어 와서 읊은 것이지만 경문에는 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제4장「사뚤라빠 무리 품」에 나타나는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은 집단의 이름이지 개별적인 신의 이름은 아니다. 이처럼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 나타나는 신들은 그 이름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천신(devatā)이라는 일반적인 술어를 상윳따의 이름으로 삼은 본 상윳따에 나타나고, 신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경우는 모두 두 번째인「신의 아들 상윳따」(S2)에 포함하여 결집하였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대부분의 경들은 천신들과 세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몇몇 곳에서는 세존의 게송은 나타나지 않고 천신의 게송만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빳준나의 딸 경」1/2(S1:39∼40),「불 경」(S1: 41),「하나의 뿌리 경」(S1:44),「휘지 않음 경」(S1:45),「제따 숲 경」(S1:48)이다. 세존의 설법형태로 나타나는「난다나 경」(S1:11)과「회합 경」(S1:37)에도 세존의 게송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8개 경을 제외한 나머지 73개의 경은 모두 천신들과 세존이 서로 게송으로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문답의 내용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엉킴 경」(S1:23)이다. 본경에는 “안의 엉킴이 있고, 밖의 엉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라는 천신의 게송과, 여기에 대한 세존의 답송인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는 이 두 게송은『청정도론』을 여는 게송으로『청정도론』(Vis.i.1)에 나타나는 유명한 게송이다.
『청정도론』의 방대한 내용은 계․정․혜 삼학을 표방하고 있는 본 게송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청정도론』에 나타나는 본 게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인용한다.
“① 계와 ②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표현된 삼매[定]와 ③~⑤ 세 가지의 통찰지[慧]와 ⑥ 근면함이라는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마치 사람이 땅 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 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계의 땅 위에 굳게 서서 삼매의 돌 위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정진의 힘으로 노력한 깨어 있는 통찰지의 손으로 잡아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갈애의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버릴 것이다. 그는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청정도론』i.7)
둘째, 행복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나타난다.
「휩쓸려감 경」(S1:3 §2)과「사라져버림 경」(S1:4 §2)에서 천신은 “죽음에 엄존하는 이러한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행복을 가져올 공덕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난다나 경」(S1:11 §4)에서는 “난다나 정원을 보지 못한 자들은 행복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자 다른 천신이 §5에서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라는 세존의 게송을 들려준다.
「좋음 경」(S1:33 §4)에도 행복은 나타나며, 특히「믿음 경」(S1:36 §4)에는 “방일하지 않는 자는 참선을 하여 궁극적인 행복을 얻기 때문이로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당연히 여기서 ‘궁극적 행복(parama sukha)’이란 아라한과의 행복(arahatta-sukha)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SA.i.67)
「불 경」(S1:41 §2)에는 “보시한 것은 행복한 결실을 가져온다.”고 나타나고,「자름 경」(S1:71 §3)에는 “분노를 끊은 뒤 행복하게 잠들고 분노를 자른 뒤 슬퍼하지 않노라.”라고 나타나며,「재화 경」(S1:73 §3)에는 “믿음이 여기서 인간의 으뜸가는 재화이며 법을 잘 닦아야 행복을 가져오느니라. 진리가 참으로 가장 뛰어난 맛이며 통찰지를 [구족하고] 살아야 으뜸가는 삶이라 부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셋째, 열반과 저 언덕과 불사(不死)에 대한 논의가 풍부하게 나타난다.
「벗어남 경」(S1:2)에서는 “중생의 해탈(nimokkha)과 벗어남(pamok- kha)과 떨쳐버림(viveka)”에 대해서 문답을 나누는데, 이 셋을 주석서는 열반의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나는 존재[有]에 대한 즐김을 멸절해버렸고 인식과 알음알이를 부수었고 느낌들을 소멸하고 가라앉혔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이 셋을 안다고 대답하신다.「휩쓸려감 경」(S1:3)에는 “평화를 찾는 자”라는 표현으로 열반을 실현하려는 자를 표현하고 있다.
「자만에 빠진 자 경」(S1:9)에서는 “자만을 제거하고 삼매에 잘 든 자는 고결한 마음을 가졌고 모든 곳에서 해탈하였도다. 그는 홀로 숲속에 거주하면서 방일하지 않아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라고 나타난다.
「좋음 경」(S1:33)에서는 “보시보다 법의 구절[法句]이 더 뛰어나도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참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통찰지 갖춰 오직 열반을 증득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있는 것이 아님 경」(S1:34)에서 사뚤라빠 무리에 속하는 천신이 “인간에게 욕망이란 항상한 것 아니거늘 원하는 것에 묶여 그들 방일하구나. 그 사람들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 돌아오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도다.”라고 읊는다. 그리고「무엇을 베풂 경」(S1:42)에서 세존께서는 “법을 가르치는 자는 불사(不死)를 베푸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돌조각 경」(S1:38)에서는 바라문들이 베다를 배우고 고행을 하더라도 갈애에 계박되고 서계와 계율에 묶여 있다면 저 언덕으로 가지 못한다고 강조하신 뒤에, “자만을 제거하고 바르게 잘 삼매에 드는 자는 고결한 마음으로 모든 곳에서 해탈하였도다. 그는 홀로 숲에 거주하면서 방일하지 않아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다.”라고 읊으신다.
「요정 경」(S1:46)에서 세존께서는 “양심있어 그것(마차)의 버팀목이고 마음챙김 그것의 장비가 되며 바른 견해가 앞서 가는 법이 되나니 그런 법을 일러 나는 마부라 하네. 이 마차에 탄 사람은 여자․남자할 것 없이 이 마차에 올라타고 열반으로 가느니라.”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한 짝 경」(S1:59)에서는 “믿음이 사람의 친구이고 통찰지가 그를 가르치도다. 열반을 기뻐할 때 사람은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노라.”라고 읊으시며,「묶음 경」(S1:64)에서는 “즐김이 세상을 묶으며 일으킨 생각이 그것의 걸음걸이니라. 갈애를 버려야 열반이라 불리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넷째, 통찰지에 대한 논의도 많이 나타난다.
위에서 자세히 살펴봤듯이「통찰지는 엉킴 경」(S1:23)의 중요한 주제이다. 그 외에도 S1:13 §3; S1:23 §3; S1:31 §3; S1:33 §9; S1:45 §2; S1:48 §2; S1:51∼52 §3; S1:59 §3; S1:73 §3; S1:75 §3; S1:80 §3 등 여러 곳에서 통찰지는 강조되고 있다.
다섯째, 공덕과 보시가 찬양되어 나타난다.
S1:3 §2; S1:4 §2; S1:32 §2, §8; S1:33 §§2∼9; S1:41 §2; S1:43 §3; S1:47 §2; S1:51∼53 §3등에서 공덕과 보시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인색 경」(S1:32)에서 세존께서는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이라는] 법을 실천하는 참된 사람이 베푸는 보시를 칭송하시면서, “어떤 자들은 바르지 못하게 살면서 보시를 하나니 자르고 죽이고 고통을 준 것으로 [보시하도다.] 그 보시는 눈물과 폭력으로 얼룩진 것이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 베푼 것에 비하면 가치가 없도다. 천의 보시물로 보시하는 이런 자의 백 천 배의 보시도 참된 자의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도다.”라고 길게 읊고 계신다. 그리고「좋음 경」(S1:33)에서도 세존께서는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과 보시에 대해서 자세히 문답을 주고받으신다.
「늙음 경」등(S1:51∼52)에서는 “공덕은 도둑들이 훔쳐가지 못한다.”고 하시고,「친구 경」(S1:53)에서는 “자신이 지은 공덕이 미래의 친구”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여섯째, 이 외에도 S1:9 §§2∼3; S1:37 §4; S1:38 §§9∼10에서는 삼매가 논의 되고 있으며, S1:9 §2; S1:25 §§4∼5; S1:38 §10 등에서는 자만이 거론되고 있고, S1:23 §3; S1:34∼36; S1:50 §2, §8; S1:71 §3; S1:77 §3 등에서는 성냄과 분노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S1:23 §3; S1:28 §3; S1:44 §2; S1:74 §4에서는 무명과 어리석음이 나타나는데,「비[雨] 경」(S1:74)에서는 “명지가 솟아오르는 것 가운데 으뜸이고 무명이 떨어지는 것 가운데 최상이로다. 승가가 걸어 다니는 것 가운데 으뜸이고 깨달은 분(붓다)이 말하는 자 가운데 최상이로다.”라고 읊고 계신다.
