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 니까야 <제2권 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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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대품 목차경 번호페이지
대전기경-위대한 이야기_부처님들 일대기D1437
대인연경-연기에 대한 큰 가르침D1511
대반열반경-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들D16159
마하수닷사나 경-대선경왕(大善見王) 이야기D17309
자나와사바 경-자나와사바가 들려준 범천의 부처님 칭송D18345
마하고윈다 경-마하고윈다의 일대기D19377
대회경-신들의 큰 모임D20423
재석문경-삭까(인드라)의 질문D21441
대념처경-마음챙김의 확립D22489
빠야시경-업과 윤회D23545




<제2권 대품 해제(解題)>

  

1. 큰 경들을 모은 품

『디가 니까야』는 모두 34개의 경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다시『계온품』과『대품』과『빠띠까 품』의 세 품으로 나누어지며 각각 13개, 10개, 11개의 경들을 포함하고 있다.『디가 니까야』제2권은『대품』(大品)이라 부른다. 이는 빠알리어 마하왁가(Mahāvagga)를 mahā(大)-vagga(品)로 이해해서 직역한 말인데 일단 ‘큰 [경들을 모은] 품’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면 왜 본 품을『대품』혹은 ‘큰 [경들을 모은] 품’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먼저 빠알리어 mahā의 일반적인 의미에 대해서 고찰을 해 보자. mahā는 단독으로도 쓰이지만 주로 합성어의 앞에 붙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PED는 mahā에 대해서 great, extensive, big, important, venerable의 다섯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하고 있다. 한글로 옮겨보면 각각 위대한, 넓은/확장된, 큰, 중요한, 훌륭한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mahā를 대(大)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도 mahā가 들어있으면 대부분 대(大)로 옮겨버린다. 그래서 mahā -vagga는 대품으로, Mahā-kassapa는 대가섭으로, mahā-niraya는 대지옥으로, mahā-purisa는 대인으로 옮긴다. 그러나 PED를 통해서 보듯이 mahā를 천편일률적으로 대(大)로만 이해하면 의미전달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한문 大는 위대하다, 넓다/광범위하다, 크다, 중요하다, 훌륭하다는 의미를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mahā에 가장 어울리는 한자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문맥에 따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위대하다/중요하다/훌륭하다와 넓다/확장되었다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2. 왜『대품』인가

그러면 본 품의 제목인 Mahāvagga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요하고 위대하고 훌륭한 품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넓고 확장된 품으로 이해해야 할까?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본 품에 나타나는 경들의 제목에 대부분 mahā가 붙어있기 때문에 Mahāvagga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본 품에 수록된 10개의 경들 가운데「자나와사바 경」(D18),「제석문경」(D21),「빠야시 경」(D23)을 제외한 나머지 7개의 경의 제목에는 모두 mahā가 합성어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본 품을 Mahā -vaga라고 이름지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사실「마하수닷사나 경」(D17)과「자나와사바 경」(D18)은 각각「대반열반경」(D16) §§2.6~2.9와 §§5.17~18에 대한 보유(補遺)적 성격이 강한 경이다. 그러므로「대반열반경」 다음에 편성해서 넣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대품』의「대반열반경」 바로 다음에 나타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제석문경」(D21) 바로 앞의 세 경들 즉「자나와사바 경」(D18)과「마하고윈다 경」(D19)과「대회경」(D20)이 모두 여러 신들과 관계된 경들이고 특히「자나와사바 경」과「마하고윈다 경」은 바라문들의 신인 범천이 설주(說主)가 되어서 전개해 가는 경이므로, 신들의 왕인 삭까(제석, 인드라)가 중심이 되는「제석문경」도『대품』의 이 자리에 넣는 것이『디가 니까야』전체를 볼 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대품』의 이 부분에 넣어서 합송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자나와사바 경」과「제석문경」은 경의 제목에 대(mahā)가 들어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대품』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문제는 본 품의 마지막인「빠야시 경」(D23)인데 경의 내용이나 제목으로 볼 때 본 품보다는 마지막 품인『빠띠까 품』에 들어가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그런데「빠야시 경」을 제3품에 넣으면 본 품은 9개의 경이 되고 제3품은 12개의 경이 되어 전체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빠야시 경」을 본 품의 맨 마지막 경으로 넣어서 합송한 것이라고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⑴『중부』의 경의 이름에 나타나는 mahā의 용례

이제 니까야 전체에서 mahā가 들어가는 경들에 대해서 먼저 고찰해 보자. 먼저『맛지마 니까야』(중부)에서는 mahā가 들어가는 경과 mahā의 반대말인 cūḷa/culla가 들어가는 경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예를 들면 M11은 ‘소(小, 짧은)사자후경’으로 옮길 수 있는「쭐라 시하나다 경」(Cūḷasīhanāda Sutta)이고 M12는 ‘대(大, 긴)사자후경’으로 옮길 수 있는「마하 시하나다 경」(Mahāsīhanāda Sutta)이다. 이 두 경은 사자후라는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여기서 cūḷa와 mahā를 소(小)와 대(大)로 옮겼다고 하여 덜 중요하다거나 아주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여기서 소란 단지 분량이 작다는 말이고 대란 분량이 크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전유경」(箭喩經, 독화살의 비유)」으로 잘 알려진 경은『맛지마 니까야』의「짧은 말룽꺄 경」(Cūḷamāluṅkya Sutta, M63)이고 바로 다음의 64번째 경은「긴 말룽꺄 경」(Mahāmāluṅkya Sutta)이다. 이 경우도 두 경은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앞의 경의 분량이 적기 때문에 cūḷa를 붙여서 제목을 삼았고 뒤의 경은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mahā라는 단어를 붙여서 두 경을 구분짓고 있을 뿐이다. 중요성으로 보자면 10사무기를 설하고 있는「짧은 말룽꺄 경」이「긴 말룽까 경」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중부에는 이 두 가지 예를 포함하여 모두 18개의 경들 그러니까 전체 152개의『맛지마 니까야』(중부) 경들 가운데 36개의 경이 이처럼 ma- hā(大)와 cūḷa(小)를 붙여서 같은 사람에게나 같은 지역에서 설한 경을 구분하고 있다. 그러므로『중부』의 경 제목에 붙인 mahā는 위대하다거나 훌륭하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 만일 이 mahā를 이렇게 이해해버리면 cūḷa가 붙은 경은 사소한 말씀이나 쓸데없는 말씀 정도의 뜻이 되어버리는 엄청난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중부』의 경 제목에 나타나는 mahā는 ‘길다’는 의미로 cūḷa는 ‘짧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⑵『장부』『대품』의 경 이름에 나타나는 mahā의 용례

이제 이런 기준으로『디가 니까야』(장부)를 살펴보자.『장부』에 포함된 경의 제목에 나타나는 mahā도 그 기본적인 의미는『중부』처럼 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장부』와『상응부』와『증지부』에 mahā가 붙어서 나타나는 경들은 단순히 길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확장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면 본 품의「대인연경」(Mahā- nidāna-sutta, D15)과『상응부』「인연경」(Nidāna Ssutta, S12:60)은 설한 곳과 경의 전개 방법과 주요 내용이 일치한다. 이 경우『장부』의「대인연경」은『상응부』의「인연경」이 확장된 것으로 봐야한다.

같은 방법으로 본 품의「대회경」(大會經, Mahāsamaya Sutta, D20)은『상응부』「회경」(會經, Samaya Ssutta, S1:37/i.26f.)이 확장된 경이며, 본 품의「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ṇa Ssutta, M22)은『중부』「염처경」(Satipaṭṭhāṇa Sutta, M119)이 확장된 경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품의「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 Sutta, D16)도 확장된 경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왜냐하면「대반열반경」에 나타나는 많은 내용들이『상응부』「날란다 경」(S47:12),「영지경」(靈知經, Vijjā Sutta, S56:21),「긴자까아와사타 경」(Giñjakāvasatha Sutta, S55:8~10),「마음챙김경」(Sati Sutta, S47:2),「병실의 경」(Gilāna Sutta, S47:9),「쩨띠야 경」(Cetiya Sutta, S51:10) 등과 꼭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입멸 전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 경인데, 물론 다른 경에 나타나지 않는 내용이 훨씬 더 많지만 이처럼 다른 여러 경들의 내용을 가져와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므로「대반열반경」도 확장된 경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품의 첫 번째 경인「대전기경」(Mahāpadāna Sutta, D14)에 mahā가 들어가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그 분량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대전기경」에 해당하는『장부 주석서』에서는 본경을 ‘경들의 왕(suttantarāja)’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경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대전기경」은 모두 세 바나와라의 분량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일곱 부처님 모두에게 적용하여 설하면 21바나와라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세존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명하시는 분량이 된다. 본경의 §§3.29~3.32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무번천, 무열천, 선견천, 선현천, 색구경천의 천신들이 설명하는 것까지 계산하면 모두 21×6=126 바나와라의 분량이 된다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그래서 본경은 그 분량으로 경들의 왕이라고 주석서는 덧붙이고 있다.(DA.ii.480)