S1:11 §3; S1:20 §§4∼5; S1:21 §2; S1:23 §3; S1:28 §2; S1:29∼30 §§2∼3; S1:34 §2; S1:36 §2; S1:40 §2; S1:45 §2; S1:50 §2; S1:76 §3 등에는 감각적 욕망이나 탐욕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늙지 않음 경」(S1:76)에서는 “애욕이 잘못 된 길이라 불리며 탐욕이 [유익한] 법들의 방해물이네. … 여인이 청정범행의 더러움이니 남성들은 여기에 걸려 있도다.”라고 읊고 계신다.
한편 본 상윳따의 제4장은「사뚤라빠 무리 품」인데, 본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회합 경」(S1:37) 등의 넷을 제외한 여섯 개의 경들은 이들과 세존의 문답을 담고 있다.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Satullapakāyikā devatā)은 문자 그대로 ‘선한 사람들(sata)을 칭송하는(ullapa) 무리(kāyika)의 천신들’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선한 사람들의 법을 받들어 행함(samādāna, 복주서는 귀의하고 오계를 지키는 등의 실천이라고 설명하고 있음)을 통해서 그분들의 법을 칭송한 뒤 천신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SA.i.54)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에 얽힌 이야기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때 700명의 해양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배로 바다를 건너다가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났다. 배가 전복되자 상인들은 모두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광적으로 기도를 올렸지만 한 상인은 요가수행자(yogi)처럼 가부좌를 한 채 태연히 앉아있었다. 감명을 받은 상인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삼귀의와 오계를 지키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들도 모두 그 상인을 스승으로 하여 삼귀의와 오계를 받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삼귀의와 오계를 준 상인을 우두머리로 하여 하나의 무리가 되어서 즉시에 삼십삼천에 재생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우두머리를 칭송하기 위해서 세존께 다가와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SA.i.54∼55)
이처럼 본 상윳따에는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천상의 신들이 와서 행복과 해탈과 불사(不死)와 통찰지와 공덕과 보시 등과 같은 고결한 주제를 가지고 세존과 함께 게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귀중한 가르침들이 포함되어 있다.
4.「신의 아들 상윳따」(S2)
두 번째 주제인「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saṁyutta, S2)에는 모두 30개의 경들이 제1장「첫 번째 품」, 제2장「급고독 품」, 제3장「여러 외도 품」의 세 품에 각각 열 개씩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신의 아들’은 deva-putta를 직역한 것이다. 그러나 신들은 천상에 화현하여 태어나기 때문에 신의 아들이란 표현은 조금 어색하기는 하다. 그래서 보디 스님은 ‘young deva(젊은 신)’라고 옮기고 있다. 역자는 deva-putta를 ‘신의 아들’로 직역하였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deva-putta를 설명하고 있다.
“‘신의 아들(deva-putta)’이라 했다. 신들의 무릎에 태어난 사람들을 신의 아들들이라 한다. 여성은 신의 딸들(deva-dhītaro)이라 부른다.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면 ‘어떤 천신(aññatarā devat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름이 분명하면 ‘아무개 이름을 가진 신의 아들’이라 부른다. 그래서 앞(S1)에서는 어떤 천신이라고 했고 여기서는 신의 아들이라 부른다.” (SA.i.103)
그러나 복주서는 이것도 일반적으로(yebhuyya-vasena) 말한 것이지 이름을 아는 천신도 어떤 천신이라고 명명할 때도 있다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SAṬ.i.125)
아무튼 본 상윳따와 앞의「천신 상윳따」(S1)를 비교해보면 이름을 아는 천신은 신의 아들이라 부르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천신은 그냥 천신이라 부른다는 주석서의 설명은 정확하다. 왜냐하면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30개의 경들에는 분명히 신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고 앞의「천신 상윳따」에 실린 81개의 경에는 신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가띠까라 경」(S1:50)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 신이 특별히 남성 신임을 분명히 할 때는 본 상윳따에서처럼 deva-putta(신의 아들)로 표현하고, 여성 신임을 드러낼 때는 deva-dhuhitā(신의 딸)라 칭한다. 그러므로 천신과 신의 아들은 동의어이지 신의 아들이라 해서 어리거나 위력이 약한 천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deva-putta는 ‘남성 신’으로 옮길 수 있고 deva -dhīta는 ‘여성 신’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베다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신들은 남성 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남성 신’으로 의역하는 것도 어색해서 여러 가지로 궁리하다가 deva(신)- putta(아들)를 ‘신의 아들’로 직역을 한 것이다.
본 상윳따는 그 이름이 분명한 남성 신들이 세존께 와서 게송으로 문답을 나누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들로 구성되어 있고 앞의「천신 상윳따」(S1)에는 여성 신들도 포함한 일반적인 신들에 관계된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본 상윳따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보자.
첫째, 본 상윳따에는「천신 상윳따」(S1)보다 상대적으로 산문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천신 상윳따」에는 일반적으로 본서에서 생략하고 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으로 시작하는 경의 서문부분을 빼면 대부분의 경들이 게송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에는 산문부분이 천신 상윳따보다는 풍부하게 나타난다.
둘째, 본 상윳따의 적지 않은 게송이 다른 경들 특히 앞의「천신 상윳따」(S1)의 게송들과 중복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와수닷따 경」(S2:16)(본경에 나타나는 두 게송은「칼 경」(S1:21) {51∼52}과 같다.「웃따라 경」(S2:19)의 두 게송은「휩쓸려감 경」(S1:3) {3∼4}와 같다.「급고독 경」(S2:20)의 네 게송은「제따 숲 경」(S1:48) {156∼159}와 같다.「시와 경」(S2:21)의 일곱 게송들은「참된 자들과 함께 경」(S1:31) {78∼84}와 같다.「세리 경」(S2:23)의 세 게송은「음식 경」(S1:43) {144∼146}과 같다.「가띠까라 경」(S2:24)의 13개 게송은 모두「가띠까라 경」(S1:50) {170∼182}와 같다.「난다 경」(S2:27)의 두 게송은「사라져버림 경」(S1:4) {5∼6}과 같다. 그리고「로히땃사 경」(S2:26)은 게송을 포함하여『앙굿따라 니까야』제2권「로히땃사 경」1(A4:45)과 같은 내용이다.
셋째, 특히 본 상윳따에는 비구들의 수행에 관해서 신들과 세존이 나누는 문답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경으로서는「까마다 경」(S2:6),「빤짤라짠다 경」(S2:7),「따야나 경」(S2:8),「짠디마사 경」(S2:11),「웬후 경」(S2:12),「깟사빠 경」2(S2:2),「디가랏티 경」(S2:13),「난다나 경」(S2:14),「짠다나 경」(S2:15),「와수닷따 경」(S2:16),「수브라흐마 경」(S2:17),「잔뚜 경」(S2:25)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그 외에 특이한 경으로는 달이 의인화된「짠디마 경」(S2:9)과 태양이 의인화된「수리야 경」(S2:10)이 있으며, 인도 신화의 유력한 두 신인 위슈누(Viṣṇu)와 시와(Śiva)에 관한 경들 즉「웬후 경」(S2:12)과「시와 경」(S2:21)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세존의 게송이나 말씀이 나타나지 않는 경으로는「깟사빠 경」2(S2:2)과「디가랏티 경」(S2:13)을 들 수 있다.
5.「꼬살라 상윳따」(S3)
세 번째 주제인「꼬살라 상윳따」(Kosala-saṁyutta, S3)에는 모두 25개의 경들이 각각「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배당되어 전승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들의 묶음이 10개 이하가 되면 하나의 독립된 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상윳따 니까야』뿐만 아니라『앙굿따라 니까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서에 포함된 S3, S4, S11에는 각각 25개 경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1품과 제2품에 각각 10개씩의 경들을 배당하고 나머지 다섯 개의 경들을 제3품에 배당하여 하나의 독립된 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본서「범천 상윳따」(S6)에도 1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같은 방법으로 두 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 세존과의 문답을 담고 있는 경들이다. 그래서 제목을「꼬살라 상윳따」로 정한 것이다. 본품에 포함된 경들은 대부분이 산문으로 되어 있지만 경의 말미에 모두 게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본서 제1권「게송을 포함한 가르침」(Sagātha-vagga)에 포함된 것이다.