둘째, 본경이 유장한 과거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까지의 일곱 부처님의 모든 것을 설하는 경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경들보다도 더 위대한 경이라는 의미에서 mahā를 넣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대전기(大傳記)로 옮긴 마하아빠다나(Mahā-apadāna)는『쿳다까 니까야』(소부)의 열세 번째 경인『아빠다나』(Apadāna, 傳記)와 구분짓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소부』의『아빠다나』는 부처님 재세 시에 생존했던 547분의 장로와 40분의 장로니의 전기를 다룬 문헌이다. 그러므로『소부』에 포함되어 있는 이『아빠다나』와 구분하기 위해서 본경을 마하 아빠다나라고 불렀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아빠다나』가 장로와 장로니들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므로 칠불의 일대기를 다룬 본경은 당연히 더 위대한 분들의 일대기이므로 본경을 마하 아빠다나(Mahāpadāna, 大傳記)로 이름을 붙였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이 경우에 mahā는 확장된 것이나 긴 것의 의미가 아니라 더 위대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전기를 다룬 경이므로 당연히『대품』의 첫 번째 경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마하수닷사나 경」(D17)은 경의 주인공인 왕의 이름 자체가 마하수닷사나(大善見)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하가 첨가된 것이며「마하고윈다 경」(D19)도 주인공의 이름이 마하고윈다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하가 첨가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⑶ 요약

정리해서 말하자면 본 품의 이름이『대품』(大品, 마하왁가)이 된 것은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 가운데서 7개의 경의 제목에 대(mahā)가 들어가고, 대(mahā)가 들어가지 않는 경들 가운데서「자나와사바 경」(D18)은「대반열반경」(D16)의 보유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본 품에 포함시켰으며,「제석문경」(D21)은 그 성격상 신들의 회합을 다루는 앞의「자나와사바 경」(D18)과「마하고윈다 경」(D19)과「대회경」(D20)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본 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빠야시 경」(D23)이 본 품에 포함된 것은 특별한 이유를 찾아보기 힘든데, 제2품과 제3품의 경의 개수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서 편의상 제2품의 마지막에 넣어서 결집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본 품에 나타나는 대(mahā)가 붙은 7개의 경들 가운데서「대인연경」(D15)과「대회경」(D20)과「대념처경」(D22)은 각각『상응부』「인연경」(S12:60)과『상응부』「회경」(S1:37)과『중부』「염처경」(M10)이 확장된 것이며,「대반열반경」(D16)도 이 범주에 넣어서 이해할 수 있다.「대전기경」(D14)은 그 분량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상 경들의 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므로 대(大)자가 들어갔으며,「마하수닷사나 경」(D17)과「마하고윈다 경」(D19)은 경의 주인공들 이름에 대(mahā)가 들어갔기 때문에 생긴 경의 제목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본 품은『대품』(마하왁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디가 니까야』의 제1품을『계온품』이라고 명명한 것은 제1품이 포함하고 있는 13개의 경의 내용에 ‘계의 무더기’라는 공통된 가르침을 포함하기 때문이지만,『대품』은 본 품에 포함된 10개의 경들의 내용만 가지고 서로를 연결 지을 고리는 전혀 없다. 단지 위에서 고찰해 보았듯이 본 품에 속하는 경들의 제목에 대(mahā)가 들어가거나 다른 경과 연관이 있는 확장된 경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대품』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3.『대품』의 주요 청법자는 비구들이다

우리는 본서의 제1권인『계온품』의 해제를 통해서『계온품』의 13개 경들 가운데서 단 하나의 경만 제외하고는 청법자(聽法者)들이 모두 당대의 지식인(바라문), 수행자(나체 수행자, 유행승 등), 정치가(왕, 태수), 재력가(장자)였음을 보았다. 그래서『계온품』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계․정․혜 삼학으로 정리되어서 이들 사이에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 즉 인도화 되고 토착화 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품이란 사실을 살펴보았다.

반면에 본 품을 구성하고 있는 10개의 경들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7개의 경들이 비구 대중이나 아난다 존자와 같은 비구에게 설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내용별로 간단히 살펴보면「대전기경」(D14)에서는 비구 가문의 혈통을 위빳시 부처님을 위시한 7불의 계보로 설명하고 있고 깨달음을 10지 연기와 오취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통찰로 설명한다.「대인연경」(D15)에서는 비구들의 삶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연기의 가르침이 얼마나 심오한가 하는 것을 9지 연기를 바탕으로 설하고 있다.「대반열반경」(D16)은 부처님의 입멸을 토대로 비구들이 의지해야 할 것과 닦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마하수닷사나 경」(D17)은 부처님 전생일화를 통해서 아난다 존자에게 제행무상의 이치를 극명하게 설한다.「자나와사바 경」(D18)은 범천이 가지고 있는 불교의 이해를 아난다 존자에게 소개하여 불법의 수승함을 설하고 있다.「대회경」(D20)은 비구 대중에게 불법을 숭상하는 여러 신들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대념처경」(D22)은 비구 대중에게 유일한 길이라고 천명하신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를 설하는 중요한 경이다. 이처럼 본 품은 대부분이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다.

  

4.『대품』의 각 경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⑴「대전기경」(大傳記經, Mahāpadāna Sutta, D14)

부처님은 깨달으신 분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계시는 것일까? 아니면 이전에 이미 많은 부처님이 계셨던 것일까? 당연히 부처님 시대부터 불자들이 가져왔던 의문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부처님의 답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당신 이전에 여섯 분의 부처님이 이미 출현하셨음을 설하고 계시며,「전륜성왕 사자후경」(D26)에서는 미래에 미륵 부처님이 출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경에서는 91겁 전에 출현하셨다는 위빳시(Vipassi) 부처님의 출생에서부터 출가와 성도와 전법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일대기를 통해서 모든 부처님께 보편적 법칙으로 통용되는 부처님들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한편 본경이 가지는 신화적인 표현과 부처님들의 일대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본경을 후대에 결집된 것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닛데사』(Niddesa, 義釋)에 의하면 본경은 초기 자따까의 형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Nd2.80) 이미『쿳다까 니까야』(소부)에 속하는『닛데사』에 본경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본경의 결집을 후대로 보는 견해는 인정할 수가 없다.

 

본경이 신화적인 기법을 동원해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서술하고 있다고 해서 현대적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등한시 하면 안 될 것이다. 본경을 통해서 우리는 위빳시불의 깨닫는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본경에서 위빳시불은 일반적으로 경에서 정리하고 있는 12지 연기 대신에 10지 연기를 통찰하고 계신다.

위빳시불은 노사우비고뇌 → 생 → 유 … → 명색 → 식으로 연기법을 고찰하고, 다시 식과 명색의 상호 관계로부터 식 ↔ 명색 → 육입 … → 생 →노사우비고뇌로 이들의 법들이 일어남[起]을 통찰하셔서, ‘일어남, 일어남’이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통찰지[慧]가 생기고, 영지[明]가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 뒤에 같은 방법으로 이러한 법들이 소멸함[滅]을 통찰하셔서, ‘소멸, 소멸’이라고 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영지가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고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기의 이치를 순관하고 역관한 이것으로 해탈이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경에는 위빳시 부처님이 이렇게 연기법을 순관하고 역관한 뒤에 다시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렀다. 그가 이렇게 관찰하면서 머물자 오래지 않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2.22)라고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연기법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 혹은 유전문(流轉門)과 환멸문(還滅門)의 관찰을 통해서는 안․지․혜․명․광(眼․智․慧․明․光)은 생기지만 해탈은 성취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이것을 토대로 해서 오취온과 그 일어남과 사라짐을 철견함으로 해서 해탈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오온에 대해서 염오․이욕․소멸을 실현하고 그래서 해탈하고 열반을 실현한다는『중부』나『상응부』의 여러 경들과 일맥상통한다.

 

⑵「대인연경」(大因緣經, Mahānidāna Sutta, D15)

불교의 핵심사상을 한마디로 말해 보라면 초기, 부파, 대승이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그리고 주저 없이 연기(緣起)라고 할 것이다. 연기는 존재론적인 실체가 없음을 천명하는 무아와 동의어이며, 진리로서는 사성제로, 실천 체계로서는 팔정도로 시현된다. 다시 연기는 무상․고․무아라는 제법의 보편적 특징을 결정짓는 준거가 되며, 이는 해탈의 세 가지 관문으로 설정이 된다. 이처럼 연기는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중요한 것은 초기경에서 연기의 가르침은 우주의 법칙이나 생성원리를 설명하는 체계가 결코 아니라, 현실 즉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발생 구조와 어떻게 괴로움을 소멸시킬 것인가 하는 소멸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가르침으로 설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 연기를 우주의 전개 원리를 설명하는 쪽으로 적용해서 저 밖으로 천착해 들어가다 보면 괴로움의 소멸, 해탈, 열반이라는 부처님의 실천적인 고구정녕한 말씀을 잊어버리게 된다.