빠세나디 꼬살라 왕(rājā Pasenadi Kosala)은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재가신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하꼬살라(Mahākosala)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 당시 인도 최고의 상업도시요 교육도시로 알려진 딱까실라(Takkasilā)로 유학하여 릿차위의 마할리(Mahāli)와 말라의 반둘라(Bandhula) 왕자 등과 함께 공부하였으며 여러 학문과 기술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자 마하꼬살라 왕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DhpA.i.338) 본 상윳따(S3)의 여러 경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선정(善政)에 힘썼으며 뇌물과 부패를 청산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일찍부터 부처님과 교분을 맺었으며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부처님의 신도였다.
그의 아내는 말리까(Mallikā) 왕비였는데, 부처님께 크나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말리까 왕비가 기증한 정사도 있었다. 그의 여동생 꼬살라데위(Kosaladevī)는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과 결혼하였다. 한편 그의 딸 와지라(Vajirā)도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아자따삿뚜 왕과 결혼시키는 등 마가다와 정략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부처님과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하며(DPPN), 그래서 부처님과는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부처님을 존경하고 흠모하였는지는『맛지마 니까야』「법탑(法塔)경」(Dhammacetiya Sutta, M89) 등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여러 문헌(DhpA.i.339; J.i.133; iv.144 등)에 의하면 그는 부처님과 인척 관계를 맺고 싶어 하였으며 그래서 사꺄족의 딸과 결혼하고자 하였다. 자부심이 강한 사꺄 족은 마하나마(Mahānāma)와 하녀 사이에서 난 딸인 와사바캇띠야(Vāsabhakhattiyā)를 보냈으며, 이들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위두다바(Vidūdabha) 왕자이다. 위두다바 왕자가 커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하였고, 그래서 후에 위두다바는 사꺄를 정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참한 살육을 하였다고 한다.
이 위두다바는 나중에 빠세나디 왕의 총사령관이었던 디가까라야나(Dīghakārāyana)의 도움으로 모반을 일으켜 왕이 되었으며, 빠세나디 왕은 마가다로 가서 아자따삿뚜의 도움을 청하려 하였지만 그가 라자가하에 도착하자 이미 성문은 닫혀 있었다. 노후한 몸에 피로가 엄습한 그는 성밖의 객사에서 그날 밤에 죽었다고 하며 아자따삿뚜가 그의 시신을 잘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에 아자따삿뚜는 위두다바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대신들의 조언으로 그만두었다고 한다.(M.ii.118; MA.ii.753; DhpA.i. 353; J.iv.150)
빠세나디 왕에게는 브라흐마닷따(Brahamadatta)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부처님 문하에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ThagA.i.460) 그의 여동생 수마나(Sumanā) 공주도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물론 제따 숲을 기증한 제따(Jetā) 왕자도 그의 아들이었다.
부처님께서 후반부의 24여 년 간을 사왓티에 머무실 정도로 꼬살라와 부처님과는 인연이 많은 곳이며「꼬살라 상윳따」라는 본 상윳따가 전승되어 올 정도로 그는 불교와는 가장 인연이 많았던 왕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아내 말리까 왕비(Mallikā Devī)에 대해서는『앙굿따라 니까야』제2권「말리까 경」(A4:197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본 상윳따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경을 들라면「말리까 경」(S3:8)을 들 수 있다.
빠세나디 왕과 말리까 왕비가 궁궐의 누각으로 올라가서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말리까여,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있습니까?”
“대왕이시여, 제게는 제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런데 임금님께는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있습니까?”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는 없습니다.”
왕과 왕비의 이 대화는 인도의 가장 잘 알려진 우빠니샤드인『브르하다란냐까 우빠니샤드』(Bṛhadāraṇyaka Upaniṣad ii.4.5; iv.5.6)에 나타나는 바라문 수행자인 얏냐왈꺄(Yajñavalkya)와 그의 아내 마이뜨레이(Maitre -yī)와의 대화와 비교된다. 얏나왈꺄의 대화가 자아의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왕과 왕비의 대화는 아래 부처님의 게송에서 보듯이 자비로 연결된다. 왕이 세존께 다가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보건만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자 볼 수가 없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이 사랑스러운 법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마세.”{392}
이 잘 알려진 게송은『쿳다까 니까야』의『자설경』(Ud.47)과『청정도론』IX.10에도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기 때문에 이기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절대로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세존의 이 말씀은 진정한 자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꼬살라 왕과 관계된 경들 가운데서 또 다른 잘 알려진 경은 본 상윳따의「양동이 분량의 음식 경」(S3:13)이다. 왕은 매끼마다 양동이 분량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음식을 잔뜩 먹고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아시고 그 사실에 대해서 이 게송을 읊으셨다.
“사람이 항상 마음챙기면서
음식을 대하여 적당량을 알면
괴로운 느낌은 줄어들고
목숨 보존하며 천천히 늙어가리.” {403}
그 후 왕은 수닷사나라는 바라문 학도를 시켜 그가 식사를 할 때마다 이 게송을 읊게 하여 식사량을 줄여 많아야 한 접시정도의 밥만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헝클어진 머리를 한 일곱 고행자 경」(S3:11)은 그 당시 왕들이 수행자들 특히 고행자들을 존경했음을 알 수 있으며「전쟁 경」1/2(S3:14∼15)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꼬살라와 마가다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경이다.
「할머니 경」(S3:22)에서는 왕이 120세에 임종을 한 할머니를 애도하자 세존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모든 중생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니
목숨이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라.
업에 따라 중생들은 제각각 갈 것이니
공덕과 사악함의 결실대로 가리라.
악업 지은 중생들은 지옥으로 갈 것이고
공덕 지은 중생들은 선처로 가리로다. {431}
그러므로 유익함[善]을 지어야 하나니
이것이 존재들의 미래의 자신이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 모든 존재에게는
공덕이 저 세상에서의 기반이로다.” {432}
「궁술 경」(S3:24)에서 왕이 “어디에 보시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한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오는지”를 여쭙자 세존께서는 [자신의] 마음이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곳에 보시하지만 계를 구족한 자에게 한 보시는 큰 결실을 가져온다고 대답하신다. 그런 뒤에 다섯 가지 장애[五蓋, nīvaraṇa]를 버렸고,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法蘊, dhammakkhanda] 즉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을 구족한 무학(아라한)에게 하는 보시가 큰 결실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신다.
6.「마라 상윳따」(S4)
네 번째 주제인「마라 상윳따」(Māra-saṁyutta, S4)에는 마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포함되어 있다. 앞의「꼬살라 상윳따」(S3)처럼 본 상윳따도「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전승되고 있다.
마라(Māra)는 초기경의 아주 다양한 문맥에서 아주 많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빠알리 주석서는 이런 다양한 마라의 언급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① 오염원(kilesa)으로서의 마라(ItvA.197; ThagA.ii.70 등) ② 무더기(蘊, khandha)로서의 마라(S.iii.195 등) ③ 업형성력(abhi- saṅkhāra)으로서의 마라 ④ 신(devaputta)으로서의 마라 ⑤ 죽음(maccu)으로서의 마라이다.(ThagA.ii.46; Vism.VII.59 등)
『청정도론』에서는 부처님은 이러한 다섯 가지 마라를 부순 분(bhaggavā)이기에 세존(bhagavā)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VII.59) 그러므로 열반이나 출세간이 아닌 모든 경지는 마라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으로서의 마라는 자재천(Vasavatti)의 경지에 있는 다마리까 천신(Dāmarika-devaputta)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라는 욕계의 최고 천상인 타화자재천(Paranimmitavasavatti)에 거주하면서 수행자들이 욕계를 벗어나 색계나 무색계나 출세간의 경지로 향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이기 때문이다.(SnA.i.44; MA.i.28) 그리고 그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삭까)처럼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마군(魔軍, Mārasena)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유력한 신이다. 그러나 수행자들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려는 그의 심성 때문에 그는 천신이나 신의 아들 등으로 불리지 않고 마라로만 언급되고 있다.