 

본경은 연기를 설하는 대표적인 경이지만 12지 연기를 설하는 경이 아니다. 그리고「대전기경」(D14)에 나타나는 10지 연기에서 육입이 생략된 9지 연기로 나타난다. 본경에서 설하는 연기는 9지 연기이다. 이것은「대전기경」의 10지 연기와 궤를 같이하는 가르침이며 육입을 제외시킴으로 해서 명색과 육입의 중복을 극복하였다. 사실 명색(名色, 정신․물질)과 육입(六入, 여섯 감각장소)은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대전기경」이나 본경에서 무명과 행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연기구조를 과거 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해하지 않고 현재 생에서 어떻게 연기각지(緣起各支)가 서로 조건지워져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본서「대전기경」(D14) §2.19의 주해를 참조할 것)

이를 통해서 볼 때 6지, 8지, 9지, 10지 연기가 아닌 12지 연기는 반드시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해석해야 마땅하다고 보며, 그래서 상좌부 아비담마와『구사론』으로 대표되는 북방 아비달마는 공히 12지 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이해한다고 역자는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재 생에서의 연기나 찰나연기는 본서 제1권「범망경」(D1)의 8지 연기(§3.71)와 본경의 9지 연기와「대전기경」의 10지 연기와『중부』「육육경」(六六經, Chachakka Sutta, M148)의 6지 연기 등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보다 명확해진다고 본다.

 

⑶「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āparinibbana Sutta, D16)

부처님이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자들이 가졌던 당연한 문제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6.1)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바로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는 대합송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은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두 달 뒤에 시작하여 장장 7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본서 제3권 부록『장부 주석서』서문 §69)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을 소상히 합송하여 부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전승해주고자 했을 것이며 그것이 제자 된 자들의 당연한 도리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본경이다. 본경은 세존께서 입적하시기 약 2년 전의 행적부터 시작해서 부처님 유체를 화장하여 사리를 분배하고 탑을 만든 것까지 총 6개의 바나와라가 되는 많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경은「유행경」(遊行經)으로 한역되어서『장아함』의 두 번째 경으로 중국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동진(東晉) 때 법현(法顯) 스님이「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으로 단행본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경은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것으로 전해오는 대승의「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과는 그 체제나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본경은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전 1~2년 동안에 하신 말씀을 모은 경이다. 그런 만큼 세존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시고자한 육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본경에 나타나는 여러 말씀은 불제자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제자인 수밧다에게 하신 ‘불교교단에는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문의 집단’이라는 취지의 말씀과 경의 도처에서 마음챙김을 강조하신 점과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는 마지막 유언은 우리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⑷「마하수닷사나 경」(Mahāsudassana Sutta, D17)

세존께서는 꾸시나라라는 조그마하고 척박하고 볼품없는 도시에서 반열반하셨다. 인류의 대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이런 볼품없는 곳에서 입멸하신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난다를 위시한 몇몇 비구들은 분명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대반열반경」 §§5.18~19에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간청을 드린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처럼 조그마하고 척박하고 볼품없는 도시에서 반열반하지 마시옵소서. 세존이시여,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와라나시 같은 다른 큰 도시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존께 청정한 믿음을 가진 많은 끄샤뜨리야 부호들과 바라문 부호들과 장자 부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래의 존체를 잘 수습할 것입니다.”

이런 아난다 존자의 간청에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조그마하고 척박하고 볼품없는 도시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 다음 옛적에 이곳이 마하수닷사나라는 전륜성왕의 수도인 꾸사와띠였다고 하시며, 꾸사와띠의 번창함을 묘사하시는 것이 본경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므로 본경은 바로 앞의「대반열반경」에 대한 보유(補遺)의 성격이 강한 경이다.

본경이 주는 더 중요한 메시지는, 세존께서 §2.15에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그처럼 굉장한 왕이 제아무리 큰 궁전에 살아도 자는 곳은 한두 평 남짓한 침상뿐이며, 제 아무리 많은 재물과 재산과 음식이 있어도 한 끼 먹는 것은 일정 분량의 밥과 반찬이었다는 등의 묘사이다. 이러한 말씀이야말로 본경을 통해서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처럼 세속적 권위를 모두 다 갖추어 누린 전륜성왕에게도, 깨달음을 실현하시고 법을 선포하신 여래에게도, 죽음이라는 현상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것이든 비세속적인 것이든 그 성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에 조금의 의미라도 부여하는 한 염오․이욕․해탈은 불가능하다. 상카라[行]들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사무치도록 넌더리치지[厭惡] 못하는 한 해탈․열반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본경은 이러한 간곡한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가르침이다.

 

⑸「자나와사바 경」(Janavasabha Sutta, D18)

본경도「대반열반경」(D16)에 대한 보유(補遺)의 성격이 강한 경이다.「대반열반경」의 §§2.6~2.9에 이미 나타났듯이, 세존께서 나디까 사부대중들이 죽어서 성스러운 과위(果位)를 증득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과 마가다의 신도들의 행처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세존께서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경이다.