주석서들에서는 Māra의 어원을 한결같이 √mṛ(to kill, to die)로 본다. 물론 산스끄리뜨 문헌들에서도 죽음을 뜻하는 √mṛ(to die)로도 보기도 하지만 역자는 기억을 뜻하는 √smṛ(to remember)로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Māra의 산스끄리뜨는 인도 최고의 희곡인『샤꾼딸라』등에서 스마라(Smāra)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마라는 바로 기억을 뜻하는 √smṛ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힌두 신화에서 마라는 사랑의 신을 뜻하는 까마데와(Kāmadeva)이며 이 신의 많은 별명 가운데 하나가 스마라이다. 까마데와는 로마 신화의 사랑의 신인 큐피드(Cupid)에 해당한다. 사랑의 신 까마데와도 큐피드처럼 사랑의 화살을 가지고 다니면서 화살을 쏜다. 이 화살에 맞으면 사랑의 열병에 걸린다. 산스끄리뜨 문학 작품에 의하면 마라는 수련화(Aravinda), 아쇼까 꽃(Aśoka), 망고 꽃(Cūta), 재스민(Navamālikā), 청련화(Nīlotpala)의 다섯 가지 꽃 화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러한 까마데와의 꽃 화살에 맞게 되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불교주석서들에서도 이러한 다섯 가지 마라의 꽃 화살은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마라는 유혹자이다. 이성을 서로 꼬드기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라는 Tempter(유혹자, 사탄)이다. 그래서 마라를 Tempter라고 옮기는 서양학자도 있다.
그리고 이 √smṛ에서 파생된 것이 빠알리의 sati 즉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과 마라는 이렇게 대비가 된다. 이처럼 마라의 어원을 √smṛ(to remember)로 이해하면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케 하는 아주 의미심장한 해석이 된다.
본 상윳따의 25개 경들 가운데「많음 경」(S4:21)과「사밋디 경」(S4:22)과「고디까 경」(S4:23)은 각각 마라가 많은 비구들과 사밋디 존자와 고디까 존자에게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고행 경」(S4:1) 등 나머지 22개의 경들은 세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편 마라는 본 상윳따의「고행 경」(S4:1),「마라의 올가미 경」1/2(S4:4∼5),「잠 경」(S4:7),「기쁨 경」(S4:8),「수명 경」1/2(S4:9∼10),「사자 경」(S4:12),「돌조각 경」(S4:13),「어울리는 일 경」(S4:14),「정신적인 것 경」(S4:15),「탁발음식 경」(S4:18),「통치 경」(S4:20),「고디까 경」(S4:23),「칠 년 동안 경」(S4:24)에서는 말로 하는 대화나 특히 게송으로 세존을 성가시게 하고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코끼리 경」(S4:2)에서는 무서운 코끼리로,「아름다움 경」(S4:3)에서는 여러 모양의 색깔로,「뱀 경」(S4:6)에서는 뱀으로,「바위 경」(S4:11)에서는 바위를 부수는 것으로,「발우 경」(S4:16)에서는 사나운 황소로,「여섯 감각접촉의 장소 경」(S4:17)과「사밋디 경」(S4:22)에서는 굉음을 내는 것으로,「농부 경」(S4:19)에서는 농부의 모습으로,「많음 경」(S4:21)에서는 바라문의 모습으로 나타나며,「마라의 딸들 경」(S4:25)에서는 마라의 세 딸들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존과 대화를 나눈다.
마라와는 관계없지만 본 상윳따의「고디까 경」(S4:23)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해탈(sāmāyika vimutti)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일시적인 해탈’이란 증득하는 순간에만 반대되는 법들로부터 해탈하고 그리고 대상에 확고하게 되는 세간적인 증득(lokiya-samāpatti)을 말한다. 한편『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자(samaya-vimutta)’란 오직 본삼매에 들어 있는 순간에만 억압된 오염원들로부터 해탈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이라 불리는 세간적인 해탈(lokiya-vimutta)을 통해 마음이 해탈한 자를 뜻한다.”(AA.iii.292)
즉 예류자부터 아라한까지의 성자의 경지는 아직 실현하지 못했지만 삼매에 든 순간에는 다섯 가지 장애로 대표되는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자라고 한다는 뜻이다.
본경에 의하면 고디까 존자는 무려 일곱 번이나 일시적인 마음의 해탈에 도달했지만 성자의 경지는 증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칼을 들어 자결을 하였다. 세존께서는 “고디까는 알음알이가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라고 그가 반열반하였음을 선언하고 계신다.
한편 다음의「비구니 상윳따」(S5)에 포함된 10개의 경들도 모두 마라와 관계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비구니 상윳따」는「마라 상윳따」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7.「비구니 상윳따」(S5)
다섯 번째 주제인「비구니 상윳따」(Bhikkhunī-saṁyutta, S5)에는 10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이 경들은 모두 각각 경에 나타나는 비구니 스님들과 마라 사이에 얽힌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상윳따는 앞의「마라 상윳따」(S4)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들 10개의 경들에서 마라는 비구니 스님들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생기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는” 내용을 담은 게송이나 문답으로 비구니 스님들을 겁주고 그들의 한거를 방해하고 있다.
물론 이 비구니 스님들은 다들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요 아라한들이기 때문에 당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마라와의 대화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한 대장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개의 경들은 모두 깊은 불교적 사유와 성찰과 통찰을 담고 있어서 모두 다 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역자는 여기서「셀라 경」(S5:9)을 소개하고 싶다.
본경에서 마라는
“누가 이 꼭두각시를 만들었는가?
꼭두각시를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소멸하는가?”{548}
라고 다그친다.
주석서는 “‘꼭두각시(bimba)’란 자기 존재(atta-bhāva)를 두고 한 말이다.”(SA.i.193)라고 설명하고 있고 복주서는 다시, “여기서는 자기 존재라고 인식되는 이 꼭두각시는 범천(brahma), 위슈누(visaṇu), 뿌루샤[原人], 빠자빠띠(조물주) 등 가운데서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드러내었는가, 누가 창조하였는가 등을 묻는 것이다.”(SAṬ.i.199)라고 부연하고 있다.
그러자 셀라 비구니는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말한다.
“이 꼭두각시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요
이 불쌍한 것은 남이 만든 것도 아니로다.
원인을 조건으로 해서 생겼으며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49}
마치 씨앗이 들판에 뿌려져서
잘 자라기 위해서는
땅의 영영분과 수분의 둘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도다.{550}
그와 같이 무더기들[蘊]과
요소들[界]과 여섯 감각장소들[處]은
원인을 조건으로 하여 생겨났지만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51}
부처님 당시의 학자들의 주장은 괴로움은 자신이 만드는 것(atta-kata, 自作)이라는 설과 남이 만드는 것(para-kata, 他作)이라는 설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자는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의 입장이고 후자는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의 입장이다. 전자는 영원한 자아가 있어서 이 자아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에 따라 윤회전생(transmigra -tion)한다는 견해이다. 후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려서 아무 것도 남지 않으므로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모두 외부의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쟁은 본서 제2권「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12:17) 등(S12:17; 18; 24; 25)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참조할 것. 여기에 대해서 셀라 비구니는 존재란 조건발생이라는 불교의 입장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편『앙굿따라 니까야』「존재 경」(A3:76) §1 등에서 세존께서는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업(kamma)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난다여,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알음알이를 확립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본 게송과 같은 말씀이다. 이렇게 해서 온․처․계가 생기고 머물고 사라지고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중생이라는 존재의 현주소이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선업과 불선업이 자라는 장소(ṭhāna)라는 뜻에서 업은 ‘들판(khetta)’이다. [업과] 함께 생긴 업을 형성하는 알음알이는 자란다는 뜻에서 ‘씨앗(bīja)’이다. [씨앗을] 돌보고 자라게 하기 때문에 ‘갈애’는 물과 같다.” (AA.ii.335)
한편「와지라 경」(S5:10)에서 와지라 비구니는
“누가 중생을 창조하였는가?
중생을 창조한 자는 어디에 있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생겼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소멸하는가?”{552}
라고 다그치는 마라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 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들[行]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553}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 {554}
단지 괴로움이 생겨나고
단지 괴로움이 머물고 없어질 뿐이니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도다.” {555}
여기서 ‘괴로움(dukkha)’이란 오온의 괴로움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이것은 {553} 게송의 ‘단지 형성된 것들[行]의 더미(suddha-saṅkhāra -puñja)’와 같은 것이다. 본서 제2권「깟짜나곳따 경」(S12:15 §5)에서도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고 나타나고 있다. 불교에서 나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은 이처럼 오온개고(五蘊皆苦)와 오온무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온․처․계․연 등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디가 니까야』「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신․수․심․법)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하거나 그 중의 하나의 무상․고․무아를 해체해서 보는 것(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본 게송에 나타나는 마차의 비유는『밀린다빤하』(Mil.27∼28)에 인용되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청정도론』XVIII.25∼28도 본경의 두 게송을 인용하면서 정신․물질을 떠나 중생이라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와지라 비구니의 명쾌한 해석은 후대 불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8.「범천 상윳따」(S6)
여섯 번째 주제인「범천 상윳따」(Brahma-saṁyutta, S6)에는 15개의 경들이 두 개의 품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사함빠띠 범천이나 바까 범천이나 사낭꾸마라 범천 등 범천과 관련된 경들을 모은 것이다. 본 상윳따에도 15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지만「첫 번째 품」과「두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두 품으로 나누어서 각각에 10개와 5개의 경들을 담고 있다.