빔비사라 왕이 죽어서 자나와사바라는 사대왕천에 속하는 힘센 약카가 되어 세존께 와서 나누는 대화가 본「자나와사바 경」의 전체 구조이다.

비록 본경은「대반열반경」 §§2.6~2.9에 대한 보유적인 성격의 경이고 전체가 신화적인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본경에서는 인도인들, 특히 바라문들이 제일의 신으로 믿고 섬기는 범천(Brahma)이라는 신의 입을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이 수승함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경은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부정하면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신화적 표현을 통해서 당대의 종교인들과 종교적 심성에 불교의 메시지를 더 강력하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불교가 아닌 바라문교라는 토착 종교의 언어와 관점으로 불교를 설명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며, 이것이 그 시대의 신화를 빌어서 불교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본경에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면 오히려 천상에 태어나는 자들이 더욱더 증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범천 등 천상의 신들도 더 기뻐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본경은 ‘불교는 전통 바라문교를 더욱더 빛나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안도감을 당대 바라문들을 비롯한 종교인들과 민중들에게 전하는 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경은 “이렇게 해서 청정범행은 잘 유지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 되어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었다.”라고 끝맺고 있다.

 

⑹「마하고윈다 경」(Mahāgovinda Sutta, D19)

본경은 앞의「자나와사바 경」(D18)에 대한 보유(補遺)의 성격이 강한 경이다.「자나와사바 경」의 주요내용은 범천이 설주(說主)가 되어 세존의 가르침을 요약 정리해서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설한 것을, 위룰하까 대천왕의 일원이 되어 그 회합에 참석한 자나와사바 약카가 듣고 세존께 와서 그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마찬가지로 본경에서도 주요 내용은 범천이 설주가 되어 마하고윈다라는 부처님 전생담을 설한 것이다. 범천이 신들의 회합에서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들려준 이런 이야기를 본경에서는 빤짜시카 약카 동자가 듣고 부처님께 찾아와서 부처님께 고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본경뿐만 아니라 초기경 전체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범천에 태어나는 길은 자애[慈], 연민[悲], 같이 기뻐함[喜], 평온[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四無量]이다. 그러나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길은 팔정도이다. 그래서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마하고윈다였을 때는 팔정도를 근본으로 하는 청정범행을 몰랐기 때문에 대중들을 범천에 태어나게만 인도했지만 금생에는 팔정도를 드러내고 실현했기 때문에 아라한, 불환자, 일래자, 예류자라는 성자의 경지로 무리들을 인도한다고 천명하신다. 그러므로 본경은 팔정도의 중요성을 거듭 천명한 경이다.

그리고 본경은 인도의 가장 유력한 신들 가운데 한사람인 끄리슈나의 이름인 고윈다를 등장시켜 그는 부처님의 전생 이름이었다고 하고 있으며, 그들의 친구가 바로 일곱 명의 바라따 왕들이었다고 하여 불교의 종교화와 신화화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오히려 나중에 힌두교에서는 끄리슈나(고윈다)를 위슈누(Viṣṇu)의 여덟 번째의 화신이라 하고 부처님을 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불 수 있을 것이다.

 

⑺「대회경」(大會經, Mahāsamaya sutta, D20)

본경은 범부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신들의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앞의 두 경을 통해서 우리는 인도 신화의 정상을 차지한다 할 수 있는 범천과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삭까(인드라)를 필두로 하여 삼십삼천과 사대왕천에 속하는 천상의 신들이 모두 모여서 회합을 가지는 광경을 살펴보았다. 본경은 그런 신들뿐만 아니라 더 저급한 신들이나 정령의 무리들까지 모두 포함하여, 부처님과 비구 승가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모든 신들을 언급하고 있다.

본경도 불교가 종교화 되고 신화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신교적이요 물활론적이요 범신론적 성향이 아주 강하였던 인도 민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경이 결집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들은 사성제, 팔정도, 37조도품 등의 생사를 뛰어넘는 가르침이나, 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실천보다는, 직접적으로 여러 신들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의 가피를 입어서 삶의 현장에서 복잡다단하게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 시대에 종교를 찾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불교 교단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신도들의 관심에 응답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여 불교도 일찍부터 종교화와 신화화의 길을 채택하여 받아들였다고 보아지며 특히『디가 니까야』는 이런 성향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본경의 결집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본경의 결집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본서 제3권의「아따니띠야 경」(D32)과 같은 경들이 완전히 정착되어서 불자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는 보호주(保護呪)의 역할을 하였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본경은 불교가 어떻게 종교화되고 신화화되어 가는가를 여실히 볼 수 있는 경이라 하겠다.