초기불전에서 신으로 언급이 되는 범천(Brahma, 브라흐마)이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를 뜻하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주석서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DPPN은 범천을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사는 자들로 정리하고 있다. 주석서에서는 색계 초선천부터 삼선천까지의 9가지 천상과 4선천의 무상유정천과 광과천과 다섯 가지 정거천과 네 가지 무색계 천상 — 이 20가지 천상을 모두 범천의 세상(brahma- loka)으로 부르고 있다.(VibhA. 521, 등) 마라는 욕계의 가장 높은 천상인 타화자재천에 거주하는 신인데 반해, 범천은 이러한 마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색계 이상의 천상에 거주하는 신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색계 초선천의 신들을 범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색계 초선천을 범신천(梵身天, Brahmakāyikā)이라 부르고 이 범신천은 다시 범중천(Brahmapārisajjā)과 범보천(Brahmapurohitā)과 대범천(Mahābrah- mā)으로 구분이 되는데, 이 천상의 키워드가 바로 범천(Brahma)이기 때문이다.(범신천에 대해서는『아비담마 길라잡이』제5장 §6의 해설을 참조할 것.) 그러나 초선천을 범천이라 부르지 않고 범신천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범천과 범신천이 정확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DPPN도 주석서의 견해를 따라서 색계 이상의 천상, 즉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머무는 신들을 통틀어서 범천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까야의 D1 §2.5, D2 §61, D11 §80, D20 §20, M49 §5, A10:29 §2 등에서도 대범천은 유력한 범천이란 뜻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D14 §3.2 이하에서도 위빳시 세존께 법을 설하기를 간청하는 범천도 대범천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디가 니까야』D19, D20 등과 본 상윳따에 해당하는 주석서인 SA.i.199와 DA.ii.177과 DAṬ.ii.351 등의 복주서에서는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범천들이 대범천(Mahābrahm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가운데서 사함빠띠 범천이 대범천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대범천(Mahābrahmā)은 초선천의 세 번째 천상을 뜻하기도 하고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사낭꾸마라(Sanaṅkumāra), 사함빠띠(Saham- patī), 뚜두(Tudu), 가띠까라(Ghaṭikāra), 바까(Baka) 등의 유력한 범천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범천으로 옮긴 brahma는 초기경에서 보통명사로도 쓰이고 있으며 특히 합성어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예외 없이 모두 ‘신성함, 거룩함, 높음, 위대함’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주석서는 “최상이라는 뜻에서(seṭṭhatthena) 브라흐마(brahma)라 부른다.”(DA.iii. 865 등)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정범행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짜리야(brahma-cāriya)와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위하라(brahma-vihāra), 최상의 존재로 옮기는 브라흐마부따(bhrahma-bhūta), 최고의 처벌로 옮기는 브라흐마단다(brahma-daṇḍa) 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색계와 무색계 천상을 일컫는 범천의 세상(brahma-loka)은 ‘거룩한 천상 세계’로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본 상윳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범천은 사함빠띠 범천(brahmā Sahampati)이다. 그는 본「범천 상윳따」S6:1∼3, 10, 12∼13, 15에 나타나고 있으며, 본서 S11:17; S22:80; S47:18, 43에도 등장하고 있다. 사함빠띠 범천은 본서「권청(勸請) 경」(S6:1)에서 보듯이 이 세상에 불교가 시작되는데 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경에서 보듯이 법의 바퀴를 굴릴 것을 간청하는 자도 사함빠띠 범천이고, 세존이 입멸하시자 맨 처음 게송을 읊은 자도 그다.(본서「반열반 경」(S6:15) {608})
그가 어떻게 막강한 신이 되었는가는 본서「사함빠띠 범천 경」(S48:57 §5)에 나타난다. 이 경에서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옛날에 저는 깟사빠 정등각자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았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저를 ‘사하까 비구, 사하까 비구’라 불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을 닦고 많이 [공부]지어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을 빛바래게 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인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저를 ‘사함빠띠 범천, 사함빠띠 범천’이라 부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그는 불교의 태동(S6:1 참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부처님의 입멸(S6:15 참조)에도 등장하는 신으로 초기불전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사낭꾸마라 경」(S6:11)에 나타나는 사낭꾸마라 범천도 세존을 존중하는 범천으로 나타난다. 사낭꾸마라(Sanaṅkumāra)는 문자적으로 ‘항상(sanaṁ) 동자(kumāra, 소년)인 자’라는 뜻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전생에 머리를 다섯 가닥으로 땋아 다니던 소년이었을 때(pañca- cūḷaka-kumāra-kāle, 혹은 pañca-sikha-kumāra-kakāle) 禪을 닦아서 그 선의 힘으로 범천의 세상(brahma-loka)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범천이 되어서도 동자의 모습을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동자 즉 사낭꾸마라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SA.i. 219; MA.ii.584; DA.ii.647.)
사낭꾸마라의 산스끄리뜨인 사낫꾸마라(Sanatkumāra)는 이미 고층 우빠니샤드인『찬도갸 우빠니샤드』(Chāṇḍogya Upaniṣad, 7.26:2)에서 언급이 되고 있으며, 인도의 대서사시인『마하바라따』(Mahābhārata, iii.185)에서도 여기서 나타나는 게송과 비슷한 게송을 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디가 니까야』제2권의「대회경」(D20 §20)과 특히「자나와사바 경」(D18 §18)과「마하고윈다 경」(D19 §1)에도 그가 등장하는데, 빤짜시카 동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1.28)에는 그가 읊은 이 게송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는 신들 가운데 부처님께 귀의한 신으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함께 자주 언급이 된다.
반면「바까 경」(S6:4)에 나타나는 바까 범천은 불변하는 자아(ātman)를 상정하는 인도 사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천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유일하며, 이것은 불멸의 법이다. 이것은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떨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nissaraṇa)이란 없다.”라고 주장한다. 본경의 다음에 나타나는 어떤「범천 경」(S6:5)에도 바까 범천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범천이 등장하며,「범천의 세상 경」(S6:6)에도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 불교의 사상가들은 미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석서는 바까 범천이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 그가 인간이었을 때 그는 禪을 닦아서 죽어서 제4선천인 광과천(Vehapphal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5백 겁이었다. 거기서 죽어서는 제3선천인 변정천(Subhakiṇh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64겁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제2선천인 광음천(Ābhassara)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8겁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초선천인 [범천]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1겁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전의 업과 그 과보로 태어난 천상에 대해서 기억을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이처럼 상견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SA.i.208) 즉 그는 범천인 자신의 수명이 영원하고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만을 보고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범천들이 가지는 비슷한 주장이「범망경」(D1 §2.5) 등에도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로 나타나고 있다. 거기서도 세존께서는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그곳에 먼저 태어나서 혼자됨에 싫증이 나고 초조하던 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라고 하신다.
본 상윳따의「범천의 세상 경」(S6:6)과「꼬깔리까 경」1(S6:7)과「띳사까 경」(S6:8)과「뚜두 범천 경」(S6:9)에는 벽지 범천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술어가 나타난다. S6:6∼8에는 수브라흐마 벽지 범천과 숫다와사 벽지 범천이 나타나고 있으며, S6:9에는 뚜두 벽지 범천이 나타나고 있다. 뚜두 벽지 범천은 고깔리까 비구의 은사였으며 불환과를 얻었는데, 죽어서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수브라흐마와 숫다와사도 세존을 존경하는 벽지 범천이다.
‘벽지 범천’은 pacceka-brahmā를 옮긴 것이다. 복주서는 “벽지 범천이란 혼자 사는(eka-cāri) 범천인데 회중과 함께하는(parisa-cāri) 범천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여기서 벽지(pacceka)라는 말은 삶의 방식(āvutti)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벽지라는 말은 혼자(ekeka)라는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SAṬ.i.213)
깨달았지만 대중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분을 벽지불(pacceka-buddha)라고 하듯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지만 회중과 함께하지 않는 범천을 벽지 범천(pacceka-brahmā)이라 부르고 있다.
9.「바라문 상윳따」(S7)
일곱 번째 주제인「바라문 상윳따」(Brāhmaṇa-saṁyutta, S7)에는 모두 22개의 경들이 나타나는데, 제1장「아라한 품」과 제2장「청신사 품」의 두 품에 각각 10개와 12개의 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바라문(婆羅門)은 산스끄리뜨와 빠알리어 brāhmaṇa를 중국에서 음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범천(梵天)으로 옮기는 brahma(n)에서 파생된 말이며 어근은 √bṛh(to shine, to be bright 혹은 to make strong)이다.『디가 니까야』「세기경」(世紀經, D27 §22)에서 세존께서는 “사악한 해로운 법들을 없앤다(bāheti)라고 해서 ‘바라문, 바라문’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생겨났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바라문(brāhmaṇa)의 어원을 bāheti에서 찾고 계신다. bāheti는 bahi(밖으로)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그래서 ‘[불선법들을] 밖으로 한다, 밖으로 보낸다,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이다.
주지하듯이 바라문은 우리가 카스트제도라 부르는 인도의 와르나(Varṇa) 제도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계층이며 인도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문헌인 4베다와 여기에 관계된 다양한 문헌과 학문을 전승하고 복잡다단한 제사를 발전시키고 이를 관장한 지식인 계층이고 성직자 계층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전승된 종교가 바로 바라문교이다.
이들이 발전시킨 인도의 베다 문헌은 고대로부터 삼히따(Saṁhitā, 本集), 브라흐마나(Brāhmaṇa, 祭儀書), 아란냐까(Āraṇyaka, 森林書), 우빠니샤드(Upaṇiśad, 秘義書)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삼히따(베다본집)에는 우리가 잘 아는『리그베다』,『야주르베다』,『사마베다』,『아타르와베다』의 4베다가 있다. 이 베다본집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학파와 문도와 가문들로 구성된 것이 인도 바라문들이다. 그래서 각 학파나 문도에서는 각각 그들 고유의 제의서와 삼림서와 비의서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학파는 수천 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제사에서 각각 네 가지 역할을 분장해서 관리하면서 인도 전통 바라문교를 유지해 왔다.
초기불전에서는 이 가운데『아타르와베다』를 제외한 앞의 세 베다만을 삼베다(tevijjā)라 하여 인정하고 있다. 초기불전에서『아타르와베다』는 베다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아타르와베다』는 그 내용이 흑마술(黑魔術, black magic)에 관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신성한 베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야주르베다』와『사마베다』의 거의 모든 만뜨라는『리그베다』에 나타난다.『리그베다』가운데서 제사의식을 관장하는 야주스(yajus) 바라문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읊는 만뜨라를 모은 것이『야주르베다』이며,『리그베다』가운데서 제사에서 창(唱)을 하는 사만(sāman) 바라문들의 창에 관계된 만뜨라를 모은 것이『사마베다』이다.
그리고 초기불전에서도 이미 바라문은 사성계급가운데 최상의 계급으로 정착이 되어서 나타난다. 그래서 누가 진정한 바라문인가를 두고『맛지마 니까야』「와셋타 경」(M98) 등에서처럼 “모계와 부계의 둘 다로부터 순수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 동안 태생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무랄 데가 없어야만 바라문이다.”라는 주장과, “계행을 가지고 서계를 구족하여야만 바라문이다.”는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후자를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그래서「왓세타 경」(M98 §11)에서 세존께서는 “나는 모태나 혈통으로서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 남아있지 않고 취착하지 않는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모든 족쇄를 자르고서 떨지 않으며 기운 것을 풀어버린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라는 등의 28가지로 불교식으로 바라문을 정의하고 계신다.
그리고『법구경』「바라문 품」(Dhp.390~423)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바라문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계시는데, 탐․진․치가 다 하고 번뇌가 다한 성자야말로 진정한 바라문이라고 강조하신다.
본 상윳따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1품에 나타나는 열 명의 바라문들은 세존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에 이 품을「아라한 품」이라고 명명하였고, 제2품에 나타나는 열두 명의 바라문들은 세존의 설법을 듣고 모두 재가 신도가 되었기 때문에「청신사품」이라 부르고 있다.
이 가운데「다난자니 경」(S7:1)에 나타나는 다난자니의 남편이었던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은「욕설 경」(S7:2)의 욕쟁이 바라드와자 바라문과「아수라 왕 같은 자 경」(S7:3)의 아수라 왕 같은 바라드와자 바라문과「시큼한 죽 장수 경」(S7:4)의 시큼한 죽 장수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맏형이었다. 그는 아내가 세존께 지극한 신심을 가진 것에 분노하여 부처님께 따지러 갔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가 출가하자 그의 세 동생들도 분개하여 세존께 따지러 갔다가 모두 세존의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해코지 않음 경」(S7:5)부터「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까지의 7개 경과「나와깜미까 경」(S7:17)과「땔나무 모으기 경」(S7:18)에 나타나는 바라문들도 모두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들이다. 이렇게 하여 모두 13개 경들이 바라드와자 족성을 가진 바라문의 일화를 담고 있다.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유력했던 바라문 족성이다.
『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 §2.8)과『앙굿따라 니까야』「도나 경」(A5:192 §2) 등에는 당시에 유력했던 바라문 족성으로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웻사미따(Sk. Viśvāmitra)는『리그베다』3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며, 와마데와(Sk. Vāma- deva)는 4장을, 바라드와자(Bharadvāja)는 6장을, 와셋타(Sk. Vasiṣṭha)는 7장을 전승해 온 가문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편「많은 딸 경」(S7:10)에 나타나는 많은 딸을 가진 바라문이 해학적으로 읊는 게송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게송을 통해서 잃어버린 지 엿새째인 열네 마리의 황소가 없고, 한 잎이나 두 잎이 달려 있는 참깨 밭이 없고, 텅 빈 헛간 안에 명랑하게 춤춰 대는 쥐들이 없고, 해충들이 바글거리는 일곱 달이나 된 담요가 없고, 한 아들이나 두 아들을 가진 과부된 딸년들이 없고, 잠자리에서 발로 깨우는 누렇게 뜬 곰보 마누라가 없고, 새벽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이 없어서 그래서 이 사문은 행복하구나라고 해학적으로 읊고 있다. 그는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까시 바라드와자 경」(S7:11)은『숫따니빠따』에도「까시 바라드와자 경」(Sn1:4)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이기도 하다. 본 상윳따뿐만 아니라 니까야의 도처에는 많은 바라문들이 세존을 뵙고 설법을 듣고 출가하기도 하고 재가 신도가 되기도 한다. 바라문은 인도의 지식계층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세존의 심오한 가르침을 잘 이해하였을 것이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마하깟사빠 존자 등 초기불교에서 유력한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도 바라문 출신들이 아주 많았다.
10.「왕기사 장로 상윳따」(S8)
여덟 번째 주제인「왕기사 장로 상윳따」(Vaṅgīsathera-saṁyutta, S8)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있다.
왕기사 존자(āyasmā Vaṅgīsa)는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서 베다에 능통한 자였다. 본 상윳따에서 보듯이 그는 영감과 시작(詩作)에 능통했다. 그래서『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S1:14:3-4)에서 세존께서는 그를 “영감을 가진 자(paṭibhānavan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다.
『법구경 주석서』(DhpA.iv.226∼228)에 의하면 왕기사 존자는 방랑하는 바라문이었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죽은 사람의 해골(matānaṁ sīsa)을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그가 임종하여 어디에 태어났는가를 말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하였다고 한다. 그가 부처님을 만났을 때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해골을 포함한 여러 해골들을 그에게 주시고 알아맞혀보라고 하셨다. 그는 다른 해골을 통해서는 그들이 재생한 곳을 잘 알아맞혔지만 아라한의 해골을 두드려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당황하였다. 그는 아라한이 재생하는 곳을 알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그는 세존께 그 기술을 전수해달라고 하였고 세존께서는 32가지 형태의 명상주제를 말씀해 주셨다. 그는 그것을 순으로 역으로 마음에 잡도리하여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순차적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SA.i.285∼286)
한편 왕기사 존자(āyasmā Vaṅgīsa)가 지은 게송은『장로게』(Thag) {1209∼1279}에 모아져서 전승되어 온다. 본 상윳따의 {707}∼{757} 게송은『장로게』 {1209∼1262}와 동일하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12개의 경들 가운데 S8:1, 2, 3, 12의 네 개의 경에 나타나는 게송은 자기 스스로를 경책하거나 자신에 대한 것이며, S8:5, 7, 8, 11은 세존을 칭송하는 게송이 포함되어 있으며, S8:4는 아난다 존자를, S8:6은 사리뿟따 존자를, S8:9는 꼰단냐 존자를, S8:10은 목갈라나 존자를 칭송하는 왕기사 존자의 게송이 담겨있다.