 

⑻「제석문경」(帝釋問經, Sakkapañha Sutta, D21)

본서의「자나와사바 경」(D18)과「마하고윈다 경」(D19)이 불교를 외호하는 범천 사낭꾸마라가 중심이 된 경이요,「대회경」(D20)이 여러 신들과 정령에 관한 경이라 한다면, 이제 본경은 불교를 외호하는 최고의 천신이며 신들의 왕으로 불리는 삭까(인드라)가 중심이 되는 경이다. 앞의 두 경들을 통해서 보면 범천은 세존께 법문을 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인드라는 여기서처럼 세존께 질문을 드리고 이 질문을 통해서 그는 예류과를 증득하여 불교의 성자(ariya)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

본경에서 삭까는 결국은 연기적인 고찰 끝에 깨달음을 증득한다. 그는 세존과 더불어 질투와 인색, 좋아하고 싫어함(piya-appiya), 열의[慾, chanda, 의욕, 애정], 일으킨 생각[尋, vitakka], 사량분별을 가진 인식이라는 헤아림(papañcasaññāsaṅkhā)으로 진행되는 문답을 나눈 뒤, 이러한 사량분별을 가진 인식이라는 헤아림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실천에 대한 법문을 세존께 청한다. 사량분별의 소멸은 바로 열반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열반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 느낌들을 통찰하는 것을 심도 깊이 설명하신다. 삭까는 이 법문을 듣고 마침내 예류자가 된다. 이것은 수행자들이 깊이 새겨볼 가르침이다.

주석서에서는 명상주제를 물질의 명상주제와 비물질(정신, 名)의 명상주제로 둘로 나누어서 자세히 설명한 뒤(이 내용은『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200~201쪽과 같다) “그런데 여기서는 세존께서 비물질의 명상주제를 느낌을 상수(上首)로 하여 설하신다.”(DA.iii.723)고 적고 있다. 아마 신들의 왕인 삭까가 자신의 죽음이라는 정신적인 괴로움 때문에 지금 세존을 방문하여 법문을 듣고 있으므로 이러한 느낌의 관찰은 물질의 관찰보다도 그에게 더 큰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본경은 삭까(인드라)라는 인도의 신을 내세운 신화적인 구성으로 전개되는 가르침이지만 상좌부 전통에서는 본경을 수행과 관계된 중요한 경으로 취급하고 있다. 본경을 통해서 삭까가 예류자가 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불교에서 설하는 성자가 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를 본경은 심도 있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석서도 그 내용이 상당히 길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여 본경을 소홀히 하지 말고 정독해야 할 것이다.

 

⑼「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 

부처님의 육성이 생생히 살아있는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법을 설한 경을 들라면『장부』의「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과『중부』의「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Ānapānasati Sutta, M118)과「몸에 마음챙기는 경」(Kayagatasati Sutta, M119)의 셋을 들 수 있다. 물론『중부』의「염처경」(M10)도 들어야겠으나 염처경은 사성제의 고성제에 관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본경과 그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세 경들을 초기경들 가운데서 실참수행을 설하신 수행삼경(修行三經)이라 불러도 괜찮다.

이 가운데서 본경은 초기불교 수행법을 몸․느낌․마음․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주제 하에 집대성한 경으로 초기수행법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경이며 그런 만큼 가장 유명한 경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으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법은 이 경을 토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오고 있으며 남방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위빳사나 수행법은 모두 이 경을 토대로 하여 가르쳐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빠알리어 ‘sati(Sk. smṛti, 念)’의 역어인데 이것은 √smṛ (to remember)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그 사전적인 의미는 기억 혹은 억념(憶念)이다. 초기경에서 sati는 거의 대부분 기억이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주로 접두어 ‘anu-’를 붙여 ‘anussati’라는 술어를 사용하거나 √smṛ에서 파생된 다른 명사인 ‘saraṇa’라는 단어가 쓰인다. 물론 수행과 관계없는 문맥에서 sati는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sati는 지금 한국에서 ‘마음챙김’, ‘마음지킴’ 등으로 옮겨지고 있는데 ‘마음챙김’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추세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마음챙김’이라 정착시키고 있다. sati가 왜 마음챙김인가는『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서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sati의 네 가지 의미를 읽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sati는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하고 그래서 마음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sati는 대상을 챙기는 심리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챙김은 일견 ‘마음을 챙김’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챙김을 “마음이 대상을 챙김”, 혹은 “대상에 마음을 챙김”이라 정의한다.

 

본경은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확정해서 수행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이다. 이처럼 신․수․심․법은 중생들이 개념지어 ‘나’라거나 ‘내 것’이라 잘못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해체해서 네 가지로 제시하신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몸[身, kāya] : 14가지

① 들숨날숨

② 네 가지 자세

③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

④ 32가지 몸의 형태

⑤ 사대를 분석함

⑥-⑭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 느낌[受, vedanā] : 9가지

① 즐거운 느낌 ② 괴로운 느낌 ③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④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⑥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⑦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 ⑧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 ⑨ 세속

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 마음[心, citta] : 16가지

① 탐욕이 있는 마음 ② 탐욕을 여읜 마음

③ 성냄이 있는 마음 ④ 성냄을 여읜 마음

⑤ 미혹이 있는 마음 ⑥ 미혹을 여읜 마음

⑦ 위축된 마음 ⑧ 산란한 마음

⑨ 고귀한 마음 ⑩ 고귀하지 않은 마음

⑪ 위가 남아있는 마음 ⑫ [더 이상] 위가 없는 마음

⑬ 삼매에 든 마음 ⑭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⑮ 해탈한 마음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


㈑ 심리현상[法, dhamma] : 5가지

① 장애[蓋]를 파악함

② 무더기[蘊]를 파악함

③ 감각장소[處]를 파악함

④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를 파악함

⑤ 진리[諦]를 파악함

 

「대념처경」은 이렇게 모두 44가지로 마음챙김의 대상을 구분하여 밝히고 있다. 이 각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본문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기 바란다.

 

⑽「빠야시 경」(Pāyāsi Sutta, D23)

과연 저세상이란 존재할까? 과연 내세란 존재할까? 금생에 이 몸이 죽어서 없어져 버리면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도덕적 인과율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 이런 것은 현대인들이 가지는 의문들이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도덕적 인과율을 좀처럼 믿지 않으려한다.

그것은 부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여기 빠야시라는 태수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 그는 대놓고 “저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화생하는 중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과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본경은 이러한 사고에 물들어 있던 빠야시라는 태수에게 꾸마라깟사빠 존자가 한 법문이다.

꾸마라 깟사빠 존자는 태양과 달의 비유 등 대략 14개 정도의 비유를 들어서 마침내 태수를 설복시킨다. 태수는 “저는 깟사빠 존자께서 해 주신 바로 처음의 비유로 마음이 흡족하고 크게 기뻤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여러 가지 뛰어난 답변을 듣고 싶어서 깟사빠 존자께 이의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하면서 불교로 귀의한다. 본경은 특히 재가자들에게 인과의 이치를 분명히 믿게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불교는 한결같이 내세도 있고 보시를 베푼 공덕의 과보도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찰나생멸을 거듭하면서 흘러가는 것으로 윤회를 설명한다. 이런 윤회를 서양 사람들은 재생(再生, rebirth)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불교는 어떤 불변하는 자아나 영혼이 있어서 금생에 이 몸을 받고 죽어 내생에 또 다른 몸으로 들어가는 재육화(再肉化, reincarnation)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애가 있는 한 재생의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래서 여러 경들에서는 갈애를 뽀노바위까(ponobbhavika, 다시 태어남[再生]을 가져오는 것)라고 부른다. 특히 아비담마는 이전의 심찰나에 지은 의도적 행위는 업의 조건[業緣]에 따라서 그 과보를 반드시 다음의 어느 찰나에서 생기게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본경이 흥미롭고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자이나 문헌과 불교 문헌 가운데서 서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경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본경과 내용이 아주 흡사한 문헌이 자이나 문헌에 나타난다.

역자가 인도에서 유학할 때 범어학과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본경을 읽었는데 그때 그분은 어떤 노교수님이 쓴, 본경과 자이나 경전에 나타나는 어떤 경을 비교 연구한 글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마라티로 쓰여 있어서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교수님이 간략히 소개해준 것을 노트에 적어두었고, 역자가 직접 해당 자이나 경전을 열람하여 몇 가지 사실을 기록해 두었는데, 한국으로 짐을 옮기는 와중에 그 노트가 분실되어 지금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다. 역자가 자이나 경전의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자이나의『우빵가숫따』(Uvaṅgasutta)에 포함된『라야빠세나이야(Rāyapaseṇaiya,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뜻함) 품』의「빠에시 까하나감」(Paesi-kahāṇagaṁ)이다. 본경의 빠야시 태수는 자이나의 이 자료에서 빠에시 라자(Paesi Rāja) 즉 빠에시 왕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디가 니까야 (長部, 길게 설하신 경) (1/2/3)

각묵 스님 옮김/신국판(양장)

제1권: 616쪽/ 제2권 600쪽/ 제3권: 688쪽

정가: 각권 30,000원 (초판 2006년, 3쇄 2010년)

* 제3회 보현학술상 수상