그리고 역자가 주목하고 싶은 경은「천 명이 넘음 경」(S8:8)이다. 여기서 존자는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742}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주석서는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ṁ)’란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부분으로 법을 해체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혹은 철저하게 해체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과 부분들로 해체하고(vibhajitvā) 해체해서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분들로 해체한다는 것은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와 복주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좌부 불교를 위밧자와딘(Vibhajjavādin) 즉 해체를 설하는 [상좌부], 혹은 분별[상좌부]라 부르는『율장 주석서』(VinA.i.61 = KvA.7)와『청정도론』(XVII.25) 등의 입장과 그대로 일치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남방불교 혹은 상좌부불교를 ‘분별 상좌부’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해체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paññatti)의 해체이다.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온․처․계․근․제․연 등으로 설해지는 법(dhamma)의 무상․고․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특히 본서 제3권「무더기 상윳따」(S22)와 제4권「육처 상윳따」(S35)의 많은 경들은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무상 경」(S22:12 §3)의 주해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상좌부 불교가 스스로를 해체를 설하는 상좌부로 부른 데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해체(vibhajja)라고 파악한 장로들의 혜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11.「숲 상윳따」(S9)
아홉 번째 주제인「숲 상윳따」(Vana-saṁyutta, S9)에는 모두 14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담겨있다. 여기에 포함된 경들은 모두 밀림에 사는 천신들(vanasaṇḍe adhivatthā devatā)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본 상윳따는 본서「천신 상윳따」(S1)의 하나의 품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이 14개의 경들 가운데「한거 경」(S9:1)을 비롯한 9개의 경들은 그곳에 사는 “비구들을 연민하고 그들의 이익을 원하는, 밀림에 사는 신이 그 비구들에게 절박감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읊은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많음 경」(S9:4)은 비구들이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유행을 떠나자 그 밀림에 거주하던 천신들이 비구들을 보지 못하게 되어 서운해서 읊은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아누룻다 경」(S9:6)은 아누룻다의 전생의 아내였던 잘리니라는 삼십삼천의 천신이 읊은 게송을 담고 있으며,「암송 경」(S9:10)은 경을 암송하던 비구가 암송을 하지 않아서 그 비구로부터 더 이상 법을 듣지 못하게 되자 읊은 게송을 담고 있고,「대낮 경」(S9:12)은 밀림에 사는 신과 비구가 밀림을 묘사하는 게송으로 되어 있는데, 본서「스치는 소리 경」(S1:15) {28∼29}와 같다.
한편 본 상윳따에는 아난다 존자(S9:5)와 아누룻다 존자(S9:6)와 깟사빠곳따 존자(S9:3)와 나가닷따 존자(S9:7)에게 신들이 게송으로 경책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12.「약카 상윳따」(S10)
『상윳따 니까야』의 열 번째 주제인「약카 상윳따」(Yakkha-saṁ- yutta)에는 모두 12개의 경들이 하나의 품에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다. 각 경에는 각각 다른 약카와 부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와 일화를 담고 있다.
본서에는 약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약카(yakkha, Sk. yakṣa)’는 중국에서 야차(夜叉)로 한역되었다. 이 단어는 √yakṣ(to move quick -ly)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문자적으로는 ‘재빨리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나 주석서에서는 √yaj(to sacrifice)에서 파생된 명사로 간주하여 “그에게 제사 지낸다. 그에게 제사음식을 가져간다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224) 혹은 “예배를 받을만한 자라고 해서 약카라 한다.”(VvA. 333)고 풀이하고 있다.
『디가 니까야』제2권「빠야시 경」(D23 §23)에서 보듯이 약카는 일반적으로 비인간(amanussa)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들은 아귀(peta)들보다 높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며 선한 아귀들을 약카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PvA.45; 55) 그들은 많은 계통이 있는데, 후대 문헌으로 올수록 우리말의 정령, 귀신, 요정, 유령, 도깨비 등 나쁜 비인간인 존재들을 모두 일컫는 말로 정착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힌두 문헌의 삐샤짜(Piśāca, 도깨비, 유령, 악귀, 본서「요정 경」(S1:46) §2와「삐양까라 경」(S10:6) §3에도 pisāca로 나타남)와 거의 같은 존재를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약카는 힘이 아주 센 비인간을 뜻한다. 그래서『디가 니까야』제1권「암밧타 경」(D3)에는 금강수 약카(Vajirapāṇī)가 금강저(벼락)를 손에 들고 부처님 곁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들의 왕인 삭까(Sakka, Indra)도 약카로 표현되기도 하며(M37/i.252; J.iv.4), 본서「삭까 상윳따」(S11)의「삭까의 예배 경」2(S11:19)에서 삭까의 마부(수행원) 마딸리는 부처님을 약카로 지칭하고 있으며『맛지마 니까야』「우빨리 경」(M56/i.386 §29)의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서 우빨리 장자도 부처님을 약카로 부르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도 약카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고 있는데, 이러한 영향이 아닌가 한다.
육도윤회의 입장에서 보면 약카는 사대왕천의 북쪽에 거주하며 꾸웨라가 그들의 왕이라고 한다.(『디가 니까야』제3권「아따나띠야 경」(D32) §7 참조)『마하바라따』(Mahābhārata) 등의 힌두 문헌에도 약카(Sk. Yakṣa)는 꾸웨라의 부하들로 묘사되고 있다.
본 상윳따에 나타나는 12개의 경들 가운데 ① 인다까 ② 삭까 ③ 수찌로마 ④ 마니밧다 ⑫ 알라와까 경은 약카의 이름을 경의 제목으로 한 것이며 모두 세존과 이들 약카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다. ⑥ 삐양까라 ⑦ 뿌납바수는 이들의 어머니 약카의 게송을 담고 있는 경이다.
⑤ 사누 경은 사누라는 사미가 환속하였다가 약카에 씌인 일화를 담고 있다. ⑧「수닷따 경」과 ⑨∼⑩「숙까 경」1/2와 ⑪「찌라 경」은 각각 수닷따 장자(급고독 장자)와 숙까 비구니와 찌라 비구니와 이들을 보호하는 약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편「인다까 경」(S10:1)에 나타나는 태아의 5단계를 언급하는 세존이 읊으신 다음 게송도 주목할 만하다.
“맨 처음 [모태에서] 깔랄라가 있고
깔랄라로부터는 압부다가 있네.
압부다에서 뻬시가 생기고
뻬시가 성장하여 가나가 되네.
가나에서 다시 돌출부 생겨
머리털, 몸털, 발톱 생겨나도다. {803}
13.「삭까 상윳따」(S11)
열한 번째 주제인「삭까 상윳따」(Sakka-saṁyutta, S11)에는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와 관련된 경들 25개가 포함되어 있다. 앞의「꼬살라 상윳따」(S3)와「마라 상윳따」(S4)처럼 본 상윳따도「첫 번째 품」,「두 번째 품」(서계의 조목 품),「세 번째 품」으로 명명되는 세 품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에 10개, 10개, 5개의 경들이 배당되어 전승되고 있다.
삭까(Sakka, Sk. Śakra)는 중국에서 제석(帝釋) 혹은 석제(釋提)로 음역되었고 천주(天主)로 번역되기도 한 신이며, 인도의 베다에서부터 등장하는 인도의 유력한 신인 인드라(Indra)를 말한다. 본 상윳따의「삭까의 이름 경」(S11:12)에는 그의 이름 7가지를 열거하는데, 그 가운데 세 번째에서 그는 인간으로 있을 때 철저하게 보시를 베풀었다(sakkaccam dānam adāsi)고 해서 삭까(Sakka)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Sak -ka의 산스끄리뜨 Śakra는 √śak(to be able)에서 파생된 단어로 베다에서부터 ‘힘센, 막강한’이라는 형용사로도 쓰였고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따』에서부터 인드라의 이름으로 정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불전들에서는 또 하나의 Sakka라는 표기가 나타나는데, 석가족을 뜻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산스끄리뜨 샤꺄(Śākya)의 빠알리 표기이지 인드라를 뜻하는 산스끄리뜨 Śakra가 Sakka로 표기된 본 단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베다에서 이미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베다의 후기 시대부터 인도의 모든 신들에게도 사성(四姓)계급이 부여되는데, 아그니(Agini, 불의 신)는 바라문 계급의 신이고 인드라는 끄샤뜨리야의 신이고 하는 식으로 베다 문헌에 나타난다. 베다 문헌들에서 신들은 자주 ‘인드라를 상수로 하는 신들(Indraśreṣṭāḥ devāḥ)’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이를 받아들여서 본 상윳따의 25개의 모든 경들에서는 “신들의 왕 삭까(Sakko devānam indo)”로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상윳따에도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이 표현은『디가 니까야』「께왓다 경」(D11 §70) 등과『맛지마 니까야』「짧은 갈애의 소멸 경」(M37/i.252) 등과『앙굿따라 니까야』「사대천왕 경」2(A3:37) 등의 초기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삭까는 구체적으로는 삼십삼천의 신들의 왕이며 그래서 삼십삼천은 제석천이라고도 부른다. 본서「삭까의 예배 경」1/2(S11:18) 등에 의하면 인드라는 삼십삼천의 웨자얀따(Vejayanta) 궁전에 거주한다. 초기경들 가운데 인드라가 부처님께 와서 설법을 듣고 가는 것을 묘사한 경이 몇몇 있으며, 목갈라나 존자가 이 궁전을 손가락으로 진동시켜 신들에게 무상의 법칙을 일깨웠다는 경도 나타난다.(M37 §11)『디가 니까야』제2권「제석문경」(D21)은 이런 신들의 왕 삭까가 세존과의 문답을 통해서 예류자가 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불교를 보호하는 신[護法善神]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본 상윳따에 포함된 경들을 개관해보자.
「첫 번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S11:1∼10)은 삼십삼천의 신들과 아수라들 간의 지속적인 전쟁과 반목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처음 여섯 개 경들(S11:1∼6)은 신들과 아수라들간의 전쟁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 제4권「육처 상윳따」(S35)의「보릿단 경」(S35:248) §5 이하와「세상에 대한 사색 경」(S56:41) §5에서도 신들과 아수라들의 전쟁을 말하고 있다. 이런 묘사를 통해서 볼 때 신들은 광명과 평화와 화합의 힘을 대표하고 아수라들은 폭력과 분쟁과 불화의 힘을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보릿단 경」(S35:248 §7)을 참조할 것.
주석서에 의하면 신들은 다섯 무리의 전선(戰線)에 의해서 방어된다고 한다. 그 다섯은 나가(nāga, 용)들과 수빤나(supaṇṇa, 가루다)들과 꿈반다(kumbhaṇḍa)들과 약카(yakkha)들과 사대천왕(cattu-mahārāja)들이다. 아수라들이 이 다섯 전선을 돌파하면 사대천왕들은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고 한다. 그러면 삭까가 직접 마차를 타고 전선으로 가거나 그의 아들들 가운데 한 명에게 임무를 맡긴다고 한다.(SA.i.338∼340)「수위라 경」(S11:1)에서 삭까는 그의 아들 수위라(Su -vīra)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두 번째 품」(서계의 조목 품)의 처음 네 경은 신들의 왕 삭까가 어떻게 해서 신들의 왕이 되었는지를 세존께서 그의 전생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계신다.「아름다운 곳 경」(S11:15)「공양하는 자 경」(S11:16)「부처님을 찬양함 경」(S11:17) 등의 세 경은 삭까가 세존께 가서 질문을 드리고 찬탄하는 경이며,「세 번째 품」의「자름 경」(S11:21)도 삭까가 세존과 문답을 나누는 경이다.「삭까의 예배 경」1/2/3(S11:18∼20)은 삭까가 선인들과 부처님과 승가를 예배하고 존중하는 것이 묘사되어 나타난다. S11:22∼25의 네 경은 세존께서 삭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경이다.
한편 이처럼 신(deva)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아수라(asura)는 이미『리그베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후 많은 인도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고 있으며 본 상윳따의 여러 경들에서 보듯이 초기불전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어원으로 볼 때 아수라는 서아시아에서 유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인『아베스타』(Avesta)에 나타나는 신이나 주(主)의 개념인 아후루(ahuroo)를 뜻한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육도윤회의 입장에서 아수라는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에는 속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인간보다도 수승한 존재로 설정하기도 한다. 물론『디가 니까야』제3권「빠띠까 경」(D24 §1.7)에 나타나는 저열한 아수라들도 있는데, 이들은 본 상윳따에서처럼 신들과 경쟁하고 대적하는 아수라는 아니다. 후대로 갈수록 아수라는 저열하고 나쁜 존재로 받아들여져서 아비담마에서는 최종적으로 아수라를 악도에 포함시켜서 4악도로 설명하고 있다.
본 상윳따의「웨빠찟띠 경」(S11:4)과「금언의 승리 경」(S11:5)과「해치지 않음 경」(S11:7)「숲의 선인 경」(S11:9)「요술 경」(S11:23)에서는 삭까와 대적하는 아수라의 왕으로 웨빠찟띠가 등장한다. 주석서와『자따까』에 의하면 삭까는 이 웨빠찟띠의 딸인 수자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삭까는 ‘수자의 남편(수잠빠띠)’이라고도 불린다고「삭까의 이름 경」(S11:12 §3)은 적고 있다. 그리고「웨로짜나 경」(S11:8)에서는 아수라 왕 웨로짜나가,「바다의 선인 경」(S11:10)에서는 아수라 왕 삼바라가 나타나고 있다.
아수라 왕 삼바라(Sambara asurinda)는 아수라 왕 웨빠찟띠와 동일인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SA.i.347. S11:10 §7의 주해 참조) 그러나 C.Rh. D는 본서「요술 경」(S11:23)을 예로 들면서 다른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요술 경」(S11:23) {943}에서 웨빠찟띠(Vepacitti)는 자신과 삼바라(Sambara)를 다른 아수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주서도 삼바라는 웨빠찟띠 이전에 아수라들의 왕을 지낸 자라고 적고 있다.
14. 맺는 말
『상윳따 니까야』제1권에는 게송을 포함하고 있는 경들 271개가 크게 11개의 주제로 분류되어서 각각의 상윳따에 담겨있다. 이렇게 하여 본서에는 모두 945개나 되는 많은 게송들이 나타나고 있다.
게송으로 된 가르침들은 운율로 압축되고 축약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한글 운율로 살려서 번역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문학적인 재능이 신통치 않은 역자에게는 큰 고충이었고 괴로움이기도 하였다. 역자는 게송들이 가지는 시적인 맛을 살리기보다는 게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서 이를 살려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다 보니 게송의 번역이 딱딱하고 건조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게송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해석을 중시하다보니 필요 이상의 긴 주해를 단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게송의 뜻을 정확하고 깊게 전달하고자 하는 역자의 심정을 독자 여러분들이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특히 제1권 게송의 번역은 초기불전연구원장인 대림 스님의 노고가 컸다. 역자의 번역을 일일이 주석서와 복주서와 대조해가면서 철저한 교정과 교열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대림 스님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역자는 제1권을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심한 감기와 몸살을 겪으면서 열과 성으로 교열을 해 주신 대림 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본서 제1권은 나머지 다섯 권과는 달리 초기불교의 교학이나 수행에 관계된 주제를 중심으로 모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학이나 수행의 입장에서 게송들을 분명히 이해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여겨진다. 제1권이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들은 나머지 다섯 권을 먼저 읽고 제1권은 맨 마지막에 보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모든 부처님 가르침은 해탈의 맛으로는 하나이다.”(DA.i.1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제1권이 교학과 수행의 주제별로 모은 것은 아니지만, 본서에 포함된 모든 경들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우리에게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과 해탈․열반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을 듬뿍 안겨주시려는 우리 세존 부처님의 자애와 연민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본서를 읽는 모든 분들이 본서를 통해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시기를 기원하면서 제1권의 해제를 마무리한다.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별로 모은 경] (1/2/3/4/5/6)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초판: 2009년
제1권(S1 ~ S11): 752쪽(초판 2009년, 재판 2012년)
제2권(S12~S21): 648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3권(S22~S34): 656쪽(초판 2009년, 재판 2013년)
제4권(S35~S42): 680쪽(초판 2009년)
제5권(S43~S50): 664쪽(초판 2009년)
제6권(S51~S56): 616쪽(초판 2009년)
정가: 각권 30,000원
* 제19회 행원문화상 역경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